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양 살다가 확

마이클 잭슨을 껴안은 남자는 지금?

송원섭 2009. 7. 18.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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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잭슨에 대한 기억을 더 잊기 전에 정리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러가지 일로 분주하다 보니 자꾸 늦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첫번째 내한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야 할 듯 싶습니다.

1996년 10월 11일, 역사적인 첫번째 공연 당일까지도 매표 성적은 꽤나 부진했습니다. 아마도 팝 아티스트의 공연으로는 최초로 10만원을 넘긴 티켓 가격이 워낙 고가였던 탓도 있었을 것이고, 공대위까지 결성해 조직적인 공연 반대 운동을 펼친 일부 기독교인들의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아무튼 공연 주최측인 태원예능 측은 "한국 공연이 마이클 잭슨의 월드 투어 중 유일하게 매진을 기록하지 못한 불명예를 안게 될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공연 전날, 보도진에는 몇가지 생소한 지침이 내려졌습니다. 우선 사진촬영은 공연 시작 후 첫 3곡까지만 허용된다는 것, 그리고 무대에서 거의 100m 떨어진 포토라인 이외의 지역에서는 일체 사진 촬영을 불허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이라면 상식적인 제한이었지만 당시만 해도 국내 매체들은 이런 제한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당초 공연 전 김정민과 클론이 오프닝을 할 계획이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핵심 장비를 실은 잭슨의 전용 수송기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공연은 1시간 이상 지연됐고, 무대 설비가 덜 끝난 탓에 오프닝 공연은 자동 취소됐습니다.

그래서 오후 8시가 다 된 시각, 마침내 공연의 막이 올랐습니다. 공연의 표제인 History에 걸맞게 역사를 거슬러 오르는 잭슨의 모습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되고, 애니메이션 속의 로켓이 실제로 무대에 착륙(?) 하면서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첫 곡은 'Scream'.


곡 순서는 이랬습니다.

"Gates of Kiev" Computer Animation Introduction
"Scream" / "They Don't Care About Us" / "In the Closet"
"Wanna Be Startin' Somethin'"
"Stranger in Moscow"
"Smooth Criminal"
"The Wind" Video Interlude
"You Are Not Alone"
"The Way You Make Me Feel"
Jackson 5 Medley: "I Want You Back" / "The Love You Save"
Jackson 5 Medley: "I'll Be There"
Off the Wall Medley: "Rock with You" / "Off the Wall" / "Don't Stop 'Til You Get Enough"
"Remember the Time" Video Montage Interlude
"Billie Jean"
"Thriller"
"Beat It"
"Come Together"
Black or White "Panther" Video Interlude
"Dangerous"
"Black or White"
"Earth Song"
"We Are the World" Video Interlude
"Heal the World"
"HIStory"

(이 사진은 1999년 '마이클 잭슨과 친구들' 때의 영상을 캡처한 것인 듯 합니다. 아무튼 크레인이 등장해서 그냥 참고로 보시라고 가져다 놓았습니다.)

잭슨의 무대는 가운데가 길게 타조 목처럼 객석 깊숙이 튀어나와 있는 형태였습니다. 이 튀어나온 부분의 정체는 크레인이었죠. 'Beat It' 때와 'Earth Song' 때 이 크레인은 높이 솟아 장관을 연출했습니다. 특히 Earth Song은 탱크가 등장하고, 탱크에서 내린 군인에게 소녀가 꽃을 달아주는 퍼포먼스를 통해 공연의 주제를 전달하는 중요한 곡이었죠.

11일 공연은 별 무리 없이 끝났습니다. 국내 초유의 스타디움 공연이었으므로 "무대가 너무 멀어서 안 보인다"는 불평들이 있었지만, 공연의 수준에 대해서는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죠. 수많은 기자들이 잭슨의 예측불허 동선을 쫓느라 지쳐 조금만 허물이 있으면 닥치는 대로 긁기(?) 위해 날을 세우고 있었지만 차마 공연에 대해서는 뭐라 악평을 할 재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13일 공연은 같은 날 바로 옆인 잠실 야구장에서 현대와 쌍방울의 플레이오프 최종전이 열리는 가운데서도 거의 매진에 가까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13일. 데스크에서 "잭슨 공연을 못 가본 사람도 많으니 오늘은 공연장에 가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어차피 모스크바에서도 똑같은 공연을 본데다 사흘동안 잭슨의 뒤를 쫓느라 지쳐 있던 터라 오히려 반가운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대형사고는 13일에 터졌습니다. 바로 '마이클 잭슨에게 매달린 남자' 사건입니다.

