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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에 대한 열번째 글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사랑하는 은동아] 5. 웹 드라마로 먼저 보여드리는 이유는? http://fivecard.joins.com/1318

[사랑하는 은동아] 6.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http://fivecard.joins.com/1319

[사랑하는 은동아] 7. 김태훈. 김민호. 김미진을 통한 완성 http://fivecard.joins.com/1320

[사랑하는 은동아] 8. 주진모라는 배우를 다시 알다 http://fivecard.joins.com/1322

[사랑하는 은동아] 9. 김사랑,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http://fivecard.joins.com/1324

 

 

오늘은 '사랑하는 은동아'가 촬영되고 있는 세트에 대한 글입니다.

 

10대 현수 주니어가 살던 집과 30대 은호 주진모가 살고 있는 집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서울 중심부에서 1시간 반 정도 거리, 파주에 있는 세트장입니다. 외관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드라마 세트장들이 그렇듯 처음부터 방송용으로 설계된 곳은 아닙니다.

 

 

여기는 10대 현수의 집. 10대 현수(주니어)가 살던 춘천 집입니다.

 

1995년의 한 중산층 가정 거실인데, 사실 90년대, 20년 전이라 해도 그리 옛날의 느낌은 아닙니다. 요즘도 있을법 한 그런 거실의 느낌.

 

 

부엌입니다.

 

 

옛날식 라면 박스 스티커의 디테일. 그리고 냉장고 구석에는 중국집 배달 스티커가 붙어 있습니다.

 

 

욕실.

 

 

현수의 방을 찍기 위해 거실을 카메라 스태프들이 채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스튜디오 촬영은 스튜디오 카메라, 야외 촬영은 야외용 카메라가 동원됐지만 근래에는 같은 종류의 카메라로 야외와 세트를 모두 소화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점점 더 진짜 건물 내부인지, 세트인지 구별하기 힘든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차이가 많이 나는 드라마도 있죠)

 

 

 

여기가 10대 현수의 방.

 

 

주니어군이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1회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낮에 은동이 만난 날, 현수가 침대에 누워 "박현수, 남자다" 하면서 혼자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침대에 누워 있는 현수를 높은 곳에서 찍어야 하는 장면이라 카메라가 높은 곳에 위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 위치에서 찍으면,

 

 

 

이런 장면이 찍히는 것이죠.

 

 

그리고 연출진은 밖에서 모니터로 촬영 장면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왼쪽이 이태곤 감독입니다.

 

 

 

그래도 이 세트장은 비교적 지원 시설이 괜찮은 편입니다. 최근 들어 점점 드라마 세트가 대형화/정밀화 되어 가는 추세라 2000년대 이전에 건설된 각 방송사의 스튜디오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권의 폐 공장, 폐 창고들이 스튜디오로 개축되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경우 부대시설이 부족합니다.

 

특히 냉난방 시설까지 가면 참담한 경우도 있죠. 물론 점점 상황은 좋아지고 있습니다.

 

다음은 현재 많이 나오고 있는 은호(주진모)의 집 세트입니다.

 

 

 

촬영중 잠시 장면에 대한 설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운데 은호가 서 있죠.

 

눈 밝은 분들에게 보이는 쿠르베 스피커.

 

 

 

은호의 침실도 쿠르베 스피커가 지키고 있습니다.

 

 

복층식 대형 펜트하우스 아파트의 설정이기 때문에 층고가 대단히 높습니다. 고급스럽죠.

 

 

 

 

은호의 집답게 벽에는 왕년의 지은호 사진들이 붙어 있습니다.

 

...은호가 아니라 주진모인지도.^

 

 

여기는 은호가 영화를 보는 방.

 

 

그리고 옷방.

 

 

욕실 인테리어가 상당히 깔끔합니다.

 

 

2층에서 바라본 거실 전경. 늘 은호가 자고 있는 소파가 보입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은호의 테라스. 네. '합성이다' 에 시달렸던 그 공간입니다.

 

이 공간도 사실은 실내에 있기 때문에 은호가 여기서 전화통화를 하거나 할 때, 하늘은 블루스크린을 통해 합성됩니다.

 

 

고급스러운 주방.

 

 

 

그리고 은호네 집에서 가장 큰 창은 바로 지금 보이는 저 왼쪽의 창인데요,

 

 

밤 장면에서 이 창밖으로는 이런 야경이 보입니다.

 

 

창문 밖에서 보면 이렇습니다.

 

 

도시의 야경이 보이는 막 뒤에 조명이 켜져 있죠. 이렇게 하면 저 사진막의 불켜진 창들이 실제 불켜진 야경처럼 살아나 보입니다.

 

 

 

아, '사랑하는 은동아'가 이제 4회만 남겨놓고 있다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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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아홉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사랑하는 은동아] 5. 웹 드라마로 먼저 보여드리는 이유는? http://fivecard.joins.com/1318

[사랑하는 은동아] 6.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http://fivecard.joins.com/1319

[사랑하는 은동아] 7. 김태훈. 김민호. 김미진을 통한 완성 http://fivecard.joins.com/1320

[사랑하는 은동아] 8. 주진모라는 배우를 다시 알다  http://fivecard.joins.com/1322

 

 

 

 

직업의 특성상(물론 전 직업을 포함해서) "만나 본 여자 연예인 중에 누가 제일 예쁘냐"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게 아니라도 남자들끼리의 술자리라면 "난 전지현이 제일 예쁜데", "그래도 얼굴은 김태희 아닌가?" "무슨 소리야. 손예진이지" 하는 얘기들이 오가는 게 이상하지는 않습니다(반대 경우라면 강동원 정우성 김우빈 등이 거론되겠죠). 아무튼 이런 경우, 저 위에 있는 이름들 못잖게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코드 네임 김러브. 김사랑이죠.

 

 

 

 

 

김사랑의 비주얼은 이미 전설이 된지 오래입니다. 2000년 미스코리아는 진 김사랑, 선 신정선, 미 손태영을 배출한 역대 최강급의 대회로 꼽힙니다(여기에 미스 한주여행사 박미선 - 박시연도 있죠). 얼마 전 JTBC에서 역대 미스코리아 출신들이 출연하는 '비밀의 정원'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할 때, '2010년대 이후 미스코리아 출연자들이 뽑은 가장 인상적인 선배'로 김사랑이 뽑혔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몸매까지 포함하면 정말 반칙이죠. 물론 얼굴만 보더라도 결코 부족함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얼굴이 지금까지도 전혀 손상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 포털 검색창에 '김사랑'을 치면 '김사랑 나이'가 연관 검색어로 나옵니다.

 

 

 

 

누가 봐도 사기 유닛이죠. 다른 여배우들이 나란히 서기를 꺼린다는 말이 실감 날 정도. 김사랑이 출연한 드라마 중 가장 지명도 높은 작품인 '시크릿 가든'에서도 이 장면이 유독 화제가 됐습니다. 진정한 '피지컬 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화력 시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사랑은 '시크릿 가든' 이후 4년 동안 이렇다 할 활동이 없었습니다. 스포츠용품 광고는 큰 화제가 됐지만 드라마든 영화든 출연작이 없었던 거죠. "그렇게 내키는 작품이 없었다"던 김사랑에게 '사랑하는 은동아'가 찾아간 건 어쩌면 큰 행운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 미팅에서 이태곤 감독이 김사랑에게 그 4년 동안 주로 뭘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도"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마도 김사랑을 '사랑하는 은동아'로 이끈 건 하느님의 말씀이었던 듯.

 

그리고 드라마가 방송되고 있는 지금, 역시 그 선택은 올바른 것임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수많은 명장면들이 꼽히고 있지만 김사랑의 감정이 가장 아름답게 폭발한 장면은 아무래도 이 장면 아닐까 싶습니다.

 

 

 

 

김사랑은 이 드라마를 통해 비주얼에서 끝나지 않는 진정한 내면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은동아'의 여주인공 캐스팅이 어려웠던 것은 - 물론 어떤 작품의 캐스팅이 쉬울까 마는 - 이 역할이 가지고 있는 약점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이 드라마의 여주인공 서정은은 열살짜리 아들이 있습니다. 그냥 편하게 '애 엄마 역에는 애 엄마'를 캐스팅하면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그래도 작품의 특성상 '애 엄마 느낌이 나지 않는 배우'를 찾았기 때문에 저희는 고난의 세월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두번째, 이 역할은 본질적으로 매우 어려운 역할입니다. 서정은은 톱스타 지은호의 구술 녹음을 듣고 자서전을 써 주는 대필 작가입니다. 그런데 이 대필 작업이라는 걸 하면 할수록, 왠지 친숙한 이야기라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지은호 매니저를 만나고, 지은호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마침내 곡절 끝에 지은호 본인을 만나고, 자신이 자신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차리게 됩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기억이라는 것이 단 한 순간에 망치로 머리를 띵 맞고 한꺼번에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8부 엔딩에서 서정은은 일단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았지만, 자기가 바로 지은호가 찾고 있는 지은동이라는 것을 학적 확인을 통해 안 것이지, 그 당시 자신이 지은동으로 살았던 기억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연기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즉 정은의 마음 속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왠지 낯설지 않은, 뭔가 이상한 느낌의 상태' - '혼란스럽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상태' - '알 수 업는 설렘과 함께 그 남자가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상태' - '내가 누구인지는 알았지만 기억이 돌아오지는 않은 상태' 를 거친 뒤에야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일이 실제로 벌어졌는지가 모두 기억나는 상태'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사실 김사랑은 이 과정에서 몇 차례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공감하시겠지만, 이 각각의 상태들을 구분해 연기하기란 어떤 배우라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사랑은 역할에 대한 애정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냈고,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인생 연기'라는 호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이제 반환점을 넘었지만, 문득 이 드라마를 완주한 뒤의 김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천부적인 하드웨어에 감정 연기 옵션이 추가된 완전체가 된다면. 결국 그 뒤의 김사랑을 얘기할 때 사람들은 그 경계가 된 작품으로 '사랑하는 은동아'를 꼽게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럴 거라고 확신합니다.

 

 

 

 

P.S. 티저 촬영 때의 잠시 설정샷. 제작발표회 때 시청률 5%가 넘으면 김사랑의 기타 연주 영상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저는 아직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아울러 언젠가는 이렇게 두 사람이 기타를 연주하며 마주 보는 장면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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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여덟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사랑하는 은동아] 5. 웹 드라마로 먼저 보여드리는 이유는? http://fivecard.joins.com/1318

[사랑하는 은동아] 6.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http://fivecard.joins.com/1319

[사랑하는 은동아] 7. 김태훈. 김민호. 김미진을 통한 완성 http://fivecard.joins.com/1320

 

 

벌써 몇달째 이 드라마를 함께 만들어 가고 있지만, 매주 시청자의 입장이 될 때가 있습니다. 각 회의 편집된 영상을 처음으로 보는 순간입니다. 물론 대본에서 다 읽은 대사고, 촬영할 때도 간혹 지켜보는 신들이지만 그것이 한편의 드라마로 만들어진 뒤의 모습을 처음 볼 때에는 역시 남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드라마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점점 느끼게 되는 것은 주진모라는 배우의 가치입니다. 매주 '사랑하는 은동아'를 보면서, 그동안 이 배우가 얼마나 과소평가되어 왔는지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사실 이 배우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주 오래 전, '댄스 댄스'라는 영화를 통해 황인영과 함께 데뷔했을 때부터, 이 배우의 깎은 듯한 얼굴은 정평이 나 있었습니다. '해피 엔드', '미녀는 괴로워' 같은 영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빛을 발했습니다.

 

 

 

 

물론 어떤 배우도 나이를 먹습니다. 그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주진모도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모습으로 승부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런 풋풋했던 시절의 모습은 아닙니다.

 

또 영화 '쌍화점'과 '사랑', 드라마 '기황후' 등을 거치면서 주진모에게는 '근엄한 왕 역할이 어울리는 배우'라는 이름표가 붙었습니다. 이 말은 뒤집으면 '다소 경직된', 혹은 '멜로드라마에는 잘 맞지 않는'이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주진모에게 아직 카드가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몇해 전 본 '무릎팍 도사'에서의 모습이 생생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진모는 결코 '무게만 잡는' 배우의 모습이 아닌, 인간의 얼굴을 충분히 보여줬습니다. 사실 '사랑하는 은동아'의 남자 주인공은 첫째, 톱스타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관록을 보여주는 배우여야 했고 둘째, 그러면서도 마음 속에 열일곱 악동 소년이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이 두 조건을 다 갖춘 배우로 주진모를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역시 몇해 전, 한 술자리에서 주진모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거의 속내를 내보이지 않는, 지나치게 관리가 철저한 몇몇 배우들과는 달리 주진모는 술자리에서 밝은 웃음과 소탈한 자세로 좌중과 함께 진정으로 자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시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 이미 '사랑하는 은동아'를 지켜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 매니저 동규(김민호)와 중학생 수준의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은호의 모습과 주진모가 아주 잘 겹쳐지는 조합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런 확신이, 결코 싸지 않은 몸값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인공은 주진모'라는 주장에 힘을 싣게 한 것 같습니다.

