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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헌의 할리우드 진출작 '지아이 조(G.I. Joe)'가 마침내 개봉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리 인기를 모으지 못했지만 G.I 조 인형은 미국의 남자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놀만큼 인기 만점입니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말할 것도 없죠.

물론 아무리 인기 있는 원작이라고 하더라도 이병헌이 듣보잡 캐릭터로 나오면 의미가 없겠죠. 한국이나 아시아 출신이 아니더라도, 비 미국 출신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서 엉성한 캐릭터를 맡아 무너지는 경우는 한두번 본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병헌이 스톰 섀도우 역을 맡았다고 할 때부터 안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아직 영화는 못 봤습니다만, 영화상으로도 훌륭한 모양입니다. 뿌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이병헌에게 할리우드 진출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말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굴까요(제목에 썼으면서 이런..). 바로 성룡입니다. 오래 전에 썼던 글입니다. 이병헌과 성룡의 사연은 맨 뒤쪽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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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헌, 할리우드는 가서 뭘 하게?"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다 보면 언뜻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오버랩된다. 그렇다. 교집합은 바로 아시아의 보석 공리다.

연인 장예모 감독과 함께 중국 영화를 유수의 국제 영화제에서 히트 상품으로 만들어 내던 시절이 엊그제같은데 이미 공리도 40대. 하지만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다 보면 미모와 카리스마는 어떤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녀의 할리우드 진출에 있어 <게이샤의 추억>의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비록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모국인 중국 국민들은 장자이와 공리를 '일본 창녀가 됐다'며 매국노 취급을 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을 토대로 공리는 세계인의 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현재 공리가 있는 자리에는 다른 한국 여배우가 설 수도 있었다. 스필버그와 드림웍스 관계자들은 이 작품의 제작에 앞서 줄잡아 100여명의 한-중-일 3국 여배우들을 만났다.

김희선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 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지만 결국 드림웍스는 장자이와 공리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영어 구사 능력이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고서 할리우드에 진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많은 아시아 배우들은 이런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현재 <로스트>를 통해 미국 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자리를 구축한 한국 배우가 된 김윤진을보면 영어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된다. 물론 역시 영어 실력이 뛰어난 김민(성룡과 공연했던 <액시덴털 스파이>로 세계 무대에 나설 기회가 있었다)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언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연기력을 갖춘 상태에서 뛰어난 영어 구사력을 갖춘 김윤진에게 미국 시장은 그리 높은 벽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데뷔하던 시절의 김윤진은 오히려 한국어보다 영어 구사력이 뛰어난 배우였다. 중학교때 이민을 가 미국 보스턴대에서 셰익스피어극을 전공하고 미국에서도 연극 활동을 하던 김윤진을 한국으로 불러들인 것은 <질투>와 <국희> 등으로 잘 알려진 드라마의 거장 이승렬PD였다. 그는 지난 96년 미니시리즈 <화려한 휴가>를 제작하며 최재성의 여동생 역으로 김윤진을 캐스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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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자가 만난 김윤진은 교포 치고는 정확한 발음을 갖고 있었지만 인터뷰 도중에도 가끔 "그걸 한국말로 뭐라고 하죠?"라며 자기가 표현하려는 단어를 찾았다. 대본에 나오는 어려운 말은 일단 외우고 나중에 뜻을 물어본다던 김윤진은 그러면서도 항상 사전을 갖고 다니고, 밑줄을 치며 신문을 읽는 열성을 보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한국에서도 연기자로 인정을 받았고 미국으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진 외에도 할리우드의 제의를 받았던 배우들은 대부분 영어구사력의 관문을 넘은 인물들이었다. 차인표가 007 시리즈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캐스팅 된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지만 당시 그는 이 영화가 한국의 실상을 왜곡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출연을 거절했다. 결국 그 배역은 재미교포 배우 윌 윤 리에게 돌아갔고, 역시 재미교포인 릭 윤이 악역으로 출연해 눈길을 끌었다.


<양들의 침묵>의 조나선 드미 감독의 <찰리의 진실>에 출연했던 박중훈 이후 남자 연기자 중에서 '꿈의 할리우드'에 가장 근접해 있는 배우로는 이병헌이 첫 손에 꼽힌다. 유창한 영어 실력에다 그를 캐스팅하면 한국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흥행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한류 스타로서의 지명도는 할리우드 제작자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호조건이다. 이런 이병헌에게 대놓고 "할리우드에 가면 뭘 하냐"고 만류한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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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병헌보다 먼저 할리우드를 밟은 아시아의 스타 성룡이었다.


지난 2005년, 부산영화제에 초청된 성룡은 이병헌을 만나 반가운 술자리를 가졌다. 술잔이 도는 사이 이병헌이 할리우드 진출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성룡은 "할리우드에 왜 가려고 하느냐. '가 봤는데' 별 것 없더라. 할리우드에 가는 것 보다 아시아에서 최고가 되는 게 훨씬 낫다. 일단 당신이 노려야 할 것은 아시아 최고의 스타다. 그리고 나서 할리우드에서 모시러 오면 가고, 아니면 말면 그 뿐이다."


이날 성룡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할리우드에서 <러시 아워> 시리즈의 흥행 대박을 일궈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인에 대한 백인들의 변함 없는 편견 때문에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속내를 내비쳤다는 것이 동석했던 사람들의 증언이다. 과연 성룡의 이 한마디가 이병헌의 야망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답은 몇년 뒤의 결과로 미뤄 짐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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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실제로 의형제를 맺었을 정도 친한 사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룡도 진정으로 이병헌에 대해 도움이 되고 싶다는 뜻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 거죠.

아무튼 이 무렵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빼어난 영어 실력을 과시하며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려 온 이병헌은 마침내 입성에 성공했고, 할리우드의 스타 감독 중 하나인 스티븐 소머즈와도 친분을 쌓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고 보니 윗글 마지막 부분에 쓰여 있는 '몇년 뒤'가 벌써 왔군요. 이런 이병헌의 모습을 보면 성룡도 옛날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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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스타들은 미식가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스타들과의 한끼 식사를 위해서는 자기가 아는 최고의 장소를 마련하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물론 김정은이나 손예진처럼 아직도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가장 먼저 '떡볶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톱스타로 대접받을만한 사람들은 음식에 대해 일가견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스타들이 식당을 내면 잘 되는 것은 결코 손님들이 스타들을 보러 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나름대로 '맛'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에서 어떤 계층에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일가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수의 면모는 항상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송승헌군이 어느날 문득 설렁탕 얘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맛에 대해 감각이 있다는 걸 몰랐을 겁니다. 그냥 그런 얘깁니다.

그리고 글 마지막에 나오는 이승연의 골뱅이 먹는 법, 제가 실험해 봤습니다. 얼핏 생각과는 매우 다릅니다. 무척 맛있습니다. 여러분도 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공지: 주말은 재방송.^^




각양각색 스타들의 다양한 미각

스타들은 미식가다?

대부분은 그렇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스타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기회가 생기면 자기가 아는 한 가장 고급스럽고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자 한다. 가는 곳마다 맛난 것, 멋진 곳만 보고 다니면 자연히 기준이 높아질 밖에.

음식에 대한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는 스타들도 많다. 원로 스타인 신성일은 쇠고기를 먹되 살코기 쪽은 손도 대지 않고 내장을 탐식한다. 코미디언 고영수는 자타가 공인하는 냉면 마니아. 그가 서울 시내에서 최고로 꼽는 집은 주교동 우래옥과 대한극장 뒤편의 필동면옥이다. 스물 세살이 될 때까지 한번도 아귀찜을 먹어보지 못한 김하늘은 스물 네살때 처음 먹어 본 목동의 한 아귀찜집을 잊지 못하고 기회 있을 때마다 찾아간다.

물론 음식에 대해 남들에 비해 날카로운 주관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송승헌.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송승헌이지만 설렁탕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는 선입견을 갖고 있다. "설렁탕이 나올 때, 보글보글 끓으면서 나오는 집은 다시는 안 가요. 국물에서 김이 나되 끓지는 않는 집이 맛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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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이유도 알 수 있다. 국물이 막 끓고 있는 집은 뚝배기로 국물을 잡아 따로 끓여 나온 집이고, 김만 나는 집은 큰 솥으로 오래 오래 끓이다가 작은 그릇에 덜어 나온 집이다. 물론 이렇게 얘기하면, 큰 솥으로 끓이는 집 중에도 주문 받을 때마다 작은 뚝배기에 옮겨 다시 끓여주는 집이 있다는 항변이 있을 수 있지만, 원래 설렁탕은 그렇게까지 뜨거울 필요는 없는 법이다.

요리에 대한 지식으로는 명세빈도 한 몫 한다. 명세빈은 된장찌개 한가지를 끓여도 주 재료를 차돌박이로 하느냐, 야채로만 끓이느냐, 멸치 국물로 끓이느냐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반면 비슷한 이미지지만 손예진은 부대찌개 한가지를 끓여도 "끓여는 봤는데 뭘 넣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




연예계에는 소품으로 나온 음식은 먹지 않아야 한다는 오랜 관습이 있다. 소품을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소품을 건드리면 촬영에 차질이 생길까봐 나온 말인 듯 싶지만, 이런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바로 김혜수다. 김혜수는 "내가 열일곱살 이후에는 소품으로 컸는데 무슨 소리냐"며 이것 저것 집어먹곤 한다.

