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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WCA가 최근 종영한 KBS 2TV '꽃보다 남자'에 대한 모니터링 보고서에서 이 드라마를 '절대 실패한 드라마'라고 규정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울YWCA 대학생 방송모니터회의 분석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런 단체에서 이 막장성이 다분한 드라마를 좋게 평가할 리가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TV 시청자들을 상대로 어떤 설문조사를 하더라도, '어떤 TV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고 싶으싶니까'라는 질문에는 누구나 '교양, 다큐멘터리, 사회고발성 뉴스 프로그램'을 더 많이 보고 싶다고 응답합니다. 어떤 조사에서도 '코미디, 리얼 버라이어티, 막장성 드라마'라고 응답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실제 시청률 조사는 그런 설문 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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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가 어떤 내용을 지적하고 있는지 역시 안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성공의 요인을 ▲가장 원초적인 욕구의 종합선물세트 ▲캐스팅의 대 성공 ▲노이즈마케팅의 위력 ▲힘들고 지친 일상에 대한 아스피린 등 덕분이라고 꼽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그렇고 그런 식상한 이야기 ▲고등학생이라고 믿을 수 없는 폭력, 유흥 문화 ▲갈 곳을 잃은 어설픈 스토리 ▲CG의 남용과 폐해 ▲카스트 제도를 뺨치는 계급주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 ▲한숨짓게 하는 여주인공 캐릭터 등을 들었다는군요.

아울러 여주인공 금잔디 캐릭터에 대해 "한마디로 이처럼 수동적이고 비독립적이며, 안하무인이고 종속적인 캐릭터는 본적이 없다"고 지적했고(이 부분에서는 심히 공감합니다), "철저한 배금주의와 신데렐라 콤플렉스로 무장한 '꽃보다 남자'는 새로운 막장 드라마의 개념을 확립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이상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했습니다. 사실 이 보고서를 직접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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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 드라마가 담고 있는 사상의 문제, 즉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를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갈 우려가 크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드라마의 완성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무리 이 드라마를 좋게 본다 한들 두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에는 누구라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첫번째 부분에 대한 비판이 이 드라마의 폐해인가 하는 점은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을 듯 합니다. '▲카스트 제도를 뺨치는 계급주의 ▲두 번 말하면 입 아픈 외모지상주의'가 이 드라마로 인해 장려되고 있을까요? 이 드라마 보다는 현실이 훨씬 이런 현상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지 않을까요? 과연 이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저 두 부분에 대해 '현실은 그렇지 않아! 이 드라마는 현실을 오도하고 있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드라마의 저런 부분들이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이 드라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현실과 선을 긋게 해 주는, 즉 '대놓고 비현실적인' 드라마라는 점입니다. 차라리 이 드라마보다는 '내조의 여왕'이 훨씬 현실과 맞닿아 있는 드라마죠.

'꽃남'이 끝난 뒤 지난주에 '꽃보다 남자가 남긴 것 - 아저씨가 본 꽃남'이라는 제목으로 원고 청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저는 이 드라마가 가진 수많은 문제는 문제로 치고, 이 드라마가 '한국 사회에서 나이든 여자들의 욕망이라는 부분을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밖에 - 왜 중년 남자들은 이 드라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나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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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저씨들은 왜 '꽃남'에서 소외됐나

지난달 31일 KBS-2TV ‘꽃보다 남자’의 마지막 회는 방송위원회의 경고 처분을 알리는 자막과 함께 방송됐다. 이 드라마에 지속적인 적대감을 표방해 온 사람은 적지 않다. 폭력 묘사, 지나친 간접 광고 등의 이유에서부터 형편없는 완성도라는 치명적인 약점에 이르기까지 ‘마음먹고 보면’ 비판할 구석이 넘쳐나는 드라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용서받아야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꽃보다 남자’의 존재 이유, 이 드라마의 미덕을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적이 있다. 그 답변을 요약하자면, 이 드라마가 ‘그동안 엄마·아내·이모 등 관계 중심의 호칭으로 규정되어 왔던 한국의 성인 여성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잊고 있던 본연의 욕망을 깨닫게 하는 데 공헌했다’는 것이다. 자칫 난해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다시 풀어 말하면 ‘여성들은 꽃미남을 보며 흐뭇해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온 세상이 피부로 이해하게 해 줬다는 뜻이다.

남자들에게는 오래전부터 이런 욕망의 은근한 표출이 그리 추하지 않은 것으로 허용되어 왔다. 사십이 넘은 나이에도 소녀시대를 보면서 헤벌레 웃는 것이 그리 주책 맞은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물론 ‘롤리타 콤플렉스’나 ‘원조교제’와 음습한 동기가 개입되어 있지 않다면 말이다.

반면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스무 살 언저리의 해사한 청년들을 보고 헤벌쭉 미소를 짓거나, 지나가는 미남 청년을 돌아보다가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부딪치거나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하지만 ‘꽃보다 남자’ 이후 많은 것이 변했다. ‘아내의 유혹’에 열광하던 주부들이 동시에 ‘사실은 꽃남 팬’이라며 커밍아웃하는 광경은 요즘 그리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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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드라마는 여자들에게만 꽃미남과의 우발적인 연애, 혹은 그와 관련된 바랜 옛 추억을 꿈꾸게 한 것은 아니다. 10대에서 20대에 이르는 남성 시청자에게도 이 드라마는 욕망의 대상을 구현한 판타지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들 역시 자신의 등장만으로 주위 여자들이 웅성거리는 모습을, (고교생임에도 불구하고) 멋진 스포츠카를 몰고 화려한 레스토랑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가는 장면을, 보다 나은 장래를 위해 공부 따위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재능과 환경을 꿈꾸기 때문이다.

사실 ‘꽃보다 남자’는 학교나 부모의 가르침보다 훨씬 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제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는 학생이라 해도 ‘서민 가정’ 출신인 한 유력가의 자제들에 비해 사회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요즘의 10대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소외된 계층이 중년 남성층이다. 당연한 일이다. 이들은 이 드라마에서 어떤 욕망의 대상도, 자신을 투영할 만한 대상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F4 멤버들에게서 젊은 날의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다행이겠지만, 대다수 중년 남성에겐 ‘미워도 다시 한번’의 박상원 같은 캐릭터 하나 없는 이 드라마가 영 낯설기만 하다.

‘꽃남 현상’의 이해를 위해 시청을 시도했다가 좌절하고 말았다는 중년 남성들의 경험담도 드물지 않다. 갑자기 궁금해진다. 만약 F4 대신 소녀시대 멤버들이 출연한 ‘꽃보다 소시’가 방송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아무튼 이 드라마의 사회적 의미를 아무리 미화한다 해도 드라마 본연의 가치인 극의 완성도를 거론하기 시작하면 이 드라마의 가치는 바람 빠진 공이 되고 만다. 가장 기본적인 플롯의 개연성에서 벌써 무너지기 시작하고, 뮤직비디오를 연결해 붙인 듯한 흐름은 대체 연출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회의를 느끼게 한다.

‘꽃보다 남자’의 최고 시청률은 가장 우호적인 수치를 따져도 35%를 넘지 못했다. 대단한 숫자지만 기록적인 높이는 아니다. 이 드라마가 방송되는 동안에도 경쟁작인 MBC-TV ‘내조의 여왕’이나 SBS-TV ‘자명고’도 모두 1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런 숫자들은, 그래도 드라마 한 편이 40%, 50%의 시청률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좀 더 나은 완성도를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찌 보면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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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윗글은 YWCA의 보고서 전에 쓰여진 것이고, 그 내용에 대한 반박도 아니지만 다만 마지막으로 그 YWCA의 조사 보고서에 대해 하고 싶은 얘기라면, 어떤 분야에서든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늘 똑같은 문제점만 지적하고 있어서는 어떤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세상은 자꾸 변하는데 늘 똑같은 19세기 서도 민요만 부르고 있으면 뭘 어쩌자는 겁니까. 더구나 대학생들이 본 시각이라면 30년 전에 어른들이 사용했던 용어들 말고 좀 더 참신한 시각으로 판단할 필요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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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 하반기 쯤에는, '꽃보다 소시(물론 가제)'같은 드라마 한편이 세상사에 지친 아저씨들의 가슴에 살포시 내려앉기를 슬쩍 기대해 봅니다. 만약 그때 대한민국의 온갖 아저씨들이 소주잔을 던지고 오후 9시 50분이면 칼같이 귀가해 TV 앞에 앉는다면, 그때 아줌마들의 표정은 어떻게 될지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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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그럼 '올해의 연예인'은 누구일까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테니 서로 다른 사람이 나올 겁니다. MC 지존 유재석이나 강호동, 음반 판매량 46만장의 동방신기, 남우주연상 6관왕의 김윤석, 8억 몰래 선행의 문근영, 신비주의를 벗은 서태지, 뿔난 국민엄마 김혜자까지 모두 충분한 이유를 가진 후보들이죠.

저는 그 중에서도 김장훈을 꼽겠습니다. 물론 제목에도 밝혔듯 선정 기준은 저의 편견이지만 입장이 다른 분이더라도 충분히 납득하실만 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 한국 연예계를 이끈, 그리고 연예인이라는 존재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마련한 인물이란 점에서죠. 이번 글은 그에 대한 간단한 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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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없이 선행 바이러스 퍼뜨리는 ‘쇼킹’
기부천사·독도 지킴이로 뜬 김장훈  
 
2008년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는 누구일까. ‘아시아의 별’ 보아에서 ‘월드 스타’ 비, ‘가왕’ 조용필이나 ‘대장’ 서태지, 당대의 지존 동방신기까지 많은 후보를 댈 수 있겠지만 질문을 살짝 바꿔 보자. ‘가장 존경할 만한 가수’라면 누가 첫손에 꼽힐까. 아마도 현재 시점에서 김장훈(41)을 능가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배우 문근영과 함께 한국 연예계를 대표하는 선행 아이콘이 된 김장훈의 연말은 분주하다. 19~24일엔 서울 올림픽 홀, 30~31일엔 부산 KBS 홀에서 ‘원맨쇼-쇼킹의 귀환’ 공연을 펼친 한편, 31일 개봉하는 영화 ‘미안하다 독도야’에선 내레이션을 맡았다.

1991년 데뷔 때만 해도 김장훈이라는 깡마르고 키만 큰 가수가 이런 존재가 될 줄 짐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엔 ‘김현식의 사촌 동생’이라는 꼬리표로 알려졌던(뒷날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직접 해명함) 이 가수는 불성실의 극치였다. 매니저가 갖은 애를 써서 출연 스케줄을 잡아 놓으면 어디론가 사라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소속사가 김현식·들국화·신촌블루스·김현철·장필순 등을 배출한 명문 ‘동아기획’이 아니었다면 가요계에서 매장당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워낙 존재감이 약했으니 미운털이 박혀 출연정지를 당했다 해도 별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97년, 당시 최고 인기 가수 중 하나였던 신해철이 공개 인터뷰 도중 “내가 보기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노래 잘 하는 가수가 김장훈”이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하하 소리 내 웃었다.

