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 압도적인 피날레, 시리즈의 최고작
0.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찍 영화를 접한 사람들로부터 '잘 모르겠다'는 평을 몇 차례 들었고, 솔직히 말해 <명량>과 <한산>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리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명량>은 지나치게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기 위한 전개가 좀 부담스러웠고, <한산>은 '전투'라는 사건을 지나치게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정작 주인공인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흐릿해져버린 점이 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노량>은 달랐다.
<노량>은 1598년 12월16일 밤부터 그 다음날까지 벌어진 해상 전투, 7년 전쟁에 종지부를 찍은 혈투를 글자 그대로 입체적으로 조명한 영화다. 이전의 두 작품에서 다소 평면적인 시야가 아쉬웠다면, <노량>에 등장하는 다양한 시각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이순신이라는 인물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는(특히 외모 면에서) 생각이 들었던 김윤석의 존재감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압도적인 절제미'라고 부르고 싶다.
그 밖에도 해전의 스케일, 전투의 박진감 모두 전작들에 비해 진일보했다. '전투 한복판의 정적' 신, 전장의 북소리 신 역시 그 섬세함을 모두 칭찬하고 싶다. 특히 '정적' 신은 전투에 참가한 3국 병사들의 시선과 이순신의 시선, 이순신의 마음 속을 한 흐름에 담아낸 명장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가슴이 뭉클.
혹시라도 세 편 다 보는게 뭔가 좀 부담스러워서, 혹은 <서울의 봄>을 보고 난 지 얼마 안 되어 또 극장에 가는게 부담스러워서 관람을 꺼린 분들이라면 어서 극장으로 가시길 권한다.
1. 노량해전은 어떤 전투일까. 한산해전이 희망 없는 전쟁에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영웅의 대업을, 명량해전이 궤멸지경이었던 조선 수군을 기적처럼 되살린 영웅의 재기를 상징하는 사건이라면, 노량해전은 7년 전쟁의 대미를 장식하는 결전이자 영웅의 최후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런데 상식으로는 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영화 <노량>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다른 두 전투와는 사뭇 다른 이 전투의 의미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량해전의 의미를 아는 사람에게는 사실 영화 속 진린의 대사,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겠습니까?"가 그리 무리한 말로 들리지 않는다. 1598년 12월. 이미 조선과 명, 그리고 토요토미 사후의 일본 조정은 일본군의 철병을 전제로 한 종전에 합의한 상태였다. 패배를 인정하고 도망치는 적에겐 항자불살 降者不殺의 아량을 베푸는 것이 고전적인 동양 무인의 대의. 게다가 승리가 담보되지 않은 출전 명령을 거부하다가 졸병으로 강등된 적도 있는 장군 이순신이, 그동안 치열한 전투에 시달렸던 휘하 장병들을 불필요한 전투에 몰아넣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설사 전투를 벌인다 해도, 적을 적당히 도망치게 내버려 둔 뒤 추격하며 전과를 올리는 것이 병가의 상식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순신은 왜군과의 화의를 인정하지 않고, '단 한 놈도 살려 보내지 않겠다'는 투지를 불사른다. 그 결과 정면 대결이 펼쳐지고, 엄청난 전과를 거두기는 하나 자신을 포함해 여러 장수들이 전사하고, 모든 전투를 통틀어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물론 일본군 역시 여기 맞서 결사적으로 싸웠고,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대체 왜 그랬을까. 꼭 그래야만 했을까. 만약 이 질문을 가져보지 않았다면, 노량해전이라는 이상한 사건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영화 <노량>을 높이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대체 왜'에 충실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2. 영화에선 몇가지 소재로 설명을 시도한다. 첫째는 아산에서 가족들을 돌보던 세째 아들 면의 죽음에 대한 복수심인데, 이건 영화 속에서도 진린의 추정일 뿐, 이런 개인적인 동기로 수많은 장병들을 죽음의 전투로 끌고 들어간다는 것은 충무공의 캐릭터상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보다는 두번째, 7년 동안 죽어간 동지들과 희생당한 백성들에 대한 복수라는 동기가 훨씬 와 닿는다. 물론 이것도 충분하지는 않다.
세번째, 이순신은 전투가 한창일 때 '이만하면 되지 않았느냐'고 묻는 송희립에게 다시 한번 잘라 말한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끝낼 수는 없다. 열도 끝까지라도 추적해서, 확실한 항복을 받아내지 않으면 제대로 끝냈다고 할 수 없다"고. (어쩐지 이 말은, 영화 <오펜하이머>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루쉰의 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영화 <노량>에서 이 말의 의미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 이순신의 입장에서 이 상황을 생각해보면, 결국 이 전쟁을 그대로 끝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을 것이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시다시피 임진왜란은 임진왜란(1592)와 정유재란(1597)이라는 이중의 전쟁이다. 전쟁 초기. 일본 수뇌부, 특히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이 조선에 출병한 이상 이 전쟁을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상식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명의 심유경과 일본의 고니시 주도로 종전 협상이 진행되며 왜군들은 1596년까지 서서히 철군을 진행했지만, 이 화의 조건의 구체적 내용이 상당부분 사기로 밝혀지며 히데요시는 격분하고, 1597년 다시 대규모의 왜군이 조선을 재침공한다. 이것이 정유재란.
