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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시니의 오페라 제목이 '세빌리아의 이발사'에서 '세비야 Sevilla 의 이발사'로 바뀌어 자리잡은 건 아마도 1992년 세비야 엑스포를 전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1992년은 '투우와 태양, 다혈질의 나라'였던 스페인이 '세련되고 매력적인 나라'라는 브랜딩을 위해 전력투구했던 해인 듯 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같은 해다.

 

세비야는 이발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흔적으로 유명한 도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개의 문화 유산, 투우와 플라멩코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시킨 곳이 바로 세비야라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메리메는 세비야의 담배 공장을 배경으로 소설 '카르멘'을 썼고, 이를 비제가 불멸의 오페라로 만들었다. 카사노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전설적인 바람둥이 돈 후안의 근거지도 세비야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라나다를 거쳐 마드리드로 가는 일정. 과연 중간에 어디를 거쳐야 할까 하는 걸 놓고 잠시 고민했는데, 가 보고 싶은 곳은 많았지만 그래도 일단 세비야를 빼놓을 수는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고? 일단 대성당 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 이 있기 때문에.

 

스페인의 도시 치고 카테드랄이 없는 도시는 없지만, 그래도 세비야의 카테드랄은 다른 도시와는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다.

 

 

 

세비야 대성당 안에 있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묘.

 

15세기 말. 당시 전 세계의 바다를 지배하던 대국은 포르투갈이었다. 항해왕 엔리케를 비롯해 바스코 다 가마, 바솔로뮤 디아스 등 명성 높은 탐험가들의 활약에 의해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해안을 따라 인도양으로 진입해 인도 서안에 이르는 무역로를 개척하고 거대한 부를 끌어들이고 있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비롯한 많은 선각자들은 생각했다. 지구는 둥글다(많은 사람들이 '지구는 둥글다'는 주장을 갈릴레오가 처음 한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지동설이나 지구 자전설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별개의 주장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은 이미 기원 3세기 이전,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널리 알린 주장이다). 만약 남쪽으로 돌아 동쪽으로 동쪽으로 가서 인도가 나왔다면, 반대로 서쪽으로 똑바로 나아가도 인도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많은 모험가들(당시의 벤처 투자자들)이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대개의 투자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1492년 1월, 코르도바에서 역사적인 영토 회복으로 한창 들떠 있던 이사벨라 여왕을 후원자로 삼는 데 성공했다(물론 6년이나 공을 들인 끝의 성공이었다). 그리고 1492년 4월3일, 콜럼버스는 니냐, 핀타, 그리고 산타마리아라는 이름의 세 범선을 이끌고 지금 우엘바(Huelva)의 일부인 작은 항구 팔로스 델 라 프론테라(Palos de la Frontera)를 출발했다.

 

제노바 출신의 이탈리아인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코르도바에서 이사벨라 여왕에게 투자 허락을 받고, 산타페(그라나다 부근의 소읍)에서 '발견된 땅의 총독이 되고, 신대륙 수입의 10%를 갖는다'는 약정에 서명했고, 팔로스에서 1차 원정을 출발했고, 서인도제도에 도착했다가 바르셀로나로 귀환, 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라 여왕 부부를 알현하며 원정의 성공을 알렸다.

 

저 많은 인연 있는 땅을 두고 왜 세비야에 콜럼버스의 묘가 있을까. 그 이유는 세비야야말로 대항해시대 스페인의 영광을 가장 크게 누린 도시였기 때문이다. (다음 글로 이어짐)

다시 시점은 그라나다를 출발할 때로 거슬러 올라감. 

 

 

 

그라나다에서 세 시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세비야. 입구의 야자수 가로수가 손님을 반긴다.

 

그라나다-세비야 구간은 기차 버스 모두 가능하고, AVE가 아직 다니지 않아 시간도 얼추 비슷하다. 단지 버스가 약간 싸다.

 

뭐 꼭 가격이 싸서라기보다, 스페인의 고속버스는 어떤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ALSA 버스는 깨끗하고 편했다. 3시간 짜리 노선이라 그런지 중간에 정차는 없었고, 시속 100Km를 준수했다. 물론 도로 중간을 봐도 한국식의 거대한 휴게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주유소와 편의점, 화장실 정도만으로 구성된 휴게소는 중간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오래 전 이탈리아의 아우토스트라다에서 들렀던 휴게소는 그래도 커피숍과 카페테리아 정도의 설비를 갖춰 놓고 있었는데, 이게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차이인지, 아니면 그라나다-세비야 구간이 짧아서 없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아무튼 ALSA 버스는 와이파이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터지지는 않았다. 옆자리 미국인의 아이폰도 마찬가지. 그 외에는 깨끗하고 쾌적했고, 인터넷으로 예매도 할 수 있어 간편했다.

 

물론 한국의 우등버스와 비교할 수준은 결코 아니었지만.

 

 

 

세비야 고속버스 터미널. 나름 운치있게 꾸며져 있다.

 

공식 명칭은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Prado de San Sebastian) 터미널.

 

그냥 Estacion 은 역, Estacion de Autobuses는 버스 터미널이다.

 

 

 

밖으로 나오면 이렇다.

 

 

 

단 1박만을 위해 구한 민박 숙소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장점은 세비야 구시가와 가깝다는 것.

 

투우장 바로 옆이었고, 대성당까지 빠른 걸음으로 5분 정도 걸렸다. 또 직접 제작한 지도를 나눠주고 포스트를 설명해 주는데, 특히 식당 추천이 좋았다. 초행길에 꽤 도움이 됐다. 침구류에서도 불쾌한 냄새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단점은 대부분의 민박이 그렇듯 바닥이 아예 맨발로 다닐 수 없는 돌 바닥이고, 욕실에서 방까지 신을 신고 이동해야 한다는 것. 2인실이라도 방 안에 욕실이 있는 구조와 복도를 지나 공용 욕실이 있는 구조는 천지차이다. 그리고 식사는 전혀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그냥 혼자 자취하면서 먹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르셀로나에서 워낙 대단한 대접을 받아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주요 관광 포스트와의 연결점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추천. 나머지 요소가 더 중요한 사람이라면 비추.

http://cafe.naver.com/sevilla5happy.cafe

 

 

 

지도에서 B지점이 민박집, A지점이 대성당 모퉁이(대성당이 워낙 거대하다. 농담 아니고 지도상의 저 구획이 모두 성당이다).

 

도보로 5분은 조금 과장이고 7,8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지도 왼쪽의 큰 M자가 써 있는 곳이 프라도 데 산 세바스티안, 즉 버스를 내린 고속터미널.

 

거기서 꽤 큰 공원(공원 이름도 프라도 산 세바스티안인 모양이다. 버스 터미널 이름과 같다)을 건너가면 바로 스페인 광장 Plaza de Espana이다.

 

그러니까 작정하고 대성당 부근, 그리고 에스파냐 광장만 보기로 맘먹은 사람에겐 좋은 입지가 아닐 수 없다.

 

 

 

숙소에서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 피멘톤(Pimenton)은 반드시 들러 볼만한 곳. 나중에 자세히 소개한다.

 

 

저 피멘톤 앞길로 죽 내려가 도착한 카테드랄(Cathedral, 대성당)의 남쪽 면(엄밀히 말하면 성소교회의 남면).

 

세비야를 대표하는 교통 수단인 트램이 마침 지나갔다.

 

 

 

트램의 뒷모습. 1.5유로에 시내의 주요 지점을 연결해 주는데 꽤 편리하다.

(카테드랄 앞에서 고속터미널까지 단 2정거장. 5분이면 도착)

 

표를 끊고 차를 탔는데, 전혀 검표와 관련된 수단이 없어 매우 당황했다.

물론 처음엔 당황하지만, 다음엔 매우 기뻐하게 된다.

 

 

 

꽤 걸어야 카테드랄과 성소교회(Iglesia del Sagrario: Church of Sanctuary)의 경계면에 도착한다.

 

왼쪽은 왕실예배당의 입구, 오른쪽은 카테드랄의 서쪽 문.

 

 

 

그러니까 저 빨간 동그라미를 친 곳이 바로 대성당의 부속 건물인 성소교회다.

 

지금 서 있는 길이 저 빨간 선이 그어진 길이고.

 

 

 

전에도 말했듯 스페인의 카테드랄 앞길은 그리 넓지 않아서 전경을 찍기가 편치 않다.

 

그래서 꼭 이렇게 올려찍기를 해야 한다.

 

그래도 이 서문, 즉 승천의 문(Fuerta del la Asuncion)이 이 거대한 성당의 메인 도어라니 찍어 둬야지.

 

 

 

서문의 좌우를 자세히 찍은 뒤, 옆의 성소 교회로 입장한다.

 

 

 

성소교회 의 내부. 천장의 흰 천은 보수공사를 위해 씌워 놓은 것인데, 제법 잘 어울렸다.

 

성소교회, 즉 영어로 하면 Church of Sanctuary 인데, 무엇을 위한 성소인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하지도 않고... (보기에 따라선 깊숙한 곳일 수도 있다.)

 

아마도 예수의 유골이나 성인의 유골을 안치했다는 의미로 Sanctuary라고 한 듯.

 

 

 

왕실예배당만 해도 규모가 상당하다. 물론 잠시 후 보게 될 대성당과는 비교가 안 되는 규모.

 

스페인식 성당의 배치를 보면, 복도(?) 양쪽으로 있는 작은 방 하나 하나가 모두 예배당 역할을 한다.

 

이런 작은 방들을 카필라 Capiilla 라고 한다.

 

 

 

작은 방 하나 하나마다 이런 식의 성상 배치가 되어 있다.

 

대부분은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예배당이다.

 

 

 

중앙의 주 성상만이 예수를 모시고 있다.

 

 

 

조금 자세히 보면 이런 모습.

 

예수의 유해 일부가 안치되어 있다면 아마도 이 제단 뒤편일 것 같다.

 

나머지는 거의 모두 성모상이다.

 

 

이렇게 금빛으로 찬란하게 묘사된 성모상.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성모의 발 아래를 받치고 있는 올망졸망한 아기 천사상들이다.

 

신체의 다른 부위는 보이지 않고 얼굴만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좀 징그럽기도 하고, 성모가 아이들의 머리통을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런 식으로 천사의 몸통을 다 묘사하고 있다면 그나마 낫긴 하다.

 

아무튼 좀 적응하기 힘든, 스페인 식의 묘사법이다.

 

 

주 예배석 위쪽의 쿠폴라에서 들어오는 빛. 흰 천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보수중이라 조금 더 돋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카테드랄의 앞길로 이렇게 한가롭게 관광객 용 마차가 다닌다.

 

 

 

서쪽 문 근처에서 죽 내려와 왼쪽으로 꺾어지면 대성당의 남쪽 문, 즉 관광객을 위한 일반 입구가 나타난다.

 

위 사진의 파란 세모가 있는 곳. 바로 여기다.

 

 

 

이것이 세비야 대성당의 대략의 입면도. 아까 위에서 본 승천의 문(Puerta de la Asuncion)이 오른쪽(그러니까 서쪽)에 있고, 지금 서 있는 면은 저 입면도에서 안 보이는 남쪽이다.

 

그 남쪽에는 왕자의 문(Puerta de la Principe)이 있다.

 

바로 이 문. 이 문 왼쪽이 관광객용 출입구다.

 

 

 

남쪽면에 위치한 카테드랄의 동쪽 출입구. 개인 입장객은 이곳으로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단체 입구는 북쪽, 히랄다 탑 옆구리에 따로 있다)

 

입구의 청동상은 세비야의 문장이 든 깃발과 세비야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다.

 

 

입구로 처음 들어가면, 세비야 대성당과 관련된 박물관을 먼저 보게 되는데,

 

 

 

 

에그머니나. 이게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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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호텔에 부탁했다.

 

"산 건너편에서 알함브라의 야경을 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매우 로맨틱한 식당이 있다고 들었다. 거기서 제일 전망이 좋은 자리를 예약해 다오."

 

스페인 사람답게 잘 생긴 직원은 씩 웃으며 최고의 장소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테라스 자리를 달라고 했더니 웃으며 10월 밤 날씨면 테라스에서 밥 먹다가 얼어 죽을 수 있단다. 대신 창이 넓은 식당을 추천하겠다며 '나만 믿어'라는 눈빛을 쏜다. 말로만 듣던 스페인 남자의 눈빛이다. 남녀 안 가리고 쏜다.

 

그래서 간 곳이 여기. 에스뜨레야스 데 산 니콜라스 Estrellas de San Nicolas.

 

Callejón Atarazana Vieja, 1, 18010 Granada, ; +34 958 28 87 39

 

 

산 니콜라스 는 흔히 말하는 '알함브라 앞산' 동네, 즉 알바이신 지구의 꼭대기 쯤에 있는 전망대의 이름이다.

 

본래 건너편에 있는 알함브라를 보는데 최적화된 전망대고, 그 전망대 바로 옆에 이 레스토랑이 있다.

 

 

 

식당의 외부 전경.

 

 

 

낮에 알카사바에서 바라본 산 니콜라스 전망대. 가운데 사람들이 서 있는 공터가 산 니콜라스 전망대고, 오른쪽 동그라미 친 곳이 바로 이 레스토랑이다.

 

 

 

식당 내부는 그냥 흔한 산장식 레스토랑. 그닥 운치는 없다. 오직 알함브라의 아경이 있을 뿐이다.

 

창가 테이블을 달라고 분명히 요청했는데 '이미 그 자리는 오래 전에 예약된 자리라' 어쩔 수 없단다.

 

성질 같아선 나가버리겠는데, 비까지 내리는 이역만리. 치안도 좋지 않다는 지역에서 무리하면 안 된단다.

 

아쉬운 마음에 창 너머 풍경을 도촬하는데 그도 쉽지는 않다.

 

창가 자리를 내놓으라고~~

 

 

 

 

자료 사진을 보니 여름철엔 아예 창틀을 뜯어내는 모양이다. 이편이 훨씬 잘 보이긴 하겠다.

 

 

 

 

첫 메뉴. 세가지 치즈와 견과류가 들어간 샐러드.

 

머리에 떠오르는 바로 그런 맛이다. 맛있는 재료들을 모아 만들었으니 당연히 맛이 있을 수밖에.

 

 

 

여전히 마음은 창가 자리에 있는데,

 

 

 

그라나다 지역의 좋은 물로 만들었다는 탄산수.

 

물맛 좋다.

 

냉수 먹고 속 차리자.

 

 

 

메인 디시. 안달루시아 풍의 쇠꼬리 찜.

 

와인 소스가 진한 맛을 내는데, 사실 쇠꼬리를 갖고 한 요리를 골라 먹으라면 한국식 꼬리찜을 먹겠다.

 

꽤 유명한 음식이라 맛이 궁금했는데, 한국식 꼬리찜을 먼저 먹어 본 사람이라면 이걸 먹고 감동하긴 쉽지 않다. 느끼한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비추.  

 

 

 

 

식후. 디저트 와인과 함께 저 통 안에 계산서를 꽂아서 내 온다.

 

나름 귀염을 떤다.

 

 

 

 

창가 자리 손님이 먼저 자리를 뜬 김에 다시 촬영 시도.

 

아니 왜 알함브라는 잘 안 나오고 뚱보만 나와.

 

이때까지만 해도 식당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종업원에게 산 니콜라스 전망대가 어디냐고 물으니 건물 바로 바깥이란다.

 

진작 얘기하지.

 

 

 

밖으로 나왔다. 비에 젖은 알함브라가 훨씬 잘 보인다.

 

사진 왼쪽의 높은 건물이 대사의 방이 있는 코마레스 탑, 그리고 그 뒤로 약간 높이 보이는 흉물이 카를로스5세 궁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성벽이 알카사바.

 

 

건물 측면도.

 

바로 옆에 있는 산 니콜라스 전망대로 갔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 목적인 알함브라.

 

 

생각만큼 잘 나오진 않는다. 아무튼 이런 분위기다.

 

 

 

비 때문인지 문 닫은 앞집 식당.

 

날씨 좋은 날이면 이 집에 가서 노천 테이블을 잡는게 여러 모로 좋을 듯 하다.

 

 

 

 

어쨌든 호텔로 귀환.

 

 

 

밤에 보면 정말 그럴듯한 로비가 있다.

 

 

그리고 방 밖으로 내다 본 그라나다 시가 야경. 멋지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한 공간도 나쁘지 않다. 이 호텔, 꽤 추천할 만 하다.