그로부터 약 1년 뒤, 김장훈은 4집 ‘발라드 포 티어즈’를 내놨고 ‘나와 같다면’과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크게 히트하며 언더그라운드 가수의 이미지를 벗어버렸다. 콘서트에서의 다양한 퍼포먼스와 관객을 즐겁게 한다는 다소 지나친(?) 의욕 때문에 한때 ‘가수냐, 개그맨이냐’는 시비도 있었지만 대중은 그의 철들지 않는 이미지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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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년 뒤) 김장훈과 관련된 화제는 올 한 해 내내 쏟아졌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광고를 뉴욕 타임스에 실었고 기름 범벅이 된 서해안을 살리는 데에도 앞장섰다. 남들이 모두 잊을 때까지 봉사원정대와 함께 시커먼 바위를 닦았고, 6월의 약속을 지켜 찬바람이 불던 지난 6일 충남 보령에서 ‘서해안 페스티벌’ 공연을 끝마쳤다.

어록도 생겼다. “대출 받아 기부한 적도 있다” “기부는 과시가 아닌 습관”이라는 말을 남긴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선행은 전염된다”는 말로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2009년 새해 계획도 이미 시작됐다. 서해안 경제 살리기의 일환인 ‘서해안 페스티벌’을 국제 음악제로 키워 내는 한편 올해 광복절에 이루지 못한 독도 공연의 꿈도 내년엔 꼭 성사시킨다는 각오다.

그와 고락을 함께 한 매니저는 지금도 24평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는 그의 노후를 걱정한다. “버는 규모를 생각해 나이 들어 쓸 돈은 남겨 놓고 기부했으면 좋겠다. 가끔씩 ‘욱’하는 성질로 통장 잔고를 탈탈 털 때는 솔직히 말리고 싶다”는 속내다.

또 다른 지인은 이렇게도 말한다. “뭘, 정치 하겠다고 나서지만 않으면 죽을 때까지 남들이 먹고 살게 해 줄 텐데.” 김장훈이 궁핍해지는 날이야말로 국민의 마음이 가난해지는 날이 아닐까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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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으로 직접 만난 것은 지난 1998년, '나와 같다면'이 한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던 시절입니다. SBS 등촌동 스튜디오에 있는 그와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때의 첫 느낌이 너무나 강렬해서 잊혀지질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니고 딱 이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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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혹시 하록선장..." 하고 말문을 열었더니 정색을 하고 "누구한테 얘기를 들으신 건가요, 아니면 그렇게 생각을 하신 건가요?"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아무 얘기도 들은 게 없다고 했더니 "아, 제가 하록선장이랑 비슷하다는 얘기를 참 좋아하거든요. 하록선장 팬이에요"라며 웃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의 '악명' - 스케줄 펑크가 한두번이 아니라는 - 을 익히 듣고 있었기에 어쩐 일로 이렇게 점잖게 방송국까지 오셨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어느날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안 되겠더라구요."

위에는 쓰지 않았지만 그가 방송 출연을 펑크낸 이유 중에는 황당무계한 것도 많았습니다. 언더그라운드 가수로서 왜 내가 방송같은 데 출연해 음악의 순수성을 훼손해야 하느냐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때는 함께 살던 매니저가 라면을 끓여먹고 설겆이를 안 해 놨다는 이유로 '잠수'를 타 버리기도 했답니다. 참 요즘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그렇게 인기가수가 된 뒤 김장훈 콘서트가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좍 퍼졌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정동 문화체육관에서 하는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콘서트 하다 말고 갑자기 영화가 나오고, 그 영화에는 당연히 김장훈이 나오고, 여주인공은 그 무렵 막 뜨기 시작했던 박경림이었습니다. 아무튼 공연 하다 말고 예의 발차기가 나오고, 목은 쉬고... 팬들은 열광했습니다. 이 정도면 꽤 중독성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2008년, 김장훈이 어떤 일을 벌이고 어떻게 진행해 나갔는지는 아마 거의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실 겁니다. 유난히 암운이 깊었던 2008년, 김장훈은 한 사람의 노력이 얼마나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범을 남겼습니다.

그가 올해 남긴 말 중 가장 인상적인 말은 '선행은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선행이라는 것도 누군가 보여 줘야 다른 사람이 따라서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지난번 문근영 때에도 얘기한 적이 있지만 선행은 본질적으로 감춰선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는 왼손과 오른손 얘기도 나오지만, 이런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이 영향을 받을 수 있도록 선행을 널리 알려야 합니다.

2009년에는 김장훈에 의해 또 어떤 기행과 선행이 펼쳐질까요. 자못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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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해 복많이 받으십쇼,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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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의 포뇨'가 국내에서 상영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관심도 다시 커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유명한 애니메이션 감독-제작자를 꼽자면, 1위는 이미 오래 전에 작고한 월트 디즈니일테고 두번째는 미야자키의 이름이 나올 겁니다.

미야자키가 왜 유명한지까지를 글 하나로 커버한다는 건 만용일테고, 얼마 전 '포뇨'의 개봉에 맞춰 미야자키를 잠시 돌아본 글을 쓸 일이 있었습니다. 이때 문득 일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안노 히데아키도, 오시이 마모루도, 다카하타 이사오도,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는 거장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대신 한국에는 봉준호, 임권택, 박찬욱이 있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많이 남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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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세계로 돌아간 67세의 거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몇가지 키워드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연친화, 환경보호, 반전 등의 주제와 그를 떼놓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다. 1978년 감독 데뷔작 '미래소년 코난'은 핵전쟁으로 철저하게 문명이 파괴되어 바다로 덮인 세계에서 시작한다. 그로부터 30년 뒤에 나온 최신작 '벼랑 위의 포뇨'에서 세계는 다시 한번 바다로 뒤덮일 위기에 놓인다.

포뇨는 인간세계가 싫어 바다로 떠난 마법사 아버지와 대양의 여신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얼굴의 물고기 소녀.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인간 소년 소스케와 포뇨는 서로 좋아하게 되고, 두 어린이의 사랑은 바다로 뒤덮일 뻔한 지구를 구한다.

1941년생이지만 미야자키에게서 은퇴의 기미를 발견하기는 힘들다. 오히려 21세기 들어 세계 유수 영화제들로부터 받은 찬사가 노익장을 뒷받침하는 분위기다. 2001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카데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 부문과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62회 베니스 영화제에선 평생공로상에 해당하는 황금사자상을 품에 안았다. 그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와 지브리 박물관은 전 세계 '아니메(Anime)' 마니아들의 성지가 된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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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일본에서 공개된 '벼랑 위의 포뇨'는 극장에서도 흥행 기록을 갱신하며 대박을 터뜨리지만 평론가들로부터는 '미야자키도 이제 늙었다'는 신통찮은 평가를 들어야 했다. 아름답고 감성적인 영상과 동화적인 이야기에 대한 어린이 관객들의 호응은 폭발적이었지만 부모들은 뒤로 갈수록 모호해지는 플롯에 고개를 흔드는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사실 그의 작품 목록을 살펴봐도 어린이용, 온 가족용으로 분류되는 작품은 '이웃집의 토토로' 정도다. 거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들이 10대 중반 이하의 소년 소녀지만,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만화영화는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통념을 씻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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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한 모험 드라마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일본 전설을 배경으로 한 '원령공주'에 이르기까지 담고 있는 메시지가 놀라울만치 성숙하기 때문이다. 오랜 전쟁에 염증을 느끼고 돼지 얼굴이 되어 숨어 사는 노장 파일럿의 이야기인 '붉은 돼지'는 굳이 말할 것도 없다.

미야자키는 이런 평가에 대해 주인공 소스케가 자신의 아들 고로의 다섯살 때를 모델로 했으며, "처음부터 다섯살 짜리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어쩐지 이 작품 속의 어른들은 동화적인 상상 속 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다. 소스케의 엄마 리사는 물고기가 사람으로 변했다고 주장하는 소스케를 미쳤다고 생각하거나 구박하지 않는다.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고 자란 어른' 들을 상징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의 장남 고로의 감독 데뷔작인 '게드 전기(2007)'는 혹평을 받았지만,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계에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을 보고 자란 '제2의 미야자키'가 즐비하다. 그 또한 자신을 애니메이터로 만든 것은 '우주소년 아톰(원제:철완 아톰)' '사파이어 왕자' 등을 만든 거인 데츠카 오사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한국에서 제2의 김청기, 제2의 신동헌은 언제쯤 나올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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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신동헌의 '소년 홍길동'이나 김청기의 '로보트 태권 V', '황금날개'를 보고 자란 세대 중에는 아직 그만한 스타 애니메이터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닐 겁니다. 정부의 지원이 문제라는 주장도 있을 것이고(물론 저 일본의 거장들이 정부의 체계적인 육성 방안에 의해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힘든 일이나 도제식 수업을 거부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보다 구체적인 데 강하고 상상력이 다소 부족한 듯한 국민성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스토리의 힘을 무시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보게 됩니다. 사람들을 극장으로 끌고 올 수 있는 것은 새로운 기법이나 신기한 CG가 아니라 흡인력 있는 스토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마지막으로 탄탄한 스토리의 국산 애니메이션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원작의 장점까지도 망쳐 버렸던 '아마겟돈'의 악몽이 되살아납니다)

아무튼 더 길게 얘기할만큼 아는 게 없어서 유감입니다. 다만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국산 애니메이션이 보고 싶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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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벼랑 위의 포뇨' 리뷰는 이쪽입니다. 일각에서는 메시지라고는 없는 '포뇨'를 보고 미야자키 선생의 에너지가 다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분의 메시지는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익숙하게 듣지 않았습니까? 이제 '토토로'의 세계를 다시 한번 본다고 나쁠 것도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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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메릴 스트립을 꼽습니다. 위대한 배우죠. 남자의 경우라면 말론 브란도,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더스틴 호프만 같은 배우들이 번갈아 꼽힐 자리지만 여자의 경우엔 메릴 스트립에 맞설 만한 경쟁자가 쉽게 거론되지 않습니다. 심지어 다이앤 키튼 같은 대배우도 "우리 세대의 천재"라며 경쟁의 뜻을 전혀 비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에게도 감히 '그게 연기냐'고 비웃을 수 있는 천적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미리 알려드리면 재미 없으니 끝까지 보시기 바랍니다. 앞부분의 얘기는 이 블로그를 자주 오시는 분들이라면 자칫 '또 이 얘기야?'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조금만 인내심을 보이시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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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 스트립, '맘마미아'에 잘 어울렸을까?

