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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식탁에서 고추를 제외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마 살 맛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겁니다. 매운 떡볶이 생각에 자다가도 깬다는 유학생들의 얘기를 들어 봐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 눈길을 잡아 끄는 기사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때에도 고추가 있었다' 등등 일련의 기사였죠. 똑같은 자료에서 나온 기사이기 때문에 내용은 대동소이했을 겁니다.

먹거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한국에 고추가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전후라고 알고 계셨을 겁니다. 멕시코에서 태어난 고추가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으로 전파되고, 그것이 다시 유럽인들에 의해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조선으로 전해졌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죠. 그래서 약 18세기 이전까지 한국인들이 먹어온 김치는 백김치였다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최근 연구 결과는 이런 정설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궁금증이 절로 떠오릅니다. 대체 한국인들은 언제부터 매운 음식을 먹은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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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치 미스터리

 우리는 언제부터 매운 고추를 먹었을까. 오래전 할머니들은 말씀하셨다. “왜놈들이 처음에 고추를 먹어 보니 이게 독(毒)인 거야. 그래서 조선 사람들을 죽이려고 임진란 때 고추 종자를 뿌렸지. 그런데 조선 사람들한테는 독은커녕 입맛에 잘 맞아 널리 퍼진 거야.”

고추가 16세기 말 일본에서 전해졌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정설이었다. 하지만 한국식품연구원 권대영 박사팀이 반론을 제기했다. '시경'이나 3세기 문헌인 '삼국지 위지동이전' 이후 초(椒)라는 식물이 수많은 문헌에 등장하며,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에도 이 글자의 뜻이 '고쵸 초'라고 기록돼 있는 등 본래부터 한국에는 고유종의 고추가 있어 널리 식용으로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전까지 고추의 도입 시기를 기록한 가장 중요한 문건은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에 나오는 '남만초(南蠻椒)는 독이 있으며 왜국을 통해 들어와 왜개자(倭芥子)라고도 불린다'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권 박사는 남만초와 왜개자는 모두 우리가 먹는 고추(椒)와 다른 식물이라고 주장했다. 기존 연구자들이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서 발견한 고추와 한국산 고추는 전혀 다른 품종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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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입맛을 감안할 때 16세기 이전에도 고추가 있었다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이어지는 궁금증은 각종 음식, 특히 김치에 사용한 기록은 왜 별로 보이지 않으냐는 점이다. 1670년 발간된 한글 요리 책자인 『음식디미방』에 나오는 수많은 김치 가운데서도 고추를 사용한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19세기의 문헌 『규합총서』(1809)에 나오는 김치 중에도 대부분의 종류에는 고춧가루 아닌 실고추가 들어갈 뿐이다.

『한국 음식, 그 맛있는 탄생』의 저자 김찬별은 1933년 조선중앙일보에 실린 '우리는 모두 고추 중독자다'라는 기사를 인용해 새빨간 음식의 유행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기사는 '하루 세 끼의 반찬이 모두 고추로 양념돼 음식 맛까지도 모두 고추 맛으로 변해 버렸다'며 당시의 풍조를 개탄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권대영 박사는 “고추는 소금 못잖게 김치의 장기 보존에 절대적인 조건”이라며 “김치에 고추가 사용된 것이 현재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빨랐다는 것을 증명해 내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과연 한국인의 매운맛 사랑은 반만년 역사에 비춰 볼 때 최근 100년 안팎의 유행일까, 아니면 면면한 전통의 결과일까. 연구 결과가 정말 기대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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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시 한번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저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일 뿐, 역사 분야에도 식품 분야에도 전문가가 아닙니다(먹는 쪽이라면 비교적 전문가에 가까울 수도...^^). 다만 우리가 먹는 음식의 기원에 궁금증을 느낀 사람일 뿐입니다.

저 연구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라면 신문 기사의 요약(이런 경우 많지만 대개 심각한 오류나 생략이 있기 마련입니다)을 기대하지 마시고, 직접 연구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www.kfri.re.kr에 가서 '사이버 홍보실 - KFRI 발간자료'로 가시면 원문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기사는 일단 임란 100여년 전인 1487년 편찬된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등 임진왜란 이전의 문서들에서 한자 ‘초(椒)’에 한글로 ‘고쵸’라는 설명이 명시돼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습니다. 저도 '훈몽자회'의 예를 들었지만, 이런 단어 분석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문서에 전차(戰車)가 나온다고 해서 그 시대에 오늘날 우리가 전차라고 부르는 탱크가 있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아무래도 16세기 고추 전래에 대한 의문 제기입니다. "만약 멕시코에서 나온 '아히'라는 고추가 1492년 유럽을 거쳐 한국으로 왔다면 고작 몇백년 사이에 한국 고추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종류로 바뀔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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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뒤 사계의 많은 전문가들이 '낚시다'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지적은 아무래도 "멕시코 산의 고추와 한국-중국의 고추가 과연 DNA 차원에서 같은 조상을 가진 것인지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죠. 그리고 몇몇 분들이 멕시코를 원산지로 하는 고추에는 여러 종류가 있으며, 그중 일부는 한국-중국산 고추와 같은 조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주장은 http://hosunson.egloos.com/2296323

이런 주장에 따르면 권박사님의 연구에 나오는 '한국의 고추는 콜럼버스가 멕시코에서 가져온 것과 다른 종자일 수 있다'는 가설은 원천봉쇄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가능성을 남겨 둔다면, 고추의 도래 시기가 16세기보다는 조금 더 빨라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단지 가능성일 뿐이지만,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대로 15세기 초 정화의 원정대가 북미대륙 서해안에 도착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이때 고추가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뭐 물론 근거라고는 전혀 없으니까 농담으로 치시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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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까지의 정설을 따르자면 한국인들은 16세기 후반에 고추를 처음 접했고, 이 식물이 전국에 퍼지는 데에도 최소 100년 정도는 걸렸을테니 17세기 후반이나 18세기 초반에 온 국민이 고추를 식용으로 이용하게 됐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맛에 익숙해지는 데 다시 100년 정도는 걸렸다는 얘기죠.

또 위에 예로 든 김찬별님의 '한국음식 그 맛있는 탄생' 에 나오는 내용을 보거나, 매운 떡볶이의 등장마저도 해방 이후, 심지어 6.25 이후라는 증언들을 들어 볼 때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에 익숙해진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그래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을 겁니다. 매운 음식 없으면 못 사는 한국인들이 고작 100년...? 왠지 서운하다는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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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을 쓰기 위해 권대영 박사님과 통화했을 때에도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 내가 이 연구를 시작한 것도, 한국인이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지금처럼 먹은 것이 최근(역사적으로 최근)의 일이라는 걸 납득하기 어려워서였다. 또 소금만으로 야채의 신선도는 유지되기 힘들다. 고추는 소금 못지 않게 김치의 보관에 절대적인 요소였다. 비록 현재까지 문서상으로 확보된 근거가 없어 지금은 뭐라 말할 수가 없지만, 앞으로 연구를 계속해 반드시 한국인의 고추 식습관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오래된 일이라는 것을 밝혀내겠다."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존 연구가 뒤집히든, 아니면 더욱 강화되든 고추와 고춧가루의 역사는 좀 더 자세히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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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세계적으로 볼 때 한국인의 매운 맛 사랑은 최정상급은 아닙니다. 상위 30% 이내에는 확실히 들겠지만 10% 이내에 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한국산 고추 자체가 그리 맵지 않기 때문이죠. 흔히 '쥐똥고추'라고 불리는 동남아산 고추만 맛본 분들이라도 아마 이 말에 절대 반대하시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일본사람이나 앵글로색슨계의 백인(라틴계는 매운 맛에 익숙하죠)들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매운 거라면 우리가 독보적"이라고 생각하게 됐을 것도 같습니다.

(물론 최근 몇년 사이에도 한국인이 감당할 수 있는 매운 맛의 강도는 나날이 드높아져 가고 있는 듯 합니다. 불닭이라는 음식을 가장한 고문 도구의 등장도 그렇고, 매운 맛의 정수인 수입 캡사이신액이 식당 주방에서 공공연히 쓰인다는 얘기도 들리고...

그렇다면 계속 떠오르는 의문. 대체 왜 하필 20세기에 들어와서 한국인들은 매운 맛에 눈을 뜨고 나름 즐기게 됐을까요? 일제 식민지의 고초를 견디기 위해서? 아니면 와신상담의 심정으로? 역시 연구자들의 분발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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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노벨상을 비롯해 세계적인 위인들의 이름을 딴 상은 수없이 많습니다. 레닌상(과학, 인권), 페르마상(수학), 오일러상(수학), 퓰리처상(언론), 로버트 카파상(보도사진), 간디상(인권), 사하로프상(인권), 막사이사이상(인권), 노구치 히데요상(의학), 에드가 앨런 포 상(문학), 오 헨리 상(문학)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수많은 위인들의 이름을 딴 상 중에 다윈상 혹은 다윈 어워드(Darwin Awards)이 있습니다. 다른 상들과 차이가 있다면 전혀 명예롭지 않은 상이라는 점입니다. 1985년부터 수상자를 배출해 왔지만 수상자 가운데 저나 여러분이 이름을 알만한 사람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그냥 장난이라면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유쾌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장난이기도 합니다.

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이고 지난 12일은 바로 찰스 다윈의 200번째 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생각났던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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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다윈상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영화 '다윈 어워드(The Darwin Awards, 2005)'는 다윈 상 수상자와 주위 여건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다윈 상이란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을 기념해 제정된 상이며, '자연선택설에 입각해 그들 자신을 제거함으로써 인류의 유전자 개선에 공헌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상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복잡하지만 풀어 설명하면 '살아 있었다면 인류의 형질 개선에 별 도움이 안 될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려, 자신들의 어리석음이 후손들에게 유전되지 않도록 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는 상'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 이야기라면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실제 존재하는 이 상(http://darwinawards.com)은 1985년부터 매년 수상자를 배출해 왔고, 수상자들의 어처구니없는 사연을 담은 책들도 여러 차례 발간됐다.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콜라 캔을 공짜로 빼내려다 자동판매기에 깔려 죽은 사람, 요트의 구멍을 테이프로 막고 항해하다가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아내에게 위자료로 집을 주라는 판결이 나오자 집에 불을 질렀다가 타 죽은 사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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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믹하긴 하지만 한국적인 기준에서 볼 때에는 어쨌든 생명을 잃은 사람들의 사연을 웃음거리로 삼는다는 게 그리 편치는 않다. 유명인들의 사망 기사에 달리는 인터넷 악플들을 연상시키는 구석도 있다. 이런 장난에 자신의 이름이 쓰인다는 데 대해 다윈은 어떻게 생각할까.

다윈의 이론이 인류의 지성 발전에 기여한 내용이야 굳이 재론할 필요도 없지만, 한편으론 그의 주장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합리화하는 데 악용되어 왔다는 비판도 항상 따라다닌다. 다윈이 없었다면 우생학이나 나치의 홀로코스트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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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에서도 가끔은 다윈을 원망하는 일이 생긴다. 시청률에서 경쟁 방송에 뒤지는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되어야 하고, 박스 오피스를 장악하지 못하는 영화는 사라져 마땅하다는 주장 때문이다. 다행히도 가끔씩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5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적이 일어나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기도 한다.

지난 12일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세계 각국에서 축하 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인류는 그동안 그의 가르침을 빙자해 저질러온 수많은 바보짓에 대한 반성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윈 상의 존재 의미는 어쩌면 그런 실수들을 잊지 말라는 반면교사일 수도 있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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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다윈상 수상자들에 대한 책이 번역돼 나온 적이 있더군요.

