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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를 기억하실 분이라면 아마도 연식이 꽤 있는 분일게다.

 

1975년작. 대략 한 1990년대 초까지는 가끔씩 명절때 TV에서 방송해주곤 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5월27일. 히틀러가 '강철 심장을 가진 사나이'라고 불렀던 심복 중의 심복이자 독일군의 체코 총독이던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Reinhart Heydrich 가 출근길에 습격을 당해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됐다. 영국의 지원을 받은 체코 출신 낙하산병들의 영웅적인 테러.

 

전 체코 주둔군은 비상이 걸렸고 무자비한 색출작전 끝에 배신자가 발생, 실제 하이드리히를 습격한 2명을 포함해 7명의 낙하산병들이 한 교회에 숨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탄환이 떨어질 때까지 그들은 수백명의 SS대원들을 상대로 저항했고, 마침내 교회 지하 묘지에서 서로의 머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 강렬함. TV 방영 후에도 어떤 극장에선 태연히 이 영화가 상영되곤 했다. '가슴을 찢는 프라하의 이별'이라는 카피가 지금도 생각난다. 어쨌든 프라하에서 이틀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므로, 당시의 현장이 남아 있으면 가 보고 싶었다.

 

검색해 보니 있다.

 

 

성 키릴과 메소디우스 교회 St. Cyril and Methodius Cathedral. 동유럽이나 러시아 지역에서는 키릴과 메소디우스라는 형제 성인의 이름을 마주칠 때가 꽤 많다. 이들은 기독교 성직자인 동시에, 당시 문화적으로 야만에 가까웠던 슬라브족에게 문자와 문명을 가져온 인물들로 추앙받고 있다.

 

이런 이름에서 당연히 유추할 수 있듯, 이 교회는 카톨릭도 아니고 개신교도 아니다. 동방정교회 계열의 교회다.

 

이렇게 프라하는 세 종류의 기독교가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지하철 Karlovo Namesti 역에서 내려 3분만 걸으면 바로 교회가 나타난다. 아주 큰 교회는 아니다.

 

 

 

그런데 길 건너편부터 벌써 사람들이 뭔가 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복원하지 않고 남겨 두고 있는 총알 자국.

 

'그날'의 교전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는 흔적이다.

 

그리고 총알 구멍 복판의 긴 사각형 모양,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바로 그 구멍이다.

 

지하실에 갇힌 낙하산부대원들이 절망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 구멍.

 

 

 

지금도 누군가 계속 꽃과 촛불을 바치고 있다.

 

 

교회 내부.

 

 

영화와 너무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사실 이 교회가 그때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만 알았지, 영화도 이 교회에서 촬영됐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런데 당시 영화 장면을 찾아 보니 바로 이 현장이었다.)

 

 

 

 

 

천정화나 난간이나, 당시 꽤 큰 격전을 치른 실내인데도 수리는 말끔하다. 외부의 총알자국을 일부러 남겨 놓은 것 외에 교회 경내에는 흔적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성당 밖으로 나오면, 바로 지하실 안내 표지가 붙어 있다.

 

 

 

지하실 입구. 간판 내용을 다 읽을 수는 없지만 Heydrich 라는 부분은 눈에 확 들어온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매우 상세한 전시공간이 나타난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사진 가운데 인물). SS 방첩부 및 제국보안부 수장. 보히미아 총독. 유대인 색출과 박해의 주역이며 나치 치하에서의 유대인 학살은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마스터플랜에 따라 진행되었다고 한다.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91158881931

 

로랑 비네의 소설(인지 다큐인지 헷갈리는) 책 'HHhH'에 따르면 그는 악마같은 두뇌의 냉혈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나치의 유력자들도 그를 두려워했고, 히틀러의 신뢰는 누구보다 두터웠다. 히믈러나 괴링보다 그가 덜 유명한 것은 아마도 전쟁 전반기가 끝날 무렵 암살당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하이드리히를 죽이기 위해 사용했던 암살자들의 장비.

 

저 영국제 스텐 기관총은 결정적일 때 격발사고를 내 자칫 암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뻔 했다.

 

5월27일 오전. 요세프 가브치크와 얀 쿠비시는 프라하 성으로 출근하는 보히미아 총독 하이드리히를 암살하기 위해 길 모퉁이에 매복하고 있었다. 암살 위협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이드리히는 벤츠 오픈카로 출근하기를 고집했다.

 

차가 급커브를 돌기 위해 속도를 줄인 순간, 가브치크가 차 정면으로 뛰어들어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알은 나가지 않았다. 총기 고장. 암살자나 암살 대상이나 얼어붙은 채로 몇초가 흘렀고, 가브치크는 도주하기 시작했다. 하이드리히의 운전기사는 총을 들고 가브치크를 쫓았고, 그 순간 대기하던 쿠비시가 폭탄을 던쳤다. 뒷바퀴 아래에서 폭탄이 터졌다. 중상을 입은 하이드리히는 사고 직후에도 총을 꺼내 응사하는 기개를 보였으나 이내 쓰러졌다.

 

 

하이드리히가 탔던 차의 잔해.

 

하이드리히는 병원에 실려간 뒤에도 의식이 남아 있었지만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완벽하게 파편을 제거할 수도, 수술 후 감염을 막을 수도 없었다. 결국 8일만인 6월4일, 하이드리히는 사망했다.

 

암살 성공의 쾌거는 즉시 알려져 연합국들을 기쁘게 했지만 나치의 보복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암살자 중 하나인 요세프 가브치크의 생전과 발견된 시신의 모습.

 

낙하산병들이 처음 강하해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마을 하나를 아예 초토화시키는 등 잔혹한 범인 색출 작전이 이어졌다. 결국 낙하산병 중 하나가 배신하면서 이들의 소재가 알려졌다.

 

1942년 6월18일. 습격 22일만의 일이다.

 

 

교회 위층에서 1차 교전이 벌어졌고, 그들이 전부가 아니라고 판단한 SS 부대원들이 다시 수색을 펼쳐 마침내 지하실의 존재가 드러났다.

 

 

전시관 안쪽에 철문이 있다. 철문 안쪽이 바로 '새벽의 7인'의 주인공들이 최후를 맞은 곳.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으로 환기구가 보인다.