메릴 스트립이 주연한 영화 '맘마미아'가 국내 박스 오피스를 강타하면서 '적역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맘마미아'는 70년대의 명 그룹 아바(ABBA)의 노래만으로 제작된 뮤지컬. 지난 1999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이번에 영화화됐다.

스트립이 연기한 여주인공 도나는 갓 스무살의 딸과 함께 그리스의 한 섬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잘 나가는 여성 그룹의 리더였던 도나가 '사고'를 쳐서 아빠도 모르는 딸을 낳은 것이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므로 도나의 극중 나이는 많아야 4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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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트립의 실제 나이는 59세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젊어 보이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다. 주름살과 윤기 잃은 머리칼의 '전통적인 어머니' 상이 된 스트립과 뮤지컬에서의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도나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관객들이 상당수 있다.

물론 이런 무리를 모를 리 없는 제작진(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맘마미아'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맡았던 무대 연출가 출신)이 굳이 스트립을 캐스팅한 이유를 읽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영화의 주요 타깃을 30대 이상 여성층으로 놓고, 가능한 한 많은 관객들에게 '어머니'로 느껴질 수 있는 배우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스트립 본인이 "새로 배울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바와 '맘마미아'의 팬이라는 사실도 한 몫을 했다.

스트립의 도나 연기에 우호적인 여성 팬들 가운데도 '노래는 조금 아쉬웠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사실 여기엔 약간의 오해가 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메릴 스트립은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다. 12세때부터는 오페라 가수를 목표로 성악트레이닝을 받았고 영화 '뮤직 오브 하트'에 캐스팅됐을 때는 8주 동안 하루 6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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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노래 실력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영화 '에비타'의 에바 페론 역할을 놓고 마돈나와 경합했을 때 했다는 말에서 드러난다. "내가 마돈나보다 노래 실력이 나아요. 그래도 마돈나가 그 역을 차지한다면, 그 여자 목을 찢어버리겠어요(I'll rip her throat out)."

물론 진지하게 한 얘기는 아니었겠지만, 유튜브 같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그의 노래 실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실크우드'에서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나 로버트 알트만의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서 부른 '마이 홈 미네소타', '헐리웃 스토리(Postcard from the edge)'의 엔딩 장면에서 부른 '아임 체킹 아웃', 그리고 전성기 지난 여배우 역으로 나온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의 첫 장면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신에서 '미(Me)'를 부르며 보여준 춤과 노래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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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스트립이 왜 '맘마미아'에서는 적역 논쟁에 시달리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음역이다. 아바의 원곡은 아니프리드와 아그네사라는 두 명의 걸출한 여성 보컬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들의 청정 고음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귀에는 스트립의 저음은 거칠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스트립의 '실력'은 알토 음역으로 컨트리풍의 노래를 부를 때 드러나기 때문이다.

외모나 노래 실력에 대한 호오는 엇갈릴 수 있지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스트립의 연기력이다. '맘마미아'에 대해서도 "노래도 연기라는 점을 생각할 때, 목소리를 떠나 가사에 실린 감정의 전달에서는 완벽했다"는 호평이 적지 않다.

1979년 '디어 헌터' 이후 아카데미상 역대 최다인 16회 노미네이션과 2회 수상('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소피의 선택), 동시에 칸 영화제(1989년 '이블 엔젤스')와 베를린 영화제(2003년 '디 아워스')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여배우. '현존하는 최고의 여배우'라는 칭찬이 아깝지 않지만 유독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4회 수상해 역대 최다 기록을 갖고 있는 선배 캐서린 헵번은 "연기에서 딸깍 딸깍 소리가 난다"는 혹평을 해 눈길을 끈다. "톱니바퀴가 돌 듯 너무나 계산적이고 기계적인 연기를 한다"는 뜻이라나. (끝)


스트립의 수상 광경을 잠시 정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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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로 1980년 오스카를 수상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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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2004년 에미상 수상 장면입니다. 수상작은 'Angels in America'라는군요.

사실 스트립은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의 단골 시상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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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피터 오툴 때도 시상자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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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로버트 알트만이 생애 마지막으로 오스카 무대에 올라 공로상을 받을 때도 시상자였습니다. 그해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 출연하기도 했었죠.

자기가 출연한 작품이 작품상을 받아도 자신의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으면 아예 참가를 기피하는 어떤 나라의 배우들과 참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튼 '기계적인 연기'라니, 대체 누가 천하의 메릴 스트립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감히...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캐서린 헵번이라면 반대로 스트립이 그냥 수긍해야 할 얘기일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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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번은 '모닝 글로리(나팔꽃, 1933)',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 '겨울의 사자(The Lion in Winter, 1968)', '황금연못(On Golden Pond, 1981)'으로 4개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받았습니다. 스트립이 2회, 그것도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는 여우조연상이었으니 정말 불멸의 기록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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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4회 수상이 불만인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1907년생이니 26세때 처음 받고 60세, 61세, 74세에 세 개를 받았군요. 사실 아카데미상의 경로사상 덕분에 덕을 보기도 했을테니 스트립이 역전시킬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아무튼 캐서린 헵번은 평소 제레미 아이언스, 존 리스고, 글렌 클로즈를 좋은 배우로 칭찬했던 반면 스트립에 대해서는 '계산하는게 빤히 보인다'고 혹평을 했다고 합니다. 스트립은 '억울하면 역전'을 반드시 시켜 봐야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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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람들이 메릴 스트립과 가장 자주 혼동하는 스타는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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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많은 사람들이 글렌 클로즈와 메릴 스트립을 혼동한다고 하는군요.^ 글렌 클로즈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선셋 대로(Sunset Boulevard)'로 토니상 여우주연상도 받았고, 영화판에서도 바브라 스트라이젠드를 제치고 주연을 따내 이완 맥그리거와 공연한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영화가 개봉될 기미가 안 보입니다.

본래 1950년작인 '선셋 대로'는 글로리아 스완슨의 전설적인 명 연기로 기억되는 걸작이죠. 뮤지컬도 'With one look'같은 명곡이 히트했지만 흥행에선 별 재미를 못 봤다는군요. 저도 무대에서 전편을 본 적이 없어서 은근히 영화판이 기다려집니다.

우선 'Once upon a time'과 'With one look'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잘 알려진대로 '선셋 대로'는 자신이 아직도 전성기인 줄 아는 왕년의 스타 여배우와 시나리오 작가의 기이한 관계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위 영상은 이들의 첫 만남 장면. 남자가 "당신 한때 대단했잖아(You used to be big)!"라고 말하자 눈을 똑바로 뜨고 "I'm Big. It's the picture that's got small(난 여전히 대단해! 작아진 건 바로 영화야)"라고 말하는 여배우의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다음은 'As if we never said goodbye'입니다. 1995년 토니상 시상식. '백야'의 그레고리 하인즈와 '프로듀서즈'의 네이선 레인이 작품을 소개하고 글렌 클로즈가 등장합니다.




갑자기 엉뚱한 얘기로 흘러갔군요.^ 혹시 메릴 스트립이 예전 영화에서 노래하던 모습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로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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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문근영의 여장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그동안 젊은 화원 후보생들 사이에 끼어 선머슴아같은 옷차림과 말투로 귀여움을 과시하던 문근영이 마침내 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준 거죠.

남장 연기에 그새 익숙해지다 보니 여장한 모습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아무튼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신윤복의 미인도를 재현하는 모습에서 작은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문근영과 '바람의 화원'은 어떤 관계일까요. 과연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이 문근영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볼 때 '바람의 화원'은 문근영이 최근 2-3년 사이 추구하던 '성인 역할로의 변신'에는 그리 도움을 줄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연기자 문근영'의 길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작품이 될 수 있는 드라마죠.

물론 세계 어디서나 아역 스타의 성인 변신은 꽤 힘든 과제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죠. 거기서 얻어진 교훈은, 분위기가 - 외모든, 체형이든, 정말 외적인 상황이늗 - 갖춰지지 않은 성인 변신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문근영이 '지금 스무살이 넘었으니 어쨌든 성인 여성으로서의 연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떨치고, 지금의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연기에 올인하는게 도움이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선 '바람의 화원'의 신윤복 역할은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듭니다.

거기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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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동생', 이젠 '국민 남동생' 노리나?

문근영 이전에 한국엔 '국민 여동생'이 없었다. 국민가수 이미자-조용필, 국민배우 안성기는 몰라도 국민 오빠, 국민 엄마 등 가족에 대응한 새로운 호칭들은 모두 문근영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문근영을 통해 임예진이 '70년대의 국민 여동생' 임예진이 주목받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문근영에게 쏟아진 관심은 2000년작 드라마 '가을동화'에서 시작된다. 당시 주인공은 송승헌 원빈 송혜교 등 지금도 한류의 주축을 이루는 톱스타들이었지만 이 드라마의 인기를 낳은 것은 송혜교의 아역이었던 문근영과 선우은숙 사이에서 펼쳐졌던 눈물의 모녀 연기라고 보는 시각이 대세다. 당시 13세였던 문근영이 보여준 연기력은 이미 성인 배우의 수준을 넘어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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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저항할 수 없는 귀여움'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2003년에서 2005년까지. 이 기간 동안 문근영은 '장화 홍련(2003)', '어린 신부(2004)', '댄서의 순정(2005)'까지 세 편의 영화로 대한민국의 모든 총각들을 오빠로 삼았다. 일각에서는 롤리타 컴플렉스를 들먹이기도 했지만 요즘의 원더걸스와 비교하면 참 어이없는 얘기다.

2006년, 19세의 대학 신입생(성균관대 국문과)이 된 문근영은 '첫 성인 연기 도전'이라는 문구로 포장된 '사랑따윈 필요없어'로 제 2기의 문을 열었다. 결과는 '잠시 쉬어 가라'는 진단. 사실 '사랑따윈 필요없어'는 광고와는 달리 아예 성인 도전이 아니었다. 여전히 영화는 문근영의 하이틴 이미지에 매달렸고, 상대역 김주혁은 연인이 아닌 삼촌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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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실패와 대학 입학 과정에서 생긴 안티들('자력으로 수능을 치러 대학에 가겠다'고 했던 문근영이 결국 특례 입학한 것을 비판)로 인한 충격 때문인지 2007년 한해를 꼬박 쉰 문근영은 24일 첫 방송을 탄 SBS TV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을 통해 컴백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회가인 혜원 신윤복이 사실은 여자였다는 추정에서 출발하는 이정명의 소설 '바람의 화원'이 원작. 문근영은 당연히 신윤복 역이다.

