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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사이드'는 참 있을 법 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풍족하고 고민거리 없는 부유한 백인 주부가 아무 신분 보장도 되지 않는 거구의 흑인 소년을 집으로 끌어들여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보호자가 되어 미래를 열어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산드라 블록이 연기하는 리앤 투오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고, 가족 구성원도 같습니다. 그리고 마이클 오어(Oher)는 NFL의 볼티모어 레이븐스에 2009년 입단한 실제 미식 축구 수비수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선수로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그 대단한 미식 축구 열기로 볼 때 NFL 선수가 됐다는 것 자체를 성공으로 여긴다는게 큰 오해는 아닐 듯 합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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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 스포일러 같은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모든 사건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일어납니다. 우선 약간의 줄거리.

돈 많은 남편과 예쁜 딸, 똘똘한 아들을 두고 사는 미국 남부의 부유층 주부 리앤 투오히(산드라 블럭)는 어느날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라는 거구의 소년이 자신들의 동네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리앤은 이 말없는 소년이 위협적인 외모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필요한 미성년자이며, 그에게도 뭔가 성공적일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마이클을 가족의 일원으로 삼기 위한 리앤의 노력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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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투오히 가족에 대해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보수적인 미국 남부의 백인 가족이 155kg짜리 덩치의 흑인 고교생을 양자로 받아들인다... 참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듯 어머니인 리앤이 이런 주장을 하고, 다른 가족들이 순순히 그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게 참 놀랍기만 합니다.

아마도 이 영화는 이 내용이 실화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작품일 겁니다. 누군가 이런 선의로 가득 찬 시나리오를 순수하게 상상력에 입각해서 만들어 낸 다음 영화로 만들겠다는 시도를 했다면, 제작사 사장은 아마도 "자네 SF 찍자는 건가?"라고 했을 것이고, 영화가 나왔다 해도 흑인 민권 단체들은 "엉클 톰과 스토우 부인을 되살리려는 백인들의 음모"이며 "우리 흑인들은 몽매하고 가진건 육체적 능력 뿐이며, 지혜로운 백인들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유치하고 악의적인 프로파간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데 누가 뭐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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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실의 세세한 상황과 얼마나 맞아 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는 착한 사람들과 착한 의지가 철철 넘쳐 흐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나쁜 사람들이라는게 일상이 너무 단조로워서 남의 뒷담화 늘어놓는게 유일한 낙인 백인 부유층 아줌마들 정도이니 뭐...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 충실하고, 원칙을 따르고, 필요한 선의를 다 발휘합니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고,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네. 사실 좀 너무 완벽해서 불만입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생각난 다른 영화는 바로 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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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1967년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는 어느 날, 딸이 애인이라며 집에 흑인 청년(시드니 포이티어)를 데려온 상황을 맞은 백인 중산층 부부(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의 당혹을 주제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당황한 부모의 표정을 본 딸은 말합니다. "아빠, 엄마, 제가 학생일 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한심한 짓인지 늘 설명해 주시지 않았었나요?"

부모 입장에선 이렇게 속터지고 답답할 노릇이 없습니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누가 같이 살랬니.. 동네 사람들이 너를 대체 어떻게 보겠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겠지만, 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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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리 평온하고 행복에 가득찬 세상을 그리는 영화라도 몇 차례의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리고 '블라인드 사이드'를 보면서도, 과연 리앤의 저 예쁜 백인 소녀 딸이 마이클과 뭔가 남녀간의 감정을 느낀다면, 과연 저 부부와 저 가족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투오히 가족의 반응은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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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겸해 말하자면, '블라인드 사이드'는 뭣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따뜻하고 평온한,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아름답고, 세상살이에 지친 분들이 보시면 위안이 될 만한 영화라고 추천할 수 있습니다. 공연히 '우리 엄마가 이 영화 보고 감동해서 이상한 놈을 오빠(또는 형) 삼으라고 집에 데려오면 어떡하나'하는 걱정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영화는 그냥 영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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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산드라 블럭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그동안 아카데미 상이 추구해 왔던 '상 받을 만한 배역('상 받을만한 연기'가 아닙니다^^)'과는 좀 거리가 있는 역할이란 면에서 약간 놀랍기도 했지만, 뭐 어쨌든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영화'라는 면에서 꽤 높은 가산점을 받았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키는 퀸튼 아론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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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국 출신의 릴리 콜린즈는 전형적인 하이틴 스타의 얼굴입니다. 1989년 생이군요. 몇해 지나면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아가씨, 필 콜린스의 딸이군요. 네. 바로 '그 필 콜린스'입니다. 'Against All Odds'는 많이 들으셨을테니 이번엔 'In the air tonight'입니다. 어딘가 SS501의 '내머리가 나빠서'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노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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