 

다만 성수기 때는 꽤 비쌀 것 같다.

 

 

 

아침 식사 후. 안달루시아를 고속도로로 가로질러 세비야로 향했다.

 

잇힝, 세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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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출신의 위대한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스페인 기행'에서 그라나다 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건축물과 음악의 일체감. 나는 이미 코르도바의 이슬람 사원과 세비야의 알카사르에서 이런 것을 짐작했다. 그런데 여기 그라나다에서 그것은 가장 명확하고 매혹적인 모습으로 드러났다. 아랍 건축물의 최후이자 최상의 노력은 모든 물질적 형태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벽을 사라지게 만들었고, 그것을 호리호리한 기둥이나 아치로 대체했다. 혹은 아랍의 카펫처럼 벽들을 조각하고 디자인했다. 그렇게 그것들은 무게에서 해방되었다.

 

기둥들은 더 가늘어졌을 뿐만 아니라 더 낮아졌다. 아치는 영묘하게 물결친다. 장식물들은 사상처럼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이 된다. 단일한 주제가 주어지고, 이 주제는 수학적인 정교함과 환상의 풍요로움으로 무한히 울려퍼진다.

 

아랍의 음악가이자 건축가들은 빛과 공기와 색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들은 대담한, 하나의 특별한 목적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물질을 초월한다는 것이었다. 고정되고 무거운 모든 내용물을 추상화시켜서 오직 지적인 윤곽만을 남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보고 나니 진정 실감이 난다.

 

 

윗글의 이상이 가장 잘 실현된 곳을 찾자면 역시 나스르 궁전 가운데에서도 사자의 정원 Patio de los Leones 을 꼽게 된다.

 

사자의 정원인데 사자는 어디 있다고 궁금해 하실 분들, 

 

사자 나온다.

 

 

 

뒤로 돌면 이런 장식의 문.

 

앞을 보면 생각보다 규모는 작지만 자못 감동을 자아내는 사자의 정원이 전경을 드러낸다.

 

 

 

 

 

 

나스르 궁전 평면도. 대략 파란 선을 따라 구경을 하게 된다.

 

중앙의 긴 빨래판 모양이 도금양(아라야네스)의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이고 우하단에 사자의 정원이 보인다.

 

 

사자의 정원에 있는 사자는 우리 민화 속 호랑이를 닮았다. 공포의 대상이 아닌 정겨움을 느끼게 한다.

 

사자상이 12마리인 것은 매 시간마다 물을 흘려 내보내는 것으로 시계의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모든 사자가 입을 통해 물을 흘려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주위의 방들.

 

첫번째 방은 흔히 아벤세라헤의 방 Sala de los Abencerrajes 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팔각별 모양의 천장은 나스르궁 최강의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방은 나스르 궁에서 가장 흉악한 전설을 담고 있는 방이다.

 

아벤세라헤 일족의 남자 30여명이 이 방에서 처형당했다고 한다. 이유는 정치적 음모에 대한 발각설과 왕비와의 불륜설이 있다. 가이드북에는 이 방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이 있다는 등의 호러 스토리를 전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천장의 아름다움이 매우 인상적인 방이다.

 

어쨌든 성 전체가 기독교도들에게 넘어가기 전에도, 넘어간 뒤에도 이 방은 께름칙하다는 이유로 그리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런 모습들이 바로 여행 사이트나 기행문의 '알함브라' 파트를 장식하는 바로 그런 비주얼이다.

 

사실 사자의 정원을 구성한 이 수많은 기둥들이 사진으로 볼 때보다 못하다고 실망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 많은 관광객용 사진들은 대개 여름의 해질녘에 찍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진들 속에서 이 기둥들은 금빛으로 황홀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직접 가서 보면 솔직히 그런 느낌은 아니다. 그리고 하필이면 날씨가 꽤 흐렸다. 해가 쨍쨍 나는 맑은 날엔 또 다른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꽤 조명을 타는 유적이다.

 

 

 

벽에 어른어른 그림자 같은 것이 비친다. 이런 것들이 아벤세라헤 일족의 핏자국인지도.

 

 

그리고는 왕의 방. Sala de los Reyes

 

스페인어의 Sala는 방(Room)으로도, 홀(hall)로도 번역되는데 이 경우엔 그냥 홀이라고 하는게 나을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Sala de los Reyes 는 방도 홀도 아닌 그냥 긴 회랑이다.

 

 

 

그 다음 방은 두 자매의 방 Sala de Dos Hermanas 이라고 불린다.

 

특별한 전설이 있는 방은 아니다(심지어 정말 자매가 살았다는 보장도 없다). 보압딜과 그 이전의 군주들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던 방으로 알려져 있다. 저 높은 천장에서부터 들어오는 빛이 꽤 아름답게 방을 감싼다.

 

또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아름답다.

 

 

 

 

이렇게 해서 사자의 정원을 지나 나스르 궁의 부속 건물로 접어든다.

 

 

 

눈썰미 있는 사람이 보면 창틀의 모양이 지금까지와는 다르고,

 

 

천장의 글자도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여기는 카를로스 5세가 잠시 사용했다는 황제의 집무실 Habitaciones de Carlos V 이다.

 

 

방 자체가 지금까지 거쳐온 알함브라의 방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기독교도들이 알함브라의 주인이 된 뒤에 구축한 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에 나타나는 방이 바로 '워싱턴 어빙의 방'.

 

전에 말했던 '알함브라 이야기'의 저자이며, 사실상 서구 사회에 알함브라 관광 붐을 일으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중세 이후 먼지에 덮여 있던 알함브라를 세상에 널리 알린 덕분에 관광객들이 밀려오고, 그 덕분에 스페인 정부도 알함브라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고 정비에 나섰다는 얘기다.

 

어빙은 물론 '스케치북'의 저자로 알려진 미국 문학의 비조이기도 한데, 이렇게 알함브라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방이 남을 정도의 영광은 역시 알함브라를 소개한 공이 아닐까 싶다.

 

(국내 번역 제목은 '알함브라' 1권과 2권인데 그라나다로 갈 때 꼭 읽고 가야 할 정도는 아니다. 감상이 좀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고나 할까. 맘에 드는 문장은 아니었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동물의 형상.

 

아시는 분 있으면 설명 좀...

 

 

 

워싱턴 어빙의 방을 나선 테라스에서 구 시가 쪽을 바라보면 이런 정경이 펼쳐진다. 안달루시아 특유의 구조를 가진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아름답다.

 

 

 

 

그래서 이런 장난도 쳐 보고 싶어진다. 인형 같은 집들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나스르 궁 구경도 거의 끝이다.

 

쇠창살의 정원 Patio de la Reja. 글자 그대로 네 면이 모두 건물에 둘러 싸인, 정통 사각형 파티오다. 작고 아담.

 

 

 

그리고 나서 건물을 돌아 나오면 오렌지 정원 Jardín de los Naranjos 이 나온다.

 

 

옆으로 돌아 들어가면 아랍풍 목욕장의 유적이 등장.

 

 

 

타일로 방수가 되어 있는 목욕방. 별 모양의 천장 창을 통해 조명을 해결한 부분이 눈길을 끈다.

 

 

이렇게 해서 다시 오렌지 나무 정원을 거쳐 밖으로 나오게 된다.

 

 

나스르 궁 안녕. 그리고 관람 시간이 끝났다.

 

알함브라는 여기서 안녕.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빗발이 굵어지기 시작한다.

 

의외로 알함브라를 보고 실망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마도 생각보다 매우 작은 규모(나스르 궁에 한정해 이야기할 때), 나스르궁을 보는 데 필요한 여러가지 절차와 줄서기의 번거로움, 또 아마도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직면해야 할 안달루시아의 직사광선과 더위 등이 이런 실망을 부추긴 요인이 아닐까 싶다.

 

알함브라는 다른 중동 지역의 이슬람 유적에 비해 규모와 색채감이 좀 약한 것도 사실이다. 돌과 벽돌의 자연색을 그대로 활용한 유적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마르칸트의 티무르제국 유적의 웅대함과 신비로운 파란 타일에 넋을 잃어 본 사람이나, 이스탄불 톱카피 궁전을 장식하고 있는 화려한 금은보화의 빛을 본 사람에게 알함브라는 다소 소박하게 보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알함브라에 대한 열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전에도 얘기했지만) 알함브라의 아간 관람 사진을 보고 난 뒤였다. 아마도 밝은 태양 아래서는 워싱턴 어빙이 그토록 강조하는 '달빛 어린 전설'이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관능적이고 요염한 분위기'를 느끼기 쉽지 않을 듯 하다.

 

언젠가 돌아와 밤의 알함브라를 보게 되길 기원하며.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찾아간 식당...은 다음 편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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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엠비씨 일기예보 배경음악(일설에 따르면 오늘의 주요 프로그램 안내 배경음악이라고도 한다^^)으로 늘 나오던 청승맞은 기타 연주곡이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 곡의 제목이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알함브라 궁전? 뭔가 아라비안 나이트 풍의 이름을 가진 이 궁전이 아라비아가 아닌 스페인 땅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세월이 또 흘렀다. 제법 머리가 굵었고 왜 스페인에 아랍인들의 궁전이 있는지도 알았다. 또 세월이 흘러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역은 바로 나스르 궁전이고, 그 나스르 궁전이야말로 이슬람 세력이 스페인 땅에 남겨 놓은 최고의 보물이라는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리고, 드디어 왔다.

 

 

 

 

바닥도 예사롭지 않아.

 

 

드디어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사실 작다면 작은 공간이다. 나스르 궁전은 절대 규모로 사람을 압도하지 않는다.

 

단지 치명적인 조형미가 있을 뿐이다.

 

 

설계도면으로 보면 이렇게 생겼다. 입구로 들어가 직진하면 제일 먼저 메수아르 Mexuar 에 도달한다.

 

 

 

천장 장식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기둥과 각도가 애매하다 보니 카메라에 담기 쉽지 않은 '메수아르의 방'. 거의 모든 가이드북에 '메수아르의 방'이라고 나오는데 그냥 메수아르 Mexuar 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이 메수아르는 나스르 궁전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전실 antechamber 이며, 왕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때로 재판이 열리기도 했다고 한다.

 

 

 

메수아르를 거쳐 나오면 다시 하늘이 보이고

 

 

작은 파티오가 하나 나온다. 저 문 안의 방 이름을 따서 파티오 델 쿠아르토 도라도 Patio del Cuarto Dorado, 즉 '황금의 방의 파티오'라는 이름이다.

 

 

 

 

작은 분수도 하나 있다. 파티오라고 불리려면 당연히 분수 하나는 있어야 한다.

 

 

 

 

 

이 황금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알함브라 전체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다.

 

 

 

황금의 방 자체는 그닥 인상적이지 않지만,

 

 

지금부터 알함브라는 디테일로 승부한다.

 

 

 

 

 

온 벽이 다 장식이다.;;

 

다른 문화권이라면 그림이나 조각이 있을 법 하지만 우상숭배를 극도로 경계하는 이슬람의 특성상 어디에나 기하학적인 문양 뿐이다. 꽃무늬 비슷한 문양은 가끔 눈에 띄지만 동물 모양은 절대 없다.

 

 

 

황금의 방을 나와 모퉁이를 돌아 입구를 나서면 앗, 많이 보던 광경인데, 라는 정원에 도착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정말 낯익은 광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아직 오른쪽을 볼 시간이 아니다. 왼쪽의 검게 보이는 입구로 발을 들여 놓으면,

 

 

 

 

 

 

 

 

코마레스 탑의 입구에 해당하는 배의 방 Sala de la Barca 이 나온다.

 

 

 

 

이런 다소 어두운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알함브라가 규모로 사람 기죽이기에 들어간다. 이것이 '대사의 방 Salón de los Embajadores '.

 

대사의 방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알함브라의 왕이 외국 대사들을 접견하기 위한 자리다.

 

대사의 방은 알함브라의 마지막 이슬람 군주였던 보압딜이 1492년 1월, 기독교도의 왕, 페르난도2세와 이사벨라 여왕에게 항복한 장소이기도 하다. 보압딜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해를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북아프리카로 망명한다. 물론 상대가 관용이라곤 모르는 기독교도들이었으니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 이야기'에 따르면 이 기독교도 군주들의 후손인 카를로스 5세는 보압딜의 우유부단한 처사를 비웃으며 "나 같으면 알함브라를 나의 무덤으로 삼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어빙은 이런 말로 보압딜을 옹호했다.

 

"권력과 권세를 지닌 사람들이 패배자들에게 영웅주의를 설교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불행한 이들에게 목숨 말고 남은 게 없을 때, 그 목숨 자체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그들이 어찌 이해하겠는가."

 

 

 

 

이 거대한 방은 이렇게 이슬람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굴욕적인 역사의 현장이다.

 

전성기 때 왕은 이 창을 등지고 앉아 귄위를 뽐냈다고 한다. 

 

 

 

여기 저기 인용되는 대사의 방의 천장.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이렇다. 이 시절 사람들에겐 하늘에서 별이 떨어질 듯한 위압감을 주었을 듯한 천장이다.

 

 

 

다들 천장을 바라보면서 머리를 쥐어 뜯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어디에나 있는 종유석 문양.

 

대사의 방을 나서 다시 배의 방을 지나 이 아치 너머로 고개를 내밀면,

 

 

 

스페인어를 살려 '아라야네스의 정원'이라고도 소개되는 도금양의 정원 Patio de los Arrayanes 이 나타난다.

 

도금양은 뭘 도금했다는 뜻이 아니고, 식물의 이름이다.

 

 

이 샘으로부터 시작되는, 우아하고 격조있는 정원이다.

 

완벽한데 저 건물 너머로 보이는 흉물스러운 건물이 정돈된 스카이라인에 끼어든다. 바로 위에서 보압딜을 무시했던 카를5세가 이 궁 안에 지은 카를5세궁이다.

 

대체 왜 저기다 저따위 건물을 지은 것인지 불만이 생긴다.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지나온 방향을 바라보면,

 

 

코마레스 탑이 보인다. 저 탑 안이 하나의 방이고, 그 방이 바로 그 대사의 방이다. 그러니 넓을 수밖에.

 

흔히 나스르 궁전은 3개 지역으로 이뤄졌다고 말한다. 첫째 메수아르, 둘째 대사의 방(코마레스 탑)과 도금양 정원, 그리고 세째는 사자의 정원과 거기 딸린 세 개의 방이다.

 

 

이것이 절정에 오른 기둥의 미학을 보여주는 사자의 정원 Patio de los Leones.

 

 

 

엄청나게 많은 기둥들. 기둥 하나 하나, 벽면 하나 하나가 놀랍도록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 안에 있으면 정말 아름다움에 둔감해 질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 사자의 정원이라더니 사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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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랄리페에서 알함브라 궁전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이런 다리가 있다.  

 

헤네랄리페를 먼저 보든, 나중에 보든 알함브라 관람은 이 문에서 시작하게 된다. 알함바르 궁전의 동쪽 끝에 있는 문이다.

 

 

 

그러니까 이게 어디냐 하면...

 

 

 

 

고구마처럼 동서로 긴 알함브라 궁에서 빨간 동그라미가 있는 이 위치다.

 

다시 말하면 동쪽 끝이란 얘기.

 

 

 

문 위의 문장. 무슨 뜻인지 일일히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알함브라 연구자도 아니고...

 

알함브라라는 이름은 아랍어의 qa'lat al-Hamra, 즉 '붉은 성(red castle)'에서 왔다고 한다. 물론 선홍빛으로 붉지는 않다.

 

알함브라의 이름이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9세기부터. 중동/북아프리카를 손에 넣은 이슬람 정복자들의 칼날은 마침내 8세기 초, 지브롤터를 건너 바로 빤히 보이는 이베리아 반도로 향했다. 정복은 그리 어렵지 않게 이뤄졌고, 이들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말을 달려 중부 유럽까지 진출하려 했다.

 

하지만 칼 마르텔(카를로스/샤를마뉴/칼/찰스 대제의 할아버지. 프랑크 왕국 카롤링거 왕조의 조상. 지금은 유명한 브랜디 브랜드인 'Martell'을 통해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에 의해 투르-프와티에의 결전에서 패배하면서, 유럽에서의 이슬람 세력은 피레네 산맥 동쪽으로의 진출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프랑크 인들 또한 그 서쪽으로는 넘어 오지 않아 이슬람인(스페인에서는 특히 무어 인이라 불림)들은 약 800년에 걸쳐 사실상 스페인 전역을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코르도바, 세비야 등과 함께 아랍인들이 주요 거점으로 개발한 도시 중에 그라나다가 있다.

