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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제라블] '인생의 뮤지컬'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우습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본 뮤지컬 중 최고의 작품을 꼽으라면 '레미제라블'을 꼽게 됩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님의 수많은 걸작들이 눈에 밟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음악의 완성도나 구성을 볼 때 '레미제라블'을 능가할 작품은 아직 인류의 뮤지컬 역사에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클로드 미셸 숀버그(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현대 음악 작곡가 아르놀트 쇤베르크와 같은 이름이고, 한때 친척이라는 정체불명의 소문이 돌았지만, 본인이 직접 아무런 혈연 관계가 아니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과 알랭 부브릴이 만들어 낸 이 위대한 작품은 1985년 초연 이후 한국과는 별 인연이 없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 라이센스와 무관하게 해적판(?) 공연이 이뤄진 적이 있었고, 1996년과 2002에 해외 공연진의 방문이 있었을 뿐입니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를 갈 기회가 있었던 일부 운 좋은 사람들 외에 대다수 국내 팬들은 이 공연을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10주년 기념 DVD에는 '레미제라블'이 공연된 17개국에서 온 각국의 장발장들이 등장하지만 그 가운데 한국은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 공연이 이뤄지게 됐습니다. 그것도 묘하게 할리우드 영화판 '레미제라블' - 물론 수십번 영화화된 작품이지만 이번엔 영화 '오페라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뮤지컬 영화입니다 - 의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말입니다.

 

 

 

일단 이 작품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2008년 포스팅에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은 그쪽으로 가 보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동영상을 자꾸 퍼 오거나, 똑같은 얘기를 자꾸 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http://5card.tistory.com/130

 

지난주 용인 포은아트홀까지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제작사의 방침...이라고는 하지만 왜 용인에서 초연을 하고 지방 순회를 한 뒤 다시 서울에서 공연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하루 빨리 이 공연을 봐야겠다고 몸이 달아오른 사람들은 많았고, 평일인데도 객석은 빽빽했습니다.

 

그리고 3시간의 공연. 만약 이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레미제라블'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훌륭한 공연이었습니다. 본래 '레미제라블'의 상징으로 꼽혔던 회전무대는 사라졌지만 무대의 깊이며 볼거리에서는 조금도 손색이 없었고, 역시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앙상블은 관객의 전율을 자아낼 만 했습니다.

 

예를 들어 1막의 끝곡인 'One Day More'나 두 차례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에서 잘 조율된 파워풀한 합창은 왜 사람들이 '레미제라블'을 사상 최고의 뮤지컬이라고 부르는지 충분히 보여줬다고 할만한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아마도 이런 몇몇 장면만으로도 대부분의 관객들은 '정말 대단한 공연을 보았다'고 느낄 것이고, 평생을 잊지 못할 감동을 간직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부 '레미제라블' 마니아들에겐 역시 약간의 아쉬움이 남을 듯 합니다. '레미제라블'은 웅대한 합창과 비주얼 외에도, 수많은 뮤지컬 스타들이 일생을 두고 부르고 싶어하는 솔리스트용 명곡들로 채워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장발장의 'Bring him home', 팡틴의 'I dreamed a dream', 자베르의 'Stars', 에포닌의 'On my own' 같은 곡들이 그렇죠. 또 중반의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들어 보면 앙졸라라는 배역이 왜 젊은 뮤지컬 지망생들의 피를 끓게 하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최고의 배우들을 모았다는 캐스트가 이런 명곡들을 얼마나 소화했나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물론 이건, 사람들이 알피 볼이나 코엄 윌킨슨, 리아 살롱가나 마이클 볼 같은 일세를 풍미한 명가수들의 목소리로 이 노래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다시 태어난다면 앙졸라를 한번 시도해 보련만, 아저씨의 로망은 역시 자베르가 부르는 Stars...정말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노래.)

 

게다가 아무리 관대하게 보려 해도, 이번 '레미제라블'의 가사 번역은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영어 가사에 맞게 만들어진 노래를 다시 한국어 가사에 맞추는 일이 쉬울리는 없습니다만, 그동안 수없이 많은 공연들이 번안 공연되었다는 점에 비쳐 생각할 때, 이번 공연의 한국어 가사는 아무래도 많은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일각에서 '한국어 가사가 좋았다'는 리뷰들을 볼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음표에 맞게 가사를 꽉꽉 채워넣다 보니 한국어의 특성에 맞는 의미 전달은 무시된 부분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관객들이 가사를 제대로 듣지 못하게 된 데에는 뭔가 아직 박자가 맞지 않는 듯한 음향 조절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큰 책임은 한국어 가사에 있습니다.

 

(물론 모든 노래의 가사에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하지만 이 뮤지컬이 오페라처럼 송스루 스타일이다 보니, 오페라의 레시타티보에 해당하는 부분의 한국어 가사에서 집중적으로 문제가 노출됩니다. 끊어읽기라는 한국어의 특징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가사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제작진은 상대적으로 가사가 자연스러웠던 떼나르디에 부부에게 관객들의 호응이 매우 컸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할 듯 합니다.)

 

 

 

어쨌든 이런 저런 문제들을 고려한 다음 '레미제라블'의 주역들이 살려 줘야 할 핵심적인 명곡들의 처리를 놓고 평가하자면, 역시 장발장 역의 정성화가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더군요. 공연 전에는 '과연...?'하는 약간의 의구심이 있었지만, 공연을 보고 나니 정성화야 말로 최선의 캐스팅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반 서막 부분에서는 미묘한 조바꿈에서 섬세함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었지만 후반부, 특히 'Bring him home'에서 정성화는 '국가대표 장발장'으로 손색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런 대작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으로서의 카리스마도 다른 배우들을 압도했습니다.

 

 

 

팡틴 역의 조정은은 오케스트라에 묻혀 'I dreamed a dream' 후반부의 노랫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깁니다. 배우의 음량을 고려해 전체 음향을 조절하는 데 실패한 것이 분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에포닌 역에 더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이 들지만(몇년 전에 이 공연이 들어왔다면 단연 조정은이 에포닌 역으로 관객의 눈물을 쪽 빼는 명연을 보여주지 않았을까요),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아 낮은 평가를 받는다면 개인적으로 참 아쉬울 듯 합니다. 이번 공연의 에포닌 박지연도 물론 매우 훌륭합니다.

 

(아쉬움에 올려 보는 조정은의 On my own)

 

 

반면 앙졸라, 마리우스, 코제트 역할은 여러가지로 아쉽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저는 앙졸라 역에서 좀 더 남성적이고 결의에 찬 목소리를 기대했습니다. 앙졸라가 마리우스 같아선 곤란하지 않을까요. 아울러 전체적으로 너무 많은 배우들이 '뽕끼 있는 발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물론 전체 공연의 틀 안에서 보면 위에 든 아쉬움은 정말 소소한 아쉬움에 불과합니다. 일단 공연을 보신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심히 공감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또 사소한 문제는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원작이 매력적입니다.

 

지난 6월 뮤지컬 어워즈에서 갈라 형태로 보여진 One Day More 입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출연진을 더 사랑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포은아트홀로 지금 가신다면, 이 버전의 One Day More는 학예회라고 생각하시게 될 겁니다. 그만치 현재 공연 팀의 밸런스가 훌륭합니다.

 

 

 

 

용인이 너무 머신 분은 내년을 기약하시길. 뭐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꽤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만, 뮤지컬 팬이라면 어쨌든 한번은 봐야 할 작품이니 말입니다.

 

 

P.S. 곧 개봉할 영화판의 예고편입니다. 앤 해서웨이가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이 나옵니다만, 글쎄 그닥 인상적이지는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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