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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잇 앤 데이'는 꽤 많이 본듯 한, 아주 익숙한 포맷의 영화라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영화를 막상 보고 있으면 진정 혁신적인 영화라는 느낌을 줍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충격적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기술은 진화하고, 모든 스토리도 진화합니다. 영상도, 영상을 읽는 법도 진화합니다. 만약 15세기 사람에게 오늘날의 영화를 보여주면 그 스토리의 전환이나 진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나잇 앤 데이'는 '아바타'와 같은 기술의 진보와 영상의 충격을 준 작품은 아니었지만 정말이지 '다이 하드'를 구닥다리 영화로 보이게 만들 만한 놀라운 스피드를 보여줬습니다.


간략한 줄거리: 아버지로부터 차량 정비 기술을 이어받은 독신녀 준(카메론 디아즈)은 어느날 공항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와 두번이나 부딪힌 끝에 같은 비행기에 탑니다. 자신을 로이라고 소개한 이 남자(톰 크루즈)는 매우 매력적이지만, 한순간 준은 이 남자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도로 훈련받은 위험한 남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준의 인생은 이제까지 상상할 수 없었던 롤러코스터 속으로 말려들어갑니다.



흔히 '로맨틱 액션'이라고 불리는 영화들도 꽤 역사가 깁니다. 남녀 주인공이 합심해서 위기를 뚫고 나가는, 액션과 로맨스에 유머감각이 조화를 이룬 작품을 찾자면 대략 존 휴스턴 감독, 험프리 보가트와 캐서린 헵번 주연의 '아프리카의 여왕'(1951)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물론 그 전에도 1933년작 '킹콩'을 비롯해 유사성을 가진 영화들이 있겠지만 제가 기억하는 영화로는 이 정도라는 얘깁니다. (이 정도로 넘어가시고^^)

그리고는 수많은 유사 작품들이 명멸했지만, '아프리카의 여왕'의 진전을 잇는 영화라면 아무래도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마이클 더글러스, 캐슬린 터너 주연의 1984년작 '로맨싱 스톤(Romancing the stone)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액션과 절묘한 유머감각, 그리고 처음에는 뭔가 그리 썩 잘 맞지 않을 것 같던 남녀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진행까지 모두 A를 줄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죠.

이 큰 흐름에서 살짝 비껴난 작품으로는 토니 스코트의 '트루 로맨스'가 떠오릅니다. 다소 반영웅적인 주인공 크리스찬 슬레이터가 순진한 창녀 패트리샤 아퀘트를 데리고 총알 바다 속을 헤쳐나가며 엘비스의 가르침에 따라 진짜 영웅으로 거듭나는 작품이었죠.


그렇지만, 이런 걸출한 선배들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잇 앤 데이'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영화 필름을 부분 부분 접어 넘기는 듯한 놀라운 진행의 속도감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준과 로이가 악당들에게 잡혀 있는 순간, 희미한 기억 속에서 준은 로이가 발목이 묶여 허공에 매달려 있는 걸 봅니다. 다음 순간, 로이는 거꾸로 매달린 채 준에게 말합니다. "지금 상황이 안 좋아 보이겠지만... 내가 곧 구해줄테니 걱정마". 다음 순간 두 사람은 어디론가 달리고 있고, 다시 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 두 사람은 어디론가 배를 타고 가고 있습니다.

네. 그러니까 어떻게 잡혔고, 로이가 어떻게 고문을 당하고, 어떻게 밧줄을 풀며, 어떻게 탈출하고, 어떻게 추격을 따돌리는지 등은 싸그리 생략돼 있습니다(이렇게만 얘기하면 한 순간에 러시아에서 일본 아키타 현으로 주인공들을 이동시키는 '아이리스'의 신공을 상상하는 분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아이리스'의 경우엔 많은 사람들이 비웃었지만 이 경우엔 다들 웃음과 박수를 보냅니다).

관객의 입장에선 빨리감기 버튼을 눌러 가며 2시간짜리 영화를 1시간에 보는 듯한 경험일 수도 있죠. 단 그 리모콘을 쥐고 있는 건 관객이 아니라 감독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은 그리 작품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내놓을 때마다 확실한 승부를 해 왔던 탄탄한 실력파입니다.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건 안젤리나 졸리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준 '처음 만나는 자유(Girl, interrupted)'였지만, 처음으로 감격한 것은 존 쿠색 주연의 걸작 스릴러 '아이덴티티'였습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심리 스릴러라는, 90년대의 수없이 많은 영화 가운데서 이 영화만큼 독창성으로 충격을 준 영화도 없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어 자니 캐쉬의 일대기를 다룬 '앙코르(Walk the line)', 그리고 정통 서부극의 귀환을 알린 '3:10 투 유마(네. 제목 짓는 데에는 별 재능이 없는 듯^^)'에 이르기까지 흥행 대박 작품은 아니더라도 관객이 신뢰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나잇 앤 데이'에서도 그는 일상적인 선택을 거부한 셈입니다. '특수공작원인 남자가 일반인 여자를 우연히 만나 둘의 인생이 겹쳐지는' 영화를 낭만적인 시선에서 그린다면 너무 뻔한 영화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그는 '상식적인 내용은 모두 생략한다'는 과감한 결단을 내리죠. 이미 관객이 다른 영화에서 수없이 봤을 법한 장면들은, 스토리 진행상 반드시 필요하다 해도 그냥 생략해버리는 겁니다. '이미 관객은 그 장면들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 결과 '나잇 앤 데이'는 놀라울만큼 슬림하고 잘 짜여진 영화가 됐습니다. 두 주인공이 너무 나이들었다는 안타까움이 있고, 왕년 할리우드 최고의 바디라인을 자랑했던 카메론 디아즈의 비키니 모습을 바라보는게 이젠 좀 아슬아슬하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 때문에 영화의 흥미가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아마도 직접 찍었을 것이 분명한 톰 크루즈의 주차 액션 신 같은 장면은 크루즈가 성룡이 되어 가는게 아닌가 할 정도의 열정을 느끼게 합니다.

지난번 'A특공대' 때에도 대단히 만족했지만, 냉정하게 얘기한다면 '나잇 앤 데이'를 먼저 보고 나서 'A특공대'를 본다면 만족도가 좀 떨어지는게 일반적일 듯 합니다. 'A특공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나잇 앤 데이'의 힘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백 투더 퓨처'나 '매트릭스'때의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초강추작입니다.

(그런데 미국 시장에서 '나잇 앤 데이'는 개봉 첫주 흥행 수입 3위에 그쳤습니다. 아무리 상대가 '토이스토리3'였다고 해도, 아담 샌들러의 '그로운 업'에도 뒤진 건 좀 망신이군요.^^ 톰 크루즈가 미국 시장에서 이렇게 밀릴 줄은 몰랐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S. 제목의 의미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Knight(톰 크루즈의 정체와 관련 있는 단어입니다)가 night와 같은 발음이라는 것을 이용한 말장난이라는 것은 기본으로 하고, 많은 사람들이 Day와 카메론 디아즈의 관계를 밝혀 보려 했으나 모두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분의 가르침에 따르면 영어로 'night and day'는 우리말의 '물과 불'처럼 서로 전혀 공통점이 없는 상반된 성격을 가리키는 숙어로도 쓰인다고 합니다. 두 남녀의 처음 설정이 그랬다는 걸 생각하면 여기서 가져온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P.S.2. 혹시 'A특공대' 보신 분들, 영화 속에 나오는 프랑스 여기자를 눈여겨 보신 분이 계시다면 그 분들을 위한 영상입니다. 참 이쪽의 선수층은 넓고도 깊군요.

http://vimeo.com/4737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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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TV 시리즈 'A 특공대(A-TEAM)'가 국내에 방송될 때 저는 이미 '어린 시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추억의 외화이긴 하되 어린 시절의 추억은 아니었죠. 하지만,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A 특공대'는 보는 사람을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 극장판 'A 특공대'가 나왔습니다. 조지 페퍼드가 연기했던 A 특공대의 핵심인 한니발 대령 역을 리엄 니슨이 맡았다는 건 조금 예상 밖이고 다소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BA 역을 한때 프라이드 미들급의 강자였던 퀸튼 잭슨이 맡았다는 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작 드라마 'A 특공대'를 설사 모르는 분들에게도 이 영화는 충분히 권할 만 합니다. 보는 내내 심심할 새가 없이 웃겨 줍니다.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개봉관이 적게 잡혀 있더군요. 자칫 자리가 없어 영화를 못 볼뻔 했습니다.



'A 특공대'의 세계를 이해하시는데 역사적 배경 같은 것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드라마에서 네 명의 특공대원들은 월남전 출신의 베테랑으로 설정돼 있지만 영화에선 이라크가 이들의 활동 무대입니다.

영화는 아주 맨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대체 왜 이 네 주인공이 쫓기는 도망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작전의 귀신인 미 육군 특전부대의 한니발 대령(리엄 니슨)은 멕시코에서 페이스(브래들리 쿠퍼)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다가 우연히 전 특수부대원인 괴력의 사나이 BA(퀸튼 잭슨)를 만납니다. 셋이 힘을 합쳐 달아나던 이들은 육군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이 아닌 파일럿 머독(샬토 코플리)을 만나 처음으로 네 사람이 함께 뭉칩니다.

그 뒤로 한 팀이 되어 수많은 전공을 세운 이들은 이라크 전장에서, 후세인의 잔당들이 정교한 100달러 위조지폐를 찍어내는 동판을 몰래 빼돌린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동판 회수를 위해 나섭니다. 미육군 정보국의 소사 요원(제시카 비엘)은 이들에게 그 사건으로부터 떨어지라고 경고하지만 그 말을 듣고 손을 떼면 A 특공대가 아니겠죠.

말로는 액션/코미디라는 장르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 영화가 절대 진지한 액션 영화가 될 수 없다는 건 등장하는 만화적인 캐릭터들을 슬쩍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습니다. 성공률 100%의 지략가이자 시가 연기를 뻑뻑 뿜어대는 한니발, 여자를 유혹하는데 천부적인 소질을 갖고 있는 페이스, 어지간한 적들은 맨손으로도 물리치지만 결정적으로 "맨정신으론 절대 비행기를 타지 못하는" BA(그러나 매회 한번씩은 꼭 비행 장면이 나온다는...), 그리고 뛰어난 파일럿에 천재 엔지니어지만 "어떻게 하면 죽음에 조금 더 가까운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를 매일 궁금해 하는 중증 정신병자 머독이라는 4인방. (네. 개인적으로 제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머독입니다.)




오리지날 캐릭터를 연기했던 배우들은 그야말로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습니다. 느끼함의 화신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조지 페퍼드(앉은 사람)는 그야말로 태어나기를 한니발로 태어났고, 뺀질 연기의 1인자인 덕 베네딕트(맨 왼쪽)도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록키3'를 통해 세계에 알려진 미스터 T(맨 오른쪽)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고, 드와이트 슐츠(가운데 뒤) 역시 머독 연기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4인조는 과거 4인조를 그대로 재현하려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리엄 니슨이 한니발 치고는 너무 진지해 보인다는 정도? 한니발의 본래 캐릭터를 살리려면 좀 더 만화적인 낙천성이 강조되어야 하는데, 이 영화의 리엄 니슨은 왠지 '테이큰'에서 딸을 유괴한 갱단을 때려부수러 가는 열받은 아버지의 모습에서 크게 여유로워진 것 같지 않아 조금 부족했습니다. 피어스 브로스넌 정도가 이 역할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랬다면 브래들리 쿠퍼는 다른 배우로 대체되어야 했겠지만 말입니다. 일설에는 브루스 윌리스가 한니발의 물망에 올랐다던데, 그것도 괜찮았을 듯 합니다.



영화 'A특공대'는 TV 시리즈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에겐 최고의 선물입니다. 원작의 배경은 살짝 바뀌었지만 그 천하태평의 낙천적인 유머감각은 여전합니다. 보는 동안 조금의 걱정도 할 필요가 없고, 주인공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액션으로 미션을 하나 하나 깨 나가는지를 보면서 때가 되면 웃어 주면 그만입니다.

혹시 A특공대가 뭔지 모르는 분들에겐 이 영화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지,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런 분들이라도, 충분히 두 시간 동안은 세상의 골치아픈 일들을 잊고 푹 빠져들 수 있는 영화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아,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을 10개 이상 보시고, 그 영화들을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갖고 배우들의 연기가 어떠네 각본이 어때네 얘기하는 건 좀 어울리지 않는 듯 합니다. 형편없어서가 아니라, 패스트푸드처럼 딱 그렇게 짜여져 있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도미노 피자가 레스토랑 피자보다 맛있고 맥도널드 햄버거가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보다 맛있을 수도 있다는 건 다들 아시는 얘기일테니 귀찮은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대만족입니다.



P.S. 영화판을 보시면, 대체 왜 BA가 비행기를 못 타게 됐는지 알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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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매체가 생겨난 이후로 전쟁이라는 것은 대단히 강력한 무기의 위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실제 전장에 가서 전쟁을 '구경'하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행위지만 안락한 극장에 앉아서, 화면 안에서 펑펑 터지는 불꽃과 화염을 보며 주인공의 대활약에 넋을 잃는 건 지난 100년 간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평균 이상의 쾌감을 선사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영화가 실제가 아니라 해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보면서, 그것도 대량 살육을 구경하면서 좋아한다는 건 어쩐지 좀...'이라는 반성의 시점이 찾아오게 됩니다. 결국 어느 시점 이후로, 전 세계의 모든 전쟁 영화는 기본적으로 '전쟁은 나쁘다'는 휴머니티를 기본으로 깔고 제작되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관객들이 전쟁영화를 보는 가장 큰 동기는, 아무래도 가슴 끈끈한 휴머니티보다는 생사를 가르는 전장의 긴박감과 호쾌한 볼거리라는 사실이 변한 적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도 인간미 넘치는 주제보다는 몸서리처지는 오마하 해변 상륙작전이나 사람이 픽픽 죽어 나가는 시가전 장면으로 기억될 뿐입니다.

