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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든 생각은 - 누구라도 비슷했겠지만 - 정말 한 시대가 마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죽음과 비교하자면 결례일지도 모르겠지만, 한 시대를 이끌고 가던 인물의 사망 소식이라는 건 비슷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의 위업이나 생애에 대해서는 이미 수많은 정리가 있었을 겁니다. 여기선 생략하고, 이 분의 죽음에 임해 '화해'를 표방하고 나선 김영삼 전 대통령에 눈길이 갔습니다. 지난해 연말만 해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DJ에 대해 "정신이 이상해도 보통 이상한게 아니다"라는 말로 원색적인 비판을 했던 YS입니다. 그런 그가 DJ의 병문안을 가 "화해라고 봐도 좋다"고 말하고, 추모의 코멘트를 하는 모습은 여러가지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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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라이벌

기원전 1세기. 카이사르와 로마의 1인자 자리를 다툰 최강의 라이벌은 폼페이우스였다. 3두 정치의 두 축을 이뤘던 두 사람은 결국 내전으로 정면 대결에 들어갔다. 패주하던 폼페이우스를 뒤쫓아 이집트까지 간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가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가담한 자들을 모두 처단해버린다. 이를테면 라이벌에 대한 마지막 예의다.

역사를 장식한 라이벌들은 상대로 인한 위협이 사라진 순간, 때로 일생을 사귄 친구처럼 유대감을 드러내곤 했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재위 초기 사촌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때문에 줄곧 왕위를 위협당했다. 엘리자베스가 결국 메리를 사형에 처하자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이를 빌미로 무적함대를 동원해 영국을 공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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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 1세는 자신의 후계자로 굳이 메리의 아들 제임스(뒷날의 제임스 1세)를 지목했다. 메리에 대한 정신적인 보상도 작용한 게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물론 모든 라이벌 관계가 아름답게 끝나지는 않았다. 중국 전국시대 방연(龐涓)은 최고의 전략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손빈(孫臏)의 다리를 잘랐고, 복수에 나선 손빈에게 패한 방연은 최후까지 “이렇게 해서 어린 놈이 명성을 얻는구나(終於成就了這小子的名聲)”라고 분개하며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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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보수당의 디즈레일리와 자유당의 글래드스턴에게도 마지막 화해란 없었다. 1881년 4월 디즈레일리가 사경을 헤맬 때 글래드스턴은 문병 한번 가지 않았다. 빅토리아 여왕의 권유에도 글래드스턴은 “가 봐야 할 말도 없다”며 거절했다. 디즈레일리가 국장을 사양하고 개인 장례식을 택한 데 대해서도 글래드스턴은 “겸손해 보이려고 쇼를 하는 것”이라고 빈정댔다.

디즈레일리가 죽은 다음달, 글래드스턴은 의회에서 송덕문을 낭독하게 돼 있었다. 마지 못해 짧은 송덕문을 읽은 글래드스턴은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이라고 불평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비하면 대한민국 1인자의 자리를 놓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생을 경쟁한 YS와 DJ의 마지막 화해 분위기는 훨씬 훈훈한 풍경이다. 물론 이들의 진정한 협력이 20년, 30년 전에 있었더라면 대한민국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지만, 구태여 이를 따지기에도 퍽 긴 세월이 흘렀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9단들의 시대'가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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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그당의 글래드스턴과 토리당의 디즈레일리는 평소에도 디즈레일리가 재난과 불행의 차이에 대해 "글래드스턴씨가 강물에 빠진다면 그건 불행이지만 누군가 그를 건져 준다면 그것은 재난"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지독한 앙숙이었습니다.

물론 빅토리아시대의 총리로서 두 사람은 누가 더 위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였고, 이 시기의 영국은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총리직을 수행하는 가운데 세계 최강국의 자리를 굳게 지켰습니다. 누군가의 표현을 빌자면 영어를 세계 공용어의 자리에 올려 놓는 데 초석을 제공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인물들도 상대방이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에서도 용서나 화해의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는 건 참 의외의 일이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에게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한국식의 사고방식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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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DJ와 YS의 화해(...뭐 좀 일방적이긴 합니다만)를 보고 있으면 1987년을 정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의 두 사람의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갑니다. 특히 1987년의 단일화 실패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습니다. 물론 '정치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던 두 사람인 터라 더욱 쉽지 않았을 거라는 해석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들 두 사람을 포함해 몇몇 사람을 가리켜 흔히 '정치 9단'이라고 부릅니다. 예측불허의 한국 정계에서 50여년간 정상의 길을 걸어왔다는 것만 봐도 이런 호칭에 의아해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9단'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것이 한국 정치사의 비극인지도 모르겠습니다.

9단의 시대란 마주보는 9단이 없으면 별 의미가 없을 겁니다. '9단의 한수'는 그 의미를 짐작하고 대응하는 다른 9단이 없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DJ의 서거를 진정으로 아쉬워 할 사람은 YS라는 말이 그리 과장은 아닐 듯 합니다.

이런 9단들의 시대가 갔다는 것이 과연 발전일까요, 아니면 퇴보일까요. 그건 세월이 알려줄 것 같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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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정우성의 기무치 파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보드카의 원조 전쟁(?)에 대한 소개를 간략하게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책에서 그 이야기를 보고 시간이 좀 지난 터라 약간 부정확한 인용이 있었는데, 다시 참고해서 정확한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나오는 책은 일본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견문록'입니다.

최근 한국의 술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몇몇 일본 대형 주류사들이 막걸리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김치-기무치 전쟁'이 재현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습니다. 이번엔 막걸리 대 맛코리가 되는 셈이겠죠.

관심있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서 정리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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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걸리

보드카는 어느 나라 술일까. 스카치 위스키의 고향이 스코틀랜드이고, 사케 하면 일본이듯 보드카라면 러시아가 떠오르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 '정답'은 공짜가 아니었다. 일본 작가 요네하라 마리의 『미식 견문록』에 따르면 1977년 유럽과 미국의 주류회사들이 소련 정부가 생산한 보드카에는 보드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자신들이 보드카를 상품화한 것(1918년)이 소련 정부(1923년)보다 5년 빠르므로 배타적 우선권을 갖는다는 내용이었다.

수백 년 전부터 보드카를 마셔온 러시아인들의 입장에선 황당무계하기 이를 데 없는 얘기였으므로 역사책 한번 들추는 것으로 이 문제는 가볍게 해결됐다. 그러나 같은 1977년 폴란드 정부가 “보드카는 16세기 폴란드에서 발명됐으며, 다른 나라는 보드카라는 이름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하자 느긋하던 소련 정부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즉시 자료 조사팀이 발족돼 고문서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5년간의 분쟁(?) 끝에 1982년 러시아는 '보드카의 조국'으로 공인받았고 보드카의 출생 연도도 1446년으로 확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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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논쟁은 한국인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한국이 자랑하는 발효식품 김치의 국제 공식 표기가 kimchi 아닌 kimuchi가 될 뻔한 쓰라린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2001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kimchi'를 공식 표기로 인정하면서 이 분쟁은 끝났다.

최근에는 서민의 술 막걸리가 관심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막걸리가 일본에서 인기를 얻으며 일본의 대형 주류업체들이 '일본산 막걸리'를 내놓을 것이란 얘기에 국내 주조사들이 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 아닌 맛코리(マッコリ)에 시장을 빼앗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등장했다.

물론 일련의 사태로 인해 막걸리의 국적이 흔들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쌀로 만든 탁주가 한국만의 술은 아니다. 일본에도 니고리자케(にごり酒)가 있고 중국도 일찍부터 요(醪)를 만들어 마셨다. 오히려 이들의 존재가 막걸리의 우수성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욕심을 내자면 '막걸리는 본래 한국 술'이란 것만 인정받는 걸로는 부족하다. 이미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보드카 생산국 자리를 미국에 내준 지 오래다. 주류업계가 분발해 상품으로도 '한국산 막걸리'의 인기가 죽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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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막걸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위 사진의 니고리자케 때문입니다.

쌀로 만든 술을 덜 걸러 만든 니고리자케는 눈으로 보기에도 막걸리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도수가 한국산 막걸리보다 좀 더 높다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똑같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리스의 우조와 터키산 라키의 차이 정도라고나 할까요.

다만 일본에서도 '별반 자극 없는 맛'이라는 이유로 대중들에게 인기있는 술은 아니라고 하는군요. 이런 비슷한 술이 있는데도 한국산 막걸리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건 이색적이기도 하면서 막걸리의 우수성(?)을 알게 해 주는 부분이라 하겠습니다.

중국에도 막걸리가 있(었?)다는 것 역시 문서자료로 충분히 확인이 가능합니다. 한자로 막걸리를 뜻하는 요(醪)라는 글자는 이미 병서 '육도삼략'에도 나올 정도로 역사가 유구합니다. 사실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없이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현대 중국에서 이 요는 사전에 '강미주(江米酒)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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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주란 이렇게 생겼습니다. 술보다는 식혜에 더 가까운 모습인 듯 합니다. 이런 술은 들어 본 적도, 당연히 마셔 본 적도 없습니다. 혹시 중국에서 강미주라는 것을 접해 본 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역대 제왕 중에는 막걸리에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분들이 많습니다. 농민의 술이라는 이유에서였죠. 그리고 연산군(하필 연산군이라서 좀 그렇지만) 막걸리를 소재로 한 시를 두 편이나 썼다는 사실이 왕조실록에 기록돼 있습니다.

그중 한 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掉雀爭枝墮, 飛蟲滿院遊。
濁醪誰造汝 一酌散千憂

참새는 가지를 다투다가 떨어지고
비충도 원에 가득히 노니고 있네.
막걸리야 너를 누가 만들었더냐
한 잔으로 천 가지 근심을 잊어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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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말했지만 동양 3국에 모두 탁주 문화가 있다는 사실은 막걸리의 독자성을 절대 훼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3국 중에서 탁주를 이만한 경쟁력있는 물건으로 키워낸 것은 한국 뿐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겠죠.

비교하자면 이 3국 가운데 쌀로 만든 청주(淸酒)문화가 없는 나라도 없습니다. 중국 하면 40도가 넘는 백주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찹쌀로 만든 소흥주(紹興酒)는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입니다. 한국 역시 천년이 넘는 청주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세계적으로 이 청주 문화의 원조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나라는 일본입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쌀로 만든 술 = 사케'라는 식의 관념이 널리 퍼져 있을 정도죠. 그냥 사케도 아니고 정종(正宗)이라고 불리면서 말입니다. 이 정종은 일본 사케의 한 브랜드인 마사무네(正宗)를 한국식 한자음으로 읽은 것입니다. 우리 말이 아닙니다.

여튼 황급히 보드카 얘기로 마무리를 하자면, 현재 보드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주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보드카도 러시아산이 아닌 스웨덴 원산의 압솔루트라는 점, 세계에서 보드카를 가장 많이 만드는 나라도 미국이라는 점 등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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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학교를 다니게 된 덕분에 막걸리를 좀 마셔 봤습니다만, 솔직히 이 술을 값진 술이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마시고 트림하면 냄새가 환장하는 술, 안주를 덜 먹어도 배 부른 술, 너무 마셔서 토할 때에는 가장 호쾌하게(?) 뿜어 나오는 술, 바지에 튀기면 잘 안 지워지는 술... 유난히 봄날 아침이면 여기 저기 토해져 있어 시큼한 냄새를 풍기곤 했던 술에 대해 그리 아름다운 기억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희한하게 나이를 먹고 공기 좋은 곳에 가면 시원한 막걸리 한사발(여러 사발은 좀 곤란합니다)에 두부나 파전이 입맛을 당기더군요. 보쌈이나 감자지짐에도 제격이죠. 이런 막걸리 맛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p.s. 그런데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 막걸리의 영문 표기가 Makgeolli 라는 건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걸 읽으라는 것인지... 그냥 Makoli나 Macoly 정도로 간편하게 쓰는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의미를 살려서 Takju로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해외 언론들이 막걸리를 Milky Sake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던데, 빨리 이름 알리기부터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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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책, '미식견문록'은 이번 휴가철에 본 책 중 최고의 강추작으로 꼽을 만 합니다. 해박한 저자가 넓고 광대한 맛의 세계에서, 누구라도 쉽게 들어보지 못했을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펼쳐놓는데, 그야말로 한번 잡으면 정말 손에서 책을 놓기가 힘들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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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해운대'의 흥행 폭발은 엄청납니다. 공식 집계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래 전 영화 '친구' 때를 생각해 보면 부산 지역에서의 흥행 성과가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부산 해운대 지역의 올해 피서철 매출이 예년이 두배 가량 된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해운대'를 보다 보면 살짝 아쉬운 구석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출연진 중 부산 사투리를 쓰지 않는 사람이 손으로 꼽을 정도인 이 영화가, 정작 보여주고 있는 '부산 사람'이나 '부산'의 모습이 너무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해운대'는 부산 바깥에 사는 한국인들은 물론, 아시아 각국 사람들에게 부산과 해운대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부산 사람', 혹은 '부산'의 이미지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살짝 느껴져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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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해운대, 고향 사랑은 좀 더 지나쳐도 좋지 않았을까

여기저기서 사투리 마케팅이 한창이다. 얼마 전 영화 '킹콩을 들다'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어필하더니 방송에선 왕년의 히트작 영화 '친구'의 리메이크 드라마가 "고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를 재탕하고 있다. 곧이어 새 드라마 '탐나는도다'를 통해서도 제주도 사투리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물론 영화 '해운대'를 빼놓을 수 없다. '해운대'는 등장인물 중 90%가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영화다. 한국어에 능통한 외국 관객이 본다면 꽤 당황할지도 모를 정도다.