단 두 편이 방송됐지만 문근영의 연기에 대한 평가는 찬사 일색이다. 입을 삐죽거리는 앳된 소년 모습은 더없이 잘 어울렸고, 김홍도 역의 박신양을 향해 외치는 "야 이 그지같은 놈아!" 같은 대사는 이제껏 문근영이 출연한 작품 중 가장 수위 높은 대사로 기록될 만 했다. 하지만 문근영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의 화원'은 '성인 역할로의 변신'이라는 전 세계 아역 출신 배우들의 공통된 난관을 이번에도 슬쩍 피해 간 작품으로 보인다. 이번 신윤복 역할은 성적 이미지가 배제된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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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여자 판타지는 양산백과 축영대 이야기를 다룬 중국의 양축 설화에서 유태인 율법학교에 몰래 들어간 여학생 이야기를 다룬 바브라 스트라이젠드 주연의 영화 '옌틀'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문화를 넘어 폭넓은 인기를 모았다. 특히 남장 미녀의 등장은 동성애적인 분위기와 이성애의 느낌을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고래로 수많은 이야기꾼들의 상상력을 자극해왔지만, 정작 그 대상이 되는 캐릭터는 중성적인 이미지로 희석되어 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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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문에 문근영은 '바람의 화원' 첫회에 벗은 등을 노출했음에도 전혀 선정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판타지 속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원인 성인 연기자 변신은 또 다음 작품으로 미루게 됐지만 변함 없는 탄탄한 연기와 사랑스러운 모습은 '안티'들을 제거하는 데에는 꽤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짐작된다. 혹자의 말처럼 이 작품으로 '국민 남동생'이 되는 건 아닐지. (끝)






뭐 사진을 통해 순서대로 리뷰하자면 이렇습니다.

'가을동화' 모습은 이미 저 위에 있고, 2003년 '장화홍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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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어린 신부'. 혹시 이 광경을 보고 다들 마음 속으로 '김래원 이 자식!'하고 주먹을 불끈 쥐시지 않았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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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5년의 '댄서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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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사이에도 성인 느낌이 나게 해 보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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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떻게 해도 섹스 어필이 강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더군요. 그리고 이번엔 남장 여자 역할입니다. 사실 예쁜 여자는 아무리 남장을 해 놓아도 예쁩니다. 게다가 어찌 보면 더 고혹적으로 보이기도 하죠. 그건 고도의 계산이 깔린 치장 때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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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좀 과장된 선머슴아 느낌을 내게 되고, 어떤 경우에는 진짜 남자보다 훨씬 더 강한 카리스마를 뿜어내기도 합니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런 느낌도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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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떤 경우든, 그 작품 자체로 '성인 여자의 느낌'을 주는 경우는 좀 드뭅니다. 사실 여자가 남장을 하고 오랜 기간 남자들과 지내는데도 여자라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죠. 물론 굉장히 남자같이 생기고, 체격도 남자다운 여자라면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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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미모의 여배우를 남장시켜 놨을 때 그 자체로는 성적인 느낌이 사라져버리는 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물론 여기서 정상이란 이성애자를 기준으로 얘기한 겁니다. 동성애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 자체가 현실이 아니라는 걸 보는 사람도 은연중에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죠. 판타지에 나오는 요정족이 어쩐지 중성적인 느낌을 주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같은 경우라면 아무래도 남장여자 쪽이 여장남자보다는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제가 남자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런 건 좀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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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우리의 깜찍한 근영군, 끝까지 잘 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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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의 얼굴만 봐도 이 분이 누군지 모를 사람은 아마 별로 없을 겁니다. 요즘 멜로 연기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올해로 연기 52년째를 맞는 대배우 이순재씨죠.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분이 중년 이전에 했던 대표적인 역할을 꼽으라면 쉽게 꼽는 분이 별로 없습니다.

나이가 안 되는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라, 이 분과 동시대를 살았던 분들도 선뜻 어느 한 작품을 꼽지 못하더군요. 물론 히트작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이 분의 역정을 다 설명하기엔 너무 짧은 글입니다. 한 단면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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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을 설레게 한 73세의 키스신
황혼 커플 연기로 최고 인기 누리는 이순재
| 제79호 | 20080913 입력  
 
배우 이순재(73)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의 이력을 제대로 따지려면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1992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를 통해 한때 한국적 아버지의 대표상으로 자리잡고, 그 이미지를 통해 국회의원을 역임했다는 것만으로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스타성은 21세기에 비로소 발휘되기 시작했다. 그것도 전 국민이 대상이란 점이 특이하다. 2006년 MBCTV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과 2007년의 MBCTV 사극 ‘이산’, 그리고 2008년의 KBS-2TV 주말연속극 ‘엄마가 뿔났다’에 이르는 잇따른 세 편의 히트작으로 세대 구분 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 50년에 이르는 그의 연기 역정에서 가장 빛났던 ‘대발이 아버지’ 시대를 능가하는 인기다.

안방극장 최고의 화제작인 ‘엄마가 뿔났다’의 인기에 불을 붙인 것이 장미희의 항복과 김혜자의 가출이었다면, 현재 이 드라마 최고의 화제는 이순재-전양자가 연기하는 황혼 커플의 아기자기한 멜로 연기. 지난 7일 두 사람의 키스신이 방송되면서 이 드라마는 40%에 육박하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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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재 이순재의 인기에 있어 특이한 점은 ‘나이 들어 인기를 얻었다’는 것만이 아니다. 이전에도 ‘노역 스타’라는 장르는 분명 존재했지만, 대부분의 노역 배우들은 어느 정도 일정한 캐릭터를 유지하기 마련이다.

1996년 100세를 일기로 사망하기 직전까지 폭넓은 인기를 누리며 활약했던 미국의 배우 조지 번스를 기억할 때 많은 사람은 굵직한 시가와 심술궂은 표정, 그리고 촌철살인의 유머를 기억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노역 스타라고 할 수 있는 김희갑이나 황정순을 떠올려도 작품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 않는 고유의 캐릭터를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이순재를 한두 가지의 이미지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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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번스가 누구야, 하시는 분들을 위한 이미지. 왼쪽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시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대신 오른쪽 모습은 너무나 유명하죠. 캐리캐처로 옮겨 놓아도 똑같다는 조지 번스 스타일입니다.)


최근 히트작들만 훑어봐도 그렇다. ‘엄마가 뿔났다’에서 사춘기 소년처럼 들떠 하는 충복과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야동순재’ 이 원장은 한국 TV에서 유례를 볼 수 없던 독특한 캐릭터들이다. ‘이산’의 영조는 상당히 전형적인 왕 역할이라 쳐도 70대 노배우가 짧은 기간 사이 이처럼 다양한 변신을 하고 있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10일 처음 방송된 MBCTV ‘베토벤 바이러스’의 ‘4차원’ 노악사 역할 또한 위의 세 역할과 공유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웬만하면 은퇴를 생각할 나이에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특징은 52년간 걸어 온 성격파 배우로서의 길과 무관하지 않다. 서울고-서울대(철학과) 출신인 이순재의 데뷔작은 흔히 62년 KBS TV의 개국 기념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자신의 출발점을 56년의 연극 ‘지평선 너머’로 친다. 전쟁 통에 사라진 서울대 연극부를 재건한 것도 그의 공로로 꼽힌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순재의 출연작을 검색하면 66년의 데뷔작 ‘초연’ 이후 극장용 영화만 178편이 나온다. 주연작도 꽤 있지만 이순재는 본질적으로 조연이나 상대역을 맡았을 때 빛을 발하는 배우였다. 당대의 꽃미남 스타들인 신성일이나 남궁원에 비견할 만한 스타덤을 누린 적은 없었다. 특유의 탁성(濁聲)이나 작은 키가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에 제약이 된 부분도 있고, 날카로운 눈매는 악역 전문, 특히 보스 역할이 어울리는 배우로 그를 특화시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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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성실함 하나로 ‘배우와 결혼하면 굶어 죽는다’고 공공연히 얘기되던 시절을 이겨냈다. ‘막차로 온 손님들’(67), ‘분례기’(71), ‘토지’(74) 등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은 이순재는 76년 작 ‘집념’에서 명의 허준 역할을 맡아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중년 이후의 화려한 스타덤을 예고하게 된다. 82년 드라마 ‘풍운’에서 흥선대원군 역할을 맡은 이후엔 주로 중년의 강직한 가장 역할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지금도 주말마다 자신이 지도하는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학생들과 함께 고전 희곡을 놓고 벌이는 워크숍이 ‘삶의 활력소’라고 말하는 노장 배우. ‘얼짱’도 ‘몸짱’도, 한때 잘나가던 청춘 스타도 아니었지만 결국은 누구도 넘보기 힘든 만년의 스타덤을 쌓아 올렸다는 점만으로도 한국 연예사에서 그의 위치는 공고하기만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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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뿔났다'에서 문제의 그 키스신이 방송된 다음날, "대체 마지막으로 키스신을 해 보신게 언제냐"고 후배를 시켜 여쭤보게 했습니다. "아, 왕년엔 많이 했지!"라는 대답이더군요. 그런데 그 마지막이 무려 40년 전, 1967년 '막차로 온 손님들'에서의 키스신이라는 겁니다.

위 사진은 1969년작 '춘원 이광수'에서 젊은 이광수 역을 맡았을 때의 모습이고 상대는 당시 최고로 막 올라설 무렵의 남정임입니다. 그러니까 저 포즈에서도 더 이상의 발전(?)은 없었다는 뜻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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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간 영화만 거의 200편. 분주하던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중반까지는 1년에 7-8편에도 출연했던 경력에 비해(물론 당시엔 너나 할것 없이 이 정도를 찍었습니다), 당시의 회고담은 참 어처구니없는 것이 많습니다.

사귀던 애인(물론 결혼 전 얘깁니다)의 가족이 "아나운서인줄 알고 교제를 허락했는데, 배우라니 굶어죽는 것 아니냐"고 사이를 반대했다는 얘기, 결혼 후에도 생활고 때문에 만두집을 해야 먹고 살 수 있었다는 얘기, 그 만두집에도 '배우가 한다'고 소문이 나면 각다귀들이 몰려들까봐 아예 가게 근처에 얼씬도 못 했다는 얘기 등등.

이순재씨가 요즘 배우들에게 가장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은 역시 '기본기 부족'입니다. 1962년, 한국에도 TV가 생겼을 때 모든 드라마는 생방송이었습니다. 당연히 시간이 1분 넘쳐도 안 되고, 모자라도 안 됐던 거죠.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투씨'에서 생방송으로 시트콤을 진행하는 모습이 나오곤 했는데, 아무튼 배우들이 기본적으로 연기가 받쳐 주지 않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아, 더욱 코믹한 건 당시에는 CF도 모두 생방송이었다는군요. 드라마가 끝나고 카메라가 옆으로 돌아가면 그 자리에 상품 선전대가 차려져 있고, 배우들이 그 자리에서 광고 멘트를 읽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요즘의 홈쇼핑 광고처럼 했다는 거죠.

