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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4 오우삼의 적벽대전,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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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너무나 많아서 뭐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딱 한마디만 하라면,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은 대재난이란 말을 해야겠군요. 한마디 더 하라면,'삼국지-용의 부활' 제작진에게 사과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적벽대전'을 보고 나니 그만하면 '삼국지-용의 부활'은 걸작이라고 불러도 좋겠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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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벽대전'을 기다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고, 저도 그중 하납니다. 그래서 더 배신감이 강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긴 불안한 전조가 비치긴 했습니다. 기사 인용입니다.

'그래서 제작진은 <적벽>이 무협판타지가 아니라 좀더 사실적인 역사극이라는 걸 누누이 강조한다. 특히 오우삼은 “<삼국지>보다는 <삼국사기>를 주로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는데, 극적으로 왜곡된 캐릭터와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좀더 적확하게 고증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국 굴지의 영화전문지 기사입니다. 그런데 내용이 뭔가 찜찜합니다. '삼국사기'? '후한서'도 아니고, 진수의 정사 '삼국지'도 아니고, '삼국사기'? 설마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아니겠지요? 중국 사서에 '삼국사기'라는 책이 있다는 얘기는 도무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 영화사 쇼박스가 제작에 참여하는 바람에 한국 역사책을 참고했다는 뜻일까요?

아무튼 삼국사기건 뭐건 정말 정사를 참고해 고증에 충실했다는 뜻일 것 같은데, 문제는 만들어 놓은 영화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고증에 충실했느냐가 좋은 영화냐 아니냐의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일단 그 부분에선 '절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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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작. 조조(장풍의)는 헌제를 협박, 유비와 손권의 토벌을 허락받고 대군을 움직입니다. 유비는 백성들을 다 데리고 가느라 박살이 나고, 조운(호군)은 아두를 구합니다. 제갈양(금성무)은 손권(장진)을 설득해 함께 조조에 대항하려 합니다. 손권을 만난 제갈양은 그 하나만 설득해서 될 일이 아님을 깨닫고 적벽에 주둔한 주유(양조위)를 설득하러 갑니다. '당연히' 두 사람은 의기투합, 조조를 무찌르기 위해 공동 전선을 폅니다.

'적벽대전: 거대한 전쟁의 시작 (赤壁: Red Cliff, 2008)'은 소설 '삼국지연의'의 절정을 이루는 적벽대전 전후의 이야기를 다룬 오우삼 감독의 4시간 짜리 대작의 앞부분입니다. 일단 절반은 북경 올림픽 전에 개봉하고, 나머지 절반은 연말쯤 개봉할 예정입니다. 당연히 진짜 적벽대전의 화공 신은 후반부에 있고, 전반부는 대륙의 영웅들이 어떻게 결전을 준비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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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행히도, 앞부분의 '적벽대전'에서는 전혀 박진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일단 소설과 영화는 결코 작지 않은 차이를 보입니다. 오나라의 군웅들을 압박하는 제갈양의 현하 달변은 1분 정도로 압축돼 버렸습니다. 제갈양 혼자 오나라 군중에 머물지도 않고, 아예 유비와 손권, 주유가 연합 사령부를 만들고 함께 작전을 의논하고 군사훈련도 함께 합니다. 감녕과 조운이 친한 사이가 될 정도죠. 박진감 넘치는 소설 속의 사건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주유와 제갈양은 거문고를 연주하면서 관객들을 졸음에 빠뜨립니다.

'삼국사기'(?)를 참고했기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소설과 벗어나 정사에 충실한 것도 아닙니다. 도입부에서 조조가 유비와 손권의 정벌을 허락받는 장면부터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조조는 당시에 유비와 손권을 정벌하러 길을 나선게 아니었죠. 유표를 정벌하러 갔다가 형주가 의외로 쉽게 떨어지자 그 길로 동오 정벌에 나선 겁니다. 게다가 조조의 군대가 80만이라는 건 소설 삼국지연의가 대표적으로 저지른 뻥의 결과죠.

정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이 어정쩡한 대본은 오우삼 본인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라고 합니다. 특히 삼국지연의든 정사든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비-손권 연합군의 합동 군사훈련 이라니, 마치 영화 '젠틀맨 리그'를 보는 듯 합니다. 삼국지를 읽은 초등학생의 상상을 대본으로 옮겨놓은 거라고나 할까요.