 

 

 

 

대본에 대해 처음 얘기를 나눌 때, 주진모에게 "이 역할은 멋지게만 보이는 역할은 결코 아니다. 대신 진모씨의 연기 역정에서 뭔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주진모 역시 "나도 잘 알고 있다. 그게 바로 내가 이 대본을 선택한 이유"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자신에게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겁니다.

 

 

 

 

물론 이렇게 '다 내려놓은' 가벼운 연기로만 '사랑하는 은동아'의 주진모를 평가한다는 건 언어도단입니다. 그의 진가를 볼 수 있는 건 역시 눈물 어린 멜로 연기였습니다.

 

 

 

 

드라마를 보신 분이라면 이 장면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렇게 애타게 찾아 해메던 그 여자가 바로 근처에 있었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한 은호. 그러나 이미 그녀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는 상황.

 

그래서 그녀를 발견하고도, 섣불리 다가가서 나를 모르겠느냐고 나서지 못합니다. 이보다 안타까울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 놓인 은호의 심정은 주진모의 안타까운 눈물을 통해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흔히 가끔 지나치게 잘 생긴, 조각 같은 남자의 얼굴을 보면 '느끼하다'고 말하는 여자들이 있습니다. 주진모는 물론이고 20대 때의 장동건도 흔히 들었던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눈물은 그런 선입견을 날려 버리기 충분했습니다.

 

못 보신 분이 있다면 한번 보시길. '심쿵' 준비가 필요합니다.

 

 

 

(안타깝습니다. 저기서 무너질듯 주저앉아 통곡하는 은호의 모습까지 화면이 이어져야 하는데... 이 장면을 못 보신 분들은 VOD를 이용하시길. 돈이 아깝지 않으실 겁니다.)

 

저렇게 망가질 땐 제대로 망가져 줬다가 이런 멜로 장면에선 시청자의 가슴을 쥐어 짤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런 그의 호연 덕분에 이미 수많은 분들의 호평이 온/오프라인을 메우고 있습니다. 시청률 면에서도 곧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 TV평점순위에서 '사랑하는 은동아'는 700여명의 네티즌들로부터 9.9의 평점을 받았습니다.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들 가운데 단연 1위 입니다. 10점 만점에 9.9라는 점수가 나온다는 건 누구라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것도 한두명도 아닌, 700여명이 투표를 했는데 말입니다.

 

 

 

정말 신기할 따름...

 

어떤 분 말마따나 "이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편만 본 사람은 없을 것"이란 말이 실감납니다. 그런 호평들 덕분에, 용기를 잃지 않고 제작진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리고 있습니다.

 

 

 

 

다음번엔 '사랑하는 은동아'의 속살, 세트를 살짝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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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일곱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사랑하는 은동아] 5. 웹 드라마로 먼저 보여드리는 이유는? http://fivecard.joins.com/1318

[사랑하는 은동아] 6. 캐스팅은 어떻게 이뤄졌나? http://fivecard.joins.com/1319

 

 

 

네. 드디어 메인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사실 김태훈이라는 배우가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낸 건 꽤 오래 전 일이지만, 솔직히 저 자신부터도 '아저씨' 이전의 모습은 기억에 없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노희경 작가의 '굿바이 솔로' 같은 드라마에 나왔다고 하는데, 글쎄 무슨 장면이었는지는 떠오르지 않더군요. 아무튼 '아저씨'에서 형사 역으로 두각을 보인 뒤(당시엔 '어, 김태우 닮은 배운데 연기를 잘 하네...') 무섭게 풀려나갔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악역. 최근 끝난 '앵그리 맘'에서도 악역이었죠.^ 아무래도 강렬한 눈빛이 악역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지만, '사랑하는 은동아'의 서정은 남편 최재호 역은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연기를 잘 하는 배우여야 했죠.

 

최재호는 왕년의 아마야구 최고 투수 출신. 메이저리그의 손짓을 받고 미국으로 진출하기 직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휠체어 신세가 됐습니다. 그래도 그 사고 때 약혼녀 정은(김사랑)을 지켜냈고 - "사고 날 때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핸들을 꺾고 자기 쪽으로 충돌해 여자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 결국 정은과 결혼, 아들 라일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할 덕분에 김사랑으로부터 발을 씻어주는 서비스.;; 를 받고 있는 김태훈... 뿌듯할듯)

 

본래는 상당히 유복한 집안이었지만 오랜 재호의 투병 때문에 살림은 풍족하지 않고, 결국 정은이 여러 개의 알바를 하면서 생활을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늘 그것 때문에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죠. 어느날 아내가 톱스타 지은호의 자서전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며 기뻐합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돈을 벌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남자가 자서전을 쓰는 이유를 안 다음, 그는 더 이상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리고 서서히, 그는 자신 안의 이기심이 고개를 드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천성이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갈등은 더욱 커져 갑니다.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배우는 많지 않죠. 몇 안 되는 후보 가운데서 당연히 김태훈이 첫 손에 꼽혔습니다만, 문제는 이 분이 당시 '앵그리 맘'에 한창 출연하고 있었다는 점이죠. 어떻게든 스케줄을 만들어 달라는 수차에 걸친 요청 끝에 김태훈의 출연이 성사됐습니다. 특히 제작진 중 여성 스태프들의 성원이 절대적이었는데, 어쨌든 캐스팅 이후 재호의 분량은 상당히 많아졌습니다.

 

 

 

 

 

 

그리고 은호의 수행 매니저(실장급)인 고동규 역. 이 역할 역시 대한민국의 25~30세에 이르는 배우들 중 웬만한 배우는 거의 다 - 물론 주연급들은 빼고 - 거쳐간 역할입니다. 주인공인 지은호와 가장 많은 장면에 같이 등장해야 하는 - 심지어 여주인공 정은 보다 더 - 역할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매니저와 스타는 절대적으로 각별한 사이입니다. 특히나 이 작품에서 동규와 은호의 호흡은 절대적입니다. 은호는 표면적으론 최고의 스타지만 개인적인 공간으로 들어가면 10대 초반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인데, 그 십대 소년 같은 어리광(?)을 슬쩍 받아 넘기면서 은호에게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 동규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스타가 죽으라면 죽는 것이 매니저지만 동규는 이미 그 선을 넘어 섰고, 은호의 머리 꼭대기에 선 것은 물론 은호의 비위를 맞출 때는 맞춰 주면서 실질적으로 은호를 '관리'하는 인물입니다. 동규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어디 가면 나 만한 매니저가 있을 줄 알아요? 형은 나 없으면 큰일 나'라는 자신감이 있고, 실제로 그렇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은호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동규 역할을 위해선 뭔가 곰의 외형과 여우의 내면을 갖춘 배우가 필요했는데, 까다로운 이태곤 감독이 마침내 OK를 한 것이 신인 김민호였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동규 역할에 뭔가 주진모를 삼킬듯한 미소년이 하나 나와 주기를 바랐던 바라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탄탄한 연기력은 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습니다.

 

머잖아 드라마에도 그의 놀라운 개인기(?)가 등장할 예정입니다. (근데 볼수록 싸이 닮았군요.)

 

 

 

 

마지막으로 김미진. 한때 '목소리 이영애'로 유명했지만, 연기력 또한 발군입니다. 왕년의 '소울메이트'에서 명연기가 지금도 생생한. 극중에선 동규의 사촌 누나이며, 정은과 인연이 깊은 미용실 원장입니다. 가족이 없는 정은에게 친언니 같은 존재고, 뒷날 은호와 정은 사이에서 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소리없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연들이 있습니다. 요즘 남주혁과 함께 가장 핫한 남자 모델로 꼽히는 장기용이 '2005년 당시 배용준 급이었던 이석태' 역으로 이미 2회에 출연했고, 2회에서의 느끼한^ 연기가 호평을 받으면서 2015년에도 '왕년에는 배용준 급이었지만 어느새 몰락한' 성인 연기자 이석태 역으로 이어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 10대, 20대 30대로 갈라져 있는 바람에 10년을 뛰어넘어 출연하시는 분들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은호의 동생 현아 역의 20대와 30대 역으로 김윤서, 은호의 평생 친구인 현발이의 10대와 20대 역으로 김형규, 그리고 이석태의 20대와 30대 역으로 장기용... 아, 여기에 2005년과 2015년에 같이 나오는 가율할머니가 계시긴 합니다.)

 

그리고 미세스 탁 역의 황혜진, 오디션 때 영어 발음으로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했던 아역 박민수. 그리고 정동환 이영란 남경읍 서갑숙 등 관록있는 배우들로 '사랑하는 은동아'의 진용이 갖춰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3회. 실질적인 드라마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제공 들어갑니다.... 스피커는 쿠르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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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여섯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사랑하는 은동아] 5. 웹 드라마로 먼저 보여드리는 이유는?  http://fivecard.joins.com/1318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만약 누군가가 20년 동안 애타게 당신을 찾아 해메고 있으며, 그 사람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 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그리고 그 사람이 주진모나 김사랑 같은 멋진 상대라면 어떨까요. 물론 현실에선 일어나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드라마라는 것은 결국 그렇게 현실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상상을 대신 보여주는 데 그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이번 주말 '사랑하는 은동아'의 1,2회가 방송되고 있습니다. 총 16부작인 '사랑하는 은동아'에서 1회와 2회는 현수와 은동이라는 두 인물이 어떻게 만나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헤어져야 했는지를 설명해 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3부부터는, 성인이 되어 지은호라는 톱스타가 된 현수가 은동이를 찾아 나서고, 그 과정에서 현수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게 된 정은이 자신의 현실과 은호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낭만적인 상상을 빠지는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는 판타지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쉽지 않은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잠시 주변을 잊고 빠져들 수 있는 그런 판타지를 지향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 "나는 너를 기억하고 아직도 사랑하는데, 왜 너는..."이라고 말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면, 그대로 빠져들 수 있는 그런 판타지죠.

 

 

 

 

 

그동안 '사랑하는 은동아'의 웹시리즈인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 관련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본방에 들어간 만큼, 그동안 소개하지 못했던 '사랑하는 은동아' 전체 출연진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인물관계도. 1995년과 2005년용입니다.

 

 

 

그 다음은 2015년용.

 

 

 

 

1995, 2005, 2015년의 세 시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지만 세 시점의 비중을 공평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현재인 2015년 시점의 이야기가 가장 많고, 그 시점의 주인공인 지은호 역의 주진모와 서정은 역의 김사랑이 메인입니다.

 

두 주인공 중 주진모의 캐스팅 과정은 의외로 순탄했습니다. 2015년의 지은호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고, 만인의 연인입니다. 스타가 아닌 배우를 스타 역으로 캐스팅했을 때에는 드라마가 성공하기 힘들어집니다. 스타들만이 갖고 있는 아우라가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아무나' 캐스팅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시운이 맞았는지 주진모가 이 대본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물론 여기에도 함정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주진모는 사랑에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심각한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 혹은 만인을 호령하는 왕 역할이 어울리는 배우의 역할을 주로 연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지은호는 사람들 앞에 서면 위엄 넘치는 한류 스타의 느낌이지만,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드라마에서는 매니저 동규가 그 역할을 주로 합니다) 앞에서는 10대 불량소년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나오는 타입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상당 부분 '내려놓고' 망가져야 살 수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진모는 이 역할을 마음에 들어 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매우 적극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제작발표회 때 "이만큼 사랑하게 된 작품이 없었다"고 말한 게 농담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반면 서정은 역은 상대적으로 캐스팅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열살 짜리 아이가 있는 엄마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실제로 아이 엄마인 배우를 캐스팅하면 별 무리가 없었겠지만, 스토리의 특성상 '애 엄마 같지 않은 애 엄마'가 필요했기 때문에 캐스팅은 난항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누군가 "김사랑은 어때?"라는 아이디어를 내놨습니다.

 

사실 김사랑은 굳이 '시크릿 가든'의 예를 들지 않아도 대한민국에서 '부잣집에서 자라난 시크하고 부티나는 미인' 역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은동아'의 서정은은 옷가게 알바며 대필 작가, 마트 알바 등 가리지 않고 혼자 벌어 남편과 아들을 부양하는, 그러면서도 구김살 하나 없고 에너지 넘치는, 다 자란 캔디 같은 대한민국의 아줌마(물론 아줌마로 보이지 않는 아줌마)입니다. 과연 김사랑에게 이런 역할이 어울릴까?

 

이건 연출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문제였고, 김사랑과 꽤 긴 시간 대화를 나눈 이태곤 감독은 짦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정은이다." 그리고 그날부터 김사랑은 서정은이 되었습니다.

 

10대 현수 역의 주니어이자인을 캐스팅한 과정은 지난번에 설명한 적이 있고, 20대 현수 백성현은 이태곤 감독의 간곡한 부탁으로 역할을 맡았습니다. 사실 백성현 급의 배우에게 극 전반부에만 출연하는 역할을 요청하는 건 결례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이태곤 감독의 작품인 '인수대비'에 출연했던 인연 덕분에 백성현은 20대 현수 역을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요즘 '카이스트녀'로 각광받고 있는 윤소희도 역시 JTBC 드라마 '달래된장국'에 출연했던 옛 정을 살려 20대 은동 역으로 출연하게 됐죠.