아무튼 이런 '생방송 시대'를 살아온 분들인 만큼 대본도 숙지가 안 되는 젊은 배우들과 함께 일하는게 불만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이런 '선생님 급' 배우 중에서 젊은 배우들이 가장 겁내는 사람은 박근형씹니다. 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야단을 치기 때문이죠. 대신 배우는 것도 많기 때문에 존경도 받습니다. '자기 배우'를 크게 키우고 싶어 하는 매니저들은 일부러 박근형씨와 같은 드라마에 집어 넣어 '교육'을 받게 하기도 하죠.

박근형씨가 이렇듯 엄한 학생주임 스타일이라면 이순재씨는 조용히 한마디씩 툭툭 던져서 잘못을 바로잡는 교장 선생님 스타일이라는군요. 하긴 김태희를 보고 "요즘 서울대는 얼굴 보고 뽑냐?"고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들 중 하나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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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작한 '베토벤 바이러스'를 보면 또 하나의 희한한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평소엔 너무도 조용하고 깔끔한 노인이다가 갑자기 흥분하면 우유 팩을 발로 밟아 터뜨리기도 하는, 살짝 다중인격 양상을 보이는 오보에 연주자죠.

한국 시청자들이 이렇게 노역 배우에게 관심을 갖게 한 것도 이순재씨의 공로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쪼록 오래 오래 건강하셔서 더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시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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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지게 가난한 아버지(주성치)와 아들(서교). 하지만 둘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구김살이 없는 부자간이고, 예쁜 선생님(장우기)도 이들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 앞에 어느날 아버지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워 온 외계인의 애완동물 장강 7호가 나타납니다.

장강 7호는 대체 어떤 능력을 갖고 있을까요?

사실 그렇습니다. 이런 내용의 영화 '장강 7호'는 재미있는 영화긴 하지만 결코 주성치의 대표작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지금까지 주성치가 쌓아 올린 수많은 매력적인 영화들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를 분석하고 자시고 하는 건 주성치에 대한 모욕이 되겠죠. 씹을 것 하나 없이 그냥 훌훌 들여마셔도 좋은, 아주 편안하고 유쾌한 영화입니다.

다만 21일 '장강 7호'의 개봉에 맞춰 한번쯤 주성치 얘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냥 그래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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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아닌 서민의 별, E.T에 도전하다

주성치(저우싱츠, 周星馳)가 나타나기 전, 홍콩 영화계에서 최고의 스타가 되려면 용의 이미지(龍像)를 가져야 했다. 이소룡(李小龍)과 성룡(成龍)은 상이한 캐릭터였지만 정의롭고 당당한 용의 느낌에선 일치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21세기, 당금 천하는 이들의 후계자랄 수 있는 이연걸(李連杰)가 아닌 주성치의 차지가 돼 있다.올해 46세. ‘소림축구’와 ‘쿵후 허슬’로 아시아를 넘어 세계인의 스타가 된 이 사나이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올드 팬들에게 주성치는 트럼프 카드를 양손으로 문지르는 익살스러운 초능력 청년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1990년대 초, 홍콩 누아르의 끝물에서 유덕화(劉德華) 주연의 ‘지존무상’ 이후 갑작스러운 도박 영화의 붐이 일었다. 그 흐름을 다시 비틀어 놓은 것이 주성치의 ‘도성(92)’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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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쥔 카드를 다른 카드로 바꿀 수 있는 청년 역을 맡은 주성치는 그때까지 홍콩 누아르를 지배하던 의리와 비장미를 한 방에 날려 버리고, 극도로 유치한 코미디도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후 ‘심사관’ ‘도학위룡’ ‘녹정기’ 등 유치 만발 코미디들이 홍콩 박스오피스를 연타했다. 영토 반환을 앞둔 홍콩 사람들은 잠시나마 모든 걱정을 잊게 해주는 주성치의 코미디에 환호했다. 하지만 그는 코미디로만 자신의 재능을 낭비하지 않았고 다양한 시도로 내공을 키워갔다. 주성치의 열혈 팬들이 꼽는 최고작 ‘서유기’ 2부작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특히 손오공의 모습을 한 주성치가 자신이 ‘가지 않은 길’을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은 중국 영화사에 남는 명장면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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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와 손오공의 관계는 그의 인기를 설명하는 단초가 된다. 일찍이 중국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이 “중국을 이해하려면 일단 ‘서유기’를 읽으라”고 말했듯 중국인들은 개구쟁이지만 선량하고, 작고 우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강한 손오공의 활약에 수세기 동안 열광해 왔다. 손오공을 계승한 대표적인 캐릭터로는 중국 무협의 거장 김용(金庸)이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은 ‘녹정기’의 위소보가 있다. 많은 중국인들은 말썽꾸러기에 허풍쟁이지만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주성치에게서 손오공과 위소보의 얼굴을 본다. 그가 두 역할을 모두 연기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로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세상의 부조리를 웃음으로 승화시켜 온 그는 21일 개봉하는 ‘장강 7호’에선 농민공(農民工) 문제를 겨냥했다. 중국 사회의 새로운 불안 요인으로 꼽히는 농민공이란 급속한 도시화를 계기로 농촌에서 이탈해 도시 근로자로 흡수된 사람들을 말한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대규모 건설 공사에 투입됐던 농민공들은 안전 올림픽을 지향하는 당국의 정책 때문에 일제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져 논란을 낳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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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는 ‘장강 7호’에서 날품팔이로 아들을 키우며 사는 농민공을 연기한다. 제대로 교육 받은 사람만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며 무리해서 아들을 고급 초등학교에 보내는 아버지다. 더 이상 꿰맬 자리가 없는 운동화는 ‘소림축구’ 때나 마찬가지지만, 주성치의 마력은 구차하고 궁상맞은 생활도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져 오는 추억으로 바꿔 놓는다.

주성치의 실제 모습은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영화 속에선 대개 한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지고지순한 인물형을 많이 그려냈지만 실제론 대단한 바람둥이다. 특히 신인들을 연인으로 삼아 홍콩 영화계의 빅 스타로 키워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여왔다. ‘도성’의 장민(張敏)을 비롯해 ‘식신’의 막문위(莫文蔚), ‘선리기연’의 주인(朱茵) 등이 대표적이다. ‘장강 7호’의 장우기(張雨綺)와도 26세 차이의 연인 관계였지만 최근 결별했다는 소문이 있다.

할리우드에서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베스트 셀러 만화 ‘드래곤 볼’의 영화화에 제작자로 참여 중인 저우싱츠는 홍콩에서는 ‘쿵후 허슬 2’의 제작-감독-주연을 모두 맡아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린 시절 이소룡의 열렬한 팬이어서 영춘권을 연마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소룡이 초창기 출연했던 TV 시리즈 ‘그린 호넷’의 영화화 작업에도 참여해 자신의 영웅에 대한 의리를 보여주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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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치의 '장강 7호'는 E.T에 대한 도전 - 그가 초기에 계속했던 '홍콩 레옹' '홍콩 마스크' '주성치의 007' 등을 생각해보면 이 또한 할리우드의 값싼 변형으로 볼 수도 있지만 - 인 동시에, 찰리 채플린의 '키드'에 대한 오마주로도 보입니다. 사실 주성치의 세계에서 채플린의 영향을 발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포복절도할 듯한 웃음 속에 숨어있는 진한 감동이 그의 특기이니 말입니다.

아무튼 주성치의 세계는 일찌기 그 안에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그의 팬으로서 기쁜 건 작품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아직도 보지 못한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죠. 언젠가는 다 보게 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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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축구'와 '쿵푸 허슬'을 안 보신 분은 이미 없으리라고 치고, 그 이후에 주성치의 세계로 들어서기를 바라는 분들에게는 '희극지왕'을 권합니다. 초능력도, 쿵후도 나오지 않지만 주성치의 웃음과 페이소스를 느끼는 데 있어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식신'이나 '북경특급 007 2(대내밀탐)', '파괴지왕' 등으로 가는 게 좋겠죠. 이 작품들을 마쳤다면 이제 많은 주성치 팬들이 걸작으로 꼽는 '서유기' 2부작을 보셔도 좋습니다. 특히 2편 '선리기연'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오랜 여운을 남깁니다. 이 장면은 우디 앨런의 '애니 홀'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엔딩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주성치와 홍콩에서 생각하는 주성치의 가장 큰 차이라면, 중국어권에서 생각하는 주성치는 대단한 미남이라는 것입니다. 글쎄요, 한국 관객들에겐 양조위나 유덕화와 주성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는 것도 같은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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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 7호'의 비밀무기는 국내에도 '짝퉁 송혜교'로 잘 알려진 장우기입니다. 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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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얼굴이 똑같다 치면 훨씬 경쟁력 있는 쪽은 장우기라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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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개봉을 앞두고, 조커역을 맡은 히스 레저의 연기력에 대한 경탄이 줄을 잇고 있는 가운데, 이 영화가 한국 관객들에겐 지나치게 답답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깁니다.

이번 글은 그 '답답함'이 바로 배트맨의 본질적인 요소라는 데 대한 얘깁니다. 영화 리뷰는 아직 아닙니다.




악과 싸우는 고뇌를 너희가 아느냐
고지식한 미국식 영웅 배트맨의 귀환
송원섭 기자 | 제73호 | 20080802 입력  
 
배트맨, 1939년생, DC 코믹스의 간판 스타, 일명 다크 나이트(Dark Knight).

70 평생을 사는 동안 수많은 만화가에 의해 수십 차례 다시 태어난 수퍼 스타지만 설정의 주요 부분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본명은 브루스 웨인. 성경에 나오는 죄악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의 이름을 합한 고담 시티(사실은 뉴욕) 최고의 재벌 후계자이며 미남 독신자.

당연히 바람둥이지만 이런 행각에는 자신의 정체를 감추려는 의도가 포함돼 있다. 수없이 많은 미국 만화 속 수퍼 히어로 중에서 배트맨처럼 초자연적인 능력이 없는 영웅은 아이언맨 정도밖에 없다. 그의 무기는 두뇌와 체력(무술), 그리고 웨인 그룹의 막대한 재산이 투입된 첨단 과학 장비다. 무장과 의상에서부터 자동차·모터사이클, 심지어 비행기까지 동원한다. 당연히 장난감 회사가 가장 사랑하는 수퍼 영웅은 배트맨이다.

물론 그를 규정하는 특징을 꼽을 때 내면의 어둠을 빼놓을 수 없다. 배트맨은 어린 시절 부모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고, 그로 인해 복수의 화신이 됐다. 그의 정의 실현은 아무래도 복수의 연장선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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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의 그는 어둡기보단 냉정함이 돋보이는 캐릭터였다. 66년부터 방송됐을 때의 의상이 밝은 보라색이었던 반면 89년 팀 버튼의 극장판 ‘배트맨’ 이후에는 완전히 밤에 녹아 드는 검은색 의상이 자리를 굳혔다. 의상 색깔이 어두워진 배트맨의 성격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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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낮과 밤이 다른 정체성이다. 고담시의 시민으로서 법 질서를 무시한 자신의 정의 구현이 과연 어디까지 정당한 것인지 고민한다. 그의 역할은 범인을 잡아 사법기관에 넘기는 것.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거의 없다.

