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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보고 참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듯 합니다. 지난번에 '울버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항상 헤니의 얼굴은 서구인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다가, '울버린'에서 진짜 백인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헤니를 보니 이건 동양인의 얼굴이더라"라는 얘기를 했는데, 많은 분들이 거기에 공감하시더군요.

그런데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남녀 배우들 사이에는 무시 못할 차이가 나타납니다. 남자 배우의 경우, 조금이라도 가능성을 보이는 배우들은 모두 아시아계와 백인의 혼혈입니다. 즉 순수 아시아인의 얼굴로 할리우드에서 뭔가 해보려는 배우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거죠. 반면 여배우들은 혼혈이건 아니건 모두 경쟁력이 있더라는 겁니다.

어찌 보면 좀 기분나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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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헤니군, 그러고보니 자네 동양인이었나?

다니엘 헤니가 나온 '엑스맨 탄생: 울버린'을 봤다. 휴 잭맨보다 헤니가 주인공인 듯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는 한국인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게다.

영화는 예상대로 시원한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호화 오락 대작. 그런데 두 가지 면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첫째, 헤니가 꽤 괜찮은 역을 맡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비교의 기준은 '스피드 레이서'의 비나 '드래곤볼 에볼루션'의 박준형일텐데 둘 보다는 훨씬 할리우드 관객들에게 괜찮은 모습으로 비칠 듯 했다. 대사가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앞으로 미국 관객들에게 헤니를 설명할 때 "'울버린'에서 에이전트 제로 역으로 나온 배우"라고 설명하면 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무엇보다 유명한 원작이고, 박스 오피스 1위 영화의 프리미엄도 있을 것 아닌가. 이런 면에서 'G.I 조'를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삼은 이병헌의 선택도 훌륭했던 셈이다. 80년대 이후 성장한 미국 남성 가운데 G.I. 조 시리즈의 인형 한두개 쯤 가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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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전혀 뜻밖으로, 헤니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다. 영화를 함께 본 사람이 "헤니가 동양인으로 보이지 않아?"라는 말을 꺼냈을 때,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조각 미남' 헤니의 모습은 아무래도 이방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울버린'에서 백인 배우들과 함께 서 있는 헤니를 보니 이건 누가 봐도 '걔네 편'이 아니었던 거다. 그쪽 관객들이 헤니를 보더라도 "음. 잘생긴 동양인 총각이군"이라고 생각하는게 자연스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은 한둘이 아닌 듯 했다. 필자의 블로그에 이런 얘기를 쓰자 공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오히려 해외 거주기간이 긴 사람들은 '그럼 헤니가 서양 얼굴 취급을 받았단 말이야?'란 식으로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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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남자 배우로서 그나마 미남 대접을 받는 배우 가운데 순수 아시아풍의 얼굴을 가진 배우는 거의 없다. 어머니가 독일계 혼혈이었던 이소룡을 거쳐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황제'의 존 론도 중국계 아버지와 포르투갈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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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 3'에 진나라 장군으로 등장한 러셀 웡(중국명 왕성덕) 역시 중국계 아버지와 네덜란드계 어머니 사이의 혼혈이다. 그의 막내 동생이며 홍콩에서 활동하는 마이클 웡(왕민덕)에 이르기까지 이 왕씨 형제들은 혼혈 미남의 대표주자 격인 인물들이다.

아무튼 다니엘 헤니를 포함해 이런 얼굴들 역시 구미인들의 시각에서는 죄다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로 보였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런 미남들도 아직 할리우드의 주인공 자리는 역부족이다.
반면 여배우의 경우 아시아계 혈통은 꽤 선호되는 편이다. 이미 피비 케이츠(어머니가 필리핀계 화교)에서 매기 큐(어머니가 베트남계 화교), 데본 아오키(어머니가 독일계)에 이르는 아시아 풍 혼혈 미녀들은 상업적으로 검증된 바 있다. 심지어 나이를 먹지 않는 신비로운 얼굴이라는 전설까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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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배우들로 한정한다면 굳이 혼혈일 필요도 없다. 여배우들 중에는 김윤진이나 양자경, 공리, 장자이 같은 전형적인 아시안 얼굴의 미녀들까지도 월드 스타 자격증을 받았다. 루시 류나 산드라 오, 바이 링 등은 좀 다른 분류가 필요하겠지만 아무튼 여배우는 혼혈이 아니더라도 꽤 경쟁력이 있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굳이 스타들을 꼽지 않아도 해외로 진출한 동포/유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이같은 추세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계 남성의 인기와 여성의 인기는 비교가 안 될 정도다.

반면 주윤발이나 성룡을 섹스 심벌이라고 우기지 않는 한 남자 배우 가운데서는 이런 성공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순수 아시아인 남성의 명예^^를 지켜줄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 봐도 결국 믿을 사람은 단 한명 뿐인 듯 하다.

정지훈군. 건투를 비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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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통하는 얼굴과 세계에서 통하는 얼굴이 반드시 다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미 서구 백인 중심의 심미안에 너무 젖어든 탓인지도 모르지만, 웬만하면 이제 지구촌 어디에서나 한 지역에서 특출한 미모는 다른 지역에서도 대략 인정받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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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루시 류라는 배우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충격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혹시 중국인들은 루시 류 같은 얼굴을 미인으로 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봤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니더군요(이건 한국 사람이 산드라 오 같은 얼굴을 미인으로 친다는 생각만큼이나 큰 오해입니다). 그저 백인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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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데본 아오키도 그리 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아무튼 서구인들은 열광합니다. 몸매가 뛰어난 거야 인정하지만... 아무튼 저런 얼굴을 '신비롭다'고 하더군요.

한때는 백인들이 '김태희나 김희선 같은 미인들보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무수리 같은 얼굴을 더 미인으로 친다'는 오해도 있었습니다만, 이건 사실이 아닌 듯 합니다. 별로 볼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백인들도 아시아의 대표 미녀들을 보면 안 예쁘다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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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제가 듣고 본 바에 따라 내린 결론은, 백인들은 동양인 여자는 다 좋아한다는 겁니다. 동양인 여자가 심한 기형만 아니면 '작은 도자기 인형'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백인들 중에서도 좀 깨인 사람들은 공리나 장자이가 루시 류보다 미인이라는 걸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은 루시 류나 장자이를 비슷한 얼굴이라고 생각한다는 충격적인 보고도 있습니다.

아무튼 결론은, 동양인 여배우들은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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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윗글에 나오는 중국계 미국인 배우 왕성덕씨. 러셀 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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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인 왕민덕씨도 홍콩 영화 좀 보신 분들에겐 참 낯익은 얼굴이죠. 아무튼 이런 수준의 용모도 할리우드의 높은 벽 때문에 미국 영화에서는 조연급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사실 많이 나오는 걸로는 일본계인 마코 선생을 따를 사람이 없죠.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얼굴을 보면 아, 저 할아버지? 할 얼굴입니다. 한국인인 오순택 선생과 함께 할리우드 영화의 동양인 역할은 거의 쓸었던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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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좀 나아질 지 모르지만, 할리우드가 동양인 남자 배우들에게 기대했던 역할이 이런 수준의 용모였다는 건 참 불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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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주윤발 형님이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아 놓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죠. 나이도 있고...  '아시아인의 덴젤 워싱턴'이 되기엔 좀 여러 모로 부족합니다.

한동안은 동양인 남자 배우가 백인 여배우와 키스신을 연기하는 것도 금기 취급을 받았다니 뭐 이런 데서 뭘 기대하겠습니까. 아무래도 이런 벽을 넘어서려면 시간도 꽤 걸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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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앞으로 비가 잘 되기를 더욱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제목에도 저렇게 달았듯, 비든 다니엘 헤니든 이들이 미국에서 성공한다면, 그건 '아시아인의 성공'이라는 뜻에서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헤니가 한류 스타냐 아니냐 하는 옹졸한 생각을 계속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아시아계 남자 배우가 미국 본토에서 어디까지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대국적인 할리우드 역사를 볼 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엑스맨 탄생: 울버린'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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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유학생 손수경(24)씨가 '브리튼스 갓 탤런트' 준결승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수 손(Sue Son)이라는 이름으로 출연해 '혹시 한국인일까...'하는 궁금증만 낳았지만 곧 발빠른 연합뉴스 런던 특파원 덕분에 한국인임이 밝혀졌습니다. 하긴 중국계 손씨들은 대개 'Son' 아닌 'Sun'이라고 영문 표기를 하죠.

아무튼 손수경씨는 이날 바네사 메이(키가 좀 클 뿐 스타일도 꽤 흡사합니다)의 'Storm'을 신나게 연주해 예선을 통과했습니다. 사람들의 주목도를 생각하면 수잔 보일, 샤힌 자파골리, 홀리 스틸 등과 함께 거의 4강 수준인 셈이죠(과대평가인가...). 그런데 그녀의 이 프로그램 출연에는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소재가 개입됐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일단 그 경과를 좀 보시겠습니다.




[송원섭의 두루두루] 의리와 기회 사이

지난 2일(현지 시간) 영국 ITV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한국인 손수경씨가 출연해 화제가 됐다. 일반인들이 출연해 장기자랑을 펼치는 이 프로그램에서 손씨는 전자 바이올린을 들고 바네사 메이의 '스톰'을 멋지게 연주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손씨는 준결승 진출이 확정된 뒤 펄쩍 뛰며 좋아했지만 그 뒷얘기가 만만찮다. 당초 손씨는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인 제니 칼릴과 함께 예선에 출연했지만 심사위원 사이먼 코웰은 "둘 사이의 불협화음이 너무 심하다. 차라리 혼자 연주를 하는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결국 손씨는 솔로로 다시 도전했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 추천을 받았지만 대신 친구를 잃었다. 영국 데일리 메일 보도에 따르면 손씨는 "제니가 페이스북(한국의 싸이월드와 유사한 네트워크 사이트)의 친구 목록에서 나를 삭제했다는 걸 알게 됐다. 전화도 받지 않는다. 제니에게 먼저 얘기를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몫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손씨는 또 "용서를 바랄 뿐이다. 놓치기엔 너무 좋은 기회였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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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제니의 어머니는 "손씨가 부추기지 않았다면 내 딸은 애당초 그 쇼에 출연할 생각도 없었다"며 손씨에 대한 비난을 그치지 않았다.

유력한 성공의 기회와 의리 사이에서 고민하게 되는 일은 연예계에선 비일비재한 일이다. 유명 밴드의 보컬 중에는 솔로로 데뷔하라는 제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수많은 스타들이 무명시절부터 고락을 함께 한 소속사를 버리고 '더 큰 성공을 위해서는 우리와 손을 잡아야 한다'는 돈의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약속의 소중함을 지켜 가끔 세상의 귀감이 되는 사람이 있다.

최근 종영한 SBS TV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주인공으로 소지섭이 캐스팅된 것은 2년 전의 일이다. 이 말은 그가 주인공을 맡은 뒤로 이 드라마가 1년 이상 표류했다는 뜻이다. 그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이 수차례 바뀌었고, 작가와 연출자도 교체됐다.

1년이나 제작이 지연됐다면 일반적으로 배우가 계약금만 챙기고 계약 무효화를 주장해도 책임이 없다. 이 경우 계약금은 그 작품 때문에 흘려 버린 다른 기회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지섭은 영화 '영화는 영화다' 한 편을 촬영했을 뿐, 끝내 '카인과 아벨'로 안방극장에 복귀해 제작사와의 의리를 지켰다.

의리보다 이익을 선택하는 사람에게도 이유가 있고, 어떤 이유에서든 애당초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을 억지로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능하면 우리는 이익보다는 의리가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결국 우리가 약속을 지키는 것도, '나도 누군가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경우든 정답은 없지만 의리와 기회가 충돌할 때, 일단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 볼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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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문용 칼럼이라는 건 짧은 지면 안에 뭔가 세상에 교훈이 될 얘기를 꾸려 넣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쓰고 나서도 이걸 이렇게 짧게 쓰면 안되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소지섭과 손수경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심지어 손수경씨는 연예인도 아니고, 누구와 계약을 한 것도 아닙니다. 이 글에 두 사람이 나오는 건 두 사람의 경우를 비교하자는 게 아닙니다. 요즘 이러이러한 일이 화제가 됐는데, 연예계에서는 그보다 훨씬 심한 배신도 날마다 벌어진다(굳이 다 예로 들 수는 없지만^^). 그런데 그 중에서도 소지섭이라는 의리와 뚝심의 사나이 같은 경우도 있었다... 뭐 그런 얘깁니다.

손수경씨도 꽤 상심이 컸겠지만, 데일리 메일의 기사 아래 달린 댓글들을 보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닌 듯 합니다. 거의 대부분의 독자들이 댓글로 '진정한 친구라면 제니가 손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친구가 잘 됐으면 축하해주는 게 진짜 친구 아닌가? 섭섭하겠지만 용서하라'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고 있더군요.

(댓글은
http://www.dailymail.co.uk/tvshowbiz/article-1176746/Britains-Got-Talent-cost-best-friend-says-violinist-stormed-semi-finals.html)


맞는 말입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손수경씨가 재도전을 결심해서 말하기 전에 제스처라도 그 자리에 있던 제니양에게 '미안하지만 도저히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다. 다시 한번 혼자 해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진짜 친구인지를 알아볼 수 있었겠죠.

(손수경씨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기사는 이쪽에 있습니다.
http://www.sueson.me.uk/sue-son/sue-son-loses-best-friend/)


진짜 친구라면, '내 실력이 모자라서 미안하다. 그래. 열심히 해서 꼭 우승해라' 라고 했겠죠. 만약 여기서 '날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너 혼자 잘 되겠다고? 잘 먹고 잘 살아라. 너 성공이 그렇게 좋아? 사람들이 날 얼마나 우습게 볼지 생각도 안 해봤니?' 라는 식으로 나온다면, 오히려 부담이 줄어듭니다. 이 사람은 정말 자기 입장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죠. 이 상태라면 설사 재도전을 포기한다 해도, 우정이 오래 지속되기는 힘들 겁니다.

