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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다'. 한국 영화의 스토리를 훑어 보면서 '독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들로는 '박하사탕'과 '올드보이'가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에 비교해도 '백야행'의 처절함은 그리 뒤처지지 않습니다. 원작을 읽으면서, 치과의 치료용 침상에 누워 있는 심정이었다면 좀 과장일까요.

원작 소설과 일본 드라마 판을 비교해 보며 기다리기를 6개월, 마침내 완성된 영화 '백야행'을 봤습니다. 관객들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지만, 그리고 영화가 원작을 살렸네 못 살렸네에 대한 논란도 오가고 있지만 최소한 한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우리의 여주인공 손예진은 일본의 아야세 하루카를 압도했다는 겁니다.

(쓰다 보니 길어졌습니다. 긴 글 보기 귀찮으신 분들을 위해 한마디로 압축해서 얘기하자면: 볼만 합니다. 그리 본전 생각은 안 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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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은 미호(손예진)와 승조(박성웅) 사이의 질펀한 정사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고교 미술 교사인 미호는 국내 굴지의 재벌인 승조와 결혼을 앞둔 사이. 하지만 미호의 표정에서 쾌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같은 시간, 요한(고수)은 한 남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있습니다.

시점은 14년 전으로 이동합니다. 형사 동수(한석규)는 인천 앞바다에 정박중인 한 폐선 안에서 중년 남자가 살해된 사건을 수사하게 됩니다. 남자는 어린 요한의 아버지. 동수는 사건 현장의 단서를 쫓다가 홀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소녀(뒷날의 미호)를 만나게 됩니다.

사건은 상식적인 선에서 결론지어지고 수사가 종결되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을 잃게 된 동수는 맹목적으로 이 사건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14년이 흐른 현재, 승조는 미호가 자신의 결혼 상대로 적합한가를 알아보기 위해 비서 시영(이민정)을 시켜 미호의 과거를 조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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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흐르는 음악은 일관되게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입니다. 클래식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밖에 없는 유명한 곡이죠. 이 '백조의 호수'의 이미지, 처음부터 끝까지 흰 색 위주의 스타일링으로 고수와 대비를 이룬 손예진의 패션, 그리고 마지막 패션 쇼장에 놓였던 흰색의 니케 여신상(날개가 달려 있죠)이 보여주는 이미지는 너무도 선명하게 이 영화가 지향하는 길을 비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낮게 낮게(혹은 쉽게 쉽게) 가겠다'는, 대중적인 노선의 선택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소설 '백야행'은 읽는 데 특별한 이해력이 필요한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소설 3권 분량의 원작을 2시간 남짓한 영화로 압축하는 데에는 상당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원작에서 빼놓은 부분이 없나 하는 점에 지나치게 매달리다보면 스토리만 요약해 놓았을 뿐 원작의 향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메마른 작품이 돼 버립니다. 그렇다고 원작의 상징성에 집작하다 보면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얘기를 듣게 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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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위험을 감안할 때, 한국 영화 '백야행'의 시나리오를 비난하는 것은 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작에서 살려야 할 요소들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관객을 혼란시키지 않는 적절한 선을 유지했다고나 할까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작에서 상당히 어렵게 빙빙 돌아 간 길을 한방에 질러 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부분들입니다.

이를테면 원작의 료지(요한)는 대단한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만큼 그의 범죄에서 어떤 의도나 흔적을 읽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요한은 허점 투성이입니다. 이런 차이는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요한이 잡힐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 원작의 료지 수준으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면 사건을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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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원작을 읽은 사람들이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갔던 길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서너발짝이면 갈 수 있게 된 겁니다. 이건 아마도 원작 팬들에겐 참을 수 없는 모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백조의 호수'나 동수 아들의 죽음 등 원작에 없는 요소들의 등장 역시 원작의 다소 신비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지나치게 통속적인 요소로 여겨질 여지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원작 팬들의 욕구를 모두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10편 이상의 드라마화뿐일까요? 하지만 일본에서 이미 제작돼 방송됐던 드라마 '백야행' 역시 원작 팬들로부터 '원작 훼손'이라는 욕을 먹고 있는 걸 보면 길다고 능사도 아닌 듯 합니다.^^

