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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1955년생 중에서 성형수술 안 하고 이 분만큼 곱상한 분은 없습니다.^

이 분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무려 2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던 '장학퀴즈' 출연자 예비 심사 자리에서 저는 "안녕? (가슴에 손을 얹고)나는 주철환 선생님이야"라고 말하는 PD 한 분을 만났습니다.

학생 다섯을 앉혀 놓고 몇가지 규칙을 설명하던 이 분은 "그러니까 '반복'은 되지만 '번복'은 안 된다"고 설명하다가 대뜸 저를 가리키면서 "니가 반복과 번복의 차이를 설명해 봐"라고 지목하시더군요. 더듬거리며 설명했더니 "그래, 똑같은 답을 되풀이하는 건 되지만 바꿔서 대답하면 아무 소용이 없어. 그게 퀴즈의 원칙이야"라고 하셨습니다.

최근들어 소란스럽기도 했지만 이 분이 OBS 대표가 되셨을 때의 글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분이 임기를 꽤 많이 남겨놓고 사퇴를 선언하셨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새삼 이 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2007년 연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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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PD의 꿈 ‘TV 정글’에서 통할까

경인TV 대표로 방송 복귀한 주철환 사장

당대(唐代)의 시성(詩聖) 두보의 작품 중에 ‘강남봉이구년(江南逢李龜年)’이라는 칠언절구가 있다. 안록산의 난으로 유랑 중이던 두보가 한때 최고의 명창이었으나 이미 쇠락한 가객 이구년을 만난 감회를 노래한 시다. 1990년대의 스타 PD 주철환은 “흘러간 인기 가수를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칠 때 혹시라도 출연 요청을 해올까 봐 시선을 피하는 심정”을 이 시에 빗댔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그의 재기발랄함을 설명하는 데 있어 아주 미세한 편린에 불과하다. 항간에 수없이 회자되는 ‘꿈·끼·깡·꾀·꼴·끈’ 이라는 쌍기역 돌림의 ‘성공 조건’ 또한 그의 작품이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 출신인 그는 ‘모여라 꿈동산’ ‘퀴즈 아카데미’의 주제가를 직접 작사·작곡하기도 했다.

이런 르네상스풍의 지식인인 그가 이화여대 교수가 됐을 때에도 ‘과연 조용히 학계에만 몸을 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닐 터. 결국 그는 28일 처음 전파를 내보낸 경인TV(OBS)의 대표직을 맡아 현장에 복귀했다.

하긴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지는 않으니 일선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대표라고 해도 그에게 맡겨진 사명은 회사의 경영보다는 콘텐트의 관리다. OBS라는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프로그램에 어떻게 ‘주철환 표’의 색깔을 입히느냐가 사람들의 관심사다.

‘주철환 표’란 무엇일까. 일찍이 그와 함께 MBC ·TV의 예능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스타 PD 송창의(현 tvN 대표)와 그의 색깔은 현직 시절부터 ‘당의정론’으로 확연히 구분됐다. “오락 프로그램은 일단 재미있으면 그걸로 제 기능을 다한 것”이라는 송창의의 주장에 주철환은 “재미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프로그램에 담아내야 한다”고 맞섰다.

이른바 ‘당의정처럼 오락으로 포장된 교양을 시청자에게 공급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이 흐름은 뒷날 ‘이경규가 간다’나 ‘느낌표’ 등을 통해 KBS·SBS와는 다른 ‘MBC 예능’의 독특한 색채로 계승됐다.

OBS는 28일 개국과 함께 7명의 스타 영화감독이 만드는 드라마, 주철환 대표가 직접 진행하는 정보성 토크쇼, 앙드레김의 반생을 그린 팩션 드라마 등 기존 방송사와는 색채가 다른 상품을 매장에 전시했다. 그렇다 해도 현실적인 한계는 분명히 있다.

OBS는 개국 후에도 상당 기간 인천과 경기도 일부 지역(서울 제외) 주민들만의 방송이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여타 지방에서 케이블TV로라도 OBS를 시청하려면 방송위원회의 역외 재전송 허가가 떨어져야한다.

주 대표는 자신의 영문 이니셜 C H의 C를 ‘창의력(Creativity)+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상식(Common Sense)’으로, H를 ‘조화(Harmony)+휴머니티(Humanity)+유머 감각(Humor Sense)’으로 정의해 이를 새 조직의 모토로 삼았다.