사실 찰스 다윈의 자신의 일생을 돌이켜 보더라도 실수로 인한 발전도 꽤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영국 해군 함선 비글호에 편승한 다윈은 에콰도르의 갈라파고스 군도에 도달할 무렵 너무 심해진 배멀미로 인해 하선 조치를 당합니다. 만약 이때 다윈이 함선 생활에 너무나 잘 적응했더라면 '종의 기원'은 나오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뭐 남들의 어리석은 실수에 대해 비웃고 손가락질하는거야 인지상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인해 죽은 사람까지 대놓고 웃음거리로 삼는 건 좀 편치 않더군요. (아무래도 지난번 포스팅에 이어 너무 영감같은 소리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계와 다윈의 비유는 딱 떨어지지는 않는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연선택으로 인한 진화는 몇 세대에 걸쳐 일어나는 일이지만 문화계에서의 적자생존은 매 순간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다윈의 어두운 쪽을 계승한(혹은 했다고 자처하는) 후계자들 은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것들만 살아남는다'는 식의 믿음에 따라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살아남을 가치가 없는 것들'을 참혹하게 억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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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에도 나오는 천지불인 天地不仁 이라는 경구는 다윈의 가르침과 부합한다고 할 수 있지만 이를 자신들의 잔혹성을 포장하는 데 사용해온 사람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어떤 현명한 가르침이라도 비뚤어진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남을 해치는 도구로 사용될 여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다윈상 홈페이지에는 볼테르의 경구가 떡하니 쓰여 있습니다. '수학자들이 무한이라고 말하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의 총량을 생각해봐야 한다(The only way to comprehend what mathematicians mean by infinity is to contemplate the extent of human stupidity.)' 이 말은 아마 이런 상을 만든 사람들 자신도 돌이켜봐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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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영화 '마스터 앤 커맨더'에 나오는 닥터 매튜린(폴 베터니가 연기했던)은 찰스 다윈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해서 흥미롭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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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의 연예기자들 중 상당수가 2부로 접어든 KBS 2TV '꽃보다 남자'로 먹고 살고 있는 듯 합니다. 저처럼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여기저기 3개의 연재를 하고 있는데 주기가 모두 다릅니다. 중앙일보 분수대는 매주, 일간스포츠 두루두루는 격주, 그리고 무비위크의 롤링페이퍼는 확실치 않지만 4주에 1회 정도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불운한 경우에는 한주에 모두 몰리게 되죠. 거기다 다른 회사일까지 겹쳐서 지난주는 제법 힘들었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영화 시사회도 드문드문 갈까말까한데, 본 건 '꽃보다 남자' 뿐이고, 그렇다고 전부 '꽃보다 남자' 얘기로 쓸 수도 없고... 무척 고민해야 했습니다. 아무튼 그중 하나가 이 글입니다.

'꽃보다 남자'의 존재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미덕'이라고 할만한 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장점 한가지가 있더군요. 물론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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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의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미덕

아주 오래 전, 필자가 코흘리개 학생이던 시절의 얘기다. 어느날 집에 좀 일찍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밥그릇이 좀 컸다. 귀찮은 설겆이를 피해 냉면 사발에 반찬을 몰아 넣고 간이 비빔밥을 만드신 듯 했다. 입이 방정이었다. "엄마, 무슨 밥을 그렇게 많이 먹어?"

그날 저녁 내내 분위기가 냉랭했다. 당시엔 대체 어머니가 별것도 아닌 말에 왜 그렇게 분개(?)하셨는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몇 해가 지난 어느날, 갑자기 섬광처럼 깨달음이 뒤통수를 갈겼다. 그랬다. 어머니도 여자였던 거였다. 말한 사람이 누구건 그런 식의 무식한 논평을 당했다는 사실은 한 여자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던 거다.

지난 설 연휴, 수많은 남자들이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바로 한편의 TV 드라마를 통해서다. 네 명의 꽃미남이 뛰어노는 아름다운 동화의 세계를 그린 '꽃보다 남자'는 KBS 2TV와 기타 케이블 TV를 통해 재방송과 재재방송, 사방 오방 재생되어 나갔다. 그리고 명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집집마다 초등학교 5학년 손녀에서 칠순을 넘긴 할머니까지, 온 집안의 여자들은 옹기종기 TV 앞에 모여 앉아 네 꽃미남들의 품평회를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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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경을 본 남자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그들 여자들이 드라마 보느라 수정과 한 사발만 달라는 남편(혹은 아들, 혹은 아빠)의 요청은 들은 체도 않는 데 격분하여 "에잇, 여자들이란!"하고 혀를 끌끌 차며 다시 화투 패를 펼쳐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몇몇 남자들은 그 썩 잘 만들지도 못한 드라마 한 편이 대한민국의 10세에서 75세 사이 여성들을 홀딱 사로잡아 버린 데 대해 평소답지 않은 인류학적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이들이 내린 결론을 대략 요약하자면 "그러니까 우리 마누라, 우리 어머니, 우리 형수들도 우리(이란 약 10세에 75세 사이의 남자들을 말한다)가 소녀시대 뮤직비디오를 볼 때 느끼는, 막연하고 나른한 행복감과 충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구나!"라는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그중 몇몇의 느낌은 이랬다고도 한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도 아직 여자였구나!"

남자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동방신기나 H.O.T의 파괴력은 대략 초등학교 학부형의 연령 장벽을 넘지 못했다. '다모'의 이서진이나 '주몽'의 송일국,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별은 내 가슴에'의 안재욱이나 '사랑을 그대 품안에'의 차인표도 F4의 강력함에 비길 정도는 아니었다. 필자가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이 정도의 위력을 보인 것은 '첫사랑'의 배용준 외에는 없었던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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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대한민국의 어머니들이 매주 주말이면 저녁밥 내놓으라고 짜증내는 남편과 아들들을 내팽개치고 TV 앞에 숨 죽이고 앉아 있다가 "아이고! 배용준이가 끝내 깡패가 되려나보다. 어쩌면 좋으냐!"고 속상해 했다는 바로 그 드라마 말이다. 이 드라마가 기록한 65.8%의 대한민국 역대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은 거저 먹은 게 아니었다.

꽃보다 남자. 욕하려고 맘 먹으면 한도 끝도 없다. 허술한 편집, 발가락이 오그라드는 대사, 음악 구성이고 뭐고 끝도 없이 흘러나오는 OST 수록곡, 무개념의 학원 폭력 묘사…. 장담하건데 5년, 아니 3년만 지나도 그 촌스러움에 치가 떨릴 드라마인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에는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이 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와 딸들이 '여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공감하게 해 줬다는 공, 또 그 어머니들에게 그 먼 옛날, 당신들도 눈썹 진한 오빠들을 보고 가슴 떨려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해 준 공만큼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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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글을 보고 '우리 어머니는 그따위 저질 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하는 분이 아니야!'라면서 격분하실 분들도 꽤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네. 분명히 '꽃보다 남자'도 아니 보고 '아내의 유혹'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불철주야 자식 걱정과 남편 걱정, 또는 생계 유지를 위한 노동으로 날을 지새느라 그따위 드라마를 볼 시간 따위는 없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너무 우아하시고 고상하셔서 이런 허섭쓰레기에는 아무 관심 없는 분들도 있겠죠. 그런 분들이 계시다면 시간낭비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무쪼록 어머니 잘 모시고 효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아버지나 삼촌들이 TV에 나오는 소녀시대를 무슨 음흉한 마음이 있어서 좋아하는게 아니잖습니까. 어머니들도 마찬가집니다. 오히려 음흉한 마음(?)이라면 여중생들이 더 많이 갖고 있겠죠.

주위의 증언이나 반응으로 미뤄 볼 때 청소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 여성 중 적잖은 분들이 '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그놈 참 잘났다'는 감탄사를 토해 내고 계신 듯 합니다. 그 분들에게 잠시나마 고단한 인생사를 잊게 해 주는 효과를 냈다면 드라마가 막장 아니라 막막장이라 해도 충분히 용서를 해야겠지요.

그런 뜻입니다. 하지만 좀 더 잘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만큼은 여전합니다. 어떤 분이 '꽃보다 남자 허술하게 만들었다고 욕하지 말라'고 분개하는 댓글에다 '그럼 너는 천추태후 보다가 운동화 신은 놈 나와도 좋으냐'고 답글을 다셨던데 제 말이 그말입니다. 이 드라마 수출까지 한다는데 너무 막나가면 민망하잖습니까.

2부의 도입부는 시간이 충분한 상태에서 찍은 덕분인지 1부 끝부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몇번 더 볼때까지 평가를 미뤄야 할 듯 합니다.





그 전의 꽃남 관련 글들입니다.


12부에서 극에 달한 '꽃보다 남자'의 허술함에 대한 농담


꽃남들의 운명에 대한 글



벌떡 일어선 이민호가 뿌린 화제에 대한 글



관련이 있다면 있는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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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간에 그래미상과 서울가요대상이 함께 열렸습니다.

'소 핫'과 '노바디'의 원더걸스가 대상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물론 두 다른 그룹의 모습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도 인지상정이죠.

이 자리에 우주의 기원을 이름으로 삼은 그룹은 등장했지만 무협지적인 이름을 가진 그룹은 왜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시상식의 여파는 과연 어떻게 미칠까요. 서울가요대상 3일 전에 쓴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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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에 그래미상이 생긴다면

국내 팝 시장의 몰락과 함께 그래미상 시상식 결과에도 별 관심이 쏠리지 않던 차에 올해는 뜻밖에도 반가운 이름의 수상 소식을 들었다.

로버트 플랜트. 전설의 록 밴드 레드 제플린의 리드 보컬인 그가 만 61세에 5개 부문을 휩쓸었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동방예의지국에서라면 다른 상은 제쳐두고 레드 제플린의 결성 40주년(이들의 데뷔 앨범은 1969년에 나왔다)인 올해, 공로상부터 드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을 지도 모른다.

문득 생각해본다. 만약 이번 그래미상이 한국에서 열린 행사였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졌을까. 그리 유쾌한 일만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미상의 최고 영예는 싱글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레코드', 앨범을 대상으로 한 '올해의 앨범', 그리고 작곡자에게 주어지는 '올해의 노래'로 압축된다. 이 3개의 상은 모든 장르를 통틀어 주어지는 상이기 때문이다. 단 이 3개 가운데서 우열을 가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누가 1등인지 가려야 하기 때문에, '올해의 노래' 부문 수상자로 내정된 콜드플레이는 "우리의 수상 순서가 마지막이 아닐 경우 시상식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어거지를 쓴다. 어쨌든 마지막에 주는 상이 가장 중요한 상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최우수 남성 R&B 보컬의 2개 부문을 수상한 니요는 대중성에서 최고인 자신이 3개의 대상 중 하나도 차지하지 못한다는 건 주최측의 농간이라고 주장하며 역시 해외 투어를 떠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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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 남성 팝 보컬상을 받은 존 메이어의 광적인 여성 팬들은 메이어의 싱글 '세이'가 왜 올해의 앨범상(?)을 받지 못했느냐고 대대적인 인터넷 댓글로 그래미상 흠집내기에 나선다. 여기에 싱글과 앨범의 개념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자칭 기자들까지도 팬들의 편을 들고 나서 혼란을 가중시킨다. 최우수 헤비메탈 가창/연주상을 받은 메탈리카는 그 상은 벌써 다섯 번이나 받았다며 불참을 선언해 버린다.

말도 안 된다고? 불행히도 한국에서는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들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최근 '공신력있는 한국의 빌보드 차트와 한국의 그래미상'을 신설해 음악산업 진흥에 이바지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상식이 없어서 음악시장이 침체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가요계 종사자들 자신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미 가요계는 지난 2004년 지상파 3사의 연말 가요 시상식에 불신을 표명하고, 독자적인 시상식을 만들겠다고 주장해왔다. 이 시상식은 아직 한번도 치러지지 못했다. 국내에 몇 남지 않은 다른 시상식에 대해서도 '내가 받으면 좋은 상, 못 받으면 나쁜 상'이라는 가요계의 기본적인 인식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세상의 어떤 시상식이든, 상의 공신력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가요계와 문광부가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누가 심사를 하든, 어느 기관이 주관을 하든 '한국판 그래미'의 앞날도 그리 평탄해 보이지 않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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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문단의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강조를 위한 표현입니다. 물론 주는 사람이 잘 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시상식이든, '주는 사람'의 몫은 30% 미만입니다. 나머지는 받는 사람들이 그 상을 어떻게 인정하고, 예우하는지에 달린 겁니다.