김혜수 외에도 대부분 스타들은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탤런트 김소연은 중국에서 튀긴 전갈까지 먹을 정도로 비위가 좋고 성시경은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을 때도 삼겹살을 따로 구운 뒤 같이 끓여 먹을 정도로 느끼한 음식에 강하다. 반면 레스토랑 경영자인 어머니와 푸드 스타일리스트인 누나를 둔 싸이는 첨단의 입맛을 자랑하지만 오이와 날 토마토를 먹지 못한다는 의외의 약점이 있다.

입맛을 살려 식당 경영으로 각광받고 있는 연예인들은 한둘이 아니다. 선우재덕은 돈암동 성신여대 앞에서 분식점을 10년 이상 경영한 경험을 살려 파스타 체인점 <스게티>를 성공시켰다. 늘 TV 출연때마다 고기 먹는 이야기를 하는 강호동도 역시 고기집 체인 <육칠팔>로 재벌 분위기를 내고 있다. 치킨과 피자 가게로 요식업계에 진출한 박명수는 자신의 히트곡 <바다의 왕자>를 따서 해산물 전문점 <바다의 왕자>를 역시 체인으로 개발하고 있다.

서경석도 양화대교 남단에서 삼겹살과 칼국수 전문점 <경서기네>를 운영하고 있고(얼마 전 서경석씨가 '라디오 스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집은 이제 서경석씨와 무관하다고 합니다.) 이정재는 영화 <시월애>에서 자신이 살던 집 이름과 같은 대학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 마레>를 경영한다. 춘천 부근에서 탤런트 정보석이 경영하는 라이브 카페 <스타스클럽>은 아예 '정보석 카페'라는 이름으로 관광 명소가 되어 있을 정도다.



필자는 최근 이승연으로부터 특이한 '별미 식사법'을 들었다. 준비물은 따뜻한 밥 한 공기와 골뱅이 통조림, 그리고 구운 김이다. 밥 한 숟가락에 골뱅이를 하나 얹고, 김으로 싼 다음 골뱅이가 잠긴 국물에 폭 찍어 입에 넣는다. 잘 어울릴까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한번만 먹어 보면 모두 승복하고 만다는 얘기. 여러분도 한번 '이승연의 미각'을 시험해보시기 바란다. (끝)


최근 연예인 중에서 요식사업으로 가장 잘 나가는 분은 아무래도 한류스타 배용준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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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준은 서울에서 건강식 레스토랑 '고릴라 인 더 키친'을 성업중인데다 도쿄에서는 한정식 '고시레'로 성황을 누리고 있습니다. '고시레'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 일본에서 도시락과 김치(위 사진들)까지 내놓고 있죠. '그분의 밥'을 먹을 때마다 그분의 따뜻한 미소를 느끼는 일본 아주머니들의 정성이 외화 획득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아무리 톱스타들이 하는 식당이라도 맛이 없으면 망하는게 세상의 원리라는 점 만큼은 반드시 기억해야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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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과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얘기를 하다가 문득 '맛있는 청혼'이라는 드라마 생각이 났습니다. 손예진의 데뷔작인 이 드라마는 한때를 풍미한 히트작이면서 수많은 스타들이 쏟아져 나온 바로 그 작품이죠.

손예진과 소유진은 물론이고, 권상우와 지성 역시 이 작품으로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왜 그랬는지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어 보시기 바랍니다. (뭐 재활용인 걸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냥 가볍게 즐겨 주시길.^^)

혹시 아래 사진이 기억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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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작 '아웃사이더 Outsiders'의 한 장면입니다. 위 사진에 나오는 얼굴들을 잘 봐 주시기 바랍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패트릭 스웨이즈, 맷 딜런, 롭 로,  톰 크루즈, 토마스 하웰, 랄프 마치오, 에밀리오 에스테베즈입니다.

물론 패트릭 스웨이즈는 '사랑과 영혼 Ghost'에 출연하기 전이고, 톰 크루즈 역시 '탑건 Top Gun'에 나오기 4년 전입니다. 롭 로도 '어젯밤에 생긴 일 About Last Night', 랄프 마치오도 '베스트 키드 Karate Kid'에 나오기 전이죠.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역시 찰리 쉰의 형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나오고 4-5년 사이 이 영화에 나온 배우들은 여주인공이던 다이언 레인을 포함해 모두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인기 스타들로 떠올랐습니다. 영화가 나올 당시 가장 유명했던 스타는 'I was made for dancing'으로 세계적인 붐을 일으켰던 가수 레이프 개릿이었지만 오히려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죠.

(감독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그래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의 감독 소피아 코폴라도 대사가 거의 없는 아역으로 나옵니다.)

이처럼 영화나 드라마 한 편에 함께 출연했던 무명 스타들이 한방에 모두 톱스타로 성공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습니다. 일본 드라마 '고쿠센' 1, 2편의 경우도 그렇죠.

한국에서는 흔히 이와 유사한 예로 '우리들의 천국'이나 '내일은 사랑', '사랑이 꽃피는 나무'같은 드라마들을 꼽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사실 어느 정도 의도적으로 젊은 스타들을 육성하기 위해 주간 시추에이션 드라마로 상당 기간을 끌고 간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단기간에 끝나 버리는 미니시리즈에서 새로운 스타들이 우루루 쏟아져나온다는 건 참 보기 드문 일이죠. 일단 미니시리즈의 주연을 신인들이 차지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01년 방송된 '맛있는 청혼'은 참 이례적인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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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드라마, <맛있는 청혼>

야구 감독 가운데도 유난히 신인들을 잘 길러내는 감독들이 있다. 두 차례나 한국시리즈에서 롯데를 우승시킨 강병철 감독이 대표적인 경우. 강감독은 일부러 신인들의 기를 키워줘 좋은 성적을 내게 하고, 이를 통해 노장들을 자극해 분발하게 하는 기술에서 국내 최고로 정평이 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유독 신인들을 데리고 좋은 성적을 내는 연출자들이 있다. 이런 드라마들은 대부분 청소년 취향의 트렌디 드라마인 경우가 많지만 <닥터 갱> <네멋대로 해라>의 박성수 PD는 독특한 색채의 드라마들을 만들어내면서도 신인들에게 개성을 심어 주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연출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이런 방면에서 '거장'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맛있는 청혼>이라는 드라마였다.

손예진 소유진 정준 소지섭. 2001년 벽두 <맛있는 청혼>의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MBC TV 드라마국은 완전히 사색이 돼 있었다. 정준은 청소년드라마 <사춘기>의 이미지가 강한 '소년 배우'. 같은 무명이라도 소유진은 드라마 한두편에 출연한 경력이라도 있었지만, 손예진은 아예 드라마고 뮤직비디오고 단 한번도 카메라 앞에 서 본적이 없었다. 소지섭 역시 <발리에서 생긴 일> 이후의 소지섭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이런 캐스팅일 리는 물론 없었다. 공을 들이던 차태현이 출연을 거부하자 김래원이 주인공으로 캐스팅됐지만 촬영 하루만에 박PD는 정준으로 주인공 교체를 선언했다. 당시만 해도 김래원의 연기력이 믿음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김래원이 출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미 캐스팅돼 있던 박진희도 출연을 포기해 결국 소유진이 등장했다. 생짜 신인인 손예진의 경우, 다른 연기자들이 받쳐 준다면 신인 하나 정도가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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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대진운도 나빴다. 이 드라마는 방송 한달 후면 SBS TV의 <아름다운 날들>과 맞붙게 되어 있었다. 이장수 PD가 연출한 이 작품의 출연진은 이병헌 류시원 최지우 신민아 이정현. <맛있는 청혼>의 김인영 작가와 <아름다운 날들>의 윤성희 작가는 김혜수 주연의 <짝>을 함께 집필한 사이로 묘한 라이벌 의식을 가질만 한 '동급'이었지만 배우들의 이름값으로는 뉴욕 양키스와 동네 리틀야구단의 대결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모든 사람의 예상 밖이었다. <맛있는 청혼>은 승승장구, 30%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동시간대 1위를 치달렸고 <아름다운 날들>은 <맛있는 청혼>의 방송이 끝난 뒤에야 간신히 20%대로 올라설 수 있었다. 신데렐라가 된 손예진과 소유진은 모두 그 다음날로 주연급 연기자의 명단에 올랐다.

특히 손예진은 그 뒤로 최근작인 SBS TV <연애시대>까지 뚜렷한 실패 없이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마다 승승장구했고, 소유진은 한때 부침을 겪었지만 최근 KBS 1TV <서울 1945>를 통해 여성미를 뽐내며 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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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은 이 드라마 전까지는 출연작이 아예 없으므로 별다른 사연도 없지만 소유진은 당찬 면모 하나로 무명시절을 꿋꿋하게 버텨나갔다. 사실 소유진은 이보다 훨씬 먼저 스타덤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가을동화>의 오디션을 본 소유진은 한채영이 맡았던 역할의 최종 경선에 올랐지만 윤석호 PD는 소유진을 그리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유는 용모나 연기력이 아니라 태도. 지나치게(?) 구김살없는 소유진의 성격이 윤 PD의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소유진을 처음 보는 사람은 '버릇없다'며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의 가정환경을 알고 나면 이해가 간다. 아버지가 예순 넘어 얻은 막내딸인 소유진이 얼마나 귀여움을 받고 자랐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 게다가 이런 성격이 덕분에 소유진은 처음 대하는 카메라 앞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연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 <맛있는 청혼>의 신화를 얘기하자면 두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하나는 이 드라마에서 정준의 친구인 편의점 집 아들 역으로 출연한 지성, 또 하나는 드라마가 끝나기 직전 정준이 운영하던 중국집에 배달 오토바이 청년으로 투입된 권상우다.