'해운대'의 흥행을 위해 제작사는 부산 지역에 특별히 공을 들였다. 부산은 특히 이런 지역 정서가 강하기로 정평이 난 곳이다. 영화 '친구'때는 "전 부산 시민이 두 번씩 봤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모든 지역이 다 이런 것은 아니다. '목포는 항구다'도 향토색에선 결코 뒤지지 않을 영화지만 개봉 초 호남보다 영남 지역의 객석 점유율이 더 높게 나타나 제작사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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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해운대'는 선입견에 비해 지역 정서를 그리 적극적으로 활용한 영화는 아니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부산 사람'들은 그저 재수없게 엄청난 수해를 입은 사람들이고, 롯데 자이언츠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오히려 윤제균 감독 자신이 부산 출신이라 좀 자제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만약 이 영화가 부산 지역 주민들에게 좀 더 어필하길 바랐다면, 뜻밖의 환난을 맞아 용기있게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좀 더 적극적으로 그렸으면 어땠을까. 무참하게 무너진 도시와 애도하는 사람들보다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재건의 의지를 불태우는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좋지 않았을까. "보소 마, 우리 부산 사람들이 이따우 쓰나미에 기죽을 줄 알았능교?" 이런 식의 분위기 말이다.

물론 이런 분위기에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적지 않겠지만 안 그런 사람도 많다는 건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동의할 수 없는 분들은 수백만 관객들이 '감동적이었다'고 칭찬했던, '디 워'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아리랑을 상기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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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게 지나치게 낯간지러운 짓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대사도 한번 기억해 보시기 바란다. "당신은 타라의 붉은 대지로부터 힘을 얻지. 스칼렛. 당신과 타라는 하나요(You get your strength from this red earth of Tara, Scarlett. You're part of it, and it's part of you)." 바로 불후의 명작으로 꼽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대사.

이 영화는 구구절절 미국 남부인들의 애향심에 불을 지르는 대사들로 점철돼 있다. 1939년작이라 불만이라면, '러브 어페어'에서 '섹스 앤 더 시티'에 이르기까지 수백편의 영화들이 얼마나 뉴욕이라는 도시와 거기 사람들을 미화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혹시 같은 것도 할리우드에서 하면 촌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닐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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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첫째는 부산 사람, 그리고 둘째는 부산이라는 도시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 나지만 그 이야기들은 어디 사는 누구라도 해당되는 얘기들입니다. 굳이 이 영화 속에서 '부산 사람'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롯데 자이언츠 응원 외에는 없다고 봐도 좋습니다. 그리고 훨씬 더 '부산 사람'을 매력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두번째는 '부산'의 활용입니다. 역시 이민기와 강예원이 야경을 구경하는 포인트 외에는 '아름다운 부산'의 이미지가 별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영화를 긴박감 넘치게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어려움이 많았겠지만 정작 만들어지고나니 이런 아쉬움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윗글에서는 부산 지역 사람들의 애향심을 좀 더 자극했어야 한다는 얘기가 주로 다뤄졌지만, 사실 이런 부분들은 부산 바깥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야 해운대가 뭐고 부산이 뭔지, 더 열심히 홍보하지 않아도 잘 알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 영화를 한국 사람만 보는 시대는 아닙니다. 특히 '해운대' 정도 규모의 영화라면, 해외에서 이 영화를 볼 관객들을 위한 대비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해운대'를 통해 처음 한국의 피서지를 보는 사람들에게 뭔가 좀 더 어필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았을까요.

마지막 부분에 대해 혹자는 "로맨틱 무비와 재난영화가 같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후자 쪽이 더 파급력이 클 수도 있습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시애틀의 잠못드는 밤'의 무대가 된 빌딩으로보다는 킹콩이 올라간 빌딩으로 더 유명할수도 있을테니까요. 요즘 사람들은 자유의 여신상을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영화가 이 여신상의 머리가 날아가는 '클로버필드' 일 수도 있을 겁니다.^

물론 '해운대'가 잘 되고 있으니까 하는 얘깁니다. 정작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런 얘기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았겠죠. 이랬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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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는 해운대를 덮치는 가상의 쓰나미 이야기입니다. 영화 속에서 지진 전문가 김휘 박사(박중훈)는 부산 재해대책 당국에 메가 쓰나미의 공포를 역설하지만 당국자는 "이제껏 전례가 없었던 일"이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그 당국자가 몰랐기 때문에 나온 반응입니다. 최근 30년간, 적어도 두 차례 한국은 쓰나미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난 1983년과 1993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두 차례 모두 '해운대'의 설정과 흡사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위력은 영화에 나온 메가쓰나미에 비해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지만, 일본 연안의 해저 지진이 한국에 해일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우기엔 충분했습니다. 특히 1993년엔 '우리도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한동안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런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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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22일 개봉한 영화 ‘해운대’는 쓰나미로 부산 해운대가 쑥대밭이 되는 가상 상황을 그린 영화다. 이런 영화에는 재해를 정확하게 예언하지만 무시당하는, 이른바 카산드라(Cassandra) 캐릭터가 반드시 등장한다. ‘해운대’에선 박중훈이 연기하는 김휘 박사가 줄곧 “일본 쓰시마 섬 앞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해일은 10분 만에 부산 앞바다에 도착한다”며 대비를 촉구하지만, 피서철을 맞은 공무원들은 안 그래도 바쁘다며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 땅에 쓰나미가 밀어닥친다는 얘기는 얼핏 허황된 듯하지만 사실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1983년 5월 27일자 중앙일보는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 여파로 강원도 동해안에 바닷물이 높아졌다 낮아지는 승강현상과 함께 파고 3m의 해일이 밀어닥쳐 3명이 실종되고, 74척의 선박이 침몰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지진 발생 지역은 홋카이도의 남쪽인 일본 서부 해상. 이 지진으로 일본은 1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쓰나미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있을 뿐, 해저 지진으로 인한 해일과 수면 승강 현상은 바로 쓰나미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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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 7월 12일에도 역시 홋카이도 남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해저 지진으로 동해안에 해일이 발생, 57척의 어선이 파손됐다. 이 해 7월 20일자에는 당시 서울대 오임상 교수가 “일본 근해에서 해일이 발생할 경우 2~3시간이면 우리나라에 도달할 수 있으므로 해저 지진이 있을 경우 즉각 대비 태세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 실려 있다. 영화 속 김휘 교수의 주장도 그리 허무맹랑한 얘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사실 피서객의 입장에서 오늘날 해운대를 볼 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언제 올지 모르는 쓰나미보다는 백사장의 침식이다. 80년대 이후 해안의 무분별한 개발 결과 백사장의 길이가 날로 짧아져 해마다 여름이면 몇만t씩 모래를 보충한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침식 때문에 해안선에서 멀어질수록 급격하게 수면이 깊어지는 협곡화 현상까지 발생했다고도 한다. 다양한 백사장 보호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별 뾰족한 수는 없는 모양이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이 자신의 호 고운(孤雲)에서 한 글자를 떼어 이름을 붙였을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피서지 해운대. 글자대로 바다와 구름만 남고 해수욕장은 사라지는 비운을 맞는다면 그거야말로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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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제가 쓰나미 전문가일리는 없으니 그림 설명을 보는게 낫겠습니다.

일본어의 쓰나미(津波)는 그냥 물결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이지만, 학술용어 쓰나미는 해일을 발생 원인으로 구별할 때, 지진으로 인해 발생하는 해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림에서 보듯 쓰나미는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서 물 아래로 파동을 전달, 육지 가까운 곳에 도착하면 그 에너지를 높은 파도로 바꿔 덮쳐온다는 겁니다. 당연히 진앙으로부터의 거리와 지진의 크기가 파도의 크기를 결정하겠죠.

지금까지 기록된 한국의 쓰나미들은 비교적 거리가 먼 북해도 인근 해상에서 일어난 것들이라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83년과 93년의 사고를 봐도, 거의 매년 일어나는 홍수 피해에 비하면 별다른 큰 재난이라고 하기 힘든 정도입니다.

1983년의 재해 보도.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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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1993년 5월20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지진에 대한 기획기사.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이보다 일주일 전인 5월12일 홋카이도 남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쓰나미가 밀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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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사상자 없이 어선 57척이 파손되는 정도의 피해였지만 일본에서는 당시 쓰나미로 140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덧붙여져 있습니다. 거리가 가까운 만큼 대피할 시간도 없었을 겁니다.

이 기사의 끝부분에 이런 내용이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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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4-5m 정도라고 되어 있지만 가까운 지점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 쓰나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현재까지 기록된 최대의 쓰나미는 1958년 7월 9일 미국 알래스카 리투야만(Lituya Bay)에서 목격된 것으로, 파도의 높이가 524m(1720피트)에 달했다고 합니다. 대체 뭘로 측정했는지가 정말 궁금하지만, 아무튼 지금까지 기록된 가장 높은 쓰나미였다는군요.

영화에도 나오는 2004년의 인도양 쓰나미는 수마트라 섬 서쪽 160km 지점에서 진도 9.0의 해저 지진이 발생, 인도, 인도네시아, 태국, 스리랑카 등 주변국들을 덮쳤습니다. 총 사망자만 30여만명. 수마트라 해안에서 본 파도의 높이는 30m에 달했다고 합니다.

물론 영화 속의 대형 재해가 발생하려면 한국과 상당히 거리가 가까운 쓰시마 섬의 서안에서, 그것도 초대형 지진이 발생해야 한다는 등 여러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하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아예 일어날 수 없는 재해'라고 단정하지는 않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영화 얘기는 언제 나오나 하는 분들을 위해: 영화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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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까지 가능성으로 따진다면, 해운대 해수욕장은 쓰나미로 사라지는 것보다 모래 침식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더 높을 듯 합니다. 물론 지금까지도 자동으로 모래사장이 평형을 유지한다, 심지어 최근 몇년 사이에는 오히려 백사장이 넓어지고 있다는 등의 주장들이 엇갈리고 있지만, 현재의 백사장 넓이를 보면 끝없는 모래사장으로 기억되던 왕년의 해운대와는 천지차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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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최근 내린 비로 한 신축 건물 앞의 해변은 이렇게 자갈이 드러나기도 했다는군요. 이거야말로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만큼 수중 제방을 설치한다는 등의 다양한 대책이 세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어서, 다음 세대에도 해운대 백사장의 전설이 전해지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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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앵커가 뉴스를 진행하면서 옷을 하나씩 벗는다. 혹은 아예 아무 것도 안 입은 여자가 뉴스를 진행한다. 처음 들으면 참 솔깃한 아이디어이기도 합니다.

네이키드 뉴스 서비스가 국내에서도 시작됐습니다. 엄청난 인기라는 사람도 있고, 정작 보니 시시하더라는 사람도 있더군요. 사실 그렇습니다. 성인물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다른 자극적인 성인용 오락물에 비해 지독하게 단순하고 심심하겠죠. 여기에 살짝 뉴스라는 서비스를 얹어 상품으로 개발해 낸 발상이 웃음을 짓게 합니다.