 

 

 

그라나다 부근은 안달루시아에서 가장 지형이 험한 곳이다. 남쪽으로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끼고 있는 등 툭 터진 안달루시아의 평원 가운데서 꽤 지대가 높고, '가려져 있는 땅'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악 지형 한가운데 그라나다가 있고, 그 그라나다를 제압하는 언덕 위에 알함브라가 있다. 탁 트인 전망이 압도적인데다 물까지 풍부해 도시 하나를 통째로 들여 놓을 수 있는 알항브라 터는 누구라도 욕심을 낼 만한 땅이다. 그래서 9세기부터 조금씩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13세기. 나스르 왕조의 첫 왕인 무하마드 1세가 이곳에 자신의 궁성과 요새를 포함한 '도시 안의 도시'를 처음으로 건설했다. 이후 나스르 왕조의 다른 왕들이 조금씩 조금씩 부속 건물을 지으며 알함브라를 완성시켰다. 천혜의 요새 알함브라는 이 시기 기독교 세력의 확대로 이슬람의 강역이 축소되는 가운데서도 200년 가량 더 왕조의 운명을 지속시켰다. 

 

아마도 알함브라에 도성을 정한 나스르 왕조의 마지막 왕, 보압딜이 1492년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라나다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세력이 얼마나 더 버텼을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는 것을 알면 알함브라를 구경하는데 꽤 도움이 되겠지만, 사실 알함브라 안으로 들어서도 왕년의 거대한 도시는 금세 느껴지지 않는다. 문을 들어선 뒤로 한참 동안 건물은 보이지 않고, 조경이 잘 된 공원 속 같은 길을 걷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길이 15세기 중엽에는 화려한 도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다 보면 첫번째로 나타나는 역사적인 스팟.

 

 

바로 7층탑의 문 Torre de los Siete Suelos, 토레 데 로스 시에테 수엘로스다.

 

스페인어로 써 놓는다고 더 멋져지는 건 아니다. 지금 관람자가 성 안에 있으므로 안쪽에서 본 모습인데, 꽤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성 밖에서 보면 좀 다르다.

 

 

 

이게 밖에서 본 모습. 이 광경을 보려면 밖으로도 성벽을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반바퀴 쯤 돌아야 하는데 불행히도 그렇게는 하지 못했다. 아무튼 밖에서 보면 꽤 그럴싸한 광경이다.

 

그런데 문의 이름이 7층탑의 문인 것은 지하에 일곱 층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라는데, 정작 발굴해 본 결과 두 층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론은...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뭐야 이거)

 

 

 

그리고는 계속해서 예쁜 조경 산책로.

 

 

 

그리고 걷다 보면 왼쪽으로 이런 폐허가 나타난다.

 

아직은 별 감흥이 없다. 또 걷는다.

 

그리고 약간 넓은 뜰이 나온다.

 

 

이 문은 알함브라의 파라도르로 통한다.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파라도르 Parador 라는 이름의 숙박업소를 검색하게 된다. 유서깊은 유명 관광지의 경내에 위치한 숙박업소다. 고성이나 수도원을 호텔로 개조한 것이므로 가격은 좀 나가지만, 느낌이 다른 숙소라는 평이 있다.

 

특히나 그 유명한 알함브라 성내에 있는 이 알함브라 파라도르는 명성이 자자해 몇달 전부터 예약이 차 있다고 한다. 뭐 이런 숙소는 감히 예약할 생각도 못했던 터라, 여기서도 그냥 정문만 보고 지나쳤다.

 

 

 

이 빨간 원 정도의 자리. 참 좋긴 좋아 보이는 자리다.

 

 

 

근처에 이런 호텔도 있다. 아니 대체 유서깊은 알함브라 안에 호텔이 두개나 있는거야.

 

이름도 그렇고...뭔가 좀 무성의한 느낌.

 

 

그리고 안쪽으로 이어지는 길. 골목 사이로 카를5세 궁(스페인 식으로 하면 카를로스 5세 궁)이 보인다.

 

좌우의 건물들은 그리 세련되지 않은 기념품 등속을 팔고 있다.

 

 

 

이게 카를5세 궁.

 

모든 지도에서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겉에서 보면 사각형이지만 안에서 보면 원형인, 재떨이같이 생긴 건물이다.

 

 

 

굳이 이 궁 안에 이런 식의 유럽식 건물을 세우려고 생각했다는 것도 불순하고, 건물 자체가 그리 정감 가는 데가 없다.

 

1527년 카를 5세의 명으로 짓기 시작해 정작 1957년에 완공됐다는 건물.

 

 

그리고 게속 안쪽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알카사바 Alcazaba 가 나타난다.

 

 

 

지도상으로는 이 위치. 그러니까 알함브라의 서쪽 끝이며, 전체 알함브라 지역 내에서 가장 먼저 구축된 지역이다.

 

당연히 군사 주둔 지역. 주위를 압도하는 전망탑이 그 상징이다.

 

 

 

알카사바 쪽에서 본 카를 5세 궁. 크긴 참 크다.

 

 

 

알함브라에는 고양이가 참 많다.

 

 

사람 따위가 구경을 오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는 오만함을 갖췄다. 유서깊은 비궁의 주민 답다.

 

 

 

결코 먼저 관심을 보인다거나, 관광객 따위가 내는 어설픈 고양이 소리 흉내 따위엔 절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어느새 날이 흐려온다. 뭐 운치를 더한다면 더하는 느낌.

 

 

세월의 더깨.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천년이 넘은 성벽이다.

 

중간에 또 보수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천년 넘게 그 자리에서 이 고성을 지키고 있는 전망탑. 자못 감동적이다.

 

 

 

모퉁이를 돌아 계단을 오르면,

 

 

 

이런 광경에 도달한다. 속이 탁 트인다.

 

 

 

클릭해 보시면 파노라마.

 

 

 

크고 아름답다.

 

 

알카사바의 무너진 부분은 문득문득 앙코르 와트를 생각나게 한다. 붉은 색의 성벽 때문일까.

 

 

왼쪽으로는 과거 병사들의 숙소 유적이 보인다. 아무튼 요새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이렇게 한바퀴를 돌아 반대쪽으로 돌아 나오면,

 

 

 

 

성벽과 성벽 사이의 좁다란 정원.

 

이 정원에서 바라보는 시내의 전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데, 정작 나무가 너무 우거져 전망은 살짝 가려진다.

 

이곳의 성벽에는 이런 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갔다 와서 알았다.)

 

프란치스코 A. 데 이카사 Francisco A. de Icaza 라는 시인의 유명한 시라고 한다.

 

 

대략 해석하면

 

그를 부축해다오, 여인이여.

그라나다에서 장님으로 사는 것보다

금생에서 더 비참한 일은 없으려니.

 

 

 

 

 

다시 좁다란 문을 지나 내려가면

 

 

 

알카사바의 출구가 보인다.

 

 

알카사바 안녕.

 

 

 

알카사바를 나와 알함브라의 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이런 정경이 보인다.

 

이곳이 바로 알함브라를 바라보기 가장 좋다는 뷰포인트, 산 니콜라스 전망대다. 사진 속에 저녁을 먹기로 한 식당이 있다.

 

이제 알함브라의 핵심인 나스르 궁전을 입장할 시간이 왔다. 줄을 서야 한다.

 

 

 

 

나스르 공원의 입구에 있는 마추카 정원 Patio de Machuca

 

 

 

들어가야 하는데 조금 앞에서 줄이 끊겼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입장시키지 않기 위해 안내원들이 계속 머릿수를 헤아린다.

 

 

 

드디어 긴 기다림이 끝났다. 이제 나스르 궁전 안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됐다.

 

알카사바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알함브라의 매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나면, 나스르 궁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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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방문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몇달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그냥 가서 표를 사자면 대략 낭패.

 

티켓마스터 스페인 홈페이지 http://www.ticketmaster.es/ 를 방문해 따지지 말고 메뉴 맨 윗줄의 'Family and More'를 클릭한다. 그럼 이런 화면이 뜬다.

 

 

큼지막하게 La Alhambra 가 보인다. 클릭하고 들어가면 예매 페이지가 나타난다.

 

주의사항 페이지에는 반드시 읽어 둬야 할 것들이 상당히 많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 가령 10월25일의 티켓을 샀다면 그 날짜에는 오전 오후 중 자신이 선택한 시간엔 언제든 궁전 입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나스르 궁전 지역만큼은 입장 시간이 정해져 있다. 그 시간이 아니면 나스르 궁전은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예매때 확인하는 시간은 '나스르 궁전의 입장 시간'임을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

 

이걸 혼동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요약해 보자.

 

10월25일 표를 샀는데 나스르 궁전 입장 시간을 오후 4시로 정했다 치자. 해당일의 알함브라 궁전의 오후 개장 시간은 오후 2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그럼 오후 2시에 가든 3시에 가든, 나스르 궁전 이외의 지역을 먼저 마음껏 구경하고 오후 4시까지 나스르 궁전 앞에 가서 줄을 서서 입장하면 된다. 반대로 오전 10시 나스르 궁전 입장 조건으로 티켓을 샀다면, 오전 8시30분~오후2시 사이엔 마음대로 궁전 여기저기를 봐도 좋다. 단 나스르 궁전만큼은 오전 10시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주의사항을 자세히 읽어보지 않고 예약할 때 오후 4시라니까 오후4시에 가서 나스르 궁전만 보고, 나머지는 시간이 없어서 못 보는 분들도 있다. 이런 실수는 하지 않기 바란다.

 

아울러 하절기와 동절기 사이에도 꽤 차이가 있다. 3월15일부터 10월14일까지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개장하지만 그 이후 기간에는 오후 6시까지만 개장한다. 이밖에 몇가지 야간 개장은 동절기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이 점이 사실 매우 아쉬웠다. 애당초 처음 알함브라를 꼭 보러 가겠다고 마음먹은게 바로 그 야간 개장 때 찍은 사진 때문이었기 때문에.

 

기타 알함브라 예약 요령http://blog.naver.com/enehye85?Redirect=Log&logNo=188319175 이 블로그 해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

 

 

 

 

위 지도를 보면 아래쪽의 긴 고구마가 알함브라, 그리고 오른쪽 위의 돌도끼같은 모양이 헤네랄리페 Generalife 다.

 

헤네랄리페는 흔히 알함브라의 부속 여름 별궁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된다. 방문자 가운데는 이곳이 정작 알함브라 본편보다 인상적이었다는 분들도 꽤 있는데, 사실 그 말에 은근히 동의하게 된다. 아무튼 헤네랄리페가 완공된 것은 14세기. 그리고 그라나다가 기독교도의 손에 넘어간 뒤에는 예배당으로 쓰였다.

 

저 알함브라 표지판이 있는 입장 관리소는 딱 한군데 있다. 미리 예매한 티겟은 이 자리에서 등록을 해야 궁전 구역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현장에서 입장권을 바로 사서 들어가시는 분도 있다는데, 가을 이후엔 어떨지 모르지만 봄 여름엔 새벽부터 와서 줄을 서야 간신히 그 날짜의 입장권을 살 수 있다고들 한다.

 

그러니 딴 생각 말고, 저 위에 써 있는대로 반드시 입장권을 예매하고 가시기 바란다.

 

 

 

입장관리소를 통과하면 거대한 사이프러스 소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나타난다. 조경이 멋지다.

 

 

 

하이 시즌이 아닌 10월말이지만 어쨌든 관광객은 우글우글.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조각에서 보곤 정말 저렇게 생긴 나무가 있을까 했는데, 이 지역에선 지천으로 깔려 있다. 신기함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멋지다.

 

 

 

나무 사이로 숲 건너편, 알함브라의 한 자락이 보이고 저 멀리 구시가의 산동네도 언뜻 언뜻 보인다. 아름답다.

 

그라나다에 가 보면 알함브라야말로 천혜의 요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코르도바는 1236년, 세비야는 1248년 함락되었지만 그라나다는 건재했다.

 

 

 

본격적인 헤네랄리페 지역의 입구. 조경이 정교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원근감이 없어져서 별 것 없어 보이지만 왼쪽은 알함브라의 서쪽 끝자락인 알카자르. 오른쪽은 그 건너편의 오래된 산동네다. 탁 트인 전망에서 보면 아 소리가 나온다.

 

 

 

 

 

헤네랄리페 입구의 계단식 정원. 간이 공연장으로도 쓸 수 있을 듯. 생김새가 독특하다.

(실제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대체 어떻게 깎았을까 싶은 나무 문을 지나면

 

 

전형적인 스페인/아랍식 정원의 정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알함브라와 헤네랄리페의 상징은 물이다. 산 위에 요새를 건설하는 일은 건물만 지어서 될 일은 아니다. 바위산 위에 건물을 짓고 병력과 민간인이 거주하게 하려면 풍부한 수원이 있어야 한다. 일단 알함브라는 그 조건을 확실히 갖추고 있다.

 

그리고 특히나 알함브라는 안달루시아의 혹독한 직사광선과 더위를 조금이라도 달래기 위해 모든 조경에서 물의 활용을 극대화했다. 가는 곳마다 분수와 수로가 조경의 필수적인 요소다. 여긴 그냥 '시작일 뿐'이다. 그런데도 매혹적이다.

 

 

 

 

 

이런 그림 같은 정원 사이로

 

 

이렇게 한시간 두시간씩 앉아 있어도 전혀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도피 공간이 있다.

 

 

어릴 적 한창 꿀을 빨았던 사루비아가 만발해 있는 정경이 반갑다.

 

샐비어(Salvia)는 뭔 놈의 샐비어. 사루비아는 사루비아라고 써야 제 맛이다. 꽃 꽁무니의 달콤한 꿀 방울도.

 

 

 

 

 

어디에나 깔려 있는 라임 나무.

 

처음에는 몇개 따 볼까도 생각했는데 지나다니다 보면 너무 흔해서 아무도 안 건드리는 느낌이다. 나중에 세비야로 넘어가면, 아예 가로수가 라임나무다. 문득 은행나무가 우거진 서울 거리의 가을 냄새가 생각났다.^

 

가로수가 라임이면 어느 철에는 도시에서도 라임 냄새가 날까?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원이다.

 

정원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면 헤네랄리페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 관개수로의 정원 Patio de la Acequia 에 도착한다.

 

 

 

 

헤네랄리페를 상징하는 바로 이 한 컷.

 

'관개수로의 정원'이란 번역 대신 그냥 '아세퀴아의 정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실 오늘날의 헤네랄리페는 거의 유적에 가깝다. 기독교도들에 의해 파괴되기 전의 헤네랄리페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지금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1670년 경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되는 헤네랄리페는 기독교 점령 시대에 예배당으로 개조됐다.

 

지금 남아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파티오 데 아세퀴아 정도. 얼마나 더 화려하고, 얼마나 더 정교했을까.

 

 

 

반대쪽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난간 너머로 건너편 알함브라를 바라보는 맛도 최고.

 

 

 

 

잠시 후 알함브라에서 본격적으로 보게 되지만, 건물의 정교한 장식이 지금부터 감탄을 자아낸다.

 

 

 

 

 

 

 

 

 

 

관개수로의 정원에서 한 단계만 올라 서면 또 하나의 보물같은 정원이 나타난다.

 

 

 

 

 

이른바 '사이프러스 정원 Patio de los Cipreses'.

 

 

 

 

 

 

꼭대기의 사자상을 한번 잡아당겨 봤다. 벽돌로 된 아치와 기와를 얹은 지붕은 언뜻 친숙하게 느껴진다. 창덕궁 어느 한 구석에도 비슷한 색감의 벽돌 문을 발견할 수 있으니.

 

구불구불 돌아 계단을 올라가면 사이프러스 정원을 좀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있다.

 

 

 

 

 

정교하고 아름답다. 실로 왕이 거닐었을 법한 정원이다.

 

 

난간으로 물이 흐르게 한 유수 계단의 아이디어. 꼴꼴꼴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흥취를 더한다.

 

헤네랄리페의 많은 건물들과 구조물들은 모두 '여름 스페인의 태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어떻게 해서든 태양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러자니 그 시절에 가능한 냉각제는 '흐르는 물'과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가능한 한 여러 곳의 그늘' 외에는 없었을 듯.

