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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과 동성애, 공민왕과 자제위 얘기는 요즘 갑작스레 너무 조명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지겨우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와 남성 무장 집단의 관계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구합니다.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인 성호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보면 화랑의 유래에 대한 고찰에서 '화랑(花郞)이라는 것은 꽃같은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는 남색의 무리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 부분에서 보면 그 시절의 동성애라는 것은 요즘 얘기하는 유전자의 결정설이나 피치 못할 끌림과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어찌 보면 남성성을 좀 더 강화하는 데 있어 결속을 다지는 일종의 스포츠같은 측면도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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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쌍화점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에는 신성대(Sacred Band of Thebes)라는 특수부대가 있었다. 테베의 최정예 부대인 이 무장집단의 특징은 150쌍의 동성애자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었다. 잘 싸웠을까? 물론이다. 이들은 기원전 338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끌던 마케도니아군에게 전멸당할 때까지 무적을 자랑했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연인에게 부끄러운 꼴을 보이지 않으려 서로 보호하면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이들에게 이길 군대는 세상에 없었다”고 전할 정도다.

이들 외에도 세계 역사에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무장집단과 동성애 사이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혹자는 화랑 오계의 교우이신(交友以信)에서도 단순한 글자 이상의 의미를 읽곤 한다.

지난해 12월 30일 개봉한 유하 감독의 영화 '쌍화점'이 첫 주 15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등 화제 만발이다. 고려 왕(주진모)과 그의 호위대장 홍림(조인성) 간의 동성애가 특히나 관심을 끈다. 미남 스타들이 연기하는 동성애 장면이 마케팅의 수단일 뿐이냐, 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냐는 예견된 논쟁이 일어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공민왕에 대한 왜곡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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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왕이 공민왕이라고 가정할 때, 주요 내용은 『고려사』의 기록과 상당히 일치한다. 금실이 두터웠던 몽골 출신의 왕비 노국공주가 죽은 뒤 공민왕은 여색을 멀리하고 1372년 궁중에 명문 귀족 청년들로 구성된 자제위(子弟衛)를 둔 뒤 남자들과 음행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구중궁궐에 사지가 성한 미남 청년들이 들어섰으니 사고는 예견된 일. 자제위의 일원인 홍륜이 공민왕의 계비를 임신시켰고, 공민왕은 홍륜을 제거해 추문을 막으려다 되려 홍륜 패거리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보고 싶은 분은>
 

과연 공민왕은 동성애자였을까. 일부 사학자들은 그 또한 조선의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 왜곡의 희생자였으며 문제의 자제위 역시 공민왕을 보위하던 세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뒤를 이은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소생이라고 깎아내렸던 당시의 분위기를 봐선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다.

물론 이런 논의는 모두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시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쌍화점'이 극장에서 화제 속에 개봉되고 꽃미남들의 키스신이 여성 관객을 위한 서비스로 간주되는 요즘 같은 시대라면 사관들은 어떤 흠결을 찾아내야 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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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 신성대에 대한 기록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정확한 명칭은 '비교 열전')'의 펠로피다스 편에 나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신성대를 구성한 사람은 장군 고르기다스라고 하는군요.

