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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하녀들'이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금요일 밤 9시45분(정확하게는 금-토 9시45분)이라는, 드라마가 낯선 시간대에 처음 등장해서 '삼시세끼'와 '정글의 법칙'이라는 강력한 두 예능 프로그램에 '나는 가수다 3'까지 끼어든 뒤, 자력 생존의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하녀들'이 갖고 있는 '(양반들의) 슈퍼 갑질에 대한 을(노비들)의 분노'라는 주제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땅콩 리턴' 사건과 맞닿아 일으킨 화학반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녀들'은 지금껏 사극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애사극'입니다. 템포와 주인공의 배치가 남다르죠. 지금까지의 사극들 가운데에도 '멜로 사극'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대부 계층의 남성 위주로 판이 짜여져 있고, 거기에 맞춰 다양한 캐릭터들이 배치되는 형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물론 '대장금' 처럼 서민 계급의 주인공을 배치한 위대한 작품도 있었지만 '대장금'은 사실 대표적인 궁정 사극이고, 연매물도 아니었죠.

 

이에 비해 '하녀들'은 조선 초기를 무대로 일단 양반댁 규수 가운데서도 "조선의 개국공신인 명문거족 국씨 집안의 무남독녀라 여느 반가의 규수들과는 급이 다른", 그 시대의 it girl 이던 인엽(정유미)가 아버지의 몰락과 함께 한방에 최고의 지위에서 노비로 전락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드라마 '하녀들'에서 가장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하는 이야기는 인엽을 중심으로 정혼자이며 양반 댁 도련님인 은기(김동욱), 그리고 뭔가 비밀스럽지만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병판 댁 노비의 우두머리 무명(오지호)의 연애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야기는 가능한 한 축소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뭔가 아쉬움을 느낄 분들을 위한 내용입니다..

 

가장 중요한 역사적 배경은 '함흥차사'입니다. 극중 인엽이 병조판서 허응참(박철민)의 연회장에 박차고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함흥에 차사로 가 소식이 없는' 아버지를 구명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간 것이죠. 또 이어 허응참의 아내이며 윤옥(이시아)의 어머니인 윤씨부인(전미선)이 인엽에게 쏘아부치는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라는 잔혹한 대사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럼 대체 이 함흥차사란 무엇일까요. 대개는 아시겠지만, 혹시 잘 모르실 분들을 위해 해설 들어갑니다.

 

 

 

 

 

 

함흥차사

[명사] 咸興差使. 심부름 등을 위해 한번 떠난 사람이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음. 함흥은 함경남도의 지명, 차사는 예전 긴한 일을 위해 보내던 사신에게 주는 임시 관직명.

12일부터 방송된 JTBC 새 주말연속극 하녀들은 여주인공 인엽(정유미)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조선 태종(안내상)의 밀명을 받아 함흥차사로 갔다 돌아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함흥차사네 글자는 요즘도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이 말에는 불발된 쿠데타의 흔적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본래 8명의 아들을 두었으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권력 다툼으로 세 아들을 잃었다. 결국 천수를 누린 사람은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그리고 5남 방원(태종) 뿐이었다.

 

'태조는 왕좌를 위해 형제들을 죽인 태종을 용서하지 않았고, 태종이 왕위에 오르자 고향인 함흥(영흥부)으로 돌아갔다. 조선이 건국한지 10년도 되지 않은 1401. 아버지가 아들의 왕 자격을 부정한다는 것은 민심을 뒤흔들 수 있는 위협이었으므로 태종은 수시로 태조와 가까웠던 인사들을 보내 태조의 귀경을 설득했다. 하지만 태조는 차사들이 오는 족족 목을 베어 돌아갈 뜻이 없음을 알렸다.' 여기까지가 일반에 널리 알려진 함흥차사의 유래다.