사실 이 부분을 보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결국은 적이 될 운명이지만 서로 끌리는 두 인물, 제갈양과 주유는 왠지 '첩혈쌍웅'의 주윤발과 이수현을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조조를 응징하기 위해 서로 씩 웃으며 협력하는 영웅들은 어딘가 '영웅본색 2'의 다시 만난 삼총사를 보는 듯 합니다. 어쨌든 이런 설정은 기존의 삼국지와 썩 잘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15세 이하용 삼국지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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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이 이 수준이니 천하의 명배우가 온 들 어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주유 역의 양조위와 제갈양 역의 금성무를 비롯해 도대체 이 대본으로는 캐릭터가 그려지질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나마 사람처럼 보이는 건 조조 역의 장풍의와 손권 역의 장진, 그리고 손상향 역의 조미 정도입니다.

미스캐스팅의 냄새도 짙습니다. 아마도 감독의 의도는 진짜 주인공을 주유로 놓고 있는 것 같은데 양조위는 이 역할에서 그만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상향 역의 조미는 '남자들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상무 공주'는 커녕 천방지축 날뛰는 말괄량이 '황제의 딸' 연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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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손상향, 아래가 유비...)

뭐 딱이 나쁜 건 아니지만 유비와 짝을 이룰 일이 걱정스럽습니다. 유비 역에 뭔가 있어 보이는 미중년 배우가 나섰더라면(...주윤발?) 모를까, 정말 지금의 유비로는 너무 심각한 아버지와 딸 구도밖에 안 그려집니다.

그럼 액션은 어떨까요.

일단 개인전은 게임 '진 삼국무쌍'의 실사 화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관우와 장비, 조운은 '소설 원작' 대로 수백명의 적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게임 화면같은 전투를 벌입니다. 물론 말을 타지 않고 땅 위에서 말입니다. 너무 비슷한 전투가 계속 펼쳐지는 바람에 나중엔 지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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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도 안습 수준입니다. 동양식의 전쟁 묘사라면 지금까지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에 비길 만한 것이 없었다는게 중론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들면서 오우삼은 두 편의 할리우드 에픽에서 따 온 장면을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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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사되는 방패는 킹 비더 감독의 1959년작 '솔로몬과 시바'에서 나온 것이고, 팔괘진에 갇힌 조조 기병대의 모습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1970년작 '워털루'에서 영국 보병대의 방진에 갇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나폴레옹 기병대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특히 전장 전체를 조망하며 내려오는 부감 촬영은 같은 신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죠.

모방은 했으되, 기본적으로 전쟁이라는 것을 연구하지 않은 태가 역력합니다. 조조군의 마지막 무기(?)인 방패작전 같은 것이 그렇죠.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만한 병력을 진영 속에 가둬 뒀으면 화살 몇 대로 끝날 일을 갖고 장난감 쇼를 합니다.

오우삼이 '란'이나 '가게무샤', 혹은 가도카와 하루키의 '하늘과 땅과' 등을 한번이라도 봤다면 이런 유치한 장난은 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명장'의 전투 장면도 이 영화보다는 훨씬 더 리얼하게 느껴지고, 무려 19년전 영화인 정소동의 '진용'의 기마 전투 신도 이 영화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됩니다.

오우삼과 연출진이 깊이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무술감독으로 개인간의 액션에 강한 원규보다 집단 액션의 경험이 풍부한 정소동의 도움을 받았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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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회 이후, '평이하고 지루하다'는 평과 '만화같고 재미있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좋다는 의견도 상당수 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실망이 커서인지 연말 개봉 예정인 '적벽대전' 후편을 보게 될지가 의문입니다. 욕을 하더라도 봐야 할지, 아니면 그나마 안 보는게 오우삼에 대한 지금까지의 추억을 보존할 수 있는 일이 될지 말입니다.


p.s. 삼국지를 읽지 않은 초등학생들에게는 좋은 오락영화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기야, 미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선택일 수 있겠군요. 오우삼에게 정통 대하 사극을 기대한게 잘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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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이런 장면은 후편에 나올 모양입니다. 삼국지 팬들은 보는 즉시 어떤 장면인지 아시겠죠. 참고로 왼쪽 인물은 노숙입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이해하시는 분들은 개봉을 앞둔 '적벽대전'을 보시면 실망을 피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p.s.3. 오우삼의 영화답게 비둘기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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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송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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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갑돌이집 2008.07.04 16:5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 뭡니까. 엄청 기대했었건만...
    흠흠. 슬쩍 잊고 그냥 원티드 부터 죽죽 다른 영화나 보러 가야겠습니다. 뭐, 여긴 언제 개봉할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적벽대전은 ㅠㅠ

  2. 송원섭팬 2008.07.04 19:0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감독이 오우삼이라는 순간,
    이 영화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2가 터무 큰 타격이었나 봅니다.