요약하면 ‘인간의 얼굴을 한 방송사와 방송 콘텐트’인데, 과연 무한 시청률 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TV 정글’에서 이런 선의가 살아남을 것인지, 그 방법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겠다. (끝)







 


물론 이 분에 대한 항간의 오해도 살짝 있습니다. 이 분이 만든 프로그램이 모두 '흥행'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퀴즈아카데미'와 '우정의 무대' 등은 크게 성공했지만 이들 못잖게 야심에 찬 프로그램이었던 'TV 청년내각'은 실패했죠.

또 많은 분들이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를 이 분이 만든 것으로 기억하지만 사실 이 코너는 이 분의 전임자였던 송창의 PD의 작품입니다. 이때도 이미 인기였지만 주철환 PD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맡으면서, 자신이 연출한 첫 몰래카메라에 이 분을 등장시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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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내사랑 굿바이 굿바이 어디서나~~'라는 가사로 유명한 '이별 아닌 이별'을 한창 히트시키고 있던 이범학입니다. 당시 '퀴즈 아카데미'에는 문제 출제(문제 읽기)를 위해 인기 연예인들이 하루 한명씩 출연했는데, 어느날 출연중인 학생들 앞에 이경규가 "오늘부터 내가 이 프로그램의 MC를 맡게 됐다"고 주장하며 나왔습니다. 그날의 출제자가 이범학이었던 거죠.

그냥 '퀴즈 아카데미'의 섭외인 줄 알고 스튜디오에 나온 이범학은 '2 더하기 2는 4입니다. 그럼 2 빼기 2는 무엇일까요(정답은 틀니)', '아담 스미스는 어쩌고 저쩌고 저쩌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발의 피란 무슨 뜻일까요(정답은 아주 적은 양)' 같은 황당한 문제를 읽다가 급기야는 '다음 흉내는 어떤 동물을 가리키는 것일까요'라는 문제를 내 놓고 원숭이 흉내를 내는 등 시청자들의 배꼽을 홀딱 빼 놓았습니다.





(그 뒤로 이런 몰래카메라, 즉 '몰카'들도 생겨났죠.^^)


이날 몰래카메라는 이범학 뿐만 아니라 문제를 풀러 나온 순진한 대학생들(개중에는 나중에 5승을 한 '달과 600냥'이라는 팀이 있었습니다)까지 희생양으로 만들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 때문에 '몰래카메라'라는 것을 주철환 PD가 만든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꽤 많아졌죠.

사실 저는 당시 집에서 이 방송을 보다가 "저건 틀림없는 조작"이라고 우겼습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저 바보같은 문제를 맞추는 동안(학생들도 처음엔 얼떨떨 하다가 계속 이런 문제가 나오자 나중에는 기를 쓰고 서로 맞추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학생들의 머리 뒤에 있는 점수판이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제를 맞추거나 틀리거나 점수가 전혀 변동이 없으면 학생이든 MC든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고, 문제가 해결된 뒤 녹화를 재개했어야 한다. 그런데 점수 변동이 없는데도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고 녹화가 진행됐다는 건 최소한 학생들은 이게 정상적인 녹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주장했죠.

하지만 그건 오해였습니다. 나중에 그 '달과 600냥' 출신들을 잘 알게 됐는데 "워낙 예측할 수 없던 상황이라 아무 정신이 없었다. 점수판이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며 웃었습니다.  주철환 사장님도 나중에 이 얘기를 했더니 "야, 그런건 너같은 놈이나 알지 걔들이 그런걸 어떻게 신경 쓰겠냐"고 하시더군요.

알고 보니 이건 점수판을 조작하던 분과 호흡이 맞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본래 '퀴즈 아카데미' 제작진이 녹화 준비를 끝내고 있는데 이경규씨가 MC 자리에 들어오자 이 점수판 조작 담당이 "아, 그럼 녹화가 지연되는구나" 하고 잠시 자리를 비운 거였습니다. 그 사이에 '몰래 카메라'가 진행됐고, 점수판은 불통이었던 겁니다.


 


PD가 되기 전에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많은 제자를 길러 내신 분(제자들 중에는 이 윗 분도 있습니다) 답게 주위 사람들에게 참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자신의 재능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는데 주저하지 않은 분입니다. 이 분의 작품들은 수시로 도용되고 있습니다.  위에서 예로 든 ‘꿈·끼·깡·꾀·꼴·끈’ 만 해도 인터넷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작품인 양 자랑하고 있죠.

