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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트랜스포머' 1편이 개봉했을 때의 흥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오래 산 덕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트랜스포머 2'를 보고 나서, 문득 예전에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다시 한번 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글은 2년 전에 썼던 '트랜스포머' 1편의 리뷰입니다. 최근 개봉한 트랜스포머2의 리뷰는 바로 다음에 이어집니다. )

그렇습니다. '트랜스포머'는 로보트가 나오는 영화였던 것입니다.

원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트랜스포머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이런 영화일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떠오르는 영화는 일단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브라이언 싱어의 'X맨', 그리고 톰 행크스 주연의 '빅'입니다.


마이클 베이는 처음 이 영화의 연출 제의를 받았을 때 "이런 바보같은 로보트 얘기를 왜 내가 만들어!"라고 발끈하며 시놉시스를 내던졌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누군가 조용히 한마디를 했다는군요. "당신, '레이더스' 때도 그런 말을 했었지." 다 아시다시피 '레이더스'는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의 첫 편입니다. 그리고 그 시리즈가 어떻게 됐는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죠.

그래서 이 말을 듣고 베이는 즉시 마음을 고쳐먹고, 진지한 자세로 '트랜스포머' 만들기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물론 '레이더스'가 나올 무렵 베이는 조지 루카스 아래서 하급 스태프로 일하고 있을 때고 그가 감독을 할 수도 없었겠지만 아무튼 과거의 실수를 돌이켜보는 자세를 여전히 갖고 있다는 건 놀랍기만 합니다. 더구나 현역 최강의 대형 액션 감독이 말이죠.





아무튼 마이클 베이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제작이라는 이름만으로도 '트랜스포머'는 전미 흥행 기준으로 3억불은 기본으로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라는 인상을 줬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지금, 아무리 까다로운 관객이라도 이 정도면 만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뭐랄까요. 마이클 베이가 정교한 테크닉을 제공했다면 스필버그는 이 영화에 혹시라도 빠져 있을지 모를 '소년의 마음'을 공급했다고나 할까요?

잠시 부언하자면 이렇습니다. 일찌기 아톰과 철인 28호 시대 이후 유년기를 보낸 모든 남자들은(그리고 상당수의 여자들은) 거대 로보트의 신화에 매혹돼 성장했습니다. 마징가,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건담,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변신 로보트들, 지금까지도 FSS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저같은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트랜스포머'에서 거대한 로보트들이 주먹질로 맞붙는 장면을 본 순간, 모든 남자들은 가슴 속 한 구석에 숨어 있던 소년이 번쩍 눈을 뜨는 걸 느꼈을 겁니다.



물론 일부 평론가나 기자들의 '유치하기 짝이 없다'는 평가도 당연히 수긍이 갑니다. 거대 로보트라는,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괴물딴지들이 치고 받는 영화가 유치하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죠.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얘기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유치하되 '고질라'처럼 한심하게 유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결국 로보트 완구 장사꾼들의 농간 아니냐는 얘기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들 완구회사의 스폰서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완성도 높은 오락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루먼이나 보잉사의 협조가 없었다면 우리가 '탑건'이나 '에어포트'를 볼 수 없었을거란 점도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요?




스토리라인은 매우 단순합니다. 카타르에 위치한 미국 특수군사령부에 정체 불명의 괴 로보트가 나타나 닥치는대로 파괴를 자행하며 미 국방부의 정보 네트워크 접속을 시도합니다. 레녹스 대위(조쉬 더하멜)와 극소수만 간신히 살아남아 정보를 본국에 전하기 위해 기를 씁니다.



미국 어딘가의 고등학교. 괴짜 집안의 후손 샘 윗위키(샤이아 라뵈프)는 새 차와 예쁜 여자친구에 목을 매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속의 미국 고등학생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물 빈티지 스포츠카가 그의 손에 들어오고, 이 차로 인해 샘은 학교의 킹카 미카엘라(메건 폭스)와 인연이 맺어지죠. 하지만 곧이어 샘은 어처구니없이 초대형 로보트들에게 쫓기는 처지가 돼 버립니다.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사라의 팔자가 된 거죠.

인간 주인공들은 이 정도입니다. 국방장관 역의 존 보이트, 특수조직 섹터7의 시먼스 요원 역으로 존 터투로가 나와 무게 중심을 좀 잡아 주지만 출연진은 거의 다 초짜들입니다.





이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CG라는 걸 의미하죠. 안 그러고선 제작비를 감당할 재주도 없습니다. 바로 20년 전 '스타 워즈'가 했던 그 방식입니다.

이 영화를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영화 '트랜스포머'가 애니메이션이 먼저니 만화영화가 먼저니, 변신 로보트 이야기가 일본이 원조니 미국이 원조니 하는 오다쿠적인 이야기에 대해 알 필요는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다만 이 영화의 세계에는 오토봇과





디셉티콘이라는





두 개의 로보트 종족이 존재하고, 옵티머스 프라임이 리드하는 오토봇은 좋은 쪽, 그리고 메가트론이 지휘하는 디셉티콘은 나쁜 쪽이라는 점만 이해하면 됩니다.

더욱 구별하기 쉽게 이 영화에선 좋은 쪽 로보트들은 색깔을 입히고 나쁜 쪽 로보트들은 금속색(은색)으로 남겨놓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마이클 베이의 빠른 편집 속에서는 마구 뒤섞여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오토봇 종족과 디셉티콘 종족을 헷갈릴 위험은 없습니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들도 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영화 전체가 어린이 전용인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샘이 미카엘라에게 처음 접근하는 장면의 라디오 신(뭔 말인지 보시면 압니다)이나 샘이 중고차를 사러 가는 장면, 그리고 거대 로봇들이 샘네 집 정원에 숨는 장면 등의 유머는 매우 훌륭합니다.

특히 이 영화를 통해 어지간히 자리를 잡을 것이 분명한 메건 폭스는 그 자체가 대단히 훌륭한 볼거리입니다. 매우 스펙터클하죠.






이 보닛을 여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조쉬 더하멜도 드라마 '라스베가스'에서의 뺀질뺀질한 이미지에서 확실한 느낌을 가진 남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 영화에서 완전히 주인공급은 아니지만 오히려 신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강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역할이 좀 단조롭기 때문이죠. 이런 역할에 너무 많은 신을 주면 오히려 영화 전체가 지루해집니다.

아무튼 메건 폭스는 이 영화에 출연한 이후 한국에서도





맥심에서도



그리고 GQ에서도




섹시함을 뽐냅니다. 피부가 약간 거칠긴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은 좀 더 노골적으로 섹시해진 린다 카터같다는 느낌. 같이 본 마나님의 평가로는 '캐서린 제타 존스와 카메론 디아즈를 섞어 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합니다. 제타 존스는 본래 린다 카터와 닮은 배우라는 점, 그리고 디아즈는 발랄하고 섹시한 느낌(그리고 나쁜 피부)으로 유명한 배우이니 비슷한 평가인 것 같습니다.

로보트들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스포일러가 되기 쉬울 것 같아 가능하면 덜 쓰려 했습니다. 한마디 보태자면, 화면상으로 나타나는 효과는 그야말로 환상적입니다. 마이클 베이의 솜씨가 여지없이 드러나죠. 편집의 대마왕으로 불리는 그 속도감은 실사와 CG를 육안으로 구별하는게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요즘 관객들의 눈높이니까 CG라는 걸 알아보지, 한 30년 전의 관객들이라면 '진짜 로보트를 만들어서 찍었다'고 해도 그냥 믿어 버릴겁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입니다. '아마겟돈'에서 벤 애플렉과 립 타일러의 신과 비슷하죠.)

아무리 로보트가 많이 등장하고 CG가 훌륭하다 해도, 그 안에 드라마가 녹아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일 뿐입니다. 마이클 베이가 최고의 액션 블록버스터 감독으로 불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만으로 영화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제2의 마이클 베이'가 되려 하는 후배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자나 실사판 '마징가 Z'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일본 영화계 파이팅!

최근 개봉한 2편에 대한 리뷰는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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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호평받은 미국 '타임'의 리뷰에는 '복수 3부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제는 누구나 박찬욱 감독을 말할 때면 '복수 3부작'을 얘기하곤 하죠. 잘 아시는 대로 '복수는 나의 것', '올드 보이', '친절한 금자씨'를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복수3부작'이라는 이름으로 DVD세트가 나와 있을 정돕니다.

사실 어느 정도 박감독에게 관심이 있는 팬들이면 이 '복수 3부작'이라는게 처음부터 존재했던 구상이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하지만 어느새 박찬욱 감독이 세계적인 거장이 되면서, 마치 이 '3부작'이 처음부터 하나의 유기적인 구조로 예정됐던 작품인 것처럼 오해받는 경우도 생긴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일종의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랄까요.

물론 일련의 영화들에 대해 '복수 3부작'이라는 말을 처음 꺼낸 사람은 박감독 본인입니다. 하지만 처음 '복수는 나의 것'을 만들 때만 해도 '3부작'이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이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도 2003년 11월, '올드 보이' 개봉을 앞둔 인터뷰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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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박감독은 머잖아 다시 털어놓습니다. "솔직히 그냥 우발적으로 한 얘기였다. '올드 보이'를 만들고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온갖 기자들이 죄다 '왜 또 복수 얘기냐'고 묻길래 그냥 아예 '복수 3부작을 채울 생각이다'라고 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어쩌다 보니 다음 작품이 진짜 복수를 소재로 한 '친절한 금자씨'가 되는 바람에 결국 3부작이 채워진 셈입니다. 반면 이번 '박쥐'는 '올드 보이'보다도 훨씬 먼저 구상했던 작품이지만 뒤로 미뤄진 거였죠.

세 편의 영화는 복수라는 주제 외에는 그리 비슷한 데가 없습니다. '올드 보이'와 '친절한 금자씨'는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에게 초점이 맞춰진 스릴러의 스타일을 갖추고 있지만 '복수는 나의 것'은 형식과 플롯, 그리고 다양한 함의를 갖춘 낯선 영화입니다. 평론가들이 세 편의 영화 중에서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 것도 익숙지 않은 데서 오는 자극이 워낙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박쥐'를 본 사람들 가운데서도 '복수는 나의 것'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실 2002년작인 '복수는 나의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보다도 나중의 작품인데도 이상하게 '옛날 영화'인 듯한 대접을 받곤 합니다. 아마도 상대적으로 본 사람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박쥐'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가운데 '복수는 나의 것'이 다시 생각나서, 예전에 써 뒀던 리뷰를 다시 꺼내 보게 됐습니다. 다른 게시판에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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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복수는 나의 것

이 영화에 대해 처음 들은 내용은 '엄청나게 잔인하다' 였고, 그 다음은 '뭔지 모르겠어, 이상해'였다. 그리고는 극장에서 보려고 짬을 내다가 어느날 보니 개봉관에서 사라져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체질상, 그리고 그가 살아온 영화 인생상 '흥행 감독'이 되기 힘든 사람이다. 차라리 임권택은 될지언정 강우석은 절대 될 수 없다. 그런 그가 'JSA'라는 영화 때문에 온 영화계의 기대(물론 여기서 '기대'란 '대박 기대'를 말한다)를 짊어지게 된 것도 약간의 넌센스다.

물론 정작 본인은 그런 기대에 크게 구애당하지 않는 것처럼, 즉 "누가 너네보고 언제 기대하래?"라는 식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다. 아, 그분이 직접 그렇게 얘기한 적은 없지만, '복수는 나의 것' 같은 영화를 만드는 걸 보면 말이다.

이 영화는 비록 유쾌하지는 않지만(유쾌해하는 놈이 있다면 당장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무척 재미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영화다. 재미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묘한 물건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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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와 같이 이 영화는 유괴범에 대한 영화다. 그럼 유괴범이 죽일 놈이고, '복수'하는 애 아버지가 착한 사람이냐, 그렇지는 않다.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계급간의 몰이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좀 더 원초적으로, '남의 살의 아픔에 대한 무지'라고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장기밀매범들이 '남의 살'에 대해 생각한다면 신장만 떼낸 채 신하균을 길바닥에 버릴 수 없을 것이고, 역시 '남의 고통'을 안다면 장난이거나 선의라도 남의 딸내미를 데려갈 수 없었을 것이며, 사장인 송강호 역시 기주봉의 온 가족이 그렇게 될줄 알았다면 함부로 사표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착한 동생'의 정체를 안 다음 상품 걱정부터 하는 아나운서도 없을 거다.

그럼 또 그게 모르는 사람 쪽의 잘못이냐. 꼭 그렇지도 않다. 심지어 누나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는 착한 동생 신하균조차 고통에 몸부림치는 누나의 신음소리를 외면하고 라면이나 먹고 있게 된다. 이건 그가 나쁜놈이라서 아니라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아닌 옆집 총각들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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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면에서 '복수는 나의 것'의 시각은 대단히 구조주의적이다. 사람은 못됐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안에서 자기의 입장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힌다. 갈등은 필연적이고, 해소는 '피'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화는 개개인의 입장으로 문제를 치환시키지만, 넓은 시각에서 보면 무산계급과 유산계급 사이의 관계는 언제든 '피'를 볼 수 있는 긴장이 내재돼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 영화는, 6.25 이후 만들어진 한국영화중 가장 위험한 영화다. (심지어 '장산곶매'가 만든 영화들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다. 대체 그 영화들을 몇명이나 봤냐.)

