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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는 세 사람의 대통령이 나옵니다. 평생을 민주화에 힘쓴 고령의 김정호 대통령(이순재), 정치인 2세인 젊은 엘리트 출신 차지욱 대통령(장동건), 그리고 대법원 판사와 법무장관을 역임한 한경자 대통령(고두심)까지 세 사람입니다.

세 사람 모두 모델이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합니다만(굳이 말하자면 세번째 대통령의 모델 선정은 너무 노골적입니다), 아예 생각 않는게 보기에 편합니다. 주된 평가는 잔잔하고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인데, 정치 드라마건 로맨틱 코미디건 드라마의 강도는 매우 약합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아주 옅은 커피라서 숭늉인지 커피인지 잘 분간이 안 가는데 어쨌든 커피라니까 커피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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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 대통령 모두 개인적인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노년의 김대통령은 이미 잘 알려진대로 244억원짜리 로또에 당첨되면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아직 젊은 홀아비 차대통령은 연애 문제와 장기 이식 문제로 갈등에 빠집니다. 마지막으로 성공한 여성 한대통령은 자신에 비해 영 수준이 떨어지고 사고뭉치인 남편이 고민거리입니다.

2. 또 세 대통령은 동시에, 우리 사회가 봉착하고 있는 세 가지 문제 해결을 놓고 고민합니다. 김대통령은 과거사 청산과 갈등 해결, 차대통령은 대일-대북관계, 한대통령은 땅값과 부동산 투기 해결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런 이중의 구조는 장진 감독의 작품에서 흔히 나타납니다. 1은 코미디적인 장치와 구성을 말하고, 2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작가로서 감독의 목소리입니다. 1을 위주로 한 즐거운 코미디인가 하고 있으면 어느새 등장인물들은 2를 얘기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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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은 1 만을 갖고 깜빡 넘어가게 웃기는 영화를 그리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경우든 2를 추가하는 것이 그의 취향이자 전략이죠. 이 전략엔 장점이 있습니다. 1이 다소 부실하더라도 2는 영화가 지나치게 싸구려(?)로 보이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의 영화를 볼 때 진짜 원하는 것은 1인데도, 자신들이 이 영화를 보고 만족하는 것은 2 때문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이런 관객들의 다소 이율배반적인 속내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장진 감독은 순수하게 1로만 구성된 작품을 내놓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의 영화에서 2는 1이 확 살아나는데 방해로 작용하곤 합니다. 그가 직접 감독을 맡지 않은 '웰컴 투 동막골'에서는 1과 2의 비율이 잘 어우러졌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2가 1을 짓누르고 일어서곤 합니다. 아, 물론 2가 자취를 감췄던 '아는 여자'가 호평을 받은 것도 우연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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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프레지던트'에서도 2는 자꾸 1을 위태롭게 합니다. 세 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이순재가 대통령을 연기하는 첫 부분입니다. 아무래도 이순재라는 탁월한 연기자의 능력 덕분에 2의 딱딱함이 잘 감싸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리 유연한 연기자가 아닌 장동건에게 공이 넘어오면 더 이상 영화는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합니다. 장동건에게 맡겨진 2는 지나치게 딱딱해서, 그 속을 파내고 1을 넣을 자리를 만들기가 힘들어집니다. 그저 길을 이탈하지 않고 계속 굴러가는 게 다행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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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장동건이 자기 하나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배우는 아닙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최악의 파트너를 만났습니다. 신은 한채영에게 눈부신 미모와 세계 굴지의 S라인을 내려줬지만 안타깝게도 연기력까지 주지는 않았죠. 긴장을 풀어 줄 둘 사이의 관계에서는 아무런 화학적 반응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흔히 어떤 연기자들을 보고 "제발 국어 책좀 그만 읽으라"고 불평을 하곤 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그조차도 아쉽습니다. 국어책을 또박또박 읽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마지막의 한경자 대통령은 가장 불리한 입장에 놓였습니다. 누가 봐도 2는 분명한데, 이 경우에는 1도 2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안은 분명 코미디의 재료가 되어야 할텐데 한대통령의 경우에는 1이 되어야 할 것이 '사회 안에서 성공한 여성이 겪어야 할, 내조와 외조의 문제'라는 2가 돼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코미디는 사라지고, 세번째 에피소드에서 관객은 시계를 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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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이 영화는 '잔잔하긴 하지만 그냥 볼만한 영화'라는 정도의 평은 얻을 만 합니다. 그런데 실제 본 사람들의 평이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살짝 실망 쪽으로 기우는 건 왜일까요. 그건 이 영화를 보러 간 관객의 대략 2/3 정도는 '대통령 장동건의 가슴뛰는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즉, 홍보단계에서 이 영화는 마이클 더글러스의 '대통령의 연인'이나 '러브 액추얼리'에서 영국 총리 휴 그랜트의 구애 스토리 같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영화인 양 포장됐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영화에서 그런 걸 기대할 수는 없더군요. 어떤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장동건과 한채영 사이에선 사실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갑돌이와 갑순이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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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아무리 첫번째 에피소드가 설득력이 있어도 뭔가 성공을 기대하긴 힘들어집니다. 그렇다고 영화에 뚜렷하게 나쁘게 볼만한 대목이 없기 때문에 굳이 악평을 들을 일도 없습니다. 어쨌든 '착하디 착한 영화'인 건 분명합니다.

발을 구르며 '야, 이거 정말 재미있는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기에 이 영화는 살짝 부족합니다. 대다수 관객들의 평이 '너무 밋밋하지 않아?'와 '장동건 잘생겼더라' 사이에서 맴도는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장동건이 나온 '박중훈 쇼'도 재미있게 보신 분이 있었을테니 이렇게 잘라 말하는 건 좀 무리일 수도 있겠군요. 그냥 '절반은 성공'이라고 하는게 낫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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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최근 현대가 대통령전용차를 납품하기 전까지 한국 대통령은 벤츠 방탄차를 써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BMW가 등장하더군요. 이것도 P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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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2주만 제한 상영된다는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This is it)'을 첫날 보고 왔습니다. 2주라도 시간이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궁금해서 첫날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디스 이즈 잇'은 잭슨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기획하고 있던 공연의 이름이자, 그가 준비하고 있던 신곡의 제목입니다. 그리고 영화 '디스 이즈 잇'은 그가 준비하던 공연의 리허설 광경, 아주 짧은 인터뷰 등으로 구성된 그의 생애 마지막 날들을 담은 작품입니다. 다큐멘터리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그를 성형수술과 메이크업, 친자 여부와 사소한 스캔들로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디스 이즈 잇'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대중의 관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가운데서도 그는 결코 멈춰 서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를 잘 아는 분들이라면 '디스 이즈 잇'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과연 그는 그의 생애 마지막 공연(그의 죽음 이전에 이미 그는 이번 공연이 자신의 '은퇴 공연'이라고 공언했죠)을 어떻게 준비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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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 이즈 잇'의 부제는 '마치 당신이 그를 전에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Like you've never seen him before)'입니다. 이 말은 그만치 '디스 이즈 잇'이 우리가 사전에 본 그의 공연과는 다른 공연이라는 것을 가리켜주고 있습니다.

일단 '디스 이즈 잇'의 예고편부터.



잭슨이 오프닝으로 애용하는 'Wanna be startin somethin'에서 잭슨의 장례식 때 엔딩 곡으로 사용된 'Man in the Mirror'까지 14곡의 음악이 등장하고, 각각의 노래들을 잭슨이 마지막 무대에서 어떻게 활용하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영화 '디스 이즈 잇'의 내용입니다. 유일한 신곡, 'This is it'은 엔딩 크레딧이 나올 때 배경 음악으로 사용됩니다.

14곡의 노래들 중 그 전까지 그닥 사용되지 않았던 노래들은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모두 MJ의 정수를 고른 히트곡들입니다. 귀에 익을 대로 익은 노래들이죠. 하지만 이 노래들을 활용하는 방식은 모두 전과 같지 않습니다. 무대에서 이 노래들을 토대로 보여주는 퍼포먼스 역시 연구를 거듭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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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잭슨 자신에게서도 느껴집니다. 이 영상에서 잭슨은 그리 큰 몸짓을 하지 않습니다. 10년 전처럼 과격한 움직임은 하지 않는 반면, 노래에는 좀 더 신경을 쓰는 듯한 모습이더군요.

물론 이건 신체 나이와 무관하게 이 영상이 리허설 광경을 촬영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가 공개되기 전, 잭슨의 가족들은 일제히 이 영화의 공개에 반대했습니다. 특히 누나 라토야 잭슨은 "마이클은 항상 자신이 한 최고의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어느 누구도 리허설에서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춤추지 않는다. 따라서 마이클은 이 영화의 일반 공개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디스 이즈 잇'을 볼 때 감안해야 할 부분입니다.)

(가족의 반대 가운데에는 "그 영화에 나오는 건 마이클이 아니라 누군가가 연기한 대역일 뿐"이라는 아버지 조 잭슨의 발언도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느낌에 따르면... 원래 헛소리 잘 하기로 소문난 이 아저씨는 이제 제발 좀 가만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잭슨의 퍼포먼스는 여전히 눈부십니다. 사실 '은퇴 공연'이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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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연의 연출자이자 마이클 잭슨과 함께 공동 대표였던 케니 오르테가는 영화 '하이 스쿨 뮤지컬'의 감독이자 안무가입니다. 그리고 '디스 이즈 잇'을 보면 그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력자들의 힘은 20세기의 스타 MJ를 어떻게 21세기에 적응시킬까에 대한 많은 연구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이를테면 백댄서 10여명으로 만들어 낸 이런 '디지털 백만대군'의 영상 삽입 등이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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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잭슨은 공연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노련한 제작자의 모습으로 변신하곤 합니다. "이런 부분에서 관객이 이렇게 박수를 칠거야.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해."

본래 잭슨은 '디스 이즈 잇' 공연을 10회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공연장인 런던 O2 아레나는 대략 2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으니 20만 정도의 관객에게 자신의 마지막 퍼포먼스를 보여주려 한 것이죠. 하지만 그 즉시 몰려든 관객의 수요를 보고 진행 측은 공연을 순식간에 50회로 늘렸습니다. 물론 이 50회도 개표 즉시 매진됐죠. 한 도시에서 한 공연으로 100만 관객을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는 얘깁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영상으로 일부분만 볼 수 있었던 '디스 이즈 잇'은 그런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이 되었을 거라는 걸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쉽습니다. 아마 케니 오르테가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이 영상을 기를 쓰고 공개하려 한 것은 - 물론 돈 문제도 있겠지만 - 이런 아쉬움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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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스 이즈 잇'으로 가장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잭슨의 백 보컬이었던 주디스 힐을 꼽게 될 듯 합니다. 힐은 이미 지난번 잭슨의 장례식 때 '힐 더 월드'를 불러 세계인의 주목을 끈 바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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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힐은 영화에서도 'I just can't stop loving you'를 잭슨과 함께 부르는 영예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잭슨은 원곡의 시다 가렛을 비롯해 수많은 여가수들과 이 곡을 불렀지만 힐의 가창은 단연 최고 수준으로 꼽힐 만 하더군요. 특히 이 노래의 끝부분에서 잭슨과 힐이 보여주는 1분 가량의 애들립은 두 보컬의 수준을 가감 없이 보여줬습니다. 진짜 가수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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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2주만의 제한 상영이란 이 영상을 담은 dvd 등의 상품이 곧 나올 것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극장에 걸어 두면 그냥 관객들이 올(한국은 몰라도 최소한 미국에서는) 이런 자료를 2주만 틀고 폐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될 일이고, 2주간의 제한 상영은 이 영상물의 수익 모델이 극장 공개가 아니라 '영구 보관을 위한 판매' 쪽으로 맞춰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도 이 영상을 굳이 보실 분들이라면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숨을 죽이며 보는 쪽을 좋아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노래나 기가 막힌 퍼포먼스가 나올 때마다 하! 하고 탄성을 터뜨리면서 말이죠. 어떤 상영관에서는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도 터져나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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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란 안 훙 감독의 '나는 비와 함께 간다(I come with the rain)'을 보고 왔습니다. 캐스팅 소식을 듣고 제목은 저런데 왜 비는 안 나오고 이병헌이 나오느냐는 농담을 한 게 엊그제같은데 벌써 국내에 공개되다니, 세월 참 빠릅니다.

