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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레터리어 감독의 '타이탄(Clash of the Titans)'은 잘 알려진대로 1981년작인 고전 영화 '타이탄족의 멸망(영어 제목은 역시 같습니다. 국내에서는 개봉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을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1981년작도 사실 위대한 시각효과 예술가 래리 해리하우젠의 은퇴작이라는 역사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될 뿐, 그리 대단한 걸작이라고 할 수 없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래도 2010년작보다는 훨씬 훌륭한 작품입니다.

2010년작은 1981년작에 비해 엄청나게 발달한 컴퓨터 그래픽을 비롯,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기술적인 발전을 등에 업고도, 과학의 발전이 결코 인류 문명의 발전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심각한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계기를 만든 졸작입니다. 한 평자가 '타이탄'을 본 뒤 '아바타가 아이폰이라면 타이탄은 옴니아2'라고 했는데, 그 말에 절대 공감입니다.

한마디로 '같은 소재로 영화 재미 없게 만들기' 대회가 있다면 레터리어 감독은 단연 우승 감입니다. 그런데도 미국 시장에서는 개봉 첫주 흥행 1위를 기록했군요.^^ 다음주 성적이 매우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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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순수하게 2010년 영화 '타이탄'의 줄거리를 따라 봅니다.

페르세우스(샘 워딩턴)는 제우스와 신들을 증오하던 아크리시우스 왕의 '왕비' 다나에를 제우스(리엄 니슨)가 몰래 겁탈해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리고 페르세우스가 성장해 갈 무렵, 아르고스의 왕 케페우스는 신 따위는 두렵지 않으며 왕족인 자신들은 신에 못지 않다며 인간들을 부추겨 신에게 도전합니다.

저승의 왕 하데스(레이프 파인스)는 이 기회에 제우스에 대항해 자신의 세력을 키울 음모를 꾸미고, 제우스의 분노를 앞세워 인간들의 응징에 나섭니다. 그리곤 10일 뒤에 케페우스의 딸 안드로메다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괴물 크라켄을 투입해 아르고스를 파괴해버리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제우스의 아들이란 이유(신들의 끄나풀?)로 잡혀 고초를 겪던 페르세우스에게 역시 반신(demi-god)이라는 이오(제마 아터튼)가 찾아오고, 돌연 케페우스는 페르세우스만이 희망이라며 그에게 세상 끝으로 가서 크라켄을 죽일 방법을 찾아 오라고 합니다....(하략)

이야기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제 탓이 아닙니다. 대체 무슨 놈의 스토리를 이따위로 만들어 놨는지 의아할 정도입니다. 어쨌든 '타이탄'의 해석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반신 영웅 중 하나인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는 신의 피를 거부하고 인간의 길을 선택한, 신에 맞서 인간의 권익을 지켜낸 위대한 휴머니스트입니다. (대체 뭔 수작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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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1981년작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얼마나 바뀌었는지 비교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아크리시우스 왕은 제우스와 사통했다는 이유로 딸 다나에와 외손 페르세우스(아기)를 상자에 실어 바다에 떠내려 보냅니다. 제우스는 격분해서 아크리시우스와 그 도시를 파괴하죠.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성장하자 편애하기 시작합니다.

성장한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성의로 쓰면 투명해지는 투구, 돌도 베는 검, 말하는 방패, 그리고 천마 페가수스까지 손에 넣습니다. 그런 다음 케페우스 왕의 공주 안드로메다가 한때 그녀의 연인이었던 칼리보스의 저주로 고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저주를 풀고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나섭니다. 이를 안 칼리보스의 생모인 여신 테티스의 농간으로 아르고스는 크라켄에 의한 멸망을 막기 위해선 안드로메다를 산 제물로 바치라는 강요를 받습니다.

상당히 소박하고 직선적인 줄거리입니다. 이후는 2010년작이나 1981년작이나 비슷합니다. 단 결말은 완전히(그리고 얼토당토 않게) 다르다는 정도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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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 영화와 관련 있는 그리스 신화상의 기록을 대략 끼워 맞춰 봅시다. 1981년작과 2010년작을 거치면서 신화는 얼마나 변형됐을까요?

- 페르세우스의 모친 다나에는 아크리시우스의 아내가 아니라 딸. 아크리시우스는 제우스에 대한 분노보다는 자신이 외손에 의해 멸망당할 것이란 예언에서 벗어나기 위해 딸과 외손자를 바다에 버렸다.

- 페르세우스와 다나에는 폴리덱테스 왕에게로 흘러가고, 왕은 다나에의 미모에 혹해 왕비로 삼으려 하지만 페르세우스가 걸림돌이 되자 그를 자극해 메두사를 퇴치하러 가도록(말하자면 가서 죽으라고) 보낸다.

- 페르세우스의 무기는 검과 투명 투구, 그리고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샌들이었다. 페가수스는 페르세우스와 아무 상관이 없다(페가수스를 타고 괴물을 퇴치한 영웅은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벨레로폰이다). 오히려 페가수스는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일 때 그 피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말하자면 페르세우스는 페가수스에게 '어머니의 원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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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탄'에서 페가수스를 돕는 이오(Io, 위 사진의 제마 아터튼)는 본래 제우스가 사랑하던 여자. 제우스는 이오를 헤라의 질투로부터 감추기 위해 암소로 둔갑시킨다. 그러니까 페르세우스와 이오가 정분이 나면 그건 아버지의 정부를 건드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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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에 매달린 안드로메다, 1981년작과 2010년작의 '기본적으로 동일한' 아이디어]

- 페르세우스는 메두사를 해치울 때까지도 안드로메다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으나, 메두사의 목을 친 뒤 날아가던 도중 해안 바위에 나체로(...) 묶인 안드로메다의 미모를 보고 반해 사연을 묻는다. 안드로메다는 어머니 카시오페아가 너무 자신과 딸의 미모를 믿고 신들 앞에 교만한 죄로 바다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 것이었다. 아버지의 권세를 등에 업은 페르세우스는 호기있게 안드로메다의 아버지 케페우스 왕에게 괴물을 무찌르면 사위로 삼아줄 것을 제의해 허락받은 뒤 미션을 해결한다.

- 괴물 퇴치에 메두사의 머리를 쓰는 것은 반칙. 하지만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의 구혼자들을 물리칠 때와 폴리덱테스 왕의 무리를 해결할 때 메두사의 머리를 사용한다. 이후 이 머리는 아테네가 만든 제우스의 방패 아에기스(이지스)를 장식하는 데 쓰인다.

- 페르세우스가 물리친 바다 괴물의 이름은 미상이지만, 크라켄은 노르웨이의 바이킹 신화에 나오는 바다 괴물일 뿐, 그리스 신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이상입니다. 그러니까 1981년작이든, 2010년작이든 본래의 신화에서는 거리를 재기 힘들 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겁니다. 그래도 1981년작이 신화와 지구에서 알파 센타우리 정도의 거리라면, 2010년작은 안드로메다 성운 정도의 거리라고 봐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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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한글을 잘 못 읽는 분들을 위해서 분명히 강조해 두지만, 원래 신화와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타이탄'이 형편없는 영화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결코, 결코, 결단코 아닙니다. 원래의 내용이야 어떻든 영화만 재미있다면 모든 건 면피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너무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라는 데 있습니다. '타이탄'이 엉망이 된 가장 큰 책임은 '뭔가 독창적인 재해석을 하고야 말겠다'는 감독의 엉뚱한 욕심에 있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를 '신에 대항하는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런데 유명한 신화를 여기에 끼워 맞추다 보니 이야기는 산으로 갑니다. 단 한 가지도 그럴싸하게 풀려 나가는 것이 없습니다. 도대체 왜 인간들이 신에게 반발하는지에 대해 한 가지도 설득력있는 설명은 없으며, 신의 아들의 권능은 인정하면서 신은 인정하지 못하고 대드는 희한한 인간들만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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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주어진 시간은 열흘뿐인데 날짜 계산도 못하는 페르세우스는 여유만만. 물론 페르세우스가 미션 끝나기 전에 죽을 일도 없으니 애당초 생길 이유가 없는 긴장감을 억지로 짜내려는 희한한 연출(네. 페르세우스는 모든 미션을 성공시킵니다. 스포일러죠!)이 지독한 불균형을 이뤄냅니다. 케페우스 왕의 부하 드라코는 쓸데없이 겉멋에 치우쳐 신을 규탄하며 목소리를 높이느라 시간만 잡아먹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일어섰다"면 그동안 인간이 신에게 어떻게 당했는지를 알려줘야 설득력이 있을 것 아닙니까?

또 아무 이유 없이 하데스가 강해지면 제우스가 약해진다는 설정 하며, 왜 하데스는 직접 손을 쓰면 손가락 튀기기같을 페르세우스를 없애기 위해 귀찮게 칼리보스를 이용하는 바보같은 짓을 하며, 하데스의 부하 괴물들은 페르세우스에게서 빼앗은 메두사의 얼굴을 페르세우스에게 이용할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고(또는 인간들을 응징하는데 쓰지도 않고) 그저 꼭 쥐고 달아날 생각만 하는 등등, 스토리의 허점은 다 거론하기가 입이 아플 지경입니다. 아, 느닷없이 까만 브래지어를 입고 등장하는 15금 메두사는 매우 코믹합니다.

그러니까 - 어떤 원작이든 리메이크를 하면서 '새로운 해석'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반드시 알아둬야 할 게 있습니다. '새로운 해석'이랍시고 했다가 쓸데없이 원작을 망치고, 욕은 욕대로 먹는 것 보다는 그냥 원작이 간 길을 따라가는게 낫다는 겁니다. 더구나 이번 '타이탄' 처럼 규모까지 큰 경우에는 투자자들로부터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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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작품에서 영 연기가 신통치 않은 배우들에게 왜 그러냐고 물으면 대략 이런 대답을 합니다. "몰라! 나도 내가(즉 내 캐릭터가) 미친년 같고 이해가 안 가는데 어떻게 연기를 해? 내가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무슨 연기를 하냐고?" 이 영화에 출연한 샘 워딩턴의 심정도 대략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괴물 크라켄 나오는 마지막 5분 정도는 볼만 합니다. 그 장면을 위해서 나머지 2시간 정도를 잘 참으실 분이 있다면 보러 가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P.S. 레터리어 감독은 '타이탄'을 만들게 아니라 PS용 게임 '갓 오브 워' 실사판이나 만드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쩌면 그런 생각으로 '타이탄'을 만든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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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유일하게 눈길을 끈 건 영화 속에서 완벽한 안드로메다였던 알렉사 다바로스(Alexa Davaros). 이름에서 벌써 그리스 계라는 느낌을 강하게 풍깁니다. 새로 주목받기엔 좀 많은 나이(1982년생)이지만 앞으로 많은 활동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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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첫 부분에는 '삽화도 없이 글자만 가득한 책'을 읽는 언니를 보면서 대체 저 책을 무슨 재미로 볼까 하고 어린 앨리스가 궁금해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시절에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서 누가 이따위 책을 세계명작 아동문고에 넣은 것일까 궁금해 했습니다.

지금이야 문화적인 장벽이라는 것은 쉽게 넘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그 책에서 느끼는 재미라는 것은 번역으로 그 책을 접한 사람이 감히 느낄 수 없는 것이라는 것도 잘 압니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그 길지도 않은 책을 끝까지 보지도 못한(!) 제가 이 영화를 보러 가려 마음먹기까지엔 꽤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네. 물론 몸 상태도 한 몫을 했습니다.) 물론 팀 버튼과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의 호흡을 한번 더 보겠다는 욕심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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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거울 나라의 앨리스'와는 달리 이 영화의 주인공 앨리스는 스무살을 눈앞에 둔, 이제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의 다 큰 처녀입니다. '이상한 나라(Wonderland)'에 갔던 기억을 그저 꿈이라고 생각하게 된 앨리스가 그 언젠가처럼 토끼굴에 빠져 다시 이상한 나라에 가게 된 뒤의 모험을 그리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른 이상한 나라는 붉은 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의 공포 정치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앨리스는 순서대로 조끼 입은 토끼를 비롯한 주요 캐릭터들을 만나고 결국 미친 모자장수(조니 뎁)에게까지 찾아옵니다. 그리고 붉은 여왕을 몰아내고 흰 여왕(애나 해서웨이)을 복위시키기 위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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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스포일러고 뭐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단순한 줄거리입니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영화가 시작하고 30분도 지나지 않아 관객들에게 공개되고, 그 공개된 결말은 전혀 빗나가지 않습니다. 아니, 빗나가게 하려는 의도도 전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영화는 1차적으로, 어린 시절 루이스 캐롤의 앨리스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던 성인 관객들과 그들의 손에 이끌려 극장을 찾은, 한창 앨리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고 있을 어린 소녀들을 위한 작품입니다. 이런 분들을 위한 '극장판 앨리스: 완결편' 이라고 보는게 가장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객들에 의해 이 영화는 미국 시장에서 이미 수억 달러의 흥행 수입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니 '그런 관객'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가 재미있었네 아니네 하는 건 별로 의미 있는 얘기가 아닙니다.