때로 자신의 계급을 망각하고, 이런 갈등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경우도 있다. 마지막 순간의 송강호, 즉 "너, 착한 놈인거 안다"라고 말하는 송강호가 그렇다. 그러나 그가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섣불리 관용을 취할 수도 없다. 어차피 그와 신하균은 이미 충돌을 예상하고 달리는 기차다. 그리고 복수를 하건 안 하건, 그에게 남은 길은 어차피 파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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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때로 섬뜩하면서도, 때로 코믹하게 하는 것은 박찬욱 감독 특유의 '무표정한 유머'의 힘이다. 특히 배두나가 말하는 "아저씨, 백 퍼센트야. 정말이야."가 무슨 뜻이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 그야말로 관객은 기절할 정도가 된다.

(여기에 대해 박감독은 "아무리 평소에 뻥 치고 다니는 애들이라도, 그 말을 허투루 들으면 큰 코 다치는 수가 있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박찬욱이라는 감독이 딱 저런 생각을 가지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볼 수는 없다. 영화는 시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평론가 출신 감독'이라는 딱지 만큼이나, 그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인 동시에, '이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사람들이 어떤 시각으로 이 영화를 볼 것인가...'를 고려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복수는 나의 것'은 명료하기보다는 약간 고의적으로 초점을 흐린 영화이기도 하다. 약간 고상하게 말하자면 '해석자의 공간을 위한 배려'라고 할 수 있겠고, 좀 천박하게 말하면 '너무 뻔히 다 보이는 영화'라는, 먹물들의 비틀린 비난을 피하려는 세련된 몸놀림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지금 상태에서도 '복수는 나의 것'은 대단히 흥미롭고 잘 만들어진 영화다. 특히나 이런 영화를, 송강호나 신하균 같은 재능있고 비싼 배우들을 데리고 만들 수 있다는 건 그의 행운이기도 하다.

다음번엔 그가 어떤 영화를 만들지가 자못 궁금하다. 갑자기, 예전에 한 10분 보다가 만 '삼인조'를 어디 가면 다시 볼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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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단역진은 꽤 화려합니다. 아나운서 역으로 이금희씨가 나오고, 장애인 역으로 류승범이 나옵니다. 사실은 형인 류승완 감독도 배달원 역으로 잠깐 나오죠. 신하균이 맡은 류 역의 이름은 '류완범'이라고 돼 있는데 이게 아예 류승완-승범 형제의 이름을 하나로 합친 거라는군요.

이밖에 이 영화 얘기를 하자면 오광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봉고차를 타고 달려온 일행의 선두에 섰던 사람이었죠. 그 특이한 용모 때문에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밖에 정재영도 나온다고 하는데 무슨 장면인지는 기억나지 않는군요.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쯤 다시 찾아 보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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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영화의 영화 제목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의 영어 제목은 'Sympathy for Mr. Vengeance'죠. 그냥 직역하면 'Vengeance is Mine'이겠지만 아마도 이건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와 제목이 똑같아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제목이 바로 저 제목이고, 이 제목이 해외에서 괜찮은 반응을 얻자 아예 '친절한 금자씨'의 영어 제목도 'Sympathy for Lady Vengeance'로 붙여집니다. 이때는 이미 세 편의 영화가 모두 나온 뒤였으니까 '3부작'으로서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데 아무 하자가 없는 셈입니다.



p.s. 그러고보니 요즘 유행하는 '백프롭니다'의 원조가 배두나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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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의 제목은 '테이큰'입니다. 네. 혹시나 해서 다시 봐도 우리가 아는, 리암 니슨이 주연한 그 '테이큰'입니다.

작년에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김회장이 생각난다'는 제목을 달아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테이큰'은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어떤 폭력도 무릅쓰는 비밀 요원 출신 아버지의 맹활약을 그린 영화입니다.

벌써 기억에서 희미해진 분들도 있겠지만, 당시 한국에서는 술집에서 싸우다 맞은 아들의 복수를 위해 수십명의 조폭을 이끌고 현장으로 돌진하신 김 모 회장님이 화제가 됐었죠. 참 어처구니없는 얘기지만 중년 남성들 가운데에는 '내 자식이 어디서 맞고 왔으면 야구 방망이라도 들고 보복하러 가는게 인지상정 아니냐'며 은근히 김회장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해하세요. 남자들은 원래 철이 늦게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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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년 전에 개봉한 영화가 미국에서 이제 박스오피스 1위를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한국이 세계 영화 시장에서 테스트 마켓으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한국에서 되면 세계에서 된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먼저 개봉하면 한국에서의 장사는 포기해야 한다(불법복제 때문에)'는 씁쓸한 현실을 반영해주기도 합니다.

아무튼 느낌은 이 정도. 이 단순무식과격한 영화를 본 첫 느낌은 바로 이랬습니다.



소감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바로 이겁니다.

저 포스터를 보는 순간, TAKEN이라는 영문 표기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면서,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이 바로 저 TEKKEN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너무나 TEKKEN의 분위기더라는...^^




브라이언(리암 니슨)은 은퇴한 안티테러리스트 에이전트. 지금은 사설 경호원 아르바이트나 하는 처지지만, 한때 나라를 위해 봉사하느라 아내 레노어(팸케 얀슨)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긴 상탭니다. 17세인 딸 킴(메기 그레이스) 역시 거의 만날 수 없게 돼 버렸죠.

그런데 킴이 어느날 유럽으로 연수를 가겠다고 동의서를 받으러 옵니다(미국 법규상 미성년자의 외국 여행엔 친부의 동의가 필요한 모양이더군요). 애를 물가에 내놓듯 걱정이 만발해 있던 브라이언. 결국 마지못해 동의를 해 줍니다.

하지만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킴은 긴급 구조 요청을 해오고... 브라이언은 모처럼 실력 발휘를 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이혼한 아내가 키워온 귀여운 딸을 구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파리로 날아가는 전직 특수요원 아버지. 이런 설정은 제작진에게 몇가지 안전판을 제공해 줍니다. 특히 '테이큰'은 그 이점을 잘 이용하고 있습니다.

일단 액션 영화의 팬들이 기본적으로 남자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 열심히 살았건만 이제 남은 게 아무 것도 없는 초로의 리엄 니슨은 상당히 동정표를 얻을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또 주인공이 전문직(특수 요원 또는 경찰)이 아니라 피해자의 아버지라는 점은, 폭력의 묘사와 수위, 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다소 과격하고 비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충분히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줍니다. '딸이 죽게 생겼는데' 라는 상황에서, '나라도 저렇게 하겠다'는 심정을 이입시켜 주는 거죠.



그 결과, '테이큰'의 브라이언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 캐릭터가 되어 버립니다. 인명의 소중함? 이런 건 먼 은하계 밖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재수없게도 총에 맞아 즉사하지 못한 불쌍한 범인은 즉석에서 빨래집게로 전기고문까지 당하죠.

이 장면에서 리엄 니슨은 아주 즐거워 보입니다. "그럼 난 이걸 켜놓고 가지. 정전이라도 되면 누가 와서 꺼 주지 않을까?" 누군가 영화평에 '악당들이 불쌍해 보일 정도'라고 했던데 적합한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얘들은 '잘못 걸린' 거죠.

이 대목에서는 사실 이 분이 잠시 생각납니다.



("내 아들이 술집에서 맞고 왔다는데, 어떻게 아버지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냐구!")

네. 자식 키우는 아버지로서 공감이 가신다는 분들도 꽤 있었습니다. 사실 '테이큰'에서 리암 니슨이 펼치는 액션에 비하면 김회장이 하신 정도는 애교로 보이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럼 김회장이 잘 했다는 거냐"며 흥분하시는 분들, 가만 계세요. '테이큰'은 어디까지나 영홥니다. 그것도 킬링타임용 울트라 액션 영화죠. 영화는 그냥 영홥니다. 영화에서 자식사랑이 눈물겹다고 해서, 수천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 회장이 영화와 현실을 구별 못했다는 게 다시 한번 생각나서 들쳐 봤습니다.



실종된 가족 찾기는 영화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진짜 영화 중에는 이런게 있었죠.



갑자기 파리에서 사라진 아내를 찾아 동분서주하던 해리슨 포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프랜틱'. 아마 비디오 제목이 '해리슨 포드의 실종'이었을겁니다.

물론 배경이 파리라서 '실종'이 먼저 기억나지만 사실 더 비슷한 영화가 있죠.



진 해크먼과 맷 딜런이 부자간으로 나온 '타깃'.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가 실종되고, 젊은 아들을 혈기로 방방 뜨지만 알고 보니 아버지가 전직 특수요원이었던 겁니다. 매력이라곤 전혀 없던 소심쟁이 중년 남성이던 아버지가 어머니의 실종 이후 냉철한 눈빛을 뿜어내며 범인을 추격한다는 분위기 전환이 감상 포인트였죠.




아무튼 '테이큰'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미국산 십대용 공포영화와 상당히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말하자면 '스크림' 이전에 나온 십대용 공포영화(물론 그 뒤에도)들은 대부분 한마디로 요약하면 '어른 말 안 듣고 니들끼리 위험한 데 가면 사고난다'는 것이었는데, 이 영화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거죠.

특히 수많은 슬래셔 무비에서 괴물(혹은 범인)은 주인공들 중 유일한 **에 의해 퇴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브라이언의 딸 킴은 **였기 때문에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죠(뭐 스포일러긴 합니다만, 설마 이런 영화에서 리암 니슨이 파리까지 갔다가 사랑하는 딸의 시체를 안고 비통한 눈물을 흘릴 거라고 생각하는 분은 안 계시겠죠?).

게다가 남자에게 방종한 태도를 보이면 벌을 받는다는 것 또한 슬래셔 무비의 법칙 중 하나죠. 문란하게 구는 캐릭터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꼭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





뭐 길게 썼지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평소 스릴러나 액션 영화를 보다가 지나치게 심약하고 도덕심이 투철한 주인공, 그리고 인명를 지극히 중시하는 '착한 주인공'들(이런 주인공들이 나오는 영화일수록 주인공 주변의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이 다치고 죽습니다) 때문에 짜증을 느낀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 이상의 강추 영화는 없습니다. 리엄 니슨은 절대로 이 영화에서, '쓸데없이' 착하고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영화는 또 짧고(90분이면 끝납니다), 간명합니다. 구질구질한 사설도 없고, 거창한 세계관과 인간관을 설파해서 졸음을 유발하는 등장인물도 없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바보가 아니면 다 짐작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리엄 니슨은 소심하고 인정 많은 주인공들(그들이 "죽이면 안돼! 그에게도 정식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어!"라며 파트너를 제지하는 순간, 죽어가는 척 하던 악당들은 비웃으며 파트너에게 총알을 퍼붓죠)이 그동안 관객들에게 끼쳐 온 폐해를 보상하기 위해 영화 나라에서 온 구호 자원봉사자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이런 걸 기대했던 관객 - 뭐 그 중에 저도 있습니다만 - 에게는 '테이큰'은 정말 신나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1년에 영화 두세편 보는데 그래도 영화 한편 보고 나면 뭐 남는게 있어야지'라는 분이라면 절대 보면 안 될 영화죠. 그런 분들에게는... 음...

('남는게' 너무 많아서 소화불량이 될 것 같은 영화가 갑자기 한편도 떠오르지 않는군요.)

아무튼 이 영화를 굳이 보신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가시길 권합니다.






이 영화에서 청순녀 킴 역할을 맡은 매기 그레이스. 17세 역을 하기엔 나이가 좀 많은 듯도 하지만, 그런건 상관 없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눈 크기.








사실 이런 사진이나 '로스트'에서는 이 배우가 이렇게 눈이 작다는 걸 몰랐습니다.

알고 나서 보니 눈 화장이 장난 아니었군요!







그런 의미에서, '테이큰'은 매기 그레이스의 '눈 커밍아웃' 작품으로 기억되겠더군요.

저 속눈썹과 메이컵을 상당 부분 제거하고 나면 그의 눈 크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이 영화의 볼거리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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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코믹스의 세계가 참 깊고도 넓다는 것은 일찌기 알았지만, 아이언맨이라는 캐릭터는 이 영화의 제작 소식이 들릴 때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고편만큼은 대단한 수준이라고 느꼈는데, 역시 영화를 보니 좋은 예고편에서 좋은 영화가 나온다는 이론이 별로 틀리는 법이 없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더군요.

예고편 마지막 장면에서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블랙 사바스의 '아이언 맨' 부터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뭉클뭉클 부풀게 했습니다. 어쨌든 아이언 맨이라는 주인공은 참 생소합니다. 그 세계를 모르니 일단 영화 중심으로, 줄거리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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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 인더스트리의 사장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최초의 핵무기 개발에 참여한 아버지로부터 초대형 군수산업체를 물려받은 부자이자 17세에 MIT를 수석 졸업한 천재입니다. 여자와 술, 자동차와 하드 록에 심취해 있는 자기도취적 인물이죠.

그런 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신무기 실험을 마친 뒤 독립용병단체에 납치됩니다. 같은 포로 신세인 잉센이 만든 전자석을 몸에 부착해 목숨을 건진 스타크는 첨단 미사일을 만들어 내라는 협박을 받습니다. 이걸 기회로 이용한 스타크는 주문한 장비를 갖고 아이언맨의 프로토타입을 망치로 두들겨 만들고(...천재라니까요), 그걸로 탈출에 성공합니다.

어쨌든 자신이 만든 무기가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대량살상에 사용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스타크는 아이언맨 장비를 개량,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을 물리치는 영웅으로 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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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줄거리를 가지고 흠을 잡자면 끝이 없죠.