 

 

     [극중 인엽의 아버지 국유(전노민)이 이성계(이도경)에게 차사로 가서 도성 귀환을 설득하다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장면.]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현재 함흥차사에 대해 가장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 문헌은 역사서가 아니라 야담집인 축수편(逐睡篇)이다. 여기에는 성석린이 이성계를 회유하다가 귀공은 나를 달래러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제가 그런 이유로 왔다면 제 아들들이 눈이 멀 것입니다라고 변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정작 그의 두 아들은 장님이 되었고, 성석린은 "아무리 목숨이 걸렸어도 그런 장담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하고 탄식했다는 내용이다.

 

또 이 책에 따르면 이성계가 도성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또다른 차사 박순의 죽음 덕분이다. 태조는 박순에게 설득당했으나, 그가 돌아가자 태조의 측근들은 그를 따라가 죽일 것을 권했다. 이에 태조는 그가 이미 멀리 갔을 것이라 보고 장수에게 칼을 주며 용흥강을 못 건넜거든 베어 오라고 명했다. 하지만 병으로 걸음을 지체했던 박순은 강가에서 죽음을 맞았고, 이를 후회한 태조가 귀경을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사(正史)의 기록은 어떨까. 일단 태조가 처음 북쪽으로 떠난 것은 태종 1(1401) 3월의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해 410일 태종이 도승지를 보내 안변(현재의 원산 부근)에 머무는 태조의 문안을 묻고, 태조가 오래 머물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기록이 실려 있다.

 

 

 

태종이 성석린을 보내 설득하자 태조는 426일 도성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해 1126, 태조는 한밤중 갑자기 소요산으로 떠났다. 실록은 임금(태종)이 전송하려 따라갔으나 미치지 못했다고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꼴도 보기 싫은 태종의 전송 같은 것은 전혀 바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태종은 다시 성석린을 보내 설득했으나 이번엔 통하지 않았다. 결국 해가 바뀌고 14024, 태종이 직접 신하들을 거느리고 소요산 자락까지 찾아갔다. 426, 마침내 태조의 입에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왔다.

 

6개월 뒤인 115, 안변부사 조사의반란을 일으켰다. 명분은 태종에게 살해당한 이복동생 방번-방석 형제의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118일자 실록에 눈여겨 볼 기사가 실려 있다. 조정에서 파견된 박순이 함주에서 조사의의 난에 가담하지 말라고 지방 수령들을 설득하다가 피살됐다는 내용이다. 이 박순은 위의 축수편에 대표적인 함흥차사로 기록된 그 '함흥차사' 박순이다.

 

 

 

게다가 이성계는 안변 바로 북쪽인 함주에 머물고 있었다. 119일자 실록은 태종과 조정 대신들이 반란군 지역에 있는 태상왕의 안전을 걱정하는 내용과 무학대사를 급파해 태조의 귀경을 설득하라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이쯤 되면 축수편에서 박순을 죽이라고 주장했다는 태조의 측근이 누구일지 대략 짐작이 간다.

 

그러나 기세등등했던 조사의의 반군은 한달도 못 되어 1127일 안주 부근에서 궤멸됐고, 128일자 실록에는 태상왕(이성계)이 서울로 돌아왔다는 짧은 한 줄이 기록됐다. 다시 야사로 넘어가면, 마지막 함흥차사는 무학대사라고 전해진다. 박순의 죽음으로 자책하던 태조는 옛 스승 무학대사의 말에 마음이 풀어져 도성으로 돌아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축수편에는 도성으로 돌아온 태조와 태종 사이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환영 잔치를 벌이려 장막을 칠 때, 태조의 성품을 잘 아는 하륜이 태종에게 기둥은 반드시 사람 몸통보다 굵게 해야 할 것이라고 간했다. 태조는 멀리서 태종을 보자 바로 활을 쏘았고, 태종은 급히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명궁으로 소문난 태조 이성계였으나 화살은 기둥을 뚫지 못했다.

 

태조는 탄식하며 태종에게 내가 졌다. 네가 원하는 옥새가 여기 있으니 와서 가져가라고 말했다. 하륜은 또 직접 술을 권하지 말고 내시를 시켜 전달하라 조언했고, 태종은 그대로 했다. 그러자 태조는 술잔을 들이키고 긴 한숨을 내쉰 뒤, 옷소매 속에서 무쇠방망이를 꺼내 내려놓고 모두 하늘의 뜻이로구나하며 껄껄 웃었다.’

