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매카트니 내한공연] 세계 최고의 떼창, 인생 최고의 150분
2015년 5월2일. 또 한번 저의 공연 관람사에 남을 날짜가 생겼습니다.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0, 폴 매카트니 첫 내한 공연의 날입니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첫'이라고 쓰고 싶은 희망이 생겼습니다.
비 맞으며, 스마트폰으로 메모 해 가며, 셋리스트를 대략 기록했습니다. 물론 모르는 곡 넘어가고 넘어가고.
결국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셋리스트를 대략 정리해 봤습니다. 결론은 첫곡 빼놓고 이번 Out there 투어의 4월27일 도쿄돔 공연 때 셋리스트와 첫곡 빼고는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첫곡은 왜 바꾸셨을지... 너무 분주하게 사는 한국인들에 대한 동정의 노래?)
아무튼 토요일 잠실 야구경기가 끝나지 않아 종합운동장 주변 주차장은 모두 마비 상태. 거의 1시간 가까이 주변을 돌다가 그냥 될대로 되라는 식 주차. 다행히 견인되거나 하지는 않았더군요. 공연은 8:30 경 시작.
1. 8 days a week
2. Save us
3. Can't buy me love
4. Jet
5. Let me roll it
오프닝입니다. 애용하시는 곡들의 흐름이라 낯설지 않습니다. 일본에선 첫곡으로 Magical Mystery Tour 등장
6. Paperback writer
7. My Valentine
8. 1985 ('윙스 팬들을 위한 곡' 이라고 소개됨)
9. Long and winding road
10. Maybe I'm amazed
처음 듣는 곡이 나와서 잠시 당황. 그리고 Long and Winding Road에서 핸드폰을 이용한 조명이 장내를 밝히기 시작. 그리고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주최측에서 받은 우비가 있어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감전당할 위기만 피한다면, 오히려 빗속에서 보는게 더 재미있죠.
11.I've just seen a face
12. We can't work it out
13. Another day
14. Hope for the future
15. And I love her
14번은 Destiny인가 하는 게임에 사용됐다는 곡입니다. 폴 옹의 음악세계 밥그릇 수를 따지자면 꽤 신곡. 그런데 의외로 훌륭합니다.
16. Blackbird
17. Here today (존을 위한 노래)
18. New (신곡)
19. Queenie Eye (신곡)
20. Lady Madonna
먼저 간 존(레논)을 그리는 노래와 두 곡의 '신곡' 발표가 있었습니다. 물론 말이 '신곡'이지 2013년에 이미 발표된 곡들입니다(물론 이 공연을 보러 간 사람 중 절대 다수에겐 그냥 신곡이겠죠^^. 2013년에도 신곡이 나오고 있다는 게 마냥 놀라울 뿐). 그리고 그동안 미온적인 반응(?)이었던 관객들을 열광시킨 Lady Madonna. 아, 이제 막 달리는구나!
21. All together now
22. Lovely Rita
23. Eleanor Ligby
24.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25. Something (조지를 위한 노래)
...라고 생각하기엔 좀 일렀죠. 존을 위한 노래에 이은 조지를 위한 노래가 나오고 있으니 링고를 위한 노래는 왜 안 나오나 했지만 링고 스타는 멀쩡히 살아있는 인물. 뭐 살아 있어도 이 먼 나라까지 왔으면 링고를 위한 노래 하나 쯤은 해 줄만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그 다음 텀이 진짜 하이라이트.
26. Obladi Oblada
27. Band on the run
28. Back in USSR
세 곡 달려 주다가,
29. Let it be
한 박자 쉬는 척 하면서 다시 한 번 잠실을 핸드폰 불빛으로 덮어 버리고,
30. Live and let die
31. Hey Jude
두 곡의 킬러 넘버로 확실하게 본 공연 마무리. 특히 "Live and let die 는 건스 앤 로지스 노래가 아니야" 라고 으름짱을 놓는 듯한 강렬한 연주와 엄청난 물량의 불꽃놀이가 압권이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떼창곡인 Hey Jude는 뭐 굳이 군말이 필요 없을 열광의 무대. 폴 옹의 습관인 '자, 남자끼리 한번' '자, 여자끼리 한번', '자, 그럼 다같이'는 이번에도 여전했더랍니다.