 

 

 

그리고 나서 이어진 캐스팅. 은호를 좋아하지만 갖지 못하는 재벌 가문의 능력있는 커리어 우먼 조서령 역은 김유리가 너무나 잘 해낼 것이 분명한 역할이었기 때문에 누구도 이견이 없었습니다. 사실상 현수의 누나 역할을 하는 현수의 여동생 현아 역의 김윤서도 별 이론 없이 선택됐습니다. 현수의 어린 시절 라이벌(?)이었지만 뒷날 매니저가 되어 톱스타 지은호의 평생 동반자 역할을 하는 현발 역은 중견 연기자 김용희가 맡게 됐고, 현발이의 10대와 20대는 눈매가 인상적인 신예 김형규가 연기하게 됐습니다. 사실 10대 현수와 20대 현수가 다른 인물이면 현발이도 다른 인물이어야 했지만, 재능 넘치는 김형규를 좀 더 오래 보여주기 위해 10대 현발이와 20대 현발이는 같은 인물이 연기하는 것으로 처리됐습니다. 1부에서 20대 현발이의 등장을 알리는 대사는 이렇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10년 일찍 나이들어 있던 현발이의 세월만 그대로였습니다...." 타고난 노안이었단 얘기죠.^

 

물론 아직 남아 있는 부분이 몇 있었습니다. 2015년 시점에서 정은의 남편이며 한때 메이저리그를 겨냥했던 유망주 투수 출신인 최재호 역, 은호를 늘 수행하며 손발 역할을 해 주는 실장(매니저) 고동규 역, 그리고 동규의 친척 누나이며 동규와 정은을 처음 연결해 주는 미순 역 등, 유난히 비중이 큰 역할에는 누구를 캐스팅해야 할지가 고민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한번 접겠습니다.

 

일단 '사랑하는 은동아' 1회를 못 보신 분들은 이쪽에서 한번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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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다섯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사랑하는 은동아] 4. 주니어, 이자인이라는 보석의 발견 http://fivecard.joins.com/1316

 

 

 

 

웹시리즈(웹드라마)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은 총 5부작으로, 이제 마지막회가 남아 있습니다. 총 50만 뷰 이상의 수치가 나왔습니다. 예상을 뛰어넘는 뜨거운 반응이라 다들 고무되어 있습니다. 격려 전화도 옵니다. 그런데 이런 반응.

 

"너희 예고 잘 봤다. 잘 만들었더라."

"예고? 아. '더 비기닝' 말씀이군요. 2편도 보셨나요?"

"2편은 또 뭐야. 예고가 2편이 있냐?"

"14분, 15분씩 되는 예고가 어디 있어요. 그거 5부작 웹 드라마에요. 본편 앞부분을 새로 편집한."

"응? 그게 그렇게 길었어? 5부작이면 드라마를 다 보여주는 거 아니냐? 왜 그렇게 많이 보여줘?"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한 편을 만드는 데에는 수억원의 돈이 들어갑니다. 그렇게 비싼 콘텐트를, 방송 전에, 다른 플랫폼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인터넷으로 미리 다 보면 누가 본방을 보겠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곤 했습니다.

 

드라마만 그런 것은 아니었죠. JTBC 예능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뽑아서 예고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재미있는 걸 예고로 보여주면 누가 본방을 보겠느냐"는 주장 때문이었죠. 이걸 방송용어로 '바레(일본말입니다. '네타바레'의 그 '바레'죠)'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처럼 볼 거리가 널려 있는 시대에는 가장 재미있는 것이 예고로 나가야 시청자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습니다. '아끼면 똥 된다'의 세상인 셈입니다.

 

 

 

다행히 '사랑하는 은동아'의 이태곤 감독은 사전 프로모션의 중요성을 잘 아는 분이었고, "시청자들에게 아낌없이 드라마의 고갱이를 보여줘야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에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여전히 불안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드라마의 저변을 일찍 넓혀야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대세론이 이겼습니다. 그렇게 해서 웹 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 5부작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실 JTBC는 이전부터 드라마의 온라인 선공개 사례가 몇차례 있었고, 꽤 반응도 좋았습니다. '무정도시', '우리가 결혼할수 있을까', '세계의 끝' 등이 1회 70분 분량을 미리 인터넷을 통해 선공개됐고, '밀회'도 예고편이라기엔 매우 긴 25분 분량의 압축 영상이 미리 인터넷을 통해 공개했습니다. 당연히 꽤 큰 반향이 있었고, 화제를 낳았습니다.

 

 

 

 

이번 '더 비기닝'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간 셈입니다. 사실 온라인의 작은 화면으로 70분 분량의 드라마를 한꺼번에 보는 것은 상당히 피로한 일입니다. 그리고 방송용 드라마와 온라인 영상의 호흡도 다르다는 점을 반성했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이번에는 웹 드라마의 형식에 따라 5부작 시리즈가 탄생한 것입니다.

 

 

 

 

 

 

웹 드라마 제작에는 공동 연출자인 김재홍 감독이 가장 큰 기여를 했습니다. 본래 대본 순서대로 촬영된 장면 가운데 웹드라마 형식에 가장 적절할 것 같은 장면을 뽑고, 편집을 새로 해서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29일 방송되는 본편을 보시는 분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드라마를 보시게 될 겁니다. 몇 장면은 웹 드라마에만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네이버 측의 정책에 따라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은 '웹 시리즈'라는 이름을 갖고 방송됩니다. 처음부터 온라인을 목표로 제작된 콘텐트는 아니기 때문에 '웹드라마'라는 장르에 포함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뭐 운영 정책인데, 거기 맞설 이유는 없겠죠.

 

아무튼 시청자들이 정규 편성 시간에만 드라마를 보고 즐길 거라고 생각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습니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시청자의 환경이나 취향에 따라 콘텐트를 소비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드라마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시청자들에게 낚싯밥을 던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스크린에서 시청자들이 콘텐트를 소비한다고 해도, 네트워크 TV의 편성 자체가 의미 없는 시대까지는 아직 좀 시간이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청자 입장에서 본다면 현재의 월-목요일 밤 10시대나, 토-일요일 밤 10시대, 그리고 '사랑하는 은동아'가 방송될 금-토요일 밤 8시40분대 같은 시간은 오프라인 매장의 윈도우 같은 역할을 하는 시간대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간대에 살아남는 드라마는 고전적인 시청률이 높은 작품일 수도 있지만, '나와 비슷한 다른 많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라는 생각을 공유하게 해 주는 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시간에 같은 콘텐트를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물론 SNS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그 기분을 표출할 수 있게 된 세상이죠), 그걸 위해서라도 편성 시간의 의미는 꽤 의미를 갖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금,토요일 밤 8시40분입니다.)

 

웹 시리즈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 1회 이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2회부터 4회까지.

 

 

 

 

 

 

 

 

 

 

 

사실 웹 드라마 제작의 반론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좋아. 선공개가 재미있어서 본방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나머지 분량의 시청률이 높아진다고 치자. 만약 선공개의 반응이 안 좋으면 미리 공개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것 아닐까?" 뭐 맞는 얘기긴 합니다만, 그렇게 해서 망할 드라마라면 굳이 선공개를 하지 않아도 망하겠지요.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가장 빛나는 현수-은호 3인방의 떼샷. 이렇게 놓고 보면 참 캐스팅 잘 됐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뿌듯)

 

다음엔 전체적인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 드라마에 현수/은동이만 나오는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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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 관련 네번째 일지입니다.

 

지나간 글들은 이쪽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사랑하는 은동아] 3. 그렇다면 화양연화는 어떨까? http://fivecard.joins.com/1315

 

 

 

 

 

이미 첫글을 보셨으면 드라마의 줄거리를 아시겠지만, 이 드라마는 주인공 역할이 3명씩인 독특한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대략 이런 느낌이죠.

 

10대 현수 (주니어)             -         10대 은동 (이자인)

20대 현수 (백성현)             -         20대 은동 (윤소희)

30대 현수-은호 (주진모)      -         30대 은동 (?)           -              작가 서정은(김사랑) 

 

 

 

 

특히 남자 주인공을 2명 쓰느냐, 3명 쓰느냐는 꽤 골치아픈 문제였습니다. 대개의 작품에서 대부분의 역할은 10대 남자/현재 남자, 10대 여자/현재 여자 정도로 나뉘는게 보통인데, 이 드라마는 구성상 각각 3명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로 쓰여졌습니다. (왜 그런지는 본편 드라마를 보시면 아마 이해하실 듯.)

 

그래서 남녀 메인 주인공이 주진모-김사랑으로 결정된 다음에, 10대와 20대 역할들을 어떤 배우로 채워가느냐 하는 것이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특히 주진모의 어린 시절로 누구를 캐스팅할 것이냐 하는 문제 때문에 정말 많은 배우들을 검토했습니다. 유명 아이돌들을 비롯해서, 대한민국 18~25세 정도의 배우들 가운데 '10대 현수'역으로 검토해보지 않은 배우는 거의 없었을 겁니다. 그만치 이 캐스팅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평소 친하게 지내던 P모씨와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 없나?"

"우리 애들이 요새 좀 바쁘긴 한데, 한번 보실라나?"

"누구?"

"주니어요."

 

주니어라면 그.... 아무개씨와 이름이 똑같던 얘?

 

 

 

그, 글쎄... 그렇게 잘생겼다는 기억은 없ㅇ...

 

솔직히 말해 JJ프로젝트도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때는 얼굴이 그닥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주니어군이 회사로 찾아왔습니다.

 

헛.

 

너 언제 이렇게 잘생겨진거냐. (물론 원래 잘 생겼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날 오디션을 본 주니어는 그렇게 뛰어난 연기 자질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쳐다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른 얼굴에 비해, 연기력은 아직 미진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수준.

 

심지어 오디션 말미에 이태곤 감독은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네가 뽑히면 부모님 덕이고, 안 되면 네 탓이다." 주니어 군이 떠난 뒤에도 약간의 논란이 있었을 정도. "그래도 주인공인데 저 연기력으론 곤란하지 않냐"는 의견이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저런 비주얼을 포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드라이브 (물론 저도 이 쪽이었습니다)에 반론은 묻혔습니다.

 

두번째 위기는 스케줄. 세계로 뻗어가는 탑 아이돌 그룹의 멤버답게 국내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작진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연기를 잘 하면 모르겠는데, 연기가 불안하기 때문에 절대 촬영 일수를 양보할 수 없다." 하지만 한류 팬들을 외면할 수 없던 소속사의 고민이 시작됐고, 다들 애가 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니어 군은 그냥 저냥 얼굴만 잘생긴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볼 때마다 일취월장. 그때부터 주니어는 이 드라마의 에이스로 자리잡았습니다. 스케줄만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면 나오는 장면이 훨씬 늘어났을텐데...

 

(모든 제작진의 아쉬움을 담아 묵념.)

 

 

 

 

주니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상대역은 이자인. 덧니가 매력적인 초등학교 6학년입니다. 네. 은동이의 실제 나이죠. 처음 대본을 볼 때만 해도 "열일곱 고등학생과 열세살 초등학생 사이에... 그게 뭐냐"에서부터 "대체 얘들이 느끼는 감정이 뭔지 모르겠다"는 주장이 꽤 있었습니다.

 

사실 대본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떤 감정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습니다. 현수 말마따나 '가슴에 쥐가 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보고 있으면 막 안타깝고, 귀엽고, 죄진 듯한 기분이 들면서 정말 뭐라도 다 해주고 싶은 그런 느낌.

 

제작진은 열일곱 소년에게 그런 기분이 들게 하는 그런 얼굴이 분명히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리고 머잖아 그 소녀가 나타났습니다.

 

 

 

 

 

사실 자인이의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 뒤에는 굉장한 승부욕이 숨어 있었습니다. 최종 오디션을 볼 때, 이태곤 감독은 여섯명의 후보 중 이자인 양에겐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볼 때는 가장 유력한 후보인데 질문을 안 하는게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만 질문이 돌아오지 않자 이자인 양은 얼굴에 숨김 없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더군요. (좀 미안한 얘기지만, 정말 귀여웠습니다.)

 

오디션이 끝난 뒤, 왜 자인이게는 아무 질문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질문할 필요가 없지요. 처음 볼 때부터 걔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런 아저씨들의 속을 몰랐던 자인양은 오디션이 끝난 뒤 엄마 앞에서 분을 참지 못하고 펑펑 울었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카메라 스태프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촬영 시작.

 

 

연출을 맡은 이태곤 감독입니다.

 

 

 

햇살이 무척 따가운 날이었습니다.