뉴스를 보기 위해 네이키드 뉴스를 찾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뉴스도 뉴스 아니냐?'고 누가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하기가 좀 궁색해 질 수도 있었을 겁니다. 네이키드 뉴스는 왜 뉴스가 아닌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이키드 뉴스만 욕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쓴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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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뉴스

일본에 뇨타이모리(女體盛り)라는 묘한 풍속이 있다. 옷을 벗은 여자의 몸에 생선회나 초밥을 올려 놓고 먹는 것을 말한다. 최근엔 일본 음식 붐과 함께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런 풍습이 꽤 유행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생선회를 여자의 몸 위에 올리면 맛이 각별할까. 아무리 시각이 미각에도 영향을 미친다지만 맛 때문에 뇨타이모리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번 달 시작된 네이키드 뉴스가 화제다. 지난 1999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네이키드 뉴스는 근엄한 정장 차림의 앵커 대신 나체의 여자가 뉴스를 읽어준다는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감출 것은 없다(Nothing to hide)'는 광고 문구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현재 세계적으로 1000만명에 가까운 유료 이용자를 확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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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네이키드 뉴스를 놓고 뉴스의 질을 논하는 것은 뇨타이모리의 초밥 맛에 대해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둘 다 벗은 여자를 보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이 인터넷 방송의 음란성을 주목하겠다고 밝혔지만 성인용 유료 서비스를 놓고 새삼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아닌 듯 싶다. 굳이 지적하자면 이 '뉴스 아닌 뉴스'의 진짜 문제는 단 한명의 기자도 없고, 단 한 건의 기사도 직접 취재하지 않으면서 뉴스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데에 있다. 같은 뉴스라도 어떤 기자의 손을 거쳐 어떤 앵커가 보도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된다는 상식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결국 이들 스스로 '뉴스는 그냥 구색 맞추기'라고 자백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긴 눈을 돌려 보면 이것이 네이키드 뉴스만의 문제는 아님을 알게 된다. 기자 없이도 뉴스를 생산하는 매체들이 이미 널려 있기 때문이다. '신문과 방송' 7월호에 따르면 올해 3월을 기준으로 한국의 인터넷 신문은 1399개나 된다. 절반은 유명무실이지만 실제로 기사가 공급되는 곳만도 706개에 이른다.

그나마 상당수는 실제 취재 인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남이 쓴 기사를 '긁어다 붙여(copy and paste)'. 바이라인도 없는 기사를 양산하고 있는 곳이 부지기수다. 이 과정에서 기사의 저작권 따위는 깔끔하게 무시된다. 이런 '사이버' 사이비 언론들이 멀쩡히 숨쉬고 있는데 누가 네이키드 뉴스를 '무늬만 뉴스'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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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CSI 뉴욕'을 보다가 이 뇨타이모리가 나오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검색을 해 보니 인터넷 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뇨타이모리와 관련된 사진은 서구인들이 등장하는 게 훨씬 더 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물론 서양에서 뇨타이모리를 그렇게 많이 즐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이걸 '변태 짓'이라며 아예 거론하기를 꺼리는 우리 쪽과는 달리, 서구에서는 그냥 신기한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전혀 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뜨뜻한 스시는 생각만 해도 별로일 것 같거든요. 아, 왜 남자들을 위한 서비스만 있냐고 분개하실 여자분들을 위해 난타이모리(男體盛り)라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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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위에도 썼지만 뇨타이모리의 스시와 네이키드 뉴스의 뉴스는 결국 같은 의미입니다. 그냥 눈가림이란 얘기죠. 물론 이 스시로도 배는 채워지고, 그 뉴스로도 시사 상식은 채워질 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왜 네이키드 뉴스의 뉴스가 '진짜 뉴스'가 아닌지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습니다. 그리고 '기자 없는 뉴스'의 심각성은 인터넷의 폐해 중 하나입니다. 요즘 이쪽 업계에서는 '기사 도둑질'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매체에 나온 기사를 받아 쓰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매체가 똑같이 취재를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기사가 사실인지, 혹시 포함되지 않은 내용이 있는지 보충 취재를 한 다음에 기사를 쓰는 것이 상식이죠. 하지만 특종성 기사가 하나 보이면 다짜고짜 휙 긁어다 토씨 몇개를 고쳐 자신들이 취재한 기사인 양 내보내는 비양심 매체들이 만연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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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매체들의 비양심이 1차적인 문제지만, 그런 무자격 매체들의 기사를 싼 맛에(거의 공짜에 가까운 값이라고 합니다) 게재해 주는 포털들도 문젭니다. 이렇게 '무슨 일만 생기면 쌍둥이같은 기사들이 쏟아지는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써 둔 글이 있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이렇게 아무 기사나 척척 베껴서 내 기사인 척 하는 기괴한 매체들은 네이키드 뉴스에 비해 나을 게 없다는 얘깁니다. 그쪽은 그나마 '보여주기'라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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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시다시피 사상 첫 남북 동시 월드컵 진출이라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난 1986년 이후 단 한번의 실패도 없이(물론 2002년은 개최국이라 예선을 거치지 않았지만) 매번 월드컵에 진출하느라고 이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그렇지, 월드컵 본선 진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나라 수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는 아시아에 너무 많은 티켓을 주는게 아니냐(현재 4매)고 하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북한이 새로 본선 진출국 명단에 이름을 올린 건 꽤 대단한 일이라고 할 만 합니다.

북한이 마지막으로 출전한 월드컵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축구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박두익이라는 북한의 축구 영웅과 8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 무렵, 한국 축구는 북한을 엄청나게 두려워했습니다. 물론 실제로 붙었다면 어떻게든 우열이 가려졌겠지만, 70년대까지의 남북축구사는 기를 쓰고 북한과의 대결을 피해 온 과정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간략하게 그 세월을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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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남북축구 잔혹사

1970년대까지 축구인들에게 남북 대결은 한·일전보다 두려운 경기였다. 자존심을 넘어 ‘죽어도 질 수 없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65년. 북한이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 참가를 선언하자 한국은 불참을 선택했다. 혹시 질지도 모르니 아예 안 붙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선을 통과한 북한은 이듬해 본선에서도 강호 이탈리아를 1-0으로 꺾으며 8강에 진출해 세계 축구에 파란을 일으켰다. 충격을 받은 한국은 전열을 정비해 70년 멕시코 월드컵에 도전했지만 이번엔 북한이 발을 뺐다.

박두익과 북한 축구의 사다리 전법(공을 잡은 선수의 상-중-하 세 방향을 세 선수가 동시에 마크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터이니 따로 설명을 달지 않습니다. 아무튼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사상 처음 출전했고, 58년과 62년에는 석연찮은 이유로 예선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두 해 중 한번은 서류 접수 실수로 참가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죠.

아무튼 1965년, FIFA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예선을 캄보디아에서 치르겠다고 발표했는데, 이 예선에 북한이 참가한다는 이유로 한국은 발을 뺍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의 한국은 북한에게 경제 면에서도 절대 우위를 장담하기 힘들던 시절입니다. 지금은 '축구 쯤이야...'지만 당시엔 '축구까지 지면'이란 시각이 있었던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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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전설의 사다리 전법. 근데 대체 저게 실전에서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결국 한국은 제재를 받을 위험을 무릅쓰고 대회를 보이코트했고, 북한은 한국이 빠진 예선을 쉽게 통과해 본선에서 파란을 일으킵니다. 아, 참고로 당시엔 본선 진출국이 16개국이었으므로 예선만 통과하면 8강이었습니다. 8강전에선 에우제비오가 이끄는 포르투갈에게 패해 탈락했죠.

북한 축구의 선전 때문에 중앙정보부가 국내 최고 스타들을 한 팀에 모아 '양지팀'을 관리했다는 것 또한 유명한 얘깁니다. 양지팀 덕분에 자신감에 찬 한국은 1970년 예선에 참가하지만 북한이 이번엔 불참합니다.

북한 축구가 처음 아시안게임에 등장한 74년 테헤란. 대회 개막을 2주 앞두고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대통령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저격으로 서거한 뒤끝이었다. 굳이 북한과 위험천만한 대결을 벌일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대세였고, 한국은 대회 내내 북한과의 대진에만 신경 쓰다가 석연찮은 연패로 수상권에서 멀어졌다.

이때까지도 '만약 이런 정치상황에서 북한에게 혹시 지기라도 한다면'이란 생각이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는군요. 그러다 보니 한국은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인 쿠웨이트 전에서, 객관적 전력에서 앞서 있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0대4로 대패하고 맙니다. 만약 이 경기를 이기면 다른 조에서 올라올 북한과 2차 예선에서 같은 조가 될 상황이었죠. 하지만 한번 북한을 패한 뒤 두번째 대결도 피하기 위해 맥빠진 경기를 벌이다 결국 2차 예선에서 탈락해버립니다.

4년 뒤 78년 방콕 아시안게임. 수퍼스타 차범근을 앞세운 한국은 대결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양팀은 승승장구 끝에 결승에서 맞붙었고 접전 끝에 0-0으로 비겨 공동 우승이 결정됐다.

차범근을 앞세운 한국 축구는 아시아 최정상의 자리에 올라섰지만 1974년과 78년 월드컵 예선에서 두번 모두 호주에게 결정적인 순간 역전을 허용하며 월드컵 출전권을 빼앗깁니다. 북한은 74년 예선에 참가하지만 최종 예선까지 도달하지 못해 한국과 맞붙을 기회는 없었습니다.

자신감이 가득한 한국은 마침내 1978년, 북한과의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노립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결승전에서 만나게 된 겁니다. 양쪽 모두 너무나 부담스러운 경기였으므로, 답답할 정도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칩니다. 결국 결과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0대0 공동 우승.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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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대에서도 신경전은 계속됐다. ‘한국축구 100년사’에서 당시 대표팀 주장이었던 김호곤(현 울산 현대 감독)은 “북한 주장에게 먼저 올라가라고 양보했지만 그는 내가 올라설 자리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 골키퍼는 나를 밀어 떨어뜨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시상대에 오른 김호곤은 “우리 손 잡읍시다”고 제의, 두 사람은 웃는 얼굴로 어깨동무를 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렇게 해서 사상 첫 남북대결은 해피엔딩이 됩니다. 그리고 별 상관 없는 얘기지만 바로 저 경기 직후 차범근은 분데스리가에 진출, 한국 축구를 세계에 알리죠.

그 뒤로 남북 대결은 흔한 일이 됐고 긴장은 사라졌다. 오히려 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최종전에서 북한은 한국에 0-3으로 대패, 한국이 기적적으로 일본을 제치고 미국 월드컵에 진출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남아공 월드컵 1차 예선에서 북한은 평양에 태극기와 애국가를 들일 수 없다며 남한과의 홈 경기를 거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일본이 '도하의 참극'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일본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과 한국의 탈락이 유력한 상황, 한국은 1승2무1패로 승점 4(당시에는 승이 2점, 무가 1점), 일본은 2승1무1패로 승점 5점으로 각각 한경기씩을 남겨 두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북한과의 최종전을 무조건 큰 점수차로 이겨야 했고, 설혹 한국이 이긴다 해도 일본이 이라크와의 최종전을 이기면 일본이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총 6개국 중 탈락이 확정된 것은 북한 뿐.

한국-북한전. 전반을 0-0으로 비기고 하프 타임이 되자 "점잖기로 소문난 김호 감독이 발길질로 머리를 걷어차더라"고 홍명보가 뒷날 회고할 정도로 한국 라커는 "지면 죽는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합니다. 북한이 과연 의도적으로 봐주려고 한 것인지 아닌지는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 없지만, 아무튼 한국은 후반전에 대분발, 세 골을 넣어 3대0으로 경기를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같은 시간에 열리고 있는 일본-이라크전도 일본이 2-1로 이기고 있는 상황. 결국 3대0으로 이기고도 쓸쓸히 그라운드를 빠져 나오던 한국 선수들은 벤치의 후보 선수들이 벌떡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함께 고함을 지릅니다. 종료 30초를 남기고 이라크의 자파르가 기적같은 동점골을 터뜨린 것이죠. 이렇게 해서 한국과 일본은 승점 6으로 동점이 되지만 북한전에서 넣은 세 골 덕분에 한국이 득실차로 94년 월드컵에 진출합니다. 아마도 해방후 남한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 가장 고마운 마음을 가진 것이 이때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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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지난 반세기 간의 남북 축구 대결사는 양자 간의 파란만장한 사연을 압축해 보여 주는 듯하다. 곡절 끝에 남북한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 사상 최초로 동반 진출하게 됐다. 그저 본선에서도 양측 모두 선전을 거듭해 78년의 어깨동무가 재현되길 바랄 뿐이다. 