(물론 손수경씨의 경우라면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태라서 진심이 나오기 쉽지 않았겠지만, 실제로는 친구의 심중을 타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아예 물어보지 않고 자기 길을 가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인 거죠. 아, '너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남자가 나타났어. 그 남자와 결혼할건데, 날 정말 사랑한다면 내가 행복해지길 기도해 줄 거지?'라는 식의 배신이라면 전화하지 않는게 나을 겁니다.;)



그러니까 위에서 길게 쓴 글은 '우정을 위해서는 기회를 포기할 수 있어야 진짜 훌륭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역시 중요한 건 역지사지 죠. 만약 x표 3개를 맞고 의기소침해 있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재도전을 하고 싶어 죽겠을 때 친구에게 솔직히 심정을 털어 놓고 허락을 구하는 형식이라도 취해야 했을 겁니다. 반면 그 친구도,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어 안달복달하는 친구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그 친구가 혼자 나가 재도전을 하고 싶어 할 때 굳이 그걸 막지 않을 겁니다.

좋은 기회를 잡아 떠나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는 사람도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물론 평소에 얼마나 좋은 사람들과 지내느냐도 중요하겠죠. 아무튼 손수경씨가 하루빨리 친구와의 우정도 회복하고, 앞으로 좋은 연주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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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꽃보다 남자'가 끝난 뒤 MBC TV '내조의 여왕'이 월-화요일 밤의 강자로 부각되면서 KBS 2TV '미녀들의 수다'가 MBC TV '놀러와'에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큰 차이는 아니지만, 아무튼 바로 앞서 방송되는 드라마의 시청률이 11시대 예능 프로그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시청률 1, 2%를 떠나서 '미수다'는 '놀러와'나 '야심만만 2'와 비교할 수 없는 프로그램입니다. '글로벌 토크쇼'라는 자체 슬로건은 지금까지는 약간 과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까지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 프로그램들의 전범이 될 토크쇼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놀러와' 든, '야심만만 2'든, '야심만만'이든, 그 전까지 수없이 명멸했던 수많은 연예인 출연 토크쇼들과 다를 것도 없습니다. 이건 '해피투게더'도, '샴페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별다른 의미도 없습니다. 하지만 '미수다'에는 이들과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20일 방송을 보다가 생각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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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태국에선 왜 월요일에 노란 색을 입어야 할까?

20일 밤 방송된 KBS 2TV '미녀들의 수다'에서 문득 귀를 잡아 끄는 발언이 있었다. 태국 미녀 차녹난이 "태국에서는 월요일마다 노란 옷을 입는다"고 말한 것이다. 얼마나 자세히 설명을 하려나 봤지만 뒤의 설명은 편집됐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실 태국과 색깔 이야기는 실제 상황이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태국 정국을 좌우한 색깔이 바로 노란 색과 붉은 색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 태국의 시위 세력은 노란 옷을 입었다. 반면 최근까지 열기가 뜨거웠던 시위대는 한국의 붉은 악마 응원단을 연상시키는 빨간 옷차림이었다. 대체 빨간 색과 노란 색이 무슨 원수가 졌길래?

이건 태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얘기가 안 된다. 태국인들은 본래 색깔에 민감하다. 심지어 요일마다 모두 고유색이 정해져 있다. 월요일은 노란 색, 화요일은 분홍색, 수요일은 녹색, 목요일은 오렌지색, 금요일은 파란색, 토요일은 보라색, 일요일은 붉은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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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요일에도 장례식이 아니면 검은색은 기피색이다. 해외의 유명 가이드북들은 "토요일에 보라색 옷을 입은 태국 사람을 만나면 패션 감각을 칭찬하라. 그러면 당신은 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은 훌륭한 이방인으로 존경받을 것이다"라고 권장하고 있다.

지난해 시위 세력이 노란 옷을 입은 것은 푸미폰 국왕을 지지하는 세력이기 때문. 월요일에 태어난 국왕의 상징색은 노란 색이고, 같은 이유로 현 왕비의 상징색은 파란색이라는 것이다.

물론 탁신 전 총리를 지지하는 최근의 시위자들이 붉은 색 옷을 입은 것은 이 요일색과는 관련이 없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자들인 것도 아니다. 그저 붉은 색이 가진 '개혁과 저항'의 의미를 높이 샀다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이 왜 편집됐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20일의 '미수다'는 평소보다 훨씬 신선했다. 왜일까. 늘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는 미녀들의 한국 생활 경험, 한국 사람들과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칭찬을 벗어나 미녀들이 '자기 문화'에 대해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핀란드에서는 닭다리보다 가슴살이 훨씬 인기 있는 부위라는 것, 일본에서는 잘생긴 남자를 개와 비교한다는 것, 반면 태국에서는 못생긴 여자를 말에 비교한다는 것, 러시아에서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곡절 많은 인생'을 뜻한다는 것 등 현지인들이 아니고서는 알기 힘든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늘 조금씩 시도되고 있지만, '미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진정한 존재 이유는 이해와 소통이다. 금발 미녀가 웃으며 얘기하는 "한국 사람들 너무 친절하구요, 비빔밥 너무 맛있어요.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에 만족하기에는 이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문화적인 잠재력이 너무 아쉽다. 이방인들이 본 한국의 모습을 넘어, 한국인들이 이방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채널로서 '미수다'의 역할이 더욱 커지기를 기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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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별이 되십니까?^^)


태국에 가 있는 사람들의 말로는 '태국 사람 치고 요일마다 상징색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근 깨지고 있는 것은 검은 색에 대한 금기입니다. 본래 태국에서 검은 색은 '장례식 외에는 입지 말라'는 색이라는군요.

그런데 세계적인 유행과 함께 젊은 층에게 검은 색은 요일과 무관하게 패셔너블한 색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개성을 뽐내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에게 모든 요일마다 모든 사람이 비슷한 색의 옷을 입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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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만 해도 태국의 노란색 시위대와 붉은색 시위대의 의미를 안 건 최근 일입니다. 무심코 태국 시위대의 모습을 보다가 '이건 뭐 붉은악마 사진이랑 구별이 안 되겠네'하고 생각하고 궁금증을 느껴서 찾아 본 결과입니다. 그 전까지는 오래 전 무협지에서 본 포달랍궁(布達拉宮, 포탈라 궁의 한문 표기)과 홍모파-황모파의 대결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일 방송에서 좀 더 노란 옷의 의미를 자세히 소개해 주지 않은 건 좀 아쉽습니다.

(홍모파와 황모파는 모두 티벳 역사에 실제로 존재합니다. 기존의 홍모파에 맞서 달라이 라마를 앞세운 종교개혁을 주장한 세력이 황모파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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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번 이런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출연자가 "한국 사람들은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한국에 대해 조금만 비판적인 얘기를 해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MC 남희석은 "미국 사람들은 안 그런가요?"하고 물었죠. 미국 출신 출연자들은 "미국 사람들은 대개 나라는 나라, 나는 나라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나오더군요. 그 자리에서 MC 남이 방청객들에게 미국의 안 좋은 점이 어떤 게 있냐고 물었습니다.

방청객 1: 너무 돈으로 세계를 좌우하려는 것 같다.
출연자 1: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안 좋아요.

방청객 2: 큰 나라라고 너무 작은 나라를 무시한다.
출연자 1: 맞아요. 나쁜 점이에요.
출연자 2: 저 그래서 외국 나갈땐 때때로 캐나다 사람이라고 하곤 해요.

.... 뭐 이런 게 미수다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미수다'같은 프로그램이 미녀들의 연애사나 - 물론 재미있지만 - 늘 되새기고 있기 보다는 다국적 정보 토크쇼로서의 기능이 앞으로 더욱 강화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같은 현상을 맞닥뜨렸을 때 다양한 문화권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알아보는 재미는 다른 쇼에서는 감히 시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왕년에 진짜 프랑스 미녀 아나이스와 프랑스어가 사용 언어인 캐나다 퀘벡 출신 도미니크 사이에서 있었던 '원조 프랑스 문화'에 대한 신경전 같은 것도 참 흥미롭더군요.)

재미와 정보 사이에서 이 정도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건 '미수다'와 MC남 외의 어떤 프로그램이나 어떤 MC도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KBS는 시청률 1, 2%에 그리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청률에서는 '놀러와'가 얼마든지 더 앞설 수 있지만, 과연 10년 아니라 5년만 지난 뒤, 어떤 프로그램이 더 기억에 남을 지 한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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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보일(Susan Boyle) 동영상은 다들 보셨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유튜브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2년 전 6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폴 포츠 열풍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동이 밀려옵니다.

솔직히 이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수전 보일이건, 폴 포츠건, ITV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가 만들어내는 이런 신데렐라 쇼를 보고 있으면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감동적인 사연과 노래 솜씨를 넘어 이런 사연과 이런 주인공들로 대중문화의 틈새 시장을 공략하는 방송 제작진의 기획력에 우선 감탄하게 됩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유튜브의 등장은 이런 스타들이 영국이라는 한 지역 안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날 수 있게 만들었죠.

그런저런 현상에 대해 생각나 쓴 글입니다.




제목: 반짝 스타

2007년 6월 9일, 영국의 신설 TV쇼 ‘브리튼즈 갓 탤런트’ 첫 방송에 폴 포츠라는 37세의 휴대전화 세일즈맨이 나왔다. 빈약한 외모와 자신감 없는 표정. 오히려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시청자들이 가슴을 조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유명한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흘러나오자 장중은 경악과 환호로 들끓었다.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자비로 성악 레슨을 받았다는 사연이 알려지며 그의 이름은 전 세계인에게 인간 승리의 대명사가 됐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가 셋째 시즌의 첫 방송을 내보낸 지난 11일, 무대에 오른 수전 보일은 누가 봐도 폴 포츠의 재림이었다. 촌스러운 옷차림과 머리, 47세까지 남자와 키스 한번 해본 적이 없다는 이 시골 아줌마는 깜짝 놀랄 만한 미성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을 불렀다. 관객들은 모두 그의 팬이 됐다.

이날 방송은 1000만 명 정도의 시청자가 본 것으로 추정됐지만 그 뒤 1주일 사이,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려진 보일의 모습은 전 세계에서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봤다. 이번 시즌 우승 여부와 관계없이 또 한 명의 스타 탄생이 예고된 셈이다.

깜짝 스타의 등장은 한국에서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 지난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는 키 작은 여대생 이선희가 ‘J에게’ 단 한 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4년 뒤, 같은 무대를 통해 꺽다리 여학생 이상은이 등장했던 순간도 지금껏 인구에 회자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들은 자취를 감췄다. 일반인 참여 프로그램은 날로 늘고 있는데 왜 한국에선 더 이상 깜짝 스타가 나오지 않는 걸까. 1990년대 이후 가요계가 기획사에서 다년간 훈련된 신인들 위주로 재편됐다는 점,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등 꼽자면 수십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폴 포츠의 승리는 ‘노래 한 곡을 통한 인생 역전’을 멋지게 포장해낸 방송 제작진의 쾌거라고 봐야 한다. 어떤 원석도 손대지 않은 상태에서 절로 빛을 발하지는 않는다. 경쟁력 없는 외모와 탁월한 노래 실력, 여기에 실패자로 살아온 인생까지 다 갖춘 후보들을 골라내 히트 상품으로 포장해낸 연출진의 기술은 실로 장인의 솜씨라 부를 만하다.

하나 더 보태자면, 이들에게 지갑을 열어 성원할 수 있는 대중의 저변이 없는 한 깜짝 스타의 출현은 기대하기 힘들다. 폴 포츠의 데뷔 앨범 ‘원 찬스’는 영국에서만 68만 장이 판매됐다. 한국에서라면 과연 어땠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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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보일의 깜짝 등장에 이어 영국과 미국의 각종 TV 프로그램들은 보일에 대한 기동력 있는 특집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짙은 사투리를 구사하는 보일은 영국의 벽지 스코틀랜드에서도 벽촌인 블랙번에 홀어머니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당연히 전문적인 음악 교육은 받아 본 적이 없고, 취미는 동네 호텔에 있는 가라오케 머신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라는군요. 네. 이미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물은 좀 그렇지만 효녀 중의 효녀"라는 코멘트까지 모두 기사화됐습니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 팀의 내공이 돋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이미 이들은 폴 포츠의 경험을 통해, 아무리 처음엔 외모에 대한 저항감이 심했더라도 빼어난 노래 실력은 그것을 한방에 역전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번 이런 호감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 그 다음부터는 인간적인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주변 이야기거리가 다시 한번 화제를 폭발시킨다는 점 등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딱 맞는 사람을 찾아내기도 쉬워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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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첫 방송 때에는 누가 봐도 루저 형상인 폴 포츠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2회 때에는 덩치는 크지만 노래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순박한 눈매의 소년 앤드류 존스턴이 등장했죠. 존스턴의 폭발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번에 찾아낸 것이 바로 보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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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턴에 대해서는 별도의 포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보일의 외양과 사연은 이미 위에서 다뤘으니 생략합니다. 포츠와 보일의 차이가 있다면 누가 봐도 넘치는 자신감. 소심하고 내성적인 포츠에 비해 보일은 "엘레인 페이지처럼 되고 싶다"며 자신감을 뽐내고 있습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단골 주인공인 페이지는 웨스트엔드의 여왕으로 군림해온 영국 최고의 뮤지컬 스타죠.

'브리튼즈...'의 연출진에게서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 것은 이렇게 준비된 스타를 무대에 내놓기 위해 포장하는 기술입니다. 제아무리 폴 포츠와 수전 보일이 천재의 노래 실력을 갖췄다 한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천 관중 앞에서 그렇게 노래할 수 있을 리는 없습니다. 노래방에서 혼자 부르는 실력과 관중 앞에서 부르는 실력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걸 극복하는 길은 부단한 훈련 뿐이죠. 어떤 노하우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이 보여준 놀라운 라이브 실력은 누가 뭐래도 철저한 트레이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하나 더 보태자면, 무대에서의 코멘트 역시 상당히 연구된 흔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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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처음 용모와 태도가 준 임팩트를 떼놓고 생각한다면 폴 포츠의 노래 실력은 전문 성악가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음색에서 오는 표현력도 한정되어 있죠. 그걸 커버해 준 것이 노래 '공주는 잠 못 이루고'의 힘입니다. 전에도 한번 얘기한 적 있지만 이 팀의 선곡 실력 또한 감탄을 자아냅니다.

