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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베를린에 뭐가 있는데 베를린을 가?

 

라는 말을 사실 너무 많이 들었다.

 

서독과 동독이 나눠져 있던 시절에 유년기를 보냈을 때에도 독일을 대표하는 도시는 베를린이라고 들었다. 나폴레옹과 맞서 싸우던 프로이센의 수도. 그리고 통일 독일의 수도. 마지막으로 히틀러가 독일의 패권을 장악했던 제3제국의 수도. 뭔가 거대하고 강력한 힘의 원천 같은 도시.

 

하지만 동서 냉전이 치열하던 시절 베를린은 갈 곳이 아니었다. 이른바 '동백림 사건'이라는 대규모 간첩 사건도 있었고, 괜히 동독 영토 안 깊숙히 들어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이라는 겁나는 곳이기도 했다. 뭣보다 독일로 가는 한국 비행기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렸다. 독일을 포함하고 있는 관광 상품은 프랑크푸르트-하이델베르크를 중심으로 했다.

 

그 뒤로도 대성당을 보러 쾰른을 가거나 노이슈반슈타인을 보러 뮌헨을 가는(퓌센에 가려면 뮌헨을 거쳐야..) 사람은 꽤 있었어도 굳이 베를린에 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베를린? 아마 동물원이 유명하지...? 정도의 의견.

 

그러던 어느날 베를린이 유럽에서 가장 힙한 도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EU의 중심 국가 독일의 수도 베를린으로 돈과 사람이 급격히 유입되고 있고, 현재 유럽에서 가장 핫한 도시는 베를린이라는 거였다.

 

핫하다는데...^^

 

 

6월4일. 그리 이른 아침...은 아니고 프라하 역에서 오전 10시28분 기차를 탔다. 베를린까지 소요시간 4시간30분.

 

나름 EC(유로시티)라는, '고속열차'로 분류되는 기차인데 대략 400km 정도 거리를 꽤 오래 간다. 이미 KTX의 즐거움을 아는 몸이 되어서... 이 구간은 ICE 같은 초고속열차가 다니지 않는다.

 

 

 

옆의 5시간16분은 버스. 가격면에선 버스가 시간 선택만 잘 한다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인당 2만원 내외로 갈 수 있는 티켓도 있었다. 특히 중간에 드레스덴에서 내릴 거라면 버스도 훌륭한 선택일 듯.

 

 

하지만 드레스덴을 그냥 통과하기로 함에 따라 4시간30분 버스는 피로도가 심할 것이라는(우등도 없다) 예측을 할 수 있었다. 프라하-베를린간 1등석 2인에 100유로 정도. 2등석이면 60유로 정도면 가능하다. 단 조기 예약일 경우.

 

도이체반 홈페이지 www.bahn.de 에서 예약하면 저렇게 생긴 티켓이 온다. 저걸 출력하거나, 앱을 깔고 모바일 티켓을 열면 된다. 모바일도 훌륭하게 작동한다.

 

그럼 1등석과 2등석은 무슨 차이?

 

 

일단 이게 1등석의 모습.

 

 

그리고 2등석.

 

그냥 보는 바와 같이 1등석은 좌석이 3열, 2등석은 4열이다. 그런데 항공기의 이코노미와 비즈니스도 실질적으로 좌석 폭에선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이 차이도 별 게 없다. 안 친한 사람들이 나란히 앉는다면 좌석 간격 차이가 의미가 있겠지만 친한 사람들은 큰 의미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1등석이라고 좌석이 뒤로 젖혀지는 것도 아니다.

 

안 젖혀진다고!

 

 

심지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은 2등석에서 이런 룸을 잡을 수도. 물론 미리 잡아야 한다고 한다.

 

아무튼 1등석으로 할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들, 고민 말고 그냥 2등석 하셔도 된다. 돈 값 못한다.

 

왕년에 유레일 좀 타 본 사람으로서 혹시 추억의 컴파트먼트형(그 왜 해리포터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방으로 나눠진 열차 객실) 객실은 없나 봤는데 최신형 열차라 그런 건 없었다.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식당차도 있고,

 

 

어쨌든 넒은 차창을 통해 바깥 경치를 보면서 느긋하게 달린다는 건 버스와 비교할 수 없는 기차의 장점.