 

건물 밖에서 환기구는 그냥 벽의 색으로 보일 뿐이지만 지하실에서는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통로다.

 

 

오른쪽 아래는 이들이 절망적으로 외부로 이어지는 통로를 찾아 벽을 파헤친 흔적이다. 이들은 지하실 벽 어딘가가 강으로 이어지는 하수도와 연결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 후반부에선 뭔가 '새벽의 7인'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건너편은 본래 이 지하실의 목적인 묘지의 흔적

 

.

 

저 안쪽 계단이 교회 제단 밑으로 통하는 본래의 출입구다.

 

 

무조건 범인들을 생포하라는 명령이 있었으므로, 몇 차례 지하실 진입에 실패한 SS는 일면으로 회유를 벌이는 한편, 일면으로 최루탄과 물을 이용한 공격을 시도한다. 환기구를 통해 수공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비극적인 최후.

 

 

소설 'HHhH'는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할 정도로 영화 '새벽의 7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킬리앙 머피가 주연한 '안드로포이드'라는 영화에 대해서는 줄곧 얘기하고 있다.

 

사실 '새벽의 7인'의 원제는 'Operation Daybreak', 즉 '새벽 작전' 인데 실제 하이드리히 암살 음모의 작전명은 Operation Androphoid, 즉 '유인원 작전'이었다. 하이드리히를 고릴라로 설정한 것일지.

 

 

안쪽까지 이어진 묘지 공간이 모두 추모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어쨌든 역사적인 장소에 왔다는 기념으로 한 컷.

 

여행 전부터 계획하고 온 곳이 아니라 그런지 감회가 더 컸다.

 

 

 

큰길쪽으로 걸어 나오면 프라하의 새로운 명물 중 하나인 댄싱 하우스 Dancing House가 나온다. 1996년 완공된 건물로 체코계인 블라도 밀루니치와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합작품. 프랭크 게리 스타일 대로 뭔가 철근과 콘크리트를 다소 위태롭게 보이게 쥐고 흔든 느낌이 강렬하다.

 

프로젝트 이름은 '프레드 앤 진저'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실제로 춤추는 두 남녀의 이미지가 출발점이다. 현재는 오피스 겸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중이라고. (물론 가우디도 그렇듯 건축미를 자랑하는 천재들의 건물이 막상 입주해 보면 거주자의 편안함은 약간 뒷전으로 밀린 듯한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전적인 건축미를 뽐내는 국립극장 앞을 다시 지나 블타바 강의 동쪽 강변을 따라 걷는다.

 

왠지 국립극장 옥상에는 루이비통 백이 올라가 있는 느낌.

 

 

 

국립극장 바로 앞에는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 카바나 슬라비아 Cavana Slavia가 버티고 있는데, 너무 관광객 티를 내고 싶지는 않다는 동행인의 의사를 존중해 일단 패스.

 

 

 

그래서 모스트 레기이 Most Legii 다리를 지나쳐서 30미터쯤 강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 올라가면,

 

 

 

스메타나Q SmetanaQ 라는 이름의 매우 모던해 보이는 카페가 나온다. 건물 전체가 갤러리와 화구점으로 채워져 있다.

 

 

천장이 높고 모던하면서도 편안해 보이는 공간

 

 

 

창밖으로 블타바 강이 보이고

 

 

요구르트와 주스, 케이크, 샐러드, 샌드위치 등 닥치는 대로 시켜도 개당 한국 돈으로 3000~5000원을 넘지 않는다.

 

 

 

안쪽으로 있는 야외석의 깔끔한 느낌까지. 오래 앉아 있기에 적당한 장소다.

 

브런치 용으로도 매우 좋고. 음식 맛도 훌륭.  Smetanovo nábř. 334/4, 110 00 Praha 1-Staré Město

 

 

 

 

블타바 강 건너편으로 프라하 성을 다시 한번 봐 주고

 

토요일 오전의 마지막 구간으로 하벨 시장 Harvel's Market 을 찾았다.

 

 

하벨 시장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허공에 매달린 남자를 마주쳤다.

1초간 놀라지만 잠시 뒤면 진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 매달린 남자의 정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1996년 체코 조각가 다비드 체르니 David Cerny 가 만든 작품으로, 프로이트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평생 오만가지 공포증에 시달리다 결국 암 투병 중 동료 의사의 도움으로 몰핀을 투여해 자살한 프로이트라면 늘 저렇게 절벽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살았을지도.

 

이 조각의 공식 명칭은 '매달린 남자' Zavěšený muž” (영어로는 Man Hanging Out 이란 뜻).

 

(그런데 왜 프라하에 난데없는 프로이트... 알고 보면 프로이트의 고향인 프라이부르크는 현재 체코 영토다)

 

우리는 우연히 마주쳤지만 미리 알고 가도 한번쯤 볼만하다 싶은 강렬한 인상의 조각품이다.

 

 

미로같은 프라하의 구시가 골목 속에서 어찌 어찌 헤매다가 어떻게 저 조각과 딱 마주치게 됐는지, 그것도 참 인연이 아닐까 싶다. 가로 세로가 직각이 아니라 뭐라 설명하기도 참 힘든데, 아무튼 지도상으로 볼 수 있지만 카를교나 구시가 광장에서 멀지 않고, 하벨 시장과는 지척이다.

 

주소는 Husova, 110 00 Praha 1p-Staré Město

 

 

 

아무튼 몇 번을 헤매고, 길을 묻고, 하다가 찾아간 하벨 마켓... 인데,

 

파는 물건도 매우 한정돼 있고, 물건의 질은 매우 낮고... 그냥 10명 20명 똑같은 물건 사서 기념품으로 나눠주는 용도 외에는 별다른 의미를 느낄 수 없었다. 매우 실망.

 

뭣보다 시장의 매력인 길거리 음식 매장도 거의 없었고, 매장 10개 중 1,2개 꼴로 있는 과일가게가 눈길을 끌었다. 딸기며 체리 같은 나무열매(berry) 계열 과일들을 사서 그 자리에서 길가의 음료수대에 씻어 들고 다니며 먹는 풍류가 제법 그럴듯 해 보였으나 과일 가격이 너무 비싸. 한국에서 한 팩에 8000원 정도 하는 분량의 체리 값이 15000원 정도.