 

사실은 이런 날도 조명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대낮에 왜 조명팀이...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조명이란 결국 최적의 광량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역할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겹친 끝에 드라마 한 장면이 얻어지는 것이죠. 1분, 2분짜리 짧은 그림을 얻기 위해 수십명의 보이지 않는 제작진이 땀을 흘립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첫 결실이 오늘 선을 보였습니다.

 

바로 '사랑하는 은동아 - 더 비기닝' 1회. 5부작인 '사랑하는 은동아'의 웹드라마 버전 중 첫번째 편입니다.

 

 

 

 

첫날부터 뜨거운 반응 보여주신데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나자나 왜 곧 방송될 드라마를 왜 이렇게 온라인으로 먼저 보여주고 난리일까요? 다음 번 글은 바로 이 '웹드라마 버전을 굳이 만드는 이유'에 대한 내용이 될 듯 합니다. 기대해 주세요.

 

 

 

이런 심쿵 장면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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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에 대한 세번째 글입니다.

 

가끔 되물어 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사랑하는 운동화' 아니고, 스포츠 드라마 아닙니다.

 

아무튼 앞글들은

 

[사랑하는 은동아] 1.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사랑하는 은동아] 2. 좋은 예고를 만들기 위해서 http://fivecard.joins.com/1314

 

 

 

'첨밀밀'에 이어 '사랑하는 은동아' 제작진이 오마주할 작품으로 선택한 영화는 바로 이 작품, '화양연화'입니다.

 

1990년대의 왕가위 감독은 인간을 벗어난 존재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중경삼림'이나 '아비정전'도 흠잡을데 없는 작품들이지만 이 영화, '화양연화'에서 보여준 감정의 폭발은 그야말로 최고. '어른들의 금지된 사랑'을 이야기할 때 아마도 영원한 레퍼런스로 남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은동아'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는 연인들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특히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현수와 은동이의 관계는... 대본만 보더라도 참 보는 이들을 가슴아프게 합니다. (물론 가슴아프게만 하는 드라마는 아닙니다. 그 과정에서도 웃음이 넘치는, 특이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어쨌든 실로 어느 한 장면을 꼽기 힘든 이 영화. 우메바야시 시게루의 음악. 냇 킹 콜의 목소리.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추억입니다.

 

아무튼 구상은 끝났고, 이제 실천에 들어갑니다.

 

 

 

일단 '첨밀밀' 편. 서울 당인동의 창 넓은 카페가 영화 원작에 나온 전파사로 변신했습니다.

 

1분 이내의 짧은 영상이지만 찍는 품은 장편 드라마와 똑같습니다.

 

 

 

 

 

 

 

 

 

 

이 영상에는 '사랑하는 은동아' 본편의 주역들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왼쪽 모자 쓴 분이 이동규 조명감독, 오른쪽 카메라 옆에 있는 분이 김천석 촬영감독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촬영감독 중 한 분인 김천석 감독은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등을 통해 드라마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잘 알려진 분이죠.

 

시간 절약을 위해 촬영 장소를 한 곳으로 제한했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흔히 "나 드라마 촬영장 구경 가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실제 촬영장에 가면 30분도 못 버티고 지겨워서 도망가시곤 합니다. 만들어 놓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분들은 신 단위로 보게 되지만 촬영은 컷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이 바뀔 때마다 카메라를 옮기고 조명도 새로 세팅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분들은 촬영장에 직접 가도 왜 1분 남짓한 장면을 찍는데 길게는 한시간씩 시간이 가는지 의아해 하곤 합니다.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두 주인공은 카페 한 구석의 기타를 집어들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두 사람 모두 기타 유단자. 주진모는 고교시절 일산 부근에서 소문난 밴드의 기타리스트였고, 김사랑은 클래식 기타리스트 배장흠씨의 제자로 지난해 7월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못 믿으실까봐 퍼왔습니다. 약 4분13초 정도부터.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영화 '원스'의 느낌이.

 

 

 

아무튼 이렇게 잠시 시간을 보내고,

 

 

 

'첨밀밀' 편 촬영이 마무리됐습니다.

 

해가 진 뒤 곧바로 '화양연화' 편 촬영이 시작됩니다.

 

 

 

장소는 종묘 뒤편. 흔히 '순랏길'이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해가 지고 노란 가로등이 켜지면 이렇게 운치있는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촬영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이 담벼락.

 

 

 

처음이라 좀 어색한 듯한 느낌도 있지만 이내 프로답게 감정이 잡혀 갑니다.

 

사실 두 배우는 이 예고 촬영 때까지 두 사람이 같이 찍는 장면이 없었습니다. (포스터 촬영 외에는)

 

 

 

어깨에 기대자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장만옥. 감정 들어갑니다.

 

 

 

 

치파오 차림이 참 잘 어울립니다.

 

 

 

모니터 화면으로 보면 이런 느낌.

 

 

 

 

밤도 깊어가고, 짧은 영상이지만 베스트 컷을 얻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에 밤은 점점 깊어갑니다.

 

 

 

 

 

 

다음 글에선 우리 최강 비주얼의 세 현수, 주니어-백성현-주진모 중 주니어 커플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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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에 대한 두번째 글입니다.

 

첫편은 이쪽:

[사랑하는 은동아] 왜 이 드라마를 선택했나?  http://fivecard.joins.com/1312

 

 

 

한 편의 드라마를 성공시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드라마를 잘 만드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건, 그 잘 만든 드라마가 묻히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즉 앞의 것은 production, 뒤의 것은 promotion입니다. 다른 모든 흥행 업종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콘텐트가 있어도 사람들이 그 콘텐트의 존재를 몰라서 접근하지 못한다면 말짱 헛일이 되고 맙니다. 특히나 요즘처럼, 수없이 많은 스크린에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콘텐트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선.

 

그래서 어떤 식으로 '사랑하는 은동아'에 손님들을 모셔올 것인지에 대한 숙의가 시작됐습니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것은 포스터와 티저(Teaser)라고 불리는 예고입니다(본래 티저란 예고나 광고 중에서도 뭔가 속임수를 쓴 듯한 특이한 기법을 사용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근래에는 아예 예고를 티저라고 부르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더군요). 영화라면 트레일러(Trailer)라고 부를 것들입니다.

 

이미 보여드린 바와 같이 '사랑하는 은동아'의 첫번째 티저는 드라마의 전체 주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기자회견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 이어서 공개될 티저를 뭘로 할까를 놓고 회의를 진행햇습니다. 그러다 '사랑하는 은동아'의 두 주인공, 주진모와 김사랑이 고전 명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재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말하자면 오마주(Hommage)를 해 보자는 거였죠.

 

 

 

 

 

 

물론 오마주를 한다고 해서 아무 영화나 할 일은 아니고, '사랑하는 은동아'와 뭔가 맥이 통하는 작품이라야 한다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일단 어떤 영화의 어떤 작품을 오마주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줄거리를 아시는 분들은 눈치채셨겠지만 '사랑하는 은동아'는 일단 '위대한 개츠비'에 꽤 많은 것을 빚진 작품입니다. '한 남자와 일생을 건 사랑' 이야기라는 면에서 그렇죠. 그밖에도 이 작품은 몇 가지 영화가 레퍼런스 역할을 합니다. 그런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해 보는 것은, 영화의 주제를 잠재 시청자들에게 전달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개츠비라면 이런 장면. (사실 디카프리오 버전은 크게 기억나는 장면이 없죠. 오히려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예전 개츠비 쪽이 명장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전 영화라 곤란하다는 결론.)

 

 

 

두 주인공의 '기억', 그리고 '평생에 걸친 사랑'이 중요하게 부각된다는 점에서 '노트북'도 큰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심지어 드라마 2부에는 주인공들이 이 영화를 같이 보는 장면도 나옵니다. 특히 이런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그런데 저 장면을 보고 '노트북'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까?"라는 질문 나옴.)

 

 

 

 

역시 '정말 사랑하면서도 운명에 의해 만나지 못하게 된 연인'의 이미지를 담은 '러브 어페어'도 상당히 관련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죠. 이런 장면도 정말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역시 비슷한 질문 나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서 찍어보자"는 의견 낸 사람이 폭행당함.)

 

 

 

그리고 남편이 있는 여주인공과의 절절한 사랑이란 면에서 고전 중의 고전인 이런 작품,

 

 

 

 

 

뭐 풋풋한 첫사랑을 다룬 작품인데다 근래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멜로드라마라는 점에서 이런 작품도 거론됐습니다. (물론 거론만... 주진모와 김사랑이 저 장면을 재현한다는 건 좀...)

 

 

 

뭐 첫사랑 얘기를 하자면 너무너무 지겨운 - 나빠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써먹어서 - 이런 장면도 있죠. (하지만 너무 식상해서...)

 

 

 

이 작품도 끝까지 거론된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가 한 여자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력적이었고, 특히 이 엔딩 장면은 참 여러 모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됐지만 안타깝게도 '리무진은 구할 수 있지만 베란다에 사다리가 달린 집은 국내에서 찾을 수 없다'는 말에 꿈을 접게 됐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이 장면을 참 좋아합니다만, 그리 지명도가 높지 않은 장면이라는 점에서 탈락.

(기억하시는 분 있을 겁니다. 저 보석 상자로 탁 깨무는...)

 

그래서 결국 최종적으로 선택된 영화는,

 

 

바로 이 영화. 세대를 뛰어넘은 고전이면서, 평생을 그리워 하지만 운명에 의해 자꾸만 엇갈리는 연인들의 이야기. 등려군의 노래들과 함께 정말 잊을 수 없는 영화죠. '인연'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는 면에서 '사랑하는 은동아'와 어울리는 면이 있습니다.

 

 

이 영화 하면 이 장면을 떠올리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만,

 

 

 

이 장면 또한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죠. 정말 잊을 수 없는.

 

아무튼 이 영화와 또 한편의 영화(이건 다음 포스팅에서 공개합니다)가 최종 선정돼 이 두 작품에 대한 오마주로 '사랑하는 은동아'의 예고편을 만들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자, 그런데 어떻게 만들지?

 

일단 '첨밀밀' 편을 보시고, 너무 길어졌으므로 '그 어떻게'에 대한 나머지 얘기는 다음 편으로 이어갑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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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은동아]라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솔직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제목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 그리 썩 세련됐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합니다. '은동이'가 여자 아이의 이름이라는 것도 쉽게 들어오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 제목을 처음 들은 사람은, "'사랑하는 운동화'? 스포츠에 대한 드라마야?" 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대본을 읽다가 저는 제 정체성을 살짝 의심했습니다. 저는 본래 '가을동화'나 '겨울연가'류의 드라마를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참고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대본은 사람을 푹 빠져들게 하더군요. '내가 이상해진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해서, 저는 이 드라마를 통해 드라마 CP로 데뷔하게 됐습니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간략하게 정리하면,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사랑 하나를 갖지 못한 남자가, 20년간 사랑해온 여자를 잊지 못해 일어나는 이야기' 입니다. 어찌 보면 '위대한 개츠비'와 닮아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2015년 현재. 30대 톱스타 지은호(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입니다)가 어느날 자서전을 쓰겠다고 발표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단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는 진정한 자신의 사랑을 찾겠다는 겁니다.

 

지은호가 은호라는 예명을 쓰기 전인 20년 전(1995),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보내고 있던 고1 박현수(지은호의 본명입니다)는 열 세살 소녀를 처음 만납니다. 부모도 없고, 돌봐줄 사람도 없는데 왠지 씩씩하고 구김살 없는, 맑은 눈망울을 가진 은동이. 현수는 은동이를 보면서 '가슴에서 쥐가 나는' 느낌을 갖게 되지만, 불행히도 뭔가 어떻게 해 보기도 전에 둘은 헤어집니다.

 

10년 뒤(2005), 현수는 배우 지망생입니다. 잘생긴 얼굴에 비해 연기 재능은 별로라는 평을 들었지만 어느날 길에서 은동이를 만납니다. 10년 만에. 아무 예고도 없이. 둘은 그대로 불타오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어쩐 일인지, 은동이는 어디론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현수에겐 아무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다시 10년 뒤인 현재(2015). 현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남자 배우가 되어 있습니다. 부와 명성을 모두 차지한 남자. 누구나 부러워하는 남자.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의 빈 자리를 채우지 못한 남자. 그래서 그는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은동이가 살아 있다면, 나를 모를 리는 없다. 그런데도 은동이가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은 이미 죽었거나, 내가 자신을 찾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은호가 된 현수는 책을 씁니다. 자신과 은동이가 만난 많지 않은 날들의 기억을 담은 책을.

 

그렇지만 생전 글을 써 보거나 한 적이 없는 은호. 그래서 주위의 알음알음으로 대필작가 정은을 구합니다. 은호는 자기의 사연을 말로 녹음해 전달하고, 정은은 그걸 풀어서 글로 쓰는 역할이죠. 정은은 은호의 육성을 통해 현수와 은동이의 사랑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기 얘기처럼 공감하면서 글로 사연을 정리합니다.