 

중간 중간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고, 공간의 개방감이 다르다.

 

프라하-베를린 구간에선 꽤 운치있는 경관도 볼 수 있다. 그런데 날이 워낙 흐려서 원.

 

 

그래도 1등석이라고 물을 한 병씩 준다.

 

국경 건너간다고 여권 검사 같은 건 없다(EU!). 티켓 검사만 두어 차례 한다.

 

 

오후 3시 베를린 중앙역 도착.

 

참고로 독일어로 역은 Bahnhof인데 Haupbahnhof는 중앙역이다. 모든 도시마다 메인 역이 있다.

 

 

역의 규모가 어머어마하게 크고, 폼난다.

 

 

EU 대표 도시의 메인 스테이션으로 손색이 없다.

 

 

비가 와서... 밖에서 여유잡고 역 전경을 찍지는 못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도착한 풀먼 베를린 호텔 Pullman Berlin Schweizerhof

 

 

역에서 택시로 10분~15분 거리. 바로 앞에 200번 버스 정류장이 있고, 200번 버스로 3정거장만 가면(5분?) 서베를린 교통의 중심인 초 역 Bahnhof Zoologischer Garten(동물원 역) 이 있다. 너무 길면 그냥 '반호프 초' 라고만 해도 된다. Zoo는 독일어로 '초오'라고 읽으면 된다. oo는 독일어에서 '우'가 아니라 긴 '오오'다.

 

도보 7~8분 거리에 비텐베르크플라츠 Wittenbergplatz 전철역(U-BAHN)이 있다. 비텐베르크플라츠 역은 바로 베를린 최대 백화점이라는 카데베(Kadewe)를 끼고 있는 역이다.

 

흔히 베를린은 100번과 200번만 타면 다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뭐 한번 가본 경험으로는 거의 그런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초 역이 가깝기 때문에 대략 어디서 오든 초 역 앞에 내려서 200번을 타면 10분 안에 호텔로 돌아올 수 있다. 어쩌면 초 역 바로 앞의 호텔보다도 덜 걷는 느낌이다.

 

 

실내. 매우 깔끔하고 정돈된 느낌. 좁지도 않다.

 

유럽 대도시에서 이런 호텔을 150불 이내로 잡을 수 있는 건 베를린의 큰 장점이다.

 

 

게다가 창밖으론 길 건너편에 있는 베를린의 허파, 티어가르텐 Tiergarden 공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인터콘티넨탈 호텔이 보인다.

 

아무튼 블로그나 관광 안내를 보다 보면, 베를린이 큰 도시기 때문에 중심지도 여럿이고, 따라서 호텔도 두어 군데로 잡는게 좋다고 추천하는 사람이 있는데, 서울 사는 사람의 시각에서 볼 때 그런 말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 만약 이런 식이라면 서울 여행을 온 사람은 숙소를 세 군데는 잡아야 한다.

 

오히려 베를린은 서울보다 관광 포인트가 집중되어 있는 편이고, 서베를린의 중심지인 초 역에서 동베를린의 중심지인 알렉산더플라츠나 동남쪽의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까지 30분 내로 이동할 수 있다. 호텔은 한 군데면 충분하다.

 

제대한지 얼마 안 되어서 짐 싸는데 이골이 난 사람이라면 모를까, 짐 풀었다 다시 싸고 다시 체크인/아웃 하는 귀찮음을 감수할 필요는 전혀 없다.  

 

 

 

장비 점검. 왼쪽은 프라하에서 산 전철 1일권, 오른쪽이 베를린의 교통카드인 웰컴 카드다. AB지역 5일권이라 36.5 유로. 1300원 기준이면 약 4만8천원 보면 된다. 6월 초만 해도 1200원대 초반이었는데 그새 또 올랐네.