 

개인적으로 결론은 일부러 들를 가치는 별로 없다, 입니다.

(뭐 이런 거 특별히 좋아하시는 분도 있을테니 판단은 각자 알아서? ^^)

 

아무튼 프라하의 땡볕을 피해 잠시 후퇴 후 휴식이 필요했고,

 

 

 

그리고 바로 프라하의 마지막 밤 구경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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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년 전에도 존 레논의 벽은 존재했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제목과의 호응을 고려해 첫 사진으로 넣음. 주요 내용은 나중에.)

 

다시 프라하 성으로 돌아간다.

 

 

 

오후의 햇살이 프라하 성의 돌바닥을 지글지글 달굴 무렵, 프라하 성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인 성 조지 성당 St George's Cathedral 로 들어갔다.

 

세인트 조지 St. George 는 잘 알려진대로 용을 죽인 용사이며 성인이고, 잉글랜드의 수호성인이다. 물론 잉글랜드에서만 추앙받는 것은 아니고, 유럽 전역에서 추앙받는 인물이다. 어떤 미술 작품을 볼 때 긴 창을 들고 용과 싸우고 있는 캐릭터가 있다면 성 조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거.

 

당연히 성 조지는 영어 이름. 체코에서는 이르지 Jiri 라고 불린다. 역시 저렇게 쓰고 이르지라고 읽는다고 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다. 체코 출신인 유명 발레 안무가 이르지 킬리안 Jiri Kylian 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지리 킬리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아무튼 현지 사람들이 그렇게 부른다는데 따져 봐야 아무 소용은 없다.

 

 

가장 오래된 건물답게 살짝 기운 느낌도 있는데 돌 건물의 특징상 내부는 무척 시원하다. 프라하의 태양에 지친 사람들은 잠시 쉬어가는 공간으로 활용할만한 성당이다.

 

 

 

천장에는 성 조지의 활약에 대한 그림이 지워져가고 있고,

 

 

거의 매일 콘서트가 열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울림은 기가 막힐 듯.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이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열리는 콘서트도 관람 후보로 고려했다.

 

 

이렇게 해서 프라하 성 관광이 대략 끝났다. 이제 나가는 길. 왼쪽 끝의 1번 위치가 바로 성의 정문인데, 들어갈 때 4번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나가는 건 정문 쪽으로 나가게 되었다. 나가면서 정문을 봐야 하기 때문.

 

 

 

안쪽에서 정문을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다. 성 밖을 나서자마자 바로 건물들이 줄지어 있다.

 

 

밖에서 보면 이런 모습. 누차 강조하지만 성벽이 없기 때문에 성문도 없는 셈이다.

 

 

 

문제는 정문의 이 두 거인상. 둘 다 승자가 패자를 몽둥이로 내리치거나 칼로 찍는 모습인데, 이 역시 체코에 대한 합스부르크의 승리를 상징하는 조각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굴욕적인 모습을 정문에 남겨놓는다니...

 

...아무래도 체코 사람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나자나 성을 나와 강 쪽을 바라보면 이런 붉은 지붕의 물결을 보게 된다.

 

프라하를 상징하는 풍경 중 하나.

 

 

 

이런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에 세계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스타벅스가 있는데 스타벅스가 너무 붐비는 것 같아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내리막. 프라하 성에서 카를교로 가는 길이다.

 

 

(프라하 성에서 존 레논의 벽을 거쳐 카를교까지 가는 길을 빨간 선으로 표시했다. 확대해서 보면 잘 보임)

 

프라하 성을 나와 바로 보이는 빨간 기와지붕 속으로 걸어 내려가는 길. 일단 한번 꺾으면 바로 유명한 네루도바 거리가 나온다. 각국 대사관, 유서깊은 상점 등이 몰려 있는 역사의 거리다.

 

 

 

 

시인 얀 네루다가 살았던 집이라고 함.

 

기울어진 햇살이 따가운 길을 걸어내려가면,

 

 

강 서쪽의 성 니콜라스교회(프라하에는 두 군데의 성 니콜라스 교회가 있다. 또 하나는 구시가 광장 귀퉁이에).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성당과 교회가 각각 많이 있다. 카톨릭과 개신교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심지어 다음날 간 곳은 동방정교회 성당이다.)

 

니콜라스 교회에서 다시 내려가는 모스테츠카 거리는 유명한 술집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골목을 지나고 지나, 갑자기 나타나는 컬러풀한 장벽.

 

 

 

꽤 길다. 거대한 낙서판이다.

 

그러니까 이것이 바로 유명한 존 레논의 벽 Lennon Wall 인데, 사실 레논은 살아서 여기에 온 적도 없고, 이 벽이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기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사실 존 레논과 비틀즈의 노래가 가진 정서를 표현하는 낙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긴 하나, 굳이 왜 존 레논 월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1980년대, 구 소련 위성국가로서의 체코슬로바키아 정부가 권위주의적 통치에 마지막 안간힘을 쓰던 무렵 서구로부터 불어온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적 불만이 표출된 공간인 것은 분명하다.

 

 

'Imagine'같은 레논의 노래는 일반적으로 좌파적이고 무정부주의적이라는 의견을 듣는데,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레논의 노래가 반항 내지는 반정부 의식의 상징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참 얄궂다.

 

물론 20세기 후반 동유럽 사회주의가 진짜 사회주의냐...를 따지자면 그건 또 다른 얘기. 

 

 

 

낙서판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그 누구도 이 벽에서 똑같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계속해서 누군가가 낙서를 덧쓰고, 덧그리기 때문이다.

 

물론 굉장히 후진 낙서를 한다면 누군가 바로 와서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듯.

 

 

그리고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가이드의 말이 있었다. 뭘?

 

...누군가 지금도 열심히 낙서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벽에 바짝 붙을 것이라면 반드시 벽 위의 낙서가 굳은 다음인지 확인해 보라는 말씀이었다.

 

...그럴 듯 한데?

 

(잘못 고르면 등에 그대로 묻어 나오는 수가 있다.)