일종의 이율배반이죠. 그리고 이런 모순은 예외 없이 '포화 속으로'에도 적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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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전쟁 6주만에 인민군은 남한의 2/3를 점거하고 부산을 향해 남하합니다. 미군의 참전에 한가닥 희망을 건 국군은 낙동강을 방어선으로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는데 인민군의 최정예부대 하나가 전선을 이탈해 낙동강 북쪽 포항으로 향합니다. 야심만만한 박무랑(차승원)이 지휘하는 이 부대는 격전지를 우회해 국군의 후방으로 침투, 허를 찌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강석대 대위(김승우)는 낙동강 전선의 핵심 방어구역으로 이동하면서 사단 사령부가 있던 포항여중을 71명의 학도병에게 맡깁니다. 그중 오장범(T.O.P)은 단지 실전 경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중대장에 임명돼 지휘를 맡습니다. 하지만 살인미수로 경찰서에 잡혀 있다가 얼떨결에 학도병에 합류한 구갑조(권상우)는 영 오장범이 못마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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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학도병이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에서 시작한다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이런 편지는 실제 존재합니다. 영화 마지막 마지막에도 등장하지만, 1950년 8월11일, 실제로 포항여중을 방어하던 학도병 71명이 공산군과 전투를 벌여 그 지점을 약 12시간 동안 방어하는데 성공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물론 그중 48명이 전사했고, 그중 서울 동성중 3학년에 다니다 학도병에 합류한 이우근 학생의 시신에서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발견됩니다.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2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가 바로 영화 '포화속으로'의 모태가 된 것입니다. 얼마 전 포항에는 이 편지의 내용을 담은 기념비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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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임권택감독의 '낙동강을 흐르는가'를 단체 관람으로 봤고 언젠가 한국 보이스카우트 회지에 연재되던 낙동강 전투 당시 학도병들에 대한 소설을 읽은 기억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 공간이 포항여중이라는 건 몰랐지만, 아무튼 그 소설은 학도병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꽤 상세히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이 영화의 강점은 대단히 높은 시각적 완성도입니다.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한동안 대규모 전쟁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한국 영화 시장에서 오랜만에 나온 작품답게 전투 장면에서 더 이상 싱겁거나 우습게 보이는 장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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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부 액션에서 지나치게 과장된(사격훈련이라고는 단 1발밖에 해 보지 않은 학도병들의 상당히 놀라운 전투 실력, 수류탄조차도 쓰지 않고 죽어가는 인민군들, 군사훈련이라곤 받은 적이 없을텐데 미제와 소련제 무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학도병들 등) 장면을 지적할 만 하지만, 아무튼 전쟁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인 전투 장면에서 이 영화의 수준은 월드 클래스라고 인정할 만 합니다.

'포화속으로'는 수없이 많은 선배들을 가진 영화입니다. 실화를 근거로 하고 있지만 이런 다윗대 골리앗의 그림은 관객들에게 대단히 친숙합니다. 특히 그 골리앗의 역할을 차승원이라는 중량감 넘치는 배우가 맡았다는 건 대단한 강점으로 꼽힙니다. 박무랑 VS 오장범이라는, 양쪽 두 지휘관의 대립을 그려내는 데에선 이재한 감독의 연출이 충분히 힘을 발휘했다는 느낌입니다.

이밖에 오장범을 후원하는 국군 대위 역의 김승우, 또 오장범을 위협하는 천부적인 파이터 구갑조 역의 권상우까지 네 명의 남자 주연들은 적재적소에 배치돼 탄탄한 구도를 이룹니다. 어쨌든 이 영화의 강점은 이 네 주인공의 구도가 끝까지 흔들리지도, 치우치지도 않고 긴장감을 유지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비록 넷 다 너무나 전형적인 캐릭터들이긴 하지만, 매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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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좋은 점 못잖게 아쉬움도 많습니다. 이를테면 네 주인공 외의 인물들이 지나치게 글자 그대로 들러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건 무척 아쉬운 일입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대본 단계에서는 분명 독자적인 캐릭터가 부여됐던 것 같은 학도병들이 그저 소품 정도로만 활용되고 있더군요.

물론 다 찍어 놓은 장면들이 강도 높은 편집 과정에서 다 잘려 나갔을 수도 있고, 러닝타임을 줄이려는 시도 속에서 중요도가 덜한 인물들과 관련된 내용이 희생됐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아예 대본 수정 과정에서 '쓸데 없는 부분'이 날아갔을 수도 있겠죠. 참고로 이 영화 대본의 최종 각색자는 제작사 대표인 정태원씨('아이리스'를 만든 분이죠)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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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영화가 선전되는 것처럼 '한국판 밴드 오브 브라더스'가 되려면 그 안에 뭔가 전쟁으로 인해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들의 얼굴을 좀 더 부각시켜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네. 멋모르고 형을 따라 온 어린 동생의 에피소드 정도가 있었지만 이건 이야기 자체가 너무도 전형적이라("형님아,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 먹고 싶다" 같은 대사는 너무나 의무감에서 넣은 태가 역력합니다) 도대체 관객에게 감동이란 걸 이끌어내기엔 역부족입니다.

어쨌든 두시간짜리 영화를 딱 네 명의 주인공에게만 집중시켜버렸다는 건 이 영화의 한계를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사실 21세기의 시점에서 전쟁 영화란 상당히 위선적인 존재입니다. 전투신의 쾌감을 극대화해서 관객들의 마초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한편, 동시에 전쟁으로 인해 희생당하는(네. 전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은 어쨌든 희생자죠) 인간들의 면모에도 초점을 맞춰야 잘 만든 작품이란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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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포화속으로'는 전자 부분을 수준급으로 이뤄낸 반면, 후자 부분에서는 기준점 이하입니다. 이 영화는 어깨에 '후까시'가 단단히 들어가 있는 영웅들의 전쟁 이야기를 다루고 있을 뿐, 생전 처음 끌려온 전장에서 겁에 질려 있는 십대 소년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갱스터 무비였다면, 어깨에 힘을 빡 주고 아무 것도 겁나지 않는듯한 태도로 무표정하게 상대의 몸에 칼을 꽂아 넣는 소년들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아무 생각 없이 진짜 전쟁에 끌려나온 소년들의 이야기이고, 그러려면 그 소년들이 어떻게 전쟁 속으로 젖어드는가가 드러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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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옹호자들은 혹시 오장범 역의 TOP이 그 역할을 맡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오장범은 '어쩔 수 없이 역할을 맡았지만 결국 훌륭하게 직무를 수행하는 리더'의 캐릭터일 뿐입니다. 이 영화를 대표한다기엔 너무나 평면적이고 뻔한 캐릭터죠.

정리하면, 주변의 작은 얘기들을 다 쳐 내고 주인공들의 마초 스토리만 남겨 놓은 탓에 이 영화는 다양하고 작은 울림이 없는, 그냥 두 시간짜리 전쟁 블럭버스터, 혹은 두 시간짜리 전투 하일라이트 영화가 된 느낌입니다. 그 네 주인공의 이야기도 탄탄하긴 하지만 결국 어떤 감동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더 고민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로 연결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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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복잡한 생각 하실 필요 없이, 두 시간 동안 다윗과 골리앗이 신나게 치고 받는, 제대로 된 전쟁 액션 영화를 원하시는 분들에겐 당연히 권할만 합니다. '포화속으로', 절대 못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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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전'이 연일 흥행 호조입니다. 서서히 할리우드 흥행 대작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꽤 관객몰이가 짭짤합니다. 홍보도 꽤 힘을 발휘하고 있고, 뭣보다 알짜배기들로 짜여진 출연진이 보여주는 연기 호흡이 만만찮습니다.

이 정도 영화라면 흥행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싶으면서, 어쩐지 이 영화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한국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슬쩍 듭니다. 그건 바로 '전복'이란 것이 아닐까요. 제목에 대한 얘기는 맨 마지막에 첨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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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줄거리부터:

이몽룡(류승범)과 방자(김주혁)는 남원 퇴기 월매(김성령)의 딸 춘향(조여정)을 보고 반합니다. 하지만 춘향의 마음을 먼저 차지하는 것은 마영감(오갑수)의 도움을 얻은 방자. 그리고 두 사람 사이에 낀 향단(류현경)은 방자를 짝사랑하지만 방자의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곡절 끝에 몽룡은 서울로 가버리고, 방자는 춘향의 곁을 지키지만 몽룡은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가 됩니다. 남원 일에 별 관심 없던 이몽룡은 급제 동기인 변학도(송새벽)를 만나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절묘한 계획을 짜내게 됩니다. 그 계획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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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아시다시피 이 영화는 '춘향전'을 뿌리부터 뒤집어 놓은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런 뒤집기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요. 거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글입니다.

2일 개봉한 영화 ‘방자전’은 누구나 다 아는 고대소설 ‘춘향전’의 춘향이가 이도령 아닌 방자에게 반했다는 다소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진짜 주인공은 춘향을 버리고 한양으로 가버린 이몽룡이 아니라 줄곧 곁을 지키며 궂은 일을 무릅쓴 방자였으며, 오늘날 사실과는 전혀 다른 ‘춘향전’이 전해지는 것은 의도적인 왜곡이라는 것이다.

다 아는 이야기를 뒤집어 보는 전복(顚覆)의 재미는 유래가 깊다. 엄밀히 말하면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기생의 딸인 춘향이 장원급제한 어사의 정실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전복적인 내용이지만, 남원 지방에 내려오는 ‘박석고개 전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이몽룡을 짝사랑한 춘향은 본래 미녀가 아닌 끔찍한 추녀였고, 월매의 간계에 넘어가 춘향과 하룻밤을 같이한 이몽룡은 본얼굴을 보자마자 서울로 도주한다. 굴욕을 참지 못한 춘향이 자결하고, 그 원혼 탓에 남원 땅에 부임하는 신관 사또마다 죽음을 당하자 나라에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낙방거사 이몽룡에게 남원 현령을 제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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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몽룡이 진혼을 위해 윤색된 ‘열녀춘향수절가’를 만들어 널리 유포시킨 게 오늘날 전해지는 춘향전의 유래라는 것이다. 판소리 춘향가에도 나오는 박석티가 본래 박색치(薄色峙)였다는 게 이 전설의 핵심이다.

전복의 미학은 최근 대중문화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방자전’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3일 종영한 KBS-2TV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는 원작에서 주인공 신데렐라를 학대하던 조연인 ‘계모가 밖에서 데려온 딸’을 주인공으로 바꿔 놓아 큰 성공을 거뒀다.

올 칸 영화제 개막작이던 영화 ‘로빈 후드’는 영국의 한 변두리 셔우드 숲을 누비던 의적 로빈 후드가 전국의 영주들을 이끌고 국왕을 압박해 영국 헌정의 기초인 대헌장(Magna Carta)을 낳게 한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줄거리를 갖고 있다. 동화 속 왕자와 공주 이야기를 뚱뚱하고 못생긴 괴물로 바꿔 놓은 ‘슈렉’ 시리즈 4편은 지난주 미국에서 개봉돼 이미 흥행 1억 달러를 넘어섰다(국내는 8월 개봉).

이렇듯 전복 스토리가 넘쳐나는 세상은 뭘 말해주고 있을까. 혹시 한번 주인공이 늘 주인공인 줄 알면 큰 오산이라는 교훈은 아닐까. 자신들의 지위를 과신하고 민의(民意) 읽기를 게을리했다가 2일 지방선거에서 아찔한 경험을 한 사람들에겐 왠지 남의 얘기가 아닐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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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영화 얘기에 집중하자면, 영화 '방자전'은 전체적으로 무척 재미있는 영화긴 하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불균형이 조금 아쉽습니다. 전반부에서 마영감(오달수)를 중심으로 펼쳐지던 활기 넘치는 이야기가 사그러들 무렵 변학도(송새벽)이 등장하면서 흥미를 지속시켜나가는 데 까지는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지만 이몽룡의 전략이 등장하면서부터는 힘이 뚝 떨어져버립니다.

그저 관객의 입장에서는 왠지 비장감을 강요하는 듯한 결말이 아쉽습니다. 감동을 강요한다고나 할까요, 아니면 전형적인 한국 '흥행' 영화의 패턴이라고나 할까요. 축구로 치자면 전반전에 펄펄 날던 선수들이 후반에 체력 고갈로 역전을 허용하는 모습같은 느낌을 줍니다.

물론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오해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런 대로의 결말도 의미가 있고, 충분히 재미를 느낄 여지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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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라이터로서의 김대우 감독의 재치는 여전합니다. 일찌기 '음란서생'에서 조선시대판 '댓글'을 보여줬던 그는 이번엔 '은꼴사' 아닌 '은꼴편'을 던져줍니다. 요소요소에서 웃음을 던져주는 구성 또한 훨씬 세련되어졌습니다.

배우들로 넘어가면, 이번 배우들은 김대우 감독과 심하게 의기투합이 됐던 듯 합니다. 한국 영화 사상 가장 야한 장면 중 하나(뭐 '거짓말'이나 '미인' 처럼 아예 영화 전체가 그저 '야함' 속으로 던져졌던 영화들을 제외하고)에 주저없이 몸을 던진 조여정이나 류현경 같은 여배우들은 일단 말할 필요도 없겠죠.

김주혁이나 류승범은 크게 무리하진 않았지만 이미 수많은 관객들에게 공인받은 캐릭터를 활용해 편안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이걸 갖고 뭐 평이했네 운운하면 뭐 그렇게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두 남자 주역의 연기가 그저 평이해보이는 건 그만치 두 조연의 독특한 연기가 빛을 발했을 뿐, 김주혁과 류승범의 연기가 다른 작품에 비해 떨어진 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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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두 조연이란 마영감 역의 오달수와 변학도 역의 송새벽. 오달수는 타고 난 웃음제조기의 위력을 발산하는 가운데서도 특히나 '눕혀봐' 신에서, 0.5초 사이에 김주혁의 손길을 거부하는 숫처녀로 변신하는 기량이 무릎을 치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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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새벽은 또 '평생 남들의 기에 눌려 순둥이 비슷한 왕따로 살면서 그저 하릴없이 공부만 하다가, 고시 한번 잘 봐서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자리에 올랐는데,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들의 통제를 벗어나자 그제서야 못된 버릇이 고개를 든' 이렇게 말로 하면 세 줄이나 되는 캐릭터를 그냥 딱 보는 순간 아, 쟤가 그런 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솜씨를 보여주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육혈포강도단'의 김병철과 함께 2010, 2011년 가장 각광을 받게 될 조연배우로 지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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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배우를 어디서 봤더라 하는 분이라면 바로 이 영화, '마더'의 한 장면이 떠올랐을...)