저도 그 뒤로 이 분에게 참 많은 것을 배웠지만 가장 쓸모 있는 건 이 한마디였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방송의 본질'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도중, 이 분은 '내가 방송의 본질을 한마디로 정리해 주마'며 이 얘기를 하셨습니다.

"방송이란 건, 감탄고토(甘呑苦吐)야."




13개월만에 이때의 글을 다시 보니 역시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걱정이 현실이 된 듯 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OBS는 다양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을 두드렸지만 일단 시청자와 방송이 만나는 접점이 너무 적었죠. 방송망 확대에 예상보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신생 방송사의 재정에 경기 악화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최근 여러 가지로 힘들어하신 점을 생각하면 사장직을 벗어 버리신 것이 오히려 홀가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능력있는 분이니 오래 쉬실 리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경기도 일부 지역 주민들에게만 보이던 OBS는 이제는 서울 지역에서도 40% 이상이 시청 가능 지역이라고(물론 케이블로) 합니다. 요즘 경영이 힘들다고도 하는데, 초대 사장을 이렇게 떠나 보낸 OBS는 과연 언제쯤 전국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책을 또 내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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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지금의 비는 '스피드 레이서' 출연으로 주가를 한껏 올렸고, 다시 미국 영화 '닌자 어새신' 촬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박진영 역시 소녀그룹 원더걸스를 히트시키면서 A급 제작자로 거듭났죠.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갈라섰을 때만 해도 매우 불안해 보이는 시점이 있었습니다. 그 시기의 시각은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해두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비가 가수로서 미국을 진출하는 것은 아직도 재개 시점이 묘연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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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떠난 비, 불안한 ‘홀로 서기’LA 공연 막판에 취소된 가수 비
송원섭 JES 기자 | 제17호 | 20070707 입력  


2004년 프로듀서로 막 미국 진출에 성공한 박진영씨를 만났을 때 일이다. 그는 대뜸 “우리는 모두 야구선수 박찬호에게 고맙다고 절해도 모자라요”라고 말했다. 이유를 물었다.

“미국 여자들은 아시아계 남자들을 섹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공부는 잘하지만 신체 능력이 엉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채노박’이 메이저리그의 A급 투수가 되면서 얘기가 달라졌죠.”

그는 한마디 덧붙였다. “비가 영어만 되면 당장이라도 금발 미녀들이 아시아인에게 환호하는 걸 볼 수 있을 텐데.”

비의 영어 실력은 지금도 ‘열심히 노력 중’ 상태지만 이 말은 거의 사실이 되는 듯했다. 2006년 이후 비는 최고 권위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 2년 연속 선정됐다. 이를 계기로 인기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르가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하고, 뉴욕 타임스가 그의 메트로폴리탄 공연의 리뷰를 썼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게 욱일승천하던 비가 최근 살짝 갈지자 행보로 우려를 낳고 있다. 하와이 공연의 취소야 정말 돌발 사태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바로 뒤이어 1일(한국시간) LA 공연이 시작 1시간30분을 남기고 취소된 것은 뒷맛이 좀 나쁘다.

관객 2만을 목표로 했던 규모의 공연이 하루 전도 아니고 1시간30분 전에 취소됐다는 것은 공연 주관사의 업무 추진 능력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주관사 ‘스타엠’ 측의 설명대로 현지 공연 업체의 불성실한 준비가 공연 취소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하더라도 무대가 설치돼 있지 않을 정도로 부실한 준비 상황을 주관사가 공연 당일에야 알았다는 것은 직무유기라 따져도 할 말이 없다.

이 대목에서 미국 LA 타임스는 3일(현지시간) “비가 다시 미국에서 공연하기까지는 약 2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흠집을 냈다. 물론 비가 영화 ‘스피드 레이서’의 촬영에 들어가 당분간 가수 활동을 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도 고려한 얘기였지만 상식적으로 봐도 이 정도의 심각한 사고를 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미국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비는 5월 11일자로 그를 키워낸 ‘JYP 엔터테인먼트’와 결별하고 여타 기획사들의 거액 베팅을 마다한 채 홀로 서기에 나섰다. 아직 공식 발표는 나지 않았지만 비는 이제 스스로 프로듀서 겸 아티스트, 그리고 그 자신의 매니지먼트까지 맡아야 할 전망이다. 하지만 과연 그가 매니저로도 자신 정도의 거물을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는 인정하기 쉽지 않다.

