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 뜻]

 

 

 

'미션 임파서블: 로그 네이션'은 시리즈 5편에 해당하는 작품입니다. 시리즈 첫편이 극장에 등장한 것이 1996년이니 19년에 걸쳐 다섯 편이 나온 셈입니다. 1962년부터 53년 동안 24편이 나온 007 시리즈(거의 공식 작품으로 인정받는 왕년의 '카지노 로얄'과 '네버 세이 네버 어게인'까지 치면 26편)에는 턱없이 모자라고, 일반적인 다른 시리즈들에 비해도 상당히 무성의한 진행입니다.

 

시리즈의 위기는 오우삼이 연출한 2편 때 찾아왔습니다. 흥행에서는 상당히 큰 성과를 거뒀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리즈가 다른 시리즈와 어떤 점에서 다른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남겼기 때문이었죠. 결국 6년을 건너 뛰고 J.J.에이브럼스가 투입되면서 사실상의 리부트가 이뤄집니다. 사이먼 펙과 빙 레임스(한국에선 흔히 라메스라고 불리죠)가 사이드킥으로 자리잡고, 4편에선 제레미 레너가 이단 헌트보다 좀 더 내근지향적인 요원으로 등장하면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5편은 이들 셋과 이단 헌트가 마침내 하나의 팀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5편은 지금까지 '미션 임파서블' 극장판 시리즈가 보여준 가장 완성도 높은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주인공 이단 헌트와 그 조력자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도 완벽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스토리와의 조화도 찬탄을 낳게 합니다. 과연 이 안정된 체제하에서 몇 편의 시리즈가 더 나올 수 있을지.

 

 

 

 

물론 이 팀플레이의 완성이라는 점 외에도 5편은 상당히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톰 크루즈가 여자와 함께 등장해 뭔가 연인 사이처럼 보이는 케미스트리를 보인 작품이라면 개인적으로 '탑 건'을 마지막으로 꼽습니다. 네. 켈리 멕길리스가 마지막입니다.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 5'는 멕길리스 이후 그 어떤 여자와 마주 서도 통나무같기만 하던 톰 크루즈가 처음으로 뭔가 썸 타는 분위기를 내는 데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놀라울 정도죠.

 

 

 

 

스웨덴에서 1983년 태어난 여배우 레베카 페르구손, 즉 레베카 퍼거슨이 이전까지 크루즈가 공연했던 여배우들, 즉 니콜 키드먼(그러고 보니 3편이나 같이 찍었군요), 데미 무어, 카메론 디아즈, 페넬로페 크루즈 등등을 기준으로 할 때 이들을 압도하는 환상적인 미모를 가졌거나, 말도 못하게 연기를 잘 해서라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 점에서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의 손을 번쩍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투란도트'의 멜로디를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맥쿼리 감독은 퍼거슨의 인생 최고작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말이 믿기지 않는 분은 퍼거슨의 다음 영화를 기다려 보시길. 그 영화가 '미션 임파서블 6'가 아닌 한, 분명 퍼거슨이 여기서 보여준 매력은 재현되지 않을 거라고 감히 단언합니다.^^ 정말 한 여배우에게 뽑아낼 수 있는 매력이란 매력은 모두 보여준 한 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면에선 왕조현의 '천녀유혼'과 비견될 만한 영화라고 할까요.)

 

여주인공의 매력 외에 '미션 임파서블5'의 가장 두드러진 점을 꼽자면 바로 '로그 네이션'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렇다면 로그 네이션이란 대체 뭘까요. 아마도 그 의미를 한번에 설명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주의: '미션 임파서블5'의 스포일러가 다수 존재합니다. 뭐 이제 웬만한 분들은 영화를 다 보셨을테죠?

 

 

 

불량 국가

[명사] 일반적으로는 rogue state, 테러 행위를 지원하며 세계 평화를 해치는 주범이 되는 나라들을 가리키는 정치 용어. 반면 rogue nation이라는 표기는 힘이 있다는 이유로 다른 나라들을 무시하는 유일 최강대국, 미국을 뜻하는 말로 쓰인 적이 있다. 물론 rogue nation을 그냥 rogue state의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시 한번 강조: 뒷부분에 영화 미션 임파서블5-로그네이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특정 국가들을 가리켜 불량국가’, 혹은 깡패 같은 나라라고 부른 최초의 미국 대통령은 로널드 레이건이다. 그는 1985년 한 연설에서 우리는 더 이상 범법 국가들(outlaw states)로부터의 공격을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불량국가(rogue nation, 공식적으로 불량국가라는 표현이 번역어로 더 널리 사용되지만, 이보다는 깡패 국가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라는 표현이 공식 용어로 등장한 것은 빌 클린턴 대통령 때의 일이다. 당시 클린턴의 국가 안보 자문이던 앤서니 레이크는 1994포린 어페어즈기고를 통해 고집불통에다 무법적인 일부 국가들은 민주주의 국가진영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가치들에 해를 끼친다 5개국을 대표적인 깡패 국가로 지목했다. 바로 북한, 쿠바, 이라크, 이란, 리비아였다. 그 실체는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획책하고, 테러를 지원하며, 자국 국민들을 심하게 탄압하고, 특히 반미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으로 규정됐다.

 

 

 

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게 맞서는 자를 나는 깡패라 부르겠다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21세기 초, 조지 W 부시 대통령시대의 미국에서는 또 하나의 불량국가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통상관료였던 클라이드 프레스토위츠는 2003‘Rogue Nation’이라는 책을 썼다(Rogue State가 아닌 Rogue Nation이란 표현의 기원으로 보인다). 이 책에 나오는 깡패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아들 부시 대통령 시대의 미국은 세계 각국, 미국의 적대국가는 물론 우방들로부터도 일방주의(unilateralism)라는 비판을 받았다. 자유무역협정과 통상압력, 군사 파견과 환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지나치게 미국의 국익을 앞세웠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시작된 깡패 국가이론도 한 단계 발전했다. 2002년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Axis of Evils)’이라는 표현을 통해 이란, 이라크, 북한을 3대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후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의 배후 국가로 쿠바, 리비아, 시리아를 지목했고 이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독재 전초국가(Outpost of tyranny)’라는 이름으로 짐바브웨, 벨라루스, 미얀마를 우려 대상인 관심 국가에 포함시켰다.

 

이 때문에 프레스토위츠는 남들을 깡패국가라고 부르기 전에, 다른 나라의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이 오히려 깡패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세계 평화에 기여할 생각이 있다면 동네 짱 먹는 형의 모습이 아닌 진정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야 한다는 권유다.

 

미션 임파서블시리즈 5편의 부제인 로그 네이션깡패 국가는 기존 미국 대통령들의 테러하는 놈들=깡패 국가개념과도, 프레스토위츠의 미국이야말로 깡패 국가이론과도 조금 다르다. 다만 굳이 말하자면 후자에 조금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의 악당들은 기존 테러국가 수준의 허약한 존재를 이미 넘어선 슈퍼 스파이 조직 신디케이트(Syndicate)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 세계의 정보를 쥐고 흔들며, 일개 국가 수준에서 감행할 수 없는 온갖 음모와 공작으로 경제와 군사의 흐름을 조작하는 존재다. 그리고 이 신디케이트는 기존 강대국(혹은 초국가적 규모의 다국적 기업)의 국익과 부합할 때에만 존재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지적하고 있다.

 

제목의 로그 네이션이 악의로 이뤄진 초 국가적 존재인 신디케이트를 가리키는 것인지, 영화 속에서 신디케이트의 모태로 지적된 영국 MI6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현실로 고개를 돌리면 결국 신디케이트든 대량 살상 무기(실체가 있건 없건) 자신들의 물리적인 힘을 보유할 수 있는 명분으로 강력한 인류의 적을 지목해야 하는 존재는 결국 초강대국 뿐임을 다시 느끼게 된다.

 

일반적으로 ‘rogue nation’‘rogue state’가 많은 경우 혼용되고 있지만, 굳이 더 보편적인 ‘rogue state’ 대신에 ‘rogue nation’을 제목에 사용한 것은 이런 함의를 읽어 달라는 제작진의 요청이 아닐지. ‘유주얼 서스펙트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대본을 쓴 크리스토퍼 맥쿼리 감독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니까 톰 크루즈, 즉 이단 헌트 급의 요원이라면 이제는 얼마나 막강한 상대를 데려다 놔야 게임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결국 이단 헌트의 존재 목적은 '미국의 국익'인데 이게 과연 어디까지 '온 인류의 이익'과 일치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죠. 007이 전성기를 누리던 냉전 시대에는 '악의 제국' 소련이 건재했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베를린 장벽이 사라진 뒤로부터 많은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던' 영웅적인 스파이들의 그림자에서 다국적 자본가와 군산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신자유의주의의 냄새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로그 네이션', 즉 거대한 음모를 현실로 바꿔 놓을 수 있는 슈퍼 스파이가 한 발 삐끗하면 거대한 슈퍼 악당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설정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적절합니다.

 

P.S. 그런데 검색하다 보니 이런 레베카 퍼거슨도 있군요.

 

 

 

 

 

 

728x90

얼마 전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요즘 먹히고 있는 워맨스 코드가 들어간 작품이라서..." "워맨스? 워맨스가 뭐야?" "아, 그게 브로맨스의 상대 개념인데..." "브로맨스는 또 뭔가?"

 

네. 당연히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워맨스

 

[명사] womance. Woman+romance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 동성애는 아니지만 자매애도 아닌, 우정과 사랑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동지애적인 감정.

 

여성 시청자나 관객들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 삽입된 BL코드, 혹은 브로맨스(Bromance) 코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흔한 이성애자 남자가 영화 신세계의 자성(이정재)과 정청(황정민)의 관계, 혹은 2014 최고의 화제작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임시완)-한석률(변요한)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여성 관객(혹은 시청자)들은 이들 사이에 가상의 러브라인을 그어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심지어 장그래와 오차장의 관계에서 로맨스를 느끼는 시청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이런 취향을 의식해 응답하라 1994’ 처럼 아예 쓰레기(정우)를 향한 빙그레(바로)의 애타는 짝사랑을 집어 넣어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었다. 물론 빙그레 역시 드라마가 끝나기 전 의예과 여자 선배(윤진이)와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성애자라는 게 중요하다.

 

 

 

Brother romance를 합해 만든 브로맨스(bromance)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 질 무렵, 그 반대편의 워먼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물론 이 또한 이미 존재하던 경향에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문화 상품 가운데 워먼스 코드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을 가장 먼저 꼽게 된다. 수잔 서랜든(루이스)과 지나 데이비스(델마)가 연기한 두 여배우는 모두 이성애자들이며, 심지어 델마는 젊은 남자 제이디(브래드 피트)에 정신이 팔려 둘의 도피를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주인공의 관계는 흔히 말하는 우정의 선을 훨씬 넘어 운명적인 유대를 느끼게 한다. 때로 워먼스 코드는 단 두 사람이 아닌, 복수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빈민가에서 자란 네 흑인 여성이 은행강도를 계획하는 이야기인 셋 잇 오프(1996)’의 경우 스토니(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프랭키(비비카 폭스)의 관계를 중심으로 네 주인공이 서로 자매애와 흡사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브로맨스와 마찬가지로 워먼스도 동성애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아예 레즈비언들의 애정과 갈등을 그린 미국 드라마 ‘L-워드(L word)’류와는 접점이 없다. 반대로 이성애를 기본으로 한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워먼스 코드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레이 아나토미속의 메레디스(엘런 폼페오)와 크리스티나(산드라 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워먼스 코드가 전체적인 여성 등장인물들간의 연대로 표현된 경우는 메가 히트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볼 수 있다. 네 도시 여성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그리던 이 드라마는 결국 남자들은 왔다가도 가지만 친구들은 영원하다(Boys may come and go, but friends are forever)”라는 교훈으로 긴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현재 방송중인 MBC TV 드라마 전설의 마녀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교도소 한 방에서 수감생활을 한 네 명의 여주인공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워먼스 코드는 가끔 적대적인 관게에서 표출되기도 한다. 말 많은 영화 쇼걸(1995)’에서 무명 댄서 노미(엘리자베스 버클리)와 스타 댄서 크리스탈(지나 거손)은 영화 내내 적대적인 관계에 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사실상 같다는 점을 서로 이해하면서 남다른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방송된 MBC TV 드라마 마마에서도 승희(송윤아)와 지은(문정희)은 각각 태주(정준호)의 아들과 딸을 낳은 사이. 전통적인 드라마에라면 본처와 시앗의 관계지만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를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돕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양상의 워먼스 관계를 보여줬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여성 캐릭터간 관계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시도로 여겨질 법 하다.

 

여러 면에서 워먼스는 브로맨스와 떼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브로맨스를 동성애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판타지로 여기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비해 여성 동성애자들은 워먼스에 대해 호의적이다.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밝힌 미국의 칼럼니스트 엘리자베스 앤 톰슨은 최근 브로맨스 대 워먼스라는 글에서 워먼스라는 개념을 통해 걸프렌드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었다며 동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여성과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워먼스라는 단어를 통해 재정의하기도 했다.

 

P.S. 물론 브로맨스와 워먼스는 모두 여성 관객들에게서만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이성애자 남성 관객들은 둘 중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워맨스가 왜 뜨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브로맨스나 워맨스 코드를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로 생각하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남녀간의 연애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관계와 반대쪽에 있는 것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쓰였던 대가족 중심의 가족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핵가족화로 인해 전형적인 가족간의 형제애/자매애에 대한 기억이나 공감의 여지가 많이 약해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선후배에게서 그것을 대체할 만한 감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관념적으로 '가족보다 친구가 더 가까운'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 그러냐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겠지만.

 

 

맨 위 영화 사진은 우마 서먼, 재닌 갈로팔로 주연 영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여성 관계가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로맨틱 코미디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728x90

해커 그룹 어나니머스의 활동,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 홍콩 민주화 시위,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공통점은 뭘까요. 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뾰족한 코와 팔자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어떤 남자의 얼굴을 묘사한 가면이죠. 그런데 최근까지 이 가면이 누구의 얼굴을 가리키는 것인지 모르는 분들이 꽤 많았을 겁니다.

 

가이 폭스, 가이 포크스라는 남자는 한때 영국인들에게 반역자, 혹은 악당의 대명사로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가이 폭스 데이'라고 불리는 매년 11월5일 밤이면 영국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인형 뒤꽁무니에 폭죽을 달아 공중으로 날려버리곤 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바뀌다 보니 어느새 이 남자는 자유와 민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가이 폭스

[인명] Guy Fawkes(1570~1606). 1605년 영국 국회의사당 지하에 폭탄을 설치해 국왕 제임스 1세와 주요 귀족들을 몰살시키려다 실패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21세기 들어 그의 얼굴을 본딴 가면이 민중 저항의 상징으로 변신하는 바람에 인기 있는 역사적 인물로 변신했다.

 

비슷한 얼굴의 가면을 쓴 시위 인파가 세계 곳곳에서 거리를 메우고 있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를 시작으로, 프랑스 터키 헝가리 등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군중들이 같은 가면 뒤에 얼굴을 감추고 구호를 외쳤다. 웃는 눈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얼굴, ()자 형으로 멋지게 치켜올라간 콧수염이 특징으로 누구나 같은 얼굴의 가면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2014 11월에는 홍콩 시위 현장에서도 이 가면을 쓴 시위대가 포착됐다.

 

국제 해커 조직인 어나니머스도 자신들의 상징으로 같은 가면을 쓰고 활동하거나, 웹상에 표시되는 영상에 이 가면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래서 한때 깊은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이 가면을 가리켜 어나니머스 가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가면은 가이 폭스 마스크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귀도 폭스(Guido Fox)라고도 불리는 가이 폭스(한글 표기로는 가이 포크스라고 쓰기도 한다) 1570년 영국 중부 요크의 가톨릭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군인의 길을 걸었고, 스페인 식민지였던 네덜란드의 신교도들이 종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스페인 군에 가담해 싸울 정도로 골수 카톨릭 전사의 면모를 보였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에 이어 영국 국왕이 된 제임스 1세는 본래 스코틀랜드 왕가 출신으로 독실한 카톨릭 교도였다. 하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합친 대영제국(Great Britain)의 왕위에 오른 뒤에는 국론 통합을 위해 영국 국교만을 인정하고, 이에 반발하는 카톨릭과 청교도 모두를 탄압했다. 폭스는 제임스 1세의 배신에 분개했고, 동지들과 함께 국회의사당 지하로 땅굴을 판 뒤 폭약을 설치해 왕과 그 측근들을 일거에 소탕할 계획을 세웠다.