...라고 쓰면 많은 분들이 아, 저놈이 이 영화를 별로 재미 없게 봤구나 하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습니다. 팀 버튼의 요상망칙한 상상력이 한껏 발휘된 영상을 3D로 보는 재미만 해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상상의 정원 꾸미기라면 아무래도 제임스 카메론보다는 팀 버튼이 한 수 위겠죠. 아무튼 뻔하디 뻔한 이 영화는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팀 버튼의 원투 펀치인 조니 뎁과 헬레나 본햄 카터도 여전했습니다. 아, 물론 이 영화만 놓고 보면 카터의 완승입니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붉은 여왕이기 때문입니다. 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이 짱구 여왕에 푹 빠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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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여왕 아라베스는 참 이해하기 쉬운 캐릭터입니다. 미모와 품성을 타고 난 동생 하얀 여왕이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을 때 혼자 속을 부글부글 끓였을 겁니다. 키도 안되고, 몸매도 안되고, 심지어 '대가리까지 왕짱 큰' 붉은 여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강력한 카리스마로 자신의 지지세력을 규합해 왕위를 찬탈해버립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외모도 매력도 별볼일 없는 여자 혼자서 그 대단한 음모를 실현시켰다는게.

사실 붉은 여왕이 갖고 싶었던 건 권력이나 왕국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었던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사랑받는게 나을까, 공포의 대상이 되는게 나을까?'라는 질문 따위는 할 필요도 없죠. 진정한 마키아벨리스트라면, 일찌기 마키아벨리 본인이 '군주론'에서 말했듯 '어설프게 사랑받기보다는 공포의 대상이 되는게 통치자에겐 훨씬 이익'이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네. 저 대사는 '군주론'에서 그대로 따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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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왕위를 차지하고도 주변에는 자기와 비슷하게 뭔가가 기형적으로 큰 인물들만을 배치하고(나중에 그것 때문에 또 한번 실망하게 되지만), 기형적으로 허리가 긴^^ 캡틴 잭을 애인으로 삼습니다. 그렇지만 동생 하얀 여왕과 앨리스를 비롯, 누구도 붉은 여왕의 그런 심정은 이해해 주질 않습니다. 이것이 '예쁘지 않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한 붉은 여왕의 비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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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비하면 조니 뎁의 매력은 이 영화에선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뭐 미친 모자 장수 자체가 이번엔 순수하게 미치기보다는 열정적인 혁명가의 분위기를 내는 데 바쁘기 때문이죠. 여기에 모자 장수와 앨리스의 로맨스까지 겹쳐 지나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 듯 한데, 아무튼 조니 뎁이 빛나는 것은 붉은 여왕과 흰 여왕의 전쟁 신 정도 뿐입니다. 물론 안 나온 것보단 나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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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에 대한 주목이 너무 부족했군요. 15년 전이라면 기네스 팰트로에게 돌아갔을법한 앨리스 역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친 21세의 미아 바시코브스카(Mia Wasikowska, 와시코우스카라는 인디언 비슷한 발음으로 알려졌지만 imdb는 이 이름을 vash-i-kov-ska라고 읽어야 한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래야 동구권 내음이 물씬 나는 생김새와 딱 어울리는 이름이 되죠^)에게 돌아갔습니다. 호주 출신인 바시코브스카는 하이틴용 영화 몇가지에 출여한 것 외에는 별 경력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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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무살이라기엔 약간 발육부진인 듯한 몸매, 그리고 뭔가 불안해하는 듯한 눈빛이 팀 버튼이 실현하고 싶었던 스무살의 앨리스(동화 속 앨리스가 현실 속에서 성장한 모습)에 부합했기 때문에 캐스팅됐을 겁니다.

아래의 이미지 사진을 보면 에이브릴 라빈이 했어도 괜찮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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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별로 이해할 수 없었던 정서의 원작에 대한 반발처럼,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있으면서도 뭔가 트집을 잡고 싶은 마음이 부글부글 일어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모자 장수에게 꼭 돌아오겠다고 말하는 앨리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하면서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앨리스에 대해 새삼 비판적인 마음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아편전쟁을 일으킨 것이 바로 앨리스였어!'라면서 '앨리스=제국주의의 첨병'이라고 비난하고 싶은 분들(무슨 말인지는 영화를 끝까지 보셔야 알 수 있습니다)도 꽤 있을 법 합니다. 뭐 팀 버튼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한 분들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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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여왕, 붉은 여왕, 앨리스]

그저 팀 버튼은 '매일 아침 먹기 전 여섯 가지씩 불가능한 일을 상상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진취적인 엘리트들을 키워낸 것이 바로 루이스 캐롤의 원작처럼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아동 문학 작품들이었다는 식의 마무리를 하고 싶었던 것 뿐일테니까요. 갑자기 그러고 나니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상상력 개발을 위해 우리 어른들은 뭘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달려라 하니'를 보고 자라서 한국 드라마엔 여전히 콩쥐팥쥐만 나오는 걸까요?)

아무튼 보시고 싶은 분들은 '자녀들을 위해서'라는 핑계 없이 그냥 마음 편히 보시기 바랍니다. 괜히 결말과 대영제국의 제국주의를 연결해야 의식 있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니 그런 부담도 없이, 머리를 비우고 판타지의 세계에 몸을 던져 보시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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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하얀 여왕' 앤 해서웨이의 뭔가 과장된 듯한 말투와 몸짓은 TV의 여성 요리 연구가에서 따 온 거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뭔가 그럴싸하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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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앨리스의 언니 역이 왠지 눈길을 끌어 찾아 보니 제마 파웰(Jemma Powell)이란,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 여배우입니다. 잘 크면 에마 톰슨의 뒤를 잇는 잉글리시 로즈 스타일의 배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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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예언자(Un Prophète)'를 봤습니다. 주인공의 옥중 생활을 그린 영화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현재는 프랭크 다라본트의 '쇼생크 탈출'이 이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이지만 올드 팬들에게는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의 명연이 빛났던 '빠삐용'이 여전히 기억에 선명합니다. 그 밖에도 알란 파커의 '미드나잇 익스프레스'를 꼽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지독하게 건조한 영화 '알카트라즈 탈출'이나 임영동의 '감옥풍운' 역시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런 수많은 '감옥 영화' 가운데서 '예언자'는 과연 어떤 위치에 있는 작품일까요. 세계 여러 나라의 교도소와 다른 프랑스의 교도소를 소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만 특이한 영화일까요? 이 영화가 위에서 거론된 기라성같은 선배 영화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주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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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의 아랍계 프랑스인 말리크 엘 제베나(타하 라힘 Tahar Rahim)는 6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입감됩니다. 그 전에도 소년원은 수시로 들락거렸지만 성인 자격으로 교도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죠. 가족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 그에게 교도소를 지배하고 있는 코르시카 계 갱단의 두목 세자르 루치아니(닐스 아레스트럽)가 손을 뻗어 옵니다.

아직 '사람을 죽인 적은 없는' 말리크에게 청부 살인을 요구해 온 것이죠. 당연히 말리크는 소극적으로 반발을 시작하지만 이미 세자르 파의 손길은 간수들을 포함해 교도소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벗어날 길이 없죠. 마침내 말리크는 면도칼을 입에 물고 표적이 된 '그 남자'에게 다가갑니다.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신다면, 아직 멀었습니다. 이건 이 긴 영화에서 도입부에 해당하는, 그냥 한가지 계기가 되는 사건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그리고 나서 6년이라는 기간 동안 말리크라는 한 소년 티를 벗지 못한 청년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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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할리우드식 '기본'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할리우드의 상식에서 볼 때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시대 이후 반영웅(anti-hero)도 하나의 조류로 자리했지만 원칙적으로 반영웅도 영웅의 기질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교도소를 무대로 하는 경우, 죄수가 주인공이라면 당연한 얘기지만, 그 죄수는 억울한 죄수여야 한다는 것이 상식입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경우라야 그 안에서 주인공이 펼치는 갖가지 행동들이 합리화되고, 그것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에게 어색하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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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크는 사실 교도소 안에서도 천대받을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프랑스 안에서 아랍계 이민 자손들은 범죄의 온상 취급을 받곤 합니다. 마티유 카소피츠의 '증오' 같은 작품이 이런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입니다.  '예언자' 안에서도 아랍계 범죄자들은 교도소를 손에 꽉 쥔 코르시카계에게 완전히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자신들의 조직을 위해 상당한 기여를 한 말리크도 종 취급을 계속합니다.

나폴레옹의 출생지로 유명한 코르시카는 프랑스의 한 주이지만 지리적으로는 이탈리아에 더 가까울 수도 있는 섬입니다. 지중해의 패권에 따라 수시로 주인이 바뀌었던 섬이기도 하죠. 최근에는 분리 독립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곳입니다.

이 섬 출신의 대표적인 범죄 조직은 시칠리아를 근거로 한 이탈리아 마피아에 비견되는 코르시칸 마피아라고 불리기도 하고, 유니오네 코르세(Unione Corse)라는 이름으로 한때 전 세계적인 악명을 떨쳤습니다. 이미 오래 전 영화인 007 시리즈 '여왕폐하(조지 라젠비가 본드 역을 맡은 작품입니다)'에도 이 조직이 등장하죠. 또 진 해크먼 주연의 고전 수사극 '프렌치 커넥션'도 이 코르시칸 마피아와 경찰의 혈투를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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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장면을 싫어하는 분들에게 권하기는 힘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전혀 새로운 종류의 시선에서 한 범죄자의 성장 과정을 바라보고 싶은 분에게는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굳이 이 말을 여기 쓴 이유는, 이후의 내용은 상당히 스포일러 역할을 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후의 내용은 영화를 보신 뒤에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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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크에게 있어 교도소는 학교, 특히 고등교육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말리크가 죽이도록 되어 있던 죄수 레예브는 말리크가 그를 찾아갔을 때 "공부를 좀 해 보는게 어때?"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말리크에게는 태어나서 몇 번 들어보지 못한 '건설적인 제안'이었을 겁니다.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레예브는 죽고 나서도 수시로 말리크에게 찾아와 조언자 역할을 합니다. 가끔 예리한 통찰을 주죠. 이 영화의 제목이 '예언자'인 것은 이 때문입니다.

(참 별난 유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같으면 '왜 나를 죽였어어어어어'하면서 악몽을 꾸게 할 원귀여야 정상인데 반대로 그를 계속 도와주니 말입니다. 죽은 사람의 지혜를 흡수하기 위해 시체의 골을 먹었다는 석기시대적인 발상인지...)

아무튼 말리크가 글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교도소 안의 학교를 찾아갔을 때, 많이 배운 죄수 리야드가 등장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무지=범죄, 지식=개과천선'이라는 구도에 입각해서 이 리야드는 '좋은 죄수' 캐릭터여야 하겠지만 이 영화에선 어림 없는 예측입니다. 리야드는 오히려 말리크가 진짜 거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어쨌든 19세의 말리크가 수년간 다양한 수업을 쌓고 졸업(출소?)을 향해 가는 과정은 대학 진학에 대한 패러디처럼 여겨집니다. 프랑스의 교도소가 과연 범죄자의 사회 적응을 위한 교도 기관인지, 범죄자로서의 성공을 위한 고등 교육기관인지를 정면으로 비꼬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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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끄 오디아르 감독은 한때 교도소를 돌아보고 비인간적인 환경에 충격을 받아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우리 시각으로 본다면 TV에 닌텐도 게임기, 심지어 담배까지 피우고 커피도 타 마시며 다른 죄수의 방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교도소가 비인간적이라는 데 의아해 할 만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 영화 속에 나오는 교도소 환경이 얼마나 실제에 가까운지 절대 확인할 일은 없어야겠지만, 영화 속 교도소를 무대로 펼쳐지는 생존 드라마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프리즌 브레이크' 보다 50배 정도는 설득력이 있다고 할까요.


P.S. 결론은 심지어 교도소 안도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으로부터 전혀 자유롭지 않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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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타하 라힘. 영화 속과는 달리 상당히 인상 좋은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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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Up in the air)'를 만든 제이슨 라이트먼이라는 감독의 이름은 아직 생소하신 분들이 많을 겁니다. '고스트버스터즈'를 만든 이반 라이트먼의 아들이라고 해 봐야 그런데 어쨌다는 거냐고 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땡큐 포 스모킹'이나 '주노'를 보신 분이라면 '아' 할만한 감독입니다. 미국의 젊은 감독들 가운데서는 제가 가장 기대하는 감독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조지 클루니와 함께 또 한번 희한한 소재의 영화를 만든다는데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영화 '인 디 에어'는 지난번 골든 글로브에서 각색상을 수상했고, 이번 아카데미에는 감독상과 남우주연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결국 한 부문도 수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기대는 부풀었지만 영화는 쉽게 볼 수 없었고, 마침내 국내에서도 개봉됐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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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라이언(조지 클루니)은 해고 통보자라는 희한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회사를 대신해 '당신이 해고됐다'는 사실을 전해 주는 역할을 전문적으로 해 내는 직업입니다. 안 그래도 발에 불이 나게 돌아다니던 그는 미국 국내의 온갖 기업들이 금융 위기로 인한 불황으로 정리 해고에 들어간 이후 1년에 300일 이상을 여행하며 보낼 정도로 바빠집니다.