 

 

 

그래서 후방에 혹시 덜 굳은 물감이 있는지 꽤 세심하게 확인한 뒤 fly.

 

땀은 엄청 흘렸지만 상쾌함.

 

 

 

그 방향으로 조금만 걸으면 카를교가 나온다.

 

 

 

언제나 인산인해.

 

잡상인, 버스킹, 관광객, 소매치기가 많다고 소문난 곳이기도.

 

 

 

이렇게 다리 난간마다 간격을 맞춰 옛 성현들의 조각상이 서 있다. 아시다시피.

 

별 흥미는 없다.

 

 

...만 그 혀가 잘린 네포무츠키 성인은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니 한번 참아 본다.

 

 

그래도 다리니까 일단 강을 한번 봐 주고

 

 

 

다리를 다 건너서야 프라하 성 쪽을 바라볼 정신이 든다.

 

진짜 덥다. 쨍 하는 햇살.

 

 

카를교의 성루.

 

이 아치를 지나서 구시가 광장까지는 다시 도보 가능 거리다.

 

 

 

 

이중 저 위의 맥주집/레스토랑 코슬로브나 Koslovna 를 가 봤으나 손님의 2/3가 한국인...

 

 

암튼 그렇게 한 10분 걸어서 구시가 광장의 주인공인 틴 성당의 예쁜 자태를 다시 보고,

 

 

 

역시 너무나도 유명한 천문시계탑을 보는 것으로 이날의 일정 끝.

 

아침 8시에 집합해 물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중간 중간 쉬기도 했지만, 아무튼 오후 7시까지 11시간을 걸어다녔다.

 

서울에선 돈 준대도 안 할 일을 여기선 돈 내가 가면서 한다.

 

아무튼 천문시계는 주변 보수중이라 어수선하다. 인형극 봐 봐야 뭐 대단히 신기할 것도 없고.

 

일단 서있기도 힘들 지경으로 구시가 광장에서 약 10분 거리인 호텔로 후퇴.

 

 

가는 길에 화약탑(좌)과 시민회관(우)이 있다.

 

시민회관 내부의 스메타나 홀에서 이날 저녁 '프라하의 봄' 음악제 마지막 날 공연이 잡혀 있었다.

 

펜데레츠키가 저자직강 아니고 자신의 교향곡 7번을 직접 연주하는 스케줄.

 

볼까말까 망설이는 사이 매진돼 버렸다.

 

 

 

화약탑을 지나면 바로 숙소.

 

아침 8시에 바츨라프 광장에서 집합해 저녁 7시 구시가 광장에서 해산.

 

중간중간 쉬기도 했지만 근 12시간에 걸쳐 초강행군을 한 셈이다.

 

저질체력 중년부부 실신.

 

 

 

그래도 잠시 쉬었다가 뭘 좀 먹고 자자며 기어나왔다.

 

 

 

틴 성당 야경은 여전하고,

 

 

 

골목 하나만 들어오면 바로 딴 세상 느낌.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상한 식당에서 굴라쉬를 주문했다. 용기가 빵이다.

 

그럴듯 한데 짜다.

 

엄청 짜다.

 

짜서 빵이랑 먹어야겠다고 빵을 허물어뜨려 같이 먹었다.

 

더 짜다.

 

나중에 보니 그릇(빵)이 굴라쉬보다 더 짜다.

 

제길.

 

 

분노를 달래기 위해 명성 높은 굴뚝빵 뜨레들로로 입가심 시도.

 

 

예상할 수 있는 그런 맛이다.

 

빈 빵만 먹으면 60코루나, 아이스크림을 가득 채우면 120코루나.

 

맛있다. 매우 맛있다.

 

 

밤의 화약탑과 시민회관.

 

1층 레스토랑 앞에 보디가드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 있고, 정장과 드레스 차림 남녀들의 만찬이 한창이다.

 

프라하의 봄 음악제 폐막 관련 행사가 아닐까 싶다.

 

 

 

카를교 야경 관람을 잠시 생각했으나 체력저하로 일단 후퇴. 호텔로 돌아오는 길 상점 창에는 다양한 상표의 압상트 병이 녹색 빛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압상트도 이 동네가 본고장이었나...

 

 

 

그리고 다음날, 언젠가 한번 가 보리라 생각했던 곳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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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고, 다들 좋다고 할 때는 역시 다 이유가 있다.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다니는 곳은 카를교프라하 성, 그리고 구시가 광장 이다. 그리고 볼거리로 따지자면 역시 프라하 성이다. 그런데 프라하 성에 가면 프라하 성이 보이지 않는다(볼 수가 없다).

 

위 사진 같은 모습을 보려면 프라하 성을 내려와 강을 건너야 한다. 강 건너, 혹은 카를교를 비릇한 여러 다리 위에서 보는 프라하 성이 제일 아름답다. 간혹 프라하 성의 야경을 보기 위해 밤에 프라하 성으로 올라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건 정말 바보 짓이다.

 

가까이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멋지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게 프라하 성의 비밀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지도 나온다.

 

 

 

프라하의 핵심 지역. 왼쪽 붉은 원이 몰려 있는 곳이 바로 프라하 성이다. 동서로 살짝 긴 고구마같이 생겼다.

 

블타바강은 프라하 시내를 구불구불 관통하기 때문에 딱 뭐라 잘라 말하긴 힘들지만, 대략 남에서 북으로 관통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울처럼 강남과 강북이 아니라, 대략 강동과 강서로 도시를 가르는 셈이다.

 

프라하 성은 블타바 강을 기준으로 강서 지역의 고지대에 다소 비스듬하게 위치해 있다. 따라서 위 지도에 Charles Bridge 라고 나와 있는 카를교에서 볼 때 정면을 마주할 수 있다.

 

프라하 주변의 고지를 찾자면 오전에 갔던 비셰흐라드와 이 프라하 성(체코말로는 프라쥐스키 흐라드 Prazsky Hrad 라고 한다고 한다) 정도인데 특히 이 프라하 성의 위치는 프라하 전역을 내려다볼 수 있는 요충지이므로, 프라하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수없이 성을 지었다 개축했다 했던 곳이다.