이렇게 해서 1차 퇴장.
1st Encore
32. Day Tripper
33. Hi HI Hi
34. I Saw her standing there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첫번째 앵콜. 무대에 다시 올라온 폴 옹을 일부 관객들이 '나 나 나 나나난나 나나난나 헤이 주드'로 맞이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워낙 떼창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이지만 메인 공연 마무리 때 'Hey Jude' 떼창의 여운이 여전히 남아 있었던 거죠.
처음엔 다소 황당함을 느꼈던 폴 옹은 기타로 반주를 해 줘 가며 Hey Jude의 떼창 부분을 리바이벌 해 주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관객이 하고 싶다는데 해야지, 라는 최상의 팬 우선주의. (유튜브에 어느 분이 올리신 걸 퍼 왔습니다.)
살짝 세 곡 달려놓고 야속하게 무대 뒤로 숨어버린 폴 옹.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관객들이 알아버린 사실. 콘서트의 마지막 곡은 The End 다. 그 노래가 나올 때까지 다들 방심하지 마라!
2nd Encore
35. Yesterday
36. Helter Skelter
37. Golden Slumber
38. Carry the weight
39. The End
그야말로 화려한 마무리. 야~~ 정말 살다 보니 Yesterday를 폴 옹의 라이브로 들을 날이 오는구나.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 폴 옹의 매너는 정말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어렵게 어렵게 한국어 발음을 해 가며 '고마워요' '대박' 등을 구사하는가 하면 어떤 내한공연에서도 보지 못한 동시통역 서비스까지. 대단한 멘트를 한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관객들을 위해 이만한 배려를 한다는 게 참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가끔씩 구사하는 귀요미 포즈와 표정은 참.... 한번 귀요미는 영원한 귀요미라는 진리를 다시 한번.
많은 분들이 이런 말을 싫어하시지만 참 '정말 세상 좋아졌다'가 절로 입에서 나왔습니다. 레이프 가렛의 내한으로 남산 숭의음악당이 뒤집어지고 둘리스 내한으로 서울 시내 각급학교가 합동 '학생 단속반'을 구성하던 시절. 그나마 팝 신에서 알아줄만한 대형 밴드의 내한 소식이라고는 리틀 리버 밴드 정도가 고작이던 시절. 그 젊은 날, 퀸이나 키스, 딥 퍼플이나 아바, 마이클 잭슨이나 토토는 아예 한국이란 나라가 지구상이 존재하는지 마는지도 관심이 없던 것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절을 생각하면 마룬 파이브와 오아시스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국을 찾고, 비록 젊음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오지 오스본이나 롭 핼포드의 모습을 보면서 늦은 것이 없는 것 보다는 훨씬 행복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거인 중의 거인, 폴 옹의 아직도 정정한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풀이를 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수많은 버킷 리스트의 한줄이 지워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한편으론 이제 또 어떤 거인이 이만치 가슴을 설레게 해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로저 워터스는 잠실에서 감동적인 공연을 볼 수 있었고, 엘튼 존과 빌리 조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물론 두 사람이 한꺼번에 피아노를 맞대놓고 공연하는 FACE TO FACE는 아직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슨은 생전 세 차례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걸 행운으로 생각하렵니다. 그럼 이젠? 롤링 스톤스? 아이언 메이든? 리치 블랙모어? 지미 페이지? 액셀 로즈?
개인적으론 이 형님들을 한번쯤 만나 보고 싶은 기대가 있습니다. 한때는 진정 뜨거웠지만 지금은 마이너리티가 되어 버렸지만. 멤버들도 여전히 싸우고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