주는 사람이 자기 몫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상은 당연히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주는 사람이 최선을 다해도, 받는 사람들이 외면하면 그 상은 아예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처럼 대형 기획사와 톱스타들이 모든 시상식을 "우리야, 쟤네야? 우리가 아니면 안 가"라는 식의 파워 게임의 장으로 생각하는 한, 문광부 아니라 청와대가 시상 주체로 나서도 '한국의 그래미'는 존재하기 힘듭니다. 아, 차라리 문광부 아닌 국세청이 주관 기관으로 나서서 '이유 없이 불참하는 기획사에는 당장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엄포를 놓는다면 이런 식의 파워게임이 종식될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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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로버트 플랜트와 앨리슨 크로스의  Please Read The Letter 입니다. 플랜트의 사자후를 기대하셨던 분이라면 무척 실망하시겠지만, 이런 창법도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모든 다른 상이 그렇겠지만, 그래미상은 특히나 '그간의 공로(60) + 이번 음반의 성과(40)'를 기준으로 수상자가 정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에릭 클랩튼도 그래미에서는 대부분 중년 이후에 상을 받았죠. 중년 이후의 음악이 탁월해서라기보다는 '젊어서 못 준 상'을 미뤘다 줬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날도 꿀꿀한데 Led Zeppelin의 대표작 중 하나인 Immigrant Song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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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 김현중 김범 김준의 '꽃보다 남자'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상황에서 살인마 강호순의 얼굴이 공개되고, 그가 뜻밖에도 인상 좋은 호남형 얼굴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국의 전설적인 미남 연쇄살인범 테드 번디를 연상시키면서 잇달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연쇄살인자가 연예인 수준의 미남인 것도 아니고, 미남이 평범한 외모의 남자들보다 더 위험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위험한 성향을 가진 사람, 전문 용어로 사이코패스인 인물들이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빼어난 용모를 가지고 있을 때 그 위험성은 배가될수밖에 없을 겁니다.

특히 미남 연쇄 살인범에 대한 기록들은, 이들이 잘생긴 외모 때문에 일찌감치 수사선상에서 제외되거나 체포된 뒤에도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렸던 전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죄라는 증거가 뚜렷한 상황에서도 이런 추종자들은 그들이 무죄라고 믿고, 심지어 남편으로 삼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체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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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꽃보다 살인마

1980년 2월9일, 30여 명을 죽인 혐의로 체포된 미국의 살인마 테드 번디(위 사진)는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재판 도중 증인으로 출석해 있던 캐럴 앤 분에게 “나와 결혼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분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법정에서 결혼식이 열렸다. 이날 번디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잘생긴 외모와 언변에다 법대 졸업 학력까지 갖춘 번디는 매스컴의 주목으로 '살인 귀공자'란 별명과 함께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팬레터가 밀어닥쳤고 일부는 그가 진범일 리 없다고 주장했다. 번디는 89년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 자신의 변호인과도 염문을 뿌렸다.

미남 살인마에 대한 기록에는 거의 예외없이 그들에게 매력을 느낀 여성들의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영국의 여성 저널리스트 샌디 폭스는 74년 미국 애틀랜타의 한 바에서 미남 청년 폴 존 노울스(아래 사진)를 만났다. 폭스는 77년 쓴 책 『킬링 타임』에서 노울스가 “확 눈에 들어오는 잘생긴 얼굴과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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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미 18명을 죽인 노울스는 그날 밤 자신의 범행을 상당 부분 털어놨고, 폭스는 “섬뜩함을 느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었다”고 전했다. 뒷날 체포된 그에게는 면회를 요청하는 여성들이 끊이지 않았다. 언론은 그를 '카사노바 킬러'라고 명명했다.

미남 살인자들의 인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범죄심리학자들은 위험한 범죄자에게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경향을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라고 통칭한다. 이에 대한 유력한 설명은 구원 판타지다. 여성들은 설혹 상대가 연쇄살인마라 할지라도 자신의 사랑으로 그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녀와 야수 신드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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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재판이 주는 긴박감이 보는 이를 성적으로 흥분시킨다는 가설, 또 유명한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동경, 범죄자 내면의 외로움을 자신만이 달랠 수 있다는 믿음 등이 있다. 그리고 간혹 발견되는 미남형 범인들은 이런 경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다는 것.

살인마 강호순의 미남형 외모가 공개되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줬다. 그가 자신의 매력을 피해 대상인 여성들을 유혹하는 데 사용했다는 수사 보고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인터넷에는 '강호순 팬카페'까지 등장했다. 누군가의 치기 어린 장난이기를 바랄 뿐이다.

요즘도 일각에서는 KBS 2TV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 TV 프로그램들이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긴다고들 한다. 하지만 미남 살인마들을 둘러싼 기록을 보면 외모에 대한 선호는 이미 인류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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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번디는 30여명의 살해를 인정했지만 실제로 그가 죽인 여자는 1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번디는 1980년 사형 판결을 받은 이후 줄곧 "속죄의 의미에서 경찰에게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전모를 밝히겠다"며 사형 집행을 1989년까지 연장했지만, 결국 재판 결과 외에는 아무 것도 더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9년 동안 수없이 많은 경찰, 기자, 성직자, 심리학자와 프로파일러들을 만났지만 주장에는 일관성도 없었고, 수시로 말을 바꿨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식의 고백과 면담은 모두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려는 술책이었을 뿐입니다. 그는 사형 집행 전날까지도 유명한 포르노 반대자인 제임스 돕슨 목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포르노를 금지하지 않으면 소년들이 제2, 제3의 번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수사관들은 "그 이전까지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범행이 포르노의 영향이라고 말한 적도 없었고, 그의 소지품에서 포르노가 나온 적도 없었다"고 비웃었습니다. 결국 이 인터뷰 역시 돕슨 목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는 대가로,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돕슨 목사가 자신의 사형 집행을 연기시켜 줄 것을 기대한 쇼였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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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캐럴 앤 분과의 결혼 역시 대중을 의식한 연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번디와 분이 언제 처음 만났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은 번디가 자신의 애인이라고 믿었습니다. 분은 번디가 주로 살해한 피해자들과 비슷한 특징 - 긴 갈색 머리,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마, 가녀린 몸매 - 을 갖고 있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번디는 분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분은, "그가 나를 해치지 않은 것은 그가 일련의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주장했던 거죠. 유력한 증거였던 던디가 사체에 남긴 깨문 흔적조차도 분은 "경찰의 조작"이라고 우겼습니다.

법정에서 결혼한 뒤 1982년 번디의 딸까지 낳은 분은 그러나 1986년의 어느날, 번디와 이혼을 선언한 뒤 이름을 바꾸고 사라졌습니다. 뒤늦게나마 환상이 깨진 모양이죠. 번디의 딸이 살아있다면 현재 27세. 과연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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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린 리오이라는 여자는 13건의 살인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리처드 라미레스(위 사진)에게 구애하다가 결국 결혼에 성공했습니다. 리오이는 라미레스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 자살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고 합니다. 라미레스는.... 살인범의 얼굴이라고 생각하면 흉악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본다면 '강렬한 개성의 특이한 얼굴'로 볼 수 있는 용모입니다.

하이브리스토필리아(Hybristophilia)라는 생소한 용어는 성도착의 여러 증상 중 하나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위험해 보이는 남자, 특히 폭력적인 범죄자에게 끌리는 현상을 가리키는 이 용어는 가끔 '보니 앤 클라이드 신드롬', 혹은 '미녀와 야수 신드롬'이라고 불리던 현상들과 어느 정도 겹치는 영역을 갖고 있습니다.

모성애의 발로에서든, 아니면 다른 증세에서든 여자들은 악한 남자의 내면에서 구원의 여지를 찾고 거기에 헌신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죠. 물론 모든 여자가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약간 비약하자면 많은 여자들이 순박하고 착한 남자보다 거칠고 못된 남자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이유도 슬쩍 이런 경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살인자에게 느끼는 위험한 매력과 비교하기에는 큰 무리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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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까지는 미남 살인자에 대한 여자들의 막연한 호감을 주로 얘기했지만 우리는 이미 그 반대의 경우를 온 국민이 겪어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1988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범 김현희의 경우에 이런 일이 있었죠. 미모 때문에 저지른 범죄의 어마어마한 죄과는 슬쩍 묻혀 버렸던 경험 말입니다. 어찌 보면 참 어이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얘기들은 여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란 말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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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쓸데없이 무거워진 것 같으니 유머로 마감하겠습니다. ^

얼마 전 조인성이 출연한 커피 광고가 '음악 하나 바꿨을 뿐인데' 사이코패스 드라마로 바뀌는 동영상이 유행한 적이 있었죠.

이건 '음악하나 바꿨을 뿐인데' 꽃보다 남자의 미남들이 사이코패스로 둔갑하는 마술들입니다. 먼저 윤지후 김현중 편입니다.




다음은 소이정 김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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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그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물론 재미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대단히 미묘한 문제지만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이 영화를 보고 '재미'를 느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제목 '발키리'는 본래 국내에서는 '발퀴레'라는 표기가 더 익숙한 단어입니다. 바그너의 악극 제목이자, 북구 신화의 등장인물이죠.

이 '발퀴레'라는 음악과 관련된 지휘자 중에 다니엘 바렌보임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본래 세계적인 명지휘자였던 이 사람은 '발퀴레'를 잘 연주해서가 아니라 '발퀴레'를 연주하려다 좌절한 사연 때문에 세계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바렌보임의 '발퀴레'와 톰 크루즈의 '발키리'는 과연 어떤 관계일까요. 거기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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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키리 - 발퀴레

22일 개봉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Valkyrie)'는 1944년 히틀러를 암살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조기에 종식시키려던 독일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담고 있다. 최근 내한한 주인공 톰 크루즈는 출연 이유를 묻자 “당시 독일의 모든 사람이 나치의 꼭두각시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제목의 발키리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발퀴레(Walkure)의 영어식 발음. 흔히 갑옷 차림에 하늘을 나는 여신들로 묘사되는 발퀴레는 전사한 영웅들의 혼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바그너의 4부작 악극 '니벨룽의 반지'의 2부 제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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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는 게르만 신화를 소재로 한 바그너의 작품들이 독일 민족혼을 고취시킨다며 아낌없는 사랑을 퍼부었다. 특히 애용된 것이 '발퀴레' 3막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騎行)'이다. 당시 독일 전차부대는 외부 스피커로 '발퀴레의 기행'을 쩌렁쩌렁 틀어 놓고 진군하기도 했다.

이런 악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는 어떤 음악회에서든 바그너의 곡을 연주하는 것은 금기로 취급돼 왔다. 나치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게 주된 이유였고, 바그너 자신이 유명한 반(反)유대주의자란 사실도 한몫했다. 이 금기는 2001년 7월 7일, 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굳게 지켜져 왔다.

여기에도 곡절이 있다. 평소 이스라엘의 대아랍 강경책을 비판해 온 바렌보임은 이 해 예루살렘에서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발퀴레'의 하이라이트를 연주한다고 발표했다. 당연히 홀로코스트 희생자 유족들의 여론이 들끓었고, 결국 타의에 의해 레퍼토리가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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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바렌보임은 연주 당일, 즉석에서 청중에게 앙코르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한 곡을 연주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 야유가 나왔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우리만 희생자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는 서슬이 시퍼런 나치 치하에서도 모든 독일인이 권력에 굴종했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고, 바렌보임의 '발퀴레'는 모든 유대인이 아랍과의 공존을 부정하는 것은 아님을 알렸다. 히틀러의 상징 음악으로 쓰였던 '발퀴레'가 시대를 뛰어 넘어 다수 여론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양심의 소리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는 사실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가자 지구의 현실은 바렌보임의 목소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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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나름(?) 수려한 용모의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바렌보임은 25세 때이던 1967년, 당시 22세의 세계적인 미녀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와 이스라엘에서 결혼합니다. 두 사람의 결합은 당시 '20세기의 슈만과 클라라'라고 불릴 정도의 반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뒤프레는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으로 연주 능력을 잃게 되고, 결국 1987년 42세의 한창 나이에 사망합니다.

이런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유명했던 음악청년 바렌보임(일각에서는 아내가 죽어가는데도 콘서트 연습을 하고 있었다며 냉혈한이라고 그를 비난하기도 했지만 사실 음악 말고 뭘 할수 있었겠습니까)은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또 한번 주목을 받게 됩니다.

