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하다가/영화를 보다가

헤어질 결심, 솔직하지 못한 죄와 그 벌

송원섭 2022. 7. 5.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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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어질 결심>. 당장 보지 않으면 큰 일 날듯한 호평의 쓰나미. 더 이상 늦어지면 안되겠다는 조바심으로 극장에 달려갔다. 결론은... 역시 걸작. 아마도 <색계>보다는 이 영화가 탕웨이의 대표작으로 남을 것 같다. 

2. 눈감고 봐도 박찬욱의 영화. '멜로 스릴러'라는 평이 꽤 있었지만 이런 영화를 멜러라고 부를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블랙코미디이고, 훌륭한 스릴러이며, 언제나처럼 박찬욱이 천착해온 죄와 징벌에 대한 교훈담. 

3. 아름다운 영상과 무시무시한 음악, 함축적인 대사. 히치콕의 <현기증>과 <이창>을 시작으로 이미지를 차용한 듯한 고전 영화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개인적으로는 무대의 색감과 짐짓 어설픈(?) 배치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도쿄 방랑자>가 떠올랐다. 고경표의 호연 덕분에 그런 느낌이 좀 더 들었을 수도 있다.

4. 석줄 요약: 형사 해준(박해일)은 산에서 추락사한 중년 남자의 사인을 조사하다 미모의 젊은 아내 서래(탕웨이)를 보는 순간 강렬한 느낌에 빠진다. 모든 정황은 자살을 가리키는데도 해준은 석연찮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그녀를 일찍 떠나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 사건에는 정말로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아직 남은 것인가. 

아무튼 꼭 보시라는 말과 함께 이하는 스포일러. 웬만하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안 보시는 게 좋을 듯. 물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아래 글은 매우 개인적인 해석이고, 동의하지 않는 분도 많을 듯. 


5. 거의 모든 영화에서 박찬욱의 주인공들은 고전 그리스 비극처럼 벗어날수 없는 운명 속에서 선을 넘고, 그 댓가를 치러 관객들에게 교훈을 남긴다.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은 서래지만 두 죄인 중 더 큰 죄인은 해준. 그는 자신의 감정 앞에 솔직하지 못한 죄, 감정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죄를 범하고, 상대적으로 더 큰 벌을 받는다. 해준은 그녀가 자신을 절벽 끝에서 민다면 저항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고' 밀려 떨어질 각오는 되어 있지만 적극적으로 그녀를 구원하려는 시도는커녕 그녀에게 자신의 욕망조차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대체 그를 묶고 있는 굴레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그가 가장 중시하는 듯한 가치인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 직업인으로서 원칙의 고수를 위해서? 품위의 근간인 자부심을 위해서? 그렇게 해서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형식만 남은 중산층 부부의 안온한 삶? 그리고 영화는, 그가 그것조차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잔혹하게 보여준다. 

 

6. 그래서 <헤어질 결심>을 위선에 대한 우화로 읽는 시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그렇게 도덕을 말하고, 당위를 말하고, 기회만 있으면 정의를 말하지만 그 결과가 대체 무엇인가. 당신은 누구를 구하고 대체 누구를 잃었나. 무엇을 지킬수 있었나. 한편 이 이야기는 왕조 시대가 끝난 지 100여년, 민주주의 국가 건설 70년이 지났는데도 개개인의 해방은 요원하기만 한 한국 사회에 대한 조소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박찬욱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잘못을 경계하라는 교훈담이다. 

7. 이 영화를 멜로드라마로 읽는 시각에 동의하지 못한다. 이것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서래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안 탓에 인생의 무게를 새롭게 느끼고, 그걸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희생하는 벌을 받는다. 해준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지 못하고 억누른 댓가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얻었다(아마도 그의 불면은 죽을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런 무서운 징벌의 이야기를 과연 멜로라고 부를수 있을까. 트리스탄과 이졸데 이야기는 서로 미칠 듯이 사랑해서 파멸에 이르는 멜로드라마지만, 이 영화는 사랑을 이해하고 감당할 능력이 없어 천벌을 받는 인간들의 이야기다. 만약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나 그리스 신화의 파에드라 이야기가 멜로드라마라면... 이것도 멜로드라마겠지.

8. 언어는 과연 장벽인가. 해준이 쓰는 한국어와 아내 정안(이정현)이 쓰는 한국어는 사실 다른 언어다. 박해일의 언어가 관념의 세계에 머물 때가 많은 반면, 이정현의 언어는 사물과 1대1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정안은 수시로 이주임 이야기를 통해 박해일에게 '경고'를 던지고 있지만 그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어눌한 한국어와 번역기를 사용한 대화지만 서래와의 소통이 훨씬 잘 이뤄지는 것을 영화는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감탄할 만한 연출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서로의 언어에 능통하지 않은 남녀간의 감정 교류에 대한 영화로서 대단히 야심찬 시도인데, 불행히도 칸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듯 하다.


...대개의 문화권에서 심장과 마음은 같은 단어로 표현된다. 영어로도 heart는 심장이면서 마음이다. 문득 한국어는 '마음'과 '심장'을 선명하게 구분하는 특이한 언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9. 절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고의적으로 쉽게 스며들기를 포기한 영화. 대중적인 히트는 불가능하겠지만, 고전으로 남을 영화. 그런데 과연 20대 관객들이 보아도 이해할 수 있는 영화인지는,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