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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xx일.

 

베를린 체류기간중의 예보는 내내 비. 하지만 베를린 주민님의 제보에 따라 베를린에서 비란 그냥 일상의 일부이며 언제 왔다 언제 갈지 모르는 그런 존재라는 걸 이미 알아버렸다.

 

그래서 그런 건지 다음날 아침은 정말 맺힌 데 없는 푸른 하늘.

 

물론 푸른 하늘이라고 더운 건 아니다. 오전엔 꽤 선선한 편이다. 물론 낮이 되어 해가 쨍하게 비치면 좀 덥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반팔 입을 날씨는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의 목적지인 샤를로텐부르크 궁 앞에 갔을 때에는 그런 날씨를 종일 기대해선 안된다는 먹구름이 매우 낮게 드리워 있었다. 심지어 흘러가는 빗발까지.

 

하지만 우산이 필수인 런던과는 달리 베를린에선 우산을 상비한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이유는 거의 모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척 하다가 사라질 것임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6일 동안 제대로 장대비가 오는 것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거의 매일 비가 왔으나 30분 이상 내린 경우는 없었다. (아, 밤에는 자는 사이 꽤 비가 온 듯한 흔적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 샤를로텐부르크도 가이드북에 꼭 나오는 주요 관광지기는 하나,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가 아니고...

 

 

 

바로 샤를로텐부르크 궁 정문 건너편에 있는 베르그루엔 미술관 Berggruen museaum.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당당한 '글립미술관'이다. 물론 짐작하겠지만 베를린에는 이런 규모의 국립미술관이 여러 군데 있다.

 

아무튼 이 미술관도 베를린의 강력한 뮤지엄패스에 의해 무료 입장. 개별적으로 방문하면 10유로 정도의 입장료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1층으로 입장하면 바로 보이는 자코메티 선생의 입상. 누가 보든, 어디서 보든 자코메티의 작품을 못 알아볼 리는 절대 없다. 그만치 강력한 아이덴티티. 이런 거 좋아한다.

 

 

 

베르그루엔 미술관이 있기까지는 하인츠 베르그루엔 Heinz Berggruen 이라는 분의 콜렉션 기부가 있었다는 얘기....일 것으로 추정되는 글월이 있다. 설마 토마토 케찹(!)을 발명하신 분은 아니겠지, 라고 생각.

 

어쨌든 독일어다. 못 읽는다.

 

베르그루엔 미술관은 아담한 3층 건물 규모. 하지만 파울 클레, 파블로 피카소, 자코모 자코메티... 뭐 그러한 20세기 전반기의 내로라 하는 화가들의 알짜 작품들이 모여 있다.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흔치 않은 피카소의 조각 작품. 제목은 '학'.

 

그러게 누가 봐도 학.

 

 

 

 

그리고 알기 쉬운, 누가 봐도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작품인 '광장 2'.

 

참 이렇게 알기 쉬운 작가들이 좋다. 그냥 한방에 누구 작품인지 알아볼 수 있는.  

 

 

 

 

앙리 마티스의 후기작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뜯어붙이기도 있고,

 

 

 

 

파울 클레의 상징 같은 저 쭉 찢어진 눈의 소녀. '노란 빵모자를 쓴 빨간 소녀'

 

 

 

 

 

그림을 보면 뭔가 음악적인 느낌이 드는데, 제목 역시 이채롭다.

 

'Abstract Color Harmony in Squares with Vermilion Accents'... 억지로 옮기면 '주홍색 액센트의 사각형들 속에 추상적인 색채 하모니' 정도? 뭔가 청각적 이미지를 색으로 옮기고 싶었다는 느낌을 정확하게 주고 있다.

 

이것도 역시 파울 클레 작품.

 

 

 

 

이 그림의 제목이 '네크로폴리스', 즉 '죽은 자들의 도시'라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클레가 본 피라미드들이다.

 

 

 

 

 

물론 이렇게 특유의 동심의 세계를 그린 작품도 있고,

 

 

 

이렇게 사물의 본질에 깊숙히 접근한 작품도 있다.

 

제목을 들으면 이해가 간다. '카페트'. 가로실과 세로실이 교차하며 짜여진 카펫을 현미경 눈으로 들여다 본 느낌이다.

 

 

'거울을 든 젊은이, 누드, 팬파이프 연주자, 어린이'

 

라는 제목의 스케치를 한 화가는 어느 순정만화가가 아니라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의 그림은 수없이 봤지만, 이렇게 만화풍의 그림은 드물게 본 것 같다.

 

제목은 '실레누스와 춤추는 패거리 Silenus and Dancing Company'.

 

실레누스는 어린 바쿠스(디오니소스)를 키워준 양부로 사람이 아니라 사튀로스다.

 

호색과 술주정이 특징인 사튀로스의 느낌이 너무나 즐겁게 표현돼 있다. 

 

 

 

 

 

3층으로 된 전시장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니 다시 활짝 갠 날씨에, 독특한 모습의 조각이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

 

자기만큼 큰 동생을 업은 착한 형... 이었으면 좋겠으나 제목은 'United Enemies'. 적과의 동침이다.

 

Thomas Schutte 라는 작가의 2011년 작품. 매우 인상적이다.

 

 

아무튼 작지만 내실있는 미술관.