앤드류 존스턴의 '피에 예수' 역시 보이 소프라노의 매력을 최고로 뽑아낼 수 있는 곡이고, 보일이 부른 '아이 드림드 어 드림'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선곡이죠.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이 미혼모가 되어 공장에서 일하며 코제트를 부양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짧았던 인생의 봄을 그리는 노래입니다. 다른 가사를 모두 접어 둔다 해도, '현실로 인해 말살당한 나의 꿈(Dream)'이라는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보일의 현재 상황과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물론 노래의 아름다움이야 이미 전 세계의 뮤지컬 팬들이 공감한 터이고.

전문 가수가 부른 노래를 한번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죠. 레아 살롱가가 부른 브로드웨이의 팡틴입니다. 도촬 동영상이지만 노래와 영상이 볼만 합니다. 지금까지 살롱가가 부른 팡틴의 정식 동영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내한공연에서 이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과 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는 이쪽에 정리돼 있습니다. 레아 살롱가를 포함해 네 명의 가수들이 부른 서로 다른 I Dreamed a Dream이 있습니다.
 


보일의 노래 실력 역시 전문 가수들과 비교하자면 좀 어폐가 있습니다. 첫날 무대에서 보여준 노래도 박수에 가리긴 했지만 살짝 불안한 부분도 있었죠. 물론 아마추어로는 대단히 훌륭한 수준이고, 그 노래를 더욱 훌륭하게 보이게 뒷받침해준 전문가들의 솜씨 또한 기억할 만 합니다.

이런 식으로 가수를 포장하는 솜씨는 미국의 '아메리칸 아이들' 제작진도 탁월합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에서도 제니퍼 허드슨을 비롯한 스타들이 배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1% 부족한 것은 바로 감동이죠. 루저가 위너로 바뀌는 순간의 감동, 그것까지 빠뜨리지 않은 것이 바로 '브리튼즈 갓 탤런트' 팀의 성공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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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질문, '왜 한국에선 이런 깜짝 스타가 나오지 않을까'에 대한 답은 이미 다 한 셈입니다. 사실 한국 방송 제작진에게는 좀 억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매주 촬영과 편집을 진행해야 하는 한국 방송의 성격상, 1년에 3개월 정도 방송하고 빠지는 '브리튼즈 갓 탤런트' 같은 수준의 제작비와 지원, 연출력을 기대해선 안된다는 이야기가 당연히 나올 겁니다.

하지만 현재 3대 지상파의 인력구조를 감안할 때 제작비는 몰라도 사람이 부족해서 할 수 없다는 얘기는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나머지는 기획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 꽤 클 겁니다. 비단 신인 발굴 프로그램에 한정해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전반적인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입니다.

물론 깜짝 스타의 등장을 마무리하는 절대적인 조건은 사회의 저변입니다. 스타 하나가 똑바로 서려면, 그 스타나 제작자를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대중의 소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등장했던 수많은 UCC 스타들이 잠깐 주목을 끌었다 사라진 이유는 뭘까요. 한때 그들에게 열광했던 대중이 그들을 먹여살리기는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문화와 스타는 공짜가 아닙니다.


p.s. 수전 보일을 보고 감동했다는 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위해 이런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단지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감동도 '날 것 그대로'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해 보시라는 뜻입니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대해서도 칭찬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수전 보일과 같은 날 출연한 파비아 체라(Fabia Cerra)라는 출연자의 벌레스크 댄스 광경입니다. 이런 지상파 쇼 무대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춤을 추다니...

 

이런 분위기라면 체라는 화제만 뿌린 뒤 결국 보일의 들러리가 되고 말겠죠. 그렇습니다. 이런 화려한 인생 역전 쇼에도 루저는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방송에 출연도 하지 못하고 예심에서 떨어진 사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겠죠. 쇼란 그런 것입니다.

p.s. 유튜브의 수전 보일 동영상은 벌써 퍼가기 금지 조치가 한창이더군요. 폴 포츠도 거의 블록돼 있어서 어렵게 찾았습니다.




샤힌(섀힌) 자파골리에 대해서는 들어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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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가 최근 종영한 KBS 2TV '꽃보다 남자'에 대한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이 드라마를 '절대 실패한 드라마'라고 규정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YWCA 대학생 방송모니터회의 분석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단체에서 이 막장성이 다분한 드라마를 좋게 평가할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TV 시청자들을 상대로 어떤 설문조사를 하더라도, '어떤 TV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고 싶으싶니까'라는 질문에는 누구나 '교양, 다큐멘터리, 사회고발성 뉴스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고 싶다고 응답합니다. 어떤 조사에서도 '코미디, 리얼 버라이어티, 막장성 드라마'라고 응답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시청률 조사는 그런 설문 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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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가 어떤 내용을 지적하고 있는지 역시 안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성공의 요인을 ▲가장 원초적인 욕구의 종합선물세트 ▲캐스팅의 대 성공 ▲노이즈마케팅의 위력 ▲힘들고 지친 일상에 대한 아스피린 등 덕분이라고 꼽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고 그런 식상한 이야기 ▲고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폭력, 유흥 문화 ▲갈 곳을 잃은 어설픈 스토리 ▲CG의 남용과 폐해 ▲카스트 제도를 뺨치는 계급주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 ▲한숨짓게 하는 여주인공 캐릭터 등을 들었다는군요.

아울러 여주인공 금잔디 캐릭터에 대해 "한마디로 이처럼 수동적이고 비독립적이며, 안하무인이고 종속적인 캐릭터는 본적이 없다"고 지적했고(이 부분에서는 심히 공감합니다), "철저한 배금주의와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무장한 '꽃보다 남자'는 새로운 막장 드라마의 개념을 확립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상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했습니다. 사실 이 보고서를 직접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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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사상의 문제, 즉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갈 우려가 크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이 드라마를 좋게 본다 한들 두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에는 누구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첫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이 드라마의 폐해인가 하는 점은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듯 합니다. '▲카스트 제도를 뺨치는 계급주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가 이 드라마로 인해 장려되고 있을까요? 이 드라마 보다는 현실이 훨씬 이런 현상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지 않을까요? 과연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저 두 부분에 대해 '현실은 그렇지 않아! 이 드라마는 현실을 오도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드라마의 저런 부분들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 드라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현실과 선을 긋게 해 주는, 즉 '대놓고 비현실적인' 드라마라는 점입니다. 차라리 이 드라마보다는 '내조의 여왕'이 훨씬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드라마죠.

'꽃남'이 끝난 뒤 지난주에 '꽃보다 남자가 남긴 것 - 아저씨가 본 꽃남'이라는 제목으로 원고 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저는 이 드라마가 가진 수많은 문제는 문제로 치고,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나이든 여자들의 욕망이라는 부분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밖에 - 왜 중년 남자들은 이 드라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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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저씨들은 왜 '꽃남'에서 소외됐나

지난달 31일 KBS-2TV ‘꽃보다 남자’의 마지막 회는 방송위원회의 경고 처분을 알리는 자막과 함께 방송됐다. 이 드라마에 지속적인 적대감을 표방해 온 사람은 적지 않다. 폭력 묘사, 지나친 간접 광고 등의 이유에서부터 형편없는 완성도라는 치명적인 약점에 이르기까지 ‘마음먹고 보면’ 비판할 구석이 넘쳐나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용서받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꽃보다 남자’의 존재 이유, 이 드라마의 미덕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적이 있다. 그 답변을 요약하자면, 이 드라마가 ‘그동안 엄마·아내·이모 등 관계 중심의 호칭으로 규정되어 왔던 한국의 성인 여성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잊고 있던 본연의 욕망을 깨닫게 하는 데 공헌했다’는 것이다. 자칫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다시 풀어 말하면 ‘여성들은 꽃미남을 보며 흐뭇해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온 세상이 피부로 이해하게 해 줬다는 뜻이다.

남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이런 욕망의 은근한 표출이 그리 추하지 않은 것으로 허용되어 왔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소녀시대를 보면서 헤벌레 웃는 것이 그리 주책 맞은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롤리타 콤플렉스’나 ‘원조교제’와 음습한 동기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면 말이다.

반면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스무 살 언저리의 해사한 청년들을 보고 헤벌쭉 미소를 짓거나, 지나가는 미남 청년을 돌아보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거나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아내의 유혹’에 열광하던 주부들이 동시에 ‘사실은 꽃남 팬’이라며 커밍아웃하는 광경은 요즘 그리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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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는 여자들에게만 꽃미남과의 우발적인 연애, 혹은 그와 관련된 바랜 옛 추억을 꿈꾸게 한 것은 아니다.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남성 시청자에게도 이 드라마는 욕망의 대상을 구현한 판타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들 역시 자신의 등장만으로 주위 여자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고교생임에도 불구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화려한 레스토랑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해 공부 따위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재능과 환경을 꿈꾸기 때문이다.

사실 ‘꽃보다 남자’는 학교나 부모의 가르침보다 훨씬 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제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는 학생이라 해도 ‘서민 가정’ 출신인 한 유력가의 자제들에 비해 사회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요즘의 10대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계층이 중년 남성층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이 드라마에서 어떤 욕망의 대상도, 자신을 투영할 만한 대상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F4 멤버들에게서 젊은 날의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다행이겠지만, 대다수 중년 남성에겐 ‘미워도 다시 한번’의 박상원 같은 캐릭터 하나 없는 이 드라마가 영 낯설기만 하다.

‘꽃남 현상’의 이해를 위해 시청을 시도했다가 좌절하고 말았다는 중년 남성들의 경험담도 드물지 않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만약 F4 대신 소녀시대 멤버들이 출연한 ‘꽃보다 소시’가 방송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아무튼 이 드라마의 사회적 의미를 아무리 미화한다 해도 드라마 본연의 가치인 극의 완성도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이 드라마의 가치는 바람 빠진 공이 되고 만다. 가장 기본적인 플롯의 개연성에서 벌써 무너지기 시작하고, 뮤직비디오를 연결해 붙인 듯한 흐름은 대체 연출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회의를 느끼게 한다.

‘꽃보다 남자’의 최고 시청률은 가장 우호적인 수치를 따져도 35%를 넘지 못했다. 대단한 숫자지만 기록적인 높이는 아니다.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에도 경쟁작인 MBC-TV ‘내조의 여왕’이나 SBS-TV ‘자명고’도 모두 1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런 숫자들은, 그래도 드라마 한 편이 40%, 50%의 시청률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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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윗글은 YWCA의 보고서 전에 쓰여진 것이고, 그 내용에 대한 반박도 아니지만 다만 마지막으로 그 YWCA의 조사 보고서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라면, 어떤 분야에서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늘 똑같은 문제점만 지적하고 있어서는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세상은 자꾸 변하는데 늘 똑같은 19세기 서도 민요만 부르고 있으면 뭘 어쩌자는 겁니까. 더구나 대학생들이 본 시각이라면 30년 전에 어른들이 사용했던 용어들 말고 좀 더 참신한 시각으로 판단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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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 하반기 쯤에는, '꽃보다 소시(물론 가제)'같은 드라마 한편이 세상사에 지친 아저씨들의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기를 슬쩍 기대해 봅니다. 만약 그때 대한민국의 온갖 아저씨들이 소주잔을 던지고 오후 9시 50분이면 칼같이 귀가해 TV 앞에 앉는다면, 그때 아줌마들의 표정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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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외로 탈출한 지사들과 중국에 거주하던 독립운동가들이 한데 뭉쳐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세운 날이죠. 또 올해가 백범 김구 선생 서거 60주년이기도 해서 백범의 유품 19점을 문화재로 지정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품 중에는 어린 시절부터 익히 들었던 '윤봉길 의사와 바꾼 회중시계'도 있더군요.

마침 매주 칼럼을 마감해야 하는 금요일에 이런 발표가 있었는데 이 시계 말고 두 개의 시계가 머리 속을 스쳐 갔습니다. 모두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람들의 염원과 관련된 시계들입니다. 특히나 그중 한 시계는 정 반대의 의미를 가진 시계더군요. 그래서 이 시계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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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시계

미국 워싱턴DC의 국립역사박물관에는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품인 회중시계가 있다. 이 시계 안에는 감춰진 메시지가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다고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지난 3월 11일 그 전설이 사실이라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시계 수리공 조너선 딜런에 의해 1861년 4월 13일 새겨진 메시지는 “포트 섬터가 반란군(남군)에 의해 공격당했다. 우리에게 정부를 갖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다. 남북전쟁 발발 당시, 마침 딜런은 대통령의 시계를 수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초의 우국충정이 남북전쟁 기간 동안 대통령의 품 안에 늘 간직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묘한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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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인 오는 13일을 앞두고 백범 김구 선생의 유물 19점을 문화재 등록 예고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 의거 직전 김구 선생과 바꿨다는 시계다. 『백범일지』는 거사일인 1932년 4월 29일 아침의 정경을 이렇게 전한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 점을 친다. 윤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군에게 주었다.”

살아서 조국의 광복까지 매진할 사람과 몸은 버리고 이름만을 청사에 남길 사람. 두 장부의 맞잡은 손길을 따라 전해진 것이 시계만은 아니었을 것이고 보면 문화재 지정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문득 꽤 유명하되, 그리 아름답지는 않은 사연을 담은 시계 하나가 떠오른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10·26의 두 달 전인 1979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62회 생일 선물용으로 스위스의 명품 시계 메이커에 2만 달러짜리 순금 손목시계를 주문했다. 이렇게 충성을 과시하려던 인물이 어떻게 시해자로 변신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결국 이 시계는 정작 선물로 쓰여야 했을 그해 11월 14일에는 주문한 사람도, 받을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비운의 미아가 됐다.