(많은 경우, 마니아들이 많은 원작일수록 영상화는 거의 반역에 가까운 대접을 받습니다. 내년 등장할 영화판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또한 이런 운명에서 자유롭지 않을 거라는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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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시나리오를 비교할 때 개인적으로 100점짜리 각색은 아니지만 90점은 주어야 마땅할 듯 합니다. 하지만 박신우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서는 꽤 역량을 발휘한 반면, 연출에서는 80점 이상을 받기 힘들 듯 합니다. 특히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데에서 아직은 한계를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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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제작진은 탁월한 여주인공의 선택을 보여줬습니다. 수많은 여배우들이 있지만, 이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로 국내에서 손예진 이상의 선택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본인에게는 기분나쁜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 연령대의 배우들 가운데서 '미소짓는 악녀'의 아우라를 누가 더 강하게 풍길 수 있을까요.

몇몇 장면에서 '작업의 정석'의 몇 장면이 떠올라 웃음을 참아야 했던 게 불만일 수도 있겠지만, 손예진은 '백야행'에서 '가식의 끝'과 '내면의 고통'을 관객들에게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리 쉬운 연기가 아니었다는 점은 일본 드라마판의 여주인공 아야세 하루카와의 비교를 통해 아주 간단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지만, 아야세가 이 작품에서 보여준 감정의 기복이 잔물결이라면 손예진이 보여주는 격동은 해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두 영상물을 비교해서 보면 여주인공의 역량 차이가 너무도 극명합니다. (아역의 경우엔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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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촬영 전부터 손예진에 비해 고수를 불안요소로 생각한 사람은 꽤 있었을 겁니다. 엄밀히 말해 지금까지의 고수는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아니었죠. '이미지로 가는 배우'였습니다. '백야행'에서도 고수에겐 많은 대사가 주어지지 않았지만, 표정과 분위기는 요한 역을 기대 이상으로 소화해냈다고 평가할 만 합니다. (이 경우에도 아역과의 불균형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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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가 연기한 형사 동수 역은 지나치게 전형적인 캐릭터가 돼 버렸습니다(이 부분이 원작 팬들에겐 꽤 불만일 법 합니다). 영화 내내 까칠하고, 냉소적인데다 반항적이고 가시돋친 인물로 등장한다는 건 제작진이 이 캐릭터에 그닥 애정이 없었거나, 아니면 무신경했다는 얘기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아들의 죽음이라는 요소를 넣어 지나치게 극단적인 캐릭터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가장 인상적이어야 했을 마지막 장면, '아는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은 한번이면 족했을 듯 합니다. 굳이 동수의 입을 빌어 두번 질문을 반복하는 건 연출권의 남용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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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 주인공의 형상화만에도 힘이 부쳤던 걸까요. 박성웅이 연기한 승조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민정이 연기한 시영은 기대했던 비중에 비하면 처참한 실패입니다. 배우와 연출자 중 어느 쪽의 문제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둘 중 누군가는 열의가 좀 부족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총정리하자면 '백야행'은 초기 세 명의 주인공 캐스팅에 성공한 제작진이 "이 정도 배우들이라면 이만만한 관객을 노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철저하게 대중용 영화를 지향해 만든 작품입니다. 이때문에 좀 서비스 과잉이라는 생각도 들고, 좀 더 강렬한 자극을 원했던 관객들에겐 너무 안전한 운행이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 관객들에게는 호평을 받을만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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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 대한 대부분의 리뷰가 그렇듯, 이 영화 이야기는 손예진으로 시작해 손예진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잘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결코 '백야행'을 보고 실망할 일은 없을 듯 합니다.


P.S. 그런데 한국 사람이라면, '며칠 모자라는 15년'을 14년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요? 굳이 왜 '14년'이라고 강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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