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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셨나요? 이 영화에서 짜장을 얼굴에 묻힌 최진실과, 김 서린 창문에 하트를 그리던 박중훈의 모습이 기억나시나요?

그런 분들이 읽어보시면 잠시나마 옛 기억이 살아나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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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through*2?> '형사'의 부활에 대한 단상

재미란 무엇인가. '엔터테인먼트'를 취재 대상으로 10년 이상 종사하다 보니 '재미'라는 말의 벽에 부딪힐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그나마 결론을 내린 것이 있다면, '결국 재미란 음식 맛과 같다. 어느 정도 일반적인 기준은 있을 수 있지만 결국은 개개인의 취향이 절대적인 기준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명세 감독의 '형사'가 디지털 판으로 재상영된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의 일이다. 디지털 버전의 '형사'는 CGV강변 인디영화관에서 23일부터 일주일간 하루 2차례씩 상영되며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상영기간이나 회수가 늘어날 수도 있다. 연말 영평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촬영상을 휩쓴 이후의 쾌거라고 할 만 하다.

기자는 분명 이명세 감독의 팬이 아니다. '형사'를 재미있게 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한때는 그에게 심각한 반감을 갖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너무도 한심한 것인데 여기서 한번 공개해보기로 한다.

대부분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기자도 이명세 감독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통해 처음 만났다. 경직 일변도의 한국영화계에 한줄기 훈풍으로 다가왔던 이 영화에는 신랑 박중훈이 유리창에 하트를 그려 창문 너머에 있는 신부 최진실에게 사랑을 전하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좀 더 자세히 복기해 보자. 추운 겨울날, 집들이를 마치고 친구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던 박중훈은 김 서린 창 너머로 최진실이 설겆이하는 광경을 본다. 박중훈은 손을 호호 불며 하트를 그리고, 창을 두드려 최진실이 그 하트를 보게 한다.

흐뭇한 장면. 그러나 기자는 이 장면에서 심사가 마구 뒤틀렸다. 생각해보라. 추운 겨울이면, 창문에 김이 서리는 것은 따뜻한 집 안쪽이지 바람이 쌩쌩 부는 바깥쪽이 아니다. 그러므로 박중훈은 창문에 하트를 그릴 수도 없고, 설사 그린다 해도 안쪽에 서린 김 때문에 최진실은 하트를 볼 수도 없다.

기자는 '이런 기초적인 자연법칙조차도 무시하고 영화를 만든' 이명세라는 감독을 향해 치기 어린 비난을 퍼부었고, 그 뒤로는 그의 영화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괴로워'는 물론이고 '인정사정 볼것없다' 또한 허점 투성이의 영화일 뿐이었다(그러면서 참 많이도 봤다).

지난 9월 개봉됐던 이명세 감독의 영화 '형사'는 일반 관객들을 상대로는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열광하던 팬들은 이 영화가 극장에서 간판을 내린 것을 견디지 못하고 직접 돈을 걷어 단관 상영회를 계속해왔다. 팬카페에서는 이 영화를 몇번 봤느냐를 가지고 경쟁을 펼치기도 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극장에서 몇명이 이 영화를 봤느냐는 그 다음 문제. 이명세 감독은 행운아다. 적지만 자신의 영화를 호응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뜨거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데 스필버그인들 부러울까.

영화든 드라마든, 만듦새나 수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된 평가의 기준도 있고, 누구라도 그 기준으로 영화를 농단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청률이나 관객수가 그 영화의 '재미'까지 사회적인 합의에 의해 결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나에겐 최악의 드라마가 남들에겐 인생 최고의 걸작일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아무리 유명한 평론가라도, 이런 면에서는 '수많은 관객(또는 시청자)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송원섭 JES 기자 five@jesnews.co.kr

*<Through*2>는 연예계의 다양한 사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칼럼입니다. 제목인 <Through*2>는 걸리는 곳 없이 이리저리 통한다는 <Through+Through>, 한글로는 <두루두루>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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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연말, 패닉의 앨범을 듣고 쓴 글입니다.

'두루두루(Through*2)'라는 제목을 정하고 가장 먼저 쓴 글이죠.





<송원섭의 Through*2> 패닉은 '취업재수생' 정서, 서태지는 '자퇴생' 정서?

듀오 패닉이 7년만에 4집으로 복귀했다. 이적과 김진표, 비록 패닉이라는 이름으로는 아니었지만 두 뮤지션은 모두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활동했던 프로젝트나 팀의 이름을 열거하는 것만으로도 원고지 한장은 충분히 채울 정도다. 그렇지만 패닉 이후의 어떤 움직임도 그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지난 95년 데뷔한 패닉의 등장과 성공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와 맞닿아 있다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많은 팬들은 패닉을 통해 서태지의 공백에서 온 아쉬움을 달랬다. 고만고만한 목소리의 '대중가요 가수들' 사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새로운 뮤지션의 등장이야말로 대중이 애타게 찾던 것이었다.