두 개의 시계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사실도 참 이채롭다. 한 시계에 구국의 신념과 사나이들의 정이 담겨 있다면, 다른 시계가 보여주는 것은 권력을 향한 인간의 헛된 야심과 표변하는 인심뿐이다. 가능하면 두 개의 시계를 어디엔가 나란히 전시하는 것이 역사의 교훈을 더욱 깊게 해주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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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WBC 얘기를 쓸 때, 척 웨프너가 알리와 경기한 날짜가 한국이 WBC에서 일본과 결승전을 벌인 날짜와 같은 3월 24일이라는 걸 알고 참 신기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도 날짜가 겹치더군요. 조너선 딜런이 링컨 대통령의 시계를 수리하고 있던 날은 4월 13일, 바로 남군이 포트 섬터를 공격해 미국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4월 12일의 바로 다음 날입니다. 그리고 맨 처음에도 얘기했듯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 기념일이죠. 따로 따로 떼놓고 보면 별 상관 없는 날이지만, 이렇게 한 칼럼 안에 모아 놓고 보니 참 희한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링컨 대통령은 딜런이 자신의 시계 안에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는 한 시계수리공의 마음이 위대한 대통령에게 금속 표피를 뚫고 전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절로 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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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의 시계 이야기는 아주 어린 시절 교과서나 학교에서 주는 교양도서에 들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한정된 내용 때문에 좀 축소했지만 저 앞 뒤에도 이야기가 조금씩 붙어 있습니다. 다 복원하자면 이렇습니다.



이튿날 4월 29일이었다. 나는 김해산 집에서 윤봉길 군과 최후의 식탁을 같이하였다. 밥을 먹으며 가만히 윤군의 기색을 살펴보니 그 태연자약함에 마치 농부가 일터에 나가려고 넉넉히 밥을 먹는 모양과 같았다.
김해산 군은 윤군의 침착하고도 용감한 태도를 보고 조용히 내게 이런 권고를 하였다.
"지금 상해에 민족 체면을 위하여 할 일이 많은데 윤군같은 인물을 구태여 다른 데로 보낼 것은 무엇이요?"
"일은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좋지. 윤군이 어디서 무슨 소리를 내나 들어봅시다."
나는 김해산 군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식사도 끝나고 시계가 일곱점을 친다. 윤군은 자기의 시계를 꺼내어 주며,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하기로 나도 기념으로 윤군의 시계를 받고 내 시계는 윤군에게 주었다.
식장을 향하여 떠나는 윤군은 자동차에 앉아서 그가 가졌던 돈을 꺼내어 준다.
"왜 돈은 좀 가지면 어떻소?"
하고 묻는 내 말에 윤군은
"자동차 값 주고도 5, 6원은 남아요."
할 즈음에 자동차가 움직였다. 나는 목이 메인 소리로,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였더니 윤군은 차장으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향하여 숙였다. 자동차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천하 영웅 윤봉길을 싣고 홍구공원으로 향하여 달렸다.
(이하 생략)


'제 시계는 한 시간 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라는 말을 읽으면 아직도 가슴이 찡 해 옵니다. 목숨을 버리기로 각오한 남자의 결연하면서도 담담한 의지가 느껴지는 듯 합니다. 어설픈 호기와는 다른 진정한 용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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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라는 구멍을 통해서 보자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선물하려 했던 시계는 이와 정 반대인 헛된 의리와 충성의 본질을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박 전 대통령과 김재규 전 부장도 혁명을 함께 할 때에는 나름대로 사나이의 의리로 뭉쳐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죠.

이 시계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10.26으로부터 10년이 지난 1989년, 박근혜 의원이 MBC TV에서 가진 박경재 변호사와의 대담 프로그램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뒤로 몇몇 시사지들이 이 시계와 관련된 추적 보도를 한 적도 있죠. 혹시 더 빠른 기록이 있는지 아시는 분은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 대담에서 박근혜 의원은 '10.26은 김재규가 오래 전부터 기회를 노려 계획하던 일'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이 시계 이야기를 합니다.


- 그러니까, 그 우발적이라는게 아주 무모한, 자기 자신이 앞으로 이 사건으로 해서 사형을 당한다던가, 이런 생각을 안하고 했다 이런 말씀이신지요. 그 10.26 저녁 궁정동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지 사전에 김재규 피고인이 법정에서 얘기한 그대로 건설부 장관을 할 때, 또 그후에도 계속 기회를 노렸다, 이런 말은 믿지 않으신다는 말씀이군요. 
"아, 말이 안돼요. 아버지 생신이 11월 14일 이거든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제가 물건 을 하나받은게 있어요. 11월 14일 조금 못돼선가 그런데, 김재규 그 당시 정보부장이 아버지 께 드리려고 준비했던 시계 선물이에요 몸에다 이렇게 차는 선물인데 어쨌든 아버지께 좋은 선물을 드리기 위해서 금시계로, 거기에다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글씨도 박고 또 아버지가 훈장을 하고 계신 모습을 새겼고, 국내에서 선물을 준비해도 될 것을 스위스의 유명회사에 다 일부러 맞춰서 11월 14일날 드리려고 했었던 거죠. 그런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가 뭐 있 었겠어요."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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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서 이보다 더 권력의 허망함을 보여주는 소도구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윗글에 쓴 대로 두 개의 시계가 보여주는 대조가 참 극명하다는 생각입니다. 한쪽은 명품 금시계, 한쪽은 가난한 독립 지사의 시계지만 두 개의 시계가 나란히 있을 때 정작 빛날 것이 어느 쪽인지는 굳이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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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매헌 윤봉길 의사의 의거 현장인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는 지금도 저런 비석이 서 있습니다. 저 장소에 직접 갔을 때의 일입니다. 한국에서 간 방문단이 폭탄이 터졌던 자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데, 일행 중의 미녀 한 분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는 이 앞길로 기차가 다녔던 건가요?"

약 2초 동안의 침묵. 아니 공원 한 복판에서 웬 기차?

"...기차에서 내리는 걸 총으로 쏜 거 아니었어요?"

그 다음부터 이 미녀의 별명은 '미스 돌고래'가 되었다는 추억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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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나 이슬람교의 신자들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고, 그 분들을 아예 적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반드시 기독교도가 아니더라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더군요. 물론 어떤 삶의 양식이 등장하는 데에는 그 배후에 문화적인 이유가 있다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이슬람교 교단에서 돼지고기나 술을 금하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초코파이를 '먹을 수 없는 음식'의 범주에 넣는다고 하는 건 좀 생소하실 겁니다. 물론 초콜렛은 먹을 수 있지만, 초코파이는 안 된다고 하는군요. 마찬가지로 우유는 마셔도 되지만 요플레는 먹을 수 없다고 합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이런 저런 이유가 겹쳐서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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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halal)

미 국무부 법률고문에 내정된 한국계 고홍주 예일대 로스쿨 학장의 취임에 보수파의 반발이 있었다고 뉴욕타임즈가 2일 보도했다. 이슬람 율법에 대한 고 학장의 발언에서 꼬투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슬람 율법은 일상 생활에서 투자-경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들을 규정해 놓았다. 그중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과자 중 하나인 초코파이를 먹어선 안 된다는 것도 있다.

초코파이의 젤라틴 성분 때문이다. 끈적끈적한 질감을 내는 제과용 젤라틴은 돼지 가죽에서 추출한다. 무슬림에겐 최대의 금기인 돼지가 포함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이 이런 성분을 모두 알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각국 이슬람 교단에서는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 식품의 목록을 만들어 신도들에게 알려 준다. 이를 할랄 푸드(halal food)라고 부른다. 전 세계의 공인 할랄 푸드 시장 규모는 5800억달러에 달한다. 한국 이슬람교 교단에서도 지난달부터 '먹어도 좋은 한국 과자'의 목록을 공지하고 있다.

할랄이란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다. 육류의 경우 돼지고기, 피, 맞아 죽은 짐승의 고기 등은 먹어선 안된다. 허용된 고기라 해도 율법 규정에 따라 도살된 것이어야 할랄 푸드로 인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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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돼지가 금기일까.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척박한 사막의 환경에 이유를 돌린다. 유목민들에게 최고의 가축인 양이 풀만 있으면 자라는데 비해 돼지는 사람과 양곡을 나눠 먹어야 하고, 젖이나 털 등 부가 자원도 얻을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따라서 사치품인 돼지를 키우느라 자원을 낭비하지 말라는 의도가 금기로 변한 것이란 설명이다.

결국 모든 금기의 이면에는 그 사회 특유의 필연적인 근거가 있다. 이런 금기의 무시는 때로 유혈 사태로 이어지곤 한다. 1857년 인도에서 일어난 세포이의 반란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금기를 경시했던 영국 통치 세력의 오만이 낳은 비극이었다. 이슬람 세력에 대한 미국 보수파의 경계야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의 거부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돌이켜 보게 된다.

할랄의 이해는 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 대한 아랍권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한국관광공사도 지난달 말 무슬림 모델을 기용한 한국 홍보 동영상을 제작하고 할랄 푸드 제공 식당을 안내하는 등 아랍권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 기회에 다른 경로로 젤라틴을 추출한 '할랄 초코파이'를 만드는 건 어떨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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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 신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이처럼 할랄 확인 마크를 만들어 식품에 '안심하고 먹어도 되는 품목'임을 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할랄의 상대 개념인 '금지'는 '하람(haraam)'이라고 부른다는군요.

이렇게 잘난 척 하고 끝맺음을 했는데, 기사가 나간 뒤 오리온제과의 김태욱 홍보과장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알고 보니,

"저희는 오래 전부터 중동 및 이슬람 국가에 수출되는 초코파이에는 돼지 추출 젤라틴 대신에 소 추출 젤라틴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 이상 없이 소비됩니다."

아앗 이런;;;; 역시 글쟁이보단 업계에 계신 분들의 손이 훨씬 빨랐던 거군요. 그런데 사막에서는 초코파이가 너무 빨리 녹지 않을까요?

"다 안 녹게 처리를 했죠."

그랬군요. 알고 보니 온 세계로 수출되는 초코파이는 소비되는 나라의 기후에 따라 조금씩 성분이 다르다고 합니다. 덜 녹거나 덜 얼도록 처리가 되어 있다는 거군요. 훌륭합니다, 초코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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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안에 설명이 부족한 부분을 조금 보충하자면 이렇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 동인도회사는 인도 현지인들을 세포이라는 이름의 용병으로 고용합니다. 당연히 이들은 거의 모두 힌두교도이거나 이슬람교도였죠. 당시 이들에게 지급된 총의 탄약통(magazine이라고 되어 있는데 당시의 총에 탄창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은 입으로 물어 뜯어 사용하게 되어 있었다는군요.

이 물어 뜯는 부분이 기름 먹인 종이였는데, 문제는 그 기름이 소 기름 아니면 돼지 기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는 겁니다. 당연히 소=힌두교의 성스러운 동물, 돼지=이슬람의 금기이니 둘 다 입에 댈 수 없다는 반발을 낳은 겁니다.

처음에 이 문제를 무시하던 영국 당국은 뒤늦게에야 '탄통에 먹이는 기름은 염소기름만 사용한다'는 식으로 무마하려 했지만 이미 불만이 커질대로 커진 상태. 결국 세포이들은 반란을 일으킨다...는 줄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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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전 세계의 모든 이슬람교 신자들이 이 할랄을 준수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추정치로는 약 70% 정도가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고 하는군요. 그래도 전 세계 시장이 5600억 달러에 달할 정도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죠.

아무튼 요즘 무슬림 관광객 유치를 위한 노력이 여기저기서 펼쳐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국내에 들어와 마음 놓고 식사를 하려면 할랄 여부를 표시해 주는 것도 중요한 일일 듯 합니다. 또 설명에 따르면 아랍 여성들도 이제는 히잡을 패션으로 인식할 정도로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는군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의 확산이 오일달러를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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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은 중동 지역의 최신 유행 수영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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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 드라마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당연히 '막장성을 갖춘 드라마', 혹은 '막장스러운 드라마'라고 규정해야 할 겁니다. 막장성이란 스토리상의 막장성(이른바 작가가 원하는 것은 뭐든 이뤄지는 비비디 바비디 부 스토리), 연기의 막장성(소리만 지르고 막말로 싸늘하게 쏘아붙이기만 하면 '탁월한 감정 연기'냐), 연출이나 설정의 막장성(정말 점만 붙이면 아무도 못 알아볼 거라고 생각해?) 등등 여러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이 모두를 갖춘 막강 드라마도 있겠죠.

그런데 요즘 이 막장성 풍부한 드라마들 가운데 희한한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목만 보고 눈치채신 분들도 있겠지만, 드라마에서 죽는 사람이 없다는 겁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모두 살아 돌아오고 있다는 거죠. 이게 바로 공포영화와의 공통점입니다. '13일의 금요일'이나 '할로윈', '나이트메어' 시리즈를 보신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금방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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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공포영화들을 보면 많은 주인공들이 범인의 생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보는 관객들을 짜증나게 합니다. 목을 조른다든가, 몸에 불을 지른다든가, 쇠몽둥이로 머리를 때린다든가 하는 방식은 도대체 소용이 없습니다. 심지어 총에 맞는 것도 불충분합니다. 사지가 붙어 있기만 하면 괴물은 무조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공포영화의 원칙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장 확실한 건 '13일의 금요일' 1편 이후로 머리를 날리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 버리면 제작자들이 속편을 만들지 못하죠. 그래서 항상 제작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공포영화 출연자들을 바보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대략 어정쩡하게 죽여서 꼭 다시 살아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막장드라마 출연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요즘 드라마들 속에서 죽은 사람들은 죄다 살아 돌아옵니다. 막장계의 선두주자인 '아내의 유혹'에 나오는 장서희와 채영인은 모두 죽음에도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여기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이 드라마의 세계에선 아무리 아이를 막 놓아 기르다 잃어버려도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아이들은 모두 무럭무럭 잘 자라나서 어느새 부모의 주변으로 돌아와 있곤 합니다. (참 편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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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아버지가 쓰러져 있어도 시청자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비탄에 젖은 출연자들이 지겨울 뿐입니다. 깔끔한 연출과 중년 연기자들의 호연에 가려져 있지만 사실은 '미워도 다시한번'의 막장성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도 최명길의 옛 애인 선우재덕은 '당연히' 살아 있습니다. 하긴 도입부에서부터 냄새를 적잖이 풍겼죠.