카에로네아에서 마케도니아군과 싸웠을 때에도 이들은 선 자리에서 후퇴하지 않고 그대로 전사해 용명을 떨쳤습니다. 이 시기의 다른 기록을 보면 뒷날 카에로네아의 전투 지역을 발굴한 결과 254구의 유골이 7열로 줄을 맞춰 발굴됐다고 하는군요. 아무튼 이들의 용감성에 대해 플루타르코스는 "감히 이들의 위업을 의심하는 자에게는 그 즉시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도 '향연''에서 이 신성대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내용은 플루타르코스의 것과 대동소이합니다. 요지는 "연인과 함께 싸우는 이상 누구도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이죠.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동성애자는 평화를 사랑하는 유약한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을 깨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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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시기의 문건들을 보면 (동성간의) 우정은 (남녀간의) 사랑보다 훨씬 숭고하고 우아한 감정의 경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물론 여성들간의 우정은 거론되지 않습니다. 그만치 우정-동성애는 남자들만의 특권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녀간의 교합이란 사회의 유지와 자녀의 출산을 위한 다소 기능적인 것이었던 반면, 남자들끼리의 사귐은 함께 학식과 무예를 연마한 친구들 끼리의 깊은 정신적 교감이 육체적인 것으로 승화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먼 그리스 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신라의 화랑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듯 합니다. 물론 한없이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그래서 위서 논란도 한창인) '화랑세기'에도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룬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마복자 관계 등을 통해 은유를 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시대를 뛰어넘어 공민왕과 자제위의 관계를 볼 때도 이것이 과연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는 동성애와 같은 것일까 하는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자제위의 홍륜이 여자인 익비와도 사고를 쳤듯, 이들에게 있어 남자들끼리의 동성애는 여자와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이 아니라 고대 전사집단의 남성간 결속 강화의 수단으로서 이뤄지던 행위의 전통이 계승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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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식의 생각은 자칫하면 수시로 문제가 되는 군내 동성애의 존재에 대한 옹호의 논리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죠. 집단 전체의 암묵적인 동의하에서 이뤄지는 관계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상급자의 폭력을 통해 이뤄지는 관계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현대의 군 내에서 동성애가 금기시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튼 '천추태후'때도 얘기했지만 그 천년 전의 일을 요즘의 시각으로 재단하려 하는 것은 항상 심각한 문제와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가끔은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해도 그때 사람들에게는 왜 이런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을까, 당시의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예전에도 그랬는데 요즘 그러면 어때'라는 시각 또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덧붙여야겠죠.



영화 '쌍화점'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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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중앙일보에 매주 토요일마다 '분수대'라는 칼럼을 연재하게 됐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칼럼인 터라 감히 제가 거기에 숟가락을 디민다는게 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상명하복. 시키는 일은 다 하자는게 좌우명인 만큼 열심히 해 보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첫회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문득 '재석아, 이 상 내가 받아도 되나'를 외치는 강호동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자로 결정되고 나서도 "재석아! 재석아! 재석아아!"를 외쳤던 그입니다.

강호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수시로 '대한민국 최고 MC는 유재석'을 주문처럼 사용합니다. 얼마 전, '무릎팍도사'에 김건모가 두번째 출연했을 때에도 "죄송합니다. 제가 무능해서... 대한민국 최고 MC 유재석이었다면 이렇게 두번씩 나오시게 하지 않았을텐데..." 로 웃음을 자아내더군요. 그런데 반대로 유재석이 강호동을, 특히나 '대한민국 최고 MC 강호동'이라고 언급하는 모습을 보신 분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10월 말, '1박2일'의 현장 기자 동행 취재 때에는 유재석과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을 받고 "누가 뭐래도 최고는 유재석이다. 흠잡을 데가 없다"고 다시 못박기도 했습니다.

왜 강호동은 유재석을 그리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유재석은 강호동을 의식하는 모습이나 발언을 하지 않을까. ('오늘은 내가 받아도 되나'를 언급이라고 치면 곤란합니다. 이건 그냥 응수 수준) 이 궁금증이 바로 이번 글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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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인자

1962년. 미국의 조그만 렌터카 회사 에이비스(Avis)가 야심 찬 슬로건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합니다(We Are No.2. We try harder)'.

이 광고는 신화적인 성공을 거뒀다. 말이 좋아 2위지 당시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던 허츠(Hertz)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던 에이비스는 이 광고 연작의 성공에 힘입어 그 한 해에만 50%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지금도 업계 1위는 아니지만 2007년 말 현재 자산 규모가 69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업이고, '넘버2 마케팅'이란 말은 온갖 광고 교과서에 실렸다.

'누구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에이비스의 전략이 성공한 이유는 뭘까. 넘버2 마케팅의 핵심 공격 대상은 자신보다 앞선 1등이 아니다. 자신과 엇비슷한 3등, 4등, 5등들이다. 당시 에이비스의 넘버2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마치 에이비스와 허츠가 렌터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줬고, 의도대로 에이비스는 고만고만했던 동급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1위를 위협할 수 있는 라이벌로 성장했다.

이런 속뜻을 파악하지 못하면 넘버2 마케팅은 별 의미가 없다. 국내에서도 스스로를 2위로 내세우는 보험사 광고, 라면 광고 등이 있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외형만 흉내 냈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몸소 실천해 성공하고 있는 연예인이 있다. 바로 강호동이다.

