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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늦어지는 데 대한 변명: 나이를 먹었는지 기억은 안 나고 눈은 침침하고(이건 아니지만)... 4개월 전의 일이지만 어찌나 지난 세기 같은지. 휴일 동안 엄청나게 진도를 나가야겠다는 마음도 먹었었으나, 이래 저래 개인사가 복잡한 터라...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아무튼 그래도 최선을 다 해 보겠습니다. ]

 

하케셔마크트 Hackescher Markt 라는 철자를 보면 대략 의미를 짐작할 수 있듯, 하케셔마크트는 '하케의 시장'이라는 뜻이다. 18세기 Hacke라는 사람이 베를린 시장일 때 형성된 market 지역으로, 중심지가 된 역사가 200년이 넘는다.

 

물론 지금도 활발한 시장이며 베를린 시내의 교통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하케셴 회페 Hackeshen Höfe 덕분인 것 같다. 1906년부터 건설됐다는 이 건축단지는 아르누보 시대의 미적 감각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유서깊은 곳인데, 독일 통일 이후 쇼핑 타운 + 젊은 예술가들의 활동 무대로 개발되어 OLD BUT NEW의 상징 같은 곳이 되어 있다.

 

 

 

맨 윗 사진의 입구로 딱 들어서면 바로 이런 중정 中庭, 그러니까 스페인 식으로 말하면 파티오가 나타난다.

 

본래 Höfe 라는 말이 바로 정원 중에서도 중정을 의미했다고 한다. 딱 보기에도 아르누보 스타일. 건물 상층부의 곡선이 예사롭지 않다.

 

 

 

그러니까 여러개의 중정이 이렇게 겹쳐 있는게 이 하케셴 회페의 특징이다. 건물 아래로 난 통로로 들어가면 또 다른 정원이 나오고, 거기서 빠져 나오면 또 다른 중정과 만나게 되어 있는 미로 같은 구조다.

 

물론 보시다시피 주상복합 구조로 되어 있다. 건물 아래층은 상가, 위층은 거주 공간으로 꾸며져 있는데, 보기엔 참 그럴듯하지만 막상 여기서 산다고 하면 꽤 시끄러울 것 같다. (하기야 바르셀로나의 카사 바트요에도 지금 입주해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취향이니 존중하겠지만 막상 살려면 피곤하지 않을가 싶다.)

 

 

 

아무튼 건물과 상점들이 꽤나 신경 쓴 형태다. 위 가게는 양복점.

 

 

 

생각해보면 1970년대쯤엔 한국에도 이런 식의 중정이 있고 1층에 상가가 있는 아파트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언뜻 철거중인 서소문 아파트 생각이 나기도 한다. 물론 절대 이렇게 예쁘게 꾸며져 있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이 정도만 꾸며져 있어도 그럴듯 하다.

 

 

거기서 또 다른 터널을 지나면,

 

 

아예 대놓고 거리 예술가들을 위해 열어놓은 공간을 만나게 된다.

 

 

 

어찌 보면 정신 산란한 난개발(?) 지역인데, 이쪽 건물들의 내부는 대개 실험적인 갤러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어디 하나 빈 자리만 있으면 작품이 치고 들어온달까...

 

 

 

 

모퉁이를 돌고 돌다가 만난 이 파란 간판을 만나게 됐다.

 

그래, 인증샷은 이런 자리에서.

 

 

 

 

온몸을 다 넣지 말고, 이렇게 딱 클로즈업해서 어쩌고 하는데 동작이 그냥 다 찍혔다.

 

 

골목 사이사이에 이런 바가 있다. 오후지만 아직도 이 동네 사람들에겐 왠지 꼭두새벽 같으 느낌.

 

 

 

사진으로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음악은 클럽 분위기. 어두워진 다음에 맥주 한잔 하면 좋을 느낌이다.

 

 

물론 맥주 말고 다른 것(?)도 많이들 할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치안이 좋은 지역이라 새벽까지 있어도 안전한 곳이라고.