공교롭게도 그와 결별한 박진영씨는 같은 시기에 미국 지사 격인 ‘JYP USA’를 설립, 아시아계 청소년들을 미래의 팝 아이들(Pop Idol)로 키워 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의 캐치프레이즈는 ‘비는 또 만들 수 있다’지만 아무리 노하우가 뛰어나다 해도 만드는 족족 비가 될 수는 없을 게 당연한 일. 헤어진 두 사람의 그림자가 둘 다 지나치게 길어 보여 아쉽기만 하다.





지난해 7월7일의 글입니다. 이후 PD수첩에서 비의 잇단 미국 공연 취소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에 쫓긴 취재 탓인지 미국까지 다녀와서도 시원한 규명은 없었죠. 아직 이 문제는 말끔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누가 책임이 있느냐'보다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일 것입니다. 분명히 책임은 조각 조각 나눠져 있습니다. 전체 투어를 책임 감독했어야 하는 스타엠의 책임이 분명히 있는 한편, 스타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비나 JYP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일이 발생함으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결국 비 본인, 그리고 팬들일 것입니다.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한 조언은 아랫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isplus.joins.com/enter/star/200707/18/20070718100256187602010000020102000201020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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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황진이'가 개봉됐던게 작년이군요. 송혜교는 요즘 드라마 복귀로 분주합니다. '황진이' 때의 얘기니까 확실히 옛날이죠. 아무튼 기록은 남겨야 하니까.


이제 숙성을 시작한 와인 같은 여자
영화배우 송혜교
송원섭 | 제13호 | 20070609 입력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제갈량이 조조의 아들 조식이 지었다는 ‘동작대부(銅雀臺賦)’의 구절을 슬쩍 바꿔쳐 주유를 흥분시키는 이야기가 나온다. 주유가 격분한 것은 조조가 강동 일대 최고의 미녀로 알려진 이교(二喬) 자매를 탐냈다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이교가 누군가. 언니 대교는 죽은 친구 손책의 아내, 동생 소교는 주유의 아내였다. 비록 소설이긴 하지만 이 두 미녀로 인해 천하의 영웅들은 마침내 세 나라로 편을 갈라 맞붙게 된다.
 

그 시절 이교가 논란의 초점이었다면 지금 한국 영화계에선 혜교(慧喬)에 시선이 몰린다. 송혜교가 주연한 영화 ‘황진이’가 이번 주말 관객의 심판대에 올랐다. 심은하를 키워낸 사람으로 유명한 이춘연 ‘시네2000’ 대표는 ‘황진이’ 시사회장에서 “한국 영화는 앞으로 10년간 여배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시사 이후에도 영화 ‘황진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어쨌든 송혜교는 괜찮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제작 전부터 워낙 적역이냐 아니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갔던 것을 감안하면 송혜교는 충분히 만족스러울 만하다.

1996년, 김국진과 함께 한 컴퓨터 광고에서 ‘밤 새우지 말란 말이야’라는 광고 대사를 히트시키던 열네 살 때 이후 송혜교는 중요한 대목마다 적역 논란의 대상이 됐다. ‘한류’의 기원을 만든 작품으로 꼽히는 ‘가을 동화’ 오디션 때도 윤석호 감독은 “너무 하이틴 이미지가 강하다”며 송혜교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어쨌든 송혜교는 역할을 따냈고, 동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떨쳤다.

이병헌과 공연한 ‘올인’ 때에도 최완규 작가의 고집이 아니었다면 캐스팅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병헌에 비해 너무 어려보여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성공시키는 걸로도 부족했는지 송혜교는 아예 보란 듯 이병헌과 연인이 되어 ‘나도 이제 어른’이라고 선언했다.

