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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공부의 신'이 반쪽 1위에서 2회만에 월화드라마 1위의 자리를 꿰찼습니다. 상당히 의미있는 성적입니다. 2010년 1월4일, 지상파 3사는 동시에 세 편(정확하게 말하면 네편이지만)의 월화드라마를 시작하면서 나름 칼을 갈았습니다. 그 동안 '선덕여왕'에게 밀려 기를 펴지 못했던 SBS와 KBS로서는 판도를 바꿔 놓을 기회라고 여겼을 것이고, MBC 역시 '선덕여왕'이 장기집권(심지어 연장방영까지)하는 동안 차기작을 준비할 충분한 여유가 있었죠.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세 방송사 모두 내놓은 작품이 만만찮았고, 첫날은 오락가락, 세 드라마 모두 시청률 10%를 넘는 대혼전을 벌였습니다. 물론 시청률이라는 건 흔들리는 배 위에 놓인 물잔과 같아서 출렁하는가 싶으면 어느 한 쪽으로 쏠려 쓰러지게 되어 있죠.

'공부의 신'의 1회 포인트가 "너희같이 바보같은 놈들일수록 천하대(사실은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외치던 김수로의 일장 연설이었다면 2회의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유승호의 눈물입니다. 특히 그 눈물의 매개가 할머니가 싸 준 도시락이라는 게 의미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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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통학교' 병문고를 되살리기 위해 천하대 입시 특별반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강석호(김수로)에게 놓인 첫번째 미션은 이 특별반에 들어올 학생을 최소 다섯명은 모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죠. (당연히 그렇겠죠.)

드라마의 진행상 반드시 특별반의 주역이 되어야 할 백현(유승호)는 할머니와 함께 사는 셋집에서 쫓겨날 상황입니다. 당연히 목돈이 필요하죠. 학교는 뒤로 미루고 중국집 철가방과 카센터 아르바이트로 돈벌기에 나선 백현에게 짠 하고 나타난 강석호는 말합니다. "대체 이렇게 푼돈 벌어서 어느 세월에 집을 구해 할머니를 모시겠느냐. 네가 지금 돈 버는 시간은 미래를 위해 투자할 시간인데"라며 질타합니다.

당연히 "상관 말라"며 버럭 화를 낸 백현은 학교를 땡땡이치고 알바를 하다가 공원에서 할머니가 특별히 싸 준 도시락을 까 먹습니다. (급식 세상이라 소풍날 아니면 보기 힘들어진게 도시락이지만 '손자가 특별반에 갔다는데'라는게 갑자기 도시락이 등장한 이유입니다) 여기서 눈에 띄는게 할머니의 편지. 그리고 강석호를 통해 할머니가 자기 몰래 고시원으로 방을 빼는 걸 알게 된 백현은 마침내 특별반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여기서 뜬금없이 남자가 밥을 먹다가 목에 걸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벌써 24년 전 영화군요. 1986년작 '영웅본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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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한 구석에서 도시락을 꾸역꾸역 삼키고 있는 소마(주윤발). 아호(적룡)의 복수를 위해 총격전을 벌이다 한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소마는 왕년의 자기 부하였던 아문(이자웅)의 차를 닦으며 용돈을 받아 쓰는 처지가 돼 있습니다. 오직 밥을 빨리 먹어 없애는 게 인생의 목표라는 듯 목구멍으로 아귀아귀 밥을 밀어넣던 소마에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소마, 편지에는 잘 지내고 있다고 썼잖아."

그 순간 소마의 표정은 한 순간에 얼어붙습니다. 보고싶던 친구를 마주했건만 현재 자신의 처지에 대한 수치와 곤혹스러움이 짧은 시간에 교차합니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입에 든 밥을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고. 이 복잡한 순간을 표정 하나로 연기해내는 주윤발이라는 배우의 솜씨는 절묘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성 관객들은 이런 장면의 정서를 쉽게 이해하지 못하더군요. 심지어 이런 장면이 있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이 대부분.^^)

아무튼 유승호군이 도시락 먹는 장면을 보면서 우연히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사나이 눈물'이라기엔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이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은 명품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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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갑자기 곁길로 샜지만, 할머니의 도시락과 유승호의 굵고 짠 눈물은 드라마의 흐름 속에서 충분한 효과를 냈습니다. 물론 일본판 드라마 '드래곤 사쿠라'에는 나오지 않는 장면이죠. 훨씬 한국적인 정서에 맞닿은 느낌입니다.

사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상황들이 그리 현실적이지는 않을 겁니다(앞으로 입시 훈련 과정이 나오면 당연히 더더욱 비현실적인 내용이 등장하겠죠^^). 그런 가운데서 과연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거의 생활보호대상급 고교생이 화려한 그래픽의 최신 휴대폰을 갖고 다녀도 될까 싶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이 현재 10대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드라마에 그런 장면이 나오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건 다들 아실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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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중년이 된 이 나이에도 강석호 쌤의 말씀들은 가슴에 콱콱 박힙니다. "너 같은 놈은 아직 자존심 세울 레벨도 안 돼. 아직 내가 도와줄 수 있다." 이렇게 어디서 짠 하고 나타나 도와줄 선생님도 없는 이 나이엔 뭘 어찌해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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