사실 이런 영웅답지 않은 성격으로 인해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 그에 대한 선호도에는 꽤 큰 차이가 난다. 국민 기질과 사회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 자기 편을 제지하며 “악당이라도 함부로 죽이면 안 돼!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지!”라고 외치는 순간 한국 관객들은 한숨을 쉬며 시계를 본다.

뒷일이야 어쨌든 ‘테이큰’이나 ‘아이언맨’처럼 화끈하게 자기 손으로 모든 걸 처리해 버리는 주인공이 한국인의 정서엔 더 어울리는 것 같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를 상식으로 안고 사는 한국인들에게 ‘수퍼 영웅이라도 법과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배트맨의 고지식함은 답답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런 면에서 7일 개봉하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두 번째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의 한국 흥행 성적에 관심이 쏠린다. 배트맨 최고의 적수인 조커(히스 레저 분)는 이 영화에서 인간의 내면과 타락을 조종하는 절대악을 상징한다. 조커를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조커는 끊임없이 정의의 수호자들에게 “너희도 나도 똑같다”며 마음을 흔든다.

당연히 배트맨도 '내가?'하는 고민에 빠진다. 이러니 미국에서 ‘다크 나이트’는 역대 단기 흥행 기록을 모두 허물며 약진 중이지만, 한국 관객들은 조커를 보자마자 기관총으로 벌집을 만들어 버리지 않는 배트맨을 보고 더욱 울화가 치밀 수도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이 영화 속의 배트맨이 부시 대통령과 닮았다는 한 우익 작가의 칼럼을 실어 눈길을 끌었다. 룰을 지키지 않는 테러집단과 맞서 싸우기 위해선 어느 정도 인권의 제한이 불가피하지만 그걸 무시하는 진보 진영(원문은 ‘좌경 세력’)은 ‘자유의 투사’들을 범죄자로 몰고 있으며, 따라서 현재 부시가 욕을 먹는 것은 정의로운 배트맨이 오해와 모함에 시달리는 것과 같다는 주장이다. 어쩐지 많이 듣던 얘기라 더욱 흥미롭다.

이번 배트맨은 ‘배트맨 비긴스’에 이어 크리스천 베일이 연기한다. TV 시리즈 때의 애덤 웨스트에서 시작해 마이클 키튼, 발 킬머, 조지 클루니로 이어지는 박쥐 가면의 주인이다. 외모와 연기력에서 가장 이상적인 배트맨이란 극찬을 받았지만 이번 작품의 개봉 시기와 맞물려 어머니와 누나를 구타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스타의 두 얼굴과 배트맨의 두 얼굴이 절묘하게 교차된 셈이라고나 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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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부시의 관계에 대한 글은 저 아래 링크되어 있습니다.)

사실 누가 만든 배트맨이든, 배트맨은 너무 생각을 많이 하고, 행동은 상대적으로 덜 합니다. 행동을 한다 해도 슈퍼맨처럼 미사일을 받아 던지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하니 성에 차지 않을 가능성이 높죠.

저는 이런 생각은 한국 관객들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미국 유머 사이트에 나온 다음 유머를 보니, 그런 생각은 미국에서도 보편적인 인식인가보더군요. 제목은 '슈퍼맨과 배트맨이 한 영화에 같이 나오지 않는 이유(Why The Superman/Batman Movie Will Never Happen)입니다.

원문 주소는
http://www.collegehumor.com/article:1757347. 대충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시나리오 형식입니다.



고담시 경찰서. 배트맨이 짐 고든 경찰청장과 경찰관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배트맨: 낭비할 시간이 없어. 투페이스(배트맨 만화 시리즈의 단골 악당)가 은행에 인질을 잡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슈퍼맨,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등장.

슈퍼맨: 헤이, 브루스-맨, 늦어서 미안해. 상황이 어떻지?
배트맨: 글쎄, 내가 보낸 상황 요약 메모에 적힌 바와 같이...
슈퍼맨: 오, 걱정마. 대강 봤으니까. 그놈 이름이 더블페이스였던가? 그놈의 무기가 뭐랬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던가? 아니면 엄청 빨라?
배트맨: 아냐. 음. 그놈은 사실 '2'라는 숫자에 굉장히 민감하지.
슈퍼맨: 하하! 장난하지 말고. 뭘 할줄 알지? 심리 조종?
배트맨: 글쎄, 피부 트러블이 좀 심하지.
슈퍼맨: 나랑 농담하자는거야! 1초만 기다려.

슈퍼맨, 벽을 뚫고 사라지다.

배트맨: 사실 그 피부의 문제라는 것은 즉 그의 이중성에 대한 은유로서...

슈퍼맨, 수갑을 채운 투페이스를 데리고 재등장.

슈퍼맨: 끝났어.
투페이스: 뭐야, 이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슈퍼맨: 그냥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범죄를 예방한 것 뿐이야. 그게 전부야.
배트맨: 하지만... 그 사명이란 것도 있고... 우리 부모님은...(우물쭈물)
슈퍼맨: 친구, 걱정은 좀 그만 해. 자네는 좀 더 밝게 살 필요가 있어.

배트맨의 의상 사이로 눈물 한 방울이 비친다.

슈퍼맨: 어쨌든 난 지금 갈건데 누구 혹시 태워줬으면 하는 사람 있나?

경찰관 한명이 손을 든다.

슈퍼맨: 이봐, 내가 '누구 혹시'라고 말하면 그건 방에 있는 여자들 중에서 누구란 뜻이야. 없어? 그럼 댁들 손해지 뭐. 나중에 보자고!

슈퍼맨, 다른 쪽 벽을 뚫고 사라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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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습니다. 만화에서는 수시로 같이 등장하는 슈퍼맨과 배트맨이 영화에서 함께 나온다면 저런 식으로 배트맨이 바보되기 십상일 거란(?) 날카로운 지적이군요. 물론 웃자는 얘깁니다.

아무튼 '다크 나이트'를 보면 한국 관객들은 대단히 울화가 치미는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건 배트맨의 본질에 기인한 것이지, 결코 영화를 잘 못 만들어서 그런 건 아니라는 변명 한마디. 영화 자체는 대단히 훌륭합니다.

'다크 나이트' 리뷰는 다음번에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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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과 부시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시려면:



'다크 나이트'를 보시고 이 글을 읽어보시면 아주 황당무계한 얘기는 아니더군요.^




아무튼 이 글을 추천하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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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개봉됐고, 세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정우성의 '기럭지'와 이병헌의 패셔너블한 모습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인 것이 역시 '이상한 놈'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송강호는 이제 배우 개인을 넘어 아예 한국 영화 자체가 되어 버릴 정도로 커졌습니다. '놈놈놈'은 그걸 재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가 얼마나 거대해졌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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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이름 석자는 100만 명 흥행 보증수표
일간스포츠 조사 티켓 파워 1위 배우
송원섭기자 | 제71호 | 20080719 입력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줄여서 흔히 ‘놈놈놈’이라 불리는 영화가 화제 속에 공개됐다. 정우성·이병헌·송강호라는 세 빅 스타의 경합이 궁금증을 자극했지만, 평자들은 세 주인공 사이의 연기 대결은 없었다는 데 입을 모았다. 결국은 ‘이상한 놈’ 송강호의 독무대가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충분히 예견됐던 결과다. ‘한국 영화=송강호’라는 이름은 괜히 생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송강호의 힘’은 숫자로도 충분히 느껴 볼 수 있다. 일간스포츠는 최근 한국 배우 중 최고의 티켓 파워를 가진 배우가 누구일까를 조사했다. 2000년 이후 2008년 상반기까지의 영화를 대상으로, 송강호·설경구·장동건·이병헌 등 한국 영화를 대표할 만한 배우들이 주연한 작품(조연이나 카메오는 제외)의 관객 수를 비교해 본 것이다. 그 결과 누적 관객 수에서는 송강호가 1위(3400만 명), 작품당 평균 관객 수에서는 장동건이 1위(395만 명)를 차지했다. 몇 가지 여건상 2000년 이후의 작품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지만, 만약 580만 관객을 동원한 1999년작 ‘쉬리’가 포함됐다면 송강호가 두 부문을 모두 석권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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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송강호에겐 다른 배우들이 따를 수 없는 꾸준함이 있다. 대개 영화 흥행이란 들쭉날쭉하기 마련이지만, 2000년 이후 송강호가 출연한 10편의 영화 중 100만 관객을 동원하지 못한 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다. 일단 ‘송강호 주연’이란 간판만 걸리면 최소한 100만 명은 믿고 극장을 찾았다는 뜻이다.

1967년생. 29세 때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스크린에 데뷔했을 때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김상중·최민식·설경구·유오성 등 대학로 연극판의 에이스들이 앞다퉈 영화며 드라마로 진출하던 시절, 송강호에게도 기회가 왔지만 주인공은 언감생심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초록물고기’와 ‘넘버3’에서 보여준 조폭 연기는 모든 걸 바꿔놨다. 특히 ‘넘버3’의 3류 조폭 조필 역할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게 한 1등 공신이었다. ‘최영의’와 ‘임춘애’를 주워섬기며 ‘조폭의 길’을 역설하던 그의 긴 대사는 당시 카세트 테이프에 담겨 길에서 팔릴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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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그의 애드리브가 담긴 대사들이 어록을 형성할 정도다. ‘여기가 강간의 왕국이냐?’와 ‘밥은 먹고 다니냐?’(이상 ‘살인의 추억’),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갔대냐’(‘공동경비구역 JSA’) 등이 대표적이다.

그에게 기자들이 가끔 “왜 TV 드라마는 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할 새가 있어야지…”라며 웃는다. 농담이 아니다. 한국 최고의 감독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2006년 영화판에 코스닥 열풍과 함께 돈바람이 몰아쳤고 온갖 영화제작사들간에 ‘얼마가 들든 송강호를 잡으라’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지만 다들 닭 쫓던 개가 됐다. 아무리 파격적인 제의에도 “올해는 이창동 감독(‘밀양’), 내년엔 김지운 감독(‘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사진), 내후년엔 박찬욱 감독(현재 촬영 중인 ‘박쥐’)과 하기로 이미 결정을 봤다”는 말에 아무도 뭐라고 토를 달 수가 없더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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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상에 군림하고 있지만 가족과 사생활에 대한 노출은 그에겐 철저한 금기다. 아내의 이름이 나온 인터뷰 기사를 쓴 기자에게 강력하게 어필해 끝내 이름을 지우게 만들 정도다. 왕년엔 술자리에서의 기행으로 이름이 자자한 적도 있었지만 현재 그는 ‘충무로의 큰형님’으로 거듭나고 있다.