영화 ‘황진이’의 경우엔 어땠을까. 드라마 ‘황진이’의 하지원과 비교되기도 했고, 북한의 원작자 홍석중이 한국 드라마를 얼마나 봤는지 “난 송혜교보다 수애가 하길 바랐다”고 했다는 말도 화제가 됐지만 송혜교는 장윤현 감독이 그려내고자 했던 이지적이면서도 도도한, 시대에 맞서는 황진이의 얼굴을 적절하게 표현해 냈다. 물론 적어도 황진이 역할이라면 좀 더 농염한 매력을 뽐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여배우 송혜교가 일선에서 활동할 시간은 앞으로 줄잡아 15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이교(二喬)가 적벽대전을 앞두고 군웅들의 운명을 갈랐다면 혜교는 ‘슈렉3’와 ‘다이하드4’ ‘트랜스포머’의 내습에 맞서 한국 영화계를 수호해야 하는 중임을 맡았다. 과연 어떨까. 당장은 몰라도 언젠가는 그로 인해 한국 영화계가 일어나는 것을 기대할 만하다. 1982년은 한국 여배우에겐 좋은 빈티지(vintage)다. 손예진과 한예슬, 김아중이 같은 해에 태어났다. 이들과 함께 숙성해 갈 송혜교의 모습이 궁금하다. (끝)







당일 오전에 청탁을 받고 오후 4시쯤 기사를 보냈더니 담당자인 강혜란 기자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썼냐길래 오히려 좀 놀랐습니다. 지난 15년을 '이거 써!'하면 30분만에 날려 쓰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죠. 물론 그런 덕분에 나쁜 버릇도 많이 들었습니다. 일단 쓰고 나면 다시 다듬는 게 습관이 안 되어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이상하게 나이를 먹으니 자꾸 오자가 납니다.




교씨 자매와 주유, 그리고 제갈양의 이야기는 삼국지를 읽어 본 분이면 모두 아시는 얘기일테니 구구하게 보태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송혜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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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동갑이라는 건 참 복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렇게 경쟁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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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마돈나’ 꿈꾸며 일본으로
가수 이효리
송원섭 | 제12호 | 20070602 입력
 사진 뉴시스 


가수 겸 엔터테이너 이효리가 바다를 건넜다. 3일 도쿄 국제포럼에서 열리는 ‘SG 워너비’의 공연에 게스트로 참여, 20여 분간 무대에 선다. 4일에는 효리 자신이 주제가를 부르고 주인공까지 맡은 드라마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유료 시사회도 열린다. 짧은 시간이지만 이효리의 하이라이트를 일본 관객과 연예 관계자들 앞에 펼쳐 보이는 셈이다. 양쪽 모두 티켓은 매진됐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은 상대 국가의 어떤 사물을 소개할 때 자국의 것에 비교해서 설명하곤 한다. 고도(古都) 경주를 설명할 때 일본에서는 ‘한국의 교토’라고 하고, 요코즈나(橫綱ㆍ일본 씨름인 스모의 최고 지위)라는 단어를 설명할 때도 흔히 ‘일본의 천하장사’라고 말한다.

한국에 이효리가 있다면 일본에는 고다 구미라는 여가수가 있다. 2005년과 2006년 일본 골든디스크 대상을 2연패한 고다 구미는 가창력도 수준급이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인기의 원천은 과감한 노출을 피하지 않는 섹시하고도 역동적인 이미지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두 가수는 그래서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각각 ‘한국의 고다 구미’와 ‘일본의 이효리’로 불릴 때가 많다.

그 ‘일본의 효리’ 고다 구미가 지난해 6월 전남 담양에서 열린 ‘아시아 송 페스티벌’ 참가차 내한했을 때 누군가 “한국의 이효리와 비교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대답은 ‘좋다’도 ‘나쁘다’도 아닌, “한국 연예인과 비교하는 질문은 받지 않겠다”였다. 그래서 현장에선 “고다가 이효리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사실 이효리는 이번이 첫 번째 공식 일본 프로모션이다. 지난해 4월 케이블TV M.net의 일본 개국 축하 공연차 다른 가수들과 함께 한 차례 도쿄 무대에 선 적이 있지만 당시에는 인터뷰도, 집중 조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연예계가 이효리에 대해 보인 관심은 적지 않았다. 올해 국내 무대에 서기 시작한 소녀가수 윤하는 “일본에서 활동할 때 한국 연예인들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중 효리 언니에 대해 묻는 사람이 단연 많았다”고 털어놨다.