 

 

 

동네를 돌면서 벽 구경만 해도 심심치 않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한 작품 ㅎ.

 

팬더에게 당하는 미키마우스... 어딘가 미중관계를 상징하는 듯도 하고.

 

 

 

하케셔마크트에서 전철을 타고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향해 가는 동안 알렉산드르플라츠 Alexander Platz에 있는 TV타워를 볼 수 있었다. 어찌나 상해 동방명주탑과 똑같은지. 베를린 주민이신 가이드님도 그런 말 많이 듣는다며 웃는다. 공산주의자들의 미적 감각은 가끔 눈을 썩게 만든다. 모스크바의 스탈린 양식 건물들은 어쩌면 양반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네 정거장을 달려 Berlin Warschauer Straße station. 여기서 대로변 내리막길로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죽 걸어가면 그야말로 긴 대로 한켠에 이스트사이드 갤러리가 나타난다.

 

 

 

베를린 가실 생각을 하신 분들 중에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모를 분이 있을까 싶지만 의무적으로 그냥 설명하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란 왕년에 건재했던 베를린 장벽의 일부로, 긴 벽화가 그려진 지역을 말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전 세계의 유명 화가에서 거리 아티스트까지 실로 다양한 인물들이 그 벽에 벽화를 그리고 싶다는 제안을 해 왔고,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장벽의 일부 지역을 수많은 구간으로 쪼개 벽화를 위해 분양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의 길이는 1.3KM. 그림이 그려진 한 구간의 길이는 6~7m 정도 돼 보이는데, 넉넉잡고 10m라고 해도 130개의 그림이 있는 셈(실제로는 한 200개 되는 것 같다)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 작가의 작품은 없다고 한다. 왜?

 

 

작가들의 이메일 주소가 쓰여 있기도 하고,

 

 

 

작가를 기다리는 이런 공간도 있다.

 

 

물론 낙서 수준의 작품도 많은데,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이것.

 

"Mein Gott, hilf mir, diese tödliche Liebe zu überleben"

 

- 신이시여, 이 치명적인 사랑으로부터 살아남게 도와주소서. -

 

'형제의 키스 Bruderkuss'라는 제목인데, 이걸 보고 동서독의 수장들이 만난 것을 기념하는 그림이라고 써 놓은 블로그도 봤다.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겠지만 전혀 다른 내용. 왼쪽 사람은 1980년대 구 소련 서기장이었던 브레즈네프, 그리고 오른쪽 사람은 동독 서기장 호네커다. 두 사람은 실제로 형제국(?)의 결속을 의미하는 키스를 자주 나눴다고 한다.

 

이렇게.

 

 

그 통일전의 구질구질했던 끈끈함을 비꼬고 있는 그림이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무슨 느낌일지. 하긴 러시아는 구 소련 서기장 쯤은 우스울 수도 있는 '짜르' 푸틴의 지배하에 있으니 오히려 저 시절보다 역행했는지도.

 

 

위 작품을 그린 작가들의 이름이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경구.

 

Du hast gelernt was Freiheit heisst und das vergiss nie mehr.

"너는 자유의 의미를 배웠고, 이제 그것을 잊지 말라" 는 뜻이라고 함.

 

자, 여기서 거의 항상 나오는 질문.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란 이름은 베를린 장벽의 동쪽 사면, 그러니까 구 동독 쪽 면에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그럼 그 장벽의 반대쪽 면, 즉 서쪽 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도 그림이 있긴 하다. 있긴 있는데... 낙서다. 자조적인 표현으로 '웨스트사이드 갤러리'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뭐 서쪽도 꽤 작품성(?)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리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상하다고 느낄 부분이 있다.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 막상 가 보면 슈프레강을 따라 장벽이 그어져 있고, 강 반대쪽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그리고 강 쪽이 웨스트사이드 갤러리라고 되어 있다. 갑자기 베를린 2일차의 지리 감각이 흔들린다. "시내에서 장벽(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 동쪽으로 꽤 가면 슈프레강이 나왔다"는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각에 따르면 강쪽이 동쪽, 강 반대쪽이 서쪽이어야 하는데 실제는 그와 반대다. 이건 뭔가 이상하다.