2010년 대회 예선에선 한국이 마지막까지 이란 전에서 무승부를 이끌어 낸 것이 북한과의 동반 진출을 일궈냈습니다. 제발 이게 조금이라도 경색 국면을 푸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바람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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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북한이 다시 본선에서 대결을 벌이려면 둘 다 16강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하는데 그건 좀 쉽지 않겠군요. '어깨동무'는 경기장 밖에서 하는 것도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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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츠가 두번째로 한국을 찾았습니다. 지난해 공연을 한 데 이어 이번엔 SBS TV '스타킹' 출연을 포함해 다양한 행사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이제 와서 새삼 폴 포츠가 누구냐고 물을 분은 없을 겁니다. 이미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됐고, 엊그제 그의 판박이같은 수잔 보일이 새로운 스타덤을 시작하려는 시점입니다. 폴 포츠는 최근 두번째 앨범을 냈고, 여전히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폴 포츠 때문에 속상해 하는 사람은 혹시 없을까요? 과거의 폴 포츠가 성공한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쓸쓸히 속앓이를 했듯, 이번에는 폴 포츠의 성공 뒤에서 좌절하는 다른 사람도 있을 법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그 사람들이 폴 포츠보다 훨씬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이라면 어떨까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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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츠와 '세상의 이치'에 대한 이야기

KBS 2TV '개그 콘서트'의 '분장실의 강선생님' 팀의 인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강유미-안영미 듀오는 '영광인줄 알아 이것들아'와 '고생이 많다'에 이어 이제 '어쩔 수 없어. 세상 이치가 그래'까지 유행어 반열에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 코너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은 가슴에 와 닿는 강렬한 공감이다. 누구나 학교에서, 조직에서, 직장에서 뭔가 혼자 맞설 수 없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인생 선배들로부터 "야, 세상이 원래 그런 걸 어쩌겠니"하는 위로를 들으며 소주 한 잔으로 가슴 속 응어리를 푼 기억이 있을 법 하다.

이런 '세상 이치'는 다양한 분야에서 불쑥 불쑥 고개를 든다. 얼마 전 "요즘 성악 전공자들에게 가장 '세상 이치'를 한탄하게 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느냐"는 우스개를 들었다. 답은 '폴 포츠'였다.

2년 전 영국 ITV의 장기자랑 쇼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통해 등장한 폴 포츠는 우스꽝스런 외모와 자신없는 표정으로 우려를 낳았지만, 깜짝 놀랄 만한 미성으로 오페라 아리아를 뿜어내 일약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특히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한 지역의 스타가 곧장 세계인의 스타가 됐다는 점에서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하나로 만드는 정보 통신 기술의 총아이기도 했다.

폴 포츠는 곧바로 데뷔 앨범을 냈고, 15개국에서 총 4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지금까지 6만 여장이 판매됐다. 하지만 앨범을 들을 때부터 몇몇 사람들은 뭔가 환상이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눈물을 흘리는 심사위원들과 방청객들의 환호가 없는 그의 노래는 어딘가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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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집이 발매됐다. '1집 보다 완성도가 높다'는 리뷰도 나왔지만, 노래 실력은 여전히 '꽤 잘 부르는 아마추어' 수준 이상으로 보기 힘들다.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이 마지막 트랙에 들어 있다. 그의 애창곡이었다지만 듣고 있으면 과연 이 곡을 꼭 불러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득 이 아리아를 불러 음반을 내는 게 꿈인 수많은 '진짜 테너'들이 폴 포츠의 노래를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궁금증이 떠올랐다. '폴 포츠보다 잘 생긴게 죄고, 인생에 사연 없는게 죄'라는 씁쓸한 농담을 던지며 소줏잔을 기울이지나 않을까.

한때 최고의 R&B 보컬로 군림했던 브라이언 맥나이트는 "팝계에선 가장 노래 잘 하는 사람이 반드시 최고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때론 인간 승리라는 감동이 '감동적인 노래 실력'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대중에게 '왜 진짜 노래 잘 하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느냐'고 타박해 봤자다. 하긴 그걸 누가 어쩔 수 있을까. 세상 이치가 원래 그런 건데. (끝)

[로베르토 알라냐가 부르는 '별은 빛나건만(E lucevan le stele)'입니다. 폴 포츠가 부르는 이 노래는... 각자 찾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유튜브에는 없습니다. 폴 포츠가 부르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와 진짜 테너들이 부른 그 노래의 비교는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했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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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에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로 불렸던 브라이언 맥나이트의 저 말은 내한공연 인터뷰 도중에 나온 겁니다. 전문은 이런 거였죠. "농구에서는 골을 제일 잘 넣는 마이클 조던이 최고 스타지만, 팝계에서는 노래를 제일 잘 한다고 최고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자기라는 뜻을 풍겼죠.

아무튼 '진짜 테너'나 '진짜 테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폴 포츠의 인기는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게다가 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천상의 목소리'라느니 하는 얘기를 들으면 어이가 없기도 하죠. 그런 생각이 윗글에 담겨 있습니다.

오해를 좀 막아 보자는 뜻으로 한줄 덧붙이지면, 여기서 '노래를 잘 한다'라는 것은 반드시 성악적으로 완벽한 소리를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다양한 장르의 다양한 창법을 망라해서, 정말 노래 솜씨만으로 감동을 자아내는 그런 솜씨를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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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들어온 폴 포츠. 돈 버신 만큼 치열교정까지 해결됐다고 합니다.^^ 부쩍 표정도 밝아지고... 이 분이 이렇게 성공한 모습만 봐도 사실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부디 안 좋은 소문 없이 계속 이렇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거기에 대해 어떤 분의 의견을 듣게 됐습니다. "노래를 잘 하고 못 하고가 그렇게 중요한가? 수많은 사람들이 폴 포츠의 노래를 듣고 감동을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 또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얻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존재 이유는 충분히 증명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반박할 수 없는 부분은 폴 포츠라는 사람의 가치입니다.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었다는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런 의미에서 그의 존재 가치는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서 그의 사연과 배경을 털어 버려도 과연 그런 감동이 가능할 것이냐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털어버려도 감동적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폴 포츠 때문에 다른 진짜 실력있는 노래꾼들이 가려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시곤 합니다. 그런데 사실입니다. 진짜 '노래'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는 분들은 상관이 없겠지만, 많은 분들이 그 수준의 '노래'가 '노래'의 표준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그 너머에 정말 대단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내다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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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래도 "우리는 노래 실력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인간승리와 감동을 원한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꽤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단지 가끔은, '진짜 가수'나 '진짜 노래 실력'에도 관심을 좀 기울여 주시는 게 어떨까 하는 말 밖에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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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선덕여왕'이 8회를 맞아 시청률 30% 선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포스팅이 요즘 너무 많은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게 세상의 이치니까.

그런데 초반 웅대한 구상을 그리며 활기차게 출발한 '선덕여왕'이 7,8회 들어 뭔가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이 듭니다. 덕만(남지현-이요원)이 만노군 여래사로 문노를 찾으러 가면서 서라벌에 있던 드라마의 주역들과 드디어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내용이었는데, 이 부분이 그리 잘 처리됐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특히 그동안 분전하던 미실의 상대로 천명이 부각된 반면, 그토록 총명하던 덕만은 신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너무 고생을 많이 했는지 총기와 눈치가 사라지고 판단력도 흐려져서 돌연 민폐형 주인공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긴급진단입니다.

[두루두루] 선덕여왕, 벌써 이러면 곤란한데

MBC TV '선덕여왕'이 또 하나의 대박 사극으로 성장할 기세다. 시청자들에게 생소한 신라시대의 인물과 제도를 소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8회만에 시청률은 30%에 육박하고 있다.

일단 초반의 물량 투입이 인상적이다. 대규모 인력을 동원한 화랑들의 연무장 신이나 전투 신, 사막에서 벌어지는 어린 덕만(뒷날의 선덕여왕)의 활약 등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론 뭐니뭐니해도 초반의 강세는 신라 조정을 장악한 여걸 미실 역을 맡은 고현정을 비롯한 연기자들의 호연 덕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천명-덕만 자매 역을 맡은 신세경과 남지현, 미생으로 등장하는 정웅인의 코믹 연기도 빛을 발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시청자들의 크고 작은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연출상의 연결 미숙이나 이른바 '옥에 티'라고 불리는 사소한 실책은 있을 수 있다. 배경이 신라시대인데 죽방(이문식)이 옥수수를 들고 있는 등의 사고도 웃어 넘길 만 하다(옥수수의 국내 전래 시기는 16세기 이후라는게 정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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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드라마의 맥이 탁탁 끊기게 하는 등장인물들의 단세포화는 심각한 문제다. 천명공주는 왜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덕만을 서라벌로 데려오고서도 자신이 공주라는 걸 감춰야 하는지, 100명의 증인보다 더 확실한 증거인 보종의 화살 맞은 상처는 왜 아무도 지적하지 않는지, 왜 아무도 덕만에게 미실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지 시청자는 궁금할 뿐이다. 등장인물들에게 "카메라가 비추지 않을 때에는 서로 대화도 안 하는 거냐"고 묻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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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작가진은 천명과 덕만이 쌍둥이라는 설정을 잊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쌍둥이 중 언니인 천명은 벌써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어 있는데, 동생인 덕만은 남장을 하고 낭도들과 한 방을 써도 어른이 될 때까지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른다. 공부하는 서생도 아니고, 김유신의 용화향도는 매일 진창에서 뒹굴던데 훈련을 마치고 개울에서 시원하게 멱도 감지 않는단 말인가.

아직 8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허점들이 드러나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에 있어 제작진이 너무 쉽게 타협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수준이라면 당초 우려됐던 문제들, 즉 미실이 왜 악의 축으로 설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역사관이나 논리의 부재, 지나치게 도식적인 등장인물들의 선/악 구분 같은 큰 문제들은 아예 거론할 수도 없게 된다.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문제를 덮거나 물량으로 시청자의 눈을 가리기엔 '선덕여왕' 연출자들과 작가들이 지금껏 쌓아온 명성이 아깝다. 현재 예정만 50부. 아직 초반이다. 지금이라도 제작진이 좀 더 높은 목표를 지향해 주길 기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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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천명공주역을 맡은 신세경이 세운 기록이 뭘까 하는 질문을 살짝 남겼는데 어느 분이 정답을 맞추셨습니다. 아마도 신세경은 '아역 최초로 애 엄마가 된' 기록을 남기게 될 것 같습니다. 현대극이라도 아마 '제니 주노' 정도가 아니고서는 아역이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건 참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아마 이 드라마에서 신세경이 임신이나 출산 장면을 연기하지 않은 데에도 아마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천추태후'의 김소은이 아기 낳는 연기를 했군요. 얼마 안 됐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

물론 신세경은 보기에도 그리 아역의 모습은 아닙니다. 1990년 생이니 만 19세. '어린 신부'때보다는 좀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도 파릇파릇하죠. 그래도 신세경이 어른의 이미지가 강한 반면 그보다 다섯살 어린 덕만 역의 남지현은 여전히 소녀 태가 역력합니다.