총평을 먼저 해버렸더니 뒤에는 별로 할 말이 없습니다. 제목에 대한 책임감으로 한마디 하자면, 최근 한 전통문화 관련단체에서 영화 '방자전'이 민족의 귀감인 열녀 춘향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항의에 나섰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애당초 심각하게 받아들일 항의도 아닌데다 이 항의가 영화 상영에 무슨 영향을 미칠 리는 없을 것 같고, 그 사건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존재와 이 단체의 이름을 알게 되었을테니 양쪽 모두에게 좋은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항의를 하고 계신 분들도 아마 이런 점을 충분히 납득하시지 않을까 싶군요. 위에 나오는 '박석고개 전설'로 봐선 춘향전 비트는 재미라는 건 이미 그 자체가 '전통문화'의 일부인 듯 하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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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무튼 뭐 길게 썼지만 한마디 소감으로 요약하라면 닥치고 조여정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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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길들이기'는 '슈렉'과 '쿵푸팬더'를 만든 드림웍스의 2010년 야심작입니다. 솔직히 최근 몇년 사이 국내에서 개봉된 드림웍스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가운데 가장 실망스러웠던게 약간 아이디어가 고갈된 듯 보였던 '슈렉3' 정도라면 이들은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입니다. 그 약했다는 '슈렉'도  3D로 재정비한 '슈렉 포에버'가 이미 1억 달러 흥행을 넘어섰으니 이들의 화양연화는 꺼질 날이 보이질 않습니다.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유일한 라이벌로 꼽히는 픽사/디즈니도 올 여름 3D로 '토이 스토리3'를 내놓고 현재 개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미국은 6월, 한국은 8월). '슈렉 포에버'와 '드래곤 길들이기', '토이 스토리 3' 등 이들 세 작품은 올해 최고의 애니메이션 흥행작은 뭐냐를 놓고 겨룰 후보들이면서, 세 편 모두 3D로 제작돼 세월의 대세가 3D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 빅3 중의 첫 작품, '드래곤 길들이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활주 장면의 박진감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더군요. 스토리 탄탄, 주인공 매력 만점, 특히 나이트 퓨리 투스리스 귀여움 만점. 더 바랄게 없는 홈 엔터테인먼트 상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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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스칸디나비아 북쪽 어느 섬에 사는 소년 히컵(제이 버루첼)은 머리는 좋지만 쓸데없는 공상에 매달리고 체력이 형편없는, 흔히 미국 고등학교를 다룬 영화에서 힘센 깡패나 풋볼 선수들에게 치여 사는 캐릭터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기계 제작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꿔놓는 데에는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지만 마을 전체와 족장인 아버지 스토크(제러드 버틀러)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마을을 용의 습격으로부터 지켜낼 용감하고 날쌘 전사입니다.

또 한번 용들의 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날 밤, 히컵은 자체개발한 장거리용 요격 무기로 다양한 종류의 용들 가운데서도 아무도 잡아 보지 못한 나이트 퓨리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 합니다. 결국 나이트 퓨리를 맞혔지만 증인이 아무도 없어 증명하지 못했던 히컵은 마침내 산넘고 바다건너 자신의 무기에 의해 격추(?)된 나이트 퓨리를 발견합니다. 그리곤 우여곡절 끝에 그에게 투스리스(Toothless)라는 이름까지 붙여주고 친구가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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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은 충분히 했으니 이제부턴 그냥 얘기들입니다. 뭐 스포일러라고 할만한 부분도 꽤 있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촌스러운 일일 듯 합니다. 대략 읽어 보시고 보러 가셔도 큰 탈은 없을 듯 합니다.

영화 중간 정도까지만 보면 이 애니메이션이 담고 있는 정치적 함의랄까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은 장님만 아니면 다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똑똑한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라면 충분히 알만한 얘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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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에서 인간과 용은 공존할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용에 의해 수많은 바이킹들이 목숨을 잃고, 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 바이킹들의 가치는 용과 싸울 수 있는 전사냐 아니냐에 의해 정해질 정도입니다.

하지만 투스리스를 직접 대해 본 히컵의 생각은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서로 맞닥뜨렸을 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는 것은 인간이나 용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 버린 것이죠. 공포가 상대에 대한 잔혹한 학살을 이끌어내고, 그 학살이 계속 악순환을 일으킨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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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용들이 그렇게 악착같이 인간들의 삶의 터전을 건드리는 '진짜 이유'에 대해서는 다소 동화적인 설명으로 끝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한계이고, 현실에 대해선 아무런 해결책도 내놓을 수 없는 나이브한 시도인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물론 여기선 미국 관객들을 말합니다)에게 최소한의 메시지라도 전해 보자는 시도가 그렇게 밉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뭐 이런 정도의 시도까지도 '미국 외 시장에서 좀 더 잘 팔아먹자는 장삿속'이라고 욕하실 분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앞글에서도 얘기했듯,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에도 약간 비슷한 시도가 등장합니다만, 그 시도라는게 영 생뚱맞고 어처구니없었던 반면 '드래곤 길들이기'에서 이런 시도는 영화에 전혀 껄끄럽지 않게 맞아 떨어집니다. 무엇보다 공포의 상징이었던 투스리스가 너무나도 귀엽고 천진난만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는 게 주효했을 겁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여러 해 전, 갑자기 '유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일본 여배우 후에키 유코가 언제든지 현해탄을 건너 돌진할 듯 하던 대한 청년 남아들의 반일감정을 봄눈 녹이듯 사라지게 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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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탄탄하고 앙증맞은 줄거리와 캐릭터 외에 가장 칭찬하고 싶은 것은 3D의 박진감을 최대한으로 살려낸 투스리스의 비행 신입니다. 제대로 4D를 가동한다면 멀미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감나는 멋진 시각 경험이었습니다. 20여년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영화 '파이어폭스'를 보면서 느꼈던 시원함은 다시 보면 별 감흥이 없겠지만... 아무튼 그 무렵의 감흥이 되살아나는 느낌입니다.

저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결론은 매우 강추.




P.S.1. 문득 히컵의 캐릭터를 보면서 왕년에 국내에서도 방송됐던 '슬기돌이 비키'라는 만화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바이킹 족장의 아들이지만 힘과 용기보다는 지혜로 자기 몫을 하는 바이킹 소년 이야기... 뭐 그리 동떨어진 건 아닌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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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이 만화영화의 실사판도 만들어졌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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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히컵의 로망인 아스트리드의 모델은 어쩐지 '윔블던'의 커스틴 던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 물론 목소리는 던스트가 아니었습니다만... 어쩐지 일치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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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Prince of Persia)'의 타이틀 롤을 제이크 질렌할이 맡고, 제작사가 디즈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상태에서부터 어쩌면 결과는 충분히 예상됐다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어쨌든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제작을 맡은 월트 디즈니사와 프로듀서 제리 브룩하이머의 머리 속에 무엇이 있었을지는 매우 분명합니다. 바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였죠.

양측이 힘을 합쳐 이뤄낸 '캐리비안' 시리즈는 3편까지 제작되며 수억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들은 디즈니라는 회사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방향, 즉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즐길 수 있고, 필요 이상의 폭력이나 피, 성인용 화면을 배제하면서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재미를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영화라야 한다는 점을 충분히 충족시켰습니다.

그리고 '캐리비안'으로 톡톡히 재미를 본 디즈니사와 브룩하이머는 다시 한번 비슷한 프로젝트를 가동시켰습니다. 이번엔 무대가 페르시아로 옮겨졌을 뿐, 두 프로젝트는 역시 여러 모로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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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는 매우 전형적인 영웅 이야기로 흘러갑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전성기, 지혜로운 샤라만 왕(로널드 픽업)은 동생 니잠(벤 킹슬리)와 함께 제국을 통치하던 어느날, 거리의 씩씩한 거지 소년 다스탄(제이크 질렌할)을 이미 두고 있던 두 아들의 동생으로 입양합니다. 세월이 흘러 다스탄은 두 형인 터스, 카시브와 함께 성스러운 도시 알라무트로 진군합니다.

샤라만은 알라무트를 함부로 침공해선 안된다고 말하자만 이들은 알라무트가 페르시아의 적들에게 몰래 무기를 공급하고 있다는 정보를 믿고 성을 공격해 함락시킵니다. 알라무트의 공주 타미나(제마 아터튼)는 침략군으로부터 가장 중요한 보물인 수정 손잡이의 단도를 지켜내려 하지만 이 단도는 다스탄의 손에 들어갑니다. 다음 왕이 될 터스는 알라무트를 안정시키기 위해 타미나를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하죠. 하지만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단도에는 세계의 역사를 바꿔 놓을 수도 있는 힘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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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소년이 왕자가 되는 이야기는 아라비안나이트 풍의 이야기에서는 드물지 않게 등장하곤 합니다. 어쨌든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는 많은 사람들이 286 컴퓨터와 VGA용 모니터를 처음 보고 감동하던 시절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왼쪽에 있는 초기형 '페르시아의 왕자'가 요즘은 오른쪽의 모양으로 바뀌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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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게임이 있건 없건 간에 제이크 질렌할은 로맨틱 가이에서 액션 영웅으로 변신하고 싶다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이행했습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득을 본 것은 질렌할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쁘장한 범생이 이미지였던 이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텁수룩한 수염으로 병사들과 땀을 흘리며 씨름하는, 병사들이 좋아하는 왕자 이미지로 훌륭하게 변신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나머지 부분들은 그다지 좋게 얘기하기 쉽지 않습니다. 일단 이 영화에는 가장 중요한 요소, 즉 매력적인 왕자는 있었던 반면 그 하나 빼고는 없는 것 투성이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가장 먼저 결여된 것으로는 '플롯'을 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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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작진은 이런 얘기에 콧방귀를 뀌었을 겁니다. "플롯? 스토리? 대체 그런게 뭐가 중요해?" 라는 말이 당장 나왔을테죠. 왜냐하면 이 팀은 바로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대 히트작으로 만든 그 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플롯이 없기로는 '캐리비안의 해적'이나 '페르시아의 왕자'나 거의 차이가 없죠.

하지만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리고 '페르시아의 왕자'에는 없는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바로 조니 뎁이라는 변수입니다. 이 배우는 잭 스패로우 선장의 옷을 입었을 때, 그야말로 다른 모든 요소를 잊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심지어 상당수 관객들은 영화의 줄거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상당히 많은 관객들이 지금도 '캐리비안의 해적'의 줄거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저 잭 스패로우의 동선을 따라 관람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행히도 '페르시아의 왕자'에는 조니 뎁도, 그 역할을 할 배우도, 그와 비슷한 캐릭터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왕자와 공주가 전면에 서게 되고, 관객의 눈길을 끌 다른 요소도 없으므로 스토리의 난맥상이 그대로 노출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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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문에 도중에 등장하는 산적 마을이나 타조 경주 같은 에피소드는 별 재미 없는 시간때우기였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고, 다스탄이 천신만고 끝에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달려가는 부분은 지루하게만 느껴질 뿐입니다. ...그리고 이 영화 최고의 볼거리인 모래시계 신은 '아무도 악당이 이길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 가운데' 공허하게 지나가 버립니다. 한마디로 12세가 넘은 관객에겐 그냥 허전한 결말일 뿐입니다.

또 '페르시아의 적'들에게 무기를 공급했네, 알라무트에 병기창이 있네 없네 하는 얘기는 정말이지 헉 소리가 납니다. 이런 영화에 무슨 이라크의 생화학 무기와 미국의 2차 걸프전 이야기까지 들어간단 말입니까. 이건 '이누야샤'에서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를 논하는 거나(물론 다카하시 선생은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인 미친 짓이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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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가 넘은 관객들에게 또 하나, 엄청나게 불만스러운 요소는 가장 매력적이어야 할, 그리고 영화 속에서는 '성스러운 도시보다 더 아름다운'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공주 캐릭터와 등장하는 배우의 불일치입니다.

영미인들에게[는 어떻게 보이는지 모르지만, 대체 이 배우가 왜 이렇게 잇달아 메이저 영화에 중요한 역할로 등장하는지는 제겐 참 불가사의일 뿐입니다. 물론 그 전이라고 비슷한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리 놀랍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 배우는 진 트리플혼이나 줄리아 오몬드 같은 선배들의 뒤를 따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제작진은 페르시아의 왕자 역시 2편, 3편으로 가는 시리즈를 기대했겠지만 일단 지금 만들어진 1편을 봐선 큰 기대는 가지 않습니다. 결국은 '온 가족용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어른 관객들을 아예 배제해버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만약 다른 제작사였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 다음 줄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래도 보실 분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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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를 본 뒤 동행인과의 대화.
그: 악역이 누군지 너무 뻔히 보여. 영화 결말이 다 보이잖아.
나: 왜?
그: 매일 악역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으니까 누가 진짜 나쁜놈인지 다 알지.
나: ...그 양반 그래도 왕년엔 '간디' 역으로 나온 사람인데.
그: 그래? 아무튼 너무 악당 얼굴이야.

뭐 다시 보니 그렇긴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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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의 두번째 극장판이 27일 미국에서 개봉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예정대로 6월10일 개봉이라고 합니다. 월드컵의 열기로 극장 비수기겠지만 어차피 '섹스 앤 더 시티'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들은 축구를 발로 하는지 손으로 하는지 별 관심이 없는 분들일테니 과감하게 정면 승부를 해 보겠다는 것이죠. (눈치없이 한국 경기 시간에 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남편이나 남자친구를 들볶는 분들은 안 계시겠죠?^) 어쨌든 잠시 여기서 영화를 미리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자막이 있는 고국에서 보기로 맘먹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논란은 여전합니다. 이 영화가 표방했던 '매력있고 유능한 뉴욕 여성들'을 연기하기에 이 주연배우들이 너무 나이가 들었다는 주장에서부터, 과연 이런 영화가 존재해야 하느냐는 해묵은 주장이 되살아나는 등 극장판 2편의 개봉에 맞춰 '섹스 앤 더 시티'가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 이제는 '진부해진' 영화가 미국 예매 시장에서 디즈니의 야심작 '프린스 오브 페르시아'를 압도하고 있다는 건 이 시리즈가 가진 위력을 재확인시켜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득 2년 전, 첫번째 극장판이 개봉할 때 썼던 글이 생각났습니다. (네. 자백하자면 재활용입니다). 2년 전과는 다른 분들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궁금합니다.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제목에 대한 답으로 '캐리가 너무 못생겨서'라고 댓글을 다시는 분은 3대가 고자가 된다고 합니다. (옛날 집에선 이 댓글만 200개 정도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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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2010년 5월말 현재 imdb.com에 올라온 '섹스 앤 더 시티' 1편의 평점은 5.4입니다. 그런데 그 내막을 보니 참 심각한 차이가 있더군요. imdb에 이 영화의 평점을 매긴 사람들 중 남자가 23786명, 여자가 16579명입니다. 그런데 남자들은 평균 4.9점을, 여자들은 7.0라는 꽤 높은 평점을 매겼군요. 그래서 평균이 5.4입니다.