 

음모가 한창 진행되던 도중, 일이 너무 커질 것을 겁낸 음모자 중 누군가가 왕의 측근 몬티글남작에게 익명의 편지로 계획을 고발했다. 몬티글 남작의 하인 중 하나가 다시 일당들에게 음모가 들통났다고 알려 줬지만, 눈에 띄는 대응 조치가 없자 폭스는 경고를 무시하고 계획을 계속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을 끌자 제임스 1세 본인도 음모를 전해 듣게 됐고, 폭스는 거사를 저지르려던 115일 당일 밤 체포됐다. 폭스와 동지들은 1606 131일 참수형에 처해졌다.

 

이후 영국인들에게 가이 폭스라는 국왕 시해를 시도했던 흉악범으로 유명해졌다. 115일은 가이 폭스 데이’, 혹은 음모의 밤(Plot Night)’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뛰어 노는 축제일이 됐다. 미국 학원문학의 고전인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의골목대장(The Story of a Bad Boy)’에는 19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소년들이 가이 폭스 데이를 맞아 폭죽을 터뜨리는 장면이 나온다. 이 시기의 어린이들은 가이 폭스의 가면을 쓰거나, 가이 폭스 인형에 폭약을 달고 거기에 불을 붙여 인형을 불태우는 놀이를 했다. 한마디로 아주 유명한 악당이었던 셈이다.

 

 

 

 

그에 대한 재평가는 20세기 들어 이뤄졌다. 몇몇 역사가들은 그의 계획이 단순한 역모가 아니라 종교 탄압에 대항한 민중 봉기라고 해석했고, 미국 만화가 데이비드 로이드는 이런 재해석을 바탕으로 1982년 만화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를 내놨다. 전 세계적인 민중의 저항을 주도하는 주인공 V가 가이 폭스의 가면 뒤에 얼굴을 감췄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은 제임스 맥티그 감독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특히 주인공 V(휴고위빙) 뿐만 아니라 수천 수만의 군중이 가이 폭스 가면을 쓰고 시위에 동참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고, 이후 이 가면은 세계 곳곳에서 압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이 폭스 자신도 음모에 성공한 것 보다 이런 명성을 더 흡족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인기다.

 

사실 그의 이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해져 있다. 그의 이름인 ‘guy’이상한 옷을 입은 기이한 남자라는 의미의 속어로 사용됐고, 19세기 쯤 미국으로 건너가녀석, 친구라는 의미로 변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guy’라는 단어가 바로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끝>

 

뉴욕에서도,

필리핀에서도,

홍콩에서도, 가이 폭스의 물결입니다.

 

가이 폭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영국의 종교 지도에 대한 지식이 약간 필요합니다. 영국 인구의 절대 다수는 기독교도이지만 그 분포는 매우 다양합니다. 일단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교파는 흔히 성공회(Anglican Church)라고 불리는 영국 국교회입니다. 카톨릭에 대항해 만들어진 교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동기가 다른 신교(protestant) 교파와는 매우 다릅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 헨리 8세가 스페인 출신인 왕비 캐서린(원래 형수였던)과의 이혼을 반대하는 카톨릭 교회에 한대 먹이기 위해 '영국 국왕의 명은 교황의 명보다 우선한다'고 선포한 데서 비롯된 교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공회 聖公會 라고 부르는 것인데, 결혼과 이혼으로 점철된 헨리 8세의 사적을 보면 과연 '성공'이라고 불릴만한 왕인지는 다소 의문입니다.  

 

아무튼 헨리 8세와 아들 에드워드 6세, 그 뒤를 이은 제인 여왕(재위 9일만에 왕위에서 밀려난)에 이어 왕위에 오른 메리 1세는 외가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였으므로 영국을 다시 카톨릭의 나라로 되돌려놨지만 그 뒤를 이은 엘리자베스 1세가 아버지 헨리 8세의 유지를 이어 성공회를 영국의 국교로 확정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잉글랜드'만의 이야기고, 저 북쪽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확고부동한 카톨릭의 땅이었습니다.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당연히 후사가 없었고, 그 뒤를 이은 것은 엘리자베스 1세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장남인 제임스 1세였습니다. 당연히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탄압(?) 당했던 카톨릭 교도들은 제임스 1세에게 많은 것을 기대했지만 제임스 1세는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통합 왕국의 수장답게 성공회를 장려하고 카톨릭을 억눌렀습니다. 이런 배경 때문에 가이 폭스를 비롯한 카톨릭 과격파들은 제임스 1세를 배신자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P.S. 가이 폭스라는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의 소설 'A story of a bad boy'는 '얄개전'의 저자인 조흔파 선생에 의해 '골목대장'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된 바 있습니다. 조흔파, 최요안, 오영민 같은 분들이 쓰신 '얄개전'이나 '남궁동자', '에너지 선생', '6학년 0반 아이들', '아파도 웃는다', '나는 둘' 등의 학원 문학 장르가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시절의 유산이랄까요. 그래서 지금도 '토머스 베일리 올드리치'라는 표기보다는 '토마스 베리 올드릿취'라는 표기가 훨씬 정겹게 느껴집니다.

 

 

 

 

 

728x90

올해 쓴 글들을 방출합니다. 물론 이미 '매거진 M'을 통해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십상시의 여파가 남은 동안 매년 연말 등장하는 교수협회의 고사성어에 '지록위마'가 등장했습니다. 퀴즈 프로그램에서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공통점은?'이라는 문제가 나오면 당연히 0.2초 내로 답이 나옵니다. '환관'이죠.

 

어째서 우리는 2014년에 환관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거기에 대한 글입니다. '십상시 사건'이 터졌을 때 쓴 글이고 중간에 조고와 지록위마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록위마'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혔더군요.

(마지막에 2001~2014 교수신문의 연말 사자성어들이 궁금해서 정리해 봤습니다. 거의 '동의어 찾기' 수준.)

 

 

 

 

 

십상시

 

[명사] 十常侍. 중국 한나라 영제 때 권세를 장악했던 장양 등 열 명의 환관을 통칭해 부르던 말.

 

500여년간 동양 남성의 필독서였던 소설 삼국지연의천하의 대세란 본래 갈라지면 하나로 합쳐지고, 합쳐지면 또 갈라지는 것(天下大勢, 分久必合,合久必分)이란 명문장으로 시작한다. 광무제에 의해 시작된 후한(後漢)의 정세가 어떻게 어지러워지면서 위, , 촉 삼국의 뿌리가 태동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 '삼국지연의'의 시발점이 되는 서기 168, 13세의 나이로 즉위한 영제(靈帝)는 평생을 환관들의 영향 속에 살았다. 몇몇 신하들이 도전했으나 영제는 매번 결정적인 시기에 환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선대 환제(桓帝) 때 부터 황제를 모신 열 명의 내시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정권을 농단했다. ‘삼국지연의는 이들의 이름을 장양、조충、봉서、단규、조절、후람、건석、정광、하휘、곽승이라 기록하고 있다. 정사인 후한서도 장양, 조충 등을 거론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그 수가 12명이다.

 

이들의 폐해로 정치가 어지러워졌고, 184년 황건적의 난으로 후한의 통치 체제가 사실상 붕괴됐지만 영제는 주색에만 탐닉하다 189, 34세로 숨을 거뒀다. 16세인 영제의 장남 유변(劉辯)이 뒤를 이었으나 5개월 만에 십상시의 난을 겪으며 동탁에 의해 쫓겨나 소제(少帝)라 불렸다.

 

명색이 십상시의 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십상시가 대장군 하진을 죽이자 하진의 부하들이 십상시와 그 일족들을 몰살시킨 사건이다. 정권 탈취 음모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라는 이름은 다소 억울할 수 있다. 환관들의 권력이 철저하게 황제의 총애에 기반한 것이고 보면, 환관들이 황제를 해치는 것은 자살행위인 셈이었다. 하지만 해바라기 권력의 속성상 이들은 군왕의 심기에만 온 정성을 기울였으므로, 대개 국정은 극도로 어지러워졌다.

 

십상시 외에도 중국 역사에는 악명 높은 환관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지록위마의 고사를 남긴 진시황 때의 조고를 비롯해 촉한의 황호, 당 현종 때의 고역사, 당 희종 때의 전영자 등 부지기수다. 명 태조 주원장은 그 폐해를 막기 위해 환관의 수를 100명으로 제한하고, 정치 참여를 사형으로 다스리는 등 엄한 관리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죽고 고작 37년 뒤인 1435, 5대 영종 때 다시 환관 왕진이 권력을 잡았다.

 

 

 

 

반면 한국사에서는 시대를 전횡한 내시의 이야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치 사대부들의 견제가 엄격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 성종 25(1494)에는 임금이 몇몇 환관들과 의관들에게 가자(加資, 관료들의 품계를 올려 주는 것)를 내리자 조정 백관들이 크게 반발한 기록이 있다. 특히 대사간 윤민은 한나라 원제가 석현 한 사람을 등용했을 때 뒷날 오후(아래에 자세히 설명)나 십상시의 권세를 예견했겠느냐228일부터 312일까지 11회나 상소를 올리며 가자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성종 또한 결국 조치를 취소하지 않았으나 이후로는 훨씬 신중해졌다.

 

이렇게 치열한 견제 때문에 오히려 조선의 내시들 가운데서는 상당한 수준의 학문과 교양을 갖춘 이들이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환관들이 학식을 갖추면 정치에 관여한다 하여 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지만, 반대로 조선에서는 내시들이 업무 수행에 걸맞는 교양을 쌓는 것을 의무로 삼았기 때문이다. 박상진의 연구서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에 따르면 조선 시대엔 내시부에 환관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3명의 내시고관을 상주시키고 어린 내시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결과 순조 때 시문집 노곡만영을 남긴 이윤묵 같은 문인이 배출되기도 했다.

 

중국 내시가 조선 내시에 비해 강한 권력을 가진 이유를 황제의 권력과 조선 국왕의 권력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조선은 일찍이 사대부의 나라로 자리잡았고, 어떤 군왕도 중국 황제처럼 전제 정치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그런 황제들이 권력의 일부를 양도할 수 있던 두 축은 종실(또는 외척)과 환관이었다.

 

환관 권력의 대명사인 십상시는 본래 영제의 전임자 환제의 시대에서 태동했다. 환제는 외척 세력 타도를 위해 암암리에 환관들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공을 세운 다섯 환관를 제후로 삼았다. 이들이 바로 위에서 말한 오후(五侯).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영제는 자연스럽게 환관들을 자신의 진정한 보호자로 여기게 됐지만 불행히도 그런 인의 장막이 최고 통수권자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영제와 십상시의 시대에서 2천년이 흐른 21세기에도 외척환관의 권력 암투가 뉴스가 되고 있다. 권력의 본질이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려주는 교훈담일 수도 있겠다(끝)

 

 

 

 

 

요약하자면 내시 권력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절대 권력자가 생각합니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외척? 자기 집안 생각 뿐이고 삼촌? 사촌? 다들 내가 어떻게 되면 이 자리를 탐낼 자들이야. 아예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지만 환관들? 저들에겐 가문도 없고, 그저 믿을 건 나 뿐이잖나. 진심으로 나를 위해 주고, 나와 생사를 같이 할 사람은 쟤들밖에 없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윗글에서도 얘기했지만 내시 권력은 오로지 최고 권력자 옆에 있을 때만 의미가 있고, 당연히 최고 권력자의 안위가 내시들에게는 최고의 관심사죠.

 

하지만 그러다 보니, 내시 권력은 '어르신'의 기분과 안전 외에는 아무 것에도 관심이 없어집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흉악하고 불측한 것들'과 '어르신'을 차단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게 되죠. 그러는 사이 국정은 개판이 되고 맙니다.

 

정치는 본래 욕망의 콜로세움입니다. 그 다양한 욕망과 에너지를 어떻게 통제해서 스스로 국가에 이롭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때로 그 욕망에 귀 기울여 자신의 행로를 수정하는 것이 통수권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단지 듣기 좋고, 먹기 좋은 것만을 던져 주는 오래된 측근들, 그들의 인의 장벽에 갇혀 '욕망의 정치판'에 혀를 끌끌 차는 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내시 권력'의 핵심이고, 세간에서 말하는 '십상시'와 '지록위마'의 현실인 것입니다.

 

 

 

 

아울러 2001년부터 교수신문의 한해 정리 사자성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01 오리무중 五里霧中  설명이 필요 없는.
02 이합집산 離合集散  역시 설명이 필요 없는 국론 분열
03 우왕좌왕 右往左往  설명이 필요 없는.
04 당동벌이 黨同伐異  같은 편끼리 떼지어 상대방을 치는 국론분열에 대한 개탄
05 상하화택上火下澤   위는 불이요, 아래는 못. 다급한 상황

06 밀운불우 密雲不雨  구름은 끼었으되 비는 내리지 않는 답답한 상황
07 자기기인 自欺欺人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다. 자기도 믿지 않는 말로 누구를 속이려느냐는 개탄

08 호질기의 護疾忌醫  의사를 믿지 못해 병을 더 키움. 누가 자기 편인지도 모르고 충고를 무시하는 세태에 대한 개탄
09 방기곡경 旁岐曲逕  곧은 길이 아닌 구부러진 골목길. 한마디로 '정도를 가라'는 뜻.
10 장두노미 藏頭露尾  머리는 감췄는데 꼬리는 뻔히 보임.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11 엄이도종 掩耳盜鐘  자기 귀만 막고 종을 훔치다. 역시 눈 가리고 아웅.
12 거세개탁 擧世皆濁  온 세상이 다 흐리다. 썩은 세상.
13 도행역시 倒行逆施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행함.

(하지만 '도행역시'의 경우에는 고사를 살펴보면 본래의 맥락은 "어쩔수 없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이므로 세태를 비판하려는 의도였다면 적절한 사용은 아닙니다. 이건 교수신문의 무리수.)

그리고... 올해의 지록위마 指鹿爲馬. 뭐 속성상 어떤 해라도 좋은 이야기로 마무리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개탄 일변도인 것이 21세기 한국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728x90

'삼총사' 라는 말은 너무나 익숙해진 생활용어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과 셋이서 어울려 다니기만 해도 아주머니들이 "아유 셋이 아주 삼총사야"하고 말하곤 합니다. 미디어에서도 지겨울 정도로 널리 쓰입니다. 뭐든 세명이 두각을 보이거나 중요한 존재가 되면 무조건 삼총사로 묶입니다(듀오, 삼총사, 사인방, [독수리]오형제...로 나가는 공식은 정말 영원불멸일 듯).

 

그런데 정작 이 삼총사가 본래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합니다. 뒤마의 소설 제목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그 내용까지 다 알고 있는 사람도 많지만,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얼마 없더군요. 오히려 그 바로 뒤에 나오는 '사인방'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듯 합니다. 

 

'삼총사'라는 말의 의미를 아는 첫 단계는 가운데의 '총'입니다. 이 총이 쏘는 그 총이라는 걸 아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삼총사

[명사] 본래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제목. 이후 세 명이 잘 어울려 다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가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활용중.

 

한자 표기 三銃士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전혀 놀라지 않겠지만, ‘가운데의 총이 탕 하고 쏘는 그 총 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원제인 ‘Les Trois mousquetaires’에 나오는 mousquetaire는 영어의 musketeer, 즉 화승총과 현대식 라이플의 중간 세대에 위치한 화약 무기 머스킷(musket)으로 무장한 근대식 기병을 말한다. ‘머스킷을 쓰는 병사를 압축해 번역하다 보니 총사(銃士)라는 한자어가 등장한 것이다.

 

삼총사에 나오는 프랑스 총사대는 1622년 루이 13세에 의해 국왕 직속부대로 창설됐다. 아버지 앙리 4(‘낭트 칙령을 발표해 프랑스 내에서 구교도와 신교도를 모두 정당한 신민으로 인정한 왕으로 유명하다. 영화 여왕 마고에서 마고 여왕의 남편)가 거느리고 있던 경기병(Carabinier)의 화력을 보강해 개편한 프랑스 육군의 최정예 부대였다.