한때 신해철은 "서태지는 '낙오자 정서', 내가 대변하는 것은 '비겁자 정서'"라고 정리한 적이 있다. 패닉은 이런 구분에 따르면 역시 '낙오자 정서'에 속하는 그룹을 대변해왔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지금까지 패닉은 비록 낙오자이기는 하나 언제든 현실을 딛고 성공하고 말겠다는 '취업 재수생의 정서', 서태지는 세상은 세상, 나는 나라는 '자퇴생의 정서'를 대변한다고 구별할 수 있다.
패닉의 노랫말들은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자신을 노래하긴 하지만, 항상 '현실에의 복귀', 혹은 '언젠가의 화려한 성공'을 동경하고 있다. 4집의 대표곡이 '로시난테'로 뽑힌 것도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뮤지컬 '라 만차의 사나이'에 나오는 '임파서블 드림(Impossible Dream)'과 일맥상통하는 이 노래에서 이적은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달려보자/ 언제고 떨쳐낼 수 없는 꿈이라면', 김진표는 '절대 포기하면 안돼/ 모든 걸 할 수 있는 바로 난데'라고 노래한다. 1집의 대표곡인 '달팽이'에서도 이적은 '언젠가/ 저 멀고 거치른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노래했다.

이적이 불렀던 토이의 5집 수록곡인 '모두 어디로 간 걸까'는 비록 이적이 쓴 가사는 아니지만 이런 맥락에서 너무나도 패닉적인 노래다. '말해줘/ 난 잘하고 있다고/ 나 혼자만 외로운 건 아니라고'라는 가사는 '지금은 비록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지만 나는 결코 이렇게 뒤처져 있지는 않을 거야'라는, 결코 현실을 포기하지 않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 마침내 증오가 됐어', '거칠은 인생속에/ 떠나간 마음보다 따뜻한/ 나를 완성하겠어(컴백홈)'라는, 서태지가 갖고 있던 '이 세상을 등져도 어쨌든 나는 나'라는 정서와는 사뭇 다르다. 서태지만큼 강한 의지를 부르짖지는 않지만,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패닉의 목소리가 한층 따뜻하게 들릴 수도 있다.

이런 패닉의 목소리가 7년간의 공백을 딛고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어쩌면 7년 전보다, 사람들은 한층 더 이렇게 옆에서 격려해주는 목소리에 목말라 있는지도 모른다. 특히 7년 전에 10대였던 패닉의 팬들이라면 이제 사회의 차가운 바람을 정면에서 맞게 된 시점에 만난 옛 친구가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대표곡의 제목이 돈키호테의 애마 '로시난테'라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일찌기 삼국지에 나오는 위무제 조조는 귀수가(龜首歌)라는 시에서 '노기복력, 지재천리(老驥伏?, 志在千里)'라고 읊었다. '늙은 천리마는 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그 뜻은 천리 밖에 있다'는 뜻. 이 시의 댓구인 열사모년 장심불이(烈士暮年 壯心不已), '절개 있는 선비는 비록 늙었어도 당당한 뜻은 사라지지 않는다'와 맞춰 읽으면 바로 마음에 와 닿는다. 그래, 로시난테면 어떠냐. 비록 잠시 뜻을 잃었어도, 또는 이미 늙었어도 타고 떠날 말 한필만 있으면 우리는 모두 정의의 기사 돈키호테인 것을.

송원섭 JES기자 fivecard@jesnews.co.kr

*<Through*2>는 연예계의 다양한 사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칼럼입니다. 제목인 <Through*2>는 걸리는 곳 없이 이리저리 통한다는 <Through+Through>, 한글로는 <두루두루>라는 뜻입니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조조는 뛰어난 무장인 동시에 대단한 문장가임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편에 나오는 횡삭부(橫朔賦)도 훌륭하지만 여기서 예로 든 귀수가는 감히 조조의 대표작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龜雖歌

神龜雖壽, 신령스런 거북이 오래 산다 하나,
猷有竟時. 반드시 죽을 때가 있고
騰蛇乘霧, 이무기(騰蛇), 안개를 타고 오르나,
終爲土灰. 결국은 흙먼지가 되고 만다.

老驥伏? 늙은 준마는 구유에 엎드려 있어도
志在千里, 뜻은 천리밖에 있으며,
烈士暮年 열사는 늙어도
壯心不已. 장한 뜻은 사라지지 않네.

盈縮之期, 넘치고 모자란 때가
不但在天    하늘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네.
養怡之福, 몸간수를 잘 하고 마음을 즐겁게 가지면
可得永年.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을.

幸甚至哉, 얼마나 행복한가,
歌以詠志. 노래로써 뜻을 읊을 수 있으니.





노기복력(老驥伏력)의 '력'은 木자 옆에 歷자가 붙은 것으로, '말구유 력'이라고 불리는 글자입니다. '노기복력 지재천리, 열사모년 장심불이'. 나이 먹은 뒤에 들으면 다시금 가슴이 뛰는 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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