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뭔가 한마디 정리하는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뵙고 인사를 드린 적도 몇번 있지만 특별히 긴 대화를 나눴다거나 내세울 만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전혀 아닙니다. 그저 오랜 시간 그분의 모습을 본 시청자로서, 관객으로서의 입장일 뿐입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1970년대 한국에서 TV 드라마는 지금보다 훨씬 영향이 큰, 온 국민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흑백이었지만 TV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TBC, MBC, KBS라는 세 채널에서 방송해 주는 드라마야말로 경쟁 대상이 없는 대중의 관심사였죠. 그 시절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트로이카'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이라는 세 이름이었죠. 사실 이 세 스타가 70년대 후..
우여곡절 끝에 '하녀들'이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금요일 밤 9시45분(정확하게는 금-토 9시45분)이라는, 드라마가 낯선 시간대에 처음 등장해서 '삼시세끼'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두 예능 프로그램에 '나는 가수다 3'까지 끼어든 뒤, 자력 생존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하녀들'이 갖고 있는 '(양반들의) 슈퍼 갑질에 대한 을(노비들)의 분노'라는 주제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땅콩 리턴' 사건과 맞닿아 일으킨 화학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은 지금껏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애사극'입니다. 템포와 주인공의 배치가 남다르죠. 지금까지의 사극들 가운데에도 '멜로 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대부 계층의 남성 위..
김운경이라는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김수현 김정수 정성주에서 김은숙 홍자매에 이르기까지, 여성 일색인 한국 드라마의 스타 작가 그룹에서 정말 몇 안되는 남성 작가로서(물론 정하연 최완규 작가가 있습니다만), 오랜 시간 필명을 날리고 있는 대형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의 드라마를 좋아하시던 분들이라면 대개 40대 이상일겁니다. 도지원과 양동근(!)의 실질적 데뷔작인 '서울뚝배기(1990)'를 비롯해서 최민식 한석규 채시라 트리오가 빛났던 1994년의 '서울의 달', '차력 연기자' 이상인을 하루아침에 국민 스타로 만들어 버린 '파랑새는 있다'(1997) 까지가 이 분의 황금기였다고 봐야 할테니까요. 오늘날까지도 효과 있는 백윤식의 도사형 캐릭터도 바로 ..
[밀회 피아노곡 소개] '밀회' 3부 이후는 음악이 극의 중심이 아니어서 살짝 서운하셨던 분들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7,8회는 음악의 역할이 다시 전면에 나섰습니다. "누가 뭐라구 그래! 음악이 갑이야" 라는 말씀대로. 특히나 강조된 곡은 아무래도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본래 팬이 많은 곡이죠. 그밖에도 많은 곡들이 소개됐습니다. 더 쌓이기 전에 일단 4부 이후, 8부까지 쓰인 곡들을 정리합니다. 3부까지 쓰인 곡들은 이쪽 포스팅에 있습니다. http://5card.tistory.com/1246 자, 먼저 드라마 진행 순서대로. 5부에서 선재와 혜원이 듀엣으로 연주해 눈길을 끌었던 곡이 있습니다. 모짜르트의 '네개의 손을 위한 소나타' KV 521. '네개의 손' 시리즈가 슈..
'밀회'가 방송되기 전, 방송을 예고하는 기사에는 허튼 악플들이 많이 달렸습니다. 이모와 조카 같다느니, 저질스러운 불륜 드라마는 공해라느니 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딱 첫주 방송이 나간 뒤부터 이런 식의 이야기들은 싹 사라졌습니다. 한국 방송시장에서는 매주 20여편의 드라마가 방송됩니다. 개중에는 훌륭한 것도 쓰레기 같은 것도 다 있습니다. 하지만 '밀회'를 단 한 회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떤 물건이든 직접 써 보면 대개 품질이 드러납니다. 흔한 두루마리 휴지가 같은 길이라도 처음부터 세 겹인 휴지가 있고, 가격은 싸지만 홑겹이라 몇번을 겹쳐 써야 제 구실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밀도가 다르죠. '밀회'도 그렇습니다...