둘 다 이때까지는 아무런 경력이 없는 신인이었지만 나중에 어떻게 성장했는지는 다들 아는 바와 같다. 이렇게 해서 <맛있는 청혼>은 '주연에서 단역까지 모두 톱스타가 된 행운의 드라마'로 한국 방송사에 남았다. (끝)

약간 변명을 하자면 권상우는 몰라도 지성은 이 드라마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연한 드라마'는 아니었습니다. 이 드라마 외에도 단역으로는 몇번 얼굴을 비쳤죠. 이 드라마는 그가 출연한 최초의 '의미 있는' 드라마였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권상우의 당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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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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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런 시절도 있었다는게 새삼스럽군요.^

 

여기서 떼넨 손예진만의 발달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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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스페셜 '나는 이영애다'를 봤습니다. '대장금'의 세계적인 인기에 비쳐 이영애라는 배우의 그동안 가려져 있던 일상을 그린다는 데 관심이 끌렸습니다.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건 '과연 이 내용이 이만한 시간과 전파를 들여 방송할 만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이영애다'에서 새롭다고 느낀 것은 이란과 짐바브웨 시청자들의 '대장금'에 대한 열광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막상 현장에서의 연출은 유치할 정도로 작위적이더군요. 아무리 '대장금'이 좋다고 해서 자기 아내를 '양금(이란에선 장금을 이렇게 부른답니다)'이라고 부를 남편이 어디 있겠습니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으니 한번 해 본 얘기일게 뻔한데 그게 얼마나 이 사람들이 '대장금'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단한 증거인 듯 그려집니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 이 다큐멘터리(?)의 수준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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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가 거리를 걷고, 영어를 배우고, 모자를 눌러 쓰고 서점에서 책 구경을 하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이영애의 꾸밈없는 일상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겠죠. '인간시대'처럼 몇주씩 한 사람을 따라다니는 것도 아닙니다. 이영애에게 던져진 질문 역시 너무도 피상적이고 기초적인 수준이고, 이영애의 대답 역시 언제나처럼 '무리 없는 정답'일 뿐입니다. 30분만 포털사이트의 검색창에 '이영애'를 쳐 보고 질문지를 만들었다면 이렇게 무미건조한 문답만 오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의 결론은 이영애는 '대장금'이라는 대단한 드라마에 나왔고, 이영애는 그로 인해 전 세계의 수십개 나라에서 놀라운 인기를 얻었고, 그런 이영애는 외모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참 성실하고 온화하며, 차분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훌륭한 연기자라는 것입니다. 네. 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과연 이걸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참 궁금합니다.

제작진이 늘 이영애를 접하던 드라마-예능쪽 팀이 아니고 교양 파트 팀이어서 평소 이영애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작 한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이렇게 상식적이고 뻔한 내용으로만 채워 놓을 줄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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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산소같은 여자'라는 이영애의 별명에 대해 '산소=무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안티들도 있었지만, 현재 대한민국 여자 연예인 중 최고의 스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그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심은하가 사실상 은퇴하고, 왕년의 68년생 트리오인 최진실 채시라 이승연이 서서히 아줌마 역할 쪽으로 기울고 있는데다 김희선과 고소영도 최근 들어 맥을 못 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90년대의 여성 톱스타들 가운데 여전히 위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은 김혜수와 이영애, 고현정 정도라고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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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90년대 초의 드라마들을 잠시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초호화 캐스팅(물론 지금의 시각으로 볼 때 얘깁니다)인지 사뭇 놀란 적이 있습니다. 얼마전 99년작 '해피 투게더'를 연출한 오종록 PD가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캐스팅을 할 수 있는지 참(이병헌 송승헌 차태현 한고은 김하늘 전지현...) 웃음만 나온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보다 조금 앞선 시절의 드라마들은 더욱 대단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전 언급했던 '아스팔트 사나이'도 이병헌 정우성 최진실 이영애 허준호라는 엄청난 라인업을 자랑했죠. 사실 그 시절의 라인업을 살펴보면 이런 드라마가 드물지 않습니다.^^ 흥행에 실패한 드라마들도 모두 지금같으면 회당 수천만원씩 받을 스타들이 즐비하더라니까요.

아무튼 이 시절, 산소같던 이영애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엔 연기력이나 미모보다 다른 측면이 더욱 돋보였죠. 지칠줄 모르는 박지성을 가리켜 산소탱크를 메고 뛰는 것 같다(물론 정말 메면 무거워서 더 못 뛰겠지만)고들 하는데, 이영애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에 나오기 전까지의 이영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ST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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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다 보면 연예인 사이에도 세대차가 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10.26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처음으로 신문 인터뷰를 해도 별로 어는 기색들이 없다. 구김살없이 자라난 세대라 그런 모양이다.

반면 지구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조금 고된 스케줄이 잡히면 픽픽 쓰러져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가 예전보다 훨씬 잦아졌다. 이제는 '링거 투혼' 같은 이야기가 너무 흔해져서 기삿거리가 되질 않는다.

옛날엔 안 그랬느냐고?

예전에는 스타가 되려면 체력이 필수 요소였다. 이쯤에서 기억나는 스타가 있다.

이영애를 처음 본 것은 지난 96년초 방송됐던 KBS 2TV 드라마 <파파> 때였다. 당시 <파파>의 남자주인공인 배용준은 김지호와 함께 데뷔했던 캠퍼스 드라마 <사랑의 인사>와 <젊은이의 양지>를 마치고 막 떠오르던 시점이었고, 그를 톱스타의 반열에 올려 놓은 <맨발의 청춘> <첫사랑> 등엔 아직 출연하기 전이었다. 이영애 역시 '산소같은 여자' CF로 큰 인기를 모았지만 93년 드라마 데뷔작인 <댁의 남편은 안녕하십니까> 이후 별다른 성공작이 없을 때였다.

배용준과 이영애는 여기서 이혼한 부부로 나왔는데 누구나 예상하듯 결말은 재결합이었다. 배용준이 대단히 이지적이고 냉철한 성격이었다는 점을 빼면 최근 은근히 마니아들을 양산했던 손예진 감우성 주연의 드라마 <연애시대>와 거의 비슷한 플롯이다.

아무튼 이 드라마는 거의 40%에 육박하는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끝나갈 무렵, MBC TV에서는 <그들의 포옹>이라는 드라마가 기획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들의 포옹>의 방송 시점과 <파파>의 종영 시점은 1주일 차이였는데 이영애가 이 드라마에도 출연한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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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포옹>은 최민식 안재욱 김승우 등이 출연한-지금으로서는 엄청난 호화 캐스팅이지만 당시에는 결코 그렇지 않았던-법정 드라마로 법조계에 진출한 젊은이들이 사회의 벽에 부딪혀가며 자신의 소신을 지켜간다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이 드라마에도 이영애가 여주인공으로 출연한다기에 '무척 피곤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파파>와는 달리 <그들의 포옹>은 그리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16부작을 마쳐가고 있었는데, 새로 기획되는 MBC TV의 주말 드라마에 이영애가 또다시 캐스팅 물망에 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드라마의 제목은 <동기간>. 이영애가 나온다면 김지수 이민영과 함께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갈래머리 여고생으로 나올 드라마였다.

아니 드라마 세 편을 연이어 출연하다니. 요즘같으면 이렇게 스케줄을 잡는 매니저가 있다면 바로 계약 해지 사유다. 물론 지금도 동시에 서너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는 중견 배우들이 있지만, 이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얘기다. 한진희-노주현-정윤희-유지인이 돌아가면서 매번 주연을 하던 70년대도 아니고, 90년대 이후에 한 배우가 휴식도 없이 세 편의 드라마에서 연속으로 주인공을 맡았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무튼 <동기간>이 시작됐는데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동기간>의 장수봉 PD와 박진숙 작가 는 이 작품 바로 전에 아들을 편애하는 집안에서 자라난 한 여성의 성장기를 그린 최수종-김희애 주연의 <아들과 딸>을 최고의 인기 드라마로 만들어내고, 한석규라는 걸출한 신인을 발굴한 터였다. 당연히 엄청난 기대가 쏟아졌지만 <동기간>은 <아들과 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와 함께 조기 종영의 운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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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송국에서 우연히 이영애를 만났다. 지금같으면 어디 가서 마주쳐도 인삿말이나 건네 주실까 겁나는 대 스타지만 당시에는 같이 앉아서 음료수도 나눠 마시고,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운하지 않을 리가 있나. "좋은 드라마인데 안타깝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다음은 정말 궁금했던 질문.

"괜찮아요?"
"네?"
"혹시 피곤하거나 어디 아프지 않아요?"
"…별로요. 제가 원래 좀 튼튼한 편이라서요."

너무나 멀쩡한 대답. 비단같은 외모에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강철같은 면모였다. 이어진 얘기인 즉, "<파파>와 <그들의 포옹>에서 계속 세련된 현대 여성 역할을 맡다 보니 이건 좀 아닌데 싶고 뭔가 좀 연기 변신을 해 보고 싶었다. <동기간> 대본을 봤는데 천둥벌거숭이라고 해야 할 말괄량이 역할이더라. 너무 마음에 들어서 대번에 하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체력? 체력은 원래 좋은 편이라서…." 감탄했다.

