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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TV '무한도전'이 '프로레슬링을 모독했다'는 주장이 일파만파로 퍼져 반박과 재반박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디어, 특히 저질 미디어 시장이 가장 좋아하는, '어쨌든 논란이 확산'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물론 이 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이 잘잘못을 판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듯 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과 관련된 당사자들의 말, 특히 처음 문제를 제기한 윤강철 선수의 말과 김태호 PD의 해명을 읽다 보니 사건의 실체가 잡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입니다. 이번 사건의 주범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가난'이었고, 거기에 대한 몰이해가 논란과 감정 대결을 낳은 것이더군요. 물론 이건 저의 판단입니다. 거기에 동의하실지는 아래 내용을 읽어 보시고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읽어보시는게 좋겠습니다. 윤강철 선수의 '자술서'입니다.

http://tvzonebbs.media.daum.net/griffin/do/talk/program/challenge/read?articleId=10917&bbsId=178_a

그 다음은 여기에 대한 김태호 PD의 해명입니다.

http://blog.daum.net/teoinmbc/2

대강만 봐도 상당한 입장 차이가 느껴집니다.


1. 출연료 문제

윤강철 선수 측의 문제제기에 따르면 "출연료에 대해 처음부터 얘기가 없었고, 방송 출연(지난 2월) 이후 2개월이 넘어서야 돈이 지급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아다시피 방송은 대개 출연 즉시 출연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당 기간이 소요된 뒤에 돈을 준다는 것으로 윤강철 선수 측도 납득한 듯 합니다.

솔직히 제가 처음 놀란 부분은 그 돈의 액수입니다. 자술서 등으로 봐선 인당 20만원, 그리고 김태호 PD의 해명을 보면 30만원인 듯 합니다. 대략 내용을 보면 나간 돈은 60만원인데 '무한도전' 측은 이게 2명분, 윤선수 측은 3인분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20-30만원 정도입니다.

자, 제가 아는 방송계 상식으로 얘기해보면 이렇습니다. 출연료를 포함한 출연 조건은 일단 출연자 자신이 정하는 겁니다. 정해진 건 없습니다. 양쪽 중 어느 한 쪽이 먼저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금액을 제시하고, 거기에 대해 조정이 이뤄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온 이 액수는 현재 방송에 나오는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의 금액입니다.

그런데 윤강철 선수의 자술서?를 보면 이 돈의 가치에 대해 윤선수는 그리 적은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게 드러납니다.


네. 윤선수는 30-40만원의 출연료가 '꽤 큰 돈'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챔피언이라는 선수가 말입니다. 이 대목이 참 가슴아픕니다. 그러니까 1박2일로 강화도까지 가서 촬영을 하고 받은 돈이 1인당 20만원이라 해도 '요즘 힘든'  윤선수나 동료들의 입장에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돈이었던 겁니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김태호 PD의 해명을 봐도 '아니 대체 MBC가 그만한 돈을 떼어먹기라도 한단 말인가'라는 한탄이 읽힙니다. 그리고 윤선수에게 악플을 단 많은 사람들도 '무슨 그만한 돈을 가지고 수십번씩 독촉 전화를 했다고 하느냐', '찌질하다' 는 식의 반응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번 사건 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가난'과 '그런 가난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겁니다. 자, 한번 양쪽 입장에서 재구성해 보겠습니다.

'무한도전' 작가의 입장입니다. 위로부터 '프로레슬링 선수 2명을 섭외하라'는 명령을 받은 작가는 섭외에 나섭니다. 협회 쪽에서 문의가 왔을 때 작가는 일단 자신이 제시할 수 있는 '최저선', 즉 '1인당 30-40만원 정도'라고 얘기합니다.

'방송계 상식'을 들자면 섭외가 이뤄져 출연에 동의하기 전에 출연료에 대한 부분은 구두로라도 확실하게 매듭지어지는게 보통입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확실하게 얘기가 없었다면, 그건 섭외하는 측에서 제시한 최소선에 동의한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나는 방송 출연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으므로 출연료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불행히도 제작진, 특히 작가는 후자 쪽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적어도 프로 레슬링 선수'라면 그 출연료가 '20만원이냐 30만원이냐 50만원이냐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출연료가 그날 지급되느냐 몇달 있다 지급되느냐' 역시 큰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당장 윤선수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겁니다. 정황을 보면 윤선수는 정말로 MBC가 '출연료를 떼어 먹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상대에 대한 몰이해가 바로 비극의 씨앗이었던 겁니다.


2. 이동 수단 - 촬영장 푸대접

정황을 보면 여기서도 몰이해가 큰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윤 선수 측의 요구는 아주 소박했던 셈입니다. '몇명 정도 같이 타고 가도 되겠느냐'는 요구를 하고 그걸 거절당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우리가 한번 녹화때마다 쓰는 운송비가 얼만데, 그 세명 태울 차 마련하는게 무슨 문제였겠느냐"고 답답해 합니다.