 

 

 

 

 

이 대본을 선택한 이유 중 가장 큰 건 역시 '신선함'이었습니다. 무슨 소리냐. 어린시절부터 시작하는 순정 스토리가 어떻게 참신할 수 있느냐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전통적인 멜러드라마의 선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감각을 줄타기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다릅니다. 고전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지나친 순수함과 맹목적인 정열 때문에 자신도 망치고 상대도 망치는 민폐성 인물들이었다면,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적당히 이기적인, 실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의 면모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드라마들에 비해 다소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감정 표현이 있는 것도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대본을 쓴 백미경 작가는 비록 신인으로 분류되지만, 필력은 결코 신인이 아닙니다. 작가 이야기는 나중에 또 할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결국 한 남자의 변함 없는 사랑입니다. 일찌기 개츠비가 그랬듯, 한 남자의 심지 굳은 사랑은 때로 '위대한 사랑'으로, 어떤 때에는 집착에 가까운 '지독한 사랑'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이 드라마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 돈, 명예, 명성, 대중의 사랑을 모두 가진 한 남자가 어떻게 사랑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사랑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를 '지금까지의 비슷한 드라마들과는 달리 엄청나게 경쾌한 템포로' 보여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은동아'는 그런 드라마입니다.

 

 

 

 

며칠 전 경기도 모처(정확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드라마의 판타지를 깰 수 있기 때문입니다)에서 '사랑하는 은동아'의 도입부를 이루는 기자회견 장면의 촬영이 있었습니다. 은호가 자서전을 쓰기로 결심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은동이의 존재를 알리는 그 장면입니다. 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주진모의 첫 촬영이기도 했죠.

 

 

 

이 작품을 위해 5kg를 감량한 주진모의 날쌘 턱선이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기자회견의 기자 여러분들은 물론 진짜 기자가 아니지만, 중간 중간 진짜 기자보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나와 주진모씨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복근 관리' '얼굴 사이즈' '이상형'에 대한 질문들도 나왔습니다. 간간이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사실 저렇게 멀쩡히 앉아 있지만 이날 주진모는 땀을 1리터는 흘렸을 겁니다. 일단 외부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문을 닫고, 에어콘 소리도 막아야 했기 때문에 저 자리는 엄청 더웠습니다. 조명 아래 앉아 보지 않은 분들은 그 고초를 모르죠.)

 

 

 

 

이 장면이 현재 공개된 '사랑하는 은동아'의 첫번째 티저가 됐습니다.

 

 

 

앞으로 [사랑하는 은동아]라는 말머리를 단 글은 실제 제작 일정과는 좀 다른, 저만의 제작 일지로 써 볼 계획입니다. 드라마 현장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드라마 촬영장이란 곳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번 글은 '영화같은 티저를 만들어라'가 될 겁니다.^  저 길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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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는 말이 '그만하면 잘 했어(Good Job)'야."

 

이 말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영화, '위플래쉬(Whiplash)'를 봤습니다. 압권입니다. 특히 마지막 15분 가량, 대사는 열 마디도 되지 않는 가운데 펼쳐지는 치열한 대결과 반전, 이런 영화는, 특히 이런 피날레는 어떤 영화에서도 일찌기 본 적이 없습니다. 근 몇년간 본 영화 중 가장 강추하고 싶은 작품.

 

감독 데미안 차젤(Damien Chazelle, forvo.com에 따르면 샤젤도, 차젤레도 아닙니다)은 18분짜리 단편으로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만들어 본 뒤, 그 성과를 토대로 투자를 받아 이 본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인간승리.

 

그런데 의외로 이 영화에 반감을 갖는 분들도 적지 않더군요. 물론 어떤 부분이 거부감을 낳는지도 충분히 이해할 만 합니다.

 

 

 

 

드럼에 재능 있는 학생 앤드루(마일스 텔러)는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인 샤프너 스쿨(가상의 학교입니다)에 입학해 꿈을 키워나갑니다. 여느 때처럼 밤 늦게 연습하던 어느날, 학교 최고의 실력자인 플레처 교수(J.K. 시먼스)로부터 지목을 받고, 학교의 엘리트들이 속해 있는 스튜디오 밴드의 연습에 나가게 됩니다. 그날부터 앤드루의 지옥 문이 열립니다.

 

플레처의 광기는 영화 전편을 통해 관객을 장악합니다. 어린아이를 보거나, 마음에 드는 순간에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따뜻한 말로 간을 빼줄 듯 얘기하지만, 일순간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를 접하게 되면 조상 삼대를 들먹이는 욕설과 함께 폭행도 서슴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미친 선생'이죠. 그에겐 레귤러와 후보의 구분도 없습니다. 어제 아무리 잘 했어도 오늘 실수하면 당장 연습장 밖으로 악기를 싸 들고 나가야 하는 것이 그의 규칙입니다.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이런 식의 훈육 방식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울 수도 있는데, 영화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전제는 플레처의 실력입니다. 일반인은 물론 드러머들의 귀로도 구별하기 힘든 미세한 박자 차이를 고집하고, 30여명의 밴드 가운데 누가 틀린 음을 냈는지 귀신같이 짚어 내는 능력. 그리고 그가 지도한 밴드의 수상 경력과 그가 키워낸 제자들의 활동상이 이미 그의 실력을 검증해 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폭거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죠.

 

이런 내용이다 보니 영화의 제목이자 메인 테마인 곡의 제목이 whiplash, 곧 '채찍질' 인게 당연한 일. 

 

 

 

 

 

이 영화에 대한 반감의 포인트도 여기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시퀀스들을 '교육 현장'에 대입하고 싶어 합니다. 실제로 영화 중간에 플레처의 훈육을 받았던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문제 제기가 중요한 장면으로 등장하기도 하죠. 하지만 분명히, 이 영화의 내용을 교육 전반에 대한 우화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상위 0.01%, 아니, 상위 0.0001%에 속하는 초 엘리트들의 도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학교 교육이란 '과정 이수'와 '졸업 자격'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입니다. 즉 '이 수준의 학교에서 60점 이상으로 과정을 마치면 어느 정도의 수준 이상임을 인정할 수 있다' 정도가 학교 조직의 목표인 셈이죠. 하지만 이 경우, 고도의 능력을 갖춘 슈퍼 엘리트의 육성을 기대하는 것은 큰 무리입니다. 이른바 일반 교육과 영재 교육을 분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나를 극한까지 혹독하게 몰아쳐서 내 안의 잠재력을 일깨워 줄 수 있었으면'에 대한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런 욕구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욕구는 의외로 자신이 어떤 분야에서 정상을 노릴 만 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서구인들보다는 한국인들의 내면에 이런 정서가 더 잘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그랬고, 만화도 영화도 아닌 김성근 감독의 신화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와 존경을 보내고 있는 것 역시 이런 정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플레처가 계속 예로 드는 찰리 파커와 조 존스의 전설도 '누군가를 끝까지 쥐어짜 죽을 힘까지 다 발휘하게 하지 않으면 천재성은 쉽게 발현되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을 뒷받침합니다. 일본 만화에서 주인공이 한번 '각성'에 이르기 위해선 온갖 시련을 죄다 극복해야 하는 것처럼.

 

물론 아무리 쥐어 짜도 그 방면으로 별 특출한 재능이 보이지 않는 학생을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이 '누군가'는 부모, 교사, 가족, 친지, 심지어 그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미친듯이 쥐어 짜 봐야 그 결과가 해피엔딩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합니다. 다만 그 누군가가 그 자신이라면 - 즉 자기를 남들의 눈으로 볼 때에는 미친 짓으로 보이는 고된 수련의 길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 그 자신이라면, 그리 길지 않은 인생에서 그만치 자신을 쏟아 부을만 한 목표를 갖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위 사람 누군가에 의해 자신의 재능이 보잘것 없는 것이고, 그 부문에서 큰 성취를 기대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그리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말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영화 '위플래쉬'의 플레처와 앤드루는 둘 다 행복한 편입니다. 비슷하게 미쳐 있으니 말이죠. 이 둘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원하는 바가 같고, 원하는 바를 위해 가려고 하는 길도 같습니다. 앤드루 역시 기회가 온다면 언젠가 또 다른 플레처가 될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도 자명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쨌든, 앤드루나 플레처 같은 사람을 '정당하다고' 옹호하는 작품은 절대 아닙니다.

 

아무튼 아닌 경우도 있겠으나, 대개의 경우 한 시대를 이끌어가는 천재를 낳게 하는 것은 가혹한 훈련과 경쟁의 결과라는 것은 매우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위플래쉬'의 영화적 성취는 탁월합니다. 영화 전편에 나오는 드럼을 모두 직접 연주했다는 마일스 텔러의 노력에도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론은: 꼭 보세요.

 

 

 

P.S.1. 이 영화와 더불어, '세상은 꼭 1등만을 위한 것은 아니야. 평범한 재능의 사람들에게도 이 세상은 충분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야'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개의 가치가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게 오히려 문제죠.

 

P.S.2. 영화의 결말은 제 생각엔 해피엔딩인 것 같습니다만, 그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도 많은 듯. 글 저 아래에 데미언 차젤 감독이 생각하는 '영화가 끝난 뒤 두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붙여 놨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P.S.3. 영화에 나오는 대부분의 곡들은 이미 존재하는 명곡들입니다. 듀크 엘링턴의 '캐러밴'. 그 유명한 조 존스의 드럼 솔로입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한번 보시죠.

 

 

 

그리고 행크 레비의 '위플래쉬'. 역시 전설적인 섹소폰 연주자 돈 엘리스의 1973년 오리지널 녹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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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데미언 차젤 감독은 이 영화의 엔딩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부러 번역은 하지 않았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사실 아니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영화를 본 뒤에 읽어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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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부를 위해서도 일하지 않는 비밀 정보 기관 [킹스맨]의 멤버 갤러해드(본명은 해리, 콜린 퍼스)는 임무 수행중 죽은 동료의 아들에게 메달을 줍니다. 세월이 흘러 17년 뒤, 그 소년 엑시(타론 에저튼)는 곡절 끝에 킹스맨의 멤버가 되기 위한 테스트에 응합니다. 그 사이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세계적인 IT기업가 발렌타인(새뮤얼 잭슨)은 지구에 붙어 사는 바이러스적 존재인 인간이 지구를 망가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음모를 꾸밉니다. 그리고 그 음모는 엄청나게 위험한 계획이란 사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물론 [킹스맨]을 즐기기 위해 사전에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 구조는 어떤 다른 영화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 선명하고 단순합니다. 사실 기본 설정부터 말이 안 됩니다. '유명 양복점들과 연관된 재력가들이 뭉쳐 전 세계 어떤 정부, 어떤 권력과도 관련이 없는 정의 수호를 위한 국제 정보기관을 만들었다'라뇨.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랍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괴팍한 설정과 막나가는 진행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킹스맨'의 첫번째 포인트는 당연히 '스파이는 영국산'이라는 교훈의 부활입니다. 물론 너무 늦게 태어난 까닭에 이미 스파이 세계가 이선 헌트와 제이슨 본이 지배하던 세계였던 분들, 그리고 007 시리즈가 다니엘 크레이그라는 극약 처방으로 본래의 색채를 잃은 시대에 영화를 보기 시작한 분들에겐 참 죄송하기 짝이 없는 얘기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과거 션 코너리와 로저 무어가 제임스 본드로 활약하던 시대를 얘기하는 것은 참 무의미한 경우가 많고, 그보다 더 마이너한 TV 시리즈들인 '어벤저(The Avengers)'나 '전격대작전(The Persuaders)', '세인트(The Saint)' 등을 얘기하면 이 뭔 선사시대 이야기인가 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이런 '수트를 폼나게 갖춰 입은 영국제 스파이'의 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서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킹스맨'이 가장 반가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전격 제로작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 방송된 'New Avengers'의 패트릭 맥니. 존 스티드라는 빛나는 '영국 스파이' 캐릭터로 20여년에 걸쳐 큰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리고 007 이전, 카리스마 넘치는 '세인트'로 인기 스타의 자리를 굳힌 로저 무어.)

 

그 전통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본드는 불행히도 그 맥을 스스로 잘라 버렸습니다. 바로 2006년작 '카지노 로얄'에서 시작된 다니엘 크레이그의 새로운 007 시리즈가 시작되면서 그 본질적인 정취가 사라져 버렸죠. 일부 본드 마니아 중에는 다니엘 크레이그의 거칠고 냉혹한 이미지가 원작자 이언 플레밍이 창조한 초기 본드의 모습과 어울린다며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주장을 펴는 분들은 플레밍이 왜 '근육질의 액션 스타형 젊은이' 션 코너리를 캐스팅 한 데 실망감을 표하고 "내가 원했던 본드는 데이빗 니븐"이라고 말했는지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플레밍은 이미 이 시절에 '영국산 스파이'의 본질이 어떤 난관에 부딪혀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낙관적인 태도로 극복해 나가는, 여유 있는 신사의 이미지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그의 예상과는 달리 션 코너리는 역사에 남을 영국산 스파이의 전형을 멋지게 연기해 냈고, 그 연기를 본 플레밍이 "내가 그를 과소평가했다"며 만족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007 시리즈 제작진은 피어스 브로스넌 체제의 제임스 본드 영화들이 전성기만큼 전 세계 관객들에게 큰 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판단하에 시리즈의 색채를 짝퉁 제이슨 본 시리즈로 만들어 놓은 뒤 흥행 면에서는 대박을 터뜨렸지만, '정통 영국산 스파이'의 정취는 영영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영국 귀족의 후예로 태어날 때에는 드 비어 드루먼드 라는 거창한 이름이었던 매튜 본이 칼을 뽑고 나선 것입니다. ('드 비어'라는 이름은 '킹스맨'에도 등장하죠. 갤러해드가 발렌타인에게 접근했을 때 쓰는 가명입니다.)