아무튼 결론은 그렇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외모와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체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다. 아직도 미니시리즈 한편 찍으려면 하루 2시간 수면으로 일주일 이상은 버틸 수 있는 체력이 필수다. 전국의 연예 지망생들에게 이 말을 전해 주고 싶다. 체력이 없으면 성공도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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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입니다. '나는 이영애다'를 보고 나니 옛 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굳이 '대장금' 방송 5년째를 맞아 이영애와 대장금에 대해 다시 짚어 볼 생각을 했다면,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을 '생활인 이영애'를 겉핥기로 시도하느니 과연 이영애와 대장금 현상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큰 변화를 일궈냈는지, 혹은 그로 인해 전 세계에서 발생한 매출이나 산업적인 기여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 등을 제대로 다뤄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한자리수 시청률(9.7%)에 머물진 않았을 지도 모르죠. '인터뷰 안 하기로 유명한 이영애를 우리는 밀착 인터뷰 해 봤어'라고 자랑하기엔 너무나 빈약한 내용이라 아쉬움만 남습니다.

'비'편도 제작중인 모양인데, 과연 이번엔 좀 새로운 걸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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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중생 아역 스타가 교내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보도가 있은 뒤로 아역 탤런트의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린 배우들이 잘 자라는 건 뭣보다 중요한 일이고, 거기에 대해 관심이 늘어나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사실 현장에서 보고 들은 사람이 아니면 별 의미없는 얘기도 많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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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이라는 걸 모르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저 소년이 바로 몇해 전, <여인천하>에서 어린 세자 역을 맡아 안방극장을 들었다 놨다 했던 아역스타 권오민 군이라는 걸 아시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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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최근 '이산'에서 대수(이종수)의 아역으로 나온 배우라는 것도 알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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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역 탤런트 중에 어른으로 성장해서 크게 성공한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아역 스타 셜리 템플은 나중에 미국의 가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를 역임하기도 했지요. 반면 어린 시절의 연예계 경험이라는 것이 성장에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얄개' 이승현씨의 경우가 널리 알려졌고, 몇몇 아역 출신 연예인들은 이미 성년이 되기 전에 아주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신문 사회면에 이름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아역 스타는 어떻게 성장해야 할까요. 선진국에서는 촬영장에 교사가 대기하지 않으면 아역을 동원한 촬영은 아예 불법적인 행위로 규정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는 한국에서는 주변 사람들의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제가 지켜 본 아역 스타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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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건 아역 배우들이 연기를 못해서 드라마가 재미 없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항상 아역 배우는 선수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녀들을 아역 배우로 만들어 보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많다는 뜻도 되겠다. 하기야 요즘처럼 연예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상황에서는 이런 수가 훨씬 더 많아졌음 직 하다. 그러나 아역 배우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어린 나이에 어른들의 세계에 던져져 겪어야 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하다 보니 문득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권오민. 누군지 모르겠다고? <웰컴 투 동막골>에서 동구 역으로 출연해 강혜정과 멋진 호흡(?)을 보여줬던 소년이다. 그래도 기억이 안 난다면 혹시 왕년의 인기 드라마 <여인천하>의 세자라면 기억이 좀 더 쉬울지 모르겠다.

97년생인 권오민은 <여인천하>에서 태어난지 6일만에 어머니를 잃고 문정왕후(전인화)의 손에 자라는 세자 역할로 장안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연출자였던 김재형 PD는 어린 세자가 드라마의 인기를 끌고 나가자 신이 나서 세자의 대사 양을 대폭 늘렸다. 하지만 권오민은 신동 소리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말 투성이인 대본을 척척 외워 주위의 칭찬을 독차지했다.

권오민의 영특함(?)을 일러주는 일화가 있다. <여인천하> 촬영장으로 국회의원들과 송도균 당시 SBS 사장이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한 여성 국회의원이 귀엽다며 세자를 덥썩 안고 뽀뽀를 시도했다. 하지만 "악, 이상한 아줌마야! 싫어, 놔!"하고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금세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송사장이 안았다. 역시 권오민은 격렬하게 반항했다.

"싫어, 놔, 놔."

"이 녀석, 내가 누군지 알아?"

"누군데?"

"나 SBS 사장이야. 방송국 사장이라구."

잠시 몸부림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하던 권오민, "그래? 그럼 해" 하며 볼을 송사장 쪽으로 쑥 내밀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박장대소할수밖에.

그러나 이런 날만 있지는 않았다. 세자가 인기가 좋다 보니 한 아침 프로그램에도 출연을 했는데 철없는 MC 하나가 "엄마가 좋아, 어마마마가 더 좋아?"하는 질문을 해 버린 거다. 워낙 어린 나이라 거짓말을 못 하고 머뭇거리던 세자가 "어마마마가 더 좋다"는 식의 대답을 했다.

그 다음부터 촬영장 분위기가 묘하게 냉각됐다. '어마마마'인 전인화는 권오민의 가족들 눈치를 보느라 잠시도 세자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권오민 역시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어마마마' 주변에는 가까이 가질 않았다. 자연히 연기 호흡이 깨졌고, NG가 잦아져 녹화 시간이 길어졌다. 특히 엄마가 주변에 있으면 더 NG를 많이 내는 것 아닌가. 결국 연출진은 진짜 엄마를 스튜디오 밖으로 내보내고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했을지 딱하기도 하지만 <웰컴 투 동막골>이며 드라마 <회전목마>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걸 보면 구김살 같은 건 전혀 없는 모습이라 적잖이 마음이 놓였다. 성장기의 혼란을 이겨내지 못해 나쁜 길로 빠진 아역 출신 스타들은 전 세계적으로 한둘이 아니지만 권오민이 보여준 영특함을 보면 손창민이나 정준 못잖은 아역 출신 스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아역 스타들이 제대로 크는 데에는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홀로 집에>로 만 10세에 엄청난 부와 명성을 손에 넣었지만 어린 나이에 결혼과 이혼, 마약 파문 등으로 혼란을 겪은 끝에 평범한 20대 청년이 되어 버린 매컬리 컬킨은 한 인터뷰에서 "내가 성공한 이후로 아무도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면 '안돼'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다 했지만 그게 결국 내게는 독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정작 힘든 역할은 바로 '성공한 아역 스타의 부모' 역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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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연예인들 중에는 귀신을 직접 본 경험이 있다는 사람이 유난히 많습니다. 웬만한 가수들은 녹음 한번 하면 귀신을 접해 본다고 하고, 가끔 귀신들이 이번 드라마가 잘 될지, 이번 영화가 잘 될지 아닐지를 알려준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왜 귀신과 유난히 가까운 걸까요? 전부 지어낸 얘기들일까요? 그럴 지도 모르지만 이 바닥(?)에선 나름대로 오래 된 설명이 있습니다. 대략 이런 설명입니다.

아무리 연기를 못하는 여배우도 술집 작부 역할과 무당 역할은 잘 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세 가지 종류의 직업에 필요한 '끼'가 서로 통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죠. 이 '끼'는 바로 '신끼'라고 흔히 부르는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거라는군요.

가수들의 녹음실이나 영화 현상실 등에는 귀신들이 많이 산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하지만 그런 장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귀신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귀신들은 착한 귀신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도 하네요.

뭐 당연히 믿거나 말거나 얘깁니다. 어지간한 괴담에 질린 분들, 마지막 얘기까지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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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괴담 - 귀신을 만난 스타들


영화 스튜디오나 음반 녹음실에는 흔히 귀신이 돌아다닌다. 왜일까. 스타들이 갖고 있는 '끼'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들과 소통하는 신기(神氣)와 통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아무튼 스타들과 관련된 괴담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영화 사상 가장 많은 괴담에 휩싸인 작품은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걸작 공포영화 <엑소시스트>일 것이다. 흥행과 비평 양면에서 성공을 거둔 이 영화는 선과 악이 한 소녀의 몸속에서 펼치는 영화를 소름끼치면서도 박진감있게 그려냈다. 한데 이 영화의 힘이 바로 진짜 악마의 개입에 의해 빚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 영화를 찍기 시작한 뒤로 배우와 스태프를 포함해 9명이 죽었고 특히 배우 잭 맥고원과 바실리스키 말리아로스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죽었다. 세트에서는 원인 모를 불이 나기도 했고, 수많은 관계자들이 악몽으로 시달렸다는 저주받은 영화다.

한국에선 영화 <실미도>를 촬영할 당시 인민군복을 입은 귀신이 출몰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이 정도의 '저주받은 영화'는 아직 못 들어봤다. 귀신을 직접 봤다는 스타 중에는 김보성의 목격담이 유명하다. 김보성은 이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도 꺼려할 정도다.

영화 <하얀 전쟁> 촬영을 위해 베트남 현장을 찾은 일행은 동네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하지만 유독 김보성의 방에서는 여자 웃음소리가 나고 옷장 안에서 소리가 나는가 하면 자다가 깬 김보성의 눈에 흰 옷을 입은 여자가 물끄러미 자신을 내려다보는 광경이 목격되는 등 웬만한 사람 같으면 기절할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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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도 무서운 거지만 밤에 잠을 못 자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다'는 김보성에게 한 스태프가 묘방을 가르쳐 줬다. "듣자하니 이 동네에 사는 처녀귀신이라고 하는데, 굳이 남자 방에 나타나서 괴롭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게다. 오늘부터는 베개 하나를 더 꺼내 머리맡에 놓고, '자, 여기서 편히 자라'고 말해 보라"는 거였다.