심지어 그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내에 끌고 들어갈 수 있는 가방 하나 이상의 짐은 필요 없다'는 내용으로 대중 강연을 할 정도의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유목민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친구나 연인 같은 기본적인 인간관계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1년에 한달도 머물지 않는 '집'은 그림을 떼넨 미술관 같은 분위기일 뿐입니다. 냉장고 안에도 있는 건 미니어처 술병 뿐입니다. 인생의 유일한 목표는... 항공사 마일리지 모으기입니다.

그런 그에게 두가지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는 그냥 그런 일시적인 상대로 여겼던 커리어 우먼 알렉스(베라 파미가)와의 관계가 점점 깊어 가는 것, 그리고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던 회사에서 갓 사회에 진출한 명문대 출신의 여사원 나탈리(애나 켄드릭)의 아이디어대로 직접 대면하지 않은 상태에서 화상 채팅으로 해고를 전달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심각하게 고려하게 됐다는 것입니다.두 방향에서 자신이 안정해 있던 세계에 위협을 받게 된 라이언은 과연 어떻게 대처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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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클루니가 연기하는 주인공 라이언 빙엄은 말하자면 '인생의 비밀'을 일찌기 깨닫고 그걸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생을 쓸데없이 복잡하고 예측불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 수많은 변수(혹은 짐)들을 포기하지 않고 갖고 가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 변수(혹은 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인생을 혼란시키는 것은 바로 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 그리고 친구와 지인들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이죠. 물론 그들로부터 위안을 얻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빙엄은 과감하게 '관심 안 주고 안 받기'가 상책이라는 결론을 내려 놓고 있습니다. 쓸데 없는 감정의 소모야말로 시간낭비라는 걸 이 사람들은 '알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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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선 그리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그어 놓은 경계선 내로 사람이 들어올 때 저절로 머리 속에선 비상 경보가 울립니다. 타고난 매력 덕분에 중년의 나이에도 잠자리 파트너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지만, 절대로 상대방에게 필요 이상의 기대나 희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잘라 버리는 데' 선수인 사람이죠.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두 명의 여인이 나타나 가치관을 혼란시키는 과정은 어쩐지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스크루지처럼 살아가고 있는(물론 모으는 것은 돈이 아니라 마일리지일 뿐이지만) 클루니에게 두 여자는 '당신의 삶에는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느냐'고 묻고, 결국 클루니는 장고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나 리얼하고 그럴싸해서 감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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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먼의 장편 영화는 이제 세편째입니다. 하지만 몇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영화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달변가들이라는 것입니다.

'땡큐 포 스모킹'의 주인공 닉 네일러는 각계로부터의 비난 여론에 맞서 담배 회사를 옹호하는 대변인 닉 네일러입니다. 말을 못 할 수가 없는 사람이죠. '주노'의 주인공 주노 역시 나이답지 않은 엉뚱한 논리로 어른들을 꼼짝못하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 디 에어'의 라이언 빙엄 역시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인 만큼 말재주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사실 주인공 뿐만 아니라 라이트먼의 영화는 한결같이 아주 입심 좋고 산전수전 다 겪은 친구와 하룻밤 술자리에서 듣는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연상시킵니다. 때로는 이야기꾼 특유의 과장도 살짝 느껴지지만, 아무튼 잠시라도 다른 데 주의를 돌릴 수 없게 하는 세심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이야기 솜씨가 그야말로 발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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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라이트먼의 재능은 캐스팅에서 정말 무릎을 치게 합니다. 반생을 '캐주얼하게' 살아온, 매력적이면서도 냉소적인 중년 남자 역을 조지 클루니보다 잘 할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하는 건 물론 시작에 불과합니다(각본가를 겸한 라이트먼도 '클루니가 안된다면 대본을 대폭 고쳐야 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남자가 내 인생관에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매력적인 중년 여성 역의 베라 파미가, 그리고 얼굴에 '내가 사회 경험은 없을 지 모르지만 인생을 어떻게 사는 건지는 책으로 다 배웠어'라고 쓰여 있는 겉똑똑이 사회 초년병 역할의 애나 켄드릭은 정말 탁월한 캐스팅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트와일라잇'에서 여주인공의 진짜 인간 친구 4인방 중 하나일 때 애나 켄드릭을 본 사람이라면 놀라운 변신 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두 여배우가 모두 아카데미 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은 배우들 개인의 재능보다 라이트먼의 혜안이 빛난 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다만 베라 파미가가 73년생이라는 건 좀 놀랍습니다.^^ 한 69, 70 정도면 적당할듯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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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영화에 대한 얘기가 좀 빠졌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의 가을을 맞은 사람들이라면 사전지식이고 이해고 아무 필요가 없는 영화입니다. 그냥 보는 즉시 '이건 내 얘기' 이거나 '내가 아는 사람들의 얘기'일 수도 있고, 또는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내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얘기'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가슴에 콕콕 박히는 장면이 한둘이 아닙니다. 몇몇 장면에선 77년생인 라이트먼 감독이 어떻게 저런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떠올랐습니다. 그 부분에선 아마도 노련한 조지 클루니의 도움이 크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일종의 교훈담이라고 친다면, 젊은이들도 꼭 봐야 할 영화입니다. 과연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나의 10년 후나 20년 후를 생각해 본다면 과연 어떤 중년, 어떤 장년이 나의 모습일지를 한번쯤 생각해 볼 나이에 꽤나 유용한 영화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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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빠른 분들이라면 아마 영화 중간 쯤에서 주인공 라이언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감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는 예기치 못한 반전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말의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굳이 이 영화의 장르를 꼽는다면 블랙 코미디라고 해야 할 듯 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지난 겨울 이후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이 웃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게 될 많은 다른 분들 가운데는 눈물 흘리는 분도 있을 듯 합니다. 특히 나이만 먹었지 철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분들, 혹은 나이가 어리고 별 경험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인생 뭐 있냐'며 세상 다 산 척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꼭 권해 주고 싶은 작품입니다. 특히 클루니의 마지막 표정이 오래 오래 기억날 듯 합니다.

뭐 취향 탓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감히 걸작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P.S 아메리칸 에어를 비롯해 어느 항공사에도 1천만 마일을 기념하는 카드는 없다고 합니다. 단, 알렉스가 감동한 콘시어지 키 카드라는 건 실제로 존재한다는군요. 기업체의 정리 해고를 도와주는 사람은 실제로 '전직 상담 서비스(Career Transition Counseling Service)'라는 이름으로 성업중이라고 하는군요.

P.S.2. 어쩐지 아버지 이반 라이트먼의 라이벌이랄 수 있는 해롤드 레미스의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를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왠지 니콜라스 케이지의 '패밀리 맨'에 이어 '여자들보단 남자들이 좀 더 공감하는 영화의 전설' 반열에 들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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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형제'는 참 희한한 영화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영화가 두말할 나위 없이 '송강호의 영화'였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강동원이 재발견됐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두 말이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이고, 개인적으로 '의형제'라는 영화를 뒷날 기억할 때 어느 쪽이 더 의미가 더 각별하겠느냐고 묻는다면 후자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송강호가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 가운데 '송강호의 영화'가 아닌 영화가 몇 편이나 있겠습니까?
 
그리 긴 활동기간을 보낸 배우는 아니지만 강동원만큼 '재발견'이 많이 된 배우는 아마 없었을 겁니다. 팬들은 강동원의 작품이 새로 나올 때마다 '재발견'을 얘기했지만 냉정한 눈으로 볼 때에는 아직 '최강의 하드웨어를 가진 강동원'이 보일 뿐 '연기자 강동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의형제'에서는 마침내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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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온 프로페셔널 킬러 그림자(전국환)을 마중나간 고정간첩 지원(강동원). 하지만 그 뒤에는 어느새 그를 바싹 쫓고 있는 국정원 팀장 한규(송강호)가 있습니다. 지원의 임무는 그림자의 암살 임무를 돕는 것. 한규는 그리 늦지 않게 현장을 덮치지만 그림자와 지원을 잡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결국 지원은 북한 당국으로부터 정보 유출의 혐의를 쓴 채 버림받고, 한규 또한 작전 실패의 책임을 지고 퇴직당합니다.

3년 뒤, 한규는 결혼했다가 도망친 베트남 여자들을 남편에게 다시 데려다주는 일로 입에 풀칠을 하다가 우연히 지원을 발견합니다. 서로 상대방은 자신에 대해 모를 것이라고 확신한 채 은근히 접근하는 두 사람. 속내를 감춘 채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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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간첩과 국정원 직원 이야기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봤습니다. 오랜 경험상, 정보가 많아서 도움이 된 기억은 한번도 없었지만, 어쨌든 영화를 본 뒤의 심정은 매우 흐뭇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송강호가 국정원 직원으로 나온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쉬리'와 비교하곤 하지만 굳이 해야 한다면 이 영화와 비교해야 할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입니다. 생각해보면 'JSA'가 개봉한지 벌써 10년이 흘렀군요.

'의형제'는 그 10년 동안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이 한번 더 유연해 질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JSA'와 '의형제'는 모두 1953년 휴전 이후 거의 60년째 남북간의 준 전시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서 양쪽의 사람들,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훈련된 남자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해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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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JSA'의 이야기는 개인에게서 시작해 점점 줌 아웃되어 그들을 둘러싼 온 세상에서 끝납니다. 하지만 '의형제'는 다르죠. 역시 개인에게서 시작해 전체 틀을 보여주는 듯 하다가 다시 개인으로 환원되어 끝납니다. 다시 말해 'JSA'의 결말은 '그들을 둘러싼 전체 환경'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것이었던 반면, '의형제'는 거기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습니다. '까짓 세상이야 아무렴 어때'라는 식이라고나 할까요.

이건 어찌 보면 10년 사이 생긴 여유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북관계를 바라볼 때 뭔가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진 영화라고나 할까요. (물론 '간첩 리철진' 이후 실제 상황에 대한 별 이해 없이 남북관계를 그저 코미디 소재로 사용한 수많은 영화들은 제외하고 하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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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영화의 초점은 서로 전혀 믿지 못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처지를 낫게 하는 데 이용하겠다는 생각뿐이었던 두 남자가 서로 이해해가는 과정입니다. 'JSA'에서는 네 인물이 모두 '자의와는 관계 없이 군대에 끌려와 있는' 상황이란 면에서 매우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상황이었다면 '의형제'에서 두 사람이 놓인 환경에는 너무도 변수가 많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애당초 두 사람에겐 체제 따위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한규에게 간첩 잡이는 일반 직장인들이 내는 '실적'과 마찬가지고, 지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북으로 돌아가든, 아내가 내려오든 가족과 다시 합치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JSA'에서 수혁이 고민끝에 내린 결론이 '함께 (남으로) 내려가자'고 설득하는 것이고, 거기에 오중사(송강호)가 '야, 내 꿈은 공화국이 이 쪼꼬파이보다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거이야'라고 대답하는 상황은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이미 '의형제'의 세계 안에서 등장인물들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게 중요하지 체제는 무슨 개뿔'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JSA'에서 어쩌면 다소 부담스럽게 여겨졌던 '먹물'이 쭉 빠진 셈이고, 관객들에게도 그걸 그냥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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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연기에 대해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볼때마다 훌륭한 건 당연하지만 그건 매번 김연아의 연기에 대해 찬탄하는 거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눈에 띄는 건 강동원의 발전입니다.

바로 직전의 '전우치'도 재미있는 영화였고, 강동원의 연기도 뭐 나쁘달 순 없었지만 어쨌든 그건 누가 봐도 '전우치 분장을 한 강동원'이었지 전우치는 아니었습니다. 그밖에도 '우행시'의 강동원, '형사'의 강동원,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전까지 가장 연기력이라는 면에서 가능성을 보인 작품은 차라리 '그녀를 믿지 마세요'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엔 강동원이 송지원으로 겹쳐지는 느낌을 갖게 됐습니다. 그 인간의 내부에서 요동치는 혼란(어쩌면 '대체 이 인물을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하는 혼란일 수도...^^)이 송지원의 표정을 통해 생동감있게 전달됐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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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감독에게 가장 큰 수확은 아마도 지난번 '영화는 영화다'보다 다섯배나 되는 제작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감독임을 확인시켰다는 것일 듯 합니다. 소형 영화일 때에는 펄펄 날다가도 막상 돈뭉치를 보면 뒷걸음질 치는 감독들도 많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핵심적인 두 인물에게 집중하는 맛은 좀 떨어졌지만 어쨌든 시나리오 단계에서의 완결성이나 규모 큰 대중 신에서의 통제력은 매우 훌륭합니다.