여기서도 엄청난 시각차가 존재한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윤선수 입장에선, "출연료도 따로 받으면서, 녹화장소까지 태워다 달라는 것"은 대단히 염치 없는 요구인 겁니다. 그래서 강하게 주장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작가가 한번쯤 "아, 꼭 필요한 사항인가요?" 정도로 물을 때 아마 "아녜요, 힘들면 그냥 저희끼리 갈게요"라는 정도로 넘어갔을 것 같습니다.

김태호 PD의 말은 거짓말이 아닙니다. 만약 제작진이, 이날 오는 레슬러들이 자기 차를 몰고 현장에 올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차량 한대 정도 배정하는 건 정말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담당 작가는 아마도, '프로 레슬러나 되는 사람이면', 그리고 위에서 얘기했듯 '출연료에도 크게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을 위해 따로 운송 수단을 걱정하는 건 쓸데없는 관심이라고 생각했을듯 합니다.

다시 말해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윤선수 측이 그냥 드러내놓고 '우리 차가 없으니 현장까지 이동할 수단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면 '무한도전' 측에선 별 생각 없이 '네. 그럼 **시까지 여의도로 오세요'라고 했을 상황인 겁니다. 하지만 서로의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양쪽이 이런 비극을 낳은 겁니다.

촬영장에서의 '푸대접'에 대한 주장 역시 양쪽의 몰이해가 크게 작용하는 부분입니다. 방송 녹화장에서 미리 정해 둔 시간은 큰 의미가 없죠. 밤 10시로 예정됐던 촬영이 새벽 3시로 밀리는 건 늘 있는 일입니다. 녹화가 지연되고 있다고 친절하게 30분 단위로 알려주는 사람이 있을리 없습니다. 당연히 방송에 익숙지 않은 출연자는 푸대접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녹화가 끝난 뒤의 상황. 처음에 타고 온 차가 없으니 타고 갈 차가 없을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상황에서 윤선수가 '서울까지 갈 수단'을 묻고, 작가가 없다고 대답하자 윤선수 측은 '그럼 이 펜션에서 자고 가겠다'고 합니다.

이걸 작가 측은 "그분들이 자고 가는게 낫겠다고 해서 그런 것"이라고 보고합니다. 이 보고한 작가는 설마 '프로레슬러들이', 그 먼 현장까지 '버스를 갈아타고 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 자고 간다는 것이 '지금(심야)은 대중교통수단이 없으니, 아침에 일어나서 가겠다'는 뜻이라고는 역시 상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양쪽의 입장을 읽어 보면 이런 겹겹이 쌓인 오해를 읽을 수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3. 프로레슬링 모독?

레슬러들이나 협회나, '무한도전'으로부터 출연 제의가 왔을 때 당연히 '실추된 프로레슬링의 인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건 '무한도전' 팀의 관심사가 아니었습니다.

이 대목에 대해선 충분히 많은 분들의 생각이 오갔을 겁니다. 협회와 레슬러들은 당연히 방송에 협회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기를 바랐고, '무한도전' 팀은 '그건 처음부터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이 부분에도 양쪽의 잘잘못은 없습니다. 양쪽 모두 '자기 생각'을 한 것 뿐입니다. 그 '자기 생각'이 상대방에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에는 서로 관심이 없었을 뿐인 겁니다.

김태호 PD의 말들입니다.




다만 나중에는 '무한도전'이 그냥 떠맡기에는 너무 행사의 규모가 커졌고, 그 정도의 규모가 되는 행사를 해당 종목 협회와 상의 없이 했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장충체육관에서 관객을 모아 놓고 하는 행사는, 그동안 매주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 여러 차례 등장했던 프로 레슬러의 출연과는 성격이 다르죠.

또 '무한도전' 측은 봅슬레이나 댄스스포츠 때 '협회'와 '협회가 인정한 전문가'들의 역할이 필요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협회 측은 '프로레슬링은 그런 역할 없이도 방송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죠.
 
이것이 바로 한쪽에선 '모독'이고, 다른 한 쪽에선 '모독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이유일 겁니다. 다만 이건 모두 '무한도전'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아닙니다. 김태호 PD도 말했듯 '서운할 수는 있지만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게 맞습니다.




아무래도 너무 힘있고 잘 나가는 한 쪽과 너무 가난하고 힘 없는 다른 쪽이 만났다는 것에 모든 불행의 씨앗이 있었던 듯 합니다. 심지어 그 '다른 쪽'은 자신들이 아예 그 대화의 상대로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이 서운하고 약오르는 상황인 것이죠. 협회나 윤선수는 이번 사건이 '프로레슬링계와 무한도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반면 '무한도전'은 어디까지나 '윤선수와 무한도전 사이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전제했듯 이번 사건은 어느 한쪽도 잘못이 없습니다. 양쪽 모두 '자기의 상식'과 '자기의 판단'에 따라 행동했는데 결과에는 모두 불만이 있는 것이죠. 안타까운 건 양쪽의 '상식' 사이에 그렇게 먼 거리가 있는데, 그 엄청나게 다른 상식의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물론 여기저기서 늘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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