트란 감독은 잘 알려진대로 90년대 '시클로'와 '그린 파파야 향기'로 국제적인 주목을 끈 감독입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8년만에 이번 작품, '나는 비와 함께 간다'를 내놨고, 2010년 개봉 예정으로 현재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90년대의 트란 안 훙이 눈길을 끈 것은 베트남이라는 아열대 공간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끈끈함이 감도는 화면 안을 꽉 채우던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영상과, 순수와 현실의 대립이라는 소재가 잘 어우러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1990년대에 머물러 있다면 과연 지금도 그게 통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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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 '나는 비와...'는 액션 느와르의 외피를 쓰고 있습니다. 당연히 총도 몇발 발사되죠. 일단 줄거리입니다.

경찰 출신인 탐정 클라인(조시 하트넷)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세계적인 갑부('세계 최대 제약회사의 주인'이란 설명이 붙여집니다)로부터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서 실종된 아들 시타오(기무라 타쿠야)를 찾아 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시타오의 행적을 쫓아 홍콩까지 온 클라인은 홍콩 경찰인 친구 멩지(여문락)를 찾아 도움을 청하는데 이 과정에서 악질인 갱단 보스 수동포(이병헌)를 알게 됩니다. 어떤 것도 무참하게 살해해 버리는 잔학한 범죄자인 수동포에게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는 여인인 릴리(트란 누 엔 케)가 있습니다.

영화의 줄거리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분들은 여기까지만 보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제목과 관련된 얘기는 영화 내용을 건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꼭 보시겠다는 분들은, 나머지 이야기도 영화를 본 뒤에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볼까 말까 하시는 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할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트란 감독은 '시클로'를 만들고 나서 13년 이상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걸작들은 시대를 넘어 서는 힘을 갖지만, 어떤 작품들은 그 시대가 지나면 용도폐기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 '나는 비와...'는 시대를 넘어서는 작품이라고 보기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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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형사인 탐정과 현직 강력계 형사, 그리고 악당 보스와 미녀가 나오는 이 작품은 전형적인 느와르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트란 안 훙인 이상, 관객의 위장을 쥐어 짜는 긴장감을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졸음을 이길 수 있다면 다행입니다.

이 영화를 특이하게 보이게 하는 것은 이른바 구세주 캐릭터입니다. 영화 속에서 기무라 타쿠야가 연기하는 시타오는 사람의 상처나 병을 치유하는 신비로운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신 치료의 방법은 좀 독특합니다. 이미 알려진 치료사들과는 달리 시타오는 타인의 병이나 상처를 자신에게로 흡수해 그 사람을 낫게 합니다. 자연히 그 사람이 겪고 있던 고통은 그대로 시타오의 차지가 되죠. 시타오는 불사신의 몸이라 죽지는 않지만, 대신 상처가 나을 때까지 끔찍한 고통을 대신 겪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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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대신 겪는다는 것은 '타인의 죄를 대신 속죄한다'는 것을 곧바로 연상시킵니다. 그렇습니다. 시타오는 누가 보기에도 예수의 재림이었던 겁니다. 이 비유는 대단히 노골적입니다. 아름다운 창녀에서 그의 추종자로 변신하는 릴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아니면 누구일까 싶습니다. 시타오는 자신을 죽이러 온 수동포를 살인자 바라바를 대하듯 합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는 비와...'는 이 추악한 욕망과 범죄의 시대에 잘못 찾아온 재림 예수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기에 곁다리로 붙은 것은 클라인의 기억 속에서 계속 클라인을 괴롭히는 과거의 연쇄 살인마 이야기입니다. 이 연쇄살인범에 대한 기억은 클라인의 뇌리에 박혀서 그로 하여금 선과 악의 실체를 혼동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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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설정이 이제는 너무나도 흔해빠진 것이란 점입니다. 일찌기 니체가 말한(어느 책인지는 모릅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 본다(Whoever fights monsters should see to it that in the process he does not become a monster. And when you look long into an abyss, the abyss also looks into you)'는 경구를 연상시키는 스토리는 더 이상 울궈먹을 게 없을 정도로 진부한 얘기가 돼 버렸습니다. 심지어 드라마 '아이리스'에도 나옵니다.

트란 안 훙 감독이 이 영화를 약 10년 전쯤 내놨더라면 아마도 이보다는 훨씬 우호적인 평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트란 감독이 '시클로'의 세계에 만족하고 있는 사이 세계는 2009년이 되어 버렸습니다. 유명 배우들을 끌어들이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이런 진부한 영화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성찰에 관객들이 탄복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 듯 합니다. 차기작인 '노르웨이의 숲'은 오히려 통째로 회고적인 작품이니 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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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 영화에서 기무라 타쿠야는 - 나름대로 열연하긴 했지만 - 이 영화에서 '2046'에 이어 또 한번 굴욕을 겪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사라곤 서너마디 뿐인, 그리고 나머지 장면에서는 모두 괴성을 지르며 굴러다니는 연기로 일관해야 하는 이런 캐릭터를 과연 일본 최고의 톱스타가 해야 하는지는 정말 의문입니다.

도대체 왜 기무라가 이런 역할을 수락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일본에서 한 영화라고는 '무사의 체통'과 '히어로' 정도가 전부인 기무라가 뭔가 좀 배우로서의 새로운 돌파구나 해외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이 영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건 납득할 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캐릭터로 대체 뭘 얻을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엑스트라로 전락했던 '2046'의 경험에서 별로 배운 것이 없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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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 첫 할리우드 진출작인 '지아이조'에서 주목을 끌 수 있었던 것은 작품이나 감독보다 캐릭터의 힘이 컸다고 보아야 합니다. 문제는 감독이 뭘 보고 그런 캐릭터를 맡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이병헌은 기무라 다쿠야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장점을 갖고 있죠. 영어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의 영어 대사를 들어 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영어 실력이 배우로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자국어로 연기하는 배우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도 당연히 아닙니다(꼭 이런 헛소리를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 노파심에서 덧붙이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굳이 '해외 진출'이라는 걸 원한다면, 아무래도 영어 실력은 필수일 듯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괴성을 지르는 벙어리 연기 외에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교훈 중 하나라고나 할까요. 해외 진출을 꿈꾸고 있는 연예인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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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제목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성경 구절이 아닐까 했는데 딱 맞는 구절이 없더군요. 이사야 55장이나 에제키엘(에스겔) 13장에 뭔가 끌어다 붙일 수 있는 구절이 있긴 합니다만... 딱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역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As the rain and the snow come down from heaven, and do not return to it without watering the earth and making it bud and flourish, so that it yields seed for the sower and bread for the eater, so is my word that goes out from my mouth: It will not return to me empty, but will accomplish what I desire and achieve the purpose for which I sent it (이사야 55:10,11 - 해석은 공동번역)


블로그 방문의 완성은 한방의 추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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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보면서 중간에 몇번 웃었습니다. 이 영화는 명성황후 민씨와 그 호위무사 사이의 멜로드라마입니다. 또한 무려 90억원의 순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에픽이기도 합니다. 순 제작비가 90억원이라는 것은 홍보와 마케팅 비용을 포함하면 실제 제작비는 그보다 훨씬 올라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가끔 어떤 영화는 돈을 잔뜩 들이고도 도대체 어디에 제작비가 들었을까 보는 이를 궁금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90억원이 들어간 영화로 보일까요? 네. 어디에 돈이 들었는지 확실히 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 돈이 제대로 쓰일 곳에 쓰였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좀 궁색해집니다.

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의 출발점은 지난 2002년 드라마 '명성황후'의 주제가로 쓰였던 조수미의 '나 가거든' 뮤직비디오입니다. 당시엔 정준호가 훈련대장 홍계훈에서 모티브를 따 온 호위무사로, 이미연이 명성황후 역으로 나왔죠. 불행히도 영화는 그 뮤직비디오 한편만큼의 여운을 남기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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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아버지를 잃은 소녀 자영(수애)은 대원군(천호진)의 간택을 받고 아버지와의 추억이 있는 바닷가를 찾아갑니다. 이때 늪을 헤치고 물길을 타준 사공 무명(조승우)은 수애를 보고 첫눈에 반해버립니다. 그러다 자영은 반대파의 기습을 받고, 무명이 가까스로 자영을 구해내지만 자영은 대원군이 보낸 뇌전(최재영)의 경호를 받으며 사라집니다.

어떻게든 자영의 곁에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은 무명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 궁을 지키는 무예별감이 되어 호위를 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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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이 영화는 실제 시간으로 본다면 1866년 자영이 입궁할때부터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물론 아직 대한제국 선포 전이므로 사망시까지는 그냥 민비입니다)가 살해당할 때까지의 29년간을 커버합니다. 자영은 1851년생이므로 만 15세때부터 44세까지의 세월이죠. 아무 생각 없이 '불꽃처럼 나비처럼' 영화를 보신 분들은 길어야 3-4년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시기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시각에서 다룬 드라마는 꽤 여러편 있었습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마지막으로 다뤄진 것이 2002년이었으니 그 내용을 대략 기억하는 분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시려면 구한말 역사에 대한 지식은 아예 버리고 시작하는게 좋습니다. 아니, 최소한의 '건전한 상식'을 조금이라도 남기면 영화 감상에 아주 막대한 지장이 옵니다.

이후의 내용에는, 저는 전혀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역사라고는 20년 전 초등학교때 배운 뒤로는 단 한번도 되새김질 한 적 없는 분들에게는 스포일러일 수도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맨 아래, P.S로 건너 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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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유지하고 있는 역사적 발판이라고는 '(1) 대원군은 고종의 아버지고, 자영은 고종의 아내다 (2) 중간에 임오군란(1882)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자영은 죽을 위기를 넘긴다 (3) 을미년(1895년) 명성황후는 일본 공사 미우라가 보낸 낭인들에게 참살당한다', 이 세가지 정도입니다. 나머지 것들은 모두 무시해도 좋습니다.

그 밖의 설정과 구성은 여러가지로 실소를 자아냅니다. 그 극치는 임오군란에서 모티브를 얻은 듯 한 대원군의 경복궁 진공(?)입니다. 대원군이 백주 대낮에 수천명의 군병을 이끌고 광화문을 향해 6조 앞 대로를 진격하고, 광화문과 근정전 앞의 궁내가 수비 병력으로 가득 차 있는 장면은 한국사에서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는 장면입니다. 한마디로 '황후화'나 '야연' 같은 중국식 에픽의 영향을 받은 기상천외의 유치한 장면일 뿐입니다.

그밖에도 헤아리자면 사흘 밤낮이 모자랄 정도지만 그냥 이 정도로만 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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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하면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제가 살짝 비꼬고 있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이 영화가 조선의 명성황후가 아니라 오로라제국의 별나라 여왕과 호위대장의 이야기래도 좋습니다. 문제는 이 영화의 내러티브 수준입니다.

전반부의 스토리는 요약하자면 '스토커 조승우와 인기를 즐기는 수애여왕'입니다. 낮에는 뱃사공, 밤에는 살인청부업자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던 무명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자유분방하고 씩씩한 미녀 자영에게 반나절만에 홀딱 빠져버립니다.

생전 연애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무명은 자기 페이스대로 스토킹에다 납치까지, 정상적인 연애 감정에서는 있어선 안될 행위들을 마구 저지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를 따끔하게 혼내고 잘라 버려야 할 자영양은 은근히 그의 마음 속 불꽃에 땔감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정작 제목대로라면 자영이 불꽃이고, 그 불꽃에 너무 겁없이 다가간 무명이 나비겠지만 이 전개 과정을 보면 누가 불꽃이고 누가 나비인지 불분명합니다. 둘 다 너무나 무모하고 무책임합니다. (아, 사랑이란 원래 그런 거라구요?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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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남편에 대한 애정 따위는 없지만 나라를 구할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 왕비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는 자영과 '난 그런 건 모르니 그냥 어디로 둘이 훌훌 떠나면 안되겠니'의 무명 사이는 끝없이 그냥 평행선을 탑니다. 여기에 '그냥 똑똑한 것 같아서 호감이 갔는데 알고 보니 내 마누라였고, 다른 놈이 좋아하는 듯 하니 기분나빠서 내거라는 걸 분명히 해야겠다'는 고종까지 합세해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의 멜로드라마에서 한몫을 합니다.

