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를 보다 생각난 드라마 만들던 시절
1. 6년 전. 드라마팀에 있던 시절. 뭘 드라마로 만들면 재미있을까 눈에 불을 켜고 찾던 무렵이다. 김보통이란 작가의 '아만자'를 재미있게 봤는데 누군가 'D.P. 개의 날'이라는 작품도 좋다는 얘기를 했다.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2인조 헌병 이야기. 흥미진진. 이거 너무 재미있잖아!
2. 원작을 사자고 제안했는데 전원 반대. 군대 얘기를 누가 보냐(아...). 칙칙하다(아닌데). 너무 어둡다(아닌데). 아무튼 좌절. 누군가 원작을 샀다는 소문을 들음.
3. 6년 뒤. '이거봐! 내가 뭐랬어! 잘만 만들었고만!' 이라는 생각보다는 '하긴. 6년 전 환경이면 안 먹혔을지도 몰라. 방송에선 안 통했을지도. 16부작 얘깃거리는 안 나왔을지도...'라는 생각이 더 먼저 들었다.
좋은 원작이 좋은 제작진을 만나는 건 드문 운이다. 얼마나 많은 좋은 원작들이 주인을 잘못 만나 얼마나 묻히고 있는지. 한준희 감독을 만난 건 '개의 날'의 행운이다.
4. 꼭 사서 만들어보고 싶던 웹툰이 '개의 날' 말고 세개 정도 더 있었다. 하나는 사려다 경쟁에 밀려 못 샀고(그러나 그 제작자는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다), 다른 한편은 열심히 우겨 원작을 확보했지만 제작에서 제외되는 바람에 결과를 보지 못했다. 기약도 없다.
5. 마지막 한편은 사자고 했을 때 '개의 날' 때보다 더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번엔 "정말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냐"는 반문을 몇 차례나 들었다. 무책임한 어른들 때문에 엉뚱하게 목숨을 걸어야 하는 아이들 이야기라서 한국 학원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열심히 주장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그새 누군가 사서 열심히 만들고 있고, 2022년 쯤에는 볼 수 있을 것 같다. 부디 잘 만들어주길.
6. 모든 일은 천.지.인이 합쳐져야 이뤄지는 법. 이 작품은 지금이 제 때일까? 만약 2017~18년에 나왔다면 제작단계부터 관심이 뜨거웠을텐데.
...어쩌면 나는 너무 빨랐던 걸까? ㅎㅎㅎ
#아니 #깜냥이안됐던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