 

과연 태조의 북행과 차사들의 죽음은 조사의의 난과 무슨 관계일까. 태조는 아들 태종에 대항해 다시 권력을 되찾으려 쿠데타를 시도한 것일까. 축수편의 마지막 기록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하녀들'에서 인엽의 아버지 국유는 아마도 성석린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편으로 조사의의 난이라는 실제 사건을 통해 '함흥차사'의 고사를 바라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집니다.

 

이성계는 8명의 아들을 뒀는데 첫 아내인 신의왕후 한씨에게서 장남 방우, 2남 방과(정종), 3남 방의, 4남 방간, 5남 방원(태종), 6남 방연의 여섯 아들을 두었고 한씨 사후 계비 신덕왕후 강씨로부터 7남 방번과 8남 방석을 두었습니다. 이중 6남 방연은 조선 건국 전에 사망했고 장남 방우는 - 여러 기록을 볼 때 아버지의 조선 건국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던 듯 한 - 역시 조선 건국 2년만인 1394년 40세에 술병(?)으로 사망합니다.

 

누가 봐도 아들들 가운데 가장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은 1392년 당시 25세였던 방원이었지만 정도전과 이성계는 8남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노골적으로 방원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합니다. 결국 방원은 1398년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도전 남은을 비롯해 방번 방석 형제를 죽였고, 2남 방과를 정종으로 즉위시킨 뒤 1400년 초 2차 왕자의 난으로 바로 위의 형인 방간을 축출합니다. 방간을 바로 죽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자신의 장애물을 모두 제거한 뒤 마침내 그해 11월 왕위에 오릅니다.

 

이성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자신의 뜻을 어기고 형제들을 참살한 방원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졌을 것이고, 태종의 입장에서도 자기의 공을 무시하고 왕위를 다른 아들에게 물려주려 한 아버지가 좋을 리 없지만, 그래도 개국 10년도 안 된 나라의 안정을 생각하면 아버지까지 죽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고려를 되돌려 놓으려는 유신들의 세력(곧 밝혀질 '하녀들'의 또 다른 축입니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조사의의 난은 이런 배경에서 일어났고, 정사든 야사든 꼭 집어 '그 배후에 이성계가 있었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이 사건이 이성계와 무관할 리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태종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설득해 반란에서 발을 빼게 하려 특사들을 보내 설득했고, 함흥차사들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약간 완곡하게 표현한(아버지와 아들이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살짝 감추고)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에 살짝 과장과 은유가 깃들며 '축수편'에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만들어 진 것이죠.

 

(진짜 의문은 당대 최고의 무장인 이성계가 뒤에 있었다면, 왜 조사의의 군대가 한달도 못가 그렇게 쉽게 무너졌느냐 하는 것입니다. 태종과 이성계의 극적인 타협? 조사의의 심각한 무능? 이성계의 일방적 변심? )

 

 

어쨌든 '하녀들'은 이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음모인 고려 회복 운동과 태종의 대처,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인엽이 노비의 치욕을 감내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려 하지만,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 남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절대 을'이었던 노비들이 '슈퍼 갑'인 양반들을 어떻게 조롱하고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가는지가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려집니다. 이 대목에서, 어쩌면 그 시대의 '슈퍼 갑'이었던 양반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합니다. (아직도 피고용인을 노비 대하듯 하는,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심한 모습일 수도 있는 기괴한 모습들...)

 

 

 

 

 

 

'하녀들'에서 놀라운 것 하나는 남다른 공간감입니다. 조명의 사용을 통한 실내 공간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요. 조현탁 감독의 연출은 지금까지 사극에 나왔던 대청/안방/주방/창고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선을 보여줍니다. 이 또한 '하녀들'을 보는 새로운 재미라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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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의 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니까 이건 요즘 먹히고 있는 워맨스 코드가 들어간 작품이라서..." "워맨스? 워맨스가 뭐야?" "아, 그게 브로맨스의 상대 개념인데..." "브로맨스는 또 뭔가?"