결국 도를 넘어선 무명은 주제를 잊고 엄한 남편과 아내의 잠자리까지 질투하기 시작합니다(뭐 따지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시기에 고종과 자영은 이미 다섯 자녀(모두 어려서 잃고 뒷날 순종이 되는 세자만 생존)를 낳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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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설명해서 그렇지만, 문제는 영화를 봐도 이런 황당무계한 전개를 뒷받침해 주는 감정의 디테일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한마디로 '납득이 가는 전개'의 실종입니다. 조승우나 수애 급의 배우들이 거기에 불만이 없었던 걸 보면 아마도 찍어 놓기는 한 7시간 분량을 찍어 둔 듯 하지만 7시간짜리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공간은 어디에도 없죠.

아예 처음부터 대본이 이 수준이었다면 조승우가 이 역할을 맡았을지도 궁금하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조승우가 출연한 작품들 중 이 정도로 극중 인물의 감정이 제멋대로에다 요령부득인 작품은 없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좋은 작품이 있고 좋은 배우가 있지, 배우는 잘했는데 작품은 엉망이라는게 말이 되느냐'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무능한 연출가도 - 혹은 연출가가 무능할수록 - 초절정 명배우가 한달 고민해서 한 연기를 학예회 수준으로 추락시킬 수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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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흥행 성과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등급을 보니 15세 이상 관람가더군요. 과연 15세가 넘은 분들 중에도 이 영화를 즐기실 수 있는 분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일 듯 합니다. 물론 제 주변 분들 중에도 '나쁘지 않다'는 분들이 몇분 있긴 했습니다. 제 경우엔 그냥 뮤직비디오는 뮤직비디오로 감상할 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P.S.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 이 영화의 미술이며 복식은 대단히 훌륭합니다. 한마디로 화면은 참 화려하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90억원 쓴 태가 확실히 납니다. 특히 수애의 광팬이라면, '수애에게 한복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는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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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 내곁에'를 볼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현대 의학으로 고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소재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장애나 병을 다룬 영화 중에서도 '나의 왼발'이나 '블랙' 처럼 인간승리의 드라마도 아니고, '러브 스토리'처럼 멜로드라마의 소재로 죽을 병 - 불치의 병이 사용된 경우도 아니고, '병과 환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영화에 선뜻 눈길이 가지 않았던 겁니다.

예상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시사회를 지켜 본 한 지인은 "왜 박진표 감독이 처음에 권상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려 했는지 알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그 개인의 생각이고, 이유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잘 알려진 얘기지만 본래 김명민이 이 역할을 맡기 전에 권상우가 주인공으로 낙점된 적이 있었죠. 그리고 나서 곡절 끝에 권상우가 하차하고 주인공이 김명민으로 결정되자 많은 사람들은 '전화위복(?)'이라며 이 영화 제작사에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도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도 어렴풋이 지인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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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게릭병이 어느 정도 진척되어 휠체어 신세가 된 종우(김명민)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어린 시절 알고 지냈던 장례지도사 지수(하지원)를 만납니다. 그 자리에서 지수에게 프로포즈하는 종우.

하지만 이미 끝이 정해져 있는 게임이라 종우는 점점 죽음을 향해 가고, 두 사람은 서로 열렬히 사랑하지만 경제적 위기, 오해, 불신, 갈등이 찾아옵니다.

줄거리를 정리하려니 정말 정리할 게 없는 줄거리입니다. 이미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고 있는 남자와 헌신적으로 그를 사랑하는 여자 이야기'라는 전제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소재의 영화를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영화의 방향과 전개과정은 약간의 상상력만 발휘하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단 '줄거리의 진행 방향에 대한 궁금증'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걸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나 연출자가 박진표 감독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박감독은 이미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에이즈 걸린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남자 이야기'라는 역시 끝이 다 보이는 소재로, 그리고 '유괴범은 목소리만 들려줬을 뿐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세상이 다 아는 미결의 미스테리로 두 편의 히트작을 만든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치 박진표 감독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감정, 가장 기초적인 정서를 뒤흔드는 데 있어 오케스트라 앞에 선 명지휘자의 솜씨를 줄곧 발휘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약간 다른 느낌이 듭니다. '너는 내 운명'에서 주인공은 분명 절망적인 사랑을 하는 두 남녀였고, '그놈 목소리'의 주인공은 아이를 잃은 절박한 부모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내사랑 내곁에'의 주인공은 왠지 인물이 아니라 루게릭 병이라는 이름을 가진 병이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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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이라면 이건 제 잘못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제작에 착수한 이후 모든 홍보의 포인트는 '김명민의 감량'에 맞춰졌습니다. 즉 다른 모든 것보다 김명민이 엄청나게 말라 죽어가는 루게릭병 환자의 모습을 얼마나 성실하고, 숭고하고, 제대로 재현하느냐에 모든 관심이 쏟아져 버린 겁니다. 당연히 영화를 보는 사람도 다른 모든 조건에 앞서 김명민의 몸 상태에 눈길이 쏠립니다.

그런데 이런 선입관 때문인지, 영화는 두 남녀의 관계를 조명하기 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쫓아가는 데 몰두합니다(아니면 감독의 편집 의도와는 달리 관객의 눈에는 뭘 만들든 '환자의 상태'만 보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온전히 루게릭병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냐 하면 절대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의 스탠스는 약간 어정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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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변명을 한 김에 조금 더 하자면, 이 영화가 '너는 내 운명'과 '그놈 목소리'의 마법을 이어가려 했다면 분명 루게릭병보다는 두 남녀 사이의 사랑이 좀 더 밀도있게 그려져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 제 눈에만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두 주인공 김명민과 하지원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화학적인 반응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김명민 쪽을 보자면, 누가 봐도 '고시 준비를 열심히 하다가 뜻하지 않게 병마로 쓰러졌지만 억울해서라도 그냥 죽을 수는 없다며 분투하고 있는 남자'라는 설정에 수긍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지원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두 번 결혼에 실패하고 그래도 열심히 살다가 곧 죽을 남자를 사랑하게 된 여자역을 연기하고 있는 하지원'이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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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배우 하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캐릭터 설정 때부터의 무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여주인공은 배경 설정에 비해 너무 밝고 씩씩하고 명랑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고, 나름대로 생사에 대한 생각과 인생의 의미에 대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는 인물로 그려지는 대목이 있는 반면 대부분의 장면에서는 그냥 발랄하고 청순한 20대 초반 여성의 느낌이 그대로 풍겨나옵니다. 이런 두가지 느낌이 하나로 융화되지 못하고 그때 그때 다른 사람처럼 등장합니다.

이렇게 불안한 캐릭터인데다, 김명민과 단 둘이 있는 장면에서도 어쩐지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그닥 느껴지질 않습니다. 김명민-하지원 커플보다는 오히려 남능미 부부나 임하룡 부부의 사연이 훨씬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특히 '그 순간'을 놓쳐 버린 임하룡이 자책하며 쓰러지는 장면에선 절로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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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애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결국 실컷 울고 싶은 관객이 기댈 곳은 그냥 보기만 해도 가슴아픈 김명민의 참상(;)입니다. 하지만 냉정을 되찾고 보면, 정작 김명민은 앙상한 갈비뼈로만 연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목소리를 잃은 다음에도 끊임없이 뭔가 말하기 위해 눈으로 연기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도 압도적인 '몸'의 연기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건강이 위험할 정도로 살을 빼는' 결단은 확실히 아무나 내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만, 그 '몸'의 상태 때문에 명배우와 보통 배우의 격차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렇게 '몸'에 초점이 맞춰질 거였다면 김명민 같은 당대의 명배우가 과연 필요했을까 하는게 제 생각입니다. 김명민 팬들에겐 좀 불측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영화가 지금처럼 바짝 말라 죽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을 통해 관객을 감동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영화였다면, 좀 더 젊고 잘생긴 꽃미남 배우가 했어도 큰 문제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오히려 권상우나 송승헌, 소지섭이 이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이었다면 더 많은 감동을 주지 않았을까요.

다른 말로 하자면, 이 역할에 김명민을 기용한 것은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이 투입된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따로 얘기를 좀 더 해 볼 생각입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의 열연으로 김명민은 몇 개의 트로피를 더 받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 영화 전체를 구원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어쨌든 온 세상이 모두 자신들을 위한 무대와 설정으로 보이는, 한창 뜨거운 연인들은 보실만 합니다. 하지만 솔로부대는... 자제하시는게 나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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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제작발표회때 하지원의 스타일이 어쩐지 낯이 익더군요. ...혹 라키시스 코스프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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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장진영이라는 배우는 어떤 배우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인에 대한 예의에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장진영은 단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였습니다. 이 대목에서, 이 표현을 '였습니다'라고 써야 한다는게 참 안타깝습니다. 연기력으로, 미모로 장진영과 경쟁할 만한 30대 여배우는 감히 '없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오래 전, 1997년쯤의 일이군요. 지금은 사라진 현대방송(HBS)의 '연예특급'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고인은 탤런트 김승환씨와 함께 MC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도 그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고인을 처음 알게 된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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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장진영은 미스코리아 출신(1993년 충남 진)이었고 미모와 몸매로 주목을 끌었지만 아주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장진영의 소속사는 스타들의 집결지였죠. 이승연 장동건 김지수가 한창 빛을 발하고 있었고 원빈과 윤손하가 발군의 신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뒤늦게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는 양정아와 장진영이 있었습니다.

스타군단의 막내...란 쉽게 스타들의 후광으로 떠오를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얼마나 욕심을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당시 소속사 대표의 말은 "갖출 건 다 갖췄지만 본인이 그리 열심히 하려는 의욕이 없는 것 같다. 스스로 하려는 뜻이 없으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쪽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미모와 몸매는 눈이 번쩍 뜨일 정도였지만 이 대표의 예상대로 장진영은 쉽게 스타덤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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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장진영의 첫 모습으로 기억하는 것이 1999년의 '순풍산부인과'지만 그 전에도 장진영의 출연작은 여러 편 있었습니다. 1997년 출연작인 '내안의 천사'때 OST 표지(위 사진)에서도 아랫줄 오른쪽 장진영을 못 알아 보실 분도 있을 겁니다. '마음이 고와야지'같은 드라마에선 극중 비중도 꽤 컸습니다. 단지 히트작이 없었을 뿐이죠.
 
농담처럼 베스트극장 '그와 함께 타이타닉을 보다'가 대표작이라고 말하던 무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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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장간호사 역할은 이미 연예계에서는 '유망주라기엔 너무 세월이 흘렀고,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엔 너무 지명도가 떨어지는' 장진영이 하기엔 좀 아슬아슬한 역이었습니다.

어쨌든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배우가 하기엔 너무 작은 역이었죠. 말하자면 백의종군인 셈입니다. 아마도 장진영이 '어디 한번 열심히 해 보자'고 각오를 다진 것이 '순풍산부인과'를 전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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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계의 손짓에 응한 장진영은 '반칙왕'에서 송강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관장 딸(요즘 드라마 '드림'의 손담비 역에 가깝군요) 역으로, '싸이렌'에서 신현준의 애인 역으로 출연합니다. '반칙왕'은 좀 주목을 끌었지만 '싸이렌'에선 영화도, 장진영의 역할도 전혀 주목을 끌지 못했습니다. 그냥 '주인공도 애인이 있어야겠지?'라는 데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캐릭터였죠.

하지만 전혀 의기소침하지 않은 채, 천연덕스럽게 "다음부턴 좀 비중이 큰 작품을 골라야겠다"고 말하던 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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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장진영은 마침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지금껏 개인적으로 한국 공포영화 사상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윤종찬 감독의 '소름'에서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열연을 펼칩니다. '소름'은 철거 직전의 낡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저주'라는 것의 본질을 파고드는 걸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걸작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장진영과 김명민이라는 두 주인공의 역할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아무도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고 생각지 않았던 장진영으로선 자신의 가능성을 이 한편으로 증명해 보인 셈이죠. 영화는 그리 히트하지 못했지만 김명민과 장진영, 두 배우의 이름은 한국 연예계에서 '더 비싸지기 전에 빨리 잡아야 할' 명단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첫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습니다.