 

 

 

왕이 직속부대를 강화하자 당시의 실권자였던 리슐리외 추기경도 자신의 직속 경호대를 창설했다. 국왕에 비해 꿀릴 것이 없는 권력자인 만큼 자신의 경호대가 왕의 총사대에 비해 규모나 무장 등에서 손색이 없도록 구성한 모양이다. 당연히 두 부대 사이에는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싹텄다. 소설 삼총사의 앞 부분, 즉 달타냥이 파리에 도착해 총사대와 경호대 사이의 분란에 뛰어드는 대목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소설 삼총사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루이13세와 안느 왕비, 왕비의 연인이며 영국의 총리대신인 버킹엄 공작 존 빌리어스, 달타냥의 숙적인 추기경 리슐리외에 이르기까지 주요 인물들은 모두 실제 역사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반면 달타냥과 삼총사는 실존 인물과 행적이 딱 일치하지는 않는다. 달타냥의 모델은 뒷날 달타냥 백작이 된 군인 샤를 드 바츠(1811~1873)라는 게 정설이다. 소설과는 달리 부유한 귀족 가문 출신이긴 하지만 궁정과 추기경 사이를 누비며 은밀한 활약을 펼쳤고, 뒷날 총사대의 대장에도 올라 실제 소설의 주인공을 방불케 하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달타냥 백작의 일생에 감명을 받은 가티엥 드 쿠르틸 드 상드하(Gatien de Courtilz de Sandras)라는 동시대 작가가 달타냥 씨의 비망록이라는 기록(제목은 비망록이지만 내용은 무협지 수준의 과장이 넘쳐난다고 전한다)을 출판했고, 200년 뒤 사람인 뒤마는 이 기록을 모태로 자신의 대표작인 삼총사’ 시리즈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공을 거둔 이 책은 20세기 이후 수십차례 각국에서 영화로 만들어졌고 2014년 한국에서는 원작의 배경을 조선 인조 때로 옮겨 놓은 드라마도 나왔다.

 

 

삼총사의 총이 그 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왜 소설에선 칼싸움 밖에 안 나오냐고 반문하는데, 사실 총 쏘는 장면이 수시로 나온다(그런데 많은 분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특히 삼총사의 후반 1/3 가량은 1627~28년에 걸쳐 벌어진 라 로셸 포위전에서 피아 5만의 군대가 대포와 총을 동원해 벌이는 대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아마도 '총은 안 나오잖아?'하는 분들은 이 책의 앞 쪽 50페이지만 읽은 분들일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굉장히 옛날 같지만 1622년이면 이미 조선에서도 임진왜란 이후 훈련도감에서 사수,살수와 함께 조총병인 포수를 양성하고 있던 시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번역을 했다면 소설 제목 삼총사삼포수(三砲手)’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울러 달타냥과 삼총사가 등장하는 소설은 '삼총사' 한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러 두고 싶다. 뒤마는 삼총사와 달타냥을 주인공으로 1844삼총사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둔 뒤 20년 후’, ‘브라젤론 자작(Le Vicomte de Bragelonne)’등 속편을 내놨다. 삼총사 시리즈의 완결편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젤론 자작 3부가 바로 영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철가면 에 등장하는 철가면과 루이 14세 이야기다.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20년 후1995년 번역된 적이 있으나 절판되어 구해 볼 방법이 없고, ‘브라젤론 자작은 아예 출간된 적이 없다. 영화 철가면이 나왔을 때 뒤마 원작이라고 아는 척 했던 분들 가운데 실제로 책을 읽어 볼 수 있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는 얘기다. ‘삼총사도 수십가지 번역본이 나와 있으나 대부분 아동용 압축본인 게 한국의 출판 현실이다.

 

P.S. 30여년 전, 아동문학전집에 섞여 있던 삼총사는 국왕 폐하에게 충성하는 달타냥이 카르지나르라는 간신과 싸우는 이야기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이 카르지나르가 악당의 이름이 아니고 추기경(Cardinal)’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본어 중역본 시대의 웃픈 이야기.

 

 

 

 

 

 

무기에 대해 전문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마어마한 밀덕들에게 당할 수 있을 리 없고, 따라서 자세히 얘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삼총사 - Three Muskuteers 라는 말은 초콜릿 바 이름에까지 쓰일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단 저렇게 영어로 써 놓으면 많은 사람들이 삼총사라는 말과 Musket이라는 무기를 연상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데 비해 '삼총사'라고 쓰면 그게 저 무기와 관련 있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기가 힘들죠.

 

흔히 arquebus를 '화승총'으로, rifle을 '(현대식)소총'으로 번역하는 반면 그 중간 단계인 musket에는 마땅히 붙일 만한 번역어가 없습니다(물론 아퀴부스와 라이플 사이에 머스킷 한 단계만 있는 것은 아니고, 그 사이에 수많은 다른 단계와 다른 이름의 무기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머스킷 총'이라고 부릅니다.

 

머스킷은 아퀴부스의 약점인 짦은 사거리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입니다. 멀리 나가게 하려면 총신이 길고 견고해야 하고, 그러려면 자연히 무게가 더 나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초기의 머스킷은 대단히 무거워서 받침대가 없으면 혼자 사격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한 무기였지만, 차츰 개량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머스킷과 라이플의 차이는 단적으로 말해 총신에 강선이 들어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rifle 은 동사로는 '총신(bore)에 회오리 모양의 강선을 파다'라는 뜻입니다. 즉 머스킷의 총알이 그냥 총구에서 밀려 나오는 방식이었다면, 라이플로 쏜 총알은 총구에서부터 회전하면서 날아가기 때문에 더 빠르고 더 멀리 날아간다는 것이죠.

 

(여담이지만 어떤 사람은 rifle을 '장총'이라고 번역하고 어떤 사람은 '소총'이라고 번역합니다. 정 반대의 의미인 셈이죠. 물론 길이라는 것이 항상 상대적이긴 합니다만, 어쩌다 이런 기이한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참...^^)

 

 

 

 

 

 

아무튼 아쉬운 것은 번역의 문제입니다. 개인적으로 '삼총사'는 여러 번 읽어 봤지만 '20년 후'나 '브라젤론 자작'은 당연히 읽어 보지 못했습니다. '20년 후'만 해도 처음 번역되어 나왔을 때, 서점에 서서 몇 줄 읽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입부에 나오는 안느 왕비가 뭔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 "왕년에 왕비님을 도와준 달타냥을 기억하십니까? 그에게 도움을 청하시는 것이..." 하자 왕비가 "아... 그런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하는 반응을 보이는 대목에서 책을 덮었던 듯 합니다.

 

그러니까 '삼총사'에서 달타냥과 세 주인공이 목숨을 걸고 일을 성사시켰더니 20년 뒤 왕비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져 있다니. 등장인물에 대한 배신감이 확 일어서 책을 사 볼 마음이 없어졌던 겁니다. 하지만 이제 책도 구할 길이 없어져 버리고 나니, 그때 그 책을 샀어야 하는 건가 하는 후회가 밀려옵니다. 

 

아무튼 언젠가 '20년 후''브라젤론 자작(혹은 철가면)'이 번역되어 나오길 기다릴 뿐입니다.

 

 

앞서 말했듯 수십 수백개의 삼총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삼총사는 이 쪽.

 

 

 

혹은 그 원형인 이쪽.

 

 

 

 

아 이건 말고;;

 

 

 

 

 

 

728x90

'단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개는 '투쟁'이라는 말이 뒤에 붙어야 한 단어가 완성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가끔 눈에 띄는 '단식원'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한가하거나, 뭔가 숭고한 대의를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후자의 이유로 단식을 하는 사람들에겐 그 나름대로의 절박한 사연이 있을테지만요.

 

한국이라는 시공간에서 단식이라는 위협의 방식은 필연적으로 좀 남용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억압하는 쪽이나, 억압받는 쪽이나, 느낌표와 과장법이 지배하던 시대의 유산에서 아직도 세상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겁니다. 분명히 '단식'이라는 것은, 시도하는 사람이 "나는 지금 내 목숨을 걸고 나의 주장의 관철시키려 하고 있으며, 이 의지를 세상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한다"는, 절박하고도 비상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일 때 진실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죽고 사는' 정도의 절실한 문제가 아닐 때 과연 이런 투쟁의 방식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김영오씨의 단식투쟁이 세상의 주목을 끈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듯 합니다. 너무 흔해진 줄 알았던 '단식투쟁'의 의미가 이렇게 절박하고 절실하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환기시켰으니까요.

 

 

 

 

단식 [명사] 斷食. 스스로 음식 섭취를 중단함.

 

단순히 밥을 먹지 않는다고 단식이 되지는 않는다. 일단 주체적인 의지를 갖고 음식 섭취를 중단한다는 점에서 단식은 의학적 목적으로 음식 섭취를 막는 금식(禁食)과 구별된다. 아울러 우리 말의 단식에는 영어의 fasting hunger strike,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담겨 있다.

 

영어의 fast빠른이란 의미 외에 단식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은 아침식사를 가리키는단어 ‘breakfast’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즉 밤 사이 잠을 자느라 어쩔 수 없이 했던 단식(fast)을 깨는(break) 것이 바로 아침식사라는 얘기다.

 

엄밀히 말해 단식 투쟁으로 번역할 수 있는 hunger strike는 인류사 전체를 돌이켜 볼 때 그리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행동양식이 아니다. 20세기 이전 인류 문명의 대부분 지역에서, 절대 다수의 피지배 계층에게 있어 기아(飢餓)는 형벌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식량의 절대 생산량이 부족하던 시대에 만약 별 지명도 없는 인물이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스스로 굶어 죽겠다고 적을 위협했다면 그 적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 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물론 단식을 감행하는 사람이 평소 큰 명망과 존경을 얻고 있는 사람이라면 달랐을 수도 있다.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인 성 패트릭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정의에 반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경고하는 의미로 단식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전통 탓인지 영국의 통치에 맞선 아일랜드 독립투사들 중 많은 수가 옥중에서 단식 투쟁으로 숨졌다. 1920년 무려 94일간의 단식으로 기네스북 기록을 갖게 된 피터 크로울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198131, 보비 샌즈를 비롯한 10명의 IRA(아일랜드 공화군) 전사들은 자신들을 전쟁 포로 아닌 일반 죄수로 취급하는 영국 정부의 태도에 항의하며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순차 단식에 들어갔다. 첫 희생자인 샌즈는 66일만인 55일 목숨을 잃었고, 다른 9명도 차례로 소금과 물만을 섭취하며 버티다 차례로 숨져 갔다 마지막 주자 마이클 디바인이 숨진 것은 820일이었다.

 

이런 일이 빚어지는 동안 영국 미디어의 헤드라인은 로열 웨딩의 화사한 뉴스로 도배되고 있었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그해 224일 약혼한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커플은 729일 런던 세인트폴 예배당에서 전설적인 결혼식을 올렸다. 테러리스트라면 테러리스트지만, 열명의 젊은이가 차가운 감방에서 수개월에 걸쳐 스스로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꽃가루를 뿌리는 초대형 결혼 이벤트가 펼쳐졌으니, IRA와 동조자들의 입장에선 피가 끓어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 정부에도 너무 심한 것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으나 이들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철의 여인마거릿 대처의 행정부다웠다.

 

단식 투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지켜보는 일도 끔찍하지만, 더 심각한 폭력은 단식을 강제로 중단시키기 위한 강제급식(force-feeding)이다. 얼핏 생각하면 단식으로 죽어 가는 사람에겐 강제로라도 음식을 먹여 생명을 구하는 것이 더 인도적일 것 같지만, 세계 의료협회(WMA) 1975년 전 세계 수감자들에 대한 가혹행위를 막기 위한 도쿄 선언(Declaration of Tokyo)’ 7항에서 모든 의사들은 일체의 강제급식 행위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단식 투쟁은 구금상태에 놓인 사람의 선택이며, 이를 강제로 막는 것이야말로 인권에 반하는 일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불행히도 단식이 아름다운 결과를 빚어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마도 가장 동화 같은 이야기는 1948, 마하트마 간디가 펼친 마지막 단식이 아닐까 싶다. 2차 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을 쟁취한 인도는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의 반목으로 심각한 내전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간디는 1948 113, 모든 계파가 유혈사태를 멈추고 평화에 동참할 때까지 식음을 전폐하겠다고 선언했다.

 

영국 식민주의와 맞서 평생 비폭력의 길을 걸으며 수시로 단식 투쟁을 감행한 간디였지만 이미 79. 단식을 한다면 며칠 버티지 못할 것임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5일만인 118, 인도 전역에서 총성이 멎었고 100여명의 각 종교 계파 지도자들이 간디의 처소 앞에 집결해 제발 단식을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불행히도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12일 뒤인 130일 간디가 권총으로 저격당해 숨지며 비극으로 끝났다. 범인은 힌두교 광신자 나투람 고드세로 밝혀졌다. 그의 총알은 인간애에 대한 호소, 비폭력 수단에 의한 투쟁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역시 산산조각을 냈다. (끝)

 

 

인도는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립국이 됩니다만, 종교로 인한 분리는 피하지 못합니다. 힌두교가 절대 다수인 인도를 남긴 채 1947년 이슬람교 우세 지역인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가 독립했고, 역시 불교 우세 지역인 스리랑카도 다른 나라가 됐지요. 아무튼 이런 분리 이후에도 온 나라가 심각한 종교 분쟁에 휘말려 죽고 죽이는 피바람이 일 때였습니다.

 

이 시점에서 간디는 원초적인 형태의 단식에 들어갑니다.

 

 

 

 

간디의 일생을 다룬 5시간 짜리 다큐멘터리. 4시간48분부터 이 최후의 단식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79세의 나이에 단식에 들어간 겁니다.

 

리처드 아텐보로 감독의 1982년작 '간디'의 후반부. 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단식 5일째인 간디에게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지도자들이 찾아와 더 이상의 유혈 사태가 없을 것을 약속하며 단식을 중단해 달라고 사정하는 장면.

 

무슬림들에게 자식을 잃은 복수로 자신도 무슬림의 아이를 죽였기 때문에, 자신은 지옥에 갈 거라는 힌두 전사에게 간디는 "지옥에 가지 않는 방법이 하나 있다"고 말합니다. "잃은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부모 없는 아이를 데려다 키워라. 단 그 아이는 무슬림의 아이여야 하고, 무슬림으로 길러져야 한다."

 

 

간디의 만년 이야기가 영화적인 과장이 아닌, 실제 역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어떻게 저런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1948년의 세상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인 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시절엔 저런 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지막으로 윗글에서 언급한 도쿄 선언의 제 7조 전문.

 

Where a prisoner refuses nourishment and is considered by the physician as capable of forming an unimpaired and rational judgment concerning the consequences of such a voluntary refusal of nourishment, he or she shall not be fed artificially. The decision as to the capacity of the prisoner to form such a judgment should be confirmed by at least one other independent physician. The consequences of the refusal of nourishment shall be explained by the physician to the prisoner.

 

수감자가 자의로 단식에 들어갔을 때, 의사는 그 수감자의 판단을 무시하고 비자발적인 강제급식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물론 스스로 마지막 순간을 맞지 않도록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해 환자의 몸 상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도 덧붙여져 있죠).

 

누군가 단식투쟁을 하고 있을 때, '인도적인 결정에서' 죽지 않게 보살펴 주자는 이유가 아니라, 그 수감자가 죽어서 영웅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강제 급식(force-feeding)'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단식 투쟁과 거의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 강제 급식은 그 자체가 고문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도쿄 선언은 '양심적인 의료인이라면' 거기 동참하지 말라고 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강제급식은 유명한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를 비롯해 수많은 감옥에서 현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보비 샌즈의 투쟁과 죽음에 대한 기록은 스티브 맥퀸 감독의 영화 '헝거'를 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아울러 주변에서 '진짜 목숨을 걸지 않은' 단식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한번쫌 보시라고 권해도 좋을 듯.

 

문득 근 30여년 전. "단식할 때 정말 아무 것도 안 먹니?" "물은 먹죠." "그것밖에 안 먹어?" "가끔 사탕 정도는 먹죠." "또. 그게 다야?" "저녁엔 초콜렛 정도는 먹어야 해요. 그래야 안 쓰러져요." 이런 바보같은 대화가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잘 나가고 있는, 상대방은 혹시 이 대화를 기억할런지.

 

 

728x90

많은 사람들은 영화 '해적'에 나오는 옥새 장면이 매우 굴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나라의 주권을 인정받기 위해 이웃 나라의 군주로부터 '그대들의 나라를 인정하고, 그대 나라의 국새를 보내 그것을 증명하노라'라는 칙명을 받는다는 건 현대적인 시각으로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 연원을 생각해 보면, 당시의 동아시아 상황에서 국새를 받는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모욕적인 일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쉽게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과거 조선이 명에 대해 취했던 자세와 마찬가지로 현재 대한민국은 미국에 대해 굴욕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도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 국경을 함부로 넘어 조업하는 중국 어부들 하나 단속하지 못하고, 이를 가로막던 해경 요원이 중국 어부에게 살해당해도 속시원한 조치를 하지 못하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 - 심지어 수많은 인권/재야 단체들 또한 여기에는 입을 다무는 현실을 보면, 대체 누가 어느 시대를 향해 사대주의적이고 종속적이었다고 욕할 자격이 있는지 참 궁금합니다.