 

 

 

계단 위에 사려깊게 건설된 햇빛 가리개. 안달루시아의 여름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좀 더 높은 곳에서 바로본 관개수로의 정원.

 

 

규모가 그리 압도적이지는 않지만 헤네랄리페의 정원은 '이래서 사람들이 알함브라 알함브라 하는구나' 하고 수긍이 가게 하는, 정교하고도 품위있는 아름다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한껏 기대를 높인 상태에서 알함브라로 넘어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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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에 알함브라 이외의 볼거리가 많다는 분들도 많았는데 어차피 평생 스페인에서 보낼 게 아니라면 선택은 불가피했다. 아무튼 그라나다에서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그것도 아침 일찍 기차에서 내려 좀 휴식을 취하고 나니 대략 오전은 다 지나갔다.

 

남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바로 호텔을 나섰다.

 

 

 

호텔 정문을 나서 바로 왼쪽 산길로 접어들면 이런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앞에서도 말했듯 알함브라는 시내의 가장 높은 고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식당-호텔 등이 몰려 있는 누에바 광장 Plaza Nueva 까지 가려면 약 1Km 정도 산길을 내려가야 한다. 위의 경로와 대략 일치한다.

 

지도가 커서 멀어 보이지만 약 10~15분 정도 산길을 걸어 내려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내리막길이란게 매우 중요. 오르막이면 힘들다.)

 

 

 

산 위쪽을 바라보면 알함브라의 성벽 끄트머리가 숲 사이로 슬쩍 슬쩍 보이는 정도.

 

 

 

내리막이라 그렇지 만약 오르막이라면 꽤 힘들게 올라왔을 길이다. 경치는 참 좋지만 내리막으로 활용하는게 좋을 듯.^

 

 

 

시내까지 거의 내려오면 급수탑(?)이 나타난다.

 

산 위에서 내려오는 길 안쪽에선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알함브라 처럼 산 위에 대단위 요새를 구축하려면 물이 필수였을 터. 헤네랄리페를 봐도 알 수 있지만 고지이면서 물이 풍부하다는 점이 알함브라의 가장 핵심적인 입지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타나는 것이 알함브라의 메인 게이트.

 

 

밖에서 성을 향해 가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이 문을 통과하면 그때부터 알함브라 영역이다.

 

물론 진짜 알함브라 성문은 이 문을 통과해 산길을 1Km 정도 올라가야 나타난다. 

 

 

 

플라멩코 기타의 장인(?)이 운영하는 기타 샵.

 

사진으로는 별 느낌 없지만 이 거리에 있으면 굉장히 운치 있어 보인다.

 

 

 

그리고 계속되는 내리막길. 저 골목 끝으로 보이는 곳이 누에바 광장이다. 위의 기타 샵 처럼 골목 곳곳에는 고전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다양한 가게들이 여행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플라멩코의 발상지는 흔히 세비야라고 하지만 스페인의 온 도시에 파에야 가게 없는 곳이 없듯 플라멩코 공연장 없는 곳도 없다.

 

특히 그라나다는 집시들의 거주지역인 동굴 내에서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곳들이 유명하다고 한다. 동굴 플라멩코는 아니지만(그건 구 시가의 알바이신 지구에 있다고 들었다) 어쨌든 플라멩코 공연장이 여기서도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큰길 도착.

 

 

 

이것이 누에바 광장의 상징인 분수대. 그리고 그리 넓지 않은 광장은 이미 각종 레스토랑들이 전진배치해 놓은 식당들의 야외 좌식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목 좋은 곳에 있는 식당의 메뉴는 너무나 관광객용이다.

 

물론 지난번에 말했듯 프라이드 치킨, 햄버그 스테이크 등 관광객들이 고민하지 않고 먹을만한 메뉴 델 디아 의 향연이다. 뭔가 좀 전통 스페인식으로 보이는 음식을 시키려 하면 가격이 너무 비싸거나, 메뉴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그 음식은 만들 수 없다'고 한다.

 

(메뉴 델 디아가 뭔가 싶은 분: 그란비아, 그리고 메뉴 델 디아란 무엇인가 http://fivecard.joins.com/1181 )

 

 

적당한 식당이 없어 그란비아까지 걸어 내려왔다.

 

 

 

그라나다 그란 비아의 이면 도로. 호텔에서, 그러니까 알함브라 궁전에서 누에바 광장을 거쳐 여기까지 걸어오는 데도 한눈 팔지 않고 걸으면 20분이면 충분하다. 서울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정말 아담한 도시다.

 

 

 

그리고서 바로 모퉁이만 돌아 골목을 빠져나가면 그라나다의 유명 관광 포인트 중 하나인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de Granada 이 나타난다. 그라나다라는 도시의 사이즈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라나다에선 모든 것이 가깝다.^^

 

 

 

이렇게 생긴 왕실 예배당. 바로 뒤에 그라나다의 카테드랄이 보인다.

 

거대한 카테드랄 옆에 있으면 소박해 보이지만 그래도 이사벨라 여왕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여왕 자신이 그라나다에 묻히고 싶다고 했다는 얘기. 아무래도 콜럼버스의 영광보다는 스페인 땅의 마지막 이슬람 영토였던 그라나다 정복이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혹은 새로 정복한 땅 그라나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 자신이 이룩한 국토 통일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후손에 대한 경고의 의미일 수도 있을 듯 하다. 아무튼 오후 1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카테드랄도 마찬가지. 그래서 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골목 안에 식당 하나. '세비야'라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왠지 식당 간판의 느낌이 좋아서 바깥에 앉았다. 골목 안에 테이블이 촘촘하게 붙어 있다. 

 

 

 

골목에서 바로 밖으로 나오면 바닥까지 이런 광경이 펼쳐진다.

 

이 집의 대표 메뉴라는 '세비야 샐러드 Ensalada de Sevilla(뭐 이런 이름의 샐러드가 어디 가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냥 식당 이름을 단 샐러드)'와 기본 파에야 주문. 음료까지 25유로 정도.

 

 

 

작은 감자 샐러드를 먼저 전채 요리처럼 준다. 빠에야가 오래 걸릴 테니 기다리는 동안 맛보란 배려.

 

 

 

이 나라 사람들은 올리브유의 사용이 매우 자연스럽다. 신선한 올리브유와 흩뿌린 치즈,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잘게 썬 하몽이 샐러드 재료들과 어우려져 좋은 맛을 낸다.

 

신선한 야채와 함께 씹히는 짭짤한 하몽이 포인트. 통 올리브가 들어 있지 않은 점은 약간 아쉬웠다.

 

 

 

샐러드를 해치우고도 한참을 더 기다려 오너 셰프(?)가 직접 프라이팬을 들고 나와 보는 앞에서 각각 접시에 덜어 준다.

 

토마토 소스에 조갯살, 닭가슴살, 오징어, 새우, 그리고 각종 야채가 들어 있는 볶음밥이다.

 

 

 

흔히 리조또와 비교되는 것이 빠에야인데, 해외에서 먹은 리조또는 사실 맛있다고 하기가 힘들었다. 기본적인 리조또의 상식은 쌀을 반 정도만 익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리조또는 한국식으로 푹 익혀 조리하지만, 해외에선 그렇지 않다. 특히 이탈리아 본토에서의 리조또는 오독오독 쌀이 씹힐 정도로, 한국 사람의 입장에선 설익은 밥의 수준을 넘어 절반 정도는 생쌀의 느낌이다.

 

왕년에 라스베가스에서 한국인 손님 유치를 위해 식당에 한식을 배치했는데, 이탈리아 출신 주방장에게 밥 하는 법을 '설득'하는게 굉장히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을 많이 붓고 쌀을 완전히 익혀야 한다'는 말을 해도 계속 설익은 밥을 가져오더라는 거다. '더, 더'하고 요구하니 '아니 그럼 그걸 어떻게 먹어'라는 식의 반응이더라는 얘기.

 

반면 빠에야는 몇번 먹어볼 때 한번도 쌀이 설익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즉 한국 복집에서 복 지리를 먹고 난 뒤 남은 국물에 볶아 준, 약간 죽 비슷한 볶음밥의 느낌. 밥 상태가 아니고 쌀 상태에서 조리를 시작하는 것은 리조또와 마찬가지지만 '쌀을 충분히 물에 불려 둔다'는 것이 중요한 레서피라고 한다. 이 쌀의 익힘 정도가 리조또와 빠에야의 차이가 아닌가 싶다.

 

[위 부분은 일천한 제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는 겁니다. 이 구별이 정확한 것인지 검증을 구합니다. '나는 설익은 빠에야도 많이 먹어 봤다' 하는 분,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빠에야가 만족스러워서 아저씨와 사진 한 컷. 잘 먹었어요~~.

 

 

혹시 찾아 가실 분을 위한 주소. 그냥 왕실 예배당 옆구리 골목을 찾으시는게 나을 수도.

 

 

 

 

못 들어가는 왕실 예배당 한 컷.

 

 

카테드랄 옆쪽으로 돌아 들어가면 색색깔의 상가가 이어진다. 꽤 정감있는 뒷골목이다.

 

 

카테드랄 안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작품화 한 듯 한 관광객용 소품.

 

 

 

 

그라나다는 본래 '석류'라는 뜻이라는데 석류는 아닌 희한한 가로수가 자주 눈에 띈다.

 

 

 

여기가 아까 식당 앞에 있던 왕실 예배당의 정문. 카테드랄과 나란히 붙어 있다.

 

 

고개를 돌려 보면 모습을 드러낸 카테드랄.

 

 

 

아까 그 노란 열매가 익으면 이렇게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여전히 정체 불명.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그라나다의 카테드랄. 세비야보다 작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청나게 웅장하다.

 

 

 

그런데 스페인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거대한 카테드랄을 지어 놓고 건물 앞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해 놓지 않은 것은 그라나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뒤로 물러설 수 있는 데까지 물러서 봐도, 이 정도 뷰밖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독특한 양식. 짓기 시작할 때에는 그냥 고딕 양식으로 설계했다는데 막상 완상할 때에는 아랍 풍의 느낌이 추가되며 약간 희한한 모습이 됐다. 내부도 상당히 화려하단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쨌든 카테드랄의 개관 시간까지 기다리다간 알함브라를 못 볼 상황.

 

 

 

아프리카 대륙과 가깝다는 것을 상징하듯 아랍풍의 말린 과일과 향초 등을 파는 가게들 천지다.

 

 

 

 

야자수 가로수가 매우 인상적이다.

 

구경을 하자면 두세시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시간이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알함브라로 향했다. 그란 비아 어디에서나 미니버스 32번을 타면 알함브라로 가게 되어 있다. 물론 그라나다처럼 작은 도시니까 가능한 일이지만, 이런 서비스는 매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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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그라나다로 이동하는 여행자들은 흔히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야간열차와 (저가)항공이다.

 

야간열차는 당연히 침대차가 기본이다. 스페인은 매우 큰 나라다. 마드리드-바르셀로나 구간(약 600Km)은 고속전철 AVE가 있어 2시간 30분이면 주파 가능하지만 그보다 훨씬 먼 그라나다-바르셀로나 구간(약 800Km)은 아직 고속화되지 않았다.

 

야간 열차의 좌석이나 버스로도 이동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건 정말 몸 상하는 일.

 

 

 

비행기를 타고 내리기 위해 이동하는 일(대개 공항은 시내에서 상당히 멀다)을 꽤 싫어하고, 동시에 국내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침대차에 대한 로망이 있는 1인으로서(사실 동행인의 의견은 그리 참고하지 않았다), 당연히 침대차를 선택했다.

 

늦은 시간. 그래도 산츠 역은 꽤 붐비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외진 곳이라 유럽의 주요 도시들로부터 애매하게 멀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침대차가 꽤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다지만 지금은 대부분 항공편을 이용하는게 일반적이다. 남아 있는 노선 중에는 파리행과 그라나다행이 꽤 유력하다고 한다.

 

 

야간열차 트렌오텔 Trenhotel 은 밤 10시 출발. 그라나다에는 다음날 오전 9시11분에 도착한다.

 

 

 

물론 중간에도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사이 부지런히 기차가 서고 내린다.

 

야간 열차라고 해서 모든 칸이 침대칸은 아니다. 일반 좌석이 있는 칸도 있다.

 

렌페 renfe.com 에 가서 야간 열차를 예매하려면 이런 화면을 만나게 된다.

 

 

다섯 등급의 좌석을 판다.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좌석 2등급, 좌석 1등급, 침대차 4인 1실, 침대차 2인 1실, 침대차 2인 1실(특실)에 식사 포함이라는 기준이다. 위에서 네번째인 Cama Preferen(2인 1실. 1등칸)을 선택했다.

 

일단 11시간을 이동하는데 좌석...도 굳이 타라면 못 탈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 청춘이 아니다. 최소한 침대차는 되어야 한다. Cama Turista는 예전에 기차 여행할 때 타 본 쿠셋 형의 변형인 듯 하다. 그래도 쿠셋은 방 하나에 간이 침대가 6개인데 이건 그나마 4개. 그리고 방 안에 세면대도 있다. 4인 1실이라도 남자 칸과 여자 칸이 따로 있다.

 

Cama Preferen은 164유로라고 되어 있는데 이 가격은 아마도 당일 구매 정도에 해당되는 가격인 듯. 약 1개월 전에 미리 사면 1인당 110유로 정도, 즉 2인 1실에 220 유로 정도에 탈 수 있다.

 

어쨌든 기차 표 끊는 법, 역에서 표 찾는 법 등은 이런 블로그 http://blog.naver.com/familyjhjh?Redirect=Log&logNo=90172132856 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어 여기서 새로 또 늘어놓지는 않는다.

 

220유로. 가격으로 따지면 재수가 좋은 경우 1박 요금+저가항공 2인 요금이 더 쌀 수도 있다. 하지만 평소 육상 교통, 특히 기차 이동을 매우 선호하는 본인으로서는 침대차에서 하룻밤을 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궁금하잖아.

 

 

 

문을 열고 2인 칸의 안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아, 물론 가방을 넣어 두고 한숨 돌린 뒤에 찍은 거다. (문을 열자 마자의 상태는 당연히 아니다.)

 

첫 느낌은 누구나 비슷하다. "뭐가 이렇게 좁아!"

 

그런데 걱정하실 필요 없다. 조금 지나면 대략 익숙해 진다. 하룻밤 정도는 충분히 머물만 하다.

 

 

2층 침대에서 문 쪽을 본 모습. 안으로 들어와 방 문(오른쪽)을 닫아야 욕실 문(왼쪽)을 열 수 있다.

 

사진상으로 엄청나게 비좁은 느낌이 드는데, 맞다. 엄청나게 좁다. 그래도 욕실 설비는 제법이란 느낌이 든다.

 

 

 

욕실로 들어가서 오른쪽을 보면 거울과 세면대, 그리고 양치질용 물과 컵이 있다.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잘 나오지만, 생수 2병을 굳이 넣어 뒀다. 물론 마실 수 있는 물이고, 럭셔리하게 양치질 하는 데 쓸 수도 있다.

 

(우리는 양치질하는 데 썼다. 이유는... 1.5리터짜리 에비앙을 이미 사 왔기 때문에. 다 마시느라 애썼다.) 

 

 

 

왼쪽을 보면 변기와 작은 선반이 있고, 그 위에 샤워용의 큰 타월 두 장과 예비용 두루마리 휴지 등이 있다. 제법이다.

 

세면대와 변기를 합해 여객기 기내 화장실 정도의 크기. 하지만 거기엔 없는 호사스런 서비스가 있다.

 

 

 

제법인 이유는 더 안쪽에 샤워실이 있기 때문. 여행 자료를 보면 Cama Preferen에 샤워가 있다, 샤워는 없고 세면대만 있다는 등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결론을 말하면 샤워실이 있었다.

 

넓이는 작은 사이즈의 샤워박스 정도.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들어가면 갇힌 느낌으로 죽을 것 같을 수도 있겠지만, 야간 침대 열차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건 사실 대단한 호사다.

 

그리고 비록 좁다지만 원통형이라 나름 합리적이고, 사진에서 보듯 장시간의 입식 샤워(?)에 피로한 당신을 위해 엉덩이를 살짝 걸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아울러 바닥은 배수가 잘 되도록 신경 쓴 구석이 보인다. 좁은 침실로 샤워 물이 넘쳐 방이 물바다가 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방은 이 정도. 열차로 두 칸 정도 넘어 가면 스낵바가 있고, 스낵바 바로 너머에 식당칸이 있다.