사실 그리 흥행작도 아닌 영화에서, 그리 연기력이 검증되지 않은 배우에게 이런 상이 주어진다는 건 파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와 장진영이 던진 파문이 컸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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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꽃 향기'가 조금 아쉬움을 남긴 화제작이었다면 '싱글즈'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자주인공으로도 장진영을 능가하는 배우는 없다는 확신을 주는 흥행작이었습니다.

김주혁과 장진영이라는 배우의 절묘한 호흡이 '한국에서도 이런 장르가 성공할 수 있다'는 모범사례를 만들었죠. 장진영은 이 작품으로 두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한손에 거머쥐었습니다. 장진영으로서는 '귀여운 여자'의 이미지로도 변신 가능하다는 걸 증명하는 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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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5년 '청연'의 흥행 실패, 2006년 '연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이하 연애참)'의 부진이 좀 안타까웠습니다. 특히 '연애참'은 장진영이 자존심을 건 열연을 펼쳤지만 제작편수 증가와 한국영화 인플레이션의 틈바구니에서 관객 동원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자존심만 강한, 실속이라곤 없는 고참 호스테스 역을 맡은 장진영의 연기가 돋보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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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 수상 발표 때, "감독님에게 서운했고, (김)승우 오빠에게 서운했다"며 눈물을 흘리던 장진영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그리고는 2007년작 '로비스트'가 있었고, 그 이후로 장진영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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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와 데뷔 연도에 비해 장진영이 실제로 주목받은 기간은 매우 짧은 편입니다. 관객 동원으로 봐도 장진영은 천만 관객은 커녕 300만 관객을 동원한 작품도 갖지 못한 배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였다'고 말하는 것은 그저 고인에 대한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장진영은 대형 스크린을 혼자 채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였습니다. 또 활동기간이 훨씬 더 긴 배우들 가운데서도 이렇게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발군의 적응력을 보인 사례는 현역 여배우들 가운데선 찾아보기 힘듭니다. 지금까지 해낸 기록만으로도 대단한 배우임을 확인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고인이 조금만 더 일찍, 연기로 인생의 승부를 걸었더라면 아마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장진영보다 훨씬 더 큰 배우로 남았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씩씩하고 밝은 성격에 두주불사의 친화력을 자랑하던 이 배우가 아직 한창 나이에 이렇게 팬들의 곁을 떠난 건 그래서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때 병세가 회복되어 바깥나들이도 할 수 있다던 그가 어느새 저 세상 사람이 되어 있다니, 이렇게 글로 조상하는 일도, 참 부질없이 느껴집니다.

부디 저 세상에서도 더욱 빛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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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재'. 역시 이 노래겠죠.



P.S. 출생 연도가 최종 확인되어 1972년으로 정정합니다. 오해를 끼쳐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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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기대작 중 하나였던 마이클 만 감독의 '퍼블릭 에너미'를 보고 왔습니다. 조니 뎁과 크리스천 베일이 주연하는 갱스터 무비라는데 안 보고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죠. 이름 값으로 놓고 보면 왕년에 만 감독이 '히트'에서 이뤄냈던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경연 이후 최강의 진검 승부라고 부를 만 합니다.

이 영화는 1930년대,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로 잘 알려진 남녀 커플 강도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와 함께 가장 유명한 범죄자였던 존 딜린저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1930년대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대공황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이면서 미국의 FBI가 오늘날의 명성을 차지하기 시작한 시기, 그리고 제임스 캐그니 주연의 오리지널 영화 '퍼블릭 에너미'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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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강도 존 딜린저(조니 뎁)는 단정한 용모와 세련된 옷차림, 그리고 여자에겐 손을 대지 않고 은행을 털 때에도 저금하러 온 일반 고객의 지갑은 건드리지 않는 독특한 스타일로 팝스타 못잖은 명성을 누립니다. 그런 그는 어느날 클럽에서 미모의 빌리(마리옹 꼬띠야르)를 보고 한눈에 반합니다. 결국 딜린저와 빌리는 연인이 됩니다.

한편 쉴새없는 딜린저의 발호로 곤경에 몰린 FBI 국장 후버(존 크루덥)는 딜린저 못잖게 유명한 갱인 프리티보이를 사살한 명수사관 퍼기스(크리스찬 베일)를 FBI 시카고 지부장으로 임명하고 딜린저 체포의 전권을 맡깁니다. 일반 경찰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해 낼 때 FBI라는 조직의 앞날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후버의 승부수였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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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렌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라는 새로운 스타를 내놓으며 70년대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예로 들었지만 딜린저를 소재로 한 영화도 한두편이 아닙니다. 한국에 비디오로 나왔던 영화만도 '델린저'와 '전설의 대도 딜린저' 등이 있습니다. 두 편 모두 딜린저와 퍼기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도 너무나 유명한 얘기지만, 혹시라도 이걸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테니 그 얘기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클 만은 1930년대 매스컴에 의해 '로빈 후드'로 묘사됐던 독특한 성격의 은행 강도를 다루는 데 있어, 역시 평소의 그답게, 다소 혼란스러운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개인적으로 마이클 만은 참 희한한, 극단에서 극단을 오가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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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뉴스 프로그램 PD 출신답게 냉정하면서도 관찰자의 시점에 남아 있는 연출을 즐기는 듯 하지만 어느 한 순간 격렬한 신파에 휘말리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결말은 산으로 가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스카 노미네이트작인 '인사이더'가 그의 작품 중 최고라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의 공연'이라는 간판이 달린 '히트'일 겁니다.

그가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열정을 보여줄 때 '인사이더'나 윌 스미스 주연의 '알리'같은 영화가 나옵니다(단 '알리'는 너무 지루하기 때문에 비추). 하지만 그가 오우삼 못잖은 닭살 느와르 감독의 본색을 드러낼 때에는 '히트'나 '콜래트럴', 그리고 이번 '퍼블릭 에너미'같은 영화가 나오죠. 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최초의 작품인 '킵'이나 '라스트 모히칸' 같은 영화들은 갱들이 나오는 작품은 아니지만 후자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한때 그는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그가 갖고 있는 두 가지 세계의 화해를 꾀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때문에 차기작에는 더욱 관심이 쏠렸지만 '퍼블릭 에너미'는 형식면에서의 높은 완성도에 비해 유난히 돋보이는 세계관의 부재 덕분에 불균형이 더욱 눈에 뜨는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단어가 좀 어렵다고 생각하실 분들을 위해 좀 편안한 말로 풀어 설명하자면, 때깔과 만듦새는 매우 그럴 듯 하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좀 의아한 영화라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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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에너미'가 그럴 듯하게 '있어 보이는' 것은 마이클 만이 깔아 놓은 알리바이가 꽤 그럴싸하기 때문입니다. 만은 딜린저를 시대를 잘못 태어난 낭만주의자이며, 그를 '퍼블릭 에너미'로 만든 것은 FBI 국장 에드가 후버라는 식의 서술 말입니다. 만은 영화 곳곳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인기 없는 인물인 에드가 후버가 진짜 악역이라는 식의 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조차도 그리 성공적이지는 않은 듯 합니다.

게다가 관객들은 '퍼블릭 에너미'를 볼 때 '1930년대 미국 갱의 역사'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영화 속의 사건들은 그냥 만 감독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재배치되어 있습니다. '퍼블릭 에너미'는 존 딜린저를 애인인 아나 프리셰트의 구출을 위해 목숨을 거는 순정남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많은 기록들은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그와 함께 있었던 폴리 해밀턴과도 연인 관계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딜린저와 동시대의 갱들인 프리티보이 플로이드와 베이비페이스 넬슨은 모두 딜린저보다 오래 살았습니다.

그런 사소한 변동이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이 영화는 겉으로 포장된 것 만큼 '담담하고 감정을 배제한 채 묘사된 진짜 느와르의 시대'를 담고 있지 않다는 얘깁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겉멋에 치중해 알맹이는 하나 없는 화려한 한 폭의 그림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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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에서 남는 것은 상황 판단을 못하는 과대망상증 환자인 은행강도 존 딜린저와 한때 그의 치명적인 매력(...그런데 그것은 딜린저의 매력이라기보단 조니 뎁의 매력으로 보입니다)에 빠져 인생을 망친 아나 프레셰트의 덧없는 사랑 이야기 뿐입니다. 크리스찬 베일에겐 미안하지만 이 영화에서 '때로 자기 환멸에 빠지는 고독한 법의 집행자' 이미지는 그냥 겉돌다 사라질 뿐입니다.

너무나 캐스팅이 화려한 탓에 늘 실망하면서도 꼭 보게 되는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들. 그에게 후한 점수를 주게 되는 영화는 '인사이더'와 '마이애미 바이스' 정도입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부동심을 지켜 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길 기도해 봅니다. 아무튼 제 의견을 묻는다면, 보러 가시라고 추천하기 힘든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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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딜린저의 실제 얼굴과 영화 속 조니 뎁입니다. 뭐 그리 닮은 편은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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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균 감독의 '해운대'의 천만 관객 동원이 기정사실이 됐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다섯번째의 위업이고, 과연 어디까지 더 갈지가 궁금합니다.

사람 힘만으론 안되고 하늘이 도와야 가능하다는 천만 관객 동원, 대체 원인이 무엇일까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윤제균 감독의 힘, 설경구와 하지원, 그리고 이대호(^^)의 열연, 김인권과 이민기의 탁월한 재능 발휘, 해운대라는 친숙한 환경이 사라진 폐혀의 모습, 등등은 이미 수없이 거론됐던 부분들입니다.

하지만 '해운대'라는 영화 바깥에서 천만 관객 동원을 지원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바로 외부 세력들입니다. 과연 누가 '해운대'를 외부에서 도와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정리해보겠습니다. 물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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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발 금융위기

참 멀리 간 얘기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대체 금융위기가 영화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하셨던 분들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그게 그게 아니라는 걸 아실수 있을 겁니다.

1991년 '터미네이터2'가 최초로 제작비 1억달러 선을 돌파한 이후 거의 20년, 이제 여름 시즌을 겨냥한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의 예산은 평균 1억달러를 넘긴 지 오래입니다. 1억5천-2억달러 선의 영화도 한 시즌에 두세편씩 개봉되는게 보통이죠. 한국 돈으로 는 2000억원에서 5000억원까지의 돈이 왔다 갔다 합니다.

아무리 할리우드라지만 이런 돈을 쌓아놓고 장사하는 영화사는 없습니다. 대개 영화 제작 단계에서 제작비 투자를 받죠.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월 스트리트를 싹 쓸어버린 금융위기는 블럭버스터 투자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는 올해 여름, 할리우드의 이렇다 할 블럭버스터가 최소한으로 축소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지난해와의 차이는 다음 항목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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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트랜스포머 2

2억 달러가 들어간 대작 '트랜스포머 2'는 현재까지 미국 내에서만 약 4억달러 가까운 돈을 긁어 모았습니다. 지난 6월24일 국내에서 개봉한 뒤에도 740만 관객을 쓸어모았죠. 전 세계적으로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될 전망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해운대'의 흥행에 도움이 됐다는 걸까요? 위 항목과 연계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불황이라도 될 영화에 투자가 끊기는 법은 없습니다. 금융위기일수록 확실한 곳에 투자가 몰리는 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올해, 2년만에 마이클 베이가 감독하는 '트랜스포머'의 속편이 나온다는 사실은 다른 영화에 대한 투자가 쑥 들어가게 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올해는 대자본 영화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극명합니다. 바로 1년 전 여름 시즌 할리우드의 공세는 대단했습니다. '월E'와 '쿵푸팬더' 등 애니메이션 대작을 비롯해 '다크나이트' '핸콕' '원티드' '아이언맨' '헬보이2' '마마미아' '미이라3' '인크레더블 헐크', 그리고 '인디애나 존스 4'가 줄줄이 개봉했습니다. 5월 말 이후 개봉 일정에서 대혼전이 벌어졌습니다. 지난해의 한국 영화들인 '님은 먼곳에' '놈놈놈' '눈눈이이' 등은 이런 대작들과 힘겨운 정면승부를 펼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는 상대적으로 헐렁했습니다. '트랜스포머 2'와 앞서 개봉한 '터미네이터4',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와 '지.아이.조' 정도를 빼면 이렇다할 대작이 보이질 않습니다. 일찌감치 개봉한 '천사와 악마'를 합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미국 국내 흥행을 살펴봐도 대작들이 사라진 결과 한 여름의 황금 시즌에 '행오버(Hangover)'같은 3500만달러짜리 소품(^^)이 2주씩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2억6000만달러를 벌어들이는 기현상까지 벌어지더군요. 이런 영화들은 국내 개봉 일정도 불분명합니다.