 

옥새의 의미와 그 전달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봤습니다.

 

 

 

 

 

 

옥새

[명사] 玉璽. 나라의 권위를 상징하는 국왕의 인장. 흔히 국새(國璽)라고도 불린다. 각종 문서에 국가의 약속을 대신해 사용된다.

 

개인이 도장을 사용하듯 나라에는 국권을 대신하는 도장이 있다. 한자로 새()라는 글자 자체가 가장 높은 권위의 도장을 뜻하며, 굳이 옥으로 만들지 않아도 흔히 옥새라고 쓴다. 이는 아마도 국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전국옥새(傳國玉璽)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전국새라고 불리는 이 옥새는 한비자에 나오는 화씨의 구슬[和氏之璧]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 于天 旣壽永昌,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은 영원하리라)’의 여덟 글자를 전서로 새긴 것이다. 진에 이은 한()나라에서도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보물로 사용됐고, ‘삼국지연의에서 원소와 손견이 궁중 우물에서 발견된 이 전국새를 놓고 갈등을 벌이는 에피소드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이후에도 전국새를 가진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천하의 주인이라는 통념 때문에 수,당 시대까지 권력의 상징으로 존중받았다. 오대십국 시대의 후당 이후 전국새에 대한 기록은 사라졌고, 이후에는 모조품이 몇 차례 등장했을 뿐이다.

 

일각에서는 진짜 전국새를 사용한 사람은 진시황 한 사람 뿐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일찍이 진시황이 천하를 순시하던 도중 동정호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위태로워지자 옥새를 물에 던져 잔잔하게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황제의 권위로 동정호의 용을 진정시켰다는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왕은 노인으로 변신해 황제에게 다시 옥새를 전달했다고 한다.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에겐 이 모두가 황제를 신격화하려는 이벤트로 보일 수도 있다.

 

한반도의 여러 왕조에게 중국으로부터 국왕에 책봉되어 칙명과 국새를 받는 것은 정권의 정통성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매우 중요한 사업이 아닐 수 없었다. 삼국시대 이후 책봉례가 끊인 시절은 없었다.

 

고려는 원과의 오랜 전쟁 끝에 굴복하고 사위의 나라가 된 뒤, 부마국왕(駙馬國王)의 칭호로 옥새를 받았다. 반면 새로 건국한 명은 고려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1370,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이라 새겨진 국새를 보내왔다.

 

1392년 개국 직후 태조 이성계는 명에 사신을 보내 새 나라의 국호로 화령(和寧)’조선중 어느 것이 좋으냐고 질의했다. 화령은 함경남도 영흥의 옛 이름으로 이성계의 고향이다. 청을 받은 명 태조 주원장은 옛날부터 쓰던 이름이요, 불러서 아름다운 이름이라며 조선을 골라 줬다.

 

이로써 일단 정권의 정통성은 인정받은 셈이나 정식 책봉이 되려면 옥새 수령은 필수였다.  이성계는 1393년 고려 국새를 반납한 데 이어 1395년 태학사 정총을 사신으로 보내 옥새를 재촉했다. 하지만 당시 명은 정도전이 주도한 조선의 군비 확충을 우려 하던 터라 쉽게 국새를 내놓지 않았다.

 

 

 

 

 

 

결국 태종 1(1401) 612일에야 명으로부터 금으로 만든 국새를 지닌 사신들이 도착했다(국왕이 직접 받아야 하는 것이었으므로, 영화 해적에 나오듯 조선 사신이 대신 받아 가져올 수는 없었다). 태종은 매우 기뻐하며 두 사신에게 각각 7언절구를 지어 답례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2년 뒤인 1403 48일에도 역시 금인(金印)과 칙령을 전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2년만에 또 국새가 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진짜 고래가 삼켰는지도.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대단히 굴욕적인 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당시 중국의 책봉은 중화라 불리는 동아시아 문명의 일부에 편입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시각을 달리 하면, 책봉 여부는 문명과 야만을 나누는 기준으로 볼 수도 있다.

 

일본에는 중국 한나라 광무제가 내린 한왜노국왕(漢倭奴國王)의 인장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조선초인 1401년엔 무로마치 막부의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가 외교적인 노력 끝에 명으로부터 일본국왕지인(日本國王之印)이라는 국새를 받고 명의 왕위 책봉을 받아들였다. 막부의 권력을 인정받고 조공을 통한 명과의 무역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명이 청에게 대륙을 내준 뒤 청도 조선에 새로 국새를 보냈고, 정조 즉위년인 1776년에는 글자체를 만주체로 바꾸어 새로 보내기도 했다. 서유문은 무오연행록에서 이 국새에 대해 금으로 만들어졌고, 위에 거북이를 앉혔다. 안남(베트남)이나 유구(오키나와)에는 은으로 만들고 낙타를 앉힌 인장을 내린 것을 보면 우리(조선)와 대접이 다름을 알 수 있다고 서술했다. 소중화(小中華)의 자존심이 눈길을 끈다.

 

오늘날의 시선으로 지나간 역사를 매도하기보다는 과연 그 시대의 사대(事大)란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이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특히 G2시대의 한반도 권력자들과 지식인들이 이미 중국을 상대로 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과연 오늘날의 후손들이 자주성 운운 하며 조상들을 매도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P.S. 제발 옥쇄라고 쓰고 오타라고 우기지 말 것.

 

 

 

 

 

영화 '해적'에 잠깐 스쳐 등장한 국새의 모습입니다만, 실제로는 봉황이 아닌 거북이가 새겨져 있었던 듯.

 

 

 

 

명이나 청으로부터 받은 옥새는 외교 문서용으로 고이 간직하고, 내정용으로는 수시로 국새를 새로 만들어 사용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리고 청의 영향권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고 판단한 고종이 즉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기존의 조선국왕지인 대신 황제어새를 새로 만들어 사용한 것을 보면 자주성에 대한 인식이 분명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단지 조선 역사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실력의 뒷받침 없이 자주성이며 주권, 대의를 부르짖었던 댓가가 어떤 것인지는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입으로 자주와 자유를 외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자주성을 주장하고도 뒷탈이 없기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잠시 기분은 유쾌할 지 모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의 역사는 자존심 한 번 제대로 지킨 댓가를 그 이후의 몇 세대가 치렀던 일이 적지 않았음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시선으로 조상들을 함부로 비웃지 맙시다.

 

P.S. 이와는 별도로 '해적'은 참 유쾌한 영화였습니다.

 

728x90

[김수현 전지현 생수 광고 해지 논란]

 

난데없이 한류스타 김수현과 전지현이 생수 광고 때문에 뜻하지 않은 화제의 중심이 됐더군요.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인기 상종가를 달리던 이들이 중국 생수 광고에 출연한게 문제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게 큰 파문이 되면서 두 스타는 수십억원의 손해를 무릅쓰고 광고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내용을 읽어 보니 쓴 웃음이 먼저 나옵니다.

 

헝다 생수 업체의 원산지 표기가 백두산 아닌 장백산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큰 문제고,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것은 동북공정의 무시무시한 함의가 들어 있는 호칭이라는 주장이군요.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사전식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장백산

 

[명사] 장빠이산(長白山). 중국에서 백두산을 부를 때 사용하는 이름.


2014년 6월. 김수현과 전지현이 한 편의 광고 때문에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이들은 최근 중국의 헝다(恒大)그룹 계열 생수 업체의 모델로 등장하게 됐다. 그런데 일각에서 두 한류스타가 이 광고에 출연한 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이용당한 것이라고 주장을 제기했다. 이 생수 제품의 취수원이 백두산인데, 백두산 대신 ‘장백산’이란 이름이 표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리를 들어 보면 이렇다. 중국 정부는 최근 들어 장백산을 ‘중국 10대 명산’에 포함시키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이름을 장백산으로 못박아 놓고 ‘자기네만의 것’으로 왜곡하고 있다. 그러니 생수 산지를 백두산 아닌 장백산으로 표기하는 광고에 출연하는 것은 반민족적인(?) 행위라는 주장이다.


놀랍게도 이 주장은 일파만파로 번져갔고, 부담을 느낀 전지현과 김수현이 해당 생수 업체에 광고 모델 계약 철회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사실관계를 따져 보면 참 얼토당토 않은 일이다.


백두산, 혹은 장백산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에 천지라는 거대한 화산호가 있고 최고봉은 장군봉 혹은 병사봉이라고 불리며, 높이는 해발 2744m다. 많은 사학자들은 단군의 아버지 환웅이 개국한 태백산 신시가 바로 백두산 기슭이라고 보고 있다. 육당 최남선은 한민족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불함문화론’을 저술하기도 했다. 불함산도 백두산을 가리키는 별칭 중 하나다.

 

 


뭐니뭐니해도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의 가사를 보든, 북한에서 사실상 국가와 맞먹는 무게를 가진 '김일성 장군의 노래'가 '장백산 줄기줄기'로 시작된다는 점을 보든  이 산이 한국인의 정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한민족만이 이 산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왔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청을 건국한 누루하치는 자신들 만주족의 시조는 백두산 천지에 내려와 목욕하던 천녀가 신령한 열매를 먹고 낳은 아이라고 선언했다. 이 아이에게서 자신의 조상 아이신고로(愛新覺羅) 씨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를 포함해 만주 지역을 영유했던 모든 민족은 백두산을 영산으로 섬기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다산 정약용도 지인 신광하에게 준 글에서 ‘백두산은 산해경에 불함산, 각종 지리지에는 장백산으로 소개된다’며 ‘청 황제가 전통적인 명산을 말하는 오악(五嶽)에 백두산을 더해 육악으로 삼고, 때를 맞춰 제사를 지내니 존귀함과 중대함이 옛날에 비할 비가 아니다’라고 했다. 백두산, 아니 장백산이 중국인들에게 큰 의미를 가진 산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


국경 지역의 산이나 강이 국가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다른 경우 역시 드물지 않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을 이루는 알프스 산백의 남쪽 연봉들을 가리켜 오스트리아에서는 쥐트티롤(Südtirol), 즉 남 티롤이라고 부르고 이탈리아에서는 돌로미티(Dolomiti)라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쪽 끝 경계를 이루는 강은 중국에서는 헤이룽강(黑龍江), 러시아에서는 아무르(Amur)강이라고 부른다.


심지어 이 장백산이라는 이름은 동북공정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거의 천년 전부터 우리 조상들에 의해 흔히 사용됐다. 위에서 거론한 다산 정약용 뿐만이 아니다. 고려말 목은 이색은 ‘곡주공관신루기(谷州公館新樓記)’에서 "우리 나라의 영토는 삼면이 큰 바다에 닿았고, 북쪽으로는 장백산에 이른다(我國壤地。三面大海。北連長白山)"고 썼다.

 

 

 


1458년 신숙주가 집필한 ‘국조보감’의 세조 초 기록에도 “삼각산을 중악, 금강산을 동악, 구월산을 서악으로, 지리산을 남악으로, 장백산을 북악으로 삼자고 건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실록만 봐도 같은 산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백두산이 95회, 장백산이 40회 나온다.

 

1712년, 청태종은 사신 목극등 등을 보내 백두산을 기준으로 조선과 청의 국경을 구분하는 정계비를 세우게 했다. 여기에는 서위압록 동위토문(西爲鴨綠 東爲土門), 즉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송화강의 상류)을 국경으로 삼는다고 명기되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두만강 이북의 광활한 간도 지역을 조선 땅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청은 이 토문강은 발음이 비슷한 두만강이라고 우기며 간도 탈취의 야욕을 불태웠고 1909년 일본은 만주 철도 이권을 차지하는 대가로 간도를 중국의 영토로 인정해버린다. 이 간도협약이 체결되고 일제시대를 맞으면서 두만강 이북의 우리 강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62년 북한과 중국 정부가 맺은 변계조약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국경은 압록강-두만강 선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힘에 의해 실제 영토가 왔다 갔다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 한낱 생수병의 원산지 명칭이 그 나라 식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법석을 떨어 봐야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또 그 생수 광고에 출연한 한국 연예인을 놓고 역사 의식이 없다며 훈계하는게 가당한 일일까. 심지어 그 명칭은 수천년 동안 한-중 양국이 공유했던 이름인데 말이다.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끝]

 

 

 

 

 

 

 

 

그러니까 이 생수 광고 출연이 잘못됐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마치 '장백산'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중국이 '한국인의 영산'인 백두산을 빼앗기 위해 날조한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백두산-장백산의 관계가 독도-다케시마의 관계인 것처럼 본다는 얘기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백두산은 영토 분쟁지역도 아니고, 중국과 한국(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산입니다.

 

윗글을 읽고 나서, 동북공정의 장착 유무를 떠나, 대체 정상적인 중국 생수 제조 업체라면 그 생수의 원산지 이름을 어디로 표기해야 할 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 나라에서 쓰는 이름인지, 아니면 남의 나라에서 쓰는 이름이어야 할지.

 

현재 백두산은 천지를 중심으로 절반 정도는 중국 땅, 나머지 절반이 북한 땅으로(정확하게는 천지의 54.5%는 북한 것이고, 나머지 45.5%가 중국 땅이라고 합니다) 되어 있습니다. 물론 백두산 정계비를 우리 쪽 주장대로 해석해도 백두산의 30%는 중국 땅이었던 셈입니다만, 어쨌든 현재 백두산의 일부가 중국 영토이기 때문에 남한에 사는 한국인들도 백두산을 관광하러 갈 수 있습니다. 말하지면 그 분들도 백두산을 오른 것은 아니죠. 장백산을 오른 겁니다.

 

 

 

 

어쨌거나 생수 이름이 장백산인 것도 아니고, 그저 취수원이 장백산이라고 표기된 생수의 광고에만 출연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더구나 이걸 근거로 전지현이나 김수현이 생수 광고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 무슨 역사의식이 결여된 행동이라거나, 매국적인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 어이없는 얘기죠. 어처구니없는 사건 때문에 지금 막 일고 있는 중국 내 한류에 찬물을 끼얹는 거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

 

아마도 '1박2일'의 '백두산을 가다' 편이 준 감동을 지금도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이 프로그램에도 곳곳에 '장백산'이 붙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시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동북공정에 이용당한 바보같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주장하실 셈인가요.

 

 

 

 

 

 

 

 

 

 

자, 이제 다들 냉정을 되찾으시기 바랍니다.

 

길어서 이해 못하는 분이 있을까봐 정리해 드립니다.

 

1. 백두산은 옛날부터 한-중 양국에서 장백산이라고 불렸다. 지금도 그냥 장백산이라고 불러도 된다.

 

2. 만주의 모든 민족은 백두산을 숭상했다. 한국인에게만 백두산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게 아니다.

 

3. 동북공정이 문제 없다는 것은 아니나, 생수의 원산지 표기 때문에 뭐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4. 그러니 김수현 전지현 욕하지 말고, 이 기회에 제발 역사에 관심 좀 가져라.  

 

이상입니다.

 

 

728x90

밀린 문화어 사전 세일 기간입니다.

 

별 설명 없이 그냥 나갑니다.^^

 

사진은 신성일, 윤정희가 주연한 전설의 히트작 '내시'. (조여정 주연 '후궁'과 매우 흡사한 내용입니다.)

 

 

영충호 [명사]

: 영남, 충청, 호남 지방을 한꺼번에 일컫는 말.

전통적으로 영남, 호남, 충청 지방을 총칭하는 이름은 삼남(三南)이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는 따로 이 세 지역을 묶어 부르는 일은 별로 없었지만 인구 순에 따라 영남-호남-충청의 순으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13 812, 이시종 충북지사는 충청 지역 인구가 호남 지역 인구를 넘어선 데 맞춰 영충호 시대라는 신조어를 내놨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2 10월 기준으로 충청남북도와 대전,세종시 인구는 총 526만여명으로 전라남북도와 광주광역시를 합한 호남권의 525만여명보다 약 1만여명 많다. 이런 인구 변화는 대한민국 건국 이후 처음이다.

 

삼남 외에 영호남과 충청 지방을 한꺼번이 일컫는 조선시대의 표현으로는 양호(兩湖)와 영남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양호란 호남(湖南, 전라도)과 호서(湖西, 충청도)를 말한다. 이 호남과 호서는 모두 중국에서 동정호(洞庭湖)를 중심으로 그 남쪽과 서쪽을 가리키는 지명이지만 한국에는 동정호에 비길 만한 큰 호수가 없다. 그럼 대체 왜 호남과 호서라는 지명이 한국에서 쓰이게 된 것일까. 