 

워낙 미술관을 좋아하는 동반자와 같이 간 터라 이 미술관을 찾는 데에는 전혀 고민이 없었는데, 대체 왜 유럽만 가면 미술관을 가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분들이라면 과감하게 일정에서 빼시길 권한다.

 

쉴새없이 명소와 명소를 건너 뛰는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비추. 마치 그 도시로 이사간 듯, 그 도시에 사는데 어쩌다 휴일을 맞은 듯 들르실 분들이라면 추천.

 

 

 

베르그루엔의 바로 뒤쪽에 브뢰한 뮤지엄이라는 작은 미술관이 붙어 있다. 일단 문부터 예사롭지 않다.

 

 

 

이 미술관도 1층은 뮤지엄 패스의 무료 입장 구역이라 유유자적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 미술관은 공예/생활용품/포스터/인테리어 중심의 미술관.

 

특히 20세기 초 아르누보 스타일의 '도대체 저런 물건이 실용적인 가치가 있었을까' 느낌의 생활용품/가재도구/가구들이 잔뜩 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겐 꽤 흥미로울 듯.

 

 

 

 

그 다음, 강추하고 싶은 미술관이 길 건너편에 있다.

 

바로 잠룽 샤프-게르스텐베르크 Sammlung Scharf-Gerstenberg 미술관이다.

(http://www.smb.museum/en/home.html)

 

 

입구로 들어가면 막스 에른스트의 주물 작품 하나가 서 있다. 제목은 'The Most Beautiful'.

 

 

 

그리고 뜬금없이 이집트 어디선가 뜯어 온 신전 문짝이 하나 있고

(물론 이건 정복자들이 무단으로 가져온 건 아니고 문화재 보호 협약에 따라 어쩌고...하는 작품이다.)

 

 

그런데 이 문짝을 보고 이 미술관의 성격을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이 미술관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초현실주의 전문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마침 쉬르레알리즘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미술관을 만들게 한 샤프씨와 게르스텐베르크씨의 관심사가 모두 초현실주의 작품 컬렉팅이었다는 것이다.

 

 

 

 

장 뒤비페 Jean Dubuffet 의 '암콤 She-Bear'.

 

뒤비페는 이 미술관이 특히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한데, 이 미술관은 초현실주의의 출발점을 1761년 조바니 바티스타 피라네시의 판화 작품 '카르체리 Carceri (감금, 은둔, 감옥 등의 의미)', 프란치스코 고야가 1799년 내놓은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 Los Caprichos (변덕, 수시로 바뀌는 기분의 의미)'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이후의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본격적인 전시는 2층부터지만 1층에도 희한한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를테면,

 

 

마네의 '까마귀'. 흔히 우리가 알고 있던 마네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그리고 다음 그림,

 

 

놀랍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빅토르 위고다. 그 빅토르 위고 맞다.

 

제목은 무제, 혹은 '섬의 회상'

 

 

 

 

이렇게 피라네시의 이름을 맨 위에 올려놓은 만큼 그 위층에는 피라네시의 '카르체리'에 방 하나를 할애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카르체리'는 피라네시가 상상한 엄청난 규모의 지하 뇌옥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말이 뇌옥이지, 사실 내 눈에는 피라네시가 상상한 지옥의 모습으로 보였다. 물론 첫 그림만 봐도, 그런 의도가 충분히 있었을 것으로 엿보인다.

 

 

 

아무튼 상상력의 규모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이 미술관에서 '우리 초현실주의파의 둘째 형님' 정도로 봅는 화가가 바로 프란치스코 고야다.

 

고야라면 '옷입은 마야'와 '옷벗은 마야'를 바로 떠올리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겠지만, 일생을 호의호식/권력총애/부귀영화 속에서 보낸 것으로 유명한 고야는 인생 만년에 매우 독특한 화풍을 선보였다.

 

바로 인간 내면의 악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인데,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가 보신 분은 고야의 '블랙 페인팅'이라고 이름지어진 전시실을 기억할 것이다. 말년의 걸작들, 예를 들어 '아이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같은, 일면 공포감을 일으키는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그림에선 냉소적이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진다.

 

위 그림의 제목도 '어리석음, 혹은 대단한 전사'

 

 

 

물론 '카프리초'에 수록된 당나귀 그림도 여기서 빠지지 않는다.

 

 

 

 

 

오스카 도밍게스의 '안전핀'은 어딘가 달리를 연상시켜서 찰칵.

 

 

그리고 무척 좋아하는 회가 르네 마그리트의 청년기 그림인 '학생의 꿈'이다.

 

 

 

이건 말년에 그린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의 가스파르'. 뭔가 사진의 부름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 초현실주의 화가 진용에서 빠질 수 없는 대가가 막스 에른스트.

 

그의 인상적인 작품 '사이프러스'도 여기 있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음산한 한스 벨머의 '세 소녀와 죽음'.

 

 

 

 

 

아무튼 작지만 알찬 박물관이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공간, 박물관 카페가 무척 아름답다.

 

 

 

 

특별히 조경에 신경쓴 것도 아닌 듯 하지만 미술관 다운 높은 천장과 나무, 숲, 거리,

 

그리고 너무 사람이 많지도, 아주 없지도 않은 적당한 조용함. 따뜻한 햇살.

 

왠지 너무나 마음이 가는 풍경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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