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좀 하다가/영화를 보다가

씨너스, 하룻밤의 혈투로 압축한 블루스의 역사

송원섭 2025. 6. 22.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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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스포일러는 없지만 일단 영화를 보시고 읽어보시길 권장. 근 몇년 사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얼른 보라고, 극장에서 내려오기 전에 보라고 권한 영화가 없었다. 후회 안 하실 거라고 믿는다. 이상.

 

1. 블루스라는 단어가 나에게 의미를 준 시점을 기억한다. 1993년 여름, 취업이 결정되지 않은 애매한 시기에 갑자기 기회가 생겨 난생처음으로 미국 유람을 가게 되었다. 첫 도착지는 시카고. 당시 노스웨스턴대 유학중이던 친구 집에 기숙하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시카고에 왔으면 가봐야 한다고 끌고 간 곳이 블루스 바였다. 

허름한 창고같은 건물, 중학교때 이후로 본적이 없는 나무 책걸상 같은 테이블과 의자. 파고다극장만도 못한 무대. 그런데 온 손님 중에는 뭔가 상류사회 냄새가 나는 사람들도 있어 좀 의외였다.  

라이브 시간이 되자 지독하게 깡마른 흑인 노인 한 사람이 담배를 물고 무대로 걸어나와 아주 천천히 기타를 어깨에 걸치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어찌나 오래 걸렸는지 저러다 쓰러지는거 아닌가 싶었다. 이마 가득한 주름 사이에는 담배도 끼울수 있을것 같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불붙은 담배를 마이크 옆에 끼운 노인은 별 연습도 없이 바로 기타줄을 뚱겼다. 



그런데 그 첫 음, 지이이잉 하는 기타 소리를 듣는 순간, 아 이건 대체 뭐지! 하는 느낌이 머리를 띵 때렸다. 그때까지 태어나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였다. 곧이어 노인은 30년 동안 하루 5갑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절대 낼수 없을듯한 가래 끓는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당연히 가사는 한마디도 알아들을수 없었지만, 지금 그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한방에 알수 있었다. '삶에 대한 배신감', 바로 그거였다. 

젊어선 나도 한때 우쭐했고, 세상이 우습게 보였고, 연애도 많이 했어. 그런데 지금 내 꼴을 보면 알겠지? 인생이 그래. 기대? 기대하지 마. 도전? 그러다 내 꼴 나. 사랑? 야, 이게 정말 웃긴 건데 말이지, 내가 왕년에, 그런데 다 끝났어. 돌이킬수 없어. 뭐가 이래. 에이 씨발. 생각할수록 이건... 

표정, 목소리, 기타 소리, 완벽하게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흡수할수 있었다. 가사 따위 아무 필요 없었다. 어쩌면, 실제로 그날 그가 불렀던 노래 가사는 전혀 그런 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해라면 완벽한 오해였을 것이다. 뒤이어 드러머도 나오고, 사람들은 일어서서 춤을 췄다. 금세 쓰러질것 같던 노인은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맥주 한병으로 버텨서 세번의 라이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친구가 아주 잘난척하는 웃음과 함께 말했다.

 "이게 블루스라는거야." 

그 뒤로 집에 돌아와서 블루스에 심취해 자칭 국내 최고의 블루스 마니아가 되었냐....는 건 절대 아니었다. 블루스를 좋아하게 되었고, BB King이며 Buddy Guy며 들어 봤지만, 음반으로 듣는 블루스에선 그날의 처절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날의 쨍한 충격은 추억의 더깨가 얹혀지며 더 대단했던 것으로 포장됐을테니, 그 체험의 재현은 불가능했다.

운이 좋아서 나중에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를 가 볼 기회도 있었으나, 지독하게 상업화된 라이브 바들을 봤을 뿐이다.

그런데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씨너스>를 보고, 그날 밤의 그 감흥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2. 영화 <씨너스>는 미시시피주 클락스데일이라는 실제 존재하는 지역을 무대로 하고 있다. 거대한 미시시피강의 하구 삼각주를 가리키는 '델타' 지역이야말로 블루스의 고향이다. 

사실 이 클락스데일과 멤피스를 연결하는 선이 바로 블루스가 태어난 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도로의 이름이 바로 61번 고속도로고, 밥 딜런의 앨범 제목인 <Highway 61 revisited>에 나오는 그 61번 도로다. 일명 <블루스 하이웨이>. 이 도로로 나가기 전, 클락스데일 시내에는 일명 <블루스 크로스로드>라는 사거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에 가 보면 'Home of the Blues'라는 대문짝만한 아치가 걸려 있다. 하지만 이 홈은 블루스를 세상에 알린 홈이고, 진짜 고향은 클락스데일이라고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니까 블루스는 클락스데일에서 태어났고, 멤피스에서 성인이 되었고, 시카고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바로 영화 <씨너스>의 궤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글 제목을 저렇게 단 거다.)

