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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는 참 희한한 영화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가 두말할 나위 없이 '송강호의 영화'였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재발견됐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두 말이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고, 개인적으로 '의형제'라는 영화를 뒷날 기억할 때 어느 쪽이 더 의미가 더 각별하겠느냐고 묻는다면 후자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송강호가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가운데 '송강호의 영화'가 아닌 영화가 몇 편이나 있겠습니까?
 
그리 긴 활동기간을 보낸 배우는 아니지만 강동원만큼 '재발견'이 많이 된 배우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팬들은 강동원의 작품이 새로 나올 때마다 '재발견'을 얘기했지만 냉정한 눈으로 볼 때에는 아직 '최강의 하드웨어를 가진 강동원'이 보일 뿐 '연기자 강동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형제'에서는 마침내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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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온 프로페셔널 킬러 그림자(전국환)을 마중나간 고정간첩 지원(강동원). 하지만 그 뒤에는 어느새 그를 바싹 쫓고 있는 국정원 팀장 한규(송강호)가 있습니다. 지원의 임무는 그림자의 암살 임무를 돕는 것. 한규는 그리 늦지 않게 현장을 덮치지만 그림자와 지원을 잡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결국 지원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정보 유출의 혐의를 쓴 채 버림받고, 한규 또한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퇴직당합니다.

3년 뒤, 한규는 결혼했다가 도망친 베트남 여자들을 남편에게 다시 데려다주는 일로 입에 풀칠을 하다가 우연히 지원을 발견합니다. 서로 상대방은 자신에 대해 모를 것이라고 확신한 채 은근히 접근하는 두 사람. 속내를 감춘 채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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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간첩과 국정원 직원 이야기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봤습니다. 오랜 경험상, 정보가 많아서 도움이 된 기억은 한번도 없었지만, 어쨌든 영화를 본 뒤의 심정은 매우 흐뭇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송강호가 국정원 직원으로 나온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쉬리'와 비교하곤 하지만 굳이 해야 한다면 이 영화와 비교해야 할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입니다. 생각해보면 'JSA'가 개봉한지 벌써 10년이 흘렀군요.

'의형제'는 그 10년 동안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이 한번 더 유연해 질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JSA'와 '의형제'는 모두 1953년 휴전 이후 거의 60년째 남북간의 준 전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서 양쪽의 사람들,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훈련된 남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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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JSA'의 이야기는 개인에게서 시작해 점점 줌 아웃되어 그들을 둘러싼 온 세상에서 끝납니다. 하지만 '의형제'는 다르죠. 역시 개인에게서 시작해 전체 틀을 보여주는 듯 하다가 다시 개인으로 환원되어 끝납니다. 다시 말해 'JSA'의 결말은 '그들을 둘러싼 전체 환경'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것이었던 반면, '의형제'는 거기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습니다. '까짓 세상이야 아무렴 어때'라는 식이라고나 할까요.

이건 어찌 보면 10년 사이 생긴 여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관계를 바라볼 때 뭔가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진 영화라고나 할까요. (물론 '간첩 리철진' 이후 실제 상황에 대한 별 이해 없이 남북관계를 그저 코미디 소재로 사용한 수많은 영화들은 제외하고 하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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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영화의 초점은 서로 전혀 믿지 못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처지를 낫게 하는 데 이용하겠다는 생각뿐이었던 두 남자가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입니다. 'JSA'에서는 네 인물이 모두 '자의와는 관계 없이 군대에 끌려와 있는' 상황이란 면에서 매우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상황이었다면 '의형제'에서 두 사람이 놓인 환경에는 너무도 변수가 많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애당초 두 사람에겐 체제 따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한규에게 간첩 잡이는 일반 직장인들이 내는 '실적'과 마찬가지고, 지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북으로 돌아가든, 아내가 내려오든 가족과 다시 합치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JSA'에서 수혁이 고민끝에 내린 결론이 '함께 (남으로) 내려가자'고 설득하는 것이고, 거기에 오중사(송강호)가 '야, 내 꿈은 공화국이 이 쪼꼬파이보다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거이야'라고 대답하는 상황은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의형제'의 세계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게 중요하지 체제는 무슨 개뿔'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JSA'에서 어쩌면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졌던 '먹물'이 쭉 빠진 셈이고, 관객들에게도 그걸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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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볼때마다 훌륭한 건 당연하지만 그건 매번 김연아의 연기에 대해 찬탄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건 강동원의 발전입니다.

바로 직전의 '전우치'도 재미있는 영화였고, 강동원의 연기도 뭐 나쁘달 순 없었지만 어쨌든 그건 누가 봐도 '전우치 분장을 한 강동원'이었지 전우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밖에도 '우행시'의 강동원, '형사'의 강동원,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전까지 가장 연기력이라는 면에서 가능성을 보인 작품은 차라리 '그녀를 믿지 마세요'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강동원이 송지원으로 겹쳐지는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그 인간의 내부에서 요동치는 혼란(어쩌면 '대체 이 인물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하는 혼란일 수도...^^)이 송지원의 표정을 통해 생동감있게 전달됐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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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에게 가장 큰 수확은 아마도 지난번 '영화는 영화다'보다 다섯배나 되는 제작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감독임을 확인시켰다는 것일 듯 합니다. 소형 영화일 때에는 펄펄 날다가도 막상 돈뭉치를 보면 뒷걸음질 치는 감독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핵심적인 두 인물에게 집중하는 맛은 좀 떨어졌지만 어쨌든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완결성이나 규모 큰 대중 신에서의 통제력은 매우 훌륭합니다.

과연 장훈 감독의 다음 영화도 '두 남자'의 이야기일지, '여자가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언제쯤 재능을 보여줄 지, 그리고 세번째 극장용 영화에도 배우 고창석이 등장할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아무튼 기대를 갖고 기다릴 수 있는 감독이 늘어났다는 점이 매우 기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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