(열차가 흔들려 어쩔 수 없이 진동...)

 

 

 

하긴 먹으면서 이동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이건 식당칸 옆의 부엌을 살짝 찍은 것. 철판 위에서 스테이크가 혼자 지글지글 익어가고 있었다. 식당칸에서 음료 정도는 마셔 주는 것도 괜찮을 듯 했으나 어찌나 에어콘을 세게 틀었는지 얼어 죽을 것 같았다.

 

 

 

밤 10시 출발. 한국인들에겐 매우 늦은 시간이지만 이쪽 사람들에겐 한창 저녁을 즐길 시간이니.

 

 

 

이건 스낵바. 아주 가벼운 간식거리와 커피, 음료, 맥주 등을 판다. 이것도 제법 운치있는데, 혼자 여기서 맥주라도 홀짝거리며 창밖을 보고 있으면 굉장히 자신이 측은해 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열차 안의 복도는 매우 좁다. 기내용 캐리어는 통과할 수 있지만 1주일 이상 여행용의 트렁크는 정상적으로 통과할 수 없는 넓이다. 그 점 하나만 빼면 침대차 내의 시설은 충분히 수긍할 만 했다.

 

 

 

이건 방 안에 있는 1인용 위생 팩.

 

 

조립식 칫솔. 치약. 면도기. 비누. 화장솜. 빗 등이 키트로 들어 있다.

 

준비 없는 사람이 1박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설비다.

 

 

 

1층 침상. 다리를 충분히 뻗을 수 있다. 위쪽으로 개인용 독서등도 있고, 충전용 전원도 있다.

 

 

동행인이 최종적으로 1층을 선호해 2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 2층은 왼쪽의 전화기를 빼면 시설에 아무 차이가 없다. 쿠셋과는 달리 두 층 뿐이므로 1층과 2층 모두 일어나 앉을 수도 있다. 침구도 깔끔하고 편안한 느낌.

 

누운지 몇분 지나지 않아 잠이 들었다. 물론 움직이는 기차 위이기 때문에 제법 흔들린다. 그 진동에 대한 적응엔 개인차가 꽤 크다. 앞서도 말했듯 본인은 그 진동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라서(요람 속 같다고나 할까), 눕자마자 금세 잠들어 숙면을 취했다.

 

 

 

그리고 아침. 그라나다에 거의 도착할 무렵 창을 열었다.

 

안달루시아의 아침놀.

 

 

 

 

 

 

아나톨리아 고원에서도 느꼈지만, 땅이 넓은 곳에선 구름이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눈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 쇼콜라를 마시고 산 초코 머핀과 초콜릿 크루아쌍으로 아침 간식.

 

그라나다가 가까워 온다. 침상 정리를 해 본다.

 

 

 

위층 침대를 접으면 이런 모습,

 

 

그리고 아래층 침대를 마저 접고 그 아래 감춰져 있는 좌석을 펴면 이런 모습이 된다. 오래 전 다녔던 오리엔트 특급 같은 열차에선 낮엔 이런 식으로 가다가 저녁에 침대를 펴고 잠을 청하는 식의 여행이 가능했을 것 같다.

 

낮 이동이 훨씬 지루하긴 하겠지만.

 

 

오전 9시. 그라나다 도착.

 

그라나다는 춥고, 역무원들은 불친절하다. 역에 있는 인포메이션은 '우리는 관광안내소가 아니다' 라며 지도 한 장 비치해 두고 있지 않았다. 뭐 이리 쌀쌀맞아.

 

 

택시를 잡아 타고 그라나다의 그란 비아(사진 오른쪽 가게 간판 쪽에 써 있다)를 따라 호텔로 이동.

 

바르셀로나에선 반팔이 더 많았다면 여긴 확실히 가을 느낌, 그것도 늦가을 느낌이 난다.

 

그래도 왔다. 그라나다. 기다려라, 알함브라.

 

 

그라나다는 굉장히 작은 도시다. 여행을 어떻게 즐기느냐에 따라 숙소 결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번 여정에서 그라나다는 단 1박, 그리고 알할브라 궁전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므로 숙소를 아예 알함브라 궁전 바로 코앞으로 잡았다. 이름하여 알함브라 팰리스 호텔 Alhambra Palace Hotel.

 

홈페이지는 여기. http://www.h-alhambrapalace.es/default-en.html

 

 

 

 

이번 여행 중 가장 럭셔리한 호텔이었던 것 같다.

 

물론 비수기라 그리 비싸진 않았다.

 

 

 

오전 10시도 안 된 시간에 방을 달라면 어떤 반응일지 조금 궁금했지만, 비수기인데다 기차 도착 시간을 알고 있기 때문인지 선선히 방을 내 준다. 굳이 얼리 체크인을 언급할 필요가 없는, 알아서 해 주는 서비스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중엔 TV를 거의 안 봤다. 마드리드에서나 좀 채널을 돌려 봤던가...

 

 

 

 

아랍풍으로 꾸며진 욕실이 특히 넓고 화려했다.

 

 

 

호텔이라기보단 무슨 성 처럼 보일 정도로 요란한 장식이 있다.

 

 

사실 이 호텔을 고른 가장 큰 이유는 알함브라에 도보로 이동 가능한 호텔이라는 점(호텔을 나서 언덕배기를 3분정도 걸으면 바로 알함브라)이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알함브라 구경을 마치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피해 호텔로 달려 들어오면서, 역시 가까운 호텔을 고르길 잘 했다며 스스로의 선견지명에 기뻐했다.

 

아울러 두번째는 트립어드바이저에 누군가 써 놓은 fantastic city view. 알함브라가 보이는 뷰면 더 좋겠지만, 사실 그건 쉽지 않다. 알함브라는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알함브라 바로 앞에 있는 이 호텔도 알할브라 쪽의 뷰는 그냥 산 뿐이다. 대신 시내 쪽 방은 이렇게 알함브라 구시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잠시 방 구경과 짧은 오전 휴식을 마치고 곧바로 출동.

 

 

 

 

기다려라 알함브라! (사진은 헤네랄리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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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집을 소개할까 말까 좀 고민을 했다.

 

우리가 이 집을 간 건 맛집 소개를 받아서가 아니라, 단지 숙소에서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바깥 여정에서 일찍 돌아온 날, 시내로 나가기 위해 민박집 주인장에서 시내에 가볼만한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동네 식당 한번 가 보는게 어때요? 우리도 가끔 가는데, 시내 식당보다 나아요" 라며 이 집을 찍어 주셨다.

 

그래서 가 본 곳이 라 펠라 La Perla.

 

 

 

풀네임은 La Perla Groupo Reloj.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구글에 있다.^^

 

https://maps.google.co.kr/maps?ie=UTF-8&q=la+perla+barcelona&fb=1&gl=kr&hq=la+perla&hnear=0x12a49816718e30e5:0x44b0fb3d4f47660a,%EC%8A%A4%ED%8E%98%EC%9D%B8+%EB%B0%94%EB%A5%B4%EC%85%80%EB%A1%9C%EB%82%98&ei=HUW2UrPbA8HoiAe_o4GoCg&sqi=2&ved=0CPgBEMgT

 

 

 

 

 

혹시라도 산츠 역에 내려 잠시 식사할 데를 찾는다거나(하긴 산츠 역에서 도보로 딱 10분. 아주 가깝다고 할 수 는 없다^^), 숙소가 아바 호텔, NH 누만시아 호텔, 그리고 그 주변인 사람들을 위해 적어 놓는다.

 

산츠 기차 역 광장으로 나와 누만시아 Carrer de Numancia 라는 큰 길을 따라 왼쪽으로 쭉 직진하면 바로 나온다. 찾기는 절대 어렵지 않다. 아바 호텔 Abba Hotel 만 찾으면 끝.

 

 

 

실내는 이렇게 생겼다. 왼쪽에 굉장히 독일식 발음을 하던 웨이터 아저씨가 보인다.

 

사실 이 식당을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이 음식, '바르셀로나의 국물'이라고 부를 만한 사르수엘라 Zarsuela 때문이다. 발음은 '사르수엘라'와 '자르주엘라'의 딱 중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르수엘라는 본래 노래와 무용이 결합된 스페인 특유의 가극 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마드리드에서 "어디 사르수엘라 하는 데 없나"하고 묻자 "무슨 오페라 같은 걸 찾는 거냐?"는 답이 나왔다. 접객 업무가 많은 호텔 직원이 이런 반응인 걸 보면 마드리드에선 이 음식이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듯 했다.

 

정식 명칭은 사르수엘라 데 마리스코 Zarzuela de Marisco. 마리스코는 해산물을 뜻한다. 사진에서 보듯 꽃새우, 대하, 조개, 대구살, 홍합 등을 넣고 토마토 페이스트 베이스의 국물에 걸쭉다기 보단 멀끔하게 끓여 낸 스튜를 말한다. 그런데 이게,

 

기가막히게 맛있다.

 

 

뭐 보시다시피 국물 재료에 맛 없을 것이 들어가지 않으니 당연히 기본적인 맛은 보장인데, 토마토를 베이스로 한 육수 재료에서 묘하게 이국적이면서도 달콤짭짤한 맛이 난다. 그게 일품이다.

 

같은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있는 나라들에는 뭔가 비슷한 느낌의 음식들이 많이 있다. 이를테면 이탈리아식 토마토 소스 홍합 찜 Zuppa di Cozze 도 국물을 흥건하게 하면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맛을 낸다. 예전 서울 청담동의 올리비아라는 레스토랑에선 여기서 발전된 혇태의 얼큰한 홍합 국물에 파스타가 떠 다니는 요리를 나띠보라고 불렀는데, 한때 정말 좋아했던 음식이다(그런데 왜 이름이 나티보인지는 모르겠다. Naitvo는 이탈리아어로 영어의 native에 해당하는 말이다. 요즘은 마트에서 파는 자숙홍합으로 가끔 집에서 만들어 먹고 있는데 그럴 듯 하다.^^)

 

마찬가지로 프랑스식 해물탕인 야베스 bouillabaisse 도 비슷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 내가 먹어 본 부야베스는 강한 버터 맛이 났다. 물론 부야베스도 식당 따라, 조리사에 따라 레서피가 다를테니 그 강한 버터 맛이 부야베스의 본질인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요리 자체를 비교하는 건 무작위로 태권도, 유도, 합기도 선수를 1명씩 데려다 놓고 싸움을 붙여 무도의 서열을 가리는 것과 마찬가지(우연히 태권도 9단과 합기도 8급이 맞붙을 수도 있으므로)로 바보같은 짓이지만,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먹어 본 지중해 풍의 해산물 스튜 요리 가운데서는 이날 라 펠라에서 먹은 사르수엘라가 단연 최고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레서피를 배워다 한국에서 스페인식 해물탕집을 차려 볼까 하는 생각도 했을 정도.

 

가격이 싸지는 않다. 이 집에서 24유로. 하지만 먹어 보면 후회하지 않을 듯. 바르셀로나의 식당가에서 어느 식당이든 들어갔다면, 한번쯤 메뉴판에서 사르수엘라를 찾아 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같이 먹은 음식 중 하나. 아스파라거스와 조갯살이 들어간 스페인 식 계란 찜.

 

태국에 갔을 때 대부분의 요리 이름들이 직관적으로 재료의 이름을 붙이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재미있게 생각했는데 - 이를테면 뿌는 게, 팟은 볶다, 카리는 커리, 합하면 뿌팟퐁가리가 된다 - 생각해보면 한식도 비슷하다. 설렁탕이나 육개장처럼 이름만 봐선 뭘로 만든 무슨 음식인지 잘 모를 때가 있지만, 대개 아구찜은 아구를 찐 것이고 통닭은 닭을 통으로 구운 거다.

 

스페인도 대략 비슷하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인으로 갈 때에는 스페인어의 식재료를 좀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이게 하나 둘 셋 넷 세는 것보다 훨씬 유용할 때가 많다.

 

 

 

여기에 몇개 보태자면,

 

마늘 Ajo 아요, 고추 Picante 피칸테, 고기 Carne 카르네 (카르네는 거의 쇠고기지만 구별하면 쇠고기는 Ternera, 돼지고기는 Cerdo) 등이 있다. 알면 알수록 당연히 도움이 된다.

 

세상에 먹는 것보다 중요한게 어디 있을까. 뭐가 뭔지 모르겠고, 물어보기 귀찮고, 괜히 말 안 통하면 답답할까 어색하고, 이런 게 싫어서 여행 가서 맥도날드만 먹다 오면 그것보다 큰 불행이 없을 듯 하다. 더구나 스페인처럼 맛난 것이 많은 나라에서.

 

 

 

하다못해 패스트푸드를 먹더라도, 스페인 곳곳에 있는 이런 '빤스' 같은 체인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야간 촬영이라 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노란 바탕에서 저 검은색 로고를 여기저기서 만나게 된다.

 

 

가격은 맥도날드와 비슷한 수준. 바게트 샌드위치 세트가 5~6유로 선이다.

 

샐러드도 박스로 팔아 좋았다. 맛도 굿.

 

 

어쨌든 이렇게 해서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됐다.

 

스페인 여행의 첫 방문지라서, 그리고 오랫동안 멀리서 동경했던 도시라 아쉬움도 크지만, 아직 남은 여정이 긴 터라 가벼운 걸음으로 떠나게 됐다. 가우디, 피카소, 그리고 달리. 20세기를 장식한 천재들의 흔적을 발견한 것 만으로도 포만감 느끼는 여행이었다.

 

 

 

 

여행이란 이렇게 거리에서 바 안을 들여다 보고 찍는 사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안은 멋지고 편안하고 즐거워 보이지만 또 그들에겐 그들의 인생과 고민이 있을게다.

 

나흘이 후딱 지나간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 언젠가 다시 찾을 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좀 더 푹 젖어 보고 싶은 매력적인 도시에 이렇게 안녕을 고하게 됐다.

 

 

 

다음은 그라나다로 가는 침대 열차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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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날은 휴식과 쇼핑을 겸한 날이었으므로 포스팅 거리가 그리 많지 않다. 사실 비싼 입장료 때문에 카사 바트요와 카사 밀라 중에서도 하나만 골라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사 바트요를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정도라면 카사 밀라도 뭔가 관광객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외관 사진도 잘 안 받는 카사 바트요에 비해 카사 밀라는 이렇게 사진발도 잘 받는다.

 

물론 입장료는 싸지 않다. 1인당 16.15유로.  

 

 

 

가까이서 보면 질감이 꽤 거칠어서 카사 바트요에 비해 생활 건축의 느낌이 강하다.

 

물론 보기는 좋지만 실제로 살기에 그리 편할 것 같지는 않은 느낌.^^

 

 

본래 입구는 이랬다. 투명한 유리를 통해 로비가 보인다.

 

 

1층으로 들어가면 카사 밀라 전체를 볼 수 있는 모형이 있다. 천장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은 뭘까.

 

 

건물 안에 들어가면 이렇게 실제로 뻥 뚫린 중정(中庭)이 있다. 스페인 전통 건축의 특징을 살린 셈이다.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이런 느낌이다.

 

 

 물론 카사밀라에서 가장 유명한 공간은 옥상이다. 이번엔 엘리베이터로 올라간다.

 

 

올라가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이 기괴한 모습의 두상.

 

 

 

 

 

 

이 투구 같은 머리가 바로 카사 밀라의 상징. 

 

멀리 악바르 타워가 보이기도.

 

 

 

이 투구머리가 스타 워즈에 나오는 스톰 트루퍼의 얼굴을 디자인하는 데 영감을 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분명히 닮긴 닮았다.

 

 

정말 조지 루카스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갔을까? 물론 진실은 은하계 저 너머에...

 

 

멀리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모습도 보이고...

 

 

뭐 다시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기이한 녀석들은 대부분 통풍구 역할을 하고 있다.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도 매우 그럴싸하다.

 

한국에 이런 게 있었다면 아마 주변 고층건물 사이에 폭 파묻혀 버리지 않았을까.

 

 

다양한 머리 가운데 이 머리들만 깨진 녹색병 조각을 사용한 트렌카디스 기법으로 장식되어 있다.

 

 

카사 밀라의 특징은 천장 바로 아래층에 마련된 전시 공간이다. 가우디 건축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카사 밀라의 모형.

 

 

 

카사 밀라의 기초.