2008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송강호·김윤석을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받은 임창정은 그날 밤 송강호로부터 축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같은 후보로 시상식장에서 임창정의 수상을 지켜본 데 이어 자신이 상을 받지 못한 서운함을 뒤로 미루고 후배를 축하하는 아량을 보인 것이다. 임창정은 문자를 받는 순간 “등에 땀이 쭉 흘렀다. 나라면 후배에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수상 가능성이 낮으면 아예 시상식을 보이콧하는 게 상식처럼 통하는 한국 영화계에선 확실히 드문 일이다. ‘송강호 전성시대’가 당분간 계속되리라는 확신이 드는 대목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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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10작품 연속으로 100만 관객 동원('쉬리'부터 세면 11작품 연속)이란 말을 들었을 때 "아니 요즘같은 세상에 100만 가지고 뭘 그러나"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흥행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다. 위에 예로 든 스타들 모두 한 두 작품씩에서는 다리를 절었습니다. 장동건은 '해안선'(뭐 이건 애당초 그런건 고려하지 않은 작품이지만)과 '무극'이 있었고, 설경구도 '싸움'이나 '사랑을 놓치다'에서 대패했죠. 이병헌도 '그해 여름'에서 무너졌고, 요즘 박스 오피스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는 이준기도 '첫눈'은 언제 개봉했다 사라졌는지 모르는 관객들이 있습니다.

영화 한 편이 대실패한다는 건 잠재 관객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걸 뜻하는 거죠. 그래서 그 다음 작품에서 회복하기는 조금 더 어려워집니다. 사실 송강호에게도 위기가 있었죠. '남극일기'나 '효자동 이발사'같은 작품들이 그랬고 '우아한 세계'는 흥행 면에선 전적으로 '송강호를 기대한 관객'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11작품 연속으로 '기본빵 100만'의 위력을 과시했다는 건 그에 대한 관객들의 기본적인 신뢰가 그만치 두텁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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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도 송강호라는 개인에 대해서는 나이가 저와 동갑이라는 것 외에 잘 알지 못합니다. 전해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면 '우직한 경상도 사나이' 자체라는 얘기가 많더군요.

한국 영화계에는 묘한 '가족 유대'가 있습니다. 촬영장에 나가면 말단 스태프가 주연 배우를 '선배님'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영화사 직원도 감독을 '선배'라고 호칭하곤 하죠. 심지어 기자들도 영화계 인사들을 '선배'라고 호칭하곤 합니다. 뭐 연극영화과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 졸업하신 분들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통하는 호칭입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연봉 1000만원짜리 스태프가 개런티 5억원짜리 스타에게 '선배'라고 부름으로써 심각한 처우 차이를 덮어버리는 기만적인 물타기"라고 악의에 찬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자체로 나빠 보이지는 않는 전통입니다.

하지만 송강호는 이런 호칭에 대단히 엄격하다는군요. 자연스럽게 '송강호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에게 "나는 댁의 선배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타입의 사람이랍니다. 어찌 보면 각이 져 보일 수도 있는 처신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천천히 후배들을 챙기고, '대부'로 거듭 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는 게 왠지 흐뭇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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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나자나 '놈놈놈'의 흥행 바람을 봐서는, 이 영화까지 더해서 계산하면 확실하게 송강호가 작품당 관객수에서도 확실하게 1위가 될 분위기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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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6일(080706이군요)은 한국 연예계의 국경일 같았습니다.

사실 연예인들은 서로 너무나 잘 알 것 같아도 실제로 그리 친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TV 오락 프로그램이 파티 분위기가 된 것도 몇년 된 얘기지만, 그런 걸 진짜 인간관계로 착각하면 나중에 눈물 흘릴 일이 생깁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박경림이나 유재석의 결혼식은 정말 대단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 연예인 하객으로는 유재석이 단연 역대 최고라고 해야 할 정도더군요. 방송-가요-영화 등 3개 분야를 통틀어 엄청난 하객들이 왔으니까요. 물론 박경림의 경우엔 히딩크나 이명박 대통령 같은 '타 분야 인사'들까지 밀려왔으니 어느 하객들이 더 화려했느냐는 딱 비교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에 비길만한 연예인 결혼식으론 윤태영-임유진 커플의 경우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연예계와 정-재계의 초절정 인물들이 운집했죠.)

아무튼 연예계 참석자로만 따지만 앞으로도 유재석의 결혼식을 넘어서는 결혼식이 나오기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드는데 17년 전, 유재석이 데뷔할 때만 해도 과연 이런 성공을 기대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무도 없었을 거란 쪽에 걸겠습니다. 그럼 대체 그는 어떻게 이런 성공을 일궜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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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계 정글 제패한 ‘완소 리더십’
6일 결혼한 ‘국민MC’ 유재석
송원섭 기자 | 제69호 | 20080705 입력  
 
스타들은 대부분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고 말한다. 대개 그들의 성공은 하나하나 계단을 밟아 이뤄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무명 인사에서 대중의 영웅으로 변신하는 게 스타의 길이다.하지만 6일 나경은 MBC 아나운서와 결혼하는 MC 유재석에겐 이런 말들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 왔고, 천천히 인정받았다. 최근 유재석이 진행하는 KBS-2TV ‘해피투게더’에 선배 김한국과 김미화가 출연했다. 여기서 김한국은 유재석을 향해 뜨끔한 코멘트를 던졌다. “안 될 줄 알았는데 됐어. 참 신기해.”아무리 후배라도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만한 말이지만 유재석의 성장사를 TV를 통해 본 시청자라면 은근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를 설명하자면 KBS가 주최한 1991년 ‘대학 개그제’를 빼고 얘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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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입상자들은 지금 봐도 화려하기 짝이 없다. 한국 개그계 최초로 이적 파문을 일으켰던 김국진·김용만·박수홍·김수용 등 ‘감자꼴 4인방’을 비롯해 남희석·양원경 등이 동기생이 된 것이다. 서울예대 1학년이던 만 19세의 유재석은 지금은 탤런트 임채원의 남편으로 유명한 최승경과 짝을 이뤄 이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당시 유재석이 스타가 되기엔 다른 입상자들의 그늘이 너무 짙었다.

더구나 현재 ‘순발력의 제왕’으로 불리는 그가 초년병 시절 연출자들로부터 ‘콩트는 되는데 토크가 안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의 성장을 지켜본 김석윤(영화 ‘올드 미스 다이어리’ 감독) KBS PD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성의와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계속 기회를 줬지만 대중의 반응은 그리 빨리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세원 쇼’의 ‘토크박스’에 출연한 유재석을 봤는데 약점으로 지적되던 토크가 일취월장해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겠더라”고 회상했다.


 
<유재석이 '웃기기 시작한' 역사적인 순간...^^>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그의 지나치게 소심한 성격이 불가사의다. 동갑내기 친구인 이휘재에게도 “결혼식 사회를 봐 달라”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요청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물론 이런 소심함을 ‘세심함’이란 말로 바꾸면 그의 강점이 된다.

유재석은 본래 스트라이커로 나서 득점왕이 되기보단 어시스트왕이 천직인 사람이었다. 그가 스타가 되기 전에 그와 함께 손발을 맞추던 MC들이 그를 앞질러 스타덤에 올랐다. 강호동이나 이휘재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 그였기에 여섯 명의 ‘무한도전’ 팀원들로부터 자신에게 없는 각기 다른 개성을 뽑아내 모두 스타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의 결혼은 과연 대한민국 연예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잘나가던 스타 MC가 결혼하면서 인기가 내리막을 걸은 예는 꽤 있다. 탁재훈과 남희석이 좋은 예다. 강호동이나 김용만처럼 결혼 후에 더욱 주목받은 경우도 있지만 유독 여성 팬이 많은 유재석은 이들과는 좀 달라 보인다. 그럼 유재석에게도 어느 정도 슬럼프가 있을까?

답은 ‘유재석에게 달렸다’다. 남희석과 탁재훈은 결혼 직후 보다 점잖은 이미지로의 변신을 꾀했고, 시청자는 갑작스레 바뀐 이들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다. 유재석의 경우도 결혼 뒤의 급격한 이미지 변신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유재석이 지금까지 방송에서 보여줬듯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타인을 배려하는 진행 태도’를 유지할 경우 그가 결혼으로 인해 추락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현재 강호동과 예능계 지존을 다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유재석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가 SBS-TV ‘일요일이 좋다’에서 내놓은 새 코너 ‘패밀리가 떴다’는 경쟁 프로그램인 KBS-2TV ‘해피선데이’ 팀이 내세우고 있는 강호동의 ‘1박2일’에 의해 강력한 견제를 당하고 있다.

MBC-TV ‘놀러와’는 KBS-2TV ‘미녀들의 수다’에 재역전을 당했고, MBC-TV ‘무한도전’은 더 이상의 성장동력이 있는지를 의심받는 중이다. 어쩌면 결혼 뒤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이 위기인데, 오히려 결혼을 통한 화제와 관심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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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데뷔초를 지켜본 사람들은 주로 KBS 예능 PD들입니다. 당시 한창 앞서 나갔던 사람들은 김국진 김용만 등 '감자꼴 4인방'이었죠. 이들은 상대적으로 신인들이 약했던 MBC 예능국의 스카우트 제의에 전격 이적을 선언합니다. 코미디언들이 상대적으로 전속 의식이 강하긴 하지만, 전례가 없던 일은 아닙니다.

KBS 희극인실에서는 이런 '배신'에 대해 난리가 났는데, 진짜 문제는 MBC 희극인실까지 여기에 동참했다는 겁니다. 겉으로는 '의리'가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이들이 넘어와서 MBC 개그맨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걸 경계했던 거죠. 그래서 4인방은 한국 방송계에서 설 자리를 잃었고, 김국진-김용만은 한동안 미국에서 야인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 옛날 얘긴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이들 4인방이 이렇게 빠져나가지 않았으면 그들과 함께 데뷔한 어린 유재석에게는 아예 기회가 안 왔을 지도 모른다는 얘깁니다. 어쩌면 이것이 유재석의 운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운이 좋다기엔 초반의 유재석은 너무도 '못' 떴습니다. 그리고 윗글에도 있듯, 유재석은 그 기간을 엄청난 노력으로 보냈죠. 지금의 김신영이나 신봉선이 가끔 얘기하는 '토크 울렁증(대본 대로 하는 콩트는 되는데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애들립에 입이 안 트인 상태)'이 누구보다 심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일단 입이 트이고 나자 '나도 그렇게 입이 안 열린 적이 있었다'는 경험이 대단한 자산이 됩니다. 말이 안 되는 출연자들을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이끌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윗글의 제목에 나오는 '완소 리더십'입니다. 여기서의 '완소'는 '완전 소중'이 아니라 '완전 소심'의 약자-라고 제목을 단 사람이 얘기하더군요(당연히 제목은 제가 단 게 아닙니다). 최근 어디선가 '유재석의 롤 모델은 서세원'이라는 제목을 본 적이 있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얘깁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본으로 하는 유재석 식의 진행과, 출연자를 '가지고 놀면서' 약점을 끄집어 내는 서세원 식의 진행은 출발점이 아예 다릅니다. 아무튼 그가 이렇게 톱스타가 된 마당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있다는 건 참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사실 유재석이 스타가 된 데에 본인의 노력만이 주효한 것은 아닙니다. 몇 차례의 행운이 따랐다고 할 수 있죠. 다음번에는 그 행운에 대해 얘기해 보겠습니다.^^ 특히 미모의 여배우가 관련된 행운이 있었죠. 오늘은 여기까지.