이미 정유재란을 겪어 본 이순신과 조선의 일선 지휘관들이 과연 1598년 12월의 후퇴를 영구적인 후퇴라고 믿었을까.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때, 과연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었을까. 사실 이 부분이 핵심인데, 영화 <노량>은 이런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여지기는 하나, 아쉽게도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관객에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4. 물론 우리는 실제 역사를 통해 히데요시가 죽은 뒤 일본 전국 다이묘들이 둘로 갈라져 내전을 벌이느라 조선 재침공은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유성룡이나 윤두수 같은 정치인들이라면 다양한 정보를 조합해 재침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도 있었겠지만, 과연 당시의 이순신이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의 입장이라면, 퇴각하는 적을 추격해 산산조각을 내고 감히 재침을 상상할 수 없을 만한 피해를 주는 것만이 확실히 이 전쟁을 끝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만이 군사들과 백성들, 그 가족들이 다시 전쟁에 시달리지 않게 할 수 있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마지막 전투'에 목숨을 걸어야 했다. 비록 그 마지막 전투에서 휘하 장병들이 죽고 상하고, 그 자신이 목숨을 잃을지라도, 끝까지 싸우지 않을 수 없는.
5. <노량>은 여기에 보태, 그렇다면 일본 측 장수들은 어째서 그렇게 치열하게 목숨을 걸고 싸웠는가에 대해서도 충분한 명분을 제공한다. 물론 순천 왜성에 갇힌 고니시야 탈출하지 못하면 바로 끝장이니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시마즈 요시히로는 고니시 구조에 어째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는지 좀 궁금하다.
<노량>이 내놓은 답은 자존심. 사츠마의 시마즈 가문은 일본 전국시대에도 용명을 떨친 강병을 갖고 있었고, 특히 시마즈 요시히로는 칠천량에서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전멸시킨 바로 그 사람이자(영화 속에도 소개된다), 정유재란 당시 일본의 최대 승리라 할 수 있는 사천왜성 공방전에서 명군에 거의 1만 가까운 사상자를 낸 명장이었다.
시마즈가 노량해전에 목숨을 건 실제 이유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영화 <노량>에서는 고니시가 시마즈에게 편지를 보내 '이순신을 제거하는 공까지 세운다면 일본으로 돌아가도 감히 누가 당신을 핍박하지 못할 것'이라고 부추기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시마즈의 자존심과 자신감이라면, 충분히 물만한 떡밥이다.
사실 이순신이 왜군의 재침을 우려했다면, 반대로 고니시는 이순신을 앞세운 조명 연합군의 열도 보복 침공을 걱정했을 수도 있다(이것 역시 실제 역사상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우리는 알지만, 당시 왜군 다이묘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일본군 최강의 카드인 시마즈 군을 동원해 이순신을 공격하고 자신이 살 길도 만들 수 있다면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노량>은 이순신, 고니시, 시마즈에게 목숨을 걸고 노량 바다에 뛰어들 동기를 마련해준다. 지금까지의 <한산> <명량>은 물론, 거의 모든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입체적인 설계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런 잘 설계된 대립이 대다수 관객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되었는지는 약간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몇몇 부분의 대사에 좀 아쉬움이 있다.
6. 또 하나의 아쉬움은 여러 인물들간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생략된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대부분의 이순신 관련 드라마나 영화에서 진린과 이순신은 거의 버디 무비의 두 주인공처럼 묘사되곤 했다. 이것은 실제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진린과 이순신의 관계가 매우 좋았기 때문인데(진린은 일찌기 이순신을 가리켜 '경천위지經天緯地의 재주와 보천욕일補天浴日의 충절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최상급의 찬사를 보냈던 인물이다), <노량> 제작진은 이런 관계를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판단에서였을까. 진린/등자룡과 이순신의 매력적인 티키타카를 기대했던 관객으로서 좀 아쉽다.
물론 이 글 시작 때 말했듯, 이런 사소한 아쉬움에 비해 <노량>은 매우 세련된, 멋진 영화다. 진심으로 응원한다. 뭘 하고 있나. 빨리 예매를.
이후는 다소 뜬금없는,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들.
P.S. 1. 고니시의 사신으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아리마(이규형)의 갑주가 임진왜란 사극에서 흔히 등장하지 않았던 스페인풍의 남만동구족 갑옷이라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당시 포르투갈과의 교류가 많았던 고니시의 군대이니 고위 장교인 아리마는 포르투갈 수입 갑주를 입었을 가능성도 충분하긴 하다.
P.S.2. 이순신의 조총 피격 장면은 어쩐지 어린시절 본 김진규 주연 <난중일기(1978)>의 같은 장면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한민 감독도 이 영화를 기억할까.
P.S.3. 이면은 사망 당시 20세 추정. 그런데 굳이 여진구에게 덕지덕지 수염을 붙일 이유가...?
P.S.4. 여담이지만 노량해전에 대한 일본 측 해석 중에는 '일본군이 꽤 큰 피해를 입었다 해도 어쨌든 고니시의 일본 귀환이라는 작전 목표를 달성했고, 조선 최고 사령관 이순신을 전사하게 하는 전과까지 세웠으니 이것은 승리한 전투'라는 시각이 있다.
P.S.5. 패전하고 후퇴하는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분하다... 하지만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같은 대사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약 300년 뒤 시마즈의 후예인 사츠마의 유신지사들은 정한론과 한일합방의 주역이 된다. 이순신의 우려는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