델타 블루스의 완성자, 현대 블루스의 조상으로 불리는 기타리스트 로버트 존슨은 이 사거리에서 악마를 만났고, 악마에게 기타를 배워 불세출의 기량을 과시했다는 전설적인 존재다. 그 뒤로 이 사거리에 서 있으면 악마를 만날 수 있고,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전설이 생겼고, 랄프 마치오 주연 영화 <크로스로드(1986)>는 이 전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영화 <크로스로드(1986)>. 당대의 하이틴 스타였던 랄프 마치오가 스티브 바이와 기타 배틀을 펼치는 클라이막스가 압권.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당시의 록 마니아들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기타 배틀 신에서 악 소리를 냈다. 당대의 천재 속주 기타리스트, 스티브 바이가 '악마에게 혼을 판 기타리스트'로 나오기 때문에. 그 장면은 지금 봐도 재미있다.

바로 이 장면이다. 안 보신 분들은 한번씩 보시기를 권한다. 

왼쪽이 랄프 마치오(30여년 전 한때 <베스트 키드>, 혹은 <가라테 키드>라는 영화로 세계적인 하이틴 스타 반열에 오른 적이 있다), 오른쪽이 스티브 바이.

로버트 존슨

어쨌든 '전설'에 따르면 1911년생인 로버트 존슨이 어디선가 기타를 배워 클락스데일 무대에 신화처럼 등장한 것이 1932년, 그의 나이 21세때다. 그렇게 당대 최고로 인정받고 급사한 것이 1938년. 27세에 사망했으니 블루스의 신으로 군림한 기간은 대략 7,8년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영화 <씨너스>의 배경도 1932년 클락스데일이라는 것. 이쯤 되면 영화 <크로스로드>와 <씨너스>는 엄청나게 밀접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3. 영화에 대해 간단히 소개. 

1932년 미시시피주 클락스데일. 시카고의 알 카포네 조직 휘하에서 목돈을 모은 1차대전 참전 용사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이 쌍둥이 형제 양쪽을 1인2역으로 연기한다)이 돌아와 블루스 클럽을 연다. 백인 농장주 소유인 제재소 건물을 사서 블루스 클럽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이들 형제는 어리지만 발군의 블루스 기타리스트인 사촌 새미(마일스 케이톤), 관록있는 피아노-하모니카 연주자 델타 슬림(델로이 린도), 내장과 운영을 맡을 야오(보 초우) 부부 등 죽마고우와 일가친척을 모두 불러 모은다.

그렇게 해서 오픈한 클럽은 대성황을 맞고, 클럽 무대에 데뷔한 새미는 뛰어난 실력으로 갈채를 받고, 공식적으로는 금주법 시대지만 다들 흥청망청 부어라 마셔라 취해서 춤을 추는 흑인들만의 신명나는 잔치가 진행된다. 하지만 저 멀리 어둠속에서, 흡혈귀 무리들이 서서히 클럽을 노리고 다가온다. 그리고, 해가 뜰 때까지 살아남기 위한 인간들의 사투가 시작된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타란티노의 <황혼에서 새벽까지>가 오버랩된다.)

많은 출처에서 이 영화를 '이색적인 호러'라고 소개했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혈투가 나오니 그렇게 설명할 수도 있겠으나, 이건 참 생뚱맞은 홍보 방향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뱀파이어가 나온다고 우리가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호러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뱀파이어 군단

영화 속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백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들에게 물리면 흑인도 황인도 뱀파이어가 되기는 하지만, 뱀파이어 무리는 절대 다수가 백인이다. 영화 속 흑인들이 블루스 기반의 음악으로 흥을 올리는 반면, 뱀파이어들은 아일랜드 민요를 부르며 덩실덩실 포크댄스 같은 춤을 춘다. 이게 대체 뭘까. 조금 생각해보면 그리 어렵지 않은 구도다. 

많은 흑인들은 백인들이 흑인들의 것을 강제로 빼앗았다고 말한다. 일단 자유를 빼앗고, 노동력을 착취했고, 나중에는 그들의 영혼(이걸 soul이라고 하면 중의법이 된다)까지도 빼앗았다. 수많은 백인 뮤지션들이 흑인 음악의 정수를 가져가 자신들의 음악에 녹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영향을 받거나 새로운 장르로 탈바꿈시키는 정도라면 충분히 이해할 만 하겠지만, 아예 훔쳐 쓰는 경우도 흔했다. 