결혼 축하 의미에서 결혼식 하객 사진을 몇장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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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빅 3... 뭐 이 정도면 다 본거나 마찬가집니다.

그리고 유난히 이날은 부부 동반 하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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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용 연예인'의 결혼식이란 뜻일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날의 워스트 드레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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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촬영 가는 참이었을까요?

알고 보니 SBS TV '행복발전소' 출연 의상이군요. 워스트는 아닙니다.

잠시나마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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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은 변명으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이산'의 방송이 끝난 주, 이병훈 감독님을 금주의 인물로 소개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축하 인사도 드릴 겸,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미 '이산'팀과 함께 종영 자축 여행을 떠나신 뒤더군요. 어쩔수 없이, 새로운 장을 보지 못하고 그냥 냉장고(?)를 열어서 쓴 글입니다. 물론 박은혜씨가 약간의 도움을 줬죠(그 얘기는 맨 마지막에. 감안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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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돈·음식 등 일상사로 승부
‘이산’ 종영한 정통 사극 연출가 이병훈
송원섭 기자
| 제67호 | 20080622 입력  

최근 MBC 창사 40주년 특별기획드라마 ‘이산’의 방송을 마친 이병훈 PD의 전설 중에는 그의 놀라운 설득력과 관련된 것이 많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1990년대까지 미스코리아 대회는 반드시 MBC에서 중계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각종 여성단체로부터 왜 공영방송에서 그런 외모지상주의를 전파하는 행사를 중계하느냐는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여성단체 대표들은 사회적 지위가 남다른 사람이 많아 MBC에서도 그런 항의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때 구사대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이병훈 당시 MBC 드라마국 PD였다는 것이다. 사장실로 호출받아 올라간 이 PD가 중재에 나서면 어느새 분위기는 봄눈 녹듯 풀어지고, 웃음이 넘치는 자리가 되면서 항의는 유야무야되곤 했다는 얘기다.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눠 본 사람이라면 이 일화가 결코 전설만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사실 그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이다. 44년생이니 올해 64세. 현역 드라마 PD 가운데 최고참이지만 촬영장에서도 젊은 연기자들과 수시로 대화하고, 돌아서선 휴대전화 문자를 주고받는 참신한 감각을 유지한다. ‘대장금’ 때만 해도 현장 스태프는 “산 위에서 촬영할 때도 감독님(이병훈 PD)보다 앞서 올라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그의 체력에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스태프·출연진과 밤새 술잔을 기울이는 호걸형 PD가 아니면서도(그는 30년째 금주 중이다), 현장을 휘어잡는 힘이 정평 나 있다.

많은 배우가 “옛 말투 대사가 어려워서 사극을 못한다”고 할 때 과감하게 현대어 대사를 도입해 사극의 새 바람을 일으켰고, 그런 가운데서도 발성이 만족스럽지 않은 배우는 주인공이라도 일대일 과외를 하는 열정을 보여 왔다. ‘이산’의 주인공 이서진도 이 ‘과외’를 피해 가지 못했다.

지금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사극의 대가지만 그라고 해서 MBC 입사 이후 사극만 연출해 온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청소년 드라마 ‘제3교실’이나 ‘수사반장’의 연출자 명단에서도 그의 이름을 볼 수 있다.82년 이정길이 어사, 임현식이 시종 갑봉이, 무술인 안호해가 호위무사로 나온 ‘암행어사’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이어 ‘조선왕조 500년’은 그에게 ‘사극의 대가’라는 칭호를 줬다. 특히 ‘임진왜란’ 편에서는 주위의 예상을 뒤엎고 당시 코믹 연기자로 인기 높던 김무생을 이순신 역에 기용해 큰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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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신수길 역에 정진이라는 새 인물이 돌풍을 일으켰던 바로 그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90년대, 그가 드라마국장일 때 MBC는 ‘드라마 왕국’이란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이 시기 MBC에서는 ‘질투’ ‘사랑을 그대 품 안에’ ‘마지막 승부’ 등 시대를 리드하는 트렌디 드라마가 쏟아져 나왔다. 97년에서야 일일연속극 ‘세 번째 남자’로 연출에 복귀한 그는 98년부터 ‘대왕의 길’ ‘허준’ ‘상도’ ‘대장금’ ‘서동요’, 그리고 ‘이산’까지 여섯 편의 대작 사극을 연출했다.

왜 사람들은 그의 사극에 열광했을까. ‘허준’을 연출하던 당시 이 PD는 왜 허준을 주인공으로 했느냐는 질문에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건 누가 왕이 됐느냐 말았느냐 하는 게 아니라 건강·돈·음식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과연 그는 의원 허준을 주인공으로 한 ‘허준’을 히트시킨 뒤 거상 임상옥을 주역으로 한 ‘상도’를, 또 수라간 음식 이야기인 ‘대장금’을 만들었다.

그리고 최인호 원작 소설 제목을 그대로 쓴 ‘상도’ 외에는 ‘허준’ 이후 네 편의 작품 제목에 모두 주인공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이건 ‘이병훈 사극’의 중심은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이재갑 전 MBC 드라마국장은 “영웅 아닌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보여 주는 데서 감히 누가 따를 수 없는 깊이가 있다”고 평했다. 그의 주인공들이 온갖 고초를 이겨내며 성공에 이르는 이야기들은 보는 이에게 롤 플레잉 게임을 연상시키는 스릴을 선사했다.

이병훈 PD는 ‘이산’의 종영과 함께 “딱 한 작품만 더 하고 이제 연출은 그만 하겠다”고 선언했다. 김지일 전 MBC 드라마국장은 “아마 실록을 뒤져 가며 작품을 만드는 정통 사극 연출가로는 그가 마지막 인물이 되지 않을까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특히 ‘사극 1인자’ 자리를 다퉜던 김재형 PD가 최근 SBS-TV ‘왕과 나’를 연출하다가 건강 악화로 중단한 터라 이 PD의 은퇴설이 더욱 안타깝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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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을 방송계에서는 흔히 '왕PD'라는 칭호로 부르곤 합니다. PD중의 왕이기도 하고, 수많은 사극을 통해 왕 역할의 배우들을 수도 없이 다뤘다는 얘기기도 하죠.

어린시절 이분의 사극인 '암행어사'나 '조선왕조 500년'을 보고 자란 세대에겐 이분의 명성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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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는 암행어사 이정길. 그리고 오른쪽의 '갑봉이' 임현식은 이후 이병훈 감독의 사극에 빼놓지 않고 출연하는 핵심 인물로 성장합니다. 뭐 이때부터 아무 재료 없이 몸만 있어도 시청자들을 웃음 속으로 몰아넣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죠.

하지만, 정작 어렸을 때 저를 감동시킨 것은 왼쪽에 서 있는 호위무사인 상도 안호해의 포스였습니다. 정규 연기자가 아니어서 대사는 한회에 한두마디 정도였지만, 오히려 그런 말없음이 믿음직스럽게 여겨졌죠. 특히 입을 열어 어사에게 말을 건넬 때면 '나이리(이상하게도 이 분은 '나으리'라는 말을 그렇게 발음했습니다)!'라는 남자다운 저음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이 분은 지금 뭘 하시는지 참 궁금합니다.

이 '암행어사'의 인기를 잡기 위해 KBS 2TV에서는 백일섭 주연의 '포도대장'이라는 드라마까지 만들었지만 원조 '암행어사'를 잡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바람에 당시 사극에선 칼잡이들이 수시로 등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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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국장 역임으로 현역을 떠나 있던 이 분이 사극연출가로 다시 주목받게 된 건 아무래도 '허준'의 공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허준'에서 함께 작업을 했던 최완규 작가의 힘을 무시할 수 없죠.

두 사람의 공로는 한국 사극에 '경합사극'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든 걸로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자, '허준', '대장금', '이산', '주몽'의 공통점은 뭘까요. 바로 '경합'입니다. 어떤 단체든 왕좌든 뭔가의 후계권을 놓고 주인공들이 대결을 펼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주변 인물들이 팀을 이뤄 격돌합니다.

게다가 이 '경합'이란 실력본위의 대결일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과 집안을 등에 진 경쟁자와 맞선 주인공이 오로지 실력 하나로 영웅이 되는 것, 시청자들에겐 이보다 재미있는게 없겠죠.

이런 일련의 정형화된 구도를 처음 설정한 것이 바로 이병훈-최완규 콤비의 '허준'입니다. '허준'이 본격적인 인기를 얻는데에도 전광렬과 김병세가 벌인 닭에다 침놓기 대결이 지대한 공로를 했죠. (아 물론 그 말고도 수많은 경쟁이 펼쳐졌죠.^^) 그 뒤로 이 두 분이 관계한 수많은 드라마들이 '경합'으로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했습니다. 사극은 아니지만 이 경합 구도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는 드라마 '식객'의 크레딧 자막에도 '크리에이터 최완규'라는 이름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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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병훈 감독님을 볼때마다 느끼는 건 참 젊다는 겁니다. 뭣보다 마음이 젊으시죠.우연히 이 글로 고민하고 있을 때 '이산' 출연을 마친 박은혜를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물었습니다.

나: 감독님이 문자를 자주 보내신다면서요.
박: 네. 전화보다 문자를 더 자주 하세요.

나: 어떤 때 보내시던가요?
박: 야단칠 때, 칭찬할 때, 말로 할 걸 거의 문자로 하세요. 그리고 굉장히 특이해요.

나: 어떻게요?
박: 문자 자판도 그 연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치시구요, 10대처럼 보내요.

...

나: 10대 처럼이라니?
박: 구어체 말투에 이모티콘까지 엄청나게 섞어서 보내세요. 처음 받아보는 사람은 감독님이 보낸거라고 믿지 못할 정도에요.




흐음. 상상이 가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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