 

 

그리고 이것이 가우디의 미완성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콜로니아 구엘 성당의 건축 때 등장했다는 철사 모형이다. 보다시피 쇠사슬에 매듭을 지어 위에서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다. 의뢰인인 구엘 가문에서 새 건물의 디자인을 요구하자 가우디는 이 사슬 모양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당연히 의뢰인 측은 이해하지 못했다.

 

의뢰인: 대체 이게 뭔가요? 어떻게 이렇게 생긴 건물을 짓겠다는 거죠?

가우디: 누가 이대로 짓는대?

의뢰인: 그럼요?

가우디: 답답하긴, 거울 좀 갖고 와 봐.

 

 

 

이렇게. 이걸 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딱 쳤다고 한다. 역시 가우디!

 

 

 

 

저 모습을 구현하겠다고 한 스케치가 이렇다. 하지만 이 스케치는 현실이 되지 못했다.

 

 

현재의 콜로니아 구엘 성당은 이 아랫단 부분만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다 지어졌더라면 또 하나의 명물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무튼 이 전시공간은 가우디의 세계를 이해하게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스-로마 시대 열주형 건물의 기둥을 가우디가 어떻게 변형했는지 보여주는 모형들.

 

 

건축의 안정성을 위해, 그리고 보다 훌륭한 채광을 위해 가우디가 위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넓어지게 설계한 카사 밀라.

 

 

그리고 가우디가 자신의 건축물에 응용한 자연물들의 모습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눈길이 가는 건 역시 옥수수.^^

 

 

그리고 한 층을 더 내려가면 카사 밀라 완공 당시의 바르셀로나 생활을 보여줄 수 있는 유적(?)이 남겨져 있다.

 

카사 밀라는 본래 바르셀로나의 신흥 부르주아들을 위한 아파트로 설계됐다.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해 바르셀로나에도 신흥 유산계급이 형성됐고, 이들은 중정이 있는 저택보다 가장 모던하게 설계된 주거공간을 요구했다. (물론 지난번에도 얘기했지만 카사 밀라 분양계획은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한다.^^)

 

 

 

암모나이트 문양이 새겨진 육각 타일로 마감된 바닥. 그 정성이 참 대단하게 여겨진다.

 

 

 

여기까지는 모형.

 

 

 

이렇게 보면 분양에 실패한 이유도 짐작이 간다.

 

천장이며 벽이 모두 곡선이다. 이런 집에선 기존의 장롱이며 의자 등을 놓고 사는게 영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20세기 초. 지금의 아파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스를 가정용 연료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가 있었고, 실내 싱크대도 있다.

 

 

 

꽤 스타일있어 보이는 난방/조리용을 겸한 스토브.

 

 

 

비데까지 있는 널찍한 욕실.

 

어찌 보면 '현대 생활'에서 갖춰야 할 것들은 대부분 20세기 초, 아르누보의 시대에 모두 마련된 것 같다.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소재가 좀 달라졌을 뿐 온수용 가스 보일러를 포함해 현대 가정에서 필요한 편의 도구는 이 시기의 사람들도 이미 누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인 듯 하다.

 

 

 

 

물론 카사 밀라 측은 '카사밀라는 가구를 사서 들어올 필요가 없는, 모든 가구와 생활용 시설이 붙박이로 부착된 신개념 주거공간'이라고 열심히 홍보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도 좀 흉물스럽고... 사람이 막상 들어가 살기엔 많이 불편할 것 같다'는 이유로 들어와 살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지금은 은행 소유가 됐다고.

 

지금이라면 더더욱 살고 싶지 않을. 하지만 분명 멋진.^^

 

 

 

이렇게 해서 사실상 바르셀로나에서의 여정은 끝났다. 이제 저녁식사와 함께 그라나다행 침대차 탑승이 기다리고 있다.

 

(...연내 바르셀로나 탈출이 목표였는데 아슬아슬하게 맞춰가고 있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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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xapela] 스페인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빠에야 많이 먹고 와"라고 한다. 빠에야 Paella가 유명한 스페인 음식이긴 하지만, 바르셀로나에 도착해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아무데나 가서 빠에야 먹지 말라'는 거였다.

 

일단 스페인 사람들은 '발렌시아가 아니면 빠에야를 먹지 말라'고 한다는데, 사실 요즘처럼 인구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에 이건 별 설득력 없는 얘기인 것 같다. 그 다음 중요한 얘기는 '주문하고 15분 이내에 나오는 빠에야는 냉동 빠에야'라는 설명이다(이 이야기는 빠에야 먹은 이야기 때 자세히).

 

아무튼 그래서 빠에야는 대단히 후순위에 있었고, 대신 타파스 Tapas 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 그런데 현지에 가 보니 타파스에서 한발 더 나간 핀초 Pincho 라는 것이 있다는 거였다. 핀초? 대체 핀초가 뭐야?

 

 

 

이게 핀초다. Pincho라는 말은 꼬챙이를 뜻한다. 그러니까 핀초의 정의는 '꼬치로 찍어서 한입에 넣을 정도 사이즈의 음식'을 말한다.

 

가끔 보면 '스페인 식 타파스 전문점' 같은 설명을 보게 되는데, 물론 타파스에 더 강점을 가진 식당이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이번 스페인 여행 중 가본 식당 중에 특정 메뉴만 파는 '전문 식당'이 아닌 식당 중엔 '타파스를 팔지 않는 식당'은 사실상 없었다고 봐도 좋다.

 

음식을 주문하려고 하면 웨이터가 "타파 Tapa로 줄까, 플라토 Plato로 줄까?'하고 묻는다. 이건 중국집이나 아구찜 집의 중/대 메뉴와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같은 요리를 0.5인분 이하 사이즈인 작은 타파로 시키든, 1인분이 넘는 큰 플라토로 시키든 그건 손님의 자유다.

 

대신 두 사람이 가서, 여러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맛보고 싶을 때 타파스만큼 좋은 선택은 없다. 플라토로 시키면 기껏해야 1~2개밖에 먹지 못할 음식을 타파스로 시켜서 5~6가지를 맛보고 기분 좋게 배를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스페인 음식 문화를 선진적이라고 칭찬하는 이유다.

 

핀초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갔다. 맛있어 보이는 꼬치 요리를 다양하게 준비하고, 손님들이 골라서 먹게 한다. 그리고 핀초의 상징인 꼬챙이(이쑤시개) 수로 음식 값을 계산한다는 거다. 말하자면 이건 회전초밥의 서빙 방식과 거의 똑같다.

 

그라시아 거리에 나간 김에 핀초를 맛보기로 했다.

 

 

 

이건 물론 핀초 전문점이 아니라 서점이다.

 

바르셀로나에는 아직 명품 거리 한 복판에 서점이 있다. 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직 있다.

 

서울로 치면 청담동, 그것도 대로변에 서점이 있다면 과연 한국인들은 믿으려고 할까.

 

이런 현실은 잠시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먹는 데 정신이 팔려 정문 사진은 빌려왔다.

 

요즘 바르셀로나에서 잘 나가는 핀초 전문점이라고 한다. 이름은 차펠라 Txapela. Passeig de Gràcia, 58, 08007 Barcelona

 

핀초는 본래 바스크 지방의 전통이라고 한다. 어디 보면 Pincho도 Pintxo라고 쓴 곳이 있던데, 지역의 특성을 살린 표기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으로 보고 고르기 위한 메뉴. 물론 식재료 이름이 모두 스페인어로 써 있다는 건 감안해야 한다.

 

아무튼 이쯤 되면 회전초밥에 익숙한 분들은 아, 어떤 시스템이구나 하는게 딱 감이 오실 듯.

 

 

레스토랑 안쪽에서 바깥쪽을 찍으면 이렇다.

 

입구 쪽의 바에서는 진열장에 나와 있는 핀초 가운데 손님이 직접 골라 먹기도 한다.

 

하지만 안쪽은 메뉴를 보고 주르르 주문하면 주방에서 만들어 갔다 주는 시스템.

 

 

 

이런 시스템을 쓰는 이유는 핀초의 변형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알려진 대로라면 핀초는 모두 '식어도 상관 없는 음식' 들이다. 즉 변형된 샌드위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메뉴를 보듯 이미 이 집의 핀초는 차가운 음식과 더운 음식이 혼재되어 있다. 구운 고기나 햄버그 종류도 포함된 거다. 그러니 오르 되브르 Hors d Oeuvres 풍의 핀초만 있던 시대는 지나고, 이제는 '타파스보다 더 미니화 된 소형 음식' 으로서의 핀초가 등장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 덕분에 손님들은 더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맛보면서 식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둘이서 욕심사납게 12개를 시켰다.

 

이렇게 접시에 담겨 나온다.

 

 

 

 

위 메뉴에서 1, 8, 10, 12, 22, 24, 27, 29, 30, 31, 41, 47번을 골랐다. 개당 가격은 1.75~2.45 유로 사이. 평균 2유로 정도다. 

 

1. 미니햄버거,

8. 대구 샐러드

10. 하몽 슬라이스를 뿌린 계란 토스트

12. 새우 베이컨 등을 꿴 꼬치구이

22. 구운 오징어 토스트

24. 세가지 치즈를 넣어 만든 크로켓

27. 튀긴 영계와 소시지

29. 새우 샐러드 토스트

30. 머쉬드 포테이토와 고추 절임

31. 바르셀로나 식 오믈렛

41. 엔초비와 절인 고추, 올리브 꼬치

47. 토마토와 아투라 치즈 토스트

 

친한 사이라면 한입씩 나눠 먹으며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물론 메뉴들을 보면 알겠지만 하늘에서 떨어진 독특한 요리 같은 것은 없다. 대부분 큰 무리 없이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당연히 맛은 좋았다.)

 

물론 지난번에 소개한 라 볼라처럼 한가지 요리를 잘 하는 전문 식당을 찾아가 맛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스페인 특유의 식문화를 즐기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핀초 전문 레스토랑 차펠라. 둘이 먹은 가격은 음료 포함 약 30유로. 점심 치고는 좀 넉넉하게 먹은 편이다.

 

 

 

마지막 날이라 그라시아 거리 부근을 걸었다. 여자 다리를 설치한 극장 간판이 눈길을 끈다.

 

 

뭘 해도 바르셀로나 관광의 중심지인 카탈루냐 광장 한 켠의 대형 삼성 네온사인.

 

한국인 여행자들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삼성 간판이 있는 건물의 바로 오른쪽 1층에 하드 락 카페가 있다.

 

여기서 소개한 거의 모든 것들이 바로 저 건물 뒤편, 라 람블라 거리와 고딕 지구에 있다.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바르셀로나를 떠날 시간.

 

그래도 저녁식사는 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간 동네 식당에서,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인상적인 음식이었던 사르수엘라를 먹어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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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가우디의 작품을 꼽으라면 그건 누가 뭐래도 당연히 라 사그라다 파밀리아다. 그리고 조금 더 꼽아 보라면 카사 바트요 Casa Batillo 카사 밀라 Casa Mila 를 꼽게 된다. 두 건물은 모두 바르셀로나의 청담동인 그라시아 거리에 있다.

 

(두 건물과 주변 거리 환경에 대한 이야기는 http://fivecard.joins.com/1181 이쪽 참조. )

 

첫날 그 주변을 돌아봤고, 넷째날에는 건물 안까지 들어가서 살펴봤다.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카사 바트요는 가우디의 다보탑, 카사 밀라는 가우디의 석가탑이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고르라면 카사 바트요 쪽.

 

 

 

카사 바트요의 모습이 무엇을 본뜬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비 모양, 고양이 모양, 해골 모양 등 여러가지 설이 있다. 

 

 

 

위 사진을 보면 이 건물을 왜 '뼈로 만든 집'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건물 한채가 전부 인체의 뼈대를 압축한 것이란 주장도 있다.

 

 

한편 카사 바트요의 옥상을 보면 용의 비늘과 등뼈가 드러난다. 이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용이라는 설.

 

 

 

뭐 이런 데를 보면 너무나 명백하게 고양이 해골인데, 이게 나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꽤 있다고.

 

 

 

아무튼 카사 바트요는 전체 모습을 찍기가 꽤 까다롭다. 앞의 보도가 좁은데다 건물이 동향이라 오후에는 항상 역광이 된다. 차라리 밤에 가서 야경을 찍는게 좋을 듯. 야경은 이렇게 환상적으로 나온다고 한다.

 

 

 

이건 기본 조명이고, 여기서 더 나가아면 특정한 날마다 다양한 조명으로 이 건물을 화려하게 꾸민다고 한다. 안 봐도 엄청나게 멋질 것 같다. 앞으로 바르셀로나를 방문하시는 분은 밤의 카사 바트요를 놓치지 마시기 바란다. 나는 야경은 못 봤다.

 

대신 적잖은 입장료를 내고 건물 안으로 진입.

 

무려 1인당 20.35유로다. 바르셀로나 시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10%로 할인권을 주긴 하는데 그래 봐야 18.3유로. 몇 층 되지도 않는 건물 치고는 정말 비싼 입장료가 아닐 수 없다.

 

 

 

1층. 바로 들어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의 작은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 개의 도자기 형상이 방문자를 반기는데 그 바로 위에 앙증맞은 채광창이 따로 나 있다. 이게 바로 이 건물에 담긴 철학을 압축한 모습.

 

 

 

2층의 응접공간.

 

 

밖을 내다보면 이런 모습이 된다.

 

 

 

흔히 말하길 '가우디의 건물에는 직선이 없다'고들 하는데, 방 구조를 보면 금세 알 수 있지만 직선이 있긴 있다. 하지만 최대한 직선을 직선같지 않게, 원만한 선으로 감싸게 디자인 된 것만은 분명하다. 그 아름다움이 탄성을 자아낸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채광. 이 건물 2층에서 가장 어두운 공간이다. 하지만 책상에 앉으면 바로 앞의 불투명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빛을 이용해 충분히 책을 읽을 수 있다.

 

무슨 수를 써서든 자연광이 건물 안의 깊숙한 속살에까지 미치게 되어 있는 디자인. 가우디가 괜히 가우디가 아니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복도. 정면에 보이는 작은 유리 문은 엘리베이터 룸이다.

 

 

 

어찌 보면 해골 무늬같은 창이 잇달아 있어 약간 코믹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그 해골의 입 부분에 나 있는 세 줄의 구멍은 환기구 역할을 한다. 아무튼 푸른 색 타일로 장식된 계단 회랑이 마냥 아름답다.

 

 

 

2층 바깥쪽에 있는 작은 테라스.

 

 

 

그리고 그 테라스에서 바라본 카사 바트요의 뒷면. 앞면만큼 아름답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어쨌든 그 중간 층은 입주해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몇층 더 올라가면 천장의 채광창이 바로 보인다. 이 빛 역시 사방으로 나 있는 창을 통해 각 층의 공간으로 전달된다.

 

물론 공기도.

 

 

 

 

 

중간 층의 굳게 닫힌 문들. 이 안으로도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1층과 2층, 그리고 맨 꼭대기층만이 공개된다.

 

 

이것이 꼭대기층의 복도.

 

 

어디서나 나선 계단은 기본이다. 이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꼭대기층의 시뮬레이션 룸에선 카사 바트요에 조명을 비추면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모형으로 보여준다.

 

 

카사 바트요 옥상에서 뒤편을 바라보면 그라시아 거리의 이런 광경이 보인다.

 

 

 

그리고 옥상 앞쪽으로 가면,

 

이런 기둥들이 보인다. 바로 가우디 특유의 트렌카디스(trencadis) 기법이 사용된 전형적인 예다.

 

 

 

동화속 같은 굴뚝 너머로 용의 등뼈가 보인다.

 

 

 

카사 바트요의 상징인 마늘 십자가와 용의 등 껍질.

 

 

정면에서 바로본 길 건너편.

 

 

 

 

 

 

 

 

다시 옥상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뭐 화장실은 그리 특이하지 않다.^^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확실히 스페인이 디자인 강국임을 느끼게 한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했다는 바로 이 의자.

 

그렇다. 사진을 키워 보면 가격이 1400유로. 뭐 한국 돈으론 약 200만원밖에 안 한다.

 

보면 볼수록 예쁜데 그냥 몇개 사 올 걸 그랬다. 가격도 얼마 안 하는데... (스페인 여행 카드 영수증을 받고 슬슬 미쳐가고 있음)

 

 

이건 미니어처. 하지만 가격은 결코 미니어처가 아니었다.^^ 디자인 값.

 

평소보다 조금 짧은 포스팅으로 마친다.