생김새가 전혀 닮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란성 쌍둥이는 절대 아닐테니, 쌍둥이 자매간이라도 발육 차이가 날 수는 있을 겁니다. 더구나 덕만은 공주로 길러진 천명과는 달리 친엄마도 아닌 엄마와 도망다니느라 모유도 못 먹고, 고생만 했을테니 키도 작고 발육도 좀 부실할 겁니다. 어른이 되는 것도 훨씬 늦을 것이고, 성징도 늦게 나타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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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화랑이 되어 내무생활(용화향도 숙사는 어째 20세기 한국 육군 내무반을 참고해서 지은 느낌이 역력합니다^^)을 하면서도 남지현이 자라 이요원이 되도록 남녀 차이가 들통나지 않는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잠을 자기 집에 가서 자는 것도 아니고('커피프린스 1호점'), 비밀을 알고 있는 형(오빠?)랑 방을 쓰는 것도 아니고('바람의 화원'), 게다가 가만히 앉아서 책만 읽는 것도 아니고('양축'), 그렇게 야외 생활에 격렬한 훈련을 하면서 이 용화향도의 낭도들은 단체로 멱도 안 감는답니까. (음... 그런데 갑자기 이 대목에서 '스타십 트루퍼스'에 나오는 미래 군대의 남녀 합동 샤워 신이 생각나는군요.^^)

혹시 '선덕여왕' 제작진도 만약 유신과 덕만의 용화향도 스토리를 풀어가면서 유신이 언제고 덕만에게 "니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상관 안 해!" 라는 대사를 내뱉기를 기대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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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식간에... 그런데 이렇게 곱슬머리를 걷어 내고 보니 남지현과 이요원이 꽤 닮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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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부분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이 드라마가 너무 목표를 낮게 잡고 있다는 겁니다. 미실이 이 드라마에서 악당인 이유는 뭘까요. 백성을 학대해서? 그렇다면 미실 일파가 정권을 잡아서 학정을 하는 바람에 민생이 도탄에 빠지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천명-덕만-서현(유신)이 진평왕을 도와 진정한 왕도정치를 펴자는 쪽으로 스토리가 진행되어야겠지만 그건 엄연한 역사 왜곡입니다. 미실이 정권을 잡고 있었다고 가정되는 시기는 엄연히 신라가 대외적으로 팽창하고 날로 국운이 융성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한마디로 미실은 실정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학정을 한 게 아니라면 미실이 굳이 진평왕보다 나쁜 점을 찾기 힘듭니다. 진평왕이 대외적으로 미실보다 자주적이었을 것도 아니고(그럴 리도 없고), 화랑들이 더 순종했던 것도 아니고, 도덕적인 우월성을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래도 진짜 왕이 다스리는게 정의'라는 식으로 설명하려면 그건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대체 제작진은 어떤 이유로 미실이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걸까요. 그럴 듯하게 자기 편들을 회의실에 모아 놓고 조정이 아닌 거기서 정치를 한다고 해서 미실이 악녀라는 식의 그림은 생뚱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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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미실이 이 드라마에서 악역인 이유는 "드라마의 제목이 '선덕여왕'이기 때문"이라는 것 외에는 찾아 보기 힘듭니다. 그럼 왜 미실이 잡고 있는 정권이 덕만에게 넘어 가야 하는 걸까요? 여기에 대한 설명은 과연 무엇일까요('역사가 그렇게 돼 있잖아!'라는 설명?).

천명공주는 김유신의 말, "내가 진심이면 최소한 내가 변하고, 그러면 세상이 변할 수 있다"는 말에 감명을 받아 큰 변화를 겪습니다만, 그 변화란 과연 무엇일까요. 좋은 쪽으로의 변화일까요? 하지만 드라마 상으로 보아 그 변화란 천명이 권모술수와 정쟁의 세계에 눈을 뜻 것 뿐입니다. 미실조차도 "천명이 어릴 적 나를 보는 것 같다"고 감탄할 정도로 말이죠. 진심 운운 하는 얘기는 그냥 말장난이 돼 버립니다.

'선덕여왕'은 그냥 드라마가 아닙니다. 현재 대한민국 사극의 대표 선수들이 만들고 있는 드라마라는 점을 제작진 스스로도 잊어선 안 됩니다. 하지만 7-8회 같은 진행은 '대장금'과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든 작가진의 명성에 점점 더 누가 될 뿐입니다. '선덕여왕'조차도 역사관도 없고, 내적인 논리도 없는 막연한 드라마가 되어 버린다면, 대한민국 사극의 희망은 이제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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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일밤'의 '퀴즈 프린스'부터 KBS의 '퀴즈 대한민국'까지, 요즘 방송가에 퀴즈 프로그램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들은 널렸습니다.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KBS의 '도전 골든벨'에서 SBS의 '퀴즈 육감대결'까지 역시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퀴즈 프로그램이 있지만, 제대로 된 퀴즈는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입니다.

20년 전, 그리 머지 않은 10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은 정말 끔찍한 퀴즈 후진국입니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돼 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제의 출제 수준은 들쭉날쭉이고, 퀴즈 프로그램이 끝날 때만 되면 대체 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들먹이면서 강제로 감동적인 분위기를 끌어내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재미도 없고, 감동은 더더욱 없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흐름을 끊어 먹는 사회자들도 짜증을 유발합니다. 재치있는 토크를 보려면 대체 왜 퀴즈 프로그램을 봅니까.

한국 퀴즈 프로그램들이 왜 날로 재미없어지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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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퀴즈인을 무시하는 나라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신 분들은 당연히 그 퀴즈가 어디서 보던 거다, 했을 거다. 맞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까지 그렇게 생긴 퀴즈를 했다. MBC <퀴즈가 좋다>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왕년에 퀴즈 좀 해본 사람으로서 얘긴데(나중에 혹시 시비 거실 분이 있을까봐 써두자면, 지상파 퀴즈 프로그램에 한 열다섯 번 정도 나가봤다), 한 명의 출연자가 열 문제를 연속으로 모두 맞혀야 한다는 건 사기다. 정상적 포맷이 아니다.

퀴즈 프로그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출연자의 실력을 테스트하는 것과 운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 <퀴즈가 좋다>는 후자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생각해 보자. 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정통한 분야는 서너 개를 넘기 힘들다. 그런데 열 개의 문제를 하나도 틀리지 말고 모두 맞혀야 한다니. 문제 난이도가 중간만 넘겨도 절대 불가능한 과제다.

이 프로그램의 원조는 영국에서 처음 등장한 <누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나>(Who Wants to be a Millionaire)다. 이 프로그램이 히트하면서 세계 각국이 그 포맷을 사다가 자기 나라 실정에 맞는 퀴즈를 만든 거다. 위에서 거듭 말한 것처럼 이 포맷이 원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외국 제작자들은 상식적인 선에서 타협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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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열 개의 문제를 내되 모두 객관식으로 낸다. 둘째, '장난하냐'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쉬운 문제로 열 개를 채운다. 셋째, 도전자가 다음 문제에 도전할지 말지를 정할 때, 다음 문제와 보기를 먼저 본 다음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이 정도는 해줘야 도전자에 대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퀴즈가 좋다>는 어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란다. 뒷부분의 어려운 문제는 모두 주관식이었다. 난이도? 아마도 이 프로그램 포맷을 사간 나라들 중 최고 수준이었다. 세 번째의 '문제 미리 듣기' 배려 같은 건 언감생심.

이런 국제 기준 미달의 불리한 조건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도전했고, 극소수의 운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들이 승리의 기쁨을 맛봤다. 뭐 1,000만 원이라는 최종 상금이 그 자체로 그리 적은 돈은 아니다(형식상 2,000만 원이지만 1,000만 원은 어디엔가 기부하고 도전자는 절반만 갖는다는 설정. 물론 세금을 떼면 800만원 정도다). 하지만 해외 도전자들의 상금 액수를 알고 나면 아마 그 분들도 속았다는 느낌이 들 거다.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밀리어네어'라는 제목에 맞게 '백만 단위'의 상금을 줬다. 영국의 100만 파운드, 미국은 100만 달러, 대다수 서유럽 국가들은 100만 유로를 줬다. 환율에 따라 오락가락하지만 대략 10억 원에서 20억 원 사이의 상금이다. 소위 선진국 가운데서는 1,000만 엔이 걸렸던 일본이 가장 적은 편이었다. 어쨌든 최소 1억 원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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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잘사는 나라만 보지 말라고? 영화로 보신 대로 인도의 우승 상금은 2,000만 루피. 약 6억 원 정도다. 말레이시아도 100만 링깃(약 3억 8,000만 원), 필리핀도 잘나갈 때는 200만 페소(약 6,000만 원)를 줬다. 최근 필리핀의 상금인 100만 페소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상금을 주는 나라는 억지로 하나 찾았다. 베트남의 우승 상금 1억 2,000만 동이 한국 돈으로 1,000만 원 정도 되는 모양이다. 이것이 한국 퀴즈계의 현실이다.

그렇다. 하자는 얘기가 바로 이거다. 하다못해 인도에서도 퀴즈만 잘하면 한 살림 차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어림없다. 왕년엔 장학퀴즈 기장원만 해도 대학은 공짜로 다녔는데, 이젠 어림없다. EBS 장학퀴즈 7연승을 해도 상금은 3,000만 원.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 원꼴이니 1년은 자기 돈으로 다녀야 한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퀴즈계의 김연아가 나오길 기대한단 말인가. 정말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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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서는 퀴즈 상금이 형편없이 싸다는 지적을 했지만, 상금만 싼게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싼 상금조차도 시청자들에게 내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방송사들의 꼼수가 더욱 쇼를 저질로 만듭니다.

'1대100' 같은 프로그램의 연출진은 아예 솔직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매일 우승자가 나오면 저희 프로그램 당장 폐지됩니다. 어떻게든 우승자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죠." 이런 자세로 하다 보니, 시청자나 참가 희망자가 도망치지 않게 하기 위해 누군가 상금을 타면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 블로거가 박지선이 5000만원 상금 탄 걸 언론이 먼저 기사화하는 바람에 보는 재미가 없었다고 분개했던데, 이런 속사정을 모르니까 하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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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난이도 조정도 안 되는 한심한 문제로 일관하면서 출연자가 수준이 높네, 실력이 대단하네 부추겨 놓고 정작 고액 상금이 걸린 마지막 단계에서는 도저히 '상식'이라는 말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문제를 내 도전자를 좌절시키는 것이 정해진 패턴입니다. 물론 '퀴즈 영웅'이 너무 안 나오면 영업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적절할 때 한두번씩 서비스 문제로 영웅이 나오는 길을 열어 둡니다.

상금 자체도 적은데다 그 상금마저 주지 않으려는 짠돌이 방송사. 이런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겠다고 줄을 선 시청자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 뿐입니다.

물론 정상적인 퀴즈 프로그램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유치한 짝퉁 퀴즈 프로그램의 범람 또한 문제입니다. MBC에서 EBS로 가면서 완전히 망가져 버린 '장학퀴즈'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1년이 멀다 하고 프로그램 포맷만 바꾸지 말고, 제발 출제되는 문제의 질에나 신경을 썼으면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어디까지나 '문제 잘 맞추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입니다. 연예인 흉내내는 얼치기 고교생 스타를 만드는 프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귀신도 하기 힘들, 50문제 연속 맞추기 라는 어처구니없는 포맷의 '도전 골든벨' 또한 큰소리 칠 처지는 아닙니다. 과연 현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별별 얘기가 다 있습니다만, 애당초 사실상 불가능한 포맷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출연자들을 끼워 맞추다 보니 생기는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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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좋은 퀴즈 프로그램이란 어떤 것일까요. 일단 정통 퀴즈란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첫째, 경쟁이 일어나는 동안 출연자가 같은 문제를 갖고 같은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둘째, 높은 점수를 획득한 사람이 승자가 될 것. 미국 퀴즈 쇼 '제퍼디'의 장수 비결은 이 두 개의 원칙을 충실히 지킨 데서 비롯됩니다.

퀴즈 마니아인 영국인들은 여기서 출발해 잇달아 세계적인 인기 포맷을 개발해냅니다. '후 원츠 투 비 어 밀리어네어'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걸어 두고 문제의 난이도를 통해 여유있는 운영을 합니다. 물론 '100만 파운드'의 상품은 그저 시청자를 유혹하려는 게 아니라 실제로 줄 수 있는 상금입니다.

BBC의 '위키스트 링크' 또한 퀴즈 풀이와 동시에 사람들의 편견과 착각을 관찰할 수 있는 고급 심리 게임입니다. 하지만 이 포맷에서 흥미로운 점은 모두 버리고, 한심한 부분만을 가져 온 것이 오늘날 KBS에서 방송하고 있는 '퀴즈 대한민국'의 포맷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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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억지 감동에 대한 부분. 특히 KBS 계열이 이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데, 항상 퀴즈를 풀다가 막판에 가면 꼭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을 들먹이면서 출연자를 울먹이게 하려고 합니다. 퀴즈를 잘 푸는 것만으론 불만인가요? '우리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모두 효자, 효녀, 효부입니다'를 그렇게 강조해야 하는 걸까요.