'카인과 아벨'에 나오는 소지섭의 죽음 연출에 이르면 짜증이 날 뿐입니다. 대체 이 드라마에서 소지섭이 정말로 죽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있을까요. 이렇게 뻔하다 못해 뻔뻔한 진행에도 시청률이 오르고 있다는게 참 안습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후손들이 아무 고민없이 브라운관을 누비고 다니고 있을까요. 좀 전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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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장 드라마

남편이 정부와 작당해 아내를 죽이려 하는데 그 아내는 살아 돌아와 다른 인물로 변신해 복수를 노린다. 그런데 그 변신이란 게 얄궂어서 얼굴에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남편은 물론 부모와 친오빠조차도 알아보지 못한다. 6개월 만에 4개 국어와 골프, 수영을 마스터하는 것 정도는 기본이다.

SBS TV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울고 갈 황당무계한 이야기지만 요즘 이 드라마를 모르면 주부들 사이에선 대화가 힘들다.

이 작품의 성공에 힘입어 소위 ‘막장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장악하고 있다. 채널을 돌려도 소용이 없다. 등장인물의 내면묘사나 정교한 내러티브는 모두 뒷전, 비정상적인 인물과 개연성을 무시한 사건 진행이 드라마마다 넘쳐난다.

국어사전에서 ‘막장’을 찾아보면 ‘갱도의 막다른 곳’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인생 막장’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정도로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선정성이 ‘막장 드라마’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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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이 쏟아지지만 방송사는 아랑곳없다. 시청률 40%를 넘나들며 광고를 앞뒤로 꽉꽉 붙여주는 효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극에도 소위 ‘막장성 요소’는 있다”며 이 계열의 드라마들을 옹호하는 논리까지 등장했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이다. ‘리처드 3세’의 주인공 리처드는 자신의 손에 남편을 잃은 여인에게 뻔뻔스레 청혼하는가 하면 어머니와 형수의 저주를 받으면서 조카딸에게 청혼한다. 이 밖에도 남녀 쌍둥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야기(‘십이야’), 죽은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신비의 약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로미오와 줄리엣’) 정도는 쉽게 발견된다.

물론 대문호의 작품에서도 이런 요소가 보이는데 한낱 TV 드라마에서 그 이상 무엇을 기대하겠느냐는 말을 하자는 건 아니다. 다른 논의를 다 미뤄 두고,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대가 언제인지만 살펴보자.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전’과 비슷한 연대다. 한마디로 막장 드라마들은 시청자를 400년 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즐길 수 있는 막장성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황의 영향일 듯하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도 경기침체 탓으로 대형 뮤지컬들이 잇따라 막을 내리고, 스트립쇼 위주의 오락 공연 벌레스크(burlesque)가 거의 100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도 세계의 첨단 조류인 ‘대중문화 퇴행’에 동참하고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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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에 나오는 벌레스크란 뮤지컬의 초기 시대에 등장했던, 노래와 춤이 있는 극장용의 버라이어티 쇼, 유흥거리입니다. 이렇게만 쓰면 보더빌(vaudeville)과 차이가 없게 보이지만, 대략 벌레스크는 여자의 나체나 나체에 가까운 모습을 전면에 내세운 성인용 오락거리인 반면 보더빌은 줄거리와 노래, 춤에다 마술 등의 볼거리까지 결합해 보다 수용층이 넓은 형태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아무튼 세상이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막장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이 생각이 없어진다고 해서 만드는 사람들까지 생각이 없어서는 안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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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 글은 이쪽으로 옮겨 오는데 시간이 살짝 걸렸습니다. 그 사이에 어떤 공공기관장께서 '막장이란 광부들의 땀과 노력이 담긴 장소'라며 '막장드라마라는 표현을 자제해 달라'고 말씀하셨더군요. 하지만 그냥 이 말은 영어의 dead-end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게 좋을 듯 할 뿐, 저런 식의 확대 해석은 오히려 좀 과민반응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이러다간 '개판', '개고생' '개수작' 등의 말이 '충성스럽고 사랑스러운 동물인 개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 표현이니 자제하자'는 말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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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정상 도전이 한껏 끓어올랐던 WBC의 분위기를 쫙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이지만, 아직 WBC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가 남아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하는 얘기지만,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일전에서 패하고도 이렇게 성원을 받은 것은 2009 WBC 대표팀 외에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체 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한-일전에서 지고도 박수갈채를 받게 했을까요. 문득 또 다른 도전자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지고 나서도 퉁퉁 부은 눈으로 "에이드리언!"이라고 외치던 남자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단지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척 웨프너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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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도전자

1975년 3월 24일, 미국 오하이오주 리치필드의 링에 오른 무하마드 알리는 도전자인 척 웨프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5개월 전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무적의 철권 조지 포먼을 꺾고 WBA·WBC 통합 챔피언에 오른 알리가 36세의 한물간 백인 복서 앞에서 긴장할 이유는 전혀 없어 보였다. 누구도 도전자가 3라운드 이상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웨프너는 모든 사람의 예상을 뒤엎고 5회를 넘겼다. 심지어 9회에는 알리를 다운시키기도 했다. 자존심이 상한 알리는 전력을 다해 웨프너를 맹폭했지만 도전자는 양 눈 위가 찢겨 피투성이가 된 채로 번번이 되살아났다. 마침내 15회, 경기 종료 19초를 남겨 두고 알리의 TKO승이 선언됐지만 관중은 오히려 웨프너의 투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왠지 낯익은 이야기인 게 당연하다. 무명의 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 경기를 보고 영감을 얻어 순식간에 시나리오를 썼고, 그가 직접 주연한 영화 ‘록키’는 대대적인 성공과 함께 이듬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따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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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에는 그때까지의 다른 스포츠 영화들과 좀 다른 점이 있었다. 주인공 록키는 15라운드의 혈투가 끝난 뒤에도 자신이 이겼는지 졌는지를 묻지 않는다. 단지 무적의 챔피언을 상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이다. 이런 도전자 록키의 순수한 열정은 30여 년간 전 세계 수많은 관객을 감동시켰다.

웨프너의 투혼이 빛난 지 정확하게 34년 만인 지난 3월 24일, LA 다저스 구장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이 열렸다. 알리와 차이가 있다면 지난 대회 챔피언인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것. 하지만 한국은 예선에서 일본과 2승2패로 균형을 이뤘고, 결승에선 연장전까지 끌고 가는 명승부로 전 세계 야구 팬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어느 종목이건 일본과의 대결에서 지고도 이처럼 갈채를 받은 것은 아마도 이번 야구 대표팀이 유일할 것이다. 그만큼 선수들의 도전자 정신이 빛났고,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알리는 산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영화 ‘록키’의 마지막 장면. 15라운드의 사투 끝에 기진맥진한 챔피언은 진저리가 난다는 듯 내뱉는다. “다시는 너와 붙고 싶지 않아(Ain’t gonna be no rematch).” 아마도 WBC 결승에 임했던 일본 선수들의 심정도 딱 이랬을 터. 이렇게 챔피언의 진을 빼놓는 도전자라면, 이기든 지든 박수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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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대결이 벌어지게 된 건, 아무래도 '1차 방어전은 손쉬운 상대로 가자'는 생각의 반영일 겁니다. 척 웨프너의 당시 전적인 30승 9패. 한때 켄 노튼과도 싸워 본 적이 있었지만 당연히 졌고, 그는 복서 인생 내내 보디가드와 주류 세일즈맨으로 일했습니다. 그런 그가 본격적으로 복싱 훈련을 시작한 것은 '알리와의 타이틀전이 잡힌 뒤'였다는군요.

알리의 파이트머니는 150만불(당시로선 대단히 큰 돈이죠.^)인데 비해 웨프너는 10만불. 하지만 웨프너는 '지금까지 뭘 해서 번 돈보다 많다'며 대전에 뛰어들었습니다. 웨프너가 훈련을 하건 뭘 하건, 알리 쪽은 신나게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를 백인으로 고른 것이 얼마나 흥행에 탁월한 선택이었나를 자찬하기 바빴다고 합니다.

록키가 아폴로와의 경기를 앞두고 아내에게 하는 유명한 대사, "내가 15회가 끝날 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있으면 그건 내가 건달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라는 말도 실제로 웨프너가 아내에게 한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을 스탤론이 어떻게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웨프너에게 물어본 것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웨프너는 나중에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스토리를 도용했다'며 스탤론을 고소하기 때문이죠. 결국 스탤론은 알려지지 않은 액수의 돈을 주고 웨프너와 화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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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프너의 예상 밖 선전은 위에 쓴 바와 같습니다. 문제는 9회 알리를 다운시켰을 때. 자신의 코너로 돌아온 웨프너는 세컨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웨프너: 봤어? 내가 다운시킨거?
세컨: 그래. 그런데 저 사람 진짜 뚜껑 열린 거 같은데.

한마디로 10회부터 14회까지 웨프너는 '샌드백처럼 맞았다'고 합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알리가 얼마나 KO를 노렸을지는 안 봐도 알만 하죠. 결국 영화와는 조금 다르게, 알리는 TKO 승을 거둡니다.

알리와의 대전이 웨프너에게 유명인의 자리를 줬지만 그는 그 자리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도 계속 링에 올랐지만 다시는 유명 선수와 붙지도 못했고, 나중에는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친선경기(이종격투기가 없던 시절이라...)를 벌이는 등 그저 그런 일거리들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튼 그 뒤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어진 듯 합니다.

웨프너의 인생을 바꾼 일전과 WBC 결승 한-일전의 날짜가 같다는 건 참 묘한 인연인 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랬겠지만, 9회말 이범호의 동점타가 터졌을 때의 환희는 승리나 다름없더군요. 엄밀히 말해 이날 경기는 이미 져 있는 경기였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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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5라는 안타 수에서도 보듯 일본은 수없이 많은 찬스를 날려 버렸습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꼬여도 정말 더럽게 꼬이는' 경기였죠. 반면 한국은 얼마 되지 않는 찬스를 모두 살려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운을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전력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봉중근, 정현욱, 임창용이 모두 조금씩 불안했지만 바꾸지 않은 것은, 구위 면에서 이들보다 나은 투수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양팀간의 전력차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네번째 대결, 2라운드 1-2위 결정전입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여유 전력을 가동한 경기였죠. 한국은 장원삼 임태훈 등 대표팀 내의 2진 투수들을 냈고, 일본 역시 그동안 가동하지 않던 투수들을 내보냈습니다. 그런데 일본과 한국의 (대표팀 내) 2진 경기에선 일본이 압승이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승패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선수 층의 두터움에서 일본이 압도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경기였던 거죠.

게다가 한국이 박찬호 이승엽 박진만 등 베테랑이 빠진 팀이긴 했지만 일본은 이번 대표팀 정도의 팀을 두 팀 이상 마련할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야구 저변을 갖고 있습니다. 대표팀 안에서도 1진과 2진의 기량 차이가 있는 한국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뭐 김광현에 대한 그간의 분석과, 세번째 나온 봉중근에 대한 분석 등 정보파악과 분석력에서도 어쨌든 한국보다 한수 위라는 것 역시 인정할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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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회에서 두 나라가 무려 다섯번의 대결을 벌이게 된 이번 대회의 진행 방식은,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극악무도한 대전방식이라고 지탄을 받지만 엄밀히 말하면 보다 야구 본연의 성격에 맞는, '진짜 강자가 이길 수 있는' 진행방식이기도 합니다. 야구란 서로를 알면 알수록 진짜 실력이 나오는 경기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토너먼트 방식의 약점을 극복하고 가능한 한 경기 수를 늘려서 같은 팀이 여러번 맞붙을수록 요행은 사라지고 실력에서 앞서는 팀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게 하는 건 어찌 보면 현명한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꽤 짜증이 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결승에서 그렇게 선전했다는 건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상대의 방심으로 러키 펀치를 터뜨린게 아니라, 승리에 대한 집념과 투지가 전력차를 밀어내 버린 경기였다는 거죠. 그래서 그토록 큰 감동과 박수를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겁니다.

'록키' 이후 수많은 영화들이 '위대한 패배'를 모티브로 삼아 크게 성공했죠. '쿨 러닝'에서 '우생순'까지 사례는 충분히 있습니다. 승리만이 전부가 아니란 걸 가르쳐준 것이 '록키'의 공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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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누구나와 마찬가지로 지난 2주 동안, WBC가 거의 유일한 위안이었습니다. 온갖 환경이 모두 악화되어가는 가운데서도 연일 승전보를 터뜨려 주는 김인식사단이야말로 온 국민의 영웅 칭호를 받을만 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위대한 승리는 승리 그 자체보다 장면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1회 WBC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미국과의 대결, 이승엽을 고의 4구로 거르는 메이저리그 투수의 모습이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서 사방에 얘기하고 싶은 장면이더군요. "이봐, 지금 봤어? 미국이 한국에게 지지 않으려고 이승엽을 고의 4구로 거르고 있다고!"

이런 감동적인 장면은 매일 봐도 좋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런 대회만 거치고 나면 일본과 한국의 야구 환경 비교, 저변의 부족 등등이 시리즈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팬들은 할 일이 없을까요? 그래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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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변'은 공짜가 아니다

하라 다쓰노리. 현역 시절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붙박이 4번 타자. 미남형 얼굴과 호쾌한 홈런포를 장착한 80년대 일본 프로야구 최고 스타 중 한명. 감독 데뷔 후에는 거인군을 세 차례나 센트럴리그 1위에 올려놓은 명장.

