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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시대의 흐름, 트렌드의 핵심인 '빠삐놈 현상'에 대한 중간 보고서입니다. 너무나 진도가 빨리 나가서 빠삐놈 현상을 꿰 차고 있는 분들에게는 뒷북으로 보일 수도 있으니 읽기 전에 침착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빠삐놈 동영상'이라는 게 인터넷을 완전히 차지해버렸습니다.

이게 지금까지 나온 최종 버전인 것 같습니다. 말보다 직접 보는게 빠릅니다.





오래전 전설의 CF였던, 고인돌 가족이 나오는 삼강 빠삐코 애니메이션과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주제음악으로 쓰였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에다 DJ쿠(구준엽), 전진, 엄정화 등 수많은 이미지들이 한데 섞여 들어간 대중문화의 정수(?)라고 할만 합니다.



자, 대체 이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차근차근 짚어드립니다.

우선 누구나 다 아는 Santa Esmeralda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이 노래가 '놈놈놈'의 후반부 추격장면에 쓰이면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런데 네티즌들이 묘한 걸 생각해냅니다. 바로 고전 중의 고전인 이 물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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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당시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저 고인돌 아빠가 부르는 "빠빠라빠라바라밤"이 문제의 그 노래 구절이었던 겁니다.

당시 저 광고를 녹음하던 성우가 일이 이렇게 될 줄 짐작이나 했을까요. 아무튼 그러고 나서 (누구도 첫번째라고 인정하진 않았지만) 첫번째 작품으로 보이는 물건이 탄생했습니다.

아마도 전진이 가장 먼저 희생자가 된 듯 합니다.




해외라고 온전하지 않습니다. 톰 존스.




장르도 가리지 않습니다. 링킨파크까지.




건담도 제물이 됩니다.





온갖 연예인이 범벅이 된 초기 버전.




결국 현재까지 최종 버전은 맨 위의 대표 화면인 듯 합니다.

참 애니메이션 하나가 다양한 발전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네요. 중독성도 장난 아닙니다. 박수동 화백은 이런 일이 있을지 짐작이나 하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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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빠삐코 아직 팔리고 있습니다. 이 노래 덕분에 대박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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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그런데 이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부산물이지만, '빠삐코'라는 게 한국산 오리지날 빙과가 아니었군요. 한 6년 전에 '까리뽀'도 한국산이 아니란 걸 알게 됐는데...

결국 국산은 '아이차'와 '쭈쭈바' 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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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렇지만 홍콩 영화 감독들은 다작이 숙명입니다. 간혹 그 운명을 거부한 감독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철저한 마이너로서의 길이었죠. 오우삼은 그렇지 않았고,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는 할리우드와 홍콩을 합해 50편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우삼의 영화들을 되새겨 보면, 기억에 남겨 둘 만 하다고 생각했던 영화들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웅본색' 1편과 2편을 빼놓을 수 없겠고, 밉든 곱든 '첩혈쌍웅'이 있습니다. 이어 그의 홍콩시대를 마무리하는 '첩혈가두'와 '종횡사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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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로 넘어가선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가 화려한 액션 거장의 탄생을 알렸죠. 하지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미션 임파서블'이 나왔고, '페이첵'에서는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어났습니다. '적벽대전'은 이런 시점에서 등장한 영화입니다. 할리우드 영화로도 적다고는 할 수 없는 800억원의 제작비와 홍콩-중국-대만 영화계를 망라한 올스타 캐스팅. 과연 이 영화가 오우삼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영화가 될지가 궁금한 시점입니다.