지난해 알 자지라 영어 방송의 토크쇼 '프로스트'에 출연한 바렌보임입니다.

바렌보임은 마틴 부버의 말을 인용, "이스라엘과 아랍의 관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단순히 총격의 종료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또 이스라엘이 현재의 이스라엘 점령지구가 직면한 문제에는 아랍과 이스라엘 양측의 책임이 공존한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좋다. 그런데 그 지역은 이스라엘이 40년간 점유해온 지역이다. 40년을 다스렸다면 그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의 질에 대해선 점유하고 있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합니다.

그는 스페인 세비야에서 아랍과 이스라엘 청년들이 함께 연주하는 '웨스트 이스트 디반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세계적인 연주 활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발퀴레'의 일부분입니다. 이 곡에 한이 어지간히 맺혔던 모양입니다.^




사실 국내에 나와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1992년 유로피언 콘서트 DVD에도 바렌보임의 지휘로 플라시도 도밍고가 부르는 '발퀴레' 1막에 나오는 사랑의 아리아 '겨울 바람은 우아한 달에게 가는 길을 열어주고 Wintersturme wichen dem Wonnemond'가 수록돼 있습니다. 이 노래는 도밍고의 애창곡으로, 이번 내한 공연때도 리스트에 있었습니다.

한번 들어 보실 만 합니다. 2005년 BBC 프롬에서 '발퀴레' 특집이라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그문트 역의 도밍고가 지글린데 역의 발트라우드 마이어와 함께 이 노래를 부릅니다. (도밍고 형님 특유의 '소프라노 만지며 노래하기' 신공이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마지막은 정말 시원시원한 '발퀴레의 기행'입니다. 역시 같은 2005년 BBC 프롬에서 안토니오 파파게노가 지휘하는 로열 오페라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리사 가스텐을 비롯한 발퀴레 군단의 노래가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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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꽃보다 남자'의 도입부를 보면 구준표는 참 찌질하기 그지없는 인물입니다. 허우대는 멀쩡하지만 집안 돈으로 학교에서 왕 노릇이나 하고, 말도 안되는 사소한 이유로 동급생을 자살 위기에 몰아넣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의 전체 구조를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저런 '이상한 놈'이 주인공으로 인기를 얻는다는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찌질한 남자'라는 점에서 구준표 말고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천추태후'의 경종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KBS 2TV '천추태후'를 볼 맛이 없어졌습니다. 잘 나가던 드라마에서 휙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천추태후'의 도입부에는 상당히 매력있는 배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어린 천추태후 역의 김소은('꽃보다 남자'의 가을이기도 하죠)과 그 남편인 경종 역의 최철호가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세월이 흐르면서 경종과 어린 천추태후가 사라져 버렸더군요. 그에 비해 성인 역의 인물들은 좀 지나치게 평면적입니다.

아무튼 구준표나 경종 같은, 종래의 의미로는 '전혀 멋지지 않은' 남자들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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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질한 남자'가 뜨는 이유

KBS 2TV 대하사극 '천추태후'가 인기다. 투입된 물량이며 공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지만 인기의 진원지가 예상과는 전혀 달라 관계자들도 놀라고 있다. 타이틀 롤인 천추태후 역의 채시라가 1, 2회에만 출연하고 빠진 가운데서도 20%대의 시청률을 기록중인 건 누가 뭐래도 경종 역을 맡은 최철호의 힘이다.

24일 방송된 7회에서 경종이 죽자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제 무슨 재미로 보겠느냐"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 드라마 속 경종은 전혀 멋지지 않다. 정사는 돌보지 않는 술꾼에다 함부로 말을 내뱉고, 사리 분별이 없는 폭군의 모습이다.

안 좋은 면 투성이지만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던 '나쁜 남자'와도 전혀 다르다. '나쁜 남자'들이 용모와 능력은 뛰어나지만 차가운 성격 때문에 여자에게 쉽게 정을 주지 않는 인물형을 가리킨다면 최철호의 경종은 그저 '못난 남자'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법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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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왜 이런 못난 남자가 인기일까. 어찌 보면 최철호의 인기는 고개 숙인 남성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비록 욕은 먹었지만 지난해 SBS TV '조강지처 클럽'의 인기를 이끈 안내상이나 현재 SBS TV '아내의 유혹' 인기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변우민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통점은 '악당 축에도 못 드는 찌질함'이다. 악인은 악인이되 자기가 지은 잘못을 감당하지도 못할 정도로 심약하다. 가끔은 극중 여성들에게 너무 당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안내상은 오현경의 복수로 인생 밑바닥을 맛보고, 변우민 역시 전처 장서희와 현재 아내 김서형의 협공으로 궁지에 몰렸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최철호 역시 당찬 어린 아내 김소은 앞에서 설설 기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이 당하는 모습 역시 시청자들에게 쾌감을 주고 있다.

어쨌든 다른 드라마라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캐릭터들이 좋은 배우들을 만나 빛을 봤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다. 최철호와 안내상, 변우민은 모두 한심한 인물들을 다소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로 희화화하며 웃음을 자아내는 캐릭터로 승화시켰고, 가끔은 동정을 사기도 하는 내공을 발휘했다.

문득 이런 찌질남들의 인기는 결국 영웅이 사라진 시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힘든 현실에서 시대를 이끄는 멋진 남자들의 모습을 볼 길이 없으니 드라마 속에서도 영웅호걸이 사라져 버린 게 아닐까. 현실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속히 시대를 타개할 영웅이 다시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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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구준표나 경종은 뒤에 가서 개과천선이라도 하지만 철저하게 응징당하는 '원수씨' 안내상이나 아마도 크게 응징을 당할 '교빈씨' 변우민은 또 뭐란 말입니까.

이런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 반면 전형적인 영웅 캐릭터 -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 인 '에덴의 동쪽'의 송승헌은 도대체 대책이 안 나오는 무심한 대본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캐릭터나 배우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작가의 오만이 잘 나가던 드라마를 망쳤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에덴의 동쪽'은 실력 이상으로 운의 뒷받침을 받았죠. 마땅히 시청자들을 끌어들일만한 경쟁작이 없는 가운데 순항했던 것을 100% 모두 실력이라고 믿고, 방만하게 스토리를 풀어헤쳐 놓은 채 진도를 나가지 않는 사이 지칠대로 지친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렸습니다.

결국 현재 시청자들은 '더 이상 드라마에서도 영웅이 고생하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는 쪽으로 기운 것 같습니다. 경제가 많이 어렵습니다. 시청자들은 현실의 고민을 드라마 속에서도 그대로 이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듯 합니다. 아마 올해 내내 좀 더 가벼운 이야기, 현실과는 좀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인기를 얻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의미로 사극의 강세도 계속되겠죠. 드라마 속에서 진정한 영웅 캐릭터가 우뚝 서는 것과, 현실을 타개할 진짜 영웅이 나타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빠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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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실 한국의 구준표는 일본의 츠카사에 비해 너무 빨리 착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쉽게 달라질 놈이 그동안 그 못된 짓을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죠.

그나자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꽃보다 남자'같은 비현실적인 드라마는 처음 본다"며 방송심의위원회에 강력 항의했다는 시청자에 대한 기사가 떴더군요. 이 분, '반지의 제왕'을 보고는 어디에 항의했을까요? 뉴질랜드 대사관?






혹시 이 글에 나오는 '꽃보다 남자'에 대한 언급에 불만 있는 분들(예: '준표님은 찌질하지 않아요. 님하 드라마나 좀 보셈' 등등)이 있을 것 같아서 그동안 썼던 '꽃남' 관련 글들을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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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들을 발표됐습니다. 올해는 좀 특별한 해였죠. 작품상, 남녀 주연상 후보보다 남우조연상 후보가 더 관심을 끌었습니다. 브래드 피트가 남우주연상 후보, 안젤리나 졸리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간 것도 흥미로웠지만 히스 레저라는 이름이 올라가기를 기대한 사람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죠.

'다크 나이트'가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히스 레저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주연상 후보래도 뭐 크게 탈이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 조연상 후보로 올라가는 쪽이 수상 가능성이 훨씬 높은 편이죠.

이미 골든글로브를 수상한 히스 레저가 과연 오스카에서도 사상 두번째로 사후 수상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이지만 오스카라는 상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설픈 예측은 금물입니다. 일단 사후 수상에 성공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살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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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후수상

1993년 3월 8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상인 세자르상 시상식장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 수상작으로 시릴 콜라르가 감독·주연한 영화 '사베지 나이트(Les Nuits Fauves)'가 호명됐다. 하지만 콜라르는 금빛 세자르상 트로피에 키스하지 못했다. 에이즈에 걸려 있던 콜라르는 시상식 3일 전 병원에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12일(한국시간) 열린 2009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도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으로 명성을 떨친 히스 레저가 극영화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수상자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동성애자 연기로 2006년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나이답잖게 연기파 배우의 명성을 쌓아온 레저는 영화가 개봉되기 6개월 전인 지난해 1월, 29세의 나이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사인은 약물 과다 복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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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상의 결과에 따라 레저의 팬들은 '32년 만의 오스카 사후 수상'이라는 기대에 한껏 차 있다. 아카데미상의 80년 역사에서 사후에 연기상을 받은 인물은 1977년 '네트워크'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피터 핀치 단 한 명뿐이다.

영원한 청춘의 우상 제임스 딘은 55년 사망한 뒤 이듬해엔 '에덴의 동쪽'으로, 57년엔 '자이언트'로 두 번이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모두 수상에는 실패했다. 스펜서 트레이시(68년 '초대받지 않은 손님'), 랄프 리처드슨(85년 '그레이스토크'), 마시모 트로이지(96년 '일 포스티노') 등 일세를 풍미한 명배우들도 후보에 그쳤다. 그만치 생과 사의 벽은 높았다.

어떤 분야에서든 사후 수상이란 매우 감동적인 이벤트다. 불의의 사고사든, 예고된 죽음이든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분야에서 열정을 불사른 위대한 장인에게 살아 남은 사람들이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헌사이기도 하다. 물론 분야에 따라 경우가 다를 수 있다. 무공훈장이라면 생존한 수상자보다 사망한 수상자가 더 많은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반면 노벨상은 이미 사망한 인물을 수상자로 결정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감정의 개입 없이 오로지 업적으로만 엄격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다.

오스카상도 지금까지는 '망자에게는 공로상, 산 배우에게는 연기상'이란 원칙에 비교적 충실해 왔다. 역대 최고의 악역 연기라는 평가를 얻었던 히스 레저는 원칙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다음 달 23일의 제8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결과가 기대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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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베지 나이트'라는 해괴한 제목으로 국내에 공개됐던 이 영화는 에이즈 감염자인 남자와, 그 남자와 동침한 뒤에야 그가 에이즈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된 여자의 사랑과 좌절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미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사실을 알고 나서 이 영화의 구상에 들어간 시릴 콜라르는 결국 죽기 전에 영화를 완성시켰습니다.