 

아무튼 지역적으로 가까워서 그런지 두 티켓의 사용 방법이 똑같다. 처음 사용할 때 역이나 정류장에서 펀칭 기계에 대고 개통(날짜와 시간이 찍힌다)을 하면, 그날부터 정해진 날짜만큼 사용할 수 있다. 전철, 버스, 트램 모두 프리다. 그리고 수많은 식당/상점/문화공간 등등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는데, 사실 할인용으로는 딱 한군데에서만 써 봤다.

 

4일권이 4만8000원이니 하루 1만2000원 선. 처음 역에서 호텔 갈 때와 마지막 날 공항 갈 때 외에는 모든 교통을 이걸로 해결했다. 베를린에서 교통 편한 호텔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를린은 시내 중심부터 A존, B존, C존으로 나뉜다. 우리는 시내 구경을 할 거라서 AB존용 카드를 샀고, 만약 외곽의 포츠담까지 갈 거라면 ABC존용 카드를 사면 된다.)

 

 

그리고 베를린 여행의 필수품인 뮤지엄패스. 이것만 있으면 3일 동안 베를린의 수많은 뮤지엄들을 그냥 입장할 수 있다. 24유로. 그런데 대부분의 뮤지엄들 입장료가 9~10 유로 정도 하기 때문에 3군데 이상만 들르면 본전은 뽑는다.

 

특히나 학생증이 있으면 12유로라니, 이건 정말 거저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예매해 둔 공연 관람을 위해 길을 나섰다.

 

 

 

호텔 남쪽. 비텐베르크 플라츠에 도착하자 시선을 확 차지하는 카데베 백화점.

 

동행인의 눈이 불타오른다. 백화점 건물을 통으로 씹어먹을 듯한 패기가 느껴진다. ㅠㅠ

 

 

전철을 타고 에른스트-로이터 Ernst-Reuter 역에서 내려 목적지인 쉴러 극장 Schiller Theater 를 찾는다.

 

(독일 여행을 하려면 입구=아인강 Eingang, 출구=아우스강 Ausgang 정도는 그래도 알아야 할 것 같다.^^) 

 

 

베를린 슈타츠오퍼 Staatsoper(State Opera, 그러니까 대략 '국립가극장'으로 번역된다)는 본래 시내 중심가인 운터 덴 린덴에 있는데, 본관은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래서 현재는 쉴러 극장을 본거지로 사용중이다.

 

 

오늘의 공연은 베를리오즈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겁벌 La Damnation de Faust'.

 

그래도 나름 오페라 좀 봤다고 생각하는데 솔직히 한번도 보지 못한 작품이다. 예습하려고 DVD라도 볼까 했는데 그나마 DVD도 콘체르탄테(Concertante), 그러니까 오페라 콘서트 형식으로 연출된 작품이었다. 한마디로 제대로 공연된 DVD조차 국내에서 볼 수가 없는 오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보고 싶었던 건 최고 수준의 오케스트라(당연히 베를린 슈타츠오퍼)에 지휘 사이먼 래틀, 주연 막달레나 코체나(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미세스 래틀이다), 그리고 연출 테리 길리엄이라는 이름 때문. 테리 길리엄... 아마도 '몬티 파이돈'을 아실 만한 분이라면 이 이름에 꽤 끌리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래 영상에 나오는 '헝가리 행진곡' 같은 곡은 꽤 알려져 있고.

 

 

아무튼 공연을 앞두고 쉴러 극장 뒤편에서 식사를 한끼 해결하려다 희한한 곳 발견.

 

 

식당 이름은 Schiller Klause.

 

 

독일의 대문호 쉴러 선생의 이름을 딴 쉴러 대극장 바로 뒤의 식당인 만큼 뭔가 예술가들의 흔적 가득한 장소인데...?

 

 

놀랍게도 부페 레스토랑이다. 자, 수프 부페는 3.9유로, 큰 접시 하나에 먹고 싶은 만큼 담으면 4.9 유로.

 

그리고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싶은대로 원 없이 먹으면 7.9 유로다.

 

독일 물가고 체코 물가고 이건 너무 싼 가격 아닌가 ;;

 

"그럼 7.9유로 하자"는 동행인을 잠시 진정시키고, "우리 양으로 한 접시면 배가 터질 지도 모른다"고 설득.