이렇게 해서 금융위기와 '트랜스포머 2'의 합작으로 '해운대'는 할리우드의 대작 블록버스터가 사라진 여름을 맞았습니다. '트랜스포머 2'는 경쟁작들을 사전에 봉쇄하면서 이 '해운대'의 천만 관객에 일등 공신 역할을 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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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해리 포터

그 몇 안되는 블럭버스터 가운데 '해운대'의 가장 강력한 위협으로 꼽힌 것이 바로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입니다.

하지만 시사회가 끝난 뒤 '해운대' 쪽은 쾌재를 불렀다고 전해집니다. 반응이 완전히 썰렁했기 때문이죠. 물론 해외에서의 해리 포터는 여전히 위협적입니다. 시리즈 6편인 이런 작품도 세계적으로는 4억달러 이상의 돈을 걷어들이며 순항중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개봉 초기 악평이 쏟아진 가운데 전편들에 비교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너무나 음울하고, 특별히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소설에서도 6부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맹점이라고 보는게 일반적입니다) 때문에 '해리 포터' 시리즈의 골수 팬들 외에는 대부분 실망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해운대'는 '트랜스포머 2'를 피하고 '해리포터'가 예상보다 약했던 덕분에 견제 세력이 사라진 고삐 풀린 말이었던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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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스 울릭

'해운대'가 개봉을 앞둔 올 상반기, 홍보의 초점은 한스 울릭이라는 시각효과 전문가였습니다. 뉴욕이 빙하기를 맞는 영화 '투모로우', 거슬러 올라가면 '스타워즈' 시리즈에 참가했던 CG의 대가죠. 특히 '퍼펙트 스톰'에서는 대양을 휩쓰는 해일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스 울릭과의 협업 결과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았습니다. 심지어 영화에 참여한 관계자들의 입을 빌어 "할리우드에 비싼 돈 내고 갔는데 정작 배울게 없더라. 괜히 돈만 날린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 결정타가 된 것이 일찍 공개된 예고편이었습니다. 해운대를 휩쓰는 엄청난 해일이 강조된 예고편을 본 순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과장하면 '해운대 망했다'는 소문이 쓰나미처럼 번져갔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제작진이 전면 재편집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죠.

사실 CG는 아무리 좋아도 영화의 성패를 결정하지 못합니다. 이건 세계적인 거장들도 여러 차례 경험한 교훈입니다. 한스 울릭이 만들어 낸 '해운대'의 비주얼은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지만, 이게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물론 아주 나빴다면 그건 치명타였겠죠).

어쨌든 울릭은 '해운대'가 영화의 방향을 CG와 쓰나미 자체가 아니라, 등장하는 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드라마에 맞추게 하는 데 큰 영향을 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가 중심이 되면서 비로서 '해운대'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화가 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뜻하지 않은 기여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긴, 이렇게 쓰고 보니 네가지 요인 중 의도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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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네 팀(?)의 외부 조력자들을 살펴봤습니다. 물론 조건이 갖춰진다고 그냥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윤제균 감독이 관객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었다면 천만 관객이란 꿈에 불과했을 겁니다.

아무튼 최고의 공헌자는 당연히 윤 감독과 직접 영화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네 팀의 조력자들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 영향의 크기라는 건 그냥 웃고 넘어가셔도 될 겁니다. 혹시라도 "영화는 아무것도 아닌데 여건이 좋았다"는 얘기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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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에 할리우드에서 전설의 지존 이소룡의 출연작 리메이크 소식이 속속 도착하고 있습니다. 이소룡이 출연했던 TV 시리즈 '그린 호넷'의 주역으로 권상우가 물망에 올랐다더니 결국 중국의 인기 가수 겸 배우 주걸륜이 이 역할을 따냈습니다.

그와 함께 이소룡의 영화 빅4('사망유희'는 차마 여기에 포함시킬수가 없더군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인 '용쟁호투'의 리메이크에는 이소룡의 역할로 한국의 정지훈이 주목받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주걸륜은 캐스팅 확정이고 비는 검토중이라고 하지만 지금의 단계에서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 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소룡의 리메이크작에서 이소룡 역을 맡는다는 것은 아시아 출신 배우들에게는 더없는 영광이면서 기회인 좋은 조건입니다. '이소룡의 후계자'라는 이름만으로도 대단한 의미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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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9월 8일 처음 방송된 '그린 호넷'은 이소룡이 복면 속의 쿵후 영웅으로 출연했던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서 이소룡이 연기한 카토는 낮에는 평범한 일본인 운전사고 밤에는 악당을 물리치는 가면 영웅이 되는 캐릭터였죠. 이소룡은 '그린 호넷'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 비슷한 시기에 방송되고 있던 아담 웨스트의 TV판 '배트맨'에도 몇 차례 특별출연했습니다.

'그린 호넷'은 꽤 인기를 끌었지만 한 시즌만에 끝났고, 여러 편의 TV 드라마와 영화에 그리 크지 않은 역으로 출연하던 이소룡은 1971년 홍콩으로 와 골든 하베스트의 레이먼드 초 회장과 의기투합, '당산대형'을 만듭니다. 일설에는 이 영화의 히트와 함께 TV 시리즈 '쿵후'의 주역이 자신이 아닌 '백인' 데이비드 캐러딘에게 넘어갔다는 데 대한 분노로 이소룡은 홍콩에 그대로 남아 '정무문'과 '맹룡과강'을 만들며 영화 속에서 백인 거한들을 때려눕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습니다.

단 세편의 영화로 홍콩-중국어권 최고의 스타가 된 이소룡에게 할리우드는 다시 손을 뻗어 왔고, 이렇게 해서 할리우드와 홍콩의 합작으로 '용쟁호투(Enter the Dragon)'이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1973년 7월 이소룡은 의문의 죽음을 맞고, 그의 사망 한달 뒤 미국 전역에서 개봉된 '용쟁호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둡니다.

이렇게 그가 저 세상 사람이 된 뒤에는 생전 촬영했던 일부 필름을 짜깁고 붙여서 '사망유희'라는 영화가 만들어질 정도로 그의 이름은 전설이 됐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당시 이소룡과 닮았다는 이유로 캐스팅된 당룡(唐龍: 김태정)이란 이름의 한국인 배우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역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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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따지고 보면 '그린 호넷'보다는 '용쟁호투' 쪽이 더 끌리는 작품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일단 '그린 호넷'은 당시 시대가 갖고 있던 '허드렛일 하는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깊이 깔려 있는 작품인데다 감독이 '이터널 선샤인'의 미셀 공드리이고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 세스 로건이 주연과 시나리오를 맡았습니다. 원작의 분위기나 감독의 스타일을 볼 때 진지한 액션 영화라기보다는 오히려 코미디로 리메이크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주걸륜의 캐스팅도 비슷한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주걸륜에게서 액션 스타의 이미지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니셜 D'나 '쿵푸덩크'가 있고 '황후화'에서는 무협 액션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주걸륜이 보여준 가장 훌륭한 모습은 피아노를 두드리는 로맨틱 가이의 모습입니다. 그에게서 이소룡의 카리스마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물론, '그린 호넷'의 카토라는 캐릭터 자체가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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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비가 물망에 올라 있다는 '어웨이큰 더 드래곤(Awaken the Dragon)'은 '용쟁호투'의 배경을 그대로 현대로 옮겨 놓았다는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동양인 무술가가 미국 정보기관의 의뢰로 비밀 무술대회에 침투해 범죄조직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내용이죠.

'용쟁호투'는 지금까지도 서구인들이 기억하는 이소룡의 전설을 만든 작품이면서, 그 자체로 미국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용쟁호투'에서 이소룡의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은 이소룡의 후계자로 불릴 만한 자격을 갖춘다는 뜻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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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까짓게 뭐라고'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이소룡은 그냥 흔히 치부하는 '무술 액션 잘 하는 중국인 배우'의 범주를 넘어 선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한 시대에 있어 동양인 배우의 한계를 넘고, 백인들에게 아시아인의 새로운 이미지를 남긴 사람이기도 합니다.

현대 중국어권 영화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성룡과 주성치, 이연걸이 모두 '정무문', 혹은 '신 정무문'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통해 이소룡의 역할을 연기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들은 모두 '제 2의 이소룡'이 되기를 기원했죠. 물론 세 사람 모두 각기 다른 스타일로 최고 스타의 자리에 올랐지만 본래의 이소룡이 갖고 있던 강인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셋 중에서는 이연걸이 가장 가까이 갔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근본부터 스타일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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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종합적으로 볼 때 두 작품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용쟁호투'의 리메이크 쪽입니다. 단지 우려되는 것은 '그린 호넷' 쪽이 유명 감독과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작품인 반면, '어웨이큰 더 드래곤'은 영화 경험이 없는 감독의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만약 비 측에서 '어웨이큰 더 드래곤'에 관심이 있다면 전체 제작비와 공연하는 배우, 전문적인 무술 감독의 기용 등 주변 조건들을 좀 더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닌자 어새신'도 꽤 관심을 모으고 있는 작품인 만큼 후속작을 그보다 못한 영화로 고를 이유는 없을 겁니다.

아무튼 정지훈군이 그냥 '제2의 이소룡' 에서 그치지 않고 '브루스 리의 신화를 계승한 배우'로 각인되길 바랍니다.



'용쟁호투'의 오리지널 예고편입니다.
70년대의 정서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이건 21세기의 이소룡 팬이 다시 편집한 버전.
편집만 다시 했는데도 상당히 새로운 감각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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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스티븐 소머즈 감독의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 (G.I. Joe: The Rise Of Cobra, 2009)'이 할리우드보다 한발 빨리 한국에서 공개됐습니다. 시차를 감안하면 약 사흘 빠른 셈이죠. 이병헌이 연기하는 스톰 섀도우를 마침내 봤습니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을 앞두고 "배역이 스톰 섀도우라는 걸 알고 마음이 놓였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치게 악당으로 묘사된 부분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이어 2연타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근래 한국인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맡은 역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거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듯 합니다.

'지.아이.조'는 대체 어떤 영화고 이병헌은 어떤 역이었을까요? 그리고 왜 이병헌의 선택이 좋았다고 하는 걸까요?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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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무기제조업체인 MARS사의 대표 맥컬렌(크리스토퍼 에클레스턴)은 NATO의 투자를 유치해 수술이나 의료 목적에 사용되던 미세 로봇 나노마이트를 무기로 개발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나노마이트가 장착된 탄두를 이송하던 듀크(채닝 테이텀)는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습격을 받는데, 습격자 중 하나가 자신의 애인이었던 애나(시에나 밀러)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습니다. 괴한들이 탄두를 차지하기 직전, 역시 정체불명의 특공대가 나타나 괴한들을 쫓고 탄두를 되찾습니다.

이들의 정체는 초국가적인 정의의(?) 특전부대 G.I.조. 이들의 리더인 호크 장군(데니스 퀘이드)은 탄두 탈취 시도의 배후에 맥컬렌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합니다(영화의 진행으로 보아 그건 의심할 바가 없죠^^). 그리고 맥컬렌은 최강의 닌자 스톰 섀도우(이병헌)를 동원해 탄두를 다시 빼앗을 계획을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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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정도는 이 다음에 진행될 사건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이번 '전쟁의 서막' 편은 앞으로 주구장창 나올 '지.아이.조' 시리즈의 맛뵈기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터지는 사건들은 글자 그대로 잠시도 관객을 쉬게 두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건들과 전투 장면을 보여주면서 결코 적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모두 설명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죠.