 

(베를린 주민도 질문하자 바로 답이 안 나온다. '어, 왜 그렇지?' 라는 반응.)

 

 

하지만 이건 일직선이 아닌 베를린 장벽의 장난이다. 위 지도에서 보면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 지역에서 슈프레강은 '대부분' 장벽의 동쪽에 있다. 하지만 안 그런 부부닝 한 군데 있다. 바로 그 지점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지점이다.

 

 

이렇게 이스트사이드 갤러리 부분만 장벽이 살짝 강을 건너 와 있다. 장벽 자체가 슈프레강의 동쪽으로 건너 와 있기 때문에 이 저점에서는 강 반대쪽이 동쪽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평소 길치라는 말을 자주 듣는 분들은 이런 이야기 자체가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을테니 그냥 넘어가시면 된다. 반면 본능으로 길을 찾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당황했을 부분이다.)

 

 

갤러리(?) 구경을 마치고 전철역 쪽으로 돌아오다 보면 슈프레 강 위에 오베르바움 다리 Oberbaumbruke 라는 유서깊은 다리가 있다.

 

 

 

다리 위에 성곽 같은 구조물이 있고, 인도 부분으로 들어가 보면 이렇다.

 

 

그리고 다리 위에서 슈프레강을 바라보면 이렇게 알리안츠 본사가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다리를 중심으로 양쪽이 모두 한밤에 불야성을 이루는 나이트클럽 밀집 지역이다.

 

 

 

저런 데가 다 유명 클럽. 사람들이 베를린 간다고 하면 다 '클럽 가냐'고 하는데, 체력이 달려서 한번도 못 가봤다. 

 

 

그렇게 해서 대략 베를린 핵심 투어를 마치고 도이체오퍼 Deutcheoper 역으로 이동.

 

Oper는 글자 그래도 오페라라는 뜻. 그런 역 답게 벽이 줄줄이 유명 작곡가들의 이름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땅 위로 올라가면,

 

 

바로 나타나는 매우 모던한 오페라하우스.

 

 

여행중에 어디를 가 봐도 가장 취향에 맞는 곳은 공연장/미술관에 딸려 있는 카페들인데, 여기도 역시 맘에 들었다.

 

 

카페 겸 대기공간.

 

 

 

 

여담이지만 베를린의 공연장에서는 카페/대기공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체감상 좌석 간격이 한국보다 좁다. 심지어 한국보다 관객들의 평균 다리 길이가 더 길텐데도 그렇다.

 

그러다 보니 인터미션 때 안쪽에서 누가 밖으로 나가려 하면 바깥쪽에 앉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계속 일어서서 비켜주느니 그냥 같이 나갔다가 시간 맞춰 들어오는 것이 낫다. 실제로 인터미션 때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이렇게 샴페인이든 소다든 맥주든 마시면서 담소를 나눈다.

 

여기도 좌석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국보다는 많이 앉는 느낌이다.

 

세상에서 가장 서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국 사람들인 것 같다.

 

 

아, 오페라하우스지만 공연은 '백조의 호수'.

 

커튼콜 때 사진촬영에 대해서는 매우 관대하다(거의 모든 관객이 사진을 찍고 있다). 따라 찍었다.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닌 터라 오페라를 보고 나오니 꽤 지쳐 있었다. 어느새 마음의 고향이 된 초 역(동물원 역)에 내려 거대한 피자로 저녁식사. 슬쩍 밤 구경을 다녀 볼 법도 하지만 중년 부부의 저질 체력상 여기서 더 이상의 행군은 무리라는 결론.

 

...보기보다 피자 맛도 괜찮다. 물론 저게 1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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