일부 정신나간 리뷰에서는 이 영화의 화려한 그래픽에 도취돼 '현실에서도 실현 가능한 슈퍼 히어로의 모습을 구현했다'는 등등의 말이 나오지만, 전혀 현실에서 실현 가능하지 않습니다.

아이언맨의 장갑이 총알은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중에서 저런 식으로 떨어지거나 화염방사기로 주변을 불질렀을 때 과연 충격이나 뜨거워진 장갑으로부터 탑승자를 보호할 수 있을 턱이 없죠. 쇼크사를 당해도 100번은 당했을 겁니다.

아무리 견고한 금속이라도 한번 타격을 받으면 어느 정도까지 변형이 이뤄졌다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겁니다. 그럼 실제 크기는 저 정도보다 훨씬 커져야 안에 있는 인체에 손상이 없을 수 있겠죠. 게다가 전투를 겪다 보면 외부 장갑이 뒤틀리고 변형되는 일이 비일비재할텐데, 과연 전투 후에 옷을 벗을수나 있을지...

(처음 썼던 '탱크 외부 충격으로 인한 승무원 사망'은 기갑부대 출신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실제 병사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의외로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 있군요. 하긴 현역 기갑부대 사병이나 장교 중에 탱크 탄 채로 포탄 맞아 본 사람이 없을테니 그쪽 생각이라고 반드시 맞으라는 법은 없을 것 같군요. 물의를 빚어 죄송하니다.)






물론 이건 그렇게 따져서 될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시비를 걸자면 국제정치와 무기 생산에 관련된 문제만도 결코 스타크가 생각하는 것만큼 순진하고 단순하지는 않기 때문이죠. 다만 이 부분에서는, 그래도 그렇게 자기만 알도록 자라온 한 인물이 이 세상에 '남들도 살고 있고, 나때문에 곤란을 겪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매우 기특해할만 하다는 선에서 넘어가도록 합니다.

아무튼 '아이언맨'은 매우 성공적인 영화입니다.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형상화한 주인공의 캐릭터에 있습니다.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도 본래는 어느 정도 부자에 플레이보이로 설정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배트맨 영화에서 이 부분이 크게 부각된 적은 없었습니다(다른 배우들은 몰라도, 심지어 조지 클루니가 배트맨일 때에도 말입니다). 일단은 '어두운 영웅'이라는 컨셉트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죠.

반면 다우니가 만들어 낸 토니 스타크는 자제력도 없고, 엄청나게 잘난 척 하며 향락적인 인물이지만 오히려 그걸 매력으로 바꿔놓은 성공적인 캐릭터입니다. 지나치게 고뇌하는 슈퍼 영웅들에 비해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온다고나 할까요. 이런 부분에서 토니 스타크, 혹은 아이언맨은 배트맨이나 슈퍼맨에 비해 훨씬 '트랜스포머' 쪽에 가 있는 영화입니다.

원작자에 따르면 본래 이 토니 스타크의 모델은 바로 이 사람, 하워드 휴즈입니다.



바로 갑부 2세이고, 미남에, 자제력없고, 플레이보이에, 결국은 '미친 놈'인 인물이죠.

그의 전기 영화인 '에비에이터'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표정과 거의 똑같네요.



디카프리오도 연구 많이 했었군요.^^








물론 훌륭한 특수효과 - 이것만으로 영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누차 강조한 바 있지만 - 의 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일본제 마징가Z에서 그랜다이저, 건담에 이르는 메카닉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심취했던 '남자들'이라면 또 한번 뒤집어지지 않을 수 없는 볼거리가 넘쳐납니다.


 

F-22가 '트랜스포머'에 이어 다시 등장하기도 하죠.^

사실 다우니의 활약이 워낙 두드러지다 보니 영화의 다른 인물들은 거의 들러리처럼 느껴집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기네스 팰트로를 눈으로 보기 전까지 팰트로가 이 영화에 나오는 줄도 몰랐습니다. 친구이자 조력자인 로드 중령 역으로 나오는 테렌스 하워드도 마찬가지. 오베이다 역의 제프 브리지스가 대머리로 나오는 걸 보고 좀 놀랐을 뿐입니다.




속편이 계속되다보면(물론 안 나올리가 없겠습니다만)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이번 1편은 다우니의 독무대입니다. 기네스 팰트로가 맡은 비서 페퍼 포츠만 해도 팰트로같은 비싼 배우를 쓸 필요가 전혀 없는 역할이죠.

감독 존 파브로는 다우니와 함께 한국에 오기도 했습니다.




배우로 경력이 훨씬 많죠. 기억나는 건 '윔블던'에서의 에이전트 역 정도지만, 이밖에도 수많은 영화에 조연으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감독으로 이번에 보여준 역량은 대단하더군요. 이 정도라면 이제 전업 감독으로 활약해도 될 것 같습니다.

본래 만화 아이언맨 시리즈의 팬이었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한 15편까지는 만들고 싶다"고 기염을 토했다는군요. 글쎄... CG 회사들이 과연 그 바람에 맞춰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1편이 흥행에 성공하고 2편 3편이 나오는 건 시간문제일 것 같군요.




p.s.1. 이 영화의 크레딧에는 사무엘 잭슨이 닉 퓨리라는 역으로 등장한다고 되어 있지만, 영화를 아무리 뚫어지게 봐도 이런 캐릭터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촬영에는 임한 것 같은데 대체 왜 없을까요? 정답은 영화가 끝난 다음에 있었습니다. 크레딧이 모두 지나간 뒤 쿠키가 있답니다.




만화상으로는 이런 캐릭터였다고 합니다. 루이스 고셋 주니어가 모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리나라 극장에서는 혹시 커트되고 안 나올지도 모르겠는데(저는 바로 나와버려서 잘 모르겠습니다). 보신 분 있으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p.s.2. 만화 아이언맨의 원작자 스탠 리는 이 영화에 카메오로 나옵니다. 바로 파티장에서 토니 스타크가 휴 헤프너라고 생각하는 인물(파자마를 입은 할아버지가 금발 미녀들과 서 있으면 그게 누구겠습니까^^)이 스탠 리라는군요.




엔딩은 예고편의 마지막에 등장했던(그리고 영화에서도 엔딩에 등장하는) 블랙 사바스의 올드 넘버 'Iron Man'입니다. 1970년 라이브 화면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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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이 '사냥꾼'으로 되어 있는 르웰린 모스(조쉬 브롤린)는 어느날 갱들의 총격전 현장에서 거액의 현찰이 담긴 가방을 발견하고 횡재를 기뻐하지만 이내 갱들이 보낸 프로페셔널 킬러 안톤(하비에르 바르뎀)의 추격을 받게 됩니다. 은퇴를 앞둔 보안관 에드(토미 리 존스)는 사건의 수사에 착수하지만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발빠른 움직임에 비해 그의 발걸음은 영 느리기만 합니다.

코엔 형제의 문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도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참 특이한 영화로 여겨질 법 합니다. 코엔 형제의 지난 날을 살펴보면 이들의 영화는 아무 생각 없어질 정도로 웃기는 코미디와, 범죄라는 창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본질을 들여다보는 소름끼치는 범죄 스릴러의 두 축을 왕복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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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코미디라고 해서 반드시 대중적이고, 범죄 스릴러라고 해서 반드시 대중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이들의 작품들 중 가장 난해하고 대중성이 떨어지는 작품으로 꼽히는 '바톤 핑크'가 스릴러의 색채를 띄고 있지만 스릴러 중에서도 '밀러스 크로싱'이나 '파고'같은 작품들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걸작들로 꼽히고 있죠.

코미디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리조나 유괴사건'이나 '허드서커 대리인'은 그야말로 포복절도할 코미디의 걸작이지만 굳이 말하자면 블랙코미디라고 꼽아야 할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는 부분 부분 폭소를 자아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관객을 짓누르는 영화입니다.

사실 코엔 형제의 코미디 감각은 이들의 세계를 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겐 더없이 재미있는 작품들이지만, 그 세계가 낯선 사람들에겐 뭔가 껄끄럽고 불편한 영화가 되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오 형제여, 어디 있는가' 같은 영화는 20세기 초 미국 남부를 헤집고 다니는 세 탈옥수의 종횡무진 모험담을 - 물론 이 모험담 속에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딧세이아'가 녹아 들어 있습니다 - 담은 유쾌한 수작이지만, 많은 관객들(특히 한국 관객)에겐 "뭐야? 조지 클루니가 왜 저런 썰렁한 영화에 나와?"라는 반응을 얻었습니다.



아무튼 많은 분들에게 '유 아 마이 선샤인'이라는 노래는 영화 '너는 내 운명'을 떠올리게 하겠지만 제게는 '오 형제여'를 생각나게 합니다.

물론, 코엔 형제와 친숙한 관객이건 아니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2/3를 차지하는 르웰린 모스와 안톤의 추격전이 흥미진진하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하는 안톤이란 캐릭터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한 터미네이터 이후 가장 완벽한 암살자입니다.

그에게는 기본적으로 감정이라는 것이 없고, 의무감만이 존재합니다. 드라마 주인공으로 인기 높은 덱스터와 비슷하죠. 하지만 덱스터가 항상 다른 사람들이 느낀다는 '감정'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고민하는 반면 안톤은 자기 때문에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어떤 경로로 도망치는지를 너무도 잘 이해하고 예측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에겐 살해의 동기 따위는 의미가 없죠. 그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린아이가 장난으로 눌러 죽이는 개미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개미를 죽이고, 어떤 개미는 살려주는 것 역시 선이나 악과는 아무 상관 없는 얘기죠. 우스꽝스러운 헤어 스타일로 이 소름끼치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바뎀은 본래 '스페인의 말론 브란도'라고 불렸던 호남 스타이지만, 매력을 희생한 덕분에 온갖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라면 역시 모스가 주인공, 그리고 안톤은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이라야 정상적인 전개가 가능합니다. 또 모스가 안톤에게 쫓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물을 달라고 간청하던 갱 조직 생존자의 청을 매몰차게 거절한 것이 마음에 걸려서'라는 것은 일반 관객들이 모스를 동정할 만한 충분한 동기를 제공합니다.

하지만 코엔 형제가 그렇게 호락호락 관객들의 기대에 맞춰 영화를 진행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죠. 오히려 코엔 형제의 시선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를 늙은 보안관 에드의 시야에 맞춰져 있습니다.

이때문에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의 마지막 1/3에 대해 심각한 반발과 허탈감을 감추지 못합니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에드의 독백은 이 영화의 원작 소설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고 하는데, 얼핏 봐선 지금까지 본 영화와는 아무 상관 없는 시간낭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코엔 형제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 영화의 제목을 대 시인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첫 구절에서 따 온 거라는 건 다 아시는 얘기일테고, 이 시의 첫 구절은 본래 'That is no country for old men' 입니다. 그리고 수많은 번역본들은 한결같이 이 첫 구절을 '이 나라는 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때문에 영화의 한글 제목인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오역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이죠. 코엔 형제의 의도 역시 '(이놈의 미국이라는 나라는)노인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라는 것일 테니까요. 늘 필요 이상의 무기와 폭력이 상존하고, 지배계급은 공포를 조장해 민중을 통제한다...는 것은 반드시 '화씨 911'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진보진영이 갖고 있는 미국관에 반드시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게다가 세상의 변화는 따라기기에만도 급급한 현대 사회, 노인의 지혜라는 것은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죠. 제목은 이런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렇게 되어 버린 미국이라는 나라를 한 늙은 보안관이 탄식하며 바라보는 영화입니다. 박진감 넘치는 추격전이 영화적인 재미를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코엔 형제는 이 영화를 그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던 거죠. 아무튼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이 아닌 나라에 사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 대체 '노인을 위한 나라'라는게 어디엔들 있단 말입니까.

이런 마무리가 일반 관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얻을 가능성은 0에 가깝습니다만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격찬하고 있습니다. 물론 보실 분들에게 위안을 드리지만, 조쉬 브롤린과 하비에르 바뎀이 펼치는 대결만으로도 볼 거리는 충분합니다. 아마도 다 보고 나면 올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바뎀이 아닌 다른 사람이 받는다는 건 사기라는 데 동의하게 될 겁니다.


p.s.1. 중간에 안톤이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를 죽이고, 방의 자물통을 날리는 데 사용하는 무기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제작진의 설명에 따르면 도축용의 볼트 건(Bolt Gun)이라고 합니다. 소나 말을 잡을 때 이마에 대해 한방씩 날려 뇌에 구멍을 내 주는 무기라는군요.

p.s.2. 영화의 두 축인 조쉬 브롤린과 하비에르 바뎀은 모두 미녀 파트너를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죠. 브롤린은 이 게시판을 자주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다이언 레인의 남편입니다.





바뎀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녀 스타 페넬로페 크루즈의 연인이죠.





두 사람은 왕년의 문제작 '하몽 하몽'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이 영화에서 바뎀은 크루즈를 유혹하기 위해 고용되었다가 거의 모든 여성 캐릭터와 베드신을 갖는 투우사 지망생 역을 맡았죠.


물론 그때보다는 많이 망가졌지만 절대 살인마 안톤의 외모는 아니라는 점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바뎀은 이렇죠.



아무튼 오스카를 받기 위해서라면 이 얼굴을



이렇게 만든다 해도 뭐 그리 속상할 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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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가문의 영광', '너는 내 운명', 현재 방송중인 드라마 제목입니다. 공통점은 모두 재탕 제목이라는 거죠. 왕년에 히트한 제목을 그대로 갖고 오는 작품들을 보면 그렇게 새로운 제목 짓기가 힘든가 하는 안쓰러움이 앞섭니다.

