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현, 스캔들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다
참 영화 한 편의 힘이 이렇게 대단한 줄 몰랐습니다. 사실 '화피'가 개봉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천녀유혼'에 대한 추억을 다시 나눌 일도 없었겠죠? 그런 의미에서 '화피'의 공로를 인정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번 포스팅에 이어 이번에는 왕조현의 어두운 면을 다뤄 보겠습니다. 만 20세에 '천녀유혼'으로 일약 톱스타의 자리에 오른 왕조현은 왜 거기서 더 성장해 종초홍이나 임청하의 위치에까지 오르지 못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만 20세의 왕조현. 얼굴은 성숙했지만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를 나이입니다. 당연히 주위의 유혹도 많았겠죠. 그리고 스캔들은 18세때부터 시작됩니다.
홍콩으로 건너온 지 얼마 안 된 왕조현은 '위사리전기(衛斯理傳奇)'라는 영화에 출연합니다. 이 영화는 위슬리라는 주인공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베스트셀러 모험소설 시리즈가 처음으로 영화화된 것이었죠. '위사리'란 위슬리의 한자 표기입니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허관걸. 국내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성룡이나 주윤발에 비해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중화권에서는 이 두 사람에 결코 못지 않은 인기 스타였습니다. 특히 '미스터 부' 시리즈나 '최가박당' 시리즈는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못지 않은 높은 인기를 누렸습니다.
특히 왕조현이 나온 '위사리전기'는 국내에서도 개봉됐습니다. 티벳의 포탈라이궁을 무대로 용의 기원과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특이한 발상이 눈길을 끄는, 그런대로 볼만한 영화였죠.
국내에서 '미스터 부'라는 제목으로만 개봉된 시리즈 4편 '마등보표'나 '최가박당'은 홍콩 코미디의 전성기를 열었다 해도 좋은 작품들입니다. 허관걸이 국내에서 스타덤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은 훨씬 뒷날의 '소오강호'죠.
아무튼 48년생인 허관걸과 67년생인 왕조현은 거의 아버지와 딸의 차이가 나지만 이 허관걸이 바로 왕조현의 첫 스캔들 상대가 됩니다. 그 뒤로도 상대역으로 만나는 연기자마다 모두 왕조현과 연인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분방한 생활을 하죠. 아무리 홍콩 기자들이 뻥이 세기로 유명하다지만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었던 듯 합니다.
왕조현은 한 인터뷰에서 "촬영장에 나가면 다들 나를 친근한 막내동생처럼 대했다. 그만큼 나와 상대역 배우들은 대개 나이 차이가 많이 났다. 나 역시 스스럼없이 그들을 대하다 보니 가끔 감정이 불쑥불쑥 드러날 때도 있었다"고 술회한 걸 보면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왕조현의 가장 오랜 연인이라면 가수 제진(齊秦, Chyi Chin)입니다.
역시 국내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기 가수 겸 배우인 제진은 1988년부터 10여년간에 걸쳐 왕조현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 연인입니다. 홍콩 쇼비즈니스계는 수차에 걸쳐 이들의 결혼 날짜를 보도하지만 결국 결혼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제진과 계속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했더라면 왕조현의 이미지가 나빠질 일은 없었겠지만 왕조현은 엉뚱하게도 홍콩과 대만 실업계-연예계의 거물인 임건악(林建岳, Lam Kin Ngak)과의 염문설에 휩싸입니다. 임건악은 현재 홍콩 영화계의 최대 배급사로 꼽히는 미디어 아시아(환아)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서울공략' 개봉때 이명박 시장을 만난 임건악.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입니다.
문제는 임건악이 처자식이 있는 중년이었다는 것이죠. 관계는 공공연해졌지만 결국 왕조현은 부자 남자의 첩에 머물고 맙니다.
이런 소문이 왕조현에게는 치명적이었죠. 영화 '청사'가 개봉됐을 때, 홍콩에서는 별 큰 문제가 없었지만 대만에서는 관객들이 이 영화의 관람을 보이코트하기에 이릅니다.