거론한 영화들을 돌이켜 볼 때 오우삼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통제하는 데 능력을 발휘해 왔다는 점과 그의 영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뛰어난 배우에 많은 것을 의지하는 감독이라는 점이 눈길을 끕니다. 그의 영화는 정교한 플롯이나 영화 전체를 쥐고 흔드는 빼어난 통찰을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영상미의 완성도에도 크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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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영화는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은 지금까지 주로 두 명의 배우들을 통해 드러났죠. 바로 주윤발존 트래볼타입니다. 주윤발과 오우삼의 관계에 대해 굳이 얘기하는 건 지면 낭비가 되겠죠. 동아시아인, 특히 수컷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우정과 신뢰, 배신과 복수의 이야기를 주윤발은 깊은 눈빛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솔직히 그 아닌 다른 어떤 배우로도 홍콩에서의 오우삼의 성공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첩혈쌍웅' 처럼 엉망진창의 플롯을 가진 영화도 사람들의 추억 속에 남게 하는 기이한 매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여자들에게는 아닙니다. '영웅본색' 조차도 여자 관객들에겐 장국영의 영화죠. 장국영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영웅본색'은 남자들만의 컬트가 되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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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에서 오우삼이 발견한 것은 존 트래볼타입니다. 주윤발이 그의 영웅이었다면 존 트래볼타는 그가 창조해 낸 가장 완벽한 악당이었죠. '브로큰 애로우'와 '페이스 오프'에서 트래볼타는 중국 삼십육계 중의 소리장도(笑裏藏刀-웃음 뒤에 칼을 감추다)를 완벽하게 구현해냅니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정의의 편인 크리스찬 슬레이터나 니콜라스 케이지 보다는 트래볼타가 훨씬 빛나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오우삼이 어느 쪽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지가 너무도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이 두 배우 없이 오우삼이 남긴 업적을 꼽기는 매우 곤란해집니다. '미션 임파서블 2'는 너무도 노골적으로 '자, 너희가 원하는 게 고작 이런 거지?'라고 말하는 영화였죠. 비평은 형편없었지만 미국 시장에서는 엄청난 수익을 거뒀고, 오우삼은 자신감을 얻어 '윈드토커'를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가 2차대전을 무대로 그리려 했던 '남자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합니다. 이 영화에는 존 트래볼타도, 주윤발도 없었죠.

너무 길어졌지만, '적벽대전'은 원작을 보는 오우삼의 시각에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냅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는 괜히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수백년 동안 수천만의 독자들에게 읽혀 왔고, 그 주인공들 사이의 관계며 대사 하나 하나가 명언록에 올랐습니다. 일단 그 소설 전편에서 '적벽대전'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것은 훌륭한 선택입니다. 수천페이지짜리 소설에서 가장 극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낸 부분이기 때문이죠. 한국에서는 그 부분만으로 판소리 한편(적벽가)을 만들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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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오우삼은 이 너무도 잘 알려진 이야기를 '재해석'하겠다는 야심을 품습니다. 대개의 경우 재해석이라는 것은 '기존의 해석'에 사람들이 질려 있을 때 하는 거죠. 불행히도 소설 삼국지의 독자들은 '기존의 해석'에 질릴 기회를 별로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책으로 읽었던 감동적인 작품의 명장면이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되는가'였는데, 오우삼은 뭔가 자신의 색깔을 입혀야 한다는 공명심이 앞섰습니다. (이건 얼마전 개봉됐던 영화 '용의 부활'과 똑같은 실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 오우삼 아니라 어떤 감독이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영화를 만들 권리가 있죠.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 거대한 호평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을 '제대로' 화면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우삼의 선택도 어느 정도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삼국지'라는 소설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거나 남자들의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는 여성 관객들에게는 상당한 호응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원작 마니아의 시각에서 볼 때 오우삼의 '적벽대전'은 남자들과 남자들의 관계를 다루는 데서도 실패했고, 원작에 나오는 대규모 전투의 시각적 변환에서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소설에 나오는 제갈양과 주유는 서로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 마음 속의 칼을 견줘 보는 일대 영웅들입니다. 거기서 풍겨나오는 긴장감이 매력적이죠. 하지만 '적벽대전'의 주유와 제갈양은 서로 전학 와서 주먹 대보기 하는 중학생들 같습니다. 은근하고 깊은 맛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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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삼이 마지막까지 이 영화에 주윤발을 출연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만, 출연했더라도 주유 역이라는 건 고개를 갸웃거리게 합니다. '주랑(周郞)'이라 불렸던 꽃미남 스타 주유 역에 주윤발이라는 건 납득하기 힘들죠.

전투 신에서도 대규모 기병 액션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남은 건 실망뿐입니다. 맨 땅에서 두 다리로 달리며 싸우는 보병 관우-장비란 게임 '진삼국무쌍'에나 나오는 겁니다. 적토마 갈기를 나부끼며 82근 청룡도를 휘두르는 관운장의 위용을 볼 수 없는 삼국지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팔괘진을 응용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팔괘진으로 포위해 놓고도 적병을 어쩌지 못한다는 해괴한 진행 역시 관객을 짜증스럽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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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놈놈놈'을 보면서 몇몇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러니까 '적벽대전'을 김지운 감독이 만들었어야 해." '놈놈놈'의 거의 마지막 부분, 일본군을 뚫고 말을 달리며 '장총 돌려쏘기' 묘기를 과시하던 정우성의 모습이 '적벽대전'에 나오는 어느 장수보다 멋졌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정우성은 '적벽대전'의 조자룡 역으로 제일 먼저 물망에 오른 적이 있죠.)

