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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죽었네 살았네, 일본 바이어들이 발길이 끊어졌네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류 상품은 뭘까요. 복잡할 게 없습니다. 한류 스타들이 나오는 콘텐트, 특히 드라마입니다. 영화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급 효과나 위력 면에서는 드라마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럼 '겨울연가'의 빅 히트 이후로 대체 한국의 자랑스런 한류 스타들은 얼마나 많은 콘텐트를 만들었을까요.

소위 4대천왕의 마지막 드라마 작품들입니다.


이병헌, 2003년 올인 (2009년 방송 예정 아이리스)

장동건, 2000년 이브의 모든것

배용준, 2002년 겨울연가 (2007년 태왕사신기)

원빈, 2000년 가을동화


이렇습니다. 한마디로 물건이 없는데 뭘 사라는 겁니까.

이 대목에서 가정을 한번 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배용준의 데뷔작 <사랑의 인사>부터 모든 출연작이 일본에서 없어서 못 파는 히트상품이 된 마당에, 2003년 이후에 배용준이 출연한 드라마가 단 한편이라도 있었다면, 그 드라마의 가격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불행히도 그런 기회를 사소한 이유로 놓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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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사마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놓친 사람들

요즘 '욘사마'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좀 모자란 사람이거나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연예계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아시아를 뒤흔드는 배용준의 위명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

이런 '욘사마의 치세'는 NHK가 드라마 <겨울연가(일본 방송명은 <겨울 소나타>)>를 지상파로 방송하기 시작한 지난 2004년 4월3일부터 2년간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위성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방송되며 마니아들을 양산했던 <겨울연가>가 지상파에서도 위용을 떨치며 배용준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겨울연가> 폭풍 이후 한국의 배용준 관련 소프트웨어는 동이 났다. 배용준이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모든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의 특수 상품이 된 것. 업자들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배용준이 2002년 <겨울연가> 이후로 현재 일본에서 방송중인 <태왕사신기> 외에는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없었다는 거였다.

그런데 '욘사마 신화'가 탄생하기 불과 3개월 전인 2004년 1월, 아주 사소한 문제로 배용준의 출연을 거절한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은 <폭풍 속으로>. 그 사연은 이렇다.

한국 TV 드라마계에서 2003년은 최완규 작가-유철용 PD-그리고 이병헌의 해였다. 바로 <올인>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었다. 다른 화제작도 많았지만, 이병헌-송혜교 커플의 탄생을 비롯해 '올인'보다 더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드라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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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 콤비는 2004년을 맞아 또 하나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폭풍속으로>는 최완규 작가가 젊은 시절 푹 빠져 있었다는 외화 <야망의 계절(Rich men, Poor men)>을 원안으로 한 작품. 어느 모로 보나 빈틈없고 철저한 엘리트인 형과 잡초처럼 자라난 동생의 이야기로, 원작격인 <야망의 계절>에서는 피터 시트라우스와 닉 놀테가 형제로 출연해 톱스타가 됐다.

<폭풍 속으로> 제작진은 형제 중 동생 역할을 배용준에게 제의했고, 배용준은 선뜻 '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배용준은 막상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자 독특한 제의를 했다. '시놉시스(드라마 기획안)가 지나치게 형 역할 중심으로 쓰여진 것 같으니, 동생 중심으로 다시 써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은 요청이었다. 시놉시스는 어차피 대본을 쓰기 전에 관계자들에게 드라마가 갖고 있는 대략의 골격을 설명해주는 정도의 용도로 쓰일 뿐, 정작 방송될 때에는 시놉시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가는 드라마도 비일비재하다. 제작진도 이미 동생이 실질적인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배용준에게 제의를 한 것이었고, 형 역할을 제의받은 몇몇 톱스타는 '동생이 주인공인 드라마'라며 출연을 거절했을 정도다. 게다가 그때까지 대본이 이미 나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더욱 동생 중심으로 대본을 쓰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놉시스를 다시 써 달라'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일. 그런데도 배용준은 '당장 보기에 좋지 않다'며 계속해서 수정을 요구했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라도 꼭 짚어 넘어가야 하는 꼼꼼한 성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별 것 아닌 문제가 자존심 대결로 발전하면서 결국은 출연 자체가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았다. 배용준의 입장은 "그거 고치는 데 돈이 드냐. 그만한 일도 못 해주느냐"는 것이었고 제작사 측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공연히 까다롭게 군다"는 것이라 의견차가 좁혀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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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의 성공으로 한껏 자신감에 차 있던 최-유 콤비는 사실 이런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박신양과 이정재라는 만만찮은 카드들이 <폭풍 속으로>'의 형제 역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배용준 카드가 사라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정재의 캐스팅도 불발됐고, 어찌어찌 하다가 이 역할은 <다모>로 가능성을 보인 신인 김민준에게 돌아갔다. 형 역할도 당초 예상과는 달리 김석훈이 맡았다.

그로부터 1개월 뒤, 제작진은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한 김민준의 연기를 볼 때마다 다 잡았다 놓친 배용준을 그리워해야 했다. <폭풍 속으로>는 20%대로 수준급의 시청률을 보였지만 배용준은 이내 '욘사마'라는 아호를 달고 먼 하늘로 날아올랐다.

만약 <폭풍속으로>가 '배용준의 최신작'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더라면 이 드라마는 도대체 얼마에 일본으로 팔려나갔을까. 지금도 <폭풍 속으로>와 관련된 몇몇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때 그거 좀 그냥 고쳐 줄 걸." (끝)






- 결국 '폭풍속으로'도 25%대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끝났지만 제작진의 눈에는 얼마나 배용준이 밟혔을까요. 물론 최완규 작가는 그 뒤로도 '해신'과 '주몽'을 히트시켰고 현재도 '식객'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저 때 생각을 하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앉아서 100억원대의 돈을 날린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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