(박진표 감독의 영화 '너는 내 운명'도 사실은 재탕 제목입니다. 70년대 한국 영화 중에 이미 '너는 내 운명'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있었죠.)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썼던 제목 또 쓰기' 중독에 걸려 있습니다. 정말 그렇게 이미 있던 제목을 꼭 가져 와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대다수 관객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제게는 이런 제목 재활용은 창의성의 결여를 예감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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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더구나 이 영화의 제목은 어딘가 내용과 겉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로셀리니의 '무방비도시(Roma, Citta Aperta = Open City)'는 2차대전 종전 직전 나치의 지배하에 있던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 영화 '무방비도시'는 대체 무엇으로부터 도시가 무방비라는 것인지 좀 아리송합니다. 소매치기 범죄로부터 무방비라는 것인지... (아마 그렇겠군요)

일본에서 활개치고 있던 미녀 소매치기 백장미(손예진)는 법망에 쫓기게 되자 귀국해 다시 조직을 꾸립니다. 한편 엘리트 형사 조대영(김명민)은 오연수 반장(손병호)가 다시 부임해 소매치기 조직 검거를 계획하자 적극적으로 반항합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해 전설적인 여자 소매치기 강찬옥(김해숙)이 옥살이를 마치고 출소하죠.




사실 '무방비도시'는 전혀 스토리의 진행이 궁금한 영화가 아닙니다. 일단 예고편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예고편만 봐도 이 영화의 마지막 10%를 제외한 모두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약간 감각이 발달한 분들은 그 10%도 짐작할 수 있지만 그건 넘어갑니다).

게다가 백장미와 조대영 형사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장면은 고대 소설의 상투성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백장미가 어설프게 위기에 몰리고, 조대영이 멋진 주먹 솜씨로 미녀를 구출해서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싹튼다는 건 뭔가 좀 더 고민했어야 하는 문제였다는 생각입니다.





형사와 범죄자의 위험한 관계. 게다가 한시간 정도 지나면, 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백장미가 아니라 강찬옥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깨닫게 됩니다. 비교적 뚜렷한 동기를 가지고 움직이는 강찬옥에 비해 백장미는 너무도 속이 없는 캐릭터입니다.

백장미가 좀 더 입체적인 느낌을 갖추려면, 천인공노할 팜므 파탈인 백장미도 뭔가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 예를 들면 조대영이나 강찬옥에게 하려는 일에 대해 약간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해야 - 하는데 이 캐릭터는 전혀 후회라는 걸 모릅니다.

그러면서 우연한 기회에 살인을 저지르고 벌벌 떨 때에는 너무도 필요 이상으로 벌벌 떨기만 하죠. 이건 아무래도 대본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백장미라는 캐릭터에게 어디까지 주도권을 줘야 하는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촬영이 진행됐다는 뜻도 되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방비도시'가 완전히 한심한 영화라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꽤 많은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캐스팅입니다.




사실 손예진은 할만큼 했습니다. 그리 재미없는 캐릭터를 이 정도까지 끌어올린 것은 손예진의 힘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상을 줘도 좋을 정도입니다.

물론 손예진의 연기는 실제로 존재하는 악당 여두목 보다는 일반 관객들이 생각하는 '약간 과장된 여자 보스'의 모습에 더 가깝겠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있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이 캐릭터가 수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업은 '민완 형사가 넘어갈 정도로 그녀가 유혹적인가' 인데, 손예진은 충분히 매력적입니다. 네. 충분합니다.





김명민도 심심하긴 합니다만 자기 몫을 다 합니다. 애당초 이 캐릭터에서 이 이상을 뽑아낼 수는 없을 겁니다.




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상기 감독도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김명민-손예진을 중심으로 한 영화를 계획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갑자기 영화는 김명민-김해숙의 구슬픈 모자 드라마가 되어 버립니다.

이건 아마도 김해숙의 열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해숙은 언제나 그렇듯, 너무도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고 아마도 상당히 많은 관객들로부터는 눈물도 뽑아냈을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김해숙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소 무책임한 엔딩을 덮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이상기 감독이 생각한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액션일 겁니다. 첫 장면의 조폭단 검거 장면이나, 김명민이 수시로 보여주는 액션은 상당히 좋습니다. 심지호를 비롯해 '프랑켄' 김준배, '주무치' 박성웅 등의 호흡이 제대로죠.

솔직히 액션만으로도 '무방비도시'는 평균점 이상을 받을 만 합니다. 하지만 액션만 갖고 한 영화가 승부를 볼 수 있다면 이연걸이나 성룡의 영화가 가끔씩 흥행에 실패하는 이유가 뭘까요.





손예진의 패거리나,




김준배(영화 '강적'에서 공포의 대상 강철민 역으로 주목을 확 받았죠)




그리고 주무치 박성웅의 제 모습.


여기에 1인2역을 한 김병옥까지(그런데 왜 1인2역을 굳이 했는지 모르겠군요) 배우들은 각기 자기 몫을 해 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플롯과 연출의 약점을 건져 올리지는 못합니다.

현재의 상태로도 '무방비도시'는 꽤 많은 관객들을 만족시킬만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진행은 빠르고 액션은 군더더기가 없죠. 하지만 역시 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마무리 솜씨에 실망을 표현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한껏 펼쳐진 이야기를 하나로 쥐고 홱 틀어 올리는 솜씨, 그리고 수백번 되풀이된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로 들리게 하는 기술을 가다듬지 않으면 이상기 감독은 당분간 시행착오를 겪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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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완성되기 전부터 '뭔가 괴물같은 영화가 하나 나올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나홍진이라는 신인 감독은 '어쩌면 천재일 지도 모른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고, 두 명의 주연 배우 역시 역량이 입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김윤석은 '타짜'를 통해 대한민국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과 같은 선에 설 수 있는 실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줬고, 하정우 역시 뭔가 터뜨리고 말 재목이라는 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죠. 그래서 정작 영화의 세부 사항(잔혹한 스릴러라는 것 외에는)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기대가 꽤 영글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원래 큰 법. 하지만 진짜 물건은 그런 큰 기대를 넘는 파도를 만듭니다. 저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에게 2008년 최고의 영화로 기억될 '추격자'는 그렇게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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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마사지 업주로 변신한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는 잇달아 일어나는 휘하 마사지사들의 실종으로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는 어느날 애 딸린 미진(서영희)을 억지로 한 손님에게 내보낸 뒤에 문제의 휴대폰 번호가 수상하다는 걸 깨닫죠. 하지만 미진은 연쇄살인마 지영민(하정우)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맙니다.

'추격자'는 잘 알려진대로 출장마사지사 등 유흥업계 종사 여성들을 주로 살해했던 유영철 사건을 재구성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누가 살인마인지를 추격하는 두뇌 게임을 보여주는 작품은 아닙니다. 범인의 정체는 시작하고 20분 이내에 모든 사람이 알 수 있죠. 하지만 게임은 거기서 시작되고, 나홍진 감독은 두 시간 내내 관객의 가슴을 벌렁벌렁하게 만듭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가리켜 '한국영화 사상 최고의 연출 데뷔작'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장편 영화를 처음 연출하는 감독의 작품으로서 이보다 훌륭한 영화는 없었다는 뜻이죠. 의견이 다를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튼 이 영화는 그런 칭찬을 받는데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미 엄청난 찬사를 받고 있는 영화인 만큼, 칭찬은 간략하게 보태고자 합니다. 영화 진행상 중요한 대부분의 장면들이 밤의 골목길이나 실내의 침침한 화면인데도 불구하고 감독이 의도한 것, 즉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장면들은 너무도 선명하게 콕콕 찌르듯 전달됩니다. 이건 감독이 화면 어디를 어둡게, 어디를 밝게 해야 할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었다는 뜻이죠.

화면의 물림 또한 거의 완벽합니다. 갑자기 밝아졌다 어두워진다거나, 중견 감독들의 작품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화면 톤의 갑작스런 변화도 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미 편집 단계에서 감독이 자기가 원하는 장면을 모두 갖고 있지 않고선 확보하기 힘든 완성도입니다.

(물론 현장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완성도는 감독이 천재라서가 아니라, 엄청난 강도의 재촬영 -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죽을 때까지 다시 찍을 수 있는 끈기와 스태프를 설득해내는 리더십의 증거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어느 쪽일까요?^^)



김윤석과 하정우라는 배우들 또한 아무리 칭찬해도 넘치지 않을 겁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하정우는 상대적으로 인물의 설정이 쉬운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은 데 비해 김윤석은 다소 복잡한 엄중호라는 인물을 너무도 완벽하게 관객에게 납득시킨 공로가 있어 더욱 칭찬받을 만 합니다.

엄중호는 지나치게 악하지도, 또 지나치게 선하지도 않은 인물입니다. 그저 어떻게든 먹고 살아 보려는 인물이고 초반에는 어쨌든 자기가 본 손해를 만회하겠다는 생각밖에 없지만, 영화 후반이 되면 정의의 사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병원에 누워 있는 미진의 딸을 위해 어떻게든 미진을 찾아내야 한다는 의무감을 실천으로 옮길 양심은 갖고 있는 사람이죠.

미진을 찾아 다니는 과정에서도 어린 아이를 앞에 두고 "미친년, 차라리 사우디라고 하지"라는 식으로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함부로 해 대는 사람이지만 최소한 뼈속까지 썩은 사람은 아닙니다. 이런 '보통이거나 보통만 못한 사람'이 결국은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부분에서의 메시지는 황정민이 연기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관객이 느끼는 설득력 면에서는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아무튼 미진의 어린 딸을 이용한 엄중호의 동기 부여는 어찌 보면 전형적인 수법이지만 매우 효과적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흔들림과 엄중호의 변화는 김윤석의 놀라운 연기력으로 관객에게 자기 일처럼 전달되죠.




그런데 사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해묵은 궁금증 하나가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경찰 부분에 대한 놀라운 디테일에 대해 "정말 리얼하다"며 감탄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사람들 중 실제로 이 영화가 '리얼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진짜 경찰 관계자이거나, 경찰 가족이거나, 하다못해 경찰서 출입기자이거나 경찰서를 수시로 드나드는 범법자들이 아닌 일반인들은 대체 어떻게 이 영화가 '리얼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역시 많은 사람들로부터 "소름끼치도록 리얼하다"는 찬사를 받아냈던 오마하 비치 상륙 장면에서부터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기관총에 맞아 병사들의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장면을 실제로 본 사람은 관객들 중 0.001%도 안 될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영화가 구현해내는 전쟁을 '리얼하다'고 느낍니다.

실제 있었던 전쟁이고, 그 참상을 전해듣거나 다큐멘터리로 봤기 때문일까요. 가끔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도 '리얼하다'고 느끼곤 합니다.





예를 들면 제임스 카메론의 '에일리언 2'에 나오는 우주해병대와 에일리언의 격전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리얼하다'고 중얼거리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자신들이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을텐데 말이죠.

정리해서 말하자면, 많은 경우 관객들이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리얼리티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건 연출자와 배우들의 교묘한 사기일 뿐이죠. 즉 '그럴 듯 한 것'과 '실제로 그런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다수 관객들은 영화 '세븐 데이즈'에서 김윤진이 펼치는 엉성한 법정 변론 장면에 대해서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습니다.

'추격자'에서도 관객들이 이 영화에 나오는 경찰들의 모습에서 리얼함을 느끼는 것은 '왠지 그럴 것 같기' 때문이지, 실제로 그렇다는 것을 많은 관객들이 알기 때문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추격자'의 대본과 설정은 매우 성공적이란 얘기가 되겠죠.





아무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추격자'는 순식간에 끝나 버립니다. 러닝 타임은 두시간이 넘지만 너무도 짧게 느껴지게 말이죠. 수많은 장르 가운데서도 특히 스릴러의 수준이 낮았던 대한민국에서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건 정말 기적으로 여길만 합니다.



p.s. 두번이나 시도한 끝에 영화를 봤습니다. 스타라고는 없는데다 개봉 직전까지 인지도도 극히 낮았던 이 영화가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건 더욱 더 놀라운 일입니다. 평단과 언론의 집중적인 호평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특히 기본적인 사건의 인과관계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말이 되는' 영화의 흥행이라 더욱 반갑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이 대본 단계에서의 완성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조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군요.




p.s.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혹시 잔혹한 장면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분은 좀 주의하시는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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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저는 이 영화를 굉장히 재미 없게 보았어야 정상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저는 원신연 감독의 전작 '구타유발자'를 매우 불쾌하게 봤습니다. 게다가 한국산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에 대해 심각한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김윤진의 연기력 또한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연기를 볼 때면 '싱글벙글쇼'의 진행자 김혜영씨의 목소리를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즉 '기본적으로 오버하는 목소리'라는 생각이죠.

뭘 해도 자연스럽지 않고, '연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셰익스피어 극을 대극장에서 공연한다거나 할 때에는 이런 과장된 스타일의 연기 방식이 반드시 필요할 지도 모르지만, 배우의 털구멍까지 다 보여주는 HDTV나 스크린에서 이런 배우는 아무래도 좀 부담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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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긍정적인 자세로 돌아서게 됐습니다. 최소한 영화의 80%까지는 극찬을 해도 아깝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는 한국 영화지만 그 가운데서 예외 취급을 받아 온 미스터리 스릴러 - 물론 '범죄의 재구성'같은 극소소의 예외가 있긴 합니다만 - 장르에서 이 정도의 작품이 나온 건 대단히 반가운 일입니다.