물론 문화 차이도 있겠지만, '사베지 나이트'를 보고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주인공들의 자기연민과 이기적인 행동에 도저히 동정심이 가지 않기 때문이었죠. 기억나는 건 석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던 콜라르의 모습 정도지만 세자르상은 이 영화에 작품상을 주고 콜라르를 기렸습니다. 아마도 프랑스 사람들이 앵글로색슨족 보다는 좀 더 인정에 약한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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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핀치의 '네트워크'는 미디어의 본질을 파헤친 문제작이었고, 어느날 갑자기 현대의 예언자가 되어 버린 핀치의 명연기는 상이 아깝지 않은 호연입니다. 저보다 몇년 윗 분들은 이 영화의 페이 더너웨이를 '지적인 미녀'의 대명사로 기억하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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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수상이 이번만큼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마 제임스 딘의 사후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주연한 영화라고는 단 3편. 그중 2편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은(나머지 한 편은 '이유없는 반항'입니다) 이 배우의 재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아카데미는 이 배우에게 상을 주기를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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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에 올랐던 나머지 배우들도 모두 상을 탈만 했던 배우들이었죠. 남우주연상으로만 9차례나 오스카 후보에 올라 이미 2차례 수상한 경력을 가진 스펜서 트레이시는 마지막 후보작이었던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세번째 수상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당시의 인종 문제를 엿볼 수 있는 사회성있는 작품이었죠.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오랜 연인이었죠) 부부의 중산층 백인 가정에 어느날 딸이 남자친구라며 흑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를 데려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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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리처드슨의 '그레이스토크'는 타잔 이야기에서 신화적인 요소를 걷어 내고 '과연 어린 시절 아프리카에서 실종돼 원숭이의 손에서 자란 청년이 런던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를 지켜본 작품입니다. 크리스토퍼 람베르가 이 영화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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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포스티노'는 '시네마천국' '지중해' 등과 함께 이 시기의 대중적인 유럽영화를 대표하던 작품입니다. 위대한 시인 네루다와 집배원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죠. 집배원 역을 맡았던 트로이지는 이 영화로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도 동시에 올랐으나 결국 수상엔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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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올해 히스 레저와 경쟁할 후보들은 '밀크'의 조쉬 브롤린, '트로픽 선더'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다우트'의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그리고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마이클 섀논입니다. 본 작품은 아직 '다크 나이트'와 '트로픽 선더' 뿐인데 다우니의 후보 지명은 좀 많이 의외군요.^

과연 이들과의 경쟁에서 레저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시상식은 다음달 23일(한국시간), 전체 수상 후보는 http://www.imdb.com/features/rto/2009/oscars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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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의 영화 '적벽대전 2'가 실망스럽다는 글을 올렸더니 예상대로 불쾌하다는 반응이 제법 있더군요. 물론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신 분도 꽤 있을 겁니다. 1편은 국내에서 150만 정도의 관객을 동원한 걸로 알려졌습니다.

뭐 영화 한편에 대한 호오가 갈리는 거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대부'보다 '트와일라잇'이 훨씬 더 감동적인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영화라고 해서 뭐든 민주주의가 통하지는 않습니다. CG를 많이 쓴게 공통점이라고 해서 '반지의 제왕'과 '디 워'가 비슷하게 평가받는다면 그 또한 서운해 할 사람이 많을 겁니다.

그런데 문득 '적벽대전'과 '트로이'가 겹쳐지면서 영화가 원작을 제대로 살렸네, 원작을 망쳤네 하는 논쟁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원작을 읽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입니다. 그래서 나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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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적벽대전

미모를 재는 단위가 있을까. 참 할 일도 없었다 싶지만 어느 시대인가 서양 지식인들은 헬렌(Helen)이란 단위를 만들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스파르타의 왕비 헬렌이 트로이의 파리스와 함께 사라지자 그리스 전역에서 1000척의 대함대가 동원되어 구출에 나섰다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만약 한 미녀가 1척의 배를 동원했다면 1밀리헬렌급의 미모로 인정된다. 즉, 1헬렌=1000밀리헬렌이다.

미녀 때문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구상은 동양인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주유를 흥분시키기 위해 조조가 강동의 유명한 미녀인 교씨 자매를 얻으려 동오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속인다. 교씨 자매의 언니인 대교는 동오의 군주 손권의 형수요, 동생인 소교는 주유의 아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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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는 이 구상이 제갈량의 계략이었지만 오우삼(吳宇森) 감독은 아예 이 이야기를 토대로 영화 '적벽대전' 1, 2편을 만들었다. '영웅본색'으로 유명한 오감독은 방대한 적벽대전 이야기를 2편의 영화로 나눠 1편은 지난해 여름, 그리고 2편은 지난 22일 공개했다.

아킬레스와 헥토르가 헬렌을 두고 격돌하듯 영화 '적벽대전'에서는 소교를 두고 조조와 주유가 대립한다. 소설에서는 대사 한마디 없는 소교가 영화에선 양측의 진영을 오가며 전쟁의 승부를 좌우하고, 영웅들의 피와 땀은 멜로드라마 속으로 슬쩍 가려진다.

애당초 삼국지라는 원작에 무지할 전 세계 관객들을 대상으로 삼았다니 오히려 서구인들에게는 이런 설정이 이해가 더 빠를 법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가 10대 이후 삼국지의 문화적 영향 속에서 성장하는 동아시아 남성 관객들에게는 원작의 향취가 아쉬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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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비판은 유명한 원작을 둔 영화라면 반드시 거치는 원죄에 해당한다. 1956년 오드리 헵번 주연의 '전쟁과 평화'가 개봉됐을 때에도 미국 평론가들은 일제히 “제작진을 통틀어 소설을 읽어본 사람은 헨리 폰다뿐인 것 같다”며 비난했다. 사실 이런 논란은 독자들의 관심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책과 영화 양쪽에 모두 고무적이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언젠가 원작의 훼손과 관련된 논란이 아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이다. 2004년 트로이 전쟁을 다룬 영화 '트로이'가 개봉됐을 때, 아킬레스의 죽음이 거론된 영화평을 두고 네티즌들로부터 “왜 결말을 공개하느냐”는 항의가 줄을 이은 적이 있었다. 고전이 사라진 시대는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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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 헬렌과 밀리헬렌 이야기는 2년 전쯤 다른 글을 쓸 때 써먹은 적이 있어서 약간 찔리지만, '분수대'에는 어차피 처음 나오는 이야기일 것 같아 다시 울궈 먹었습니다. 아무튼 저런 것까지 단위를 만들어 재고 싶어 했다는 데서 서구 합리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 듯 합니다. 적벽대전에 동원된 조조의 배가 몇 척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오우삼의 해석대로라면 소교는 한 0.3 헬렌 정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다'고 욕하는 바보는 없습니다. 어떤 원작도 화면으로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재현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좋은 재현'과 '나쁜 재현'이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재현일까요. 당연히 이 판단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각자가 생각하는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린 것이 좋은 재현일 겁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겁니다. 짜장면에는 짜장과 돼지고기, 양파와 국수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아무리 짜장면을 창조적으로 재해석 한다 해도, 어쨌든 짜장과 국수는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짜장과 밥을 버무려 놓고 이것이 새로운 짜장면이라고 우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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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식의 주장은 본래 객관화되기 힘든 것인 터라, 유명한 원작을 갖고 만든 드라마나 영화는 어쨌든 원작을 훼손했다(즉 망쳤다)는 주장에 거의 항상 맞닥뜨리게 됩니다. '반지의 제왕' 처럼 호평받는 각색이라도 "왜 봄바딜이 안 나와!" 수준의 교조적인 애독자도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이런 논란이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그래도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은 원작을 읽는 사람들이 아직 꽤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급속도로 이런 추세가 무너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대체 원작이라는 걸 왜 읽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늘고 있죠.

윗글에서는 영화 '트로이' 때의 코믹한 사건을 예로 들었지만 디즈니 시대 이후에 성장한 세대 가운데에는 '인어공주'가 본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뭐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영화 '발퀴레'에서 톰 크루즈가 실패한다는 것도 스포일러요(네. 히틀러는 암살당한게 아니라 자살했다는 걸 모르셨군요),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진다는 것도 스포일러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절대 다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들을 생각하면 참 암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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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얘기지만 소교를 이용한 적벽대전의 전개 자체는 나쁜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칫 퍽퍽해 질 수 있는 적벽대전 이야기에 양념으로는 매우 좋은 선택이죠. 특히 소교 역할을 임지령 같은 미녀가 맡는 한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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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생. 생각보다는 꽤 나이가 있는 편입니다. 물론 잘 늙지 않는 중국 미녀들의 전통을 이어 영화에서는 아직 흠잡을 데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왕년의 헬렌(헬레네)들과 비교해볼까요.

사상 최악의 헬레네로 거론됐던 다이안 크루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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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판 '헬렌 오브 트로이'의 시에나 길로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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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헬렌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55년작 영화 '헬렌 오브 트로이'의 로사나 포데스타(Rossana Podesta)입니다. '율리시즈' 등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한 영화에 자주 얼굴이 나왔던 배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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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980년대, 난데없이 '원 플러스 식스'라는 희한한 이탈리아제 섹스 코미디로 나이든 모습을 보여 기억하는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던 배우죠.

임지령도 부디 '적벽대전'을 통해 월드 스타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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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런 대작 사극을 볼때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전쟁에 대한 개념이 있는 전쟁신'입니다. 이 부분에서 '적벽대전 2'는 초실망작입니다. 언제쯤 제대로 된 전쟁신을 다시 보게 될까요. 이 이야기는 따로 하겠습니다.





'적벽대전2'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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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화점과 동성애, 공민왕과 자제위 얘기는 요즘 갑작스레 너무 조명을 받고 있는 듯 합니다. 지겨우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동성애와 남성 무장 집단의 관계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유구합니다. 조선시대 실학의 대가인 성호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 보면 화랑의 유래에 대한 고찰에서 '화랑(花郞)이라는 것은 꽃같은 남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이는 남색의 무리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런 부분에서 보면 그 시절의 동성애라는 것은 요즘 얘기하는 유전자의 결정설이나 피치 못할 끌림과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고 봐야 할 듯 합니다. 어찌 보면 남성성을 좀 더 강화하는 데 있어 결속을 다지는 일종의 스포츠같은 측면도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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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쌍화점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테베에는 신성대(Sacred Band of Thebes)라는 특수부대가 있었다. 테베의 최정예 부대인 이 무장집단의 특징은 150쌍의 동성애자로 구성돼 있다는 점이었다. 잘 싸웠을까? 물론이다. 이들은 기원전 338년 알렉산더 대왕이 이끌던 마케도니아군에게 전멸당할 때까지 무적을 자랑했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연인에게 부끄러운 꼴을 보이지 않으려 서로 보호하면서, 물러서지 않고 싸우는 이들에게 이길 군대는 세상에 없었다”고 전할 정도다.

이들 외에도 세계 역사에는 남성성을 강조하는 무장집단과 동성애 사이가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혹자는 화랑 오계의 교우이신(交友以信)에서도 단순한 글자 이상의 의미를 읽곤 한다.

지난해 12월 30일 개봉한 유하 감독의 영화 '쌍화점'이 첫 주 15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등 화제 만발이다. 고려 왕(주진모)과 그의 호위대장 홍림(조인성) 간의 동성애가 특히나 관심을 끈다. 미남 스타들이 연기하는 동성애 장면이 마케팅의 수단일 뿐이냐, 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냐는 예견된 논쟁이 일어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이 영화가 공민왕에 대한 왜곡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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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왕이 공민왕이라고 가정할 때, 주요 내용은 『고려사』의 기록과 상당히 일치한다. 금실이 두터웠던 몽골 출신의 왕비 노국공주가 죽은 뒤 공민왕은 여색을 멀리하고 1372년 궁중에 명문 귀족 청년들로 구성된 자제위(子弟衛)를 둔 뒤 남자들과 음행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구중궁궐에 사지가 성한 미남 청년들이 들어섰으니 사고는 예견된 일. 자제위의 일원인 홍륜이 공민왕의 계비를 임신시켰고, 공민왕은 홍륜을 제거해 추문을 막으려다 되려 홍륜 패거리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얘기가 보고 싶은 분은>
 

과연 공민왕은 동성애자였을까. 일부 사학자들은 그 또한 조선의 건국을 정당화하기 위한 역사 왜곡의 희생자였으며 문제의 자제위 역시 공민왕을 보위하던 세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 뒤를 이은 우왕과 창왕을 신돈의 소생이라고 깎아내렸던 당시의 분위기를 봐선 충분히 있을 법한 얘기다.

물론 이런 논의는 모두 동성애가 죄악이라는 시선을 전제로 하고 있다. '쌍화점'이 극장에서 화제 속에 개봉되고 꽃미남들의 키스신이 여성 관객을 위한 서비스로 간주되는 요즘 같은 시대라면 사관들은 어떤 흠결을 찾아내야 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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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 신성대에 대한 기록은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정확한 명칭은 '비교 열전')'의 펠로피다스 편에 나옵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신성대를 구성한 사람은 장군 고르기다스라고 하는군요.