비슷한 경우였던 'X맨' 1편의 궤적을 그대로 따라간다는 느낌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X멘' 1편에서 브라이언 싱어가 시도했던 철학적인 고민의 흔적은 싹 사라지고 없다는 점입니다. 'X멘' 시리즈를 지배하고 있는 '선택된 민족', 혹은 인종 차별과 인종 청소에 대한 은유 같은 것은 '지.아이.조'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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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신 자리를 차지한 것은 쉴새 없이 뛰고 달리고, 그러면서도 연애질도 하고, 할말 다 하는 만화적인 주인공들과 엄청난 돈이 투입되어 구현한 만화적 비주얼입니다. 네. '지.아이.조'는 그야말로 '대놓고 활극'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대뇌는 쉬고 있어도 됩니다. 무릎 반사가 가능할 정도만 살아 있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물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보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진행의 연속이지만, 이 영화의 강점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설사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관객이라 하더라도, '두 시간 본 값은 충분히 했다'는 느낌을 갖게 될 겁니다.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G.I.JOE라는 완구-만화-애니메이션의 3종 시리즈가 갖고 있는 위력을 생각하면 쏟아 부은 제작비가 아깝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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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이 연기한 스톰 섀도우는 그 다양한 인물들 가운데서도 꽤 인기있는 캐릭터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캐릭터는 시리즈에 따라 어디서는 G.I.조의 편에서, 다른 쪽에서는 G.I.조의 상대편인 코브라 조직의 일원으로 등장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본래 일본인 캐릭터(이름은 토미 아라시카게)이고, 최고의 기술을 가진 닌자이며, G.I조의 핵심 멤버인 스네이크 아이즈와는 어려서부터 동문수학한 형제 같은 사이라는 설정입니다. 이번 영화에서는 스네이크 아이즈와 '어찌 보면' 철천지 원수의 관계라는 점이 강조됐는데, 앞으로는 변화의 여지가 있을 겁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앞으로는'이라는 말에 의문을 제기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천하의 스톰 섀도우가 이렇게 한번 나오고 말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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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한국의 수많은 배우들이 아시아의 영역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진출을 향해 발을 내딛었습니다. 사실 남자 배우들보다는 여배우들의 경쟁력이 더 뛰어났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남자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캐릭터는 21세기가 된 지금까지도 무술의 달인이나 '무표정한 동양인 암살자' 캐릭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어찌 보면 이병헌이 맡은 스톰 섀도우도 그런 역할의 범주 안에 든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이 영화 안에서 이병헌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에서 한국 배우가 맡았던 어떤 역할보다 비중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물론 '블러드'를 할리우드 영화로 친다면 전지현의 비중이 훨씬 크겠지만, 그 영화와 '지.아이.조'를 비교하는 건 2차대전때의 제로센 전투기와 F-22를 비교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영화에서 이 정도 비중의 캐릭터를 맡는다는 건 결코 그냥 무시할 일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이 역할이 이병헌에게 들어온 것은 행운이지만 이 역할에 전념해서 따낸 것은 이병헌의 탁월한 선택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병헌은 이 작품을 통해 '영어로 연기가 되는 배우'라는 점을 인식시켰습니다. 이번에 함께 일한 스티븐 소머즈가 아닌 다른 감독이나 제작사도 동양인 역할이 있는 영화를 만들 때 염두에 둘 수 있는 배우의 선에 오른 셈이죠. 배우를 설명할 때 "그 왜, '블러드'라는 영화 있었잖아. 그 영화에서...."라고 설명하는 것과 "'G.I조'에서 스톰 섀도우 역으로 나왔던 배우"라고 설명하는 것은 천지 차이죠. 아무튼 이병헌이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어떤 족적을 남길 지, 매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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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이.조-전쟁의 서막'은 똑부러지게 누구라고 할만한 톱스타는 없지만, 알려진 배우들이 꽤 많이 나오는 영화입니다. 일단 설정상 주인공인 채닝 테이텀은 앞날이 크게 기대되는 스타는 아니라는 느낌입니다. 이 배우는 '스텝업' 시리즈를 통해 인기 스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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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미남형 주인공이라기보단 '유주얼 서스펙트'의 가브리엘 번의 젊은 날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10년 뒤에 살아남아 있다면, 주인공보다는 성격파 배우로 변신해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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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나 밀러가 이병헌과 공연했다는 건 참 감동적인 일이기도 하고... 감독이 스티븐 소머즈이다 보니 '미이라' 군단인 브랜든 프레이저와 아놀드 보슬루(바로 '미이라' 역이죠) 등이 그리 큰 비중 없이 얼굴을 비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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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얼굴과 대사가 한번도 공개되지 않은 스네이크 아이즈. 어떤 분은 이 배우의 이름이 레이 파크(Ray Park)라는 이유로 '혹시 또 하나의 한국계 배우가 있는게 아니냐'고 추론하기도 합니다만, 이 배우는 무술 전문 연기자로는 대단히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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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스타워즈 - 에피소드 1'의 다스 몰 역을 맡았던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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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보시는게 불편한 분을 위해서 결론을 내리자면, '지.아이.조 - 전쟁의 서막'은 결코 영화사에 남을 걸작이 아닙니다. 올해의 '수작'으로 꼽기도 좀 모자랍니다. 하지만 시원시원하게 쏟아 붓는 물량을 생각하면 본전 생각이 나는 영화는 결코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등급은 '볼만한 영화'입니다. 아, 물론 뵹헌사마의 팬들에게는 '놓치면 후회할 영화'인게 분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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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스톰 섀도우가 한국인(영화 중간에 나오는 회상 신에서 어린 시절의 스톰 섀도우가 "도둑놈이다!" 등 두 마디의 한국어 대사를 합니다^^)으로 바뀐 것은 이병헌의 영향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아역으로 나오는 태국계 배우에게 직접 한국어 지도까지 했다는군요.

노력이 가상합니다. 그런데 스톰 섀도우가 워낙 독한 악역으로 나오다 보니 바꾸지 말고 그냥 두는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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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스포츠 드라마 '국가대표'는 '이 영화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각색한 것'이라는 자막과 함께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영화는 스키 점프라는 비인기종목에서 어느날 갑자기 세계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한국 대표팀의 이야기를 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아직도 등록선수는 5명뿐이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는 점, 국내 유일의 스키점프대인 무주 스키점프대는 사실상 동계 시즌에는 가동된 적이 없다는 점 등등은 확실히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와 현실이 다른 부분도 꽤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의 속성상, 부분적으로 과장이 있을수밖에 없는 게 정상입니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사실과 같은 부분, 사실과 다른 부분들을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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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국가의 도움 없이 개인이 이뤄낸 성과'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따는 선수들에게 '신성한 의무'와 '어깨를 누르는 책임감'을 강조하던 지나간 시대의 관념에 찬물을 끼얹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죠.

영화 리뷰는 이쪽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각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제작진이 무시하고 싶은 내용은 깔끔하게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의 발전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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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한국 스키점프 대표팀은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가운데 1997년 창단돼 곧바로 1997년 12월 독일 오베르스트도르프 월드컵에 참가해 월드컵 출전권을 따내고, 이듬해 2월의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나가 아슬아슬하게 메달권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처럼 봉고차 지붕에 스키 부츠를 매달고 훈련해서 1년만에 올림픽에 나가 세계 수준의 성적을 낸다는 건 정말 꿈같은 이야기일 뿐입니다. 한마디로 '영화니까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 것이죠.

실제로 한국에 스키점프가 도입된 것은 1991년. 그리고 1994년에는 이미 대표팀이 전지훈련을 간 기록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스키점프의 대명사인 네 명의 선수들, 김흥수(현 코치) 최용직 최흥철 김현기 등은 이미 10대 시절부터 유망주로 발탁돼 육성된 선수들입니다. 한국 스키점프 선수 중 최초로 국제대회 개인성적을 낸 최용직은 1997년 오베르스트도르프 대회에 만 16세의 나이로 참가해 40위를 기록합니다. 그리고 그 이전의 기록은 확실치 않지만, 21세기 들어서는 매년 1-2차례씩 해외 전지훈련을 다녀온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가 2003년 타르비시오 동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로 이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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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흥철, 최용직, 김현기, 강칠구 선수.   사진출처=세계일보

물론 해외 전지훈련을 간다고 해서 호화 훈련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하이원이 실업팀을 창단해 최흥철과 김현기가 입단하기 전까지 이들 국가대표 선수들의 공식 수입은 연봉 38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유니폼이 모자라 기워 입어야 하고, 선수들이 직접 스키 날에 왁스를 입혀야 하는 열악함도 사실입니다. 다만 영화에서 보듯, '국가가 스키점프라는 종목을 버리려 했는데 선수 개개인이 살려냈다'는 식의 기술은 사실과 꽤 거리가 있다는 겁니다.

(오히려 선수들이 개인 생활 유지를 위해 각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는 얘기는 영화에서 생략되어 있더군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체육회를 비롯한 국가 기관에서는 스키 점프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그래도 해외 전지훈련 등의 지원을 했고, 그 결과 도입 12년만에 동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이라는 성과가 나왔습니다. 그로부터 5년 뒤에는 실업팀도 생겼습니다. 비인기 종목의 레벨로 따지면 이보다 못한 종목도 수두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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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보듯 황무지에서 어느날 뚝딱 대표팀이 만들어지고, 그해 겨울에 국제대회에 나가고, 그 이듬해에 올림픽에 나가고...하는 식의 황당무계한 스토리는 오히려 스키 점프 발전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면(선수-지도자 외에 측면에서 지원한 많은 분들이 있을 겁니다) 꽤나 서운한 얘기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에 열정만으로 되는 일은 꽤 제한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런 부분들은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스스로를 구제한 작은 영웅들 이야기'라는 영화의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생략된 것입니다. 물론 전에도 한번 강조했지만 이런 부분들이 오락 영화로서 걸작인 '국가대표'의 가치를 해치지는 않습니다. 다만 어디까지나 영화는 영화일 뿐, 영화를 현실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현실은 현실, 영화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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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으로 하나 끼워넣는 얘기라면, 이들 스키 점프 대표팀 선수 가운데 해외 입양 후 귀국한 선수는 없습니다. 해외에 입양됐던 스키 선수의 뿌리 찾기 이야기는 토비 도슨의 실화에서 따온 것인 듯 합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스키 스타 도슨은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찾아 아버지와 동생을 만났고, 이어 약혼녀와 한국에서 전통 혼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도슨은 이후 골프 선수로 변신, 2007년 이후 각종 대회에 출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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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마지막에 봉구가 점프하기 직전, 키를 재고 방코치가 "키가 크니까 스키 더 긴거 타도 돼"라고 어필하는 장면은 시점의 착각입니다. 현재는 스키 점프 선수가 이용할 수 있는 스키의 길이가 자신의 키의 146%로 제한되어 있지만 이 규정이 생긴 것이 바로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일본이 3개중 2개의 금메달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선수들이 큰 스키를 쓰는 전법으로(영화에도 나오는 얘깁니다) 스키점프에서 강세를 차지했고, 나가노 올림픽 이후 유럽 각국이 이 전략을 차단하기 위해 신장 대비 스키 길이 규정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시에는 없던 규정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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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해운대'때 얘기했지만 예고편만 놓고 봤을 때 올 여름 한국영화 3총사의 기대 순위는 '국가대표', '해운대', '차우' 순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까놓고 보니 '해운대'와 '차우'가 전혀 나쁘지 않았습니다. 대체 왜 예고편을 그렇게밖에 못 만들었나 의아할 지경이더군요. 그리고 그와 함께, 그렇다면 과연 '국가대표'는 어떨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사실 가끔씩, 예고편은 환상적인데 본편은 영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막상 본 영화.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막상 진짜 스키 점프 장면이 시작된 뒤로는 시계 볼 생각도, 영화 끝나고 뭘 할까 생각도, 그 시점까지 영화의 앞부분에서 뭐가 좋았고 뭐가 안 좋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져 버렸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우생순'을 포함해서, '록키'를 포함해서 이렇게 가슴 벅찬 스포츠 신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되새겨보려니 가슴이 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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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그리 벗어나지 않습니다. 미국에 입양돼 주니어 시절 알파인 스키 대표선수까지 지냈던 헌태(하정우)는 어머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어머니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방코치(성동일)의 꼬임에 넘어가 난데없이 대한민국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됩니다.

하지만 방코치가 모아들인 선수들은 오합지졸. 고교시절 약물파동으로 스키 입상을 취소당한 흥철(김동욱)과 그 뒤를 따라다니기만 하던 파파보이 재복(최재환), 그리고 가난이 유죄로 군대를 안 가기 위해 운동을 결심한 칠구(김지석)까지 간신히 4인 1조, 스키점프 단체전에 나갈 수 있는 한 팀이 꾸려집니다.