자, 남자들과 여자들의 평점에 차이가 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상식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투표 자체를 남자들이 훨씬 더 많이 했다는 점이 매우 희극적입니다. 남자가 1.5배가 넘는군요. 물론 imdb 이용자 중엔 남자가 더 많겠지만, 이 정도로 남자가 많다는 건 상당한 수의 남자들이 영화는 아예 보지도 않고 낮은 점수를 매겼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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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많은 지지를 보이는 사람들이 18-29세 연령층이로군요. 즉,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는 사람들입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여자지만 18세 이하 계층은 평점이 5.8밖에 되지 않네요. 남자들은 전체 연령층에서 별 차이가 없지만 연령의 상승과 함께 조금씩 평점이 높아지는 반면, 여자들은 오히려 고령으로 갈수록(정작 '섹스 앤 더 시티' 주인공들의 연령층이 될수록?) 지지가 조금씩 낮아집니다.

네. 이 표로 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실은 '한국 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섹스 앤 더 시티'를 그리 탐탁치 않게 여기는 남자들이 널려 있다는 겁니다. 아마도 세계 어디를 가나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나라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되지만, 대체 왜 그런가에 대해서도 상호간의 이해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제목부터 그렇지만 이 글은 이 드라마(혹은 영화)에 대한 남녀간의 인식 차이에 대한 글입니다. 그리고 아주 당연히, 제 자신의 경험과 시각에 의한 글입니다. 그러니 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비판의 근거는 이 글 안에서 가져오시는게 좋겠습니다.

(워낙 '하지도 않은 말'에 의한 비판에 질린 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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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를 포함해 상당히 많은 남자들이 이 드라마를 흥미롭게 지켜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얘기하자면, 이 드라마는 스토리의 전개 방식이나 재치있는 대사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 한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재미도 없는데 꼬투리나 잡아 보자는 마음으로 6시즌 짜리 드라마를 다 봤다면 그건 정신병자죠.

뭣보다 캐릭터의 구축 면에서는 완벽에 가깝죠. 패셔너블하고 매력적이지만(물론 반감을 가질 분도 있겠지만 설정이니까 넘어갑시다) 실제 생활에서는 겉똑똑이인 캐리, 허영심도 강하고 사고도 잘 치지만 의리 하나는 돌쇠인 사만다, 항상 "넌 예쁘니까 잘 될거야" "그래, 그 남자가 널 안 좋아할 리가 없어" 같은 말만 해 주는 착한 공주 샬롯, 머리도 좋고 판단력도 뛰어나지만 많은 남자들이 '그냥 친구'로 생각해버리기 쉬운 미란다 같은 인물들의 묘사는 정말 살아 숨쉰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뭐 그 주변의 수많은 남자들 중에는 별 이상한 놈들이 다 있지만, 원래 드라마의 지향이 '네 여자가 만나는 오만 이상한 놈들 이야기'이니 그걸로 이 드라마가 편견을 갖고 있다든가 하는 얘기를 하는 건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 드라마의 장점을 하나 더 얘기하자면, 일단 이 드라마를 통해 많은 남자들은, 여자들이 생활에서 겪는 사안 - 특히 연애 문제 - 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아울러, 여자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그리고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느낄 수 있게 하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여자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자신의 약점을 감출 수 있는지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네. 이 드라마를 열심히 보면 당신도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이 드라마를 통해 득을 볼 수 있는 남자들은 여자들을 속이는 나쁜 남자들이 될 가능성이 높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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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이 드라마의 제작진은, 주 시청층인 여자들에게도 가끔 의미 있는 통찰을 제공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여자들이 얼마나 남자들에 대해 모르는지를 알려 주려고 하죠. 남자들이 여자들에 대해 너무나 모른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네 주인공들이 노상 하는 한탄이지만, 가끔씩 어떤 남자 등장인물들은 "그럼 니들은 남자에 대해 잘 아니?"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잭 버거가 말하는 "He's just not that into you"라는 대사죠.



그리고 이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들은, '때로 이 드라마에 대한 공격에 다소 과민한 자신의 팬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남자들에게 우호적입니다.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남자들 중에는 찌질이도, 훈남도, 악당도, 섹스 중독자도 있지만 대체로 이 드라마의 네 주인공들은 최소한 이 세상이 남자 없이 자신들만으로 돌아간다고 결코 생각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남성의존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있습니다. 남자들보다 이 드라마를 강하게 혐오하는 사람들이 바로 페미니스트들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자칭 페미니스트 중에는 이 드라마를 여권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 합니다. 남자들만 이 드라마를 엉뚱하게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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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섹스 앤 더 시티' 옹호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이 드라마에 나오는 네 친구의 우정, 용기, 세상을 살아가는 낙천적인 자세, 미란다나 사만다의 희생이 의미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이 판타지라고(혹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판타지 영화도 '말이 안 되는 부분'만으로 이뤄져 있지 않습니다. '스타 워즈'도 한 솔로와 레이아의 사랑이나 어린 다스 베이더와 오비완의 우정(혹은 사제간의 정)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진짜' 감정이기 때문에 '스타 워즈'는 판타지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바보라는 말 밖에 못 듣겠죠. 판타지는 설정과 장치에 해당되는 말인 겁니다. 그러니 '섹스 앤 더 시티'의 일부만 보고 판타지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은 영 남의 다리를 긁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죠.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판타지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바보짓이죠. 판타지라는 게 뭡니까. 판타지란 '어린이에겐 꿈과 희망을, 성인들에겐 잊혀진 어린 시절의 꿈을' 주는 것이기도 하고 또 피곤한 일상사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비상구를 마련해주는 도구입니다. 맞습니다. 남자들이 '007'이나 '친구', '영웅본색'을 보면서 잠시 10대 소년이 되는 것처럼 여자들도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면서 일상을 잊을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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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적대적인 이유는 뭘까요. 그건 이 드라마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이, 이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들 중 지적으로 취약한 일부 사람들을 아주 형편없는 방향으로 끌고 갈 위험성이 농후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폐해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죠.

이 드라마는 어떤 사람들에겐 "아니 옷이나 구두가 중요하지 사람의 교양 같은게 무슨 소용이야?"라고 읽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에겐 "요리? 청소? 옷장 정리? 그런건 개나 주라고 해. 캐리같은 멋진 커리어 우먼들은 그따위 건 안 하잖아?"라고 읽히기도 하죠. 또 명품에 대한 남다른 집착, 그리고 소비를 통한 자아실현이라는 비정상적인 가치관에 대해서도 "당연한 거 아냐? 뉴욕에 사는 멋진 성공한 여성들도 원래 다 그렇게 한다구"라는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네 주인공이 과연 옷과 백, 구두, 장신구나 미용,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좋은 남자 만나는 일' 이외에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개척하겠다든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겠다든가 하는 일로 고민하는 장면을 보신 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배울 만큼 배우고 벌 만큼 버는 여자들에게도 인생을 채울 일은 저게 전부라고 생각하게 하는 건, 결국 남자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머리 텅 비고 명품이나 밝히는 된장녀'들이 자신의 태도를 합리화하는 데 악용될 여지가 크다는 얘깁니다.

(아, '대가리에 든건 술과 여자, 돈과 거드름밖에 없는 이상한 놈들'을 욕하고 싶으시면 마음대로 하세요. 그리고 그런 놈들을 합리화하는 이상한 드라마 - 만약 있다면 - 를 좋아하는 남자들도 욕하고 싶으시면 역시 원하시는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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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드라마의 기획 의도 가운데 상당히 중요한 목표가 바로 '소비 촉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분들도 없겠죠. PPL이 등장하는 수없이 많은 다른 영상물들과 마찬가지로, '섹스 앤 더 시티' 역시 수없이 많은 브랜드들을 널리 알리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비교의 대상으로 삼는 '007'에 한번 비쳐 보겠습니다. 이 영화를 본 남자들이 애스턴 마틴 스포츠카나 보드카 마티니, 크루그 샴페인 등에 갖는 집착과, '섹스 앤 더 시티'를 본 여자들이 샤넬이나 돌체앤가바나, 코스모폴리탄 칵테일이나 주말 브런치에 보이는 열정이 과연 비교가 되던가요. 여기서 '007'과 '섹스 앤 더 시티'는 결정적으로 결별합니다.

새로운 세대에게는 '가쉽 걸'같은 드라마들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결국 10대 때부터 많은 소녀들에게 '나도 저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여주인공은 별로 화려하지 않은 남자 주인공을 좋아하지만, 그 대가로 남자친구(혹은 그와 비슷한 사회경제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초 부유층이라고 해서 사는게 늘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한발 더 나아가 역설적으로, 늘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것도 그리 나쁜 삶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죠. (그런데 참 이 드라마 역시 무척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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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부분이야말로 매우 지엽적인 것이고, '섹스 앤 더 시티'의 굳건한 주제는 한때 사만다가 에미상 수상 소감으로 얘기했듯 "남자들은 항상 스쳐 지나가지만 여자들은 남는다", 즉 주변에서 연애를 어떻게 하고 무슨 일이 일어나건 서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되는 네 친구들은 영원하다는 것이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충분히 수긍합니다. 이 때문에 여자들은 "우리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은 남자들이 이 드라마의 세계에 대해 이해할 리가 없잖아"라고 말하곤 하죠.

그런데 한번 이런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게 '계집들이야 가면 또 오는 거지만 친구간의 우정이야 무엇보다 소중하지!'라고 외치며, 집에 잘 들어앉아 있다가도 친구들로부터 '콜'만 오면 달려나가는 '남자들의 진한 우정' 아니었던가요?

여자들의 이런 말을 들으면 수백년 수천년 동안 술취한 남자들이 버럭 내뱉었던 "아녀자들이 대장부의 세계에 대해 뭘 안다고!"가 떠오릅니다. 남자들의 이런 태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실 분은 아마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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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하는 의미로 몇줄 붙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이 드라마에 대한 추억을 탄성을 토해가며 이야기할 때 옆에서 뭐 씹은 표정으로 앉아있는 남자친구나 남편이 있다면, '아, 저놈이 내가 또 뭐 사달랠까봐 미리 분위기 잡는구나'라고 생각하실 일 만은 아닙니다. 단지 경제적인 압박에서 오는 공포 외에도, 그 남자들에게는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가, 혹은 자기가 친애하는 여자가 '단지 물질에만 집착하는' 여자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점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섹스 앤 더 시티' 얘기가 나오면 툴툴대는 남자들에게 "너 된장남이지? 이쁘고 능력있는 여자들이 너를 거들떠 보지도 않아서 삐진거지?" 혹은 "넌 남자라서 어쩔 수 없어. 여자들만의 가슴 벅찬 사연을 니가 어떻게 이해하겠어(위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지난 1000년간 남자들이 해 오던 대사죠)"라고 말하는 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우를 만난다면, 웃으면서 "난 그렇게 물건에 목숨 건 여자가 아니야"라고 설명해 주세요. 그리고 쇼핑과 남자 만나는 일 외에도 여러분의 인생에 의미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는 걸 보여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남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정말 그게 전부인 여자' 들이니까요. 하지만 만약 정말 '그게 전부'라면, 그래서 상황이 심각해지는 건 누구도 말릴 수 없겠군요.^^


P.S. BABY BIG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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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녀'는 흥미로운 블랙코미디(물론 제 생각입니다)인 것을 넘어서서 한 폭의 흥미로운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영화 속에 흐르는 음악, 잠깐 읽어주는 동화, 그리고 이 가족의 딸 나미가 받는 생일 선물에도 모두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숨겨진 의미는 모두 저 혼자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제발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만). 이 글을 읽어 보신 분들도 '원 별 생각을 다 했군'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역시 제발 그렇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무튼 그냥 저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암호는 음악, 동화, 그림을 통한 것입니다. 세기에 따라 세가지가 넘을 수도 있겠지만 장르별로 나눠서 그냥 세가지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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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서 안내글을 덧붙이자면, 이 글은 '하녀'에 대한 리뷰가 아닙니다. 리뷰를 보실 분은 먼저 앞의 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글은 어쩔수 없이 '하녀'에 대한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 기대하는 최적의 권장사양은 (1) 영화 '하녀'를 보고, (2) 제가 쓴 앞의 '하녀' 리뷰도 보신 분입니다. 혹시 '너때문에 원치 않는 영화의 내용을 알게 됐어!'라고 화내실 분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이 글을 얼른 닫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더 앞으로 나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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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는 음악입니다.

일가족이 모여 있는 장면. 나미는 언제나처럼 무표정하게 앉아 있고, 가족들은 앉아서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은이가 가져온 와인을 마십니다. 이 대목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enier)'에 나오는 마달레나의 아리아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La Mamma Morta)'입니다.

'안드레아 셰니에'는 프랑스 혁명기, 혁명 지도부의 지나치게 과격한 노선에 반발하다 반혁명분자로 몰려 죽음을 당한 시인 안드레아 셰니에를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극중 셰니에의 연인인 마달레나는 혁명 때문에 몰락한 귀족의 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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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내용은 '그들이 내 어머니를 죽였지. 어머니는 나를 보호하려다 돌아가셨어'로 시작해 자신이 부모를 잃고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하녀 베르시가 자신을 키우기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지를 한탄하는 것입니다. 임 감독이 주목한 것이 이 노래의 가사가 다루고 있는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이든, 혹은 혁명가로서 어정쩡했던 셰니에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건 이 영화 속에 나오는 이 노래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오페라 아리아로는 본래 유명하지만 영화 '필라델피아'에 마리아 칼라스의 노래로 삽입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바로 원조격인 칼라스의 노래입니다.

 
그리고 이정재가 전도연이 날라다 주는 아침을 먹기 전 치는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일명 '템페스트'의 3악장입니다. 천재 소녀 나미가 출근하는 아빠에게 "베토벤 잘 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그 곡이죠. 이 '템페스트'는 바로 셰익스피어의 희극 '템페스트'를 가리킵니다.

아시다시피 '템페스트'는 세상을 피해 외딴 섬에 살고 있는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가 그 섬에 표류해온 잘생긴 퍼디난드를 보고 한눈에 반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을(물론 이것보다는 프로스페로의 복수와 용서가 더 큰 주제지만)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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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템페스트'의 내용이 피아노를 멋지게 치고 있는 훈을 보는 은이의 심경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이런 내용을 암시한다고 하면 1악장을 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었겠으나, 화면상의 효과를 위해서라도 알레그로의 3악장을 치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겠죠.

베토벤-리스트의 진전을 잇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빌헬름 켐프의 연주입니다.