    혹시 비둘기도 나오던가요? ㅋ

  3. 시사회 후. 2008.07.05 09:08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웃자고 만든 장면이 아닌 것이 분명한 심각한 신에서 관객의 헛웃음이 자주 유발되기에-
    이 영화 망했구나, 생각했습니다.

    공짜표였기에 망정이지, 그간의 기대감을 환불받고 싶었습니다.

  4. echo 2008.07.05 10:41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미국 시장을 겨냥했다면야 뭐.....'연인'을 보고 너무 어이없어 웃는 저희 커플을 이상하게 보더군요.

  5. 으아아 2008.07.12 00:46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이 글을 보고..그래도 혹시나하고 봤는데..

    정말 대재난 수준이더군요..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관객들이 야유를 보낸건 처음본것같습니다.

  6. 별고기 2008.07.20 18:50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아..영화적 재미로만 보면 훌륭한 영화라고생각했는데!!!
    그런 정직한 연출 ㅋㅋ 정직하고 명료한 캐릭터 표현 ㅎㅎ

    제가 삼국지를 읽지 않은 초등학생수준이어서 그런지^^;
    적벽대전이 뭔지도 몰라서 -_-; 기대는커녕
    좋아하는 배우는 잔뜩나오지만 별로 볼생각이 없다가
    심야에 묶여있어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보는 내내 '꺄악' 하고 즐거웠어요..ㅋㅋ
    영웅종합선물세트를 보는기분.ㅋ
    원본을 읽고 영화를 보면 영화가 안타깝다는 건
    대체로 주위 평이 좋았던 허니와 클로버를 보며 느꼈던 바..
    어쩌면 영화를 보고 나서 삼국지를 읽어야 겠다고 생각한 전
    행운아로 군요.ㅋㅋㅋ

  7. Ms. HK 2008.07.26 13:1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저는 어제 홍콩에서 이 영화를 봤어요.
    사실 이문열의 삼국지를 15년전에 읽어서 내용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감상했지요..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상태에서 유비, 관우, 장비는 한 눈에 알아보겠더군요..
    그냥 영화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전투장면에서 방패는 정말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을 생각나게 했어요.
    삼국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내용을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책이 한국에 있는 관계로...

  8. 아위 2008.11.25 16:49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뒤늦게서야 블로그를 알게되어 관심있는 글들 쭈욱 읽어보다가 갑니다~
    사실 캐스팅 부분은 예전의 제갈량-양조위, 주유-주윤발 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뭐.. 나중에 곽부성이 제갈량으로 확정되고 나서 사진을 보고 싱크로율200%라고 감탄을 자아내긴 했었지만.. 말씀하신대로 양조위=주유는 뭔가 아닌거같은 느낌이라 말이죠...(차라리 조조를 양조위로..?라고 잠깐 생각했으나 적벽대전이라는 주제 하에서 조조가 풍기는 악당의 포스를 양조위가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 한들 그 자체로서의 선한 이미지가 있으니..그것도 무리이겠고...)
    하지만 영화를 다 감상한 후(비록 1부이지만) 적벽대전이라는 소재 하나를 두고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한 영화는 여태 없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감독이나 작가가 소설과 역사를 혼동해서 여러 모순이 발생한 것 같지만, 뭐 역시 영화니 그러려니..해야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캐스팅이 너무 화려해서..대본이나
    장면이 약간 부족해도 인물 자체가 한타임 한타임 다 먹어주더라구요 ㅎㅎ
    그동안 매우 기다렸던 영화인 만큼 잔뜩 기대했다가 사람들 평이 너무 안좋았던 터라 잠시 미뤄두고..그래서 어느정도의 실망감을 미리 간직한 채 감상해서 더욱 좋은 느낌이 드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ㅎㅎ

    • 송원섭 2008.11.25 17:27 신고 Address Modify/Delete

      주유는 조조와 대비되는 '젊은 피'여야 할텐데 주윤발은 좀 무리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