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에 대한 궁금증, 왜 어른들은 싸우지 않는가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을 보고 쓴 글은 맞지만 딱히 리뷰라고 하기는 애매한 글입니다. 극장판 <무한성편>은 일단 비주얼 면에서는 황홀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성의 렌더링이 감동을 자아내고, 격투신의 박진감 또한 매우 뛰어납니다.
물론, 그러나, 본인이 애니보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귀멸의 칼날>은 만화책 대신 애니로 거의 다 봤으면서...), 특히나 무한성편에서 모든 캐릭터들은 너무나 말이 많습니다. 장광설도 이런 장광설이 없습니다. 싸우는 시간보다 떠드는 시간이 훨씬 더 길고, 그게 제게는 심하게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저같은 이런 의견보다는, 비주얼 당연히 멋지고, 내용도 가슴저리게 감동적이었다는 분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아무튼 쓴 글은, 무한성편을 보다가 든 궁금증입니다. 대체 왜 어른들은 어디 가고, 아이들만 혈귀와 싸우고 있는거지?
시작.
무한성에 앞서 <귀멸의 칼날>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열심히 보고 있다(미친돗이 열광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뜻. 대단한 팬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이유). 보다 보니 묘한 생각이 떠오른다.
왜 귀멸대의 검사들은 이렇게 다 어릴까. 인류의 미래가 걸린 혈귀와의 전쟁을, 어른들은 왜 방관하고 있을까. 무한성 시점을 기준으로 가장 나이 많은 주 교메이가 27세. 탄지로는 16세. 나머지 주요 등장인물들은 10대 중반-20대 초반. 최연소 주인 토키토는 13세... 너무 어리다.
가장 먼저 나올 답은 '<귀멸의 칼날>의 타겟이 10대라서'인데 이건 너무 당연한 애기고, 그럼 이것을 설정이 어떻게 합리화하는가가 궁금했다.
첫번째 이유는 귀살대와 주가 얼마나 극한직업인가에서 기인한다. 즉 귀살대에서 혈귀들과 싸우며 20 중반을 넘긴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그 전에 대부분 싸우다 죽기 때문이다. 27세면 놀라운 나이. 귀살대가 되어 싸우면서 그 나이를 넘겨 심지어 늙어 죽을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행운이다.
그런데, 여기서 또다른 의문이 생긴다. 그렇게 혈귀와의 전쟁이 중요한 일이라면, 혈귀가 이렇게 날뛰는데 왜 조정은 적극적으로 토벌하지 않고, 혈귀와의 투쟁은 일개 가문의 일로 한정되어 있을까. 혈귀의 수장 무잔이 여러 경로를 이용해 조정까지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무잔이 조정을 움직여 귀살대를 토벌해버리는게 더 손쉬울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이 세계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약간 비약이 있겠지만, 가능한 답은.... 이 <귀멸의 칼날>의 세계에서 어른들은, '혈귀를 배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생각이 가능하다. 혈귀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존재이므로, 당연히 희생자는 계속 나오지만, 혈귀의 덕을 보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이 '혈귀'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자연재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죽는 사람은 나오기 마련.
그런 것이 바로 어른의 세계다. (다만 혈귀의 혜택이 뭔지는 잘 보이지 않는데, 그냥 넘어가자.)
귀살대는 그런 세계 안에서 인간의 마음을 지키려 싸우지만, 성인이 된 귀살대가 거의 없는 것은, 성인이 되기 전에 모두 전투에서 사망한다기보다는 살아남더라도 혈귀가 되거나, 혈귀의 존재를 인정해버리는(혹은 혈귀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인간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혈귀의 상현 중에는 귀살대 출신이 몇명 있고, 그중 아카자는 끝까지 물의 주 키유에게 '혈귀가 되라'고 권유하고 무잔도 탄지로를 혈귀로 만들려 한다. 사실 상현까지 성공한 것이 두명일 뿐, 귀살대에서 넘어간 인원은 실제론 훨씬 더 많은게 아닐까.
이런 시각에서 보면 <귀멸의 칼날>은 인간 사회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너무나 통렬하게 비웃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라고 모두 불의에 맞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아닌데, 세대가 바뀔 때마다 그들은 어느새 이들을 가로막는 존재(즉 혈귀)가 되어 있거나, 혈귀와 함께 살아가기를 택한다. 예를 들어 빵 공장에서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는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지만, 죽을 사람은 어차피 죽는다. 이건 자연재해나 마찬가지다, 라고 외면하며 살아간다. 이런 것이 혈귀 식의 논리다.
혈귀가 수십만 수백만이 아니니, 혈귀로 인한 희생자는 80억 인구에 비하면 극소수일 뿐. 그 정도를 희생시키고,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내 삶을 유지하는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어른들은 혈귀와 싸우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잔을 해치우는 과정에서 주인공 탄지로를 비롯한 귀살대 대부분이 죽거나 치명상을 입는 것도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그들은 이미 정상적인 '어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세상에서 혈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정말로 이런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귀멸의 칼날>은 정말 끔찍한 작품이 아닐수 없다. 비록 무잔을 해치우는걸로 끝났지만, 끝나지 않는 이야기... 무잔은 사라져도 다른 무잔이 어느새 만들어져 그 자리를 차지할테고. 아무튼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해석은 관객의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