 

 

 

그래서 이렇게 퍼 왔는데... 사실 음식 맛은 감히 권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싼게 비지떡이다.

 

하지만 몇몇 한정된 품목, 이를테면 프라이드 치킨(그런데 닭의 사이즈가 어마어마한듯. 닭다리가 주먹만하다)이나 소시지 같은 국제적으로 안전한 종목은 그냥 먹을 만 하다. 단지 다른 조리가 필요한 요리는 엄청나게 짜거나 뭔가 느끼한 맛이 강했다.

 

결론적으로 허기진 분들에게는 매우 좋은 선택일 수 있다. 한 접시 4.9유로만 어디냐.

 

 

 

생각보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청중의 수준은 나중에 간 베를린 필하모닉보다 훌륭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

 

하지만 오페라다 보니 청중 평균 연령이 60세 정도 되어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니 쉴러 극장 위로 달이 떠오르고,

 

좀 더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첫날부터 무리하지 말자는 여론에 따라 호텔로 귀환.

 

그리고 다음날 아침. 풀먼 베를린의 조식은 20년간 호텔 다녀 본 경험상 최상위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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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해가 기울 무렵, 천천히 호텔을 나서 구시가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텔이든 민박이든, 한번 아침에 길을 떠나면 저녁에 녹초가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여행은 이제 좀 무리다.

그래서 핵심 관광 스팟에 가까운 호텔이 더 좋은 것이기도.

 

 

아무데서나 카메라를 대도 예쁘게 찍히는 프라하의 마법.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을 음악회와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프라하의 수많은 공연장에서는 쉴새없이 공연을 한다. 단, 거의 모든 공연들은 그저 '공연을 감상한다'는 목표에 맞춰져 있다. 큰 기대를 하면 안 된다. 소위 말하는 관광객용 공연이다.

 

그런데 또 막상 들어 보면 돈 값 이상은 분명히 한다. 이유는 공연장들이 100년 200년 씩 된 교회 내부라는 데 있다.

 

프라하의 폭염을 피해 들어간 서늘한 교회 내부에서, 파이프 오르간과 오케스트라(소규모지만)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절로 영혼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만원짜리 공연이 10만원짜리 공연의 효용을 내는 순간이다.

 

지난 2000년 프라하에 들렀을 때, 우연히 길에서 나눠주는 찌라시를 보고 한 교회로 연주를 들으러 갔다. 그때 느꼈던 청량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비록 관광객용의 약식 연주회지만, 그래도 프라하를 가는 사람들이라면 꼭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굳이 고르라면 성당 쪽을 추천한다(교회 공연도 많은데, 교회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없다^^).

 

 

오늘의 목적지는 틴 성당.

 

줄여서 그냥 틴 성당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틴 앞의 성모 성당'이라는 긴 이름을 갖고 있다. 체코어로는 Kostel Panny Marie Pred Tynem, 영어로는 Church of Our Lady before Tyn 이라고 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 틴 성당의 내부를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함께 달래 보기로 했다.

 

 

 

엄청난 금빛의 물결. 성 비투스 성당보다 훨씬 화려한 색감이다.

 

팁 하나를 더 하자면, 일단 비싼 표를 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일찍 표를 살 필요도 없다. 틴 성당의 저녁 8시 공연은 최고가 1100 코루나(약 5만5000원)에서 500코루나 (2만5000원) 까지 매겨져 있다. 아마 500 코루나는 무슨 장애인 우대 티겟인가 그럴 거다.

 

하지만 늦게 갈수록 가격은 떨어진다. 왜일까. 어차피 공연은 하게 되어 있고, 한 사람이라도 더 들어오면 이익이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공연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 도착하기 바란다. (매진돼서 못 들어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은 금물. 자리가 다 차면 보조의자 놓고 들여보낼 사람들이다.) '공연이 곧 시작하니 표를 사라'는 말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말하기 바란다.

 

'Discount Please!'

 

그 먼데까지 가서 체면 구길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냥 들어가시면 된다. 그 자리에서 당연히 할인을 해 준다. 오래 버티면 버틸 수록 싸 질 것을 확신하지만, 아무튼 적당히 타협을 해서 적당한 가격을 할인받고 들어가시기 바란다.