프로야구가 열리고 있는 잠실구장에 가서, 9회말 2사 만루에 등판한 구원투수를 붙잡고 "대체 지금 심정이 어떻습니까? 떨립니까? 이 고비만 넘기면 오늘 승리의 수훈이 되는데 부모님께 하시고 싶은 말씀 없나요?"한다고 해 보십쇼. 얼마나 코미디인지.

퀴즈는 스포츠입니다. 잘 풀면 이기는 거고, 잘 푸는 사람이 영웅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 퀴즈 프로그램은 계속 퇴보하고 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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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큰 일을 겪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말을 통해 자신의 의사를 피력합니다. 어떤 말들은 명언이 되어 남고, 어떤 말들은 망언으로 기록됩니다.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삼국지연의'에서도 유비는 육손에게 패해 죽기 직전, "새가 죽을 때가 되면 그 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그 말이 선하다(鳥之將死, 其鳴也哀;人之將死, 其言也善)"고 말합니다.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이 되면 누구든 자신이 어떤 말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인가를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의 마지막 말을 생각하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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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지막 한마디

오슨 웰스의 고전 명작 영화 ‘시민 케인’은 언론 재벌 케인이 숨을 거두는 순간 중얼거린 “로즈버드”라는 말의 의미를 찾는 미스터리 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유명 인사들이 남긴 마지막 말은 유사 이래 수많은 사람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카이사르의 “브루투스, 너마저도” 이후 수많은 말이 때로는 교훈으로, 때로는 호기심의 대상으로 회자(膾炙)됐다.

마지막 말들은 망자의 일생을 압축해 보여주기도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좀 더 좋은 작품을 남겼어야 했다”며 마지막까지 겸손했고, 골프광이던 가수 빙 크로스비는 의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18홀을 돈 뒤 “이봐, 정말 멋진 게임 아니었나?”라고 말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하기 전 남긴 메모의 “슬픔은 끝없이 지속된다”는 말도 많은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때론 죽음에 대한 태도도 엿볼 수 있다. 마르코 폴로는 “내가 본 것 중 절반도 얘기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지만, 카를 마르크스는 “마지막 말 따위는 살아서 할 말을 다 못한 바보들에게나 들으라고”라며 후회 없음을 피력했다.

해학으로 후인들을 위로한 사람도 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편하게 옆으로 누워 보라는 딸에게 “죽는 사람에게 쉬운 일이란 없단다”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버나드 쇼도 “죽는 게 웃기는 것보다 쉽군”이라며 위트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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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에세이를 쓰고 있었다. 그가 완성하지 못한 문장의 첫머리인 ‘인용하자면(Citater fra)’은 끝없는 연구자의 자세를 가리키는 격언으로도 쓰인다. 위대한 과학자들에게도 죽음은 외경의 대상이었다. 찰스 다윈은 “나라고 죽는 게 겁이 안 날 리가 있나”라고 말했고,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이건 말도 안 돼!”라며 강한 의혹을 표현했다. 가끔은 가공의 한마디가 조작되기도 한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여러분, 희극은 끝났소. 박수를 치시오”라는 멋진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지지만 사실 여부는 지금껏 논란의 대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은 “담배 있나?”로 기억되겠지만 유훈(遺訓)은 29일 영결식장에서 낭독된 14행의 유언 가운데서 찾아야 할 듯하다. 과연 그는 그 14행 중 어느 말이 가장 오래 기억되길 원했을까. 마지막 가는 길에도 “원망하지 말라”며 후인들의 화합을 꾀했던 그의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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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고인들이 수없이 많은 말들을 남겼습니다. 마지막 말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가는 굳이 보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마지막 말들은 '훈요십조'라는 이름으로 남았고, 어처구니없이 수백년 뒤 호남 사람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데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의 마지막 말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찾으라면 화합의 한마디였을 것입니다. 주변 정황을 생각하면, 그런 말을 남기고 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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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달변가 김제동이 이날도 명언 하나를 남겼습니다. "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달라"는 유언에 대해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비석 하나씩을 세우겠다"고 한 것이죠. 그렇습니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유명한 빙 크로스비(알고보니 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이 있다는군요)의 노래는 별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고,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이 어울릴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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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3등,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칸 영화제는 황금종려상, 심사위원 대상, 심사위원상의 세 단계로 작품상을 시상합니다. 지난 2004년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고 이번에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으니 명실공히 '칸의 사나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게 인지상정일 겁니다. 특히 타임지의 평론에서 "지난번('올드 보이')보다 마땅히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모으게 했기 때문일 것이고, 아무래도 이미 2등을 해 본 경험이 있끼 때문에 3등은 약간 맥이 빠지는 느낌도 있습니다. 물론 세계 최고를 자부하는 감독들의 작품 20여편 중에서 네 작품 안에 들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란 걸 잊어선 안됩니다.

지금 상황에서 '겨우 3등?'이란 식으로 대응한다면 그야말로 올챙잇적 시절 모른다는 소리 듣기 딱 좋겠죠. 한국 영화가 칸 영화제의 본상 수상 범위에 든 것도 이번이 네번째일 뿐입니다. 일본 영화는 황금종려상만 다섯 번을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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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때문인지 슬쩍 아쉬움이 묻어 나는 듯한 표정입니다.

한방에 정리되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을 위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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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종려상 Palme d'Or
- 하얀 리본 Das weiße Band by Michael Haneke

심사위원대상 Grand Prix

- 예언자 Un prophete by Jacques Audiard

감독상 Prix de la mise en scene
- Brillante Mendoza for 키나테이 Kinatay

 심사위원상 Prix du Jury 
-피시 탱크 Fish Tank by Andrea Arnold
-박쥐 Thirst by Park Chan-w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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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본상 Prix du scenario
-춘곤증 Chun Feng Chen Zui De Ye Wan(Spring Fever) by Lou Ye
오른쪽이 주오 탄, 왼쪽이 웨이 우, 가운데 로 예 감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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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연기상 Prix d'interpretation feminine
- Charlotte Gainsbourg for Antichrist
샤를로트 갱스부르는 아시다시피 세르주 갱스부르와 제인 버킨 사이의 딸이죠. 제인 버킨은 여자분들이 환호하시는 바로 그 버킨 백의 주인공 맞습니다. 아무래도 어머니만은 못하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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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연기상 Prix d'interpretation masculine 
- Christoph Waltz for Inglourious Basterds
시상자는 장자이입니다.

평생공로상 Lifetime Achievement Award for his work
- Alain Resnais


그런데 도대체 왜 이렇게 황금종려상은 타기가 어려운 걸까요. 거기에 대해 지난주 토요일자 신문에 썼던 글입니다.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닙니다. 1등이 2등보다 반드시 우수한 작품이라는 기준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른 결과가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등만이 기억된다는게 참 아쉬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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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황금종려상

칸 영화제의 대상은 황금종려상(Palme d'Or)이라고 불린다. 1939년 시작된 이 영화제의 대상은 1954년까지 그냥 그랑프리라고 불렸지만 1955년부터 칸의 상징인 종려나무 잎새를 디자인에 활용한 황금종려상이 등장했다. 49년 시작된 베니스 영화제가 황금사자상을, 52년 베를린 영화제가 황금곰상을 시상하자 자극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24일 올해 칸 영화제 수상 결과가 발표된다. 그중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차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제 주최 측은 매년 명망 있는 세계의 감독들에게 출품을 요청하고, 그중 선택된 소수가 대상을 수상할 수 있는 경쟁 부문에 포함된다. 올해의 경쟁부문 출품작은 20편. 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포함됐지만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제외됐다.

대중성보다는 예술성을 우선한다는 것이 칸 영화제의 표어처럼 돼 있지만 사실 일반인이 보지 못한 영화가 태반이므로 흥행 성적은 반영할래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심사위원도 매년 전원이 교체되므로 일정한 수상 기준이나 예상 답안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해 심사위원장이 누구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혈 낭자한 액션영화의 대가 쿠엔틴 타란티노가 2004년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 아니었다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2등상인 심사위원 대상을 받지 못했을 거라는 말은 거의 정설처럼 되어 있다.

물론 심사위원장의 스타일을 너무 과신해서도 안 된다. 2002년에는 '트윈 픽스'의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으면서 초현실적 작품이 수상작이 될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황금종려상은 예상 외로 로만 폴란스키의 점잖은 전쟁 서사시 '피아니스트'에 돌아갔다.

송강호가 한 인터뷰에서 말했듯 영화제는 올림픽이 아니므로 금메달(황금종려상)을 따느냐 못 따느냐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전례를 살펴볼 때 황금종려상의 수상은 어느 한 해의 출품작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위대한 업적을 세운 감독은 뒤늦게라도 상을 챙겨 주는 것이 칸의 미풍양속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국보 감독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들 중 '가게무샤'를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꼽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칸 영화제는 80년, 이 작품을 통해 70세의 노장에게 황금종려상을 선물했다. 마치 '그동안 상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사인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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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화제 심사위원들입니다. 왼쪽부터 서기, 로빈 라이트 펜, 하니프 쿠레이시(영국 작가), 이창동 감독, 아시아 아르젠토, 샤밀라 타고르(인도 배우), 이자벨 위페르(프랑스 배우, 위원장), 누리 빌게 세일란(터키 감독), 제임스 그레이(미국 감독)의 순입니다.


뭐 공로상이라는게 따로 있긴 하지만, 평생 애쓴 노장들에게 어느 시점 이후에 상을 몰아 주는 건 어느 장르, 어느 지방에서나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영화계 뿐만이 아닙니다. 기타 황제 에릭 클랩튼만 보더라도 47세 때인 1992년 그래미상 6개 부문을 휩쓸기 전까지는 그래미상에서 단 2회밖에(1972, 1990) 수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이미 9차례나 더 수상했죠.

그러니 2등 한번, 3등 한번을 했다고 해서 너무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황금종려상을 손에 쥘 테니까요. 하네케 감독도 지난 2001년(심사위원대상)과 2005년(감독상)으로 두 번 준비동작을 한 뒤에 이번에 최고상을 차지했습니다. 조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한국 영화인들은 황금종려상을 다섯 번이나 가져간 일본 영화계보다 훨씬 에너지 넘치고 관객들이 호응하는 훌륭한 웰메이드 상업영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자랑스러워 해야 마땅할 듯 함니다. 아무튼 머지 않은 미래에 황금종려상을 번쩍 들어올릴 박찬욱 감독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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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는 촬영상 시상자로 등장했던 여신(혹은 마녀?)의 대표 이자벨 아자니입니다. 확대하시면 주름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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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사실상 존엄사 인정'이라는 헤드라인을 본 순간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마지막 대목이었습니다. 요즘 존엄사, 존엄사 하지만 참 귀에 설게 들립니다. 예전에 쓰던 안락사라는 말과 뭐가 다른지 헛갈리시는 분도 많을 법 합니다.

존엄사로 부르건 안락사로 부르건,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떡밥인 건 분명합니다. 말을 바꿔 놓고 보면 이런 죽음은 일종의 자살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그걸 돕는 사람은 넓은 의미의 살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격하게 보자면 의료진이 거기에 참여하는 것은 심각한 의료 윤리 위반이기도 합니다. 이런 떡밥을 덥썩 물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긴 합니다만, 아무튼 거기에 대해 쓴 글입니다.

전문가 분들의 지적이나 충고를 환영합니다.

아래 글에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미 어디선가 들어 보신 분들이 대부분이겠지만, 혹시 이 영화를 보려고 계획중인 분이 있다면 그냥 지나가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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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존엄사

2004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큰 성공을 거뒀지만 장애인 인권단체로부터는 극렬한 비판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늙은 권투코치 역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딸처럼 아껴온 선수가 사고로 목 아래 전신마비에 빠지자 독극물 주사로 안락사를 돕는다. 극중에선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 행위였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장애인들의 의지에 찬물을 끼얹었다”며 항의에 나섰다.