시키는 대로 했더니 과연 귀신의 요동은 멎었고, 김보성도 편히 잘 수 있었다. 하지만 가끔 자다가 보면 침대에서 누군가 옆에 누워있는 듯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누군가 들어왔다 나가는 듯한 소리도 들리곤 했다는 증언이다.

가수들 중에서 귀신과 가장 친한 사람을 꼽으라면 김민종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귀신 이야기를 물으면 김민종은 "어려서부터 절에 살아서 귀신과 친하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가 흔히 본 것은 우산 귀신. 비 오는 날, 방과 후에 산길을 걸어 절로 가다 보면 우산 저 모퉁이에 뭔가 하얀 것이 꾸물꾸물하고 매달려 있었다. 우산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달려간 민종에게 외할머니는 "절 근처에 못된 귀신은 못 산다. 귀신이 살아도 착한 귀신이고, 네가 집에 잘 오나 돌봐주는 거였을 게다. 다음부터는 친하게 지내라"고 해 줬다. 그 다음부터는 가수가 되고 나서 녹음실에서 귀신을 봐도 그리 무섭지 않더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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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종이 아니더라도 가수들의 녹음실에서 귀신이 나오는 일은 엄청나게 흔하다. 이 녹음실 귀신에 대해서는 심수봉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목소리만 들어도 귀기가 느껴질 정도로 음기가 강한 심수봉의 목소리는 귀신과도 쉽게 어우리진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심수봉이 녹음에 들어가면 녹음실 기사들은 아예 캄캄한 밤에 더듬더듬 일할 각오를 해야 한다. 이상할 정도로 심수봉만 노래를 시작하면 멀쩡하던 형광등이며 전구가 모조리 터져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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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연예계에서 가장 귀신을 싫어하는 연예인을 꼽으라면 당연히 이승환이 첫 손에 나올 것 같다. 지난 97년 발표한 <애원>의 뮤직비디오의 지하철 기관사 옆에 웬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는 장면이 찍혀 있었던 것. 이 뮤직비디오를 놓고 진위 논쟁이 벌어지고, 일각에서는 '음반 홍보를 위한 조작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여기에 심한 상처를 받은 이승환은 뒷날 <귀신소동>이라는 노래까지 발표하며 '멀쩡한 사람을 음반 팔아먹으려고 귀신까지 만들어내는 놈으로 만들었다'고 질색을 했다. 그러니 귀신이라면 치가 떨릴 수밖에.(끝)






이밖에도 남동생과 한 방에서 자는데 벽장에서 웬 여자가 걸어나와 동생의 목을 조르기에 황급히 깨웠더니 동생이 웬 여자에게 끌려가는 꿈을 꾸고 있었다는 가수 김현정의 목격담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여가수 J양(이니셜입니다)의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그의 전 매니저에게 직접 들은 것입니다.

어느날 그가 J양을 태우고 밤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천천히 자동차 보닛 위에 사람의 형상이 나타나더랍니다. 차창을 가릴 정도는 아니고, 차 맨 앞부분에서 앞유리 쪽으로 기어올라오려고 하는데, 무척이나 힘들어 보이더라는군요.

형상은 머리가 긴 걸 보니 여자인데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개져 골수가 흘러내리고 있고, 두 팔 역시 모두 엉망으로 뒤틀리고 피투성이였다는군요(당연히 하체는 보이지 않았답니다). 이 매니저는 태어나서 자기가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런 그가 척 보기에도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시체의 형상이더라는 겁니다.

아무튼 이런 형상이 갑자기 달려들었으면 급브레이크라도 밟았을텐데, 느릿느릿 나타난데다 왠지 '차를 세우면 정말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때문에 세울 수가 없더라는군요. 그렇게 인적이 드문 길로 차를 계속 달리는데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나더랍니다. 그렇게 무서워 본 적이 없었다는군요.

이때 자고 있는 줄 알았던 뒷자리의 J양이 나지막하게 한마디 하더라는군요.



"...오빠도 보여?..."



당연히 네게도 보이냐고 반문을 했겠죠. 그랬더니 J양의 대답.



"오빠는 처음 봤구나. 나는 자주 봐. 그런데 그래도 무서워."



그제서야 그는 평소에도 가끔 J양이 "오빠 저거 보여?"하고 아무것도 없는 방향을 가리키던 생각이 나더랍니다. J양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계속 보였던 거죠. 그날따라 그 보닛 여자 형상은 왜 매니저에게도 보였던 걸까요.

아무튼 이것이 그가 J양의 매니저를 그만둔 이유라고 합니다.

...뭐, 믿거나 말거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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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가수 J양이라니까 이 가수 'J'인줄 아시는 분들이 가끔 있는데, 윗글에 나오는 J양이란 이 J가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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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죽었네 살았네, 일본 바이어들이 발길이 끊어졌네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한류 상품은 뭘까요. 복잡할 게 없습니다. 한류 스타들이 나오는 콘텐트, 특히 드라마입니다. 영화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파급 효과나 위력 면에서는 드라마에 비할 바가 아니죠. 그럼 '겨울연가'의 빅 히트 이후로 대체 한국의 자랑스런 한류 스타들은 얼마나 많은 콘텐트를 만들었을까요.

소위 4대천왕의 마지막 드라마 작품들입니다.


이병헌, 2003년 올인 (2009년 방송 예정 아이리스)

장동건, 2000년 이브의 모든것

배용준, 2002년 겨울연가 (2007년 태왕사신기)

원빈, 2000년 가을동화


이렇습니다. 한마디로 물건이 없는데 뭘 사라는 겁니까.

이 대목에서 가정을 한번 해 볼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배용준의 데뷔작 <사랑의 인사>부터 모든 출연작이 일본에서 없어서 못 파는 히트상품이 된 마당에, 2003년 이후에 배용준이 출연한 드라마가 단 한편이라도 있었다면, 그 드라마의 가격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불행히도 그런 기회를 사소한 이유로 놓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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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욘사마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놓친 사람들

요즘 '욘사마'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좀 모자란 사람이거나 세상 돌아가는 걸 잘 모르는 사람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연예계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아시아를 뒤흔드는 배용준의 위명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

이런 '욘사마의 치세'는 NHK가 드라마 <겨울연가(일본 방송명은 <겨울 소나타>)>를 지상파로 방송하기 시작한 지난 2004년 4월3일부터 2년간 흔들림 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위성방송을 통해 여러 차례 방송되며 마니아들을 양산했던 <겨울연가>가 지상파에서도 위용을 떨치며 배용준을 '신'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다.

<겨울연가> 폭풍 이후 한국의 배용준 관련 소프트웨어는 동이 났다. 배용준이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출연한 모든 드라마와 영화가 일본의 특수 상품이 된 것. 업자들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것은 배용준이 2002년 <겨울연가> 이후로 현재 일본에서 방송중인 <태왕사신기> 외에는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없었다는 거였다.

그런데 '욘사마 신화'가 탄생하기 불과 3개월 전인 2004년 1월, 아주 사소한 문제로 배용준의 출연을 거절한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은 <폭풍 속으로>. 그 사연은 이렇다.

한국 TV 드라마계에서 2003년은 최완규 작가-유철용 PD-그리고 이병헌의 해였다. 바로 <올인> 두 글자로 요약할 수 있었다. 다른 화제작도 많았지만, 이병헌-송혜교 커플의 탄생을 비롯해 '올인'보다 더 국민적 관심이 쏠렸던 드라마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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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 콤비는 2004년을 맞아 또 하나의 야심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었다. <폭풍속으로>는 최완규 작가가 젊은 시절 푹 빠져 있었다는 외화 <야망의 계절(Rich men, Poor men)>을 원안으로 한 작품. 어느 모로 보나 빈틈없고 철저한 엘리트인 형과 잡초처럼 자라난 동생의 이야기로, 원작격인 <야망의 계절>에서는 피터 시트라우스와 닉 놀테가 형제로 출연해 톱스타가 됐다.

<폭풍 속으로> 제작진은 형제 중 동생 역할을 배용준에게 제의했고, 배용준은 선뜻 '하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배용준은 막상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가자 독특한 제의를 했다. '시놉시스(드라마 기획안)가 지나치게 형 역할 중심으로 쓰여진 것 같으니, 동생 중심으로 다시 써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그리 일반적이지는 않은 요청이었다. 시놉시스는 어차피 대본을 쓰기 전에 관계자들에게 드라마가 갖고 있는 대략의 골격을 설명해주는 정도의 용도로 쓰일 뿐, 정작 방송될 때에는 시놉시스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가는 드라마도 비일비재하다. 제작진도 이미 동생이 실질적인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배용준에게 제의를 한 것이었고, 형 역할을 제의받은 몇몇 톱스타는 '동생이 주인공인 드라마'라며 출연을 거절했을 정도다. 게다가 그때까지 대본이 이미 나와 있던 것도 아니고, 그때부터 더욱 동생 중심으로 대본을 쓰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놉시스를 다시 써 달라'는 것은 실질적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일. 그런데도 배용준은 '당장 보기에 좋지 않다'며 계속해서 수정을 요구했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라도 꼭 짚어 넘어가야 하는 꼼꼼한 성격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별 것 아닌 문제가 자존심 대결로 발전하면서 결국은 출연 자체가 물 건너간 일이 되고 말았다. 배용준의 입장은 "그거 고치는 데 돈이 드냐. 그만한 일도 못 해주느냐"는 것이었고 제작사 측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 공연히 까다롭게 군다"는 것이라 의견차가 좁혀지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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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의 성공으로 한껏 자신감에 차 있던 최-유 콤비는 사실 이런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박신양과 이정재라는 만만찮은 카드들이 <폭풍 속으로>'의 형제 역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 그러나 배용준 카드가 사라지자 우여곡절 끝에 이정재의 캐스팅도 불발됐고, 어찌어찌 하다가 이 역할은 <다모>로 가능성을 보인 신인 김민준에게 돌아갔다. 형 역할도 당초 예상과는 달리 김석훈이 맡았다.