결국 1994년, 불과 27세의 나이로 왕조현은 첫번째 은퇴선언을 합니다. 1997년 일본 영화 '북경원인'과 일본 드라마 한편에 우정출연한 것 외에는 대외활동을 하지 않죠. 오랜 칩거에도 좋아진 것은 없었고, 영화 '유원경몽'의 촬영을 마친 뒤에는 두번째 은퇴 선언이 나옵니다.
하지만 두 차례의 은퇴는 모두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임건악과 결별하고, 임건악은 대만 출신의 모델 모니카와 정분이 납니다. 결별 이후 애인 제진과의 재결합 소문이 잠시 돌지만 이번에도 결론은 내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난번에 말했듯 왕조현은 '미려상해-상하이 스토리(2004)'를 촬영하죠. 이 영화로 왕조현은 색다른 평가를 받습니다. '마침내 연기에 눈을 떴다'는 긍정적인 평가였죠.
'미려상해'의 공개 이후 왕조현은 문제의 '뚱보 사진' 공개로 곤욕을 치릅니다.
'차기작에서의 캐릭터를 위해 살을 찌우고 있다' '스트레스성 폭식이다' '장국영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아 먹기만 한다' '평소에도 워낙 많이 먹는 습관이 있었다'는 등 온갖 해석이 난무합니다.
그리고 나서 또 새로운 모습이 공개되죠. 이번엔 다시 멀쩡해진 왕조현입니다. 두달 동안 야채만 먹었다든가 뭐 그런 설명이 붙어 있었습니다.
'미려상해' 이후 왕조현은 여전히 밴쿠버(위 사진의 溫哥華)에서 조용히 칩거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며 활동이며 완전히 중단한 지 오래. 아직 활동 재개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다시 볼 일이 있겠죠.
** 밴쿠버 사시는 분들, 사진 한장 찍어서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서양에서 태어났더라면 이 정도의 스캔들이 배우의 운명을 좌우하거나 하지는 않았겠지만 왕조현은 임건악과의 연애로 상당히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물론 왕조현 본인이 좀 더 배우로서의 본분에 충실했고, 커리어 관리에 관심이 많았다면 일찌감치 이뤄 놓은 아시아 권의 톱스타 자리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는 않았겠죠. 장만옥이나 공리, 양자경 같은 선배들은 물론이고 훨씬 어린 장자이가 오늘날 가 있는 위치를 생각하면, 왕조현이 그 자리에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인터넷에 '왕조현의 최근 사진'이라고 돌고 있는 사진이지만 진위는 확실치 않습니다.)
아무튼 그나마 21세기에 촬영된 그녀의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유원경몽'의 예고편입니다.
마무리는 그래도 '천녀유혼'으로 해야겠죠?
아쉽다는 여론에 따라 전설의 목욕통 신을 추가합니다.
이걸로 왕조현에 대한 추억 밟기를 마무리합니다. 이번에 저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인데, 왕조현도 '화피(Painted Skin)'라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더군요. 국내에 '무림객잔'이라고 소개됐던 1992년작 영화의 원제가 '화피지음양법왕(畵皮之陰陽法王)'이었습니다. 왕년의 명감독 호금전이 역시 화피 이야기를 소재로 음양법왕이라는 악의 존재와 싸우는 도사와 서생의 이야기를 만들었던 겁니다.
(호금전과 임청하의 '신용문객잔'의 영향이겠지만 도대체 이 이야기와 '무림객잔'이란 제목이 어떻게 어울리는지 참...) 왕조현은 여기서도 귀신 역으로 나오고, 정소추와 홍금보가 공연합니다. 설정으로 봐선 별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닙니다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진짜 끝.
전편입니다. 왕조현의 전설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못 보신 분은 이쪽으로.
영화 '화피'에 대한 내용은 이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