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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트루맛 쇼'를 좀 늦게서야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제는 커녕 시사회에 갈 수 있는 특권도 사실상 박탈당한 상태이고 보니^^ 빠른 접근은 쉽지 않더군요.

사실 지금 전국 어디에서든(서울이든 지방이든) '트루맛쇼'를 보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개봉관이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굉장히 한정된 '예술영화 전문관'에서나 상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건 '트루맛쇼'의 오락적인 가치를 너무 낮게 평가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를 털어 버리고, 근래 한국에서 나온 코미디 영화 중에서 냉정하게 따져 볼 때에도 이만한 웃음을 주는 영화는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트루맛쇼'는 TV 맛집 프로그램을 둘러싼 잡음들을 정면으로 파헤친 작품입니다. 누구나 이런 의문을 가졌을 법 합니다. 물론 업계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이런 정황에 대해 눈치채고 있기 마련입니다. TV에 나오는 스타의 단골집이 다 단골집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죠. 사실 대부분의 스타들이 '아는 사람(혹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최근 개업한 식당'을 자신의 단골집으로 포장해 주는 데 별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에도 소개된 남희석 칼럼은 이런 풍조에 대한 드문 자기 고백으로 꼽을 만 합니다. (제가 유치해서 진행한 칼럼입니다. 이럴 때 참 뿌듯합니다.^)

http://isplus.liv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592169

'트루맛쇼'의 가장 큰 미덕은 가차없는 비판으로 그치지 않는 유머감각입니다. TV의 시사/고발성 프로그램들이 흔히 하듯, 인상 팍 쓰고 당장 지구가 멸망할 듯한 표정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과장하는 논법으로 일관했다면 아마 이 영화의 가치는 지금의 절반 정도에 그쳤을 겁니다.


이 영화에는 사실상 유일하게 얼굴을 가리고 등장하는 분이 한 분 있습니다. '맛집 전문가 겸 음식점 창업 컨설턴트' 임모씨가 바로 그 분입니다. 이 분이 만들어 낸 '캐비어 삼겹살' 요리를 보여주던 화면이 보물 다루듯 캐비어를 만지는 프랑스인 주방장으로 옮겨가는 순간, 그리고 이 조리장의 입에서 "캐비어는 섬세한 음식입니다. 어떤 열도 가해선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카메라는 다시 불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캐비어 삼겹살' 쪽으로 넘어갑니다. 정말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캐비어'의 정체는 극장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낯설게 느껴졌던 실명 비판입니다. 한 방송사의 사장님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모크 없이 맨 얼굴로 등장합니다. 만약 그 당사자들이 문제를 삼으면 어떻게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영화의 의도로 볼 때 비판이 그 당사자들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되긴 합니다.

어쨌든 '트루맛쇼'에 대해 다른 공간에 쓴 글이 아까워서 일단 가져옵니다. 오늘 아침자 신문에 나온 칼럼입니다.



제목: 트루맛쇼

유명 담배 회사의 연구개발 부문 고위 간부였던 제프리 와이갠드는 1993년 갑작스레 해임 통보를 받았다. 그는 얼마 뒤 이 담배 회사가 그동안 고의적으로 니코틴의 함량을 속여왔다고 폭로했다. 실제로는 니코틴 중독을 유발하기 충분한 양이었지만 포장지에는 그보다 훨씬 낮은 함량이 표기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곧바로 세상에 알려지지 못했다. 와이갠드는 CBS-TV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60분' 제작진의 취재에 응했지만 거대 기업인 담배 회사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방송을 차단했다. 결국 이 내용은 1996년 2월에야 전파를 탔다. 담배 회사가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고의로 유통시켰다는 최초의 보도였다.

 소속 집단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인을 흔히 휘슬블로워(whistleblower)라고 한다. 공익을 위해 합당한 일이었다 해도 조직의 입장에서 본 휘슬블로워는 일단 응징해야 할 배신자다. 와이갠드 역시 “무능해서 해직당한 분풀이를 하는 것”이란 음해에 시달렸고 정체불명의 남자들로부터 살해 위협도 받았다. 러셀 크로가 와이갠드 역을 맡은 영화 '인사이더(99년)'가 개봉된 뒤에야 대중은 와이갠드를 영웅으로 받아들였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를 가능케 했던 내부 고발자 '딥 스로트(Deep Throat)'도 보복이 두려워 철저하게 정체를 감췄다. 30여 년이 지난 2005년에야 밝혀진 그의 이름은 윌리엄 마크 펠트, 당시 FBI 간부였다.

 방송사 맛집 프로그램을 둘러싼 음습한 뒷거래를 고발한 영화 '트루맛쇼'가 개봉돼 화제다. 전직 방송사 PD 출신으로 이 영화를 만든 김재환 감독 역시 방송사로부터 배신자 취급을 면치 못하고 있다. MBC는 이 영화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누군가 배후가 있다'는 악의적인 사주설도 널리 퍼졌다.

 가처분신청은 기각됐지만 '트루맛쇼'의 개봉관은 여전히 극소수다. 화제에 비하면 이 영화를 실제로 본 사람은 아직도 적다는 뜻이다. '트루맛쇼'에서 한 맛집 블로거는 개탄한다. “방송에서 한번 다뤄지면 식당 앞에 장사진이 생깁니다. 이게 한국 대중의 입맛 수준입니다. 이 수준이기 때문에 방송에 휘둘리는 겁니다.” '입맛'과 '식당' 대신에 '관심'과 '정치', 혹은 '기업'을 넣어 보면 어떨까. 대중이 깨어나기 위해선 좀 더 많은 '트루맛쇼'가 나와야 한다. <끝>


개인적으로 마이클 만 감독의 액션 대작 가운데 썩 마음에 드는 작품은 많지 않습니다. '마이애미 바이스'나 '라스트 모히칸' 정도? '히트'를 비롯해 대부분의 영화들이 범작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느낌이지만,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 '인사이더' 만큼은 정말 인정해 줄만한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사이더'는 제프리 와이갠드(상기한대로 러셀 크로가 연기합니다)라는 실존 인물과 그를 취재하는 '60분'의 PD(알 파치노)를 통해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폭로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힘들어졌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마이클 만은 그의 영화에서 왜 여성 캐릭터가 마냥 겉돌기만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다큐멘터리 감독이지, 블록버스터 흥행작 감독이 아니었던 겁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기염을 토하지만 본상은 하나도 수상하지 못한 비운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마이크 월러스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트랩 대령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연기하는 이 실존 인물은 '60분'의 산 증인이기도 하며 월터 크롱카이트와 함께 CBS를 대표하는 방송 저널리스트입니다. 하지만 영화 '인사이더'에서 이 인물은 회사 편에 서서 와이갠드의 인터뷰 내용이 방송에 나가지 못하게 차단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물론 본인은 이 영화 내용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지만, 그의 불만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한국이라면 명예훼손 소송부터 온 난리가 났을 겁니다. 물론 영화 속 그에 대한 묘사가 사실과 다르다면 법정에서 결론이 났겠죠.)

아울러 아래 쪽의 '딥 스로트'를 볼 수 있는 영화도 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로버트 레드포드,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대통령의 음모(ALL THE PRESIDENT'S MEN)'죠.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기자가 좋은 역으로 나오는 몇 안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사설이 길었지만 어쨌든 '트루맛쇼'는 의식이 앞서 보는 이를 지루하게 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보고 있으면 최소한 다섯번은 의자에서 몸을 흔들며 웃게 되는, 훌륭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가까운 개봉관을 한번씩 찾아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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