 

네. 당연히 그래서 정리했습니다.

 

 

 

 

 

워맨스

 

[명사] womance. Woman+romance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신조어. 동성애는 아니지만 자매애도 아닌, 우정과 사랑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동지애적인 감정.

 

여성 시청자나 관객들이 드라마나 영화 속에 삽입된 BL코드, 혹은 브로맨스(Bromance) 코드를 사랑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흔한 이성애자 남자가 영화 신세계의 자성(이정재)과 정청(황정민)의 관계, 혹은 2014 최고의 화제작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에 나오는 장그래(임시완)-한석률(변요한)의 관계에서 어떤 식으로든 성적 긴장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수의 여성 관객(혹은 시청자)들은 이들 사이에 가상의 러브라인을 그어 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심지어 장그래와 오차장의 관계에서 로맨스를 느끼는 시청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이런 취향을 의식해 응답하라 1994’ 처럼 아예 쓰레기(정우)를 향한 빙그레(바로)의 애타는 짝사랑을 집어 넣어 성공을 거둔 작품도 있었다. 물론 빙그레 역시 드라마가 끝나기 전 의예과 여자 선배(윤진이)와 연인관계로 발전한 이성애자라는 게 중요하다.

 

 

 

Brother romance를 합해 만든 브로맨스(bromance)가 어느 정도 사람들의 귀에 익숙해 질 무렵, 그 반대편의 워먼스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물론 이 또한 이미 존재하던 경향에 이름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문화 상품 가운데 워먼스 코드를 활용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면 영화 델마와 루이스(1991)’을 가장 먼저 꼽게 된다. 수잔 서랜든(루이스)과 지나 데이비스(델마)가 연기한 두 여배우는 모두 이성애자들이며, 심지어 델마는 젊은 남자 제이디(브래드 피트)에 정신이 팔려 둘의 도피를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주인공의 관계는 흔히 말하는 우정의 선을 훨씬 넘어 운명적인 유대를 느끼게 한다. 때로 워먼스 코드는 단 두 사람이 아닌, 복수의 관계 속에서 표현되기도 한다. 빈민가에서 자란 네 흑인 여성이 은행강도를 계획하는 이야기인 셋 잇 오프(1996)’의 경우 스토니(제이다 핀켓 스미스)와 프랭키(비비카 폭스)의 관계를 중심으로 네 주인공이 서로 자매애와 흡사한 동지애를 보여준다.

 

브로맨스와 마찬가지로 워먼스도 동성애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아예 레즈비언들의 애정과 갈등을 그린 미국 드라마 ‘L-워드(L word)’류와는 접점이 없다. 반대로 이성애를 기본으로 한 멜로드라마 속에서도 워먼스 코드가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레이 아나토미속의 메레디스(엘런 폼페오)와 크리스티나(산드라 오)의 관계가 대표적이다.

 

 

 

워먼스 코드가 전체적인 여성 등장인물들간의 연대로 표현된 경우는 메가 히트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볼 수 있다. 네 도시 여성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그리던 이 드라마는 결국 남자들은 왔다가도 가지만 친구들은 영원하다(Boys may come and go, but friends are forever)”라는 교훈으로 긴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현재 방송중인 MBC TV 드라마 전설의 마녀역시 이런 저런 이유로 교도소 한 방에서 수감생활을 한 네 명의 여주인공들이 서로 이해하고 협력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워먼스 코드는 가끔 적대적인 관게에서 표출되기도 한다. 말 많은 영화 쇼걸(1995)’에서 무명 댄서 노미(엘리자베스 버클리)와 스타 댄서 크리스탈(지나 거손)은 영화 내내 적대적인 관계에 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자신들이 걸어온 길이 사실상 같다는 점을 서로 이해하면서 남다른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방송된 MBC TV 드라마 마마에서도 승희(송윤아)와 지은(문정희)은 각각 태주(정준호)의 아들과 딸을 낳은 사이. 전통적인 드라마에라면 본처와 시앗의 관계지만 이 작품에서 두 사람은 적대적인 관계를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돕는 관계를 형성하면서 새로운 양상의 워먼스 관계를 보여줬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여성 캐릭터간 관계에 식상한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한 시도로 여겨질 법 하다.