여기에 방코치의 딸이며 섹시하지만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시한폭탄인 수연(이은성)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훈련은 코믹하게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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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과정은 '쿨 러닝'을 보신 분이라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원지의 폐허에서 사용되지 않는 워터슬라이드를 점프대 대신 이용하기도 하고, 사철 눈이 내리지 않는 한국의 특성상 흘러내리는 물을 대체품으로 이용합니다. 자동차 위에 스키부츠를 고정시키는 위험천만한 장면도 연출됩니다.

마냥 동화 속 이야기같은 '쿨 러닝'과는 달리 이 영화는 '어른들의 세계'에도 한 발을 걸칩니다. 사실 이런 과정이 이야기들에는 점수를 많이 줘 봐야 5점 만점에 3.5점 정도 이상은 주기 힘듭니다. 이야기는 때로 무리한 진행을 보이기도 하고, 의도적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중간에 튀는 듯한 부분도 몇 번 있습니다. 게다가 심각한 장면을 강제로 해소하기 위해 갑작스레 코미디로 전환하는 장면들은 그리 효과적이지도 않을 때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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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 30분,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이들 선수들의 경기 장면은 그동안 약간 위태롭게 보이던 이 영화의 앞부분을 싹 잊게 만들어 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감히 제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한국 영화의 클라이막스 가운데에서 가장 잘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거 '장군의 아들'에서 김두한 박상민이 혼마찌에 단신으로 쳐들어가 벌이던 격투 신 이후로 이렇게 피가 끓어오르는 장면은 처음입니다.

이런 강력한 클라이막스 덕분에 '국가대표'는 올해 한국 영화 가운데 최고의 작품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CG의 도움이 컸겠지만, 수만의 관중 앞에서 펼쳐지는 스키점프의 박력과 정교한 스토리의 배치는 김용화 감독의 역량을 다시 한번 높이 평가하게 해 줍니다. 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 영화의 스키 점프 신은 한국 스포츠 영화, 아니, 한국 영화 전체를 꿰뚫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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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을 보시면 그 감동의 0.1% 정도를 공유하실 수 있게 됩니다.

배우들의 연기로 따지자면 수훈갑은 하정우보다는 김동욱입니다. 물론 하정우가 맡은 캐릭터의 개연성이 좀 부족했다는 점을 먼저 꼽아야겠지만, 아무래도 하정우보다는 김동욱의 영화라는 쪽이 맞을 듯 합니다.

그 밖의 배우들에게선 이들과 비교할만한 비중을 두기 힘듭니다. 특히 이은성이 좀 더 좋은 연기를 보였다면 영화는 한 단계 올라설 수 있었을 겁니다. 여배우 조련에 꽤 뛰어난 걸로 알려진 김용화 감독도 이렇게 손을 들었을 정도면 앞으로 이은성은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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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더욱 볼만하게 만드는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주제가로 쓰인 러브홀릭스의 '버터플라이'입니다. 지난해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하지 못한 점이 안타까웠는데, 이번 기회에 더 많은 사람에게 들려지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사실 '국가대표'는 이게 전부인 영화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얘기하려면 어쩔 수 없이 영화 줄거리의 세세한 부분을 건드리게 됩니다. 그게 싫으신 분들은 아래로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게 좋을 겁니다. 어쨌든 약간 정리해서 얘기하자면, 오락 영화로서 '국가대표'는 강추작입니다. 사소한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라스트의 박진감이 모든 것을 보상해 줍니다.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그럼 나머지는 안 보셔도 될 얘기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제목에 해당되는 부분은 이 아래쪽에 다 있군요.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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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맨 첫 부분. 어머니를 찾아 한국에 온 헌태-바비는 TV의 아침 방송에 나가 사연을 얘기합니다. 헌태가 "함께 입양된 여동생이 결혼해 아기를 낳았는데 너무 귀엽다"고 말하자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다가, 갑자기 방청석이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헌태의 얼굴 뒤 화면에 여동생 가족의 사진이 나오는데 남편이 흑인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헌태는 사람들이 왜 웅성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헌태는 "이 나라가 나를 3천만원에 외국에 팔았어! FUCKING KOREA!"라며 분노를 토로하기도 합니다. 영화 앞부분에서 헌태가 말하는 '우리 나라'는 미국입니다. 또 재복이 임신한 연변 처녀 순덕이와 결혼하겠다고 말하자 재복의 아버지는 "우리집 독자인 놈이 중국년과 결혼을 한다고?"라며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런 일련의 장면들이 보여주려 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한국인들의 이중성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죠. 외국인들로부터 무시당하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면서도 일본을 제외한 여타 아시아 국가 사람들이나 흑인들에 대해서는 경멸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주는 대다수 한국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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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이 영화는 주인공인 스키점프 선수들을 지나치게 사회적인 약자로 몰아가려는 무리한 시도를 계속합니다. 이들에게 '나라'와 '어른'들은 줄곧 거짓말을 하고, 무책임하고, 여차하면 자신들을 버리려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식의 배치가 보여주는 것 역시 자명합니다. '세상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벌떡 일어선' 주인공들을 더욱 영웅적으로 보이게 하려는 시도죠.

하지만 문제는 이런 시도들이 영화 '국가대표'의 발랄한 스텝과 그리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가끔은 이런 부수적인 요소들이 잘 흘러가는 영화에 짐이 되는가 아닌가 아슬아슬할 때도 있습니다. 다행히, 아주 거슬릴 정도는 아닙니다.

김용화 감독이 왜 이 영화에 이런 부수적인 요소를 넣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생각 있어 보이기 위해서'라면 대단한 위험을 감수한 셈입니다. 정말 다행히도 이런 요소들이 영화를 크게 해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보실 분들에게도 그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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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는 개봉 전부터 큰 우려의 대상이 됐던 영화입니다. 당초 올 여름을 겨냥한 한국 영화계의 카드로는 '해운대', '차우', '국가대표'가 있었죠. 이 가운데서도 '해운대'는 한국 영화 사상 초유의 재난 블록버스터로 큰 주목을 끌었습니다.

아무리 CG 기술이 발달했다 한들 관객들의 눈높이 역시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재난 블록버스터란 엔간한 제작비로는 감히 시도하기 힘든 장르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처음 공개된 예고편의 수준은 2년 동안 '해운대'를 기다렸던 관객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대재난이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오가곤 했죠.

하지만 극장에서 개봉된 '해운대'는 이런 사람들의 걱정을 상당 부분 가라앉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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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과 '해운대'의 초기 홍보 방향은 '재난'에 올인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 무렵까지 대중들에게 홍보되는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설경구도, 하지원도, 박중훈도 아닌 '쓰나미'였던 것이죠.

하지만 이건 대단히 위험하고 초보적인 생각입니다. 어떤 재난 영화도 '재난'을 주인공으로 해서 성공한 적은 없습니다. 재난 영화의 고전들인 스티브 맥퀸의 '타워링'이나 진 해크만의 '포세이돈 어드벤처(리메이크 말고 오리지날)'에서 비교적 최근작인 '투모로우'에 이르기까지, 재난영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져야 할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건 제왕 제임스 카메론이 '타이타닉'의 대사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속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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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어떤 재난영화도 재난을 보여주는 걸로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다. 쓰나미가 덮쳐 폐허가 된 파라다이스 호텔이나 씨클라우드 호텔의 모습은 한 몇초 정도 사람들을 '아' 하게 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이 영화가 성공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결국 그 재난에 연루된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어떻게 영화에 녹아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재난'만을 강조한 예고편에 쏟아진 혹평이 본편 영화 '해운대'가 지금의 모습으로 개봉되는 데에는 상당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한 관계자는 "예고편에 대한 반응을 보고 나서 편집 방향이 상당 부분 수정됐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아마도 이때 휴먼 스토리에 대한 부분이 좀 더 강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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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입니다.

2004년, 원양어선을 타고 가다가 쓰나미에 휘말린 만식(설경구)은 같이 타고 있던 연희(하지원) 아버지를 구하지 못하고 늘 마음의 짐을 느낍니다. 2009년. 연희는 해운대에서 낮에는 생선 행상, 밤에는 횟집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고 있고, 이웃 상가 번영회장이 된 만식은 늘 안쓰러운 눈으로 연희를 바라봅니다.

지질학자 김휘박사(박중훈)는 홋카이도 인근에서부터 차츰 남하하는 해저 지진의 진앙지를 보고 한반도에 쓰나미가 닥칠 가능성을 경고하지만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특히 해운대에서 각국 VIP들과 함께 포럼을 준비하고 있는 김박사의 전처 유진(엄정화)은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김박사가 짜증스러울 뿐입니다.

만식의 동생인 구조대원 형식(이민기)은 서울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러온 삼수생 희미(강예원)를 구해 주다가 엉뚱한 인연이 닿게 됩니다. 이런 세 커플의 사연 위로 쓰나미의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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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재난영화지만 진짜 재난이 닥치는 것은 영화가 시작하고 90분이 지나서입니다. 그 전까지 세 커플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사연이 구구절절 소개됩니다. 이 부분에서 윤제균 감독은 충분히 재능을 발휘합니다.

지나치게 신파조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지만, 이런 영화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야말로 신파 스토리라는 것은 지난 세기부터 시작된 재난영화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타이타닉' 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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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은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일일히 거론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베테랑 배우들답게 다들 자기 몫을 해 주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통해 가장 득을 본 사람을 꼽으라면 백수건달 동춘 역의 김인권과 구조대원 형식 역의 이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특히 동춘 캐릭터는 영화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데 매우 효과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민기는 이 영화를 통해 '멋진 남자' 이미지도 덤으로 얻을 수 있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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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얘기했듯 쓰나미는 이 영화에서 단역입니다. 사람들의 갈등과 사연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죠. 그리고 '해운대'는 그런 재난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영화가 됐습니다. 재난을 겪은 사람들의 마음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면 그걸로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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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연히 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쓰나미에 대한 연구가 좀 부족해 보입니다. 그저 거대한 파도가 해운대를 덮친다는 얘기만 강조될 뿐, 쓰나미라는 재난을 당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길지에 대한 연구가 좀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재난영화에서 과학을 얘기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것은 잘 알지만, 이를테면 2차 쓰나미가 올 때 1차 쓰나미에서 온전했던 건물까지 쓸려가는데 광안대교 아래에 둥둥 떠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멀쩡한지, 그리고 왜 호텔 복도는 그냥 걸을 수 있는 정도인데 엘리베이터 안에는 사람 키까지 물이 차는지 등등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하긴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끝이 없긴 없죠.^^ 사람이 평지에서 볼 수 있는 수평선은 맑은 날도 5-7km를 넘지 못한다고 합니다. 영화 속 쓰나미의 속도는 시속 700km. 수평선 끝에서 파도가 보이고 약 30초 뒤면 뛰고 어쩌고 할 새도 없이 끝장이 난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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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쓰나미 이전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쓰나미 이후의 삶에 대한 조명 역시 지나치게 부족합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바로 마무리입니다. 당연히 대 재난이 덮쳤으므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칩니다. '해운대' 제작진의 마무리는 그 죽고 다친 사람들의 뒷애기를 담담하게 지켜보는 선에서 그칩니다.

뭐 그걸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작진의 선택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재난영화의 결말은 재난이 재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건을 위한 의지의 표현으로 승화되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해운대'의 상영시간은 2시간 10분. 이런 규모의 영화라면 3시간은 되어도 충분할 듯 한데, 이야기의 살려내지 못한 부분들이 좀 아쉽긴 하지만 초유의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할 몫은 충분히 다 해냈다고 생각합니다. 평점을 매기라면, 저의 평점은 '볼만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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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이 영화의 무대가 '한국 어느 항구도시'가 아니라 부산이라는 구체적인 지역,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해운대로 설정되어 있었다면 좀 더 노골적인 결말이 나와도 나쁠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왜 제작진은 결말에서 부산 시민들의 애향심을 좀 더 자극하지 않았는지 의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결말은 '재난을 극복하고 도시를 재건하려는 부산 시민의 의지'를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부산적인 요소'는 영화 내내 나오는 사투리와 롯데 자이언츠 신 만으로는 너무 부족합니다. 부산 시민들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결말이 있었다면 '친구' 때의 경험을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최소 100만명 이상의 관객은 더 동원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실지... 너무 장삿속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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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2. 현역 소주 모델인 하지원이 다른 회사 소주병을 놓고 앉아있는 모습... 물론 부산이라는 향토색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겠지만 광고주가 보면 좀 분노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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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포터와 혼혈왕자'가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에 가면 시내 한 복판에 조안 K. 롤링이 '해리 포터' 시리즈를 구상할 때 들렀다는 카페가 있습니다. 당연히 이 카페는 '해리 포터가 태어난 곳'이라는 선전을 앞세우고 있습니다.