과연 장훈 감독의 다음 영화도 '두 남자'의 이야기일지, '여자가 관련된 이야기'에서는 언제쯤 재능을 보여줄 지, 그리고 세번째 극장용 영화에도 배우 고창석이 등장할지가 매우 궁금합니다. 아무튼 기대를 갖고 기다릴 수 있는 감독이 늘어났다는 점이 매우 기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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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주유소습격사건2'가 나오면서 오리지널 '주유소습격사건'이 새삼 생각납니다. 전편이 만들어 진 것이 벌써 11년 전. 1999년입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봐도 재미있는 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사실 이성재-강성진-유오성은 그때 이미 꽤 이름 있는 배우들이었습니다. 물론 유오성도 '친구'이전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비트'의 태수 역을 통해 그해의 신인 후보로도 거론되는 좋은 연기력을 보였고(그 해에는 '비트'의 임창정과 '초록물고기'의 송강호도 있어 주의가 분산됐습니다), 이미 주연급 배우였습니다. 하지만 유지태는 아직 배우와 모델 사이에 있는 파릇파릇한 신인이었죠. 사실 이 영화에서는 연기도 살짝 어설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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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나오는 유지태를 보면서 오늘날의 스타 유지태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 별 신통치 않은 역으로 나왔던 배우들이 오늘날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스타로 성장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단 대표적인 경우가 '김혜수의 남자' 유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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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 영화를 본 뒤에도 유해진의 얼굴과 인상은 강렬하게 남았지만, 컬컬한 탁성과 다소 거친 연기 때문에 '배우가 아니라 진짜 동네 양아치를 데려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진짜 배우 출신이라곤 생각지 못했죠. 하지만 그때도 연극 마니아들은 유해진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다른 작품들을 보면서, '양아치를 데려왔나' 싶었던 연기가 진짜 고도의 리얼리티를 보여준 연기였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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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뿐만 아니라 이 분도 '주유소 습격사건'에 나왔을 때는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이 영화에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도 기억이 분명치 않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바로 이원종. 그 전에도 출연작은 많았지만

이원종과 유해진은 3년 뒤, 역시 김상진 감독의 히트작인 '신라의 달밤'을 통해 코믹 연기의 달인으로 자리합니다. 당시 이원종은 보스 역으로, 유해진은 배신의 귀재인 파마머리 오른팔 역으로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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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해진의 휘하 양아치 중에는 지금은 낯익은 얼굴 이종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혼자 카메라를 차지하는 신이 없을 정도로 단역이었죠.



지금까지 거론된 분들은 이 영화 이후에도 꽤 숙성기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다음 분들은 이 영화 덕분에 바로 수직 상승 효과를 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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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기는 철가방' 역의 김수로. 이 영화 이후 '반칙왕'에서 최고 레슬러 유비호 역을 비롯해 코믹 연기의 달인으로 평가받기 시작합니다. 물론 지금은 '공부의 신'에서 타협 없는 강석호 변호사 역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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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삐리 양아치 역의 정은찬(당시 이름은 정소영)도 이 영화를 통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비슷한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다가 몇년 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뭉치 역을 통해 상당한 인기를 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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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원은 뭐 굳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당시 '남자의 향기'로 데뷔한 지 1년 된 파릇파릇한 새싹 이요원은 이 영화에서 야자수머리를 팔랑이는 10대 알바 역을 통해 바로 주가가 폭등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 양쪽에서 손꼽히는 블루칩이 됐고, 순탄하게 톱스타로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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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에서 폭주 자동차를 모는, 손만 나오는 남자가 차승원이란 것도 주목할 만 합니다. 어쨌든 한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톱스타들이 배출된 것도 참 드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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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개봉한 '주유소습격사건 2'에서는 과연 어떤 새로운 스타들이 배출될까요. 궁금합니다.

혹시 제가 빠뜨린 사람이 있으면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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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라는 이름만으로도 소년시절의 추억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요즘도 국내에서 방송되는 BBC의 수사드라마들을 볼 때마다 저 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렇게 셜록 홈즈의 후예들을 길러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모리스 르블랑은 '괴도 루팡' 시리즈 중 한 권인 '기암성'에서 영국이 자랑하는 영웅 셜록 홈즈를 패러디해 '해록 숌즈'라는 이상한 영국인 탐정을 루팡의 경쟁자로 등장시킵니다. 결론은 루팡의 완승. 르블랑의 이런 비겁한 반칙 때문에 '영국이란 나라에 대한 호감'과 '프랑스란 나라에 대한 반감'이 동시에 생긴 분이 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셜록 홈즈를 영화로 만든 감독이 가이 리치라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비록 가이 리치의 걸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너무나 너무나 사랑하는 팬이긴 하지만, 가이 리치의 세계와 셜록 홈즈의 세계는 아무래도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입니다. 주인공까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물론 좋아하는 배우고 좋아하는 감독이긴 한데, 이건 뭐랄까... 김병욱 감독님이 줄리엔 강을 주인공으로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만든다는 느낌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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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줄거리.

런던 베이커가 221B에 사는 탐정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단짝 친구 왓슨(주드 로)과 함께 사이비종교 교주 풍의 흑마술사인 블랙우드 경(마크 스트롱)을 체포합니다. 그와 동시에 홈즈는 이제 상대할 범죄자가 없다는 허무에 빠지고, 왓슨은 메리 몰스턴을 만나 결혼을 약속합니다. 그러는 사이 홈즈의 한때 애인이자 매력적인 도둑 아이린 아들러(레이첼 매커덤스)가 갑자기 나타나죠.

하지만 교수형을 앞둔 블랙우드는 홈즈를 불러 면회를 신청하고, 곧 세상이 멸망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을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예언은 적중되고 블랙우드는 묘지에서 사라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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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셜로키언'이라고 자처할 정도로 열성 팬은 아니지만, 홈즈의 추억을 소년 시절의 중요한 부분으로 갖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참 황당무계하게 여겨집니다. 물론 홈즈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 이상으로 터프한 남자고, 한때 권투 경력도 갖고 있었으며,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잠수를 탔을 때는 마약굴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괴짜스러운 사람이긴 합니다. 하지만 왓슨에 비해 똑부러진 영국 신사의 이미지는 아니라고 해도, 이 영화에 나오는 것 처럼 수다스럽고 온 사방에 농담을 뿌리고 다니는 남자의 이미지는 결코 아니죠.

왓슨 역시 잘생기고 꼿꼿한, 튼튼하고 용감한 남자의 이미지이긴 하지만 이렇게 액션을 뿌리고 다니는 남자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아니 홈즈, 자네는 대체 그런걸 어떻게 다 알지?"가 고정 대사인 원작의 왓슨과는 달리 이 영화의 왓슨은 홈즈의 가장 중요한 조언자이며 초보 법의학자이기까지 합니다. 한마디로 장족의 발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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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이 영화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코난 도일 경이 만들어 낸 세계와는 달리 장난기가 흘러 넘칩니다. 당연히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이라고 하기는 좀 힘들 정도입니다. 아주 아슬아슬하게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처럼 막 나가지 않는 정도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이 영화를 접했을 때, 홈즈의 세계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 어느 쪽의 호응이 훨씬 클 지는 자명합니다. 당연히 후자 쪽이죠. 그리고 아마도, 2010년의 영화 관객 중에는 후자 쪽이 훨씬 더 많을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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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글의 제목이 '셜록 홈즈를 읽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이라고 해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셜록 홈즈가 나오는 작품들을 읽지 않았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우삼이나 '적벽대전' 관게자들이 -심지어 출연하는 배우들까지도- 아무도 '삼국지연의'를 읽지 않은 것 처럼 보이는 것과는 반대로, 가이 리치와 '셜록 홈즈' 제작진들은 홈즈의 세계를 속속들이 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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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아이린 아들러라는 여성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은 '보히미아의 추문' 단 한 편 뿐이지만, 아마도 전편을 통틀어 유일하게 홈즈에게 '여성'으로 그려지는 중요한 존재입니다(언급되는 작품은 훨씬 더 많죠). 홈즈의 로맨스가 언급된다면 아들러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네 사람의 서명'은 왓슨이 첫 아내인 메리와 맺어지는 사건이기도 하죠. 이런 식의 구성을 보면 결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홈즈의 세계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가이 리치의 태도는 "이봐, 솔직히 당신들 홈즈 홈즈 이름은 너무나 잘 알지만 책은 안 읽어 봤지? 괜찮아. 어쨌든 재미있게 만들어 주면 될 것 아냐!"라는 식으로 느껴집니다. 사실 재능있는 배우들 덕분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영화는 지루하지 않고 상큼합니다. 좀 지나친 개그가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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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어느 케이블 TV에선가 줄곧 틀어 주다가 사라진, 제레미 브렛의 TV판 셜록 홈즈 시리즈가 그립습니다. 브렛이 연기하는 홈즈는 어딘가 좀 다른 듯도 하면서도 '그래, 저런게 바로 홈즈야'라는 생각이 들게 했는데 말입니다.

P.S. 미국에서도 '아바타'에 밀려 한번도 박스 오피스 1위는 차지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1억달러를 넘는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이런 정황을 볼 때 아마도 속편이 나오고, 그때는 영원한 악당 모리어티 교수와의 한판승부가 예상됩니다. 과연 그때는 누가 모리어티를 연기할까요. (이번 영화가 재미없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때도 이 영화를 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P.S.2. 닥터 하우스의 원작(?)이 홈즈 시리즈라는 건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래서인지 유독 이 영화를 보다 보면 홈즈가 하우스처럼, 왓슨이 윌슨처럼 보이곤 합니다. 아, 물론 전편에서 계속 그런 건 아니고 어떤 장면들이 그렇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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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만 관객 동원을 향해 가고 있는 '전우치'를 뒤늦게 봤습니다. 최동훈 감독에 대한 신뢰야 여전했지만 연말연시엔 도무지 짬이 나질 않더군요. 기대대로 영화는 재미 만발. 제작비를 물 쓰듯(그래 봐야 '아바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쓸 수 있게 된 최감독이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걸 다 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도사 전우치'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교 시절에 들어보는 이름입니다. 홍길동만큼 친숙하지는 않지만 암행어사 박문수나 홍의장군 곽재우 정도로는 익숙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무튼 전우치는 홍길동 못잖게 도술과 해학으로 널리 이름을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또 고전소설 '전우치전'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다만 홍길동과 차이가 있다면, 이 전우치는 실제로 있었던 인물이라는 점이죠. (홍길동 역시 홍길동이란 도둑이 조선 중기에 있기는 했습니다만, 소설 속 홍길동과는 스펙이 너무나 다릅니다)

실존인물 전우치가 궁금하신 분은 바로 맨 아래로 가시기 바랍니다. 일단 영화 얘기부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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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수장 표훈대덕이 잡아 놓고 있던 요괴들이 어리숙한 세 제자 신선들의 실수로 풀려나고, 이들을 제압하고 있던 보물 피리(만파식적?)가 함께 사라져 인간 세상을 어지럽힙니다. 시대는 조선 중기. 세 신선은 당대 최고의 도인 화담(김윤석)을 찾아가 요괴를 잡고 피리를 찾아 줄 것을 요청하죠. 한편 천관도사(백윤식)의 제자 전우치(강동원)는 부적을 사용하는 재주를 이용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온갖 장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합니다.

우연히 요괴와 싸우던 전우치의 손에 피리가 들어가고, 화담은 피리를 찾아 전우치와 스승 천관도사가 살고 있는 선경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어찌어찌하다가 전우치는 요괴와 한 편으로 몰려 그림 속에 봉인된 채 50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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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동훈 감독이 만들어 낸 전우치는 고대소설 '전우치전'보다는 '서유기'의 손오공에 가깝습니다. 말썽꾸러기 도사 전우치가 500년 세월을 봉인당했다가 새로운 시대에 풀려나 엎치락 뒤치락 코믹 액션을 펼치는 설정은 누가 봐도 손오공 이야기에서 따 온 것이죠. 중간에 벼슬을 주어 전우치를 달래자는 신선들의 이야기 역시 제천대성 이야기를 연상시킵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꿰뚫는 정서는 전복의 미학입니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전우치가 2009년의 서울 한복판에서 액션을 펼치는 것(의도적인지 모르겠지만 청계천과 한강, 남산타워 등 서울 시내의 볼만한 장소들이 특별히 강조되어 있습니다. 영화 전체가 서울의 홍보 역할을 하고 있죠)부터 이 전복은 시작됩니다.