 

여러 면에서 워먼스는 브로맨스와 떼놓을 수 없는 개념으로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브로맨스를 동성애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판타지로 여기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비해 여성 동성애자들은 워먼스에 대해 호의적이다. 스스로 레즈비언임을 밝힌 미국의 칼럼니스트 엘리자베스 앤 톰슨은 최근 브로맨스 대 워먼스라는 글에서 워먼스라는 개념을 통해 걸프렌드라는 말의 의미를 확장할 수 있었다며 동성애자 여성이 이성애자 여성과 맺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워먼스라는 단어를 통해 재정의하기도 했다.

 

P.S. 물론 브로맨스와 워먼스는 모두 여성 관객들에게서만 반응을 기대할 수 있다. 절대 다수의 이성애자 남성 관객들은 둘 중 어느 쪽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워맨스가 왜 뜨는지를 굳이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합니다. 흔히 많은 사람들이 브로맨스나 워맨스 코드를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대체물로 생각하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남녀간의 연애를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관계와 반대쪽에 있는 것은 기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쓰였던 대가족 중심의 가족애가 아닐까 싶습니다.

 

핵가족화로 인해 전형적인 가족간의 형제애/자매애에 대한 기억이나 공감의 여지가 많이 약해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친구나 선후배에게서 그것을 대체할 만한 감정을 찾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브로맨스나 워맨스는 관념적으로 '가족보다 친구가 더 가까운'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요. 물론 실제로 그러냐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되겠지만.

 

 

맨 위 영화 사진은 우마 서먼, 재닌 갈로팔로 주연 영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입니다. 이런 류의 여성-여성 관계가 좀 더 중요하게 부각되는 로맨틱 코미디도 점점 더 많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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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을미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라고 원대한 포부와 인생의 계획을 정립하는 건 그냥 부지런히 살아서 큰 일 하실 분들의 얘기인 것 같고, 이런 블로그를 돌아보실 여유를 가진 분들은 그냥 사시던 대로 사시는 게 좋겠습니다.

 

 

 

Paul, Stella and James, Scotland © 1982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그러니까 저 밑에 쭈그리고 앉은 소녀가 아디다스 삼선을 촌스러움의 상징에서 벗어나게 한 그 분이란 얘기군요.

 

 

 

10만원으로 즐기는 1월의 문화가이드 (2015)

 

송년 모임으로 퀭한 눈을 하고 이 글을 쓰다 보니 벌써 이 칼럼을 연재하면서 세번째 새해를 맞이한다는 사실이 머리를 때리네. 어찌나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혹시 그 전에 이 칼럼을 본 사람이라면 새해라는 건 그냥 달력 위로 지나가는 표시일 뿐이야. 1월 한달 어떻게 한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야. 그냥 살던 대로 살라는 지침은 지난해와 똑같아. 쉽게 흥분하거나, 불안해 하거나, 안달복달하지 말고 살아. 남들이 뭘 하고 얼마나 앞서 가건, 조금만 길게 보면 언젠가 다 비슷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어 있어.

 

새해의 첫 공연으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건 118, ‘정명훈과 서울시향 10이라는 10주년 기념 공연이었어. 서울시향을 두고 시민의 혈세로 1%의 상류층을 위한 서비스어쩌고 하는 어이없는 주장들이 난무하는 시절인데, 그런 사람들에겐 세금으로 뭘 해야 낭비가 아닌지 궁금해. 도로 포장? 하수도 보수? 정말 그거면 충분해?

 

또 다른 일각에선 정명훈이 온 뒤와 오기 전 서울시향의 연주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뻔뻔스럽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일각에선 무식한 게 죄냐고 방어벽을 쳐 주기도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지위에 올라간 사람은 무식한 게 죄야. 자기가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 함부로 떠드는 건 더 큰 죄고.