에딘버러는 여름 기온도 20도 위로 잘 올라가지 않는 북유럽형 도시입니다. 그나마 여름에는 맑은 날씨가 꽤 계속되지만 그 밖에는 쌀쌀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는 곳입니다. 여름 한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도시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miserable" 하다고 표현하길 꺼리지 않습니다. 해가 지면 중세 도시의 면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교회와 종탑의 그늘에서 스물스물 귀신들이 기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절로 연출됩니다. 묘지와 지하실들을 도는 '유령 투어'가 인기를 끌기도 하죠.

이런 도시를 배경으로 탄생한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주 처음부터, 밑바닥에 결코 아동소설답지 않은 어둠을 깔고 있었습니다. 1부에서 2부, 3부로 넘어갈 수록 조금씩 고개를 들던 이 음울한 기운이 극에 달하는 것이 바로 6부,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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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15세?)가 된 해리 포터와 친구들. 시리우스 블랙의 죽음 이후 호그와트는 학교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짐 검사를 할 정도로 위기감에 휩싸입니다. 덤블도어는 옛날 볼드모트가 호그와트 학생일 때 그를 지도했던 슬러그혼을 다시 교수로 불러들이고, 해리 포터는 드레이코 말포이가 죽음을 먹는 자(볼드모트의 추종자)가 됐다는 확신을 갖고 그의 뒤를 쫓습니다.

이런 사건들 사이로 성장한 해리와 론의 여자관계가 전면으로 부상합니다. 해리는 론의 여동생 지니가 다른 남학생과 데이트하는 것을 안타깝게 쳐다보고 매일 서로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던 론과 헤르미온느(허마이오니라고 쓰지는 않겠습니다) 사이에서도 뭔가 일어날듯 일어날듯 하는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마침내 해리와 덤블도어는 볼드모트의 가장 중요한 비밀에 접근하지만, 그 비밀을 안 대가는 생각보다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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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혼혈왕자'는 해리가 우연히 얻게 된 마법약 교과서를 옛날에 썼던 학생의 별명입니다. 사실 그 학생이 왜 그런 별명을 얻게 됐는지, 그가 누구인지는 꽤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기는 합니다만, 이름 자체가 극의 흐름에 큰 의미를 갖지는 않습니다.

이미 소설로는 7부까지 다 나와 있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6부와 7부는 그저 드라마를 끝내기 위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영화도 마찬가지. 6편은 7편에서 거대한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숨을 고르는 단계에 해당합니다.

이전까지 '해리 포터'의 매편은 볼드모트라는 거대악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항상 해리 포터의 성장과 희망을 담은 마무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6편은 그런 기대를 여지없이 짓밟습니다. 스토리의 음울함은 극단으로 치닫고, 볼드모트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어린 시절의 모습만 나옵니다), 악의 세력은 이미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영화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는 전체 여덟 편의 영화 시리즈(마지막 7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은 두 편의 영화로 각각 2010년과 11년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중 한 편으로 의미가 있을 뿐,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기엔 어려운 영화가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이 영화의 관객들은 인질이 되어 버린 상태이니, 꼬박꼬박 극장에 출석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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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6부나 7부가 이런 스토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저자 조안 K. 롤링을 포함해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오늘날의 결과를 낳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다니엘 래드클리프라는 배우라고 봐야 합니다.

2001년만 해도 너무나 동화 속 소년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했던 그가 '아즈카반의 죄수' 때부터 턱이 넓어지기 시작하고, 아무리 좋게 봐 줘도 10대 후반의 얼굴이 되어 버린 것이 소설의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미 소설과 영화가 한 배를 타고 나아가고 있는 마당에, 가장 핵심적인 인물인 해리 포터가 얼굴이 삭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으로 바꿔 버릴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스토리도 그에 따라 성장해야 하는 것은 작가로서는 불가항력의 일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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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러다 보니 무리도 꽤 따릅니다. 배우가 성장하고, 작가가 거기에 연령대를 맞췄으니 해리 포터와 친구들은 꽤 자란 상태이건만 하는 짓거리는 1, 2부때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나이와 몸은 성장했으되 정신적으로는 취약한 상태 그대로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죠.

사춘기의 주인공들을 그리다 보니 당연히 멜로드라마가 강조됐고, 여러 가지로 연애담들을 펼치고 있지만 이건 우리나라의 요즘 중학생들에 비해도 턱없이 유아적인 수준입니다. 한마디로 몸만 어른에 가까워지도 보니 불균형이 꽤 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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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다섯 편의 전작이 거둬들인 천문학적인 성공 탓에 6편과 7편에서는 무슨 짓을 해도 책은 팔리고, 영화는 대박이 나는게 정상인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들에서 초기의 발랄함과 힘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중간에도 얘기했듯, 어쩌겠습니까. 차라리 시작하지 말았다면 모를까, 이제 두 번만 더 견디면 결말을 볼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텨야죠. 6편과 7편의 세 작품은 2009, 2010, 2011년 3년간 매년 개봉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전의 작품들처럼 2년 간격으로 개봉했다간 래드클리프가 30대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제작진을 마구 몰아치게 된 듯 합니다. 그때까지만 래드클리프가 버텨 주길(?)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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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래도 세 주인공 중 하나는 건졌다는 것이 6편의 유일한 위안거리입니다. 참... 잔인한 자연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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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콩을 들다'가 얼마나 선전할지에 관심이 몰리고 있습니다. '트랜스포머 2'가 전체 스크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개봉관을 많이 잡지 못한 것은 분명한 일일 듯 한데 관객은 꽤 몰리고 있는 듯 합니다.

'킹콩을 들다'는 그 배경이 현재이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들과 많은 부분에서 겹칩니다. 장미란이 금메달을 딴 2008 베이징 올림픽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장미란은 출연하지 않았지만 한국 역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전병관 감독과 이배영 선수가 나옵니다. 실명으로도 여러번 거론되는 전병관은 국가대표 감독 역으로, 이배영은 역도 심판 역으로 나오죠.

그런데 시점이 친숙하다 보니 과연 영화의 내용이 얼마나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일단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역도 동메달을 딴 이지봉 감독'은 실존 인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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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줄거리를 살짝 살펴봅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출전을 앞둔 여자 역도 선수 박영자(조안)은 출국 직전 옛 친구들로부터 소중한 추억이 담긴 앨범과 이지봉 선생님(이범수)이 남긴 동메달을 건네받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옛 추억에 잠깁니다.

10여년 전, 한 시골 여자중학교 교장이 테니스부와 사격부에 이어 역도부를 신설합니다. 하지만 코치로 내려온 '88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이지봉 선생은 아이들을 지도하는 데에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역도때문에 인생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그는 역도부를 형편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급식하는 곳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꿈은 그렇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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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떠오르는 궁금증은 88올림픽에서 역도는 어떤 성적을 거뒀나 하는 겁니다. 당시 52kg급의 전병관이 은메달, 82.5kg급의 이형근이 동메달을 땄습니다. 이형근 감독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때 남자 역도 팀의 감독을 맡았던 그 분입니다. 일단은 동메달이라는 점에서, 아예 없는 얘기는 만들어 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병관 선수가 금메달을 딴 것은 다음 대회,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입니다.)

하지만 이형근 감독은 운동을 때려 친 적도, 술집 웨이터를 한 적도 없다고 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범수와는 체급이 좀 다르죠. 이범수의 체격에 82.5kg급은 좀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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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재혁의 팔을 번쩍 들어주는 분이 이형근 감독입니다. 사진이 어찌나 없는지.)

'킹콩을 들다'가 끝날 무렵이면 이 영화가 실제 모델로 삼았던 고 정인영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화에선 이지봉 코치의 지도를 받은 학생들이 전국체전을 휩쓰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지난 2000년 정인영 감독이 지휘하던 전북 순창고 여자 역도 선수들이 남긴 기록을 모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순창고는 5명의 선수가 출전해 15개 부문 중 14개의 금메달을 가져가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습니다. 당시 박은진 이현정 등의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습니다. 이밖에 순창고 출신 남자 선수로는 이배영이 있죠.

정인영 감독은 역도 영웅 전병관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분입니다. 본래는 역도 문외한일 뿐, 그냥 체육교사였던 이 분은 전북 진안 마령중학교에서 역도부를 창설하고 그때부터 이론서적을 읽어가며 선수들을 훈련시켰다고 합니다(이 분의 경력을 보다 보면 수영과 롤러스케이트 코치로도 명성을 떨쳤더군요). 이때 그 학교에 전병관이라는 소년이 발굴됐죠. 그리고 2000년, 전국체전 순창고의 신화를 남긴 뒤 그해 뇌출혈로 작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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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지도하던 선수들과 함께 한 정인영 감독의 모습. 영화에도 잠깐 이 사진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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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조안이 이 영화에서 박영자라는 이름의 선수로 나오는데, 박영자라는 실제 역도 선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2001년 전국체전 당시 전북체고의 박영자 선수는 48kg급에 출전해 3관왕이 됐습니다. 이 선수 역시 순창여중 시절 정인영 감독의 지도를 받았고 전북체고로 진학해 여자 역도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더군요. 하지만 이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 무대를 밟지는 못했습니다. (굳이 진짜 선수의 실명을 쓴 이유는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이 영화의 무대는 정작 보성이 아니라 순창이어야 했을 것 같은데, 여기에도 무슨 사연이 또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튼 이제 영화 얘기로 넘어갑니다. 많은 분들이 '우생순'과 비교하는 이 영화는 두 가지로 평이 갈릴 여지가 있습니다. 좋은 말로 하자면 정석에 충실하고 진정성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이를 나쁘게 말하면 굉장히 도식적이고 촌스러운 영화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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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의 역자도 모르는 소녀와, 역도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진 지도자가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극장에 가면, 여러분이 상상한 모든 것이 영화에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극빈자 소녀, 다른 운동부와의 신경전, 미남 소년에 대한 짝사랑, 못된 다른 코치, 부상, 세상의 몰이해.... 순서대로 나옵니다. 그리고 주로 이범수의 대사에 나오는 70년대풍의 '공자님 말씀'도 가끔 몰입을 방해합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보는 사람들을 자지러지게 웃게 하고, 눈물을 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 진정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의 1등공신은 여섯명의 역도소녀들입니다. 정말 고교 운동부 선수처럼 보이는 이 아가씨들은 그야말로 영화 찍는 내내 죽을둥 살둥 뛰었다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이범수도 여느 때처럼 좋은 연기를 보여줬지만, 필생의 명연기로 꼽기엔 대본이 너무 정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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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연기를 보여준 사람이라면 교장 역의 박준금을 꼽게 됩니다. 아주 오래 전,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에서, 김수현 작가의 리메이크 '사랑과 야망'을 통해 연기파 중년 배우로 변신해(이유리의 시어머니 - 전노민의 어머니)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분인데, 이번 영화에서는 아주 '작살인' 코믹 연기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킹콩을 들다'에서 가장 창의적인 부분을 꼽자면 이 교장 캐릭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이 영화도 '우생순'의 기적을 재현할 수 있을까요. 트랜스포머의 압박이 무척 거세긴 하지만 이번 주말을 넘기고 이 영화가 얼마나 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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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보성여중은 실제로 있는 학교입니다. 서울에도 남산 자락에 보성여중-여고가 있지만, 차 산지로 유명한 전남 보성에도 보성여중이 있습니다. 역도부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중앙여고라는 학교는 없는 지역이 없는 듯 합니다. 서울과 광주에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제주, 김해, 포항, 창원에도 있다고 합니다. 더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중 지리적으로 보성과 가장 가까운 곳은 여수 중앙여고인 듯 한데, 이 학교도 역도부가 있다는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학교와 관련된 부분은 그냥 이름만 빌려 왔다고 알고 있으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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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시사회에 온 장미란 사재혁 선수. 영화에 장미란이 나왔으면 정말 대박이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쉽습니다. '무릎팍도사' 때의 말솜씨를 생각하면 연기도 천연덕스럽게 잘 할 것 같던데.. 물론 선수는 경기에서 좋은 성적 보여주는 것이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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