카에로네아에서 마케도니아군과 싸웠을 때에도 이들은 선 자리에서 후퇴하지 않고 그대로 전사해 용명을 떨쳤습니다. 이 시기의 다른 기록을 보면 뒷날 카에로네아의 전투 지역을 발굴한 결과 254구의 유골이 7열로 줄을 맞춰 발굴됐다고 하는군요. 아무튼 이들의 용감성에 대해 플루타르코스는 "감히 이들의 위업을 의심하는 자에게는 그 즉시 천벌이 내릴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도 '향연''에서 이 신성대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내용은 플루타르코스의 것과 대동소이합니다. 요지는 "연인과 함께 싸우는 이상 누구도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내용이죠.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동성애자는 평화를 사랑하는 유약한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을 깨 주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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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시기의 문건들을 보면 (동성간의) 우정은 (남녀간의) 사랑보다 훨씬 숭고하고 우아한 감정의 경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표현되곤 합니다. 물론 여성들간의 우정은 거론되지 않습니다. 그만치 우정-동성애는 남자들만의 특권 같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남녀간의 교합이란 사회의 유지와 자녀의 출산을 위한 다소 기능적인 것이었던 반면, 남자들끼리의 사귐은 함께 학식과 무예를 연마한 친구들 끼리의 깊은 정신적 교감이 육체적인 것으로 승화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 먼 그리스 땅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면 신라의 화랑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듯 합니다. 물론 한없이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그래서 위서 논란도 한창인) '화랑세기'에도 동성애와 관련된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룬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단지 마복자 관계 등을 통해 은유를 하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시대를 뛰어넘어 공민왕과 자제위의 관계를 볼 때도 이것이 과연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는 동성애와 같은 것일까 하는 의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국 자제위의 홍륜이 여자인 익비와도 사고를 쳤듯, 이들에게 있어 남자들끼리의 동성애는 여자와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이 아니라 고대 전사집단의 남성간 결속 강화의 수단으로서 이뤄지던 행위의 전통이 계승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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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식의 생각은 자칫하면 수시로 문제가 되는 군내 동성애의 존재에 대한 옹호의 논리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죠. 집단 전체의 암묵적인 동의하에서 이뤄지는 관계와, 개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상급자의 폭력을 통해 이뤄지는 관계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사항을 고려할 때 현대의 군 내에서 동성애가 금기시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아무튼 '천추태후'때도 얘기했지만 그 천년 전의 일을 요즘의 시각으로 재단하려 하는 것은 항상 심각한 문제와 오해를 불러 일으킵니다. 가끔은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해도 그때 사람들에게는 왜 이런 일이 당연하게 여겨졌을까, 당시의 시각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아울러 '예전에도 그랬는데 요즘 그러면 어때'라는 시각 또한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덧붙여야겠죠.



영화 '쌍화점'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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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 쇼'를 진행하며 엔터테이너로 변신한 박중훈이 자신의 토크쇼 진행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박중훈쇼'가 재미 없다는 지적에 대해선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세태가 안타깝다"고 언급했습니다. "촬영 끝나면 멱살 잡을 얘기를 하면서도 게스트가 질문에 꼬박꼬박 대꾸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더군요.

일면 수긍이 가는 이야기지만 또 일면 반발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연예계 스타들은 좀 너무 심하다 싶게 대중과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류스타급의 톱스타들은 어쩌다 한번씩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도 자신이 노출하고 싶은 곳까지만 보여주고 말죠. 이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정성은 삼대독자를 돌보는 과보호 어머니 수준입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럴까요? 글쎄요. 아무래도 다른 나라에서는 어쨌든 엔터테이너로서의 자세에  충실한 스타들이 더 인기를 얻는 듯 합니다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신비주의가 약발이 있는 듯 합니다. 광고주들은 확실히 그쪽을 더 선호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토크쇼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연예계의 온도차이에 대한 내용입니다. 물론 아쉬움이 깊이 깔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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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런데, 내가 손님 아니었나?

요즘 재미있게 보는 미드 중에 '앙투라지(Entourage)'가 있다. 불어로 '측근' 정도의 뜻을 가진 이 말은 스타 하나에 붙어 사는 매니저와 에이전트, 잔심부름을 하는 어릴 때 친구 등등 소위 '패거리'들을 가리킨다.

드라마 '앙투라지'에는 젊은 나이에 할리우드의 톱스타로 떠오른 빈센트 체이스(에이드리언 그레니어)와 그의 형이자 마음만 톱스타인 무명 배우 조니(케빈 딜런)가 나온다. 입만 열면 '사나이의 길'을 강조하는 마초 배우 조니는 최근 방송된 '앙투라지' 시즌 5에서 모처럼 TV 토크쇼에 출연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토크쇼 진행자 우피 골드버그(실명으로 출연)의 노련한 유도에 말려 여자친구에게 차인 사실을 고백한 뒤 "널 잊지 못하고 있다"며 눈물까지 흘린 것이다.

이 대목에서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만약 조니가 아니라 한국의 유명한 남자 연기자가 토크쇼에 출연해 헤어진 여자친구를 부르며 엉엉 울었다면 어떻게 될까. 여자의 눈물만은 못하지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씬에선 남자의 눈물도 꽤 괜찮은 상품이다. 아마도 그의 미니홈피에는 '오빠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어요'라는 댓글이 섭섭찮게 매달릴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조니는 이 방송을 본 사람들에게 모두 반편 취급을 받는다. 여자에게 차인 것도 차인 것이지만 방송에 나가서 남자가 '질질 짜기나 한다'는 건 무시당해 싼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토크쇼에서의 모습에 대한 한국과 미국 시청자들의 반응 차이는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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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밤, KBS 2TV '박중훈 쇼'에 장동건이 나왔다. 호스트 박중훈과 제작진은 동아시아 10개국을 호령하는 스타 장동건을 국보 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다루듯 했다. 여성 시청자들이야 아니었겠지만 남자 시청자들은 정말 별 것 아닌, "성인이 된 뒤에 몇번이나 여자를 사귀어 봤습니까" 정도의 질문에도 물을 마시며 주저하는 장동건의 모습에 속이 좀 꼬였을 법 하다. 고만 질문에 목이 바짝 마르다니, '무릎팍 도사'라도 나갔으면 애저녁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일 아닌가.

물론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한국의 스무살에서 마흔살 사이 여성들에게 최상의 판타지를 제공해주는 왕자님 아닌가. 과연 그도 자고 일어나면 눈에 눈꼽이 낄까(이날 박중훈이 구사한 조크 중 가장 공감이 갔다). 대통령도 재벌 회장도 부러워할만한 스타덤 위에 군림하고 있는 그가 뭐하러 사소한 웃음을 위해 제 살을 깎겠느냔 말이다. 오히려 박중훈이 조금이라도 장동건을 몰아붙일라치면 '아니, 감히 어떻게 저런 불경스런 말을'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영화 '트로픽 썬더'를 보면 너무 큰 온도차에 놀란다. 벤 스틸러나 잭 블랙은 그렇다 치고, 톰 크루즈가 대머리 가발을 쓴 채 뚱보로 분장하고 둥실둥실 엉덩이 춤을 추고 있다. 대체 왜, 뭐가 부족해서 이렇게 망가지는 걸까?

뼛속까지 엔터테이너인 미국 톱스타들의 엽기 행각을 보면 가끔 이건 좀 도를 지나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맷 데이먼과 토크쇼 진행자 지미 키멜(Jimmy Kimmel) 사이에서 벌어진 'I'm ****ing Matt Damon' 비디오 시리즈를 보면 이런 사소한 장난에 벤 애플렉, 브래드 피트, 카메론 디아즈, 로빈 윌리엄스, 조쉬 그로번 등의 톱스타들이 끼어들어 어처구니없이 망가지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는 분들을 위한 링크입니다.)


아무튼 '참 미국 애들은 별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그들이 만든 문화 상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의 입장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럼 나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쪽이 더 좋은 공급자 아니었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식당 주인의 눈치를 보게 된 거지? 이것도 한미간의 차이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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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란 대중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들이 대중을 위해 봉사하는 방식은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는게 가장 기본일텐데 가끔은 '군림하는 것이 대중을 위하는 길'로 착각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스타들도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되는 건 대중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소비자들은 가끔 변태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비슷한 품질의 싼 물건이 있는데도 공연히 '그래도 뭔가 있으니 비싸겠지'라는 생각에 고가의 물품 쪽으로 눈을 돌리곤 하죠. 깎아 주면 괜히 싸구려 취급을 하기도 하고, 친절하게 대할 수록 만만하게 보기도 합니다. '일본인은 하루에 1품목 이상 구매할 수 없음'이라는 오만한 안내문이 쓰여 있는 파리의 명품점은 매일 그래도 좋다는 일본 관광객들로 미어 터진다고 하죠.

뭐 이런 것도 좋습니다만, 계속 이러다 보면 가끔은 상품 공급자들이 '최대한 소비자에게 잘 보이고,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는 물건을 내놓는 것이 우리의 본분'이라는 것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로서의 권리, 여러분이 지갑을 여는 순간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않고 기억할 필요도 있겠죠. 재미없는 방송에 단호하게 채널을 돌릴 때처럼 말입니다. 수년간 드라마고 영화고 단 한편도 출연하지 않은 채, 줄기차게 광고만 찍어대는 연예인의 상품 가치가 유지되는 '한국 연예계의 불가사의'는 그리 소비자로서의 기본 자세에 충실하다고 보긴 힘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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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중앙일보에 매주 토요일마다 '분수대'라는 칼럼을 연재하게 됐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칼럼인 터라 감히 제가 거기에 숟가락을 디민다는게 좀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상명하복. 시키는 일은 다 하자는게 좌우명인 만큼 열심히 해 보려고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첫회 원고를 넘겨야 하는데 문득 '재석아, 이 상 내가 받아도 되나'를 외치는 강호동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 수상자로 결정되고 나서도 "재석아! 재석아! 재석아아!"를 외쳤던 그입니다.

강호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수시로 '대한민국 최고 MC는 유재석'을 주문처럼 사용합니다. 얼마 전, '무릎팍도사'에 김건모가 두번째 출연했을 때에도 "죄송합니다. 제가 무능해서... 대한민국 최고 MC 유재석이었다면 이렇게 두번씩 나오시게 하지 않았을텐데..." 로 웃음을 자아내더군요. 그런데 반대로 유재석이 강호동을, 특히나 '대한민국 최고 MC 강호동'이라고 언급하는 모습을 보신 분도 있는지 궁금합니다. 10월 말, '1박2일'의 현장 기자 동행 취재 때에는 유재석과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을 받고 "누가 뭐래도 최고는 유재석이다. 흠잡을 데가 없다"고 다시 못박기도 했습니다.

왜 강호동은 유재석을 그리도 의식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유재석은 강호동을 의식하는 모습이나 발언을 하지 않을까. ('오늘은 내가 받아도 되나'를 언급이라고 치면 곤란합니다. 이건 그냥 응수 수준) 이 궁금증이 바로 이번 글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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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인자

1962년. 미국의 조그만 렌터카 회사 에이비스(Avis)가 야심 찬 슬로건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합니다(We Are No.2. We try harder)'.

이 광고는 신화적인 성공을 거뒀다. 말이 좋아 2위지 당시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던 허츠(Hertz)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던 에이비스는 이 광고 연작의 성공에 힘입어 그 한 해에만 50%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지금도 업계 1위는 아니지만 2007년 말 현재 자산 규모가 69억 달러(약 8조원)에 달하는 세계적인 기업이고, '넘버2 마케팅'이란 말은 온갖 광고 교과서에 실렸다.

'누구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에이비스의 전략이 성공한 이유는 뭘까. 넘버2 마케팅의 핵심 공격 대상은 자신보다 앞선 1등이 아니다. 자신과 엇비슷한 3등, 4등, 5등들이다. 당시 에이비스의 넘버2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마치 에이비스와 허츠가 렌터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줬고, 의도대로 에이비스는 고만고만했던 동급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1위를 위협할 수 있는 라이벌로 성장했다.

이런 속뜻을 파악하지 못하면 넘버2 마케팅은 별 의미가 없다. 국내에서도 스스로를 2위로 내세우는 보험사 광고, 라면 광고 등이 있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외형만 흉내 냈기 때문이다. 반면 이를 몸소 실천해 성공하고 있는 연예인이 있다. 바로 강호동이다.