아무튼 원작 팬들의 한숨은 자꾸 깊어만 갑니다. '용의 부활'과 '적벽대전'이 이렇게 흘러가 버리면, 과연 진정한 '영상으로 보는 삼국지'는 언제나 관객들 앞에 나타날까요. 사실 이대로라면 송혜교가 캐스팅된 오우삼의 차기작 '1949'도 크게 기대가 가지 않습니다. 오우삼은 과연 부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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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한스 짐머의 걸작 '브로큰 애로우'를 다시 들어 봅니다.

 



아울러 늘 장국영이 부르던 주제가만 나오는데 질린 분들을 위해,





처음 썼던 '적벽대전' 리뷰입니다.




그리고 관련이 꽤 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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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개봉을 앞둔 역사적인 국내 시사에 나섰습니다. 너무 인파가 밀려 영화를 못 본 기자들 - 개중에는 기자를 사칭한 정체불명의 인사들도 꽤 많았다지요(^^) - 이 분노의 일갈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만, 아무튼 '놈놈놈' 자체에 대한 얘기는 좀 뒤로 미루고자 합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영화 '놈놈놈'이 제작에 들어갈 때부터 꼭 해야겠다고 벼르던 얘깁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얘기죠.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주위에선 '그게 뭐 그리 중요해?'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이게 한국 문화의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괜히 심각해졌군요. 이런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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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섭의 두루두루] '석양의 무법자'의 제자리 찾기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칸에서의 프리미어 갈라에 이어 국내에서도 7일 시사회를 열었다. 175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데다 송강호-이병헌-정우성이라는 세 톱스타의 무게가 몰린 기대작이라 시사회장부터 초만원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듣는 순간 서부극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1966년작 '석양에 돌아오다'를 연상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이 영어로 '좋은 놈, 나쁜 놈, 못생긴 놈(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이기 때문이다(이탈리아어로는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반 클립, 일라이 월락이 남북 전쟁과 보물 찾기를 소재로 인간의 욕망과 승부의 덧없음을 그린 걸작이다.

그런데 이런 설명에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의 한국 제목을 '석양의 무법자'라고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1969년 7월 국내 개봉 때 '석양에 돌아오다'라는 제목이 붙여졌다.

'석양의 무법자'라는 영화는 따로 있다. 이건 이 영화보다 1년 전에 만들어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Per qualche dollaro in piu'이 1967년 국내 개봉될 때 붙여진 제목이다. 영어 제목은 'For a Few Dollars More'.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리 반 클립이 나오지만 이번엔 악당 잔 마리아 볼론테에 맞서 싸우는 같은 편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1964, 65, 66년에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서부극 세 편을 연속으로 내놨다. 그리고 세 영화의 한국 개봉 제목은 각각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무법자', '석양에 돌아오다'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는 3부작의 첫편 '황야의 무법자'를 제외한 나머지 두 편의 제목이 혼란에 빠져 있다. 왜일까.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TBC-TV가 '석양에 돌아오다'를 TV로 방송하면서 갑작스레 '속 석양의 무법자'라는 제목을 붙인 데서 비롯됐다.

이후 1980년대 비디오 출시 과정에서 무책임한 제작사가 '석양에 돌아오다'에 '석양의 무법자'라는 제목을 붙여 버렸다. 이렇게 제목을 빼앗긴 진짜 '석양의 무법자'는 '황야의 무법자 2', '석양의 건맨' 이라는 엉뚱한 제목으로 밀려나는 비운을 겪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지금껏 고쳐지지 않고 있는 것이 한국 대중문화의 현주소다.

영화의 원제도 중요하지만 국내 개봉 제목 또한 중요한 유산이다. 우리는 '내일을 향해 쏴라'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기억하지,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나 'Bonnie and Clyde'를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이라도 '석양에 돌아오다'와 '석양의 무법자'는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

p.s. '놈놈놈'과 '석양에 돌아오다'는 제목 외에는 그리 비슷하지 않았다. (끝)





뭐든 물증이 필요하겠죠. 이건 1967년 9월 개봉한 '석양의 무법자'의 신문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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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광고를 보면 '석양의 무법자'가 '황야의 무법자'의 2탄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 광고에는 'FOR A FEW DOLLARS MORE'라는 원제가 표기돼 있죠.


그리고 이건 2년 뒤, 1969년 7월 개봉한 '석양에 돌아오다'의 광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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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전작이 '석양의 무법자'라고 명시되어 있죠.

