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그를 기억하게 하는 두 편의 드라마
김영애님이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뭔가 한마디 정리하는 글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뵙고 인사를 드린 적도 몇번 있지만 특별히 긴 대화를 나눴다거나 내세울 만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전혀 아닙니다. 그저 오랜 시간 그분의 모습을 본 시청자로서, 관객으로서의 입장일 뿐입니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1970년대 한국에서 TV 드라마는 지금보다 훨씬 영향이 큰, 온 국민의 대표적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흑백이었지만 TV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TBC, MBC, KBS라는 세 채널에서 방송해 주는 드라마야말로 경쟁 대상이 없는 대중의 관심사였죠.
그 시절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트로이카'가 있었습니다. 바로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이라는 세 이름이었죠. 사실 이 세 스타가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 가장 빛난 스타였던 것은 맞지만 이 셋은 바로 'TBC의 트로이카'였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탤런트(TV 배우와 영화배우가 이런 이름으로 구별되고 있었습니다)나 코미디언들에게도 전속 방송사가 있었습니다. TBC에는 TBC 배우들만 나오고, MBC에서는 MBC 배우들만 나오던 시절입니다. 그 시절 TBC의 위상은 워낙 강력해서 저 트로이카 외에도 홍세미 김창숙 김형자 같은 당대 최고 여배우들과 원미경 같은 최고의 기대주들이 모두 TBC에만 출연하고 있었습니다. 남자 배우로도 한진희 노주현 김세윤 같은 배우들이 모두 TBC 전속이었죠.
MBC가 드라마 왕국으로 거듭나는 것은 5공의 방송 통폐합 이후이지만, 물론 이 시절에도 MBC 드라마는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남자로는 이정길 박근형 현석, 그리고 여자로는 김영애 이효춘 같은 배우들이 MBC의 얼굴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KBS의 얼굴이라면 한혜숙 김자옥 정도의 배우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어렴풋이 남아 있는 제 기억으로는 방송 통폐합 이전 KBS 드라마를 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시절의 그 드라마 가운데서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나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김수현의 1978년작 '청춘의 덫'입니다. 이미 리메이크 작인 1999년판 '청춘의 덫'이 '전설의 드라마' 대접을 받는 분위기에서 78년작을 얘기하자니 뭔가 엄청난 옛날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매회 빠뜨리지 않고 '청춘의 덫'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다른 걸 다 떠나서 최소한 배우들의 연기 만큼은 1999년작이 1978년작을 따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GQ 아티클 '서울, 1978년 겨울'에서 퍼 왔습니다. 위 5장의 사진들이 모두 '청춘의 덫' 마지막회 장면들입니다.
(http://www.gqkorea.co.kr/2010/12/14/%EC%84%9C%EC%9A%B8-1978%EB%85%84-%EA%B2%A8%EC%9A%B8/)
78년작과 99년작은 인물의 이름부터 이야기의 구조가 일단 똑같습니다. *( )안에 78년작의 배우를 앞에, 99년작의 배우를 뒤에 써서 구별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난하지만 유능한 회사원 동우(이정길/이종원)는 윤희(이효춘/심은하)와 딸 하나를 두고 동거중인 사이. 형편상 결혼식은 올리지 못했지만 장래를 약속한지 오래인 관계입니다. 하지만 동우는 어느날 오너 가문 상속녀 영주(김영애/유호정)의 관심을 받게 되고, 인생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유혹에 직면합니다. 돈 뿐만 아니라, 착하지만 순종적이기만 한 윤희에 비해 활달하고 자존심 강한 영주의 매력이 강렬하게 어필하기도 합니다.
결국 동우는 윤희를 버리고 영주와 결혼하려 하고, 그러는 사이 동우와 윤희 사이의 딸이 사고로 죽음을 당합니다. 아이가 죽어가는 동안 동우가 영주와 있었다는 사실을 안 윤희는 180도 돌변합니다. 팜므 파탈로 변신한 윤희는 영주의 오빠이며 소문난 한량인 영국(박근형/전광렬)에게 접근,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오너 집안에 들어가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본래 기업 경영이나 가업 승계 따위에는 아무 관심이 없던 영국은 윤희 때문에 감춰져 있던 능력을 드러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합니다.