 

카사 바트요를 본 소감은 '어쨌든 죽기 전에 다시 와서 알록달록 야간 조명으로 물든 카사 바트요를 다시 보고 싶다'다.

 

 

 

다음 순서는 기대하시라 카사 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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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게레스를 다녀와 찾은 곳은 누가 뭐래도 바르셀로나의 여러 식당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닐까 싶다. 이미 이곳들 들러 본 사람들의 평을 여러 블로그에서 봤고, 또 민박집 주인장으로부터도 강력한 추천을 받은 곳이다. 바로 엘 레이 델 라 감바 El Ray De La Gamba. '새우의 왕'이라는 뜻이다.

 

그리 럭셔리하거나 분위기가 엄청나게 로맨틱한 곳은 아니다. 그런 곳들은 따로 있다.

 

다만 적당한 분위기와 합리적인 가격, 그리고 맛으로 평가할 때 이 집이 준 감동은 매우 컸다.

 

 

 

 

바르셀로네타는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불쏙 솟아 있는 작은 반도다. 바르셀로나 항구를 위한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햔다. 아무튼 해변이 넓게 발달되어 있고, 제법 정취가 있다.

 

 

 

바르셀로나는 기본적으로 남동 방향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항구다. 그리고 바르셀로네타가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네타 아래쪽, 그러니까 해변을 따라 남서 방향으로 항만이 개발되어 있다.

 

반대로 바르셀로네타의 바깥쪽(위 지도에서 파선이 그어져 있는 부분)부터 북동쪽으로는 대양을 맞는 모래톱이 죽 이어져 있다. 바로 파도가 적은 지중해를 향한 환상의 천연 해수욕장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셈이다.

 

지도에서 A가 바르셀로네타 역, B가 목적지인 엘 레이 델 라 감바 다. A에서 B까지는 도보로 약 10분 거리. 가장 좋은 코스라면 고딕 지구를 거닐다가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에서 바르셀로네타 역까지 걸어서 약 5,6분, 그리고 바르셀로네타 역에서 직선 길을 따라 내려와 약 10분이면 닿는다. B는 주소상으론 Pg. Joan de Borbo' 53.

 

가다 보면 수많은 비슷비슷한 해변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다. 가다 보면 엘 레 델 라 감바 2호점이 먼저 나오고, 거기서 한 20미터만 더 가면 1호점이 등장한다. 사실 20미터 거리의 1호점과 2호점이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은데 어쨌든 1호점이 먼저 차고, 그 다음에 2호점이 찬다고 한다.

 

 

 

이렇게 생겼다.

 

 

본래는 건물 안이 레스토랑이겠지만 이렇게 노천으로 나와 있는 테이블이 당연히 훨씬 선호된다. 10월이라 밖에 앉아 있으니 꽤 선선한 날씨. 물론 반팔부터 점퍼까지 다양한 차림새가 공존한다.

 

지시대로 해물 모듬 절반 Parillada Medio Plato 을 주문했다. 본래 Parillada Plato 가 2인분 기준으로 40유로인데 '그걸 시키면 후회할 것'이란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Jamon y Melon을 먼저 주문했다. 이탈리아 요리에 흔히 나오는 프로슈토+멜론과 맛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했다.

 

 

 

결론은 똑같다. 프로슈토와 하몽은 본질적으로 국적 외에는 별 차이가 없는 식품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재료가 같고(돼지 뒷다리), 불기운 없이 소금에 절여 말린다는 공정이 같으니 맛이 그닥 다를 이유가 없다.

 

멜론은 스페인 멜론이 더 달다는 느낌.^^ 아무튼 맛있다.

 

 

 

그리고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는 팡 콘 토마테 Pan con Toamate.

 

항상 스페인 사람들의 '국민식'을 이야기할 때 '빵을 바삭바삭하게 구워서 거기다 간 토마토와 다진 마늘을 쓱쓱, 그리고 올리브 기름으로 마무리...'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그게 바로 팡 콘 토마테다.

 

구수하고 좋다. 그 자체로 맛이 좋은데, 아마 먹고 자란 사람이라면 꽤 생각날 음식인 수 있겠다.

 

 

 

나왔다. 절반 사이즈로 보기엔 꽤 거대하다.

 

구성은 꼭대기의 닭새우 1마리. 갑오징어 Sepia 1마리, 그리고 대구와 메로 종류로 보이는 생선살이 각각 한 피스(통으로 썬 단편 하나 정도), 대하가 약 20마리, 나머지는 접시 가득 홍합이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새우의 맛이다. 찐 새우 위에 뭔가 올리브 오일을 베이스로 한 양념이 되어 있는데, 그 양념 맛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약간 짭짤하면서도 감칠맛이 도는 뭔가를 가미하니 새우에서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느낌.

 

새우 한 마리를 까서 입에 넣으면 바로 다음 마리에 손이 가 있어야 할 정도로 입에 침이 고인다. 저 새우에 뿌린 소스 맛의 비밀만 알아낸다면, 서울에서 당장 '바르셀로나식 해물찜' 가게를 차리고 싶다. 아무튼 처음 먹어보는 진하고 고소한 맛이다.

 

양도 적지 않아 먹다가 홍합을 좀 남겼다. 그런데 옆자리의 백인 아저씨는 체구도 별로 크지 않은데 똑같은 Medo를 시켜서 혼자 다 뜯어먹고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의 식사량이 만만찮은 듯.

 

 

 

식당 안쪽. 1층은 거의 다 주방으로 쓰는 듯 하고, 지하에 화장실과 테이블들이 있다. 뭐 굳이 해변까지 와서 지하에 앉을 일은 없을 듯 하다. 스페인 어디나 매달려 있는 저 하몽들.

 

아, 물론 1층 야외 테이블이라고 해서 바다가 보이는 전망은 아니다.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길 건너편도 육지다. 갈매기가 좀 날아다니는 정도?

 

 

물론 해물 전문 식당이니 하몽만 걸려 있지는 않다. 식재료로 쓰이는 바닷가재들이 어항을 헤엄치는 모습.

 

 

 

식사 후 천천히 바르셀로네타 해변 쪽으로 걸어내려왔다.

 

그리고 마주친 건 호수처럼 잔잔한 지중해 위의 달. 어쩐지 이 세상의 것 같지 않게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파도는 거의 없다 해도 좋을 정도로 잔잔하게 밀려오고, 그 위로 구름 낀 하늘, 그리고 구름 속의 달.

 

철 지나 텅 빈 바닷가에 이렇게 달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광경.

 

자연상태가 아닌, 촬영용 세트 안에 들어간 느낌이다.

 

 

 

물론 여름엔 세계 각국에서 온 피서객들이 즐비했을 해변. 10월엔 쓸쓸하기만 하다.

 

고성방가 금지, 해변 수면 금지 사인만이 한때의 영화를 대변해 줄 뿐.

 

 

가다 보니 희한한 기념물이 등장했다. 정말 달리의 그림 배경에나 나올법한 초자연적인 구도다.

 

 

 

그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렇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이렇게 바다 가까이 나 있는 카페들도 많이 있다.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달을 감상하기에 매우 적절해 보인다.

 

 

 

 

 

 

 

분위기로 따지자면 이런 곳들이 우리가 식사한 엘 레이 델 라 감바보다 훨씬 고급스럽고 로맨틱해 보인다.

 

특히 맨 아래 간판의 살라망카라는 가게 뒤켠이 눈에 들어왔다(그 바로 위 사진). 사진상으론 잘 보이지 않지만, 화톳불까지 군데군데 피워 놓은 것이 아주 제대로라는 느낌이다.^^

 

혹시 신혼여행 같은 걸로 가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가게들을 가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다.

 

 

 

 

늦은 시간이라 택시로 숙소행.

 

엘 레이 델 라 감바는 저 해산물 모듬 절반을 먹는다는 전제하에 2인 기준 약 35~40유로 정도로 음료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식후의 바르셀로네타 해변 산책과 함께 추천하고 싶다. 물론 한여름이라도 점심 보다는 저녁에 찾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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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미술관의 미로같은 내부를 헤매다 보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방에 도달한다.

 

유명한 '메이 웨스트의 방 Mae West Room'. 메이 웨스트(1893~1980)는 흑백영화시대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 1920~30년대의 섹스 심벌이다. 실제 발음은 분명 '메이' 인데, 많은 한국인들이 Mae라는 철자 때문에 이 배우를 '매 웨스트'라고 부른다. 뭐 일본에선 '마에 웨스트'라고 부를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보면 의도가 보이긴 하지만 그냥 방이다. 도시 풍경을 찍은 흑백 사진 작품이 벽에 걸려 있고, 약간 코믹하게 생긴 벽난로가 있다. 마지막으로 입술 모양의 소파가 놓였다.

 

 

 

사람들이 긴 줄을 서서 그 방을 입술 각도에서 바라본다. 물론 전체를 조망하는 큰 돋보기 앞에는 거대한 금발 모양의 가발이 걸려 있다. 사실 줄이 너무 길어서 직접 돋보기를 통해 들여다 보는 건 포기하고, 달리가 의도한 형상을 찍어 왔다. 그러니까 위 광경이 이렇게 보이도록 하는게 달리의 의도였다. 

 

 

 

 

메이 웨스트의 실제 모습. 아마도 이 사진을 모델로 한 듯 한데, 달리의 시도에 대해 웨스트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

 

 

 

달리 극장미술관의 한 전시관은 이 미술관의 공동 설계자이며 달리 사후 관장을 지낸 화가 안토니 피초트(피쇼트라고 읽을 수도) Antoni Pitxot에게 헌정되어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모든 세상을 저 색색깔의 조약돌로 환원시켰다는 데 있다. 해설에 따르면 그는 일단 조약돌로 자기가 원하는 형상을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다시 그걸 유화로 그리기를 즐겼다고.

 

...달리와 어울렸다니 뭐 일단 그것부터 정상인은 아니다.

 

 

가장 유명한 이 그림의 제목은 '기억의 우화 Allegory of the memory'. 이 그림의 변형만도 수십종이다. 아마도 기본 형태는 루벤스의 '삼미신(三美神) Three Graces'을 돌멩이로 재구성한 듯한 느낌이다.

 

 

 

이 유명한 그림 말이다. 물론 루벤스 시대의 취향에 따라 좀 굵으시긴 하다. 이 그림의 원본은 며칠 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영접하게 된다. 아무튼 화면에 있는 세 여성 형상의 구도로 보아 이 그림을 변형시킨 것으로 느껴진다.

 

 

혹은 오른쪽에 남자로 보이는 형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루벤스의 또 다른 그림, '파리스의 선택 Judgement of Paris'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의 세 여신이 셋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인가를 놓고 파리스에게 판정을 요구한 그리스 신화의 유명한 광경이다. 여기서 파리스가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고, 그 댓가로 헬레네를 요구하면서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유럽의 유명 미술관에 가서 시간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두 권의 책은 꼭 읽어야 한다. 바로 그리스 신화와 성경이다. 인상파 이전의 수많은 거장들이 그린 그림 중 80% 정도는 성경과 그리스 신화의 드라마틱한 장면들이다. 어느 정도나 보면 되냐고? 위 그림을 보고 투구와 방패가 있는 여자(아테네), 날개달린 꼬마 에로스를 거느린 여자(아프로디테), 공작을 거느린 여자(헤라), 유명한 지팡이 카듀케우스 Caduceus 를 들고 날개 달린 샌들을 신은 남자(헤르메스), 그리고 목동 형상을 하고 누구에게 사과를 줄까 고민하고 있는 남자(파리스)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면 웬만한 그림은 즐기면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이 정도면 다 된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다만 이런 걸 알 수 있는 눈과 그렇지 않은 눈으로 루브르나 프라도, 우피치, 내셔널 갤러리 같은 유럽 굴지의 미술관을 갔을 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크기는 감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얘기다. 어찌 보면 '최소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심지어 초현실주의의 거장, 달리의 극장 미술관에서도 고전에 대한 이해는 분명히 필요하다. 여담 끝.

 

 

 

이 달리 미술관은 엄청나게 규모가 큰 미술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구석 하나 빈 곳이 없다. 어디 한 군데라도 눈이 스칠 곳이 있으면, 그곳이 작품으로 꾸며져 있다. 그리고 구경할 수 있는 동선 역시 공간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짜여졌다.

 

 

 

제목도 알 수 없는 소품 하나. 반쯤 비치는 조명을 통해 '에일리언'에 나올 법한 형상이 슬쩍 드러나 보인다. 그냥 드러나 있다면 별 특이한 점이 없었겠지만, 이렇게 장막을 통해 보여주면서 호기심과 공포감을 극대화시킨다.

 

 

 

공들인 대작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소품들도 즐비하다. 뭘 그렸는지 가장 궁금했던 그림. 메두사일까, 밥 말리일까.^^

 

 

 

그리고 매우 드문 생활형 그림. 갈라를 그리고 있는 달리 자신의 자화상(?)

 

전시실을 돌다 보면 바람의 궁전 Palace of Wind 이라는 매우 인상적인 방에 들어가게 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연상시키는 웅대한 규모의 천정화가 일단 방문자를 압도한다.

 

 

 

도록 버전으로 빌려오면 이렇다. 물론 구상은 웅대하지만 내용은 코믹하다. 양쪽의 거상은 당연히 달리와 갈라(오른쪽 파란 바지 입은 사람의 콧수염을 주목하라^^). 양쪽 가장자리와 사방에는 숲속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바라보는 갈라와 달리, 그리고 피게레스에 내리는 금화의 비 등 얼핏 봤을 때 중세 종교화를 연상시키는 그림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난스러운 내용이 그려져 있다.

 

 

 

 

이 바람의 궁전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조각. 위쪽은 메두사의 머리를 높이 든 페르세우스, 그리고 아래 쪽은 십자가 없는 예수다.

 

 

그리고 그 조각 아래의 받침대는 니케 여신상을 거울로 반사해 양쪽 날개를 모두 갖게 한 형상이 뒤집힌 모습이다.

 

...이미지의 폭격은 끝없이 이어진다.

 

 

 

 

바람의 궁전 한켠에 설치된 스튜디오. 유명한 '기억의 집착'이 태피스트리 버전으로 걸려 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서재처럼 꾸며진 스튜디오. 가구에서는 가우디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갑자기 다른 화가의 그림이 보인다. 부게로 Bouguereau 의 그림이나,

 

 

 

달리에게 누구보다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거론되는 엘 그레코 El Greco의 작품.

 

 

 

바람의 궁전 한켠의 작품. 방 하나가 궁극의 여성성을 설명하는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위에 소개한 부게로의 그림과 미국 조각가 존 디 안드레아 John De Andrea의 이 작품. 존 디 안드레아는 실제 사람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하이퍼리얼한 누드 상(이라고 쓰고 마네킹이라고 읽어도 좋을 듯. 주 사용 제료가 '폴리에스터'다)을 즐겨 작품으로 내놓고 있다. 

 

 

 

미켈란젤로의 모세 위에 문어 한마리가 버티고 있는 이 작품의 제목은 모세와 일신교 Moses and Monotheism. 이런 작품이 꽤 많은데, 이걸 어디까지 달리의 작품이라고 해야 할지도 조금 의문이긴 하다. 

 

아무튼 박물관 구경도 막바지를 넘어섰는데,

 

 

이번 방문에서 또 하나 큰 충격을 받은 작품이라면 바로 이 작품. '사이버 공주 Cybernetic Princess'. 물론 이 작품에도 해설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냥 제목만 간신히 알 수 있을 정도다.

 

사연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작품은 그냥 갑옷을 입은 로보트처럼 보인다. 발바닥이며 온 몸에 회로도나 기판 같이 생긴 것이 새겨져 있어 제목과 뭔가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의 제목이 '사이버 공주'일까.

 

중국이 자랑하는 한나라 때 유물 중에 금루옥의(金縷玉衣)라는 것이 있다.

 

 

 

바로 이것. 모르는 사람은 이게 달리의 작품인 줄 알 정도로 외양은 똑같다.