 

(할인율을 여기서 딱부러지게 쓰지는 않겠다. 각자 알아서 적당히 깎으시길.)

 

 

파이프오르간은 뒤에 있는 구조.

 

 

폰 카메라의 파노라마 기법을 좀 잘못 썼더니 기둥이 휘었다. 아무튼 이런 천장 아래서 음악을 듣는다.

 

멋지지 않나?

 

 

천장 한가운데 합스부르크의 독수리 문장.

 

역시 '그것 또한 우리의 역사'라는 체코 식 사고방식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8명 정도의 단원이 등장하는 Royal Chech Ochestra의 연주 시작.

(대체 왜 Royal이 들어가는지 매우 의문이지만)

 

연주곡은 비발디의 4계, 파헬벨의 캐논, 그리고 프라하이다 보니 당연히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중 '블타바' 등.

 

그렇다. 클래식 좀 들으시는 분들이라면 입문 후 3개월 이내에 듣게 되는 곡들이다(엔딩 곡은 무려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 곡들을 자유자재로 특정 악장만 잘라 내 공연하는 등 전형적인 팝스 오케스트라의 선곡이다. 중간에 독주자로 나온 분은 체코 필하모닉의 악장 출신이라고 하는데... 뭐 누가 확인해 볼 것도 아니고.

 

다시 한번 당부하지만, '대단한 예술적 경험'을 기대하실 만한 공연은 아니고 - 물론 프라하에서는 그런 공연도 매우 자주 열린다 - 이런 장소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게 매우 이색적이고 영혼을 맑게 해 준다는 것을 한번 경험해 보시라는 뜻에서 추천한다. 각자의 스케줄과 컨디션에 맞춰서.

 

 

공연이 끝나고 구시가 광장 쪽으로 나오면 보게 되는 풍경. 후스 동상과 성 니콜라스 교회 (참, 프라하에는 성 니콜라스 교회가 두 개 있다. 이건 구시가 광장 옆의 니콜라스 교회다)를 배경으로, 거의 항상 거리 예술가들이 판을 벌인다.

 

 

 

아마도 프라하라는 도시가 있는 한 영원히 만남의 장소일 구시가 광장의 얀 후스 동상.

 

"이번주 토요일 6시에 후스 동상 앞에서 만나" "알았어" 이런 대화가 수없이 오갈.

 

그런데 지금 저녁 9시다. 아직도 날이 너무 훤하다. 서머타임의 위력을 감안해도 너무 밤이 짧다.

 

 

그래서 일단 강 쪽으로 걷고 또 걷다가 적당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Mistral Cafe. 구시가 광장에서 마네수프 다리 쪽으로 걸어서 10분 정도면 도착.

 

 

Mistral Cafe

Valentinská 11/56
110 00 Praha 1 - Staré Město

 

 

Hovězí maso 150g ve svíčkové omáčce s domácím bylinkovým knedlíkem 이라는 이름의 요리다(좌하단). 200 코루나 정도 하는데 정말 기막힌 맛이다.  대략 안심 그레이비 소스에 버무린 살코기(Beef with Sirloin Gravy 정도?) + 덤플링 이라는 뜻인데, Svíčková omáčka 에 핵심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식당에서라도 꼭 드셔 보시길.

 

나머지는 상식적인 음식들이다. 쇠고기 슈니첼, 팬에 구운 야채, 그린 샐러드. 다 기본 이상의 맛이다. 매우 훌륭

 

아무튼 저렇게 차려 놓고 먹으면 음료까지 한 4만원 정도.

 

 

 

사실 손님은 건너편의 꼬치집^^이 더 많았다. 체코에서는 아마도 스피지 Spizy 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러시아의 샤슬릭이나 그리스의 수블라키 같은 꼬치 구이 요리가 체코에서도 꽤 맛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내부는 꼬치 굽는 연기도 자욱하고, 사람들이 미친듯이 맥주와 꼬치구이를 먹으며 떠드는 분위기. 가격도 꽤 저렴해 보였다. 일단 사람이 많길래 저 집을 가볼까 했지만 빈 자리가 없어서 조용해 보이는 앞집으로 왔는데, 음식을 먹어보고는 전혀 후회하지 않았다.

