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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녀'는 흥미로운 블랙코미디(물론 제 생각입니다)인 것을 넘어서서 한 폭의 흥미로운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영화 속에 흐르는 음악, 잠깐 읽어주는 동화, 그리고 이 가족의 딸 나미가 받는 생일 선물에도 모두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숨겨진 의미는 모두 저 혼자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제발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이 글을 읽어 보신 분들도 '원 별 생각을 다 했군'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역시 제발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튼 그냥 저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암호는 음악, 동화, 그림을 통한 것입니다. 세기에 따라 세가지가 넘을 수도 있겠지만 장르별로 나눠서 그냥 세가지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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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서 안내글을 덧붙이자면, 이 글은 '하녀'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리뷰를 보실 분은 먼저 앞의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글은 어쩔수 없이 '하녀'에 대한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기대하는 최적의 권장사양은 (1) 영화 '하녀'를 보고, (2) 제가 쓴 앞의 '하녀' 리뷰도 보신 분입니다. 혹시 '너때문에 원치 않는 영화의 내용을 알게 됐어!'라고 화내실 분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글을 얼른 닫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더 앞으로 나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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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음악입니다.

일가족이 모여 있는 장면. 나미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앉아 있고, 가족들은 앉아서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은이가 가져온 와인을 마십니다. 이 대목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enier)'에 나오는 마달레나의 아리아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La Mamma Morta)'입니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 혁명기, 혁명 지도부의 지나치게 과격한 노선에 반발하다 반혁명분자로 몰려 죽음을 당한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를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극중 셰니에의 연인인 마달레나는 혁명 때문에 몰락한 귀족의 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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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내용은 '그들이 내 어머니를 죽였지. 어머니는 나를 보호하려다 돌아가셨어'로 시작해 자신이 부모를 잃고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하녀 베르시가 자신을 키우기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지를 한탄하는 것입니다. 임 감독이 주목한 것이 이 노래의 가사가 다루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이든, 혹은 혁명가로서 어정쩡했던 셰니에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건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이 노래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오페라 아리아로는 본래 유명하지만 영화 '필라델피아'에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로 삽입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바로 원조격인 칼라스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정재가 전도연이 날라다 주는 아침을 먹기 전 치는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일명 '템페스트'의 3악장입니다. 천재 소녀 나미가 출근하는 아빠에게 "베토벤 잘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그 곡이죠. 이 '템페스트'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를 가리킵니다.

아시다시피 '템페스트'는 세상을 피해 외딴 섬에 살고 있는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가 그 섬에 표류해온 잘생긴 퍼디난드를 보고 한눈에 반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물론 이것보다는 프로스페로의 복수와 용서가 더 큰 주제지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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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템페스트'의 내용이 피아노를 멋지게 치고 있는 훈을 보는 은이의 심경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이런 내용을 암시한다고 하면 1악장을 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었겠으나, 화면상의 효과를 위해서라도 알레그로의 3악장을 치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겠죠.

베토벤-리스트의 진전을 잇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빌헬름 켐프의 연주입니다.





다음은 동화가 등장합니다. 은이가 나미에게 읽어주던 동화죠. 아마 기억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동화의 제목은 '어느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려서 안데르센 전집을 읽은 덕에 어렴풋이 기억이 나더군요.

정확하게 찾아 보니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젊은 어머니가 병든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밤낮을 새며 죽음의 신이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깜빡 잠든 사이 죽음은 아이를 데려갑니다.

놀란 어머니가 따라나서 죽음이 간 방향을 묻습니다. 질문에 대답하는 밤의 정령은 대답하는 댓가로 어머니의 아름다운 노래를 요구합니다. 이처럼 이 어머니가 가는 길마다 길을 가르쳐주는 댓가로 세상은 여러가지를 요구하죠. 숲의 가시나무는 어머니의 가슴으로 자신을 안아 따뜻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가슴에서 피를 뚝뚝 흘리지만 자식을 찾겠다는 집념으로 이겨냅니다.

은이가 읽어주는 대목이 바로 호수가 죽음에게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댓가로 어머니의 '파란 사파이어같은 눈'을 요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렇게 어찌 어찌 해서 어머니는 죽음의 정원에 도착합니다. 이 정원에서 자라는 화초들은 모두 누군가의 목숨이었던 겁니다.

어머니는 눈도 보이지 않지만 심장 박동 소리만으로 어느 것이 자신의 아기인지 알아차립니다. 죽음은 어머니의 도착에 놀라 대체 어떻게 자신을 찾아올수 있었는지 묻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대답합니다. "나는 어머니이니까요." (이 뒤로도 이야기는 길게 이어집니다만 이후는 생략.)

이 동화를 엿듣기라도 했는지 혜라는 은이가 "절대 아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리고 이 '어느 어머니 이야기'는 은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복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튼 의도적으로 이 동화가 배치된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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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미술입니다. 사실 너무 눈에 띄어서 암호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LOVE'라는 야외 전시물로 유명한 로버트 인디애나가 마릴린 먼로를 주제로 제작한 실크스크린 작품이죠. 역시 천재소녀 나미가 "비싼 선물"이라는 아빠의 말에 "인디애나 작품이니까 당연히 비싸겠죠"라고 대답하는 그 작품입니다. (위의 작품 말고도 인디애나의 작품 중에는 저 작품과 흡사한 마릴린 먼로에 대한 작품이 또 있습니다. 그중 영화에 나온게 어느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중 하나입니다.)

혹시나 관객들이 이 그림을 못 알아보기라도 할까봐 임상수 감독은 옆에 마릴린 먼로로 분장한 엄마 혜라를 붙였습니다. 혜라는 여기서 그 유명한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더언트'를 흉내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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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지난번 글에서도 다뤘지만, 그저 마릴린 먼로 역시 대통령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좀 더 신중하게 주변 상황을 고려했어야 했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대략 먼로의 죽음 역시 좀 더 조심하지 않은데서 온 자업자득이라는 얘기일지... 뭐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들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일수도... 아무튼 그렇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그 노래를 부른 건 1962년 5월19일의 일입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45회 생일을 열흘 앞둔 날이었더군요.^^ 이런 장면입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대략 이 정도입니다. 혹시 이와 비슷한 다른 암호를 발견하신 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물론 제가 암호라고 생각한 것들이 임상수 감독에게는 '어라?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쓴 거였는데?'에 해당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뭐 저도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아무튼 수수께끼 풀이는 항상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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