다음은 동화가 등장합니다. 은이가 나미에게 읽어주던 동화죠. 아마 기억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동화의 제목은 '어느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려서 안데르센 전집을 읽은 덕에 어렴풋이 기억이 나더군요.

정확하게 찾아 보니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젊은 어머니가 병든 어린아이를 돌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밤낮을 새며 죽음의 신이 아이를 데려가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깜빡 잠든 사이 죽음은 아이를 데려갑니다.

놀란 어머니가 따라나서 죽음이 간 방향을 묻습니다. 질문에 대답하는 밤의 정령은 대답하는 댓가로 어머니의 아름다운 노래를 요구합니다. 이처럼 이 어머니가 가는 길마다 길을 가르쳐주는 댓가로 세상은 여러가지를 요구하죠. 숲의 가시나무는 어머니의 가슴으로 자신을 안아 따뜻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어머니는 가슴에서 피를 뚝뚝 흘리지만 자식을 찾겠다는 집념으로 이겨냅니다.

은이가 읽어주는 대목이 바로 호수가 죽음에게 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댓가로 어머니의 '파란 사파이어같은 눈'을 요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렇게 어찌 어찌 해서 어머니는 죽음의 정원에 도착합니다. 이 정원에서 자라는 화초들은 모두 누군가의 목숨이었던 겁니다.

어머니는 눈도 보이지 않지만 심장 박동 소리만으로 어느 것이 자신의 아기인지 알아차립니다. 죽음은 어머니의 도착에 놀라 대체 어떻게 자신을 찾아올수 있었는지 묻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대답합니다. "나는 어머니이니까요." (이 뒤로도 이야기는 길게 이어집니다만 이후는 생략.)

이 동화를 엿듣기라도 했는지 혜라는 은이가 "절대 아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리고 이 '어느 어머니 이야기'는 은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복선(?)이라고 할 수 있겠죠. 아무튼 의도적으로 이 동화가 배치된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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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미술입니다. 사실 너무 눈에 띄어서 암호라고 하기도 민망합니다. 'LOVE'라는 야외 전시물로 유명한 로버트 인디애나가 마릴린 먼로를 주제로 제작한 실크스크린 작품이죠. 역시 천재소녀 나미가 "비싼 선물"이라는 아빠의 말에 "인디애나 작품이니까 당연히 비싸겠죠"라고 대답하는 그 작품입니다. (위의 작품 말고도 인디애나의 작품 중에는 저 작품과 흡사한 마릴린 먼로에 대한 작품이 또 있습니다. 그중 영화에 나온게 어느 건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중 하나입니다.)

혹시나 관객들이 이 그림을 못 알아보기라도 할까봐 임상수 감독은 옆에 마릴린 먼로로 분장한 엄마 혜라를 붙였습니다. 혜라는 여기서 그 유명한 "해피 버스데이, 미스터 프레지더언트'를 흉내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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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지난번 글에서도 다뤘지만, 그저 마릴린 먼로 역시 대통령과 관계를 맺을 때에는 좀 더 신중하게 주변 상황을 고려했어야 했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더 깊은 뜻이 있는지 불분명합니다. 대략 먼로의 죽음 역시 좀 더 조심하지 않은데서 온 자업자득이라는 얘기일지... 뭐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들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일수도... 아무튼 그렇습니다.

마릴린 먼로가 그 노래를 부른 건 1962년 5월19일의 일입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45회 생일을 열흘 앞둔 날이었더군요.^^ 이런 장면입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대략 이 정도입니다. 혹시 이와 비슷한 다른 암호를 발견하신 분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물론 제가 암호라고 생각한 것들이 임상수 감독에게는 '어라? 나는 그냥 별 생각 없이 쓴 거였는데?'에 해당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뭐 저도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아무튼 수수께끼 풀이는 항상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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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여러분의 일반적인 생각보다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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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녀'가 관객 동원 1위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이지 '하녀'가 '로빈 후드'와 '아이언맨2'를 제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으니까요. 칸 영화제와 관련된 마케팅의 힘은 무섭더군요. 물론 1960년작 '하녀' 때문은 아닐 것이고, 아무튼 막강한 부를 지닌 남자와 그 집 하녀 사이의 불륜이라는 소재는 상당히 관객을 끌어들일만한 요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작 '하녀'에 대해서는 다양한 호평과 혹평이 흘러다니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평은 '배우들은 잘 했는데 영화가 갸우뚱'이라는 식이더군요. 개인적으로 임상수 감독의 2010년작 '하녀'를 본 느낌의 요약은 '참 잘 만들어진 블랙코미디'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어떤 극적 긴장감이나 스릴러의 느낌을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실망했겠지만, 그것이 실소든 폭소든 보고 있으면 꽤 많이 웃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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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 다 아시겠지만 줄거리 요약부터 하자면-

식당 보조로 일하던 은이(전도연)는 어느날 대단한 집안의 수석 가정부인 조여사(윤여정)에 의해 입주 가정부로 채용됩니다. 들어간 집안에는 훈(이정재)과 만삭의 혜라(서우) 부부, 그리고 이들의 딸인 나미가 살고 있습니다. 은이의 역할은 주로 나미의 육아 부분에 집중되고, 은이는 나미와 급격히 친해지면서 입주 가정부의 나날에 만족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조여사를 뺀 나머지 네 사람이 겨울 휴양차 온천장을 찾은 밤, 거의 나신으로 잠을 자던 은이 앞에 훈이 나타납니다.

영화가 개봉된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그냥 영화를 소개하는 걸로는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에 대한 의견은, '블랙코미디로 소비하실 분은 보셔도 무방하다' 정도입니다. 뭔가 더 대단한 상징이나 보물을 찾는 분들이라면 다소간 실망하실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특히 신기하게도 남성 관객들보다는 여성 관객들의 만족감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미 보신 분들이나, 절대 이 영화를 안 보실 분들은 계속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지금 떠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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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은이가 일하던 식당의 먹자골목에서 시작합니다. 많은 '아줌마'들이 분주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같은 여자들이지만 '아줌마'들은 일하고, '아가씨'들은 다양한 형태로 젊음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아가씨' 들중 많은 수가 저 일하는 '아줌마'들이 될 것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 사실은 은폐되어 있습니다. '아줌마'들은 '아가씨'들을 보면서 자신들의 젊은날을 돌이켜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가씨들에게 있어 아줌마들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문득 패륜녀 사건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은이는 식당에서 일한 마지막 날 밤 한 여자가 투신자살하는 사건을 접합니다. 이 사건을 접한 은이의 반응은 "우리도 구경갈까?"입니다. 그 여자가 왜 뛰어내렸는지, 죽어서 안타깝다든지 하는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영화의 전반부에서 거듭 거듭 강조되듯, 은이는 '둔한 여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의 살의 아픔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은이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신이 그런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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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보면 '하녀'는 은이에 대한 단죄의 드라마입니다. 인생을 민감하게 살지 못한 죄, 자신에게 닥쳐온 중대사들의 의미를 너무 쉽게 판단한 죄,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생각해보지 않은 죄, 도덕적이지 않은 유혹에 그냥 쉽게 대처하고 즐긴 죄(다시 말해 '제때 반항하고 항의하지 않은 죄'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 영화의 이런 요소들이 남자들보다는 여성 관객들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 은이가 하층민의 상징이라면,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의식화되지 않은 기층 계급에게 대단히 냉혹한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영화의 시선은 1차적으로 '부자들이란, 혹은 상류층이란 더럽고 냉혹하고 아더매치한 것들'이란 것이지만, 2차적으로는 '상황이 이 꼴이 되게 만든 건 너희들의 방관과 무관심, 비겁함과 안이함'이라고 비웃고 질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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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잘생기고 매너 좋고 피아노도 잘 치는 멋진 젊은 주인장에게 아침 식사를 날라도 주고는 저도 모르게 주인장이 치는 피아노 소리에 발장단을 맞춰 보기도 할 정도로 즐겁습니다. 나미는 귀엽고 똘똘한데다 착하기까지 합니다. 맛난 음식도 좋고, 아마도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대우도 부족하진 않았을테죠.

다만 감수해야 할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이 '하녀'라는 것을 상기시키듯 혜라는 은이에게 손발톱 관리와 속옷 빨래까지 시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이는 처지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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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이는 훈의 '웁스'를 들은 날 이후 줄곧 그가 자기를 덮쳐올 날을 기다렸던 것처럼 묘사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은이에게 '빨아!'라고 명령한 뒤, 양 팔을 벌리고 자아도취의 끝을 연기하는 이정재의 표정입니다. 훈의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있어 스무마디의 대사보다 효과적인 장면이었다고나 할까요.

어쨌든 은이는 훈과 몇차례 정사를 벌이는 동안 한번도 거부하거나 반항하는 몸짓을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훈이 수표를 줬을 때 급격히 실망하는 표정을 지을 정도입니다. 대체 은이는 훈에게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요. 그렇게 잘난 남자가 나에게 매혹됐다는 판타지가 끝까지 지속되기만을 바란 것일까요. 아무튼 이 영화 속의 은이는 확실히 '즐기고' 있습니다.

남의 남편과 정을 통해 아이까지 배고도 은이의 태도는 맹하기 짝이 없습니다. 잘못했다며 맞고 반항도 않고, 무릎까지 꿇으면서도 아이를 포기하란 말에는 '모르겠어요...'라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역시 이 대목에서 "아니 다들 그걸 어떻게 아시고..."라는 은이의 맹한 대사 한마디는 폭소를 자아냅니다.)

그러니까 은이에게는 그냥 사랑스러운 자식일 뱃속의 아이가 '그들'에게는 장차 수백억의 재산이 왔다갔다하는 큰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은이는 전혀 짐작하지 못합니다. 관객들이 이렇게 꽉 막힌 은이를 답답해 하는 동안 제 귀에는 '내가 보기엔 당신들이 더 답답해(혹은 당신들이 딱 저래)'라는 임상수 감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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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본 설정을 빼면 임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에서 가져온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굳이 리메이크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그냥 based on 정도라면 딱 적절할 겁니다. 1960년의 하녀가 너무 바보같으면서도 때론 영악하고 과격해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캐릭터였다면, 2010년의 하녀는 너무나 어리숙하고 맹해서 사리분간을 못 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주인공인 '하녀(혹은 가정부)'가 더욱 멍청하게 보이는 건 '주인집 가족'들이 그만큼 더 진화했기 때문일 겁니다. 대단히 머리 회전이 빠른 조여사가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주인집 가족들의 일처리와 판단은 눈부십니다.

딸의 지위를 위협하는 사위의 씨앗을 초전에 제압하려는 혜라 엄마(박지영 - 아직 미모가 싱싱한 40대 여배우가 '나미 할머니'로 등장하는 건 정말 클린 히트입니다)의 전략이나, "그 여자 절대 애 포기 안 해"라는 혜라의 판단에는 한치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모녀도 훈의 상대는 되지 못합니다. 하룻밤 불장난을 빌미로 사위의 기를 죽이려던 혜라 엄마의 시도는 "당신 딸이 낳아야 내 자식인 줄 알아?"라는 훈의 반격 앞에 산산히 부서지고, 오히려 혜라와 혜라 엄마가 죄인이 되어 버립니다.

한마디로, 정말 대단한 고수들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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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도로 진화한 '있는 자들'을 상대하는 건 애당초 은이에겐 절대로 무리. 결국 뒤늦게 '찍 소리라도 내고 싶다'며 반항에 나선 은이에겐 카드가 별로 없습니다. 어차피 목숨은 포기할 참이었지만, 불까지 붙는 건 정말이지 계산 밖의 일이었던 것이죠. (이 대목에서 용산 참사가 생각난다는 분도 있었습니다만, 만약 그렇다면 좀 너무 불경스러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코미디 영화라니까요.) 물론 대 저택에는 스프링클러가 있고, 은이의 죽음이 바꿔 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 왜 마릴린 먼로가 조명을 받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그림이나, 서우가 패러디하는 마릴린 먼로의 해피 버스데이 송은 대체 왜 삽입된 것일까요. 그저 마릴린 먼로의 비극적인 운명도 권력의 속성에 대한 무지와 철없는 방종으로 인한 자업자득이었다는 정도의 비유라면 좀 싱겁습니다만, 그 밖의 어떤 의미가 숨어있다면 그 또한 생뚱맞을밖에요. 혹시 허공에 뭐라도 있는 듯 화면 바깥쪽의 왼쪽 하늘을 바라보는 나미의 눈동자는 무엇을 향해 있는 것일까요. 은이의 망령이라도 거기 있는 걸까요?

요약하자면 제가 보기에 이 영화는 굳이 '사회 비판'이라는 흔한 말 보다는 임 감독이 대략 뚱그려서 진보 진영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에게 보내는, '농담과 자조 섞인 조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지향하고 있는 것은 뭔가에 대한 분노와 극복의 의지보다는 '허허'하는 웃음일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쩔 것이냐. 상대는 저렇게 날로 똑똑하고, 강해지고 있는데 당신들은 대체 어쩔 것이냐'는 식의....

그래서 이 블랙코미디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다만 그 이상의 기대는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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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다들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건 이정재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이 영화가 원하는 나르시즘을 몸에 밴 듯 표현해 낸 솜씨는 최고였다고나... 혹은 적절한 캐스팅의 힘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S.2. 개인적으로는 임상수 감독이 여기 저기 심어 둔 암호들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베토벤의 '템페스트',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 'La Mamma Morta', 안데르센의 동화 '어느 어머니 이야기', 그리고 위에서 얘기한 로버트 인디애나의 '마릴린 마릴린'과 서우의 패러디 등은 모두 줄거리와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여기서 다 하기엔 너무 길듯하고, 다른 포스팅으로 만들겠습니다.

P.S.3. 그런데 어쨌든, 이 영화가 이렇게 관객몰이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다른 분들은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이해하셨을지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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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코트의 '로빈 후드'가 개봉되기 전부터, 해외 리뷰들은 좀 시끌시끌했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로빈 후드 얘기냐!"는 얘기가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마그나 카르타'라는, 많은 사람들이 '그거 게임 이름 아냐?'라고 묻는 1215년의 대사건이 여러 리뷰에서 등장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로빈 후드 이야기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로 이 작품에 항변하고 있고,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 작품의 스펙터클을 '글래디에이터'에 비교해 비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 이 영화는 형편없는 졸작일까요?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밤늦게 본 영화 '로빈 후드'는 그냥 몇마디 말로 무시하기엔 충분히 볼만한 가치를 갖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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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 사자왕 리처드의 십자군 원정에 속해 있던 궁수 로빈 롱스트라이드(러셀 크로)는 어찌 어찌 하다가 리처드의 전사를 지켜보게 됩니다. 리처드의 휘하 기사인 로버트 록슬리로부터 자신의 칼을 고향의 아버지에게 전해 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받게 된 로빈은 어찌 어찌 하다가 로버트 록슬리의 대역을 연기하게 됩니다.