 

 

이해를 돕기 위한 항공사진. 성이라고는 하지만 프라하 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산성이나 옹성의 느낌이 아니다. 즉 성벽이 없다. 성벽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건물과 창들이 죽 자리잡고 있으니 막상 안에 들어와서는 건물은 많이 봤는데 저게 성이었어? 하는 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거다.

 

(그나마 성벽의 흔적이 남아 있는 북쪽 면은 대다수 관광객들의 눈으로부터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비교 대상을 알함브라 궁으로 삼는다면, 이게 주변에 일단 성벽과 해자로 민간 세계(?)와 성을 딱 구분해 놓고 시작한데다 알카자르 같은 요새의 흔적도 있으니까 아 여기가 성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프라하 성은 그런게 전혀 없다. 그냥 촘촘하게 붙어 있는 빌딩들이 성처럼(!) 빙 에둘러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앞서 말했듯 처음에는 성곽도 있고 요새도 있고 했던 것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불필효한 요소는 치워 버리고, 그냥 건물들로 둘러싸인 성이 되었다는 그런 얘기다.

 

 

위 항공사진과 이 지도를 같이 보면 이해가 쉽다. 이 지도의 굵은 선들이 모두 성벽이 아니고 건물이다. 물론 비상시에는 성벽 역할을 하겠지만, 이미 화약무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시점 이후에도 계속 이 성이 증축되고 사용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실 성벽과 해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이 성 지역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성 비투스 대성당이다. 누가 봐도 성당같이 생긴 저 큰 건물 말이다.

 

 

 

멀리서 볼 때는 그냥 이 정도밖에 안 보인다.

 

 

 

 

그러다 회랑을 통과하면 갑자기 큰 건물이 훅 눈에 들어오는데 그게 대단히 인상적.

 

 

 

 

이렇게 불쑥 등장한다. 알고 보면 건물의 서쪽면인데, 큰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보인다.

 

 

 

이 성당 역시 이 성과 역사를 같이 해서 수백년간 건설되고 수십번 개축됐다.

 

저 디멘터같이 생긴 가고일은 언제부터 있었을지.

 

 

 

 

사실 성 비투스 대성당을 한바퀴 돌다 보면(돌기 싫어도 입장 줄이 길어서 한바퀴 돌지 않을 수 없다) 성당의 주인공이 저 가고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고일이 유독 눈에 띈다.

 

 

 

큰 성당 좀 다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가고일은 본래 높은 곳에 괸 빗물을 흘려보내는 배수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오래전에 본 '노틀담의 꼽추'에서는 콰지모도가 저 구멍으로 끓는 물을 부어 침입자들을 물리치기도 하는 모습이 나온 듯.

 

(너무 옛날이라 기억이 불확실할수도 있음. 미리 발뺌.)

 

아무튼 몸을 한껏 뒤로 젖혀 새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성 비투스 대성당을 바라보니 뭔가 아찔하면서 멋지다.

 

이 건물을 이해하기 위해 일단 볼 수 있는 3개 사면을 같이 보는 것을 권장한다.

 

 

방금 전에 본 모습이 서쪽 정문, 즉 두개의 첨탑과 원형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면이었고,

 

 

 

이게 남쪽 면이다. 중앙 탑 양쪽으로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주르르 도열돼 있음을 볼 수 있다.

 

반대쪽인 북쪽 면은 첨탑이 없고 거의 비슷한 모양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쪽이 성당의 동쪽 면. 즉 주 제단 High Altar 가 있는 쪽이다. 곧 날아오를 것 같은 용의 형상이다.

 

유럽지역의 대성당들을 볼 때마다 어딘가 dragon의 느낌을 건물에 담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는데 약 20년 전 프라하에 처음 왔을 때, 이 비투스 대성당의 동쪽 면이야말로 사악한 용의 느낌이 난다고 생각했더랬다. 경외감을 넘어 다소 공포를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아무튼 이런 모습의 성당이다. 안으로 들어감.

 

 

 

서쪽 입구로 들어가 동쪽 주 제단 High Altar 쪽을 바라본다. 역시 용의 등뼈같은 저 지붕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세비야나 밀라노의 대성당을 보고 온 사람들에겐 그리 큰 감흥은 없다. 대성당들의 구조는 거의 비슷비슷하기 때문. 하지만 이 성 비투스 대성당에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아르누보 시대에 대폭 교체된 스테인드글라스.

 

다른 거대 성당들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비해 대단히 장식적이고 화려한 맛이 있다.

 

 

외경에서도 볼 수 있듯 수많은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타 중의 스타가 있는데,

 

 

 

바로 이 분.

 

 

 

 

그림체를 보면 딱 아실 수 있는 알폰소 무하 님의 작품이다. 대부분의 스테인드글라스들이 모자이크를 기본 표현 수단으로 삼는데 이건 그림이다. 20세기 초의 작품이라 그런지 아직도 매우 선명하고 아름답다.

 

 

 

 

흥미로운 것은 하단의 이 요상한 표시. 많은 사람들이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고 "대체 방카 슬라비아가 뭐야?"하는 궁금증을 갖는다. 답은 PPL이다. 상업미술의 대가인 무하 님의 작품을 여기에 설치하기 위해 자금을 댄 후원사가 바로 BANKA SLAVIE 라는 은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하 님은 저렇게 대문짝만하게 후원 마크를 박아 주셨다. 기업광고의 효시... 정도 될 것 같다.

 

(이 슬라비아 은행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거나, 이름이 바뀐 것 같다.)

 

 

 

건물 북쪽으로 2층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되어 있는 구조가 다소 특이했다.

 

 

 

바깥 사진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방문자가 서쪽으로 들어와 동쪽의 주 제단 High Altar 을 바라보면 이런 뷰가 나온다. 새벽 미사 때면 저 스테인드글라스가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을 것이고,

 

 

 

채광창으로 이렇게 빛이 들어와 실내를 더욱 신비롭게 하고 있었을 거다.

