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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노장 김영희 CP의 복귀 이후 오랜만에 돌파구를 찾은 느낌입니다. 물론 4일 시청률이 11.0%를 기록한 건 KBS 2TV '남자의 자격'과 '1박2일'이 파업 관계로 하이라이트 편집 방송을 내보냈기 때문이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방송 2개월을 맞은 '뜨거운 형제들'이 전국 시청자들에게 노출되는 호기를 맞았다는 게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사실 '뜨거운 형제들', 혹은 '뜨형'은 방송 초기부터 '최초의 아바타 프로그램'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신선하다는 반응과 함께 꽤 뜨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대에 이미 탄탄한 시청층을 구축하고 있는 '남자의 자격'에 밀려 어느 한계 이상 뻗어나가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던 것이 이번 KBS 파업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발판을 찾은 셈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에 이기광-김구라 조의 활약이 있었습니다.

아마 채널을 돌리다가 4일 처음으로 '뜨거운 형제들'을 보신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대체 어떤 프로그램이었을까요.



'뜨거운 형제들'의 핵심적인 재미는 한 사람이 조종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아바타가 된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아바타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지 못하고 멀찍이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조종자의 의사대로 행동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오버액션을 유발하게 됩니다. 조종자는 조종자대로, 어차피 자기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보다 훨씬 극단적인 언행을 요구하게 됩니다. 직접 행동에 나서는 아바타는 자신의 얼굴이 나오기 때문에 조금 더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어차피 아바타도 '이건 내 의지가 아니야. 나는 아바타야. 나는 시키는 대로 할 뿐이야'라는 변명거리를 마련해 놓고 있기 때문에 역시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과감하고 몰상식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제작진은 가끔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왕 게임'에서 이 프로그램의 모티브를 따 왔다고 설명합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을 위해: 왕 게임이란 왕 카드를 뽑은 사람이 무작위로 1번, 2번, 3번, 4번으로 번호가 붙여져 있는 한 자리의 인물들에게 닥치는대로 명령을 해서 복종하게 하는 게임을 말합니다.)

이런 아바타 놀이는 여러가지 상황을 통해 시도되다가 최근 소개팅으로 발전했습니다. 즉 아바타는 소개팅을 하고, 조종자는 그 아바타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것이죠. 이것이 점점 발전에 이제는 한 여자를 놓고 두 아바타와 두 조종자가 대결을 벌이게 됐습니다.


이런 상황은 과연 전면에 나서 있는 아바타가 당장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과연 누구의 것이냐를 소개팅녀가 맞추게 하는 게임으로 발전하면서 재미를 더합니다. 얼추 보자면 고전극 '시라노'의 냄새를 풍기기도 하죠. 내면은 아름답지만 우스꽝스러운 외모를 가진 시라노가 잘생긴 동료를 이용해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게 한다는 설정 말입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이다 보니 이렇게 서정적이지는 않습니다만...^^)


4일 방송에서는 한상진의 조종을 받는 박휘순과 김구라의 조종을 받는 이기광이 도자기를 구우며 한 여성에게 구애하는 설정이 방송됐는데, 여기서 이기광과 김구라의 호흡이 만만찮게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아이들 그룹 비스트의 멤버인 이기광은 이미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준혁학생(윤세윤)의 친구 세호 역으로 익숙한 얼굴이지만 이때에도 착한 모범생의 이미지였고, 가수 활동으로 인인한 들쭉날쭉한 스케줄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그리 강한 인상(비교의 기준은 역시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주인공 형제의 친구 역으로 나온 김범이나 황찬성입니다)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뜨거운 형제들'을 통해 이기광은 김구라의 독설 캐릭터를 가장 잘 소화하는 아바타로 각광받게 됐습니다. 특히 4일 방송에서는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처키 같은 눈빛을 보이며 진정 김구라가 빙의한 듯한 모습으로 악질 연기를 펼쳐 여러 차례 웃음을 폭발시켰습니다. 글자 그대로 '악마돌'혹은 '독설돌'이라고 부를 만 했습니다.

"방송에 협조해!" "그 얼굴에 키 커서 좋겠다" 등등의 멘트는 이기광을 통해 전달되자 김구라가 직접 던지는 것보다 훨씬 '독하게' 느껴지더군요. 김구라마저도 "넌 이미 날 넘어섰다. 아우리 몇년 뒤에 인터넷 방송 같이 하자"며 이기광의 악동끼를 인정했죠.


하지만 이 아바타를 이용한 소개팅 게임이 인기를 얻으면서, '뜨거운 형제들'의 인적 구성에 다소간의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8명으로 구성된 '뜨거운 형제들'의 멤버들은 아바타로 나섰을 때 효과적인 멤버와, 조종자일 때 최적인 멤버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박명수와 김구라, 박휘순과 탁재훈은 누가 뭐래도 후자, 즉 조종자일 때 탁월한 기량을 발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상진과 이기광은 아무래도 조종자일 때 보다는 아바타일 때 그 진가가 발휘되는 구성원들입니다.

문제는 '돌아가면서 조종자와 아바타를 번갈아 맡는' 시스템이 현재의 구성원들과 그리 맞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박휘순이 한상진을 조종할 때에는 건실한 외모에 맞지 않는 기상천외의 코믹한 행동이 웃음을 자아내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과연 어떤 강점이 있는지를 쉽게 발견할 수 없습니다.

물론 탁재훈이나 이 코너를 통해 기량이 급진전된 이기광은 양쪽 모두에서 어느 정도 재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기량이 어느 한 쪽으로 몰려 있는 편입니다. 게다가 쌈디와 노유민은 어느 한 쪽에서도 장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게 문제점으로 부각됩니다.

따라서 현재의 아바타 게임은 박명수-한상진, 김구라-이기광(물론 둘다 전자가 조종자) 같이 호흡이 잘 맞는 조종자와 아바타가 짝지어진 상황에서 웃음이 터지지만 나머지 조들은 제 구실을 못한다는 문제점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조종자로서 뛰어난 구성원은 그냥 조종자의 역할에 국한시키고, 역시 아바타로서 제 기량을 발휘하는 멤버들은 굳이 조종자 역할을 맡기지 않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어느 쪽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 멤버들은 정리하고, 아바타 요원들은 가끔씩 물갈이를 하는 것도 코너의 신선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코너의 제목인 '뜨거운 형제들'은 8명의 멤버들이 굳은 형제애로 뭉쳐 계속 코너를 끌고 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꼭 거기에 집착할 필요는 없겠죠. 어차피 8명이나 되는 멤버들이 '1박2일'이나 '무한도전' 팀의 팀웍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쌈디나 이기광은 소속 팀의 새 앨범이 나오면 어차피 빠져 나갈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4일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시청률이 오랜만에 두 자리를 기록했다는 건 여러 모로 고무적입니다. 이렇게 해서 평소 전혀 노출되지 않았던 시청자층을 끌어들인 '뜨거운 형제들'이 과연 다음주, 다다음주, 혹은 언제든 KBS 파업이 끝났을 때에도 강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P.S. 이 '소개팅녀'들에게도 관심이 쏟아지는 걸 보면, 몇년 뒤 스타 아무개 아무개의 데뷔작은 '뜨거운 형제들'이었다는 얘기도 들을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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