흑인 음악이 주류 음악으로 자리잡기 전까지, 아니, 자리잡기 시작할 무렵까지, 그러니까 흑인이 듣는 음악과 백인이 듣는 음악이 따로 있던 시절에 흑인들의 멜로디를 그냥 가쳐 가서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예를 들면 척 베리 같은 유명 뮤지션도 히트곡 <Sweet Little 16> 같은 히트곡을 그냥 도용당하기도 했다(이 곡이 바로 비치 보이스의 대표 히트곡 <Surfin USA>다). 이 곡은 발매 당시 그냥 브라이언 윌슨 작곡으로 표기됐다. 많은 흑인 뮤지션들이 이런 일들에 대해 아예 항변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척 베리는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Surfin USA>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았다. 

https://youtu.be/ZLV4NGpoy_E?feature=shared

아무튼 이 영화의 분위기로 볼 때 백인 뱀파이어들은 '자유, 노동력에 이어 흑인들의 영혼까지' 빨아 먹는 존재들이라는 은유가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렇다면 대체 왜 아일랜드 민요를? 이건.... 굳이 끼워맞추려면 아일랜드 출신들이 유럽에서 넘어온 백인 이민들 가운데서도 주로 하층 노동계급으로 천대받는 계층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인종주의든 뭐든, 계급간의 갈등은 실제 접점이 가장 넓은 지점에서 가장 강하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흑인들과 가장 접점이 많은 것도 백인들 중 최하위의 계급을 형성하고 있던 아일랜드계(혹은 폴란드 등 동구권)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이 흑인들에게 직접적인 박해자로 나섰을 것임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대략 그런 의미를 담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설정은 그렇다 치고, 도입부에서 영화는 어딘가 인디영화스러움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 특히 전반부에서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카메라는 자주 초점을 빗나가고, 조명은 지나치게 어둡다. 특히 실내 장면에서 인물들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 21세기의 첨단 문명 시대에 기술이나 제작비가 부족해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아마도 이런 설정들은 관객들을 자연스럽게 '1932년'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아닐까 한다. 전기도 제한적이고, 특히 실내 조명은 엉망이었을 당시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한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이클 B 조던과 라이언 쿠글러.

4. 호러 영화라고 누가 주장하든 말든, 사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음악+역사극이다. 음악 신동 출신인 마일스 케이톤을 비롯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직접 연주와 노래를 실연했다고 한다. 영화는 블루스라는 장르가 목화 따고 돼지 비계에 닭 튀겨 먹던, 비록 노예 신분은 벗어났지만 생활 수준은 그리 나아진 것도 없었던 델타 지역 흑인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노래라는 것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준다. 고된 노동과 낮은 보상, 딱히 꿈도 희망도 없는 삶 속에서 이들은 직설적인 가사와 음률을 통해 마음을 다스렸을 터. 이런 정서가 역사책 100권보다 묵직하게 가슴에 와 박힌다. 

플롯 면에서는 누가 봐도 타란티노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지만, 타란티노의 영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한과 그 한풀이가 담긴 영화. 그런데 자세히 보면 <황혼에서 새벽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멕시코를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장악해가고 있는 미국 마약상들이 구 아즈텍의 성소를 함부로 모욕했다가 아즈텍 지박령들에게 혼나는 이야기이기도 해서, 정서적으로는 꽤 근접해 있다. 다만 <씨너스>에선 <황혼에서 새벽까지>에서 느끼기 힘든, 짙은 페이소스가 풍겨 나온다는 정도. 

씨너스는 결국 결말에서, '불멸이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뱀파이어 영화의 클리셰 같은 이 질문에 대한 쿠글러의 답은 "이미 (블루스 뮤지션으로서) 나는 불멸의 존재다" 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블루스고, 블루스가 나인데, 이 육신의 불멸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탄탄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아무튼 <씨너스>근 3,4년 간 본 영화들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선명한 영화였다. 오랜만에 마음이 뒤흔들리는 걸 느꼈다. 사실 록키 시리즈를 다시 우려 먹고 있는 <크리드>도, 마블의 <블랙 팬서>도 개인적으로는 별 감흥 없는 영화들이었는데, 이 영화 한 편으로 라이언 쿠글러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됐다. 

아무래도 극장에서 내려갈 날이 머지 않은 것 같으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서두르시길. 어차피 좀 있으면 OTT에 올라오겠지...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직도 극장에서 보는게 압도적으로 더 좋은 영화들이 있다. 정말이다. 믿어라. 

P.S. 과연 내년 오스카에서 <씨너스>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벌써부터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