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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라는 이름만으로도 소년시절의 추억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요즘도 국내에서 방송되는 BBC의 수사드라마들을 볼 때마다 저 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셜록 홈즈의 후예들을 길러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모리스 르블랑은 '괴도 루팡' 시리즈 중 한 권인 '기암성'에서 영국이 자랑하는 영웅 셜록 홈즈를 패러디해 '해록 숌즈'라는 이상한 영국인 탐정을 루팡의 경쟁자로 등장시킵니다. 결론은 루팡의 완승. 르블랑의 이런 비겁한 반칙 때문에 '영국이란 나라에 대한 호감'과 '프랑스란 나라에 대한 반감'이 동시에 생긴 분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셜록 홈즈를 영화로 만든 감독이 가이 리치라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비록 가이 리치의 걸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는 팬이긴 하지만, 가이 리치의 세계와 셜록 홈즈의 세계는 아무래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주인공까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물론 좋아하는 배우고 좋아하는 감독이긴 한데, 이건 뭐랄까... 김병욱 감독님이 줄리엔 강을 주인공으로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만든다는 느낌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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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줄거리.

런던 베이커가 221B에 사는 탐정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단짝 친구 왓슨(주드 로)과 함께 사이비종교 교주 풍의 흑마술사인 블랙우드 경(마크 스트롱)을 체포합니다. 그와 동시에 홈즈는 이제 상대할 범죄자가 없다는 허무에 빠지고, 왓슨은 메리 몰스턴을 만나 결혼을 약속합니다. 그러는 사이 홈즈의 한때 애인이자 매력적인 도둑 아이린 아들러(레이첼 매커덤스)가 갑자기 나타나죠.

하지만 교수형을 앞둔 블랙우드는 홈즈를 불러 면회를 신청하고, 곧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예언은 적중되고 블랙우드는 묘지에서 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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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셜로키언'이라고 자처할 정도로 열성 팬은 아니지만, 홈즈의 추억을 소년 시절의 중요한 부분으로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참 황당무계하게 여겨집니다. 물론 홈즈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터프한 남자고, 한때 권투 경력도 갖고 있었으며,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잠수를 탔을 때는 마약굴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괴짜스러운 사람이긴 합니다. 하지만 왓슨에 비해 똑부러진 영국 신사의 이미지는 아니라고 해도, 이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수다스럽고 온 사방에 농담을 뿌리고 다니는 남자의 이미지는 결코 아니죠.

왓슨 역시 잘생기고 꼿꼿한, 튼튼하고 용감한 남자의 이미지이긴 하지만 이렇게 액션을 뿌리고 다니는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니 홈즈, 자네는 대체 그런걸 어떻게 다 알지?"가 고정 대사인 원작의 왓슨과는 달리 이 영화의 왓슨은 홈즈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이며 초보 법의학자이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장족의 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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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영화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난 도일 경이 만들어 낸 세계와는 달리 장난기가 흘러 넘칩니다. 당연히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이라고 하기는 좀 힘들 정도입니다. 아주 아슬아슬하게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처럼 막 나가지 않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 영화를 접했을 때, 홈즈의 세계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 어느 쪽의 호응이 훨씬 클 지는 자명합니다. 당연히 후자 쪽이죠. 그리고 아마도, 2010년의 영화 관객 중에는 후자 쪽이 훨씬 더 많을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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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글의 제목이 '셜록 홈즈를 읽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이라고 해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셜록 홈즈가 나오는 작품들을 읽지 않았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우삼이나 '적벽대전' 관게자들이 -심지어 출연하는 배우들까지도- 아무도 '삼국지연의'를 읽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가이 리치와 '셜록 홈즈' 제작진들은 홈즈의 세계를 속속들이 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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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아이린 아들러라는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은 '보히미아의 추문' 단 한 편 뿐이지만, 아마도 전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홈즈에게 '여성'으로 그려지는 중요한 존재입니다(언급되는 작품은 훨씬 더 많죠). 홈즈의 로맨스가 언급된다면 아들러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네 사람의 서명'은 왓슨이 첫 아내인 메리와 맺어지는 사건이기도 하죠. 이런 식의 구성을 보면 결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홈즈의 세계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이 리치의 태도는 "이봐, 솔직히 당신들 홈즈 홈즈 이름은 너무나 잘 알지만 책은 안 읽어 봤지? 괜찮아. 어쨌든 재미있게 만들어 주면 될 것 아냐!"라는 식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재능있는 배우들 덕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상큼합니다. 좀 지나친 개그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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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어느 케이블 TV에선가 줄곧 틀어 주다가 사라진, 제레미 브렛의 TV판 셜록 홈즈 시리즈가 그립습니다. 브렛이 연기하는 홈즈는 어딘가 좀 다른 듯도 하면서도 '그래, 저런게 바로 홈즈야'라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말입니다.

P.S. 미국에서도 '아바타'에 밀려 한번도 박스 오피스 1위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1억달러를 넘는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아마도 속편이 나오고, 그때는 영원한 악당 모리어티 교수와의 한판승부가 예상됩니다. 과연 그때는 누가 모리어티를 연기할까요. (이번 영화가 재미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도 이 영화를 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S.2. 닥터 하우스의 원작(?)이 홈즈 시리즈라는 건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서인지 유독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홈즈가 하우스처럼, 왓슨이 윌슨처럼 보이곤 합니다. 아, 물론 전편에서 계속 그런 건 아니고 어떤 장면들이 그렇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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