 

아무튼 그런 분들의 생각보다는 이런 공연에 돈을 쓰고 싶어 하는(티켓 가격은 무려 1만원 부터시작해) 상류층이 꽤 많은 덕분인지, 이 공연은 거의 매진 직전이야. 이 칼럼이 책으로 나갈 때에는 매진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걸 뻔히 알면서 추천하기는 곤란하네.. 연주 곡목은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황제’(협연자가 심지어 김선욱이야),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4. 혹시 취소표가 나오는지 각자 확인해 보도록 해.

 

이 공연을 포기하면 아쉽긴 하지만 116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KBS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요엘 레비 지휘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들을 수 있어. B 3만원, C 2만원. 

 

오랜만에 연극 한 편. 국립극장에선 118일부터 해롤드 앤 모드라는 연극이 공연돼. 늘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19세 소년이 삶에 무한히 긍정적인 80세 할머니를 만나면서 훈훈한 러브스토리가 펼쳐진다는 줄거리.

 

 

 

잠깐, 그런데 이거 내가 아는 연극 같은데?’라고 말하려는 분? 그거 맞아. 지난해까지 ’19 그리고 80’이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려졌던 작품 맞아. 다만 원작자 측에서 원제 해롤드 앤 모드를 그냥 써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해. 벌써 한국에선 여섯번째 공연인 셈이지. 할머니 모드 역은 계속해서 박정자가 나서고, 19세 소년 해롤드 역은 최근 드라마 미생에서 장백기 역으로 주목을 끈 강하늘이 맡게 됐어. 드라마 밀회의 김희애(극중 40) – 유아인(극중 20) 커플은 한방에 날려 버릴 만한 최강 연상연하 커플의 훈훈함이 추위를 날리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사실 이런 추운 날씨엔 집에 콕 박혀 볼 책을 소개하는게 더 맞을 것 같지만, 건강을 위해선 추워도 바깥 출입을 좀 하는게 좋을 거야. 그리고 1월은 아시다시피 전시의 성수기잖아. 방학이기도 해서 괜찮은 전시들이 몰리는 시점이지.

 

우선 지난 1213일부터 서울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 파리, 일상의 유혹전에 눈길이 가. 프랑스 장식예술박물관(Les Arts Decoratifs)에 소장된 장식 예술품과 가구, 식기, 기타 생활용품 등을 통해 18세기 파리 귀족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야. 그동안 흔히 있었던 예술품이나 사진 전시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전시가 될 것 같네. 13000. 329일까지.

 

 

Jimi Hendrix Experience, London © 1967 Paul McCartney / Photographer: Linda McCartney

 

서울 대림미술관의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생애 가장 따뜻한 날들의 기록도 관심을 가져 볼만한 전시야. ‘매카트니라는 이름에서 바로 느낌이 오겠지. 비틀즈의 리더 폴 매카트니의 전처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어머니인 린다 매카트니는 그룹 윙즈의 보컬 겸 키보디스트로 잘 알려져 있지만 본래 출발점이 사진작가야.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여류 작가라고 말하기도 해. 물론 이런 칭찬은 좀 과장일지 모르지만, 동세대의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그들의 사진(바로 위에 있는 지미 헨드릭스의 경우처럼) 을 작품으로 남길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야.

5000. 116일부터 426일까지.

 

1. 16. KBS 교향악단 정기 연주회                                B 3만원

1.18~2.28 연극 해롤드 앤 모드                                 S 5만원

11.6~4.26 대림미술관,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5000

12.13~3.29 한가람 디자인 미술관, ‘파리, 일상의 유혹     13000

                                                                      98000

 

 

 

사실 한달에 10만원을 자기를 위한 비용으로 쓰기가 쉽지 않은 분들이 많을 겁니다. 만약 한달에 10만원을 쓴다면 와인을 곁들인 저녁 식사 한두번, 혹은 괜찮은 바에서 마시는 보드카 한 병 정도의 값으로 쓰는 게 훨씬 더 효용이 높은 분도 계실 겁니다.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나 담배 한 갑(새해 담배값이 많이 올랐더군요)을 한달간 매일 즐길 수 있는 돈이기도 하군요. 옷이나 가방, 화장품 가격으로 따지면.... 비교하는 게 바보같을 수 있는 비용이기도 합니다.