(물론 이 드라마가 방송되던 당시의 제 나이를 생각하면 이런 스토리에 사로잡혔다는 게 좀 이상하실 수도 있겠지만 뭐 굳이 그걸 따지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집에나 약간 이상한 애들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 )
아무튼 이 드라마는, 당시 굉장히 중요한 드라마 저널의 역할을 했던 조선일보 '방송주평'에 따르면, 초반에는 "때가 어느 땐데 1950년대 얘기같은 혼전관계 순정녀 이야기냐"는 말을 듣다가 윤희의 각성 이후에는 장안의 화제작이 됐고, 하지만 "미혼모가 변심한 애아빠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라니, 이렇게 부도덕한 내용을 온 국민이 보는 드라마로 방송하다니 제정신이냐"는 높은 분의 말 한마디에 갑자기 조기종영이 결정되는 비운의 작품이 돼 버렸습니다. 김수현 작가가 굳이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기로 한 데에는 '제대로 된 마무리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게 작용했다는 후문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배경 설명은 이 정도. 아무튼 당시 김영애라는 배우의 미모는 독보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위에서 나열한 수많은 당대의 톱 여배우들이 있었습니다만, 한국에서 보기 힘든 날카로운 콧날과 함께 '원조 얼음공주'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도시적인 미모를 갖춘 배우는 달리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른 배우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목소리에서도 지적이고 냉정한 면모와 함께 뭔가 감춰진 열정을 느끼게 하는 배우였죠(물론 이런걸 다 당시에 느꼈다는 건 아닙니다. ^^;; ).
아무튼 요즘도 한국 드라마에는 '도도하고 섹시하면서 평민(?)들을 벌레 보듯 하는' 재벌가 따님 캐릭터가 드물지 않게 등장합니다만, 근 40년 전에 그 원형을 연기한 배우로 이 배우만한 사람이 있었을까, 여기에는 반박하실 분이 별로 없을 듯 합니다. 특히 저 오리지널 '청춘의 덫'에서는 윤희의 정체를 가장 먼저 알아내는 사람이 영주인데, 그걸 안 뒤에도 오빠가 윤희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됐다는 사실을 알고 차마 비밀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런 내면의 갈등을 연기하는 김영애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두번째 작품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작품, '모래시계'입니다. 이 드라마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건 공간의 낭비이기도 하고, 다들 기억도 선명하실테니 넘어갑니다. 아무튼 이 드라마의 1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강렬했던 캐릭터는 바로 태수(최민수, 아역은 김정현) 어머니 역으로 등장했던 김영애입니다.
김영애는 젊은 날 좌익 운동을 하다 빨치산이 된 남편을 떠나 보내고, 혼자 아들을 키워 온 어머니 역을 맡았습니다. 수재였던 아버지의 유일한 흔적인 아들은 어머니에겐 인생의 유일한 의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혼자 몸으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요릿집을 운영하다 보니 여자로서 적잖은 수모를 겪어야 했고, (명시적이진 않지만) 알콜 중독이 됐어도 아들에 대한 사랑은 어쩌면 집착으로 보일 정도입니다. 잘생긴 아들이 공부하는 것만 봐도 흐뭇해서, 아들의 공부방 웃목에 소반을 들여 놓고 혼자 술잔을 기울이면서 앉아 있는 어머니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이 빨치산 아버지 때문에 출세길이 막혔다는 현실을 마주한 어머니는 세상을 살아갈 희망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술취한 몸으로, 바람에 날아간 목도리를 줍다가 기차에 치여 생을 마감하는 1회의 마지막 시퀀스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한때 대통령을 꿈꿨던 패기만만하고 똑똑한 젊은이가 어떻게 해서 좌절과 분노로 가득한, 태수라는 이름의 야수로 성장하게 되는지를 너무도 선명하게 설명해 주는 이야기였죠. 이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가 김영애가 아니었다면, '모래시계'의 신화도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개인적으론 최근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당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나이 많은 어머니 역할의 모습을 볼 때에도 이 '모래시계'의 잔상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아마 그랬던 분들이 꽤 있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고인의 업적과 공헌을 얘기하자면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 듯 하고, 감히 그럴 능력이 있다고 말하기도 힘듭니다. 다만 그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개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조의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늘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