 

 

 

프라하 여행을 가면 꼭 듣게 되는 '성인 네포묵'과 관련된 그림. 14세기 말 프라하 대주교였던 얀 네포무츠키 Jan Nepomucky 는 왕비의 고해 내용을 알려달라는 국왕의 부탁을 거절한 이유로 고문을 당하고, 결국 혀를 잘린 채 카를교에서 강물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았다(당연히 죽었다). 그런데 그 뒤로 카톨릭 사제의 의무(고해성사의 비밀 준수)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체코말로는 얀 네포무츠키, 독일식으로는 요하네스 폰 네츠무크라고 불리는 분의 일대기다.

 

그림 좌하단에 왕비의 고해를 듣고 있는 네포무츠키의 모습이 있고, 오른쪽엔 국왕으로부터 직접 신문당하고 있는 네포무츠키의 모습이 있다. 그러니까 왼쪽 아래 모습은 자료화면인 셈이다.

 

 

 

이렇게 길게 설명한 이유는, 그 그림 바로 옆에 이렇게 네포무츠키 성인의 화려한 관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물론 시신은 없다). 은 2톤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침묵으로 신의를 지킨 그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저렇게 맨 꼭대기에 잘린 혀를 강조해놓고 있다. 맨 위, 천사 옆의 방패에 새겨진 명란젓같은 형상이 바로...혀다.

 

 

그리고 성당 남쪽 면에는 아마도 근대에 만들어 넣은 듯한 체코의 국가 문장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유럽을 다니다 여러 나라의 문장을 보다 보면 세상에 동물이 사자와 독수리밖에 없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자와 독수리는 인기있는 동물이다. 체코 역시 국가를 상징하는 동물로 사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잘 보면 꼬리가 두개라는 점이 특이하다. 잉글랜드의 국가 상징인 일어선 사자 lion rampant와 유사하지만 가장 큰 차이가 역시 꼬리다.

 

꼬리가 두개인 사자는 '브룬츠빅(Bruncvik)의 사자' 라고 부르는데, 브룬츠빅은 바츨라프 성인과 함께 체코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흔히 '체코의 오딧세우스'라고 불린다는 그는 마법의 칼을 가진 전사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머리 아홉 달린 사자와 싸우는 신령한 사자(꼬리가 두개였다)를 도와 싸움에 이긴 뒤, 그 사자와 함께 온 세상을 누비며 모험을 한 양반이다. 브룬츠빅이 늙어 죽자 사자도 먹이를 먹지 않고 무덤 곁을 지키다 따라 죽었다(사람보다 오래 살았다니 역시 보통 사자가 아니다).

 

아무튼 체코가 위기에 빠지면 민족 영웅 바츨라프 Wenceclaus 가 브룬츠빅의 마법의 칼을 들고 달려와 민족을 구원할 것이라는게 체코의 흔한 민간 신앙이라고 한다. (이상 '동유럽 신화/한국외국어대학교 출판부' 참조)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4644987

 

 

아래 문구인 Pravda Vitezi 는 "진실은 승리한다"는 뜻.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말에서 따 온 것이다. 저 문장 하나에 체코라는 나라의 요체가 다 들어 있는 셈이다.

 

 

 

남쪽으로 나와서 성 비투스 성당 구경을 마무리.

 

비투스 성당을 빼고 나면 사실 프라하 성 안에서 구경할 거리는 별 특별한 것이 없다. 왕궁 미술관이 있는데 작품 수도 꽤 된다고 하나 프라하 성에서 미술관 구경을 했다는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그 다음이 성의 남사면을 구성하는 '구 왕궁'인데,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별로 찍을 것도 없다.

 

 

 

창밖으로 내다보면 이런 풍경. 저 멀리 블타바강이 보인다.

 

 

찍지 말라고는 하는데 대체 왜 찍지 말라는지 알 수 없어 한장 찍었다. 구 왕궁 내부의 메인 홀이다. 지금도 체코 국가 정상이 주최하는 연회가 가끔 열린다고 한다. 유럽의 실내 홀 중에서는 가장 크다던가 뭐 그렇다. 특별히 감동적인 면은 없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이 연회장 옆의 한 방(구 국회였나, 궁정 평의회였나 뭐 그런 이름이었다)에 합스부르크 가 황제와 황족들의 초상화를 그대로 걸어 두고 있다는 점이었다. 체코는 17세기부터 약 300년 동안 합스부르크 황제들의 지배를 받았다. 그런데 독립을 쟁취한 지금까지도 당시 황제들의 그림을 걸어 놓고 있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광화문 뒤에 아직도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고, 그 건물 안에 여전히 천황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고 상상해 보자. 가당키나 한 일일지. 그런데 이 나라 사람들은 '어쨌든 그것도 우리의 역사'라는 입장이라고 한다.

 

...한국인으로선 이해하기 힘든 사고방식인데, 아무튼 그렇다고.

 

 

구왕궁을 지나 발길은 황금소로로 간다.

 

 

황금소로란 프라하 성의 북쪽 성벽 안쪽에 다닥다닥 붙어 지은 작은 집들의 거리를 말한다. 가이드북들은 주로 '동화 속 마을처럼 색색깔로 아름다운 작은 집들이 잇달아...'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직접 가 보면 대체 조만한 집 속에 어떻게 사람이 들어가서 살았다는 것인지 의아할 정도로 좁고 궁벽하다. 사람 한두명이 들어가 그냥 눕기도 힘들 정도의 공간들이다.

 

그리고 황금소로라고 이름을 붙여서 그렇지 사실 사람들이 기억하고 보는 건 딱 하나다. 바로 저 22번 집 오른쪽에 붙어 있는 검은 줄 같은 표시.

 

 

 

'프란츠 카프카가 살던 집'이라는 표지 하나다. 카프카가 이 집에 그리 오래 산 것도 아니고, 아무튼 황금소로의 이 집에 산 적이 있다는 얘기다. 카프카가 이 집에서 글을 썼을까. 글쎄. 안에는 타자기 하나 올려 놓을 책상 하나 들어갈 공간도 없어 보인다. 침대나 하나 겨우 들어갈까 말까.

 

 

 

아무튼 천재 소설가가 살았다는 인연 덕분에 궁정에는 카프카의 동상이 서 있다. 왜 알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알몸인 탓에 동상의 한 부분만 금빛으로 빛난다. 아아...;;;

 

청동상은 본래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은 부분은 저렇게 된다.

 

스타 작가가 수십년간 받았을 성추행의 환난에 잠시 묵념.