 

10만원을 쓸 수 있는 방법 가운데 아주 한정된 방법만을 예로 들었습니다. 어느게 더 낫다고 말할 생각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이 사회에서 그 소비의 방법에 우열을 두고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는 이상, 자선단체에 기부하지 않는 소비는 모두 욕먹어 마땅한 짓일 수도 있을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세종문화회관 앞을 그냥 지나치는 대중'에 대한 헛소리를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간에, 몰입해서 즐길 거리가 있는 삶이(다른 말로 하자면 '취향을 가진 삶'이) 그렇지 않은 삶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인생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골프와 온천, 여행과 쇼핑, 그리고 낮 시간의 정치 토크쇼만이 인생의 전부인 노장들에게 경멸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면, 당신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준비를 해 두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게 뭐든 말입니다.

 

어쨌든 새해니까. 

 

그러고 보니 저렇게 팔팔하게 활동하시던 로린 마젤 옹도 지난해 이승을 뜨셨더군요.

 

살아 있을 때 즐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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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 음악의 수도 빈에서 열린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 neujahrskonzert 실황을 메가박스 생중계로 봤습니다. 물론 그동안 몇 차례 있었던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생중계' 라든가 브레겐츠 오페라 페스티발 '생중계' 등이 있긴 했지만 사실 진짜 생중계는 거의 없었죠(일단 그쪽에서 저녁 시간이면 한국에서 저녁 시간일 수가 없으니). 그래서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대략 24시간 이내에 다른 국가의 극장에서 방송되는 건 '생중계'로 친다"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1월1일 오후 7시부터 진행된 이번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진짜 생중계였습니다. 주빈 메타 지휘로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린 이 이벤트는 빈 현지 시각으로 1월1일 오전 11시15분부터 치러진 이벤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과 빈의 시차는 8시간. 대략 7시20분 쯤 중계방송(?)이 시작됐으니 생중계 맞습니다.

 

 

 

 

사실 저도 보기 전부터 이런 저런 것들을 생각하고 본 건 아니고, 그냥 대략 "시간으로 볼 때 이번엔 진짜 '거의' 생중계겠구나" 하는 생각만 갖고 있었는데 시차를 따져 보니 진짜 생중계라서 좀 놀랐습니다. (분명히 생중계이긴 하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라데츠키 행진곡'은 사실 영상에서는 앵콜 곡이었는데 프로그램에도 들어 있고, 생중계 방송사에선 자막까지 다 만들어 놓고 뭐 이건...^^)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는 예전에도 몇 차례 쯤 국내 방송에서 신년 특집으로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방송으로 이런 콘텐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느긋하게 시청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물론 BGM으론 가능하겠죠. 그래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 행사를 지켜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소감을 좀 기록해 놓을까 합니다.

 

 

 

 

 

1. 생중계의 품질이 아주 훌륭했다고 말하기는 힘들 듯. 대략 15분에서 20분마다 화면과 음향이 LP 튀듯 튀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도 영상과 음향이 싱크로가 깨진다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지는 않더군요. 물론 결정적으로 방송 장애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지만 2시간30분짜리 '음악' 콘텐트를 중계하는 데 7~8회 정도(세다가 잊어버렸습니다) 수신 이상이 발생하는 건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2. 사실 가장 놀라운 건 메가박스 코엑스관에서 5개관이 동원됐고 기타 지점에서도 이벤트가 있었는데 사실상 전석 매진이란 거였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이 콘텐트를 신년 이벤트로 고려했다는 얘기거든요. 조금 과장하면 '매년 1월1일은 메가박스에서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를 보는 날'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3. 아버지 요한 스트라우스는 약 150여곡, 아들 요한 슈트라우스는 170여곡의 월츠를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 봐도 사실 월츠라는 음악은 감상용이라기 보다는 리듬에 따라 춤을 추기 위한, '실용음악'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불경스럽게 생각할 분도 있겠지만, 월츠가 '클래식 음악'이라는 분류에 들어 있어서 그렇지 콘서트장이나 이런 이벤트를 통해 월츠를 점잖게 앉아 '감상'하는 것은 댄스뮤직을 좌정하고 앉아 '감상'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