서울대병원이 18일 사실상 존엄사를 인정하는 방침을 발표해 한바탕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오랜 논쟁거리였던 안락사(euthanasia)라는 말 대신 언젠가부터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는 말이 쓰이지만 두 용어의 혼동으로 인한 혼란도 만만찮다. 엄밀히 말해 두 용어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안락사는 '치료 방법이 없어 더 이상의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 없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 중 '적극적인 안락사'는 독극물 주사 등으로 환자의 죽음을 야기하는 것이며, '소극적 안락사'는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맞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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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이나 지난 2005년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경우는 모두 후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대다수 연구자들도 이번 서울대병원의 조치를 비롯해 국내에서 사용되는 존엄사의 의미를 소극적 안락사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의 의미는 다르다. 1997년 발효된 미국 오리건주의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은 6개월 이내 시한부 생명을 진단받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독극물 투여를 허용하고 있다. 보수파인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01년 약물 관리법을 이용해 이 법을 무력화시키려 시도한 적도 있다. 그러나 2008년 현재 이 법의 적용을 받아 삶을 마감한 환자는 400명을 넘어섰다.

여기에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촉발된 논쟁은 이미 존엄사와 관련된 논의가 '회생 불가능한 환자'의 한계를 넘어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를 과연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느냐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에서의 존엄사 논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좀 더 적극적인 토론을 통해 각계의 지혜가 모이기를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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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뜻으로만 풀이해도 '존엄사'란 '죽는 순간 만큼은 인간의 존엄성(dignity)을 지키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이름입니다. 이미 의학적으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료진이나 가족의 의무감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을 그저 연장하고 있을 뿐이라면 과연 그게 인간을 위한 것이냐는 의문이 떠오를게 당연합니다.

물론 앞서도 말했듯 이런 경우, 저런 경우, 경우에 따라 생각할 거리는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환자가 이미 의식이 없다면? 가족이 치료비 때문에 살 수 있는 환자의 치료 중단을 요구한다면? 환자의 잔여 수명이 1년이 넘게 예측된다면? 암이 아닌 다른 불치병이라면? 환자가 뇌손상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경우라면? 이런 경우들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준비될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존엄사에 대한 '대표 입장'을 갖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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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이후 의료계가 "존업사 입법의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카톨릭 생명윤리위원회는 곧바로 "추기경의 죽음을 존엄사로 매도하려는 세력에게 경고하며, 이것이 안락사 허용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다"고 성명을 냈습니다.

엄밀히 말해 국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존엄사의 개념에 비치면 김 추기경의 마지막 길은 존엄사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걸 '매도'라고 표현하는 것은 굳이 국내에서 통용되는 존엄사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이기도 하죠. 물론 자살을 엄금하고 있는 가톨릭의 입장에서는 어쩔수없는 선택이라고 보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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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람들은 '존엄사'나 '안락사'라는 말에서, 도저히 후송 불가능한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동료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는 병사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 나온 죽음의 형태는 아마도 이쪽에 좀 더 가깝지 않을까 합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가장 끔찍한 삶의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오래 전에 들은 얘기로는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을 시도한 사람 가운데 뇌손상만을 입고 살아남아 침을 질질 흘리며 세살짜리 아이 수준의 지능으로 병원 신세를 지는 사람도 있다더군요.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온 몸이 전신마비로 꼼짝할수 없는 상태가 참을 수 없는 고통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도 손끝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라면 정말 참담한 심경일 겁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결말에 장애인 인권 단체들이 반발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학에 가고, 책을 저술하고, 석학이 되는 사람도 있다"며 "이런 영화의 결말은 그런 악조건에서도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용기를 꺾는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죠. 호킹 교수를 생각해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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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런 상황을 개인의 결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로 남겨 둘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으로 여기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답은 없을 듯 합니다. 그런 일을 당한 당사자의 입장, 또 옆에서 바라보는 가족의 입장, 의료진의 입장이 어차피 다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상황을 다 감안하면 카이자르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과연 어떤 죽음이 이상적인 죽음인가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답니다. 이때 카이자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예기치 않은, 갑작스러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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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교황청이 폭파 위협을 받는 동안 진짜 교황까지 뉴스의 초점이 되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겁니다. 영화 '천사와 악마'가 개봉하는 주간에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중동 지역을 순방하면서 무슬림과 기독교도, 유태인들을 하나로 묶는 '공존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물론 현 교황은 지금까지 입만 열면 사고를 쳐 온 터라 이번 중동 방문을 놓고도 우려가 엇갈렸습니다. 심지어 '교황은 반유태주의자다' '지금이 십자군 전쟁 때인 줄 아느냐'는 말까지 들었던 적이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번 중동 방문은 자칫하면 제 무덤을 파는 결과가 나올 지도 모른다는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별 무리 없는 순방을 마쳤지만 이스라엘의 일부 언론들은 "끝내 나치 독일에 의한 유태인 학살에 대해 독일의 책임을 좀 더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아 실망감을 줬다"고도 보도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 히틀러 유겐트라고 불리는 나치 청년단체의 활동 경력이 있는 것으로 꼽히는 인물인 만큼, 더욱 그런 언급이 필요했겠죠.

사실 평소 여기로 가져오던 글들에 비해 좀 무겁습니다. 어쩔까 생각도 했지만 어쨌든 아카이브의 의미로 가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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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 시대

14일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는 중세 가톨릭의 역사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다빈치 코드'를 쓴 댄 브라운의 또 다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가톨릭에 의해 탄압당한 중세 과학자들의 후손들이 바티칸을 상대로 복수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가톨릭의 반성을 은근히 촉구하는 이 영화가 전 세계에 공개될 무렵 진짜 교황은 이스라엘을 비롯한 중동 지역을 방문해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모두에 화해와 공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베네딕토 16세는 이스라엘 측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애도를 표했고, 베들레헴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권 국가 설립을 지지한다고 발언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게 경의를 표한 셈이다.

타 종교에 대한 관용은 천주교 교단의 입장에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교황청은 이미 1965년 '비그리스도교에 대한 선언', 즉 노스트라 아에타테(Nostra Aetate, '우리 시대'라는 뜻의 라틴어)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유대교·힌두교·이슬람교·불교 등과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혈통이나 피부색이나 사회적 조건이나 종교적 차별의 이유로 생겨난 모든 박해를 그리스도의 뜻에 어긋나는 것으로 알아 배격한다'는 것이 요지다.

그러나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는 그 정신에 역행하는 보수적인 행보로 이미 몇 차례 곤욕을 치렀다. 추기경이던 1990년에는 과학자 갈릴레이를 이단으로 지목했던 당시 교황청의 조치를 지지해 물의를 빚었고, 2006년엔 이슬람 비하 발언으로 아랍 국가들의 항의를 받은 적도 있다. 더욱이 올 연초엔 공공연히 반유대주의 성향을 드러내 1988년 파문당한 네 성직자를 복권시켜 국제 유대인 사회의 반발을 낳기도 했다. 그런 베네딕토 16세인 만큼 이번 방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다소 긴장감이 흘렀지만 교황은 15일 별 무리 없이 일정을 마쳤다.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가 유럽 각국 군주들에게 “보병이든 기사든, 가난뱅이든 부자든, 기독교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악의 종족을 무찌르라”고 소리 높여 외친 뒤로 수백 년간 중동은 십자군과 이슬람군의 피로 물들었다. 그 성지에서 900여 년 뒤의 후임 교황이 평화를 설득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시대'의 정신이 아직 존중되고 있다는 위안을 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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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노스트라 아에타테, 즉 '우리 시대'의 정신이란 간단히 말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해 벌어지는 인류 사이의 반목이나 대화의 단절, 상호 배타적인 입장의 철폐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서구 문화 발전의 증거라고 할 수 있겠죠.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 문서가 2221대 81이라는 표차로 채택된 것은 인류애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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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65대 교황인 베네딕토 16세가 아무리 사고를 많이 쳤다고 해도, 그 전임자들을 두루두루 훑어보면 꽤 양호한 편에 속할지도 모릅니다. 중세의 교황들이 바라보던 유럽의 군주들은 비록 기독교도라고는 하나 사랑의 실천보다는 전투의 영광을 더 높이 사는 인물들이었으니 말입니다.

우르반 2세가 비잔틴 제국(동로마제국)의 구원 요청을 받고 1095년 십자군 파병을 제안한 동기중의 하나가 "같은 기독교도 끼리의 살육을 좀 막아 보자는" 것이기도 했다니 말 다 했죠. 물론 이런 동기에도 불구하고 뒷날 십자군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꾀임에 빠져 당시 기독교 세계 최대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인노켄티우스 교황은 격분했고 책임자들을 파문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어차피 성지로 가서 이교도와의 싸움에 참가하면 다시 사면해줘야 할 입장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뒤의 무수한 교황들 역시 평화 유지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습니다. 현대에도 2차대전 당시 교황이었던 피우 12세는 "은근히 히틀러와 홀로코스트를 지지했다"는 음모설에 시달리기도 했죠. 물론 이 음모설은 거의 근거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유력한 유태인 단체들은 피우 12세의 노력이 없었으면 유태인 희생자들은 더 늘어났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지나온 역사를 돌이켜보면 평화의 수호자보다는 분란의 기원으로 더 잘 어울렸던 교황이 중동 평화를 위해, 타 종교인들과의 공존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보기 좋은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저 글을 쓰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건 바로 이 동영상이었습니다.



보고 나면 참 씁쓸합니다. 대체 언제쯤 이런 모습을 안 보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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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나오는 뱀파이어들은 참 특이한 존재들입니다. 뭐 문화와 배경의 차이가 있지만 흡혈귀의 대명사인 드라큘라 백작을 물리치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십자가와 햇빛, 그리고 마늘이죠. 하지만 '박쥐'의 송강호는 원래 신부라서 그런지 십자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또 한국 사람이니 아예 음식을 안 먹는다 해도 사방에 널린게 마늘인데, 마늘을 겁내선 도저히 돌아다닐 수가 없겠죠.

대개 뱀파이어는 불로불사이고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지만 전설을 종합하면 이처럼 꽤 제약이 많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뱀파이어가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한 물리학자에 따르면, '전통적인(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뱀파이어는 존재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것도 수학으로 증명이 된다는군요. 왜 그럴까요? '박쥐'를 보다가 생각난 얘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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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뱀파이어

'박쥐’의 박찬욱 감독과 주요 출연진이 13일 칸 영화제 본선 장도에 오른다. 뱀파이어 이야기를 다룬 ‘박쥐’는 개봉 일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뱀파이어에 대한 전설은 세계 어디에나 있다. 야행성이고 햇빛을 두려워하며, 피를 빨린 피해자도 뱀파이어가 된다는 점 역시 만국 공통이다. 이런 뱀파이어가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미국 센트럴 플로리다대의 코스타스 에프티뮤 교수는 2006년 논문에서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그 존재 가능성을 부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인구가 5억 명 정도이던 서기 1600년 1월, 지구상에 단 1명의 뱀파이어가 존재하고 그가 생존하기 위해 월 1명씩의 희생자를 찾아야 한다고 가정한다. 1600년 2월, 뱀파이어는 2명으로 늘어난다. 다음 달에는 4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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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출산을 감안해도 1603년이 오기 전에 지구상에는 먹이가 될 인간이 더 이상 남지 않으므로 뱀파이어 역시 전멸하게 된다. 결국 뱀파이어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억제하지 못하면 인류의 말살은 물론 스스로의 운명에도 종지부를 찍게 되는 셈이다. 이 대목에서 ‘뱀파이어 경제(vampire economy)’라는 시사용어가 떠오른다.

뱀파이어 경제란 정상적인 기업행위나 노동을 통하지 않은 채 부의 축적을 추구하는 행위, 혹은 남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기업을 말한다. 4, 5년 전만 해도 월 스트리트는 한국 경제에 대해 구조조정이 보다 엄격했어야 했다며 “햇볕만 쬐면 사라질 부실기업들이 판치는 뱀파이어 경제”라고 비판하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진짜 거물 뱀파이어들의 소굴은 그쪽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 지구를 휩쓴 경제 위기의 주범인 대형 금융사들이 그동안 서민들의 피를 빨아 부를 축적해 온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한때는 세계 경제를 리드한다며 대접받던 엘리트들이 하루아침에 전염병 보균자 취급을 받고 있다.

