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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도 많은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유 넘치는 분들은 2월이면 리오데자네이루로 날아가 카니발의 삼바 구경을 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렇게 살지 않아도 보고 즐길 것들은 날로 넘쳐납니다.

 

12월, 1월에 이어 2월의 문화가이드입니다. 물론 예산 10만원은 1인 기준. 홀몸이 아닌 분들은 이 금액에 x2(아 물론 책은 돌려읽을 수 있으니 빼고) 하셔야 하니까 제법 부담이 되는 금액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애인은 깨져도 문화적 소양은 남는다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뭐 전혀 위안이 안 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럼 시작합니다.

 

 

 

 

10만원으로 즐기는 2월의 문화생활 가이드

 

2월은 다른 달보다 짧아. 그리고 전반적으로 모든 공연의 비수기이기도 해. 또 많은 사람들에겐 졸업과 새 학기 준비의 달이기 때문에 문화 생활을 즐기기엔 그리 적절하지 않은 달이지. 하지만 영화광들에게는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상이 열리면서 반짝 특수를 노리는(평소 같으면 그리 호객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예술성 높은 작품들이 우루루 밀려오기 때문에 행복한 시기이기도 해.

 

2월의 공연 스케줄을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어. 벤 폴즈 파이브(Ben Folds Five)가 2월24일에 내한공연을 한다는거야. 벤 폴즈가 누구냐고? 아무래도 유튜브에 접속해서 ‘브릭(Brick)’이나 ‘매직(Magic)’같은 노래를 들어보는게 가장 좋은 설명이 아닐까.

 
한없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완 달리 팀의 리더 벤 폴즈는 무척 괴짜야. 얼마나 괴짜냐고? 일단 밴드의 구성이 기타 없이 피아노, 베이스, 드럼이라는 것부터 독특하지. 게다가 멤버가 세 명인데 밴드 이름이 ‘파이브(five)’야. 대체 왜 파이브냐고 물으니 “그게 쿨해서”라고 했다나. 문제는 티켓 가격이 11만원. 이 칼럼이 추구하는 방향과는 좀 어긋나 있어서 이 얘기는 여기서 끝(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는 걸 보면 진심으로 강추라는 걸 알 수 있겠지?).

정식으로 소개하고픈 2월의 대표 공연은 이자람의 ‘사천가’야. 성남 아트센터라는 지역적인 약점이 있고, 5만원이면 이 칼럼에서 소개하는 공연 치고는 비싼 편이지만, 이런 무대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 왜냐고? 이자람이 나오기 때문이야. 물론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여.

 

 

 

 

이자람을 1984년 나온 동요 ‘예솔아/할아버지께서 부르셔’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현재의 이자람은 대한민국이 낳은 가장 빛나는 무대 예술인으로 꼽아 손색이 없어. 창작 판소리 ‘억척가’나 ‘사천가’, 뮤지컬 ‘서편제’ 등 그의 무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거야. 정말 대단한 소리꾼이지.

다음. 오페라라는 장르를 소개하자니 좀 망설여지네. 더구나 어쨌든 제목만이라도 친숙한 ‘아이다’나 ‘라 트라비아타’도 아니고, ‘라보엠’도 아니고 ‘안드레아 세니에’라니. 베르디도 바그너도 아닌 지오르다노의 작품이라니.

 

그렇지만 메가박스에서 2월에 상영되는 ‘안드레아 셰니에(Andrea Chenier)’는 여러가지 면에서 볼만한 점이 있어. 혹시 유럽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이라면 브레겐츠(Bregenz)의 수상 무대 오페라를 들어 봤을거야. 유럽에서 가장 유니크한 오페라 공연장으론 브레겐츠의 호반 무대와 이탈리아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오페라를 꼽는게 보통이지.


 

그러니까 이번 안드레아 세니에를 보는 건 단순히 오페라 한 편을 감상하는 이상으로, 브레겐츠 수상 무대라는 독특한 무대를 접할 수 있는 기회인 거지. 특히 테너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는 좋은 아리아가 많아. 4막의 ‘5월의 어느 맑은 날에(Come un bel di di Maggio)’ 같은 아리아를 들어 보면 바로 느낄 수 있어. 게다가 정통 오페라 공연은 대개 3시간 정도 걸리지만 이건 110분에 오페라의 정수를 한껏 보여준다는 점에서 입문용으로도 제격이야.

 

 

 

 

자, 이번 달엔 추천할 책이 세 권이야. 일단 ‘위대한 개츠비’. 나가사와 선배가 와타나베에게 “세번 읽은 사람이라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그 책이야(멀뚱멀뚱 보고 있는 당신,  뭐야. 설마 ‘상실의 시대’ 도 안 읽은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위대한 개츠비’ 가 개봉해. 바즈 루어만이 감독인데 재즈 시대의 감성을 어떻게 일렉트로니카에 실어 낼지 무척 궁금한 작품이지.

 

아무튼 사설 빼고, ‘위대한 개츠비’(4800원)는 꼭 읽어볼 만한 작품이야. 그리고 민음사에서 나온 ‘스콧 피츠제럴드 단편선’ 두 권(각각 7000원, 6650원)을 추천하지. 저자가 생전에 썼던 수백편(?)의 단편 중에 10여편을 골랐어. 이 단편들을 읽으면 섬세하고도 풍부한 감성에 일단 놀라고,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 소재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나 다시 한번 놀랄 거야.