 

4. 그러다 보니 전반은 다소 지루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터미션이 지난 뒤, 2부부터는 주빈 메타의 적극적인 진행 감각이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무궁동 Perpetuum Mobile'을 연주할 때에는 곡 후반을 피아니시모로 유지하다가 관객을 향해 큰 소리로 "etc, etc, etc" 라고 외쳐 웃음바다를 만들어 놓더군요. 끝없이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곡 특성을 유머로 승화시킨.

 

5. 처음 들어 본 곡입니다만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학생 폴카'라는 곡이 연주됐는데, 이 곡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곡이더군요. 브람스의 '대학축전서곡'에 나오는 '가우디아무스 이기투르 Gaudeamus Igitur' 파트의 변주로 보이던데... 이건 브람스의 패러디지, 아니면 브람스와 슈트라우스가 모두 어딘가에 있는 노래를 가져다 쓴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아래가 그 가우디아무스...

 

 

 

 

6. 이밖에도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몇몇 곡들에 발레 안무를 덧붙이는 아이디어(물론 공연 주최측보다는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ORF가 짜낸 것이겠지만)는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7. 가장 마음에 든 연출은 바로 Hans Christian Lumbye 의 곡인 Champagner-Galopp 을 연주할 때 등장한 '샴페인 병 따는 소리 내는 악기'와 단원들에게 술잔을 권하던 메타 옹의 퍼포먼스.  

 

8. 신년음악회의 영원한 엔딩 곡이라 할 수 있는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 때 보여준 메타 옹의 박수 지휘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압권. 음악의 원하는 지점에서 원하는 크기의 박수를 관객으로부터 얻어 내는 노련한 지휘자의 기량을 통해 '과연 음악에서 지휘자란 무엇인가'를 아주 쉽게 보여줬습니다.

('라데츠키 행진곡' 앞부분에서 관객들의 박수를 중단시키고 메타 옹이 단원들에게 외치게 한 구호 같은 건 대체 뭘까요. 역시 빈 거주자, 독일어 능통자 내지는 음악 고수 여러분의 가르침을 기대하겠습니다.^^ )

 

9. 결론은 강추. 다음 기회에라도 한번 보실만한 콘텐트입니다. 정 뭐하면 2016년 1월1일을 기대해 보시는 것도...

 

 

 

 

10. 이 이벤트를 놓친 분들께 추천 하나. 1월3일에는 메가박스에서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의 '2015 신년음악회'를 비슷한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단, 제목은 약간 혼동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 공연은 2014년 12월29일(현지시간) 열린 '새해맞이 음악회'입니다.

 

그러니까 정확한 제목은 '신년음악회 New Year Concert'가 아니라 '새해맞이 음악회 New Year's Eve Concert' 

( http://www.berliner-philharmoniker.de/en/concerts/calendar/details/20332/ ) 인 겁니다. 뭐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있죠.^ 물론 이런 차이를 무색하게 할 만큼 프로그램은 훌륭합니다. 1항 에서 지적한 생중계의 문제도 없고, 오히려 감상용 공연으로는 훨씬 더 좋을 듯.

 

 

P.S. 일본의 상류층 여성 사이에는 '기모노 입고 1월1일 빈에서 신년음악회 보기' 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기모노 입은 일본 여성 관객들이 최소 10명은 앞자리에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비싼 1090유로급  좌석인 모양이던데... (혹시나 해서 검색해 보니 가장 싼 좌석은 3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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