그로부터 1개월 뒤, 제작진은 아직 신인 티를 벗지 못한 김민준의 연기를 볼 때마다 다 잡았다 놓친 배용준을 그리워해야 했다. <폭풍 속으로>는 20%대로 수준급의 시청률을 보였지만 배용준은 이내 '욘사마'라는 아호를 달고 먼 하늘로 날아올랐다.

만약 <폭풍속으로>가 '배용준의 최신작'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더라면 이 드라마는 도대체 얼마에 일본으로 팔려나갔을까. 지금도 <폭풍 속으로>와 관련된 몇몇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그때 그거 좀 그냥 고쳐 줄 걸." (끝)






- 결국 '폭풍속으로'도 25%대의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끝났지만 제작진의 눈에는 얼마나 배용준이 밟혔을까요. 물론 최완규 작가는 그 뒤로도 '해신'과 '주몽'을 히트시켰고 현재도 '식객'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준비를 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저 때 생각을 하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앉아서 100억원대의 돈을 날린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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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드라마 속 커플인 블레이크 라이블리와 펜 배즐리. 미국에서 화제를 뿌리던 드라마 '가쉽걸' 속의 커플입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함께 찍다가 만들어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커플들 중 최신 커플에 해당합니다.

자, 이건 극중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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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건 실제 상황 키스로군요. (구별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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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많은 배우들은 '까놓고 하는 얘기'로 "청춘 남녀가 서로 껴안고, 눈 들여다보고, 키스하고, 이런 연기를 한달이고 두달이고 계속하다 보면 서로 정말 좋아하는 마음이 드는게 정상 아니냐"고 반문하곤 합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정말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사이처럼 연기를 하려면, 어느 정도 자기를 속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난 이 사람을 정말로 좋아해'. 그러다 보면 둘이 사귀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거죠.

그런데 한 작품에 출연하다가 사귀게 되는 경우 말고, 아예 사귀는 커플들이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찍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생각보다는 이런 경우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서로 사귀는 동안에는 오히려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걸 조금 꺼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돌이켜 볼 때 그런 작품들은 흥행에서도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던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세를 풍미한 벤 애플렉-제니퍼 로페즈 커플의 '질리(Gig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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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도 흥행에서 크게 재미를 보진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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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인들이 드라마 속 상대역으로 나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드라마에 함께 출연하면서 실제 연인관계로 발전한 연예인들은 수도 없이 많다. 맺어진 커플만 해도 최수종-하희라(영화 <있잖아요 비밀이에요>), 차인표-신애라(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에서 김호진-김지호(드라마 <사랑은 아무나 하나>), 그리고 최근의 연정훈-한가인(드라마 <노란 손수건>) 등 십여쌍이나 되고 대강 사귀다 헤어진 경우를 합하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그럼 한창 열애중일 때 같은 작품에서 공연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조승우-강혜정 커플이 영화 <도마뱀>에 출연한게 화제가 된 것도 이런 경우가 그리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때 TV에서는 한창 열애중인 커플이 무려 두 커플이나 한 드라마에 동시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잘 모르는 배우들이 아닌 당대의 톱스타들이 그랬다는 거다.

여기서 <웨딩드레스>라는 드라마가 떠올랐다면 당신은 상당한 TV 중독자이거나, 연예인 뒷얘기 중독자다. 혹시 이 답을 맞힌 분이 있다면 아래 주소로 메일 보내주시기 바란다. 글쓰기에 재능이 있으면 이 칼럼을 물려 줄 용의가 있다.

97년작인 <웨딩드레스>는 <가을동화>를 비롯한 사계 시리즈의 윤석호 PD와 <프로포즈>의 최윤정 작가가 만난 작품. 이 드라마의 라인업은 사뭇 화려하다. 이승연 김희선 신현준 김민종이 주연했고 당시 김국진과 "밤 새지 말라 말이야"라는 CF 유행어를 히트시키고 있던 무명 신인 송혜교가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더구나 당시 김민종은 이승연과, 신현준은 김희선과 목하 열애중인 상태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런 캐스팅이 가능했을까?

최윤정 작가가 나중에 털어놓은 바에 따르면 이건 캐스팅이 아니라 "출연자의 요구에 못이겨 쓴 작품"이었다. 연예인들과 친분이 두텁기로 소문난 최 작가는 이승연과 친구, 김희선과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 하루는 이 두 배우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의기투합, '우리가 남자친구들을 데려올테니 넷이 같이 나오는 드라마를 써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나쁠게 없는 캐스팅(솔직하게 말하면 나쁠게 없는게 아니라 정말 하기 힘든 호화 캐스팅)이라 그 자리에서 승낙을 해 버렸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집필하기 시작하면서 최작가는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이유는 두 커플의 치열한 경쟁. 당시 최작가는 이승연과 한 아파트의 위아래층에 살고 있었는데, 집필 이후 이승연은 최소 하루에 서너시간은 최작가의 집에 머물렀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김희선은 자기도 걸핏하면 '놀러왔다'는 핑계로 최작가의 집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최작가의 집에 출퇴근한 것은 드라마의 매회 엔딩 장면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그게 왜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당신은 드라마 마니아로 자처할 자격이 없다.

왕년의 히트작인 <여인천하>가 100회 넘게 방송되는 동안, 드라마의 진행상 가장 큰 배역은 전인화가 연기하던 문정왕후였지만 김재형 PD는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모든 엔딩 장면을 강수연의 클로즈업으로 처리했다. 이는 '드라마 안에서 누가 더 많이 나오건, 누구의 대사가 더 많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강수연'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한 드라마에서 매회 엔딩에 누가 등장하느냐 하는 것은 출연자들에게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웨딩드레스>의 경우, 제작진은 처음부터 '번갈아 가면서 똑같이 엔딩에 나오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두 여배우는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았다. 결국 집필 시간을 지나치게 빼앗은(?) 탓인지, 같은 시간대였던 차인표 송승헌 최불암 주연의 <그대 그리고 나>가 너무 강한 상대였는지 시청률은 예상을 밑돌았다.

사실 실제 연인들인 배우들이 주인공을 맡아 흥행에 성공한 예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영화 <도마뱀>도 고전했고, 왕년 할리우드 최고의 커플로 꼽히던 벤 애플렉과 제니퍼 로페즈가 함께 나온 <질리 Gigli>도 최악의 흥행을 기록했다. 아무래도 일은 일, 사랑은 사랑으로 구별해서 하라는 대박신의 계시가 아닐까. (끝)


아무튼 세월이 흐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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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주인공은 모두 웨딩드레스를 입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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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정말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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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르다 보면 비밀이 없어지는 법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를 정준호군으로부터 들을 때만 해도, 그는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혼자만 킥킥거리고 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긴 세월이 흘렀고, 어느날 TV를 보니 정준호 본인과 신현준이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 물론 방송용이기 때문에 살짝 달라진 부분도 있고, 또 본인 이외의 다른 사람이 본 시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냥 흥미거리로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나자나 정군, 빨리 장가를 가야 할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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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선택으로 <친구>를 날려 버린 정준호

캐스팅을 둘러싼 뒷얘기는 결국 연기자의 입장에선 '놓친 고기가 크다'로 요약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작품에 출연해 달라고 매달리는 제작진을 간신히 거절하고 자신이 평소 생각해온 작품을 선택했을 때, 공교롭게도 거절한 작품은 대박이 나고 고심 끝에 선택한 작품이 악평과 흥행부진 속에 묻혀 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은 그리 드물지 않게 벌어진다.

얼마전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현준이 "영화 <친구>의 장동건 역할은 원래 정준호 거였다. 내가 반대해서 정준호가 그 작품을 놓친 것"이라고 얘기해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사실은 사연이 좀 더 길다. 이야기는 지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곽경택 감독과 <친구> 제작진은 처음부터 두 주인공을 유오성과 정준호로 점찍어 놓고 있었다. 당시 정준호는 MBC TV 드라마 <왕초>에서 50년대의 정치주먹 이정재 역할을 멋지게 해내며 곱상한 용모 이상의 배우임을 만천하에 인정받았던 터. 이 때문에 <친구> 팀도 정준호에게 선이 굵은 남성적 연기를 기대했고, 정준호도 90% 이상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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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친구>팀은 제작비 조달 문제로 촬영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고 정준호의 주변에는 <친구> 출연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곽경택 감독이 <친구> 이전에 연출한 <억수탕>과 <닥터K>가 흥행은 물론이고 작품성에 대한 평가마저도 신통찮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준호는 절친한 후배 장동건으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았다. 술자리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다가 대본을 바꿔서 읽어 보기로 했다. 장동건이 정준호에게 건넨 시나리오는 <싸이렌>. 소방관들의 이야기로 역시 선 굵은 남성 드라마를 표방하는 작품이었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말이 맞았는지, 두 사람은 서로 바꿔 본 대본에 푹 빠졌다. 장동건은 장동건대로 자신의 꽃미남 이미지를 깨 버릴 수 있는 조폭 동수 역할에 끌렸고, 정준호도 <싸이렌>에서의 지적인 소방관 역할이 마음에 들었다. 이미 <싸이렌> 출연이 결정된 신현준도 "같이 하자"며 정준호를 부추겼다. 결국 정준호는 며칠 뒤 장동건을 만나 "작품을 맞바꾸자"는데 의기투합했다.

