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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남자의 자격' 팀의 지리산 등반은 '산행 예능'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는 계기가 됐습니다. 완주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다음 문제입니다. 완주를 하면 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얘깃거리는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힘이 들기 때문에 평소 그렇게 말이 많던 출연진도 할 말이 끊기고 만다는 것입니다.

체력이 어쩌네 저쩌네 했지만 지리산에서도 이경규가 그나마 '방송 분량'을 뽑아 냈을 뿐, 나머지 멤버들은 입을 꼭 봉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만 보여줬을 뿐입니다. 그럼 등반 일정도 조금 짧고(지리산에 비해 설악산), 멤버들의 연령대도 훨씬 젊은 '1박2일' 팀은 어땠을까요. 화면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만, 중요한 교훈을 준 점에서는 '1박2일'이 발전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사람이 찍고 있었다'는 것이죠.



설악산을 겨울에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 위를 올라 보면 대체 왜 산 이름에 눈 설(雪)자가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순백의 눈 덮인 산 위에 나무마다 피어 있는 눈꽃과 얼어붙은 계곡이 자아내는 풍경은 아무리 숨이 차도 찬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위험하기도 위험하죠.

이렇게 말하면 제가 무슨 등반 전문가인 것 같지만 저도 겨울 설악산 등반은 딱 한번 해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20년 전 일입니다. 당시 저희 일행은 가장 효율적으로 설악산을 즐길 수 있는 코스, 즉 소공원-비선대-양폭-희운각-대청봉-오색 코스를 택했습니다.

그러니까 전날 밤에 설악동 부근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새벽, 해뜨기 전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해 이른 낮 시간에 대청봉에 오른 다음, 해지기 전에 오색으로 쏜살같이 내려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설악동으로 돌아와 저녁을 지어 먹고 놀다가^^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었습니다. 급한 분들은 오색으로 하산해서 바로 (서울이든 어디든) 귀가 차편을 타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코스는 가장 시간이 짧게 걸리면서 설악산의 진미를 다이제스트로 맛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물론 상급자용으로는 한계령 코스, 공룡능선 등의 더 깊이 파고 들어가는 '진미'가 있겠지만, 시간과 체력, 장비 등을 감안해 산 속에서 숙박을 하지 않고 설악산을 살짝 맛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코스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시간 단축만을 생각하면 최단 왕복 거리인 오색-대청봉-오색 코스도 있지만 이건 설악산의 산악미를 맛보기에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여러 모로 가로든 세로든 평지-대청봉-평지로 왕복하지 않고 쭉 넘는 종주가 좋습니다.)

어쨌든 이런 '쉬운 코스'도 겨울에는 만반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아이젠과 피켈은 당연히 필수. 걷는 동안은 땀이 뻘뻘 나지만 멈춰 서서 휴식에 들어가면 3분 이내로 온 몸이 시려오고 장갑은 북어처럼 빳빳해집니다. 중간에 몸을 덥히려 코코아를 끓였는데 두모금 째부터는 따뜻해지고 네모금째에는 미지근해집니다. 위험한 것도 당연합니다. 제가 올라가기 며칠 전 폭설과 조난으로 행방불명된 사람이 있었고, 대피소에서 실종자의 시체를 수거해서 하산하는 구조대와 만나기도 했습니다. (네. 무척 쫄았습니다.;)





그런데 1박2일 팀은 2개 조로 나뉘어 강호동-은지원은 상당한 난코스인 한계령 코스, 나머지는 상급자용 코스인 백담사 코스로 잡았습니다. 아마도 '산에서 1박2일'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짧은 코스를 배제한 것이겠지만, 그 결과 상당히 위험한 일정이 짜여졌습니다.

백담사 코스는 흔히 '길어서 그렇지 가장 평탄한 코스'로 꼽힙니다. 완만한 경사로 오래 오래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날씨입니다. 아무리 평탄한 길이라 해도 산길에서 7~8시간을 머무는 건 큰 각오를 해야 하는 코스죠. 더구나 난코스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많은 분들의 상식대로 "설악산 갖고 무슨 종주냐. 아침에 올라가서 저녁에 넘어 오면 되는 건데"와는 좀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1박2일' 팀은 잠시 '찍는 사람'의 수고에 고개를 돌립니다. 사실 전문 산악 다큐멘터리를 봐도 출연자보다 보이지 않는 촬영팀이 훨씬 더 힘들 것이라는 건 당연한 얘깁니다. 주인공이 땀흘려 정상으로 오르는 장면을 찍기 위해선, 누군가는 그보다 한발 앞서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더구나 무거운 촬영 장비를(심지어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들고 말입니다. 


연예인이 이렇게 얼굴 내놓기를 꺼릴 정도의 추위라면 말 다 한거죠. 그런 데서 남들을 찍고 있는 사람들의 고생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강호동은 말합니다. "우리보다 한발 앞서 가시는데다가, 우리는 앞 보고 가는데 저 분들은 뒷걸음질로 올라가요. 그러다 나무에 부딪히고, 바위에 부딪히고... 참 고생하십니다." 구체적으로 화면에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산악 촬영팀이 아니라 예능 촬영팀이다 보니 이번 '1박2일' 촬영 과정에서도 촬영팀이 뒤로 처져 오히려 출연진의 발걸음이 더뎌지기도 한 모양입니다. 



어쨌든 이 예능특공대에게 복이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설악산은 아니지만 저도 여러번 일출을 보려고 노력해 봤는데, 이날 화면에 나온 것만큼 둥글고 제대로 계란 노른자 깨듯 쏙 튀어나오는 해는 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침놀이 지고, 그 구름 속에 갇혀 있던 해가 그냥 퉁 하고 어느 순간 드러나있는게 보통입니다. 아주 운이 없으면 흐린 하늘 아래서 그냥 날이 훤해지고 말죠. 이렇게 선명하게 쏙 나오는 일출은 참 운이 따르지 않으면 보기 힘든 광경입니다. (일출 장면의 순간 시청률은 40%대를 넘었다고 하는군요.)

이런 보람이 있었으니 체감온도 영하 35도의 혹한 속에서도 산에 올라 웃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일출을 바라보는 출연진의 눈꼬리에 맺히는 눈물은 연출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감격이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는 게, 그리고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들의 노고를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남다른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나자나 이승기가 빠지면 저 눈물은 대체 누가 대신 흘려 줄까요. 지난번에 '제6의 멤버'라면 이승기보다 어린 멤버가 들어와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는데 이젠 4명의 기존 멤버에 2명을 보강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군요. 제작진의 위기감이 대단하겠습니다.

이런 빈 자리도 공개 오디션으로 뽑으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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