한국갤럽이 매 연말 실시하는 '올해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유재석은 2008년에도 49.9%의 지지로 4년 연속 최고 개그맨으로 꼽혔다. 강호동은 37.7%로 2위. 그런데 강호동은 지난 한 해 내내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 최고 MC는 유재석”이라고 지나칠 정도로 강조했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28일 KBS 연예대상을 받고도 “재석아, 이 상 내가 받아도 되겠니”라는 소감을 남겼을 정도다.

강호동은 2008년 3대 지상파TV 중 KBS와 MBC의 연말 연예대상을 거머쥐었고, 유재석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됐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최고가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보여주며 특유의 공격적인 이미지를 순화시키는 효과까지 누렸으니 2008년 연예계의 진정한 승자는 그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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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문에 실리는 글의 한계는 지면의 한계입니다. 한줄 더 쓰면, 두배 길이로 쓰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지면의 한계라는 것은 항상 치열한 타협을 요구합니다. 저 칼럼의 길이는 1150자입니다. 이 정도 길이에 이런 스타일의 칼럼이라면 '어, 이런 것도 있었구나'라는 시각의 제공 정도가 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비스의 넘버 투 마케팅은 광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성공사례입니다. 20세기 광고계의 신화적인 인물인 윌리엄 번박이 만들어 낸 이 광고는 일단 '누구나 광고를 할 때는 강해 보이고, 커 보이고, 뛰어나 보이고 싶다'는 너무도 기본적인 원칙을 깼다는 데서 탁월성을 보여줍니다.

'1등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한 뒤에 곧바로 역습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차를 이용해야 할까? 1등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심히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재떨이도 잘 비운다. 세차가 덜 된 차나, 낡은 타이어를 끼운 차를 고객에게 내놓는 짓은 상상할 수도 없다....' 등등입니다. 1등 자리만 양보했을 뿐 제대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2탄, 3탄이 계속 이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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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이 나자 아예 'No.2 ism' 이란 말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런게 고객에게 먹혀 든 겁니다. 그리고 어쨌든 칼끝은 1등을 겨누고 있지만, 본문에서도 적고 있듯 정작 칼바람을 맞는 것은 다른 3, 4, 5등입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공격받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대로 칼을 맞고 나뒹구는 신세가 됩니다.

물론 한때 허츠도 에이비스의 공세를 의식, 역공을 취하기도 합니다. 내용인즉 '1등이 1등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차 대수, 대리점 수, 기타등등,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측면에서 1위업체에게 모두 상대가 안 된다면 뭐라고 할까요? 우리라도 '우리 차는 재떨이를 잘 비웁니다'라고 할 겁니다"라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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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은 분명 에이비스와는 다른 2위입니다. 두 사람은 명실상부한 양강 체제의 주역이고, 아주 냉정하게 여론 조사 결과를 수용해 강호동을 2위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차이는 미세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상적인 경우라면 양쪽 모두 '사실은 내가 1위'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경우고 만약 그게 보기좋지 않다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사람들이 알아서 '투 톱'임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강호동은 굳이 '유재석이 1위고 나는 2위'라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강호동만의 넘버 투 마케팅이라는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듯 유재석의 강점은 부드러움, 강호동의 강점은 강렬함입니다. 체구나 외형으로 봐서는 강호동이 압도적으로 강한 인상이죠. 이런 상황에서 강호동의 '2위 인정'은 진행 능력을 떠나 사람의 됨됨이까지도 평가의 대상이 되는 한국 연예게에서 대단히 훌륭한 처신입니다. 강호동으로서는 프로그램 속에서 보여주는 다소 거친 면모를 벗어나 세심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적 겸손'은 강호동의 공격적인 개성을 해칠 수준이어서는 안되죠. 유재석과 같은 노선으로 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강호동에게 더욱 이런 전략이 유리할 수 있는 것은, 그렇다고 유재석이 강호동의 강점을 부분적으로 채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겸손과 인화의 MC로 국민적인 호감도가 극에 달해 있는 유재석이 굳이 과거의 '깐죽이기'로 돌아가거나, 강호동 식의 우격다짐을 시도해 봐야 결과는 마이너스일 뿐입니다.

결국 강호동의 '2위 처신'은 현재로서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전제는 모두 유재석이라는 거물의 존재가 있을 때의 상황입니다. 만약 현재의 구도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ex. 유재석의 전격 은퇴?)가 생긴다면, 그건 그때 또 달라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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