줄거리. 승소율 99%라는 명 변호사 유지연(바로 김윤진입니다)은 어느날 운동회 판에서 딸을 잃어버립니다. 평범한 유괴가 아니죠. 범인은 돈 대신 사형이 확실시되는 흉악범을 풀어 내 달라고 요구합니다.

어쩔수 없는 상황. 유지연은 어린시절의 친구인 비리 경찰 김형사(박희순)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추적해나갑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들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죠. 어쩌면 재판을 기다리는 범인이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우선 칭찬할 것은 영화의 한 80%지점까지 쉴새없이 관객들을 독려해서 목적지로 몰고 가는 원감독의 힘입니다. 물론 김형사가 지나치게 유능하다는 점이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하나 하나 드러나는 증거들은 매우 흥미롭고, 귀찮은 부분들을 과감하게 쳐낸 결단력도 좋았습니다.

저는 유괴 사실 확인 - (경찰에 신고 - 경찰 출동 - 범인의 전화 - 돈가방 전달 게임) - 범인의 비웃음과 진짜 목적 공개에 이르는 과정에서 (   ) 안의 부분을 거의 1분 내외에 압축한 부분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법정 장면에 있습니다. 아마 이 영화 제작진은 한국의 형사 재판을 단 한번도 방청해보지 않았거나, 한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묘사에 아무런 열의가 없는 사람들일겁니다. 하긴 관객 중에도 진짜 법정에 가 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테니, 미국 법정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와 변호사들처럼 대강 그려도 뭐랄 사람이 없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한국 법정에서는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검사와 변호사의 불꽃튀는 배심원 설득 경쟁 같은 것은 절대 볼 수 없습니다. 한국 법정은 방청객을 위한 쇼 무대가 아니라 검사와 변호사, 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전문가인 판사 사이의 숙의가 이뤄지는 곳이죠. 물론 이때문에 사실대로 그리면 절대 재미있지 않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중학교 2학년만 되어도 충분히 알만한 내용의 '국민 기초 법률 상식'-이를테면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을 마치 새로운 관점인 양 들고 나와 변론을 풀어가는 유지연 변호사의 역량을 보면 도대체 저 변호사가 어떻게 99%의 승률을... 이란 생각이 절로 듭니다. '배운 관객'이라면 충분히 흥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오광록의 증거 제시 장면은 '말 안 되기'의 극치입니다. 한국 법정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다가는 무죄로 풀려날 사람도 사형 판결 날 겁니다.





이 영화에 대한 비판 중에는 '지나치게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내고 있다'는 것도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와 설정이 비슷한 작품은 한둘이 아닙니다. 조니 뎁 주연의 1995년작 '닉 오브 타임'은 범죄자들이 조니 뎁의 딸을 납치한 뒤 풀어주는 대가로 유력자를 암살하라고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뭐 더 비슷한 영화도 있죠.



'주어러'는 악의 화신인 알렉 볼드윈이 유명 마피아 보스 재판의 배심원이 된 데미 무어에게 "안에서 배심원들을 설득해 보스를 풀어주지 않으면 아들을 데려다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때부터 무어의 설득력과 리더십이 불을 뿜기 시작하죠.

하지만 이런 줄거리의 유사성보다...



일단 제목에서부터 '세븐 데이즈'에선 '세븐'의 냄새가 풍깁니다. 어두침침한 실내, 음침한 메시지 전달, 소포로 전달되는 절단된(?) 물건, 그리고 바람부는 갈대밭에서 이뤄지는 마지막 시퀀스는 이 영화가 '세븐'에 대한 오마주라는 걸 내놓고 보여줍니다.

뭐 잘된 작품을 따라하는 걸 흠잡을 생각은 없습니다. 모든 영화가 자기만의 독특한 색채로 포장할 수는 없는 일이죠. 나쁘지 않습니다.




이 분의 연기는 처음에 얘기한대로입니다. 이 영화에서도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특히 앞 부분에 딸과 욕조에서 노는 장면 같은 데서는 어떻게 해도 엄마와 딸의 그림이 나오질 않더군요. 그냥 '엄마와 딸 연기를 하고 있다'는 정도.





반면 이 영화 최고의 소득은 이 분입니다. 이름조차도 생소했던 배우가 이제는 한국 영화의 당당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면 좀 과장일 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이 영화에서의 박희순은 훌륭했습니다. 내년쯤 이런 저런 영화제에서 조연상 후보로 거론될 수도 있겠더군요.

(어쩐지 NRG의 이성진을 연상시키는 용모.^^)






그리고 흑개 형님과 현무가 나와서 이건 뭔가 태왕세븐기...^^

아무튼 결론적으로 '한국 사법제도에 대한 지나친 지식(^^)'만 없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원신연 감독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살짝 생기더군요. '구타유발자'로 입은 내상이 충분히 회복되는 느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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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영화상 작품상을 '우생순'이 받았습니다. 다소 의외이기도 했지만 워낙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에는 별로 이의를 달 생각이 없습니다.

개봉된지 좀 지난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신 분들도 있을 듯 합니다. 그 뒤로 또 한번 올림픽이 있었고, 또 한번 한국 여자 핸드볼의 선전을 성원하시는 분들이 있었죠. 하지만 예상대로 핸드볼은 역시 그때만 관심을 끌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마음만 갖고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영화 개봉 그때의 기분을 다시 한번 느껴보기 위해 리뷰를 리뷰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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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관심이 없는 분들도 올림픽 때가 되면 몇몇 종목에 갑자기 관심이 생기곤 하죠. 평소에 양궁 선수권대회를 중계하는데 그걸 보고 있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필드하키도, 유도도, 핸드볼도 마찬가집니다. 오죽하면 '한데볼'이란 말이 나왔을까요.

혹자는 "세계적인 비인기 종목이기 때문에 한국에게 금메달 딸 기회가 오는 것"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세계적인 인기 종목'인 육상 단거리나 축구, 남자 농구라면 한국이 메달권에 들 수 있겠느냐는 독설인데 뭐 일면 맞는 부분도 있고, 진정으로 팬들이 재미있어 하지 않는 종목이라면 평소 관객석이 차지 않는 것을 인위적인 노력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겠느냐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넘어 스포츠맨들의 투혼이 때로 드라마틱한 감동의 순간을 낳는 것은 승부의 순간에서 아주 단순하게 열정을 불태우는 원초적인 인간의 감정이 그 순간 눈을 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스포츠의 순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어떤 종목이든 '선수들'이란 스포츠맨십이고 나발이고 자신의 영달과 복리를 위해서만 뛰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심사 비틀린 사람들(네. 주로 기자중에 많습니다^)이더라도 어느 한 순간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졌다시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후 우생순)'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핸드볼 선수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당시 결승에서 덴마크를 만난 한국 선수단은 두 차례나 연장까지 가는 대 접전 끝에 석연찮은 판정 등으로 은메달에 그치고 말았지만 대단한 투혼으로 국민의 성원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영화 '우생순'은 핸드볼 대회에서 우승한 팀이 해체되는 날의 광경부터 시작됩니다. 핸드볼계의 스타플레이어 미숙(문소리)는 같은 선수 출신 남편이 사업에 실패, 쫓겨다니는 상황이라 생계를 위해 선수생활을 마치고 대형 마트의 판매원으로 일하게 됩니다.

한편 미숙의 평생 라이벌이자 일본에서 선수 겸 감독 생활을 하고 있는 혜경(김정은)은 대표팀 감독 대행 자리를 맡아 귀국하죠. 혜경은 전력 보강을 위해 미숙을 합류시키려다 팀 해체로 놀고 있던 정란(김지영)까지 합류시키죠. 하지만 이들에다 골키퍼 수희(조은지)를 포함한 고참 4인방은 후배들과의 호흡이 영 껄끄럽고 협회는 혜경에게 남자인 안감독(엄태웅)에게 지휘권을 넘기자고 얘기합니다.




뭐 영화와 실제가 조금씩 다를 수는 있겠죠. 아무튼 아테네 대표팀이 실제로 팀 해체 때문에 다른 일 하고 있던 선수들을 데려온 건 아닙니다(아무리 국내 선수층이 엷어도 그런 일까지야...). 당시 세대 교체를 시도하다가 팀 전력의 약화로 92년, 96년 세계 무대에서 활약했던 고참 선수들을 다시 불러 모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들 '아줌마 군단'은 다들 일본 실업 팀 등에서 잘 나가고 있던 선수들입니다.

보다 완벽한 드라마를 기대했던 분들이라면 실망하셨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해도 이들이 거저 은메달을 딴 건 아닙니다. 그리고 역시 여자인 임순례 감독은 이 영화를 그저 스포츠 영웅들의 이야기로 그치게 하기 보다는 이 사회 안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겪는 여러 가지 일들을 비추는 창문으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면 이혼 경력 때문에 국가대표 감독직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 혜경이나 아이 봐 줄 사람이 없어 훈련장에 아들을 데려오는 미숙, 그리고 성적을 내기 위해 생리 주기까지 조절하다가 불임으로 고생하게 된 정란의 이야기 등이 바로 그렇죠.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주가 되면 지나치게 이야기가 빡빡해 지겠지만 임 감독의 솜씨는 그렇게 단순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통념에 대해서도 반박의 기세를 높입니다. 항상 여자들이 많은 조직에서는 남자들보다 훨씬 거센 반목과 편가르기, 그리고 세대간의 부조화가 술자리의 안주로 등장하죠. 하지만 '우생순'에서는 이런 현상을 대표팀이 극복해가는 과정이 상당히 설득력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경기와 훈련 장면을 최소화한 것이 감독의 공일지, 제작사의 공일지, 아니면 유능한 편집자의 공인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튼 대단히 좋은 선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출연자들이 남자건 여자건, 스포츠 영화에서 감독은 배우들이 일정 수준 이상 전문 선수들처럼 보일 수 있는 기량을 익히길 기대합니다. 왕년의 히트 드라마 '마지막 승부'에서도 선수들은 '연기 연습보다 농구 연습이 몇배 힘들었다'며 지칠대로 지친 한숨을 토해내기도 했습니다. 이번 '우생순'에서도 배우들은 '선수가 다 됐다'며 어려움을 토로했죠.




사실 이런 부분은 스포츠 영화나 드라마에서 배우들이 직접 보여주는 기량이 관객들의 만족에 대단히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뿌리 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마지막 승부'의 장동건이 대단히 뛰어난 농구 기량을 보인 것도 아니고, '아이싱'의 장동건이 아이스하키 선수로서 '마지막 승부'에서의 농구 선수보다 심하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 것도 아니지만 '마지막 승부'는 크게 성공하고 '아이싱'은 처참하게 망가졌습니다. 운동선수로서의 기량이 드라마의 재미를 결정하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배우들이 선수 뺨치는 실력을 보여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죠. 하지만 어차피 거기엔 한계가 있고, 감독의 역량은 그런 한계를 어떻게 시각적으로 살짝 극복할 수 있는지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개인적으론 어떤 스포츠 영화든 진짜 마이클 조던이 주연으로 나서지 않는 한, 배우들의 경기장면은 짧을 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우생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스포츠 영화, 그리고 세계 최초의 핸드볼 영화(이것도 정말일까요?^^)로서 값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게다가 재미까지 있는 영화로 말입니다.




문소리와 김정은의 연기는 가끔씩 몇 장면에서 지나치게 교과서처럼 흘러가기도 했지만 매우 훌륭한 호흡을 보였습니다. 굳이 점수를 주자면 어느 정도 답이 나와 있는(본보기도 많고, 공감을 이끌어 내기 쉬운) 미숙 역의 문소리보다 좀 생뚱맞은 혜경 역을 맡은 김정은의 손을 살짝 들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성지루-김지영의 코믹 듀오도 아주 좋았고,




조은지의 코믹 연기는 정말 발군입니다.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도 유감없이 재능을 보였지만 이 영화에선 훨씬 약한 소재로도 자기 몫의 웃음을 다 뽑아냅니다.




사실 엄태웅이 그리 좋은 연기를 보여준 건 아니지만, 꽤 어울렸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이상 뭘 할 수도 없었을 것 같네요. '그들만의 리그'의 톰 행크스는 지나 데이비스와 살짝 애틋한 감정의 교류가 있었지만 이 역할엔 그런 것도 그냥 웃어넘길 수준으로 그려져 버렸으니 말입니다.

유부녀 선수와 뭔가 교감이 있는 걸로 그려지면 선수들에게 누가 될까봐(워낙 픽션과 논픽션을 구별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골치아픈 문제는 피해가려 한 거였을까요?




아무튼 이들 배우들의 호연은 이 영화가 그저 '감동적이기만 한' 영화가 아니라 대중들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상품이 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임순례 감독도 드디어 히트작을 갖게 될 것 같군요.










당시의 주역들인 실제 '아줌마 군단' 선수들의 모습.





영화 마지막 장면에는 간단한 실제 선수-감독들의 인터뷰가 삽입됐습니다. 여기서 압권은 임영철 감독. 한국의 핸드볼 현실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임 감독은 갑자기 감정이 복받치는지 '허, 참' 하면서 눈물을 참으며 말을 잇지 못합니다.

영화 백편보다 더 절절한 장면. 물론 영화 본편보다 엔딩 크레딧이 더 감동적이라는 '디 워'도 있었지만, '우생순' 마지막의 임영철 감독의 모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생순', 보셔도 좋습니다. 뭐 꽤 오래 극장에 걸려 있을 것 같으니 천천히 보셔도 무방하겠지만.



p.s. 영화의 제목에 대해 '우리 생애 최고의 해'에서 따 왔다는 의견이 있지만, 사실 전 다른게 생각나더군요. 바로 "감독님의 전성기는 언제입니까? 전 지금입니다!"라는 대사...