 

이긍익의 연려실기술의 지리전고(地理典故) 편에는 전라도의 김제군 벽골제호(碧骨堤湖)를 경계로 해서 전라도를 호남이라 부르고, 충청도를 호서라고도 부른다. 또는 제천에 의림지호(義林池湖)가 있기 때문에 충청도를 호서라고 한다. 경상도의 고을들은 조령과 죽령 두 고개 남쪽에 있기 때문에 영남이라 부른다고 되어 있다.

 

김제 벽골제와 제천 의림지는 삼한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서깊은 저수지이긴 하지만 자연이 만든 호수도 아닌 터라 중국과 같은 지명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붙인 기준임이 역력하다.

 

P.S. 호서와 호남 모두 비슷하게 억지에 가까운 지명인데도 두 지명 가운데 오늘날 호서는 상대적으로 사라진 이름이 된 데 비해 호남은 여전히 널리 쓰이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다나다 [형용사]

 

: ‘대단하다의 영혼 없는(?) 표현

 

대단하다를 아무런 억양 없이 읽으면 대다나다가 된다. ‘대다나다로 쓰는게 일반적이지만, 발음의 특이점을 설명하기 위해 ...로 점을 찍어 쓰기도 한다.

 

의미도 그냥 대단하다는 뜻이긴 하지만, 진심으로 감탄하는 경우를 대단하다라고 쓴다면 내심으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영혼 없이’) 형식적으로만 인정해 주는 경우에 쓰는 말이 바로 대다나다인 것이다.

 

 

어원은 2013 123 MBC TV ‘라디오 스타에 소녀시대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로 추정된다. 유리가 요가 시범을 보이자 제시카가 대단하다고 칭찬했는데, 유세윤이 이 말에 아무런 억양이 없고,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라며 지적했다. 이후 이 말이 대다나다라는 표기로 굳어졌다는 것이 정설.

 

(위 동영상의 2:00~2:10 사이에 나옵니다.^^)

 

P.S. VIXX의 히트곡 ....는 가사 내용과 이 말의 뜻이 아무 상관이 없다(심지어 노래 안에 대다나다라는 가사가 나오지도 않는다).

 

 

 

순애보(殉愛譜) [명사]

 

: 연인을 따라 죽음을 택하는 슬픈 사랑 이야기

 

1939년 출간된 박계주 원작 소설 순애보는 오늘날 보기엔 다소 유치해 보일 수도 있지만 당대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희대의 히트작. 남자 주인공 문선이 인순과 명희라는 두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제목 순애보()’은 오래 전 왕이나 귀족이 죽을 때 하인들을 같이 묻는 순장(殉葬)  자다. 그래서 순애보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는 이야기라는 뜻. 하지만 이 순애보순수한 사랑 이야기라는 뜻의 순애(純愛譜)’로 착각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그러다 보니 별 심각하지 않은 사랑 이야기, 심지어 아무 위기 없이 잘 살고 있는 커플 이야기에도 순애보라는 표현이 남용되고 있다. 이재용 감독의 영화 순애보(純愛譜)’도 있지만,  한자 표기를 순()으로 쓴 경우의 90%는 별 생각 없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P.S. 물론 원작 소설 순애보에서도 문선이 죽을 각오를 하긴 하지만 죽지는 않음.

 

 

클리셰 [명사]

 

: cliché(불어). 본래 진부한 문구 혹은 상투적인 표현을 뜻하는 문학용어.

 

전통적으로 클리셰라는 말은 당연히 좋은 뜻이 아니다. 드라마로 치자면 재벌 2세인 기획실장님과 간신히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가난한 캔디가 회사 복도에서 부딪혔을 때 실장님이 아무 사과 없이 지나가려 하고, ‘캔디회장 아들이면 이래도 되는 거에요!”하고 화를 내며 실장님의 따귀를 때리는 뭐 그런 진행을 말한다.

 

하지만 최근 클리셰가 변명이 되기도 한다. 2013년 하반기 표절 시비에 몰린 수많은 가요들에 대해 작곡자들이 그건 장르적 클리셰일 뿐이라고 항변하면서, 클리셰라는 말이 대중에게 익숙해졌다.

 

장르적 클리셰라는 것은 일단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클리셰와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상투적인 표현(음악의 경우 곡의 진행)이라는 점은 맞지만, ‘그것이 없으면 그 장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인 특징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왕과 기사, 엘프와 용이 등장하는 것은 판타지 장르의 클리셰다.

 

하지만 판타지라는 장르에 무지한 사람은 드래곤 라자를 읽고 이건 반지의 제왕의 표절이잖아!”하고 흥분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도 이런 주장은 낯설지 않다. 90년대 그룹 넥스트를 이끌며 수차례 표절 시비에 오른 신해철은 댄스 음악을 모르는 사람은 오오, 이 듀스라는 녀석들은 서태지의 표절이구나!’ 할 수 있다며 특정 장르에 대한 무지가 무분별한 표절 논란을 확산시킨다고 일침을 가한 바 있다.

 

문제는 이 장르적 클리셰 이론도 이제 더 이상 대중을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 특정 리듬이나 멜로디, 곡의 진행은 부분적으로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지만 똑 같은 위치에 똑 같은 악기나 코러스를 배치한다든가, 왜 하필 특정 장르를 선택했는가와 같은 문제에 답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일부 대중은 또 많은 작곡가들이 이건 장르적 클리셰이므로 표절이라 볼 수 없다고 코멘트하는 것 자체가 동업자끼리의 의리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 법에서 표절 여부는 원저작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청구해야 법정이 판단할 수 있는 민법상의 개념이므로, 결국 그 곡의 표절 여부는 바로 전문가들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니 대중이 할 수 있는 것은 맨 처음 문제가 된 곡에 대한 고발’, 그리고 실제 판결 결과와 상관 없이 자신이 의심한 작곡가에 대한 선택적 거부 정도인 셈이다.

 

비트코인 [명사]

 

: Bitcoin. 2009년부터 세계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사이버 화폐의 이름

 

전 세계 모든 국가는 자국 영토 내에서 유통될 수 있는 화폐를 법으로 규정하고, 이 화폐 유통 질서에 도전하는 시도를 엄벌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데, 정보화사회가 발달하다 보니 온라인에선 사이버머니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오래다.

 

2013년 하반기 들어 갑자기 한국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한 비트코인은 사이버머니로 출발했지만 현실 사회에서의 통용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물론 온라인 게임 안에서 사용되는 게임머니나 아이템도 실제 화폐와 교환되는 경우가 꽤 많이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마트에 가서 디아블로3의 골드를 줄 테니 컵라면을 달라고 하면 어지간해선 통하지 않는다(물론 같은 길드원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싸이월드 도토리나 네이버 해피빈과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국내에서도 서서히 오프라인에서 비트코인을 이용한 상거래가 가능해지고 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비트코인의 최대 보유국이 중국이며, 그 이유는 중국이 비트코인을 이용해 미국 주도의 세계 통화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음모설도 등장했다. 비트코인을 만들어 낸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인물의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개인인지 집단인지도 불분명하다)이라 음모설의 등장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대가 사이버 머니의 탄생을 요구한다면 어차피 보통 사람들로선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 전 세계 온라인 쇼핑몰을 누비는 쇼핑 마니아들에겐 환전이나 환율을 따지지 않는 비트코인이 보편화되는 세상이 천국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철저하게 무기명이고 거래 흔적도 남지 않는 비트코인이 현재대로 발전할 경우 가장 좋아할 사람들은 마약 카르텔의 보스들이나 국제 무기상, 그리고 뇌물을 좋아하는 전 세계의 부패한 공직자들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드 '왕좌의 게임'에도 빠지지 않는 환관 역할.

내시 [명사]

 

 

: 內侍. 왕의 주위에서 시중을 들던 사람.

 

 

오늘날에 와서 내시라는 말은 흔히 환관(宦官)과 사실상의 동의어로 쓰이지만, 이 말은 처음부터 같은 뜻이 아니었다. ‘성기능을 상실하고 궁에서 일하는 남성을 가리키는 말은 엄밀히 말해 환관이다. 이에 비해 내시는 그저 권력자의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정도의 의미를 갖는 말이었다. 한국의 경우 14세기 이전, 고려 중엽까지 임금의 직속 비서 역할을 하던 엘리트 문관들을 내시라고 불렀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 ‘삼국지연의에도 조조의 사촌인 조인이 조조의 침전에 들어가려 하자 허저가 이를 막는 대목에 이 말이 나온다. “내가 조조의 친척인 것을 모르느냐고 꾸짖는 조인에게 허저는 나는 비록 친척이 아니지만 가까이서 모시는 사람이고(許褚雖疏,現充內侍), 주공이 취해 누워 있으니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구절이 있다. 혹시 이 내용을 보고 허저가 고자였다고 착각한 독자도 있을 수 있겠다.

 

유사 이래 아시아권의 다양한 왕정 체제에는 복수의 여인들이 거주하는 후궁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거세된 남성의 역할이 상시 존재했다. 최고 통치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므로 환관과 권력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특히 중국 명대 후기에는 환관들이 실질적인 재상 역할을 했으나 부패와 타락이 심해 당대의 석학 황종희가 명이대방록에서 환관들은 독약이나 맹수와 같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국왕의 시중 등 단순 업무만 처리하던 환관들은 고려 의종 이후 서서히 내시들의 영역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공민왕 5(1356) 내시부를 설치하면서 내시=환관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갔다. 고려 말에는 원의 영향으로 환관의 숫자도 많아졌고 특히 원의 조정에 진출한 고려인 환관들은 본국 내정에 간섭하며 세도가 행세를 했다.

 

조선 왕조는 내시부 체제를 계승해 1894년 갑오경장으로 내시 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유지됐다. 하지만 고려말 환관들의 악몽 탓인지 내시들의 권력 장악에 대한 견제를 엄격하게 유지, 간혹 부를 축적한 내시들은 있어도 권력을 휘두른 강한 내시의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2013년 이후 최고 통치자의 참모들이 지나치게 저자세로 처신, 소신 있는 행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내시 정치라고 비꼬는 용례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고위공직자는 내시도 아니고, 울지도 않았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중국의 역대 환관들이 모두 후한시대의 십상시처럼 나라를 어지럽힌 간신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환관 가운데서도 종이를 발명한 후한 때의 채륜이나 대함대를 거느리고 동남아시아 일대를 경략한 명초의 정화 같은 큰 인물들이 나왔다.

 

 

 

또 조선 세조 때부터 4대를 섬긴 김처선은 사대부들이 숨 죽이고 침묵할 때 연산군의 패악무도함을 직간하다가 팔다리가 잘려 죽은 의인이었다. 여기다 함부로 조선시대 내시처럼 행동하지 말라는 말을 하면 김처선의 영혼이 저승에서도 편치 못할 듯 하다.

 

P.S. 오만석 주연 드라마 '왕과 나'에서 오만석의 역할이 바로 김처선이었습니다. 연산군을 다룬 사극에선 김처선이 빠질 수가 없죠. 최근 '인수대비'에서는 맹상훈이 이 역할이었습니다.

 

고자는 한자로 鼓子라고 씁니다. 물론 한자에 본래 그런 뜻이 없으니 '고자'는 순 우리말이고, 그걸 한자로 맞춘 게 鼓子일 가능성이 큽니다. 실제 중국에서는 고자를 엄인()이라고 부릅니다.

 

 

드립치다 [동사]

 

: 특정 주제나 특정 형식으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다

 

인터넷 용어 드립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설이 있으나, 가장 널리 통용되는 것은 라틴어의 즉흥 대사를 뜻하는 약어 애드리브(ad lib)에서 온 것이라는 설이다.

 

즉 누군가 엄청나게 형편없거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으로 위기를 넘기려 했을 때, 누군가 개드립(+애드리브) 치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고, 이것이 더 단축되면서 그냥 드립으로 축소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드립의 예들을 보면 그때 그때 순발력을 이용해 발생하는 애드리브의 범주에 드는 것 보다는 나름 여러 날 고민해서 만들어 낸 듯한 경우가 많다. 특히 궤변에 가까운 논리를 공격할 때 ‘X드립 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편 드립의 어원이 드리블(dribble)이라는 견해도 있다. 축구나 농구에서 공을 몰 듯, 어떤 주장을 자신만의 생각으로 어이없이 몰고 가는 경우를 보고 비웃을 때 드립(드리블) 친다고 한 것이 시작이라는 것이다. 방송/연극/영화계에서 흔히 대사를 친다’, 애드리브 역시 친다고 표현하듯 체육계에서는 드리블도 친다고 말한다. 여기 비쳐 볼 때 충분히 그랬을 법한 표현이다.

 

드립치다라는 동사에서 출발한 드립은 접미어로 활용되며 ‘~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수작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아예 드립이라는 명사가 독자적으로 사용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세대가 사용하는 구라라는 말의 대체어로 자리잡아 가는 느낌이다. 개그맨 김구라의 데뷔가 한 10년쯤 늦었으면 김드립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728x90

[그린라이트] [싱글턴] [감성주점] [FA로이드] [예거밤] [아구아밤]

 

밀린 문화어 사전에 대한 묶음 특집입니다.

 

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반성의 뜻이기도... 아무튼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갑니다.

 

 

 

 

감성주점 [명사]

 

: 청춘 남녀가 짝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찾는 유흥업소

 

마땅히 정해진 짝이 없는 청춘 남녀가 다양한 핑계로 술자리에서 즉석 짝짓기를 해 온 것은 굳이 기원을 따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행위다. 그리고 각 시대에 따라 이 목적을 수행하는데 최적화된 업소들이 등장해 왔다.

 

대부분의 경우 술자리에서의 즉석 만남은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먼저 다양한 방법으로 매력을 발산하는 동시에 관심을 전달하고, 여자 손님들이 이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이뤄진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21세기 초까지 나이트클럽을 중심으로 업소에 고용된 직원들이 여자 손님들을 남자 손님들에게 데려가는 부킹이라는 방식이 유행했던 것이 주목할 만한 예외일 뿐이다. 정상적인 경우 1980년대에는 디스코텍, 90년대에는 락카페, 2000년대 이후에는 클럽이 만남의 장소로 핵심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보다 노골적으로 짝짓기가 목적임을 적시한 업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 등장한 부킹포차류의 주점들이 대표적이다. ‘부킹포차란 이름대로 외형상으로는 대형화된 일반 실내 포장마차와 차이가 없으나 손님이 20대 남녀로 제한된다는 점, 거의 모든 고객들이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의 동성끼리로만 구성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입장 자체가 이성으로부터의 접근을 바란다는 의사 표현인 것이다.

 

2013년 현재 번창하고 있는 감성주점은 이런 부킹포차의 형식이 확대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외형상으론 일반주점과 큰 차이가 없으나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며, 개중에는 아예 DJ박스와 스테이지를 갖춘 곳도 있다. 짝짓기가 주 목적이되 대부분의 업소에서 질서 유지를 위해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직접 수작을 건네기 보다는 종업원을 거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일부 업소에서는 남자 손님들이 여자 손님들에게 의사 표현을 할 때 간단히 사연을 쓴 카드를 이용하고 있고, 여자 손님들은 카드를 받은 뒤 승낙/거절 여부를 결정한다. 이때 카드의 수에 따라 여자 손님들은 술값을 할인받을 수도 있는데 이는 외모가 뛰어난 여자 손님들을 대량 확보하기 위한 업소 측의 프로모션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2013 10월 정부 당국에서 감성주점을 변태 영업으로 규정하고 단속에 나섰다. 손님들이 업장 내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려면 유흥주점 허가를 받아야 하나 대부분의 감성주점들이 세제 면에서 유리한 일반 음식점 허가를 받은 상태에서 변형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단속이 이미 젊은 층에 만연한 감성주점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궁금하다.

 

 

 

 

FA로이드 [명사]

 

: FA를 앞둔 선수들이 평소보다 뛰어난 활약으로 몸값을 올리는 것을 약물 효과에 빗댄 것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는 몸값 폭발의 기회가 있다. 바로 FA(Free Agent) 제도에 따른 것이다. 야구의 예를 들면, 한 구단에서 9년간 매시즌 경기수의 3분의 2 이상을 출전한 타자는 FA자격을 획득, 원 소속팀을 비롯해 나머지 모든 구단과 새로 계약할 수 있다. 물론 입단 직후부터 주전 자리를 확보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므로 FA 자격을 획득하는 데에는 대개 10년 이상이 걸린다.