 

누가 보더라도 '킹스맨'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다니엘 크레이그 체제의 007을 비롯해 일단 뛰고 달리고 아크로바트 액션을 펼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린 21세기 초반의 스파이 영화 시장입니다. 과연 관객이 원하는 것이 그렇게 천편일률적인 스파이 영화 뿐만이겠느냐는 냉소가 담겨 있죠. 물론 '오스틴 파워'나 '자니 잉글리시'도 방향만 보자면 비슷한 노선을 택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들 영화들이 갖추지 못한 미덕을 '킹스맨'은 전면에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수트 포르노'라고 불리는 진정한 '수트 입은, 섹시한 영국 스파이' 를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발몽'의 꽃미남 시절 콜린 퍼스. 누군가 '킹스맨'을 보고 "왜 콜린 퍼스는 제임스 본드 후보에 오르지 않은 거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뭐 오르지 않았을 리야 없지만 사실 경쟁이 너무 치열했던 거죠.)

 

사실 콜린 퍼스는 경력만 놓고 보면 '대영제국 스파이'의 이력이 없는 배우지만, 어쨌든 전 세계 여성 팬들을 녹일 수 있는 댄디한 매력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매튜 본의 의도는 타론 애저튼을 앞세워 '귀족인 척 하는 자들의 희화화'였는지도 모르지만, '킹스맨'을 본 전 세계의 대다수 여성 관객들에게 이 영화에서 애저튼은 퍼스의 비중에 비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미미한 존재라는 점에서, 별 의미 없는 얘기로 전락하고 맙니다. (영화를 본 거의 모든 분, 특히 여성 관객들은 콜린 퍼스 외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

 

아울러 1960년대, 또 다른 히트 스파이 시리즈인 '해리 팔머' 시리즈를 주도한 마이클 케인이 아서 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이 영화에 '영국산 스파이'와 '안경 쓴 쉬크한 스파이'의 정통성을 부여합니다. 물론 킹스맨 2층의 회의실이 원형 테이블이 아니라는 건 약간 실망스럽기도 하지만요.

 

 

(해리 팔머 시리즈 시절의 풋풋한 마이클 케인.)

 

 

 

 

이런 맥락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 과연 어떤 식으로든 사회 비판이나 계도성 메시지가 담겨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존재 의미를 좀 왜곡하는 느낌이 듭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매튜 본의 영화 이력은 사실상 가이 리치의 히트작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의 프로듀서 역할에서 시작합니다.

 

그 뒤로 직접 감독으로 나서 만든 영화들 - 가이 리치 의 영화라고 해도 아무도 신기해 하지 않을 '레이어 케이크'에서 이번 '킹스맨'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일관된 메시지는 'B급이면 어때'와 '주인공만 주인공이란 법 있어' 입니다. 보는 이에 따라 여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과연 그의 영화에서 몇몇 평론가들이 읽어 내는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서태지의 '소격동'에서 군사정권에 대한 비판을 읽어내려는 것 만큼이나 억지로 느껴집니다. 뭐 이 영화에 귀족과 기득권층에 대한 비웃음이 담겨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로 '킹스맨'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타란티노의 '장고'는 인종차별국가 미국을 전복해야 한다는 프로파간다라고 보아야 할 정도겠죠.

 

사실 '킹스맨'은 매우 비교육적인 영화이고,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매겨진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에 담긴 생명 경시나 성차별, 인종 차별, 그리고 '정치적 공정성'이란 말 자체를 비웃는 듯한 표현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저속함을 이유로 무시하기엔 이 막나가는 코미디 영화가 갖고 있는 재미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데 한 표를 던지겠습니다. 코미디는 그냥 코미디로 향유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마돈나를 사이에 두고 왼쪽이 가이 리치, 오른쪽이 매튜 본)

 

P.S. 한때 매튜 본은 '가이 리치의 재능을 흠모해 따라다니는 돈 많은 친구' 정도의 대접을 받았지만, '킹스맨'을 통해 마침내 가이 리치와의 위치를 역전시킬 기회를 잡았습니다. 가이 리치가 데뷔 초의 재능은 어디로 팔아먹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셜록 홈즈' 시리즈 같은 영혼 없는 영화로 흥행 감독의 면모만 유지하게 되어 버린 결과죠.

 

흥미롭게도 가이 리치 또한 나폴레옹 솔로라는 슈퍼 스파이로 유명한 왕년의 인기 시리즈 '첩보원 0011(Man from U.N.C.L.E)'의 리메이크와 함께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의 제작을 발표해, '고전적 스파이 이야기'와 '아서왕 이야기'를 한방에 버무린 매튜 본과 평행선을 그리게 됐습니다. 과연 이 두 작품에서 가이 리치가 왕년의 기발함을 되찾을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그 옛날, 매튜 본의 '스타더스트'에 대한 글 http://blog.joins.com/fivecard/8417922

 

매튜 본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 리뷰 http://fivecard.joins.com/939

 

그리고 가끔 혼동되는 또 다른 매튜 본에 대한 글^^ http://fivecard.joins.com/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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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하녀들'이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금요일 밤 9시45분(정확하게는 금-토 9시45분)이라는, 드라마가 낯선 시간대에 처음 등장해서 '삼시세끼'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두 예능 프로그램에 '나는 가수다 3'까지 끼어든 뒤, 자력 생존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하녀들'이 갖고 있는 '(양반들의) 슈퍼 갑질에 대한 을(노비들)의 분노'라는 주제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땅콩 리턴' 사건과 맞닿아 일으킨 화학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은 지금껏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애사극'입니다. 템포와 주인공의 배치가 남다르죠. 지금까지의 사극들 가운데에도 '멜로 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대부 계층의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져 있고, 거기에 맞춰 다양한 캐릭터들이 배치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대장금' 처럼 서민 계급의 주인공을 배치한 위대한 작품도 있었지만 '대장금'은 사실 대표적인 궁정 사극이고, 연매물도 아니었죠.

 

이에 비해 '하녀들'은 조선 초기를 무대로 일단 양반댁 규수 가운데서도 "조선의 개국공신인 명문거족 국씨 집안의 무남독녀라 여느 반가의 규수들과는 급이 다른", 그 시대의 it girl 이던 인엽(정유미)가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한방에 최고의 지위에서 노비로 전락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드라마 '하녀들'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엽을 중심으로 정혼자이며 양반 댁 도련님인 은기(김동욱), 그리고 뭔가 비밀스럽지만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병판 댁 노비의 우두머리 무명(오지호)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축소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뭔가 아쉬움을 느낄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함흥차사'입니다. 극중 인엽이 병조판서 허응참(박철민)의 연회장에 박차고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함흥에 차사로 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간 것이죠. 또 이어 허응참의 아내이며 윤옥(이시아)의 어머니인 윤씨부인(전미선)이 인엽에게 쏘아부치는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잔혹한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이 함흥차사란 무엇일까요. 대개는 아시겠지만,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해설 들어갑니다.

 

 

 

 

 

 

함흥차사

[명사] 咸興差使. 심부름 등을 위해 한번 떠난 사람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음. 함흥은 함경남도의 지명, 차사는 예전 긴한 일을 위해 보내던 사신에게 주는 임시 관직명.

12일부터 방송된 JTBC 새 주말연속극 하녀들은 여주인공 인엽(정유미)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조선 태종(안내상)의 밀명을 받아 함흥차사로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함흥차사네 글자는 요즘도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말에는 불발된 쿠데타의 흔적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본래 8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권력 다툼으로 세 아들을 잃었다. 결국 천수를 누린 사람은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그리고 5남 방원(태종) 뿐이었다.

 

'태조는 왕좌를 위해 형제들을 죽인 태종을 용서하지 않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흥(영흥부)으로 돌아갔다. 조선이 건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은 1401. 아버지가 아들의 왕 자격을 부정한다는 것은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었으므로 태종은 수시로 태조와 가까웠던 인사들을 보내 태조의 귀경을 설득했다. 하지만 태조는 차사들이 오는 족족 목을 베어 돌아갈 뜻이 없음을 알렸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함흥차사의 유래다.

 

 

     [극중 인엽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이성계(이도경)에게 차사로 가서 도성 귀환을 설득하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장면.]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현재 함흥차사에 대해 가장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 문헌은 역사서가 아니라 야담집인 축수편(逐睡篇)이다. 여기에는 성석린이 이성계를 회유하다가 귀공은 나를 달래러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가 그런 이유로 왔다면 제 아들들이 눈이 멀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그의 두 아들은 장님이 되었고, 성석린은 "아무리 목숨이 걸렸어도 그런 장담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하고 탄식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이성계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또다른 차사 박순의 죽음 덕분이다. 태조는 박순에게 설득당했으나, 그가 돌아가자 태조의 측근들은 그를 따라가 죽일 것을 권했다. 이에 태조는 그가 이미 멀리 갔을 것이라 보고 장수에게 칼을 주며 용흥강을 못 건넜거든 베어 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병으로 걸음을 지체했던 박순은 강가에서 죽음을 맞았고, 이를 후회한 태조가 귀경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사(正史)의 기록은 어떨까. 일단 태조가 처음 북쪽으로 떠난 것은 태종 1(1401) 3월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해 410일 태종이 도승지를 보내 안변(현재의 원산 부근)에 머무는 태조의 문안을 묻고, 태조가 오래 머물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태종이 성석린을 보내 설득하자 태조는 426일 도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126, 태조는 한밤중 갑자기 소요산으로 떠났다. 실록은 임금(태종)이 전송하려 따라갔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꼴도 보기 싫은 태종의 전송 같은 것은 전혀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태종은 다시 성석린을 보내 설득했으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결국 해가 바뀌고 14024, 태종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소요산 자락까지 찾아갔다. 426, 마침내 태조의 입에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왔다.

 

6개월 뒤인 115, 안변부사 조사의반란을 일으켰다. 명분은 태종에게 살해당한 이복동생 방번-방석 형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8일자 실록에 눈여겨 볼 기사가 실려 있다. 조정에서 파견된 박순이 함주에서 조사의의 난에 가담하지 말라고 지방 수령들을 설득하다가 피살됐다는 내용이다. 이 박순은 위의 축수편에 대표적인 함흥차사로 기록된 그 '함흥차사' 박순이다.

 

 

 

게다가 이성계는 안변 바로 북쪽인 함주에 머물고 있었다. 119일자 실록은 태종과 조정 대신들이 반란군 지역에 있는 태상왕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과 무학대사를 급파해 태조의 귀경을 설득하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축수편에서 박순을 죽이라고 주장했다는 태조의 측근이 누구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세등등했던 조사의의 반군은 한달도 못 되어 1127일 안주 부근에서 궤멸됐고, 128일자 실록에는 태상왕(이성계)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짧은 한 줄이 기록됐다. 다시 야사로 넘어가면, 마지막 함흥차사는 무학대사라고 전해진다. 박순의 죽음으로 자책하던 태조는 옛 스승 무학대사의 말에 마음이 풀어져 도성으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수편에는 도성으로 돌아온 태조와 태종 사이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환영 잔치를 벌이려 장막을 칠 때, 태조의 성품을 잘 아는 하륜이 태종에게 기둥은 반드시 사람 몸통보다 굵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간했다. 태조는 멀리서 태종을 보자 바로 활을 쏘았고, 태종은 급히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명궁으로 소문난 태조 이성계였으나 화살은 기둥을 뚫지 못했다.

 

태조는 탄식하며 태종에게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옥새가 여기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륜은 또 직접 술을 권하지 말고 내시를 시켜 전달하라 조언했고, 태종은 그대로 했다. 그러자 태조는 술잔을 들이키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옷소매 속에서 무쇠방망이를 꺼내 내려놓고 모두 하늘의 뜻이로구나하며 껄껄 웃었다.’

 

과연 태조의 북행과 차사들의 죽음은 조사의의 난과 무슨 관계일까. 태조는 아들 태종에 대항해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 쿠데타를 시도한 것일까. 축수편의 마지막 기록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녀들'에서 인엽의 아버지 국유는 아마도 성석린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 조사의의 난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함흥차사'의 고사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성계는 8명의 아들을 뒀는데 첫 아내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장남 방우,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4남 방간, 5남 방원(태종), 6남 방연의 여섯 아들을 두었고 한씨 사후 계비 신덕왕후 강씨로부터 7남 방번과 8남 방석을 두었습니다. 이중 6남 방연은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고 장남 방우는 - 여러 기록을 볼 때 아버지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듯 한 - 역시 조선 건국 2년만인 1394년 40세에 술병(?)으로 사망합니다.