 

 

 

일단 프라하 성 이야기는 이정도. 빨간 지붕을 보며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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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일단 걷고 시작하는 도시다.

 

몇해 전 바르셀로나를 다녀온 뒤 처음 만나는 도시와의 인사는 유로자전거를 통해 하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서울생활에서 도보와 멀어진 몸을 어떻게서든 여행 모드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한번 죽을 만큼 걸어 보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 그리고 그 도시를 가장 빨리 이해하는 길은 대중교통과 다리를 이용해 직접 길을 찾아 다녀 보는 것이라는 말에 절대 동의한다.

 

 

.

 

6월1일 밤늦게 도착해 여장을 푼 K+K CENTRAL PRAGUE 호텔. 공항에서 호텔까지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공항에 떨어진 시간이 꽤 늦은 시간이라 미리 호텔에 ride를 요청했다. 가격은 700코루나/27유로. 코루나 대 유로 환율은 대략 25~26 대 1 정도다. 곳곳의 환전소에서는 다양한 환율을 제시하는데 아무래도 이 공정환율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

 

있을 것 다 있고 깔끔한 호텔인데 아쉽다면 슬리퍼가 없다. 밖에서 신던 신발을 방 안에서 신고 있으면 피로가 가중되는 체질이라 뭔가 맨발에 신을 것이 필요한데, 혹시 이 호텔을 이용하실 분은 비행기에서 적당히 하나 얻어 오시길 당부드린다.

 

그 외에는 다 OK. 욕조도 있고, 물도 하루에 1L(2병)씩 준다.  

 

 

이런 방...

 

 

아담하고 귀여운 조식당. 보시다시피 규모가 작고 가짓수가 많지 않지만 척 보면 알 수 있듯 음식들이 나름 공력이 들어가 있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오렌지주스도 직접 간 것이 나왔다. 그리고 나름 낙농국이라 그런지 유제품의 수준이 매우 높다. 특히 치즈 종류.

 

뭐 계란은 스크램블과 삶은 계란 두 종류 뿐인데, 조금만 용기를 내서 얘기하면 먹고 싶은 형태로 해 준다. 괜히 위축되시는 분들 있는데, 이건 여기 뿐만이 아니고 웬만한 호텔이면 다 해 준다. 계란 후라이가 먹고 싶으면 주저없이 요청하시기 바란다. (까짓거 안 해주면 그만이지)

 

 

 

우상단이 신선한 치즈에 찍어 먹는 생 햄. 이런 거 좋아시는 분들에겐 천국이다.

 

 

 

다른 각도에서 찍어 본 조식당. 예쁘다.

 

사실 호텔이 정면에서 보면 굉장히 작아 보이는데 앞뒤로 긴 방이다. 그래서 전망이나 이런 건 별 기대할 게 없지만 어지간한 특급호텔에서 기대할 만한 것은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아무튼 쨍하니 맑은 다음날 아침. 유로자전거 도보 투어 집합 시간인 오전 8시 바츨라프 광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프라하에 왔다는 표시로 일단 바츨라프 광장의 상징인 바츨라프 동상 앞에서 기념샷.

 

 

(여전히 바츨라프라는 발음과 Wenceclaus 라는 철자의 괴리는 참 낯설다..)

 

시크한 유로자전거 가이드는 일행이 모이자 바로 이동 선언. 처음으로 체코 전철을 타 본다.

 

프라하 교통 1일권은 110코루나. 1코루나가 2017년 6월 기준 대략 50원이니 5500원 쯤 된다. 이걸로 하룻동안 버스와 전철, 트램을 계속 탈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전철역에 자판기 외에는 매표창구가 따로 없다 는 것인데... (그러고 보니 역무원도 본 기억이 없다)

 

잘 보면 전철역마다 매점이 있다. 이 매점에서 ONE DAY PASS를 달라고 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이 매점이 주말에는 아예 문을 안 열든가 늦게 연다는 것. 그런데 자판기는 동전만 받는다. "그럼 주말에 전철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함?"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나가서 문을 연 가게를 찾아 동전을 바꿔 오든가, 체포를 각오하고 무임승차를 해야 한다. 아찔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따라서 결론: 주말에 전철/버스를 타려면 1) 미리 1일권을 사 놓든가 2) 미리 동전을 충분히 갖고 있어야 한다. 사실 이 날이 금요일이었고, 다음날인 토요일 내가 직접 겪어 봐서 안다.  

 

 

프라하의 전철은 이렇게 3개의 색으로 구분된다. 바츨라프 광장의 바츨라프 동상/국립박물관 앞에 있는 역은 눈치로 때려잡아도 빨간선과 녹색선이 교차하는 무제움 Muzeum 역. 여기서 빨간 선으로 두 정거장을 가 비셰흐라드 Vysehrad 역에서 내린다.

 

역에 내려 5분쯤 걸으면 나타나는 성곽의 형태.

 

 

 

눈치로 때려잡는다 체코어로 따져 보면 Narodni 는 대략 영어의 National에 해당하는 것 같다. Kulturni 는 누가 봐도 culture와 관계 있는 단어겠지. 그럼 뭔가 국가문화유산 혹은 주요 사적에 해당하는 것일게다.

 

그리고 눈치 아닌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Hrad는 체코어로 성. 그러니까 비셰 성이다. 비셰는 '높다'는 뜻으로 합하면 '높은 성'이 된다. 고지가 흔치 않은 프라하 근교에서 이 정도의 고지면 상당히 전략적인 요충지로 보일 법 하다.

 

그냥 성은 아니고 체코 건국신화가 내재된 땅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민족 성지 역할을 한다. 체코의 단군할아버지 격인 체흐 Chech 가 나라를 세운 뒤, 그의 아들 크록 Krok 이 이 비셰흐라드를 도읍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의 딸이자 예언자인 리부셰 Libuse 가 나라를 통치했다.

 

리부셰는 체코 민족의 앞날에 엄청난 전란과 살상, 피와 죽음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그런 고초에도 불구하고 체코 민족은 영원할 것"이라는 희망의 말도 남겼다. 유난히 많은 국난을 겪었던 이 나라 사람들에게 리부셰는 희망의 상징으로 추앙된다고 한다.