현대 일본 야구를 대표하는 '얼굴' 중 하나인 하라 감독의 얼굴에 이럴 수가 없다는 당혹이 스쳤다. 지난 24일 열린 WBC 결승 9회말, 2사 1,2루에서 이범호의 좌전적시타가 터져 스코어가 다시 3-3 동점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이렇게 또 한국에게 당하는구나' 하는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이런 표정을 끌어낸 것만으로도 한국 야구는 제몫을 했다. 결과는 한국의 석패로 끝났지만 '져도 이렇게만 지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한국은 불타는 투지로 한사코 달아나려는 일본을 옭아맸다. 하지만 전력차는 분명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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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이 따르지 못할 두터움을 갖고 있었고, 상대 전력을 분석하는 힘에서도 한 수 위였다. 일본을 상대로 세번째 등판하는 봉중근의 구질이 분석됐을 거란 사실은 한국 코칭스태프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외의 대안은 없었다. 마쓰자카가 안되면 다르빗슈, 그래도 안되면 이와쿠마가 나오는 일본과는 달랐다.

이런 두터움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인지 모르는 야구 팬은 없다. 그건 바로 저변의 차이다. 일본의 고교 야구 팀 수는 한국의 80배다. 동네마다 어린이들도 뛸 수 있는 야구장이 있다. 반면 출범 28년째의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흑자 구단 하나를 내놓지 못했고, 고교야구와 유소년 야구 팀은 날로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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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저변을 말할 때마다 흔히 간과되는 사실이 있다. 바로 저변에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론 정부나 기업의 투자도 필요하지만, 팬들의 사랑 없는 생존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는 식물인간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돔 구장 하나 없는 한국 야구가 이만치 성장한 데에는 자기 돈으로 표를 사서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관객의 투자가 절대적인 힘이 됐다.

한데 가끔 공짜로 성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교야구가 열리는 경기장은 텅텅 비는데도 프로 야구의 젖줄인 학원 야구가 융성하기를 바라는 건 꿈일 뿐이다. 생전 콘서트 장 한번 가지 않고 음반 한 장 사지 않으면서 세계 수준의 싱어송라이터가 나오길 바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서편제'나 '쉬리'에 한국 관객들의 사랑이 몰리지 않았다면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대작들의 출현은 감히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스포츠건 대중문화건 스타들은 팬들의 사랑과 투자를 받아 자란다. 한국인의 유전자가 아무리 우수하다 한들 김연아와 박태환의 기적은 매번 일어나지 않는다. 스타의 출현을 기대한다면, 2013년 WBC의 우승을 꿈꾼다면 '팬으로서의 투자'를 시작하자. 기업이나 정부는 절로 따라올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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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WBC가 끝나고 수많은 '앞으로 할 일' '일본을 넘어 정상에 서려면' 시리즈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본의 고교야구 팀 수가 4천개가 넘고 한국은 60개도 안 되는데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는 아마 요즘 너무 많이 들어서 신물이 나실 겁니다. (물론 '야구 직업훈련원'화 되어 있는 한국의 고교야구가 일본의 고교야구만큼 건강하냐...는 것은 다른 얘기가 될 겁니다. 이런 얘기는 나중에 다른 기회에.)

혹시 관심있는 분은 2006년 WBC를 마쳤을 때 나왔던 이런 시리즈들을 찾아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과연 그 중 바뀐 내용이 얼마나 있는지도 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거의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을 겁니다.

정부든, 기업이든, 투자는 이익이 있을 때 이뤄집니다. 지금까지의 야구에 대한 투자는 '모기업의 홈보'라는 차원에서만 이뤄져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선 팬들의 사랑이 아직 부족했는지도 모릅니다.

한마디로 야구건, 축구건, 한국 스포츠가 최정상에 오르는 데 공짜는 없다는 겁니다. 김연아나 박태환도 물론 개인적으로는 공짜가 아니었지만, 팬들의 입장에선 어느날 맞아 떨어진 로또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 천재들이 잇달아 나타나기를 기대하지 말고, 팬들도 팬들로서의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온 국민이 보여주는 사랑이 시즌 내내 계속된다면, 무슨 변화가 있어도 있지 않을까요. 8개 구단 중 가장 팬들의 사랑이 뜨거운 걸로 유명한 롯데에서부터 흑자 구단의 기미가 슬슬 보이는 걸 보면 말입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참 많습니다만, 여러가지 사정상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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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열릴 예정이던 X-재팬의 내한공연이 또 연기됐습니다. 지난해 8월15일, 11월에 이어 세번째 바뀐 날짜가 또 연기라니, 정말 팬들의 입장에선 화가 날만도 합니다. 일본에서 흘러 들어 온 얘기로는 한국 공연만 그렇게 된 게 아니라니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고.

이번 연기(사실상 취소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는 멤버간의 불화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베이시스트 히스의 소속사와의 문제라는 얘기도 있어서 확실치는 않습니다. 물론 지난해 3월 도쿄돔에서 열린 10년만의 재결합 콘서트에서도 요시키가 중간에 실신하는 등 그룹의 핵인 요시키의 건강 문제는 항상 돌발 변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과의 인연이 계속 꼬이는 것은 아무래도 뭔가 악연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X-재팬의 열렬한 팬은 절대 아니었지만, 아쉬움 때문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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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엑스 재팬

서태지라는 예명이 무슨 뜻인지 사람들이 궁금해 하던 시절, 그 이름이 일본 록 밴드 엑스 재팬의 베이시스트 타이지(Taiji)에게서 따 온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적이 있었다.

서태지도 한때 록 그룹 시나위에서 베이스 기타를 쳤으므로 꽤 그럴싸한 얘기였지만 팬들은 엑스 재팬이라는 상징적인 이름 탓인지 "서태지를 일본 음악의 주구로 매도하려는 흠집내기"라며 격분했다. 결국 서태지 본인이 "그렇지 않다"고 공식 해명하면서 없던 일이 됐다.

그 엑스 재팬의 첫 내한공연이 또 연기됐다. 당초 3월21, 22일 양일간 서울에서 공연할 예정이던 이들은 돌연 13일 아침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일방적으로 공연 연기를 선언했다. 5월로 잡혔던 일본 공연까지도 환불에 들어갔다니 언제 다시 열릴지 모를 일이다.

한국에서 일본 음악을 들을 수 없던 시절, 1985년 결성된 엑스 재팬은 '일본 음악을 개방하는 순간 한국 대중음악은 고사해 버릴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처럼 보였다.

그만치 당시 이들이 보여준 음악적 성과는 국내 음악과 수준차가 있었다. 이들의 히트곡 '엔들리스 레인'이나 '세이 애니싱'은 처음 듣는 사람에게도 왠지 익숙한 느낌을 준다. 1990년대 초반, 수많은 한국의 작곡가와 가수들이 이들의 노래를 번안하다시피 그냥 베껴 불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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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수입은 꿈도 꿀 수 없던 무렵에도 서울 남대문 지하상가에선 이들의 베스트 앨범인 '베스트 오브 엑스(B.O.X)'를 구할 수 있었다. 보따리 장사들이 한국에 들여 온 양만 20만장 정도는 될 거란 추측이 나돌았다. 세월이 흘러 1998년부터 일본 대중음악이 순차 개방됐을 때 가장 먼저 발매된 음반도 바로 저 B.O.X 앨범의 연주곡 버전이었다.

개방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중음악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한류라는 이름으로 한국 가수들이 일본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엑스 재팬의 모습을 한국에서 볼 수는 없었다. 이들은 1997년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3월 재결성 선언과 함께 8월15일 잠실 주경기장 공연이 추진됐지만 "광복절날 서울에서 일본 밴드가 공연한다니 말이 되느냐"는 잡음만 쏟아졌다. 다시 11월로, 3월로 재차 연기된 공연은 멤버간 불화설 속에 또다시 무기 연기됐다. 서울에서 이들의 공연을 보는 일은 참 지난하기만 하다. 잠잠하다가도 한 순간 어디선가 터져나오는 망언으로 꼬여 드는 한일관계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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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이전 일본 대중음악의 한국 유입을 막은 것은 사실 꽤나 근거 없는 두려움, 무시할 수 없는 적대감, 그리고 한국 가요 제작자들의 장삿속이었다는 걸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적대감에 대해서는 사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 토를 달고 싶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1980년대 학교를 다니면서, 안전지대나 튜브의 노래를 듣는 친구들에게 침을 뱉고 싶었으니 말입니다. 그 노래들이 엇비슷한 한국 가요로 개편되어 나온다는 건 굳이 외면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적대감을 해소시켜 준 것이 카시오페아와 T-스퀘어였고, 은근히 그 음악 잘 한다는 X-재팬에도 관심이 쏠렸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음악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죠. 그래도 90년대라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은 대개 X-재팬의 싱글들이나 'Blue Blood', 'Jealousy' 앨범을 사 들여 오곤 했습니다. 물론 유입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고 국내에서 X-재팬의 붐이 절정을 이룬 건 1996년, 위에서 말한 B.O.X 앨범의 발매 이후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국내에서 인정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죠. 일본 출신의 록 밴드 라우드니스가 80년대 중반 영어 가사의 노래들만 부른다는 조건으로 내한 공연에 성공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90년대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X-재팬의 내한공연이 언제쯤 열릴 지도 모른다는 루머가 수시로 등장했지만, 실제 가능성은 별로 없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죠.

이들이 영어로만 노래를 했대도 아마 마찬가지였을겁니다. 뭣보다 X-재팬이라는 이름, 요상한 화장과 요란한 머리 모양이 당시의 '어르신'들에겐 끔찍하게 여겨졌을 것이기 때문이죠. 서태지도 '복장과 두발 상태 불량'을 이유로 방송 출연 금지를 당하던 게 90년대의 한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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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거없는 두려움이나 장삿속에 대해선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듯 합니다. 결과를 볼 때 개방은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 향상을 가져왔고, 시장의 확대 측면에서도 일본보다는 한국 쪽에 훨씬 큰 득이 됐습니다. 표절 사태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전처럼 '표절 아닌게 없다'는 수준에서는 크게 벗어났습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개방은 천천히 이뤄졌습니다. 그중 관심 가질만 한건 2000년 초, 1998년 2000명 이하의 공연장에서만 가능했던 일본 가수의 국내 공연 관객 제한이 없어진 조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국 땅을 처음으로 밟은 빅 스타는 차게&아스카였습니다. 이들의 인기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면을 감안하면 역시 이 때 왔어야 하는 건 X-재팬이 아니었나 싶지만, 그건 불가능했습니다. 1997년 라스트 라이브 이후 해체된 상태였기 때문이죠.

그 뒤로 11년, 2008년 8월 15일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릴 뻔 했던' 공연은 '광복절에 쪽바리들이...'라는 여론과 함께 사라졌고, 이후 요시키의 건강이 다시 악화됐습니다. 이제는 정말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공연이 되어 버린 셈입니다.

이들이 한국 무대에 한번 서야 그 길고 길었던 상호 불신과 고집을 나날에 한번 쉼표가 찍힌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만, 재주의 부족으로 저 짧은 글에는 여운만 남겼습니다. 그리고 '요상한 화장을 한 일본 딴따라들'을 병균 취급하던 시대에 대한 추억도 잠깐 짚어 보고 싶었습니다.



1992년 1월 도쿄돔에서 열린 'On the Verge of Destruction 1992.1.7 Tokyo Dome Live'를 다시 봤습니다. 아무래도 이들의 전성기는 타이지가 함께 했던, 'Jealousy' 앨범이 나왔던 90년대 초 까지라는 생각입니다.

92년 라이브는 유튜브에서 잘 보이지 않는군요. 많이 알려진 1997년 라스트 라이브 때의 'Endless Rain'입니다. 라이브에서의 이 노래는 정말 endless하게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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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중되는 업무로 짜증만 늘어가는 나날에 WBC 경기는 단비와도 같더군요. 초반에 류현진이 살짝 흔들릴 때만 해도 잠시 불안하더니, 여지없이 뒤집는 솜씨는 짜릿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본전 콜드게임패 이후 김인식 감독님을 비방하는 어처구니없는 찌질이들의 손질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실력으로 이렇게 모든 걸 보여주시는 데 감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감독님의 '집안 칼' 들인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가 이렇게 펄펄 날아 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나머지 7개 구단 팬들이 한화 팬들에게 점심이라도 사야 할 듯 합니다.

모처럼 이른 야구의 계절을 맞아 옛날 추억을 되살려 써 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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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감독과 영화 감독

90년대 초. 처음 신문사에 들어가자 야구 담당을 시켰다. 워낙 야구를 좋아하던 터라 거리낄 건 없었지만 야구 담당 기자라는 건 알고 보니 장돌뱅이였다. 노트북과 속옷을 둘러메고 전국 산천을 유람하는게 일이었다.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된 어느 날, 한 야구단 직원과 여유있게 노닥거리고 있었다. 서로 야구관이 달라서(물론 팬과 경기인의 시각 차이였겠지만) 옥신각신하던 차에 살짝 흥분한 그 양반이 물었다. "그래서 송기자가 생각하기에 한국 최고의 감독은 누구요?"

아니 그렇게 쉬운 걸 묻다니. "그야 임권택 감독이지." 그 다음날부터 다른 구단 직원들의 눈길이 달라진 걸 느꼈다. 그 양반이 "되게 웃기는 기자가 들어왔다"고 소문을 냈다나.

야구에도 감독이 있고 영화계에도 감독이 있다. 한국에선 다 감독이지만 원산지에선 야구 감독은 매니저(manager)고 영화 감독은 디렉터(director)다. 야구 감독은 운영자고 영화 감독은 지시자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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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복장 김경문 감독이 거짓말같은 한점차의 명승부를 연발하며 8전 전승, 감동의 금메달로 전 국민을 오르가즘에 빠뜨렸다. 이때 메달권에도 들지 못한 일본 야구 팬들은 중얼거렸다. "두고 봐라. WBC가 있다." 나오는 스타들을 보자면 솔직히 그렇다. 올림픽이 선댄스라면 WBC는 오스카다.

WBC를 앞두고 한국엔 썩 좋지 않은 소식이 잇달아 들려왔다. 영화로 치자면 흥행이 보장된 톱스타 이승엽과 박찬호의 캐스팅이 잇달아 불발됐고, 김병현은 여권이 없어서 출연할 수 없다는 통보를 했다. 추신수는 깐깐한 소속사에서 액션 신은 촬영해선 안된다고 감시 매니저를 붙였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영화를 살리는 최고의 조연배우 박진만마저 만두를 먹다 체해서 촬영장에 나오지 못했다. 명장 중의 명장 김인식 감독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지만 스타 없는 영화는 소 없는 찐만두다(박진만씨, 죄송합니다).