최근 국내 활동 성과가 성에 차지 않았던 이효리는 과연 일본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까. 일각에서는 이효리를 ‘한류의 미래’라고 보기도 하지만, 계은숙 이후로 한국 여가수가 일본에 연착륙한 적이 없다는 우려 섞인 비관론도 있다.

고다 구미가 불편해한 것은 자기는 ‘일본의 이효리’가 아니라 ‘일본의 마돈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효리 역시 지향점은 ‘한국의 마돈나’. 효리가 다시 바다를 건너올 때쯤이면 누가 ‘아시아의 마돈나’인지 판가름이 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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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인간, 이눔시키, 왜 정신 사납게 날아다녀?"

영화배우 김수미씨가 전면에 나섰다. 한국 영화계를 덮친 ‘거미 인간’과의 한 판 승부다. 김수미 주연 영화 ‘못말리는 결혼’이 10일 280개 스크린에서 개봉됐다. 좀 외로워 보인다. 무려 800개 상영관을 장악한 외화 ‘스파이더맨 3’의 기세등등한 모습 앞에서 웬만한 한국 영화는 죄다 개봉을 미루거나 피했기 때문이다.

김수미씨로서는 오랜만에 “내가 주인공”이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만한 작품을 내놓은 참인데, 어쩌다 보니 한국 영화의 명예를 건 전사가 돼버렸다.

그가 드라마건 영화건, 단독 주인공을 맡은 적은 한 번도 없었을까? 있긴 있었다. 1982년 이상언 감독의 영화 ‘화순이’에서 그는 타이틀 롤을 맡았다. 당시 방송되던 MBC TV 드라마 ‘새 아씨’에서 아씨 김영란을 모시는 몸종 화순이 역을 맡았는데, 이 수다스럽고 조심성 없는 캐릭터가 어찌나 인기가 있었는지 아예 화순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제작된 것이다.

이때를 빼고 그는 항상 조연이었다. 물론 조연이되 MBC TV ‘전원일기’의 일용엄니처럼 주연보다 인기 있는 조연인 적이 많았지만, 그래도 항상 그 자신의 마음속에는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반면 영화 ‘못말리는 결혼’은 김수미에 의한, 김수미를 위한 영화다. ‘가문의 부활’과 ‘가문의 위기’에서도 비중이 작지 않았지만 ‘못말리는 결혼’은 김수미를 빼면 아예 영화가 이뤄지질 않는다. 대체 그녀의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출연한 최근 히트작들인 ‘가문…’시리즈와 ‘맨발의 기봉이’의 시나리오 작가 김영찬씨는 “김수미씨의 출연이 결정되고 나면 최소 두 번은 시나리오를 고치게 된다”고 말한다. 연습 리딩 때 김수미의 애드리브가 터져나오고, 이 즉흥 대사를 주워 담아 대본을 수정한 뒤 다시 현장에서 김수미의 아이디어를 추가한다는 얘기다.

‘가문의 부활’에서 명장면으로 꼽히는 홈쇼핑 신은 대부분 그가 즉석에서 쏟아 부은 애드리브의 잔치다. 그는 강호동이 진행하는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입심을 뽐냈는데 사실 이런 식의 토크도 어찌 보면 김수미가 원조다.

중년이 지나 ‘낼모레 환갑’인 이 배우에게 책(대본)이 쌓이는 이유는 많다. ‘시원시원하게 내지르는 말맛’, 눈에서 느껴지는 묘한 힘 등. 지난해 MBC TV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2’에서 이사벨 역을 맡아 “젊은 팬이 많이 생겼다”는 이 배우는 “내 라이벌은 김태희”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할 줄도 안다.

과연 김수미는 이번에 만난 스파이더맨에게는 뭐라고 일갈을 날릴까. “이눔시키, 왜 정신 사납게 날아다녀? 시커먼 거 뒤집어쓴 건 또 뭐야? 한 번 지대로 맞아볼 텨?” 하면서 제대로 맞상대를 해줄 것 같지 않은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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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 - 160만을 넘지는 못했지만 140만까지 선전하면서 그나마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살짝 지켰습니다. 배급사인 롯데까지도 시네플렉스 롯데시네마의 상영관을 뽑아 가는 상황이었으니 그만하면 선전했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과연 김수미의 원맨 쇼 외에 무엇이 더 볼게 있었느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이 좀 궁색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짐 캐리가 나오는 영화도 대개는 짐 캐리가 유일한 볼거리 아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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