(물론 잘 보면 남성용과 여성용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달리의 작품은 당연히 여성용. 이 사진은 남성용.^^)

 

2000여장의 작은 옥판을 금실로 이어 붙여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옷을 만든 것이다. 당연히 산 사람이 입을 수는 없고, 죽은 뒤에 입는 수의다. 중국 한(漢)대에는 옥의 찬 기운과 금의 녹슬지 않는 기운이 사람의 시신을 썩지 않게 보관해 준다고 믿었고, 이런 수의를 입으면 언젠가 다시 살아나 영생불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이 금루옥의의 주인은 한나라 경제(景帝)의 아들인 중산정왕 유승(中山靖王 劉勝)과 그의 아내인 두관(竇琯)이다. 경제는 열 세명의 아들을 왕으로 봉했는데 유승은 그중 중산국의 왕이 되었고, 정(靖)이란 시호를 받아 중산정왕이라 불린다. 1968년에서야 중국 하북성 능산(凌山)에서 발굴된 뒤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개인적으로 이 금루옥의를 처음 본 것은 국내에 개봉됐던 허관걸 주연 영화 '미스터 부'를 통해서였다(확인해 보니 이 영화는 미스터 부 시리즈 4편, '마등보표'였다^^). 물론 그 옷이 세계적인 보물이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나중의 일이지만.

 

 

 

 

(여담이지만 '중산정왕 유승'이라면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분들이 꽤 있을 거다. 그렇다. 유비가 자신의 조상으로 꼽는 한나라의 황족이다. 유승은 무려 42년간이나 중산국의 왕으로 있으면서 부귀와 향락이 하늘에 달해 딸 아들 합해 120명을 두었다는, 한나라 때 '좋은 팔자'의 대명사처럼 불렸던 사람이다. 중산국은 유비가 살던 탁군 바로 옆이고, 그 수많은 아들들이 다 자손을 뿌렸을테니 후손 가운데 짚신 장수 하나 쯤 있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게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뭐 그건 그렇고.)

 

아무튼 저 금루옥의를 이역 만리 스페인 피게레스에서, 그것도 달리의 작품 속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새삼 감개가 무량.

 

 

 

 

 

 

 

2층의 휴게공간에서 눈길을 쓰는 사이프러스 소나무. 달리 미술관답게 나무 하나도 예사롭지 않다. 초자연적으로 보인다.

 

 

 

 

 

 

아쉬운 마음으로 미술관을 나섰다.

 

피게레스에서 1박 이상 할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당일 여행을 온 사람들은 시간 관리에도 신경을 좀 써야 한다.

 

소요시간은 AVE라서 얼마 안 걸리지만, 배차가 2시간에 한대 꼴이다. 미리 차 시간을 확인하지 않으면 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이 생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 시내에서 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냥 되지는 않는다. 일단 관광안내소를 찾아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가까운데 뭐 택시 타고 들어가면 되지'라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하다. 워낙 좁은 촌동네라 다운타운(스페인 도시들의 다운타운은 Gran Via라고 누차 얘기했다)으로 가지 않으면 택시 구경을 할 수가 없다. 달리 미술관을 관람하고, 피게레스 시내 구경을 마쳤다면 첫째 그란비아를 찾아 택시를 타거나, 둘째 버스 정류장 위치와 배차시간을 정확하게 확인하는게 상책이다. 버스도 2013년 10월 기준 배차 간격이 약 30분 정도이므로, 여차하면 기차를 놓칠 수도 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다시 바르셀로나로. 저녁에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에서 해산물을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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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간다면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이 바로 인근의 도시 피게레스 Figueres 였다. 이유는 단 한가지.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의 고향이며 달리가 직접 구상한 달리 극장 미술관 Theatro-Museo Dali 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달리에 대한 외경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아마도 달리라는 화가를 가장 먼저 기억하게 된 그림은 누구나 다 아는 '기억의 집착'이었지만  그 그림은 전혀 관심을 끌지 못했다. 피카소 이후의 화가들은 전부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중학생 시절의 어느날, 친척집에 있는 꽤 큰 화집에서 놀라운 그림 하나를 보게 됐다. 바로 이 그림이었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의 성사(聖事)'라는 1955년작. 두 페이지를 펼쳐 소개된 이 그림을 보고 단번에 빠져들었다. 당시의 소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 현대 화가 중에도 이렇게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웅대한 구도와 구상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소견으로는 인류 역사에 남을 걸작이라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보다 이 그림이 훨씬 더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다. 그리고 이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대학 진학 후에는 프랑스 광고계의 거물 자크 세겔라 Jacques Séguéla 가 쓴 '광고에 미친 사나이' 라는 책에서 우연히 달리와의 일화를 접하게 됐다. 세겔라가 고급 빌라의 광고를 맡으면서, 빌라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위해 달리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난 뒤 벌어진 에피소드였다. 상당히 긴 내용이라 여기 소개하기는 그렇지만, 아무튼 달리라는 사람이 작품 만큼이나 기괴한 사람(을 넘어 사실상 정신병자)이라고 느끼기엔 충분했다.

 

가장 최근 접했던 달리와 관련된 문건은 스탠 로리센스의 책 '달리와 나' 였다. 지금도 이 책의 황당무계한 내용이 어느 정도 소설이고 어느 정도 실제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접한 달리의 일화, 그리고 지금도 시장에 달리의 그림이 비정상적으로 많다는 것, 마지막으로 비슷한 시기에 읽은 리처드 폴스키의 책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에 나오는 현대 미술 시장과 컬렉터들의 행동 양식에 비쳐 볼 때 상당 부분은 사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달리와 나'를 읽은 뒤 피게레스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역시, 또다시 그 꿈이 이뤄지는 날이 왔다. 

 

 

 

바르셀로나(지도 아래 A)에서 피게레스(지도 위쪽 B)로 가는 길은 북동쪽, 그러니까 프랑스와의 국경으로 가는 길이다. 피게레스에서 조금만 더 가면 프랑스 땅이다. 피게레스에서 동쪽으로 죽 간 해변의 #표시가 있는 곳이 카다케스 Cadaques. 발리가 들르곤 했다는 바닷가 어촌 마을인데 달리 마니아들 뿐만 아니라 호젓한 지중해 어촌의 정취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들었다.

 

내친 김에 바르셀로나 교외에서 사람들이 많는이 찾는 곳이 몬세라트 Montserrat 와 기로나 Girona 다. 일단 기로나는 위 지도에서 피게레스로 가는 길 중간에 '헤로나'라고 표시된 곳이다. 거의 모든 관광 책자와 자료에 '히로나'라고 되어 있는데, 기차 안에서 안내 방송을 할 때에는 분명히 '기로나'라고 했다. 현지인들도 '기로나'라고 한다.

 

아무튼 바르셀로나를 가게 되면 암벽과 수도원이 유명한 몬세라트(위 지도에서 바르셀로나 북서쪽, C-16 사인 옆의 빨간 동그라미 표시), 중세 성곽 도시의 원형이 잘 보존됐다는 기로나, 그리고 달리 미술관이 있는 피게레스 중 하나 정도는 가 보게 된다. 어디를 선택하느냐는 시간의 문제.

 

가까운 거리와 경관을 좋아한다면 몬세라트, 중세 도시의 정취가 그리우면 기로나라고들 한다(둘 다 안 가봤으므로 길게 할 말은 없다). 그리고 미술에 별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피게레스를 선택한다면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피게레스는 약 140Km 거리. 예전에는 바르셀로나의 중앙역인 산츠 역 Sants Estacio 에서 피게레스까지 두 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달리면 도착할 수 있었다는데 지금은 고속전철 AVE가 개통됐다. 단 문제는 AVE로 닿는 역은 시 외곽에 새로 지은 피게레스-빌레판트 Figueres-Vilafant(우리나라로 치자면 대략 천안아산역 같은 경우) 역이라는 점이다.

 

작은 시내 복판에 있던 구 피게레스 역과는 달리 이 역은 지도상으로 2Km 정도 외곽에 있다. 그깟 2Km라고 코웃음 치실 분도 있겠지만, 막상 걷자면 텅 빈 언덕과 벌판을 거쳐 30분 정도는 잡아야 할 거리였다. 차량 이동을 권한다.

 

버스를 이용하면 대략 피게레스 관광안내소 근처에서 내리게 된다. 불행히도 시내 표지판은 엉망이라 중간에 길을 묻지 않을 수 없는데, 별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너무나 좁은 동네라 어떻게 하든 달리 미술관에 닿게 되어 있다. (그리고 길 묻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단 노인에겐 절대 물으면 안 된다.^^)

 

이내 달리 미술관의 위용이 모습을 드러낸다. 빨간 건물 위의 금색 조상과 달걀의 기괴한 조화가 눈길을 끈다.

 

...근데 왠지 멋져.

 

 

여기서 또 한번, 피게레스의 성당 종탑이 보이는 골목으로 꺾어진다.

 

 

그리고 나서 전혀 이런 게 있을 것 같지 않은 골목 안. 입구가 나타난다.

 

 

정면의 달걀머리 마네킹 같은 형상은 카탈루냐의 철학자 프란세스코 푸욜 Francesc Fujol 에게 헌정된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도 멋져.

 

 

구형 잠수복과 황금으로 된 바게트 빵을 든 자와 Jawa(스타워즈 IV의 사막 부족) 같은 형상이 나란히 선 기괴함.

 

...역시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멋지다고.

 

표를 사서 입장하고 나면 작은 뜰이 나타나고, 정면의 기이한 형상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원형의 작은 정원이 있고, 한복판에는 캐딜락 한 대. 그리고 캐딜락 위에는 고대 원시인들의 비너스 여신상을 연상시키는 여자 조각상이, 그 뒤에는 타이어로 만든 탑이 우뚝 서 있다.

 

이것이 표를 끊고 중정으로 들어선 관람객의 눈에 가장 먼저 띄는 광경이다.

 

 

 

탑 위에는 뜬금없이 배 한 척. 그리고 배의 마스트 끝에는 검은 색 우산이 매달렸다.

 

이 정원을 둥근 벽이 둘러싸고 있고, 벽에 난 창에서 금색 마네킹들이 환영하듯 손을 흔든다.

 

 

 

여성상의 이름은 '에스더 여왕 Queen Esther'.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른스트 푹스 Ernst Fuchs 의 작품이다.

 

에스더 여왕은 구약성서에서 페르시아 왕에게 시집간 유태인 처녀로서, 이스라엘 지역을 점령한 페르시아 중신들에 의해 유태인이 몰살당할 위기에 놓이자 목숨을 걸고 남편인 왕에게 간청해 동족들의 생명을 구한 인물이다.

 

 

 

물론 그 에스더와 이 조각상이 대체 무슨 관련인지는 알 길이 없다. 오히려 구석기 유물인 빌렌도르프의 관능미 넘치는 비너스 Venus of Willendorf, 혹은 아스타르트나 이슈타르 여신상이 떠오를 뿐이다.

 

 

 

 

뭐 이런거 말이지.... 아무튼 뭔가 멋지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이 에스더 여왕상은 쇠사슬을 통해 뒤의 타이어 탑과 연결되어 있다. 타이어 탑은 달리 스스로 로마에 있는 트라야누스의 기둥을 복제한 것이라고 한다. 하필 왜 트라야누스의 기둥일까. 이유는 트라야누스가 스페인에서 태어난 로마 황제이기 때문이라고.

 

육로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스페인은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를 거쳐야 갈 수 있는 땅이다. 게다가 알프스와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한다. 하지만 고울 지방(지금의 프랑스)보다 히스파니올라(당연히 스페인) 훨씬 더 먼저 로마의 영토로 편입됐다. 로마인은 기본적으로 바다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중해 연안을 죽 훑어내려가며 북아프리카에서 그리스, 소아시아를 죄다 장악하고 지중해를 자신들의 수족관으로 만든 뒤에야 비로소 북으로 알프스를 넘어 중부 유럽으로 진출했다.

 

이러니 뱃길로 지중해를 건너 바로 도착할 수 있는 바르셀로나는 로마 시대부터 중요한 거점 도시였다. 게다가 이베리아 반도의 끝에는 '길만 건너면 아프리카'인 지브롤터가 있다. 지중해 장악을 위해선 필수적으로 보유해야 할 곳이다.

 

...또 삼천포로 빠졌다. 아무튼 그래서 '트라야누스의 기둥'의 타이어 버전이 여기 있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그 뒤, 아치 모양의 거대한 격자창 너머로는 달리가 메트로폴리탄 발레 '라비린스'에 사용했던 거대한 무대 배경막이 걸려 있다. 이 배경막을 통해 왜 이 이상야릇한 전시장을 '극장 미술관 Theatre-Museo' 라고 이름붙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왕상(왠지 자꾸 여신상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의 뒤쪽에서 보면 그 벽을 장식하고 있는 기괴한 조각상들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한마디로 보통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구도는 아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고 흐르는 음악은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신화적인 느낌이 신비로운 맛을 더한다.

 

 

 

 

정원을 지나 들어간 박물관 메인 건물 1층. 건물 밖에서 보던 바로 그 돔(cupola)이 있는 부분이다.

 

정원에서부터 1층까지, 쉴새없이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이 상상 이상이고, 의미를 부여하자면 끝이 없다. 쏟아지는 이미지의 폭격이라고나 할까. 거대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이 그야말로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든다. '어때, 이래도 인정 안 할래?'하는 달리의 오만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느낌이다.

 

 

 

쿠폴라 아래로 들어와 정원을 바라보고 좌우 벽에는 거대한 그림이 각각 걸려 있다. 그중 오른쪽 그림은 개인적으로 대단히 좋아하는 그림이다. 바로 '환각을 일으키는 투우사 The Hallucinogenic Toreador'. 어디선가는 '투우사의 환상'이라는 제목으로도 소개된 그림이다.

 

그런데 원본은 아니라고 한다. 원본은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 피터스버그(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가 아니다^^)에 있는 달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 옆으로는 2층에 유명한 '링컨의 얼굴' 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 작품의 제목은 '18미터 밖에서 보면 링컨의 얼굴인, 해변을 바라보는 갈라의 누드 Gala nude looking at the sea, which, at 18 meters appears as President Lincoln'다.

 

정말 가까이서 보면 이렇게 보인다.

 

 

그렇다. 그는 18미터 밖에서 보면 어떻게 보일지를 갖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 외에도 이 미술관에는 익히 보던 작품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섹스 어필의 유령 The spectre of sex appeal' 이라든가. 이 그림이 이렇게 작은 그림인 줄은 몰랐다. 엽서 두세 장 정도의 크기.

 

 

역시 유명하고 여러 작품으로 재생산 된 '갈라리나 Galarina' 당연히 다들 아시겠지만 갈라는 달리의 아내이자 뮤즈다.

 

 

유명한 빵 바구니 그림은 앞에 금으로 도금된 빵 바구니가 함께 있어야 완성된다.

 

 

백조로 변해 레다를 유혹한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딴 '아토믹 레다 Leda Atomica'. 물론 여신의 원형은 역시 또 갈라다.

 

 

'풍자적 구성 Satirical compositon'. 히든싱어 관련 글에서 잠깐 소개했지만 앙리 마티스의 '춤' 연작과 너무나 닮아 있다. '춤'의 모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달리 같은 거장도 초기에는 자기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선배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며 훈련을 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시도 중의 하나. 미켈란젤로의 작품 '피에타'의 재해석.

 

 

 

 

루브르에 있는 유명한 니케 여신상을 재해석한 이 작품의 제목은 '릴리스-레이먼드 루셀에 대한 오마쥬 Lilith-Hommages to Raymond Roussel' 이다. 에반게리온 덕분에 이제는 모르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릴리스는 유다 전설에서 이브(하와) 이전에 존재했다는 아담의 짝이다. 아담에게 종속된 이브보다 독립적인 여성상을 상징하기 때문에 여권 운동의 심볼로 가끔 쓰이기도 하는데, 니케 여신상을 여성의 성기와 연결한 상상력이 다만 놀라울 뿐이다.

 

지하로 내려가면 달리의 또 다른 취미 중 하나인 금속공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자본주의의 신인 나에게 존경을 표하는 방법은 돈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달리. 그러고 보면 금이 등장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렇게 금빛이 찬란한 지하 전시실 벽면을 보면, 이 놀라운 박물관에서 가장 감명깊은 상징물을 만나게 된다.

 

 

 

달리의 묘비.

 

그렇다. 피게레스에 있는 달리의 '극장 미술관'은 달리의 거대한 묘지였던 것이다.

 

달리 미술관을 정리하자면 갈길이 워낙 멀지만 달리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있을테니 대략 다음편으로 마감. 그리고 나서 그날 밤. 가을날의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갔는데... 달리의 그림 속 같은 초현실적인 풍경이 나타났다.

 

이런 느낌.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 (벌써 10편째 기행문인데 아직도 바르셀로나... 마드리드까지 언제 가나. 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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