 

 

걷기 좋은 돌길.

 

 

 

날씨도 좋고 어느새 내성 문.

 

 

 

멀리 저렇게 교회 종탑이 보인다.

 

비셰흐라드 안에는 국가적 성지가 있어 유명하다. 체코의 건국에 기여한 위인들만을 위한 묘지다.

 

 

 

 

 

 

들어서자마자 스메타나의 묘비가 사람들을 맞는다. 아시다시피 교향시 '나의 조국'으로 유명한 그 분.

 

뒤에 나올 드브로작과 함께 보헤미아 음악의 대명사인 그 분이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 있는 대형 위령탑.

 

 

여기에 이름이 오른 분들은 모두 체코의 위인전에 오를 만한 영예의 인물들이다. 예를 들어 왼쪽 두번째 칸을 보면 위쪽에 알폰스 무하가 있고, 그 아래로 바이올리니스트 얀 쿠벨릭과 지휘자 라파엘 쿠벨릭 부자가 있다. 이 정도는 해 줘야 이름이 올라갈 수 있는 영예의 공간이다.

 

(아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보후밀 카프카 는 유명한 조각가로, 우리가 잘 아는 프란츠 카프카 와는 무관한 사람이다. 체코에서 카프카는 그리 드문 성이 아닌 것 같다.)

 

 

 

이런 각양각색의 묘비들로 가득한 공간.

 

 

이렇게 비석 사이를 걷다 보면

 

 

안톤 드보르작 님의 묘소에 도달하게 된다.

 

 

생각해보니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은 드보르작 교향곡 9번이 바로 라파엘 쿠벨릭의 지휘로 녹음된 버전이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곡도 드보르작 교향곡 9번. 뭔가 다 연결된 느낌이다. (뿌듯)

 

 

묘지 바로 옆에는 두개의 첨탑이 돋보이는 베드로와 바울 성당 이 있다.

 

 

그런데 성당 문짝이 예사롭지 않다.

 

 

아이구 이뻐라.

 

 

 

다른 쪽 문은 또 다른 쪽 문 대로. 나름 유럽 좀 다녀 봤지만 이렇게 핑크색으로 예쁘게 꾸며진 문은 또 첨일세. 하지만 오전 10시가 성당 개장 시간이라 안을 둘러볼 수는 없었다.

 

 

 

비셰흐라드는 프라하를 관통하는 블타바(몰다우) 강의 남쪽에 위치한 요새다. 그닥 고지대가 없는 프라하 일대에서 이렇게 강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고지는 충분히 전략적인 가치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이런 뷰가 나온다.

 

아무튼 좋은 날씨와 수풀 길, 체코의 역사를 잠시 되새겨볼 수 있는 비셰흐라드는 산책을 겸한 여행길의 방문지로 매우 추천하고 싶다. 마음이 한가롭지 않은 분이라면 비추.

 

 

 

아무튼 그렇게 비셰흐라드 구경을 마치고 언덕을 내려와

 

 

트램을 타고 프라하 시내로 향한다. 비셰흐라드는 굳이 서울과 비교하자면, 대략 강서구 정도에 위치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해서 블타바 강 남쪽의 올림픽도로 아니고 강변 도로를 타고 시내 쪽으로 슝슝

 

 

 

 

그렇게 해서 트램/버스 환승을 위해 내린 곳이 프라하 오페라 하우스.

 

 

여기서도 공연을 볼 참이었는데 6월 초에는 뭔가 일정이 맞지 않았다. 매우 아쉽.

 

 

위 건물의 위쪽 조각상. 밤에 보면 참 멋질 광경이다.

 

 

그렇게 해서 시내로 진입해 도착한 곳은 프라하의 명소 중 하나인 무하 박물관.

 

 

 

아르누보 시대 최고의 수혜자(?)로 꼽히는 알폰소 무하의 작품이 전시된 무하 박물관이다. 입장료는 240코루나. 약 1만2000원 정도인데 이 가격이 싼거냐 비싼거냐에 대한 논란이 있다. 사실 작품 수를 생각하면 그리 싸지는 않다. 우리의 경우 유로자전거 투어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어 가이드 설명을 듣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어 시간이 꽤 걸렸지만, 일반 관람객이 이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30분도 길 수 있다. 그 정도로 작품 수가 적다.

 

 

무하를 혹시 모르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들어갈 필요는 없을 듯. 어쨌든 그림체를 보면 자다가 깨어나도 아 저게 무하 그림이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독특하다. 아마도 무하 그림이 찍힌 연습장 한 두 권 안 써본 사람 없을 듯. 그리고 무하가 전 세계 순정만화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지금까지도 지대하다.

 

 

게다가 무하의 작품 대부분이 포스터 내지는 석판화라서 '이 미술관만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의 느낌은 사실 별로 없다. 아마도 이 미술관이 갖고 있는 무하의 대표작이라면 이 '별 Star'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굳이 하고 싶은 말은 - 무하의 그림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미술관은 패스해도 아무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그걸로 맛난 거 사 드시라.

 

 

이걸로 오전 일정 끝. 런치 타임~

 

 

바츨라프 광장 끝자락의 가장 목 좋은 곳이라 아마도 시내에서 가장 비싼 집일텐데 파스타 종류는 200~300 코루나, 고기 종류는 300~500 코루나 정도 한다. 그래도 체코에서의 첫 식사라 어쨌든 먹어봐야 한다는 꼴레뇨 Koleno 를 시켰다.

 

꼴레뇨는 체코어로 무릎이라는 뜻. 말 그대로 돼지 무릎을 그냥 통으로 양념해 삶아 낸 요리다. 집집마다 방식이 조금 다르겠지만 이건 삶은 것만은 아니고 껍질을 살짝 튀겨 바삭한 맛을 살렸다. 어떤 집에 가면 짜다는 평도 있었는데 관광객 입맛에 맞춘 탓인지 전혀 짜지 않고 맛있다. 머스타드 소스와 함께 먹으면 아주 궁합이 좋다.

 

족발도 거의 먹지 않고 돼지고기 냄새를 싫어하는 동행인도 매우 만족했다.

 

 

자, 대망의 프라하 성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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