로버트의 고향인 노팅험에는 로버트의 아버지 록슬리 경(막스 폰 시도)과 아내 마리온(케이트 블랜칫)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편 리처드의 왕위를 이어받은 동생 존 왕은 실정과 무리한 세금 착취로 민심을 잃어가고, 이를 틈탄 프랑스 왕 필립은 존의 측근인 고프리(마크 스트롱)를 통해 잉글랜드 정복의 야심을 불태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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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존의 로빈 후드 이야기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시점입니다. 전통적인 로빈 후드 스토리에서 로빈 후드가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것은 리처드가 유럽 어딘가에서 인질로 잡혀 있던 12세기 말의 어느 시점입니다. 즉 '존 왕이 리처드의 몸값 지불을 명분으로 사방에 행정관(sheriff)들을 보내 닥치는대로 세금을 걷어들이며 포학질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스토리의 엔딩은 충신들의 노력으로 리처드 왕이 잉글랜드로 돌아오는 해피엔딩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로빈 후드 자신은 여자 수도원장의 음모에 따라 독을 먹고 죽게 되죠.)

하지만 이번 리들리 스코트의 '로빈 후드'는 아예 리처드의 죽음부터 이야기가 시작해버리니 이건 전혀 다른 얘기가 될 것이라는게 분명해집니다. 게다가 잉글랜드로 돌아온 로빈의 앞에는 만민 평등사상을 그 시대에 구현해 낼 혁명가로서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낱 궁수로 십자군 원정에 참가했던 병사가 잉글랜드의 지방 영주들을 규합해 대헌장 Magna Carta를 이끌어내는 시대의 영웅으로 변신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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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주장하는 것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로빈 후드 영화와 스토리의 프리퀄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만 일단 이렇게 시대가 달라져 버리고 나면 이건 역시 이 뭥미...라는 반응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습니다. 황당함을 느끼게 되는 첫번째 순간입니다. 각본가 브라이언 헬겔런드에게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짝퉁 '마틴 기어의 귀향(혹은 '서머스비')' 스토리는 뭔가 실소를 자아내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관객 중에 전통적인 로빈 후드 이야기에 밝은 사람이 그리 많을 리가 없으니(영/미권 관객이라면 너무나 친숙한 얘기겠지만 한국에도 뺑덕어미가 심청전에 나오는지 콩쥐팥쥐에 나오는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널린 세상이니 이게 그리 큰 흉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한국이나 온 세계의 관객들에겐 그러려니 할 일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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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래의 로빈 후드 이야기는 고작해야 수십명의 셔우드 숲 산적 패거리가 노팅험이라는 한 동네의 지방 행정관 혹은 영주와 벌이는 활극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갑자기 영화에서는 한 나라의 운명을 건 전쟁과 정치 이야기로 변신합니다. 이에 대한 어색함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과연 로빈 후드는 마그나 카르타의 주역이었을까요? 물론 그거야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필립 왕의 잉글랜드 침공 같은 것은 일단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국경은 도버 해협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리처드가 죽은 것은 1199년, 존 왕이 프랑스에게 결정적으로 패전한 것이 1214년, 그리고 마그나 카르타에 사인한 것이 1215년입니다. 그리고  1214년의 결정적인 패전으로 잃은 영토가 바로 북부 프랑스의 부르타뉴 지방인 것입니다. 그러니 프랑스군과 잉글랜드군이 헤이스팅스 절벽에서 한판 대결을 벌이는 것은 당나라와 연개소문이 대동강 강가에서 싸우는 것 같은 생뚱맞은 장면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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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물론 이것 역시 절대 다수의 관객들에게는 흠잡힐 일이 없는 사건인게 분명합니다. 많은 관객들은 '어쨌든' 영국과 프랑스가 싸우니 프랑스는 바다를 건너 와야 실감이 난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진짜 약점은 너무 빨리 휙휙 변하는 주인공 로빈 후드라는 캐릭터입니다. 그냥 잘 싸우는 군인이자 동료들에게 야바위 놀이나 하던 로빈이 너무 눈 깜짝할 사이에 시대의 깨인 정신이자 대군을 이끄는 명장으로 변신하기 때문입니다. 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며칠 사이에 당대의 검객으로 변신하는 견자를 탓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까짓거 어차피 영웅이 되고 말 것, 시간 끌지 말자는 거라면 좀 우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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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충분히 즐길 거리를 제공합니다. 가장 큰 미덕은 이 영화가 자신들의 배경이 12세기의 영국/프랑스 지역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런던의 영국 왕실은 배가 도착해 문이 열릴 때까지 리처드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깁니다.

하지만 더 옛날을 다룬 한국 사극에서는, 전장이 도성에서 사흘 거리든 나흘 거리든, 도성에 앉은 주인공들은 너무나 쉽고 간편하게 전장의 사정을 꿰뚫고 있습니다. 유능해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무심한 작가가 핸드폰이 있고 무전기가 있는 20세기와 당시를 혼동하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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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리들리 스코트가 충실하게 재현해 주는 그 시대의 전장은 그 자체로 충분히 감동을 자아냅니다. '글래디에이터'의 첫 신이, 수적으로는 훨씬 많았던 튜튼족이 왜 제대로 훈련받은 로마군에게 정복당했는지를 당시의 전술과 고증을 통해 충실히 보여준 명장면이었다면, 이번 '로빈 후드'의 도입부는 12세기 기준의 공성전을 신나게 보여줍니다.

아울러 이 시기로부터 300년 동안 유럽의 전장에서 잉글랜드군을 강군으로 소문나게 했던 장궁(longbow) 부대의 위력도 이 영화를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듭니다. 본격적으로 이 장궁부대를 활용한 것은 100년 정도 지난 뒤의 에드워드 흑태자Edward the black prince이지만, 이 시대부터 그 단초가 있었다는 건 충분히 그럴싸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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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해변 전투에서 사정거리 300m에 달하는 장궁부대가 적의 대열을 무너뜨리고, 그 틈으로 기병이 돌진해 기선을 제압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장궁대를 이용하는 전투의 모범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300'은 기본적으로 만화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이런 장면들의 가치가 다시 한번 부각될텐데, 아쉽습니다.

한마디로 스코트가 보여주는 전쟁은 그저 시작만 했다 하면 우리편과 적이 엉망으로 뒤섞여 개싸움을 보이는 한국 사극의 전투 신이나, 전투의 상리를 무시하고 무슨 짓을 하건 우리 편이 이기는 '반지의 제왕' 류의 판타지 전투 신과는 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 시대의 무기와 그 시대의 상식으로 남자들이 신명을 다해 싸우는 방식을 훌륭한 연출가가 반칙 없이 재현해 낸, 충실함이 느껴지는 장면들입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번 오우삼의 '적벽대전'의 어처구니없는 전투 신들이 떠올라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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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이 영화가 스토리나 주인공의 설정, 전개 방식에서 상당한 약점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이런 박진감 넘치는 신들은 다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부분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스펙터클이 글래디에이터만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뭐든 크고 화려하면 장땡이라는 식의 수준 낮은 시선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로빈 후드'는 개인적으로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극중 비중이 아주 크지는 않지만 리틀 존이나 터크 수사처럼 이미 유명 캐릭터가 되어 버린 로빈 후드의 조연들까지 제대로 살려 낸 감독의 시선은 이 스토리에 대한 애정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점을 다시 느끼게 해 줍니다.

(물론 여주인공 캐스팅은 대실망이지만 말입니다. 피터 잭슨에 이어 스코트까지 이렇게 실망스러운 선택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긴 십자군 전쟁에 시달리던 로빈이라면 누군들 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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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그런데 설마 '로빈 후드 2: 마그나 카르타' 같은 작품이 나오진 않겠죠.^^

P.S.2. 케이트 블랜칫이나 메릴 스트립의 외모에 대해 실망하는 얘기를 할 때마다 '어머 눈도 높으셔라 그정도면 환상적인 미녀 아닌가요'하는 댓글을 다는 여자분들이 있는데, 이제 지겨워서 한줄 붙입니다. 죄송합니다. 블랜칫보다 한 천배쯤 예쁜 마누라와 살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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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년 전, '아이언맨'이 개봉했을 때만 해도 끝나고 긴 크레딧 자막이 흘러가는 동안 남아 있는 분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언맨 2'가 끝났을 때, 무려 10여분에 걸쳐 노래 4곡이 흘러가는 동안에도 제가 본 극장에서는 약 1/4 정도의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기다리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네. 아이맥스관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보너스 영상(흔히 쿠키라고 부릅니다)이 있다"는 걸 알고 기다리는 분들이었겠죠.

이게 널리 퍼지다보니 어떤 분들은 "반드시 남아서 기다려야 한다"고 알고 있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어? 난 그런 말 못들었는데 뭐가 나와?" 하시기도 합니다. 또 "난 봤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있고, "그건 10분 이상 기다린 사람들에 대한 선물이니 본 사람들이 꼭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쨌든 못 본 분들, 보고도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한 포스팅입니다. 절대 "나는 내가 기다렸다 볼거야! 미리 알고 싶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지금 떠나시면 됩니다. 참고로, 그 부가 영상 내용은 '아이언맨2' 영화 줄거리와는 무관합니다. 그리고 꼭 기다렸다 보실 만큼 내용이 풍성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 한마디로 마니아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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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에서 한마디: 이 글은 '아이언맨2' 리뷰가 아닙니다. 리뷰는 며칠 전에 올린 다른 글에 있습니다. 뭐 별 말은 없고 그냥 '잔말말고 빨리 봐'라는 내용이지만(저는 '아이언맨2'에 실망했다는 분들을 좀 이해하기 힘듭니다. 제가 보기엔 '아이언맨'에 만족한 사람들이 '아이언맨2'에 기대했던 건 모두 실현돼 있는데 말입니다^^), 이쪽입니다.

 http://isblog.joins.com/fivecard/762

그리고 여러분이 혹시 보셨거나, 혹은 안 보고 일찍 나오신 부가 영상은 이런 내용입니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절대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지금이라도 그냥 가시기 바랍니다.)




'아이언맨2'가 끝나고 10여분의 자막이 다 흐르면, 뉴멕시코로 간다던 컬슨 요원의 모습이 드러나고, 컬슨 요원이 누구에겐가(아마도 닉 퓨리에게 하는 거겠죠) 흥분한 목소리로 "찾았습니다. 네. 그겁니다"라고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화면은 운석이 떨어진듯한 흔적을 비치고, 그 언저리에 있는 망치 하나를 보여줍니다.

네. 도끼 아닙니다. 망치 맞습니다. 날개 달린 투구와 함께 토르의 상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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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코믹스의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저 같은 사람입니다)이라도, 마블에서 나오는 만화(그래픽 노블이라고 굳이 부르지 않겠습니다) 가운데 '토르(Thor)'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만 알면 쉽게 느낌이 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번개의 신인 제우스는 헤카톤케일들이 만든 번개를 그냥 손으로 던지지만 북유럽 신화의 뇌신인 토르는 자신의 병기인 망치(묠니르 Mjolnir)를 이용해 천둥과 벼락을 만들어냅니다. 만화에서도 토르의 무기는 망치죠.

(흔히 북유럽 신화의 뇌신은 '토르'라고 표기하지만 사실 '쏘르' '쏘오르' 에 가까운 발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저 만화의 제목을 부를 때도 '쏘어'에 가깝게 부르는 듯 합니다. 또 '토르'라고 하면 역시 북유럽 신화의 전쟁의 신인 '튀르'와 혼동의 여지가 있는 등 '토르'는 그리 정확한 발음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혼란을 피하기 위해 그냥 '토르'라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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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아이언맨2'의 마지막 부분에 토르의 망치를 보여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많은 영화광들이 지적했지만 이 영화의 중간 부분에는 토니 스타크가 팔라듐을 다른 원소로 바꾸려고 입자가속기를 만드는 부분에서 "받침으로 쓰기에 딱 좋은 둥근 방패같은 물건"을 발견하는 신이 있습니다. 이 방패 역시 마블 코믹스의 대표 영웅 중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가 쓰는 물건의 잔해처럼 생겼습니다.

배트맨과 슈퍼맨, 원더우먼을 앞세운 DC 코믹스와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X멘 등을 내세운 마블 코믹스는 미국 만화계의 양대산맥이죠. 그리고 DC 코믹스가 자신들의 주인공인 영웅들이 총출동하는 '저스티스 리그' 등의 종합편을 갖고 있다면 마블 코믹스는 '어벤저'와 '시빌 워' 등의 작품에 역시 자신들의 시리즈에 나오는 영웅들을 총집결시킵니다. (네. 저도 안지 얼마 안 됐습니다.)

일단 마블 코믹스는 현재 '아이언맨2' 이후에, '토르'와 '캡틴 아메리카'의 극장판을 내놓을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제작에 들어갔죠. 이 시리즈와 관련된 마블 코믹스의 2011년 이후 라인업은 이렇습니다.

Captain America: The First Avenger (2011)
Thor (2011)
Nick Fury (2012)
The Avengers (2012)

물론 이밖에도 현재 3편까지 나온 '스파이더맨' 시리즈를 다시 뒤집어 엎는 'Spider-Man Reboot' 프로젝트도 있고, '엑스멘' 시리즈의 프리퀄이라고 할 수 있는 'X-Men Origins: Magneto' 등도 있지만 여기선 생략입니다. 어쨌든 아이언맨에 이어 캡틴 아메리카와 토르, 그리고 닉 퓨리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뒤에 종합편이라고 할 수 있는 '어벤저'까지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참 숨가쁜 라인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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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토르'의 주인공인 토르/도널드 블레이크 역에는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가 캐스팅됐습니다. 이름은 길고 낯설지만 영화 '스타트렉' 도입부에서 커크 선장의 아버지 역을 했던 배우입니다. 장신에 금발이 어울리는, 바이킹 전사같은 모습의 미남 배우입니다.