 

FA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FA 자격을 갖게 되는 시즌, 9번째 주전 시즌에 확실한 성적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 해에는 이를 악물고 초인적인 성적을 내기 마련인데 이를 가리켜 ‘FA로이드라도 맞은 거냐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뒷부분의 로이드는 만국 공통의 스포츠 금지 약물인 아나볼린 안드로제닉 스테로이드(anabolic-androgenic steroid, AAS)에서 따 온 것.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남자 100m 금메달리스트 벤 존슨이 메달을 박탈당한 것이나 미국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홈런(762)의 배리 본즈가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스테로이드 사용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 시즌 종료 후 FA자격을 획득하는 프로야구 박한이(삼성)와 최준석(두산)은 올시즌 내내 그리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이 경우 적절한 표현은 “FA로이드 불발”). 하지만 이들은 팀이 한국시리즈에 오르자 맹타를 터뜨렸고, 결국 최종 승자 삼성의 박한이가 시리즈 MVP를 차지했다. 두산이 이겼다면 최준석이 만장일치 MVP를 받았을 상황. 이들은 조용한 시즌을 보내다 포스트시즌에 FA로이드를 폭발시킨 드문 경우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싱글턴 [명사]

 

: singleton. 독신. 1인가구

 

본래 수학에서 단위집합(원소가 단 한 개인 집합, unit set)을 가리키는 용어. 2013년 들어 1인 가구 독신자를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에 따르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소설 브리짓 존스의 일기때문. 어디 가서 별 실속 없는 노처녀라는 점을 지적 받고 브리짓이 분통을 터뜨리자 친구 살롯이 너도 내가 결혼하지 않은 건 싱글턴이기 때문이야, 이 잘난 체 하고, 겉늙은데다 편협하기 짝이 없는 병신아라고 맞받아 쳤어야지("You should have said 'I'm not married because I'm a Singleton, you smug, prematurely aging, narrow-minded morons,' Shazzer ranted.)”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싱글턴이란 말은 독신자가 스스로를 다소 높여 표현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국내에선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책 고잉 솔로 싱글턴이 온다이후 널리 퍼졌다. 한국어로 번역할 때 싱글은 독신자, ‘싱글턴독신 가구(1인 가구)’로 번역하는 경향이 크다. 하지만 이건 독신인 성인이 부모와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한국 실정에서나 의미 있는 이야기고, 영미인들에겐 사실상 싱글=싱글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글턴’ 이라는 말이 쓰이게 된 건 왠지 좀 격이 높아진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싱글을 싱글턴이라고 부른다고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고, 따라서 이런 표현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무한도전에도 출연했던 영국 배우 데이지 도노반은 브리짓 존스 시리즈가 우리에게 남긴 거라곤 싱글턴이라는 새로운 단어 하나 뿐인데, 그건 정말 최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린 라이트 [명사]

 

: Green Light. 청신호. 연애 관계에서 상대에게 대시해도 좋다고 보내는 OK 사인.

 

한국 어린이들은 횡단보도에서 파란 불에 길을 건너지만 미국 어린이들은 녹색 불에 길을 건넌다는 우스개가 있었다. 사실은 한국 신호등도 잘 보면 녹색 유리가 끼워져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청신호라고 부르는 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야구에서는 언제든 자의로 판단해 2루로 도루할 자격이 주어진 선수를 가리키도 한다.

 

 

2013년 하반기부터 JTBC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는 그린라이트를 켜라라는 코너가 등장하면서 이 용어가 젊은 층 사이에서 연애 용어로 확산되고 있다. 연애 초기 단계에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면, 그 관심을 알아챈 여자가 적극적인 호응의 뜻으로 보내는 사인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선 한 야구 전문 사이트가 이런 용법의 원조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영미권에서는 이 말이 오래 전부터 허가(permission)’와 동의어로 사용됐고, 남녀 관계에서도 ‘OK 사인라는 의미로 널리 사용돼 왔다. 비욘세 와 존 레전드는 모두 ‘Green Light’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데 두 곡 모두 내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청신호를 보내 줘라는 내용이다.

 

 

 

 

밤 칵테일 [명사]

 

: Bomb Cocktail. 맥주 대신 에너지 드링크를 사용한 신세대 폭탄주.

 

1980년대부터 아저씨들은 맥주잔에 위스키가 담긴 샷 글라스를 빠뜨리며 밤을 지샜다. 세월이 흘러 맥주와 위스키의 황금비율을 따지던 세대는 황혼을 맞았고 21세기 클럽가에선 독주와 에너지드링크를 배합한 신종 폭탄주가 전성기를 맞았다.

 

2013년 현재는 독일산 약초 리큐르인 예거마이스터가 주 재료인 예거밤과 코카 잎으로 숙성시킨 네덜란드산 리큐르 아구아(Agwa)를 이용한 아구아밤이 대세다. 한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클럽에서 각광받고 있는 칵테일들인데, 끝에 (bomb)’이 붙어 폭탄주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겐 더욱 친숙하게 느껴진다.

 

카페인 함량이 높은 에너지 드링크와 알코올의 결합은 술을 더 빨리 취하게 하는 동시에 잠을 쫓는 각성 효과를 발휘해 밤새 놀아 보세용 음료로 안성맞춤이다. 물론 단시간에 혈압을 올려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가 있는데, 술이라는 건 본래 산삼 녹용을 섞어도 많이 마시면 몸에 좋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작작 마셔라.

 

 

 

 

일각에선 밤 칵테일의 유행에 대해 외래 클럽 문화가 한국의 전통적인 폭탄주 문화를 망가뜨렸다고 한탄하기도 하는데, 몰라서 하는 얘기다. 맥주+위스키 폭탄주는 이미 미국에선 19세기부터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 위 사진)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왔다. 가난한 보일러공들이 빨리 취하기 위해 위스키를 원샷하고 맥주로 입가심을 한 것이 유래라는데, 지금은 맥주 잔에 위스키를 빠뜨려 먹는 제조법까지 한국의 원형 폭탄주와 똑같다.

 

 

 

 

 

728x90

 

이 포스팅은 추석 특집 문화어 퀴즈 http://v.daum.net/link/50019161 의 정답 공개를 위한 페이지입니다. 앞 글의 문제를 푸시고 모바일에서 정답이 안 보인다는 분들을 위해 페이지를 늘렸습니다.

 

답 없이 일단 문제를 풀어 보실 분은 앞 페이지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선 바로 답이 보입니다.^^ 뭐 그런데 가끔은 답이 바로 보이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더군요.

 

아무튼 정답은 이렇습니다.

 

 

 

 

  

추석 특집 문화어 사전은 문화어 퀴즈로 이뤄집니다. 최신 트렌드에 밝은 분들이 정답을 맞출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기성 세대가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문제들이 있으니 온 가족이 함께 풀어 보시고 세대간에 공감을 넓혀 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영역 I. 다음 보기 중 밑줄 친 부분과 같은 뜻인 것을 고르시오.

 

1. 그 무렵이 전현무의 리즈 시절이지.

1)     아무도 모르던 무명 시절

2)     전성기

3)     막 유명해지기 직전

4)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암흑기

 

답 2) ‘리즈 시절은 그냥 전성기라는 뜻. 박지성의 맨유 진출 이후 팀 동료였던 앨런 스미스를놓고 벌어진 일부 영국 축구 마니아들의 잘난척에서 비롯된 말.

 

 

2. 철수: LG가 올핸 정말 잘 하는데?

 영희: DTD 몰라?

1)     꿈은 이뤄진다 (Dream, true dream)

2)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own team down)

3)     무리한 팀은 떨어진다(Double team dead)

4)     항상 두 팀은 두각을 보인다(Double team done)

 

답 2)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김재박 전 LG감독의 말. 이 말이 족쇄가 되어 LG 2003년 시즌 이후 10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하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올해는 반전.

 

3. 컨트롤 비트 다운 받았습니다

1)     내가 반격할 테니 이제 각오해라

2)     이제 조직은 내 쪽에 있다

3)     어떤 음악이든 편곡할 수 있으니 원곡을 달라

4)     힙합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마라

 

답 1) 최근 벌어진 힙합 아티스트 사이의 디스(DIS) 논쟁 때 다이나믹 듀오 멤버인 개코가 했다는 말. 서로 디스를 하면서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의 컨트롤(Control)’이란 곡을 이용했으므로, “이제 나도 공격을 할 테니 너희들은 다 죽었어라는 의미.

 

4. 여자들의 가장 강력한 적은 이제 LOL이야.

1) League of Legends

 2) Lots of Love

 3) Language of Lane

 4) Laughing out Loud

 

답 1)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는 왕년의 스타크래프트처럼 2013년 한국 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최고 인기 게임. 한 인터넷 게시판에 남자친구가 lol 한다고 전화를 안 받고 문자로만 답해요라는 한탄에 다른 이용자가 , lol하는데 문자를 보낼 정도면 님을 정말 사랑하나봐요라는 답했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 요즘 젊은 층에선 lol에 빠진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5. 어머, 쌍수 밖에

 1) 양 손

 2) 쌍꺼풀 수술

 3) 빈 손

 4) 천한 수법

 

답 2) ‘쌍수를 들어 환영을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 등장하는 쌍수쌍꺼풀 수술의 준말. ‘쌍수는 성형도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중고생들에게까지 보편화된 성형수술의 기본이다.

 

6. 덕중 덕은 양덕 이라니까.

 1) 서양 오타쿠

 2) 養德, 덕을 기름

 3) 서양 오리

 4) 게임과 만화를 모두 좋아하는 오타쿠

 

답 1) 서구인이면서 일본 만화나 게임에 중독 양상을 보이며, 그 애정을 코스프레로 표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특히 아시아인에 비해 코스프레의 수준이 높다. 그 최고봉은 영화 퍼시픽 림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라는 평.

 

7. 영희: 오빠 나 김태희 닮지 않았어?

   철수: 답정너냐?

1)     오오, 이게 진정 너의 모습이냐?

2)     이런 질문 좀 안 하면 안되냐?

3)     김태희가 누구야?

4)     너랑?

 

답 2)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해라는 말의 줄임말. 특히 남녀관계에서 여자의 주도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답정너냐고 묻는 것은 제발 그만 좀 하라는 뜻.

 

 

 

영역 II. 보기 중 빈칸 부분에 들어갈 말을 고르시오

 

1. 양갱이란 본래 고대 중국에서 ________()로 만들던 것이다.

1)     양고기

2)     양미리

3)     버드나무

4)     붉은 콩

 

답 1) 양갱(羊羹)이란 본래 양고기를 끓여 나오는 국물을 굳혀 만들던 것.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지며 오늘날 팥이 들어간 과자가 됐다.

 

2. 갑을(甲乙)이란 20세기 이전엔 _____()란 뜻이었다.

1)     1등과 2

2)     어중이떠중이

3)     작년과 재작년

4)     급여를 미리 당겨 씀

 

답 1) 추사 김정희의 말 가운데 관악산의 샘물 맛이 두륜산과 비해 갑을을 논하기 어렵다(未知於頭輪甲乙何如)는 말이 나온다. 이때의 갑을은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인지라는 뜻.

 

3. ‘유명세(有名稅)뒤에는 ______라는 동사만 올 수 있다.

1)     타다

2)     치르다

3)     즐기다

4)     먹다

 

답 2) 한자를 보다시피 유명세는 세금이다. 따라서 유명세는 유명해진 대가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나쁜 점을 의미하는 말이며, ‘타다’ ‘즐기다등과는 함께 쓰일 수 없다.

 

4. 좀비(zombie)란 본래 _____에서 쓰던 종교용어다

1)     마니교

2)     조로아스터교

3)     부두교

4)     라마교

 

답 3) 부두교에서 주술에 걸려 움직이는 시체를 가리키던 말.

 

5. 여객기내에서 끓인 라면이 맛이 없는 건 ______ 때문이다

1)     화력

2)     기압

3)     승무원의 실력

4)     수질

 

답 2) 고공의 낮은 기압 때문에 물이 제 온도에 끓지 않아 맛이 없다. 항공사에서는 승객이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기압을 높이지만 그래도 지표보다는 꽤 낮은 0.8기압 정도다.

 

6. __________ ‘썰전은 가장 완벽한 TV 프로그램 입니다

1)     단언컨데

2)     단언컨대

3)     단연컨데

4)     단연컨대

 

답 2) 맞춤법 테스트. ‘단언컨대가 맞다.

 

 

7. “잠깐만요, 보라언니 이에서 시금치 ___________”

(주의: 문법적으로 옳은 것을 고르시오)

1)     빼시고 갈게요

2)     빼고 가실게요

3)     빼시고 가실게요

4)     제거하고 가실게요

 

답 1) 최근 국립국어원이 개그콘서트제작진에게 뿜 엔터테인먼트코너의 유행어 가실게요가 틀린 표현이라고 지적해 화제가 됐다. 주체 높임형 선어말 어미 '-'와 약속형 종결어미 '-ㄹ게'가 함께 쓰이면 안 된다는 것.

 

 

영역 III) _______안에 들어갈 수 없는 말을 고르시오.

 

1. 철수: 그 여자 참 예쁘지?

기영: 그러네. ________라고 할 수 있지.

1)이얼사 2) 볼매 3) 걸조 4) 흔녀

 

답 4) ‘이얼사는 이기적인 얼굴 사이즈, ‘볼매는 볼수록 매력있는 얼굴’, ‘걸조걸어다니는 조각’, ‘흔녀는 그냥 흔한 여자(훈녀와 착각 금지). 따라서 4.

 

2. 나 현찰이 없는데 혹시 ____()로 내면 안돼?

1)문상 2) 백상 3) 도상 4) 겸상

 

답 4) 1~3은 각각 문화상품권, 백화점상품권, 도서상품권

 

3. 조선시대 왕의 실명은 드라마 __________ 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뿌리깊은 나무의 이도

 2) ‘장옥정의 이순

 3) ‘이산의 이산

 4) ‘해를 품은 달의 이훤

 

답 4) 1~3은 각각 세종, 숙종, 정조의 실명. 조선시대에 이훤이란 왕은 없었음.

 

4. 반인반수는 __________ 같은 가상의 생물을 말한다.

 1) 켄타우로스

 2) 최강치

 3) 이누야샤

 4) 그리폰

 

답 4) 어쨌든 반인이려면 사람 형상을 해야 함. 그리폰은 사자, , 독수리, 독사가 혼합된 신화 속 생명체.

 

@fivecard를 팔로하시면 새 글 소식을 더 빨리 아실 수 있습니다.

 

 

728x90

추석 특집, 당신은 얼마나 문화인일까 맞춰 보는 코너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화인은 일반적인 문화적 소양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다만 얼마나 최신 문화 정보에 익숙하고, 세대를 뛰어 넘은 대화를 할 만한 자격이 있나 살펴보고자 하는 퀴즈입니다.

 

뭐 웃자고 풀어 보는 퀴즈이니 죽자고 달려들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정답은 각 문제의 아랫 부분을 마우스로 긁으면 나옵니다.

(모바일 버전에서는 곤란할수도. 모바일에서 풀어 보시고 PC에서 정답을 확인하세요.

혹시 잘 안 보이시는 분들은 정답 페이지 http://v.daum.net/link/50019484 참조.)

 

 

그럼 시작합니다.

 

 

 

 

추석 특집 문화어 사전은 문화어 퀴즈로 이뤄집니다. 최신 트렌드에 밝은 분들이 정답을 맞출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고 기성 세대가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문제들이 있으니 온 가족이 함께 풀어 보시고 세대간에 공감을 넓혀 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영역 I. 다음 보기 중 밑줄 친 부분과 같은 뜻인 것을 고르시오.

 

1. 그 무렵이 전현무의 리즈 시절이지.

1)     아무도 모르던 무명 시절

2)     전성기

3)     막 유명해지기 직전

4)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암흑기

답 2) ‘리즈 시절은 그냥 전성기라는 뜻. 박지성의 맨유 진출 이후 팀 동료였던 앨런 스미스를놓고 벌어진 일부 영국 축구 마니아들의 잘난척에서 비롯된 말.

 

 

2. 철수: LG가 올핸 정말 잘 하는데?

 영희: DTD 몰라?

1)     꿈은 이뤄진다 (Dream, true dream)

2)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Down team down)

3)     무리한 팀은 떨어진다(Double team dead)

4)     항상 두 팀은 두각을 보인다(Double team done)

답 2)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김재박 전 LG감독의 말. 이 말이 족쇄가 되어 LG 2003년 시즌 이후 10년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하고 하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올해는 반전.

 

3. 컨트롤 비트 다운 받았습니다

1)     내가 반격할 테니 이제 각오해라

2)     이제 조직은 내 쪽에 있다

3)     어떤 음악이든 편곡할 수 있으니 원곡을 달라

4)     힙합에 대해선 더 이상 묻지 마라

답 1) 최근 벌어진 힙합 아티스트 사이의 디스(DIS) 논쟁 때 다이나믹 듀오 멤버인 개코가 했다는 말. 서로 디스를 하면서 미국 래퍼 켄드릭 라마의 컨트롤(Control)’이란 곡을 이용했으므로, “이제 나도 공격을 할 테니 너희들은 다 죽었어라는 의미.