한국갤럽이 매 연말 실시하는 '올해의 연예인' 설문조사에서 유재석은 2008년에도 49.9%의 지지로 4년 연속 최고 개그맨으로 꼽혔다. 강호동은 37.7%로 2위. 그런데 강호동은 지난 한 해 내내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대한민국 최고 MC는 유재석”이라고 지나칠 정도로 강조했다. 심지어 지난해 12월 28일 KBS 연예대상을 받고도 “재석아, 이 상 내가 받아도 되겠니”라는 소감을 남겼을 정도다.

강호동은 2008년 3대 지상파TV 중 KBS와 MBC의 연말 연예대상을 거머쥐었고, 유재석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 됐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최고가 아님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보여주며 특유의 공격적인 이미지를 순화시키는 효과까지 누렸으니 2008년 연예계의 진정한 승자는 그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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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신문에 실리는 글의 한계는 지면의 한계입니다. 한줄 더 쓰면, 두배 길이로 쓰면 더 많은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지면의 한계라는 것은 항상 치열한 타협을 요구합니다. 저 칼럼의 길이는 1150자입니다. 이 정도 길이에 이런 스타일의 칼럼이라면 '어, 이런 것도 있었구나'라는 시각의 제공 정도가 그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비스의 넘버 투 마케팅은 광고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성공사례입니다. 20세기 광고계의 신화적인 인물인 윌리엄 번박이 만들어 낸 이 광고는 일단 '누구나 광고를 할 때는 강해 보이고, 커 보이고, 뛰어나 보이고 싶다'는 너무도 기본적인 원칙을 깼다는 데서 탁월성을 보여줍니다.

'1등이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한 뒤에 곧바로 역습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왜 우리 차를 이용해야 할까? 1등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열심히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재떨이도 잘 비운다. 세차가 덜 된 차나, 낡은 타이어를 끼운 차를 고객에게 내놓는 짓은 상상할 수도 없다....' 등등입니다. 1등 자리만 양보했을 뿐 제대로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2탄, 3탄이 계속 이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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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이 나자 아예 'No.2 ism' 이란 말까지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런게 고객에게 먹혀 든 겁니다. 그리고 어쨌든 칼끝은 1등을 겨누고 있지만, 본문에서도 적고 있듯 정작 칼바람을 맞는 것은 다른 3, 4, 5등입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공격받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대로 칼을 맞고 나뒹구는 신세가 됩니다.

물론 한때 허츠도 에이비스의 공세를 의식, 역공을 취하기도 합니다. 내용인즉 '1등이 1등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차 대수, 대리점 수, 기타등등, 기타등등, 기타등등의 측면에서 1위업체에게 모두 상대가 안 된다면 뭐라고 할까요? 우리라도 '우리 차는 재떨이를 잘 비웁니다'라고 할 겁니다"라는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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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동은 분명 에이비스와는 다른 2위입니다. 두 사람은 명실상부한 양강 체제의 주역이고, 아주 냉정하게 여론 조사 결과를 수용해 강호동을 2위라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차이는 미세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정상적인 경우라면 양쪽 모두 '사실은 내가 1위'라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경우고 만약 그게 보기좋지 않다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사람들이 알아서 '투 톱'임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그런데도 강호동은 굳이 '유재석이 1위고 나는 2위'라는 입장을 고수합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강호동만의 넘버 투 마케팅이라는 생각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듯 유재석의 강점은 부드러움, 강호동의 강점은 강렬함입니다. 체구나 외형으로 봐서는 강호동이 압도적으로 강한 인상이죠. 이런 상황에서 강호동의 '2위 인정'은 진행 능력을 떠나 사람의 됨됨이까지도 평가의 대상이 되는 한국 연예게에서 대단히 훌륭한 처신입니다. 강호동으로서는 프로그램 속에서 보여주는 다소 거친 면모를 벗어나 세심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분적 겸손'은 강호동의 공격적인 개성을 해칠 수준이어서는 안되죠. 유재석과 같은 노선으로 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강호동에게 더욱 이런 전략이 유리할 수 있는 것은, 그렇다고 유재석이 강호동의 강점을 부분적으로 채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겸손과 인화의 MC로 국민적인 호감도가 극에 달해 있는 유재석이 굳이 과거의 '깐죽이기'로 돌아가거나, 강호동 식의 우격다짐을 시도해 봐야 결과는 마이너스일 뿐입니다.

결국 강호동의 '2위 처신'은 현재로서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전제는 모두 유재석이라는 거물의 존재가 있을 때의 상황입니다. 만약 현재의 구도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ex. 유재석의 전격 은퇴?)가 생긴다면, 그건 그때 또 달라질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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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럼 '올해의 연예인'은 누구일까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테니 서로 다른 사람이 나올 겁니다. MC 지존 유재석이나 강호동, 음반 판매량 46만장의 동방신기, 남우주연상 6관왕의 김윤석, 8억 몰래 선행의 문근영, 신비주의를 벗은 서태지, 뿔난 국민엄마 김혜자까지 모두 충분한 이유를 가진 후보들이죠.

저는 그 중에서도 김장훈을 꼽겠습니다. 물론 제목에도 밝혔듯 선정 기준은 저의 편견이지만 입장이 다른 분이더라도 충분히 납득하실만 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 한국 연예계를 이끈, 그리고 연예인이라는 존재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한 인물이란 점에서죠. 이번 글은 그에 대한 간단한 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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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이 선행 바이러스 퍼뜨리는 ‘쇼킹’
기부천사·독도 지킴이로 뜬 김장훈  
 
2008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는 누구일까. ‘아시아의 별’ 보아에서 ‘월드 스타’ 비, ‘가왕’ 조용필이나 ‘대장’ 서태지, 당대의 지존 동방신기까지 많은 후보를 댈 수 있겠지만 질문을 살짝 바꿔 보자. ‘가장 존경할 만한 가수’라면 누가 첫손에 꼽힐까.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 김장훈(41)을 능가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배우 문근영과 함께 한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선행 아이콘이 된 김장훈의 연말은 분주하다. 19~24일엔 서울 올림픽 홀, 30~31일엔 부산 KBS 홀에서 ‘원맨쇼-쇼킹의 귀환’ 공연을 펼친 한편, 31일 개봉하는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에선 내레이션을 맡았다.

1991년 데뷔 때만 해도 김장훈이라는 깡마르고 키만 큰 가수가 이런 존재가 될 줄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엔 ‘김현식의 사촌 동생’이라는 꼬리표로 알려졌던(뒷날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직접 해명함) 이 가수는 불성실의 극치였다. 매니저가 갖은 애를 써서 출연 스케줄을 잡아 놓으면 어디론가 사라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속사가 김현식·들국화·신촌블루스·김현철·장필순 등을 배출한 명문 ‘동아기획’이 아니었다면 가요계에서 매장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워낙 존재감이 약했으니 미운털이 박혀 출연정지를 당했다 해도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97년, 당시 최고 인기 가수 중 하나였던 신해철이 공개 인터뷰 도중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가 김장훈”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하하 소리 내 웃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김장훈은 4집 ‘발라드 포 티어즈’를 내놨고 ‘나와 같다면’과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크게 히트하며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이미지를 벗어버렸다. 콘서트에서의 다양한 퍼포먼스와 관객을 즐겁게 한다는 다소 지나친(?) 의욕 때문에 한때 ‘가수냐, 개그맨이냐’는 시비도 있었지만 대중은 그의 철들지 않는 이미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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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년 뒤) 김장훈과 관련된 화제는 올 한 해 내내 쏟아졌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뉴욕 타임스에 실었고 기름 범벅이 된 서해안을 살리는 데에도 앞장섰다. 남들이 모두 잊을 때까지 봉사원정대와 함께 시커먼 바위를 닦았고, 6월의 약속을 지켜 찬바람이 불던 지난 6일 충남 보령에서 ‘서해안 페스티벌’ 공연을 끝마쳤다.

어록도 생겼다. “대출 받아 기부한 적도 있다” “기부는 과시가 아닌 습관”이라는 말을 남긴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선행은 전염된다”는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2009년 새해 계획도 이미 시작됐다. 서해안 경제 살리기의 일환인 ‘서해안 페스티벌’을 국제 음악제로 키워 내는 한편 올해 광복절에 이루지 못한 독도 공연의 꿈도 내년엔 꼭 성사시킨다는 각오다.

그와 고락을 함께 한 매니저는 지금도 24평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의 노후를 걱정한다. “버는 규모를 생각해 나이 들어 쓸 돈은 남겨 놓고 기부했으면 좋겠다. 가끔씩 ‘욱’하는 성질로 통장 잔고를 탈탈 털 때는 솔직히 말리고 싶다”는 속내다.

또 다른 지인은 이렇게도 말한다. “뭘, 정치 하겠다고 나서지만 않으면 죽을 때까지 남들이 먹고 살게 해 줄 텐데.” 김장훈이 궁핍해지는 날이야말로 국민의 마음이 가난해지는 날이 아닐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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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으로 직접 만난 것은 지난 1998년, '나와 같다면'이 한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시절입니다. SBS 등촌동 스튜디오에 있는 그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때의 첫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잊혀지질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이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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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혹시 하록선장..." 하고 말문을 열었더니 정색을 하고 "누구한테 얘기를 들으신 건가요, 아니면 그렇게 생각을 하신 건가요?"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아무 얘기도 들은 게 없다고 했더니 "아, 제가 하록선장이랑 비슷하다는 얘기를 참 좋아하거든요. 하록선장 팬이에요"라며 웃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악명' - 스케줄 펑크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 을 익히 듣고 있었기에 어쩐 일로 이렇게 점잖게 방송국까지 오셨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어느날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안 되겠더라구요."

위에는 쓰지 않았지만 그가 방송 출연을 펑크낸 이유 중에는 황당무계한 것도 많았습니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로서 왜 내가 방송같은 데 출연해 음악의 순수성을 훼손해야 하느냐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함께 살던 매니저가 라면을 끓여먹고 설겆이를 안 해 놨다는 이유로 '잠수'를 타 버리기도 했답니다. 참 요즘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렇게 인기가수가 된 뒤 김장훈 콘서트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좍 퍼졌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하는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콘서트 하다 말고 갑자기 영화가 나오고, 그 영화에는 당연히 김장훈이 나오고, 여주인공은 그 무렵 막 뜨기 시작했던 박경림이었습니다. 아무튼 공연 하다 말고 예의 발차기가 나오고, 목은 쉬고...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이 정도면 꽤 중독성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2008년, 김장훈이 어떤 일을 벌이고 어떻게 진행해 나갔는지는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유난히 암운이 깊었던 2008년, 김장훈은 한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범을 남겼습니다.

그가 올해 남긴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선행은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선행이라는 것도 누군가 보여 줘야 다른 사람이 따라서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난번 문근영 때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선행은 본질적으로 감춰선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왼손과 오른손 얘기도 나오지만, 이런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선행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2009년에는 김장훈에 의해 또 어떤 기행과 선행이 펼쳐질까요. 자못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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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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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가 국내에서 상영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제작자를 꼽자면, 1위는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한 월트 디즈니일테고 두번째는 미야자키의 이름이 나올 겁니다.

미야자키가 왜 유명한지까지를 글 하나로 커버한다는 건 만용일테고, 얼마 전 '포뇨'의 개봉에 맞춰 미야자키를 잠시 돌아본 글을 쓸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문득 일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안노 히데아키도, 오시이 마모루도, 다카하타 이사오도,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거장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대신 한국에는 봉준호, 임권택, 박찬욱이 있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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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세계로 돌아간 67세의 거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몇가지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연친화, 환경보호, 반전 등의 주제와 그를 떼놓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1978년 감독 데뷔작 '미래소년 코난'은 핵전쟁으로 철저하게 문명이 파괴되어 바다로 덮인 세계에서 시작한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나온 최신작 '벼랑 위의 포뇨'에서 세계는 다시 한번 바다로 뒤덮일 위기에 놓인다.