 

누가 봐도 아들들 가운데 가장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1392년 당시 25세였던 방원이었지만 정도전과 이성계는 8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노골적으로 방원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합니다. 결국 방원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을 비롯해 방번 방석 형제를 죽였고, 2남 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킨 뒤 1400년 초 2차 왕자의 난으로 바로 위의 형인 방간을 축출합니다. 방간을 바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자신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한 뒤 마침내 그해 11월 왕위에 오릅니다.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뜻을 어기고 형제들을 참살한 방원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고, 태종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공을 무시하고 왕위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 아버지가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개국 10년도 안 된 나라의 안정을 생각하면 아버지까지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고려를 되돌려 놓으려는 유신들의 세력(곧 밝혀질 '하녀들'의 또 다른 축입니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조사의의 난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고, 정사든 야사든 꼭 집어 '그 배후에 이성계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사건이 이성계와 무관할 리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태종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설득해 반란에서 발을 빼게 하려 특사들을 보내 설득했고, 함흥차사들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약간 완곡하게 표현한(아버지와 아들이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살짝 감추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 살짝 과장과 은유가 깃들며 '축수편'에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진 것이죠.

 

(진짜 의문은 당대 최고의 무장인 이성계가 뒤에 있었다면, 왜 조사의의 군대가 한달도 못가 그렇게 쉽게 무너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종과 이성계의 극적인 타협? 조사의의 심각한 무능? 이성계의 일방적 변심? )

 

 

어쨌든 '하녀들'은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음모인 고려 회복 운동과 태종의 대처,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엽이 노비의 치욕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 남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절대 을'이었던 노비들이 '슈퍼 갑'인 양반들을 어떻게 조롱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가는지가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그 시대의 '슈퍼 갑'이었던 양반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피고용인을 노비 대하듯 하는,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심한 모습일 수도 있는 기괴한 모습들...)

 

 

 

 

 

 

'하녀들'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남다른 공간감입니다. 조명의 사용을 통한 실내 공간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조현탁 감독의 연출은 지금까지 사극에 나왔던 대청/안방/주방/창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하녀들'을 보는 새로운 재미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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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 음악의 수도 빈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neujahrskonzert 실황을 메가박스 생중계로 봤습니다. 물론 그동안 몇 차례 있었던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생중계' 라든가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발 '생중계' 등이 있긴 했지만 사실 진짜 생중계는 거의 없었죠(일단 그쪽에서 저녁 시간이면 한국에서 저녁 시간일 수가 없으니). 그래서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대략 24시간 이내에 다른 국가의 극장에서 방송되는 건 '생중계'로 친다"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1월1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된 이번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진짜 생중계였습니다. 주빈 메타 지휘로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린 이 이벤트는 빈 현지 시각으로 1월1일 오전 11시15분부터 치러진 이벤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빈의 시차는 8시간. 대략 7시20분 쯤 중계방송(?)이 시작됐으니 생중계 맞습니다.

 

 

 

 

사실 저도 보기 전부터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본 건 아니고, 그냥 대략 "시간으로 볼 때 이번엔 진짜 '거의' 생중계겠구나"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시차를 따져 보니 진짜 생중계라서 좀 놀랐습니다. (분명히 생중계이긴 하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은 사실 영상에서는 앵콜 곡이었는데 프로그램에도 들어 있고, 생중계 방송사에선 자막까지 다 만들어 놓고 뭐 이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예전에도 몇 차례 쯤 국내 방송에서 신년 특집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방송으로 이런 콘텐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시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BGM으론 가능하겠죠. 그래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 행사를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소감을 좀 기록해 놓을까 합니다.

 

 

 

 

 

1. 생중계의 품질이 아주 훌륭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 대략 15분에서 20분마다 화면과 음향이 LP 튀듯 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영상과 음향이 싱크로가 깨진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더군요. 물론 결정적으로 방송 장애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지만 2시간30분짜리 '음악' 콘텐트를 중계하는 데 7~8회 정도(세다가 잊어버렸습니다) 수신 이상이 발생하는 건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2. 사실 가장 놀라운 건 메가박스 코엑스관에서 5개관이 동원됐고 기타 지점에서도 이벤트가 있었는데 사실상 전석 매진이란 거였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콘텐트를 신년 이벤트로 고려했다는 얘기거든요. 조금 과장하면 '매년 1월1일은 메가박스에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보는 날'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3.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는 약 150여곡,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는 170여곡의 월츠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 봐도 사실 월츠라는 음악은 감상용이라기 보다는 리듬에 따라 춤을 추기 위한, '실용음악'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불경스럽게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월츠가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류에 들어 있어서 그렇지 콘서트장이나 이런 이벤트를 통해 월츠를 점잖게 앉아 '감상'하는 것은 댄스뮤직을 좌정하고 앉아 '감상'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

 

4. 그러다 보니 전반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미션이 지난 뒤, 2부부터는 주빈 메타의 적극적인 진행 감각이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무궁동 Perpetuum Mobile'을 연주할 때에는 곡 후반을 피아니시모로 유지하다가 관객을 향해 큰 소리로 "etc, etc, etc" 라고 외쳐 웃음바다를 만들어 놓더군요. 끝없이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곡 특성을 유머로 승화시킨.

 

5. 처음 들어 본 곡입니다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학생 폴카'라는 곡이 연주됐는데, 이 곡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곡이더군요.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에 나오는 '가우디아무스 이기투르 Gaudeamus Igitur' 파트의 변주로 보이던데... 이건 브람스의 패러디지, 아니면 브람스와 슈트라우스가 모두 어딘가에 있는 노래를 가져다 쓴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래가 그 가우디아무스...

 

 

 

 

6. 이밖에도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몇몇 곡들에 발레 안무를 덧붙이는 아이디어(물론 공연 주최측보다는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ORF가 짜낸 것이겠지만)는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7. 가장 마음에 든 연출은 바로 Hans Christian Lumbye 의 곡인 Champagner-Galopp 을 연주할 때 등장한 '샴페인 병 따는 소리 내는 악기'와 단원들에게 술잔을 권하던 메타 옹의 퍼포먼스.  

 

8. 신년음악회의 영원한 엔딩 곡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 때 보여준 메타 옹의 박수 지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압권. 음악의 원하는 지점에서 원하는 크기의 박수를 관객으로부터 얻어 내는 노련한 지휘자의 기량을 통해 '과연 음악에서 지휘자란 무엇인가'를 아주 쉽게 보여줬습니다.

('라데츠키 행진곡' 앞부분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중단시키고 메타 옹이 단원들에게 외치게 한 구호 같은 건 대체 뭘까요. 역시 빈 거주자, 독일어 능통자 내지는 음악 고수 여러분의 가르침을 기대하겠습니다.^^ )

 

9. 결론은 강추. 다음 기회에라도 한번 보실만한 콘텐트입니다. 정 뭐하면 2016년 1월1일을 기대해 보시는 것도...

 

 

 

 

10. 이 이벤트를 놓친 분들께 추천 하나. 1월3일에는 메가박스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2015 신년음악회'를 비슷한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단, 제목은 약간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공연은 2014년 12월29일(현지시간) 열린 '새해맞이 음악회'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제목은 '신년음악회 New Year Concert'가 아니라 '새해맞이 음악회 New Year's Eve Concert' 

( http://www.berliner-philharmoniker.de/en/concerts/calendar/details/20332/ ) 인 겁니다. 뭐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있죠.^ 물론 이런 차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프로그램은 훌륭합니다. 1항 에서 지적한 생중계의 문제도 없고, 오히려 감상용 공연으로는 훨씬 더 좋을 듯.

 

 

P.S. 일본의 상류층 여성 사이에는 '기모노 입고 1월1일 빈에서 신년음악회 보기' 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기모노 입은 일본 여성 관객들이 최소 10명은 앞자리에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비싼 1090유로급  좌석인 모양이던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가장 싼 좌석은 3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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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를 보고 나오는데 웬 여학생 둘이 열심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싸우더군요.

 

"그러니까 플랜 B 대로 된거지!"

"아니지, 그건 플랜 A도 아니고 플랜 B도 아닌거지. 블랙홀 들어가면서 새로운 길이 열린거잖아!"

 

크리스토퍼 놀란은 "아무런 물리학적 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게다가 평소 조용하시던 SF 덕후, 물리학 전공자, 전문 지식인들까지 합세해서 "그거랑 그거는 말이 안돼. 그리고 그건... 알지만 그렇게 한 거야. 그리고 이 부분이 상징하는 것은..." 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재미있었습니다만, 굳이 169분, 3시간에서 11분 모자라는 러닝타임이 다 필요했나 하는 생각도 드는 작품입니다. 어쨌든 격찬이 쏟아지고 있는 영화인데도 불행하게 '난 그 긴 시간을 졸지도 않고 봤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라는 분들이 꽤 계신 듯 합니다. 그런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자주 나오는 질문들과 나름대로 생각한 답들을 적어 봤습니다.  당연히 정답이라고 주장할 생각도 없고, 많은 분들의 가르침을 바라는 의미에서 공개하는 글입니다. 끝부분에는, 도저히 제 수준에선 답을 생각할 수 없는 질문들도 있습니다.^^

 

우선 질문 0.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Do not go gentle into the good night 은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의 시입니다. 밥 딜런이 예명을 따 온 바로 그 시인이죠. 전문과 해석은 http://dubunut.blog.me/220173993086 쪽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쩐지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고사성어도 생각나고... 영화의 주제를 분명하게 해 주는 시입니다.

 

이 글은 당연히 스포일러의 덩어리 입니다. 영화 아직 안 본 분은 여기서 패스. 그리고 영화는 꼭 보세요. 당연히 강추. 욕하실 분들도 일단 보시고 욕을 하세요. 물론 언제나 그렇듯, 가끔 '난 결말 알고 보는 게 더 좋아' 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그런 분들은 환영.

 

 

 

 

 

간단 줄거리:

 

지구가 기상이변과 자원고갈로 식량부족 상태를 맞게 되어 절멸의 위기에 놓인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왕년의 엔지니어이자 우주비행사였던 쿠퍼(매튜 매커너히)는 똑똑한 딸 머피의 방에서 일어난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관찰하다가, 사라진 줄 알았던 NASA와 접촉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류를 종말에서 구하기 위한 필사적인 프로젝트가 진행중임을 알게 됩니다.

 

쿠퍼의 옛 보스였던 NASA의 리더 브랜드 박사(마이클 케인)는 쿠퍼에게 우주로 나가는 탐사선을 조종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단 인류를 구하는 길에는 플랜A와 플랜B가 있음을 설명하죠(아래 상술). 가족과 수십년이 될 수도 있는 이별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쿠퍼는 고민하지만 결국 대의를 따릅니다.

 

그리고 우주로 향하는 4명의 탐사대원. 이미 12명의 선발대가 생명이 존재 가능한 성단 지역 열 두곳을 탐사했고, 그중 세 곳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첫번째 행성(밀러의 별)은 육지 없이 거대한 바다로만 이뤄진 행성이라 사람이 살 수 없었고, 두번째 별(만의 별)은 얼음으로만 뒤덮여 있습니다. 심지어 그 별에 먼저 도착한 만 박사(맷 데이먼)의 배신으로 탐사는 절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질문 1. 대체 플랜 A는 뭐고 플랜 B는 뭐냐?

 

간단히 말하면 플랜 A는 현재 지구에 살아남은 인류가 외계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하는 것, 그리고 플랜 B는 수정란 상태의 인류를 외계의 보금자리에 새로 심어서 거기서 인류의 혈통이 살아남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쪽이든 외계 어딘가에 인류가 살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갈 데가 있어야 이식(플랜 A)이든 파종(플랜 B)이든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쿠퍼 일행이 탄 탐사선 인듀어런스 호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브랜드 박사는 쿠퍼에게 설명합니다. '일단 네가 탐사대를 이끌고 떠나고, 나는 여기 남아서 플랜 A를 위한 문제를 네가 돌아올 때까지 해결하겠다'. 이 문제란 대규모 인구의 우주 여행을 가능케 하는 기술의 문제(질문 4의 답에서 더 자세히 설명) 입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왔듯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만들어 그것을 토성 근처까지(웜홀이 있는 곳까지) 가져다 놓는 것을 해결하는 수준의 기술이 있어야 플랜 A가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브랜드 박사를 포함한 NASA는 최대한 플랜 A를 위해 노력하되, 그 가능성이 사라지면 플랜 B라도 실행하라는 미션을 탐사대에게 준 것입니다. (물론 이건 거짓말이었죠.)

 

 

 

 

질문 2. 그럼 플랜 A가 성공하지 못하면 쿠퍼도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약 플랜 A가 성공한다면, 쿠퍼가 지구로 돌아오지 않아도, 반대로 가족이 우주로 가서 쿠퍼와 재회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아니면 쿠퍼가 지구로 일단 돌아와서 가족과 재회할 수도 있고. 다만 전제는 '돌아올 연료가 충분할 때' 라는 것입니다.