전우치가 도술을 뽐내다 화담 서경덕에게 제압당하는 원작의 설정과는 달리 여기선 조선시대의 명 유학자로 이름을 날린 화담이 악당 중의 악당으로 등장하죠. 게다가 보쌈을 두려워해야 할 과부(임수정)는 오히려 20세기풍의 낭만적인 연애를 꿈꿉니다. 제자리에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최감독이야말로 전우치보다 더 악동인 셈이죠.^ 모조리 자리를 바꿔 놓고, 마지막엔 초랭이의 정체(?)까지 뒤집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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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늘 얘기하는 거지만 '전우치'의 경우에도 영화를 볼만하게 만드는 건 현란한 특수효과가 아닙니다. 한 순간도 '저기서 왜 말도 안되게 저기로 넘어가?'라는 말을 허용하지 않는 탄탄한 구조와 속도감 높은 편집입니다.

사실 주인공 강동원은 물론이고 김윤석이나 임수정, 염정아, 도사 3인방 역의 주진모 송영창 김상호 등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할 일도 별로 없어 보입니다. 쉴새없이 펼쳐지는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배우 하나가 '인상적인 장면'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 '배우들이 낭비됐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 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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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운데서도 김윤석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 하나를 살려 내는 솜씨를 보입니다. "더 살아 봐야 아무 것도 없단다." 대단합니다.)

요약해서 말하자면 당연히 강추작입니다. '어린이용 영화가 아닐까' 주저하셨던 분들, 어서 극장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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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는 제목에 대한 책임입니다. 실존인물 전우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정확한 생몰연대는 밝혀진 데가 없지만 조선 중기에 실제로 활동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출신지에 대한 기록은 황해도, 개성, 평안도 등으로 다양합니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61권에 따르면 전우치는 '순오지'의 저자로 알려진 홍만종의 '해동이적(海東異蹟)'이라는 책에 한국 선도의 대표적인 인물 38인 중 하나로 소개되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중에는 한라선인, 지리선인 등 이름을 알 수 없는 도사들도 있지만 토정 이지함이나 남사고처럼 예언가로 후세까지 이름이 알려진 사람도 있고, 김시습 강감찬 서경덕 곽재우 등 도술을 썼거나 신선이 되었다는 소문이 있는 사람들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또 이기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도 '명나라 세종 연간(16세기 중엽)에 해서(황해도) 사람 전우치가 도술로 역병을 치료하고 사람들을 도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이밖에도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죽은 뒤에도 나타났다는 기록 등이 여기 저기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전우치의 시를 소개하기도 합니다.

늦가을 맑은 못에 서리 기운 해맑은데 / 秋晩瑤潭霜氣淸
공중의 퉁소 소리 바람 타고 내려오네 / 天風吹下紫簫聲
푸른 난(鸞)은 오지 않고 하늘 바다 넓으니 / 靑鸞不至海天闊
서른 여섯 봉우리에 가을 달은 밝도다 / 三十六峯秋月明

당대의 문장가인 허균이 '그의 시를 읽으면 시원하다'고 소개했을 정도입니다.

아무튼 행동거지가 남다른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한 듯 하며, 이런 실재 인물을 배경으로 후세 사람들이 '전우치전'이라는 고대 소설을 남긴 듯 합니다. 다만 소설 속의 전우치는 실제의 행동보다 훨씬 과감해져서 임금을 희롱하기도 하고 군사를 지휘해 군공을 세우기도 합니다. 어쨌든 그때나 지금이나, 서민들의 마음을 달래는 영웅으로 묘사되는 데에는 차이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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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도입부의 나레이션에서 '신선 표훈대덕'은 아마도 신라시대의 명승 표훈대사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은데, 굳이 고승에게 붙이는 칭호인 '대덕'을 신선에게 붙인 것도 이상하고, 그 다음에 '미관 말직의 세 신선'이라고 한 것 역시 대체 왜 신선을 미관 말직이라고 부르는 지 알 수가 없더군요. 왕년의 명 논술 강사 최동훈 감독의 손이 간 작품 치고는 이런 부분이 좀 의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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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둘째주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이제사 이런걸 추린다는게 좀 우습기도 하지만, 연말엔 나름 바빴습니다(네. 블로그상으로는 시상식 설거지하느라 바빴습니다.^).

2009년에도 꽤 많은 영화를 봤습니다만, 마음이 바빠서인지 생각만큼 많이 리뷰를 쓰지는 못했습니다. 꽤 좋은 인상을 받은 작품인데도(ex. 레볼루셔너리 로드) 이상하게 글이 나오지 않아서 다루지 못한 영화도 있습니다. 솔직히 케이트 윈슬렛에 별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이 작품만큼은 강추하고 싶습니다. 흔히 호평을 받은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보다 이 영화 쪽이 훨씬 더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좀 늦게 꼽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 막판에 튀어나온 것도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아바타'를 3D로 보기 전에 순위를 작성했다면, 그리고 '10대 영화'에 포함시키지 않았더라면 참 빈곤한 리스트가 됐을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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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아바타

카메론은 영화의 미래.
 
 


2. 국가대표

어떤 오글거림도 배우들이 하늘을 나는 순간 용서하게 된다.
 
 


3. 마더
 
제작자만 빼면 모두 행복한 영화.

 


4. 디스 이즈 잇

물론 다른 영화와 비교한다는 건 좀 무리일 수 있지만 - 어쨌든 편견이니까.
 
 

5.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

형, 멋져요. 형은 그래도 돼요.
 
 


6. 파주

"난 한번도 널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 2009년의 대사.
 
 


7. 스타트렉
 
이런게 바로 '전통의 창조적 계승'이라고!

 


8.7급 공무원

제발 5급 공무원도 만들어 주세요.
 
 


9. 박쥐
 
그런데 혹시 만들기 전에 '트와일라잇'을 보셨다면 어떤 영화가...^^

 


10. 슬럼독 밀리어네어
 
'어차피 운명이니까', 혹은 '어차피 대본에 그렇게 돼 있으니까'. That's entertainment.

 


그리고 '아바타' 때문에 두 편으로 늘어난 아차상.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CG나 모션캡처로도 이런 따스함이 나올 수 있다.
 
 


* 똥파리
 
새로울 건 없지만 어쨌든 새로웠던 영화.

 






다음은 2009년의 돈 아까웠던 영화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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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적벽대전2
 
...이건 나의 삼국지가 아니야!

 

2. 불꽃처럼 나비처럼

...도대체 사극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3. 터미네이터4
 
...세번째부터 이미 아니 만났어도 좋았을.

 


4. 트랜스포머2
 
...듣기 좋은 콧노래는 딱 한번?

 


5. 나는 비와 함께 간다

...애꿎은 비는 왜 들먹이고?
 


혹시 안 보신 작품들이 있다면 마지막 다섯 편은 절대 비추입니다.
(하긴 트랜스포머 시리즈 등은 '욕하더라도 보긴 보겠다'도 가능하겠군요.)




아, 추천창이 너무 많긴 하지만, 이번 포스팅에 대한 추천은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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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적인 예매율, 대출을 받아서라도 반드시 보고 말겠다는 영화 팬들의 의지가 이렇게 뜨겁게 느껴진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바로 '아바타' 얘깁니다. 제왕 제임스 카메론의 11년만의 신작. 이미 흘러 넘칠 정도의 호평과 찬사.

영화 관객 뿐만 아니라 모든 소비자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갖고 있는 재화로 가장 효율적인 소비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호평받는 상품에 끌리게 되고, 제임스 카메론과 같은 명품 브랜드(패션으로 치자면 샤넬 정도 되려나요^)를 신뢰하게 됩니다. 패션 명품과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선 어쨌든 똑같은 가격이라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쯤 되면 뭐라고 하건 '아바타'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는 건 눈치채셨을 겁니다. 물론 어떤 영화라도 '이걸 보라고 추천한 개**들은 뭐냐'고 투덜대는 사람이 나오기 마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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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으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전직 해병 제이크(샘 워딩턴)는 미 정부의 부름을 받고 죽은 형의 대타로 판도라 행성에 갑니다. 6년간 잠자며 날아간 판도라 행성은 지구인들이 탐내는 희귀 자원의 보고로, 자원 채굴을 위해 진출한 기업과 그들이 고용한 용병들이 원주민(즉 판도라 행성에 사는 외계인)들과 끊임없는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행성에 파견된 생물학자 그레이스(시고니 위버)는 인간과 원주민의 DNA를 합성해 만든 아바타를 동원해 인간과 원주민 사이의 대화 창구로 삼으려 합니다. 곡절 끝에 제이크의 아바타는 원주민 추장의 딸 네이티리(목소리는 조 살다나)를 만나 그들의 부락으로 가게 됩니다. 한편 용병의 리더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은 제이크에게 언젠가 있을 무력 충돌에 대비해 원주민들을 낱낱이 탐색해 보고하라고 유혹합니다.

대략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만 아무튼 영화의 설정은 이보다 훨씬 정교하고, 설득력있게 되어 있습니다(괜히 카메론을 제왕이라고 부르는 건 아닙니다). 아무튼... 이 '아바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대표적으로 네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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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애니메이션의 미래다?

카메론이 '반지의 제왕'의 골룸을 보고 이 영화를 만들어도 좋겠다고 판단했다는 건 이미 유명해진 얘깁니다. '아바타'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CG 화면은 실사와 비교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일각에서는 '베오울프'나 '크리스마스 캐럴' 등 제멕키스의 작품들과 비교하며 '아바타'의 우수성을 칭찬하기도 합니다. 사실 비슷한 노선을 걸어온 '파이널 판타지' 계열과 비교해 봐도 '아바타' 쪽의 손을 들어 주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엔 살짝 함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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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위에서 든 영화/애니메이션들이 가장 큰 비판을 받은 부분은 바로 '인간의 얼굴'이었습니다. 얼굴의 솜털까지 표현할 정도로 정교한 애니메이션이 동원됐지만, 이들 중 어떤 작품도 인간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너무도 실망스러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죠.

이를 모를 리 없는 카메론은 제멕키스처럼 우직하게 맞붙는 대신, 슬쩍 피해가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아바타'에 등장하는 디지털 배우(즉 아바타들)들의 연기가 호평받은 것은, 그들이 '인간의 얼굴'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바타'에서도 판도라 원주민 아닌 진짜 인간들의 얼굴을 디지털로 표현하려 했다면, 제아무리 카메론이라도 망신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골룸도 진짜 인간의 얼굴이면 그런 호평은 없었을 겁니다.) 이런게 바로 제왕의 지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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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간의 얼굴이 아니면서도, 이게 누구의 얼굴인지는 다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미래는 아니다'입니다. 혹자는 '현재 블록버스터의 첨단 기술 수준을 1이라고 봤을 때 카메론이 사용한 것은 20'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지만, 제가 보기에는 카메론과 이 분야의 경쟁자들 사이에 결정적인 기술적인 격차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단지 이쪽이 좀 더 현재 상태에서의 기술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 뿐입니다. 좀 더 영리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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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정주의 서부극의 변신일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줄거리를 들으면 제일 먼저 '포카혼타스'를 떠올리고,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은 '라스트 사무라이'를 연상합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더스틴 호프만의 고전 '작은 거인'이나 케빈 코스트너의 '늑대와 춤을' 처럼 인디언(네이티브 아메리칸이라고 써야 하나...)들의 시각에서 본 서부극 영화들과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20세기 이후 인류 역사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는 종전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한 윤리를 요구합니다. 이를테면 시험관 아기나 생명 복제에 대한 부분이 그랬고, '인간은 다른 동물과 지구를 나눠 쓰고 있다. 인간의 생존권과 동물의 생존권이 대립할 때 동물의 편을 들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환경보호론에 대해서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아바타'가 제시하고 있는 상황은 이보다 한발 더 앞서 있습니다. 누군가 외계에서, 인간과 상당히 유사한 외형을 갖추고, 인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번식하는 지적 생명체를 발견했을 때, 과연 이들을 '외계인 괴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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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행성의 원주민 정도라면 큰 고민이 필요 없을 듯도 하지만 가령 어느 외계 행성에서 발견한 오랑우탄 수준의, 혹은 개구리 수준의, 혹은 지렁이 수준의 '외계인'에 대해 각각 어느 정도나 '예우'를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미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아바타'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같은 인간들끼리도 경멸하고 차별하는 인종주의자들이나 '인디펜던스 데이'에 환호하는 수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얘깁니다. 그리고 카메론은 그런 논의가 결코 흥행에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단지 그런 도덕에 대한 문제를 '시사'하는 선에서 더 나가지 않습니다.

사실 '아바타'가 영화니 그렇지만 어느 별에서 발견된 '외계 지렁이의 생존권'을 위해 지구인에게 총질을 해 대는 사람을 우리가 현실에서 만난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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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오타쿠에 대한 풍자다?

사실 '아바타'라는 제목부터 현실 세계의 아바타들을 연상하게 하죠. 지난 여름 개봉했던 영화 '써로게이트'는 '아바타'와 출발점이 똑같은 영화입니다. 단지 그 아바타들이 우주 아닌 지구의 거리를 걸어다니고 있다는 게 차이가 날 뿐입니다.