반면 같은 날 개봉하는 경쟁작을 만드는 재팬 픽처스는 신바람이 났다. 다르빗슈, 오가사와라, 조지마 등 일본을 대표하는 톱스타들이 자발적으로 출연 요청을 한데다 할리우드(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자카, 조지마, 이치로, 이와무라까지 참여를 선언했다. 그나마 뉴욕 양키스의 마쓰이가 빠져 1.00군이 아닌게 다행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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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개봉 첫주는 콜드게임으로 끝났다. 일본 작품은 작품성과 재미를 겸비했다는 극찬을 받은 반면 한국의 주인공 김광현은 "가서 다트 게임 CF나 더 찍으라"는 혹평을 받았다. 냄비같은 언론들이 또다시 '한국영화 위기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지의 한국은 패자부활전을 딛고 일어섰고, 결국 30만 달러의 추가 보너스가 걸린 1라운드 1-2위 결정전에서 일본을 제압했다. 김인식 감독 만세! 대한 독립 만세!

영화 감독과 야구 감독 얘기로 돌아간다. 두 감독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야구 감독은 선수와 똑같은 유니폼과 모자를 쓰지만(대체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영화 감독이 배우처럼 입고 메이컵을 하면 스태프들이 수근거린다. 영화 감독은 배우의 동작이 마음에 안 들면 들때까지 다시 시킬 수 있지만 야구 감독에겐 한 번의 기회뿐이다. 즉 영화 감독은 각본으로 드라마를 만들고, 야구 감독은 각본 없이 드라마를 만든다. 배우 출신 영화감독은 그리 많지 않고 명감독으로 남는 경우도 별로 없지만(누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될 수는 없다) 선수 출신이 아니면서 야구감독이 되는 경우는 아예 없다.

하지만 공통점도 많다. 두 사람 모두 수십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자기 일에 최종적인 책임을 지며, 연패를 당하면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성공해도 자기가 스타로 만들어 준 새파란 녀석들만큼 돈을 벌지는 못한다. 그래도 양쪽 모두 현장에서 감독이 죽으라면 톱스타들도 죽는 척 해야 한다.

얘기가 갑자기 산으로 가는 것 같지만 아무튼 하고싶은 말은 이거다. 대한민국 최고의 덕장 김인식 감독님! 영국의 대니 보일이란 감독은 '공도 못 만져본' 인도 꼬마들을 데리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냈습니다. 이번 한국 팀도 간판들이 빠져 김이 새지만 감독님을 믿습니다! 파이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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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맨 위의 질문을 받은 순간엔 참 난감했습니다. 그 구단 직원 형님과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그 구단의 감독님이자 당시 최고의 감독 중 하나로 불리던 분이 바로 옆에 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때까지 제가 하고 있던 얘기는 '그 감독님이 왜 최고 감독이 아닌지'를 역설하는 거였기 때문에, 무척 곤란해 질 상황이었죠. 그걸 보고 이 직원 형님이 저를 궁지에 몰기 위해 그런 질문을 느닷없이 던진 거였습니다. (임권택 감독님, 감사합니다.^)

아무튼 WBC 얘기로 돌아가서,

실제로 베이징에 왔던 일본 팀도 강팀이었지만, 그 팀과 이번 팀은 무게가 다릅니다. 영화 캐스팅으로 치자면 '오션스 11'에 로버트 드 니로와 안젤리나 졸리가 조연으로 나오는 식이랄까요. 물론 일본 야구의 정식 1군(위에서 말한 1.00군)이 되려면 양키스의 마쓰이가 참가해야 하지만, 이 정도면 진정한 일본 야구의 진짜 실력을 대변해주는 팀이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굳이 숫자를 매기자면 1.05군 정도?

반면 한국은 1.2군 정도로 평가해야 할 듯 합니다. 어쨌든 베이징 대표팀보다 현재의 진용이 살짝 무게가 부족하죠. 지금까지 한국이 해외에 내보냈던 최강팀은 개인적으로 1차 WBC 대표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의 시점에서 볼 때 박찬호는 몰라도 이승엽이 빠진 건 한국에겐 실제 전력을 떠나 정신적으로 상당한 허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1.2군이 일본의 1.05군과 당당히 맞서 1승1패를 했다는 건 두고 두고 자랑할 일입니다.

게다가 이번 대회는 2006년 이후 한국 야구 대표팀이 병역 혜택 없이 벌이는 최초의 빅게임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한국 야구의 힘 = 국방부의 힘이라고 비아냥거려온 일부 사람들에게 진정한 실력을 보여줘야 할 계기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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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님의 사퇴에 대해 이래 저래 말이 많지만, 솔직히 말해 한-미-일 대표팀이 최소 팀간 10차전 이상의 리그를 벌인다면, 김성근 감독님만한 적임자는 없겠죠. '김성근식 야구'는 상대와 만나면 만날 수록 조금씩 더 강해집니다. 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이죠.

반면 WBC처럼 단기전에다, 상대에 대한 전력을 거의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해야 한다면, 김인식 감독님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순간적인 대응 능력이나, 자신이 키운 선수 아닌 여러 구단 출신의 톱스타들에게 두루두루 존경을 받는 인화의 힘 등에서 그렇죠. 물론 대표팀 감독 선정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알맞은 감독에게 지휘봉이 넘어간 것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한번 우승을 기대해 보는 것도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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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야구장의 봉중근 의사처럼 극장가에서는 봉테일 열풍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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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가끔 주위 사람들이 "우리 애가 (연기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어디 소개시켜 줄 데 없느냐"는 질문을 해 오는 편입니다. 이럴 때 저의 대답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웬만하면 클 때까진 시키지 마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역 이기는 성인 배우 없다는 건 TV 드라마 시장의 철칙 중 하나입니다. 뒤로 가면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는 드라마도 앞 부분, 아역들이 나오는 부분만큼은 어느 정도 성적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히트작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근 종영한 MBC TV '에덴의 동쪽'역시 장기간 히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송승헌의 아역으로 출연한 김범의 활약에 기댄 부분이 꽤 큽니다.

그럼 아역배우 본인의 삶은 어떨까요. 실제로 촬영장에 따라다니면서 본 결과, 아역배우들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의 환경이 문제일 수도 있고, 본질적으로 어린 나이에 생활 현장에 나와 있는 데서 오는 피로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이런 생각과 관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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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역 스타

올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슬럼독 밀리어네어'는 인도 뭄바이 빈민가에서 성장한 청년 자말이 100만 달러가 걸린 퀴즈쇼에 출연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명 배우라곤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이 영화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의 작품상을 휩쓸면서 일약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실제 빈민가 출신인 아역 배우 아자르 무하마드 이스마일(10)과 루비아나 알리(9)는 오스카 시상식장에도 등장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전 세계의 관심이 어린이들을 행복하게 한 것 같지는 않다. 이스마일의 아버지는 집에 돌아온 아들이 “피곤해 인터뷰 같은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투정하자 보도진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때려 쓰러뜨렸다. (위 사진입니다.) 인도 정부는 이들에게 살 집을 주고, 제작진은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에 대비해 신탁기금을 마련했지만 부모들은 “지금 당장 돈을 달라”며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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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스타들과 돈에 눈먼 부모들의 문제는 할리우드 최초의 스타 아역 배우가 출현했을 때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영화 '키드'(1921년)에서 찰리 채플린과 공연, 7세의 나이로 스타덤에 오른 재키 쿠건은 21세가 되자 그가 번 400만 달러를 탕진했다며 어머니와 계부를 고소했다. 하지만 재판 결과 쿠건이 되찾은 것은 12만 달러뿐이었다.

이 사건으로 아역 배우의 재산 보호에 대한 논쟁이 일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미성년 배우가 벌어들인 돈 중 최소 15%는 성년이 될 때까지 제3자가 신탁 관리해야 한다는 법규를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금도 '재키 쿠건 법'이라고 불린다. 이 법은 재산뿐만 아니라 교육과 촬영 시간 등 미성년 배우가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들은 하루 9시간30분 이상 촬영장에 머물 수 없었고, 그중 3시간은 영화사가 고용한 교사와 함께 공부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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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한국의 경우 아역 스타들을 위한 보호 장치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다. 연기나 노래를 하는 동안 아이들의 교육은 방임 상태에 놓인다. 한국의 미성년 연예인에게 가장 큰 위험은 부모의 탐욕보다 '어른 대접'의 유혹이다. 최근 왕년의 장수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소년 노마 역을 맡았던 아역 배우가 한의사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그보다 유명했던 금동이 역의 아역 배우는 법의 심판을 받기도 했다.

10대 스타들의 성공이 각광받으면서 '어릴 때부터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는 부모와 아이들로 연예 관련 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지금, 재키 쿠건 법의 취지에 더 많은 관심이 모아져야 할 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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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 쿠건이 벌어들인 1930년대의 400만달러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도 힘든 거액입니다. 그런 거액을 부모가 보호자라는 이유로 탕진해버린 것은 아역 배우 입장에선 참 기가 막힐 일이죠.

더 잘 알려진 경우로는 매컬리 컬킨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80년생인 컬킨은 1990년 '나홀로 집에 (Home Alone)'에 출연하면서 당대의 영화 흥행 성적표를 모두 바꿔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스타덤은 굵고 짧았죠. 부모의 이혼, 이혼 후의 양육권 다툼 등 다양한 사건으로 골치를 앓던 그는 15세 때 부모로부터 법적으로 독립하고(내 재산은 내가 지킨다!) 아버지를 매니저로 고용해 월급을 주고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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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때 이미 귀여운 맛이 사라지며 상품성을 잃기 시작한 컬킨은 18세때 동갑내기인 아역 배우 출신 레이첼 마이너와 결혼, 20세때 이혼하는 등 성인으로서의 삶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느낌으로 팬들을 실망시켰습니다. 2004년에는 마약 소지로 체포되는 물의를 빚기도 했죠. 여전히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꽤 벗어나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아역 출신이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에 대한 사례는 여러 번 보고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위험은 윗글에서도 살짝 다뤘듯 아역 스타들이 일찍부터 어른들의 세계에 노출된다는 것이죠. 이른 나이에 한 사람의 어른으로 대접받고 현장에서 일을 하다 보니 미성년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이 오게 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일찍부터 음주나 흡연을 비롯한 어른들의 오락거리에 눈을 뜨고 비뚤어진 길을 걷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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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자체도 큰 스트레스입니다. 제가 옛날에 본 한 촬영장에서는, 활발한 성격의 아역 배우가 하루 종일 우울한 표정으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오늘 주사 맞는 장면이 있는데 진짜로 주사를 놓을 거다"라고 얘기를 했다더군요. 그래서 이 배우는 신이 끝날 때면 조연출에게 "정말 주사 맞아요? 오늘 찍어요?"라고 계속 물어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주사 맞는 장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그 아역 배우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요. 이 정도면 거의 아동학대입니다.

아역들이 겪는 스트레스에 대한 글은 전에 따로 쓴 적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아역 출신 배우들은 "그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게 한"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그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식은 물론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방법에도 꽤 큰 영향을 줍니다. 물론 지식 자체는 말할 것도 없죠.

모든 측면에서 살펴보더라도 하루빨리 한국에서도 선진국들처럼 아역 배우들의 인권과 건강, 교육을 감안한 규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초등학생에서 멀리는 '사실상 고교 휴학생'이 되어 버리는 10대 아이들 스타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활동을 막는 방안 말입니다. 비록 당장은 '열심히 활동해서 성적을 내야 특차로 대학에 가지'라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자녀의 인생을 생각하면 꼭 그게 득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p.s. 아무튼 요즘 자꾸 무거운 얘기만 올리는 것 같아(심정 탓인가...) 분위기 전환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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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테이너 어쩌고 하는 얘기가 유행하던게 벌써 오랜 옛날 일 같습니다. 애당초 별 의미가 없는 말이기도 했는데 이름을 지어 부추기다 보니 한때는 떠들썩 했습니다만, 지금은 싹 사라진 분위기입니다.

사실 최근 몇해 동안 아나운서들이 떴던 시절이 있었다지만, 따지고 보면 유명했던 건 훨씬 더 옛날의 아나운서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름을 대자면 숱하게 댈 수 있죠. 그런데 지난해 이후에는 그런 식으로라도 유명한 아나운서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왜 요즘은 아나운서들이 전처럼 활개를 치지 못할까요? 그런 저런 궁금증에 대한 글을 쓰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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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스타 아나운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스타 아나운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김태희의 외모도, 김제동의 개인기도, 강호동의 우기기도 없이 마이크 하나로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기며 온 국민을 사각 화면 앞으로 끌어모으던 왕년의 제왕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 말을 듣고 '그러게. 한때 김성주, 강수정, 노현정이 방송을 다 하는 듯 여기저기서 호들갑을 떨더니 어떻게 된걸까'하는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아직 아마추어 시청자다. 그럼 아직도 가끔 화제에 오르는 황현정-황수경-황정민 '황 트리오'의 전성기 때 얘길까? 아니면 온 국민의 일요일 아침을 깨웠던 '열전! 달리는 일요일'의 최선규나 손범수 아나운서를 떠올려야 할까?

그 정도도 아직 멀었다. 진정한 스타 아나운서라면 왕년의 MBC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양분했던 '장학퀴즈'의 차인태, '명랑운동회'의 변웅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밖에 KBS를 대표했던 미스코리아 전담 MC 김동건, '장수만세'에서 팝 DJ까지 TBC를 개인 방송처럼 휘저었던 황인용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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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들 모두를 무색하게 만드는 '임택근'이라는 이름도 있다. 요즘 사람들에게는 가수 임재범과 탤런트 손지창의 아버지로나 알려져 있지만 50대 이상 연령층에게는 김지미나 신성일보다도 한 단계 위의 스타다. 톱스타 엄앵란과 춤 한번 춘 죄로 스캔들의 주역이 되고, 4.19때 KBS 앞에 몰려든 시위대가 '사장 나오라'가 아니라 '임택근 나오라'고 외쳤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물론 오늘날의 방송환경에서 이런 전설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1950년대의 스타 아나운서 임택근은 거의 모든 장르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었다. 인기는 곧 권력이 되었고, 한번 스타가 된 이들은 새로 올라오는 후배들의 진출을 막고 자신의 치세를 늘려 나갈 힘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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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이전만 해도 한두명의 탁월한 방송인은 전체 편성을 좌우할 수 있었다. MBC의 경우에도 변웅전과 차인태라는 두 스타가 각각 교양은 차인태, 오락은 변웅전이라는 식으로 황금분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두 스타는 수시로 이 경계를 넘나들며 치열한 라이벌 관계(?)를 유지했다.