결단의 차이는 너무도 컸다. 2000년 개봉한 <싸이렌>은 곧이어 개봉한 <리베라메>와 함께 그해 최대의 재난영화(재난을 소재로 다뤄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가 재난이 된)로 기억되게 됐지만 이듬해 개봉한 <친구>는 82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장동건은 이 작품으로 '얼굴만 잘 생긴 배우가 아니었다'는 호평을 얻었고, 그가 연기한 동수 역은 지금까지도 "마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대사와 함께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싸이렌>의 실패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친구>가 대박이 나자 정준호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불과 며칠만에 내린 '맞바꾸기'가 이렇게 큰 차이로 남을 줄이야. 울화를 달래기 위한 술자리가 잦아졌다.

이 무렵 정준호의 후배 하나가 혼자 술집에 앉아 있는 정준호를 발견했다. 본래 두주불사인 정준호였지만 이날은 꽤나 취해 수첩에 깨알같이 뭔가를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알 만한 사람, 모를만한 사람 합쳐 20여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형, 뭐 적어요?"
"응. 명단.
"무슨 명단?"
"<친구> 하지 말라고 말리던 놈들 명단."

후배도 뭔가 서늘한게 느껴졌지만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적어요?"
"다시는 아는 척도 안 하려구. 내가 앞으로 이 놈들이랑 어울리면 성을 간다."

그러나 사람 좋은 정준호에게 이런 원한이 오래 갈 리 만무한 일. 게다가 <친구>를 놓친 대신 그해 <두사부일체>, 이듬해 <가문의 영광>으로 한국 영화계 최고의 달러 박스로 우뚝 일어섰으니 한때 그토록 가슴아팠던 <친구>얘기도 이제는 웃으며 할 수 있는 추억담이 돼 버렸다는 얘기다. 이처럼 '순간의 선택'으로 배우의 운명이 갈리는 건 연예계에선 그야말로 비일비재한 일이다. (End)





그러니까 그림으로 재구성하면 이런 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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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친구' 동수 역 제가 하는게 맞을거같지 않슴까? 이렇게 연습까지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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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동건이가 건달 연기를? 하지만 사랑하는 후배를 위해 그 정도는 양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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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나도 현준이형이랑 '싸이렌'을 하는게 나을거 같으니까."
"그래. 역시 우리는 같이 가는게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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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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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연기? '해안선'에서 하던 대로 하니깐 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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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싸이렌... 헉, 그런데 왜 다들 날 외면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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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감사합니다. 인기랑 돈이랑 상이랑 제가 다 가져갑니다.
"..."
(주위: 웅성웅성 "우리가 잘못 권한 모양인데..;;" "당분간 피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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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대체 왜 날 꼬신거야. 왜 그랬어, 응?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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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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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냥 그랬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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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얼굴없는 가수'였던 브라운아이즈, 란(위 사진입니다), 지아 등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 얼굴없는 밴드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캐나다 출신의 클라투(Klaatu)도 2년만에 정체가 드러났죠. 정말 드러나지 않는 얼굴없는 가수란 없다고 봐도 됩니다.

조성모나 스카이(최진영)으로 대표되는 얼굴없는 가수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됐을까요. 놀랍게도 70년이 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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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가수'의 역사

얼굴없는 가수의 원조격인 조성모가 곧 가요계로 복귀한다. 입대 직전 만난 조성모는 "어차피 공익(근무요원)인데요"라며 밝은 표정을 지었지만, 만 2년간 사회와의 인연을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거운 듯 했다(그런데 벌써 2년이 지났다니!). 그런 조성모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제가 왜 얼굴없는 가수가 됐는지 아세요?"

<투 헤븐>이 한동안 인기를 얻을 때까지 조성모는 매스컴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방송사 PD의 말 한마디 때문. 당시 연예계의 실력자로 불렸던 이 PD는 조성모와 소속사 사장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방송(TV)은 하지 마. 노래 실력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 얼굴로 방송 나가면 음반이고 뭐고 다 망해"라고 진지하게 충고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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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소속사는 이병헌 김하늘 정웅인 등이 등장했던 <투 헤븐>의 뮤직비디오를 앞세운 홍보전을 폈다는 얘기. 요즘은 '왕년의 꽃미남 가수'로 분류되는 조성모가 이런 수모(?)를 겪었다니 말이 안 되는 얘기인 듯 싶지만 본인이 털어놓은 얘기인 바에야 의심의 여지가 없다.

<투 헤븐>이 공전의 인기를 끈 덕분에 조성모는 '얼굴없는 가수' 전략의 성공사례로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은 원조와 거리가 멀다. 진짜 원조를 찾자면 193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가요 연구서인 장유정의 <오빠는 풍각쟁이야>에 따르면 지난 34년 경성에서는 '미스 코리아'라는 이름의 가수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이 가수는 앨범 재킷에까지 눈을 검게 가린 사진을 넣어야 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가수 활동이 용납되지 않는 신분의 인물이 아니었나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조성모 이후 가장 큰 주목을 끈 얼굴없는 가수로는 SKY라는 이름으로 일세를 풍미한 최진영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이름과 얼굴을 감추고 <영원>이라는 노래를 히트시킬 무렵, 방송가에서는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모 방송사 연예정보 프로그램을 새로 맡게 된 PD A씨는 SKY의 정체가 최진영이라는 사실을 듣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사실 이 흥분은 살짝 '뒷북'이었다. 일반인들은 몰랐지만 방송가에서는 처음부터 SKY가 최진영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베일에 가려진 가수 SKY…"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지만 이를 몰랐던 A PD는 촬영팀을 앞세워 최진영이 있던 기획사 사무실을 덮쳤다.

갑자기 나타난 ENG 카메라에 당황한 기획사 측은 즉시 문을 걸어 잠궜다. '얼굴없는 가수 전략'의 핵심은 '언제 얼굴을 공개하느냐'하는 것. 아직 공개의 시기가 아니라고 판단한 기획사 사장에게 있어 분위기를 모르고 특종을 요구하는 A PD는 훼방꾼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이날 멱살잡이 직전까지 갔다고 전해진다.

이들 얼굴없는 가수군단의 공통점은 '결국 언젠가는 스스로 정체를 밝힌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팀도 있다. 지난 90년대 초, 헤비스라는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김원준의 히트곡 <모두 잠든 후에>를 코믹한 가사로 편곡한 <모두 출근 후에>, 봄여름가을겨울의 <어떤이의 꿈>을 패러디한 <어떤이의 땅> 등을 히트시키며 "도대체 누구냐"는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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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헤비스의 핵심 멤버가 <너에게 난, 나에게 넌>으로 롱런하고 있는 포크 그룹 나무자전거의 강인봉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다. 당시 제일기획 광고음악 프로듀서로 일하던 강인봉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모아 헤비스라는 얼굴없는 그룹을 조직, 패러디 음반을 발표한 것이다. 헤비스는 예상외의 반향을 얻으며 2집까지 발매하는 호황을 누렸다.

가요계에는 요즘도 얼굴없는 가수들이 나오고 있고, 이런 얼굴없는 가수들은 재활용 가수들(아, 걔가 그때 걔었어?)의 새로운 포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얼굴없는 가수라는 것이 전혀 특이하게 여겨지지 않는 상황이고 보면, 가요계는 뭔가 좀 더 새로운 홍보 기법을 개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끝)



사실 이런 가수까지 나왔었는데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걸 짜내라는 것도 무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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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99년 영화 <카라>의 한 장면입니다.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이 연출하고 송승헌 김희선 김현주 등 호화 출연진이 출동했는데도 흥행에서는 참패한 비운의 영화죠.

얼마전 이효리가 방송에서 고교시절 강타를 알고 지낸 이야기를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톱스타들이 데뷔하기 전에 서로 알고 지낸 경우는 생각보다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거주지역이 비슷한 경우에는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이라고 보는 게 오히려 맞을 겁니다. 한혜진과 송혜교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에서 미모 대결을 벌인 얘기도 유명하죠.

물론 안면이 있다고 해서 다 좋은 관계일리는 없습니다. 성시경의 세화고 선배인 싸이는 학교 다닐 때 주먹 깨나 쓰는 친구들을 시켜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시경을 '잡으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써 본 글입니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이 톱스타가 되어 다시 만난다면?