저는 '아바타'를 보다가, 아바타와의 접속 상태에서 풀린 제이크가 '얼른 먹고 빨리 다시 접속해야지'라는 자세로 허겁지겁 음식을 먹고, 그레이스가 제이크에게 '대체 너 마지막으로 목욕한게 언제냐'고 물을 때 빵 터졌습니다. 삼시 세끼를 컵라면과 초코파이로 때우고, 며칠째 감지 않은 머리와 면도 따위는 잊은 몰골로 게임 속 엘프가 되어 있는 'PC방의 아저씨들'이 저절로 떠올랐기 때문이죠.

여기에 대해선 따로 써놓은 글이 있어 이 정도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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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제임스 카메론의 자기 복제다?

이 영화에 비판적인 사람들(그리 많지는 않지만)은 '카메론이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비교할 때 새로운게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처럼 평생 똑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면서도 거장으로 대접받는 사람이 있는데 카메론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뭐 그만큼 완벽주의자 카메론에 대한 기대가 두텁다는 뜻이겠죠. 아무튼 약간 다른 얘기지만, '아바타'를 보면서 카메론이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들의 편린을 살펴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에 시고니 위버가 나온다는 건 0.1초 안에 '에일리언 2'를 생각하게 합니다. 당초 쿼리치 대령 역으로 내정됐던 마이클 빈이 탈락한 것도 "시고니 위버에다 마이클 빈까지 나오면 이건 누가 봐도 '에일리언2'"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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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미셀 로드리게스가 연기하는 트루디 캐릭터에서 '에일리언 2'의 흔적을 발견하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체구는 작지만 남자들을 압도하는 라틴 혈통의 터프한 여전사'라면 '에일리언 2'에서도 이미 본 적이 있죠. 지넷 골드스타인(Jenette Goldstein)이 연기한 바스케스 상병입니다.

또 원주민들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 아바타들은 '적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와 똑같이 생긴 괴물'들입니다. 적대적이지 않을 뿐, 바로 터미네이터죠. 누가 운영하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쿼리치 대령이 아바타의 운영을 맡았다면, 이 아바타들은 바로 터미네이터가 됐을 겁니다. 아마도 카메론 팀은 스토리를 개발할 때 이런 방향도 검토했겠지만, 누군가 "그렇게 되면 그건 너무 '터미네이터잖아"라고 지적했을테죠.

물론 지금껏 카메론이 만든 영화 가운데 '아바타'와 가장 많은 유사점이 발견되는 작품은 그의 유일한 실패작^^으로 기억되는 '어비스'입니다. 미지의 지성체와의 조우, 부활의 주제, 막연한 공포와 적대감/광기, 미래 인류의 생존과 자원 등 '어비스'에서 카메론이 건드렸던 수많은 어젠다들이 '아바타'에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살짝 모습을 바꾼 채로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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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들을 염두에 두고 보든, 이중 어느 한 시각에서 보든, 혹은 아무런 선입견 없이 보든 '아바타'는 멋지고 감탄할 만한 영화입니다. 가장 좋은 감상은 '머리와 마음을 비우고' 보는 것일 수도 있죠.

아무튼 아직 3D 버전을 보지 못해 그 부분에 대해선 따로 언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3D버전과 아이맥스/3D버전을 각각 따로 한번씩 볼까도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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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혹자는 "그래픽이 훌륭하다 훌륭하다 하길래 봤는데 만화영화인 걸 다 알 수 있더라"고 불평하시기도 하더군요. 물론 다른 분들이 '다 알 수 없어서' 이 영화를 호평하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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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 어쌔신'을 보러 간 동행인으로부터 '공포영화보다 더 무섭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네. '닌자 어쌔신'은 신개념의 슬래셔 무비였습니다. 지금까지 본 어떤 영화보다 많은 양의 선명한 피가 화면을 가득 채우더군요. '신 시티'처럼 흑백 영상으로 핏빛의 거부감을 살짝 속이거나,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처럼 사람 목을 뎅겅 잘라도 피 한방울 비치지 않는 영화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칼에 베이면 바로 피를 흘립니다. 그것도 한 사발씩.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선 일단 핏빛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야 합니다. 그동안 나온 수많은 영화에서 사람 목이 날아가면 '으익' 하면서 눈을 가리던 심약한 여성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1) 아무 것도 본 게 없어서 영화 내용에 대해 기억나는게 하나도 없거나 (2) 이 영화 덕분에 피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져서 극장 문을 나서면서 초고추장에 밥을 비벼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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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폴(뭐 인터폴의 유럽판이겠죠)의 자료분석요원 미카(나오미 해리스)는 일련의 살인 사건이 기존의 테러 조직이 아닌 수백년 된 닌자들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를 포착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조사에 들어간 순간, 미카는 알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에 휩싸입니다.

라이조(이준/정지훈)는 어려서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비밀의 닌자 조직을 거느린 오즈누(쇼 코스기)에 의해 살인병기로 사육됩니다. 하지만 그는 비인간적인 닌자로 살기를 거부하고 조직을 이탈하죠. 당연히 조직의 살해 명령이 떨어져 쫓기는 처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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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5분만 영화를 보거나,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신 분들이라면 영화의 얼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단순합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줄거리 혹은 플롯을 극도로 슬림하게 한 뒤, 나머지를 모두 피칠갑의 전투 신으로 채우기로 했습니다. 심지어 이런 영화에서 필수일 '쫓기는 킬러와 여주인공 사이의 멜로드라마' 까지도 생략했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정지훈군은 그 나머지 시간을 종횡무진 닌자들을 도륙하는데 사용합니다. 얻어맞고, 칼로 쓸리고, 피를 흘리고, 복근을 보여주면서 어쨌든 끝까지 달립니다. 당연합니다. 주인공이 죽거나 하면 그걸로 영화는 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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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닌자들은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존재들입니다. 물이나 음식 따위의 기초적인 생명 유지 조건에 전혀 구애받지 않으며, 심지어 나중에는 상처의 자연 치유능력까지 보여줍니다. 그런 닌자 수십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라이조는 뭐 말할 것도 없겠죠.

애당초 이 영화는 '딱 그런 관객'들을 위한 맞춤 상품입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보고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영화를 볼 필요가 없겠죠. 마찬가지로 피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거나 물리적인 타당성이 결여된 액션을 혐오하는 사람은 아예 극장 근처에도 가면 안 될 작품이죠.

반면 그런 장르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닌자 어쌔신'은 충분히 제 몫을 하는 영화입니다. 액션 연출은 진부하지 않고, CG도 훌륭합니다. 스파이더맨이나 '매트릭스'의 니오는 왜 100대 1로 싸우면서도 적을 해치우지 않고 톡톡 때려서 꼭 다시 반격하게 만들까 짜증을 냈던 분들에게는 강추작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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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정지훈군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서 정지훈에겐 그리 많은 대사도 주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감정을 배제한 채 의미만 전달하면 되는, '킬러의 대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요즘 TV 드라마에 나오는 T모군을 보면 그런 대사도 쉽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고, 정지훈군의 연기력을 인정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속편이 제작된다면 정지훈이 연기하는 라이조의 캐릭터가 좀 더 발전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사실 영화의 마무리나, '닌자에게는 아홉개의 오랜 파벌이 있다'는 설정 등은 속편 제작을 향한 제작진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만, 개봉 첫주에 박스 오피스 6위를 기록한 미국 시장에서의 흥행 성적으로 볼 때, 속편 제작 여부는 그리 낙관할 수 없을 듯 합니다.

만약 속편이 나온다면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여자 마법사 나오미 해리스보다는 좀 더 젊고 예쁜 상대가 나타나 주길 기대합니다. 억지로든 뭐든 약간의 '느낌'을 내려 시도한 부분이 보이긴 합니다만, 이건 아무리 봐도 이모와 조카 사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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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왕년의 닌자 마스터 쇼 코스기의 등장은 '킬 빌'에 나오는 소니 치바의 등장만큼 올드 팬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합니다. 반면 한때 아시아계의 별로 꼽혔던 릭 윤의 캐릭터는 '몰락'이란 두 글자를 너무나 선명하게 새기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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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다'. 한국 영화의 스토리를 훑어 보면서 '독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들로는 '박하사탕'과 '올드보이'가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에 비교해도 '백야행'의 처절함은 그리 뒤처지지 않습니다. 원작을 읽으면서, 치과의 치료용 침상에 누워 있는 심정이었다면 좀 과장일까요.

원작 소설과 일본 드라마 판을 비교해 보며 기다리기를 6개월, 마침내 완성된 영화 '백야행'을 봤습니다.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지만, 그리고 영화가 원작을 살렸네 못 살렸네에 대한 논란도 오가고 있지만 최소한 한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우리의 여주인공 손예진은 일본의 아야세 하루카를 압도했다는 겁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긴 글 보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한마디로 압축해서 얘기하자면: 볼만 합니다. 그리 본전 생각은 안 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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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은 미호(손예진)와 승조(박성웅) 사이의 질펀한 정사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고교 미술 교사인 미호는 국내 굴지의 재벌인 승조와 결혼을 앞둔 사이. 하지만 미호의 표정에서 쾌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같은 시간, 요한(고수)은 한 남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있습니다.

시점은 14년 전으로 이동합니다. 형사 동수(한석규)는 인천 앞바다에 정박중인 한 폐선 안에서 중년 남자가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남자는 어린 요한의 아버지. 동수는 사건 현장의 단서를 쫓다가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녀(뒷날의 미호)를 만나게 됩니다.

사건은 상식적인 선에서 결론지어지고 수사가 종결되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을 잃게 된 동수는 맹목적으로 이 사건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현재, 승조는 미호가 자신의 결혼 상대로 적합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비서 시영(이민정)을 시켜 미호의 과거를 조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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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흐르는 음악은 일관되게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입니다. 클래식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밖에 없는 유명한 곡이죠. 이 '백조의 호수'의 이미지, 처음부터 끝까지 흰 색 위주의 스타일링으로 고수와 대비를 이룬 손예진의 패션, 그리고 마지막 패션 쇼장에 놓였던 흰색의 니케 여신상(날개가 달려 있죠)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너무도 선명하게 이 영화가 지향하는 길을 비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낮게 낮게(혹은 쉽게 쉽게) 가겠다'는, 대중적인 노선의 선택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소설 '백야행'은 읽는 데 특별한 이해력이 필요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소설 3권 분량의 원작을 2시간 남짓한 영화로 압축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원작에서 빼놓은 부분이 없나 하는 점에 지나치게 매달리다보면 스토리만 요약해 놓았을 뿐 원작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작품이 돼 버립니다. 그렇다고 원작의 상징성에 집작하다 보면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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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험을 감안할 때, 한국 영화 '백야행'의 시나리오를 비난하는 것은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에서 살려야 할 요소들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관객을 혼란시키지 않는 적절한 선을 유지했다고나 할까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에서 상당히 어렵게 빙빙 돌아 간 길을 한방에 질러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들입니다.

이를테면 원작의 료지(요한)는 대단한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만큼 그의 범죄에서 어떤 의도나 흔적을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요한은 허점 투성이입니다. 이런 차이는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요한이 잡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원작의 료지 수준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면 사건을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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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갔던 길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서너발짝이면 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건 아마도 원작 팬들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백조의 호수'나 동수 아들의 죽음 등 원작에 없는 요소들의 등장 역시 원작의 다소 신비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지나치게 통속적인 요소로 여겨질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작 팬들의 욕구를 모두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10편 이상의 드라마화뿐일까요? 하지만 일본에서 이미 제작돼 방송됐던 드라마 '백야행' 역시 원작 팬들로부터 '원작 훼손'이라는 욕을 먹고 있는 걸 보면 길다고 능사도 아닌 듯 합니다.^^

(많은 경우, 마니아들이 많은 원작일수록 영상화는 거의 반역에 가까운 대접을 받습니다. 내년 등장할 영화판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또한 이런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라는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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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시나리오를 비교할 때 개인적으로 100점짜리 각색은 아니지만 90점은 주어야 마땅할 듯 합니다. 하지만 박신우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서는 꽤 역량을 발휘한 반면, 연출에서는 80점 이상을 받기 힘들 듯 합니다. 특히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데에서 아직은 한계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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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제작진은 탁월한 여주인공의 선택을 보여줬습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있지만,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국내에서 손예진 이상의 선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본인에게는 기분나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연령대의 배우들 가운데서 '미소짓는 악녀'의 아우라를 누가 더 강하게 풍길 수 있을까요.

