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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이 되면 당연히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습니다. 바로 이용의 '잊혀진 계절'입니다.

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수 이용의 존재감은 절대적입니다. 81년 제5공화국 문화 정책의 야심작인 '국풍 81' 축제를 통해 가수로 데뷔한 이용은 다음해인 82년,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한 조용필의 아성을 깨고 MBC TV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가수왕을 차지했습니다.

사실 그 방송을 직접 본 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요즘은 '10대 가수'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샤이니나 원더걸스 같은 teenager 가수들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하지만 90년대 까지만 해도 '10대 가수'라면 당연히 매년 연말 뽑는 MBC 10대 가수를 가리키는 말일 정도로, '10대 가수 가요제'의 중량감은 대단했습니다. 김흥국이 단 한번 10대 가수에 든 것으로 '안녕하세요, 10대 가수 김흥국입니다'라고 몇 해를 버틸 정도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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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당시 이용은 데뷔곡 '바람이려오'와 '잊혀진 계절'로 누구도 부럽지 않을 인기를 자랑했습니다. 대부분의 남자 가수들이 트로트나 스탠다드 팝 스타일의 보컬을 고수하고 있는 환경에서, 당시만 해도 이렇게 쭉쭉 뻗는 성악적인 발성의 고음 가수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당시의 대한민국을 사로잡았습니다.

물론 이용의 인기가 대단하긴 했지만 82년의 조용필 역시 대단했습니다. 이해 4집을 내놓은 조용필 역시 '못찾겠다 꾀꼬리'와 '기도하는~'이라는 가사로 너무나도 유명한 '비련', '자존심' 등을 히트시키며 정상을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이용이 가수왕에 오른 것은 이변으로 여겨질 만 했습니다. 조용필 팬들은 "말도 안 된다"며 분통을 터뜨렸었죠.

(자, 당연히 이런 얘기들은 본론이 아닙니다.)

이 '잊혀진 계절'을 비롯해 가사나 제목에 날짜가 등장하는 노래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 이 날짜가 기쁜 날인 경우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일단 '잊혀진 계절'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로 시작합니다. 당연히 '10월31일'은 노래에 나오는 두 사람이 헤어진 날입니다. 그 이별의 아픔 때문에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자에게 10월 말은 잊혀진 계절이 되고 만 겁니다.


서태지의 유명한 '10월 4일' 역시 마찬가지죠.



왠지 요즘에 난 그 소녀가 떠올라
내가 숨을 멈출 때 너를 떠올리곤 해

내 눈가엔 아련한 시절의
너무나 짧았던 기억 말고는 없는데

넌 몇 년이나 흠뻑 젖어
날 추억케 해

네가 내 곁에 없기에
넌 더 내게 소중해

그렇습니다. 역시 그 소녀도 지금 옆에 없죠. 서태지는 한 인터뷰에서 "중2때 좋아했던 소녀의 기억을 담은 노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비의 최신 앨범에 있는 '9월12일' 역시.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가 없겠죠
나도 그랬죠
마음 찢어지고
이를 악물고 대답했죠
헤어지자고 니 말대로 난 한다고

나는 멋지게 이별의 말 뱉었죠
나보다 좋은 사람을 찾아가라고 겉으론 그렇게..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가 없겠죠
나도 그랬죠
마음 찢어지고
이를 악물고 대답했죠
헤어지자고 니 말대로 난 한다고

아예 처음부터 대놓고 '이별 앞에선 어느 누구도 당당해질수 없다'고 나오는군요.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9월12일이 헤어진 날이 아니라 옛 애인을 처음 만난 날이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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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날짜가 들어가진 않지만 버즈의 '일기'라는 노래도 있죠.

12월 9일 목요일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고
4월에 나눌 인사를 미리 서둘러 하고
세상과도 이별한다고
눈을 감으면 깨어나지 못하면 매일 써오던 일기
내게 전해주라고

혼자 남은 나를 걱정했나요 많이 아파했나요
갚지 못할 그 사랑에 자꾸 눈물이 나죠
사랑했던 날을 모두 더하면 이별보다 길텐데
그댄 벌써 내게 제발 잊으라고만 하네요

4월에 내린 햇살을 만져보고 싶다고
힘없이 눌러쓴 그대 팔에
몇일동안 비가 내려 많이 아파하던 날
멈춰버린 4월 어느날
가지말라고 제발 눈을 뜨라고
이건 장난이라고 이럼 화낼거라고

버즈 멤버들은 아니지만 작사가의 개인적인 사연이 담긴 노래라고도 하는군요. 구체적인 사연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행복한 사연은 아닌게 선명합니다.


날짜가 나오는 노래 중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곡을 찾자면 아무래도 에픽하이의 '11월1일'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중한 친구가 있었죠 내 숨소리 보다 가깝게 느꼈죠
피아노와 통키타 멜로디로 꿈을 채웠고
현실보다 그 사람은 음악을 사랑했었죠
오 그 지난 날 남다른 길에 발 딛고
무대위에서 내게 보내던 분홍 빛깔 미소
아직도 그때가 그립다 그땐 사랑과 열정이
독이 될 줄 몰랐으니까 괴리감은
천재성의 그림자 가슴이 타 몇 순간마다
술잔이 술이 차 내 친구가 걱정돼도
말을 못하고 가리워진 길로 사라지는
뒷모습 바라봤죠 그가 떠나가
남긴 상처 보다 깊은 죄가 비라며
내 맘속엔 소나기뿐 너무나 그립다
텅빈 무대끝에 앉아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 쫓던 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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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볼 것도 없이 이 날은 소중했던 친구가 떠나간 날입니다. 그렇다면 그 소중한 친구란 누구일까요. 이 노래에 원티드의 김재석이 참여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교통사고로 숨진 원티드의 전 멤버 서재호를 추모하는 의미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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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한국 가요계의 두 거목에 대한 추모의 의미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바로 1987년 11월1일 사망한 유재하와 1990년 11월1일 사망한 김현식이죠. 에픽하이의 타블로도 "어려서부터 존경하던 유재하의 기일이 노래의 제목"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 대목에선 이 노래를 듣지 않으면 안될 것 같군요. 한국어가 남아 있는 한, 한국어 가요라는 것이 남아 있는 한 마지막까지 흘러나올 노래들 중 하나일겁니다.




팝 쪽으로 가봐도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 정도를 제외하면 날짜를 담은 노래 중에 밝은 사연을 담은 노래는 별로 없는 듯 합니다. 대표적인 노래로는 비지스의 'First of May'가 생각나는군요.

다 아시겠지만 소년 소녀의 사랑을 담은 영화 '멜로디'에 실렸던 노랩니다. 지금도 5월1일이면 신청이 폭주한다는 곡이죠.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We used to love while others used to play.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Now we are tall, 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And you dont ask the time of day.
But you and i, our love will never die,
But guess well cry come first of may.

The apple tree that grew for you and me,
I watched the apples falling one by one.
And I recall the moment of them all,
The day I kissed your cheek and you were mine.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Do do do do do do do do do...
Dont ask me why, but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듣고 있으면 참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어 기억이 달력장에 덮여도 느낌은 그대로 남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순간들과 다시 오지 않을 느낌들이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다는 게 가끔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서 날짜가 제목에 담긴 노래들은 더할 나위 없이 애잔하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안타까움도 시간이 흐르면 하나씩 사라져 가겠지만.



p.s. 날짜를 명시하고 있는 좋은 노래들로는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별의 12월32일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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