만화는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의사인 도널드 블레이크가 어느날 자신이 벌을 받으러 인간계에 떨어진 뇌신 토르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군요.^^  여주인공으로 나탈리 포트만이 나오는 걸 보면 캐스팅에도 꽤 신경을 쓴 듯 합니다. 감독도 무려 케네스 브라나. 헴스워스가 토르 분장을 한 모습은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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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토르라는 슈퍼히어로의 존재를 엘리자베스 슈가 10대 베이비시터로 나왔던 1987년작 '야행(Adventures in Babysitting)'이란 영화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엘리자베스 슈가 돌보던 괴짜 소녀가 열광하던 히어로가 바로 토르였고, 이 소녀는 극중 철물점에서 웃통을 벗고 일하던 장발의 미남 청년이 우연히 자기를 도와주자 "토르다!"라며 경배하죠. 그런데 지금 찾아 보니 그때 그 토르 역을 했던 배우가 바로 '맨 인 블랙'의 바퀴벌레 외계인 빈센트 도노프리오였습니다.^^ 
http://www.imdb.com/title/tt0092513/ 정말 유튜브의 세계엔 불가능이 없군요. 그 장면이 따로 편집돼 있는 영상입니다. ]




그리고 '캡틴 아메리카: 더 퍼스트 어벤저'의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 역은 크리스 에반스가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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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판타스틱4'에서 제시카 알바의 남동생인 불꽃 청년 역으로 잘 알려진 배우입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굳이 말하자면 원더우먼(성조기로 옷을 해 입었죠)의 남성판이라고 할 정도로, '미국의 이상'을 지향하는 슈퍼 영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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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이언맨'의 쿠키 영상과 '아이언맨2'를 통해 비밀 조직 S.H.I.E.L.D의 존재를 알린 닉 퓨리는 새뮤얼 잭슨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슈퍼 영웅이라기 보단 그냥 비밀 요원이지만, 이 유명한 슈퍼 영웅들을 하나로 엮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나서 이런 영화의 줄거리들과 영웅들은 '어벤저'에서 총집결하게 되는 겁니다.

(그림엔 울버린과 스파이더맨도 보이지만 설마 영화에 이 친구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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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이언맨'을 위시한 여러 영화들은 '어벤저'를 위한 사전 포석의 성격이 짙습니다. '엑스멘' 시리즈와는 반대의 전략이죠. '엑스멘'은 종합 시리즈를 먼저 보여준 뒤 등장인물 중 휴 잭맨이 연기하던 '울버린'이 이미 따로 떨어져서 극장으로 나왔고, 이어서 '데드풀' 등이 독립된 영화로 나올 예정입니다.

그런데 '아이언맨' 하나로도 세계 평화가 너끈히 지켜질듯한 이 국면에서 과연 이 많은 슈퍼 영웅들을 상대할 악당들이 그렇게 충분할지, 참 그것도 걱정됩니다.^^ 뭐 잘 알아서들 하겠죠.

P.S. 물론 그래픽 노블 마니아 분들이 보시기에는 제가 정리한 내용 중에 꽤 잘못된 내용도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은 너무 심하게 꾸짖지 마시고, 댓글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확인후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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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주간지 연재 때부터 박흥용의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좋아했더랬습니다. 함축적인 대사와 모난 데 없이 둥글둥글한 붓끝으로 매서운 칼잡이들의 세계를 담아내는 박흥용 화백의 솜씨가 더없이 매혹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일개 왈짜 소년 견자가 맹인 검객 황정학을 만나 임진왜란이라는 대사건을 배경으로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읽는 이를 절로 끌어당겼다고나 할까요.

이준익 감독의 '구르믈 벗어난 달처럼'은 여기에 임란 전후의 조선 조정과 정여립의 옥사, 그리고 원작에서 그리 큰 비중이 아니던 이몽학을 주연급으로 격상시킨 이야기를 끌어냈습니다. 구도는 나쁘지 않았고, 영화 전반부는 지금껏 본 이준익 감독의 영화에서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탁월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화폭은 환상적이고, 인물은 연못의 금잉어처럼 빛을 발합니다. 하지만 마무리는 납득하기 힘들었다고나 할까요. 아쉬움이 남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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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영화의 줄거리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맹인 검객 황정학(황정민)과 칼잡이 이몽학(차승원)은 정여립의 대동계에 들어 장차 일어날 왜변에 대비하는 실력을 키웁니다. 하지만 조정은 정여립의 세력을 견제하기 시작했고, 결국 서인의 고변에 의해 역적으로 몰린 정여립은 자살하고, 그 무리는 일제히 참수형을 당합니다.

정여립을 고변한 서인 세도가 한신균(송영창)의 서자 견자(백성현)는 서얼에 대한 차별로 의욕을 잃고 살아가던 반항아. 아버지를 비롯한 일족이 정여립의 복수를 선언한 이몽학에 의해 몰살당하자 복수를 결심하지만 도리어 이몽학의 칼을 맞고 빈사지경이 됩니다. 황정학의 구원으로 목숨을 건진 견자는 그로부터 인생과 검술을 서서히 배워가고, 황정학의 손에 이끌려 이몽학의 여자인 기생 백지(한지혜)를 대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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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에서 일단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원작의 견자에게 이몽학이나 아버지의 복수 같은 명분은 없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한신균의 죽음부터 결말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몇 달, 짧으면 열흘 남짓 사이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작에서는 최소 수년은 걸려 보입니다. 그 사이에 견자는 황정학으로부터 검을 쓰는 것이 한낱 싸움이 아니며, 검의 달인이 되기까지 깨달아야 하는 자연과 인간의 이치를 배웁니다.

그리고 나서야 구름에 달이 가듯, 달이 구름 사이로 얽매임이 없이 들고 나듯 거침이 없는 고수가 되죠. 그 과정에서 황정학과 견자가 주고 받는 문답의 치고 받는 매혹적인 흐름이 영화에서는 똑딱 사라져 버렸습니다. 영화 속에서 견자는 황정학과 몇번 칼을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막강한 검객이 되어 버리죠. 이런 유장한 호흡이 사라지고 헉헉대는 숨소리만 남았다는 느낌, 그것이 바로 이 영화에서 느끼는 첫번째 아쉬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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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또 원작 만큼이나 배경이 되는 실제 역사를 우지끈 뚝딱 손봤습니다. 풍자와 재치가 가미되긴 했지만 실제 역사의 흐름과 당시의 정세를 가감 없이, 탁월한 시선으로 옮겨다 놓았던 '황산벌' 때와는 달리, '구르믈...'에 나오는 역사는 시나리오 집필진의 시선에서 마음대로 재구성된 가상의 역사에 가깝습니다.

연도별로 일단 보자면 정여립이 역모를 꾸민 것으로 몰려 죽음을 당한 것이 1589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은 다 아시다시피 1592년, 그리고 이몽학이 난을 일으켰다 잡혀 죽은 것은 1596년의 일입니다.

임진왜란과 같은 큰 국난의 한가운데에서 난이 일어난다는 건 상식 밖의 일이지만, 임진왜란 7년간이 늘 격전의 시기였던 것은 아닙니다. 실제 육상전이 벌어진 것은 일단 1592년과 93년, 그리고 명의 참전 이후 남쪽으로 밀려내려간 왜군과 조-명 연합군 사이에선 1594년부터 96년까지 눈치보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전쟁은 1597년, 이른바 '정유재란'으로 다시 불이 붙죠. 이몽학의 난은 그 중간의 소강상태였던 3년 사이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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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몽학이 난을 일으킨 가운데 왜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오는 것과 같은 상황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이몽학이 왜군과 전투를 벌일 일도 없었고, 엄밀히 말하면 이몽학과 정여립의 관계는 개연성이 있다고는 할 수 있지만 증명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대목에서 영화 속 이몽학의 난이 보여주는 사건들은 이몽학의 난 보다는 명/청 교체기 중국에서 일어난 이자성의 난을 연상시킵니다. 틈왕이라고도 불렸던 농민 반란군의 대장 이자성은 명이 청과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경을 공격해 명의 숭정제를 자살시키고 정권을 빼앗지만 결국 청의 공격으로 몰락하고 중원을 청에게 내주고 맙니다.)

단지 선조는 정여립 사건 이후 자신을 능가할 실력을 가진 외성의 존재에 극도로 민감해집니다. 그 결과가 유성룡을 견제하고 이순신을 파직시키고, 혁혁한 공을 세운 의병장 곽재우와 김덕령을 모반자로 의심해 고문하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으로 나타나죠. 이몽학의 난 역시 이런 조정에 대한 호남 인심의 배신감을 이용했다고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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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과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실제 역사의 진행을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물론 아무렇게 바꿔도 곤란하겠죠.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실제 역사와 같다, 다르다가 아니라 '왜 그런 식의 진행이 필요했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채택한 대체 역사의 진행과 결말은 적절했을까요?

사실은 그렇게 받아들여지질 않는다는게 문제입니다. '구르믈...'의 결말은 얼마 전 있었던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참사를 되새기게 합니다. 어찌 보면 거의 똑같은 결말이고, 어찌 보면 상상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비참한 장면입니다. 대체 왜 이런 어설프면서도 아무 교훈도 없는 장면이 왜 이 영화에서도 되풀이되었는지는 정말 의문입니다.

굳이 정여립의 옥사를 도입한 것이나, 이몽학을 주인공의 자리에까지 끌어올린 점 등은 흥미로운 포석이었지만, 그를 통해 하려던 이야기가 단지 '왜적의 침입을 코앞에 두고도 당파 때문에 사소한 일로 반목하는 조정 대신들에 대한 조소'나 '나라 꼴을 이지경으로 만들고도 정파 논쟁이나 하고 있는 현재의 국회의원/고관대작에 대한 비판'일 뿐이라면 정말 태산명동서일필이라는 옛말이 다시 떠오르게 됩니다. 게다가 결말이 '사소한 은원과 욕망이 거대한 외적 요소 앞에서 사그러들고 말 뿐'이라는 식으로 무책임하게 내려진다는 건 정말 아쉽기 짝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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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맹인이지만 세상사를 꿰뚫는 지혜와 검술을 가진 황정학, 열정은 가득하지만 풀어 놓을 곳이 없는 한을 품은 견자, 타고난 매력과 기량으로 세상을 탐하는 야심가 이몽학, 한 남자에 대한 정한과 사랑 외에는 세상 다른 것이 필요 없는 여자 백지라는 인물 구도는 탁월하고도 아름답습니다.

특히나 그림 속에서 그대로 뛰어나온 듯한 황정민의 열연을 비롯해 네 주인공들의 연기는 흠잡을데 없이 뛰어납니다. 차승원의 냉혹함은 뭐 굳이 더 칭찬할 필요가 없을 듯 하고, 백성현이나 한지혜 역시 지금까지 보여준 어떤 모습보다 인상적인 열연을 펼칩니다(물론 결말 전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왜란 발발과 함께 사정없이 꼬여 버립니다. 이야기와 캐릭터들이 잘 어우러졌던 전반부와는 달리 후반은 억지로 끼워 맞춘 듯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호랑이가 되려던 그림이 결국 호랑이가 되지 못한 채 마무리된 아쉬움은 오래도록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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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많은 사람들이 가장 인상적인 대사로 "넌 이몽학을 이길수 없어" "왜?" "넌 꿈이 없잖아" 를 꼽곤 합니다. 혹자는 여기서 '88만원 세대'를 발견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견자는 대체 어떤 꿈을 품었어야 할까요.

저는 과연 이 영화를 만든 분들이 여기에 대한 답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답이 바로 왜 이 영화가 이렇게 결말지어졌는지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영화 속에서는 어떤 답도 발견할 수 없었고, 그것이 이 영화에 실망한 이유입니다. 다른 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직접 보시고 평가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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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시각적인 즐거움의 측면에서 이 영화의 성취는 정말 놀랍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큰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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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2'를 보고 나서 바로 '한국형'이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해서, 지난 2008년 '아이언맨'이 개봉하기 전까지 국내 관객 가운데 '아이언맨'이라는 슈퍼 히어로의 이름을 들어 본 관객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아이언맨'은 그해 여름 개봉한 배트맨 영화 '다크나이트'를 넘어 서는 흥행 성과를 거뒀습니다. 관객 비율이 430만대 400만 정도라는 건 꽤 근소한 차이긴 하지만, 주인공인 배트맨과 아이언맨의 지명도 차이를 생각하면 생소한 아이언맨이 더 좋은 성적을 냈다는 게 의외로 여겨질 만 합니다.

더구나 '다크나이트'와 '아이언맨'을 전 세계 흥행 성적을 비교해볼 때 이건 상당히 예외적인 현상입니다. 두 영화의 전 세계 흥행 성적은 10억달러대 5억8천만달러 정도로 '다크나이트'의 압승입니다. 미국 국내 흥행도 5억3천만달러 대 3억2천만달러 정도로 비슷한 비율이죠.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에서의 성적 역시 4억7천만달러 대 2억7천만 달러 정도이니, 이쯤되면 한국이 '아이언맨'을 편애하는 나라라는 말이 그리 틀리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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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영화를 모두 보신 분들이라면, 두 슈퍼 히어로의 성격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다는 저의 주장에 꽤 공감하시리라 믿습니다. 두 영웅은 모두 대재벌의 실소유자이며, 천재적인 두뇌와 플레이보이적인 외모를 갖고 있고, 타고난 초능력이 아닌 과학적 장비의 힘으로 싸운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낙천적이고 괴짜인 토니 스타크에 비해 브루스 웨인은 싸우는 시간보다 고민하는 시간이 더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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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토니 스타크는 영화 '아이언맨'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라고 선언해버리는 깜짝쇼를 벌이죠. 영화 '아이언맨2'는 그 6개월쯤 뒤에서 시작합니다. 간단한 줄거리:

뉴욕의 플러싱 메도우에서는 스타크 그룹의 설립자인 하워드 스타크(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의 꿈을 현실에 옮긴 스타크 엑스포가 열리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활약으로 전 세계에서 분쟁이 사라진 상황. 그 시점에서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온 세계의 뛰어난 과학자들이 미래의 비전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켠에서는 스타크 부자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또다른 천재 과학자 이반 반코(미키 루크)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신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편 아이언맨임을 밝힌 이후, 아이언맨은 개인이 보유하기에는 위험한 무기이니 정부에 넘기라는 의회의 요청을 효과적으로 무시하고 높은 인기를 과시하던 토니 스타크는 사실 남모르는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그의 생명을 유지해주고 있는 가슴의 원자로가 체내에 죽음을 유발하는 독성물질을 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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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이언맨이 아이언맨 시리즈 겨우 두번째 편에서 죽을 리는 없으니 걱정하실 분도 없을테고, 솔직히 이 영화에 대해 결말까지 얘기를 한 들 스포일러가 될 것도 없을 듯 합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두어 시간 동안, 관객이 할 것이라고는 현실 세계의 근심 걱정을 극장 문 밖에 잘 접어서 돌로 눌러 두고 화면 가득 펼쳐지는 아드레날린의 분수에 몸을 맡기는 것 뿐입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가 마블 코믹스의 방대한 히어로 세계의 일부이며, 영화 '아이언맨'은 실사판 영화 '어벤저'로 가는 입구라는 면에서 원작에 얼마나 충실했는지, '아이언맨 2'에 어떤 단서가 감춰져 있는지를 눈여겨 보느라 정신이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런 요소들은 어떤 사람들에게 재미를 더해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관객들에겐 전혀 알 필요 없는 얘기들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꽤 중요한 비밀이 감춰져 있을 것 같았던, 영화가 끝나고 거의 10분 뒤에 나오는 쿠키 영상 역시 영화 '어벤저'에 등장할 한 슈퍼 영웅의 흔적이 살짝 비쳐지는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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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관객들은 '다크나이트'의 배트맨보다 '아이언맨'에 더 큰 환호를 보냈을까요. (제 주변 사람들을 기준으로 볼 때는 단순한 관객수 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만족도에서도 '아이언맨'이 상당한 우세를 보였습니다.) 개인적인 기준으로는 너무나 당연합니다.