몇몇 장면에서 '작업의 정석'의 몇 장면이 떠올라 웃음을 참아야 했던 게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손예진은 '백야행'에서 '가식의 끝'과 '내면의 고통'을 관객들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 쉬운 연기가 아니었다는 점은 일본 드라마판의 여주인공 아야세 하루카와의 비교를 통해 아주 간단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지만, 아야세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감정의 기복이 잔물결이라면 손예진이 보여주는 격동은 해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두 영상물을 비교해서 보면 여주인공의 역량 차이가 너무도 극명합니다. (아역의 경우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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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 전부터 손예진에 비해 고수를 불안요소로 생각한 사람은 꽤 있었을 겁니다.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의 고수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아니었죠. '이미지로 가는 배우'였습니다. '백야행'에서도 고수에겐 많은 대사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표정과 분위기는 요한 역을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이 경우에도 아역과의 불균형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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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가 연기한 형사 동수 역은 지나치게 전형적인 캐릭터가 돼 버렸습니다(이 부분이 원작 팬들에겐 꽤 불만일 법 합니다). 영화 내내 까칠하고, 냉소적인데다 반항적이고 가시돋친 인물로 등장한다는 건 제작진이 이 캐릭터에 그닥 애정이 없었거나, 아니면 무신경했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아들의 죽음이라는 요소를 넣어 지나치게 극단적인 캐릭터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어야 했을 마지막 장면, '아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은 한번이면 족했을 듯 합니다. 굳이 동수의 입을 빌어 두번 질문을 반복하는 건 연출권의 남용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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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주인공의 형상화만에도 힘이 부쳤던 걸까요. 박성웅이 연기한 승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민정이 연기한 시영은 기대했던 비중에 비하면 처참한 실패입니다. 배우와 연출자 중 어느 쪽의 문제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둘 중 누군가는 열의가 좀 부족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총정리하자면 '백야행'은 초기 세 명의 주인공 캐스팅에 성공한 제작진이 "이 정도 배우들이라면 이만만한 관객을 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대중용 영화를 지향해 만든 작품입니다. 이때문에 좀 서비스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고, 좀 더 강렬한 자극을 원했던 관객들에겐 너무 안전한 운행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관객들에게는 호평을 받을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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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리뷰가 그렇듯, 이 영화 이야기는 손예진으로 시작해 손예진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결코 '백야행'을 보고 실망할 일은 없을 듯 합니다.


P.S. 그런데 한국 사람이라면, '며칠 모자라는 15년'을 14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굳이 왜 '14년'이라고 강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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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아이러브유'를 보러 갔던 많은 분들이 '러브 액추얼리'를 기대했다가 분노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이 영화는 절대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 11명의 유명한 감독들이 '뉴욕'과 '사랑'이라는 소재를 갖고 각각 8분 가량의 단편을 만들고, 그 각각의 영화를 이어 붙여 만든 옴니버스형 영화인 겁니다.

길게 늘어지지 않고 짤막짤막 간명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저는 긴장을 풀지 못하고 계속 몰입되어 보게 됐는데 그렇지 않았던 분들도 꽤 있었던 모양입니다. 처음부터 기대할 만큼만 기대했더라면 오히려 다양한 감독들의 다양한 스타일을 부페처럼 즐길 수 있는 기회였는데, 즐기지 못한 분들이 많다는게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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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 워낙 감독도 다양하고 배우도 엄청나게 나오다 보니 제대로 된 가이드가 없다는 게 이모저모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단, 에피소드의 순서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혹시 정확하게 기억하시는 분들은 좀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각 파트의 제목은 모두 감독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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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문(姜文, Jiang Wen)  

프로 소매치기인 벤(헤이든 크리스찬슨)은 호감을 느낀 몰리(레이첼 빌슨)를 유혹하려다 비슷한 기량의 '선수'인 백전노장 개리(앤디 가르시아)를 만납니다. 과연 개리와의 대결에서 벤은 사랑을 쟁취할 수 있을까요.

남녀간의 사랑이란 흔히 '마음을 빼앗는다'고 표현합니다. 마음 훔치기를 글자 그대로 도둑질에 덮어 씌운 비유가 상쾌합니다.

Hayden Christensen ...  Ben (segment "Jiang Wen")
Andy Garcia ...  Garry (segment "Jiang Wen")
Rachel Bilson ...  Molly (segment "Jiang Wen")
Sinsu Co ...  Mystery Bar Girl (segment "Jiang Wen")
Jeff Chena ...  Bartender (segment "Jiang W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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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라 네이르(Mira Nair)

인도 출신의 자이나 교도 만수크바이(이판 칸)와 유태인 리프카(나탈리 포트만)는 모두 다이아몬드 중개상입니다. 교조적인 유태인과 결혼을 앞둔 리프카와 만수크바이는 다이아 세트를 거래하면서 문화의 벽을 넘어 서로의 내면을 엿보게 됩니다.

'몬순 웨딩'의 여감독 미라 네이르의 섬세함이 드러납니다. "아무거나 다 먹는 기독교도들을 어떻게 믿고 다이아몬드를 맡기겠어?"라는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Natalie Portman ...  Rifka (segment "Mira Nair")
Irrfan Khan ...  Mansuhkhbai (segment "Mira Nair")
Eddie D'vir ...  Rabbi (segment "Mira Nair")
Aron Charach ...  Young Hasid (segment "Mira Nair")
Brad Naprixas ...  Hassid in Wedding (segment "Mira Nair")
Eliezer Meyer ...  Grand Rabbi Elli (segment "Mira N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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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반 아탈(Yvan Attal)

이스라엘 출신의 배우 겸 감독으로 샤를롯 갱스부르의 남편이었던 아탈의 작품은 두 개로 쪼개져 있습니다. 앞부분에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남자(이선 호크)와 여자(매기 큐)의 속사포같은 대화가 이어집니다. 남자는 어떻게든 여자를 꾀어 침대로 데려가려 하지만 여자는 남편이 있으며 잠시 담배를 피우러 나왔을 뿐이라고 하죠.

과연 남자는 여자를 유혹할 수 있을까요. 유머 만점.

Ethan Hawke ...  Writer (segment "Yvan Attal")
Maggie Q ... Girl (segment "Yvan At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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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와이 슌지

애니메이션 음악가인 데이빗(올란도 블룸)은 까다로운 감독에게 시달리다가 늘 감독의 요청을 전달해주는 카미유(크리스티나 리치)의 목소리만 듣고 호감을 갖게 됩니다. 과연 그는 카미유를 만날 수 있을까요?

이와이 감독의 솜씨답게 너무나 일본적이고 아기자기한 이야기. 일본 영화였다면 소심한 남자주인공과 더 소심한 여주인공 때문에 도저히 8분 동안에는 다룰 수 없을 소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Orlando Bloom ...  David (segment "Shunji Iwai")
Christina Ricci ...  Camille (segment "Shunji Iw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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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앨런 휴즈(Allen Hughes)

거스(브래들리 쿠퍼)와 리디아(드리아 드 마테오)는 격정적인 첫 만남 이후 두번째 만남을 앞두고 안절부절못합니다. 첫 만남에서 너무 진도를 많이 나간 후유증. 과연 이들의 두번째 만남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앨런 휴즈의 영화로 제가 본 작품은 잭 더 리퍼 사건을 다룬 조니 뎁 주연의 '프롬 헬'이 있습니다. 이번 영화의 단편들 중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높이 평가하고 싶지 않은 작품입니다.

Bradley Cooper ...  Gus (segment "Allen Hughes")
Drea de Matteo ...  Lydia (segment "Allen 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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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브렛 래트너(Brett Ratner)

졸업무도회(Prom)를 앞두고 여자친구(블레이크 라이블리)에게 차여 버린 고교생(안톤 옐친)에게 동네 약국 아저씨(제임스 칸)가 미녀인 자기 딸(올리비아 실비)의 사진을 보여주며, 무도회 파트너로 데려가 주지 않겠느냐고 물어 옵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죠. 하지만...

'러시 아워' 시리즈의 브랫 래트너답게 유머 감각 넘치는 한폭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최고로 꼽고 싶은 작품입니다.

James Caan ...  Mr. Riccoli (segment "Brett Ratner")
Anton Yelchin ...  Boy in the Park (segment "Brett Ratner")
Olivia Thirlby ...  Actress (segment "Brett Ratner")
Blake Lively ...  Girlfriend (segment "Brett Ratner")


7. 파티 아킨(Fatih Akin)

혼자 사는 고독한 화가(우구르 유셀)는 차이나타운의 단골 약방에서 카운터 소녀(서기)를 보고 설명할 수 없는 그리움을 느낍니다. 결국 그는 그녀를 찾아가고...

독일에서 활동하는 터키계 감독인 파티 아킨은 2004년 '미치고 싶을 때'로 베를린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하며 알려진 감독입니다. 저도 이 양반의 작품을 본 적이 없으므로 설명은 패스. 평이하지만 가슴에 남는 이야기입니다.

Burt Young ...  Landlord (segment "Fatih Akin")
Ugur Yücel ...  Painter (segment "Fatih Akin")
Qi Shu ...  Chinatown Girl (segment "Fatih A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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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셰카르 카푸르(Shekhar Kapur)

왕년의 오페라 프리마돈나 이사벨(줄리 크리스티)이 뉴욕의 호텔에 투숙합니다. 불구의 웨이터 제이콥(샤이아 라보프)은 아직도 미모를 잃지 않은 노부인의 친절에 정성스러운 봉사로 대답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백미로 꼽는 단편. 대부분의 시간을 이끌어가는 두 배우의 호흡이 절묘합니다. 특히 라보프는 이 작품으로 그동안 액션 위주의 영화에서 쌓아온 '찧고 까부는 배우'의 이미지를 싹 벗어 버리고 깊은 눈빛의 매력적인 배우로 탈바꿈합니다. 유체이탈(?)과 동양적인 여운이 일품.

Shia LaBeouf ...  Jacob (segment "Shekhar Kapur")
John Hurt ...  Waiter (segment "Shekhar Kapur")
Julie Christie ...  Isabelle (segment "Shekhar Ka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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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나탈리 포트만

중남미계의 성인 남자(카를로스 아코스타)는 백인 소녀(테일러 기어)를 데리고 하루 종일 공원서 놉니다. 아이를 데리고 놀러 나온 주변 부인들로부터 "정말 아이 잘 본다"고 칭찬까지 받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나탈리 포트만의 감독 데뷔작. 깔끔하면서도 긴 여운이 느껴집니다. 단지 마지막 1분 정도는 사족이라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Amy Raudenbush ...  Mom #1 (segment "Natalie Portman")
Carlos Acosta ...  Dante (segment "Natalie Portman")
Cesar De León ...  Dominican (segment "Natalie Portman")
Taylor Geare ...  Teya (segment "Natalie Por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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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반 아탈

이반 아탈의 작품 뒷부분. 한 레스토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중년 남자(크리스 쿠퍼)에게 매력적인 중년 여인(로빈 라이트 펜)이 접근해 자극적인 유혹의 말을 던집니다.

3-1에 비하면 좀 떨어집니다. 평이한 수준.

Robin Wright Penn ...  Anna (segment "Yvan Attal")
Chris Cooper ...  Alex (segment "Yvan At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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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조슈아 마스턴(Joshua Marston)

80은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엘라이 월락)와 할머니(클로리스 리크먼)가 철지난 유원지 코니 아일랜드로 나들이를 나갑니다. 서로에 대한 잔소리가 끊이지를 않지만...

조슈아 마스턴 감독은 2004년 콜럼비아의 마약 현실을 다룬 '기품있는 마리아(Maria Full of Grace, 한글 제목이 저런 모양입니다만 아무래도 '은총 가득한 성모 마리아'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로 데뷔해 주목받은 신예입니다. 이 영화가 두번째라는군요.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많은 분들에게 감명을 준 듯 합니다만, 사실 저는 이 할아버지가 일라이 월락이라는 걸 알고 기절할 뻔 했습니다. 일라이 월락이 누구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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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무법자 3부작 중 마지막 편, '석양에 돌아오다(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몇몇 분들이 '석양의 무법자'라는 잘못된 제목을 쓰고 있는 바로 그 영화입니다)'를 보신 분들은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영화에서 '못난 놈(the Ugly)'역을 맡은 배우가 일라이 월락입니다. (심지어 저는 '로맨틱 홀리데이'도 봤는데 그때는 몰랐습니다. 이럴수가...)

Eli Wallach ...  Abe (segment "Joshua Marston")
Cloris Leachman ...  Mitzie (segment "Joshua Marston")
Gary Cherkassky ...  Skater Punk (segment "Joshua Mar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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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10편, 이반 아탈의 갈라진 에피소드를 각각의 영화로 치면 11편의 영화 소개가 모두 끝났습니다. 감독이 11명이라는 건 여기에다 각각의 에피소드 사이에 진행되는 막간 에피소드들을 감독한 렌들 볼스마이어(Randall Balsmeyer)를 합해서 얘기하는 것이더군요.

취향 차이가 있겠지만 저는 대단히 만족스럽게 봤습니다. 혹시라도 이 영화를 보러 가실 생각이 있다면, '뉴욕-꿈꾸는 모든 사랑이 이뤄진다'와 같은 싸구려 홍보 문구에 현혹되지 마시고, 그냥 신기한 볼거리 하나 구경한다는 생각으로 극장 의자에 앉으시기 바랍니다. 그럼 뜻밖의 종합선물세트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P.S. 다른 분들은 어떤 에피소드를 가장 마음에 들어 하실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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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Inglorious Basterds, 이하 '바스터즈')'을 보면서 설마, 설마...? 하신 분들이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결정타가 터졌을 때, 뭔가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당연히 '선덕여왕'이 떠올랐습니다.