마지막 장보람의 출전 장면도 이 만화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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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은행털이범들이 맨하탄 한복판의 은행을 점거합니다. 경찰이 출동해 인질극이 벌어지고, 엄청난 대치상태가 계속되다가 갑작스레 상황이 끝나지만 범인은 사라지고 은행의 피해도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다면?
<인사이드 맨>은 처음부터 묘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관객에게 만만찮은 도전장을 내밉니다. '자, 네가 그렇게 영화 보는 눈이 까다롭다면 이 영화에 맞서 봐라.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겠어?'라는 식입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을 알면 호승심이 일어날 만도 합니다.스파이크 리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벌어지는 NBA 뉴욕 닉스의 홈경기에는 빠지지 않고 예의 수건 패션으로 열렬한 응원을 퍼붓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옳은 일을 해라> 이후로 백인 주도의 미국 사회에 대한 치열한 비판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스파이크 리가 수천만원대의 가격인 매디슨 스퀘어 가든의 지정석에 앉아 있다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묘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무튼 흑인 사회에서도 '성공한 흑인의 모범 사례'로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제법 관대한 것 같습니다.

그 성공의 덕분인지 마냥 거칠기만 하던 스파이크 리의 영화들은 점점 세련된 양식미를 갖춰가기 시작합니다. 그 성공의 이른 예는 2002년작 <25시>였습니다. 게오르규의 원작, 앤서니 퀸 주연의 영화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작품이지만 리의 <25시>는 9.11이 미국인들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가에 대한 가장 탁월한 해석 중 하나라는 평을 얻으며 스파이크 리의 '후기 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평가받기 시작했습니다.그런 그가 스릴러라는 새로운 장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그의 팬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피카소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전향한다면 이런 느낌일까요. 언제나 줄거리보다는 메시지가 앞서 있던 그가 굳이 새로운 장르에 손을 대는 것은 결국 "내가 못해서 안 하는 건줄 알아, 별로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안 하는 거지"라는 식의 투정(?)일 거란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이런 식의 의도된 변신은 성공하기 쉽지 않지만, 스파이크 리는 멋지게 해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 <인사이드 맨>은 스파이크 리의 영화 중 유례가 없는 흥행 성과(약 8800만달러)를 거뒀습니다. 본전이 4500만달러라니 거의 두배 장사를 한 셈이죠.과연 이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요. 일단 줄거리부터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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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이 열리면 달튼 러셀(클라이브 오웬)의 독백이 등장합니다. 그는 세 패거리를 이끌고 뉴욕의 한 은행을 점거합니다.  독직 혐의를 받고 있는 프레지어 형사(덴젤 워싱턴)는 니고셰이터 역할을 맡아 현장으로 출동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이어 현장에는 해당 은행의 실질적 소유주인 아서 케이스(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등장해 유난히 저자세를 보이고, 케이스로부터 권한을 이양받은 매들린 화이트(조디 포스터)가 시장을 등에 업은 자세로 범인을 만나게 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사무엘 잭슨과 케빈 스페이시의 연기가 빛났던 <니고셰이터> 이후로 니고셰이터와 인질범의 두뇌 싸움에 대한 영화는 제법 많이 나왔지만 이 영화에서처럼 팽팽한 대결을 벌이는 맞수들은 그리 흔치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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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전제 중 하나는 이겁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면을 쓰면 비슷해 보인다. 그 사람이 백인이건 흑인이건, 또는 인도인이건, 남자건 여자건, 미국인이건 알바니아인이건 그게 그거라는 얘깁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악의일 뿐, 그의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는 겁니다.일단 눈길을 끄는 것은 화려한 출연진입니다. 덴젤 워싱턴과 조디 포스터, 클라이브 오웬은 물론이고 윌렘 데포가 별다른 역할이 없는 관할 서장 역할로 우정출연(?)을 할 정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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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데이>를 통해 부패 경찰로 이미지 변신을 노렸던 워싱턴은 이번엔 뇌물 수수 혐의로 궁지에 몰린 - 이건 뭔가 누명인 듯 하지만 왠지 그 밖에도 켕기는 게 있는 듯 한 - 프레이저 형사 역으로 멋진 새출발을 선언합니다. <클로저>에서도 제목대로 클로즈업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던 클라이브 오웬 역시 차세대 제임스 본드 제1 후보의 명성에 걸맞게 냉철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조디 포스터가 자기 몫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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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수많은 배우들의 명연보다 빛나는 것은 역시 대본의 힘입니다.  이 영화의 대본 크레딧에는 러셀 거위츠라는 사람의 이름만이 올라와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 데뷔작이군요.거위츠와 리 콤비는 사건 발발 이후 거의 40분에 이르는 동안 '대체 저 놈들이 뭘 하려는 걸까' 하는 궁금증으로 관객들의 눈을 스크린에서 잠시도 떼놓지 못하게 합니다. 한 40분이 지나야 비로소 그들의 음모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힙니다.

그 동안 리와 거위츠의 호흡으로 이뤄지는 화면은 그야말로 명인의 칼춤을 연상시키듯 매끄러우면서도 아찔합니다....여기서 잠깐 한마디 곁길로 새자면, 만약 <출발 비디오 여행> 등으로 이 영화의 진행 방향을 미리 알고 있는 관객들이라면 이 시간은 더럽게 느린 진행때문에 지루함에 떨 수밖에 없을 그런 시간입니다. 부디 양식있는 관객, 그리고 영화의 제 맛을 보고 싶은 관객들은 이런 프로그램들이 방송될 때 잠시 채널을 끄고 산책이라도 다녀오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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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은행가인 한 노인의 과거. 그 과거를 이용해 돈을 벌려 하는 남자. 아주 조금은 부패했을 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양심을 갖고 있는 남자. 이 세가지 요소의 결합은 멋진 오락물을 만들어 냅니다. 신나게 총 빵빵 쏘는 장면 따위는 등장하지 않는데도 이 영화가 주는 스릴은 제법 긴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합니다.물론 눈에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 스파이크 리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전달됩니다. 이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소위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미국의 지도층,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 세력들이 과연 과거사를 캐 볼때 떳떳하기만 하느냐는 스파이크 리의 당돌한 질문입니다.

아울러 미국을 이끌고 있다는 엘리트들이 과연 미국의 평범한 시골 사람들 앞에서 9.11을 팔고, 애국심을 팔 만큼 도덕적으로 온전하냐는 비판도 곁들여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미국의 파워 엘리트를 상징하는 매들린 화이트조차도 '빈 라덴의 사촌이 미국 내에서 살 집'을 대신 알아봐 주고 있을 정도니까요. 이런 메시지들이 숨어 있긴 하지만 <인사이드 맨>은 결코 메시지 과잉의 정치색 짙은 영화는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스파이크 리는 과거와의 단절을 보여주고 있죠. 이 영화로 '스릴러도 만들 줄 안다'는 것을 만천하에 과시한 스파이크 리가 과연 다음번에는 어떤  재주를 보여줄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2006.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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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시민공원의 흔히 볼 수 있는 박스형 매점에 사는 한 가족이 있습니다. 아버지(변희봉)의 속을 무던히도 썩히는 덜떨어진 장남 강두(송강호)는 딸 현서(고아성)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여동생 남주(배두나)의 양궁 경기로 채널을 돌립니다. 그러나 이날 괴물이 한강 밖으로 몸을 드러내고, 강두는 두 눈 앞에서 딸이 괴물에게 납치되는 광경을 봅니다.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물을 먹었지만 운동권 출신으로 날건달처럼 지내고 있는 둘째 아들 남일(박해일)은 현서의 영정이 놓인 합동 영결식장에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의 한마디가 관객들의 웃음보를 풀어놓습니다.

"현서야~~ 너때문에 다 모였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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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기자시사회가 치러진 이후 전국은 <괴물>을 칭송하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온갖 언론과 평론들이 입을 모아 <괴물>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나섰습니다. 저는 일반인 대상의 시사를 통해서나 영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기대가 컸죠.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발걸음은 왠지 그리 가볍지 않았습니다. 일단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110억원. 큰 돈이지만 사실 1000만 달러를 조금 웃도는 정도의 돈입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1/10 가격으로 저 정도의 CG 괴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이 괴물은 몸에 불이 붙었을 때 외에는 거의 흠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합니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더 이상 기대하면 곤란할 정도로 훌륭합니다. 네 명의 가족들은 각기 톱니바퀴처럼 자신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수행해냅니다. 아무래도 가장 인상적인 역할은 아버지 역의 변희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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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철없이 밖으로만 나돈' 아버지 변희봉은 강변 노점 벽에 걸린 멧돼지 얼굴이 보여주듯 상당히 거친 과거를 가친 인물입니다. 비록 지금은 한강시민공원에서 컵라면을 파는 노인에 불과하지만, 사제총(혹은 엽총)을 들고 괴물과 맞서는 일순간, 그의 젊은 날을 짐작할 수 있는 표정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거야말로 노련미  넘치는 노장의 진가가 드러나는 장면이었죠.

이밖에도 송강호 박해일 배두나에게 굳이 연기를 잘했네 어쩌구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이승엽의 방망이질이 날카롭네 힘차네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니 생략해도 좋을 듯 합니다. 특히나 무슨 일이 있어도 뛰지 못하는 배두나의 거북이 캐릭터는 너무 실감이 넘쳐서 분통이 터질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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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추억>만큼은 아니지만 영화 곳곳에 숨어 있는 유머도 빛을 발합니다. 송강호의 답답한 캐릭터는 좀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어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이미 유명해진 'NO VIRUS' 신을 비롯해 관객들의 폭소선은 여러번 터집니다. 이 대목에서 박노식과 김뢰하가 별 특징 없는 장면에 투입된게 좀 아쉽습니다.

마지막 장면의 "밥먹자"는 <살인의 추억>의 "밥은 먹고 사냐?"를 연상시키는 대사이긴 합니다만 두 '밥'의 의미는 완전히 갈립니다. 후자의 '밥'은 '너 따위도 모진 목숨을 이어갈 자격이 있느냐'는, '생존의 자격'을 내포한 단어라면 전자의 '밥'은 그저 살아 있는 생명체라면 누구라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생존의 욕구'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아무튼 밥을 먹는 라스트신은 너무도 인상적인 마무리입니다.

(중간에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장면에 현서가 나타나 밥을 함께 먹죠. 이건 '제사밥'이라는 한국 고유의 전통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라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괴물>은 매끈하게 잘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런데도 불만이 있다면 기대가 지나친 탓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이 영화를 보다 보면 '대체 괴물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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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영화는 그저 그대로 내러티브를 따라가면서만 보(아도 사실 별 상관은 없겠지만)면 어쩐지 엉성한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일단 아무리 괴물이 무서운 존재라 해도, 어느 정부가 '바이러스가 발생했다'는 이야기에만 정신이 팔려 괴물의 수색 자체를 포기하겠습니까. 게다가 미국의 생화학부대까지 파견돼 한강을 죽음의 강으로 만들려 하는 것은 이 영화를 좀 지나치게 정치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악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이 영화는 거대한 한편의 우화입니다. 우화라면 무엇에 대한 우화일까요. 봉준호감독은 일찌감치 인터뷰를 통해 '이 영화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다'라는 말을 통해 이 영화에 제기될 반미 시비를 차단하려 합니다. 봉감독을 옹호하는 평론가들 역시 '그저 반미라기보다는 반미를 넘어선 권력 자체에 대한 비판'이라며 박자를 맞춥니다. 하지만 그 '권력'의 주체가 결국 미국이라는 점은 이 영화가 위치하고 있는 노선을 너무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물론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감독들이 위압적인 권력이나 부패한 사회를 괴물이나 유령으로 형상화하는 작품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에 나오는 좀비들이나 <천녀유혼>에 나오는 귀신들은 모두 부조리의 화신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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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골뱅이를 닮은 괴물은 무엇일까요. 어떤 존재를 1:1로 상징한다기보다는 부패한 권력 자체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이 부분에서 봉감독은 해석의 여지를 충분히 열어 둡니다. 어떤 이의 말대로 괴물은 '미국의 독(포르말린)에 의해 만들어진 독재 권력'을 상징하는지도, 또는 그 괴물과 접촉한 사람을 무조건 격리시키게 하는 북한 정권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아예 '분단이라는 모순' 자체를 상징할 수도 있죠.

쇠파이프(송강호)와 화염병(박해일)으로 무장한 '민중'들이 맞서야 하는 존재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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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렇게 쏟아지는 상징과 암호들은 이 영화를 그저 웃고 즐길 수만은 없는 작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반미 코드요? 물론 그저 '반미'라고만 요약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 영화는 미국이 누리고 있는 전 지구적인 권력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를 쉴새없이 전달합니다.