영화 ‘박쥐’의 결말은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자들(영화 속 뱀파이어)이 타자에 대한 배려를 무시한 채 욕망의 끝까지 치닫는 경우, 누군가는 정지신호를 보내야 한다는 우화로도 읽힐 수 있다. 물론 영화 ‘박쥐’는 이런 한마디 교훈으로 정리하기엔 훨씬 복잡한 영화다. 미묘하고 중층적인 ‘박쥐’가 칸 영화제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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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당초의 인구 5억명이 모두 뱀파이어로 바뀌는 시기는 1602년 6월 정도 됩니다. 2의 30제곱이 5억3000만 정도 될 겁니다. 중간에 아기가 무리하게 태어나고 했다고 하더라도 한두달이면  흡혈귀의 증가 속도가 출산 속도를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역설을 의식했는지, 20세기 후반의 뱀파이어들은 매우 똑똑해졌습니다. 앤 라이스의 작품에 나오는 뱀파이어들만 해도 모든 희생자를 뱀파이어로 바꿔 놓지는 않죠. 특별히 오래 오래 데리고 싶은 사람만을 뱀파이어로 바꿔 놓고, 나머지는 그냥 식용(?) 취급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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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진화한 뱀파이어들을 생각하면 에프티뮤(Efthimiou) 교수의 계산은 그리 적절치 않은 셈입니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꼭 무시할 것만은 아닙니다. 뱀파이어들이 지혜롭게 자신들의 개체수를 유지하고, 무분별한 살육으로 인간들의 씨를 말리지 않으면서 피를 빨아야 그들도 살고 인간들도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셈이죠. (아시다시피 신문에 쓰는 글은 지면의 한계로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다 붙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난 9일자 신문에 저 글을 써놓고 밍기적거렸더니 그새 더 자세한 글이 올라와 있군요. 재반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이쪽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박쥐'의 송강호만 해도 그렇습니다. 혈액은행을 이용하고, 산 사람으로부터 그냥 주스(?)만 받아 마시고, 자살하는 사람을 식용으로 이용하죠. 하지만 김옥빈은 그런 금욕적인 삶을 비웃습니다. '여우가 닭 잡아 먹는게 죄냐'는 대사가 인상적이죠.

이런 부분에서 경제 엘리트들의 무한에 가까운 욕망이 화를 불렀다는 이번 경제 위기가 오버랩됩니다. 소위 엘리트라는 이유로 남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가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이다가 결국 갈 데까지 가 버린 사람들이야말로 먹이가 사라진 뱀파이어의 운명이 돼 버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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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 뱀파이어 경제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자료를 보다 보니 이 말 처럼 참 다양하게 쓰이는 말도 드물더군요. 윗글대로 미국의 경제 엘리트들이 한국 기업들의 주가가 저평가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 "햇빛만 비치면 사라져야 할 뱀파이어같은 기업들이 아직도 즐비하게 남아서 은행이며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부실 기업의 퇴출이나 구조조정이 미비하다고 비꼬곤 했던 때도 이 말이 쓰였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쓰이는 의미는 역시 '남들의 고혈을 빨아' 먹고 사는 경제주체들을 가리킬 때였죠. 물론 위 문단의 뱀파이어같은 회사들도 이들 중 하나인 건 분명합니다. 또 어떤 때는 생산성에는 기여하지 않으면서 가난한 하청업체를 울리는 대기업의 귀족노조를 가리킬 때 쓰이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부동산투기를 유발해 먹고 사는 속 시커먼 건설사들을 가리킬 때도 쓰입니다. 입장에 따라 어느 쪽으로도 휘두를 수 있는 비유의 칼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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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든, 스스로가 뱀파이어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염치가 있어야 합니다. 피를 너무 빨아서 희생자를 죽게 하거나 자기 같은 뱀파이어들을 양산하고, 심심하다고 함부로 인명을 해치는 뱀파이어는 자기 목을 조르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이미 설명했습니다. 경제 시스템 안의 뱀파이어들을 완전히 쓸어 버리는 게 어디서나 힘들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쪽이 현명하게 살아남는 길입니다. (어떤 작품들에는 치안유지에 재능을 활용하는 뱀파이어들도 나오곤 합니다.^^ '블레이드'라든가...)

아무튼 '박쥐'가 칸에선 어떤 성적을 낼지도 궁금합니다. 물론 이번에도 상을 탄다면 좋겠지만, 경쟁작들이 워낙 대단해서 마음은 싹 비웠습니다.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버릴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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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에는 프랑스 병이라는 이름만 소개했지만, 이 병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프랑스 병, 이탈리아 병, 스페인 병, 영국 병, 터키 병, 폴란드 병... 온갖 나라 이름이 이 병의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 어쩌면 당연한 얘기지만 - 결코 아무도 자기 나라 이름을 이 병에 붙이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최근 돼지(Swine)이라는 뜻이 들어가는 SI라는 명칭이 폐기되고 신종플루, 인플루엔자 A, 혹은 H1N1이라는 약칭이 대신 사용되게 됐습니다. 이름이 왜 바뀌게 되었는지는 모든 분들이 너무나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이 글을 쓴지도 벌써 2주째로 접어들었군요. 5월 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SI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천명한 날 쓴 글입니다. 어쩌다 보니 이리로 옮겨오는게 좀 늦었는데, 사실 더 늦어도 상관없을 글이지만 중간에 희한한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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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프랑스병

1492년 신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탐험대는 황금과 함께 얄궂은 병(病) 하나를 유럽으로 가져왔다. 이 병은 16세기 초, 유럽 전역에서 맹위를 떨쳤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선 이 병을 ‘프랑스병’이라고 불렀지만, 반대로 프랑스에선 ‘이탈리아병’이란 이름을 붙였다. 동시에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병, 러시아에서는 폴란드병, 터키에서는 기독교도병으로 통했다. 멀리 타히티 섬에서는 영국병이라고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이 발생한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들 ‘몹쓸 병을 옮기는 책임’은 외국에 떠넘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시인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가 1530년 이 병에 ‘시필리스(syphilis·매독)’란 새 이름을 지어 주지 않았다면 유럽 각국은 지금까지도 서로 상대국의 이름을 병 이름으로 부르며 감정다툼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달 30일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창궐하고 있는 국제 전염병에 대해 ‘SI(Swine Influenza)’ 대신 ‘인플루엔자 A형’ 또는 ‘H1N1’이란 명칭을 공식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널리 쓰이는 SI를 굳이 새로운 이름으로 바꾼 건 불필요한 오해와 피해를 막기 위해서다. WHO는 “이 병은 인간들 사이에서만 전염됐으며, 돼지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된다는 흔적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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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돼지고기를 먹거나 만졌다고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됐다. 이집트 등지에서 일어난 돼지 살처분 논란과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돼지고기 기피 움직임에 경종을 울리는 발표인 셈이다.

병의 이름은 혐오와 공포감을 함께 옮긴다. 20세기 이후 사람들은 병의 이름이 주는 그릇된 인식을 방지하기 위해 증세나 원인을 노골적으로 설명하는 이름은 피하는 게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문둥병은 한센병으로, 노망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인간 광우병도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으로 불리게 됐다. 정신분열증도 ‘도파민 항진증’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미 욕설이 된 ‘지랄’이라는 고유어 대신 간질(癎疾)이라는 한자 병명을 사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철없는 줄리엣은 로미오에게 “장미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향기롭지 않겠느냐”고 말하지만, 이름만 몇 자 바꿔도 아파트 가격이 천양지차가 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면 세상인심이 얼마나 이름에 민감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WHO의 결정이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양돈 농가들의 시름을 씻어주길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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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만, SI와 프랑스 병이 연결되는 것은 이 두 병이 각각 신종 플루와 매독(syphilis)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본래의 이름에 담겨 있던 불필요한 편견이나 공포, 증오와 같은 감정을 희석시켰기 때문입니다.

SI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신종플루라는 이름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이 병과 돼지고기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듯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SI라는 명칭이 사용되던 기간 중에 삼겹살집이나 족발집은 손님이 뚝 떨어졌다던데 중국집에는 여전히 손님이 많더군요.^^ 짜장면이며 탕수육, 모두 돼지고기 없으면 못 만드는 음식들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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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Girolamo Fracastoro) 선생은 1478년 베로나에서 태어나 활동하신 분입니다. 당시의 지식인들이 대개 그랬듯 그냥 시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파두바 대학의 논리학 교수였으며, 코페르니쿠스와 절친한 천문학자였고 또 의사였다고 합니다.

이 분은 Syphilis sive morbus gallicus라는 서사시에서 프랑스 병(morbus gallicus: gall은 프랑스의 옛 이름)이라는 병에 처음 걸린 사람으로 시필루스(Syphilus)라는 인물을 등장시키고, 거기서 병 이름인 Syphilis를 만들어냅니다. 뭐 지금은 이 병의 이름을 지은 것이 이분의 가장 큰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꽤 존경받는 전염병 연구가였던 모양입니다. 티푸스라는 이름도 이 분이 지은 거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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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병으로서의 매독은 환자와 직접 신체 접촉을 하지 않으면 거의 걸릴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전염성이 미약하지만, 막상 걸리면 살더라도 신체 일부가 썩어들어가고 환자의 외양이 흉칙해지는 등 극악의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이 병에 대한 공포심은 대단했다고 합니다(사진도 여러개 구할 수 있지만 너무 끔찍해서 피하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생활 패턴상(?) 예술가들이 걸리기 쉬운 병이다 보니 근세 수많은 유럽 예술가들이 이 병으로 죽거나, 이 병을 치료하려고 수은을 마시다 죽었다는군요.

구한말이며 일제시대까지도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 수은 증기를 들이마시는 위험천만한 시술을 하다가 죽은 사림이 꽤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치료법 역시 프라카스토로에게서 비롯된 것이라니 참 유서가 깊습니다. 병에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만... 다른 효과가 더 빠를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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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미친 짓은 독일의 파울 에를리히가 1910년 살바르산 606호(어쩐지 친숙한 이름입니다. 606회의 실험 끝에 만들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어린 시절 읽은 과학도감에 쓰여 있었습니다. 여명 808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아시겠습니까?)를 만들 때까지 계속됐다고 합니다.

아무튼 대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가져온 병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오히려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퍼뜨리고 다시 되돌아온 병이라고도 주장한다고 합니다. 뭐 500년 전의 일을 지금에서 알 길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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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칼럼이 나간 뒤 어떤 분이 댓글로 노망이 알츠하이머 병과 다르며, 광우병과 크로이츠펠트-야코브 병도 다르다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사실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두 병의 이름 모두 원래의 병 이름이 갖고 있는 멸시나 공포의 느낌을 함께 싣지 않는 효과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글의 취지에서 빗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지랄'이라는 말이 본래 병의 이름이라는 것은 모르셨던 분도 꽤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왜 지랄이야'라는 말이 생각보다는 훨씬 심한 욕이었던 셈이죠. 이 말이 본래의 의미와 살짝 떨어져서 아예 욕으로 굳어진 이상, 실제 환자에게 그 병 이름을 쓰는 건 대단히 모욕적이고 가혹한 일이겠죠. 그래서 간질, 혹은 전간이라는 이름이 주로 쓰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유명한 줄리엣의 대사는 '로미오와 줄리엣' 2막 2장에 나옵니다. 유명한 발코니 신에서 로미오가 엿듣고 있는 줄 모르는 줄리엣이 '당신의 이름에서 몬테규라는 성만 지운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며 읖조리는 말이죠. 원문은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as s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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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은 요란하지만 아무튼 결론은 이름 그거 함부로 지었다가 엉뚱한 사람이 애매하게 피본다. 그러니 이름 함부로 짓지 말자. 가능하면 아무 뜻도 없는 이름으로 짓는게 좋다는 얘깁니다. 저 칼럼은 5월2일자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말, 그러니까 5월9일자 조선일보에 이런 글이 실렸더군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5/08/2009050801610.html?srchCol=news&srchUrl=news2

서울대 주경철 교수님의 이름이 걸린 '주경철의 히스토리아'라는 연재물입니다. 뭐 천하의 주경철 교수님('테이레시아스의 역사'는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이 위의 저런 후줄근한 칼럼 따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셨을 리는 없고 그냥 묘한 우연이겠죠. 그냥 참 신기한 일도 있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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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프라카스토로 선생의 고향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인 베로나입니다. 그 분의 동상도 바로 베로나의 시뇨리 광장에 있다는군요. (그래서 뭘 어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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