톱스타 A와 역시 여성 톱스타인 B에게는 사실 남들이 모르는 비밀 하나가 있다. 바로 어린 시절 함께 발가벗고 물놀이하던 친구 사이라는 것. 이들은 자신들의 우정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우정이 사랑으로 바뀐다…?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같은 이야기지만 현실로 나타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의 스타들 중에서도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였던 사이가 아주 없지는 않다. 국가대표급 미남 미녀라고 할 수 있는 송승헌과 김희선이 한 동네 친구라는 사실은 비교적 최근까지 거의 아는 사람이 없는 얘기였다. 송승헌이 나온 영훈고는 미아동, 김희선이 나온 혜성여고는 하계동에 위치하고 있어 한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송승헌은 "어린 시절부터 김희선이라는 예쁜 여학생이 있다는 사실은 인근 남학교 학생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서로 아는 친구들이 있어 어린 시절 몇 차례 얼굴을 마주치곤 했다"고 옛일을 회상하기도 했다.

물론 김희선은 고2때인 93년부터 연예 활동을 시작했으므로 당시 그냥 일반인이었던 송승헌과는 신분의 격차(?)가 있었던 셈. 송승헌도 96년 MBC TV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을 통해 방송에 데뷔한 뒤 지금의 톱스타로 성장했으니 결코 짧지 않은 이력을 자랑하지만 이들은 지난해 1월 방송된 MBC TV <슬픈 연가>에 캐스팅되기 이전까지는 함께 일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송승헌은 군 면제 파문으로 빠져나갔고, 송승헌의 역할은 연정훈이 대신 하게 됐다. 이들이 함께 <슬픈 연가>를 촬영했더라면 혹시 어떤 역사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효리는 최근 동갑내기인 신화 멤버 김동완과 고교시절 소개팅을 했던 사연을 공개했다. 이효리가 서문여고, 김동완이 휘문고 출신이니 이들 역시 '강남 8학군'이라는 같은 커뮤니티 출신.

이효리는 일찍부터 '서문여고 짱'이라는 이름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었으므로 이들의 소개팅은 김동완이 '이효리를 소개시켜 달라'고 친구들을 졸라 이뤄졌다. 당시 김동완은 록 그룹 멤버로 활동하며 연기자 준비를 하고 있던 시절이라 가죽 바지 차림으로 소개팅을 나왔다는 후문이다.

이효리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김동완은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말투였다. 만나자마자 반말로 '네가 효리냐? 네가 예쁘다기에 한번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며 천연덕스럽게 반말을 하는 태도에 질려 그날 이후로는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과거의 비화를 소개했다.

김동완은 이때부터 연예인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이효리가 핑클로 데뷔한 것은 국민대 연영과 진학 뒤의 일. 만약 이효리가 나중에라도 김동완의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물론 이것 역시 그저 상상일 뿐이다.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를 따지자면 세븐과 박한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안양예고 동기동창인 두 사람은 연예계에 데뷔한 것과 동시에 열애설의 주인공이 됐다는 이색 경력을 갖고 있다.

본인들은 '별 사이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하지만(물론 10대들이 사귀었대봐야 무슨 일이 있었을까마는) 두 사람이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 이들의 관계에 대한 소문이 떠돈 것도 2002년 월드컵 현장에서의 응원 광경 사진, 그리고 안양예고의 소풍 기념 사진 등 인터넷에서 떠도는 온갖 사진마다 두 사람이 바로 옆에 꼭꼭 붙어있더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들 역시 앞날이 어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나이다.

이런 동화가 현실이 된 케이스라면 여의도중학교 선후배간인 손지창-오연수 부부의 스토리. 평소 너무 친해서 '혹시 사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조차 할 수 없었다'던 이들이 부부가 되어 잘 살고 있는 이야기처럼, 어린 시절의 친구가 함께 스타가 되어 맺어지는 순정만화같은 스토리가 어디선가 구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연예계에 대한 흥미를 부풀리는 요인 중 하나다.

2006.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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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주간 <프라이데이>에 쓴 첫번째 칼럼입니다.

당시는 WBC가 한창일 때라 야구 열기가 뜨거웠죠. 마침 ESPN 연예인 야구리그도 시작됐고, 실력으로 한국 연예인 야구리그의 최고 선수들은 누군인지 뽑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때 야구기자를 거친 만큼 야구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터라 말이죠.

그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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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를 휩쓴 한국 야구의 위력이 세계를 진동시키고 있다. 하긴, 그럴 만 하다. 한국인의 야구열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프로야구 리그는 물론이고 연예인들이 주축이 되어 뛰는 전 세계 유일의 '연예인 야구 리그'가 있는 나라이니 말이다.

케이블 TV 스포츠채널 MBC ESPN은 요즘 주말마다 연예인 리그 경기를 중계해주고 있다. 정준하 이휘재 유재석 등이 주축이 된 '한', 박상원 김태균 이종원 등의 '조마조마', 강성진 손무현 정웅인 등이 뛰는 'CRP', 그리고 양상문 김용철 등 왕년의 스타들이 나서는 'MBC 올스타(아나운서-해설위원 팀)' 등 4개 구단이 매주 2경기씩을 펼친다.

이들 외에도 연예인이 주축을 이룬 팀으로는 안재욱 김건모 이성진 등이 주축인 '재미삼아'와 장동건 주진모 정우성 조인성 등 초 호화 멤버를 자랑하는 '플레이보이스'가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두 팀이 MBC ESPN 리그에는 참가하지 않게 됐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장 역사가 오랜 한과 재미삼아의 라이벌전은 '연예인 야구'를 대표하는 명승부로 꼽혔다.

그렇다면 연예인 야구계를 뒤흔드는 스타플레이어들 중 베스트9은 과연 누구일까. 이쯤에서 '연예인 드림팀'을 한번 뽑아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 싶다. 경기 결과가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야구의 생명인 통계를 인용할 수는 없지만, 각 구단 관계자들과 상대 팀 선수들의 평가에 따라 포지션별로 베스트 플레이어를 꼽아 보면 대강 다음과 같다.

연예인 야구계 최강의 에이스는 함정엽 지티비엔터테인먼트 대표(CRP). 차승원 유지태 허준호 김소연 등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함대표는 서울고 재학시절 시속 154km를 던져 1년 아래인 부산고의 박동희와 함께 80년대 중반 고교야구계의 양대 강속구 투수로 군림했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한양대 진학후 부상으로 야구계를 떠나 매니지먼트계로 진출했지만 야구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이번에 <웰컴 투 동막골>의 장진 감독(CRP)과 의기투합, 연예인리그에 뛰어들었다. 물론 왕년에 모델 활동을 하기도 했으니 연예인으로 봐도 무방하다. 지금도 시속 13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모습을 보고 상대 팀들이 일제히 항의, 연예인리그에서는 '선수 출신은 한 경기에서 3이닝 이상을 못 던진다'는 '함정엽 룰'을 만들었다. MC로 변신한 프로야구 10승 투수 강병규(전 두산)가 오지 않는 한 '이 판'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평가다.

SBS 염용석 아나운서(한)와 장동건(플레이보이스)도 시속 120km대의 수준급 구속을 자랑한다. 특히 염용석은 볼끝이 좋아 '라이징 패스트볼'로 불릴 정도. 반면 만화가 박광수(조마조마)는 체인지업을 주 무기로 하는 변화무쌍한 구질로 에이스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3D 직종인 포수는 '연예인 야구단'에서는 기피 포지션이다. 가끔이라도 포수를 보는 선수는 해설위원 겸 선수인 배칠수(한)나 개그맨 위양호(조마조마) 정도. 별 선택의 여지가 없다. 1루수로는 현재 정준하를 위협할만한 선수가 없다. 거구에서 뿜어나오는 힘과 유연한 허리, 여기다 드문 왼손잡이라는 이점도 겹쳐 '연예인야구의 이승엽'으로 군림하고 있다.

2루수에는 야구 명문 신일고의 내야수였던 허준호(한)의 아성에 수비가 좋은 스위치 히터 윤종신(한)과 강타자 이종원(조마조마)이 도전하는 양상. 3루수로는 NRG 이성진(재미삼아)이 최고로 꼽히고 유격수 부문에선 연예인 야구계 최고의 강타자 중 하나인 김승우(플레이보이스)가 '재치있는 야구'로 손꼽히는 안재욱(재미삼아), 이휘재(한)과 경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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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야에서는 춘천고 재학중 선수로 뛰었던 가수 김C(한), 사회인야구 8년의 탄탄한 경력을 자랑하는 강성진(CRP), 영화 <사랑니>의 주인공으로 2년전 서울고 재학중 청소년대표 상비군에도 뽑혔던 신인 배우 이태성(한)이 각각 중견수-좌익수-우익수의 베스트로 꼽힌다. 여기 경합하는 선수들은 호타준족의 공형진(플레이보이스)과 김태균(조마조마) 정도.

궁금한 것은 이렇게 야구라면 죽고 못 사는 스타들이 많은데 <YMCA야구단>이며 <슈퍼스타 감사용>같은 야구 영화에선 왜 이들 스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까 하는 점. 할리우드에서 야구광을 꼽자면 요즘은 별 소식이 없는 케빈 코스트너가 첫 손에 꼽힌다. <19번째 남자(Bull Durham)>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사랑을 위하여(For the Love of the Game)> 등 야구영화만 3편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케빈 코스트너처럼 스크린이나 드라마에서도 강속구를 뿌리는, '한국의 케빈 코스트너'는 과연 누가 될지도 궁금하다.

혹시 아나. 이들이 당장 내일 의기투합, 세계 4강에 오른 한국 WBC 대표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 놓을지.

2006. 3. 16



2년이 지났지만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이런 스타들이 대거 야구영화에 뛰어든다는 소문도 아직 전혀 없고. 취미는 취미로 그냥 즐기자는 생각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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