'바이러스를 처리하러 왔는데 바이러스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코멘트는 누가 뭐래도 이라크전을 상징하는 것이죠. 아무튼 이런 수없이 많은 '기호들' 이 때문에 이 영화의 오락적인 효용은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현악 4중주를 들으러 갔는데 풀 오케스트라는 물론, 전자기타와 가야금, 투베이스 드럼까지 등장한데다 어디선가 천둥소리, 대포소리, 폭포수 소리, 귀신 우는 소리까지 들려오기 시작한다면 청중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정작 들으러 왔던 현악 4중주는 '자, 이건 기본이니까 안 들어도 알지?'라는 듯한 지나친 생략 때문에 사뭇 위축돼 있다면 막상 듣는 사람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청중들에게 '그저 현악 4중주만 들으려 했는데 천상의 소리가 다 나더라. 기대한 것 이상으로 듣고 나니 정말 행복하다'는 '신선'들의 고담준론은 왠지 허탈하게 들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p.s 고백할게 있다면, 저는 주인공이 바보스러운 영화를 대단히 싫어합니다. 특히 뭐 하나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이 답답한 가족 이야기가 제게는 참으로 부담스러웠습니다. 이 영화가 편하지 않았던 것은 구구절절 풀어놓은 이야기와는 달리 그저 제 개인적인 취향 탓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의 공과는 직접 보시고 평가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그만치 공들여 잘 가꿔진 영화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2006.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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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오르면 교수대로 가는 해적 용의자들의 긴 줄이 보입니다. 그중에는 올가미에 아예 키가 닿지 않는 어린아이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이 정도 연령의 어린이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신비로운 우연의 손길이 닥치든, 주인공들이 필사적인 노력을 해서든 어린이는 구해 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일본산 공포영화 '링'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고어 버빈스키는 그따위 오랜 관습에는 눈길 하나 주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애라고 봐주는게 어디 있어! 라는 초강경의 입장입니다. '재미를 위해서라면 뭐든 희생할 수 있다'는, 소름끼치는 임전 태세를 보여주고 시작한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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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려 왔던 시대의 괴작, '캐리비안의 해적 3 -세상의 끝에서'가 개봉했습니다. 이 영화는 특이한 기록 하나를 세웠죠. 바로 시사회 없이 극장 개봉을 해버린 겁니다.

대한민국에서 개봉되는 영화들 가운데 언론(은 물론이고 배급 창구를 열어줄 극장주들을 위한) 시사회를 갖지 않고 바로 스크린에 오를 수 있는 영화는 1년에 한편 나오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죠. 극장주들에게든, 언론에게든 마찬가집니다. 극장들에게는 '우리 이번에 캐리비안3 갖고 왔는데 스크린 좀 내 주지? 영화를 먼저 보자고? 그럼 안 걸어도 좋고', 미디어에게는 '기사? 안 써도 돼. 어차피 사람들 다 보러 오게 돼 있어'라는 식의 자세인 겁니다. 물론 직접 이런 식으로 말을 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로 자신있는 영화가 대체 몇이나 있겠습니까.

사실 '캐리비안...' 시리즈는 정말 웃기는 작품입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평론가들이 싫어하는 히트작은 있어 왔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짜임새가 엉망인 영화가 히트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리고 짜임새는 없는데도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는 정말 드물죠.

이런 오만방자한 행태 때문에, 영화가 엄청난 대박을 내거나 망하기 전에는 미디어를 통해 기사가 나오기 쉽지 않겠지만, 아무튼 '캐리비안의 해적 3'는 전작들 못잖게 재미있는 영화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돈 쳐 들이고 재미가 없을 수가 있냐! 라고 말하시는 분들, 그런 영화도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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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한번 요약해 보겠습니다. 단, 이 영화는 1편과 2편을 보신 분들이 보셔야 합니다. 3편으로 처음 이 시리즈에 뛰어드신 분들은 지독하게 불친절한 - 지나간 시절의 요약 따위는 기대하지 마십쇼 - 대접을 각오해야 할 겁니다.

잭 스패로우(조니 뎁)를 되살리는 데 의기투합한 바르보사(제프리 러시), 엘리자베스(키라 나이틀리), 그리고 티아 달마(나오미 해리스)는 배와 선원을 구하기 위해 싱가포르의 대해적 사오펭(주윤발)을 찾아갑니다. 한바탕 예의 엎치락 뒤치락을 거친 뒤, 이들은 배를 타고 이 세상의 끝의 바깥 세상에서 잭을 구해 이승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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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는 결코 스포일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잭을 구해내지 못한다면 영화 3편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고... 또 아무튼 영화를 보시면 압니다.)

그렇게 해서 이들은 현존하는 해적의 영주(Lord) 9명을 모아 문어대가리 해적 데비 존스(빌 나이)와 악당 베켓(톰 홀랜더)의 연합에 맞서 싸우기로 합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이 시리즈 특유의 배신과 음모가 여러 차례 스치고 지나갑니다. 물론 대부분은 음모라고 하기에도 짜증스러울 정도로 유치한 수준입니다.

1편과 2편을 보신 분이라면 잘 아실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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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어린이들의 전쟁놀이 게임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어른들이라면 무슨 게임을 하건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하겠지만, 어린이들의 게임은 순식간에 룰이 바뀌고, 상황에 따라 계속 새로운 규정이 등장합니다.

빨간 비행기는 노란 탱크와 싸우면 이기지만 노란 탱크 중에서도 꼬리에 미사일이 달린 탱크는 비행기에게 이기고, 비행기 중에서도 헬리콥터는 모든 탱크에게 이길 수 있다는 식으로, 새로 등장하는 장난감의 종류에 따라 새로운 규칙이 아주 당연한 듯 인정됩니다.

'캐리비안...'의 우주도 그렇습니다. 무척이나 긴 1편과 2편에 걸쳐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아홉명의 해적 영주들이 갑자기 등장하고, 데비 존스가 몰고 다니는 플라잉 더치맨의 선장이 바뀌는 규칙(매우 중요합니다)도 어느 한 순간 등장해버립니다.

세상의 끝에서 죽은 사람을 데려오는데 어떤 사람은 거기까지 가서 데려와야 하고(예를 들면 잭 스패로우) 어떤 사람은 말만 하면 다시 살려낼 수 있는(예를 들면 바르보사) 지도 순식간에 그냥 뚝딱 설명 한마디로 정해집니다. 굳이 말하자면 드래곤볼로 살려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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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 3편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은 1편과 2편의 힘이 매우 큽니다. 두 편의 영화를 통해 친숙할 대로 친숙해진 주인공들의 운명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이죠. 즉 3편은 그 자체로서는 큰 힘을 갖고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동안 흐트려 놓았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으느라 안 그래도 엉망인 플롯은 더욱 허점 투성이가 되거든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 걸 따지는 건 정말 예의없는 행동이 되겠죠. 애당초 한번이라도 말이 되는 스토리였던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3편이 어느 정도 완결편의 흉내를 내느라, 그동안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잭 스패로우의 등장 신을 엄청나게 줄여버렸다는 점이 대단히 아쉽습니다. 이 영화가 아무리 엉망이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더라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조니 뎁이라는 천재 배우가 만들어낸 잭 스패로우라는 캐릭터의 힘을 빼놓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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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쨌든 3탄에서는 이야기를 일단락지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잭 스패로우까지도 평소의 말도 안 되는 행동양식을 버리고 비교적 정상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건 누가 봐도 상당히 재미를 떨어뜨리는 요소입니다.

대신 주변 인물들의 재롱은 많이 늘어났습니다. 제프리 러시는 1편에서의 악의 화신에서 벗어나 상당히 정감있고 노련한데다 어느 정도 의리까지 있는 해적 영웅으로 거듭납니다. 티아 달마도 대단히 중요한 역할이 됩니다. (물론 그 역할이 영화의 줄거리에 무슨 영향을 미치느냐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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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아 달마의 멀쩡한; 모습입니다.)

유령상태(?)의 해적인 핀텔(리 아렌버그)과 라게티(매켄지 크룩) 콤비의 유머도 일취월장했고, 여기에 배역명을 알 수 없는 두 명의 영국 수병까지 제2의 코믹 콤비로 빛을 발합니다. 눈 밝은 분들은 이 두 사람이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세요.

무려 2시간 40분을 뒤척댄 끝에 영화는 3부작에 걸쳐 펼쳐낸 대 로망의 끝을 보여줍니다. 물론 아쉽습니다. 과연 4편이 나올까요? 현재로서는 나올 가능성이 매우 짙습니다. 각본가 테리 로시오는 "4편에 대해 결정된 것은 없지만 조니 뎁은 '대본만 좋다면 또 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는 코멘트를 한 적이 있고, 뎁 역시 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제작자들이야 불감증이언만 고소영이겠지요.

주인공들 중 하나인 키라 나이틀리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17세부터 21세까지 이 영화에 매달려 있었다. 이젠 다른 영화를 하고 싶다"며 속편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쳤지만, 아니, 솔직히 말해 나이틀리가 나오고 안 나오고가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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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완이 없는 '캐리비안 4'는 얼마든지 구상할 수 있지만, 잭 스패로우가 없는 '캐리비안' 시리즈를 과연 '캐리비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림없는 얘기죠. 아마도 나온다면, 4편은 잭 스패로우의 또 다른 모험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키라 나이틀리와 올란도 블룸은 얼른 다른 영화를 알아보라고 하고요.

아, 물론 4편이 나온다면 또 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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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고어 버빈스키가 될지, 다른 감독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섣불리 '말이 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헛된 노력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장담을 받아야 할 겁니다. 말이 되는 잭 스패로우의 모험담은 논리정연한 오스틴 파워스나 마찬가지일테니까요.




p.s. 3편의 보너스 인물은 잭 스패로우의 아버지 티그 선장입니다. 배우는 너무도 당연히, 조니 뎁이 '잭 스패로우의 모델은 이 사람'이라고 일찌감치 밝혔던 롤링 스톤스의 기타리스트 키스 리처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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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티그 선장의 극중 모습은 없군요. ^^;

왕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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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이 영화를 케이블TV에서 자주 맞닥뜨리게 됩니다. 아마도 여름 시즌이라 그런 모양이죠. 그런데 이 영화를 다시 보다 보니 새로운 걸 느끼게 되더군요.

대체 왜 처음 이 영화를 볼때 그렇게 재미있었나 하는 점입니다. 이상하게도 두번째 보니 처음 볼 때에는 그냥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었던 어설픈 플롯이며 말도 안 되는 줄거리가 자꾸만 걸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체 처음엔 왜 이런 단점들을 쉽게 넘길 수 있었는지(물론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궁금해지더군요.

처음 그때의 느낌입니다.

 


1편에서 죽을 고생을 했던 세 주인공은 <캐리비안의 해적:망자의 함(Pirates of the Caribbean: Dead Man's Chest)>의 도입부부터 다시 고초를 겪습니다.

윌 터너(올란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키라 나이틀리)은 결혼식을 올리려는 아침, 동인도 회사에서 파견된 커틀러 베켓 경(톰 홀랜더)에게 체포됩니다. 베켓은 터너에게 잭 스패로우(조니 뎁)가 갖고 있는 망자의 나침반을 엘리자베스와 교환하자고 제의합니다.

따르지 않을 수가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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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낙천적인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불분명한 잭 스패로우는 바다의 제왕 데비 존스(빌 나이)에게 진 빚 때문에 언제 괴물 오징어 크라켄의 공격을 받을 지 몰라 도망치느라 엘리자베스고 뭐고 전혀 안중에 없습니다.

결국 스패로우는 자신을 찾아 나선 터너를 존스에게 넘겨 버리고 도망치는데 그 덕분에 터너는 존스에게 봉사하고 있는 아버지 '부트스트랩' 빌 터너(스텔란 스칼스가드)를 만나게 되고 새로운 모험이 시작됩니다.

고어 버빈스키는 정말이지 스토리의 논리적 정합성 따위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드러냅니다. <링>이야 원래 만들어져 있던 영화를 옮기는 것 뿐이었지만, 브래드 피트-줄리아 로버츠라는 황금 캐스팅에 제법 괜찮은 유머를 갖추고도 참패한 <멕시칸>으로도 버빈스키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 못잖게 스토리의 개연성은 형편없는 <캐리비안의 해적>이 대성공을 거뒀으니 이젠 잔소리를 할 사람이 아예 사라졌겠죠.

<망자의 함> 역시 플롯을 놓고 이야기를 하자면 참담할 정도입니다. 개연성은 뮤지컬 영화 수준이죠. 이 영화에서 지켜지는 설정이나 전제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해적인 잭 스패로우, 해적 마니아인 살짝 맛간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스완은 그렇다 치고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는 윌 터너까지도 정신없는 윤무 속으로 뛰어듭니다.

터너와 스패로우, 그리고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제임스 노링턴(잭 데이븐포트) 전직 영국 해군 준장이 펼치는 3자간의 칼싸움은 그 극치를 이룹니다. "대체 뭘 어쩌겠다는 거얏!" 하고 고함을 치고 싶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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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클라이막스를 이루는 엘리자베스의 배신만 해도 그렇습니다. 크라켄이 노리는 것이 잭 스패로우라면 잭 스패로우가 작은 배를 타고 달아날 때 화를 낼 이유가 대체 뭐란 말입니까. 반대로 크라켄이 잭 스패로우가 배에 없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둔하다면 같이 도망치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자의 함>이 재미있는 영화로 느껴진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배우와 캐릭터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조니 뎁이라는 당대의 에이스가 탁월하게 해석해 낸 잭 스패로우라는 독특한 캐릭터는 모든 플롯 상의 허점을 덮어 버리는 위력이 있습니다.

영화 <슈퍼맨>이나 드라마 <원더우먼>을 보면서 "아니 쟤들은 저 안경 하나 썼다고 저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못 알아본단 말이야?"하고 화를 내면 안 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캐리비안의 해적> 1편을 본 관객들은 잭 스패로우의 행동에서 논리적인 이유나 합리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행동의 예측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미 숙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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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관객들은 "대체 저게 말이 되는 소리야?" 라고 말하는 대신 잭 스패로우가 양팔을 헐랭이처럼 휘저으면서 도망칠 때 그냥 폭소를 터뜨려 버립니다. 그 편이 훨씬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를 잘 즐기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이밖에도 캐스팅은 여전히 성공적입니다.