 

4. 여자들의 가장 강력한 적은 이제 LOL이야.

1) League of Legends

 2) Lots of Love

 3) Language of Lane

 4) Laughing out Loud

답 1)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s)는 왕년의 스타크래프트처럼 2013년 한국 게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최고 인기 게임. 한 인터넷 게시판에 남자친구가 lol 한다고 전화를 안 받고 문자로만 답해요라는 한탄에 다른 이용자가 , lol하는데 문자를 보낼 정도면 님을 정말 사랑하나봐요라는 답했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 요즘 젊은 층에선 lol에 빠진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5. 어머, 쌍수 밖에

 1) 양 손

 2) 쌍꺼풀 수술

 3) 빈 손

 4) 천한 수법

답 2) ‘쌍수를 들어 환영을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 등장하는 쌍수쌍꺼풀 수술의 준말. ‘쌍수는 성형도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중고생들에게까지 보편화된 성형수술의 기본이다.

 

6. 덕중 덕은 양덕 이라니까.

 1) 서양 오타쿠

 2) 養德, 덕을 기름

 3) 서양 오리

 4) 게임과 만화를 모두 좋아하는 오타쿠

답 1) 서구인이면서 일본 만화나 게임에 중독 양상을 보이며, 그 애정을 코스프레로 표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 특히 아시아인에 비해 코스프레의 수준이 높다. 그 최고봉은 영화 퍼시픽 림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라는 평.

 

7. 영희: 오빠 나 김태희 닮지 않았어?

   철수: 답정너냐?

1)     오오, 이게 진정 너의 모습이냐?

2)     이런 질문 좀 안 하면 안되냐?

3)     김태희가 누구야?

4)     너랑?

답 2)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넌 대답만 해라는 말의 줄임말. 특히 남녀관계에서 여자의 주도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답정너냐고 묻는 것은 제발 그만 좀 하라는 뜻.

 

영역 II. 보기 중 빈칸 부분에 들어갈 말을 고르시오

 

1. 양갱이란 본래 고대 중국에서 ________()로 만들던 것이다.

1)     양고기

2)     양미리

3)     버드나무

4)     붉은 콩

답 1) 양갱(羊羹)이란 본래 양고기를 끓여 나오는 국물을 굳혀 만들던 것. 이것이 일본으로 전해지며 오늘날 팥이 들어간 과자가 됐다.

 

2. 갑을(甲乙)이란 20세기 이전엔 _____()란 뜻이었다.

1)     1등과 2

2)     어중이떠중이

3)     작년과 재작년

4)     급여를 미리 당겨 씀

답 1) 추사 김정희의 말 가운데 관악산의 샘물 맛이 두륜산과 비해 갑을을 논하기 어렵다(未知於頭輪甲乙何如)는 말이 나온다. 이때의 갑을은 누가 1등이고 누가 2등인지라는 뜻.

 

3. ‘유명세(有名稅)뒤에는 ______라는 동사만 올 수 있다.

1)     타다

2)     치르다

3)     즐기다

4)     먹다

답 2) 한자를 보다시피 유명세는 세금이다. 따라서 유명세는 유명해진 대가로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나쁜 점을 의미하는 말이며, ‘타다’ ‘즐기다등과는 함께 쓰일 수 없다.

 

4. 좀비(zombie)란 본래 _____에서 쓰던 종교용어다

1)     마니교

2)     조로아스터교

3)     부두교

4)     라마교

답3) 부두교에서 주술에 걸려 움직이는 시체를 가리키던 말.

 

5. 여객기내에서 끓인 라면이 맛이 없는 건 ______ 때문이다

1)     화력

2)     기압

3)     승무원의 실력

4)     수질

답 2) 고공의 낮은 기압 때문에 물이 제 온도에 끓지 않아 맛이 없다. 항공사에서는 승객이 고산병에 걸리지 않도록 인공적으로 기압을 높이지만 그래도 지표보다는 꽤 낮은 0.8기압 정도다.

 

6. __________ ‘썰전은 가장 완벽한 TV 프로그램 입니다

1)     단언컨데

2)     단언컨대

3)     단연컨데

4)     단연컨대

답 2) 맞춤법 테스트. ‘단언컨대가 맞다.

 

 

7. “잠깐만요, 보라언니 이에서 시금치 ___________”

(주의: 문법적으로 옳은 것을 고르시오)

1)     빼시고 갈게요

2)     빼고 가실게요

3)     빼시고 가실게요

4)     제거하고 가실게요

답 1) 최근 국립국어원이 개그콘서트제작진에게 뿜 엔터테인먼트코너의 유행어 가실게요가 틀린 표현이라고 지적해 화제가 됐다. 주체 높임형 선어말 어미 '-'와 약속형 종결어미 '-ㄹ게'가 함께 쓰이면 안 된다는 것.

 

영역 III) _______안에 들어갈 수 없는 말을 고르시오.

 

1. 철수: 그 여자 참 예쁘지?

기영: 그러네. ________라고 할 수 있지.

1)이얼사 2) 볼매 3) 걸조 4) 흔녀

답 4) ‘이얼사는 이기적인 얼굴 사이즈, ‘볼매는 볼수록 매력있는 얼굴’, ‘걸조걸어다니는 조각’, ‘흔녀는 그냥 흔한 여자(훈녀와 착각 금지). 따라서 4.

 

2. 나 현찰이 없는데 혹시 ____()로 내면 안돼?

1)문상 2) 백상 3) 도상 4) 겸상

답 4) 1~3은 각각 문화상품권, 백화점상품권, 도서상품권

 

3. 조선시대 왕의 실명은 드라마 __________ 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뿌리깊은 나무의 이도

 2) ‘장옥정의 이순

 3) ‘이산의 이산

 4) ‘해를 품은 달의 이훤

답 4) 1~3은 각각 세종, 숙종, 정조의 실명. 조선시대에 이훤이란 왕은 없었음.

 

4. 반인반수는 __________ 같은 가상의 생물을 말한다.

 1) 켄타우로스

 2) 최강치

 3) 이누야샤

 4) 그리폰

답 4) 어쨌든 반인이려면 사람 형상을 해야 함. 그리폰은 사자, , 독수리, 독사가 혼합된 신화 속 생명체.

 

@fivecard를 팔로하시면 새 글 소식을 더 빨리 아실 수 있습니다.

 

 

728x90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올라갑니다. 이 글이 나가고 한참 뒤(그러니까 최근) 크레용팝의 '일베돌' 논란이 있었죠.

 

뭐 결론부터 얘기하면 뜻도 모르고 남들이 쓰니까 뭐 원래 있는 말인가보다 하고 쓴 사람들이 잘못인데, 그걸 갖고 응원을 하네 이제 정이 떨어졌네 하는 게 좀 우습게 보입니다. 애당초 이상한 표현을 만들어 낸 사람들에게 뭐라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그 말을 따라 쓰는 어린 친구들에게 그 말의 책임을 다 지라는 건 지나쳐 보입니다.

 

그 말이 잘못된 것이니 쓰지 말라고 타이르면 충분할 일 아닐까요.

 

 

 

문화어사전, 일단 '갑을관계'부터 시작합니다.

 

갑을관계[명사]

: 지시하는 자()와 실행하는 자(), 혹은 돈을 내고 일을 시키는 자()와 돈을 받고 일을 해 주는 자()의 관계

 

흔히 갑을관계라고 표현되는 말. 여기서의 갑과 을이란 대개 계약서상으로 돈을 대는 자와 돈을 받고 용역을 집행하는 자 정도로 요약되지만, 실상은 주도권을 쥔 자와 끌려가는 자정도의 의미가 된다. 당연히 을은 갑의 비위를 맞춰야 하고, 갑은 수틀리면 판을 뒤집어 을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까지만 해도 갑을이라는 말에 이런 의미는 들어 있지 않았다.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에도 삼한갑족(三韓甲族, 아주 오래 전부터 명문거족인 유서 깊은 집안)이란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역시 갑이 좋은 것이긴 하나, 그렇다고 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갑이 가장 좋은 것이라면 을은 그 다음으로 좋은 것으로 통했다.

 

추사 김정희의 서독(書牘)을 보면 이곳의 샘물 맛은 관악산에서 흘러내려온 것인데, 두륜산과 비해 갑을을 가리기 어렵다(此中泉味是冠岳一脉之流出者未知於頭輪甲乙何如)’라는 용례를 볼 수 있다. 여기에 쓰인 갑을이란 ‘1,2등을 가리다, 비슷하게 좋은 것들 사이에서 순위를 매긴다는 정도의 뜻이다.

 

갑을 관계이란 말이 지금의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현대적 계약서의 등장 이후다. 통상 모든 계약서에는 긴 회사 이름을 생략하기 위해 이란 대명사가 쓰인다. 이 경우에도 대부분 돈을 내는 쪽이나 정부 기관, 언론사, 대기업 등이 의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힘있는 쪽이란 등식이 성립했다.

 

이후 갑이 을에 대해 저지르는 강자의 횡포를 흔히 갑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물론 갑이 그렇게 말할 리는 없고, 힘없는 을들이 뒤에서 흉을 볼 때 쓰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갑을 관계가 얼마나 일반화되어 있는지는 한 중소기업 사장이 늘 로 살아가는 데 지쳐 자녀들에겐 항상 수입 브랜드 GAP을 입혔다는 농담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혹자는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 교육열도 자식 세대만큼은 갑의 위치에서 살기를 바라는심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20134월 이후 포스코 상무 사건, 제과회사 회장 장지갑 구타 사건, 남양유업 욕설 통화 사건 등이 잇달아 이슈가 되면서 갑의 도덕적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하청 업체와 대기업 사이의 관계를 풍자했던 KBS 2TV ‘개그콘서트갑을 컴패니코너가 한 달만 더 버텼더라면 화제를 선도하는 인기 코너가 될 수 있었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갑을 컴패니 2012년 연말 방송을 시작했으나 2013 3월 종방, 간발의 차이로 대목을 맞이하지 못했다.

 

그렇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그 다음.

말썽많은 '일베 용어' 차례.

 

민주화 [명사]

 

: (일베 사이트에서 쓰이는 의미) 뭔가를 억눌러 획일화시키다

사전에선 ‘민주적으로 되어 가는 것’이란 뜻. 1960년대 이후 90년대까지 한국 사회 운동의 지상 과제였다. 대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2013년 네티즌 세계에서는 다른 의미로 쓰일 때가 있다.

 

인터넷 사이트 일베저장소(www.ilbe.com)는 한국 온라인 이념지도에서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곳으로 통한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숭상하고, 5.18 사망자 사진에 ‘홍어 말리는 중’이라는 사진설명을 붙이는 포스팅이 재미로 올라오는 곳이다. 이 사이트에 올라오는 포스팅에는 두 개의 버튼이 붙어 있다. 다른 사이트의 ‘찬성’이 있는 위치에는 ‘일베로’라는 버튼, ‘반대’ 위치에는 ‘민주화’라는 버튼이 있다. 이 사이트에서 ‘민주화’란 곧 ‘싫다’ 혹은 ‘억누르다’ ‘반대하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반대로 ‘산업화’는 ‘좋다’ ‘추천한다’는 의미다.

 

514일 인기 걸그룹 시크릿 멤버 전효성이 라디오 생방 도중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소수 의견이라고 무시하거나 억누르지 않는다”는 의미로 ‘민주화’라는 말을 사용한, 너무도 ‘일베적’인 용법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6시간만에 전효성은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사용했다”며 공개 사과로 진화에 나섰지만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반면 일베 사이트에서는 “우리가 전효성을 보호해야 한다”며 음원 단체 구매 운동이 벌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일베식 표현' 때문에 혼이 난 사람 중에는 가수 김진표도 있습니다. 김진표는 한 방송에서 헬기 추락 장면을 보고 '운지하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을 썼다가 큰 항의를 받은 것이죠.

 

그 문화를 모르시는 분들은 '대체 왜 운지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 있는 단어냐'고 의아해 하시기 마련입니다. 그 내용에는 최민식이 나왔던 운지천 광고와 관련된 몇 단계의 파생 과정이 있습니다만, 굳이 아실 필요가 없습니다(시간 낭비죠). 아무튼 그 결과 어디선가 떨어지는 것을 '운지하다'라고 쓰는 표현이 나돌고 있는데, 그 표현의 출발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비하하는 것이라는 점만 알아 두시면 될 듯 합니다.

 

하지만 김진표 본인은 '전혀 그런 의미인지 몰랐다'고 곧 사과했습니다. 사실 모르는 사람이 '운지'라는 말을 들으면 그냥 '떨어진다'는 뜻으로 알아들을만한 여지가 충분합니다. 한자로도 隕地 라고 써 놓으면 그럴 듯 하기 때문입니다. 저 隕자는 '떨어질 운', 즉 '운석'의 운입니다. 앞뒤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본래 그런 말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멤버들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 트윗의 '노무노무'라는 말도 일베 사이트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라는 게 크레용팝을 '고발'한 네티즌들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한국어의 음상을 생각하면 '너무너무'를 '노무노무'로 쓰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뭐 크레용팝 소속사 대표라는 이 분은 확실히 그쪽과 친하신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사실 일베 회원들이 크레용팝이 인기를 얻는데 큰 기대를 했다면, 이쪽 소속사에서는 이 사이트에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 아닐까요.^

아무튼 사과든 해명이든 그리 깔끔하진 않았지만 거의 봉합되어 가는 느낌.

 

 

 

 

마마돌 [명사]

 

: 아이돌 출신으로 자녀를 둔 뒤 현역으로 복귀한 연예인

일본의 가수 겸 배우 마츠다 세이코(松田聖子) 때문에 생긴 단어다. 198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 아이돌이었던 마츠다는 1986, 24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결혼을 발표하며 무대를 떠났으나 87년 출산 후 곧바로 컴백, 미디어로부터 마마돌(Mama+Idol)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2013 116일 결혼한 원더걸스의 선예가 임신 발표를 하면서 국내에서도 마마돌 시대가 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팬들의 기대가 한창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룹 업타운 출신인 윤미래가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와 결혼해 2008년 이미 아들 조단을 출산했으므로 마마돌 1호로 불릴만한 자격이 있지만 일단 업타운이 아이돌 그룹이냐는 데 약간의 논란이 있고, 윤미래도 결혼 뒤에는 아이돌이라기보다는 힙합 아티스트의 이미지로 활동했으므로 마마돌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는 않았다.

 

순혈 아이돌 출신으로는 S.E.S 출신의 슈가 지난 2010년 결혼해 이미 아기엄마가 됐지만 결혼 시기가 전성기를 지난 뒤였고, 출산 후 사실상 활동이 없기 때문에 나이나 인기로 볼 때 국내 마마돌 1에 대한 기대는 선예 쪽으로 몰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선예가 출산후 선교 활동을 하겠다는 입장이라 원더걸스의 앞날이 불투명해진 것... 소속사에선 일단 전혀 검토된 바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과연 어떻게 될지.

 

 

 

731 [명사]

 

뜻: 20세기 초 제국주의 일본의 만주군 휘하에 있었던 특수부대의 이름.

피점령국 국민을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생체실험으로 악명이 높다. 2차대전 종전 후에도 한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으나1980년대 이후 발견된 기밀 문서를 통해 그 실체가 공개됐으나 이 시설에서 얼마나 많은 한국인, 중국인, 몽골인 포로가 희생됐는지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하얼빈 교외에 있었던 유적은 현재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다

 

이 부대의 만행을 단적으로 상징하는 말이 마루타라는 단어다. 이 부대에서는 실험용 포로를 통나무를 뜻하는 마루타라고 불렀다. 지난 2009년 국회 질의응답 중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는 마루타라는 말을 아느냐는 질문에 전쟁 포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리고 “731부대가 뭔지 아느냐는 질문에는 , 항일 독립군이라고 대답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한 바 있다. 정 총리는 나중에 알고 있었으나 질문자가 너무 다그쳐 말을 끝맺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2013, 무뇌아적인 역사인식으로 줄곧 극우파적인 행동을 일삼아 온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513 ‘731’이라는 숫자가 붙은 항공자위대 훈련기에 탑승한 사진을 공개해 다시 말썽을 빚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독일 총리가 나치 문양이 새겨진 전투기에 탑승한 것과 같다고 강도높게 비판했고 미국에서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P. S. 음모설 하나. 지난 2006 721, 일본 민방 TBS731부대의 실체를 밝히는 시사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이 방송의 한 장면에 아무 맥락 없이 당시 내각 관방장관직을 맡고 있던 아베의 사진이 등장해 화제가 됐다. 자민당이 발칵 뒤집혔고 원인 조사가 이뤄졌으나 제작진의 단순 실수로 결론이 내려졌다.

