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하다가/영화를 보다가

짐 캐리, 과연 언젠가 아카데미상을 받을수 있을까

송원섭 2023. 5. 1.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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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놨던 글인데 타이밍을 놓침. 어쨌든 길어서 블로그에 올림.


해가 갈수록 너무나 한심한 영화상이 되어 가고 있는 아카데미상에서 올해 그나마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싶은 부분은 피터 위어의 '공로상' 수상이다. 아카데미 공로상은 언젠가부터 '유명한 분인데 그동안 우리가 상을 못 드리고 외면해왔던 분들'에게 드리는 상이 되었다. 

피터 위어

이 상이 원래 그 해의 분위기라는 것(좋게 말해 '시대정신')이라는 것에 워낙 민감하다 보니 '예년 같으면' 충분히 상을 받고도 남았을 영화들이 수상에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이 상이 워낙 근엄한 상이다 보니 코믹 연기로 부각이 되거나, 영화가 좀 희한하거나 한 경우에도 상을 잘 주지 않았다. 성룡, 스티브 마틴, 데이빗 린치 같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다. 

 

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온전히 봐도 충분히 상을 받을만 했는데도 좀 불운한 사람들의 경우, 번번이 뭔가 '사회적 이슈를 만드는 영화'들에 밀려 수상에 실패한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총 14번 후보에 올랐던 마틴 스콜시스의 경우 <디파티드>가 없었다면 공로상의 0순위 후보였을 터. 

 

피터 위어는 6회 후보에 올라 무관(골든글로브는 4회 무관)이니 스콜시스에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따르면 너무나 저평가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BAFTA에서는 <트루먼 쇼>, <죽은 시인의 사회>, <마스터 앤 커맨더>로 3회나 감독상을 수상했으니 결코 상복이 없는 감독은 아니다. 다만 아카데미가 그를 철저하게 무시한 것 뿐이다.
개인적으로 위어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트루먼 쇼>는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물론 올랐어도 <셰익스피어 인 러브>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영화가 있었던, 아카데미 기준으로 극강의 해였기 때문에 수상은 실패했을 수도 있겠으나, 나머지 후보작들의 면면을 보면 <트루먼 쇼>가 후보에도 오르지 못할 정도로 푸대접을 받을 영화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짐 캐리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평가를 받았을까. 

짐 캐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짐 캐리는 스콜시스나 위어는 저리 가랄 정도로 오스카가 철저하게 무시한 배우다. 캐리는 단 한번도 오스카 후보에 오른 적이 없고, 심지어 짐 캐리가 출연한 영화 중 어느 영화도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다. <마스크>나 <덤 앤 더머>는 말할 것도 없고, <이터널 선샤인>도, <트루먼 쇼>도, <맨 온 더 문>도 아니었다. 이런 일은 희극인에 대한 지독한 편견의 결과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코미디언들도 비슷하다. 유명한 코믹 배우들은 커리어의 어느 시점에서 '어디 오스카가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나 보자'는 심정으로 정말 재미없는 영화를 '작정하고' 출연할 때가 있는데, 예를 들어 빌 머레이와 스티브 캐럴은 각각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폭스캐처>로 1회씩 오스카 후보로 지명을 받은 적이 있다(두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께 죄송. 하지만 두 영화 모두 두 배우들이 '어디 나도 상 받는 영화에 한번 출연해 볼까?'라는 생각으로 출연했던 영화라는 느낌밖에 들지 않는다).

정말 진지하게 빌 머레이를 평가했다면 <고스트 버스터즈>나 <사랑의 블랙홀> 같은 영화였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짐 캐리도 위의 몇몇 영화를 통해 존 카우프만, 피터 위어, 밀로스 포먼 같은 '오스카가 외면하기 힘든' 영화인들과 공동 작업을 했지만 결국 실패한 걸 보면 오스카 심사위원들은 캐럴이나 머레이보다 캐리를 더 싫어했던 모양이다.

곡절 끝에 이번에 위어가 공로상을 받았으니, 언젠가 캐리도 공로상은 받을 수 있기를. 아니, 그 전에 아카데미 회원들이 정신을 차려서, 연기상을 받을 수 있기를. 위어 형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뒤늦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