매켄지 크룩과 리 아렌버그가 연기하는 라게티-핀텔 듀오의 호흡은 오히려 훨씬 좋아졌고, <러브 액추얼리>의 능청맞은 늙은 가수 아저씨 빌 나이는 문어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웃음을 터뜨리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스텔란 스칼스가드가 올란도 블룸의 아버지 역으로-1편에서 잭 스패로우는 "네가 빌 터너의 아들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어. 너는 아버지와 똑같이 생겼거든"이라고 말하죠-나온다는 건 <망자의 함>의 가장 큰 실수라고 부를 만 합니다.

물론 잭 스패로우의 재능도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있습니다. 조니 뎁이 모델로 삼았다고 고백한 키스 리처드도 <망자의 함>에 우정출연, 스패로우 부자의 코믹 신이 연출될 뻔 했지만 롤링 스톤스의 공연 문제가 겹쳐 안타깝게도 이 장면은 뒤로 미뤄져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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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자의 함>을 아직 보지 않은 분들에게 미리 드리는 팁 하나라면, 이 영화는 2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마지막에 허탈해 하지 마시길. 물론, 그렇게 대강 마무리하듯 끝나더라도 이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단, 당신이 잭 스패로우의 팬이 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에 한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결국 그렇게 되고 말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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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소식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촬영이 진행된 시리즈 3탄에는 우리의 영원한 따꺼 주윤발 형이 해적 두목 사오 펭 역으로 나온다는 점입니다. 감독이 버빈스키라면 윤발이형이 해적들을 상대로 멋진 쌍권총 묘기를 보여준다 해도 그리 이상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2편에서 부활하는 바르보싸(제프리 러시), 잠수 해군을 거느린 데비 존스와 함께 사오 펭이 펼칠 해적 선장 3파전이야말로 정말 볼만한 구경거리를 마련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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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데비 존스의 부하들이 한 해산물 분장(?)은 너무 실감나게 징그러워서 약간 비위가 상합니다. 특히 부트스트랩의 뺨에 붙은 홍합이며 불가사리, 작은 조개껍질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얼굴 피부가 근질근질해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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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거리>의 잔영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본 것이 실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전에 본 영화들이 좀 나빴어야 나중에 보는 영화가 득을 보기 마련인데, 왠지 <비열한 거리>에 비해 좋게 보기가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이 초반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간 이식수술을 받아야 하는 어린 아들을 보살피는 하형사(박중훈)는 이미 무능하고 부패한 형사로 낙인이 찍혀 있는 인물입니다. 어느날 술집 주인에게 보호비를 뜯으러 간 사이 파트너가 괴물같은 킬러 철민(김준배)에게 살해당하자 하형사는 상부의 문책과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합니다.

한때 잘 나가던 칼잡이였던 수현(천정명)은 손을 씻고 미래(유인영)와 함께 버스형 스낵코너를 운영하며 살아갑니다. 그런 그 앞에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 재필(최창민)이 나타나 누군가를 손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사소한 실수가 겹치며 수현은 경찰에 체포돼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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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수현에게는 저지른 것의 몇 배나 되는 혐의가 씌이고, 수현은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탈옥을 시도합니다. 공교롭게도 하형사가 수현의 인질이 되고 이때부터 두 남자의 치고받는 버디 드라이브가 시작됩니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느낌은 대단히 낯설다는 것입니다. 조민호 감독에 따르면 영화 환경의 80%는 종로구 일원이라고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눈길이 가지 않는 지역들을 골라 찍은 듯한 느낌이 강합니다. 더구나 조직에서 손을 씻고 라면을 끓이며 사는 미남 조폭이라는 설정과 한국의 조폭들이라기보다는 마피아를 연상시키는 암흑가 인물들의 모습이 사뭇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 답을 내렸습니다. 아, 이 영화는 판타지다.

하지만 얼마 뒤, 형사들의 사실감 넘치는 대화가 등장하고, 하형사의 파트너 장례식장이 나오고, 몸을 던져 범인과 격투를 벌이는 형사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리얼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느새 영화는 리얼리티를 강조하는 전통적인 형사 드라마가 되어 있습니다.

한 영화에서 두 개 이상의 장르가 충돌하는 경우는 적지 않고, 그게 반드시 나쁜 결과를 낳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강적>에서 이 두 장르의 결합은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비현실적인 주인공이 현실적인 악당들과 싸우다 보니 현실적인 결론이 내려지는 것이 그리 쉽지 않게 돼 버렸습니다.

출발이 판타지(또는 동화)였던 덕분에 이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클럽 여가수(문정희)-하형사-수현의 한강 신이나 수의사 공선생(염혜란)이 나오는 장면은 이 영화와 무척이나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에서 바로 칼날과 주먹이 부딪는 리얼한 장면으로 넘어갈 때마다 영화는 무척이나 덜컥거립니다. 주인공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다시 수현과 미래의 러브스토리로 넘어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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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악역인 킬러 철민 역의 연극배우 김준배는 인상적인 호연을 펼쳤지만 영화 내내 겉돌고 있습니다. 철민이 상징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폭력의 위협이 이 영화와 잘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죠. 결국 완성된 영화에서 철민이 등장하는 장면은 초반에 강조된 느낌에 비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마 감독도 고심 끝에 철민의 신들을 최소화할수밖에 없었던 듯 합니다.

마지막 신에서 조민호 감독은 '희망'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신에 저 멀리 보이는 도시가 실재하는 서울이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점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의 판타지적 성격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 현실적이지 않은 악당들과 형사들이 나오는 동화, 땀냄새를 풍기는 거친 사나이들이 치고 받는 하드보일드 수사물, 아무래도 <강적>은 둘 중 하나의 노선에 보다 충실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영화의 흥행 성적이 그리 폭발적이지 않았던 것은 월드컵의 영향도 있었지만, 관객들이 전혀 다른 두 개의 영화 사이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p.s. 한국인 최초로 007 영화에 출연한 오순택씨가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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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는 여러 모로 <배트맨 비긴즈>와 비교되는 작품입니다. 두 작품 모두 이미 만화에서 시작해 영화와 책, 드라마로 더 이상 알려질 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슈퍼 영웅을 소재로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작품이면서 정 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슈퍼맨 리턴즈>의 특징 중 하나는 이미 존재하던 크리스토퍼 리브의 <수퍼맨> 영화들, 특히 <수퍼맨(78)>과 <수퍼맨 2(80)>의 권위를 거의 절대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배트맨의 부모의 죽음과 조커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함에 따라 제2의 조커를 출현시킬 준비를 갖춘 <배트맨 비긴즈>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울려퍼지는, 올드 팬들의 심금을 흔드는 존 윌리엄스의 장중한 주제곡에서부터 이미 리처드 도너 감독의 <수퍼맨> 시리즈를 '계승하겠다'는 다짐을 과시한 브라이언 싱어는 '슈퍼맨의 아들'이라는 흥미로운 설정을 들고 나옵니다.

아, 스포일러인가요?

이 정도가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수퍼맨> 영화를 즐길 자격이 없습니다. 뿔테 안경 하나만 썼다 벗었다 한다고 그 많은 사람들이 수퍼맨을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그깟 설정 하나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다시 수퍼맨의 아들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수퍼맨 리턴즈>에서 수퍼맨 클라크 켄트(브랜든 라우스)는 클립톤 행성을 찾아갔다가 5년만에 불쑥 돌아옵니다. 그 사이 연인 로이스 레인(케이트 보스워스)은 다섯살 난 아들을 둔 채로 편집장의 조카이자 신문사의 중역인 리처드(제임스 매스던)와 동거하는 사이가 돼 버렸고, 평생을 감방에서 썩을 줄 알았던 렉스 루더(케빈 스페이시)는 어느새 석방되어 새로운 음모를 꾸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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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클라크에게 '당연히'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로이스. 비록 리처드와 살고 있지만 여전히 수퍼맨을 잊지 못하는 로이스를 보며 리처드는 서서히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세상 어느 남자가 수퍼맨이 연적이라는데 당황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엑스맨 3>에서의 사이클롭스에 이어 이 작품에서도 여자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리처드. 나름대로 정말 괜찮은 남자 캐릭터인데 말입니다. 아무튼 문제의 저 꼬마, 제이슨을 둘러싸고는 몇가지 얘깃거리가 있습니다. 일단 첫번째는 의문, '로이스는 과연 제이슨이 수퍼맨의 아들이라는 것을 언제 알아차리는가'에 대한 것이 있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입니다. 당연히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 해석과, 로이스 자신도 몰랐다는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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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이스는 '당연히' 알고 있다.

일단 상식선에서의 해석은 '어떻게 모를 수가 있느냐'는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녀가 리처드와 함께 살면서도 크게 정을 주지 않는 것은 아이 아버지가 따로 있음을 암시하고 있고, 렉스 루더가 아이 아버지를 물을 때 로이스는 살짝 당황해 루더의 의심을 삽니다.

하지만 이 해석에는 한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슈퍼맨 2>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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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크리스토퍼 리브와 마고 키더 콤비는 저렇게 북극의 '고독의 궁전'으로 허니문을 떠납니다. 여기서 수퍼맨의 아버지(어머니던가...)는 장중한 목소리로 "인간의 여자와 맺어지려면 너는 초인의 힘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고민 끝에 수퍼맨은 힘을 포기하죠. 둘은 첫날밤을 북극에서 보낸 뒤 인간세계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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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드 장군의 침공으로 지구는 궤멸 직전에 놓이고, 결국 수퍼맨은 사랑을 포기한 채 다시 수퍼 영웅으로 돌아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슴아픈 이별. "차라리 모든 것을 다 잊게 해 달라"는 로이스의 요청에 수퍼맨은 마지막 키스로 그녀의 기억을 지워 버립니다. 그녀는 다시 클라크 켄트와 수퍼맨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가 되어 버리죠.

바로 이 부분이 문제입니다. 두 사람이 한차례 동침을 했으므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로이스는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2. 로이스도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몰랐다?

사실 이 설정도 문제가 있습니다. 똑소리나는 여기자 로이스가 아버지도 모르는 자식을 낳는다거나, 아이 아버지를 리처트로 헷갈린다든가 하는 건 정말 어처구니없는 얘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위 문단의 내용을 보면 모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수퍼맨이 갑자기 사라지고, 감정의 파멸 상태에 이른 로이스는 밤마다 술을 마시고 남자를 바꿔치는(...?) 문란한 삶의 자세를 보입니다. 물론 그 중 하나가 리처드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윽고 시간이 흘러 배는 불러 오고, 로이스는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잘 몰라 당혹감을 느낍니다. 이때 천하의 멋진 남자 리처드가 나서는 겁니다. "(내 자식인지도 모르지만) 아이 아버지가 누구든 내가 잘 키워 주겠다"고 하는 거죠. 여기에 살짝 감동한 로이스는 리처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에 로이스는 어떻게 아이 아버지를 알고 있느냐. 그건 당연히 '피아노 사건' 때라는 것이 이쪽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아이 아버지를 묻는 렉스 루더의 질문에 '리처드'라고 대답하는 것은 정말 로이스도 그렇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하지만 제이슨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서 애아빠를 알아차린다는 겁니다.

사실 '로이스의 지워진 기억'은 두 경우 모두 문제가 됩니다. 아무리 제이슨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을 한다고 해도 수퍼맨과 동침한 기억이 없다면 저 아이가 수퍼맨의 아이라고 인정하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아무리 좋아했다고 해도, '뭔가'를 했어야 아이가 나올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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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국, 어느 쪽이든 '말이 되게 하려면' 상당히 설명이 궁색해집니다. 이를테면 로이스의 기억을 지울 때 '수퍼맨=켄트'라는 사실만을 지우고 '수퍼맨과 동침했다'는 사실은 지우지 않았다는 가정도 가능하지만 설사 이렇게 우긴다 해도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일 겁니다.

하기야, 위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뿔테 안경 하나만 쓰면 수퍼맨과 클라크를 구별하지 못하는' 이런 바보같은 영화에 저렇게 정교한 설정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하려던 얘기는 그런 시각도 있을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누가 뭐래도 크리스토퍼 리브의 추억을 되살리는 아바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브랜든 라우스에게 큰 기대를 하기는 힘들 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케빈 스페이시의 무게는 전작들의 진 해크만보다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워낙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이 영화에서의 렉스 루더 역할은 잭 니콜슨의 조커를 넘어선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포스터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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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맨 리턴즈>는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추억에 기댄' 영화인 대신 새로운 해석에 대한 야망 같은 것은 살짝 자리를 비운 영화입니다. 이미 고인이 된 말론 브란도를 끌어낸 것도 역시 올드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게 하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만큼 영화의 성취에 대한 평가도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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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수퍼맨의 아들이라는 설정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는 DC 코믹스의 시리즈 중 하나인 Son of Superman에서 빌려 온 것으러 보입니다. 이 책은 수퍼맨이 렉스 루더의 계략에 말려 크립토나이트의 힘이 지배하는 땅에 갇힌 지 15년 뒤, 클라크와 로이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존(Jon)이 청소년기를 맞아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되고, 원더우먼이나 아쿠아 맨 등 저스티스 리그의 다른 영웅들을 이끄는 새로운 지도자가 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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