[밀회]에는 드라마 성격상 수많은 피아노 곡들이 등장합니다. 클래식의 세계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명곡들이 있지만 아무리 좋은 곡도 어떤 상황에서 듣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들어 좋은 곡이 있고, 전날 밤에 그렇게 좋았던 곡이 다음날 눈 뜨고 들으면 대체 내가 왜 이런 곡을 좋다고 했는지 이상할 때도 있죠. 아무래도 영상과 결합된 곡들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긴 여운을 남깁니다.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 나온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이나 '쇼생크 탈출'에 나온 '피가로의 결혼' 중 '편지의 2중창'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많은 분들이 '밀회'에 나온 주옥같은 피아노 곡들을 기억하실 듯 합니다. 전체적으로 선재의 천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템포가 빠르고 높은 수준의 기교..
[밀회] 소문이 무성했던 화제의 [밀회] 1회가 방송됐습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 얘기하는 것만큼 무모한 일은 없습니다. 대본을 아무리 읽어보고 잘 아는 배우들이 나와도, 편집을 마치고 방송되는 드라마를 보기 전엔 그 드라마가 어떤 드라마가 될 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마조마하게 기다렸던 '밀회'. 순산이었습니다. '밀회' 첫회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설명에 소요됐습니다. 일단 인물관계도는 이렇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본질적으로 혜원(김희애)-선재(유아인)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 둘의 관계가 한복판에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1회를 제대로 보신 분이라면,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이 아직 살짝 감춰놓고 있는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금세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장 흥미로운..
2014년 3월12일. JTBC 드라마 '밀회' 제작발표회가 열렸습니다. 김희애-유아인 주연, '아내의 자격'의 안판석 감독, 정성주 작가의 재회라는 점에서 일찍부터 화제가 된 드라마였습니다만, 사실 어떤 드라마가 나올 지는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습니다. 물론 일찌감치 대본을 읽어 보고 '이건 아마도 올해 최고의 드라마가 될 것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만, 대본과 정작 만들어진 드라마는 또 다른 법이거든요. 그리고 제작발표회. 본래 JTBC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는 1회를 모두 보여드리는 것이 관례였습니다만 이번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20분 가량의 부분만이 먼저 공개됐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당초 제작진은 '하이라이트'를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만, 만들어진 영상을 보니 하이라이트가 ..
[우리가 사랑할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누가 들어도 너무 깁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우사수]라고 불릴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사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제목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닙니다. 2012년 연말부터 2013년 초까지 JTBC에서는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라는 드라마가 방송됐습니다(당연히 '우결수'라는 제목으로 불렸죠). 이 드라마는 김윤철 PD와 하명희 작가가 호흡을 맞췄고, 결혼을 앞둔 두 젊은 커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결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불안과 기대, 좌절과 화해를 그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성준과 정소민이 사랑스런 젊은 커플로 등장했고, 정소민의 '세상 물정을 다 아는' 닳고 닳은 엄마로 이미숙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약 1년만에 김윤철 PD는 '우리가 ..
여자 나이 서른 아홉. 만약 누가 '너 자신만을 위해서 쓰라'며 돈 1000만원을 준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는 1월6일부터 방송되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준비와 함께 '39 드림 프로젝트'라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39'라는 숫자는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를 뜻합니다. 이 나이는 드라마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까'의 핵심입니다. 과연 서른 아홉이라는 나이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정말 마흔이 되면, 그때부터의 인생은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할까요? 서른 아홉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그 이후의 인생을 크게 좌우할까요? 예전만큼 '40'이란 숫자의 의미가 크지는 않을 듯 합니다만, 여전히 그 나이를 맞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듯 합니다. 그 나이를 맞기 전, '앞으..
