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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 가면 가끔 얼굴을 찌푸리면서 숟가락을 내려 놓고 "미원 맛이 너무 나"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단히 예민한 미각의 소유자인가 하면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이런 분들의 특징은 대부분 유명 맛집에 가면 군소리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우래옥이나 한일관 같은 곳에 가면 이런 얘기 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습니다.

 

싼 식당일수록 조미료를 많이 쓴다는 건 당연히 사실일 겁니다. 그리고 좋은 재료를 많이 쓰는 비싼 식당에서는 양심이 있으면 조미료를 덜 쓰겠죠. 그런데 많은 분들이 유명한 맛집에서는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고 생각하시곤 합니다.

 

물론 '전혀 쓰지 않는' 집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감칠맛이 나려면 자연스러운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싶은 곳에 가도 '저희 업소는 조미료를 쓰지 않습니다'라고 되어 있는 안내를 볼 때가 있습니다. 특히 그 안내가 허영만 만화 '식객'에 나오는 정도라면, 뭐 더 할 말이 없겠죠.

 

 

 

지난주 JTBC '미각스캔들'에서는 허영만 원작 만화 '식객'을 이용해 마케팅하고 있는 식당들을 점검하는 내용을 방송했습니다.

 

'식객'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작품인가 하는 것은 새삼 여기서 거론할 필요가 없을 듯 합니다. 이날 방송의 취지는 '식객'에 누를 끼치자는 것이 아니고, '식객'이 여기저기서 음식점 선전에 이용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를 짚어 보자는 데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식객'에서 우리 전통 음식을 지키는 집으로 소개된 곳이 아니라, 그냥 스쳐 가는 가게로 나온 집까지도 "우리 업소가 '식객'에 나왔다"고 떠드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객'의 본의 아닌 오류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대부분 업주들이 한 말을 그냥 그대로 전재했기 때문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중엔 업주 측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비법에 따라 조리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지역의 향토문화 연구자들은 그 말이 '아무 근거가 없으며, 현재의 조리법은 1980년대 이후에 등장한 것'이라고 짚어낸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비판은 만화 출간 때부터 간간이 있었고, 이에 대해 허영만 선생도 "'식객'은 맛집 소개서이지 한국 음식에 대한 연구서가 아니다"라고 직접 언급하신 바 있습니다. 즉 위에서 말한 조리법의 역사나 원조집 논쟁 등에 대해 만화 '식객'이 판가름의 기준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방송의 주제와 달리 눈길을 끈 것은 유명 곰탕집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뭐 좀 먹으러 다녔다는 사람은 다 아는 이 집(그냥 'H'라고 하겠습니다. 뭐 방송에서도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업소의 이름을 굳이 제가 얘기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은 허영만의 '식객'에서 36-2-0-60이라는 암호같은 숫자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그중 '0'이 바로 '인공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았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집의 국물에서는 그냥 쇠고기와 내장만을 우려 낸 국물맛이라기엔 조금 넘치는 듯한 감칠맛이 납니다. 물론 맛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입에 착착 붙습니다. 그리 놀랍지 않은, 친숙한 맛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맛을 느끼긴 했지만, 그동안 감히 'H 곰탕 국물에서 조미료 맛이 난다'는 말을 함부로 할만큼 용감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유명 맛집에 대한 경외심은 물론이고 '허영만의 식객'의 권위에 함부로 도전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각 스캔들' 팀은 이 집 양쪽에서의 인터뷰를 통해 'H는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말이 헛된 신화임을 밝힙니다.

 

명동 본점 관계자의 말입니다.

 

 

 

 

명동 본점은 물론, 논현동 분점(명동에서는 분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만 이 집도 본래 H를 운영하던 집안의 일원이 운영하는 것은 분명합니다)에도 똑부러지게 조미료 사용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사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조미료'에 대한 기이한 민감함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깁니다. 과연 'MSG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음식을 배척할만한 이유가 있을까요. 유명 식품학자들 조차도 'MSG가 해롭다는 것은 소금이 해롭다는 것과 같다. 소금도 많이 먹으면 해롭지만, 소금이 없는 식생활을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MSG 사용 여부를 가지고 어떤 식당이나 음식의 질을 평가할 시대는 이미 지나간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좋은 재료를 깨끗하게 조리하는 식당에서 소비자의 취향을 위해 MSG를 소량 첨가하는 것이 마치 도의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이제 없었으면 합니다.  (물론 건강상의 이유로 MSG를 먹으면 안되는 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전에도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신은 MSG 없이 살 수 있습니까? http://5card.tistory.com/990)

 

시판되는 라면 중에도 'MSG 무첨가'를 소리 높여 외치는 제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죠. MSG 자체는 몰라도 MSG 성분이 주 성분이 된 복합 조미료 소비량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무가당 오렌지 주스'를 '당분 0'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무균질 우유'가 '전혀 균이 없는 우유'라고 생각하듯 말입니다. 이런 착각을 이용하는 상술에 이제 눈을 뜰 때도 됐습니다.

 

 

P.S. 이 글은 결코 H관에 대한 폄하가 아닙니다. 만약 조미료만 쓰면 모두 그런 맛을 낼 수 있다면, H관이 지금처럼 독보적인 위치를 구가하는 것은 '식객' 아니라 '식객' 할아버지의 도움이 있어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 맛을 좋아합니다. 며칠 전에도 명동점에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하면 꼭 '나는 모르겠던데 왜 입맛 갖고 잘난척이냐'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아는 한에서 비교의 기준을 제시하겠습니다. 이 집과 H관의 국물 맛을 비교해 보시면 어지간해선 차이가 느껴지실 겁니다.

 

만약 MSG 맛을 뺀 설렁탕 국물 맛을 시험해 보고 싶은 분은 서울 시청 부근, 중앙일보 옆의 '잼배옥'을 한번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집 주방장이 아닌 이상 '전혀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서울 시내의 대다수 곰탕/설렁탕 집에 비해 현저하게 MSG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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