 

 

 

 

아, 단편선 2권에는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원작인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도 실려 있어. 물론 원작이라곤 하지만 영화와 소설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지. 아무튼 읽고 나면 왜 겨울엔 피츠제럴드를 읽어야 하는지 느끼게 될거야.

 

참고로 위에 쓴 가격은 모두 인터넷 서점 yes24 가격이야. 세 권 합해 2만원이 채 안 돼. 이렇게 고전은 여러 가지로 이익이야.

그럼 다들 2월 잘 보내. 3월에 만나자고.


이자람 ‘사천가’                                                                  5만원
브레겐츠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3만원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단편선 1’ ‘단편선 2’     1만8450원
합계                                                                           9만8450원

 

 

 

브레겐츠 오페라의 호반무대입니다. '안드레아 세니에' 무대는 유명한 그림 '마라의 죽음'을 테마로 만들어졌더군요. 혁명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선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많은 분들이 007 영화 '퀀텀 오브 솔라스'에서 이 브레겐츠 오페라 장면을 보신 적이 있습니다. 극중의 공연은 '토스카'였죠.

 

 

 

 

저도 브레겐츠는 가보지 못했지만 베로나는 가 봤습니다. 로마시대에 건설된 돌 건물을 아직도 쓰고 있다는게 참 놀랍기도 했고 분위기는 그만입니다만, 사실 저만한 크기의 경기장에서 마이크를 쓰지 않고 오페라를 공연한다는 건 살짝 만용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본 공연은 '아이다'였는데 아쉽게도 라다메스 역의 테너가 이런 대공연장을 감당할 수 있는 음량을 가진 가수가 아니더군요. 물론 무대 앞쪽 분들에게는 별 문제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공연이 '아이다'였기에 원형경기장에 걸맞는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만으로도 불만은 없었습니다. (진짜 코끼리도 나오더군요.)

 

이제부터는 각론. '안드레아 세니에' 4막에서 죽음을 앞둔 세니에가 부르는 '5월의 어느 맑은 날에 Come un bel di di maggio'. 개인적으로 역사상 최고의 세니에라고 생각하는 마리오 델 모나코의 노래입니다.

 

 

 

 

1막에서 세니에가 부르는 '어느날 파란 하늘을 보다가 Un di all 'azzurro spazio (Improvviso)'. 마르첼로 알바레스의 절창. 호쾌하면서도 애절한 분위기가 그만입니다.

 

 

 

 

너무 '안드레아 세니에'로 몰고 가서 그렇습니다만, '사천가'는 그닥 따로 소개할만한 영상이 만만치 않군요. 직접 가서 감동을 느끼시길 권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소개했는데 정작 2월이 되자 메가박스 측이 브레겐츠 오페라를 아이다로 바꿔 버렸다는... ㅠㅠ 뭐 다시 안드레아 세니에로 돌아올 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피츠제럴드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를 새삼 이 공간에 풀어놓을 방법은 없는 듯 합니다. 흔히 이 이야기는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로 소개되곤 합니다. 젊은 날의 열정을 잊지 않은 남자의 고독한 열정, 그리고 그 열정을 바쳤던 여신이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존재였는가 하는 처절한 반성이 읽는 이를 서늘하고 축축한 냉기 속으로 이끄는 작품이죠.

 

 

 

단편선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다시 찾아온 바빌론'입니다. 그리 많지 않은 장수 안에 한 남자의 반생과 반성, 그리고 재생의 가능성이 차곡 차곡 정리 잘 된 서랍 안처럼 담겨 있기 때문...이라면 너무 도식적인 표현이군요. 엘리자베스 테일러 주연 영화 '내가 마지막 본 파리'의 원작 역할을 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를 아시는 분이라면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지도. (위 사진의 남자는 무명 시절의 로저 무어.)

 

사실 피츠제럴드는 윗글에서도 얘기했지만, 한 가지의 정서를 수십개의 작품으로 풀어내는 재능이 기가 막힙니다. 열정과 의욕을 가진 젊은 남자가 있고, 그 남자의 혼을 뽑아낼 정도로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 젊은 미녀가 있습니다. 남자는 그 여자를 위해 인생을 걸기로 결심하지만, 여자는 그리 오래 기다릴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남자는 어떻게든 여자를 차지하는 데 실패하고, 그 실패는 남자에게 좀 더 큰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죠.

 

사실 피츠제럴드를 읽으면 읽을 수록 이런 식의 여성혐오(?)^^를 깊이 느끼게 됩니다. 그의 여주인공들은 남자에게 어떤 영감도 주지 않죠. 남자들에게 있어 인생의 트로피 역할을 합니다만 동시에 남자들을 파멸시키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와 아내 젤다의 사연을 보면 무리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그의 어떤 작품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신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불균형을 전제로 쓰여진 작품들이기 때문에, 남자의 열정 역시 결국은 무의미한 집념으로 밝혀지고 맙니다. 가끔 '개츠비 같은 식지 않는 사랑'을 여자에게 말하는 남자들이 있는 모양입니다만, 그건 사실은 '당신에 대한 내 열정은 결국 착각에서 비롯된 인생의 낭비였다는 것이 증명될 거야'라는 뜻입니다. 피츠제럴드 식으로 말하자면.)

 

 

아무튼 2월이 무르익었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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