[네 이웃의 아내] '네 이웃의 아내'는 금기 중의 금기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성경의 10계명 중 아홉번째가 바로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죠. JTBC에서 새로 시작한 월화드라마의 제목이 '네 이웃의 아내'라는 건 그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른바 '남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이 드라마에서 특이한 점은 그 '남의 아내'가 곧 '나의 아내'라는 점입니다. 아파트에서 한 복도와 안 엘리베이터를 쓰고 있는 앞집. 그 앞집에 마주 보고 사는 부부가 서로 상대방의 남편과 아내를 탐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뭔 막장 불륜 스토리냐 싶기도 하고, 스티븐 킹의 스와핑 단편 같기도 한 얘기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드라마라는 것의 존재 이유가 '세상의 변화에 대한 단초를..
[맏이] 여기저기서 '힐링 드라마' '힐링 예능'이 등장한지 오랩니다. 하지만 진짜 '힐링 드라마'라고 부를만한 작품이 나왔습니다. 바로 JTBC 새 주말드라마 '맏이'. 어떤 드라마일까요? 타이틀 사진을 보면 어떤 내용일지 대략 짐작하실 만 합니다. 어린 다섯 남매가 부모를 잃고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성장하는 이야기죠. 제목이 '맏이'인 것은 그 성장을 위해 맏언니가 엄마 노릇을 하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한다는 이야기임을 보여주는 것이구요. 그 '맏이'가 14일 처음 방송됐습니다. 그리고 방송 첫날부터 반응이 호평 일색입니다. 한마디로 무공해 청정 드라마의 면모를 보여줬습니다. 일단 누가 누군지 구별을 해야 드라마 보는 데 도움이 될 듯. 드라마의 중심인 오남매부터 시작합니다. 아역 캐스팅은 단연 최강입..
전 세계 대중문화 상품을 살펴보더라도 자국산 TV 드라마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자국 드라마가 해외에서도 인기 콘텐트인 나라는 더욱 적습니다. 이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나라는 역시 미국과 영국입니다. 유럽의 선진국이라는 프랑스나 독일의 TV 편성표를 살펴보더라도 미제 드라마, '하우스'나 'CSI'가 프라임 타임에 편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미드'가 영 맥을 못 추는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입니다. 자국산 드라마 콘텐트가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세계적인 위력을 자랑하는 '셜록'이나 '왕좌의 게임' 조차도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합니다. 한국은 어떻게 해서 드라마 강국이 되었을까요. 1980년대 후반부터 인재들이 부단히 이 분야로 모여들고, 치열한..
지난번 글에서 소현세자와 사도세자를 잠시 비교했습니다. 본인은 비명에 가더라도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오르지 않고는 큰 차이가 있었죠. 게다가 소현세자는 아들들 뿐만 아니라 아내인 강빈까지 사약을 받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불행한 운명을 맞게 됩니다. 한번 왕위에서 밀려나면 언제 반역의 무리로 몰릴 지 알 수 없는 '밀려난 왕손'의 운명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이죠. 여기에 하나 더. 그래도 '북벌 정책(비록 실질적으론 큰 의미가 없었다고 하나)'을 시도하며 '기개 있는 왕'으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고 있던 효종에게서도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형의 자손들에 대한 대접이죠. 일부 드라마에선 효종이 소현세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실상은 그럴만큼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무정도시 정경호] '무정도시' 라는 드라마가 월/화요일 밤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동시간대에 방송된 쟁쟁한 지상파 드라마들의 몇배나 되는 검색량이 밀어닥쳤습니다. 검색어 순위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그만치 이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화제의 핵심에는 '정경호'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군에서 제대한 지 얼마 안 되는 배우. '무정도시'에서는 국내 최대 마약 거래 조직의 하부 조직을 이끄는 중간 보스 시현 역을 맡았습니다. 드라마에 대해서도 '영화 보는 것 같다'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지만,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정경호에게 저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며 놀라움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인도 아니고, 주연을 안 해 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