(처음부터 감상하셔도 좋지만 노래가 좀 깁니다. 3분 50초 정도부터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합니다. 전 세계 히스토리 투어 중 한국 영상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13일 공연 도중인 오후 9시40분쯤, 크레인을 사용하는 노래 두 곡 중 한곡인 Earth Song이 연주되고 있을 때 한 남자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무대로 기어올랐습니다. 경호원들이 제지하려 했지만, 남자는 가볍게 피해 막 공중으로 올라가려는 크레인 끝에 탄 잭슨을 껴안았습니다. 이미 크레인은 공중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잭슨은 남자의 허리를 꼭 끌어 안아 사고를 예방했습니다. 크레인이 공중에 떠 있는 동안 남자는 '완전히 얼이 빠져 보였고', 내려오자마자 경호원들에 의해 무대 뒤로 끌려갔습니다.

혹시라도 경호원들에 의해 구타(?)라도 당하지 않을까 몇몇 기자들이 무대 뒤를 체크했지만 남자는 마냥 황홀해 하는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사실 남자라는 것도 나중의 일입니다. 체구가 작고 머리가 단발이어서 이 상황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웬 여자가 마이클 잭슨에게 매달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실제로 한 신문은 '한 10대 소녀가 잭슨에게 매달렸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볼만한 상황(?)이 연출됐지만 불행히도 이 모습을 기록한 사진은 단 한장도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모든 취재 카메라가 퇴장한 다음이었기 때문이죠. 또 요즘처럼 디지탈 카메라가 보편화된 세상이라면 누가 찍어도 찍었겠지만, 불행히도 이건 13년 전의 얘깁니다. 결국 유일한 자료는 동영상인 셈입니다.

이날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 '휴지통' 란의 기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3일 밤 9시20분경 서울 잠실경기장에서 열린 마이클 잭슨의 2차공연 도중 마이클 잭슨이 무대 중앙 9m 높이의 리프트에 올려진 순간 김**군(19·**전문대 1년 휴학중)이 갑자기 『나도 가수가 되고 싶다』며 관람석에서 리프트계단을 타고 올라가 마이클 잭슨을 포옹하는 깜짝쇼를 연출…▶…관객들은 이 「사건」을 주최측이 연출한 것으로 알고 열렬한 환호를 보냈으나 김군이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벌인 해프닝으로 뒤늦게 밝혀져 실소…▶…한편 경호상의 책임을 놓고 대한경호협회와 백호기획은 상대방에 책임을 떠넘기며 실랑이를 벌였으나 정작 마이클 잭슨측 관계자는 『우리도 도저히 생각해낼 수 없었던 기막힌 쇼였다』며 김군에게 감사를 표시…

그토록 까다롭게 굴었던 잭슨 측이 "기막힌 쇼였다"고 즐거워 했다니, 참 뜻밖입니다.^^

이 대목에서 혹시 당시의 본인이 이 글을 보시거나, 주변 사람 가운데 이 분을 아시는 분이 있으면
fivecard@naver.com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분들이 이 때 이 분의 근황을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두 차례의 공연을 마친 다음날인 14일, 잭슨 일행은 다음 공연국인 타이완으로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아침, 잭슨은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해 축복을 받기도 했죠. 이때 잭슨은 교황, 김 추기경과 함께 '스톱 더 워'라는 노래를 만들자는 얘기도 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날 저녁 한국을 떠나면서 잭슨이 보여준 마지막 기행(奇行)은 공항에서 한 청원경찰의 유니폼을 산 것입니다. 제복 마니아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잭슨은 공항에서 청원경찰 박모씨가 입고 있는 푸른 색 제복을 보고 "저 옷을 갖고 싶다"고 손가락질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경호원이 500달러를 주고 청원경찰에게 "옷을 벗어 달라"고 요청, 이 분이 뜻밖의 횡재를 했다는군요.

5일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예측 불허의 스케줄로 기자들을 농락(?)했던 잭슨은 이렇게 한국을 떠났습니다. 워낙 고생을 했던 터라 기자들은 대부분 "제발 다시 오지 마라"라며 출국을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 옛날 일이군요.

그리고 나서 1년 뒤, 잭슨은 거짓말처럼 한국에 나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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