 

신나게 저녁을 먹고 강쪽으로 나섰다. 해가 이제서야 뉘엿뉘엿 서산으로.

 

 

 

 

 

 

 

막 운치있게 예쁘고 그렇다.

 

 

아무데나 대충 들이대도 그냥 그림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강가로 나오면 건너편에 뜨악 나타나는 프라하 성의 전경.

 

 

 

강가 관광식당에선 관광객들의 식사가 한창. 조명 때문에 나무 색이 계속 바뀐다.

 

 

관광객 티를 팍팍 내면서 이런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찾아보니 이 집 http://marinaristorante.cz 인듯. 청담동 보단 싸다.

 

 

 

 

 

찍어도 찍어도 성에 안 차고 자꾸 또 찍고 싶어지는 프라하성의 마력

 

이럴때 해보고 싶은게 카메라 성능 테스트다.

 

밤 촬영에 특히 강한 RX100 시리즈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잡아당겨질까?

 

 

 

이 정도가 한계인 듯. 아무튼 카를교 위에서 바라보는 프라하 성 야경은 언제 봐도, 누가 찍어도 최고다.

 

 

 

카를 교 동쪽 광장은 항상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일단 저 다리 끝을 알리는 탑이 사진의 배경으로 그만이기도 하고.

 

저 자리에서 두 남자와 한 여자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들 20대 초반으로 보인다. 허물없이 예쁘고 잘생겼다.

 

여자가 두 남자에게 말했다. "어머, 그럼 정말 여기서 헤어지는 거에요?" 두 남자는 약간 어색하게 웃으며 뭐라고 대답을 하는데,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이 그 말 한마디에 세 사람의 관계가 그려진다.

 

세 남녀는 이번 여행길에 만났다. 어제 만났는지, 그제 만났는지, 오늘 아침에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의기투합해서 프라하 구경을 같이 하기로 한다. 그래서 쟁하니 해가 밝은 토요일, 프라하 시내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 기한은 오늘 밤까지. 프라하 구경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카를교 위에서 프라하 성 야경 보기'를 마친 뒤 두 남자는 원래 정해진 대로 여자에게 "이제 우리는 갈 길(아마도 시간으로 보아 프라하 역에서 떠나는 야간 열차가 아닐까 싶다)을 갈테니 아쉽지만 여기서 헤어지자"고 말을 한 상태인 것 같다.

 

여자의 마음 속이 과연 어느 쪽인지, 정말 갑작스러운 이별에 당황한 것인지, 아니면 마지막 예의인지는 알 수 없다. 두 남자 중 누가 여자에게 마음이 있는지, 아니면 하루 다녀 보고 여자에게 질려 예정보다 빨리 이별을 선언해 버린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어쩐지 프라하의 야경을 배경으로 이런 얘기를 듣고 보면,

 

저 세 사람이 나중에 어디선가 다시 만나 프라하에서 함께 보낸 그날을 얘기하는 미래를 상상해보게 된다.

 

 

 

뭐 아무리 메마른 사람도 이런 경관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삼각관계로 발전... 까지는 몰라도.^^

 

 

 

하늘도 파랗고... 밤인데도 파랗다.

 

 

 

이렇게 해서 프라하 여행은 일단락.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집을 들렀는데 분위기도 딱 1980년대 서울의 '하이델베르크'인데다 손님의 절반이 동양인, 나머지 절반 중 절반도 관광객으로 보였다. 큰 감흥 없는 마무리.

 

17년 전에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뭔가 롯데월드 같은 느낌이 난다. 예쁘고 사랑스럽고, 아무데나 찍어도 멋진 사진이 나오지만 어딘가 짙은 감흥을 주지는 못하는. 하긴 두 번 합해서 딱 3일 머물고 무슨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저 파란 저녁 하늘과 금빛으로 빛나는 성의 모습을 보면 저만한 볼 거리가 또 있을까 싶은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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