책은 가끔씩 번역될 때마다 새로운 제목이 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번 수입된 영화의 제목은 여간해서는 바뀌지 않죠. 더구나 윗글에서도 썼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내일을 향해 쏴라'는 영어 원제를 넘어서서 독자적인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한 영화의 시사회에 기자만 1000명 넘게 온다는(?) 나라, 할리우드에 맞서는 영화강국을 자처하는 나라, 인터넷 블로그만 뒤져도 자칭 영화평론가가 넘쳐 나는 나라에서 이런 영화사에 남을 걸작의 제목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혼동을 자초한대서야 웬 망신입니까.

심지어 영상자료원까지 혼동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석양에 돌아오다'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제대로 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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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석양의 무법자'입니다.

영화 제목과 출연 배우가 따로 놉니다. '석양의 무법자'에는 엘라이 월락이 나오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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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엔 '석양의 건맨'이란 영화도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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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정비가 됐으면 합니다.



자, 그럼 이 기회에 헷갈릴 수도 있는 세 편의 영화,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을 한번 총정리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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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야의 무법자(Per un pugno di dollari, 1964)

영어 제목은 A Fistful of Dollars, 즉 '한줌의 달러'입니다. 자꾸 익숙한 영어 제목 대신 이탈리아어 제목을 먼저 쓰는 건 제가 잘난 척 하려는게 아니라 이 영화들의 국적이 미국이 아니라 이탈리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레오네 본인이 이 시절까지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몰랐다는군요. 촬영 장소 또한 스페인의 사막지대였을 뿐, 미국과는 아예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 영화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를 번안한 수없이 많은 영화들 중 하나라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죠.

- 라이벌 관계에 있는 두 갱단이 지배하고 있는 마을에 한 총잡이(혹은 칼잡이)가 나타난다. 두 조직은 앞다퉈 이 총잡이를 끌어들이려 하지만, 이들의 경쟁을 이용해 총잡이는 두 조직을 궤멸시키고 여인(?)을 구해낸다. -

네. 더쉴 해미트의 '피의 수확'에서 파생된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영화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월터 힐 감독의 '라스트 맨 스탠딩', 그리고 코엔 형제의 '밀러스 크로싱' 등이 다 비슷비슷한 얘기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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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석양의 무법자(Per qualche dollaro in piu, 1965)

영어 제목은 'For a Few Dollars More', '몇달러 더 되는 돈을 위해'(?) 정도의 의미가 되겠죠. '황야의 무법자'로 신이 난 레오네 감독과 이스트우드는 또 한편의 영화를 뚝딱 만들어냅니다. 이번엔 냉혹한 눈매의 리 반 클립이 가세합니다.

바운티 킬러인 몽코(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묘하게 모티머 대령(리 반 클립)과 합세해 멕시칸 은행강도 무리의 두목 인디오(잔 마리아 볼론테)를 쫓게 됩니다. 이를 위해 몽코는 그의 패거리 안에 뛰어듭니다.

대개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없다는 속설이 깨진 예의 시작을 '스타워즈 에피소드5 - 제국의 역습'과 '대부 2'를 꼽지만 아무래도 '석양의 무법자'를 빼기 힘듭니다. 아, 물론 '황야의 무법자'와 '석양의 무법자'를 전편과 속편으로 보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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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석양에 돌아오다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

영어 제목은 그 이름도 유명한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남북전쟁 말기의 미국. 좋은 놈(클린트 이스트우드)은 못생긴 놈(일라이 워크)를 잡아 현상금을 타고, 사형 집행때 다시 못생긴 놈을 구해 내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좋은 놈은 더 이상 이런 동업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청산에 나서죠. 어찌어찌하다 이들 둘과 나쁜 놈(리 반 클립)은 남군의 패잔병들이 빼돌린 20만달러를 찾아 경쟁하게 됩니다.

180분의 상영 시간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걸작.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세 편 모두 엔니오 모리코네의 가슴 뛰는 음악이 함께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편의 영화 음악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겁니다. 이번 기회에 비교해서 들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첫번째, '황야의 무법자'입니다.



다음은 '석양의 무법자'.



다음이 '석양에 돌아오다'입니다.



마지막은 '석양에 돌아오다'의 압권을 이루는 '엑스터시 오브 골드' 장면.

메탈리카의 연주곡으로도 잘 알려진 곡이죠. 본래 영화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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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놈놈놈'에 대해서는 얘기를 할 기회가 없었군요. 뭐 아직 개봉이 멀기도 했지만... 짧게 한 마디 하자면, 김지운 감독의 전작('반칙왕', '장화홍련', '달콤한 인생' 등)을 재미있게 보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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