당시 자민당 총재를 노리던 아베는 "고의라면 내 정치생명을 노린 음모"라며 격분했지만 그 이상의 사실은 밝혀진 바 없다.

 

 

 위의 전투기 사진은 많이 보셨겠지만 마지막에 언급한 이야기는 꽤 오래 전 일입니다.

 

 

 

 

그러니까 2006년 7월21일, TBS의 '이브닝 파이브'라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731부대 관련 내용이 등장했고, 그 보도 과정에서 별 맥락 없는 아베 당시 장관의 선거 포스터가 노출됐다는 겁니다.

 

정상적인 반응은 '대체 아베와 731이 무슨 관계?' 라는 식이었을 것이 분명하고, 아베 본인은 당연히 펄쩍 뛰었죠. TBS 측은 사과.

 

 

흥미로운 것은 일본 우익 사이에서는 TBS가 "재일교포들의 지배를 받는 반일 방송"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진실은 저 너머에.

 

어쨌든 2006년의 이 사건이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면,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할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

 

워낙에 별 맥락 없는 사건들의 연속인데다, 시간이 좀 경과한 것들이라 더 어수선하게 보이는군요.^^ 아무튼 오늘의 포스팅은 여기까지.

 

 

 

 

728x90

좀비 영화 '월드워 Z'의 반향이 꽤 컸던 듯 합니다. 인터넷 서점에 들러 보니 아직도 맥스 브룩스의 원작 소설 '세계대전 Z'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가 아직도 장르소설 부문 차트에 올라 있더군요. 최근에는 김봉석 평론가의 '좀비 사전'이라는 새 책도 나왔습니다.

 

아래의 정의는 그냥 아주 압축된 내용이라고 보시면 될 듯 합니다. 물론 진짜 좀비가 어디선가 나타나 여러분을 공격할 거라고 생각진 않지만, 왜 갑자기 첨단 과학이 검색자 마음까지 읽어주는 21세기에 걸어다니는 시체 이야기가 사람들의 관심사가 됐는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문화어 사전 (6)


좀비[명사]

뜻: 살아 있는 시체


좀비(zombie)는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서 사용되는 크레올(Creole)어로 ‘움직이는 시체’라는 뜻이다. 부두교 주술사가 시체에 마법을 걸어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 것을 말한다. 서구 전설 속의 언데드(undead)와 사실상 같다.


미국 대중문화 시장에 좀비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전설적인 호러 전문배우 벨라 루고시 주연의 1932년작 ‘화이트 좀비’라는 것이 정설이다. 이후 좀비 영화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의 성공으로 상업적인 폭발력을 과시하며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거듭났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는 ‘좀비’라는 말이 아예 나오지 않지만, 로메로가 정립한 세 가지 원칙, ▲사람의 살을 먹이로 하고 ▲뇌를 파괴해야만 동작을 멈추며 ▲좀비에게 물린 사람은 좀비가 된다는 설정(1954년 나온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은 이후 거의 모든 좀비 영화의 기초가 된다. 이후 ‘좀비의 정의’에 가장 심취했던 사람은 영화 ‘월드워Z’의 원작자인 맥스 브룩스다.

 

 

 

 

소설(가상 논픽션) ‘세계대전Z’와 ‘세계대전Z 외전’을 쓴 맥스 브룩스는 저서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를 통해 좀비의 유래와 발생 근거, 신체적 특징과 퇴치법을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규정했다. 그러나 정작 브룩스의 작품을 기초로 한 영화 ‘월드워Z’는 브룩스의 설정을 여러 곳에서 무시하고 있다. 브룩스가 묘사한 좀비는 인간의 절반 정도 속도로 움직여야 하지만 영화 ‘월드워Z’의 좀비는 표범처럼 날쌔고, 심지어 점프력도 뛰어나다. 그래서 영화 ‘월드워Z’는 원작 팬들로부터 심한 비판을 받았다.

 

 

인기 미드 '워킹 데드'는 좀비 역을 연기하는 엑스트라를 공모하는데 경쟁률이 수백대 1까지 올라가는 초 인기라고 합니다. 대체 왜 이렇게 좀비 되기를 갈망하는지...^^

 

 

심지어 이런 좀비 분장 도구까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파는 곳은 여기.

http://www.funshop.co.kr/goods/detail/25055?t=s 

 

뭐 재미있을 거 같긴 합니다만...^^

 

 

 

1970년대 이후 살아 움직이는 시체를 부르는 이름은 ‘좀비’로 통일되어 가는 분위기지만, 아직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이름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강시(殭屍)다.


전승에 따르면 강시는 본래 변방에서 군역을 살다가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은 시체를 말한다. 이 시체들을 남쪽 고향으로 운반하기 위해 도사의 법력을 이용,  한줄로 세워 멀리 이동하게 했다 는 것이다. 죽어서 굳은 시체이므로 무릎을 굽히지 못하고, 양발로 콩콩 뛰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강시(殭屍)가 등장하는 문헌으로는 청나라 때 기효람(紀曉嵐)의 소설 ‘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가 대표적으로 꼽힌다. 무공이 뛰어난 의원 호궁산(胡宮山)이 젊어서 강시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남는 이야기다. 이 강시는 눈에서 붉은 빛이 나고 송곳니와 손톱이 길었는데 온몸이 통나무처럼 단단해 때리고 차도 끄덕없었고, 간신히 나무 위로 피신해 목숨을 건졌다는 것이다.

 

이 강시의 모습은 1980년대 홍콩에서 대유행한 강시 영화에 그대로 적용됐다. 그 대표작인 임정영 주연 ‘강시선생(1985)’은 중국어권을 비롯한 동남아권에서 크게 히트했고, 서구에도 ‘Mr.Vampire’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다만 본래 산 사람의 양기를 빨아들이는 강시가 송곳니로 사람을 깨무는 것으로 묘사된 것은 명백히 뱀파이어 영화의 영향이다.

 

 

 

라고 쓰긴 했습니다만, 사실 홍콩 영화계에서도 강시 영화의 원조를 찾자면 아무래도 홍금보 주연 '귀타귀(1980)' 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듯 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미 강시, 시체 조종, 귀신 쫓는 마법 등에 대해 나올 것은 다 나왔습니다. 심지어 나중에 '강시선생' 시리즈의 최대 수혜자가 되는 배우 임정영도 이 '귀타귀'에 출연했죠.

 

최근 들어 창작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기존의 설정들을 무시하고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괴물들에게 새로운 성격을 부여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느리고 사고력이 없는 기존의 좀비들과 달리 21세기의 좀비들은 빠르고(‘28일 후’), 강력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며(‘월드워Z’), 심지어 연애까지 할 수 있는(‘웜 바디스’) 존재로 급격히 진화하고 있다.

 

 

 

 


유명세(有名稅) [명사]

 

뜻: 명성을 얻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불이익

많은 사람들이 ‘유명해짐으로서 얻는 기세, 혹은 지위, 혹은 특전’ 등의 뜻이라고 오용하는 말. 이 때문에 ‘아빠 어디가’에 출연하는 어린이들도 유명세를 ‘타고’, 벚꽃 철을 맞으면 관광 명소들이 유명세를 ‘누리고’, 아이돌 스타들은 해외에서도 유명세를 ‘떨친다’는 표현이 난무한다.

그렇지만 ‘유명세’는 한자로 有名稅라고 쓴다. 잘 보면 ‘세’가 ‘권세 勢’가 아니고 세금 稅’다. 즉 ‘유명세’란 ‘유명해졌기 때문에 내야 하는 세금’, 즉 ‘명성의 대가로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불이익’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유명세를 얻다’나 ‘유명세를 누리다’, 심지어 ‘유명세를 타다’ 등은 써서는 안 되는 잘못된 표현이다. 어디까지나 유명세는 ‘치르는’ 것이다. 한류스타가 된 연예인이 마음대로 시장 떡볶이집에 갈 수 없는 경우나,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싸이월드에 쓴 글 때문에 곤경에 처하는 것 등이 ‘유명세를 치르는’ 좋은 예.

 

 

이건 아무리 강조해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틀리게 쓰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유명세를 탄다'고 쓰면 안 됩니다. '유명세를 치르다' 만이 맞는 표현입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들이 마구 쓴다고 해도, 배운 사람은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728x90

요즘 '리즈시절'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됩니다. 대략의 의미를 알고 쓰시는 분도 있고, 그냥 남들이 쓰니까 쓰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가끔 꽤 엉뚱한 의미로 쓰시는 분들이 눈에 띄는게 조금 거슬립니다.

 

사실 '리즈시절'같은 말은 세월이 얼마가 흐르든 절대 사전 같은 곳에 등재될 말도 아니고, 누가 그런 의미에 크게 얽매일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리즈 시절'같은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은 분명 그 사회의 필요성에 의한 것이고, 왜 그런 말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정도는 누군가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문화어 사전]이란 항목으로 나오는 글들은 그런 목적에 따른 것들입니다.

 

 

 

 

 

리즈 시절 [관용구]

: 간단히 말해전성기

2005년 박지성이 전통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을 때, 같은 맨유 소속이던 앨런 스미스를 두고 일부 팬들이앨런 스미스도 리즈 시절엔 날아다녔는데라며 자신의 축구 지식을 자랑한 것이 유래다.

 

여기서 리즈(Leeds)는 영국의 프로 축구 클럽 리즈 유나이티드를 말하며, 이는 곧나는 박지성 때문에 영국 프로 축구에 관심을 가진 너희와는 달라라는 잘난 척이다. 하지만 이후 ‘OOO의 리즈 시절이라는 식의 관용구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연예인을 지칭할 때에도 널리 사용되며옛날’ ‘성형 전’, 심지어학생 시절을 가리키는 말로 오용되는 사례가 눈에 띈다. 하지만 원 뜻은 어디까지나가장 빛나던 시절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리즈 유나이티드는 21세기 들어 무리한 구단 운영으로 성적이 추락, 2004 2부 리그로 강등된 이후 1(프리미어 리그)에 올라올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내 축구 팬들이 안방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볼 기회는 거의 없었다.

 

저 위 사진이 바로 리즈 유나이티드 엠블렘을 자랑스럽게 들어 올리고 있는 앨런 스미스입니다. 2000-2001 시즌 리즈를 UEFA챔피언스리그 4강까지 올려놓은 것이 앨런 스미스의 선수생활 중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즈가 몰락한 것은 위에서 적은 바와 같고, 팀 말고 앨런 스미스 개인으로 봐도 98-99 시즌 EPL에 데뷔해 리즈에서 뛴 첫 6년 동안 38골을 넣었고, 다른 팀으로 이적한 뒤 현재까지 10년 동안 10골을 넣었으니 확실히 리즈 시절이 그에겐 최고의 나날이었던 듯 합니다. 아무튼 당시엔 벤 애플렉을 연상시키는 미모가 매우 출중했군요.

 

결론적으로 '리즈 시절'이라는 말은 '가장 잘 나가던 시절'이란 뜻입니다. 그냥 '옛날', 심지어 '사람들이 잘 모르던 시절'이란 뜻으로 쓰시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진에도 '리즈 시절'이라는 제목이 붙어 돌아다니는데, 물론 재미있긴 하지만 이런게 '리즈 시절'은 아니라는 거죠.^^ 뭐 말의 의미라는 것이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니 계속 쓰이다 보면 아예 이런게 '리즈 시절'이란 뜻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송혜교는 여전히 리즈 시절의 한복판이군요. 시들지 않는 미모와 인기.

 

 

 

 

 

 

미란이[고유명사]

 

올란도 블룸의 아내인 세계적인 톱모델 미란다 커(Miranda Kerr)를 한국 팬들이 친근하게 부르는 이름. 퍼스트네임인 미란다와 한국 여자 이름인미란의 발음 유사성에서 기인한 것이다.

 

이런 식의한국식 명명은 한국인 특유의 가족주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레이 아나토미로 유명한 캐서린 헤이글은 한국 소녀 네일리(Naleigh)를 입양한 덕분에김서린이라고 불린다.

 

 

 

이 계열에서석호필(石虎弼)’ 웬트워스 밀러를 빼놓을 수 없다. 밀러가프리즌 브레이크에서 맡았던 캐릭터 이름인 스코필드를 한국식으로 변형한 이름인데, 사실 이 이름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스코필드 박사가 원조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을 서구에 알린 공로 등으로 1968년 건국훈장 독립훈장을 수상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리스트는 1627년 풍랑에 밀려 도착한 네덜란드인 얀 벨테브레(Jan Weltevree)에 도달한다(흔히한국에 도래한 최초의 서양인으로 오인되는 하멜보다 26년 빠르다). 끝내 조선을 탈출한 하멜과 달리 벨테브레는 박연(朴燕)이란 한국 이름으로 적응해 잘 살았고, 병자호란에도 종군했다. ‘하멜 표류기에도 박연이 하멜의 탈주를 말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후 구한말엔 고종의 외교 고문 목인덕(穆麟德, 독일인 파울 폰 묄렌도르프), 영국 언론인 배설(裵說, 어니스트 베델), 연희전문 설립자 원두우(元杜尤, 미국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 등이 이 전통을 이었다. 물론 거스 히딩크의 애칭 희동구(喜東丘)도 이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뭐 한두분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거론하기는 그렇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가문을 꼽으라면 아에 '연희 원씨'라고 스스로 부르는 언더우드 패밀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원두우-원한경-원일한-원한광 박사에 이르기까지 4대가 120년간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집안이니 누가 이분들을 외국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희동구 이야기는 전에도 거론한 적이 있으니 링크로 대신합니다.^^

히딩크는 왜 희동구가 되었나?     http://fivecard.joins.com/43

 

 

소공녀(小孔女) [명사]

 

: 모공이 작아 HDTV의 압박을 견딜 수 있는 피부 미인

 

한자가 다른소공녀(小公女)’는 미국 여류 작가 프랜시스 버넷이 1888년 펴낸 소설 ‘Little Princess’의 일본 번역판 제목. 한국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된 뒤 아동문학의 고전으로 오랜 기간 동안 사랑받아왔다. 부유한 장교의 딸로 민친 기숙여학교 학생이던 사라 크루(Sara Crewe)  아버지가 행방불명 된 뒤 학교의 하녀로 신분이 급전직하되지만, 강인하고 낙관적인 성격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다.

 

하지만 2013년의소공녀(小孔女)’는 글자 그대로모공(毛孔)이 작은 여자라는 뜻. HDTV의 등장 이후 많은 여자 연예인들이피부나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고화질에 대한 공포를 호소해 왔고, 그 뒤로 피부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도자기 피부’ ‘단백질 인형등의 표현이 대표적이며 급기야소공녀까지 등장했다.

 

2013 5월 한 유명 피부클리닉에서 내원객 547명을 대상으로최강의 소공녀를 설문조사한 결과 미스A의 멤버 수지가 35%의 지지로 당당 1위에 뽑혔다. 19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불공평한 결과일 수도 있겠으나, 그만치아기 피부에 대한 여성들의 염원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P.S. 소설소공녀의 영원한 파트너인소공자(小公子)는 같은 프랜시스 버넷이 1886년 펴낸 ‘Little Lord Fauntleroy’의 번역판 제목. 두 작품이 한 작가의 작품이란 것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뉴욕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소년 세드릭(Cedric)이 어느날 영국 귀족인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후계자가 되기 위해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미국 여자와 결혼한 아들을 버렸던 완고한 할아버지가 영리하고 품성 좋은 소년 세드릭의 힘으로 인간미를 되찾게 되는 훈훈한 이야기다.

 

버넷은소공자’, ‘소공녀는 물론 1909년작비밀의 화원(Secret Garden)’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물론 현빈 하지원 주연의 드라마와는 무관한 내용이다.

 

 

 

 

 

프란시스 버넷 여사는 작품세계와는 달리 매우 씩씩하게(?) 생긴 분이더군요.

 

 

아무튼 소공자, 소공녀, 비밀의 화원을 모두 같은 분이 썼다는 것 정도는 기억하셔도 좋은 일일 듯. 참고로 JTBC에서도 곧 전현무-오상진-오현경이 진행하는 '비밀의 화원'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됩니다. 아, 물론 이것도 소설과는 무관한 미스코리아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잘 찾아 보시면 보너스 사진이 있습니다. 인디애나 존스3 스타일.^^

 

 

http://www.egotastic.com/photos/miranda-kerr-topless-surprise-during-photoshoot-in-miami/miranda-kerr-topless-surprise-in-miami-04/

 

@fivecard5를 팔로하시면 새글 소식을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래 숫자를 누르시면 추천이 됩니다. 이거 꽤 중요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