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양 살다가 확

마녀사냥, 솔직해지는 세상을 대변하다

송원섭 2013. 11. 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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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가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19금'입니다. '19금' 속에 묻어 뒀던 이야기들이 세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핵심부에 JTBC '마녀사냥'이 있습니다.

 

방송 4개월째를 맞은 '마녀사냥'은 신동엽, 성시경, 샘 해밍턴, 허지웅 네 남자가 주축이 되어 털어놓는 짜릿하고 은밀한 연애 담론입니다. 물론 종래의 연애 이야기가 뭔가 미성년자용인 듯한 냄새가 났다면, '마녀사냥'에서 다뤄지는 것들은 철저하게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종전에도 '19금'을 표방한 프로그램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아예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누드 모델이나 성인영화배우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까지 시도된 적이 있었지만 대부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이들 프로그램들과 지금 자리잡고 있는 '마녀사냥'과 'SNL'을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마녀사냥'이 리드하는 '19금 해금'의 분위기에는 쏟아지는 농담 속에서 은근히 지켜지는 품위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인들이라면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이 정도 대화들은 하면서 서로 웃고 즐기지 않습니까'라는 식의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지고 있다고 봐야겠죠.

 

다소 야하다 싶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은근함'의 선을 넘지 않는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선을 지키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죠. 두 프로그램 모두 '신동엽의 통제' 아래 있다는 건 아마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마녀사냥'이 가고 있는 길은 어딘가 음습하고 으슥한 퇴폐업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누군가 별스러운 사람들이 즐기는 환락의 세계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면에서 이전의 19금 이야기들과 다릅니다. 방송 내용의 대부분은 시청자들이 보내 온 사연이나 질문으로 이뤄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녀사냥'은 우리 사회가 좀 더 솔직해지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한 10여년 전만 해도 이 사회의 결벽증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여름 시즌의 납량 특집 프로그램에서 여자 연예인이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하면 '선정적'이라며 철퇴를 맞던 시절입니다. 물론 그보다 조금 전에는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는 가수들이 울긋불긋 염색을 하고 나오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출연 정지를 시키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닙니다. 최근에도 남자 아이돌들이 수영장에서 수영 경기하는 모습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상의 티셔츠를 입혀 수영을 시키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 케이블TV 채널을 돌리면 클럽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짝짓기 게임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버젓이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부비부비'라는 말이 방송용어가 되기 시작할 무렵의 얘기죠. 이 시절, 이미 이런 프로그램은 클럽에서 춤추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방송으로 내고, 이들 역시 카메라 앞에서 아무 스스럼없이 평소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이쪽 채널에서 이쪽 채널로 옮겨 가면, 바로 다른 세상이 펼쳐지던 시절입니다. 한마디로 한쪽은 조선 시대 그대로, 세상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죠.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던 것들이 일부 강경한 도덕주의자들 때문에 엷게 가려져 있던 세상이었던 겁니다.

 

그러던 담론이 이제 세상 밖으로 서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혼전순결이나 결혼의 영속성이 무슨 금과옥조처럼 지켜지던 시절도 아니고, 남녀가 사귀기 시작하면 대략 어떤 단계를 밟는다는 것도 이미 다 아는 세상이죠. 특히나 젊은 층일수록 '아저씨 아줌마'들의 상상보다는 훨씬 앞으로 나가 있습니다. 온 세상이 다 변하고 있는데 TV 혼자 청학동 계곡 안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변화의 징후는 고정 출연자인 곽정은 기자(위 사진 왼쪽. 슈퍼모델 한혜진 옆에서도 밀리지 않는 미모가...)가 '코스모폴리탄'에 쓰는 칼럼들을 통해서도 나타납니다. 10년 전, 15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이런 식의 과감한 칼럼을 쓴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죠. 하지만 그 칼럼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고, 많은 사람의 공감을 사고 있다는 것은 이미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훌륭한 지표입니다.

 

그래서 하자는 얘기는: '마녀사냥'은 한국 사회가 보다 솔직해지고 있는 한 단면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는 겁니다. 물론 19금 방송은 방송 시간 준수를 비롯해 19금 방송으로서 지켜야 할 위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무지와 미신 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더욱 많은 세상에서 '마녀사냥'의 시도는 음지에서 수근거리며 이야기하던 것을 좀 더 많은 사람이, 밝은 광장에서 이야기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래도 되는 거야?' '저런 얘기를 해도 돼?' 같은 이야기들은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이 모두 주위 사람들과 아무 스스럼 없이 하던 이야기들입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들의 해금을 통해 세상은 좀 더 솔직해 질 것이고, 이유 없는 금기는 조금씩 사라질 것입니다. 이런 식의 해금은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이미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석천이 이 프로그램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이 사회가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성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필요 없죠. 이젠 그들도 이 사회에서 밥 먹고 숨 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옆에서 자기의 연애 이야기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식으로.

 

 

 

'예전에는' 구직자가 고용주에게 감히 '연봉을 얼마 달라'고 내놓고 요구하지 못했고, '예전에는' 교사의 비정상적인 폭력에도 학생들이 항거하지 못했고, '예전에는' 학교 안에 전경이 들어가 정치적 사안에 반대 집회를 여는 학생들을 잡아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쯤 지나면 누군가 "예전에는 '마녀사냥' 같은 프로가 방송될 엄두도 못 냈대"라고 말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세상은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의 방향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변하는 세상, 변하는 사람들을 느끼고 싶으신 분은... '마녀사냥'을 보시면 됩니다.

 

매주 금요일 밤 11시. 이제는 슈퍼스타K 보다 시청률이 잘 나옵니다. 당신만 세상에 뒤처져 있습니다.^^

 

 

P.S. 마지막은 전설적인 신동엽의 셀프 디스: '남자가 연락을 안 하는 4가지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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