 

이미 탐사대가 떠나기 전, 연료와 물자의 제한 때문에 '3개의 목표를 모두 돌아보고 지구로 귀환하는 것은 불가능'인 상태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밀러의 별(바다의 행성)'을 거친 뒤 아멜리아 브랜드(앤 해서웨이)는 쿠퍼에게 말합니다. "두 번째 별(만의 별)로 갔는데 이곳이 인류의 정착지로 가능성이 없으면, 세번째 별(에드먼즈의 별)로 갈지 지구로 귀환할 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때도 냉정하게 선택하기 바란다"고.

 

그리고 두번째 별. 만 박사는 "이 별의 높은 곳은 얼음뿐이지만 저지대로 내려가면 토양이 있고, 암모니아도 사라져서 호흡도 가능하다"고 희망적인 말을 합니다. 그래서 탐사대는 이 별을 정착지로 삼고, 일단 플랜 B를 실행하기로 한 것이죠(마침 플랜 A의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알게 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쿠퍼는 얼음 행성에서 플랜 B를 실천하는 것으로 자신의 의무가 끝났다고 선언하고, 인듀어런스 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미 플랜 A가 불가능해진 상황, 쿠퍼가 지구로 돌아가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지구 문명의 종말을 맞겠다는 뜻입니다.

 

 

질문 3. 대체 만 박사는 왜 미쳐 날뛰나?

 

처음 12명의 선발대를 얘기할 때 브랜드 교수는 "가장 용감한 사람들(the bravest men)"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몇년간의 고독한 우주 여행 끝에 별에 도착해서, 그 별이 인류의 새로운 고향이 될수 있는지를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가능성이 없다면 이들에게 남은 것은 고독한 죽음 뿐입니다.

 

만 박사는 거기서 마지막 자제력을 잃은 것입니다. "혼자서, 무의미하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공포에 패배한 것이죠. 그래서 컴퓨터를 망가뜨려 자동 신호를 보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이 임의로 조작한 데이터를 보내 얼음뿐인 그 별이 인류의 생존 가능성이 있는 옥토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고 동면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래야 후발 탐사대가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우주에 인류의 씨앗을 뿌리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명예욕은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쿠퍼가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지구로 돌아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쿠퍼를 제거하려 합니다. 인듀어런스호가 있어야 제 3의 별(에드먼드의 별이라고 하지요)로 가서 플랜 B를 실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4. 그럼 브랜드 교수의 거짓말이라는 건 대체 무슨 의미?

 

('방정식은 40년 전에 이미 풀었다'는 말을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정리.)

 

브랜드 교수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중력의 문제입니다. 현재(혹은 영화 시작 시점) 기술로 인류는 고작해야 서너명의 탐사태원을 먼 우주로 쏘아올릴 수 있습니다. 웜홀을 통해 다른 은하계로 갈 수도 있다지만, 일단 토성 근처의 웜홀까지 가는 데 2년이 걸리는 상황이죠. 그렇다면 대규모의 인구가 거주하고, 자급자족을 통해 식량과 에너지를 해결할 수 있는 거대 거주 시설을 겸한 우주선(영화 마지막에 보이는 거대한 우주정거장 같은)을 쏘아 올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 거대한 우주정거장을 구축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 이미 쿠퍼가 출발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그 공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그것을 우주로 날려 보내는 방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인류의 우주 이민, 즉 플랜 A는 아예 불가능한 것이죠.

 

브랜드 교수가 방정식을 풀었다는 것은, 절반의 답, 즉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데이터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해결했지만, 지구에서 얻을 수 없는 데이터, 즉 '중력의 비밀'을 알아야 그 공식이 완성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구상의 데이터만으론 답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죠. 그리고 23년 간 바다 행성의 궤도에서 쿠퍼와 아멜리아를 기다리며 블랙홀을 연구한(!) 로밀리는 브랜드 교수가 알아내지 못한 답이 블랙홀 안에서 측정한 중력의 의미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혹시라도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데이터를 측정할 수 있도록 컴퓨터 타스(TARS)를 세팅해 놓죠.

 

하지만 브랜드 교수는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한 채 머나먼 지구에서 숨을 거두고, 그 연구를 이어받은 머피 쿠퍼(제시카 차스테인, 쿠퍼의 딸)는 교수의 거짓말에 일단 분개하지만, 곧바로 브랜드 교수를 이해합니다. 교수가 이런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면 모든 사람은 희망을 잃었을 것이고, 설사 브랜드 교수나 머피가 '중력의 비밀'을 해결한다 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질문 5. 대체 '그들'은 누구인가?

 

뭐 영화 속에 답이 있습니다만, 어떤 분들은 그 답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고 어떤 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영화 속 쿠퍼의 추정으로 '그들'은 고도의 과학력을 가진 미래 인류의 후손입니다. 그들은 이미 중력의 비밀을 알았고, 생각의 힘을 통해 그 중력이 과거와 현재를 포괄하는 다른 차원에까지 도달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직접 그 방법을 써서 쿠퍼나 머피에게 영향을 주지는 못하고, 단지 쿠퍼나 머피를 '그것이 가능한 상황'에 도달하게 하는 듯 합니다. 흑은 이런 부분이 '그들'을 신의 위치에 놓고, 신이 어떻게 인간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가에 대한 놀란의 해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신에겐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직접 행사하기 보다는 인간의 자유의지에 맡겨 놓는다..는 식의 기독교적 해석일 수도.

 

아무튼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절대 상세하지 않고, 이 영화의 방향으로 볼 때 상세해 질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건 '사랑'이라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질문 6. 대체 왜 아멜리아는 그 시점까지 혼자서 에드먼즈의 별에 있나?

 

영화의 마지막 부분.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늙은 머피는 쿠퍼에게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지 말고, 혼자 기다리고 있는 브랜드(아멜리아)에게 가리고 말합니다. 그리고 쿠퍼는 수리한 타스와 함께 우주선을 타고 아멜리아에게 떠나고, 화면은 먼 별 어딘가에 있는 아멜리아의 모습을 비쳐 줍니다.

 

쿠퍼는 블랙홀로 들어갔으니 124세지만 당연히 젊은 모습 그대로이고, 지구 나이로 그 나이를 먹은 머피는 아마도 90대 정도의 나이일 것입니다. 즉 쿠퍼가 블랙홀에서 지구 시간으로 한 50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1) 왜 아멜리아는 젊은 모습 그대로인 것이고 2) 왜 '혼자' 있는 것일까요. 즉 쿠퍼가 전송한 데이터를 통해 머피가 중력의 비밀을 공식에 반영시킨지 근 50년이 흘렀는데, 왜 머피는 아멜리아가 있는 별까지 후발대를 보내지 않은 것일까요.

 

뭐 1)에 대한 설명이야 아멜리아가 수시로 동면하면서 젊음을 유지했다면 굳이 가능한 일일 듯 하지만 2)는 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거대한 우주정거장까지 가능한 상황이라면, 머피는 쿠퍼를 발견하든 말든(애당초 발견할 거라고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고), 혹은 아멜리아가 에드먼즈 행성에 도달하건 말건 계속해서 후발대를 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쉬운 설명은 그 마지막 신의 별 풍경은 그냥 쿠퍼의 상상일 뿐이라고 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는 이미 활성화된 우주 식민지에서 90세의 할머니가 된 아멜리아든, 또는 동면으로 젊음을 유지한 아멜리아든 누가 쿠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것, '혼자' 어쩌고 하는 것은 그냥 비유적인 표현일 것이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좀 더 무리하면 아예 우주정거장 장면 전체가 쿠퍼의 꿈이라고 할 수도...)

 

어떤 분들은 그 별에서 아멜리아가 바라보는 곳에 이미 식민지가 건설되어 있다고도 하시는데 이건 아마 착각일 듯. 이미 인듀어런스 호에는 아멜리아의 실험실을 포함해 별에 설치할 수 있는 건물과 기관이 실려 있습니다 - 얼음 행성에서 언급됩니다. 그걸 설치해 놓은 모습에 불과합니다.

 

아무튼 이건 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죠.

 

 

 

 

 

 

 

질문 6, 그리고 이 다음부터는 제가 답을 생각하는 데 한계가 있는 질문들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질문 7. 대체 왜 웜홀 너머에선 '어떤 정보'는 송신 가능하고 '어떤 정보'는 송신 불가능한가?

 

영화를 보다 보면 좀 이상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웜홀 너머를 다니는 인듀어런스호는 지구의 가족들로부터 영상 파일을 받을 수 있는 반면, 모르스 부호조차도 돌려보내지 못합니다. "수신은 되지만 송신은 안 돼." 무려 23년간 블랙홀을 연구한^^ 로밀리는 "이 연구 내용을 브랜드 교수님께 전해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 합니다. 아울러 전 승무원은 가족들에게 자신의 안부 한 줄 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12년 전에 출발한 세 사람의 개척자들로부터는 신호가 도착합니다. 만의 별과 에드먼즈의 별 중 어디로 갈지를 싸우는 쿠퍼와 아멜리아의 대화를 보면 이들이 보낸 신호가 그 별의 환경에 대한 약간의 데이터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 박사가 자신이 보낸 신호를 조작하고 동면한 뒤에, 컴퓨터가 자동으로 만 박사의 신호가 거짓말이라고 밝히는 내용을 송신할 수 없다면, 만 박사는 일부러 컴퓨터를 고장낼 이유도 없는 셈이죠.

 

그렇다면 이들은 웜홀을 통과한 외계 은하에서, 대체 어떤 정보는 보낼 수 있고 어떤 정보는 보낼 수 없는 것일까요?

 

 

 

질문 8. NASA에 이상 중력 신호를 보낸 것은 누구?

 

맨 처음 쿠퍼와 머피가 NASA에 도달했을 때, 대체 어떻게 여기를 찾았느냐는 질문에 쿠퍼는 "믿을 리가 없겠지만..."하면서 곤혹스럽게 초자연적인 중력 현상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로밀리는 "이미 여러 차례 이상한 중력 신호가 '그들'로 부터 오고 있다"면서 의외로 '초자연 현상 때문에 이곳에 왔다'는 말을 쉽게 믿습니다.

 

거의 마지막. 거대한 책장 모양의 블랙홀 신에서 이미 우리는 머피에게 보낸 다양한 중력 신호는 쿠퍼가 보낸 것임을 알게 됐습니다. 그럼 대체, NASA에 중력 신호를 보낸 것은 누구일까요. 12명의 탐사대 중에 누군가가 쿠퍼보다 먼저 블랙홀에 갇힌 적이 있는 것일까요?

 

(아울러... 쿠퍼는 이미 지구를 떠나기 직전, 머피가 책장을 통한 신호가 'STAY'라는 뜻이라고 해석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걸 이미 알고 있는 그가 대체 왜 블랙홀 공간 안에서 안간힘을 써서 'STAY'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일까요. 과거 시점에 이미 그 메시지를 전해 듣고도 무시한 자신에 대한 후회로? 그냥 그렇게 해야 앞뒤가 맞을 것 같아서?  그냥 감동하기엔 좀....)

 

 

 

질문 9. 왜 만 박사는 처음부터 플랜 B로 가지 않았을까?

 

얼음 행성에서 다른 탐사대원들이 머피의 메시지 "플랜 A는 뻥이다"를 전해 듣고 충격에 빠져 있을 때, 만 박사만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만 박사는, 위에서 말했듯, 마지막까지 자신의 힘으로 플랜 B를 달성하기 위해 갖은 미친 짓을 하다가 사망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그는 지구를 출발할 때 어차피 방법은 플랜 B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죠.

 

그렇다면 질문: 대체 왜 12명의 선발대는 처음부터 플랜 B를 실시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니까 인류의 수정란 갯수가 한계가 있었다면 모를까, 영화 앞부분에서 보듯 수정란은 엄청나게 많은 수를 만들 수 있고, 공간도 그리 많이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럼 인듀어런스호에 실린 것만큼 대량은 아니더라도, 선발대가 각기 수정란을 갖고 많은 후보지로 출발했다면 인류의 생존 가능성도 훨씬 높아 지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사실 이런 부분은 영화의 근본 설정에 해당하는 부분이라 말이 된다 안된다를 따지기 힘듭니다. 예를 들어 인류의 남은 자원량이 인듀어런스 호 하나를 날려 보내는 정도로 달랑달랑했던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능한 대답은... 그냥 '그랬으니까 그런 거지' 정도?)

 

 

물론 이런 사소한 질문들에 대해, '영화가 주는 거대한 메시지에 감동할 생각은 않고, 달을 보라는 데 손가락 끝만 보는 저열한 행동거지'라고 야단 치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랍니다. 이런 거 따져 보는 재미가 또 이런 영화 보는 재미거든요. 그냥 할일 끔찍히 없다 생각할 분들은 그렇게 하시고, 혹시 이 질문들에 대해 다른 답이 있는 분들은 제게도 좀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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