한국인의 기준으로 볼 때 조커 하나를 죽일 수십번의 기회를 날려 버리고, 그 조커 때문에 수없이 많은 인명이 더 희생되는 것을 어리석게 바라보고 있는 햄릿형 주인공 배트맨보다는 나중 결과가 어찌됐건 일단 저질러놓고 뒤에 수습하는(물론 수습도 대개는 다른 사람이 하지만) 돈키호테형의 아이언맨이 훨씬 매력적으로 보이는게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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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관계 또한 그렇습니다. 매번 온 세상 고민을 혼자 짊어진 척 찡그리고 다니면서 제가 좋아하는 여자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찌질남 브루스 웨인 보다는 온 세상 여자가 다 자기 것인 양 헤벌쭉 다니면서도 누가 자기 짝인지는 확실히 구별하고 보호하는 토니 스타크가 훨씬 한국적인 정서에 맞아 보입니다.

[물론 기네스 팰트로가 대체 왜 이 시리즈에 나오고 있는지 알수 없기로는 1편이나 2편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토니 스타크의 짝꿍인 페퍼 포츠(이름 때문인지 음료수도 닥터 페퍼만 마시더군요^^) 역할에는 도대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할 연기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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팰트로는 여전히 병풍인 반면, 스칼렛 요한슨(조핸슨이라고 하는게 맞을 듯 하지만 그냥 이대로 버티렵니다)은 물 만나 고기 같습니다. 등장하는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이 영화의 핵심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만화적인 느낌을 강조한 액션 신도 멋집니다. 이 다음 작품이 '아이언맨3'가 될지, '어벤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기대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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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줄거리가 어떻고, 배우의 연기가 어떻고 등등에 대해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별로 긴 말도 필요없습니다. 지금 당장 극장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남은 2010년의 기간 동안 수많은 영화들이 나오고, 관객들을 만족시키거나 실망시키거나 하겠지만 2010년의 문화생활 가운데서 여러분이 가장 잘 한 일은 '아이언맨2'를 아이맥스관에서 보시는 것이고, 어떤 분들에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가장 아쉬울 일은 '아이언맨2'를 극장에서 보지 않은 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어디에나 '난 그렇게 정신만 사납고 보고 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는 영화는 싫어. 영화가 뭐 보고 나서 남는게 있어야...' 어쩌고 하면서 김 빼놓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괜히 그런 걸로 아웅다웅하는 것 보다는 그런 사람들은 그냥 계속 그렇게 살라고 내버려 두시고, 여러분은 그냥 극장으로 가시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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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로드 중령 역이 테렌스 하워드에서 돈 치들로 슬쩍 바뀌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런걸 눈 빠지게 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니까요.^

P.S.2.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인 딴지] 그런데 해피(감독인 존 파브로의 캐릭터)는 대체 그 무거운 아이언맨 수트를 어떻게 손에 들고 다닐 수가 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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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Hurt Locker)'에 대해 안 건 그리 오래 전이 아닙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이 영화에 대해 "이 영화는 이라크전의 '플래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이 영화에 대한 첫 정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현대전(2차대전 종전 이후의 전쟁)을 다룬 영화 가운데 '플래툰'에 이어 두번째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허트 로커'는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 가운데 폭발물 제거를 전담하는 병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전장에서 세계 최강 미군을 상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상대는 거의 없고 보면 게릴라들에게는 폭발물을 이용한 부비트랩이 대단히 중요한 수단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폭발물 제거반의 역할 또한 강조될수밖에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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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줄거리부터:

바그다드에 주둔하고 있는 미 육군 브라보중대의 폭발물 제거반에 하사관 윌리엄 제임스(제레미 레너)가 팀장으로 부임해 옵니다. 전체 팀원이라야 3명. 나머지 두 사람인 하사관 샌본(앤서니 맥키)과 엘드리지(브라이언 게러티)는 전임 팀장의 사고사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두 사람의 소망은 39일 남은 바그다드 주둔을 마치고 안전지대로 얼른 복귀하는 것. 하지만 제임스는 임무 수행에 목숨을 거는 타입입니다. 항상 위험을 무릅쓰는 제임스 때문에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맞자 나머지 두 팀원은 분노를 감추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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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맨 앞부분은 폭발물 제거가 얼마나 어렵고 위험한 일인지 보여주는데서 시작합니다. 최근 폭발물 제거에 로봇을 이용한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졌지만, 모든 임무에 로봇을 투입할 수는 없습니다. 현장에 투입되는 폭발물 제거반은 각종 보호장구로 무장하고 임무 수행에 나서지만, 폭발물의 위력 앞에 무거운 방호복은 무용지물일 때도 많습니다.

이런 임무를 계속 수행해온 제임스는 일종의 전쟁 중독자입니다. 아내와 아이도 있지만, 가족은 더 이상 그에게 도피처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는 전쟁과 위험한 임무 속에 있을 때에야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증세를 꼭 집어 뭐라고 하는 지 모르지만 대개 아드레날린 정키라고 불리는 '위험에 중독된 사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이런 증세를 보이는 병사에 대한 영화는 그리 낯설지는 않습니다. 월남전을 그린 고전 중 하나인 '디어 헌터' 이후 꽤 자주 영화화된 소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라크라는 황량한 배경 앞에서 이 주제는 사뭇 강렬한 힘을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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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세 병사는 마치 다른 아군은 아무도 없는 황무지나 정글 속, 수없이 많은 적들의 시선 속을 헤매는 것처럼 그려집니다. 군의관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엘드리지 외에는 이들 셋과 다른 아군 병사들과의 교류가 거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연출은 이들 셋이 겪어야 하는 거대한 전투 속에서의 고립감을 내내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 비글로 감독 특유의 다큐멘터리적인 건조한 시선은 오히려 세 병사에게 관객이 더욱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냅니다. 더구나 유명 배우들을 피해 간 캐스팅(가장 이름값이 높은 배우라고 할 수 있는 레이프 파인즈는 정말 단역입니다^^)은, 흔히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저 멀리 날려 버리기 때문에 관객은 세 병사가 느끼는 긴장감의 단초를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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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이라크전에 들어가 본 적이 당연히 없기 때문에 비글로 감독의 영상이 얼마나 실제 상황을 리얼하게 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뉴스 영상이나 다큐멘터리 영상을 좀 더 좋은 화질로 보는 듯한 느낌은 이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 큰 몫을 합니다. 그리고 2시간 남짓 한 이 영화를 찍기 위해 200시간분의 촬영이 이뤄졌다는 건 영화에 들어간 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가 왜 '아바타'를 제치고 작품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찌 보면 '아바타'와 이 영화의 소재는 같습니다. 두 영화는 모두 '머나먼 이역의 전쟁터에 파견된 병사가 느끼는 당혹감'을 동원하고 있죠. 하지만 '아바타'에서 제이크 설리가 느끼는 감정의 깊이는 - 물론 영화의 성격에 따른 것이지만 - '허트 로커'에서 세 병사가 느끼는 절박감에는 감히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부분이 보수적인 아카데미 회원들에겐 훨씬 값진 것으로 보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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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비글로 감독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스트레인지 데이즈'는 흥미로웠지만 아무래도 스타일에 대한 집착에 줄거리가 희생됐다는 느낌이 들었고 '폭풍 속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명품 오락 영화지만 '사실상 (당시의 남편이던)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라는 소문이 판단에 개입했던 듯 합니다. '블루 스틸'은 좀 지루했죠.

하지만 '허트 로커'는 비글로를 다시 보게 하는 계기를 만든 영화로 삼기에 충분합니다. 과연 다음부터의 영화 세계는 어떤 것이 될지도 궁금하죠.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한 이번 영화는 1100만달러라는, 할리우드 치고는 상당히 싼 제작비로 만들어졌지만 다음 작품은 1억달러 규모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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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는 분명 상업 대작이 될 수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미국내 흥행 기록이 1300만달러(물론 위에서 거론한 싼 제작비 덕분에 꽤 남는 영화가 됐습니다)에 그쳤을 정도로 일반 대중의 시선은 냉담했습니다. 하지만 보는 동안 만큼은 절대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작품인 것도 분명합니다. (물론 여주인공 없는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절대 보시면 안 되는 영화기도 하죠.^^)

하지만 고전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진지한 대결의 장면이 그리운 분들에겐 매우 좋은 오락 영화이기도 합니다. 저 위 사진에 있는 저격 신은 은근히 괴테의 '괴츠 폰 베를리힝겐'에서 월터 스코트의 '아이반호'를 이어 내려오는 한 장면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뭐 이건 그냥 개인적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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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사이드'는 참 있을 법 하지 않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풍족하고 고민거리 없는 부유한 백인 주부가 아무 신분 보장도 되지 않는 거구의 흑인 소년을 집으로 끌어들여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보호자가 되어 미래를 열어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진대로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산드라 블록이 연기하는 리앤 투오히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고, 가족 구성원도 같습니다. 그리고 마이클 오어(Oher)는 NFL의 볼티모어 레이븐스에 2009년 입단한 실제 미식 축구 수비수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선수로 성장할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그 대단한 미식 축구 열기로 볼 때 NFL 선수가 됐다는 것 자체를 성공으로 여긴다는게 큰 오해는 아닐 듯 합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영화 한 편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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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영화를 보러 가면서 스포일러 같은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모든 사건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일어납니다. 우선 약간의 줄거리.

돈 많은 남편과 예쁜 딸, 똘똘한 아들을 두고 사는 미국 남부의 부유층 주부 리앤 투오히(산드라 블럭)는 어느날 마이클 오어(퀸튼 아론)라는 거구의 소년이 자신들의 동네에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리앤은 이 말없는 소년이 위협적인 외모에도 불구하고 보호자가 필요한 미성년자이며, 그에게도 뭔가 성공적일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부터 마이클을 가족의 일원으로 삼기 위한 리앤의 노력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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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실화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면서 투오히 가족에 대해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보수적인 미국 남부의 백인 가족이 155kg짜리 덩치의 흑인 고교생을 양자로 받아들인다... 참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영화 속에서도 나오듯 어머니인 리앤이 이런 주장을 하고, 다른 가족들이 순순히 그 결정을 받아들인다는 게 참 놀랍기만 합니다.

아마도 이 영화는 이 내용이 실화가 아니었다면 만들어지지 못했을 작품일 겁니다. 누군가 이런 선의로 가득 찬 시나리오를 순수하게 상상력에 입각해서 만들어 낸 다음 영화로 만들겠다는 시도를 했다면, 제작사 사장은 아마도 "자네 SF 찍자는 건가?"라고 했을 것이고, 영화가 나왔다 해도 흑인 민권 단체들은 "엉클 톰과 스토우 부인을 되살리려는 백인들의 음모"이며 "우리 흑인들은 몽매하고 가진건 육체적 능력 뿐이며, 지혜로운 백인들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유치하고 악의적인 프로파간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데 누가 뭐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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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실의 세세한 상황과 얼마나 맞아 떨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영화는 착한 사람들과 착한 의지가 철철 넘쳐 흐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나쁜 사람들이라는게 일상이 너무 단조로워서 남의 뒷담화 늘어놓는게 유일한 낙인 백인 부유층 아줌마들 정도이니 뭐... 모든 사람이 자기 일에 충실하고, 원칙을 따르고, 필요한 선의를 다 발휘합니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고, 이상적인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네. 사실 좀 너무 완벽해서 불만입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생각난 다른 영화는 바로 이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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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1967년작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는 어느 날, 딸이 애인이라며 집에 흑인 청년(시드니 포이티어)를 데려온 상황을 맞은 백인 중산층 부부(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의 당혹을 주제로 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당황한 부모의 표정을 본 딸은 말합니다. "아빠, 엄마, 제가 학생일 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얼마나 비열하고 한심한 짓인지 늘 설명해 주시지 않았었나요?"

부모 입장에선 이렇게 속터지고 답답할 노릇이 없습니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누가 같이 살랬니.. 동네 사람들이 너를 대체 어떻게 보겠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겠지만, 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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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무리 평온하고 행복에 가득찬 세상을 그리는 영화라도 몇 차례의 위기는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저는 그리고 '블라인드 사이드'를 보면서도, 과연 리앤의 저 예쁜 백인 소녀 딸이 마이클과 뭔가 남녀간의 감정을 느낀다면, 과연 저 부부와 저 가족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투오히 가족의 반응은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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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겸해 말하자면, '블라인드 사이드'는 뭣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따뜻하고 평온한,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아름답고, 세상살이에 지친 분들이 보시면 위안이 될 만한 영화라고 추천할 수 있습니다. 공연히 '우리 엄마가 이 영화 보고 감동해서 이상한 놈을 오빠(또는 형) 삼으라고 집에 데려오면 어떡하나'하는 걱정까지 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영화는 그냥 영화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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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산드라 블럭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은 그동안 아카데미 상이 추구해 왔던 '상 받을 만한 배역('상 받을만한 연기'가 아닙니다^^)'과는 좀 거리가 있는 역할이란 면에서 약간 놀랍기도 했지만, 뭐 어쨌든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영화'라는 면에서 꽤 높은 가산점을 받았다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측은지심을 불러 일으키는 퀸튼 아론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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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국 출신의 릴리 콜린즈는 전형적인 하이틴 스타의 얼굴입니다. 1989년 생이군요. 몇해 지나면 또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아가씨, 필 콜린스의 딸이군요. 네. 바로 '그 필 콜린스'입니다. 'Against All Odds'는 많이 들으셨을테니 이번엔 'In the air tonight'입니다. 어딘가 SS501의 '내머리가 나빠서'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노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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