신군부의 방송 장악과 함께 상황은 사뭇 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 MBC TV '영 일레븐', KBS 2TV '젊음의 행진'을 시작으로 젊은 층을 겨냥한 예능 프로그램이 출현하기 시작했고, 이런 프로그램에는 새로운 감각의 진행자들이 요구된다는 사실이 재빨리 상식이 됐다. 개그맨 출신의 주병진, 가수 출신의 이문세, 배우 출신의 송승환 등 '젊은' 전문 MC들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런 예능 MC 전문화는 전 연령대에서 활기차게 이뤄졌다. '가족오락관'의 허참, '사랑의 스튜디오'의 임성훈, '우정의 무대'의 이상용, 그리고 '전국노래자랑'의 송해 등이 전면으로 나섰다.
이런 경향은 아나운서들의 활동 영역 축소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반발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다.

80년대 이후 3S 정책하에서 예능 프로그램들은 급격하게 저질화(?) 되기 시작했고 대다수 아나운서들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체면이 깎이는 일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여자 아나운서들은 9시 뉴스의 메인 앵커라는 '최고의 자리'를 노리는 데 있어 예능 프로그램 진행 경력이 오히려 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한 KBS의 전직 예능 PD는 "90년대 초에는 '연예가 중계'의 MC를 사내 공모했는데 지원하는 여자 아나운서가 단 한명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반면 이를 꺼리지 않았던 손범수, 김병찬 등은 동료들이 외면하던 예능 진행자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결국 스타 아나운서의 자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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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경제 상황에서 왔다. 1997년, 한국이 IMF 시대를 맞자 온갖 기업이 경비절감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방송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아도는 내부 인력 때문에 고민하던 KBS는 그 즉시 상대적으로 출연료가 비쌌던 외부 진행자들을 정리하고 소속 아나운서들을 대거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위에서도 거론한 황정민-황현정-황수경의 3황 아나운서가 방송계의 신데렐라로 다시 태어났다.

2006년 전후, '아나테이너 붐'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독일 월드컵 중계에서 보여준 탁월한 진행력을 바탕으로 김성주가 스타 아나운서로 뜨기 시작했고 KBS 2TV '여걸 식스'에서 소탈함을 뽐낸 강수정도 각광을 받았다. 이어 새로운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인 KBS 2TV '상상플러스'의 노현정, '스펀지'의 2대 진행자인 김경란 '하이파이브'에 투입된 이정민 역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이미 아나운서들의 스타 만들기에 성공한 경험이 있는 데다 어느 방송사보다 풍부한 인력을 자랑하는 KBS는 이번에도 한발 앞서갔다.

이들의 성공사례와 함께 다시 한번 각 방송사는 아나운서들의 스타 만들기에 전념했다. 무엇보다 싸고, 정확한 한국어 교육으로 자질 시비에 휘말릴 여지도 없고, 이미 선발할 때부터 외모를 고려했으니 방송사 입장에서는 이들이 MC로 성공하기만 한다면 더 좋을 일이 없었다. SBS는 뻔한 논란을 무릅쓰고 미스코리아 출신 아나운서 김주희의 해외 미인대회 수영복 심사를 용인했고, MBC는 아예 서현진, 최현정, 손정은, 문지애 등 신인급 아나운서들을 한꺼번에 투입한 예능프로그램 '지피지기'를 신설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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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근 2년간에 대해 '아나테이너 전성시대'라는 말을 만들어 냈지만 사실 공허하기 짝이 없는 말일 뿐이다. 예능에 재능이 있던 몇몇 아나운서들이 우연히 '반짝 인기'를 얻었지만 이들 가운데 방송계의 스타로 불릴 만한 인물은 배출되지 않았다. 여론의 호들갑이 거품만 키웠을 뿐이다.

강제형 아나운서 협회장은 스타 아나운서의 부재에 대해 "과거처럼 긴 호흡으로 사람을 키우지 않고, 장수 프로그램도 없는 방송의 '경박단소(輕薄短小)화'가 가장 큰 이유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왕년의 대형 아나운서들이 스포츠 중계에서부터 바닥을 다져 올라온 데 비하면 최근의 인기를 얻은 아나운서들은 2∼3년차의 경력 때부터 오락 프로그램에 투입되고, 빠른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일이 거듭되는게 스타 아나운서의 배출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프리랜서 아나운서에 대한 각 방송사의 냉담한 분위기가 스타 아나운서의 출현에 가장 큰 장벽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 프리랜서 아나운서는 "각 방송사의 예능국에서는 일정한 MC 풀을 갖고 오락 프로그램 진용을 짠다. 그 안에서 열심히 노력해 인정받으면 유재석, 강호동, 이휘재, 탁재훈 등의 위치에서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 하지만 스타 아나운서에게 과연 무엇이 따라오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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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같으면 인기 아나운서들은 프리랜서로 독립해 고액 출연료와 인기를 누릴 수 있었지만 지난해 이후 이건 옛날 얘기가 돼 버렸다. KBS 노사는 최근 PD와 아나운서를 막론하고 프리랜서로 나선 전직 직원에게는 사직후 3년간 일거리를 주지 않는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다른 방송사들 역시 자사 출신의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에게 비싼 출연료를 주는 데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의 푸념은 이어졌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뜨기' 위해서는 온 몸을 던져야 한다. 연예인 MC들이 개다리 춤을 추고, 한겨울에 얼음물에 뛰어들고, 까나리액젓을 자진해서 마시는 건 스타만 되면 그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봉급생활자인 아나운서에게 프리랜서로 클 통로까지 막아 놓으면 대체 뭘 기대하고 그 고생을 하겠나. 회당 몇만원의 수당을 받으면서 500만원, 1000만원 받는 '동료'들과 나란히 서는 게 '스타 아나운서'의 본질이라면 말이다."

어렵게 스타가 되어도 따라오는게 상대적 박탈감뿐이라면 과연 누가 스타가 되고 싶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아나운서의 정도(正道)'만 지켜선 스타가 될 수 없는 방송 환경이 유죄일까, 스타가 되어도 기대할게 없다는 매몰찬 현실이 문제일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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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한건 분명합니다. 또렷또렷한 전달력보다는 프로그램의 맥을 꿰뚫는 재치가 훨씬 높은 가치로 평가받게 됐기 때문이고, 그런 식의 헝그리 정신을 갖춘 전문 방송인들에 비해 아나운서들이 갖고 있는 자산이 많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죠.

이건 현재의 아나운서들이 진지하게 해야 할 고민입니다. 과연 '선진국에는 없는' 방송사의 공채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왜 한국에는 있는 것일까. 대외적으로는 스타지만 방송국 내부적으로는 '앵무새'라고 비하를 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나운서는 과연 언론인일까. 그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는 열쇠가 있다고 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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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는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칩니다. 연예계도 예외가 아닙니다. 거의 모든 연예인과 기획사들이 불황을 견뎌낼 준비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비나 장동건 같은 톱스타들이야 큰 타격이 없겠지만 군소 기획사나 생계형 연예인들은 한숨소리가 가득합니다. 심지어 제법 큰 매니지먼트사들도 감원과 차량 축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예인의 상징같던 밴 승합차를 정리했다는 얘기가 전혀 드물지 않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불황은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파괴를 가져왔습니다. '이 바닥' 만큼 필요 이상으로 의리와 형제애(?)가 강조되는 곳도 드뭅니다. 물론 따지고 보면 말뿐인 얘기일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말이나마 그렇게 하던 것도 옛말이 될 지경입니다. 아예 대놓고 의리가 밥먹여주느냐는 분위기가 요즘 쉽게 눈에 띕니다.

최근 그 주변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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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경기 침체가 매니저에게 미치는 영향

영화 '핸드폰'에서 엄태웅이 연기하는 매니저는 더 이상 비굴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한 모습이다. 룸살롱에서는 유명 PD의 비위를 맞추고, 마구 당겨 쓴 급전 때문에는 사채업자에게 손이 발이 되게 빌어야 한다. 그렇다고 무슨 호사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매니지먼트 업계 종사자의 사회적 지위는 누구와 일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소속 스타들 못잖게 부와 명성을 누리는 매니저가 있는가 하면 3-4개 회사가 사무실을 함께 쓰는 군소 매니저들도 있다. 그들의 진짜 사무실은 차 안이다.

작은 매니지먼트사 대표 A는 한때 꽤 유명한 스타들과 함께 일했고, 독립한 뒤에도 특유의 탁월한 친화력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2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유망주로 꼽히는 성장주들을 키우며 활기차게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 악화는 작은 회사에 더 치명적이었다. 소속 연예인들의 매출은 날로 줄어들었지만 고정 비용은 더 이상 아낄 데가 없었다. 경영난으로 '입금'이 늦어지자 소속 배우와 직원들이 하나 둘씩 떠나갔다. 그러다 A는 동생처럼 여기던 직원 B가 아직 자신과 계약기간이 끝나지 않은 배우 C와 몰래 사무실을 차렸다는 사실에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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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지난 2년간 회사의 경영 성적표를 공개했다. 대표이사 A의 봉급란은 공란으로 되어 있다. 진행비 300만원이 매달 회사에서 가져간 돈의 전부다. 스타크래프트 밴은 쳐다보지도 않고 렌트카 6대를 굴리는 등 줄일 건 모두 줄였는데도 매월 5000만원 가량의 경상비가 들어갔다.

2006년 7월부터 2008년 10월까지 2년 4개월 동안의 성적은 7억여원의 적자. 간판 역할을 했던 C 역시 이 기간의 수지는 2900만원의 순손실이었다.

A는 "배우들에게 줄 돈을 유용해서 호화 생활이라도 해 보고, 룸살롱에서 향락을 즐겨 본 결과가 이렇다면 억울하지나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동안 쓴 돈이야 영수증으로 증명할 수 있지만 하루 다섯시간도 못 자면서 일요일도 없이 뛴 노력은 누가 보상해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항변이다.

A를 비롯한 수많은 매니저들은 돈도 돈이지만 인간적인 실망이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는데 입을 모은다. "소속 연예인으로부터 '대체 당신이 지금까지 해준 게 뭐냐'는 말을 들을 때의 심정은 매니저가 아니면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 '너만 그런 일 겪은 줄 아냐'고 위로할 뿐"이라는 이들에게 영화 '라디오 스타'는 그저 판타지였을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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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주 오래 전부터, 연예계에서는 우스개처럼 이런 말이 돌았습니다. 연예인이 매니저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너 많이 컸구나', 매니저가 연예인으로부터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은 '형이 그동안 나한테 해준게 뭐 있어?'라는 얘깁니다.

최근 잇달아 매니지먼트사들과 연예인들의 계약이 불공정계약이라는 법원의 판결을 받고 있습니다. 물론 10년, 15년씩의 장기계약에다가 '앨범 판매 30만장 이후부터 인세를 지급한다(지난해 30만장을 넘긴 가수는 동방신기 하나 뿐입니다)' 는 등의 현실을 무시한 조항이 들어간 계약서는 철퇴를 맞아 마땅합니다.

하지만 대다수 매니저들은 옆에서 보기에 '대체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까' 싶은 사람들입니다. 이들로부터 휴일을 가진다거나 여가를 즐긴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밤마다 유흥가를 달리며 접대를 하고 사교를 한들, 남을 위한 술자리가 그렇게 즐거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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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라도 해서 뜬 연예인들이 돈이라도 움풍움풍 벌어 오면 고생이 낙으로 바뀌겠지만 현실은 냉정합니다. 실제로 '떠서' 매니저의 보람이 되는 연예인은 기준에 따라 숫자가 달라질 수 있지만 대략 20명중 하나가 될까말까합니다. 1년이고 2년이고 투자해서 다듬어진 신인의 경우가 그렇다는 겁니다. '연예계 지망생'을 기준으로 하자면 아마 1000대 1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결국 계약서를 돌아보지만, 매니저와 연예인의 관계는 계약서의 문구로 정리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들도 아니고, 동생도 아닌데 저렇게 한 사람에게 공을 들일 수 있다는게 옆에서 보면 신기할 정도죠. 당연히 대부분의 신인들도 무명일 때에는 이런 매니저에게 고마움을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그 뒤로 수천만가지 일들이 있다 보면 이런 '계약서 이외의 관계'와 '자로 잴 수 없는 사람의 노고'는 안개처럼 흩어져버리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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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저들에게 있어 '동료'들은 의지할 수 있는 동업자이자 경쟁자들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누구도 믿을 사람이 없다'는 쪽이 더 정확할 겁니다. 5년간 계약한 신인이 4년째에 가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면, 이 매니저도 재계약을 해야 그 보람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4년간, 혹은 그 이전부터의 노고가 무색하게 신인은 훨씬 좋은 조건을 제시한 다른 사람과 새로 계약을 해 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계약기간이 끝나고 다른 회사와 계약을 하는 것은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없지만, 전 매니저의 입장에서는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그저 속이 쓰릴 뿐이죠.

물론 아직도 '진심과 의리는 통한다'고 생각하는 매니저와 연예인들도 많이 있고, 10년 20년씩 함께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는 경우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앰브로즈 비어스가 우정을 정의할 때 "날씨가 좋을 때에는 두명이 탈 수 있지만 악천후에는 한사람만 탈 수 있는 배"라고 했듯, 경기 침체는 이런 전통적인 관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쓸데없이 너무 딱딱한 얘기가 돼 버렸습니다. 눈 푸시라고 깜찍한 동영상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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