현대사든 고대사든, 뭔가 실제 일어난 일을 토대로 서사물(영화든, 드라마든, 연극이든, 뮤지컬이든)을 만들 때에 작가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는 여러 갈래로 갈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개중에는 '바스터즈...' 처럼 아예 역사를 싹 무시하고 자기가 갈 방향으로 가 버리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막 달리기는 마찬가지인데, '선덕여왕'에 대해서도 아무 말도 해선 안되는 걸까요? 창작자의 권리는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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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참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 영어의 욕으로 사용되는 저 단어의 스펠링은 basterd가 아니라 bastard죠. 그러니까 한국식으로 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개새끼들'이 아니라 '개세끼들'인 겁니다. 단순히 1977년 영화와 구별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장난을 치고 싶었다는 의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바스터즈'는 엄청나게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 긴 이야기 때문에 간략하게 요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대한 정돈해서 얘기하자면 이렇습니다. (물론 최대한 모르고 보시는게 더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별로 원치 않는 분들은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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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군의 알도 레인 중위(브래드 피트)는 유태인으로만 구성된 8명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독일 점령지역 프랑스에서 독일군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는 특공대를 운영합니다.

나치에 의해 온 가족을 잃고 파리에서 신분을 감추고 살고 있는 쇼샤나(멜라니 로랑)는 우여곡절 끝에 극장을 운영하게 되는데, 어쩌다 그 극장에서 나치 고위 장성들과 핵심 요인들이 모인 가운데 나치만을 위한 영화 시사회를 갖게 됩니다. 쇼샤나는 이를 복수의 기회로 삼으려 합니다.

한편 영국군도 영화전문가 윌콕스 소위(마이클 파스빈더)를 보내 이 극장을 폭파하는 특수 작전을 수행하려 합니다. SS의 수사전문가 란다 대령(크리스토퍼 월츠, 발츠라고 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은 이들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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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란티노의 스타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펄프 픽션'에 열광하고, '킬 빌'에 환호했겠지만 안 그런 분들도 많았을 겁니다. 물론 그의 작품에도 높낮이는 있습니다. 개인적으론 '포 룸'이나 '데스 프루프'는 그닥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역시 그의 작품 중 최고봉은 '펄프 픽션'과 '저수지의 개들'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편입니다.

이번 영화는 그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듯 합니다. 뭣보다 첫 장면부터 타란티노 특유의 장난기가 뿜어나오죠. 영화 '알라모'의 주제가였던 'Green Leaves of Summer'가 깔리는 가운데 지평선 멀리서 농가를 향해 달려오는 독일군의 오토바이가 보입니다. 오토바이가 아니라 몇필의 말이었다면, 그냥 그대로 마카로니 웨스턴의 도입부일 겁니다.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이나 후세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찾는 건 바보 짓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런 액션 없이 대화만으로 서스펜스를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그의 솜씨에서, 진정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을 느끼는 것은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특히 영화 도입부, 란다 대령이 프랑스인 농부를 신문하는 장면에서 서서히 높아져가는 긴장감과 공포는 마치 관객이 직접 심문당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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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만으로 사람 긴장시키기' 기법은 영화 여기저기서 빛을 발합니다. 그리고 그 대화 끝에는, 제법 똑똑하다고 자부하는 관객을 바보로 만드는 기상천외의 결말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기대는 더욱 부풀어 오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잔인하다고는 하지만 그 잔인함이 영화의 재미를 해치지는 않습니다.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데이빗 보위의 'Cat People'과 온 사방에 깔려 있는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들을 배경으로 온 관객들을 롤러코스터에 올려놓고 주무르는 타란티노의 솜씨는 이번에도 절대 실망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소감은 여기까지. P.S. 이후는 나머지는 제목에 대한 설명입니다. 스포일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감상을 위해선 건너 뛰셔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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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최고의 배우라면 역시 란다 대령 역의 크리스토퍼 발츠를 꼽아야겠지만, 브래드 피트의 연기도 만만찮게 빛을 발합니다. 벤자민 버튼으로서도 훌륭하다고 칭찬할 만 했지만, 역시 그가 가장 빛날 때는 건달 비슷한 계열의 연기를 보여줄 때입니다.

그 외의 배우들은 - 어쩌면 타란티노의 장난감 노릇을 한 - 뭐라 말할 부분이 그리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무튼 그들도 자기 몫은 다 했습니다. 배우로서든, 장난감으로서든. (이젠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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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 영화의 결말입니다. 영화를 마무리하면서 타란티노는 지금껏 관객이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멍- 하니 저 세상으로 날려버립니다. 마치 영화 속에서 '곰 유태인' 역을 맡은 일라이 로스의 방망이로 후려치듯 말입니다.

이런 결말에 환호하면서 '선덕여왕'이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고 짜증내는 건 이율배반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부터, 그리고 '타란티노'라는 브랜드에서부터 이 영화는 '자, 지금부터 우리는 무슨 짓이든 맘대로, 막 나갈테니 알아서 하게'라고 선언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영화에서의 일탈은 그 자체로 관객을 즐겁게 하는 한 방식인 셈입니다. 이 영화가 현실을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건 '맨 인 블랙'을 보면서 외계인이 어디 있냐고 성을 내는 거나 마찬가지죠.

하지만 '선덕여왕'은 나름 진지한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굳이 홈페이지로 찾아가서 '신라의 혼을 되살리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나름 숭고한 기획의도를 다시 찾아 읽지 않아도, 이 드라마가 '화랑들이 등장하는 만화같은 풍경'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지만, 제가 '선덕여왕'이 잘못 가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선덕여왕'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얘기는 나중에 따로 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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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작품성 있는 영화'라고 칭찬받는 작품들을 '영화제용 영화'라며 아예 취급을 안 하던 마나님이 "'파주' 언제 개봉하지? '파주' 좀 보러 가자"고 할 때부터 '아, 이 영화가 한 건 했나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주'에 대한 평 중에는 좀 유치하다 싶은 '아름다운 불륜' 류의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형부와 처제라는 '공식 불장난 우려 관계'를 바탕으로 진짜 인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영화 한 편이 만들어졌다는 데에는 별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박찬옥 감독이 사람의 내면을 파고 들 때 '확 깨게 만드는' 솜씨는 이미 '질투는 나의 힘'에서 익히 본 바가 있었습니다만,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는 서우의 영화입니다. '미쓰 홍당무'에 이어 이 배우에게 두번째로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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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도시로의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파주. 3년 전 '대학 입학금을 들고 인도로 날아갔던' 은모(서우)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형부 중식(이선균)을 다시 만나지만 둘 사이에는 편안하지 않은 긴장이 흐릅니다.

8년 전, 중식은 구속된 운동권 선배의 집에 은신하고 있다가 선배의 아내이자 자신의 첫사랑인 자영(김보경)과 불륜에 이르게 되지만 산 같은 죄책감만 안은 채 서울을 떠나 파주로 도피합니다. 거기서 공부방을 운영하다 반 아이들 중 하나인 은모의 언니, 은수(서이영)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짜여진 세 사람의 가족의 행로는 순탄치 않습니다. 은모의 가출과 은수의 죽음, 그리고 형부와 처제가 함께 사는 삶. 그런 곡절을 안고 돌아온 은모는 언니가 죽은 이유를 궁금해 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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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 속에서 설악산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오른쪽 등산로 밖으로 난 길 아래가 천길 낭떠러지일지도 모른다는 스릴도 짜릿했지만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슬며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이웃 봉우리를 보면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천년 전쯤으로 와 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파주'는 짙은 안개 속에서 은모가 파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안개 속'은 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살을 맞대고 살아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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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는 DIY 영화입니다. 완성품을 기대했던 관객들은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민한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완성시키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됩니다. 이 영화를 제대로 보려면 계속 생각해야 합니다. 대체 왜 중식은 저기서 혼자 술을 마시는 걸까. 대체 왜 은모는 사과는 안 하고 엉뚱하게 저 말을 하는 걸까. 그리고 많은 관객들이 '생뚱맞다'고 하는 중식의 '고백(?)'은 왜 나오는 걸까.

얼마 전 '선덕여왕'을 보다가 '대체 저 캐릭터들은 자신에게 카메라가 오지 않을 때에는 서로 대화도 안 하는 거냐'고 한탄한 적이 있습니다. 극이 실제 인물들의 삶을 비쳐주는 거라면, 모든 캐릭터는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삽니다. 극은 그중 가장 중요한 장면들을 돌아다니면서 비추죠. 즉 모든 캐릭터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 때에도 뭔가 행동하고, 생각하고, 시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덕여왕'의 캐릭터들은 카메라 앞에서만 모든 의미있는 행동을 하고, 카메라 밖에서는 관 속으로 들어가 누워 있는 듯 할 때가 있습니다. 카메라가 비치지 않을 때에는 전원이 꺼진 인형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죠.

하지만 '파주'의 등장인물들은 카메라의 프레임 밖에서 너무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래서 카메라에 비치지 않은 부분은 관객이 추측하고, 영화의 빈 자리를 관객이 스스로의 판단으로 메꿔야 합니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관객이라면 질색을 할 수도 있습니다만, 제대로 따라 간 관객이라면 이 영화의 '이야기'가 수백 페이지 분량의 텍스트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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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귀찮은 관객에게 이 영화는 생뚱맞음의 연속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작업 자체가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뚫고 들어가는 모험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날라리가 어느날 갑자기 종교철학이니 사회복지학이니 하는게 어처구니없다'고 하기도 하고, 이 영화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이 '너무 뜬금없어서 어처구니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런 관객들에게 '파주'의 뜬금없음과, 재벌집 아들인 남자 주인공이 가난한 집 출신의 여주인공에게 따귀 몇대 맞고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 하면서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식의 '뜬금없음'은 전혀 다르다는 걸 이해하길 바라는 게 무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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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의 가장 큰 공은 배우들에게 돌려야 할 듯 합니다. 어찌 보면 운명(?)에 질질 끌려 다니는 비운의 남자 주인공 역을 이선균이 연기하지 않았더라면, 이만한 반향을 일으키는 건 쉽지 않았을 듯 합니다. 아내 역의 심이영과 평생의 로망인 선배 역의 김보경(무슨 특별출연이 이렇게 비중이 크단 말입니까^^) 역시 기대 이상의 호연입니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힘은 서우에게서 나옵니다.

서우가 연기한 은모는 그 자체로 불가해한 캐릭터입니다. 흔히 기성세대가 10대들을 보고 "대체 요즘 너희 세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니?"라고 말할 때, 이 말은 그저 '한심하다'는 뜻을 넘어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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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모는 비논리와 즉흥성, 즉물성의 상징 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생각과 행동이 흔히 엇나가기 마련인 사춘기의 방황과 속단이 숨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성의 눈으로 볼 때에는 외계인처럼 보이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캐릭터를 서우가 연기하면서, 관객들은 '그래. 저런 캐릭터가 실제로도 있었지', 혹은 '나도 저런 때가 있었어'라고 납득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불가해한 캐릭터를 납득이 가게 만드는 힘, 아마 이런게 배우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부분에서의 서우는 어딘가 '와호장룡'에서의 장자이를 연상시키게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연기를 만들어 낸 것이 배우 혼자만의 힘일 리는 없습니다. 박찬옥 감독의 디렉션이 서우와 맞아 떨어진 결과일 겁니다. 그런 면에서 서우의 앞날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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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민들의 투쟁 장면과, 중식이 운동권 출신의 활동가라는 점이 이 영화를 짐짓 오해하게 만들 여지가 있지만 정작 이 영화의 고갱이와는 별 상관 없는 부분들입니다.

플롯상에는 몇가지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그리고 이런 부분은 제가 평소 엄청나게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주'의 울림은 영화를 본 다음날까지 지속됩니다. 겉으로 잔잔하게 보이는 수면 속에서 엄청난 격랑이 일고 있는 광경을 감지해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파주'는 절대 심심한 영화가 아닙니다. 어쩌면 올해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가 될거란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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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늦은 밤이었지만 객석은 꽤 많이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오는 관객들 중 상당수가 '낚였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위 화보를 비롯해 '안된다고 하니까 더 갖고 싶어졌다'류의 홍보 문구를 생각하면 그 분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네. 형부와 처제의 짜릿하고 자극적인 불륜을 기대하신 분이라면 그냥 집에서 비슷한 제목의 야동을 보시는게 나을 듯 합니다.

P.S.2. 은모가 중식에게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거에요. 어떤 의미에요?'라고 물을 때 중식은 '젊었을 땐 ....했고, 지금은 잘 모르겠어. 계속 일이 생겨'라고 대답합니다. 중식은 영화 속에서 66년생. 박 감독은 68년생입니다. 말하자면 '불혹에 맞은 미혹'인 셈입니다. 문득 80년대생 젊은이들이 이 영화의 함의를 모두 읽어내길 기대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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