포뇨는 인간세계가 싫어 바다로 떠난 마법사 아버지와 대양의 여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얼굴의 물고기 소녀.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인간 소년 소스케와 포뇨는 서로 좋아하게 되고, 두 어린이의 사랑은 바다로 뒤덮일 뻔한 지구를 구한다.

1941년생이지만 미야자키에게서 은퇴의 기미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21세기 들어 세계 유수 영화제들로부터 받은 찬사가 노익장을 뒷받침하는 분위기다.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부문과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62회 베니스 영화제에선 평생공로상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그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와 지브리 박물관은 전 세계 '아니메(Anime)' 마니아들의 성지가 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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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일본에서 공개된 '벼랑 위의 포뇨'는 극장에서도 흥행 기록을 갱신하며 대박을 터뜨리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미야자키도 이제 늙었다'는 신통찮은 평가를 들어야 했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영상과 동화적인 이야기에 대한 어린이 관객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지만 부모들은 뒤로 갈수록 모호해지는 플롯에 고개를 흔드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사실 그의 작품 목록을 살펴봐도 어린이용, 온 가족용으로 분류되는 작품은 '이웃집의 토토로' 정도다. 거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이 10대 중반 이하의 소년 소녀지만,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만화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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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모험 드라마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일본 전설을 배경으로 한 '원령공주'에 이르기까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놀라울만치 성숙하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돼지 얼굴이 되어 숨어 사는 노장 파일럿의 이야기인 '붉은 돼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미야자키는 이런 평가에 대해 주인공 소스케가 자신의 아들 고로의 다섯살 때를 모델로 했으며, "처음부터 다섯살 짜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어쩐지 이 작품 속의 어른들은 동화적인 상상 속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다. 소스케의 엄마 리사는 물고기가 사람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소스케를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구박하지 않는다.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고 자란 어른' 들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의 장남 고로의 감독 데뷔작인 '게드 전기(2007)'는 혹평을 받았지만,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보고 자란 '제2의 미야자키'가 즐비하다. 그 또한 자신을 애니메이터로 만든 것은 '우주소년 아톰(원제:철완 아톰)' '사파이어 왕자' 등을 만든 거인 데츠카 오사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한국에서 제2의 김청기, 제2의 신동헌은 언제쯤 나올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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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신동헌의 '소년 홍길동'이나 김청기의 '로보트 태권 V', '황금날개'를 보고 자란 세대 중에는 아직 그만한 스타 애니메이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닐 겁니다. 정부의 지원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고(물론 저 일본의 거장들이 정부의 체계적인 육성 방안에 의해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힘든 일이나 도제식 수업을 거부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보다 구체적인 데 강하고 상상력이 다소 부족한 듯한 국민성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스토리의 힘을 무시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기법이나 신기한 CG가 아니라 흡인력 있는 스토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마지막으로 탄탄한 스토리의 국산 애니메이션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원작의 장점까지도 망쳐 버렸던 '아마겟돈'의 악몽이 되살아납니다)

아무튼 더 길게 얘기할만큼 아는 게 없어서 유감입니다. 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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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벼랑 위의 포뇨' 리뷰는 이쪽입니다. 일각에서는 메시지라고는 없는 '포뇨'를 보고 미야자키 선생의 에너지가 다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분의 메시지는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익숙하게 듣지 않았습니까? 이제 '토토로'의 세계를 다시 한번 본다고 나쁠 것도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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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계의 가장 큰 화제는 '출연료 삭감'입니다. 배용준 2억5000만원, 송승헌 7000만원 등의 숫자가 여기저기서 들먹여집니다. 경기 악화로 인해 방송사의 수지가 예전같지 않기 때문에, 출연료 삭감을 통한 제작비 절감이 절실해지고 있다는 얘깁니다. 사실 예전같지 않다 뿐이지, '대출이라도 받고 싶다'는 외주제작사들과 비교할 처지는 아닙니다.

방송국의 경영 상태 악화는 가장 쉽게, 광고의 개수로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프로그램에는 시작할 때 타이틀이 나간 뒤 방송되는 전 CM과 끝나자마자 방송되는 후 CM이 있죠. 얼마전 KBS 2TV '그들이 사는 세상' 같은 드라마가 타이틀이 나간 뒤 전 CM이 단 한개도 붙지 않고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시청률이 난조라지만 현빈 송혜교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참 처절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경기 좋을 때는 시청률이 꽤 낮은 드라마도 광고가 법정 최대치까지 꽉꽉 차는 '완판(완전 판매)'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최근 몇해 사이 방송 광고량 자체가 차츰 줄어들고 있었죠. 그러다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셈입니다. 오죽하면 지상파 방송사가 앞장서서 출연료를 깎자고 나섰겠습니까.

하지만 과연, 출연료 폭등만이 이런 상황의 원인일까요. 한번 생각해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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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꼭 매일 세편의 드라마가 맞붙어야 했나?

왜곡된 드라마 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지상파 3사 드라마 PD들이 뭉쳤다. 이들은 지난 24일(11월24일을 말합니다) 간담회를 갖고, '위기의 시작'을 지난 2005년으로 지목했다.

2005년 이후 드라마 제작 시장의 혼란이 가중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코스닥 시장과 우회 상장이 유행처럼 시장을 휩쓸면서 연예계로 진출한 투기성 자본들은 단기간에 큰 폭의 주가 상승을 위해 외형을 부풀리는 수법을 썼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선 '실적'이 필요했고, 이들은 드라마든 영화든 제작을 해 놓고 보자는 식으로 접근했다. 대외적인 효과를 위해서는 톱스타 캐스팅이 중요하기도 했다.

그 결과 스타급 연기자들의 몸값은 끝간 데 없이 치솟고 외주 제작사들의 부실화가 급격히 진행됐지만, 어쨌든 드라마 공급이 확대되자 방송사는 오히려 편성을 늘렸다. 공백 지역이던 금요일 밤에도 연속극이 방송됐고, MBC와 SBS는 주말 드라마를 각각 두개씩으로 늘렸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시청률이 낮은 드라마는 광고 물량이 뚝 떨어지자 이제사 방송사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현재의 위기에 대한 인식은 드라마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해결책은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날 PD들은 "최근 3년간 방송된 미니시리즈 84편 중 60편이 방송사에 적자 고통을 안겨줬다"며 "적자 해소를 위해 2005년 수준으로 출연료와 제 비용을 삭감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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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안방극장에서는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오후 10시대에는 세 방송사가 동시에 드라마로 경쟁을 벌인다. 대개 승자는 하나다. 전체 드라마 중 3분의 1 가량이 시청률 경쟁의 승자라면 3분의 2는 피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즉, 적자 드라마 출현의 본질적인 원인은 매일 밤마다 세 방송사가 모두 드라마로 맞불을 지핀 데 있었던 것이다. 경제 상황만 좋았다면 세 편의 드라마를 모두 채울 수 있을 정도로 광고 물량이 충분했겠지만, 최근 경기가 악화되면서 곪고 있던 상처가 겉으로 드러난 것 뿐이다.

현재 드라마 시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황을 만들어낸 원인을 외주 제작사의 난립이 본격화된 2005년 이후의 상황에서만 찾아서는 안된다. 가장 큰 책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중이건 주말이건 똑같은 시간에 드라마를 편성해 맞불 작전을 펴 왔고, 이후에도 기회만 있으면 드라마를 늘려 온 방송사의 편성 정책에 있다. 비용 절감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이제 지상파 방송사들도 뭔가 책임있는 모습을 보일 때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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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몇가지 있습니다.

첫째,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2005년 수준으로의 복귀'를 원하고 있지만 정작 2005년에도 '스타들의 고액 출연료'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때 1000만원, 2000만원 수준의 출연료도 외주 제작사들의 취약한 경영 상태로는 감당하기 힘든 액수였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이 외주 제작사에 지급하는 제작비도 계속 상승했습니다.

이로 인해 외주제작사들은 잇달아 껍데기 회사로 변해가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 지상파 방송사들의 입장은 일정했습니다. '그건 그쪽에서 출연료를 너무 많이 주어서 일어난 문제이니, 그쪽에서 해결하라'는 식이었죠. 하지만 외주 제작사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상파의 드라마 라인업에 자신들이 만드는 드라마를 어떻게든 끼워 넣어야 했고, 그러려면 화려한 캐스팅이 필수였습니다. 즉 '그쪽의 문제'일 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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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기자간담회에서는 한 방송사 고위 간부로부터 이런 얘기도 나왔습니다. "무리하게 스타를 동원해 편성을 잡아 놓고, 계약서 사인을 미룬 뒤 방송 직전에 방송사를 협박하듯 해 출연료를 대폭 인상시킨 제작사도 있었다.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기획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약 우리가 기획 단계에서 이 드라마를 거절했다면 다른 방송사로 넘어갈 것이고, 거기서 그 드라마가 성공을 거뒀다면 월급 받는 입장에서 심각한 문책을 받을 일이었을 것"이란 얘깁니다.

이 이야기는 최근 3년 동안의 방송 드라마 현황을 적나라하게 요약해서 보여줍니다. 외주 제작사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톱스타들을 끌어 모아 출연 승락을 받으면, 어느 방송사든 편성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기를 쓰고 스타를 모으려 합니다. 스타들도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몸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죠.

아주 단순하게, 방송사든 외주 제작사든 충실한 대본과 연출력을 바탕으로, '싼 배우'들을 써서 내실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톱스타 연기자, 스타 작가, 스타 PD들이 짠 진용을 거부하고 이런 드라마를 편성하는 것은 방송사의 실무자(심지어 드라마국 간부라 해도)에겐 대단한 부담이죠. 그렇게 해서 소신있게 기획한 드라마가 성공이라도 하면 대단한 선구안의 소유자로 칭찬을 받겠지만, 드라마의 성공이라는 건 누구도 예견할 수 없는 일에 속합니다. 만에 하나 실패라도 하면, 망신은 물론이고 부정을 의심받을 수도 있습니다("왜 누가 봐도 성공할 것 같은 드라마를 거부하고 저런 '후진' 드라마를 편성했지? 혹시 커미션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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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1주일 내내 드라마들끼리 치열한 삼국지를 벌이게 되어 있는 현재의 방송 구도입니다. 월-화, 수-목은 매일 오후 10시부터 세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들이 격돌하죠. 현재의 HUT를 감안하면, 드라마 한 편이 시청률 20-25%를 기록하면 2등은 10-15%, 꼴찌는 7-12% 정도를 차지하는게 보통입니다. 한 팀은 행복하지만 다른 한 팀은 어정쩡, 그리고 나머지 한 팀은 완전히 코피가 터지는 수준입니다.

현재 주말에는 세 편의 드라마가 동시에 경쟁하는 시간대가 없습니다(재방송 제외). 드라마의 시청률도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지더라도' 주중의 세 드라마 경쟁중의 꼴찌처럼 처참하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스타 출연료를 나무랄 처지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지난 3년간 각 방송사들은 단막극, 청소년 드라마, 학원 드라마 등을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이런 드라마들은 당장의 시청률은 확보하기 힘들지만, 연출자의 훈련과 연기자의 육성에 큰 역할을 해 왔습니다. 즉, 당장의 시청률 경쟁에 도움이 안 되는 장기적인 투자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방송사가 분명히 한 것입니다.

출연료 삭감을 주장하는 것과 함께, 방송사가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일단 지나치게 소모적인 주중 10시대의 세 드라마 출혈 경쟁 체제부터 바꿔 놓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되면 캐스팅이나 편성 라인업에서 한결 나은 여유를 갖게 됩니다. 드라마 편수를 줄이지 않아도, 방송시간의 앞뒤를 조정해(주말처럼) 맞물리지 않게 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또 현재 방송되는 드라마 중 일부를 위에서 말한 '육성형 드라마' 로 바꿔 놓는 방안도 있습니다. 여기에 지상파 방송 3사간 한번 합의를 하면, 서로 신뢰하고 합의를 준수할 수 있을 만한 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 될 겁니다.

이 부분에 대해 할 얘기는 너무나 많지만, 오늘은 이 정도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생각이 다른 분들도 많을 겁니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기엔, 역시 현재의 상황을 만든 가장 큰 책임이 방송사에 있는 만큼, 방송사가 자신들이 할 몫을 먼저 해결하는게 우선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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