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많은 사람들이 김혜수에게는 '소신 지원'이라는 칭찬을, 유해진에게는 '남자의 희망'이라는 부러움 섞인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참 이렇게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커플은 정말 오랜만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일찍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게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물론, 대전제는 '누가 누구를 사귀고 말고 하는 문제로 다른 사람들이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반칙이라는 겁니다. 소신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으면 다른 사람보다 김혜수 본인이 기가 막힐 것이고, 유해진에게는 남달리 실례가 될 겁니다. 그들 스스로는 서로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사귀는 것 뿐인데, 칭찬이며 감탄이며 하는게 더 어색하겠죠. 그런데 사람들이 처음에 언급한 반응을 보이는 게 사실 이상한 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남들은 대부분 그렇게 하지 않는데'라는 것이죠.

그럼 '남들은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하철에서 선로에 떨어진 어린이를 구한 행인, 길에 쓰러진 취객을 일으켜 집에 보내준 사람, 달아내는 소매치기의 다리를 걸어 체포될 수 있게 한 사람, 거액이 든 지갑을 주워 주인을 찾아 주고 사례를 마다한 사람, 목숨을 걸고 불타는 건물에서 잠자던 노인을 업고 나온 소방관. 모두 신문 사회면의 미담 기사에 실리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의 인터뷰 소감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그렇습니다. 당연한 일을 한 것 뿐이라고 하지만 실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엔 널려 있습니다. 윤리 시험 문제라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답이지만, 같은 상황에서 주저없이 그런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행동 양식을 선택할 때,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기준으로 삼습니다. 특정 상황에서 박지성의 선택은 박주영이나 기성용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고, 도요타는 현대차의 결정을 참고하겠죠. 이번 사건^^이 사람들의 입에 유난히 많이 오르내리는 것은, 김혜수가 흔히 김혜수와 비슷한 사람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슷한 환경에서 '유난히 튀는 선택'을 한 사람이 김혜수뿐만은 아닙니다만, 그런 선택들이 모두 환영받지는 못했습니다.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것 역시 자명합니다. 김혜수의 선택에서는 '상대인 남자', 그 사람 개인 이외의 다른 요소들이 개입된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다른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외모, 사회적 지위, 재산, 명예, 가문, 학벌 등등의 소위 '조건'들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 다시 지난해 한때 뜨거웠던 '미수다'의 '루저의 난' 사태를 되새겨보게 됩니다. 당시 출연자들은 '여자는 몸을 꾸미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데이트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며' '연애 상대와 결혼 상대가 다른 건 당연하며' '아무리 멋진 남자라도 원룸에서 라면을 먹으며 사회 출발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때 독일 출신 미르야가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고 일갈을 날려 이들을 평정(?)하기도 했죠.

이 대목에서 왜 많은 다른 사람들은 '그냥 자기가 좋은 사람'과 사귀지 못할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제목은 '다른 여자들은...'이라고 달았지만 사실 남자나 여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조건은 바로 '다른 사람의 눈'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남자와 결혼하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이런 여자와 다니면 남들은 날 어떻게 볼까. 이런 생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소위 '객관적인 조건'에 매달리는 겁니다.

이 '남들의 눈'은 더 폭넓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남들의 눈이란 조건이 사라져도 과연 지금처럼 명품 백이나 구두에 여자들이 목을 맬지, 남자들이 무리해서 눈만 오면 무용지물이 되는^^ 거대한 후륜구동 수입 세단을 사는데 매달릴 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각에서는 '김혜수나 되니까...'라는 얘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 자신이 부와 명예를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에 구애받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이런 주장은 쉽게 뒤집힐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재벌가나 명문가 자제들은 대개 그 비슷한 문벌 안에서 상대를 찾습니다. 회장 아들과 가난한 신입사원의 결합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얘기일 뿐입니다. 세상을 보면 볼수록 0.1%에 드는 사람들도 결코 '남의 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 수 있게 됩니다. 소위 스스로 갖고 있는 '객관적 조건'은 소신있는 선택의 전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일 뿐입니다.

누군가 부동산 거래를 할 때, 100억원을 주고 25평짜리 아파트를 샀다는 얘기를 들으면 상관 없는 사람도 혀를 끌끌 찹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연애나 결혼 상대의 선택에도 비슷한 경제 논리를 들여다 설명을 한다는 것이 세상의 비극이죠.

이런 주제로 얘기를 하자면 정말 끝이 없겠지만, 여기선 일단 끝을 맺겠습니다. 오늘의 결론은, 온갖 조건으로 도배된 상대라야 만족할 수 있다는 사람에게 던지는 미르야씨의 한마디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으세요?"



공감하시면 왼쪽 아래 손가락을 눌러 주세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